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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에서의 ‘불멍’
- 코로나19로 여행지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예전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이름난 여행지를 탐색했다면 이젠, 다른 여행자들과 접촉을 최소화하고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언택트 여행지가 선택의 우선순위를 차치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평창군 미탄면 어름치 마을이다. KTX가 개통된 덕분에 서울에서 평창까지는 1시간 40분이면 닿는다. 평창은 가까워졌지만 평창역에서 미탄까지는 택시로 40여 분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먼 길이다. 찾아가기 불편하기 때문에 청정 자연이 살아있는 동네, 한적한 가을 여행지로 제격이다. 어름치 마을의 본래 이름은 미탄면 마하리인데 청정 지역에서만 사는 천연기념물 어름치가 살 정도로 깨끗하다고 어름치 마을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 1박 2일 머물며 낮에는 동강에서 슬로보트를 타고 별이 쏟아지는 밤엔 불멍을 하며 가을 낭만을 즐겼다. 한강 상류인 동강은 태백과 정선, 그리고 평창과 영월을 지나 단양으로 흘러간다. 그중 평창에 해당하는 구간은 짧지만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비경은 비길 데가 없다. 동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칠족령 트레킹을 추천한다. 강원도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길을 걸으며 내려다보는 동강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동강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바로 동강 슬로보트다. 느리게 움직이는 고무보트를 타고 2시간 동안 신선계 같은 동강의 기암절벽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4억5000만 년 전에 융기돼 형성된 석회암층 지형이 만들어낸 비경을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름다움이 더 생생하게 전해진다. 중국의 장가계는 가보지 못했지만 장가계의 풍광도 이보다 더 아름답진 못할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름치, 동강할미꽃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한 동강. 아름다운 경치에 넋이 나가고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에 다시 한 번 홀렸다. 봄에 피는 동강할미꽃은 볼 수 없었지만 바위틈으로 피어난 구절초들이 아쉬움을 달래줬다. 천천히 움직이는 보트 위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생 사진도 찍었다. 힐링 그 자체였다. 밤의 동강은 낮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밝게 빛나는 시골의 밤하늘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가지고 있다. 마을에선 그 로망을 채워줄 동강 밤마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체험비를 내면 야간 짚라인을 타고 모닥불 앞에서 동강 하늘에 총총 뜬 별을 보며 가을날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고구마, 감자, 가래떡 등 주전부리도 준비해주니 훨훨 타는 모닥불에 구워 맥주 안주를 대신했다. 특히나 ‘불멍’이 좋았다. 불멍이란 타는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걸 의미하는 신조어다. 단어를 듣기는 했어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지인들과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경험했다. 바쁘게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치고 힘들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나무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불멍이 왜 사색의 계절 가을과 잘 어울리는지 알았다. 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런 감동은 처음이다. 동강에서의 불멍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평창군 미탄면은 평창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산골마을이다. 옛날 사람들은 높고 험한 산을 올라 약초를 찾고 갖가지 산나물을 캐며 살았다. 감자와 메밀죽을 쒀 먹는 녹록지 않은 삶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미탄이 요즘 핫한 언택트 여행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 2020-10-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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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동강 할미꽃 "절벽에서도 하늘 향해 고개를 세우다"
- 2월 중순 저 멀리 여수 금오산에 변산바람꽃이 피면서 꽃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복수초와 너도바람꽃·노루귀·꿩의바람꽃이 꼬리를 물고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며 전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급기야 산이 산을 껴안고 강이 강을 휘감아 도는 강원도 정선 백운산 정상 아래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도 봄바람·꽃바람이 불어 화창한 봄날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립니다. 특히 영월·정선·평창 지역 사람들이 ‘뼝대’라 부르는 석회암 바위절벽 틈새 곳곳에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이 도도하게 피어나 첩첩산중 강원도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냅니다. 앞서 고고성을 터뜨린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노루귀 등 손톱 크기의 자잘한 풀꽃에 비해 크기도 훨씬 클 뿐더러 많게는 10여 송이가 무리지어 피고, 꽃색도 자주·보라·분홍·흰색 등 형형색색이어서 가히 봄 야생화의 우두머리라 이를 만합니다. 헌데 그 이름이 동강할미꽃이니, 이른바 ‘5060세대’가 한창 피어나는 ‘아이돌’을 향해 “나 아직 안 죽었어. 어디 한번 붙어볼 테야?” 하며 황혼의 비장미를 불태우는 듯합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걸어가고 있네”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 허리 숙여 땅을 보고 피는 다른 할미꽃과 달리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추세우고 꽃망울을 활짝 터뜨립니다. 1997년 생태사진가 김정명씨에 의해 처음 일반에 알려졌고, 3년 뒤 이영로 박사에 의해 동강할미꽃(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 T.C.Lee.)이라는 이름의 한국 특산식물로 공인되었습니다. 동강할미꽃의 발견, 그리고 세계 식물학계의 한국 특산식물 인정은 결국 1990년대 논란이 되어온 동강댐 건설 백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 석회암과 맑은 물이 만나 환상적인 에메랄드빛을 만들어내는 동강과 그 상류 조양강을 따라 걸으며 형형색색의 동강할미꽃을 만나보기 위해 해마다 전국에서 수백, 수천의 야생화 애호가들이 줄지어 찾아옵니다. 그 행렬을 보면서 동강댐이 건설돼 동강할미꽃 등 자연생태계가 파괴됐을 상황을 상상하기만 해도 참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Where is it? 강원도 영월·정선·평창 일대 조양강과 동강변, 정선 백운산, 그리고 삼척 덕항산이 동강할미꽃의 주요 자생지이자 탐사지이다. 특히 동강과 그 상류인 조양강 유역 어디에서나 한두 송이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지만,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정선군 신동읍 점재마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등이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집단 자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정선 백운산 정상 부근 칠족령에 올라 조양강이 굽이치며 만들어낸 ‘한반도지형’을 내려다보며 천애절벽에 핀 꽃(사진)을 만나는 것은 동강할미꽃 탐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2015-03-25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