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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만에 나타난 전부인과 삶 무너진 전남편의 독백
-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당신이 파리를 다녀간 이후 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럽고 착잡하군. 당신이 날 만나기 위해 파리에 머문 두 달 동안 내게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던 것에도 마음이 불편하고 심란스럽고. 당신이 어떤 노력을 했든 간에 난 당신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당신이 내 집을 어찌어찌 알고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해도 난 안 열어주었을 거니까. 이봐요, 우린 이미 헤어진 사람들이라고. 깨진 접시를 붙인다고 붙여지나? 우리가 헤어진 지 올해로 꼭 10년째인데, 전해 듣기엔 일부러 그 시기에 맞춰서 나를 찾아왔다고? 당신은 나보다 에너지가 많고 집요하고 집착도 강한 성격이라 나와의 만남도 이벤트성으로 하고 싶었던 걸까? ‘이혼 10주년 기념 재회’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말이지. 그러면 내가 감동할 거라 여긴 건가? 아, 오해 마. 빈정대는 투로 들렸다면 그건 오해야. 당신이 갑자기 파리에 나타난 것이 그 정도로 뜬금없었다는 뜻이니까. 당신이 날 보러 오겠다고 미리 말했다간 내가 인근의 독일이나 스위스로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나? 그래서 그 어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건가? 이봐요, 아까도 말했지만 내 집으로 찾아왔다 해도 난 안 만났을 거야. 그러니 알리고 왔다 해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어. 내가 어디로 도망갈 일은 절대 없었을 거란 말이지. 물론 놀라긴 했어. 아침에 출근해서 막 하루 업무를 시작하려는 순간,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뜨길래 무심코 받았는데 당신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으니. 너무 놀라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순식간에 끊고 나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 여하간 10년 만에 듣는 목소리니까. 게다가 지척에서 걸려왔으니. 난 서둘러 당신의 전화번호를 차단했어. 전부터 끊어뒀던 메일이나 SNS 잠금장치도 다시 점검하고. 당신의 한 점 목소리, 한 줄 문장이라도 새어 들어올세라…. 예나 지금이나 당신은 참 적극적인 여자야. 나 같으면 절대 그렇게는 못 했을 것 같은데.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든 수소문해서, 전혀 생소한 곳임에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아주 가까운 장소에 숙소를 정하고, 또 바뀐 전화번호는 어찌 알고 당돌하게 연락을 취해왔으니. 물론 당신도 내 전화번호를 누르기 전 적잖이 긴장을 했겠지만…. 여하간 당신은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야. 인정!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그래, 한국은 잘 돌아갔는지? 벌써 두 달 전 일이네. 날 못 만났다 해도 당신 성격에 시간을 헛되이, 멍하니 흘려보냈을 리는 없고, 알뜰살뜰 요모조모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구경했겠지. 옛날 프랑스에서 맛있게 먹던 음식도 먹고, 아마도 한국 지인들 선물까지 꼼꼼히 챙겼을걸. 원래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았으니 지난 10년간 대인관계는 또 얼마나 넓혔을지. 선물할 사람이 많을 테니 비싸지 않으면서도 요긴한 것을 찾기 위해 파리 기념품 숍을 최소 두세 번은 둘러보았을 거야. 명단을 작성하여 체크해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할 일을 놓치지 않는 당신이니까. 20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당신의 그런 면을 따라갈 수 없었지. 난 원체 에너지가 부족하고 뒷심이 달리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당신 없이 그 고생스러운 시간을 헤쳐 나온 게 스스로도 놀라워. 그런데 나를 버리고 떠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꽁꽁 단속하던 마음과는 별개로 만나서 당신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고도 싶었지만, 솔직히 난 당신을 만날 자신이 없었어. 당신은 어떤 각오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난 막상 당신을 대면했을 때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두려웠어. 그래서 한사코 피했던 거야. 물론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이 당신은 능숙하게 대화를 리드해나갔을 테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아. 두려움보다 노여움이 더 컸으니까. 당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당신의 파리 출현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한 일에 비해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는 억울함도. 맞아, 난 억울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 인생이 이렇게 무너져야 했냐고! 모든 것을 잃은 마당에 당신이 떠난 후 내 인생은 순차적으로 무너져 내렸지. 우선 퇴직 후 당신과 함께 차린 프랑스 식당이 망했고, 그 스트레스와 과로로 건강이 상했고, 가까스로 몸과 마음을 추스려 새로 시작한 숙박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고, 당신과 이혼 후 내가 걱정되어 한사코 한국을 떠나 파리로 오셔서 고생만 하시다 95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을 고스란히 혼자 지켜야 했고, 그 와중에 먹고는 살아야 하니 청소일을 한 3년 했고…. 내 60 평생에 겪을 암흑과 폭풍을 이혼 후 10년 사이에 다 겪은 것 같아. 장모님은 우리 어머니보다 2년 앞서 돌아가셨으니 의지할 곳 없이 당신도 나름 고생을 했겠지만, 우리가 헤어진 후 쓰나미는 내게만 닥친 것 같은 느낌이야. 쓰나미는 말 그대로 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지. 난 완전히, 쫄딱, 돌이킬 수 없이 망했어. 그나마 3년 전부터 직장을 다니게 된 지금이 가장 안정된 상태야. 서서히 건강도 되찾아가고 있고. 아, 이참에 짚고 넘어가지. 이혼하면서 나중에 주기로 했던 재산 분할금을 한 푼도 못 준 건 사업이 망했기 때문이지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야. 그 점에선 당신도 날 원망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의 무능으로 전 재산을 날린 것에 대해. 당신은 전업주부였지만 부부의 재산은 공동이니까. 그때 당신 명의의 카페라도 그냥 뒀더라면 이렇게 돈이 하나도 없진 않았을 텐데. 당신만이라도 좀 편히 살았을 테니까. 그때는 날 버린 당신이 너무 미워서 어떻게든 그 카페를 빼앗고 싶었어. 그런데 당신은 또 왜 그렇게 순순히 내어줬는지. 나로선 주면 받고 안 주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그냥 꺼내본 말이었는데, 당신 이름으로 된 가게를 왜 선뜻 내게 줬어? 내가 아무리 전체 사업체의 디렉터라 해도, 그래서 법적 처분권이 내게 있었다 해도, 당신이 기어코 안 내놓겠다면 내가 강제로야 했겠어? 내 추측이지만 나를 버리고 가는 마당에 날 배려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내게서 돈이라도 축내지 않으려고. 당신은 원래 돈 욕심은 없는 사람이잖아.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건가?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내가 이렇게까지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당신에게 나쁜 짓을 했나? 당신 어떻게 생각해? 정말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야? 이번에 당신을 만났다면 그걸 따져보고는 싶었어. 내가 당신을 때린 게 이렇게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일인가 말이야. 당신과 20년을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때린 건 사실이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이야?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사람이 화나면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 안 맞고 사는 여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아, 됐고, 다 지난 이야기 또 꺼내면 뭘 하겠어? 그러게 왜 찾아와서 날 다시 화나게 하냔 말이야. 당신, 내가 얼마나 자존심 상한 줄 알아? 내가 왜 이렇게 도피하다시피 살고 있는 줄 알아? 솔직히 내가 지금 사는 게 사는 건 줄 알아? 파리 교민 사회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 우리가 왜 이혼했는지 소문이 다 나서 말이야. 차라리 대놓고 묻기라도 했다면 나도 뭐라고 해명,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당신의 행방조차 묻지 않으니. 생각해봐, 늘 붙어 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어디 갔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안부도 안 묻는다는 게 말이 돼? 내가 지금까지 그런 맹탕 같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도 화가 나. 물론 지인들로선 묻는 자체가 민망했겠지. 자기들끼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날 배려하느라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도. 그럼에도 나는 주변의 시선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어.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나는 숨이 막혀갔어. 불쾌했어. 모두들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향해 한사코 침묵하는 그 무거운 압력이 두렵기도 했어. 모두 나를 왕따시키는 것 같았고, 경멸하는 것도 같았고, 동정하는 것도 같았고, 한심하게 여기는 것도 같았어. 당신이 떠난 후 난 그렇게 기가 죽기 시작했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 당신이 원망스러운데도 하늘을 향해 그 원망을 퍼부을 수 없는 내 자신이 초라했어. 솔직히 겁이 났어. 어머니 돌아가신 후 교민 사회를 떠나 프랑스 본류 사회로 스며들었어. 지금은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한국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는 곳이지. 아예 한국말을 잊어버릴 지경이라니까. 지금 나는 결코 행복하다곤 할 수 없지만 그냥 편해. 나와 당신을 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당신 날 왜 만나려고 한 거야? 나와 다시 합치고 싶어서? 아님 날 용서해주려고 온 거야? 두 가지 모두 사양하겠어.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난 당신에게 용서받아야 할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애매한지 모르겠어. 차라리 당신이 날 마구 때려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아. 개운하게 뚫릴 것 같아. 어쩌면 머지않아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찾아갈지도 모르겠어.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2023-08-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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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담은 서툰 그림, 영화로 빛을 발하다
-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그림과 아이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한 내레이션은 5·18 민주화운동, 노인, 장애라는 주제를 훑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입버릇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선 주는 데는 박한 세상,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시도가 빛날 수밖에. 영화 ‘양림동 소녀’가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제의 막이 내린 대한극장 한켠에서 임영희,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 아들은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선물했다. 그림으로나마 답답함을 풀고 세상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왼손으로 펜을 쥐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이사 왔을 때의 기억들이 한 장, 두 장 그림이 되어 쌓였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은 삐뚤빼뚤한 그림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왼손으로도 괜찮을까?” 자신 없어 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꾸준히 격려하고 설득했다.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감독 아들의 오랜 꿈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연주한 배경음악을 삽입했다. 딸은 영어 자막을 위한 번역을, 아버지는 영화 타이틀 로고 제작을 맡았다. 분류는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글자 그대로 ‘독립영화’인 30분 08초 분량의 ‘양림동 소녀’는 이렇게 탄생했다. 빛나는 소녀 뒤엔 양림동이 있었다 영화는 온전히 어머니 임영희 씨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그림으로만 밀고 나갔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영화도 어머니의 그림으로 승부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대체로 오래 기억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제가 광주에서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영광스러운 한때로, 또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순간으로 죽는 날까지 품고 갈 수밖에 없죠.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된 장애인의 삶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들만 영화에 담았을 뿐이에요.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니 당연히 기억하는 거고요.” (임영희 감독)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임 감독이 생애 가장 주체적이던 시기의 배경이었다. 제목이 ‘진도 소녀’, ‘광주 소녀’가 아닌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생지인 진도는 옛 추억거리가 있고,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 온 것도 맞다. 하지만 문인의 꿈을 키우던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지역은 양림동이다. 남편을 만난 곳, 아들 오재형 감독이 태어난 곳 또한 양림동이다. 정체성을 결정지은 순간이 거리에 즐비하다. 그중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임 감독에게 물었다. ‘보프룩 까페’를 드나들던 20대 시절을 꼽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프룩 까페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 미국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프’, 폴란드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을 따온 별명이에요. 제가 지었죠. 실제 카페는 아니었고, 제가 20대 당시 동경하던 언니의 집이었어요.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저 여성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보프룩 까페에는 언제나 뜨거운 커피와 사과 한 조각이 있었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어요. 제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죠.” (임영희 감독) 그 밖에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옷을 만들어줬던 것 등. 떠올리면 즐거워지는 순간은 많다. 다만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이다. 임 감독은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밤중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이웃이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남편 오정묵 씨는 황석영 작가의 집 2층 거실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임 감독은 영광이라 표현한다. 난리통에 누구 하나 싸우거나 도둑질하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신성한 공동체’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약자를 통합시킨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의 기대대로 혹은 그 이상이다. ‘양림동 소녀’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 후 GV(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들과 갖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받았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2022년 제13회 광주 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김영우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심 심사위원은 “노인이라는 단어에 따라다니는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노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변화, 태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어르신이 직접 창작의 주체로 나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는 심사평을 대표로 전했다. 두 감독이 스스로 평가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손을 쓰지 못하세요. 그래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셔야 했죠. 그 때문인지 선이 삐뚤빼뚤한데, 보통의 경우 약점이 되는 부분이 어머니의 그림과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게 미술 전공자가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무엇보다 작화가 수준급이었고요. 덕분에 영화의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결정했죠.” (오재형 감독) “요즘 세상은 약자를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 잘게 구분해 갈라내고 있죠. 그런데 ‘양림동 소녀’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어요. 어린이 임영희, 청소년 임영희, 여성 임영희, 노인 임영희, 장애인 임영희의 모습으로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인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대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네요.(웃음)” (임영희 감독) 귀여운 그림체와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는 목소리는 불행한 이 한 명 없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생존 기록에 가깝다. 이 부조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작자가 되면서 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던 어린 시절의 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옷을 지어줬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다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이 떠올라서’가 이유였다. ‘양림동 소녀’는 여성 인물이 사회의 갈등과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실제 증언,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비극적 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나이가 어리거나 심신 미약자라면 접하기 꺼려할 수 있다. 잔혹한 참상까지 담담하게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낸 영화 ‘양림동 소녀’는 그 지점을 비껴간다. 덕분에 더 여운이 남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 서사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한 차례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장애 극복으로 흐르면 편견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임 감독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자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점을 기뻐할 뿐이다.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들 오재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그의 어머니가 국가폭력, 장애의 관점에서 ‘생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림을 매개로 하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는 것. 말로 전해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상흔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금은 어머니의 생애가 앞으로 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대상 수상작 감독이라면 으레 가질 법한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두 감독 모두 고개를 저었다.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전남 순천시 ‘골목책방 서성이다’에서 영화 상영회 및 GV 행사를 소소히 가졌다. 아직 세상에 한 권뿐인 ‘양림동 소녀’ 그림책은 올해 안에 삽화 위주의 에세이로 정식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데 굳이 영화 상영 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오 감독은 다음 일정이 잡히거든 연락드리겠다며 웃었다. 임영희 감독은 누룽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조각내는 세상이지만, 누렇게 눌어붙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 감독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는 단 하나다. ‘내가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는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여성과 장애인, 공동체 문화를 위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섬초롱 꽃에/ 시원하고 달콤하게 왔어/ 고양이는 웃고/ 까치는 종종거려/ 물 마시는 산/ 춤추는 빗방울/ 나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양림동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임영희 감독이 낭독한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임 감독의 이야기가 수많은 마음을 아침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게 적실 수 있길 기원한다.
- 2023-06-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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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과 단절 속,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
- “아무도 없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이 무채색이 되었다가 누군가 날 알아주면, 단 한 명이라도, 갑자기 숨이 쉬어지고 세상이 색깔을 입게 돼. 그제야 살아볼까 하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호 주제를 일찌감치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으로 잡고 여유를 부리던 필자는 마감이 점점 다가오면서 여러 목소리와 이야기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시댁 형님들과 나눈 대화방에서 글머리를 찾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큰형님! ‘하늘꽃’ 지고 ‘땅꽃’ 피는 계절 모진 서너 해, 역병 맞은 세상 꿋꿋하게 견디더니 긴 세월 품었던 설움 한꺼번에 폭발한 올봄. 산수유, 벚꽃이 천지사방 만발했습니다. 그동안 자기 순서 지키며 차례로 피던 봄꽃이 너나 할 것 없이 꽃망울 펑 펑 펑 터트렸으니까요. 긴 겨울 메마른 가지 애써 외면하면서 덩달아 하늘 볼 일 마다했는데, 마을마다 거리마다 천변(川邊) 따라 펼쳐진 꽃 대궐 덕분에 하늘 한껏 올려다보며 봄을 만끽했습니다. 필 때도 갑자기, 질 때도 후두둑 하더니 행여 아쉬울세라 영산홍, 철쭉, 민들레, 오랑캐꽃, 할미꽃까지 땅꽃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시샘이나 하듯 노랑, 보라, 진분홍, 연분홍 색색 향연을 펼치지 뭡니까.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을 5월엔 아마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담쟁이덩굴, 등나무 잎겨드랑이에서 주렁주렁 앙증맞은 꽃을 피우겠지요.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연결해 가득 충전해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 아닐까요. 이름 모를 혹은 이름 없던 꽃에 일일이 이름 붙여 불러주면 내게 다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낳아 이름 지어 명자야, 경희야, 향순아, 옥임아, 종섭아 부르고 또 부르던 부모.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부모.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어버이날, 스물넷 어린 새댁이던 필자는 같이 살던 시부모님 몰래 친정에 다니러 갔습니다. ‘힘들다, 시어른과 같이 지내기 참 무섭다, 엄마 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입 밖으로 하소연이 시작되려던 찰나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얼른 집에 가거라. 어른들 걱정하실라.” 아버지는 딸내미 옷차림새만으로도 허락 없이 왔다는 게 보이는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때는 참 서운하고 서러웠는데 철이 조금 든 지금 생각해보니 시어른들 눈 밖에 날까 봐 애틋한 마음 숨기고 서둘러 시댁으로 보내셨다는 걸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내 편’ 응원이 필요할 때면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좋아하는 배추전 잔뜩 부쳐주시면 손으로 주욱 찢어 양념장 콕 찍어 맛나게 먹습니다. 사랑 한가득 충전해 배부르면 그제야 웃음 찾아 돌아오곤 합니다. 아름다운 신부, 두봉 주교 올해 93세를 맞은 두봉(杜峰, 본명 르네 뒤퐁) 주교는 1969년부터 1990년 정년까지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냈습니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난 그의 한국식 이름 두봉(杜峰)을 풀면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라는군요. 극빈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였던 한국에 파견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어려운 나라로 가는 것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는 그는 마음 그릇 크기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꼬박 두 달 반 배를 타고 도착한 한국에서 스물여섯부터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헌신하고 봉사한 두봉 주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당시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 시절 한국 사람은 좋았다며, 그렇게 참담한 지경에 처했음에도 참 떳떳하고 친절하고 인간다운 인간이랄까 한국 사람이 풍기는 인상이 좋았다고 회고합니다. 불우한 청소년과 농민을 돌보고 교육하고 인권을 신장하는 일에 한평생 헌신해온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기쁘고 떳떳한 삶의 원동력 한국으로 선교 온 32년간 신부가 된 아들에게 매주 편지를 보내온 아버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자식을 한국에 바치는 입장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두봉 주교 품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편지를 쓴다. 친애하는 나의 작은 르네야. 나는 어둡고 흔들리는 외로움 속에 서서 편지를 쓰고 있단다. 여긴 비가 너무 많고, 한국에는 비가 너무 적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하늘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어머니도 떠난 텅 빈 집, 병상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삐뚤빼뚤 써 내려간 편지를 생전 아버지 대하듯 귀하게 여기는 두봉 주교. 특히 1986년 5월 9일 아흔이 되신 아버지가 부친 마지막 편지를 자주 꺼내봅니다. 보름에 한 번 프랑스로 답장을 보내던, 이제는 구십 훌쩍 넘긴 아들이 1986년 구십 아버지한테 시간여행하듯 답장을 합니다. “아빠, 고마워요. 내가 아빠 엄마로부터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 편지 30년 동안 계속 보내주신 것 고마워요. 난 아빠 엄마 너무 좋아.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영원히 행복하게 사실 거예요. 나도 언젠가 따라갈 거예요. 따라갈 때까지는 돌봐주시고, 그 다음에도 함께 기뻐할 거예요. 고마워요, 고마워.” 누군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두봉 주교는 생전이나 돌아가신 뒤나 아버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힘이 70년 가까이 낯선 땅에서 사랑을 나누고 헌신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누군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끼나요. 곁에 가족이 있어도 고립과 단절로 외로워하는 게 요즘 우리 모습입니다. 각자 방문 쾅 닫고 마음도 굳게 닫아걸고 말입니다. 열려고 있는 문인지, 닫으려고 있는 문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두드립니다. 문도 두드리고 맘도 두드려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숨통 트이고 휴, 살 만해지니까요. 진정 난 몰랐었네 다리가 불편한 아들에게 곁을 주지도,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은 엄마. 학교에서 직장에서 불구라고 차별받으며 서러움만 켜켜이 쌓여가던 아들. 남편마저 일찍 여읜 엄마는 아들이 약해질까 하는 노파심에 되레 강하게 키우려 했지만, 평생 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아파합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jtbc)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런 엄마가 덜컥 치매에 걸리면서 가족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고통은 증폭됩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은 엄마가 어느 날 요양원에서 사라집니다. 불편한 다리로 주변을 찾던 아들은 저만치 요양원 마당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치우는 엄마를 발견합니다. 자식 고생시키는 엄마에게 버럭 화가 났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 앞의 눈을 쓸어준 사람 가난했던 그때 달동네 꼭대기에 살던 모자는 한겨울 내리는 눈 때문에 엄청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등교할 때마다 누군가 깨끗하게 쓸어놓은 덕에 눈길을 넘어지지 않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랫집 아저씨가 눈 쓰는 모습을 본 아들은 ‘아, 저분이 그동안 눈을 쓸어주셨구나’ 합니다.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은 엄마가 습관처럼 눈이 오는 날이면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내가 비탈길에서 넘어질까 봐 엄마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눈을 쓸었던 거구나.’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또 눈을 쓸러 나갔던 것입니다. 그제야 얼어붙은 아들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엄마를 향한 원망과 서러움과 미움이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립니다.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 돋도록 자녀의 경제적 독립과 출세, 아니 취업과 결혼이 힘겨운 최근엔 사람 노릇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비는 게 부모 심정입니다. 내 자식 걱정에만 우리가 안달할 때, 사회 한편에서는 부모 학대와 유기로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시설 보호를 마치고 해마다 2000~3000명씩 ‘자립준비청년’(예전에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렸던)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보육원 졸업할 때 지급되는 정착금(1000만 원)과 자립수당(5년간 월 40만 원)이 조금씩 올라서 경제적으로 힘이 된다지만,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 불안과 무력감이 삶을 포기하도록 몰고 가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 청년의 경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고 합니다. 소통하고 의논하고 연락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고 없고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사례가 참 많다네요. 보육원 원장님이나, 시설 프로그램에서 만난 멘토나, 그 누구든 고민을 들어주고 모르는 것 물어보면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 한 명만 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도록 저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내가 당신 받침이 될게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귀 기울이고, 가슴으로 안아줄 때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갓난아기 업을 때 포대기 두르고 아기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주면 한결 가볍습니다. 책이며 서류며 물건이며 온갖 것 가득 넣은 가방을 어깨에 멜 때도 한 손으로 아래를 살짝만 받쳐줘도 아프던 어깨가 훨씬 가볍습니다. 공책에 교과서에 연필로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면 뒷장에 우툴두툴 글자가 튀어나오고 물듭니다. 그럴 때 플라스틱 책받침 하나 끼우면 뒤탈이 없어 속상하지 않습니다. 살짝만 받쳐주어도 우리 짐은 가벼워지고 삶의 무게는 덜어지고 아팠던 어깨는 견딜 만해집니다. 서로 받쳐주며 손 잡고 맘 잡고 살아볼까요?
- 2023-05-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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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입장벽 낮추자 관람객이 넘쳐" 수원시립미술관
- 3월 초, 봄이다. 아직 일러 꽃이야 보이는 게 없지만 저만치 있는 팔달산에 봄기운 아련하다. 대기에도 도로에도 봄볕 묻어 따사롭다. 돌아다니기 좋은 날이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더니 화성행궁 쪽으로 밀려간다. 행궁광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거니는 이들로 평화롭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광장 북쪽에 있다. 유서 깊은 행궁과 예술의 그릇인 미술관이 공존하는 곳이다. 역사와 예술이, 전통과 현대가 어깨동무를 했다. 볼 것도, 느낄 것도, 담을 것도 많은 동네다. 2층 건물인 수원시립미술관의 외관은 좀 독특하다. 높이는 낮지만 좌우로 무척 길다. 입면의 길이가 75m나 된다. 그렇게 지은 정황이 있다. 행궁 일대에 적용되는 고도제한을 고려해 지었다. 높이 올릴 수 없어 폭을 넓혔다. 설계자는 ‘간삼건축’ 부사장 진교남. ‘건축의 본질과 정신을 시민 건축(Civic Architecture)으로 구현하는 건축가’라는 찬사를 듣는 인물이다. 역사 옆에 예술을 앉히기. 조선 최대의 행궁이자 정조의 족적이 서린 화성행궁 바로 옆에 미술관 짓기. 이게 쉬운 일인가? 곤혹스러웠겠다. 설계자로서 정색하고 궁리해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행궁의 품격과 위엄을 깎아내리는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교남은 꾸벅 머리 숙여 자세를 낮춘 건축으로 예를 다하고 싶었나? 행궁 쪽 높이를 반대쪽보다 낮추어 겸손을 표한 장면을 주목할 만하다. 겸손보다 유능한 조화의 기법이 드물다는 걸 통기하는 대목으로 읽어도 되겠다. 미술관 전면의 광장은 드넓어 휑하다. 때로 이벤트가 펼쳐지면 인파가 몰려들겠지. 따라서 광장의 모호하고 광활한 기세에 조응할 만한 미술관 형상이 요구됐을 터인데, 설계자는 무뚝뚝하고도 육중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기를 돋우었다. 광장에 눌리는 게 없다. 진교남은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 디자인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결국 두 가지 선택지 중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떠나 시대정신을 담는 일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건축의 기본을 조화에 두되 ‘시대정신’을 지향했다는 얘기다. 시대정신이란 사회 전반에서 공유되는 본질적 가치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건축의 키워드로 삼았다. 따라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권위적인 디자인 요소를 배제했다. 뽐내거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처럼 벽 없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미술관 하부 벽면에 통유리를 끼워 안팎 경관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내부 동선을 통하지 않고 밖에서도 바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또 어떻고? 계산이 다 있다. 울타리 없이 대범하게 열린 미술관이라는 시그널이니까. 편안하다! 무엇이? 미술관 내부의 분위기를 말함이다. 입구를 통해 라운지로 들어서자 긴 병풍처럼 즐비한 유리창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외부로 확 트인 개방성으로 답답한 게 없다. 행궁과 광장과 행인의 풍경은 물론, 햇살마저 거침없이 솰솰 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환하다. 조도(照度) 조절이 필요한 전시실을 제외하고 모든 실내 공간에 대형 창을 내 태양광을 끌어들인다. 반갑다, 나혜석의 ‘자화상’ 출입문은 세 개다.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 카페테리아 구역을 경유해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다. 공간 구조물들은 선이 굵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처럼 호연한 맛을 풍긴다. 치레와 장식과 군더더기를 깨알처럼 맵시 있게 집어넣어 시각적 쾌감을 주는 미술관이 많지만, 이 미술관은 별반 양념을 치지 않고 내부의 선과 면을 단장했다. 고로 편안하다. 미술관에 왔으니 전시실 작품에 주로 눈길을 꽂아달라는 청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악센트를 준 대목도 있다. 통로의 양쪽 벽을 사선(斜線)으로 슬쩍 기울여 세웠다. 회심의 한 획처럼 과감한 공법을 단행한 벽 구조다. 그렇다면 디자인 혁신? 아무려나, 통로를 지나는 사이에 통째 몸을 숙여 착하게 인사하는 벽면의 환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을 야기한다. 벽엔 무늬가 박혀 있다. 송판으로 거푸집을 짜 만들어낸 문양으로, 노출콘크리트의 딱딱한 질감을 눅이는 자연미를 구현했다. 간과하기 쉽지만 설계자는 이 대목에 방점을 꾹 찍었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개인전 ‘나만 없어 조각’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술의 본령은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한다는 데에 있다. 미술 작품이 재미있는 건 남들이 하지 않던 행위를 찾아 해내는 일에 이골 난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이상한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성으로 조형한 작품으로 지루하고도 멍청한 세속에 엔도르핀을 배송한다. 에르빈 부름 역시 창의로 세상을 비튼다. 웃어주거나 비꼰다. 국내엔 부름에 갈채를 보내는 마니아가 많다지. 아마도 부름의 전위성에 박수를 치는 것 같다. 그는 일찌감치 옷을 조각의 오브제로 끌어들였다. 나아가 변화하거나 증감하는 세상의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조각의 외연을 무진장하게 확장한 셈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조각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손을 댄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까지 모두 조각이라고 정의한다. 하기야 세상을 고성능 감관으로 바라보면 뭐 하나 예술 아닌 게 있으랴. 한국에서 펼쳐진 부름의 전시회 중 최대 규모인 이번 개인전은 작품 61점을 3개의 전시실에서 선보였다.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지고 뚱뚱한 자동차 형상을 한 작품 ‘팻 카’(Fat Car)는 가지면 가질수록 허기지는 소비사회의 탐욕을 꼬집는다. ‘UFO’는 실제 포르쉐 차를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납작하게 변형시킨 조각이다. 물신을 예배하는 세상의 허영과 가식을 풍자했다. 작가는 이렇게 욕망을 동력으로 해 급발진을 일삼는 자본주의 풍속에 옐로카드를 휘젓는다. 그의 메시지는 사실 범상하다. 재미있는 건 작풍(作風)이다. 쉽고 가볍고 익살맞다. 다른 전시실에서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는 ‘1분 조각’전은 관객 참여형 전시회다. 부름이 설치한 조각에 관람자가 직접 1분여간 개입해 일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도록 했다. 가히 기발하지 않은가? ‘1분 조각’전은 일찍이 부름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출세작이다. 2층 한편엔 나혜석홀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유화 넉 점을 전시했다. 그의 대표작 ‘자화상’도 있어 반갑다.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는 야수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영향을 받았다. ‘자화상’에서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묘사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야수파의 경향성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자화상이지만 실물과 다른 전형적인 서구 여성상을 그린 건 왜일까. 나혜석은 못 말릴 투사형 페미니스트였다. 세상의 빙하를 데카당스로, 마그마 같은 열정으로 섭렵하며 냉대를 자청하기도 했다. 뒤틀린 시대를 고발하고 도발했으며, 성취에서든 방황에서든 그는 매우 독립적인 인간이었다. 박현주 수원시립미술관 홍보마케팅팀 주무관 “에르빈 부름 전시회에 자그마치 4만~5만 명 다녀가” 수원시립미술관은 화성행궁, 성곽길, 행리단길 등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벨트 안에 있다. 특유의 장소성을 보유한 미술관이다. 그래서일까. 8년 전 개관 이래 관람 인원이 점차 늘더니 요즘엔 급증했다. 장소성 외에 차별화된 전시 클래스와 미술관의 편안한 분위기 역시 관람객 확산을 견인한다. 박현주 주무관은 수원시립미술관이 ‘전시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미술관’이라는 촌평을 흔히 듣는다며 말을 이었다. “위압감을 주는 대형 미술관이나 디자인에 복잡한 디테일을 가미한 미술관에선 관람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다르다. 편안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에르빈 부름의 작품 전시장에 관람객이 많더라. 게다가 다들 작품에 몰입돼 뜨거운 분위기였다. “3개월에 걸친 전시 기간 중 찾아온 관람객이 4만~5만 명에 달한다. 지역 미술관에서 이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부름의 인기도를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는 물질적 팽창을 가속하는 현대사회의 병증을 풍자한다. 심각하기보다 유쾌한 위트로 가볍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드러낸다.” 문제적 개성의 표본이라 할 만한 나혜석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가 그린 회화는 300점이 넘지만 작업실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다지? “국내에 존재하는 나혜석 작품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이 중 넉 점을 우리 미술관이 소장했다. 나혜석의 일생은 워낙 파란만장해 가십거리로 취급된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유능한 여성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도발적인 어록을 보라. 당대는 물론 이 시대에도 의표를 찌르는 메시지가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소장했나? “페미니즘과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소장품 역시 나혜석 작품을 필두로 주로 여성 작가들의 것이다. 그게 수집 방향이다.” 미술관 개관 이래 실감한 관람객의 추세 변동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관람이 확연하게 늘었다. 미술관을 찾아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는 청년층에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미술의 저변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현대미술은 알고 보면 즐겁지만 무관심한 이들에겐 따분할 수 있다. 미술관을 알차게 향유할 수 있는 기법이 있다면?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일차로 작품을 감상한 뒤, 개별적 투어로 작품을 재차 감상하는 게 요긴하다. 그렇게 하면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긴다. 안목이 열리면 드디어 미술을 즐길 수 있고.” 이 미술관엔 옥상정원이 있다. 화성행궁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박현주 주무관은 미술 관람 뒤엔 꼭 옥상정원에 올라가길 ‘강추’한다. 조망은 물론 ‘시간이 멈춘 듯한 운치를 자아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 2023-04-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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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하류노인’ 저자, “가난하고 외로운 당신 하류노인”
- 비영리 활동법인(NPO) 홋토플러스(ほっとプラス)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藤田老典). 그가 2015년 발표한 ‘하류노인’(下流老人)은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하류노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현장에서 만난 노인 대부분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이뤄내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세상에 보이도록 ‘하류노인’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고령화로 인해 예산 부담이 커지자 고령자에 대한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출판 이후 여론이 형성되었고, 저연금·저소득 고령자, 주민세 비과세 가구(주민세가 면제될 정도로 수입이 없는)인 고령자에게 지급하는 추가 지원금이나 현금 급부 등의 정책이 잇달아 나왔다. 물론 그는 여전히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2025년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의 하류노인 문제를 꼬집은 후지타 다카노리와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다. Q 작가님께 상담 온 많은 이들이 “내가 하류노인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면서요. 우리는 노후 형편을 걱정하면서도 왜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과거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았고, 지역에서 다양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노인들과 교류할 일이 많다 보니 ‘나 또한 미래에 노인이 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고립화대책담당 장관을 둘 정도로 개인의 고립화가 심각합니다. 가족이 없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는 ‘고족’(孤族)이 늘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고령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가까이서 피부로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괴로움이나 고민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로 여기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Q ‘하류노인’을 통해 고령자의 빈곤을 밝힘과 동시에 정부 비판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하류노인’은 결국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요. ‘빈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생활보장은 권리’라고 지적하셨는데요. 국가는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저는 ‘북유럽 모델’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정부’로 순차적으로 변경해가면서, 세금을 인상하고 급부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모델입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 등을 모델로 삼았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금이 높은 대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론의 반대가 있겠지만, 세율 인상도 검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가 되었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고 고령 인구는 늘어 사회보장비가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기에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족 부양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또 하나, 일본에서는 ‘빙하기 세대’(1970~1984년생)라고 불리는 세대가 있습니다. 버블경제 붕괴 후 취업난을 겪은 이들인데요. 이 자녀들을 부양하는 것은 가족인 부모 세대의 몫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령자가 많아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 사회입니다. 사회적 약자는 본인 책임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인권 옹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근대 선진국의 도달점입니다만, 그 가치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가치 규범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Q 연금 수령 시기는 늦춰지고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령자에게 일자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에서 ‘일하는 고령자’가 있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셨는데요. 한국도 일본처럼 65세가 넘어서도 일하고 싶어 하는 고령자가 많고, 가장 큰 이유는 생계를 위해서입니다. 고령자의 일자리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 형태인 임노동(賃勞動), 특히 노인의 임노동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사회보장, 연금, 주택, 간호 제도 등이 정비된 북유럽 국가에서는 고령자에게 임노동이 강요되지 않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재미와 삶의 보람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 일합니다. 고령자는 연금을 받기 때문에 저렴한 임금이어도 일하고 싶어 합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이죠. 그런 의미에서 ‘노인의 임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이들이 사회공헌적인 일에 종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간호, 보육, 청소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업무는 저임금에 항상 노동자가 부족합니다. 거동이 어려워 생필품을 사거나 장보기 어려운 고령 인구를 뜻하는 ‘쇼핑 난민’도 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에서는 관리 인구가 없어 곰이나 멧돼지 수해가 심각해지고, 산림·논밭이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성 높은 일에 고령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 설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Q 노인 일자리는 한국에서 사회적 고립을 막는 중요한 역할로도 작용하고 있는데요. 작가님도 책을 통해 ‘행복한 하류노인과 불행한 하류노인의 차이는 인간관계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지역 네트워크를 강조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야 할까요? 지방에서는 고령자조합, 협동조합이 차례로 설립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노동입니다. 정부는 2022년 10월에 협동노동법을 새롭게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면 농림·수산 자원의 관리나 보호, 수도설비의 보수 및 점검, 커뮤니티 버스 운행, 휴경지나 빈집 관리, 아이 식당(무료 혹은 저렴한 금액으로 부모와 아이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 푸드뱅크(잉여 식품의 무료 배포), 지역 청소 활동, 자원봉사 활동 등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공성이 높은 일을 고령자가 맡아준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고, 고령자도 의지할 곳이 생길 것입니다. Q 하류노인에게 주거는 무척 큰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공공주택이나 임대주택, 주택보조비 등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일본도 한국도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요. 인구 감소 시대에 주택 사유재산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이 가치관을 바꾸어가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공영주택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저렴한 주택, 임대보조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일부 부자들은 주택을 구입합니다만, 대부분은 주택에 대해 모두가 관리하는 공공재라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관리하는 공유 재산인 셈이죠. 고령자는 간호가 필요하면 원래 살았던 집의 단차나 설비를 고쳐야 합니다. 오랜 세월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것이 아니라, 연령·신체 기능에 맞는 집에 부담 없이 이사할 수 있도록 해나가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계속 증가하는 빈집을 지자체가 인수해 필요한 세대에 배포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빈집은 늘어날 것이므로 새로운 집을 짓기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Q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본인이 신청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때문에 제도 활용도가 낮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일본연금자조합의 고령자와 최저보장연금제도의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에게만 지급하는 기본 수입 같은 것입니다. 65세가 되면 월 8만 엔(도시부에서의 생활보호 생활부조금액)을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죠. 그러면 신청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지급되기에 생활 보조금을 받는 것이 부끄럽다는 인식도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재원 논의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일본은 마이넘버카드(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증과 일원화해 소득·건강 상태를 통합해 AI로 관리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면 저소득층에게는 현금 급부 등이 쉬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계좌에 신청하지 않아도 세금 환급금, 급부금이 지급되니까요. 더 나아가 병원의 진료 비용, 간호 비용 등이 무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로를 걸을 때 이용료를 내지 않지만, 이는 세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세금을 지불했다면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할 때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청주의를 없애기 위한 구조 도입은 중요한 논의 사항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노년기의 ‘빈곤’을 고민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해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타인을 자신의 가족처럼 조금이라도 돕는 사회, 시스템, 정책 등을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빈곤해지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초고령사회가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바뀌기를 바라며 이웃으로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 2022-12-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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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는 빨리, 원수는 최대한 천천히
- 서로 다른 계산법 한동안 모 가수를 둘러싼 부모와 형제 사이 분쟁이 전 국민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언론을 연일 장식하더니 최근에 또 다른 모 방송인과 부모, 형과 형수 사이 고소고발이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가족 면면 사생활과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부모와 자식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부부가 소송과 맞소송을 벌이는 건 계산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는 100인데 상대가 갚은 것은 10도 안 된다거나, 오히려 부모, 자식, 배우자 등골을 빼먹은 마이너스라고 여기는 데서 갈등이 촉발됩니다. 급기야 봉합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말 그대로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되물으며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난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나는 것이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원수가 되며 은혜가 될 수 있는가.” 성철 스님 생전 법문을 좀 더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나를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아내, 남편, 자식, 형제, 친구, 선후배가 은혜도 되고 원수도 되기 쉽습니다. 같은 부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큰동서와 작은동서가 둘도 없이 각별한 사이가 되는가 하면, 그 각별함이 도리어 화근으로 작용해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나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나를 위해 이롭게 행동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생면부지 남보다 더 헐뜯고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베푼 은혜가 거꾸로 원수가 되는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살펴볼까요. ‘가족끼리 왜 이래’ 속 불효 소송 “그저 잘 되라 잘 되라만 가르쳤지 인생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해서 이 못난 애비가 뒤늦게나마 뉘우치고 자식들한테 회초리를 들까 하는데 자식들의 머리는 너무 굵었고 저는 초라하여 손에 힘이 없습니다, 판사님. 그러니 법으로 그 회초리에 힘을 좀 실어주십시오. 제 인생의 마지막 회초리입니다. 이 회초리가 우리 자식들 인생에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방영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KBS-2TV)에서 주인공 차순봉(유동근 분)이 삼남매에게 불효 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의 입장을 판사에게 호소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된 부모와 자식. 합의할 때까지 조정을 계속하겠다는 판사. 마침내 세 남매 월급 가압류 해지와 소송 취하 약속에 대한 선행 조건을 내걸고 합의에 도달합니다. ‘아버지의 소원판’이란 제목으로 적은 합의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엔 암 선고를 받아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긴 합니다. ① 애들(삼남매)이랑 밥 같이 먹기 ② 애들이랑 하루에 한 번씩 전화 통화로 안부 묻기 ③ 우리 딸 짝 찾아주기 ④ 우리 큰아들 내외랑 3개월 동안함께 살아보기 ⑤ 우리 막내아들한테 한 달에 백만 원씩 용돈 받기 ⑥ 고고장 가기 ⑦ 가족 노래자랑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유동근은 그해 연말 KBS에서 연기 대상을 받았습니다. “저를 뒤돌아보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극 중에서 두 아들이 젊은 날의 저였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이제라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돼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날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 아이들이 잘 되게끔 지켜봐 주십시오.” 은혜는 빨리, 원수는 아주 느리게 고마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옅어지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뭐 그까짓 것쯤이야 하고 가벼이 생각하거나, 그만큼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처음 마음을 눙치기도 합니다. 변명할 구실을 찾느니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물질이 여의치 않으면 말로라도 반드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원수는 최대한 천천히,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 당시엔 분하고 화가 치밀지만 3초 심호흡, 3분 명상, 30분 산책, 이렇게 3시간, 3일 원수 갚을 일을 늦춥니다. 그러다 보면 태산만큼 억울했던 가슴 아픔도, 밤새 바늘로 찌르던 두통도 어느덧 잦아들고 큰 문제가 사소한 일로 줄어들기도 합니다.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피 묻은 칼을 피로 씻어내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피는 맑은 물로 씻어야 깨끗해지듯 원수 갚으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원수가 누구였는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나를 정화해야 합니다. 품기가 쉬울까 버리기가 쉬울까 : 후한 광무제의 도량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무찌른 뒤 왕망이 살던 궁에서 편지 한 뭉텅이를 발견했습니다. 각 군현의 관원과 지방 유지들이 왕망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왕망을 칭송하고 유수를 헐뜯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로 살생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수는 관원과 호족들을 불러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불살랐습니다. 이를 ‘분소밀신’(焚燒密信)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를 묻는 막료에게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불살랐다고 답했습니다. 광무제의 도량은 앞으로 적이 될 수도 있었던 이들을 감복시킬 만큼 넓었나 봅니다. ‘채근담’(菜根譚) 전집 136장에도 “은혜와 원수는 지나치게 밝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어 배반하게 된다”(恩仇不可太明 明則人起携貳之志)는 말로 일침을 가합니다. 은혜와 원수는 한 끗 차이 같은 책 108장에는 원수와 은혜의 본질과 대처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원망은 덕으로 인하여 나타나니 남들이 나에게 덕이 있다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덕과 원망 모두 잊게 하느니만 못하고, 원수는 은혜로부터 생겨나니 남들이 나의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는 은혜와 원수를 모두 없게 하느니만 못하다.” (怨因德彰 故使人德我 不若德怨之兩忘 仇因恩立 故使人知恩 不若恩仇之俱泯 -‘채근담’(菜根譚) 前集 108장 은혜와 원수는 마주 댄 양 손바닥처럼 딱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한테 은혜와 덕을 베푸는데, 내가 베푼 덕이나 은혜를 못 알아보고 몰라줄 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억울함이나 원망이 생겨서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오히려 원수가 되고 척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불효 소송을 하는 것도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와 덕에 값을 쳐서 돌려받으려는 셈법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원수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줬다는 것조차 잊고 다정하게 지내시렵니까.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에 “사람들에게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사람들과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난다면 회피하기 어렵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주변에 둘지, 나를 해치고 망하게 하려는 사람을 곁에 둘지 참 답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 못 하는 게 더 큰 어리석음이지 싶습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시 한 편 함께 나누면서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늘 셈법 삶은 가까이 보면 공정하지 않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투성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빈틈없이 공정합니다.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봄이 가고 겨울이 온 적이 있던가요. 가을이 가고 여름이 온 적이 있던가요. 더하기 빼기는 짧은 순간엔 맞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밑졌으니 더 받아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게 얼마나 축복과 호사인 줄 모릅니다. 하늘 같은 가호로 보살핌을 받았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저지른 큰 잘못이 아주 조그만 손해로 청구되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준 상처가 당신이 준 상처보다 훨씬 크고 깊었음을 너무 뒤늦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 ‘혼자 술 마시는 여자’ 182~184쪽 불효자 방지법 : 은혜와 원수를 대하는 자세 부모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외면한 때 은혜를 저버리는 망은(忘恩) 행위에 대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지만 몇 년째 국회 발의에 머무른 채 논란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앞선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부양료 청구 소송(불효 소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을 제기한 부모가 거의 패소한다는 게 현실입니다. 2020년 98세 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상대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20년 전 증여한 선산을 돌려받으려고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처럼, 불효자 방지법은 자식이 부모 재산을 받고 효도나 부양을 하지 않은 채 ‘먹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입법이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편 지난해 법무부가 사전 상속재산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과 가능성, 여파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독일 민법 제530조는 ‘증여자에게 중대한 배은 행위를 저질러 비난을 받을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 민법 제953조도 ‘증여를 받은 자가 학대·모욕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을 거절하는 경우 증여 철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2022-11-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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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감성 채워주는” 11월 문화소식
- ●Exhibition ◇바티망 일정 12월 28일까지 장소 노들섬 노들서가 건물 외벽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설치 예술 ‘바티망’(Ba^timent)이 국내에 착륙했다. ‘바티망’은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며, 현대 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1973)의 대표작이다. ‘바티망’의 구조는 실제 건물 모양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와 거울로 이뤄졌다. 이에 관람객이 작품에 올라서면 마치 건물 외벽에 매달린 듯한 모습이 거울에 반영된다. 더불어 관람객은 바티망 위에서 창의적인 포즈를 취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고,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예술적인 경험에 빠져든다. ‘바티망’은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18년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를 투어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2017년 도쿄와 2019년 베이징에서 진행된 투어에는 하루 평균 4500명 이상 방문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는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티망’뿐 아니라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비행기’(El Avio′n, 2011),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등 일상적 소재를 매개로 신선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의 다양한 설치·영상·사진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에바 알머슨, Andando 일정 12월 4일까지 장소 전쟁기념관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불리는 스페인 출신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의 국내 세 번째 전시다. 3년 만에 내한한 에바 알머슨은 “한국은 항상 두 팔 벌려 따뜻하게 환영해주는 특별한 나라”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전시의 테마인 ‘Andando’(안단도)는 스페인어로 ‘계속 걷다’라는 뜻으로, 전시는 에바 알머슨의 일생을 회고한다. △삶을 그리다 △가족 사전, 일상의 특별함 △사랑 △자가격리자들의 초상화 △광장 △애니메이션 △자연 △삶 △연약함과 강인함 △축하 △영감 등 총 11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드로잉, 유화, 대형 조형물, 조각 등 150여 점이 전시됐으며, 최초로 공개된 다수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 ●Book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플뢰르 펠르랭·김영사)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느낍니까, 프랑스인이라고 느낍니까?” 이 질문은 2013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이 들은 말이다. 당시 플뢰르 펠르랭의 답은 ‘프랑스인’이었다. 생후 6개월 때 프랑스로 입양된 지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답이었다. 플뢰르 펠르랭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특임장관으로 발탁된 후 통상·관광·재외교민 담당 국무장관,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을 지내고 퇴임했다. 이후 2016년 파리에서 코렐리아캐피탈을 세운 그는 벤처 투자자로 변신, 유럽 스타트 업계의 큰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초 출간되는 그의 첫 에세이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는 그가 프랑스에 ‘도착’한 날부터 정치인과 사업가로서의 최근 활동까지 담았다. 동시에 2013년 자신을 마치 ‘딸처럼’ 환영했던 한국인에게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성별, 배경, 경계를 이탈해 눈부신 성취를 이어가는 펠르랭의 서사는 소통과 공감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서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를 추천했다. ◇조선의 대기자, 연암(강석훈·니케북스)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연암을 기자의 원조라고 생각했다. ‘열하일기’에는 조선의 정치와 학문 풍토, 선비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직설적 비판과 질타가 포함돼 있다. 연암의 기자 정신은 현재의 기자들에게도 본보기가 된다. ◇전 세계 최초로, 향기를 마신다(김용식·모아북스) ‘마시는 향기’란 천연 재료에서 나온 천연 향기를 포집한 것으로, 우리 몸에 바르거나 마실 수 있는 물질이다. 한의학 박사인 저자는 상세한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시는 향기’가 건강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 마을에 저녁이 내리는 소리(한창수·페이퍼로드) 소년 모모의 친근한 이웃들은 사실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 위대한 철학자들이다. 모모는 일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인생과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렵게만 느꼈던 철학 사상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Stage ◇브로드웨이 42번가 일정 11월 5일 ~ 2023년 1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오루피나 출연 송일국, 이종혁, 정영주, 배해선, 신영숙, 전수경, 홍지민, 오소연, 유낙원, 김동호 등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뮤지컬 배우 지망생 페기와 연출가 줄리안, 한물간 프리마돈나 도로시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996년 한국 최초 정식 라이선스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시즌은 한국 초연 26주년을 기념한 공연으로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을 자랑한다. 브로드웨이 최고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은 2016년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뮤지컬에 데뷔한 송일국, 다섯 시즌 연속 캐스팅된 이종혁이 연기한다. 한때 최고의 뮤지컬 스타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잃어버린 프리마돈나 도로시 브록 역에는 정영주, 배해선이 캐스팅됐고 새로운 캐스트로 신영숙이 합류한다. 제작자 메기 존스 역은 ‘브로드웨이 42번가’ 초연 멤버이자 역대 최다 출연 타이틀을 기록하고 있는 전수경,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홍지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드라큘라 일정 11월 15일 ~ 2023년 1월 15일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안재욱, 정동하, 테이, 김진환, 유승우, 이병찬, 종형, 김법래, 이건명 등 3년 만에 돌아오는 ‘드라큘라’는 1995년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유럽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1998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 드라큘라의 매혹적인 스토리에 몰입감을 높이는 무대 연출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드라큘라’에서는 신성우, 안재욱, 정동하, 테이가 드라큘라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특히 초연부터 지금까지 드라큘라 역을 연기한 신성우는 관록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또한 아이콘 김진환, ‘슈퍼스타K’ 출신 유승우, ‘내일은 국민가수’ 이병찬, DMZ의 종형 등도 출연하며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에쿠우스 일정 11월 8일 ~ 2023년 1월 29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이한승 출연 장두이, 최종환, 한윤춘, 김시유, 강은일, 백동현 등 1975년 국내 초연 이후 매 공연 센세이션을 일으킨 연극 ‘에쿠우스’가 3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올해는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62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장두이, 최종환, 한윤춘, 김시유, 강은일, 백동현 등 공연계 중견 배우부터 신예 배우까지 색다른 조합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에쿠우스(Equus)는 라틴어로 말(馬)을 뜻한다.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과 그의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근원적 고찰을 담아낸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2-11-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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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열린 예술의 생태통로, 경기도미술관
-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녹색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산책로가 있다. 안산시 외곽 개활지에 있는 화랑유원지다. 시월 한낮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산책 삼아 한가하게 거니는 이들이 많다. 이름은 유원지지만 왁자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안락하다. 경기도미술관은 화랑유원지 안에 있다. 자리 한번 기차게 잘 잡았다. 풍경과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니.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입지이기도 하다.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미술관 관람의 목적을 호주머니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소란스러운 세상을 생동감 넘치는 감성으로 수용하는 눈을 얻을 수 있는 게 미술관이다. 하지만 따분하고 난해하다는 선입견으로 외면한다. 미술관 운영자들은 이런 현실이 야속하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살 수 있을까. 오나가나 골똘히 고민하는 문제가 그렇다. 얼마 전에 종료됐지만, 경기도미술관을 찾아간 날엔 ‘미술관의 입구: 생태통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고민의 한 결과물이다. 미술관의 진입장벽을 낮춰 관람객을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해 꾸린 기획전이니까. 유원지를 가로지르는 통행로이기도 한 미술관 야외 길에 설치작품 다수를 전시했다. 하나같이 쉽고 재미있었다. 미술은 어렵다는 통념이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미술이 지닌 위계와 경계를 철거해 관람객들을 포용하고자 했다. 사람들에게 한결 친절하고 살갑게 다가가고자 하는 미술관 측의 선한 의도가 완연해 인상적이었다. 환경 악화로 고립된 동물들의 활로로 쓰이는 ‘생태통로’처럼, 외부 전시물 전체가 공감과 소통의 가교로 기능하고 있었다. 경기도미술관은 2006년 경기도가 설립했다. 운영은 경기문화재단이 맡았다. 공립미술관답게 건물 규모부터 크고 훤칠하다. 안산시에 사는 미술 애호가들은 언제든 찾아가 무료로 손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 형성에 반색했겠다. 나는 경기도미술관에 관한 작은 기억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 미술관은 세월호 침몰 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안산 단원고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결 절절한 애도 분위기에 이끌린 건 그래서였을까. 세월호 2주기인 2016년 4월, 경기도미술관 측은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사월의 동행’ 전을 열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 문제 등을 놓고 두꺼비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립미술관도 아닌 공립미술관이 앞장서서 추모 전람회를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학계에서는 추모시가, 음악계에서는 추모곡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술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지근하던 때였다. 따라서 경기도미술관의 추념 미술전이 야기한 반향이 작지 않았다. 햐! 미술관이 진정 아름다운 레퀴엠을 헌정했구나! ‘사월의 동행’ 전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눈앞에 있는 현상과 형상을 넘어 무한으로 달려가는 게 예술이다. 그러나 현실의 거대한 아픔과 슬픔에 무디다면? 눈치를 보고 공기만 살핀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정치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사월의 동행’전은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전람회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들은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세상에 만연한 모순과 고통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졌던 셈이다.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해 미술관 건물 입구로 다가가자 최정화의 설치작품 ‘꽃꽂이’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플라스틱으로 꽃들과 열매를 만들어 설치한 작품이다. 원색의 붉은 인조 꽃떨기가 밤에 쓴 성급한 연애편지처럼 격정적이라 강렬하다. 최정화는 한국에서 요즘 가장 바쁜 화가다. 자칭 ‘설치작품으로 설치는 사람’이다. 그는 플라스틱 폐품 등 ‘눈부시게 하찮은 것들’을 모아 이를테면 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외적 형상을 조형한다.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저급한 모방’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메시지를 지체 없이 수신한다. 최정화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 그럴까? 플라스틱도 제2의 자연 아닐까?” 그는 아까 얘기한 세월호 추념 전시회에선 10m 높이의 대형 설치작품 ‘검은 꽃’을 선보였다. 공기주입기로 작품에 공기를 넣어 꽃잎이 피었다 졌다 반복하게 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활을 기원했다. 먼 과거에 경기도미술관 일대는 바다였다. 이후 바닷물을 밀어낸 간척지였다. 지금도 호수가 있지만 원래 물이 머문 자리였던 것. 이와 같은 역사성과 장소성에 착안해 물 공간을 디자인 요소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하고 건축 설계를 했다. 미술관의 남쪽과 동쪽 면에 사각의 대형 수조를 만들어 물을 채움으로써 저만치에 있는 호수 경관과 연계성을 갖도록 했다. 나아가 건물을 통째 물 위에 뜬 배로 간주하고 심벌을 입혔다. 거대한 철골 프레임에 유리판을 끼워 돛대 형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예술을 싣고 삶의 대양을 항해하는 중? 국내 미술관 가운데 거의 최초로 시도된 자동 개폐식 천창(天窓) 시스템도 비범하다. 전시실에 자연광을 뿌리기 위한 채광 장치다. 설계자는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다. 일찍이 30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설계해 세계 건축계에 표나게 데뷔한 인물이다. 국내에도 이미 이름난 사람이다. 경기도미술관 건물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건축에 자연 요소를 적극 융합한다. 세련된 기술로 추상적인 건축 언어를 발신한다. 지하 공간으로 건축을 끌어들인 데다 ‘빛의 계곡’까지 구현한 ‘이화여대 캠퍼스센터’(ECC)는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에 착공한 지하 건물 ‘영동대교 광역복합환승센터’도 페로의 작품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초대형 라이트 빔을 쏴 지하 깊은 곳까지 자연광을 배급하는 시스템이라니 흥미롭다. 전시 공간은 2층에 있다. 방문 당시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디지털 문명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욕망을 무한 소비하는 풍속을 돌아보게 하는 전시회다. 경기도미술관의 컬렉션 중에 ‘감각적인 작품’ 22점을 골라 선보이는 ‘소장품으로 움직이기’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재미있기론 지구 곳곳에 이름을 알린 강익중의 대형 벽화 ‘오만의 창, 미래의 벽’이다. 미술관 1, 2층 벽면 한쪽을 통째 점유한 가로 72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벽화다. 전국의 어린이 5만 명이 3×3인치짜리 나무판에 그린 그림 5만 점을 모둠으로 엮은 대작이다. 강익중은 뉴욕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습작을 했다. 퇴근길 지하철이 유일한 작업실이었으며, 지하철에서의 짧은 이동시간 중에 그림을 한 점씩 그렸다. 그렇게 해서 강익중표 ‘3×3인치 미니 캔버스 작품’이 나오게 됐다. 그는 5만 어린이들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뿜는 웅장한 에너지에 심취했나? 동어 반복적인 벽화 작업을 연달아 해왔다. 작은 그림들이, 작은 꿈들이 모여 삼라만상과 우주를 이루는 장관을 보라! 강익중의 메시지가 그렇다. 그는 백남준이 제자로 인정한 유일한 화가다. 명성과 감흥은 겉돌지 않는다.
- 2022-11-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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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생활 즐기기 좋은 날씨” 9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2-09-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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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서 초록을 찾는 ‘식물 탐험가’ 오병훈 식물 연구가
- 두 개의 선이 서로 의지하며 맞닿은 형태의 사람 인(人)은 책과 또 다른 책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모양새다. 오병훈 식물 연구가는 전국의 명산과 절해고도를 다니며 희귀식물을 발견해 세상에 소개한다. 인간과 자연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그의 역할이다. 그는 이번 북人북에서 소박하고 겸손한 식물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여름날. 짧은 시간 함께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는 내내 풀과 꽃,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짧고 담백한 어투에서 식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도로 주변으로 즐비한 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고 참 예쁘다며 살풋 웃다가도, 관리가 소홀했던 탓에 말라버린 풀 몇 포기를 바라보곤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는다. 한국수생식물연구소 대표, 한국수생식물연구회 회장, 한국식물연구회 명예회장 등 많은 식물 관련 직함을 갖고 있다지만 이토록 식물 사랑이 지극할 줄은 몰랐다. 살아 숨 쉬는 ‘식물 돋보기’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식물과 함께 자랐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식물에 더욱 빠삭해졌다. 미세하게 다른 생김새의 잡초까지 한눈에 구별할 정도였다. 대학 전공은 서양화, 젊은 시절엔 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1984년, 식물을 향한 그의 올곧은 마음을 끄집어낼 기회가 찾아왔다. 원로 식물학자 고(故) 이창복 서울대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를 소개하는 연재 기사를 위해 취재를 다니던 때였다. “자생식물연구회에 참가해 같이 전국을 탐사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처음 간 곳은 발왕산이었습니다. 이제껏 몰랐던 식물을 직접 보면서 공부해보니 너무 재밌고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한 달에 두 차례씩 산과 들을 누볐어요. 식물의 매력에 푹 빠졌죠. 이후에는 북방 수종을 찾으러 중국, 몽골, 러시아, 알래스카 등 해외도 다녀왔어요.” 그는 40여 년간 전국을 답사하며 수많은 희귀식물을 찾아내 지켜왔다. 풀 한 포기를 위해 1박 2일간 산을 활보하다 간첩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1980년대 중반 태백산 정상에서 흰노랑무늬붓꽃을, 1993년 북한산에서 산개나리 자생지를 찾아냈다. 버들잎진달래, 노랑유홍초, 좁은잎새팟, 긴말채나무 등은 이름을 직접 붙였다. 2013년에는 기록만 있고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나비국수나무를 70여 년 만에 세상에 알렸다. 나비국수나무는 이창복 박사가 1926년 수락산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으나, 1939년 이후에는 자생지에서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대학교에 보관했던 표본마저 한국전쟁 와중에 분실됐다. “1990년대 초 산림청에서 희귀·멸종위기 식물 도록을 펴낼 때도 이창복 박사가 갖고 있던 잎사귀 3장의 사진만 겨우 수록했을 만큼 자료가 부족했어요. 처음엔 한국에 없다고 생각했죠. 전국을 누비다 결국 치악산에서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나비국수나무는 기존의 국수나무와는 달리 잎 끝이 동그랗고 가로가 세로보다 더 넓거나 같아요. 좌우 대칭인 잎의 모양이 날개를 펼친 나비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뭇잎 한 장의 필요 희귀식물은 자생지에 다시 옮겨 심기 위해 종자를 발아시키거나 삽목(가지, 뿌리, 잎 등의 일부를 잘라 땅에 꽂은 후 뿌리를 내리게 하는 방법)으로 번식 작업을 한다. 서식지가 극히 제한된 경우가 많아 특별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환경 복원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서식지가 훼손되거나 식물을 무분별하게 채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송추 사패산 터널 공사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자생 산개나리를 생각하면 여전히 안타깝다. 해마다 우수, 경칩이면 몸에 좋다며 찾는 사람들에 의해 수난을 당하는 고로쇠나무는 또 어떻고 말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중요한 자원과 먹을거리가 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약을 선물해줘요. 필요 없는 풀은 하나도 없습니다. 잡초도 작물을 가꾸는 인간의 입장에서나 해롭다고 여길 뿐, 사실 모든 식물은 지구에서 매우 생산적인 존재예요. 육상에서는 나무가, 물에서는 수초가 산소를 내뿜고 동물을 호흡할 수 있게 해요. 인간이 아닌 식물이 생산자의 입장입니다. 우리는 식물에 의존해 삶을 영위해나갈 수밖에 없지요. 아름다운 자연이 빠른 속도로 눈앞에서 허물어져갈 때 허망함을 느낍니다.” 담쟁이와 같은 마음으로 식물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서 때로는 경쟁하고, 서로 도우며 지낸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삶과 닮아 중요한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는 사색거리를 던져주는 많은 식물 중 담쟁이와 새삼을 예로 들었다. 담쟁이는 절벽이나 돌담, 옆의 거목에게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에 초라한 기생식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나무의 진을 빨아먹는다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담쟁이는 햇빛을 가릴 만큼 위로 자라지는 않아 의지한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싸 안은 이파리로 나무 기둥의 습도를 유지해줘 도움을 준다. 그러나 새삼은 다르다. 잎도 뿌리도 없어 남을 위해서는 물론 스스로를 위해 단 한 방울의 양분조차 만들지 못한다. 땅에서 자라면서 가느다란 줄기를 이리저리 휘저어 양분을 빼앗을 만한 기주식물에 달라붙은 뒤 흡혈귀처럼 수액을 빤다. 그러다 스스로 뿌리 쪽 줄기를 자른 후에는 또 다른 나무로 옮아가며 주위의 식물까지 죽인다. “담쟁이는 제 분수를 알고 은혜를 갚으려 는 태도를 보입니다. 다른 존재와 사이좋게 공생하는 셈이죠. 반면 새삼은 사람으로 따지면 얌체 같은 족속이라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가엾은 과거를 숨기고 거드름을 피우며, 타인의 몫을 빼앗는 이와 다를 바 없어요. 담쟁이와 새삼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새삼도 열매를 피우고 약재로 쓰이니 너무 미워하진 말자고요!” ‘자연’스러운 사고의 힘을 기르는 책 by 오병훈 식물 연구를 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학문의 기본 바탕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과 철학을 알아야 사고하는 힘이 생기고, 자연의 너그러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조선문화사 서설 (모리스 쿠랑 저) “‘조선문화사 서설’은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펴낸 전 3권 중 서론 부분만 1946년 서울에서 김수경이 번역본으로 출간했죠. 저자 모리스 쿠랑은 프랑스공사관 서기로 2년간 경성에 체류하면서 직접 본 풍물과 서지학적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조선은 독자적인 문화가 없고, 말과 글이 중국에 종속돼 있다고 믿던 서양인들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사론 (신채호 저) “‘조선사론’은 ‘조선사연구초’와 함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대표적 명저입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사를 일본인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조선 역사를 날조·왜곡한 부분이 많았어요. 보다 못한 단재는 역사를 보는 눈이 진실해야 한다고 판단해 역사론을 펼쳤습니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정의와 조선사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기존 ‘조선상고사’의 잘못은 무엇인지 지적했습니다. 철저한 민족사학적 입장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했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선생과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자 (장주 저) “‘장자’는 장주의 별호이며 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노자와 함께 중국 고대 철학자이자 사상가죠. 도를 천지 만물의 근본 원리로 삼아 대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이루려 하지도 않으며,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완전한 자유만이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했죠. 이 책은 현대인의 욕망과 정신적 고민을 치유하는 큰 힘이 될 겁니다.” 나무가 숲으로 가는 길 (로저 디킨 저) “저자는 영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숲 여행가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나무와 꽃, 새들과 함께 지내면서 얻은 지식과 자연의 신비를 영화처럼 자세히 보여주고 있죠. 작은 식물부터 큰 나무까지 저자의 시선을 따라 세심하게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도 담았어요. 자연 예찬과 문명 비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자연과 인간은 공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합니다.”
- 2022-07-14 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