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의 실버타운은 노후에 삶을 더욱 활기차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한 세대와 어울리고 단지 내에서도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 새로운 실버타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의 실버타운은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해외 실버타운의 특징을 꼽자면 △민간과 공공 주도 △세대와의 교류다. 미국은 민간 참여가 활발하고, 일본은 공공이 민간참여를 유도한다. 유럽은 복지 측면이 강조된 실버주택 사업이 많다. 세대와의 교류는 전 세계 실버타운이 따라가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실버타운을 복지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경우 연금이나 보험금으로 실버타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구조이며,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보조해준다. 사회복지법인만 운영 주체가 될 수 있어, 민간 주도 실버타운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은 부동산, 버스회사, 보험사 등 다양한 주체가 실버타운을 운영한다. 50세대의 작은 규모부터 대형 실버타운까지 다양한 형태의 유료 노인홈(실버타운 공식 명칭)이 운영된다. 일본 실버타운 1위로 꼽히는 베네세 스타일 케어는 자체 브랜드 내에서 고급형・중급형을 나누어 운영해 다양한 이용자가 입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이라는 새로운 실버타운도 등장했다. 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노인이 살기 좋은 배리어프리 주택을 만들고, 간호・청소・돌봄 등 본인이 필요한 서비스만 계약해 거주하는 형태다.
미국은 민간이 주도해 말 그대로 마을 형태의 실버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부터 건설된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가 대표적이다. 약 3000개의 CCRC가 조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날씨가 온화하고 전원생활이 가능한 곳에서 대규모 주택단지로 이른바 ‘은퇴촌’을 이뤘다면, 최근에는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노인이 많아 여러 지역에 실버타운이 지어지고 있다.
다양한 주거 형태, 세대가 어우러지는 곳
해외의 실버타운은 다양한 세대가 함께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 도쿄 에도가와구에 위치한 고토엔은 노인주거시설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한다.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과 고령자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운동을 함께 한다. 점심에는 고령자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미국의 에덴 얼터너티브는 강아지・고양이・새 등 반려동물을 들일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연령층과 쉽게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요양원 내 어린이집과 놀이 공간 등도 설치했다. 지역사회에 고령자가 잘 녹아들도록 가정 돌봄기관 ‘에덴 홈’, 인지 돌봄기관 ‘에덴 라이프 롱 리빙’ 등도 운영한다. 에덴 얼터너티브는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 호주, 독일 등 19개국으로 확장됐다.
해외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형태의 실버타운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는 12월 개소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의 첫 실버타운 ‘평창카운티’는 평수에 상관없이 보증금을 3000만 원으로 통일해 입주 문턱을 낮췄다. 서울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공공실버타운 ‘골드빌리지’도 중산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다. 고덕양로원 부지,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시범사업으로 진행된다.
서울시의 공공실버타운은 세대 통합도 표방한다. 실버타운 주변에는 지역 수요를 고려한 체육시설, 종합복지관, 아동 돌봄시설, 북카페 등을 두어 세대 통합형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여가, 돌봄, 의료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경기도 의왕시에 지어진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도 여러 세대가 함께 살도록 단지를 설계했다. 오피스텔은 젊은 세대에게 공급하고 노인복지주택은 고령자에게 공급해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 마곡에 지어진 롯데 VL르웨스트는 국내 실버타운으로는 처음으로 반려동물 동반 입주 시스템을 도입했다. 반려동물 건강 케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클래스 등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도 만든다고 한다.
최근 롯데, KB 등 대기업이 실버타운 시장에 뛰어들고 유튜브나 매체를 통해 실버타운이 소개되면서 60대의 입주 문의 전화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는 여전히 70~80대가 대부분이어서 실버타운도 고령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대부분 고급화를 지향해 아직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입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법적으로 실버타운의 정의가 애매하고, 공공의 지원이 없어 민간 기업 진입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형화・고급화 추세는 여전하지만, 최근 반려동물 동반 서비스, 중산층을 위한 실버타운, 세대 교류 서비스 등이 접목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고령자가 실버타운에서 활기차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실버타운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공의 법 개정과 지원,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도움말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참고 보험연구원 ‘실버산업 해외사례와 활성화 전략’
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신다고 하면 불효자처럼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5성급 호텔 수준의 서비스와 시설을 갖춘 고급 실버타운이 등장하고, 입주 대기를 해야 할 만큼 인기가 치솟으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오히려 최근에는 ‘실버타운에 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편견도 생겨났다. 고령화 흐름 속 실버타운의 수요 증가는 쉬이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실버타운을 둘러싼 업계 전망과 더불어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도움말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
실버타운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흔히 실버타운 또는 시니어타운으로 부르는 곳(이하 ‘실버타운’으로 일괄)들은 주로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주거복지시설(양로시설·공동생활가정·노인복지주택)을 의미한다. 아직까지는 국내에 실버타운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나 체계가 미비한 실정이다. 때문에 소비자들도 요양원, 요양병원 등과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보증금 및 관리비, 생활비 등을 ‘100% 개인이 부담’하는 ‘유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실버타운으로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만 60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이라야 입소 가능하다는 것도 유사 시설과의 차별점이다. 과거 부모를 실버타운에 보내는 자식을 불효자로 여긴 배경은 ‘몸이 아픈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간호가 필요한 노인은 실버타운 입소가 어렵기 때문에 이는 오해였다. 이러한 오해가 점차 해소되고, 점점 고급화된 시설이 생겨나면서 실버타운을 바라보는 업계 시선도 달라졌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과거엔 주로 사회복지법인이나 건설 대기업이 실버타운을 짓고 운영했다면, 요즘은 보험사나 금융사, 호텔, 식품회사 등 다양한 기업이 참여한다. 예전에는 실버타운으로 수익을 낸다고 하면 ‘노인들 대상으로 장사한다’며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제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노인복지’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사업성’에 주목하는 경향”이라며 “과거엔 실버타운에 간다고 하면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는데, 요즘은 상당히 완화됐다. 이제는 노후 주거생활의 선택지 중 하나로 간주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불효자 오해 거두니 ‘비싸다’는 편견 생겨
강대빈 부회장은 “요즘은 실버타운은 비싼 곳이라는 편견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진행한 ‘실버타운 및 요양원 관련 인식 조사’(2017)에 따르면 ‘부모가 아플 때 모시고 싶은 곳으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고려하는 진짜 이유’를 묻자 대다수가 ‘국내 실버타운은 왠지 부유층만을 위한 주거시설이라는 느낌이 있다’(82.4%)고 답했다. 이는 그동안 실버타운의 이미지 변화를 꾀한 업계의 노력과 더불어 호텔형 실버타운이 이슈로 떠오른 결과로 유추할 수 있다. 유명인사의 초호화 실버타운 생활이 공개되거나, 거액의 보증금과 생활비를 부각하는 콘텐츠 등의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일부 최고급 실버타운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게 강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상위 몇 곳 정도 제외하면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대로 실버타운 생활이 가능하다. 가령 실버타운에서 생활비가 월 20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입주 전 지출 비용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거나 그보다 적게 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다만 현재는 실버타운 수가 많지 않아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점차 공급이 많아지면 옵션이 다양하고 특화된 서비스를 갖춘 곳이 생겨날 전망이다. 그럼 자신의 생활이나 경제 상황에 알맞은 곳을 선택할 여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민연금연구원(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은 부부 기준 매달 적정 노후 생활비로 평균 268만 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부부의 실버타운 월 생활비(의무식 포함 기준)는 상위 4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200만 원대로 책정됐다.(도서 ‘실버타운 올가이드’ 참고) 즉 애써 생활비가 높은 곳을 택하지 않는다면, 꼭 비싼 돈을 들여야만 실버타운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입주자들의 후기를 보면 비슷한 생활비로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고, 편의시설과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점에서 이득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수요 대비 공급, 0.05% 수준에 불과해
실버타운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입주자의 만족도가 올라가며 이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그 열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수요에 걸맞게 공급이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빈 부회장은 “업계에서는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노인 인구의 2~3%가량 된다고 추정한다. 현재 대한민국 노인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2%만 추려도 20만 명이다. 그런데 현재 운영 중인 실버타운에 공급 예정인 곳들을 합산하더라도 총 1만 세대 정도다. 일본만 해도 현재 실버타운이 1만 5000곳 넘게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한국 실버타운은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언급한 노인주거복지시설의 개념에 따라 합산해본다면 국내에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30곳 남짓이다. 강 부회장이 말한 수치로 견주어보면 수요량을 따라가기 위해선 현재보다 20배의 공급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때문에 강 부회장은 이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노인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실버타운을 공급하고 있다. 소위 ‘알뜰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이다. 2021년 말 기준 2260가구의 공급을 완료했고, 2025년까지 1만 가구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다만 저소득 고령자를 위한 복지의 목적이기 때문에 입주 자격이 정해져 있다. 만 65세 이상이면서, 무주택자이고(배우자와 신청자 모두 주택도 없고 분양권도 없어야 함),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50%, 70%(국가유공자) 이하인 자라야 가능하다.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중산층’에 대해 우려하는 상황이다.
강 부회장은 “고소득층은 경제적 능력이 되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저소득층은 나름의 복지정책이 마련돼 있다. 문제는 중산층이다.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롭지 않고 아무런 혜택도 없는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실버타운 몇 곳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며 “시설과 서비스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 좋으려면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실버타운의 경우 대체로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해주는 식으로 운영하는데, 해외 사례를 보면 필요한 일부 서비스만 제공하는 형태도 생겨나는 추세다. 중산층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맞춤형으로 취사 선택 가능한 서비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연구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생 보금자리 위한 실버타운의 미래
여러 기관에서 실시한 노후 거주와 관련한 조사를 살펴보면 ‘어디에 살 것인가’를 묻는 항목의 1순위는 대체로 ‘현재 사는 집’이 차지한다. 한 예로 보건복지부 ‘2020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4%는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했다. 이는 가급적 살던 집(또는 지역)에서 나이 들고 싶어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이하 AIP)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노후에 실버타운 거주를 택했다면, 이들에게 AIP는 살던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버타운에서 AIP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실버타운에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어서다. 때문에 실버타운에서 생활하다가 건강이 악화되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다.
강 부회장은 “현재 국내 실버타운 운영체제를 보면 AIP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실버타운에 오실 때는 곧 이사를 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여기 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돼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낙담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생활과 더불어 너싱홈(Nursing Home)등을 갖춘 복합시설 개념의 실버타운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직장 위치, 자녀의 교육 등을 고려해 거주 지역을 결정한다. 그러나 은퇴하거나 자녀가 독립하면 거주 환경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로망만을 좇아 섣불리 판단하면 낯선 동네와 이웃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원래 살던 집을 가꿔 활용도를 높여보는 건 어떨까? 내 취향과 기준에 꼭 맞는, 실속 있는 개조로 개성 있는 삶을 누려보자.
40·50세대에게 ‘은퇴 후 어디서 살 계획입니까?’라고 물으면 종종 ‘공기 좋은 지역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거나, ‘실버타운에 들어갈 생각이다’, ‘따뜻한 나라로 이민 가서 푹 쉬고 싶다’ 등의 대답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자연에서 온전한 쉼을 누리고자 전원주택을 지었다가 근처에 병원이 없어 고생하거나, 실버타운을 알아봤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익숙한 지역 풍경과 커뮤니티를 뒤로한 채 ‘한적하고 공기가 좋지만 편의시설은 적절히 갖춰진, 너무 낯설지 않고 적당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을 찾기란 꽤 까다롭다. 그렇다면 노후에 살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이사나 시설 입주 대신 고려해볼 방법은 주택 개조와 인테리어다. 집을 나의 신체적·정신적·심리적 상태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내 집에서 나이 들기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신체적 상태를 고려해 집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AIP는 가진 여건이 변하더라도 살던 집, 연결돼 있던 지역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나이 드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급적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시설로 옮기지 않고, 스스로 돌보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3.8%가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했다. 그중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밝혔다. 내 집만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꼭 옳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개조 계획을 잘 세운다면 안전하게 오랫동안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속해 있던 지역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들이 오랫동안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일본 정부는 ‘최후까지 내 집에서 산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고령자 주택 리모델링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문턱을 없애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나 미끄럼 방지 공사, 미닫이문 설치는 기본이다. 지자체가 20만 엔(약 200만 원)까지 보조해준다. 영국의 주택 리모델링 서비스 ‘루비 슬리퍼 솔루션스’(Ruby Slipper Solutions)는 단순 시설 개조뿐 아니라 시공 완료 후 활용 상태를 점검해 보완해준다. 전문 요양보호사 치료 서비스도 원한다면 연계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민을 아우르는 주택 개조 서비스가 마련돼있지 않다. 관련 인테리어 시장 또한 발달돼 있지 않다. 하지만 노화 혹은 인지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순발력이 떨어져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직 건강한데, 집을 벌써 고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점이 오기 때문에 예방이 필요하다. 작은 요소부터 손본다면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삶의 질이 높아진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40대일지라도 문턱을 없애면 걸려 넘어지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면 아이의 생활을 도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 개조가 고령자뿐 아니라 그 외의 가족에게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집을 정비할 마음을 먹었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버리기, 정리 정돈과 같은 ‘밑작업’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바닥이나 책상, 의자에 마구 놓아둔 물건은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어서다. 일본 부동산·주택 플랫폼 SUUMO에 따르면, 물건이 많을수록 생활이 더 윤택해진다는 환상은 버리는 게 좋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쌓아두기보다 오히려 비웠을 때 물건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없어져 해방감을 얻게 된다.
추억이 쌓인 물건들을 영 버리기 힘들 땐 ‘15분에 27개 버리기’를 제안한다.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두고 쓰레기봉투를 든 채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제한 시간 동안 27개의 물건을 버리는 방식이다. 시간과 개수는 마음대로 바꿔도 좋다. 다만 천천히 보거나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물건을 매만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렇게 ‘8할의 물건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중적으로 비우는 훈련을 반복하면 된다. 흩어진 물건을 잘 정리하고 수납하면 집안일의 효율을 높이고 안전한 이동 동선을 만들 수 있다. 시간은 1회 15분, 하루 5~8회 정도. 옷장, 거실 서랍과 같이 정리할 장소는 하루에 한 군데를 정해 실시한다. 단번에 하려고 하면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정리 정돈을 끝마쳤다면 인테리어를 바꿀 차례다.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인테리어의 모든 과정을 종합 업체에 맡기는 ‘턴키 공사’, 집주인이 직접 자재를 구매하고 시공 전문가를 선택하는 ‘직영 공사’, 직접 시공하는 ‘셀프 공사’로 나뉜다. 개인의 성향과 예상 비용에 따라 방식을 결정하면 된다. 인테리어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면 업체에 위임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믿을 만한 곳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인테리어 공사 범위와 목적,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더불어 스마트홈 기술을 적용하면 생활이 안전하고 편리해진다. 자녀의 독립, 사별, 이혼 등으로 혼자 거주한다면 위험에 노출됐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 각종 전자제품을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고, 집 안 곳곳에 비상호출기를 설치하면 좋다. 자동문이나 센서등은 개인의 반응 시간에 맞게 작동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생활 가전 제품이나 출입문 근처에 움직임 감지 센서를 설치해 두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활동 내용이나 위급 상황을 알릴 수 있다.
노후를 윤택하게 해줄 주거 디자인 6가지
신체의 노화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가족 구성원이 떠나거나 은퇴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을 테다. 다양한 생활 방식을 종합해 50대 이후 세대가 참고할 만한 인테리어를 소개한다. 인테리어 상담 전 해당 내용을 참고해 업체와 소통해보자.
1 활기찬 느낌의 밝은색을 사용하자
젊은 시절과 달리 언제나 활동적일 수 없고 시력도 점점 저하된다. 명도가 높은 색을 사용해 시야를 환하게 만들면 주변의 미세한 물건을 발견하기 쉽고, 태양광이 실내로 가득 들어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분도 전환할 수 있다. 다만 새하얀 벽은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노란빛이나 붉은빛을 띠는 흰색을 선택하자. 처마나 벽에 명도 높은 옅은 분홍을 사용해도 좋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운 색을 띠기 때문에 실내에 있는 사람의 안색도 완화된다.
2 촉감이 좋은 따뜻한 소재를 선택하자
석고나 나무 등의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석고는 조습과 항균 효과, 휘발성 유기 화학물의 흡착과 분해 기능이 있다. 더불어 신발을 신거나 걸을 때 주위에 있는 사물에 손을 얹을 일이 많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가구나 벽지 소재는 차가운 메탈보다 부드러운 나무가 적합하다. 대신 부상을 입지 않게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3 안전 대책도 디자인의 일부다
현관이나 복도, 화장실에 난간을 설치하거나, 앞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편이 좋다. 턱과 계단은 되도록 없애고 경사로로 바꾼다. 또한 기초 보수공사나 벽지를 교체할 시기가 됐을 때 난간의 아래와 위에 다른 색 벽지를 붙여보기를 추천한다. 명확하게 난간과 경사로, 방향을 인지할 수 있어 안전하고 인간친화적인 인테리어가 될 것이다.
4 가구의 디테일에도 신경 쓰자
젊은 시절과는 다른 가구 선택 기준이 필요하다. 손잡이는 끌어당기거나 잡을 때 손에 쉽게 들어오는 크기여야 한다. 무게감 있는 의자는 앉을 때마다 끌어내기 힘들고 부담된다. 회전의자 등 앉기 쉽고, 팔걸이가 소매에 걸리지 않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서랍에는 부드럽게 열리고 갑자기 닫히지 않게 조정하는 소프트 클로저를 붙여 약간의 힘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게 하자.
5 ‘눈부심’을 피하자
식탁이나 책상 위처럼 직접 빛이 필요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간접 조명을 기본으로 한다. 가장 피해야 하는 건 눈부심이다. 저녁 식사부터 취침까지 하루 일과에서 본인이 조금씩 조도를 낮출 수 있도록 해두는 게 좋다.
6 중요한 것은 ‘그 사람’다운 집이다
평생 살 집은 무엇보다 본인에게 맞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취향과 필요가 분명하다면 꼼꼼히 계획해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도예를 좋아한다면 거실의 넓이를 줄이고 작업장을 만든다든가, 음악 감상을 위해 거실을 오디오룸으로 바꾼다든가 말이다. 그동안 바빠서 할 수 없었던 일에 집중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마음에 드는 것들에 둘러싸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보자. 계획 단계에서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추천한다.
참고 주거 관련 플랫폼 ‘houzz’(하우즈)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K-커피로 불리며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믹스커피가 그 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믹스커피를 흘리지 않고 뜯으려면 가위가 필요했다. 이제는 이지컷(Easy Cut) 선을 따라 뜯기만 하면 된다. 손가락 힘이 없어도, 가위가 없어도 누구든 쉽게 뜯을 수 있다. 그저 뜯기만해도 하루가 달달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신체 조건, 장애 유무 등의 차이가 상관없도록 설계한 디자인이다. 다른 사람의 배려나 도움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의 체력, 이동 능력, 인지 능력 등을 고려해 반영한다. 다양성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의미다.
접근성 높이는 유니버설 디자인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다문화가정으로 육아 주체가 다양해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공공기관에는 육아편의공간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남자화장실 내에 기저귀 교환대가 없어 불편하다거나 수유실에 남자가 들어갈 수 없어 아빠가 주 양육자인 경우 이용이 어렵고, 엄마도 필요할 때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불편하다는 등의 민원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인구에서 가장 많은 구성원 혹은 건장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디자인한 것들이 많다. 경제성장 시대에 빠르게 많이 공급하기 위한 표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대수명 연장으로 고령 인구가 늘었고, 다문화가정도 많아졌다.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최령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장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목표는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소외되는 사람 없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우리는 ‘약자’라는 개념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때문에 ‘약자‘도’ 편리하게’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양성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최 센터장은 “우리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면서 “결국 사회적 비용을 크게 낮추는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고령화를 겪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도입은 필연적이다. 공공기관은 모든 국민의 접근성을 높일 의무가 있다. 공공시설이나 서비스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앞장서서 적용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모든 웹사이트에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담고 있는 웹접근성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2018년 ‘유니버설 사회 실현을 위한 시책의 종합적 일체적인 추진법’을 제정했다. 모든 국민이 장애 유무나 나이에 관계없이 기본적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념을 법에 담았다. 우리나라는 2022년 1월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 법안이 처음 발의되었고,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부에서는 공공청사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로널드 메이스 교수가 처음 만든 개념을 기반으로 한 ‘유니버설 디자인 7가지 원칙’을 안내하고 있다.
△누구든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접근과 사용이 가능한 크기와 공간을 확보한다 △적은 신체 활동으로도 사용 가능하도록 한다 △오작동에 대한 대응을 통해 안전한 사용을 유도한다 △사용자의 환경에 맞는 유연성을 확보한다 △쉽고 이해 가능한 간결한 사용법을 마련한다 △사용자의 상황에 관계없이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사회 곳곳에 적용할 수 있다.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필요한 디자인
이 디자인을 통해 불편함을 가장 많이 해소할 수 있는 이들은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 인구의 20%가 65세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고령자의 낙상 사고를 예방하고, 이동성을 높인다. 이동이 편리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활동하게 되니 건강해지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에도 도움이 된다. 살던 동네에서 친구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살아온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계단 난간에 설치된 안전바가 스테인리스일 경우 한여름에는 뜨거워 손을 델 수도 있다. 한겨울 영하 1℃ 이하 날씨에 얼어붙은 안전바를 급하게 잡으면 위험을 유발할 수도 있다. 노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바 겉부분을 목재나 플라스틱으로 마감하도록 권장한다.
노화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는 고령자들은 샤워실과 세면실이 투명 유리로 분리된 화장실에서 유리벽을 구분하지 못한다. 화장실에서 잦은 부딪힘으로 멍이 생기고 낙상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경우 거울과 유리벽 테두리를 액자처럼 표현하거나, 바닥과 벽면의 색을 다르게 구분하거나, 세면대와 변기 같은 위생기기 색상을 다르게 하는 등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을 적용하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인도와 도로 사이의 턱 높이도 안전과 직결된다.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이용자, 보행보조기 이용자 등 바퀴 달린 이동수단을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 원인이 되곤 한다. 자동차의 출입을 편리하게 하려고 인도와 도로의 높낮이 차이를 줄인 기울어진 인도 역시 보행자가 쉽게 넘어질 수 있는 구조다. 도로의 횡단보도를 높인 고원식 횡단보도는 이런 안전 문제를 고려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및 이동수단이 장애물 없이 지나갈 수 있고, 도로에서는 방지턱 역할을 해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속도를 줄이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도 공간과 공간 사이 바닥의 턱을 없애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향후 무인 로봇이 돌아다닐 미래를 생각할 때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20년 정도 유니버설 디자인 도입이 늦다”며 “어떤 식으로 디자인해야 할지 방법도 필요성도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 사회에서 가장 많은 유니버설 디자인 수혜자는 고령자분들이기 때문에,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직접 느낀 불편함을 창의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니어 전문가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늙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단계별로 노인 초기에는 사회 활동을 해야 하니 실버타운에 입주한다고 해도 도심권이 편하다. 그러나 더 늙으면 바깥에 나갈 일도 없어지고 힘이 들어 못 나간다. 그러다가 병으로 병상에서 죽을 수도 있고 이렇다 할 병은 없어 그런대로 늙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나중에는 혼자 밥 해먹을 힘도 없어 끼니를 거르거나 거동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부부가 같이 살면 그나마 한 쪽이 도와주면 되지만, 독거노인의 경우는 혼자 해결해야 하니 막막하다. 자녀들이 결국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넣어줄 것이다. 요양원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죽을 때만 기다리는 곳이다. 얌전하면 요양원 내부는 그나마 다닐 수 있지만, 행동이 거친 치매 환자는 침대에 팔다리가 묶이는 경우도 있다.
늙어서 이런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공동체 마을 얘기는 들은 바 있다. 요양원에서처럼 험한 대우를 받다가 죽지 않고 노인들끼리 노노(老老) 케어로 살면서 노년을 보내라는 방식이다.
회원 180만 명을 가진 유명한 문화 커뮤니티 ‘사색의 향기’가 충남 홍성군 갈산면 대사리 일대에 ‘향기촌’이라는 노인 공동체 마을을 만든다 하여 다녀왔다. 35만평 부지에 250채의 가구만 선착순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자기 집 평수 외에 토지는 공동 소유인 것처럼 35만평 부지는 공동 소유 개념이다. 지금은 물이 흐르는 계곡, 소나무 밀집 삼림 등으로 되어 있다. 현재 부지매입 중이며 내년까지 기간시설, 문화 시설, 공유시설 등을 지을 계획이다. 토지를 공동으로 싸게 구입하고 그동안 축적한 ‘사색의 향기’ 문화 콘텐츠를 가미하면 제법 눈길을 끄는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적으로 일이 추진된다면 미래의 대안일 수는 있겠다.
‘향기촌’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250세대가 모여 사는 것이다. 반면에 아는 사람들끼리 귀촌해서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귀촌까지 합의가 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남자들은 그렇다 쳐도 아내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편리한 도시생활을 선호하지 비교적 귀촌을 원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는 것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자기 집이 가장 편하고 남들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도 못 해먹을 정도로 쇠약해진다면 독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혼자 살다가 죽은 지 꽤 오래 되어 발견된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노인 초년병인데도 전화를 안 받거나 답을 안 하거나 하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하고 걱정한다. 혈압이나 뇌격색 등으로 갑자기 쓰러지면 연락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를 꺼 놓는 해외여행 같은 경우 미리 몇 군데에 알려 놓는다.
효심이 깊은 자녀들은 부모와 같이 살며 모시기도 한다.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 필자부터 자녀들 신세를 질 생각은 없다. 우선 필자가 불편하다. 일단 혼자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정 혼자 살기 버거우면 검증된 좋은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죽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겠다고 본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화법. 박동현(朴東炫·60) ‘더 클래식 500’ 대표의 말투가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순박한 인상 속에는 맡은 지 2년여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킨 수완 좋은 경영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신라호텔, 조선호텔 등을 거치며 호텔업계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만년을 맞이하여 시니어타운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몸담은 박 대표는 최근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한 그의 행보에는 시니어 주거공간의 필요성과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꿈꾸는 의지마저 담겨 있었다.
박동현 더 클래식 500 대표는 “시니어업계의 삼성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시니어 사업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 어울릴 법한 야심이라면 야심이다. 하지만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도심형 시니어타운 더 클래식 500의 성공적인 런칭과 운영을 보면 그의 말이 단순한 홍보용 문구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즐겁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시니어타운의 적절한 입소 시기를 물었다. 나이가 많아 건강이 나빠진 후에 들어가려면 건강 문제로 입주가 허락되지 않아 요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데 골프연습장, 당구장, 헬스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서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도심형 시니어타운이라는 신세계
1990년대 시니어타운 초창기에는 전원 속 '나홀로 단지'의 성격이 강했지만 요즘은 도심형이 대세다. 도심형의 특징은 1차원적 주거공간이 아닌 호텔, 종합병원, 백화점 등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복합형’이다.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도심형 노인주거복지시설인 더 클래식 500은 실버타운이 아닌 ‘시니어타운’으로 명칭지어져 있다. 실버라는 말보다는 시니어라는 말이 더 듣기가 좋더라는 박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지금까지 실버타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실버타운으로 각광받는 게 도시형입니다. 처음에 실버타운 개념이 나왔을 때 삼성도 뛰어들었었는데 결과적으론 실패했습니다. 아는 것, 깨닫는 것,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죠. 아는 것만으로 실행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자연 속에서 깨끗한 공기와 함께 지낸다’는 게 시니어타운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신이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 입장에서, 사회로부터 은둔된 실버타운으로 가면 고립된 느낌을 받게 되고 생활 면에서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박 대표는 과거 실버타운들의 실패 사례를 토대로 더 클래식 500을 ‘액티브 시니어들이 사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콘셉트로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광진구에 위치함으로써 가지게 된 교통, 쇼핑, 문화시설 등 주변의 인프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도시 생활과의 연계점들을 마련하여 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지 않도록 고려했다. “외국은 시니어타운이 대학교 주변에 많아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게 시니어들의 멘탈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 합니다.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해서 다행스럽게 성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봐요.”
그 무엇보다도 차별화를 추구한다
더 클래식 500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우스키핑, 컨시어지 서비스와 같은 생활 지원 서비스, 건국대학교 병원과 연계한 체계적인 의료 지원 서비스, 문화 및 여가 생활을 위한 커뮤니티 여가 지원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주거 단지 내 시니어들을 위한 모든 생활 편의 환경이 갖춰져 있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서비스가 이뤄져서 여성층의 만족도가 높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약한 시니어는 건국대학교 병원과 연계된 전문 메디컬 서비스를 받으며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어려움이 없게끔 했다. 또한 29개의 동호회 및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서로 소통하며 배움의 열의를 갖게끔 설정했다. “그런 것들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여타 실버타운과 다를 게 없죠.”라는 박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90세가 넘으셨는데도 건강한 분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우리 직원들의 친절성과 정직도도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저희는 핵심가치가 네 가지인데 합쳐서 ‘HEAD’라고 불러요. Honesty(정직), Excellence(탁월함), Accuracy(정확), Differences(차이)가 그것입니다. 병원도 호텔도 우리보다 나은 데들이 있는데 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니어 사업, 연륜의 힘이 필요하다
신라호텔과 조선호텔 등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호텔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박동현 대표는 시니어 사업의 CEO로 일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깨닫는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제가 올해로 60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옛날에 불효했던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시니어 사업의 CEO는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봐요. 남자가 출산의 고통을 안다고 말해도 실은 몰라요. 여자가 아니고 겪어보질 못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연세 드신 분들과 함께하려면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젊은 경영자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노인 주거복지시설의 운영에 있어 보다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는 약 50여 회원 기관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상호간 정보를 공유하고 발전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 클래식 500 취임 후 2년 여만에 사업을 흑자로 전환시키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한 것이야말로 그가 회장으로 뽑힌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 사회는 완전한 고령화 추세입니다. 우리 협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인식을 바꾸고 사회 제도를 바꾸는 일 말이죠. 최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중인데 현실을 너무 몰라요. 정책은 너무 획일화되어 있어요. 안타깝습니다.”
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노인복지법에 노인 주거복지시설이 주거복지시설과 복지주택의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그렇게 분류되어 있는 이유는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시설은 요양보호사 등의 필요 법적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주거복지시설은 그런 필요 법적인원을 요구하는 반면 복지주택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거복지시설로 신청하여 사업을 시작했다가 주택복지로 바꿔서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사실상 둘은 같은 것인데, 법제가 이원화되어 불필요한 행정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에 답답함 느껴
박 대표는 요우커(遊客) 유입에 따른 대기업들의 호텔 건축도 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호텔은 포화 상태예요. 재앙이 될 겁니다.” 흔히 관광업에서는 요우커의 증가 추세를 객실 수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그것만 따지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요우커들은 하이 클래스에는 안 들어가요. 십만 원 안쪽 비즈니스 호텔에 주로 들어가죠. 그리고 그들은 일단 도착한 다음에는 쇼핑하느라 바빠요.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호텔 점유율이 80% 이상이었으나 요즘은 50% 안팎밖에 안 됩니다. 많아야 60% 내외예요. 그런데 또 짓는다고 하니….”
박 대표는 직접 통계를 보이며 설명을 이었다. 2014년에 내한한 요우커는 약 613만 명이고 2015년에는 598만 명으로 20여만 명가량이 줄었다. 그런데 서울만 봤을 때 2012년도의 호텔 수는 151개에 객실 수가 2만 5710개였는데 2015년에는 295개 호텔에 4만 2444개의 객실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더군다나 이 통계에는 일반 숙박업인 모텔이나 여관, 게스트하우스 등의 시설들은 빠져 있다. 소비 대비 공급 과잉의 이러한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수치는 올라갈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고령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 위기감 느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시의 사업 수행 계획을 보면 호텔 184개를 추가함으로써 객실 수는 2만 8926개가 늘어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대로 하면 2019년에 서울에는 479개 호텔에 7만 1370개의 객실이 생기게 된다. 가히 ‘호텔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될 막대한 숫자다. “그러다 보니 가격 인하 정책을 남발하게 되고, 당일 ‘땡처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되는 거죠.”
지나친 호텔 포화 상태에 대한 대안으로 박 대표는 호텔 건축에 있어 객실을 150실 정도로 줄이고 시니어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 자체로 사회적 기여도 되고 새로운 수요도 창출할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싸우고만 있어서…. 사람이 없으면 소비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고령화 문제는 국가 존립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연결되는 문제인데, 답답합니다.”
박 대표는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회장으로서 3년 임기동안 반드시 하고 싶은 4가지 일을 강조했다.
“첫째, 시니어 세대가 검증된 노인 주거복지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증제도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둘째, 현 시대의 흐름에 맞는 노인 주거복지시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비효율적, 비현실적인 규제를 발굴하여 개선하겠습니다. 셋째, 한국의 첨단 IT기술과 접목한 노인 주거관리시스템 및 고령친화 IOT 개발에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넷째, 국내 노인 주거복지시설들의 해외 시장 교류 확대와 발전을 위해 주력하겠습니다.”
이외에도 시니어 세대들의 주거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 전문기관 및 단체와 협력하여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하고자 주력하겠다고 한다. 또한 입주 100%·만족도 200%·재입주 94%를 달성한 더 클래식 500 시니어 타운에서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시니어 라이프 트렌드’를 리드하는 삶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라이프 케어를 넘어 체계적 라이프 사이클 서비스로
이처럼 고령화사회로 인한 문제 발생, 그리고 수요 발생에 대비하여 더 클래식 500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저희 나름대로의 비즈니스 벨트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수평적으로는 부산, 인천, 대구, 울산, 대전 등등 일곱 군데 정도에 수평적 벨트를 구축하는 겁니다. 수직적으로는 여기 계신 분들이 몸이 더 안 좋아지시면 갈 수 있는 다음 장소를 마련하여 그야말로 라이프 사이클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노년의 삶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인식의 변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시니어타운 사업을 하면서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서비스는 항상 어제보다 나아지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항상 계속적으로 나아지는 서비스를 위해 아이디어 생산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관심과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지요.”
인생 후반전의 삶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심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살 공간,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거 문제이다.
하지만 저마다 사는 취향이 각기 다르고, 형편이나 사정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건강상태, 재정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거공간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늘어난 노후를 멋지게 그릴 수 있을것이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고령자의 생활 안전사고의 61.5%가 주로 가정에서 발생하며, 문턱이나 장판 등에 걸려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문턱 하나 넘기도 버겁고,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는 데에도 숨이 차오르게 되는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는 60대에 노년에 생활하기 적합한 집 안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집 안 곳곳에 손잡이를 달고, 문턱이나 계단의 높낮이 차이를 줄이고, 화장실 센서기능, 바닥재는 코르크와 같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소재로 바꾸는 것이 좋다.
현재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거나 이웃과 나누는 타운 하우스에서 살거나 보다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시니어타운에 입소하거나 개인별 주거의 공간을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보통 ‘은퇴=전원생활’이란 공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접고 여유롭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택하는 은퇴자들이 많아서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면 전원생활은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은퇴자 가운데 상당수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시로 유턴한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전원생활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현지 적응력이 낮은 고령자, 신체조건이 뒷받침되더라도 도심 기반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경우라면 전원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도시 외곽에 전원형 주택을 지어 거주하거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해 빌려주거나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임차하는 이른바 ‘도심형 전원주택’생활을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상위 5% 은퇴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주거공간
우리나라에서도 시니어타운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미 오래 전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본이나 호주, 독일, 중국,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실버타운이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며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은퇴자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은퇴자들 15%이상이 제2의 인생을 찾아 날씨 좋은 곳, 여가 활동이 자유로운 곳 등 상당히 활발한 이동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독립적이고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층이 증가하면서 실버타운 및 유료주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편의,여가, 문화시설 등이 많고 그들만의 ‘주거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상위 5% 시니어들은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소에 따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이동하고 싶어한다.이들의 이동 변수는 건강하냐, 안하냐에 따라 다양한 주거시설의 삶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공간을 찾는다. 앞으로 10~30년이상 살아야 할 주거시설을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다.
실버산업 관련 모 대학 교수는 “앞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한 독립심을 가진 자산가들이 늘어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살려는 은퇴자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고, 문화예술욕구가 강한 베이비부머들이 그러한 1세대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은퇴 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평균 40년. 진짜 부부생활은 은퇴 이후에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혼이혼이 처음으로 신혼이혼을 앞질렀다고 한다. 진정한 노후 대비는 재테크가 아니라 부부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병이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어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닫는다. 많은 경우 남자는 여자가 하는 말을 잔소리로 듣는다. 공통의 대화 주제를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부가 함께 영화나 공연을 본다든지, 여행, 악기를 배우는 등 같은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어느 봄날 부부가 폼나게 차려입고 호텔에서 우아한 디너를 하는 것은 어떨까.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1.배낭여행 부부 2.패셔니스타 부부 3.만돌린 부부 4.공연에 빠진 부부 5.손잡고 학교 가는 부부
CHAPTER 1 배낭여행 부부
“우리 부부 제2의 인생은‘여행연출가’랍니다”
165개국을 누빈 국내 부부배낭 여행가 1호 김현·조동현 부부
함께 산 지 47년이 넘은 70대 부부가 여행지 멋진 곳에서도 알콩달콩 ‘뽀뽀’를 일삼는다.
남편 김현(77)씨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운동 40분, 매일 일간지 5개를 정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부인 조동현(74)씨는 여행 가방을 챙기고 같이 가는 여행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준비물을 체크하는 일을 맡는다. 4박 5일 삿포로 눈 축제 여행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부부를 서울 가양동 그레이스힐(실버타운)에서 만났다.
“일주일 여행을 위해 70일을 준비하는 우리 부부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함께 대화하고, 여행을 하면서 함께 얘기하고, 돌아와 여행을 정리하면서 다시 대화한다. 비록 배낭여행이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돈은 조금씩 부족해지겠지만, 풍성한 추억과 대화가 그 자리를 메우니 가난해지기는커녕 더욱 부자가 되는 느낌이죠. 서로를 존중해주니 존경심이 느는 것 같아요. 부부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런 좋은 시간들, 기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죠.”
70대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내는 비결
문화산책 ‘청류회(淸流會)’는 김현·조동현 부부의 주도 아래 월 1회 연극, 영화, 음악, 오페라, 그리고 각종 전시회와 박물관 참관은 물론이고, ‘포도주 시음회’, ‘테이블 매너 실습을 겸한 만찬’ 등의 행사를 갖는 일종의 문화단체이다. ‘2Hyun’s Travel Club’은‘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별칭에 걸맞게 부부가 1999년부터 공동 대표가 돼 이끌어오고 있고 부부와 함께 여행 가기를 원하는 이들의 신청을 받아 해마다 3~4차례 해외여행에도 나선다.
이들 부부는 일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이 두 가지 일에 역점을 두고 즐긴다. 또한 “70대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면 얼마든지 노후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방송국 PD 출신의 남편 김현 씨와 영어교사 출신의 아내 조동현 씨는 국내 최초의 부부배낭여행가로 알려져 있다.
1989년 1월 1일 처음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부부는 한 해에 2~5회씩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경험한 여행지가 지금까지 165개국에 이른다. 개중에는 여러 번 방문한 곳도 부지기수. 일본은 무려 70번이나 여행했다고 한다. 현지인도 가기 힘든 곳을 샅샅이 찾아 여행하는 데 고수다. 26년 배낭여행의 노하우일 것이다.
“여행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직장 다닐 땐 시간이 없어서 벼르기만 했던 세계여행, 은퇴하고 나자마자 배낭을 둘러멨어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겪는 일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해줘요. 혼자 하면 외로울지 모르는데, 부부가 함께 하면 몇 배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쌓이지요. 대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관심사에 따라서 주제를 정해 여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보거나, 반고흐의 흔적과 작품들을 보러 가는 것이지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먼 곳으로의 여행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여행이란 게 습관이 돼서 괜찮다고 김씨는 말했다.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부부의 대화
만약 부부에게 여행이 없었다면? “지루했겠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혼자보다는 동반자와 협력해서 하는 게 신나고 효과적이지 않겠소. 서로 역할을 나눠 돕기도 하면서 말이오. 그런데 요즘은 기억이 나질 않아 아내한테 늘 확인해야 해”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 부부는 여행이 부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을 ‘대화’라고 말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가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공통의 화제를 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뜻 깊은 일이죠.”
부부 사이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이 부부는 굳이 말로 다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끝으로 덧붙인 아내 조동현 씨의 말. “간혹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남편과 함께했던 여행의 기억 중 달콤한 추억들을 꺼내 스스로를 위로하곤 해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여행하는 기쁨은 말로 다 못할 만큼 큰 힘이 되죠.”
이제는 김씨의 풍부한 여행 경험과 식견을 인정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지의 역사와 다양한 정보도 함께 전해주는 ‘여행연출가’로 제인생을 산다.
최근 열 번째 책을 펴냈다. ‘요셉과 피나부부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다. ‘요셉’은 남편 김씨 세례명이고, ‘피나’는 아내 조씨 세례명의 애칭이다.
에는 책 제목처럼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부부 이야기가 담겼다.
이 부부는 이미 여행 관련 책을 다수 펴냈고, 1995년부터는 12년 동안 KBS TV 여행 프로그램 ‘세상은 넓다’에 출연한 바 있다. 신부님(장남 김환수)의 부모라서기보다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요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늘도 부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결혼생활 중 항상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늘 겸손과 배려로 상대를 존중하며, 자녀에게도 자존감을 바탕으로 사회에서의 제 역할을 강조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으니 이 부부는 부러움과 공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 부부의 모습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인생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부부 배낭여행 10계명
1. 배우자를 최대한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도록 노력하라.
2. 여행 기간의 10배에 해당하는 준비 기간을 가져라.
3. 여행 준비는 부부가 나눠서 해라.
4.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치밀한 일정을 짜라.
5. 경제적 여행을 계획하라.
6. 숙식은 가능하면 친구나 친지의 집에서 해결하라. (단, 잠자리만 부탁하고
다른 부담은 주지 마라. 그리고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꼭 보답하라.)
7. 가장 싼 비행기 표를 구하라. (최소 3개 회사 이상을 비교하라.)
8.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하라.
9. 맛있고 멋있는 음식점에서 꼭 한 번은 식사하라.
10. 여행의 멋을 연출하라.
그렇다면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선진국의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실버타운이 가장 발달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900년경 300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70년 동안 미국의 총인구가 약 3배 증가할 사이 노인인구는 7배가 늘어날 정도로 노령화 속도가 빨랐고 실버타운을 비롯한 실버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민간주도로 은퇴자 도시 형성된 미국
미국의 실버타운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은 이미 1960년대부터 비영리단체나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여개의 CCRC가 조성돼 있으며 80%는 민간기업이 운영이 운영한다. 주로 기후가 온화하고 경치가 좋은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 남동부 지역과 서부 캘리포니아에 집중돼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교의 선시티(Sun City)로 약 1090만평(여의도 120배)의 대지에 2만6000가구(4만2000명)가 주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미국의 대표적 은퇴자 도시다. 55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다. 골프, 테니스, 수영, 컴퓨터 등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편의시설을 즐길 수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목수출신 건설업자 델웹은 2차대전 후 미국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은퇴자 마을조성을 구상했다. 그는 피닉스 인근 목화밭을 개발해 은퇴자를 위한 거주시설을 공개했고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거주자와 면적이 꾸준히 커져 하나의 도시가 됐다. 선시티의 성공으로 미국 전역에서 CCRC와 은퇴자 도시가 형성됐다.
◇유료 노인홈 사태 이후 규제 나선 일본
고령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본도 1963년 일본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노인주거시설인 노인홈을 규정했다. 일본의 노인홈에는 노인복지법 규제를 받는 양호노인홈, 특별양호 노인홈, 경비노인홈이 있고 노인복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유료 노인홈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특별양호 노인홈으로 전국에 6200여개가 있다. 수용인원은 44만명 정도로 같은 수만큼의 노인들이 입소를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입소하려면 보통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65세 이상으로 신체상, 정신상 현저한 장애로 인해 상시 개호(간호)가 필요한 노인만 입소 가능하다. 특별요양 노인홈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은 복지시설로 월 100만원 정도(6만~15만엔)의 저렴한 비용으로 입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노령화로 간병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폭발하자 재정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민간 업자의 진출을 적극 장려했다.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유료 노인홈을 노인복지시설에서 제외해 완전히 민간사업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운영업체의 부실운영 등이 불거진 ‘유료 노인홈 사태’를 겪으면서 유료 노인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설치단계부터 행정지도를 받아야 하고 운영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시설을 폐지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유료 노인홈 설치 운영 지도 지침‘을 1994년 제정해 규제를 시작했다.
◇정부와 민간이 적절히 조화된 독일의 실버타운
미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민간주도의 실버타운이 강한 반면, 독일은 정부와 민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노인의 주거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의 실버타운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알텐본하임, 가사를 보조해주는 알텐하임, 요양원인 알텐플레게하임으로 구분된다.
모두 유료지만 입소 노인들은 자신의 연금과 보험금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고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사회부조로 채워준다. 가장 큰 특징은 사회복지법인만이 운영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적으로 행정적 통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민간이 주도하는 실버타운에 비해 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핀란드의 경우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실버타운을 만들었다. 지난 2000년 친구 사이인 은퇴 할머니 넷이 모여 노인공동체 설립을 추진했고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협동조합의 출자금으로 2006년 58가구가 수용 가능한 7층짜리 아파트가 완공됐다. 이 아파트의 이름은 로푸키리(‘마지막 전력질주’라는 뜻)로 붙여졌다.
입주 노인들이 직접 아파트 설계와 디자인을 계획했다. 이들은 공동의 생활 규칙을 만들고 식사·청소·빨래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서로 분담, 협동해 해결한다. 서로 심리적으로 의지하면서 핀란드에서는 불황으로 노인 자살률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로푸키리에서 자살한 노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장경영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령화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은 실버타운을 포함한 모든 고령화 이슈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개선해왔다”며 “한국은 선진국의 선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면서 보완해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