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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완주 싱그랭이 마을
- 숲속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볼 수 있는 곳, 완주 경천면 싱그랭이 요동마을로 떠난다. 자연이 일상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는 싱그랭이 마을, 산속 가득 서늘한 바람이 쉬어가는 고적한 절집 화암사와 자연 생태 환경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 그리고 마을 주변으로 너른 콩밭이 펼쳐진 완주 싱그랭이 요동마을에서 순한 힐링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을 입구에 들자마자 오래된 노거수가 대뜸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듯하다. 500년 넘도록 마을의 수호신으로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다. 나무 그늘 아래엔 마을 어르신들이 한낮 일손을 멈추고 휴식 중이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홍성태 싱그랭이 영농조합 이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싱그랭이 요동(堯洞)마을은 그 옛날 전라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 잠시 쉬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장승길 옆으로 서 있는 커다란 시무나무는 표시목으로 20리마다 심었는데 완주 고산현이라는 지점에서 딱 8km 지점입니다. 여기에 돌 하나 던져놓고 ‘발병 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 떠나는 곳으로,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헤진 짚신 하나 고을 어귀 나무에 걸어놓고 가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거(新巨)렁이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죠. 그런데 신거마을을 지역 방언 등의 이유로 편안하게 부르는 대로 쓸까 어쩔까 투표를 했어요. 15년 전이죠. 그때 마을 주민들이 정감 있고 부드러운 어감의 싱그랭이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싱그랭이 마을은 사방으로 콩밭이다. 홍성태 이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저기 콩밭에서 새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보이네요. 주변의 모든 밭이 콩밭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산골이잖아요. 천수답이나 관개시설이 안 되어 있어요. 옛날부터 콩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수매가 줄고 콩값이 반 토막이 되기도 했고 판로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두부 공장을 해보자 의견을 모아 매일 두부 만들어내기에 이른 겁니다. 완주는 로컬 푸드가 유명한데 우리 영농조합의 두부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콩밭식당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조법으로 재배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천연 간수를 사용해 조금 거친 듯 고소한 두부로 만든 들깨순두부와 두부전골 등의 두부 요리가 일품이다. 노포 맛집 느낌의 깊은 맛이 난다. 소박한 밥상인 듯하지만 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손끝 여문 솜씨로 정갈하고 맛깔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의 자연 생태 마을의 느티나무와 콩밭길을 지나 화암사로 가는 길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잠깐 멈췄다. 완주의 생태 활동은 이곳 요동마을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아늑한 산 아래 야생화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 앞마당엔 제철 맞은 꽃들이 지천이다. 마을의 자연 생태와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해 마련된 곳, 또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지속 발전이 가능한 자연을 가꾸어나가기 위한 공간이다. 150여 종의 야생화와 복수초, 댑싸리 등이 자라고 있다. 요동마을이 있는 경천면은 완주의 북쪽 지역인데 복수초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전문성을 지닌 에코 매니저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에 따라 식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에 관심 있다면 자연 소재를 이용한 석부작(石附作) 만들기 등의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주변 들판과 언덕에서 자라는 야생화가 자연스럽다. 정원 양옆으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온실은 천장까지 온통 유리로 둘러싸였다. 자그마한 다육이와 꽃을 피운 화분들, 그리고 풀인 듯 자연스러운 식물들과 다양한 모양의 석부작들이 가득하다. 다른 쪽 공간은 씨를 파종하여 키워내는 육묘장이다. 도심에서 자라는 식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마을 사랑을 실천하는 주민들과 싱그랭이 요동마을 생태활동가의 땀과 노력이 엿보인다. 산골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 사랑을 이곳에서 느껴본다. “초반엔 여러 가지 종을 키웠는데 이제는 몇 가지로 압축해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다알리아가 꽃을 피웠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데다 번식력도 좋아 구근을 키워서 심었어요. 또 허브는 수입 희귀종이 많은데, 사실 저쪽 산모퉁이만 돌아가도 많거든요. 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재배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채취 가공하고 방향제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죠. 5년 전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차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늙은 절집, 느린 발걸음으로 화암사 완주의 싱그랭이 마을에 간다면 가장 먼저 화암사 절집을 갈 생각에 설렌다. 싱그랭이 요동마을이 화암사가 있는 불명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을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화암사는 산속에 숨어 있다고 할 만큼 유난스러움 하나 없이 숲속 깊이 파묻혀 있다. 규모도 소박하다. 단청의 화려함 같은 것도 없다. 수수함에 먼저 마음이 당기는 절집이다. 불명산 화암사에는 신라 왕의 꿈속에서 부처님이 던져준 연꽃으로 딸 연화 공주의 병을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 연꽃이 한겨울 완주 깊은 산봉우리에 피어 있었다고 한다. 불심이 깊어진 왕이 연꽃이 있던 자리에 화암사(花岩寺)라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절이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마을길을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가벼운 등산 코스처럼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입구의 연화 공주 정원 숲길은 1km 남짓으로 완만하다. 여기선 느린 발걸음이 어울린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다 보면 불명산 숲길의 운치에 반하고 만다. 좁다란 숲길이 온통 풀섶이거나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해서 밀림인 듯 착각하게 하는 포인트가 간간이 나타난다. 물론 급경사의 험한 코스와 너덜길도 있지만 이럴 땐 수행하듯 조심히 걸으면 된다. 골짜기의 물소리와 절로 생겨난 작은 폭포를 지나 숲 사이로 화암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끼가 덮인 바위 절벽에 절집이 앉혀 있어서 우선 놀랄 수밖에.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니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잘 늙은 절’이란 말이 떠오른다. 불명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보물 제662호 누각 우화루 누마루에 걸린 목어의 나무 질이 한참 나이 먹어 잘 늙은 절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절 마당을 중심으로 자리한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가 기품 있다. 고적하기만 한 누마루 너머 틈으로 푸르른 신록을 내다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바랄 게 무언가 싶은 순간이다. 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아앙식 구조 건물 극락전 뜰에 털썩 걸터앉아 숲에 파묻힌 화암사를 내다보니 “아, 좋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행 정보 싱그랭이 요동마을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377/ 지번 가천리 892 싱그랭이 에코 정원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474 불명산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지번 가천리 1078
- 2023-08-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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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가 그린 이상향으로 가는 산길
- 추사고택에서 화암사에 이르는 용산 둘레길의 길이는 약 1.5km. 가볍게 올라 산책처럼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추사를 동행으로 삼으면 더 즐겁다. 추사고택을 둘러본 뒤, 추사기념관을 관람하고 산길을 타는 게 이상적이다. 추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씨를 심어 자랐다는 백송공원의 백송도 볼 만하다. 산(山)에 산을 닮은 사람[人]이 살면 선(仙)이다. 세사의 난리법석 가운데 태산처럼 우뚝 솟은 사람을 선인(仙人)이라 한다. 달인이라고, 초인이라고, 거인이라 해도 되겠지. 여기 용산에도 거인이 왔다가 갔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그가 용산의 솔바람을 숨 쉬며 산 아래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성년이 돼서도 드나들었다. 용산에서 선경(仙境)을 구가하고자 했다. 추사는 죽어서도 살아 있다. 오늘날까지 팬덤을 거느리는 창의의 아이콘이다. 불멸의 성좌다. 유배의 고난을 오히려 동력으로 삼아 시대의 파랑을 건넌 무적 구축함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직도 추사에 열광한다. 참을 수 없는 외경으로 추사에게 길을 묻는다. 용산의 북쪽 산마루 아래에 ‘추사고택’이 있다. 폐허처럼 스러져가는 걸 1970년대에 와서 복원한 53칸 기와집이다. 집을 지은 건 영조의 사위 김한신이며, 그는 바로 추사의 증조할아버지다.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 추사는 이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대기(大器)의 싹눈이 여기에서 새파랗게 움텄다. 용산에 신령이 근무한다면 그는 기억할 게다. 어린 추사의 어린애다운 천진과 호기심을, 어린애답지 않은 다재와 조숙을. 용산 자락에 유년의 꿈과 기억을 심었던 추사는 용산 자락에서 흙으로 돌아갔다. 고택 옆, 봉긋한 젖무덤처럼 포실한 묘에 누워 영원으로 회귀했다. 고택 옆댕이로 난 둘레길을 따라 용산을 오른다. “이게 무슨 산인가? 들판 가운데에 간신히 솟은 언덕에 불과한 것을.” 크고 높고 깊은 산에 심취하는 버릇이 몸에 밴 사람이라면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억지스럽다. 당신의 몸피가 작다고 좁쌀 소인인가? 작은 산이라 얕보지 마라. 있을 것 다 있다. 숲 사이로 부는 바람, 롱런하는 명가수라 불러야 할 산새들, 태초의 침묵 하나로 좌정한 암반들, 뜻밖에도 깊은 골골마다의 정적…. 마음 한 자락 슬쩍 얹기에 부족할 게 없다. 야산이라고 놀리지 마라. 슬리퍼 질질 끌고서도 만만히 오르내릴 수 있으니 후덕한 산이다. 눈감고 걸어도 길을 잃을 일 없으니 어디나 광명천지다. 이 산에 오르거들랑, 그대여, 남모를 슬픔마저 하얗게 헹구고 헛된 인생사 차라리 통 크게 볼 일이다. 작아도 큰 게 산이며, 쩨쩨해도 마음 한 번 크게 먹어 거산을 닮을 수 있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옛사람들은 이 산을 용(龍)으로 봤다. 누운 용이 머리를 휘저으며 일어나 저 너머 삽교천의 물을 들이키는 형국으로 읽었다. 그래서 용산(龍山)이다. 이젠 이름 없는 산으로 이름났지만 일찍이 대동여지도에 주민등록을 낸 산이다. 바람에 실려온 소식에 따르면, 합덕 성동산성에서 견훤이 쏜 화살이 이 산에 꽂히기도 했다지. 용산에 진을 친 왕건을 겨냥한 화살이었다. 알고 보면 눈여길 게 많은 산이라 할 수밖에. 숲 사이로 느릿느릿 걷는다. 쪼르르 산에 오른 어린 추사가 다람쥐랑 깔깔대며 놀았을 수도 있는 길이다. 걷다가 몇 번이고 멈추어 길을 아낀다. 산에 올라 산의 마음 한 움큼을 훔쳤으니 서두를 게 없다. 들이치는 햇살을 거머쥐려 발돋움하는 나무들만 다투어 산이 곧 생명임을 천명한다. 숲길 곳곳엔 묘가 있다. 어떤 묘는 가히 아름다워 심지어 목가적이다. 어떤 묘는 잡목을 뒤집어썼으니 머리를 득득 긁는 넋이 지하의 옥살이를 투덜거리는 것 같다. 어쨌건 이제 딱히 할 일 없는 게 넋이다. 목숨이란 계약직이라서 시효가 지나면 영구적인 실직자로 돌아간다. 무덤을 딛고 올라 마침내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아니던가. 바위는 다르다. 천년만년을 살아 불멸을 꿈꾼다. 용산엔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개중 우람한 암벽은 쉰질바위. 여기엔 선계(仙界)를 뜻하는 ‘소봉래(小逢萊)’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추사의 필적 암각문이다. 숲길 끝자락, 추사 가문의 원찰(願刹) 화암사 병풍바위에도 추사의 글씨 ‘시경(詩境)’이 박혀 있다. 추사가 이 산에서 이상향을 구가하고자 했던 표징으로 간주되는 각자(刻字)들이다. 그는 저 요지부동한 바위의 정신으로, 부나비처럼 부유하는 생의 허허(虛虛)를 날려버릴 생각을 한 게 아니었을까. 추사는 생시에 이룰 것 다 이루었다. 문사철(文史哲)로, 시서화(詩書畵)로. 그럼에도 선계(仙界)를 그렸다. 어차피 가망 없는 꿈인 걸 모를 리 없었겠지만.
- 2019-07-18 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