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넨 황보름 작가가 에세이 ‘단순 생활자’로 돌아왔다. 일부러 애쓰기보다 내면의 힘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깊고 느리게 숨 쉬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평화로운 삶을 그렸다. 황 작가는 바라던 일을 이루지 못해 날을 세우고, 얽히고설킨 관계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조심스레 두드린다. “멈춰서 눈여겨볼 만한 대단함은 아니지만 보통에 의미를 부여하며 움트는 이도 있다”고.
황보름 작가의 ‘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7년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LG전자에 다녔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건 글을 쓰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엑셀을 띄울 때면 마음 한편엔 집에서 한글을 띄우고 있는 상상을 할 정도였다. 결국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독서 모임에 가거나 글쓰기 관련 서적을 뜯어보며 온종일 읽고 썼다. 책을 내는 걸 목표로 서른 넘어 무작정 쓰기 시작했지만 기대감에 차 있었다.
전업 작가 생활의 마침표 그 후
30대를 몽땅 쏟아부어 몇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취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매일 마음을 다스렸다. ‘썼던 글이 고봉밥이 되어 나를 살찌우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친구와의 유쾌한 만남 뒤에 유쾌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며 상황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됐다. 사회적 기준에 잠식당할 때는 스스로 하는 일을 의심하기도 했다.
“겉은 작가였지만 속은 백수였어요.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내내 고민하다 마흔이 넘었죠. 위기감을 느끼고 다시 직장인 신분으로 돌아갔어요. 그 무렵, 몇 년 전에 쓴 첫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공모전에 출품했습니다. 몇 개월 후 회사에 앉아 있다가 수상작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어요. 제대로 된 작법 공부도 하지 않았던 터라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요. 전자책을 거쳐 종이책으로 나온 뒤에는 자꾸만 전업 작가일 때가 생각나더라고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무기력에 빠진 서점 주인 영주, 그를 중심으로 바리스타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작가 승우, 단골손님 정서, 사는 게 재미없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의 엄마 희주 등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서점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성장하는 일상 이야기다. 이 작품은 현실에 순응한 황 작가가 ‘전업 작가’라는 직업을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25만 명가량의 국내 독자가 생겼고 해외 20여 곳에 판권도 수출했다. 덕분에 오뚝이가 다시 제자리를 찾듯 그도 글 쓰는 삶을 ‘제 자리’로 삼았다.
해야 할 것에만 머무는 시선
신간 ‘단순 생활자’에는 가족으로부터 독립, 퇴사, 전업 작가로 복귀 등 그간의 상황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에서 얻은 만족감을 담았다. 소설로 많이 알려진 까닭에 몇몇 출판사에서는 소설을 후속작으로 제안했지만 생활감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날그날 적어둔 기록에 살을 붙이거나,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 남아 있던 내용을 곱씹어 풀어냈다. 어느 날엔 ‘될 것 같다’를 ‘될 듯싶다’로 미세하게 고치고, 또 다른 날엔 속이 시끄러워 청소를 했다. 안구건조증 탓에 통증이 극심해져 한 달간 활자를 멀리해야만 했을 땐 글의 소중함을 깨우치며 실컷 괴로워했다. 그마저도 겉치레 없이 눈앞에 놓인 일과에 집중하는 단순 생활자의 면모일 테다.
“종종 숨 가쁘게 지냈는데도 공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엔 아무 데도 집중하지 못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게 됐어요. 책 쓰는 게 좋아도,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서 분주하게 살면 자칫하다 하고 싶은 일을 정작 못 하게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술을 마시거나 흘러가는 인연을 붙드는 행동을 줄였어요. 마음이 혼란하면 다시 정화하는 과정이 많이 필요했을 거고, 우울해서 글 연습을 더 못 했을 수도 있어요. 대신 독서를 하고 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필요하거나 원하는 일 외에 불필요한 요소를 되도록 걷어내면서 일상을 정돈하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도 쭉 저만의 약속을 지켜나가면서 차근차근 하루를 가꾸는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운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게 되겠죠.”
나이듦의 철학 제임스 힐먼 · 청미
융 심리학자인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한 관습적인 생각을 비틀었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을 젊은이의 본보기, 사회의 문화적 기억 및 전통의 전달자로 본다. 나이 듦을 영예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천재들의 기상천외한 두뇌 대결 김은영 · 마음의숲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 칼럼니스트가 썼다. 아인슈타인, 뉴턴 등 천재들은 라이벌과 경쟁하며 현대문명에 발전을 가져왔다. 천재들의 싸움을 읽다 보면 과학 이론과 역사 상식도 알게 된다.
애도 클럽 타일러 페더 · 문학동네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지 10년. 저자는 지난날의 상실을 마주하고 회고록을 썼다. 암 진단과 투병 과정, 장례식과 추모식, 그 후의 일상을 모두 담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픈 사람들을 위로한다.
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했다 브래드 스털버그 · 부키
성과 전문가인 저자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부담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는 동서양의 고대 철학, 과학과 심리학,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다.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 온조 아야코·지호
일본의 뇌과학자 온조 아야코의 어머니는 예순다섯에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는다. 이에 저자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2년 반에 걸쳐 관찰, 매일의 사건, 기분, 감정 전부를 기록했다.
이태리 아파트먼트 마시모 그라멜리니·시월이일
현재로부터 60년 후인 2080년 12월이 배경인 소설이다. 작가는 미래에서 보면 현 상황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를 독자에게 건넨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박영서·들녘
저자는 ‘조선은 복지 국가’였다고 주장하며 조선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라고 분석한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알렉상드르 스테른·윌북
1978년생 파리지앵인 작가 알렉상드르 스테른은 세계 5대륙 155개국에서 골라 모은 700가지 맛을 정리했다. 한국 음식은 김치·홍어·소주·번데기·호떡·팥빙수 등을 추천했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 허태연·다산책방
제1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이 장편으로 출간됐다. 주인공 67세의 허남훈이 은퇴를 결심한 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책이다.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 이시아 고타·궁리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편에는 일본 최초 민간형 어린이 호스피스인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있다. 책의 저자 저널리스트 이시아 고타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의 기록을 담았다.
탑으로 가는 길 김호경·휴앤스토리
금융회사 CEO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증권맨이 문화유산답사기를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2년여에 걸쳐 전탑과 모전석탑을 찾아 나섰다. 문화재와 관련한 유쾌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는 책이다.
냄새들 김수정·꿈꾸는인생
영화기자로 10년을 일하다 작가가 된 그녀. 에세이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이후 두 번째 책을 냈다. 들 시리즈 네 번째 책이기도 한 ‘냄새들’은 냄새에 관한 책 같지만 기억에 관한 책이다.
지금, 인생의 체력을 길러야 할 때
제니퍼 애슈턴 저
북라이프·1만6800원
매년 새해가 되면 건강과 성공을 꿈꾸며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멋진 몸매를 상상하며 헬스장 이용권을 끊거나 가공식품을 먹는 대신 직접 요리를 해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굳건한 다짐은 까맣게 잊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여기 1년 동안 12개의 도전에 성공하고 인생의 변화를 맞이한 사람이 있다. 산부인과·비만 전문의 제니퍼 애슈턴 박사다.
그녀는 새해 첫날부터 한 달에 한 가지 습관을 개선하는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하고 건강은 물론 삶의 활력과 몸매, 여유 넘치는 일상까지 얻었다. 50세를 앞둔 어느 날 결심한 금주가 시작이었다. 한 달간 술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은 다음 달 매일 명상을 하겠다는 목표로, 채식을 실천하겠다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1월 첫째 주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물이다.
저자는 여러 습관을 한꺼번에 정복하고자 욕심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성급함이야말로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책 역시 ‘금주의 달’, ‘더 많이 걷기의 달’, ‘당 섭취 줄이기의 달’ 등 콘셉트별로 총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매달 한 가지 습관에만 집중해 생활을 천천히 바꾸자는 취지다. 저자는 조금씩, 짧은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개선하는 것이 지속적인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습관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누구나 시도할 만하다. 전부 도전할 필요도 없다. 가장 개선하고 싶은 습관을 고르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실천하면 된다. 사소해 보여도, 극적인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해의 독자들 계획은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일년’이 되길 바란다.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저·마음산책)
국내에서 첫 출간되는 메리 올리버의 시집. 아름다운 자연 예찬,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감사 등 메리 올리버의 세계를 관통하는 36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저·문학동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 총 여덟 가지 이야기가 일인칭 주인공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짐 로저스 저·리더스북)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가 경기 침체 시대 부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세계 경제 패권에 대한 날카로운 예측과 더불어 불황일수록 수익을 얻는 투자 원칙과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이제 은퇴해도 될까요? (데이브 휴즈 저·탐나는책)
은퇴 준비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은퇴 후 겪는 정서적 변화부터 이에 대한 대처 방법, 결혼 생활 노하우까지 은퇴 후 생활 전반에 필요한 조언을 건넨다.
우리 땅 돌 이야기 (이승배 저·나무나무)
지질박물관 관장인 저자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우리나라의 돌을 지역 별로 소개한다. 할머니가 오래 전 이야기를 해주듯, 돌에 얽힌 옛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외유뇌강 1 (이지명 저·램프앤라이트)
치매 예방을 위한 두뇌 트레이닝 교재. 계산, 단어 추론, 크로스 퍼즐, 문장 완성 등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통해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hibition
◇헬로, 스트레인저!
일정 12월 19일까지 장소 하자센터
‘낯설다’는 감각은 무엇인가? 익숙함이 자연스러운 자극을 마주했을 때 받는 감각이라면, 낯섦은 자연스럽지 않은 자극에 대한 불편한 느낌이다. 전시 ‘헬로 스트레인저’는 이런 낯선 감각에 집중해 우리 사회의 여러 고정 관념을 세 작가의 그림책으로 살펴보게 한다. 인간을 비커에 담아 실험하는 쥐 그림 등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작품들을 통해 당연하게 여겨온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한다.
◇황금광시대 : 1920 기억극장
일정 12월 27일까지 장소 일민미술관
신문과 잡지를 통해 1920~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돌아보고 이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1920년대 문화주택의 뼈대를 표현한 ‘픽션 픽션 논픽션’, 100년 전 살롱을 재현한 ‘클럽 그로칼랭’, 가상현실(VR)과 신문 아카이브를 결합한 ‘구보, 경성, 방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 속 잡지 편집실을 재구성한 전시작도 만날 수 있다.
◇박래현 : 삼중통역자
일정 2021년 1월 3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박래현을 재조명한다.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활약한 그녀의 예술 세계를 총 4부에 걸쳐 소개한다. 1부에서는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2부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였던 작가가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했던 모습을 살펴본다. 3부는 세계 여행을 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그린 추상화를, 4부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작가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한다. 총 138점의 작품과 아카이브 71점이 출품됐다.
●Book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조현영 저·현암사)
클래식은 듣고 싶지만 언제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가이드북. 운전할 때, 외로울 때, 낮술을 즐길 때 등 다양한 상황,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클래식을 적재적소의 맞춤형으로 추천해준다.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저·파람북)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클래식을 들어야 할까?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가 계절에 맞게 들을 수 있는 클래식 33곡을 소개한다. 곡에 대한 인문학적 해설도 포함돼 있어 보다 깊이 있는 교양을 쌓을 수 있다.
◇임동혁의 모망 뮈지코 (임동혁 저·서울음악출판사)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엄선한 피아노 악보집. 총 17곡이 실려 있으며, 곡마다 임동혁이 직접 감수한 연주 포인트가 적혀 있다. 부록으로 A2 사이즈 브로마이드도 제공한다.
●Movie
◇인생은 아름다워
개봉 12월 예정 장르 뮤지컬 감독 최국희 출연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 옹성우
자신의 마지막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아내 ‘세연’과 그녀의 황당한 요구에 마지못해 과거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 ‘진봉’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다. ‘극한직업’, ‘명량’,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네 편의 천만 영화에 출연한 류승룡과 JTBC 드라마 ‘SKY캐슬’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은 염정아가 첫 부부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배우들이 직접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중현의 ‘미인’, 이문세의 ‘조조할인’,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토이의 ‘뜨거운 안녕’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흥겨운 노래 속에 담긴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따뜻한 가족애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서복
개봉 12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이용주 출연 공유, 박보검, 조우진 등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을 극비리에 옮겨야 하는 임무를 맡은 정보국 요원 ‘기헌’이 서복과 동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기헌과 영원 속에 갇힌 복제인간 서복의 아이러니한 만남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믿고 보는 두 배우 공유와 박보검의 감성 가득한 브로맨스가 기대를 모은다. 특히 박보검은 영화 ‘차이나타운’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한층 성숙해진 연기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용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제
개봉 12월 10일 장르 멜로 감독 김종관 출연 한지민, 남주혁
일본의 원작 소설과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집 안에만 갇혀 살던 ‘조제’와 평범한 청년 ‘영석’의 아름답고도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설레면서도 두려운 조제와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민 영석의 따스한 사랑이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애틋한 연기로 호평받은 한지민과 남주혁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Stage
◇노트르담 드 파리
일정 2021년 1월 17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연출 질 마으 출연 안젤로 델 베키오, 하바 타와지, 다니엘 라부아 등
추한 외모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세속적 욕망에 휩싸여 갈등하는 사제 ‘프롤로 주교’의 이야기를 담은 불후의 걸작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의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벌제도, 이방인들의 소외된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1998년 초연 후 오늘날까지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2015년 이후 5년 만이며, 초연 당시 프롤로 역을 맡은 오리지널 캐스트 다니엘 라부아를 국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거대한 세트장과 100kg이 넘는 대형 종 등 30t에 달하는 무대 장치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오리지널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프랑스 원어로 선보이는 감미로운 넘버가 잊지 못할 무대를 선사한다.
◇듀엣
일정 2021년 1월 31일까지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이재은 출연 박건형, 문진아, 정철호 등
미국 대표 극작가 닐 사이먼의 작품으로, 추운 겨울을 포근하게 해주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성공한 작곡가 ‘버논 거쉬’와 신인 작사가 ‘소냐 왈스크’의 톡톡 튀는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2인극이지만 어색한 첫 만남부터 오해와 갈등, 사랑에 빠지는 순간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남녀의 변덕스러운 심리를 짜임새 있게 그려내 단 두 명의 배우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작은 아씨들
일정 12월 20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오경택 출연 이연경, 이혜란, 서유진, 전예지 등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성격이 각기 다른 네 자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키우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전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족 간 온정을 아끼지 않는 마치 가(家) 여성들의 따뜻한 마음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는 관객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고전 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 Exhibition
◇구정아: 2020
일정 11월 28일까지 장소 PKM 갤러리
특유의 기민한 감각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 야외 설치작업을 비롯해 회화, 드로잉, 조각 등 미공개 최신작 30점을 선보인다. 밤이 되면 녹색 빛을 뿜어내는 야광 스케이트 파크 ‘레조넌스’부터 어두운 전시장에서도 밝게 빛나는 ‘세븐 스타즈’까지 인광 페인트를 활용한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는 낮과 밤의 분위기가 다른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일몰 이후인 저녁 9시까지 개방한다.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일정 11월 15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빛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탐구한다. 제1부에서는 현미경으로 문화재의 빛과 색을 관찰하며, 2부에서는 빛으로 촬영한 문화재의 모습을 살펴본다. 특히 희미해진 유적 속 글귀나 그림 등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을 판독하는 과정을 밝힌다. 3부는 빛을 통해 문화재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국가지정문화재 10점을 비롯해 전체 57건 67점이 공개된다.
◇여행갈까요
일정 12월 27일까지 장소 뚝섬미술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코로나19)으로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기획한 전시. 하와이, 베트남,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여행지를 연상케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전시장 입구를 공항처럼 연출하고 비행기 객실 모습을 재현해 여행 전의 설렘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시 후반부에는 세계 각국 여행지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단순히 여행에 대한 향수를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진다.
● Book
◇비건 하이프로틴 쿡북 (쥘 노이만 저·든든)
고기 없이도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90여 가지의 비건 요리를 소개한다. 모든 요리에 1회분의 영양성분표가 적혀 있으며 30일 식단표가 함께 수록돼 있어 균형 잡힌 채식을 돕는다.
◇쓰레기 거절하기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저·양철북)
플라스틱 제로 운동으로 시작해 10년째 쓰레기 제로 운동을 실천 중인 한 가족의 이야기. 이웃과 차를 공유하고 냉장고를 반만 채우는 등 색다른 방식으로 쓰레기를 줄이며 깨달은 내용을 담았다.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 저·자연과 생태)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과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일상 속 사례를 통해 차근히 짚어준다. 더불어 덜 쓰고, 다시 쓰는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 Movie
◇도굴
개봉 11월 예정 장르 범죄 감독 박정배 출연 이제훈, 조우진, 신혜선, 임원희 등
흙 맛만 봐도 보물을 찾아내는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가 전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땅속에 숨어 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범죄 오락영화다. 황영사 금동불상, 고구려 고분 벽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선릉까지 거침없이 파내려가는 도굴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한국 영화에서 다룬 적 없는 기상천외한 도굴의 세계를 스릴 있게 조명한다.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지은 무덤과 화려한 유물 등 다양한 볼거리와 더불어 주연 배우 네 명의 환상적인 팀플레이가 작품의 재미를 높인다.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 조감독을 거쳐 오랜 기간 노하우를 갈고 닦은 박정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내가 죽던 날
개봉 11월 12일 장르 드라마 감독 박지완 출연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등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세진’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수는 세진의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 형사와 연락 두절된 가족, 사건을 목격한 ‘순천댁’까지 차례로 만나며 감춰졌던 비밀에 가까워진다. 배우 김혜수의 2년 만의 스크린 컴백 작품이자, 여고생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한 단편영화 ‘여고생이다’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워 위드 그랜파
개봉 11월 예정 장르 코미디 감독 팀 힐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우마 서먼, 오크스 페글리 등
같은 방을 쓰게 된 막무가내 할아버지 ‘에드’와 사춘기 손자 ‘피터’가 하나뿐인 방을 사수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골탕 먹이는 유쾌한 전쟁 이야기다. 아카데미상 2관왕, 골든글러브 2관왕에 빛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코믹한 연기와, 영화 ‘원더스트럭’으로 연기력을 입증한 아역배우 오크스 페글리의 호흡이 돋보인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각본을 쓴 팀 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웰메이드 코미디를 선보일 예정이다.
● Stag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정 11월 3일부터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박해림 출연 강필석, 정운선, 윤석현 등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를 모티브로 삼은 동명의 창작 뮤지컬이다.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이자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렸던 ‘백석’과 그런 그를 못 잊어 평생을 그리움으로 살았던 기생 ‘자야’의 사랑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풀어낸다. 모든 뮤지컬 넘버의 가사에 백석이 쓴 시를 차용해 마치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듯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2015년 초연한 이 작품은 제1회 한국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 작사상, 연출상, 작품상 등을 받았고 차범석 희곡상에서도 뮤지컬 극본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초연 이후 세 번째로 관객 앞에 서는 이번 시즌에서는 극본을 쓴 박해림 작가가 연출까지 도맡아 작품의 서정성을 한층 더 높일 예정이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좌석 간 띄어 앉기를 실시한다.
◇블랙메리포핀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티오엠 1관 연출 서윤미 출연 김도빈, 임준혁, 임찬민 등
환상적인 동화 ‘메리 포핀스’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변주한 창작 뮤지컬. 1920년대 한 대저택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 얽힌 유모 ‘메리’와 네 남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시즌에는 둘째 ‘헤르만’의 시점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막내 ‘요나스’로 중심 화자를 바꿔 같은 대본이지만 인물의 심리 변화를 색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퀄
일정 11월 22일까지 장소 예스24스테이지 2관 연출 이은영 출연 김지휘, 조성윤 등
어릴 적부터 폐병을 앓아온 ‘니콜라’와 그를 보살피는 친구이자 의사 ‘테오’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작가,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스에미츠 켄이치 원작의 작품이다. 2015년 도쿄에서 초연 후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인다. 연금술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이용해 단 두 명의 출연진만으로도 긴박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