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하면 춘향, ‘춘향’ 하면 광한루원만 생각났다. 남원에는 진정 광한루원 말곤 갈 데가 없을까 궁리하던 때에 마침 김병종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이 좋아 남원에 들락거렸더니 식상했던 광한루원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동네 빵집과 걷기 좋은 덕음산 솔바람길도 발견했다. 이 산책로가 미술관과 연결되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남원을 여행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종종 생각났다.
걷기 코스
남원역(남원시외버스터미널)▶차량 이동▶광한루원 북문▶남문▶요천 섶다리▶덕음산 솔바람길 입구▶전망대 레스토랑▶남원국립국악원▶그네매점(또는 약수터매점) 뒤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남원항공우주천문대▶춘향테마파크(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
상상 속 달나라를 구현한 광한루원
광한루원에는 남문(정문)과 서문, 북문이 있다. 오늘 걷는 코스는 북문으로 입장해 남문으로 나가는 것이 동선상 편하다. 북문 앞에는 고품격 한옥 호텔인 남원예촌과 규모 있는 한정식 전문점들이 자리했다. 이 일대는 남원 제일의 관광단지라서 거리가 깔끔하고 작은 쉼터도 조성돼 있다.
주중 낮 동안 일반인 관람이 허용되는 남원예촌을 잠시 둘러본 뒤 광한루원 북문으로 입장한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춘향사당이 코앞이다. 조선 중기 사람들은 달나라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산다고 생각했다. 이 상상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달나라 궁전이며, 광한루 앞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에 섬처럼 떠 있는 세 개의 섬은 지상낙원, 즉 영주산(한라산),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을 뜻한다. 중국 ‘사기’에 등장하는 전설 속 세 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본떠 일컬은 것이다. 나무다리로 연결된 세 섬을 차례로 들러본다. 팽나무가 우거진 영주산 영주각에 올랐다가 봉래산의 대숲을 지나고, 방장산 숲에 숨은 작은 방장정에선 잠시 쉬어간다.
방장정 옆으로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오작교가 보인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널 때 걸었던 오작교를 본떠 만들었다. 다리 길이가 57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연지교다. 조선 후기 소설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작교를 건너며 연못을 굽어보니 잉어 떼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노닌다. 광한루원은 원앙과 잉어에게도 지상낙원인 듯하다. 연못가 버드나무와 짝꿍처럼 잘 어울리는 수중 누각 완월정에 올랐다가 남문으로 나선다.
솔숲이 우거진 덕음산 솔바람길
광한루원 남문으로 나오면 바로 요천변이다. 요천 제방에 올라 벚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가로수가 우거져 그늘이 짙다. 덕음산 솔바람길로 가려면 승월교나 섶다리를 이용해 요천을 건너야 한다. 흔한 시멘트다리 대신 섶다리를 선택해 건넌다. 이 섶다리는 옛날부터 요천에 섶다리 두 개가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근래에 만든 쌍섶다리다. 섶다리를 건너면 춘향테마파크와 식당, 놀이공원, 국립국악원 등이 있는 춘향촌 입구가 보인다. 춘향촌 입구 왼쪽에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가 있다. 나무계단을 조금 오르면 솔숲길이 이어진다. 잔잔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었을까. 숲길이 전망대레스토랑 앞 전망대로 인도한다. 이곳에 서서 남원 시내를 굽어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같고, 도심 가운데로 요천이 흐른다. 남원의 젖줄 요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 남해까지 간다.
탁 트인 남원 풍광을 감상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국립민속국악원 방면으로 내려간다. 국립민속국악원은 판소리의 성지인 남원의 국악 수준을 잘 보여주는 공연장이다. 주말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전통 공연을 선보인다. 주말에 이 길을 걷는다면, 공연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국립민속국악원 뒤쪽으로 이동해 덕음산 솔바람길의 또 다른 입구를 찾는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김병종미술관까지 이어지는 데크 산책로로 연결된다. 길 곳곳에 전시돼 있는 시, 그림, 캘리그래피 작품을 감상하고, 솔숲 향기를 맡으며 느리게 걷는다. 데크에서 내려오면 바로 김병종미술관이 보인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미술관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남원의 뜨는 명소 김병종미술관과 화첩기행 북카페
2018년 3월 개관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남원 출신 한국화의 거장 김병종이 자신의 작품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이 기획됐다. 덕음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실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 숲이다. 김병종 화가의 작품은 1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김병종 화가의 초기작이자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바보예수’ 시리즈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동심이 느껴져 절로 미소 지어진다. 김병종 화가는 여행 에세이 ‘화첩기행’을 저술해 문학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줬다.
상설전시장 옆에는 화첩기행 북카페 ‘미안’도 자리해 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청년 카페지기가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을 담아 ‘미안’이라 이름 지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카페 한쪽 벽면에는 김병종 화가의 작품과 그가 기증한 미술, 인문학, 문학 관련 도서 등 약 20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나머지 벽면은 통창을 설치해 물이 가득한 정원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오랜만에 맘에 쏙 드는 미술관과 카페를 만나 걷는 즐거움이 커진다.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춘향테마파크 걸을까, 오감만족숲을 걸을까
미술관에서 걷기를 마치고 광한루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항공우주천문대를 거쳐 춘향테마파크 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으로 내려가도 좋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광한루원이 멀지 않다.
항공우주천문대는 미술관 뒤쪽으로 난 길 끝에 있다. 미술관에서 약 300m 거리다.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돔 형태의 지붕을 얹은 천문대를 만난다.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밤에는 달과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관측을 할 수 없으니 날씨를 봐가며 입장해야 한다.
천문대 뒤쪽, 솔바람길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춘향테마파크 뒷문이 나온다. 이 문은 춘향테마파크의 가장 위쪽 구역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된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공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세트장이 남아 있다. 뒷문 근처에는 월매집, 춘향과 이몽룡이 첫날밤을 보냈던 월매집 부용정, 춘향이 변 사또에게 고초를 당했던 관아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춘향테마파크에 입장하지 않고, 뒷문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감만족숲/광한루 방면 숲길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오감만족숲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오감만족숲은 2017년에 덕음산 기슭에 조성한 공원으로 걷기 좋도록 지그재그형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승월교로 바로 연결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전통시장의 정취가 물씬 남원공설시장
광한루 서문 앞에 있는 상설시장이다. 오일장날에는 아침부터 붐빈다. 남원에는 산과 강이 있어 농수산물이 풍부하다. 특산물을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원산 미꾸라지가 흔하다. 시골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오래된 뻥튀기 가게도 있다. 온갖 곡식은 물론 무까지 튀겨준다. 남원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즐겨 사 먹는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닭발 튀김. 뼈를 발라낸 닭발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남원시 의총로 51, 4와 9로 끝나는 날이 오일장.
맛의 고장 남원 맛집
남원에서는 남원산 미꾸라지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 추어탕이 유명하다. 광한루원 서문 쪽 요천변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새집’, ‘현식당’, ‘부산집’이 입소문 났다. 광한루원 북문 앞에 있는 남원 한정식 전문점 ‘종가’도 추천할 만하다. 보리굴비 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찜, 육회, 전복구이 등 맛깔난 전라도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돌솥비빔밥 전문점인 ‘반야식당’도 광한루 인근에서 오래 장사한 소문난 집이다. 최근 뜨고 있는 ‘집밥, 담다’는 ‘따뜻한 가정식 한 끼’를 표방하는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다. 정갈한 식단으로 호평받고 있다. 예약은 필수.
남원 사람은 다 안다는 명문제과
남원에서 오래 장사한 동네 빵집이다. 가게는 작고 허름하다. 다른 빵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빵을 개발해 인기를 얻었다. 남원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인데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한 뒤로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평일에도 줄을 서며, 오후 늦게 가면 인기 빵은 동나 살 수 없다. 3대 인기 빵은 생크림소보로, 꿀아몬드, 수제햄빵이다. 광한루원 북문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남원시 용성로 56.
걷기 Tip
❶ 5월 8일부터 12일까지 광한루원과 요천 일대에서 제89회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은 야간 조명을 밝히는 밤에 산책해도 좋다.
❷ 4월 24일부터 5월 19일까지 바래봉 철쭉제도 열린다.
한때 커다란 인생의 실패를 겪으며 술독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극단적인 순간, 거짓말처럼 시와 그림이 구원의 길을 보여줬다. 시인이자 화가인 김주대의 이야기다. 시와 그림 둘을 합친 문인화 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이번에 봄을 맞이하여 여섯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작품 80점으로 장식된 인사동의 전시회장에서 작지만 커다랗게 다가오는 것들을 포착했다고 말하는 그의 문인화 세계를 들여다봤다.
화폭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주제로서의 그림과 그 한 켠에 섬세하게 새겨지듯 쓰여지는 시, 그것이 문인화의 세계다. 문인화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명상적인 호흡을 통해 숙고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김주대 작가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로 대표되는 한국 문인화 전통 위에서 현대적 문인화를 그리는 대표적인 작가다. 오는 5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에서 문인화전 ‘꽃이 져도 오시라’를 여는 그는 사실 문인화가로서보다는 시인으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죽음의 순간에 찾아온 삶의 재생
1989년 ‘민중시’와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하여 여섯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었던 그는 원래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문인화로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결정짓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여 전인 2012년의 일이다. 무려 20년 가까이 강사로 시작하여 운영까지 하게 된 학원 사업이 완전히 실패하면서 그야말로 ‘길에 나앉게 된’ 것이다. 마흔 중반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친 삶의 질곡이었다. 이때 그는 두 달 동안 술만 마시며 그대로 죽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위기는 기회를 줬다. 그가 SNS에 시를 쓰면서 농담처럼 ‘시를 팔겠다’라고 했더니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자로만 된 시를 어떻게 해야 팔 수 있을까’ 고민했고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곁들이자는 게 그 문제의 답이 되었다. 문인화가 김주대의 탄생이었다. 처음에는 서투르기만 했던 그는 자신에게 맞는 붓과 종이, 먹을 고르고 친구들로부터 동양화를 배우면서 화가 김주대를 발전시켰다.
“고양이 그림 같은 경우는 제가 틀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문경한지, 전주제지, 단구제지 등의 한지마다 다른 먹의 번짐 효과를 이용해서 그려냈죠.”
이처럼 그는 한지의 종류에 따라 다른 특징을 이용하여 그림의 리드미컬한 양태를 표현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현재의 그의 화풍은 전반적으로 은은한 느낌을 준다. 최대한 색을 쓰지 않으려 하는 기준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적 절치부심의 결과, 그는 지난 6년여 동안 한겨레신문, 머니투데이 등 다양한 언론 매체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수 차례의 전시회를 가지며 시대와 소통하는 깊이 있는 작가로 성장했다.
우리가 놓친 인물들, 문인화로 되살아나다
페이스북 팔로워 숫자가 1만4000여 명. 김주대의 작품 활동을 호시탐탐 눈 여겨 보는 사람들의 숫자기도 하다. 아마도 21세기는 그의 취향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그림과 시의 결합인 문인화는 ‘짤방 문화’로 대변되는 SNS 세계에 적합한 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문인화는 글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이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그는 그야말로 생활과 삶의 순간순간을 문인화에 쏟아내고 있다. “고통스러울 때는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 감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란다. 또한 일 년에 2000만 원어치만 작품이 팔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러한 기준에 맞춰서 작품 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그의 생활과 그림이 문인화라는 풍류와 어우러져 솔직하고도 옹골찬 색을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80점의 문인화가 걸리는 이번 ‘꽃이 져도 오시라’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굵직한 인물화들이었다. 김주대 작가 본인의 자화상과, 그가 생각하기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세상을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에 대한 문인화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이번에 나온 작품들 중 그가 작업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작품들은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서정과 아픔을 그린 문인화들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눈빛과의 교감이 그대로 삶의 한 자락을 걸친 듯하다.
소소하지만 위대한 것들에 대한 찬가
그가 그린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어서 남아있는 자료들이 우표 사이즈만 한 사진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확대하여 그를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인물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특히 이 그림들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인물의 눈빛인데, 그 세밀한 눈동자를 구현하기 위해 김주대 작가는 조선시대 임금들의 초상인 어진의 작법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피폐한 표정에서도 저항의 빛을 놓지 않는 소녀 함귀래, 앙다문 입에서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소년 이범재 등 백 년 전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쳐 막막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실행했던 이들의 모습을 오늘날에 생생히 살릴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 소소하지만 위대한 것들에 대한 압도감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에서의 그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스럽게 인본주의의 향취가 담겨 있다. 전시회를 열기 전 이미 열 점 정도 판매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세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완연하게 피어난 따스한 봄에, 사람의 따스함이 머무르는 문인화의 세계 속을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5월 가정의 달이다. 수도권 안에 가족들과 가볼 만한 가까운 곳이 있다. 문화와 예술, 역사 등을 두루 느껴볼 수 있는 파주,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북녘과 인접해있어 생태탐험과 최북단의 DMZ를 통해 평화안보여행도 할 수 있다.
파주 출판단지
출판단지에서 유명한 은 출판 복합 문화공간이다. 책만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꽂이는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쾌적하고 넓은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모습들이 편안해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면 책의 기원이나 출판의 역사를 알기 쉽게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놨다. 책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그 옆으로 문 열고 나가면 헌책방 '보물섬'에서 저렴하게 중고책을 마음껏 구입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책과 함께 하루쯤 묵고 싶다면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이 있다. 와이파이가 없다. TV도 없다. 오직 책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는 방이다 사색과 휴식의 시간을 위한 북스테이다.
-파주 출판단지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지혜의 숲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벽초지(碧草池) 수목원
봄꽃들이 이미 다 지고 있는데 이곳은 기온이 낮은 지역이라 아직은 늦게 피어난 꽃구경을 할 수 있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연못, 그리고 꽃길과 조형물들 사이를 걸으며 군데군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젠가 무릎이 아픈 어르신을 모시고 왔더니 수목원 관리소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주어 편안히 다닐 수 있었다.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 166-1
마장 호수 출렁 다리
근래들어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현대인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짚라인이나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등을 각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추세다. 요즘 여행 중에 빠질 수 없는 새로운 아이템이다. 마장 호수공원은 20만㎡ 넓이의 테마파크다. 이곳의 길이 220m의 출렁다리는 무료입장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둘레길 총 4.5km 중 3.3km 구간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로 365
헤이리 마을과 프로방스
예술인 380여 명이 모여 만든 마을이 헤이리 마을이다. 총면적이 15만 평.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 공연장 등을 천천히 구경하고 즐기려면 한나절도 모자란다. 3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못하게 되어있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친화적 마을에 예술인들이 직접 작업하며 살고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 마을 길 건너편에 파스텔풍의 알록달록한 마을이 보인다. 남프랑스 전원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프로방스 마을이다. 허브 정원, 이쁜 카페와 공예품들, 그리고 리빙 웨어, 플리마켓 등의 눈요기 거리가 도처에 있고 맛집들이 기다린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84
헤이리 근처에 파주 영어마을도 있다. 아이들이 있으면 들러서 뮤지컬 관람이나 베이킹 체험 등을 해볼 만하다. 지금은 체인지업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파주 영어마을:경기 파주시 탄현면 얼음실로 40
맛집&빵집>
교황님이 방한했을 때 간식빵으로 유명해진 교황빵 외에도 맛난 빵집이 몇 군데 있다.
-파주시 파주읍 우계로 51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평화누리공원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어서 밤중에 별궤적 찍으러 몇 번 왔었다. 별이 쏟아지고 은하수가 흐르는 고요한 밤의 분위기도 좋았던 곳이다. 한낮에는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드넓은 공간 덕분에 아이들이 연 날리며 놀기도 좋고 해마다 파주 장단콩 축제나 인삼 축제가 열린다.
통일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철조망에 가득하고 달리지 못하는 녹슨 철마도 있다. 망원경을 통해 DMZ의 때 묻지 않은 생태자연경관을 보면서 분단국가의 역사를 체험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618-13
이외에도 제3땅굴과 도라산 전망대, 감악산 출렁다리, 보광사, 파주 이이 유적, 장단콩 마을, 적성 한우마을 등 가볼 곳이 많다. 수도권이라면 언제라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파주다. 자가용 이용이 아닐 경우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합정역 앞의 2200번 버스와 경의선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다.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서울에서 가깝기 때문에 드라이브 삼아 떠나볼 만하다.
교통 및 작은 정보
▲합정역 2번 출구에서 좌석버스 2200번 / 파주 시내버스 900번
▲파주시에서 지원하는 파주 시티투어버스가 있다. 합정역 아침 9시 30분부터 출발. 요일별 당일코스가 다양하다.(17000~38000원). 주말엔 1박 2일 코스도 있다.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 탑승해서 관광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즐거운 도움을 준다.
‘제5회 궁중문화축전’이 오는 4월 26일 경복궁 경회루에서 펼쳐지는 개막제를 시작으로 9일간의 축제의 막을 연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은 문화재청이(청장 정재숙)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사)대한황실문화원(이사장 이원)이 주관한다. 5대 궁과 종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화유산 축제로 각 궁과 종묘의 이야기를 담아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9일간 다채로운 공연, 전시, 체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26일 오후 7시 30분부터 개최되는 개막제 ‘2019 오늘, 궁을 만나다’에선 축전에서 펼쳐질 다양한 프로그램을 옴니버스식으로 선보인다. 궁중 문화를 바탕으로 미디어 퍼포먼스도 감상할 수 있다. 개막제는 경복궁 야간개장 입장권을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인원 제한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개막제가 열린 다음 날 4월 27일부터는 경복궁을 포함한 5대 궁에서 본격적으로 축전이 열린다. 특히 28일에는 궁중문화축전의 백미로 꼽히는 ‘광화문 新산대놀이’와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을 만나볼 수 있다. ‘광화문 新산대놀이’는 28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에서 시민이 함께 즐기는 놀이판이다. 산대놀이, 나례의식, 다양한 전통 연희를 재해석한 흥겨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은 개막제에서도 미리 엿볼 수 있지만, 28일 오후 8시에 공식적으로 막을 올린다. 이 공연은 노비 출신 ‘박자청’이 경복궁의 꽃이라 불리는 경회루의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둠이 내려앉은 경회루를 배경으로 3D 맵핑, 조명 연출 그리고 화려한 춤과 연기가 더해진 미디어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또한 경회루 연못에 350석의 수상객석이 배치되어 무대를 더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은 5월 4일까지 공연된다.
이 외에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번 주말에는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가까운 궁으로 도심 나들이를 떠나보자.
개막제 ‘2019 오늘, 궁을 만나다’
장소 경복궁 경회루
일시 4월 26일 19:30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
장소 경복궁 경회루
일시 4월 28일~5월 4일 20:00, 21:00
광화문 新산대놀이
장소 광화문광장
일시 4월 28일 15:00, 17:00
고궁사진전 ‘꽃피는 궁궐의 추억’
장소 경복궁 흥례문 광장
일시 4월 30일~5월 5일 11:00, 15:00
조선왕조 500년의 ‘예악(禮樂)’
장소 창덕궁 인정전
일시 5월 2~4일 15:00~16:00
달빛기행 in 축전
장소 창덕궁 일대
일시 5월 2~4일 19:00~21:00, 20:00~22:00
AR 체험 ‘창덕궁의 보물’
장소 창덕궁 일대
일시 4월 27일~5월 5일 9:00~18:00
웃는 봄날의 연희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
장소 덕수궁 석조전 뒤 협률사
일시 4월 27일~5월 5일 13:00~14:00, 19:00~20:00
시간여행 그날 ‘영조, 백성을 만나다’
장소 창경궁 일대
일시 5월 3~5일 15:00~16:00
창경궁 양로연 ‘가무별감’
장소 창경궁 문정전
일시 4월 29일~5월 1일 13:00~15:00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장소 덕수궁 정관헌
일시 4월 27일~5월 5일 14:30~16:30
조선 마술사 마술 공연
장소 경희궁 숭정문 앞 특설무대
일시 5월 4~5일 13:30~14:00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장소 종묘 정전
일시 4월 30일~5월 3일 20:00~21:00
종묘대제
장소 종묘 영녕전, 정전
일시 5월 5일 10:00~16:00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클래식) 2019 교향악축제
일정 4월 2~21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17개 국내 교향악단,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
이번 공연의 부제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릴 젊은 협연자들이 교향악단과 동행한다. 또한 국내에서 초연되는 블로흐의 교향곡 ‘C#단조’도 감상할 수 있다.
(연극) 패왕별희
일정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출연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과 대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싱궈(吳興國)가 중국의 대표 경극 희곡 ‘패왕별희’를 창극화했다. 동명의 영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패왕별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공연) 이사오 사사키 벚꽃 낭만
일정 4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이사오 사사키, 마사츠구 시노자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브리 영화 OST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와 함께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 그림책NOW
일정 4월 12일~7월 7일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5관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미디어아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다양한 표현과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 1844개 작품이 응모한 2019 나미콩쿠르의 수상작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축제) 태안 세계튤립축제
일정 4월 13일~5월 12일 장소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플라워파크
태안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튤립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아신스, 겹벚꽃 등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3만5000평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LED 빛이 반짝이는
야간 축제장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2019
일정 4월 26일~5월 12일 장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축제이자 국내 유일의 화훼 전문 박람회다. 실내정원과 야외 테마정원, 문화 공연 프로그램, 화훼 직판장 등이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원당화훼단지’와 이원 개최된다. 박람회장에서 화훼 단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 견학,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안치환의 노래 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가사가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면 ‘그림의 아름다움’보다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표현하는 듯하다. 또, 그림을 통해 사람의 가치와 품격을 한층 격상시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841년부터 1919년까지 78년을 살다간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그는 공방에서 도자기에 장식하는 그림을 그리는 도공 일을 시작으로, 22세가 되는 해에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79세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50세가 되어갈 무렵 류머티즘으로 뼈가 뒤틀리고 마비되는 고통 속에서도 손에 붓을 묶어가며 우울한 그림보다는 기쁨과 행복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특징은 빛을 중요하게 여기고, 대상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그리기보다는 어느 한순간 인상 깊게 느낀 장면을 그리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상파 화가들은 고전적인 전쟁, 신화, 영웅들의 틀에 박힌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나 자연풍경과 같은 일상을 주로 그렸다.
선과 색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는 대신 반짝이는 빛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 에드가르 드가의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르누아르의 ‘무지 발의 무도회’,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 ‘피아노 치는 소녀’ 등에서 보여주듯 어느 한순간의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살린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展’은 르누아르의 작품을 마치 살아있는 듯 감각적인 영상으로 재현한 컨버전스 아트(Convergence Art)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오감이 즐거운 체험형 예술전시로 꾸며졌다.
마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있는 듯 눈을 깜박이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등 행복한 모습을 그린다.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라던 르누아르의 말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전시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분하여 그의 예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PROLOGUE 꽃의 연희’, ‘Ⅰ 몽마르트 가든’, ‘Ⅱ 미디어 화랑’, ‘Ⅲ 드로잉 뮤지엄’, ‘Ⅳ 그녀의 실루엣’, ‘Ⅴ 우아한 위로’, ‘Ⅵ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EPILOGUE 그의 향기’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Ⅰ 몽마르트 가든에서는 인상주의의 주 소재인 다채로운 색상으로 표현된 르누아르의 풍경화를 볼 수 있으며, ’Ⅲ 드로잉 뮤지엄‘에서는 르누아르가 5분 만에 드로잉을 하였다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사각사각’ 소리까지 들려 마치 르누아르가 지금 이 그림을 연필로 스케치하는 듯하다.
또한 ‘Ⅳ 그녀의 실루엣’에서는 그가 진정 추구하고 그리고자 했던 여성의 아름다운 ‘누드화’를 감상할 수 있다. ‘잠자는 소녀’, ‘시냇가의 님프’ 등은 여성의 관능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곡선 인테리어의 노출과 천 투사 효과로 표현했다. 특별한 모델이 아닌 우리 일상의 소재로 자신의 부인, 동생이며 가정부였던 가브리엘 르나르를 모델로 삼아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찬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병마와 싸우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던 작가의 노력에 새삼 고개가 숙어지기도 한다. 지난 5월 12일 시작된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展’은 올해 10월 31일까지 갤러리아포레 G층 본다비치 뮤지엄 서울숲에서 만날 수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대하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꼈기에, 한 번쯤 다녀오시길 권한다. 더불어 서울의 도심 삭막한 빌딩 숲속에서의 ‘서울숲’ 공원 산책은 또 다른 만족을 선사할 것이다.
노후에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시니어 사이에서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태양광 발전사업은 말 그대로 태양광을 통해 얻은 전기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업. 초기 자본만 확보되면 육체적인 노동력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많은 시니어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업계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투자자를 설득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은 시니어에게 정말 괜찮은 노후 대비 사업일까?
태양광 발전사업은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사업구조는 간단하다. 토지 등 공간을 확보해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해주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발전된 전기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한국전력공사 등을 통해 납품해 수익을 얻는 사업이다.
이런 단순한 사업구조는 시니어에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과수원을 하더라도 판매처가 마땅치 않으면 곤란한 법인데 공기업에서 무조건 사준다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마다할 이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태양열만 있으면 전기가 발생해 원가 걱정도 없고, 초기에 장비만 도입하면 20년 이상 쓸 수 있다니 앉아서 돈 버는 기분일 것이다. 육체적 노동이 많지 않다는 점도 시니어의 관심을 끌게 한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며 낙관론만 믿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인허가 어렵고 민원 발생 ‘골치’
일반적으로 개인 사업자들이 발전소를 설립할 경우는 100kw 이하 규모를 선택한다. 인허가나 관리에 유리하고 수익성도 좋기 때문. 이를 위해서는 약 1000~1500㎡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고, 설비비도 약 1억5000만 원 내외가 발생한다. 이 규모로 매일 국내 평균인 3.6 발전시간을 가동하면 연 3000만 원 전후의 매출이 일어난다. 발전 효율은 매년 0.7% 감소로 큰 차이가 없고, 패널의 수명은 25년 정도로 자연재해 등 외부적 요인이 없다면 꾸준히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다.
태양광 발전사업에 있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은 태양광 발전소 인허가 과정이다. 토지가 확보된다고 해서 무작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소 설립에 있어 크게 3가지 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발전사업허가다. 일종의 사업자등록과 같은 것으로 발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개발행위허가 발급 과정이다. 지자체마다 조례도 다르고, 위치나 주변 환경에 따라 허가 발급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부지 인근 지역민과의 마찰도 큰 골칫거리다. 태양광 발전사업이 대중화하면서 민원 발생 지역도 늘어 최근에는 아예 지역민들의 개발 동의를 사전에 요구하는 지자체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발전사업이 인기를 끌고 대중화하면서 민원을 통해 문제 삼으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신규사업 추진이 어려울 정도”라며 “최근에는 무조건 돈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마을에 태양광 주택보급 사업을 추진해주고, 발전설비를 기부채납하거나 아예 민원 발생이 일어나지 않을 외딴곳을 물색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귀띔한다.
마지막 벽은 환경영향평가다. 개발 예정 부지의 면적이나 발전 용량에 따라 소규모 또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발전소 설립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고, 허가를 받지 못하면 사업이 물거품이 된다.
태양광 발전사업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이 태양광 분양 상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태양광 분양 상품은 대규모 발전시설을 조성한 후 각 투자자에게 분리해 분양하는 상품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복잡한 인허가 과정 대행뿐만 아니라 발전설비의 설치와 유지관리까지 분양사가 맡아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전문가들은 분양사의 인허가 여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태양광 발전사업 컨설팅 기업인 소울에너지의 정호철 대표는 “선분양 방식의 경우 분양을 해놓은 상태에서 허가가 불발돼 사업이 정지되면 고스란히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미 갖고 있는 토지나 매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경우에는 경험 많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을 통해 인허가 가능성을 포함한 사업 타당성 점검을 받는 등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정책 변화에 사업자들 비상
태양광 발전사업을 잘 이해하려면 수익과 직결되는 판매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판매된다. 먼저 전력판매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 방식이다. 한국전력공사나 전력거래소에 직접 판매하는 방식, 그리고 일반적으로 소규모 사업자들이 선호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Renewable Energy Cirtificate) 판매 방식이 있다. 주로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국내 발전사업자들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발전량의 일정량을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발전사업자들이 직접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벌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민간 사업자에게 공급받는다. 이러한 계약 방식을 REC라고 하는데, 각 발전사업자가 입찰을 통해 민간 사업자를 모집하고, 20년 내외의 장기 계약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REC 계약에는 가중치가 존재하는데, 발전 용량이나 위치에 따라 단가에 가중치가 더해진다. 도심이나 공단, 주택의 소규모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발전사업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5월 3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생에너지 민·관 공동협의회를 통해 ‘재생에너지 3020’ 정책에 따른 부작용 해소 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의 골자는 산지훼손, 부동산 투기로 문제가 일었던 산지 태양광에 REC 가중치를 축소하고, 임야를 잡종지로 지목 변경해줬던 정책 대신 사용 후 산림복구를 의무화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사 허가기준도 강화된다. 또 발전사업허가권의 양도·양수와 임의분할(쪼개기)도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책에 대해 사업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정부 발표 후인 6월 3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집회까지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가중치가 가장 높았던 100kw 이하 사업자의 경우, 가중치가 1.2에서 0.7로 떨어지면 월 소득이 약 60만 원 전후로 낮아져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SS 설비 활용 대안으로 떠올라
이러한 정책 변화로 업계에선 발전사업의 수익을 높일 수 있는 ESS(Energy Storage System) 설비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ESS 설비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장비로 이를 통해 사업자는 낮에 전기를 저장해놨다가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납품할 수 있다. ESS 연계 설치를 통해 생산한 후, 태양광 피크타임(10~16시)을 피해 공급하는 전기에 대해서는 REC 가중치가 5.0으로 수익률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향후 정부는 이 가중치도 4.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자 입장에선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8 세계 태양에너지 엑스포’ 현장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전시 참가 업체 중 상당수는 다양한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ESS 설비를 들고 나와 기존 사업자들을 유혹했다. ESS 제작업체 관계자는 “정부 정책 변화로 ESS 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배터리 기술 향상으로 설비 가격도 낮아져 올해를 기점으로 보급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수지 등 수면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이나 염해농지를 활용한 태양광 발전도 주목받고 있지만, 일반 사업자들에겐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일부에선 태양광 패널 아래 토지를 농지로 활용해 작물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까지 연구하는 중이다.
이런 정부 정책 변화에 대해 업계 일각에선 태양광 산업 분야의 재편 기회로 보는 분위기도 있다. 임야에서 잡종지로 지목 변경을 노려 부동산 투자 관점에 접근하거나, 증여 등 불순한 목적으로 태양광 발전에 투자하려는 세력이 사라지면 양성화한 분위기 속에서 안정적인 사업 진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 시설이 설립되면 20년 이상 운영되는 사업의 특성상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소규모 발전소를 운영 중인 한 사업자는 “수익률이 낮아져도 육체적 노동 없이 장기간 가져갈 수 있는 시니어 친화적 사업임은 분명하다”고 평가하면서 “다만 관련 법규가 복잡하고 변화 가능성이 커 사전에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랜 세월 붓을 들어 글을 쓰고 연구하다 보니 따르는 이들이 생겼다. 스스로를 제자라 칭했다. 그리고 스승을 따라 정진했다.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서로 의지해 돕는 일이 생겨났다. 눈빛 한 번에 손발 착착 맞는 환상적인 어울림으로 함께 익어간다. 사제지간 정이 쌓일수록 서로가 내는 향기는 깊고, 우정은 돈독하다. 일생일대 대업(?)을 마무리하고 오순도순 나들이 간다는 서예가 하석 박원규와 그의 제자 모임인 겸수회를 따라가 보았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소풍 길에는 기품 넘치는 특별함이 있었다.
何石이 아닌 兼修會가 주인공입니다
6월 초 화창했던 토요일 이른 아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주차장. 대형 관광버스 한 대가 겸수회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말, 예술의전당 한국서예박물관에서 있었던 하석 박원규(이하 하석) 선생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전’이 잘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는 여행이었다. 하석 선생이 작업한 ‘부모은중경’의 실제 소장자이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원한 석주미술관 류성우 관장이 마련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하석 선생은 물론, 그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준 제자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는 뜻이라고 했다. 겸수회원들은 이날 광주시립박물관 서예전 ‘예결금란(藝結金蘭)’을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류성우 관장이 20년 넘게 조성 중인 대단위 문화 공원 ‘청사지향(靑思之鄕:영원한 청춘의 고향)’으로 가서 맛있는 요리와 공연을 즐겼다.
‘겸손함과 배움을 아울러 닦는 모임’이라는 뜻의 겸수회(兼修會)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서예가 하석 선생을 따르는 제자 모임이다. 하석 선생의 작업실인 석곡실에 모여 글을 배우고 익힌다. 지역도 세대도 성별도 직업도 너무나 각양각색인 하석 선생의 제자들. 제자라지만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대 스승이기도 하다. 실로 색채 강한 무림고수 모임. 그럼에도 ‘겸수회’란 이름으로 모이는 순간 채도를 낮추고 묵색으로 모여 어우러짐을 즐긴다.
겸수회는 12년 전인 2006년에 생겨났다. 하석 선생이 붓을 잡은 지 55년이 됐다는데 너무나 늦은 출발이다. 하석 선생은 애초부터 본인을 중심으로 한 제자 모임 자체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작은 모임을 만들면 하석 선생은 모임 이름을 지어주는 정도였다. 스승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문하의 의미 또한 커졌다. 겸수회 총무 배효룡 씨는 겸수회 조직 배경에는 일종의 압박(?)과 필요에 의한 떠밀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예가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의 제자 모임인 연우회 때문이었어요. 2006년에 우리 서단의 대표적인 스승과 문하, 문파가 모여서 합동 사대문파 사문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석 선생님은 제자 모임이 없으니까 연우회 임원진이 당황한 거죠. ‘도대체 하석 선생님 제자와는 어떻게 연락을 하냐!’, ‘하석 선생도 전체 제자 모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답니다. 그 바람에 겸수회가 생겨났죠. 2006년에 겸수회 창립전시 도록에 보면 왜 우리가 겸수회를 만들 수밖에 없었나가 적혀 있습니다.(웃음)”
당시 사문전이 없고 다른 서예가 제자의 요청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모임이란 뜻이다. 조직을 만들어 세력을 키우는 데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하석 선생의 뜻도 품성을 잘 알기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겸수회는 생기고 난 뒤 다양한 면에서 하석 선생을 돕는 전문 지원단이 됐다.
느긋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시 달인들
하석 선생이 6년의 공을 들여 쓴 ‘부모은중경’은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불교 경전 중 하나다. 이를 폭 145cm, 높이 340cm의 한지 여든한 장에 광개토대왕비에 쓰인 서체로 수를 놓듯 써내려갔다. 전시회 당시 눈에 잘 띄지 않는 높은 벽까지 이용해 작품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후세에 역사적으로 남을 대작을 꿈꾸었고 길고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진행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석 선생은 ‘부모은중경’ 여든한 장 중 마지막 장을 일종의 영화 엔딩 크레디트처럼 장식했다. 겸수회 제자의 활약도 여기에 기록했다. 이번뿐만 아니라 행사 때마다 도록 제작, 홍보, 현장 지원 등을 겸수회원이 도맡는다.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거나 서두르지 않고 잔잔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겸수회다.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는 아무 일 없었단 듯 벼루 앞에 앉아 먹을 갈고, 종이 위에 한 자 또 한 자 글을 써나가는 사람들. 우리 시대의 잊힐지 모르는 것을 지키고 앉아 하루하루를 산다. 평범한 듯 특별한 겸수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친애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 여러분. 저는 바상자브 주한 몽골대사입니다. 지난 5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한국·몽골 공동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한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유목문화를 주제로 기획되고,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시된 유물들을 소개합니다. 몽골의 유물들을 경험하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한국의 많은 분께서 몽골을 더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몽골 여행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몽골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정도면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합니다. 인구는 312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에서 ‘몽골’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정식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입니다. 몽골어를 사용하며 표기는 키르문자(러시아 알파벳)를 사용합니다.
몽골의 환경과 역사
몽골인들은 동서로는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에서 알타이 산맥, 남북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만리장성 사이의 땅을 주거지로 살아왔습니다. 북쪽은 자작나무 숲이 빼곡한 시베리아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삭막한 고비 사막에 다다릅니다. 그 중간에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를 무대로 유목 생활을 꾸려왔습니다.
석기시대 유물
8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3000년 후반부터 청동기 흔적이 있는데 이 시기에 사용하던 청동기에서 보이는 특징은 여러 동물 형상을 표현합니다. 히르기수르와 판석묘 등의 무덤에서 사슴돌이 발견되고, 바위에도 다양한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유목 제국
기원전 3세기 무렵 흉노(匈奴)가 최초로 국가를 세웠고, 이어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와 유연(柔然)이 활동했습니다. 6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는 돌궐, 위구르, 키르기스가 세운 국가들이 몽골 지역을 지배했으며, 10세기 초부터 거란이 등장합니다. 여러 유목 국가 가운데 흉노 제국(BC 3세기~AD 1세기)과 돌궐 제국(AD 552~745)의 유적이 최근 활발하게 조사되고 있습니다.
흉노는 중국 진(秦)나라(BC 221~207) 및 한(漢)나라(BC 202~AD 220)와 맞선 강력한 나라로 동서 문명을 이어주며, 다양한 유적을 남겼습니다. 돌궐은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한 거대 유목 제국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만든 제사 유적 중 고대 돌궐 문자로 쓴 기록 등은 돌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 그 후예들
몽골은 13~14세기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역사상 유례 없는 초거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국가와 종족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Kharakhorum)과 타반 톨고이(Tavan Tolgoi)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원과 유물
티베트 불교는 16세기부터 널리 퍼졌는데, 정주(定住) 생활과 불교 사원 주변의 도시화한 모습은 대승 운두르 게겡 자나바자르(Undur Gegeen Zanabazar, 1635∼1723)가 세운 사원과 여러 작품에서 이전의 불교와 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몽골의 민족의식과 근현대사
14세기 중반을 전후해 붕괴된 몽골 제국은 초원으로 후퇴하고, 17세기에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에 복속됩니다. 이후 1912년 청나라가 몰락할 즈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대한 몽골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1917년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1921년에 완전 독립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많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탈사회주의 선언 후 1992년 이원집정부제의 신헌법을 제정합니다. 1996년 총선으로 1997년 바간반디 대통령이 선출되고, 2000년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연립내각이 출범했습니다. 현재 2017년 당선된 바툴가 대통령과 후렐수흐 총리가 임기 중입니다.
몽골에 남은 독립운동가 이태준
이태준은 1914년 몽골 고륜에서 동의의국(同義醫局) 병원을 개업합니다. 그는 몽골인들에게 근현대 의술로 유명해졌으며, 몽골 왕국인 보그드 칸(Bogd Khan)의 어의(御醫)가 되는 등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1919년 보그드 칸이 이태준에게 ‘귀중한 금강석’이란 뜻을 가진 ’에르데니-인 오치르’라는 명칭의 제1등급에 해당하는 국가훈장을 수여합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몽골 정부가 부지 2200평을 제공하고 연세대학교 의학과, 몽골연세친선병원, 주한국 몽골대사관의 노력으로 기념공원과 기념관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이태준기념공원 보존회도 만들어져 한국인들에게 몽골 여행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우리 몽골에서 많은 사람에게 의술을 선보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이태준 선생의 지난 세월과 신념을 되새기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몽골과 한국
1990년 수교 이후 양국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교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와 대외관계에서도 동반자적 문화, 인적 교류가 점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서울글로벌센터와 몽골 대사관은 새응배노(‘안녕하세요’의 몽골어) 학교를 열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출신 어린이들이 모국어 교육을 통해 미래 한-몽골 문화, 경제적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에도 앞서 소개한 ‘칸의 제국 몽골’ 전을 통해 한국과 몽골의 역사와 문화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