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성탄절. 추운 날씨 탓에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면 크리스마스 소재 넷플릭스 영화를 보며 분위기를 만끽해보자.
크리스마스 캐슬(2021)
주연 브룩 쉴즈, 케리엘위스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한 스코틀랜드 성을 구입하려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한사코 성을 팔지 않겠다는 공작의 좌충우돌 로맨스.
크리스마스 연대기(2018)
주연 커트 러셀, 다비 캠프
한 남매가 만든 함정에 걸려 선물과 순록들을 잃은 산타.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험난한 모험이 펼쳐진다.
캐롤(2016)
주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1950년대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상류층 중년 여인과 사진작가 지망생의 금지된 사랑이야기.
크리스마스 추억속으로(2018)
주연 토리 앤더슨, 스티븐 후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어진 악재를 추스르려 고향에 간 주인공이 가족을 통해 관계와 마음을 회복하는 여정을 담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주연 한석규, 심은하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 주인공과 그를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여주인공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다.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영화는 애잔해도 때로 설렘을 던진다. 누군가의 가슴속에선 상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 扮)의 목소리가 가슴에 남아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울림이 남는 종소리처럼 여운이 길다. 때론 소리나 냄새로 또는 순간의 풍경으로 기억하는 여행이 있다. 군산은 영화 한 편만으로도 가능하다.
기억 속의 나만의 풍경이나 대사 몇 줄로도 군산을 떠올리게 하는 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 사진관은 군산 월명동의 어느 골목에 찰떡처럼 잘 어울리게 자리 잡았다. 그곳이 영화 속 정원과 다림(심은하 扮)이 정말 일상생활을 했던 곳인 양 착각하게 한다.
1998년의 영화였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이제는 고전 명작이라 할 때가 되었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절제된 연출과 섬세한 감정선을 조용히 담아낸 세련됨이 보는 이에겐 그저 잔잔하다. 어느 TV의 영화 프로그램에서는 “어쩜 20년 전인데도 촌스러움이 1도 없어요” 란 말을 했던 이가 있었다. 드라마틱했을 사랑과 죽음을 다루었음에도 아릿하지만 도무지 신파스럽지 않다. 군산엘 가면 나만의 보폭으로 나만의 영화적 감성으로 그 골목을 산책하듯 정원과 다림의 이야기를 들춰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여행일 수 있다.
초원사진관은 여전히 소박하다. 영화 속에서도 수수해 보이지만 그 모습이 푸근하고 친근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진은 기획 당시 세트 촬영을 배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다니다가 군산의 한 카페에 쉬러 들어갔다가 창 밖으로 내려다본 곳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한 것이다. 주인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개조하여 초원사진관이 되었고 영화 대부분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그 후 철거되었다가 군산시에서 다시 영화 배경 속 모습으로 복원하는 탁월한 선택 덕분에 영화로운 군산을 찾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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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환상을 깨는 일일 수도 있다. 일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듯 주춤주춤 다가가게 된다. 스튜디오에는 8월의 더위에 지친 심은하에게 시원한 바람을 보내던 선풍기, 문틈으로 끼우던 편지, 영화 속의 스틸컷이 스토리 섹션별로 벽면에 그대로 붙어있고 심은하와 사뭇 다른 사람들이 심은하처럼 앉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잇는다.
사진관 주변으로 정원이 타던 스쿠터와 주차요원이던 다림의 근무용 소형차 티코, 심은하가 한석규의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통과했던 해망굴, “내가 어렸을 적 아이들이 모두 가 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망연히 앉아 독백하던 초등학교 운동장, 삶이 다해 가는 정원이 창문 넘어 어렴풋이 다림을 바라보는 텅 빈 감성의 섬세한 눈빛, 이 모든 것들이 초원사진관 주변으로 이루어진다. 영화의 자취를 따라 걸어볼 만하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이후 군산이 배경이 된 영화나 드라마가 늘어났다.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말죽거리 잔혹사, 마더, 화려한 휴가, 마파도, 변호인, 남자가 사랑할 때. 시네마 투어를 떠나도 좋을 군산이다.
군산을 걷다
볼거리가 대부분 가까운 근처에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걷는 여행이 가능한 군산이다. SNS 명소인 경암동 철길마을은 조금 멀리 있으니 택시 이용이 좋겠다.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오감 만족의 여행을 누릴 수 있는 지방 도시에서 보내는 하루는 여유롭다.
초원사진관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유명한 포목상이던 일본인 히로쓰가 살던 목조 주택이다. 당시 호남지역은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여서 부유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빨간 담장 안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단정하다. 일본식 고급 주택 양식의 전통 가옥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곳에서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와 같은 영화가 촬영되었다. 쭉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뒤편 뜰의 복(福)이라는 글자를 알려준다. 안으로 들고나는 뜰 바닥에 복(福) 자가 쓰였는데 복이라는 글자를 밟고 들어가야 복을 받는다는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등록문화재 제183호다.
신흥동 일본식 주택 근처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가 있다. 그리고 부근에 일제강점기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설립한 대표적인 금융시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금고 속 조선은행 이야기를 읽으며 분노가 치민다. 수탈의 잔혹사가 전해진다.
군산 근대건축관,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내항의 일명 뜬 다리 부잔교, 다다미룸 미즈 커피, 장미갤러리 근대미술관을 지나 근대역사박물관 바로 왼쪽으로 구 군산세관에서 거두어들이던 세금은 또 어땠을까. 지금 보아도 우리 민족의 고통이 피부로 느껴지는데 그 시절엔 얼마나 치를 떨었을지 짐작해 본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1908년에 지어진 옛 군산세관 창고가 정담(情談)이라는 인문학 창고로 재탄생되었다. 꽉 찬 서고의 든든함과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놀이문화가 명물이 된 오래된 창고에서 기다린다. 정담 앞의 잔디밭과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곳에서 고종황제가 즐겨 마셨다는 커피 한잔의 휴식을 누려볼 일.
군산은 거리 곳곳의 표지판이 온통 근대 역사와 관련된 흔적과 문화들로 새겨진 도시다. 마침 이런 발자취를 따라 맘 편히 여행할 수 있는 군산 근대항 스탬프 투어 도보 코스가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되는 스탬프 투어 도보 코스는 걷기에 따라 약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니다 보면 스탬프 투어를 코스대로 관람하는 여행자들을 자주 본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스탬프 도장을 찍어가며 생기발랄한 촬영을 하는 젊은 커플들의 모습이 풋풋하다. 혹시 도보로만 다니기에 심심하다면 군산시에서 마련한 공용자전거 대여가 있다. 바람을 맞으며 달려보는 군산 거리도 즐거운 일이다.
이 밖에도 볼거리는 지천이지만 군산 여행도 식후경이다. 단팥빵 사러 이성당 빵집을 들러야 하고 짬뽕도 먹어야 한다. 탁류 길의 군산 짬뽕 특화 거리엔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인 빈해원이 있다. 실내는 흡사 홍콩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다. 요즘 멋지게 꾸며놓은 ‘신상’ 명소와 달리 오래된 집이 주는 깊이는 확실히 다르다. 이 또한 근대문화 거리 근처에 있으니 금방 찾아갈 수 있다.
귀갓길엔 금강 변에 정박한 배의 모양을 한 채만식 문학관에 들러볼 일. 풍자적 글쓰기로 근대문학을 일군 탁류(濁流)의 채만식 문학관은 작가의 특별한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특기할만한 것은 한 코너에 채만식의 친일 작품이 나열되어 있고 '풍자적 작가 민족의 죄인'이라는 자료도 볼 수 있었다. 친일 활동에 참여한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이라고 철저히 반성하는 자의식은 의미 있다. 금강 들판이 내다보이는 문학관 광장을 나와 금강 갑문을 지나며 영화로운 군산 여행의 마무리를 한다.
군산 당일 여행
자동차: 서울 시준 약 두 시간 반 내외
기차: 군산역이 외곽에 있으므로 기차를 탈 경우 KTX 익산역 하차 후 군산행 시외버스가 용이함. 약 두 시간
강남고속터미널: 군산 약 2시간 30분
주소: 전북 군산시 구영2길 12-1 초원사진관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이고 캐롤 음악이 들려오더니 결국 성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집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들과 보내는 오붓한 성탄절도 충분히 따뜻하고 즐겁다. 이번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콕’ 크리스마스를 풍성하게 채워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크리스마스에 로맨스를 빼기는 아쉽다. 매해 크리스마스부터 연말연시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정통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통한다. 2003년 처음으로 개봉한 후 2013년과 2015년, 2017년,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12월 23일에 재개봉했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부부간의 사랑부터 남매간의 사랑, 영국수상과 직원의 사랑, 소설가와 가정부의 사랑,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등 저마다의 사랑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따뜻하게 그려낸다.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키이라 나이틀리 등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전하는 여덟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다양한 사연을 담은 만큼 모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 삽입된 OST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Christmas is all around’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 노라 존스의 ‘Turn me on’,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1998년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멜로영화 중 손꼽히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정원’은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여름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햇살처럼 불쑥 찾아온 그녀는 정원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한다. 뜨거운 태양의 한여름에서부터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시한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를 제작한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허 감독은 “생활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더 빛나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가 그려내는 90년대의 아담하고 소박한 아날로그적인 배경은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빽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
크리스마스에 로맨스 영화가 지겹다면, SF 장르의 ‘빽 투 더 퓨쳐’를 추천한다. 시간여행과 그에 따른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1985년부터 1990년에 걸쳐 총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됐는데, 개봉 당시 전 세계 무려 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흥행작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별 볼 일 없는 가족사를 가진 소년이 기상천외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 개인의 역사를 바꾸고 뒤틀린 미래를 바로잡으려는 모험극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모든 세대가 흥미로워 할 주제 안에 역사, 연애, 가족 등의 요소를 유려한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중장년층에게는 지금은 없어진 유년의 놀이동산에 지금의 자녀와 노니는 기분을 선사한다. 당시 상상하던 미래의 패션과 지금의 패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저를 믿으세요.” 배우 이한위(61)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그는 답이 정해져 있거나 유도하는 질문을 날카롭게 알아봤다. 특히 이한위가 지양한 것은 어떠한 단어 혹은 수식어에 갇히고 규정되는 것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명품 조연’, ‘잉꼬 부부’ 같은. 그는 꾸며지고 포장되는 것을 싫어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이한위의 인생 자체가 그랬다. 1983년 KBS 공채 탤런트 10기로 데뷔, 연기자로 산 지 약 40년. 그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이한위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했고,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배우의 길이 계속 이어졌고,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는 중후하고 단단한 사람이 됐다.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은 삶을 살아온 이한위. 그가 털어놓은 인생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쓰려고 노력했다. 그게 배우 이한위가 원하는 모습이고,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삶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성격 개조하다, 어느새 배우
학창 시절 이한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떤가? 조잘조잘 떠들면서 반 친구들을 이끄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과거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한위는 중학생 때까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4남 4녀 중 일곱째인 이한위. 그의 어머니조차 “가장 통제가 쉬웠던 자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라는 대로만 하는, 속 썩이지 않는 아들이었던 것.
“별거 아닌 일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얼굴이 빨개진다거나 두근두근거렸죠. 크면서 이런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살아가기 어렵겠다고 스스로 인식했어요. 그래서 점점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용기 내는 일을 많이 했고, 고등학생 때는 전혀 성격에 맞지 않는 반장까지 해봤어요. 응원 같은 것도 하고, 노래도 부를 기회가 있으면 하고요.”
그렇게 성격을 개조해나간 이한위는 조선대학교 정밀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당시 인기였던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으나 쉽지 않은 현실을 깨달았고, 때마침 기적적으로 연극반 공고를 보게 됐다. 성격 개조의 방점을 찍고 싶어 동아리에 들어간 이한위. 그와 함께 ‘성실 한위’의 서막이 올랐다.
“연극을 하면 성격이 많이 고쳐지겠구나 싶어서 연극반에 들어가서 매달리다시피 한 거죠. 절대 잘할 수 없었고 잘하지 못했지만 진짜 열심히 했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기회가 많이 주어지더라고요. 주연의 기회도 찾아오고, 연출도 하고, 선배들이 만장일치로 회장도 시켜주셨죠.”
그러느라 공부는 등한시했다는 이한위.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할 때가 되어서는 때마침 KBS 공채 탤런트 공고를 보게 됐다. ‘저게 나한테 취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한위는 시험에 응시했고, 단번에 1983년 KBS 10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다. 그렇게 연기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 우연이 이어지면서 필연이 됐다.
“처음부터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에 이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때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이제 평생 배우로 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나는 KBS가 공인한, KBS에 의해 발탁된, 직업이 배우구나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철부지 생각이죠. 배우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는 배우를 지속할 수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부족한 게 많았던 때죠.”
39년 차 배우로 사는 법
이한위는 1985년 방영된 KBS 드라마 ‘별을 쫓는 야생마’를 통해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첫 영화는 1998년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다. 이후 그는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학교’ 시리즈, ‘태조 왕건’, ‘가을동화’, ‘왕꽃선녀님’, ‘불멸의 이순신’, ‘쾌걸춘향’, ‘베토벤 바이러스’, ‘추노’, ‘제빵왕 김탁구’ 등과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미녀는 괴로워’, ‘울학교 이티’, ‘국가대표’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캐릭터도 다양했다. 이한위는 맡는 역할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됐다. 깡패, 사채업자 같은 특색 있는 캐릭터를 맡을 때도 있고, 직업이 의사, 교사, 시장이어도 어딘가 허술한 경우가 많았다. 나이 들면서는 점점 누군가의 아빠가 됐고, 서민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악역을 해도 사람들이 웃는다. 장점이자 단점이다”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이한위는 오랜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로 ‘성실함’을 꼽는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했다”고 자평했다. KBS 공채 탤런트가 된 후 매일 KBS로 출근하면서 감독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열심히 하고 한결같고 건강하게 하니까 감독들이 저를 많이 써줬다.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우리 때는 오디션을 본 것이 아니라 공채 탤런트가 되면 기용해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트레이닝해주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요즘 시대에 배우가 됐다면, 40년 가까이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어요. 오디션 제도가 있었다면 배우 생활이 녹록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적응이 된 거지, 내성적이에요. 근본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죠.”
이한위의 말대로 그와 작업해본 감독들은 계속해서 그를 찾았다. 이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한위는 계절드라마 시리즈 ‘윤석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통하고 있고, ‘또 오해영’의 송현욱 감독하고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한위는 이를 두고 자신은 ‘운이 좋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배우는 운이 좋아야 해요. 감독이 봤을 때 이 배우가 살아남을지 어떨지 모르듯이, 배우가 봤을 때도 이 감독이 어떤 감독이 될지 모르잖아요. 저도 열심히 했지만, 저를 써주신 분들도 꾸준하게 감독일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 감독들이 저를 꾸준히 기용해주고, 낯선 감독들이 저를 또 캐스팅해줘서 계속 일하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이한위는 사실 무명 시절이 길었다.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작품은 2006년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다. 엽기 성형외과 의사 역을 맛깔나게 소화해내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무명 시절은 누구나 다 힘들다”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무명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우로 생존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세계에 적응하는 맷집이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맷집과 실력이 없으면 스스로 안심이 안 되고, 시켜주는 사람도 불안하죠. 저는 인생의 여러 가지 비극 중에 소년출세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대동소이하게 유약하기 때문에 어려서 출세하면 그만큼 위험한 거예요. 제가 무명 기간이 길어서 합리화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단계를 잘 밟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가 하면 이한위는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 인생작을 뽑지 못한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연기를 해왔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답. 그는 지난해 KBS 2TV 드라마스페셜 ‘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을 통해 첫 드라마 주연을 맡았다. 일반적으로 그 작품이 그의 인생작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주인공을 해야 인생작인가? 스코어가 좋다고 인생작인가?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드라마가 트로트 모창 가수 이야기예요. 작년에 ‘보이스트롯’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을 할 즈음 감독님이 단막극 주인공을 누구로 할까 고민하다 불현듯 저를 방송에서 보고 ‘저분이다’ 생각해서 캐스팅한 거죠. 그동안 했던 서민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것인데 그것이 길게 나온 단막극이었을 뿐이에요. 어쨌든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고, 1인 2역 연기도 하고, 단막극상 수상도 하고. 좋은 경험이었고 고마운 기억인 거죠.”
기세를 몰아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묻자 “어휴~ 없어요”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다만, 광주 출신으로 기아 타이거즈의 응원곡을 부를 기회가 오면 부르고 싶단다. 즉 좋은 기회라면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가수가 될 생각은 없는 것.
예능감이 뛰어난 그는 예능 출연에 대한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예능도 전략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기회가 생겨 나가면 열심히 할 뿐이라고. “저는 연극, 영화, TV 다 해요.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넘나드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예능 출연이 곤욕스러운데 나갈 필요는 없죠. 할 수 있으면 나가고, 나갔으면 뭔가 하고. 나가기만 할 거면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 그리고 끝까지 배우
이한위는 배우로서 연기 말고도 화제가 된 부분이 있다. 바로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이다. 그는 2008년 49세의 나이에 19세 연하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우와 스타일리스트로 만났다. 당시에는 우려의 반응도 많았지만, 현재 부부는 누구보다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이한위는 모두 아내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몇 번 얘기했지만, 아내는 저를 따진다든지, 뒤진다든지, 캐묻는다든지 그런 것 없이 순종적이에요. 제가 뭔가를 번복하더라도 아내는 이해하는 편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하면 참 좋지만 이해가 안 될 때는 받아들이면 되잖아요. 그러면 오해가 없고 갈등도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일이라는 게 정해진 루틴이 없잖아요. 기본적으로 불규칙한 것이 루틴이잖아요. 제 연기 생활 근 4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규칙적으로 불규칙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런 생활을 이해할 필요 없이 잘 받아준다는 거죠. 제 아내는 방송인의 아내로 베스트예요. 항상 고맙죠.”
올해는 배우 생활을 한 이후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는 이한위.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다둥이 아빠이기도 하다. 슬하에 열네 살 딸, 열두 살 딸, 열 살 아들이 있다. 한 방송에서 이한위는 2년마다 애를 낳았다면서 ‘비엔날레 스타일’이라고 농을 쳤다.
“제게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 애가 서른 살이 넘었어요. 그런 것에 비하면 저는 늙은 아버지에 속하죠. 아이들하고 잘 살려면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살아야죠. 가족과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대로 재밌더라고요. 올해는 식구들하고 여행도 몇 번 했는데 의미 있고 재밌었어요. 우리 애들은, 특히 열 살짜리 막내는 지나치게 건강해서 가끔 등산을 같이 가죠. 제가 부암동 쪽에 사니까 가까이 북한산도 있고, 인왕산도 있으니까 능력껏, 형편껏 가죠. ‘무조건 정상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힘닿는 데까지 가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면 아주 좋아해요. 늙은 아버지로서 노력하는 거죠. 고맙게도 애들은 아빠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배우는 루틴이 없다’는 어록을 남긴 이한위. 그래서 그는 당장 2022년 자신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 현재 정해져 있는 스케줄은 이달부터 광주방송 라디오 ‘이한위의 그리운가요’의 DJ를 맡게 됐다는 점이다. 이한위는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온 것처럼 뭔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한위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날 길어지는 촬영에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사소한 부분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약속을 잘 지키려고 한다. 배우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가 지난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였다.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이한위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새삼 4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저는 그냥 수식어가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수식어를 굳이 단다고 하면, ‘재밌는 배우’, ‘신뢰받는 배우’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어요. 명품 조연 배우,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명품한테 실례되는 말이에요. 명품인지 아닌지는 보는 사람이 정하는 거예요. 만약 저를 그렇게 봐주신다면 감사하죠. 저는 단지 배우로서 끝까지 소용되는 것, 그것이 제 바람이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제가 정할 수 없지만, 배우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이순재 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하신 것처럼요.”
넷플릭스를 둘러보다가 오랜만에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작품에서 화 한 번 내지 않을 것 같은 털털한 인상의 주인공 정원은 극 중 두 번 화를 낸다. 이 가운데 두 번째 화를 내는 장면에서 정원은 어떻게 비디오를 틀어야 할지 모르는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아버지에게 비디오 재생 방법을 반복하여 알려주지만 아버지는 이를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이 장면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디오 하나 재생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원의 아버지에게 비디오란 지금의 인터넷 뱅킹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한 삶을 위해 스마트폰과 인터넷 뱅킹 등 IT를 활용한 여러 장비와 서비스를 고안했다.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은행에 찾아가는 ‘아날로그 맨’이 되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 앞에 개인은 힘이 없다. 현금 결제가 기본이었던 전통시장은 생존을 위해 제로페이와 카드 기기를 놓기 시작했다. 은행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점포를 줄이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한국은행조차 은행 점포의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제지할 정도다.
필자는 산업 매체에서 이차전지를 주 취재 분야로 삼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이차전지 시장조사 업체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이차전지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전기자동차 외에도 이제 우리의 분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휴대전화, 최근 유행하는 무선 이어폰까지 모두 이차전지의 주요 시장이다.
동시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과연 세상의 이로움에 기여하고 있는가?
몇 해 전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환경을 지키겠다며 스마트폰에 포함되어 있던 충전 케이블을 제공하지 않기 시작했다. 덤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유선 이어폰까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단순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꽂기만 하던 이어폰을 쓸 수는 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이것도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업들은 환경보호를 말하지만 사실은 스마트폰 제품의 제조 비용을 줄이고, 액세서리 구매로 인한 부차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까운 미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무선 충전으로 충전하라며 아예 단자가 없는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 이젠 선택의 여지 없이 유선 이어폰 대신 무선 이어폰을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몰라 헤맬 것이다. 단순하게 살 권리가 사라지고 있다.
너무 앞선 걱정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배터리 탈착형 스마트폰의 장점을 강조하다가 슬그머니 일체형 스마트폰을 내놓은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을 떠올려보자. 이제는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대신 충전기를 끼워야 한다.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수리센터에 가서 전지를 교체해야 한다. 소비자는 선택권을 박탈당했다.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드웨어(HW)의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개인용 IT 단말기, 즉 스마트폰의 HW는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지원한다는 데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버폰’이라는 이름의 제품이 따로 나왔던 과거 피처폰 시대와는 또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이 기존 스마트폰을 활용한 장년 및 노년층의 접근성을 높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구형 스마트폰을 활용한 아동용 스마트폰 제품에서 이미 활용 중이다.
스마트폰의 UI 외에도 다양한 시스템의 접근성 확보 방법이 필요하다. 가까운 예로 ARS 방문 인증을 볼 수 있다. 현재 2년째 전 세계를 강타 중인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QR인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QR 외에도 우리는 ARS 전화 인증 방식을 병행한다. ARS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그 전화번호를 목록화하여 기록을 남기는 방식이다. QR 체크를 어려워하는 고령층에게 이는 아날로그식 인증 방법인 셈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한 디지털 인증, 어디서 들어본 방법인 것 같다면 정답이다. 바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을 뜻하니 디지로그(Digi+log)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장년층 이상의 문화 코드에 알맞은 아날로그 감성의 시스템을 만든다면 장년층이 필요로 하는 첨단 서비스를 보다 편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며 장년층 이상 세대는 앞으로 사회생활을 지속하며 생산 활동과 소비 활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들에게 최적화된 IT 접근성은 곧 첨단 서비스에 대한 소비층의 확대를 의미한다. 앞선 전통시장의 예에서 밝혔듯 이들 역시 생산 활동을 위해, IT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들에 대한 IT 접근성 확보는 이제 IT 업계에는 시장 확보, 정부에는 기본권 보장과 같은 의무 사항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30대 초반으로 나온 정원의 세대는 지금쯤 50~60대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이제 비디오 재생 대신 복잡한 액티브엑스를 깔며 인터넷 쇼핑 또는 인터넷 뱅킹을 해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코로나19 방문인증 및 접종인증을 하며 IT 접근성에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정원의 아버지처럼 자녀 세대에 계속해서 부탁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부모에게 최신 기기 사용법을 매일 가르쳐주거나 대신 해줄 수 있는 세대는 1~2인 가구의 증가로 거의 사라졌다. 편리해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남녀노소가 ‘편리하게’ IT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본다.
날씨도 매우 쾌청해서 여행 떠나기 딱 좋은 날이다.
군산은 얼마 전 다녀온 곳이지만 두 번 세 번 가보아도 볼거리와 느낄 점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군산의 밤을 체험하게 되어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기로 했다.
군산은 한편으로는 슬픈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비옥한 우리 땅에서 나는 곡물과 물자를 자기네 나라로 수탈해 가는 통로로 군산을 발전시켰고 많은 일본인이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가옥이나 문화가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근대화의 아픈 역사를 없애지 않고 잘 보존하여 더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다짐한다는 의미로 일본의 잔재인 세관이나 조선은행 등을 근대건축관이나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역사를 보존하고 잊지 않는다는 취지를 가졌다니 멋진 도시이다.
2017년 10월 28일~29일은 군산의 축제로 근대역사박물관과 월명동 일원에 '가을밤, 근대문화유산은 잠들지 않는다' 는 슬로건으로 군산 야행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야밤에 본 문화유산의 모습들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곳곳에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밤 나들이 나온 군산시민의 모습이 매우 화목해 보였다.
여러 곳에서 음악콘서트의 흥겨운 노래가 들리고 광장에선 가족끼리의 투호 게임도 벌어지는 등 축제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구 군산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미술관이 된 일본 은행 건물이 아름답게 조명되었다.
뒤쪽으로 군산항의 뜬다리 모습도 예쁜 불빛으로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쪽으로 따라서 길 건너 축제 장소로 이동했다.
그쪽에는 잘 보존된 일본식 절인 동국사와 신흥동 일본식 가옥, 그리고 한석규와 심은하의 아름다운 동화 같았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 사진관도 찾아볼 수 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골목마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거리 축제가 진행되고 많은 관광객과 군산시민이 어울려 밤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긴 골목 끝까지 예전에 있던 학교나, 관공서, 병원, 정미소, 경찰서, 주막 등 여러 임시건물을 지어놓고 관광객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벤트도 하는 등 군산시에서 이번 축제에 매우 공들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에선 '소리나무'라는 연주 팀의 고운 선율이 우리를 붙잡아 한동안 몇 곡을 감상하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참으로 낭만적인 밤이다.
일본가옥에 도착하니 실내를 보려면 줄을 서야 했고 긴 줄에도 우리는 기다렸다가 일본가옥의 내부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당한 부잣집이었던 듯 규모가 매우 컸는데 일본인의 생활상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예전 어렸을 때 우리 외갓집도 일본인의 적산가옥이었다. 패망으로 돌아가는 일본인의 집을 외할아버지께서 매입하셨다는데 그 집은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꿈의 동산이었다.
집안 구조도 재미있었지만, 앞쪽의 넓은 정원이 아름다웠다.
일본인 특유의 정원문화로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정도의 동산이 있고 돌다리가 걸쳐진 연못도 있었다.
돌로 만든 거북도 있고 쭉쭉 늘씬하게 피어 있던 보랏빛 난초도 잊히지 않는다.
군산의 일본인 가옥을 보니 옛 외갓집과 많이 닮아 불현듯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군산 야행의 밤이 깊어갔다.
이런 축제로 인해 군산이라는 도시를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떠나기 좋은 가을이다. 모두들 문화가 있는 곳으로 한 번쯤 다녀오기를 권한다.
추억의 영화 재개봉 소식이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극장가에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한 추억의 영화 10여편이 잇따라 재개봉한다.
롯데시네마는 18일부터 열흘 동안 소피마르소 주연의 '라붐'과 '유 콜 잇 러브', 뤽 베송 감독의 '레옹', 장국영 주연의 '해피투게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등 8편을 기획해 상영한다.
또한 오는 28일부터는 왕가위 감독의 3색 로맨스라는 주제로, 국내에선 처음 선보이는 '동사서독 리덕스'를 비롯해 '화양연화'와 '중경삼림' 등 3편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2' 감독판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야마다 코타 감독의 '오싱' 도 순차적으로 재개봉한다.
추억의 영화 재개봉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추억의 영화 재개봉 좋네요", "추억의 영화 재개봉, 8월의 크리스마스는 자주 하는 느낌", "추억의 영화 재개봉, 다시 보고 싶었는데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