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는 청년이 많지 않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 반면 퇴직을 앞둔 중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지방 소재 7년차 중소기업에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전문가에게 주거비를 별도로 지원했다. 신사업 성장세에 따라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남았다.”
9일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연 '50+ 기술전문가, 중소기업에서 살아가기' 온라인 포럼에서 공태영 기술자숲 대표가 ‘50+기술 전문가와 중소중견기업 매칭 사례’ 주제 발표에서 이 같이 말했다.
공 대표는 “예상과 달리, 고 경력 전문가들은 유연근무형태나 비교적 낮은 임금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50+전문가와 기업을 연결해 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을 추가로 소개했다.
기술자숲은 제조산업 전문가 매칭 플랫폼 기업으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주관하는 ‘50+기술전문가 매칭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전문가 73명 중 68%가 유연근무형태를 선호했으며, 55%는 희망급여로 300만 원 이하를 선택했다.
또 기술자숲이 진행한 ‘2021 하드웨어 Start Up! 고 경력 전문가와 함께 Scale Up!’(SUSU) 사업에 참여한 기업 94%가 ‘조건에 적합하다면 50대 전문가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공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고 기술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문가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공 대표는 중소기업과 50+전문가 매칭에서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50+성공사례 부재와 사회적 긍정 문화 부재를 꼽았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중장년층 전문가로 인한 성공 사례가 많아지거나 금전적 지원이 늘어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태영 대표는 인턴과 유사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성공 경험을 쌓은 뒤 장기적인 일자리 연계를 유도하고, 추가로 신규 일자리 창출까지 이끌어내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전문가가 각개 전투를 하는 대신 서로 이런 매칭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주체들이 협력 모델을 구축해 문화를 확산하고 선도해야 한다”며 “이 자리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50+기술 전문가와 스타트업의 협업’ 발표는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 기업 ‘N15’ 배중구 팀장이 맡았다. N15는 서울시와 용산전자상가와 협력으로 ‘메이커스페이스’를 탄생시킨 기업이다.
배 팀장은 “제조업에서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아이디어의 빠른 사업화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이 명확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현실화가 되지 않고 있어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N15가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조산업은 젊은 패기로만 승부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전문적이고 축적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측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제조 파트너와 소통이 어렵고, 제조 생태계를 이해하고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N15 측에서 떠올린 해답은 제조PM(프로젝트 관리)과 시니어 기술자, 제조공장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에 공장의 니즈와 스타트업의 니즈를 조율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20대 스타트업 기획자는 50대 기술자의 지혜와 경험을 원하고, 퇴직을 앞뒀거나 이미 퇴직한 50대 전문가는 구직을 원한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20대 기획자와 50대 기술자 사이에는 세대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
배 팀장은 “30대 실무자로서 스타트업의 MZ세대와 50+기술 전문가인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한 끝에 세 가지 솔루션을 도출해냈다”고 말했다. 직급 체계를 개선해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제조워크숍을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는 등 소통 채널을 다각화하며 제조 팀에도 기업과 동일한 명함을 제공해 ‘원 팀’(one team)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는 “기술의 빠른 변화, 인구 감소, 평생 학습 등으로 조직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의 50+기술전문가가 가진 노하우, MZ세대의 창의력과 열정이 합쳐져 시너지를 기대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 김원진 기술전문가가 ‘50+기술전문가의 내가 경험한 재취업’을 주제로 포럼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IT 기반 마케팅 기업 ‘원트리즈뮤직’에서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IT 사업의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지원 업무를 수행 중이다.
그는 퇴직 전까지 전자부품 제조기업에서 전산실을 운영했으며, 정부 및 공공기관 정보화 관련 사업기획, 시스템운영 및 보안관리 총괄을 맡았다. 개인정보보호 인증심사 등도 수행했으나 퇴직을 앞두니 실무에서 물러나 자문위원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김 전문가는 “나 역시 퇴직 후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며 “경력과 직위에 따라 다르지만 퇴직 직전에 맡는 업무는 관리직 성격이 강하므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 복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 취득, 정보통신중급기술자 인증을 발급하는 등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럼에도 일반 기업과 IT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판단해 정부, 공공기관 사업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거나 컨설팅 지도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기술과 트렌드가 빨리 변해 회사의 기존 직업과 협력하기 어려웠다. 자료가 부족해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맡아야 했을 때는 스트레스도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원만히 해돼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진 전문가는 퇴직 후 구직을 원하는 50+기술전문가에게 퇴직 후 자신의 적응력이 얼마나 되는지 서울50+ 인턴십에 참여해 판단하기를 권했다. 그는 “개인의 능력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나 역시 50+기술전문가이기 때문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분야의 사업이 있다면 참여하겠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치매는 노년기를 위협하는 질병이자 노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 열 명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노화 관련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치매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 치매를 정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 일본에서 이용하고 있는 세계의 신박한 치매 치료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치매 노인끼리 떠나는 버스 여행부터 해변에서의 소소한 휴가까지
네덜란드 두틴험 시의 한 치매 요양시설에서는 시내 버스를 운행하는 치매 노인과 그 뒤에 탑승해 농담을 주고 받는 치매 노인들을 볼 수 있다. 해변에서 가까운 하를렘 시의 요양시설에 머무는 치매 노인들은 시설 내 해변에서 소소한 휴가를 보낸다. 이 모든 일은 요양시설 안의 ‘시뮬레이션 방’에서 이뤄진다.
시뮬레이션 방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그대로 구현해 놓고 있다. 평소 외출할 때 탔던 버스에 타면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가 늘어선 네덜란드의 시골길을 볼 수 있다. 해변을 구현한 방에서는 진짜 모래가 깔려 있고 이따금씩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들린다. 심지어 해변의 열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맛 보는 아이스크림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이 모든 것은 창문 위치에 달린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시골길 영상, 열기를 조성하는 램프 등으로 만들어진다.
네덜란드의 이례적인 치매 치료 방식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네덜란드의 64세 이상 인구 320만 명 중 약 8.4%인 27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43년 전까지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고령층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증상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심 끝에 고안해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카페나 버스 정류장, 펍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소를 구현해낸 시뮬레이션 방을 가족이나 시설에서 함께 지내는 노인들과 함께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빛과 향, 마사지, 음향을 이용하는 시뮬레이션 방은 1990년대부터 네덜란드 전역의 의사와 치매 간병인이 개척해 온 방식이다. 침대 위에서 안정을 취하게끔 하거나 약물을 처방하는 정통적인 치매 치료법을 거스른다. 에릭 스헤르데르(Erik Scherder)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경 심리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환자의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낮출 수 있다면 생리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네덜란드의 한 치매 환자 담당 간병인은 “이런 형태의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치매 환자에게 투입되는 약물 치료의 필요성을 낮춘다”고 증언했다.
치매 환자도 자유롭게 지출하게, 시브스타(Sibstar)
영국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시브스타(Sibstar)’로, 치매 환자가 스스로 일상 지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한 보안 카드와 애플리케이션(앱)을 제공한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과 IT의 융합으로 생겨난 금융서비스다.
시브스타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창업자이자 CEO 제인 시블리(Jayne Sibley)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시브스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Sibstar’에 게재된 인터뷰 동영상에서 그는 “치매 환자인 부모님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제품을 구매하는 등 치매 환자인 부모님이 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부모님이 치매라는 질병에 구애 받지 않고, 스스로 상점이나 카페를 가고, 요가 수업을 등록하는 등 일상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사업을 구상했다.
시브스타는 앱이나 홈페이지로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에게 선불 체크카드를 보내준다. 시브스타 앱으로 체크카드에 연결된 계좌로 돈을 입금해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앱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점, 현금이나 포인트 방식 등 치매 환자가 주로 카드를 사용하는 장소나 결제 방식을 미리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앱으로 카드 사용자인 치매 환자와 가족 또는 법적 대리인이 매일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어 치매 환자가 소비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영국 유일의 치매 환자를 위한 핀테크 기업인 시브스타는 아이디어와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설립돼 영국 알츠하이머학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Alzheimer's Society Accelerator Program)에 선정됐다.
테라피 독·테라피 캣과 함께하는 노인, 애니멀 테라피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치매 노인의 심리 치료에 활용하는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hy)도 있다. 지난달 26일 지지통신은 일본 환경성이 내년부터 지자체가 보호하는 개·고양이를 병원이나 요양원에 제공하는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hy)를 희망하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테라피 독’과 ‘테라피 캣’으로 노인의 심리치료를 담당한다.
다비드 쿠르토(David Curto) 알츠하이머성 치매 전문 의사는 스페인의 건강보험그룹 ‘사니타스’(Sanitas)의 소식지의 칼럼에서 반려동물을 이용한 요법을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법 7가지 중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식사를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거나 털을 빗겨주는 등의 행동이 치매 환자의 정신 상태나 기동성을 향상시킨다. 또 다비드 쿠르토는 반려동물이 주인에게 보이는 애정이 치매로 인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핍을 채워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치매 노인의 신체, 인지, 감정, 사회적 부분 등 모든 면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적었다.
국내에서도 전자약이나 디지털 치료제, 추억의 가요 가사가 수록된 음악 퀴즈 책자를 제공하는 등 신박한 치매 치료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도입 단계에 머물고 있다. 중앙치매센터는 2060년 치매 유병률이 20%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한 사회가 하루 빨리 준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치매나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시니어 환자들이 약 대신 스마트폰 앱과 전기 자극으로 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이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로 대표되는 3세대 치료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아직 임상 중이며 상용화를 앞둔 상황이지만 치매와 당뇨 등으로 치료 범위를 넓히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미래먹거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3세대 치료제인 전자약은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낸다. 역시 3세대 치료제에 속한 디지털 치료제는 게임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챗봇, 인공지능(AI)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이를 이용해 우울증과 치매, 뇌전증, 강박장애나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상용화된 사례는 없다.
3세대 치료제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 국내 기업 와이브레인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자약 마인드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우울증 치료에 단독 요법으로 쓰는 전자약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임상에서는 전자약 사용 6주 후 환자군 57.4%가 우울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국내 기업이 3세대 치료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 장애를 게임처럼 구성된 VR 소프트웨어로 치료하는 뉴냅비전은 2019년 국내 첫 임상 승인을 받았다. KT는 신경정신질환 치료 전자약으로 FDA 승인을 받은 미국 뉴로시그마와 협약을 맺었다. 라이프시맨틱스의 호흡재활용 디지털 치료제인 ‘레드필숨튼’, 빅씽크테라퓨틱스의 강박장애 치료제 ‘오씨프리’ 등이 임상을 시작했거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전자약 기술개발사업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406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치매와 파킨슨병, 당뇨, 희귀질환 분야에서 전자약을 주로 지원한다. 디지털 치료제에선 정서 장애와 자폐 치료에 350억 원, 자폐성 장애 치료에 3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학계와 병원, IT 기업이 함께하는 이 사업에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총 289억 원이 투자된다. 개발되는 플랫폼은 우울증 환자뿐 아니라 우울증을 예방하려는 일반인에게도 제공할 예정이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3세대 치료제는 신개념 치료제로 연구과정에서 겪는 제도적 애로사항이 많다”며 “이를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같은 관계부처와 함께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27일 ‘디지털 치료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주최한 현대원 서강대학교 교수이자 한국헬스ICT학회 회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디지털 치료제가 미래성장동력으로 성장하려면 선진화된 패스트트랙 제도 같은 정부 지원과 학계 R&D 지원 등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니어들에게 게임이 중요한 문화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 게임 이용자인 ‘그레이 게이머(Grey Gamer)’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연세대학교 게임문화연구센터가 공동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 가치의 재발견’ 보고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 문화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집단 중 하나로 그레이 게이머를 꼽았다.
보통 게임은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그런데 2021년을 기점으로 10대와 20대 시절에 오락실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1960년대생과 1970년대생들이 50대와 60대에 진입하면서 게임 분야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퓨처소스 컨설팅은 코로나19 이후 그레이 게이머들의 게임 참여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은 유익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에 억눌렸던 호기심과 욕망이 게임 콘텐츠와 IT기술의 발달, 코로나19까지 맞물리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액티브시니어들은 게임 아이템에 현금을 지불하는 ’현질’도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플레이스토어 상위 링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리니지’는 1998년 처음 출시돼 최근 4년간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2 레볼루션 등이 모바일로 연이어 출시될 정도로 20년 넘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그 이유는 프리시니어인 40대와 액티브시니어인 50대의 높은 참여도와 구매력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실제로 앱 분석 서비스 기업인 와이즈앱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리니지2M의 이용자 가운데 56.1%는 40대 이상이다.
이처럼 MZ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액티브시니어’가 게임 시장에서 ‘큰 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업계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레트로풍 게임을 기획해 출시하는 분위기다.
자신들의 취미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액티브시니어들은 어떤 게임을 즐기고 있을까?
절반 이상의 시니어가 게임을 즐긴다
임팩트피플스가 발표한 ‘신중년 소비&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탐구 보고서’에서 현재 디지털 게임을 즐기고 있는 50세 이상 액티브시니어는 응답자 전체의 55%였다.
현재 즐기는 디지털 게임이 있는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이용 기기를 질문한 결과,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는 시니어가 76%로 나타났다. 액티브시니어 다수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또 시니어들은 하루 평균 1시간 정도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를 살펴보면 1시간 이용이 47%, 1-2시간 이용이 27%, 30분 미만 이용이 17%, 3시간 이상 이용이 9%였다.
시니어가 사랑한 ‘애니팡’
시니어들은 정해진 규칙 내에서 같은 그림을 맞추거나, 주어진 조건을 완료하는 단순한 게임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트리스 같이 변수가 적어 기본적인 조작 방법만 익히면 쉽게 즐길 수 있는 퍼즐 게임이 50.6%, 고스톱·포커가 44.5%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애니팡’이었다. 애니팡은 60초의 제한시간 동안 7종류의 동물(원숭이, 고양이, 돼지, 쥐, 토끼, 강아지, 병아리) 블록의 위치를 바꿔 같은 동물을 3마리 이상 일렬로 배열하면 득점하는 게임이다. 27.4%의 시니어가 이 게임을 즐기며 1위를 차지했다. 설문 대상자들은 “간단한 규칙으로 쉽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심심할 때 잠깐씩 하면 재미있다”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애니팡 다음으로 ‘피망맞고’ 10.9%, ‘리니지’ 8.8%, ‘한게임’ 8.0%, ‘프렌즈팝’ 4.7%가 뒤를 이었다.
게임 입문 경로로는 지인 소개가 39.7%, 자녀 소개가 39%로 나타나 주변으로부터 게임을 처음 추천받는 사례가 많았다.
無경험자도 한번쯤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답해
게임을 하지 않는 시니어 중 63%는 스마트폰에서도 가능한 디지털 게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즐기지 않는 이유로는 ‘유튜브 등 다른 콘텐츠 소비가 더 재미있어서’가 52.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 ‘앱을 설치하는 등 방법을 몰라서’가 20.1%로 애플리케이션의 접근성을 높인다면 게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게임을 하지 않고 있지만, 해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87.2%였다. 이들이 하고 싶은 게임으로는 고스톱·포커가 34.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33.5%가 승마와 농구, 야구, 레이싱 등을 즐길 수 있는 캐주얼게임에 관심을 보였다.
청년의 취업과 실업은 사회적 문제로 늘 언급된다. 하지만 출생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면 고령자 취업과 실업 문제를 마냥 두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은퇴가 노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령화가 우리보다 빨리 진행된 해외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해외의 중장년 취업 지원 제도를 살펴보자.
참고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난해 일본은 법 개정을 통해서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 종업원들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노력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올해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실제로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점 ‘노지마’(Nojima)는 근로자의 고용계약 상한 시기를 65세에서 80세로 연장했다. 65세가 된 근로자의 건강 상태와 근무 태도 등을 고려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정년 연장을 통해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숙련된 노동자를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정년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정년이 연장되는 원인은 고령화 때문이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다. 실제로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대부분의 중위연령은 40세 이상이며,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 등은 50세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고령화가 진행된 상태다.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중위연령이 56.4세로 급격히 상승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고령화를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출산율 하락을 겪고 있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도 인구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느 국가도 고령화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고용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지난 10년간 OECD 평균적으로 55~64세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가별로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네덜란드의 경우 18%P 이상 증가했다. 반면에 아이슬란드의 경우 소폭 감소했으나 평균 80% 이상을 유지하며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종합하면 은퇴 이후에도 중장년의 취업은 세계적으로 활발한 상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은퇴자의 역량을 활용한 취업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각 나라에서는 중장년을 위해 어떤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까? 고령화 정책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 미국
미국은 중장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과 학습의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역사회 고용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일로써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이를 위해서는 이제껏 쌓은 역량을 발휘하여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삶의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학습 기회를 준다.
중장년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앙코르 이니셔티브’(Encore Initiative)을 운영한다. 50세 이상 예비 창업자를 위해 온라인 수업, 워크숍, 업무 관련 네트워킹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특히 중장년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한다. 예를 들어 50세 이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제 및 마케팅 지식, 자영업 상식과 관련된 교육을 한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는 교육 수준이 높은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 성과로 발생한 새로운 일자리는 삶의 의욕을 고취하고,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 활동 인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말했다.
앞서 본 예와 같이 취업이나 창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역량을 발달시키거나 삶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교육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백투워크 50플러스(Back to Work 50+)와 로드 스칼라(Road Scholar)다. 전자는 새로운 역량 개발에 해당하고, 후자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백투워크 50플러스는 미국의 5곳의 전문대학에서 진행되며, 중장년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워크숍, 개별 코칭 세션, 컴퓨터 교육, 노후 재정 관리 등을 가르친다. 로드 스칼라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여행 프로그램이다. 야외 모험 활동, 테마 여행, 세대 간 프로그램, 여성 특화 프로그램 등 40여 가지 유형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매년 10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니어의 학습 욕구를 교실이 아닌 여행을 통해 구현하는 사업 모델이다. 김 교수는 “로드 스칼라는 일반 여행에 학문적 깊이가 더해진 프로그램이다”라고 설명했다.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 일본
‘노인들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을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일본이 28.4%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이탈리아(23.3%), 포르투갈(22.8%), 핀란드(22.6%)가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8%로 44위를 기록했다. 고령자의 비율만큼 고령자의 노동 시장 참여율도 높았다. OECD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노동 시장 참여율은 약 25%다. OECD 평균이 약 15%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이렇게 참여율이 높은 이유는 경제적·사회적 참여 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63.6%의 고령 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노동 시장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중장년은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70세 이상도 건강 문제가 없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70% 이상이었다.
일본은 앞으로도 고령화가 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들을 경제 활동의 주축으로 보고 있다. 고령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민간과 지역 복지기관들이 연계해 다양한 취업과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고령 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보조하는 정책을 계속 확대할 전망이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이 바로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과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도쿄일자리센터에서 주관하며, 대기업 및 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쌓은 5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직무 유형은 7가지 직종(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으로 구분된다. 취직에 성공한 시니어 중 시니어의 전문성이 직종에 합치된 경우는 약 70%이며, 비전문 영역으로 취직된 경우는 30%다.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의 보수는 근무 시간, 주간 근무 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주 5일 기준으로 25만 엔(약 264만 원)에서 30만 엔(약 317만 원) 사이다.
한편 민간 영역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이다. 도쿄에 소재한 민간 주식회사 ‘퀼리티오브라이프’(Quality of Life)가 2006년 11월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대기업 전문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조언자로서 경영지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50세 이상을 ‘생애 프로페셔널’로 임명한다. 이들은 고문 또는 어드바이저로서 기업의 여러 경영 문제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
생애 프로페셔널은 2가지 효과가 있다. 일단 시니어 전문가의 경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근무 형태로 고문 소개 서비스를 활용하면 주 1회 등 은퇴 후 유연한 방식의 근무가 가능하다. 시니어 비즈니스 관계자는 “은퇴 후 역량을 보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시니어는 기업이 탐내는 인재가 될 수 있다. 국가와 더불어 기업이 상호 보완적으로 일자리 지원에 참여하면 시니어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해외의 민간에서 적용하고 있는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와 기관을 살펴보자.
해외의 중장년 일자리 지원 제도 및 기관
시니어 네트워크
50세 이상 실직한 고령자로 구성된 비영리 사회혁신 조직이자, 덴마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네트워크 단체다. 실직한 고령 근로자가 네트워킹을 통해 노동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로 지역 내 잡센터(Job Center)와 협력하여 구직을 원하는 실직 고령자와 구인처를 연계하는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리스타트 프로그램
50세 이상의 구직자 중 6개월 이상 실업수당을 수령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 보조금 정책이다. 일주일에 최소 30시간 이상 일하는 중장년 근로자 1인 고용에 2년 동안 최대 1만 달러의 급여를 보조하는데, 최초 6개월과 12개월에 각 3000달러, 그리고 18개월과 24개월에 각 2000달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제3기 인생대학
전일제 고용에 속하지 않는 고령층의 학습 고취를 위해 만들어진 전국 단위 학습 조직이다. 고령층 인구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관심사를 나누기 위한 연결망이다. 시험이나 과제 등은 없다. 대신 정규 수업과 스터디 그룹을 통해 흥미가 있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 및 지식을 공유한다.
중장년 일자리, 재취업과 창업만이 대안일까? 최근 ‘긱 잡’(Gig Job, 정규직 대신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는 일자리)이 늘어나면서 능력을 거래하고 판매하는 ‘재능마켓’이 구직난 속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이 알아야 할 재능마켓을 소개한다.
자료 탤런트뱅크, 클래스101 제공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희망퇴직자가 늘어나면서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고(高)스펙·고학력을 갖춘 중장년들이 고용 시장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30~40년 경력과 전문성을 보유했음에도 알맞은 직장을 찾지 못해 전혀 다른 직무로 임금을 낮춰 재취업하거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중장년 일자리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지자 재능마켓을 비롯해 ‘긱 잡’을 활용한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한 사람과 해당 능력을 보유한 개인을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2025년까지 긱 잡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 프리랜서 시장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통합 금융 솔루션 기업 페이오니아 코리아가 지난해 발표한 ‘2020 글로벌 프리랜서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프리랜서 노동 인구의 70%가량이 18~3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55~64세는 3%, 65세 이상은 1%에 불과했다. 실제로 ‘크몽’, ‘숨고’ 등 재능 매칭 플랫폼 이용자도 대부분 젊은 세대다. 반면 수입은 55세 이상이 젊은 세대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특히 55~64세 프리랜서의 평균 시급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36달러로, 전 세계 프리랜서 평균 시급보다 15달러 많았다.
경력이나 스펙에 따른 임금 체계가 프리랜서 시장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재능마켓은 수십 년간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의 장이다. 나이가 들면서 1일 8시간 소위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이들에게도 솔깃한 대안이다. 기업에 소속되어 임금을 받는 근로 형태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다면 트렌드에 편승해 기회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 시니어 경력, 중소기업이 산다 ‘탤런트뱅크’
최근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을 겨냥한 인재 매칭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의 ‘탤런트뱅크’가 대표적이다. 탤런트뱅크는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시니어 전문가’를 기업의 요구 사항에 맞게 매칭하고 필요한 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신상품 출시를 위해 해당 분야에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일정 기간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전문가는 전문 분야에 맞는 일자리와 경력에 따른 높은 임금을 얻고, 기업은 특정 기간만 업무를 맡겨 채용 및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3000명의 시니어 전문가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두 중소기업 임원, 대기업 팀장 이상 등 한 분야에서 15년 이상 경력을 쌓은 고스펙 인력이다. 직업은 프리랜서가 가장 많지만, 기업에 재직 중이거나 사업을 운영하며 전문가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일회성 단기 자문부터 월 단위의 중·단기 프로젝트, 아웃소싱 등의 형태로 업무를 수행한다. 가장 많이 의뢰한 분야는 △마케팅 △경영전략·신사업 △영업·구매·유통 △IT △엔지니어링 △재무·투자 △인사·총무 순이다.
시니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원자가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후 기업과 전문가를 중개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지원자의 전문성을 검증하고, 1:1 인터뷰를 거쳐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해당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능력과 인품을 겸비했는지도 확인한다.
탤런트뱅크에 따르면 현재까지 8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성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업의 재의뢰율이 60%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회계·재무·관리 부문에서 6개월간 자문을 수행하면서 획기적인 매출을 달성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임원으로 채용된 사례도 있다. 단기 프로젝트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개인과 기업 모두 윈윈(Win-win)하는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공장환 탤런트뱅크 프로젝트 매니저는 “플랫폼 노동자라고 하면 단순노무직만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도 긱 경제를 활용할 수 있다”며 “고용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난 만큼 중장년층도 새로운 고용 형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탤런트뱅크의 시니어 전문가, 이렇게 일했다!
단기 자문 실버 사업을 준비 중인 금융 대기업 A사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전략 등 제반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자문이 필요했다. 이에 신사업 경험이 풍부한 S대 MBA 출신 전문가는 단기 자문을 통해 사업 계획, 비용, 수익 최적화 모델 등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전반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다.
진행 방법 보고서+1시간 설명회 비용 50만 원
프로젝트 전화 응대 과다 및 데이터 부재 등 업무 비효율이 발생한 콜센터 B사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IT 보안 업체 총괄 및 시스템 개발 등의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를 매칭했다. 전문가는 콜센터 데이터 분석, 운영 방안 제시 등을 통해 기업 내 경영 이슈를 해결했다.
기간 2개월 근무 형태 30회 방문 컨설팅 비용 총 900만 원
아웃소싱 C사 경영관리팀은 팀 내 분야별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등 조직 내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 3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경영관리를 담당한 전문가를 아웃소싱 형태로 고용했다. 전문가는 재무·인사 등 분야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총망라하고, 직장 내 교육을 병행해 전문지식을 전수했다.
진행 방법 5개월 풀타임 비용 월 500만 원
◇ 중장년 크리에이터 도전, ‘클래스101’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 비법 등을 기업이 아닌 불특정 대상에게 전수하는 방법도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서다. 대표적으로 MZ세대에게 각광받고 있는 ‘클래스101’은 기존 온라인 교육 시장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통해 크리에이터와 수강생을 연결하고 있다. 음악·미술·운동 등 취미 관련 강의부터 부업·재테크 노하우, 업무 능력 향상 등 일 잘하는 방법, 인문·사회·예술을 비롯한 교양 강의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2021년 2월 기준 1200개가 넘는 클래스가 개설되었으며, 누적 크리에이터 수는 7만5000명이 넘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N잡러’(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회의 땅 같은 곳이다. 수강생은 평소 관심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해 부업이나 창업을 도모할 수 있고, 크리에이터는 한 분야에서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부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를 통해 얻는 수익은 꽤 쏠쏠하다. 클래스101에 따르면 강의 개설 첫 달 크리에이터의 평균 수익은 약 650만 원이며, 그중 가장 인기 많은 크리에이터 3인의 월 평균 수익은 무려 1억6000만 원에 달한다.
온라인을 활용한 플랫폼인 만큼 20~30대 크리에이터가 대다수지만, 중장년 크리에이터도 분야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6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한 재테크 카페 운영자 송창희 대표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직접 투자 공부를 하며 자산을 불렸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부동산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년간 방송작가로 일한 이윤영 작가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갱 와인 디렉터, 오중석 사진가, 이양지 요리연구가 등 각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이들이 크리에이터로 활약 중이다.
강의는 연령과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만들 수 있다. 강의 개설은 두 달 정도 걸린다. 먼저 제작하려는 강의가 얼마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일주일간 수요 조사를 진행해 반응을 살핀다. 이후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일주일 동안 실제 판매 추이를 분석해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 계약 기간에 꾸준히 수익을 정산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강의를 개설하는 것이다. 해당 과정을 거쳤음에도 수익을 얻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은 클래스101 측에서 지불한다.
은퇴 후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이라면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강의를 수강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며느리가 만든 브이로그 영상을 보며 ‘작은 영화’ 같다고 느낀 60대 이나경 씨는 클래스101을 통해 영상 편집 강의를 수강하고 시니어 유튜버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재능이 돈이 되는 시대, 수십 년의 관록으로 빚어낸 중장년의 전문성과 지식은 긱 잡 시장에서 탐날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그 규모와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은퇴 후에도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재능의 값어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PLUS+] MZ세대 인기 프리랜서 마켓 ‘크몽’
2012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재능 프리랜서 마켓 ‘크몽’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MZ세대의 놀이터다. 전문가로 등록하면 디자인부터 IT·프로그래밍, 영상·사진·음향, 마케팅, 통·번역, 문서·글쓰기 등 무형의 재능을 판매할 수 있다. 또 사주와 궁합까지 사고팔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전자책’ 출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책은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를 글로 작성한 뒤 PDF 파일로 공개하는 것으로, 한 번의 출간으로 소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은 대략 1000원부터 3만 원까지 다양하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안구건조 이겨내는 노하우’, ‘하루 생산성 극대화하는 방법’ 등 자신만의 비법을 담은 이야기도 전자책으로 만들 수 있으니,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도전해봐도 좋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하늘길이 닫혔고, 각자 꿈꾼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은 새로운 여행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방구석에서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매일 지나는 동네에서 숨겨진 명소를 찾는 재미를 발견했다. ‘이런 것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관광이 되고, 산업으로 성장했다. 여행이 달라졌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정보 기업 부킹홀딩스가 최근 전 세계 28개국 2만여 명의 여행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21년부터는 총 9가지의 여행 방식이 대중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온라인 여행 ▲기술을 접목한 여행 ▲근거리 여행 ▲안전한 여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에 발 도장을 찍는 대신 익숙한 장소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기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현실감 최강’ 대세는 몰입형 콘텐츠
코로나19 이후 주목받고 있는 여행 방식은 ‘랜선 여행’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통해 즐기는 여행으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새롭게 떠오른 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의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콘텐츠다. 크리에이터가 특정 주제를 설정하고 이에 맞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기하는 롤플레잉 ASMR 영상은 유튜브에서 꾸준히 관심을 끄는 콘텐츠 중 하나다. 이어폰을 착용한 뒤 눈을 감는 순간, 원하는 곳 어디로든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 ‘공항 ASMR’, ‘비행기 ASMR’은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고 실제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승무원의 말소리부터 탑승 안내 방송, 공항 특유의 시끌벅적한 느낌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오랜 ‘집콕’으로 유튜브가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진짜 여행지를 구경하고 싶다면 각국 관광청 홈페이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두바이 관광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의 관광지를 360도 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으로 홍보하는 몰입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호주 관광청의 ‘8D로 체험하는 호주’ 영상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에스페란스 해변에서 돌고래가 뛰노는 소리,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페어리펭귄이 이동하는 소리, 킴벌리의 호라이존탈 폭포 소리 등 현장에서나 들을 법한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소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세계의 문화 예술을 실감나게 접하는 방법도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처’는 구글과 제휴한 주요 박물관 2000여 곳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상현실(VR)과 거리 뷰 기능을 통해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과 도서관을 360도로 산책하듯이 둘러보고, ‘아트 카메라’ 시스템으로 작품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다. 앱을 다운받으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아트 프로젝터’ 기능을 누르면 카메라 화면 속에 3차원 예술 작품이 나타나 서 있는 곳을 박물관으로 만든다.
랜선 여행의 진화는 어디까지? 실시간 현지 투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여행 분위기를 내는 것을 넘어 이제는 집 안에서 ‘진짜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여행사와 숙박업소 등 관련 산업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대면·비접촉 여행 관련 각종 상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집에서도 패키지 관광이 부럽지 않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상품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이리얼트립은 최근 해외에 거주 중인 여행 가이드들이 실시간으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랜선 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실제 여행사 프로그램처럼 이용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생동감 넘치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 소도시 세고비아의 골목을 둘러보는 여행부터 홍콩 야경 투어, 로마 시내 워킹 투어 등 콘셉트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투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투어에 참가한 이용자들은 “실제로 가이드와 함께 걷는 기분이다”, “집에서 ‘치맥’하며 바르셀로나를 둘러보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등 만족스러운 후기를 남겼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 체험’을 선보였다. 각국의 호스트들이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이용자들에게 각국의 문화·예술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승려와 함께하는 명상, 현직 멕시코 셰프의 타코 수업, 고고학자와 이탈리아 와인 역사 배우기 등 원하는 체험을 선택하면 현지인과 생생하게 교류할 수 있다. 가격은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대개 2~4만 원대다.
한편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항공(JAL)은 최근 대면 형태로 실시하던 비행기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전환하고, 인쇄업체 톳판인쇄사는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일본 유명 문화재를 온라인으로 견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최대 여행사 JTB도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투어 서비스를 도입했다.
나만 아는 여행지, 숨은 명소를 찾아서!
콧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구석 여행에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파가 바글바글한 ‘핫플레이스’를 갈 수도 없는 노릇. 이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숨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국내여행 의향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기존 유명 관광지보다 숨겨진 여행지나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여행할 것’이라는 응답이 1순위로 높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지난해 ‘언택트 관광지 100선’을 내놓았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개별 여행 및 가족 단위 테마 관광지 ▲야외 관광지 ▲자체 입장객수를 제한하는 관광지 등 거리두기 기준을 충족하는 여행지를 모아놓은 목록이다. 여행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곳의 여행지를 천천히 살펴보면, 생소한 관광 명소가 눈에 띄면서 우리나라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차박’도 새롭게 부상한 언택트 여행 문화다. 차에서 관광과 숙박을 모두 해결하는 차박은 거리두기에 최적화된 여행이다. 차로만 방문이 가능한 이색 명소를 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카페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의 추천에 따르면, 차박의 대표 명소는 충북 충주 목계솔밭이다. 광활한 대지에 화장실과 개수대 등 편의시설을 모두 갖춰 그야말로 차박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충주 수주팔봉 캠핑장과 삼탄유원지, 양평 광탄유원지, 여주 신륵사 등이 차박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숨은 여행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뉴노멀 시대의 또 다른 트렌드는 동네 걷기 여행. 동네 걷기 여행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는 카카오TV의 웹 예능 ‘밤을 걷는 밤’이다. 밤을 걷는 밤은 가수 유희열이 서울의 밤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익숙한 거리에서도 색다른 매력을 찾아내 보는 묘미가 있다. 때로는 정해진 방향 없이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우연히 멋진 풍경을 만나면 멈춰서 감상도 한다. 부담 없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듯한 편안한 콘셉트 때문인지 2020년 12월 기준 누적 조회수가 560만 회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언제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까. 아직은 미지수다. 이렇게 애쓰며(?) 노는 게 마스크 없이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배낭을 챙기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수 있다.
마당에 널어둔 육쪽마늘 씨알이 참 굵다. 주말 내내 마늘을 캤으니 온몸은 쑤시고, 흘린 땀으로 눈은 따가워도 수확의 기쁨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 이틀간 내 손같이 쓰던 ‘마늘 창’을 놓으니 가뿐하면서도 무언가 허전하다. ‘마늘 창’이란 모종삽보다 조금 큰 손잡이에 쇠스랑보다는 작은 창살이 두 개 혹은 세 개 달린 농기구다. 꼭 50년 전 이즈음, 마흔이 되기 전의 젊은 부모님과 마늘이며 감자를 캘 때에는 없던 녀석이다. 하얗고 통통한 마늘에 앳된 소년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시골 소년답지 않게 뽀얀 피부의 소년이 삽과 호미로 열심히 마늘을 캐고 있었다.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조례시간에 담임에게 호명이 되었다. 급우들 형편이야 다들 비슷한 처지였건만, 이번 분기에는 어찌 다들 납부하고 몇 명만 미납이었다. 마늘을 캐서 팔아야 수업료를 낼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소년은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에도 마늘 캐기에 열심이었다.
상고에 진학해서 농협 직원이 되어 가계에 보탬이 되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맏이는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평소 남편 의견에 무조건 순종하던 어머니는 맏이의 대학 진학과 관련해서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머니가 자기주장을 그토록 강하게 하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지막이자 두 번째는 여동생을 대학에 보낼 때였다. 인근 조선소에서 깡깡이(녹슨 배에 페인트칠을 하기 전에 망치로 녹을 떼어내는 작업)를 하고, 쉬는 날에는 농사를 지으며 손톱이 빠지도록 일한 어머니의 교육열은 아버지도 말릴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망치로 녹을 떼어내는 일을 하고 돌아온 어머니의 덜덜 떨리는 손을 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 뒤에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과외 교사와 학원 강사를 병행해야 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유학생의 처지는 다 비슷했으리라. 대학생활 내내 과외와 학원 강사를, 그리고 운 좋게도 졸업 전에 취업해서 월급을 받았지만 늘 지난한 삶이었다. 농사로는 가족 건사가 힘들어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사고로 몸져누웠고,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와 7남매를 혼자서 건사할 수 없었다. 첫 월급은 23만 원,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버지 병원비와 동생들 학비를 위해 집으로 송금했다.
36개월 군대를 마치고, 복학해서 재학 중 취업하고 1년간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한 뒤에 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 입학식에는 와보지 못했던 가족들이 졸업식에는 모두 상경해 함께했다. 거리 사진사에게 2000원인가 2500원인가를 주고 찍었던 가족사진은 아직도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다.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참 환하게 웃으며 학사모를 쓰셨다. 어머니에겐 그게 고된 삶의 보상이었으리라.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게 삶의 우선순위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술독에 빠져 살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사고를 당했던 아버지처럼 되기는 싫었다. 손으로 밤낮없이 바닷물에 녹슨 페인트 덩어리들을 쳐대는 노동으로 남자보다 거친 손을 한 어머니.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막냇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던 1986년, 동생 등록금을 납부해주면서 항상 어깨를 짓누르던 장남의 책임에서 조금 가벼워졌다. 동생들도 졸업하고 취업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고 어머니도 드디어 깡깡이를 그만둘 수 있었다.
장남 대신,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라는 책임이 더 깊어졌다. 부서 경리로 일하던 아내와 사내 커플로 만나서 결혼했다. 회사 비품 하나도 살뜰히 아끼고, 부서 살림을 맵짜게 운영하던 모습에 반했다. 연애는 짧았어도 이 여자가 내 일생의 반려자다 싶었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결혼 후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억척스레 일했다.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1986년부터 1988년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아시안게임부터 올림픽까지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참여했고, 참여 팀의 주요 팀원 중 하나였다. 건국 이래, 아니 단군 이래 가장 큰 행사가 내 손을 거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밤낮없이 일했고, 주말도 잊은 채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련한 일이었다. 또한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두 아이의 육아를 아내에게 맡긴 채 회사 일에만 몰두했으니, 그래서 지금은 항상 아내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회사 일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아내의 희생 덕분이긴 했지만, 두 아이가 잘 자라고 있었고, 생애 처음으로 ‘내 집’, 아니 ‘우리 집’이 생겼다. 서울 외곽의 작은 주택이었지만 사글세도 전세도 아닌 ‘우리 집’이었다. 아이들이 벽에 낙서를 해도, 대문을 꽝 닫아도, 마당에 오줌을 싸도 한소리 듣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라면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며 아내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침엔 영어학원, 저녁엔 중국어학원에 등록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라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는 없었다. 특히 외국과 일하는 것이 많은 업무 특성상 영어는 기본이고, 점점 발전하고 있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은 미수교국이지만 조만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2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자마자 회사에서는 중국 지사 설립과 중국 공장 설립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팀을 중국에 파견했다. 팀장이 되어서 중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장기출장 가방을 싸주며 근심이 가득하던 아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공산국가, 적대국의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지사가 설립되고 3년 뒤에 중국에 온 아내는 생각과 달리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1997년까지 중국에서 발판을 다지고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성과에 맞는 승진 자리를 얻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모든 기대를 베어버리는 IMF 구제금융 시대가 닥쳤다. 자고 일어나면 부도 소식이 들렸다. 재무 쪽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달러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다들 혈안이었다. 달러 부족으로 흑자도산하는 기업들도 부지기수였다.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칼날 위를 걷는 듯했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고,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불편한 시기. 자칫 썰려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작두 위에서 위태롭던 시간이었다.
혹독한 시간, 책상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자리는 지키지 못했다. 핵심 인력이라 생각했던 내가 자르다 남은 인력이 되어버렸다. IMF의 파고는 조금 작아졌지만 개인들에게는 정말로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살얼음을 걷는 하루하루, 눈을 감으면 아내가, 눈을 뜨면 아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 것 같은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어머니, 7남매의 무탈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이마에 주름 하나를 더 늘릴 수는 없었다.
엄혹한 시절이 지나고 조금씩 훈풍이 불었다. 훈풍을 따라 IT벤처 열풍이 불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부터 인터넷 기업, 닷컴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이내 한국에도 수많은 IT 기업들이 강남 테헤란로를 점령했다. 회사에서도 젊은 직원들을 모아 새롭게 도전해볼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20~30대 젊은 직원들이, 그것도 IT 관련이나 기술 관련 전공자들이 젊은 혈기로 뛰어드는 사업이라는 이미지를 ‘벤처’ 기업은 갖고 있었다. 이미 십수 년간 조직에 몸담아 회사원으로 살아왔던 구태가 몸에 밴 사람들이 섣불리 도전하기 쉬운 게 아니었다. 회사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게 IMF를 넘기고 새롭게 투자하는 사업인데 아직 혈기왕성한 젊음만 믿고 도전하는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회사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남는 인력이었고, 그대로 버티고 있는다고 다시 원하던 자리가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꼰대’ 소리 듣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더 늦기 전에 도전을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잘린다고 어디 가서 밥이야 굶겠는가. 아직 초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이 걸렸지만 마지막 도전이다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큰 결심이었다.
사내 벤처팀의 사업계획서를 보았지만 처음엔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십수 년간 해온 일과는 전혀 접점이 없던 사업 계획이었고, IT 분야는 전혀 알지 못했다. 주판을 쓰고 수기로 장부와 기획안을 쓰던 시기에 입사해서 경리가 타자를 쳐주던 시기를 지나왔다. 독수리 타법은 벗어났고 워드프로세서 정도는 다룰 수 있었다.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듯이 이제는 젊은 직원들에게 단어 하나하나, IT 관련 사업 하나하나를 배워가야 할 때였다.
많게는 스무 살, 적게는 띠동갑 정도 되는 직원들은 세대 차이를 넘어서 나에겐 아득한 존재들이었다. 오렌지족, X세대 등으로 불리던 그들은 나와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여동생이 대학에 갈 때,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던 우리 어머니가 느끼던 그 감정 같은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 감정보다 더 멀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꼰대짓’을 하는 것만큼이나 보기 흉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20대 때, 30대 때 열심히 일했던 나처럼, 벤처팀들도 자기 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이 중요했다. 대신 적절한 예산과 범위 내에서 그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되는 것이다. 닷컴 버블과 시작된 사내 벤처는 의외로 성공을 거두었고 젊은 청년들이 성공담에 한 줄을 보탤 수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지만 함께했던 청년들은 지금 여러 곳에서 맹활약 중이다. 가끔씩 들려오는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분당에서, 강남에서 밤을 새던 때가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사업 론칭이 성공하고 나서 다시 본사로 돌아왔고 중국 지사에 다시 갔다. 3년 후에 본사로 돌아오니 지천명을 넘긴 나이가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부속품처럼 25년 가까이 일하고 배터리처럼 방전되었다. 정년을 5년 남짓 남긴 그때, 회사 내 권력에서 밀려나 있어서 임원이나 사장단에 도전하기에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도전할 여력이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바쁘게 살아온 시간에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두 아이는 스무 살을 넘어 성인이 되었으니 제 앞가림을 할 터였다. 늦은 나이에 방통대에 입학한 아내는 그동안 하고 싶어 했던 상담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이제는 진짜로 잉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출근길도 퇴근길도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건강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술과 폭식으로 인한 고혈압에 고지혈증, 당뇨까지. 쉰을 넘긴 몸은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IMF 시절 이후 다시 백척간두에 선 느낌이었다. 시간은 갈수록 빠르게 지나가고 머지않아 환갑을 넘길 텐데 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부모님 세대의 쉰과 우리 세대의 쉰은 다르다. 또 우리 뒷세대, 그리고 지금 20대가 쉰이 되었을 때의 그 ‘쉰’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나이와 직급에 얽매여 권위를 찾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벤처 일을 할 때 깨달았다.
이 나이쯤엔 이 정도 재산이나 이 정도 사회적 직위를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사회적 관습에 의한 고정관념이었다. 20대에 대학을 가고, 30대에 결혼을 하고, 40대에 내 집을 갖고… 이렇게 컨베이어벨트처럼 이루어진 한국인들의 삶을 한 장면으로 나타내며 비판하는 카툰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정해진 대로만 산다면 60대에는 손주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참으로 평범하게 모나지 않게 살아온 50년이었다면 이제 남은 생은 그 컨베이어벨트에서 이탈해서 다른 곳에는 뭐가 있는지 살펴보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은퇴에 대해 처음으로 아내와 이야기했을 때 아내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당신처럼 꽉 막힌 일벌레가 이런 생각도 하다니 대견하다면서.
정년은 금방이었다. 30년 넘게 일했으니 미련이 없을 만도 한데 사원증을 반납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과 술을 마시면서 처음으로 취한 날이기도 했다. 시원함 반, 아쉬움 반, 거기에 임원에 대한 미련 한 꼬집. 눈물이 핑 돌던 밤이었다.
퇴직 후에 딱 1년만 쉬자고 했지만 달리던 자전거는 그리 오래 멈춰서 쉴 수 없었다.
딱 가족이 먹을 것만 소일거리로 농사지으며 1년을 보내던 중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생활은 거리가 멀었다. 몸을 쓰고 현장에서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맥도날드 시니어 알바도 해보고, 편의점 알바도 해봤다. POS를 익히는 것이 제일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때 IT 벤처에서 일했던 가닥에 그 뒤로도 꾸준히 컴퓨터를 다루다 보니 온갖 할인이나 쿠폰을 다루는 데도 익숙했다. ‘아직은 청춘!’ 이런 마인드가 아니었다.
40년 전, 내가 스무 살 때는 없었던 일들을 해보며 우리 아이들과 주변의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패스트푸드점 복장과 편의점 조끼를 입은 나를 보며 아내와 아들들은 누구보다 좋아했다. 가족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족과 다시 하나가 되는 느낌, 참 오랜만에 받는 느낌이었고 이때부터 다시 나의 제2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같은 시기에 퇴사한 동기와 무역업을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다 잊어버린 중국어를 떠듬거리며 중국전자제품을 수입했다. 거창한 사업도 아니고 동기와 나 두 사람 소소한 용돈벌이로 시작했다. 그래도 저가 저품질 제품을 다량으로 떼다가 파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적정 가격의 적정한 품질의 제품을 파는 게 목적이었다. 사업을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 몇 년 새 규모가 커져갔다. 욕심을 부리지 말자,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자. 시작할 때의 다짐은 잊지 않고 지켜가고 있다. 주말 농장과 아내, 손주들과 함께할 시간은 빼두고 일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다운 할아버지가 지금 내 삶의 목표 중 하나다. 할아버지가 아닌 ‘노땅’이나 ‘꼰대’가 되는 것이 문제 아닐까? 푸근하게 가족과 이웃을 품어줄 수 있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다운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웃으며 시작한다.
이제 마늘을 엮어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둘 때가 되었다. 장마철을 무사히 보낸 마늘은 농막 처마 밑에서 더욱 단단하게 맵고 달달하고 향긋한 마늘로 익어갈 것이다. 그처럼 내 안의 할아버지가 더 할아버지다워졌으면 좋겠다.
전문가들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일자리 창출 전망은 긍정적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당사자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 조직, 기업 등이 함께 고민하고 발전을 도모할 때 서로 힘을 얻고 성공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다. ‘50+일자리 특별포럼’의 세 번째 세션 ‘대전환 시대, 50+세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50+와 기업의 상생 대응 전략을 알아봤다.
【50+】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주)의 이철종 대표는 다가올 시대에 중장년 근로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겸손한 마음과 포용적 태도를 꼽았다. 특히 디지털·그린 뉴딜과 함께 늘어날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기업 등 소규모 조직에서의 활동을 원하는 시니어라면 더욱 필요한 요소라고. 아울러 이들에겐 자칫 대기업이나 큰 조직에서 성공했던 1모작의 경험이 괴리감과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소기업에게 필요한 건 중장년이 한때 성공했던 경험이 아니라, 현재의 부족한 생산력에 하나라도 보태어줄 수 있는 실무 능력이다. 또 대기업에서 상용되던 기술이 그들에겐 별로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즉 소기업이 활용하는 업무 매뉴얼을 배우고, 그 안에서 생산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타트업 청년 리더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50+세대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으로 젊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다시 신입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실무를 배우고 실행함으로써 필요한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작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는 50+세대가 스타트업과 소기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래 경력 위한 경제참여형 디지털 업스킬링”
세계경제포럼(2016)에서는 디지털·그린 사회에 요구되는 역량으로 ‘복잡한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대인관계(관리)’ 등을 전망했다. 황윤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이러한 역량 가운데 복잡한 문제해결력이나 대인관계 등은 50+세대가 경험을 통해 이미 보유하고 있어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창의성이나 뉴미디어 문해력, IT 활용력 등은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황 센터장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비롯한 평생교육기관과 일자리지원기관 등에서 저마다 50+세대 진로 재설계를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시니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변화는 노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특히 디지털 활용 능력이 관건이다”라며 “메신저, SNS 활용이나 교통, 지도, 은행, 행정 서비스 이용 및 제품 구매 등 생활 기반의 50+세대 디지털 활용 능력은 우수하다. 반면 정보생산 및 공유, 경제참여 기반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격차가 벌어진다. 특히 긱 플랫폼 시대에 경제 참여 및 활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 역량이 필수인 만큼, 이에 대한 자가진단과 학습이 필요하다. 즉 미래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으로 남을 것인가, 업스킬링으로 무사히 전환할 것인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기업】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 위해 앞장서야”
50+세대가 갖는 불확실성에 대해 기업은 어떤 입장일까? 손승우 유한킴벌리 대외협력본부장은 “개인이 불안하듯 기업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소비자가 줄거나 변화해 정확한 미래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2010년부터 고령화 속도에 맞춰 시니어 비즈니스를 주요 사업으로 편입, 발전시키겠다는 계획하에 바지런히 혁신을 감행해왔다. ‘시니어가 자원이다’를 내 건 액티브 시니어 캠페인도 그 일환이다.
손 본부장은 “기대여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인데, 언제까지 생산연령인구를 64세로 한정해야 할까? 이를 재정의해 우리가 더 역동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고령자, 어르신, 노인 등의 호칭은 50+세대를 경제활동을 떠나 부양이나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10년간 회사의 공유가치창출(CSV) 활동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역동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중장년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사회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경험과 지혜를 양질의 비즈니스로 연계한다면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기업은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기업을 지원·협력하고, 시니어의 창의적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며 “시니어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인식하에 복지와 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적절한 구분과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겐 복지가 아닌 산업 차원의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는 시니어도 많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직장에서의 다양한 학습과 경험이 요구된다. 기업에서는 구성원이 은퇴 후 지역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자원봉사자로, 일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지역 커뮤니티나 NGO 활동 등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사전에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일자리 외에도 시니어 벤처기업 등이 생겨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앙코르 펠로우십, 기업과 50+, 사회가 윈윈”
황 센터장 역시 손 본부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향후 노동시장은 긱 워커, 프리랜서 등의 노동유랑민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환경 변화를 개인이 주도하기엔 어려우니 결국 회사나 제도적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독일의 유급학습휴가 및 청년을 위한 일·학습 병행제 등을 50+세대를 위해 변경,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역량 개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미국 앙코르닷오르그의 ‘앙코르 펠로우’ 프로그램은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다. 한 기업에서 퇴직을 앞둔 조직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좋은 일을 하도록 비영리단체 등에 파견하는 형태다. 사회적기업 등은 늘 사람이 부족하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데, 그런 어려움을 기업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퇴직자에게는 점프업 기회와 동시에 공익활동 경험을 선사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기능한다. 현재 50여 기업에서 활용 중이고, 지난 평가에서 약 95% 이상의 기관이 만족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사례에 착안해 사회공헌도 하고 퇴직자도 지원하면 좋겠다”고 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로 중장년의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다. 각 지자체와 기관, 기업 등에서도 역량 있고 전문성을 갖춘 시니어 인재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추세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미국과 일본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중장년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접목할 부분은 무엇일지 살펴보자.
참고 자료 한국산업인력공단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중·장년 특화 직업훈련과정 운영 개선방향」연구’ (2020)
◇ AARP ‘Back to work 50+’
AARP(미국은퇴자협회)는 2012년 50+ 세대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사업인 ‘Back To Work 50+’를 만들어 2013년에 콜로라도 덴버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 연합회와 협력해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Back To Work 50+’는 구직자를 각 지역에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해 구체적인 직업 기회를 연결함으로써 취업에 성공하게끔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의 커뮤니티 칼리지, 노동력 투자 위원회, 실업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 그리고 각 지역의 기업체가 협력할 여건을 조성 △구직자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단기 직업훈련 프로그램 제공 △직장 응시에 필요한 전략과 기술 습득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구직자에게 정부나 사회 차원의 재정지원 기회 알선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지역의 회사들이 50+세대 구직자 채용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는 등의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 AACC ‘The Plus 50 Initative’
AACC(미국 커뮤니티 칼리지 연합회)에서는 50+세대 학생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재취업 또는 커리어 변화를 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50세 이상에게 직업훈련과 커리어 개발에 필요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수 과정을 모니터하여 학위·자격증 취득까지 관리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50+세대를 대상의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5개 ‘멘토(mentors)’ 칼리지와 이들의 경험을 전수 받을 10개 ‘멘티(mente)’ 칼리지를 선정한다. 각 대학에서 개발하고 운영하는 취업·직업훈련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대학들과 공유하기 위해 ‘C-PAD’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 활용하고 있다. 50세 이상 학생들이 학습이나 취업과 관련하여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인 ‘Plus 50 Coach’ 또는 Plus 50 Advisor’를 두고 고령의 학생들이 대학을 잘 마무리하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도쿄일자리센터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
도쿄일자리센터는 도쿄 도민의 고용과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직자와 기업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 설립됐다.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카운슬링 세미나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적성과 응모서류(이력서, 직무 경력서) 작성 등 취업 활동의 자세한 흐름을 모르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카운슬러의 개별상담을 진행한다. 특히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은 대기업·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능력을 가진 시니어(55세 이상)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한다. 희망자는 먼저 도쿄일자리센터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방법’ 과정을 수강해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직무유형은 7가지 직종(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 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으로 구분된다. 취직에 성공한 시니어 중 전문성으로 직종에 합치된 경우는 약 70%이며, 비전문영역으로 취직된 경우는 30%다.
◇ 주식회사 퀄리티오브라이프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은 도쿄 소재의 민간 주식회사 퀄리티오브라이프(Quality of Life)가 2006년 11월부터 대기업 전문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 사람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조언자로서 경영지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50세 이상의 사람을 ‘생애 프로페셔널’로 임명하고, 기업의 여러 경영 문제를 자문하도록 지원한다. 이렇듯 시니어 전문가의 오랜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에 맞게 전담 코디네이터를 지원하여 평생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이 장점이다. 고문 소개 서비스를 활용하며, 가령 주 1회 출근 등 시니어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근무 형태의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 전담 코디네이터는 시니어 전문가의 경험과 희망하는 조건에 맞도록 중소기업을 소개하고 중소기업과의 조건 조정이나 계약 진행까지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