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 현빈, 장근석, 송승헌, 이영애, 송혜교, 고현정, 전지현, 손예진, 이병헌 등은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5000만~2억 원을 받는 스타들이다. 김태희, 수지, 유재석, 이승기 등은 광고 한 편 출연하는 데 모델료로 10억 원 안팎을 받는 톱스타들이다. 김수현, 이민호는 중국 CF 한 편 출연료로 20억 원 정도를 받는 한류스타다. 송강호, 하정우 등은 영화 한 편 출연료로 6억~7억 원을 받는 스크린 스타다. 엑소는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고척돔 하루 공연으로 티켓 수입 등 2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스타 아이돌그룹이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스타화의 경로나 연예인으로 발탁되는 유형이 모두 다르다. 이병헌은 KBS탤런트공채를 통해 발굴된 스타이고 이영애는 연예기획사 백기획에 의해 발탁돼 스타가 됐다.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이 계기가 돼 방송사 연기자가 되면서 스타가 됐고 전지현은 정훈탁 싸이더스 대표가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발굴해 스타로 부상했다. 이처럼 이들은 연예인 지망생에서 스타로 부상하기까지 과정은 각각 다르다. 이들이 스타가 되는 과정에 개입한 스타 시스템도 차이가 있다.
이병헌은 “나는 KBS탤런트공채가 없었으면 연예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KBS 공채로 연기를 처음 시작했고 이름이 알려져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영애를 발굴해 스타로 키운 백기획의 백남수 대표는 “잡지에 실린 이영애의 모습을 보자마자 스타 재목감임을 직감하고 영입했다. 연기 훈련부터 드라마 데뷔까지, 그리고 스타가 된 뒤로도 기획사가 관리했다”고 밝혔다.
이제 재능과 끼, 외모, 노력, 그리고 운이라는 변수에 의존해 우연히 스타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정교하게 체계화한 체제로 움직이는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으면 스타는 탄생할 수 없는, 스타는 만들어지는 시대다. 수많은 스타 뒤에는 엄청난 투자와 장기간의 교육, 치밀한 데뷔 전략, 주도면밀한 이미지 조형, 막대한 홍보 마케팅이 자리한다.
스타 시스템은 스타와 시스템의 합성어로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 중 일부를 발탁해 연기자나 가수로 키워 스타로 부상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스타의 생산, 거래, 활용, 관리,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메커니즘을 주관하는 체계를 스타 시스템이라고 한다. 저자 김호석 박사는 “스타 시스템은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을 최단 시간에 최대한 인기를 얻는 스타로 부상시켜 가장 높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체계”라고 설명한다.
문화산업 시장의 규모, 대중매체의 판도, 팬 층의 규모와 구성 분포 등에 따라 스타 시스템의 구조와 주체가 변해왔다.
KBS, MBC 등 방송사가 연기자와 개그맨 등 연예인을 선발해 전속제를 실시하던 1960~1980년대까지는 방송사가 연기자를 발굴, 유통, 관리하며 스타 시스템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스타의 신변이나 스케줄 관리 등 부차적 업무를 수행했던 연예기획사와 매니저는 1990년대 방송사 연기자 공채가 사라지면서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부상시키고 스타의 이윤창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스타 시스템의 핵심적인 주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95년 가수 출신인 이수만 대표가 설립한 SM엔터테인먼트가 CAA(Creative Artist Agency) 등 미국 유명 스타 에이전시와 쟈니스(ジャニ-ズ )프로덕션을 비롯한 일본 프로덕션 등 스타를 양성하고 매니지먼트를 하는 선진 스타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면서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안착하게 됐다.
이수만 SM 대표는 “미국에 유학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고 스타를 키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한국에 돌아와서 체계화하고 전문화된 스타 시스템을 도입해 만든 것이 바로 SM엔터테인먼트”라고 SM 설립 배경을 말했다.
SM 설립 이후 DSP미디어,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가수와 아이돌그룹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연예기획사가 속속 등장했다. 한편으로 영화배우, 탤런트 등 연기자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싸이더스, 에이스타스 등 연기자 전문 연예기획사도 지속해서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한 연예인이 연기, 음악, 예능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일반화하면서 스타 시스템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연예기획사들도 가수와 연기자, 예능인 등 다양한 연예인을 양성하는 종합 연예기획사로 변모했다. 연예기획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드라마, 영화, 음반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명실상부한 스타 시스템의 핵심으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SM, YG, FNC, JYP, 싸이더스, 키이스트, 나무엑터스, 웰메이드 예당, DSP미디어, BH엔터테인먼트,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등 중대형 연예기획사들이 한국 대중문화 판도를 주도하는 스타 시스템의 주역들이다.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는 “과거에는 영화사나 방송사가 신인을 발굴해 스타를 만드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연예기획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스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연예기획사가 전문적인 스타 양성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며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톱스타로 활동하는 전지현, 김태희, 비, 이민호, 김수현, 수지, 엑소, 빅뱅, 소녀시대 등이 모두 연예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스타들인 것만 봐도 연예기획사의 위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연예기획사들이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스타로 만드는 스타화 경로 역시 근래 들어 전문화하고 체계적으로 변모했다. 오디션, 길거리 캐스팅, 미인대회, 오디션 프로그램, 인터넷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연예인 지망생을 연습생으로 뽑은 뒤 2~6년 동안 연기, 댄스, 노래, 예능 개인기 등을 교육한다. 연습생 생활을 마친 뒤 TV, 광고, 영화, 콘서트, 뮤지컬 등을 통해 신인으로 데뷔시켜 연예인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리고 인기를 얻는 사람을 스타로 키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노력, 시간이 투여된다.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방송무대를 통한 데뷔까지 비용은 엄청나다. 지난해 10월 보고서 ‘스타가 되기까지’를 발표한 흥국증권 최용재 연구원은 “5인 멤버의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데 약 1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5인이 2~3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보내는 데 5억 원 정도 들어가고, 사전 마케팅부터 KBS, MBC 등 지상파 3사 음악방송 활동까지 6주간의 데뷔 활동 기간에 소요되는 비용이 5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연예기획사들은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스타들의 위기 관리도 담당한다. 대중의 비난을 불러왔던 스캔들로 추락할 위기에 몰렸던 이병헌 등 수많은 스타가 연예기획사의 뛰어난 관리로 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중국,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 연예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2PM의 닉쿤, 미쓰에이의 지아·페이,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엠버, 트와이스의 쯔위 등이 연예기획사 중심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교육받고 국내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다. 최고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로 활동하다 탈퇴를 선언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크리스, 루한, 타오도 SM엔터테이먼트에서 육성됐다.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는 “스타를 육성하는 체계화된 한국 스타 시스템은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은 외국으로까지 수출되고 있는 한류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스타 시스템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노예계약’으로 명명되는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과 인권침해, 미성년자 연예인의 학습권 미보장, 소속 연예인과 연습생에 대한 성폭행 등 일부 소속사 관계자의 범죄 등이 연예기획사 주도의 스타 시스템이 명실상부한 선진 스타 시스템으로 도약하기 위해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에도 적지 않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특히 신중년들의 젊은 시절을 수놓았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중견 스타들이 활동 무대를 하늘나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 김광한입니다!”매력적인 저음으로 팝음악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한 뒤 다양한 팝 음악과 정보를 제공해 1980~1990년대 많은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DJ 김광한이 지난 7월 9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69세. 1980~1990년대 중고생 시절을 보내고 청춘을 꽃피웠던 40~60대 신중년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적신 스타 DJ 김광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죽는 순간까지 DJ로 살았던 김광한은 1966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라디오 DJ로 데뷔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1979년 박원웅이 진행한 MBC 라디오 에 게스트로 나서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80년 TBC 라디오 의 DJ로 전격 발탁돼 본격적인 DJ 활동을 펼쳤다.
그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KBS 2FM 을 12년간 진행하며 명쾌하고 풍부한 해설과 다양한 정보와 함께 팝 음악을 전달해 많은 팬을 확보했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5월까지 CBS 표준FM 를 진행하며 DJ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KBS 라디오 을 이끈 김광한은 MBC 라디오 로 유명한 김기덕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1980~1990년대 팝 음악 팬들을 양분했다.
김기덕은 “김광한씨는 라디오 DJ의 신화이자 전설이다.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청취자들에게 심도 있는 팝 음악 해설을 해줘 청취자들의 음악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생전에 몇 차례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광한은 “방송에서 팝 음악 프로그램이 많이 사라져 아쉽다. 대중음악의 발전은 다양한 음악을 수용해야 발전하는데 너무 획일적으로 가요 위주의 음악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편성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의 영원한 김 형사, 김상순도 우리 곁을 떠났다. 김상순은 지난 8월 25일 폐암으로 7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52년간의 연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김상순은 지난 1963년 KBS 공채 탤런트 3기로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에 접어들었고 1971년 시작해 1989년 끝난 드라마 에 최불암, 조경환 등과 함께 형사로 출연해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또한, 농촌 드라마 (1990)를 비롯해 (1992), (1995), (2001), (2003), (2004), (2005), (2007) 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개성적이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에서 연기를 함께했던 최불암은 “김상순씨는 동료 연기자들을 편하게 해줬다. 수더분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연기와 생활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사실적인 연기에 뛰어났다. 시절, ‘김상순은 현장에 지나가는 강아지들까지 다 알아보고, 챙겨주는 꼼꼼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세심한 편이었다.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결국 못하고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다”라고 애도했다.
김상순이 주연을 맡은 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고현정은 “제가 연기를 시작한 에서 김상순 선생님이 제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는데 자상하게 연기를 알려줘 매우 고마웠다”라고 회고했다.
, 등 드라마 촬영장에서, 그리고 사석에서 몇 번 만났던 김상순은 “배 기자, 연륜 있고 연기력이 뛰어난 장·노년 연기자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줘요. 드라마와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까지 장·노년 연기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큰 역할을 했어요”라고 당부하곤 했다.
에 출연했던 중견 연기자 또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화란이다. 2년 전부터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귀촌 생활을 하던 김화란은 지난 9월 18일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향년 53세.
김화란은 1980년 MBC 공채 탤런트 12기로 데뷔한 뒤 에 여순경으로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 때는 동시에 드라마 4개에 출연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2009년 영화 에 출연했다. 2년 전부터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귀촌 생활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지난 5월 방송된 MBC 휴먼다큐 에 출연해 행복한 귀촌 생활을 보여줬다. 남편 박상원씨가 거액의 사기를 당하고 위암까지 걸리자 김화란은 35년간의 연기자 생활을 접고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김화란은 “제가 남편에게 그랬어요. 인생 공부 참 비싸게 했다고 생각하자.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건강하게만 살자. 그러고 여기 왔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운 거예요. 신랑한테 ‘우리 2년만 빨리 내려올 걸 그랬어요’라고 했어요. 정말 왜 이런 생활을 몰랐을까 생각했죠”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귀촌 생활에 만족했다. 그러던 김화란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숨을 거두자 그를 아끼던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중견 배우 진도희 역시 올해 숨을 거둔 대중 스타 중 한 사람이다. 진도희는 지난 6월 26일 췌장암으로 66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등의 작품에 출연한 에로배우 진도희(본명 김은경)와 예명이 같아 오해를 많이 산 중견 배우 진도희(본명 김태야)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진도희는 동국대 재학시절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71년 MBC 공채 4기로 박영지 등과 함께 TV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도희의 1년 후배 MBC 공채 5기 탤런트로는 고두심, 이계인, 박정수 등이 있다.
진도희는 TV를 떠나 1972년 영화 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대중에게 영화배우로서 존재를 알린 뒤 이후 (1972), (1972), (1972), (1973), (1973), (1973), (1974) 등의 주연을 맡으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 당시 진도희와 함께 활약했던 여자 배우로는 나오미, 우연정, 최정민, 윤세희, 윤미라, 박지영, 오유경 등이 있었다. 특히 진도희는 1970년대 미남 스타인 신성일, 신영일, 신일룡 등과 연기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었다. 서구적인 외모와 육체파 여배우로 남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혼과 함께 연기를 그만둔 진도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10월 2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15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는 은관 문화훈장을 받는 원로 코미디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부인 이영숙씨가 시상대에 올라 “감사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남편이 훈장 수상 소식을 저승에서도 반가워할 것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바로 지난 8월 31일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본명 이백천)이다. 남성남은 악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MBC 에서 남철과 콤비를 이뤄 콤비 코미디언 시대를 활짝 열었다. 두 사람이 춤 동작 하나하나를 똑같이 하며 추는 ‘왔다 갔다’춤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유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부조화 속에서 기막힌 웃음을 엮어내는 이기동과 권귀옥 콤비, 속사포 만담 달인 장소팔-고춘자 콤비와 차별화해 남성남-남철 콤비는 싱크로율이 높은 행동과 퍼포먼스로 큰 웃음을 줬다. 아픈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코미디언 행사와 무대에 올라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수십 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 코미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김광한, 김상순, 김화란, 진도희, 남성남이 2015년 이 세상을 떠났다. 하늘나라에서 지상에서 못다 한 연기와 활동을 원 없이 펼치기를 기원해본다.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흔히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논어(論語) 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나이 50에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천명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 혹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50은 하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응하거나 객관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깨우치는 나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물리적 시간이다. 그렇다면 한 직업을 50년 넘게 했고 그 일을 여전히 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직업에 임할까.
우리 시대 최고 연기자로 꼽히는 이순재(79), 최불암(75), 나문희(74), 김혜자(72). 이들은 50~59년 동안 연기자로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무대와 TV, 그리고 영화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연기자라는 직업을 지천명의 세월 동안 행해온 이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연기라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한 이순재는 1956년 연극 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1년 KBS 개국 드라마 를 통해 TV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힌 뒤, 1965년 영화 로 영화계까지 진출했다. 이후 연극,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왕성한 연기 활동을 하는 이순재는 요즘에도 SBS 사극 , 연극 에 출연하고 있다. 이순재는 근래 들어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또 다른 면모를 보이며 젊은 시청자로부터도 사랑받고 있다.
대학 졸업 후 59년 동안을 연기자로 살아온 이순재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선 신인상 부문이 없어요. 왜냐하면, 관객은 배우가 스크린에 나서는 순간 신인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연기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연기자는 신인이든,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든 출연한 작품의 연기로만 평가받아요. 연기력은 연차 순이 아니기에 연기 경력이 오래된 사람도 출연한 작품마다 늘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안 돼요. 연기자는 새로운 작품에 임할 때 연기 경력과 상관없이 백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이순재는 59년이라는 오랜 세월 연기를 해 기교는 늘었을지 모르지만, 매번 임하는 작품마다 캐릭터와 출연 연기자들이 다르므로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경력이 오래된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순재는 “단 한 번도 촬영장에서 특별대우를 요구한 적이 없고 촬영에 늦은 적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공동 작업이고 그중 한 사람이라도 잘못하면 작품이 실패할 수 있으니까요. 대사 암기력에 문제가 생겨 NG를 반복적으로 내 다른 연기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그때가 은퇴할 시기예요”라고 말한다.
1961년 MBC 문화방송 1기 공채 성우로 방송계에 진출한 나문희는 1975년 TV드라마 등을 통해 드라마 연기자로 전업한 뒤 드라마에 전념하다 영화와 연극 활동을 병행하며 연기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7~8월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에 출연한 뒤 10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으로 관객과 만난다.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단 한 해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나문희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의 연기는 장르는 다르지만 작품마다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캐릭터를 체현하고 연기와 동선을 온몸으로 익혀야 하고 호흡도 조절해야 해요. 상대 배우와의 조화도 이뤄야 비로소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지요.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연기에는 왕도도 없고 경력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오랜 시간 연습하며 흘린 땀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때문인지 나문희는 54년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나 관객, 시청자가 “연기가 좋아졌다”고 하는 말을 가장 큰 찬사로 받아들인다.
나문희는 “사람들이 물어요. 연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요. 힘들지요.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오랜 시간 캐릭터 분석, 대사암기부터 출연 연기자와의 연기호흡 조율까지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에요. 그런데 막상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면 힘이 나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제 연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면 저 역시 정말 행복하지요. 제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설레며 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라며 웃는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최불암은 1967년 KBS탤런트로 특채됐다가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겨 , 등 수많은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또한, 영화 ,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도 만나고 있다. 최불암은 ‘국민 아버지’라는 타이틀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교양 프로그램 의 진행자로 나서 연기자 이외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 최불암은 “좋은 연기자란 자신의 감성과 이성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끝없는 수련과 날카롭고 냉정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때를 씻고 내가 아닌 그의 인물을 구현, 창조해서 그 인물의 특성과 영혼을 표출해야 하므로 배우에게는 혹독한 훈련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는 작품마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다르므로 경력에 상관없이 출연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1961년 KBS 1기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김혜자는 그동안 드라마 , , , , 영화 , , , 연극 , , 등 수많은 작품으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연극 로 11월 4일부터 12월 20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 홀에서 관객과 만나는 김혜자는 “‘연기의 달인’, ‘연기력의 대가’라는 수식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연기자는 지금 이 순간 관객이나 시청자와 만나는 작품으로만 평가받는 거니까요. 과거의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지금 하는 작품에서 똑같은 연기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지난 50여 년 연기를 했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관객의 눈이에요. 연극의 경우는 매회 연기에 대한 평가가 다르잖아요. 새로운 작품에 임할 때는 50년 경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작품에서 후배가 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면 전 그 후배에게 많은 것을 배워요”라고 말한다.
김혜자는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와 경력이 아닌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때가 은퇴할 시점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받는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 등 네 명의 배우는 연기자로서 50여 년의 한길을 걷는 것이 연기의 기교나 작품 분석에는 도움이 되지만 작품마다 캐릭터와 연기, 출연자가 다르므로 항상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과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다고 공통으로 강조한다.
연기 경력과 나이, 그리고 명성에 안주해 공부나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후배 연기자들과의 연기 조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연기력에 금세 문제가 나타난다고 했다. 네 명의 배우는“연기력은 연차 순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명한 어른이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늘 책을 읽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연습을 해라. 결국은 삶의 태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나이라는 권력으로 쇠한 것을 메우려고 하면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듣는 연습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게 바로 노망든 것이다. 좀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기를 그치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깨닫는다는 50여 년 긴 시간을 연기자라는 한길을 걸었으면서도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 등 네 명의 연기자는 황현산 교수의 말을 드라마, 영화, 연극무대에서 실천하고 있다.
연기할 때 나이와 경력, 명성을 권력화 하는 대신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첫 작품을 하는 신인처럼 노력하고 공부하는 연기자가 바로 이순재, 최불암, 나문희, 김혜자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자라고 평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