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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시대 백년해로는 헛된 꿈, “금실 좋은 부부만 살아 남아”
-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부부로 함께하는 세월 또한 늘어났다. 예언대로 120세 시대가 온다면, 길면 100년 가까이 배우자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부부 관계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따져보면 우리는 부모도 선택할 수 없고, 자식도 선택할 수 없다. 오롯이 선택 가능한 가족은 ‘배우자’뿐이다. 평생의 동반자로 택한 사람과 오랜 여생을 행복하게 사는 일, 노력 없이는 쉽지 않다. 이에 가정의 달을 맞아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을 만나 중장년기 부부 관계 해법에 대해 물어봤다. 김숙기 원장이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을 설립한 건 2000년. 그 시절만 해도 공공연하게 가족 갈등이나 부부 문제를 드러내는 문화는 아니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일쑤였고, 가족의 치부라도 드러내는 양 숨기고 회피하기 바빴다. 한창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깊어갔던 김 원장은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그는 직접 부부 갈등의 해결책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당시 우리 가정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가족 해체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IMF 직후였는데, 매스컴에서는 경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 내면에 가족 구성원들이 병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저는 결혼을 스물두 살에 일찍 한 편인데 ‘결혼 생활이 이런 건가?’라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다들 그러고 살아’, ‘애 보면서 참고 지내면 좋은 날 올 거야’라는 식으로 조언하더라고요. 제가 유난스럽다고들 했죠. 그런데 도저히 참고만 지낼 수가 없었어요. 나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터놓고 이야기할 장이 필요하다 느꼈죠. 그렇게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을 열게 됐습니다.” 부부 갈등, 자녀의 상처로 번지지 않도록 김 원장은 그렇게 20여 년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을 이끌며 가족 갈등, 그중에서도 특히 부부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당초 본인의 문제에서 시작했기에,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이 겪은 아픔도 치유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일을 하며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제가 원가족(김 원장의 부모와 형제) 관계에서 상처가 있었더라고요. 오롯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 사랑은 주로 오빠를 향해 있었고 저는 ‘착한 딸’, ‘말 잘 듣는 아이’가 돼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예요. 조건부 사랑인 거죠. 그런 결핍이 있었던지라, 남편을 만났을 때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지겠지’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신혼살림 장만하고 물질적인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정작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마음가짐은 결여돼 있었죠.” 막연히 시작한 결혼 생활은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 생활이 험난하게 느껴졌던 건 남편 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그런데도 당시엔 이런저런 갈등으로 부부 싸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 상황에서 피해를 본 건 다름 아닌 자녀들이었다. “가족 관계에서 핵심은 부부예요. 부부 관계가 안정적이라야 자녀들도 편안함을 느끼죠.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눈치를 보고, 불안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어요. 자존감도 결여되고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로 가족 상담 시간을 마련했어요. 아빠, 엄마, 아들, 딸 넷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의 상담사가 되어주었죠. 그렇게 회복하는 모습이 보이면 2주에 한 번, 그러다 한 달에 한 번, 이제는 분기별로 한 번 정도 진행해요.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는구나 느꼈던 건 10년 정도 됐을 때예요. 우리 가족은 상처가 참 많았거든요.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가족이라면 꼭 해야 할 일이죠.” 두 자녀가 30대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청소년기에 있었던 일화나 감정을 살피며 치유에 힘쓴다는 김 원장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부모의 태도. 자식일지라도, 오래된 일이더라도 사과할 일이 있다면 꼭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고 가족 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단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 어릴 때 부부 싸움하고 집을 나간 일 같은 걸 생생히 기억하더라고요. 그것도 어른이 된 이후에나 들었죠. 물론 우리 부부도 나름 사정이 있었지만, 그런 건 차치하고 아이들이 겪었던 감정에 대해 충분히 들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가족 대화의 날’ 같은 걸 만들어보셨으면 해요. 특별한 안건이 없어도 됩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겉도는 말만 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씩 자연스럽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죠. 어떤 분들은 자녀가 옛날 얘기를 꺼내면 ‘엄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식으로 반응하는데, 그러면 소통이 단절되고 말아요. 끝까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울기도 하며 보듬어줘야 치유됩니다.” 비난하지 않는 입, 경청하는 귀 자녀뿐 아니라 부부끼리도 서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 부부 갈등으로 상담을 청하는 이들을 보면, 대체로 일방적 소통이나 방어적인 태도 등이 문제가 된다고. 중장년 부부의 경우 ‘수십 년 이렇게 살았는데 고칠 수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훈련을 통해 개선 가능하단다. “두 가지가 중요해요. 먼저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를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배우자 때문에 속이 상한다면, 결국 그 감정의 주체는 나예요. ‘내가’ 속상한 거잖아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당신은 사람이 왜 그따위야’라는 식으로 말하면, 벌써 비난이 들어간 거예요. 그럼 상대는 ‘내가 뭘 어쨌다고?’라며 맞받아치고,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죠. 그러니 주어를 ‘나’로 두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렵다면 말 앞에 늘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느끼기에는’이라는 토시를 달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렇다면 듣는 입장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김 원장은 가급적 말하는 배우자의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하되, 선뜻 이해가 안 되더라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방어적인 태도가 문제예요. 그저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80%는 해결된다고 봅니다. 내 의견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 입장에서 경청하는 거죠. 내 관점만 인식하면 상대가 하는 말이 잘 안 들리고 따지려 들 수 있어요. 그렇게 한번 브레이크가 걸리면, 상대는 대화가 안 된다고 여기고 ‘아, 백날 얘기해봐야 소용없구나’라며 포기하죠. 그렇게 입을 닫게 되고 마음도 닫는 거예요. 다 들은 후에는 ‘이런 얘기를 해줘서 고마워’, ‘그동안 당신 심정이 어땠을까’라며 상대를 배려하는 한마디를 해주면 좋습니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부부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설사 갈등이 오래된 부부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 차차 좋은 관계로 거듭나게 된다. 김 원장은 “백세시대에는 결국 관계가 좋은 부부만이 살아남는다”고 언급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 황혼이혼, 졸혼, 별거 등 부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고. 과거에 비해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 활발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부부 갈등이 있더라도 자녀가 있을 땐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하려 해요. 그러다 자녀들이 출가하면 상황이 달라지죠. 60대 전후로 그런 시기를 맞게 되는데, 예전보다 수명이 훨씬 늘어났잖아요. 웬만큼 참고 살기엔 여생이 너무나 긴 거죠. 그러니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이혼을 택하는 거예요. 문제는 보통 이 시기쯤 남성들은 퇴직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를 느껴요.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주변인들과 소통하고 융화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편이죠.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로 노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요즘은 이런 위기감을 느끼는 남편분들이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너무 늦게 찾아오셔서 이미 아내의 마음이 떠난 상태가 적지 않아 안타깝죠.” 늘어난 황혼기, 제2의 신혼 맞이하길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김 원장이 우려하는 사안 중 하나는 비혼 인구 증가 문제다. 자신이 그랬듯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채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그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부모 세대에게 달렸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저출산, 비혼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죠. 단순히 자가 마련이나 양육비 같은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령 부모의 불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결혼 후 삶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힘들죠. 행복한 부부, 단란한 가정에 대한 롤모델은 바로 자신의 가족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이 부재하니 결혼 생활이나 양육이 두려운 거예요. 만약 자녀가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너는 왜 결혼을 안 하느냐’며 독촉하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우리 부부가 좋은 본보기가 됐는지, 가족 안에서 아이가 상처 입은 부분은 없는지 돌이켜보셔야 합니다.” 그는 가족이나 부부 관계를 점검해볼 수 있도록 건강검진 같은 형태의 사회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동시에 가정에서는 중장년 부부들이 관계를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녀들이 출가하면 가정 안에서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부부도 오랜 세월 함께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 테죠. 상대의 비인간적인 모습이나 되돌릴 수 없는 실수에도 마지못해 살아온 지경이 아니라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어요. 돌이켜보면 부부가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며 살았던 순간은 거의 없어요. 신혼 때는 양가 어른들 눈치도 보고, 효도한다고 신경 쓰고, 아이를 낳으면 키우느라 정신없고. 비로소 이제야 다른 것에서 놓여나 서로를 바라보는 위치가 된 거죠. 그런 면에서 제2의 신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가족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존재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정의 달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꼭 한 번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 2023-05-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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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과 단절 속,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
- “아무도 없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이 무채색이 되었다가 누군가 날 알아주면, 단 한 명이라도, 갑자기 숨이 쉬어지고 세상이 색깔을 입게 돼. 그제야 살아볼까 하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호 주제를 일찌감치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으로 잡고 여유를 부리던 필자는 마감이 점점 다가오면서 여러 목소리와 이야기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시댁 형님들과 나눈 대화방에서 글머리를 찾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큰형님! ‘하늘꽃’ 지고 ‘땅꽃’ 피는 계절 모진 서너 해, 역병 맞은 세상 꿋꿋하게 견디더니 긴 세월 품었던 설움 한꺼번에 폭발한 올봄. 산수유, 벚꽃이 천지사방 만발했습니다. 그동안 자기 순서 지키며 차례로 피던 봄꽃이 너나 할 것 없이 꽃망울 펑 펑 펑 터트렸으니까요. 긴 겨울 메마른 가지 애써 외면하면서 덩달아 하늘 볼 일 마다했는데, 마을마다 거리마다 천변(川邊) 따라 펼쳐진 꽃 대궐 덕분에 하늘 한껏 올려다보며 봄을 만끽했습니다. 필 때도 갑자기, 질 때도 후두둑 하더니 행여 아쉬울세라 영산홍, 철쭉, 민들레, 오랑캐꽃, 할미꽃까지 땅꽃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시샘이나 하듯 노랑, 보라, 진분홍, 연분홍 색색 향연을 펼치지 뭡니까.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을 5월엔 아마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담쟁이덩굴, 등나무 잎겨드랑이에서 주렁주렁 앙증맞은 꽃을 피우겠지요.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연결해 가득 충전해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 아닐까요. 이름 모를 혹은 이름 없던 꽃에 일일이 이름 붙여 불러주면 내게 다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낳아 이름 지어 명자야, 경희야, 향순아, 옥임아, 종섭아 부르고 또 부르던 부모.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부모.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어버이날, 스물넷 어린 새댁이던 필자는 같이 살던 시부모님 몰래 친정에 다니러 갔습니다. ‘힘들다, 시어른과 같이 지내기 참 무섭다, 엄마 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입 밖으로 하소연이 시작되려던 찰나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얼른 집에 가거라. 어른들 걱정하실라.” 아버지는 딸내미 옷차림새만으로도 허락 없이 왔다는 게 보이는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때는 참 서운하고 서러웠는데 철이 조금 든 지금 생각해보니 시어른들 눈 밖에 날까 봐 애틋한 마음 숨기고 서둘러 시댁으로 보내셨다는 걸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내 편’ 응원이 필요할 때면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좋아하는 배추전 잔뜩 부쳐주시면 손으로 주욱 찢어 양념장 콕 찍어 맛나게 먹습니다. 사랑 한가득 충전해 배부르면 그제야 웃음 찾아 돌아오곤 합니다. 아름다운 신부, 두봉 주교 올해 93세를 맞은 두봉(杜峰, 본명 르네 뒤퐁) 주교는 1969년부터 1990년 정년까지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냈습니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난 그의 한국식 이름 두봉(杜峰)을 풀면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라는군요. 극빈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였던 한국에 파견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어려운 나라로 가는 것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는 그는 마음 그릇 크기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꼬박 두 달 반 배를 타고 도착한 한국에서 스물여섯부터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헌신하고 봉사한 두봉 주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당시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 시절 한국 사람은 좋았다며, 그렇게 참담한 지경에 처했음에도 참 떳떳하고 친절하고 인간다운 인간이랄까 한국 사람이 풍기는 인상이 좋았다고 회고합니다. 불우한 청소년과 농민을 돌보고 교육하고 인권을 신장하는 일에 한평생 헌신해온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기쁘고 떳떳한 삶의 원동력 한국으로 선교 온 32년간 신부가 된 아들에게 매주 편지를 보내온 아버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자식을 한국에 바치는 입장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두봉 주교 품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편지를 쓴다. 친애하는 나의 작은 르네야. 나는 어둡고 흔들리는 외로움 속에 서서 편지를 쓰고 있단다. 여긴 비가 너무 많고, 한국에는 비가 너무 적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하늘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어머니도 떠난 텅 빈 집, 병상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삐뚤빼뚤 써 내려간 편지를 생전 아버지 대하듯 귀하게 여기는 두봉 주교. 특히 1986년 5월 9일 아흔이 되신 아버지가 부친 마지막 편지를 자주 꺼내봅니다. 보름에 한 번 프랑스로 답장을 보내던, 이제는 구십 훌쩍 넘긴 아들이 1986년 구십 아버지한테 시간여행하듯 답장을 합니다. “아빠, 고마워요. 내가 아빠 엄마로부터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 편지 30년 동안 계속 보내주신 것 고마워요. 난 아빠 엄마 너무 좋아.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영원히 행복하게 사실 거예요. 나도 언젠가 따라갈 거예요. 따라갈 때까지는 돌봐주시고, 그 다음에도 함께 기뻐할 거예요. 고마워요, 고마워.” 누군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두봉 주교는 생전이나 돌아가신 뒤나 아버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힘이 70년 가까이 낯선 땅에서 사랑을 나누고 헌신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누군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끼나요. 곁에 가족이 있어도 고립과 단절로 외로워하는 게 요즘 우리 모습입니다. 각자 방문 쾅 닫고 마음도 굳게 닫아걸고 말입니다. 열려고 있는 문인지, 닫으려고 있는 문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두드립니다. 문도 두드리고 맘도 두드려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숨통 트이고 휴, 살 만해지니까요. 진정 난 몰랐었네 다리가 불편한 아들에게 곁을 주지도,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은 엄마. 학교에서 직장에서 불구라고 차별받으며 서러움만 켜켜이 쌓여가던 아들. 남편마저 일찍 여읜 엄마는 아들이 약해질까 하는 노파심에 되레 강하게 키우려 했지만, 평생 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아파합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jtbc)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런 엄마가 덜컥 치매에 걸리면서 가족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고통은 증폭됩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은 엄마가 어느 날 요양원에서 사라집니다. 불편한 다리로 주변을 찾던 아들은 저만치 요양원 마당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치우는 엄마를 발견합니다. 자식 고생시키는 엄마에게 버럭 화가 났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 앞의 눈을 쓸어준 사람 가난했던 그때 달동네 꼭대기에 살던 모자는 한겨울 내리는 눈 때문에 엄청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등교할 때마다 누군가 깨끗하게 쓸어놓은 덕에 눈길을 넘어지지 않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랫집 아저씨가 눈 쓰는 모습을 본 아들은 ‘아, 저분이 그동안 눈을 쓸어주셨구나’ 합니다.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은 엄마가 습관처럼 눈이 오는 날이면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내가 비탈길에서 넘어질까 봐 엄마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눈을 쓸었던 거구나.’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또 눈을 쓸러 나갔던 것입니다. 그제야 얼어붙은 아들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엄마를 향한 원망과 서러움과 미움이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립니다.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 돋도록 자녀의 경제적 독립과 출세, 아니 취업과 결혼이 힘겨운 최근엔 사람 노릇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비는 게 부모 심정입니다. 내 자식 걱정에만 우리가 안달할 때, 사회 한편에서는 부모 학대와 유기로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시설 보호를 마치고 해마다 2000~3000명씩 ‘자립준비청년’(예전에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렸던)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보육원 졸업할 때 지급되는 정착금(1000만 원)과 자립수당(5년간 월 40만 원)이 조금씩 올라서 경제적으로 힘이 된다지만,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 불안과 무력감이 삶을 포기하도록 몰고 가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 청년의 경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고 합니다. 소통하고 의논하고 연락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고 없고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사례가 참 많다네요. 보육원 원장님이나, 시설 프로그램에서 만난 멘토나, 그 누구든 고민을 들어주고 모르는 것 물어보면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 한 명만 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도록 저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내가 당신 받침이 될게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귀 기울이고, 가슴으로 안아줄 때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갓난아기 업을 때 포대기 두르고 아기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주면 한결 가볍습니다. 책이며 서류며 물건이며 온갖 것 가득 넣은 가방을 어깨에 멜 때도 한 손으로 아래를 살짝만 받쳐줘도 아프던 어깨가 훨씬 가볍습니다. 공책에 교과서에 연필로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면 뒷장에 우툴두툴 글자가 튀어나오고 물듭니다. 그럴 때 플라스틱 책받침 하나 끼우면 뒤탈이 없어 속상하지 않습니다. 살짝만 받쳐주어도 우리 짐은 가벼워지고 삶의 무게는 덜어지고 아팠던 어깨는 견딜 만해집니다. 서로 받쳐주며 손 잡고 맘 잡고 살아볼까요?
- 2023-05-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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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 비용서 재산 분할까지, 알아야 할 재산 상속 상식
- 상속을 ‘사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재산이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빚만 남아도 문제일 수 있다. 게다가 남은 사람들은 아픈 가족의 병간호에만 힘쓰다가 어느 날 황망한 일을 겪고, 상까지 치르게 된다. 어렴풋이 알던 상속 절차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황당한 일까지 겪기 일쑤다. 이번 호에서는 시니어들이 궁금해할 만한 몇 가지 상속법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장례 부담 비용은 어떻게 나눌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 비용에 관한 문제가 가장 먼저 발생한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좋은 것으로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또는 정신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얘기하는 대로 알겠다고 하면 장례 절차가 끝난 후 날아온 청구서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부의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의금은 부의금대로 나누면서 장례 비용은 장남이 내라는 등의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비슷한 다툼이 많았던지 판례도 다양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의금은 누구에게 얼마나 들어오든 관계없이 일단 장례비로 먼저 충당되어야 한다. 부의금이란 장례비에 먼저 충당될 것을 조건으로 조문객들이 증여하는 금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의금의 총합계액이 장례 비용보다 많다면 어떻게 할까? 상속인은 장남, 장녀, 차남이 있고, 장남의 손님이 낸 부의금이 400만 원, 장녀의 손님이 낸 부의금이 200만 원, 차남의 손님이 낸 부의금이 400만 원으로 부의금은 총 1000만 원이고, 장례 비용은 500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장례 비용 역시 부의금 비율대로 4:2:4로 나누어 장남, 장녀, 차남의 부의금으로부터 20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을 충당하고, 남은 20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을 각각 장남, 장녀, 차남이 가져가면 된다. 상속재산의 분할 방법은 무엇일까? 장례 절차가 끝났다면 고인의 상속재산을 나눌 차례다. 유언장이 있다면 그대로 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공동상속인 간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법원에 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하게 된다. 유언장을 공정증서로 남겼다면 유언공정증서에 기재된 유언 집행자가 유언공정증서를 가지고 바로 상속등기를 하는 등 내용을 집행할 수 있으므로 비교적 수월하다. 그러나 자필 유언장의 경우 유언 집행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공동상속인 전원이 유언 집행자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유언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공동상속인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공동상속인 전원을 상대로 유언효력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판결받은 후 단독으로 유언에 따른 등기 등 집행 절차를 완료할 수 있다. 참고로 유언에 공증을 받는 경우는 그 효력에 거의 문제가 없지만, 자필 유언이나 말로 하는 유언(구수 유언)의 경우 유언으로 인정받기 위한 법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유언의 효력이 부정되기도 한다. 번거롭더라도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권한다. 끝끝내 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재산분할심판의 단골 주제는 특별수익과 기여분이다. 아들이 결혼할 때는 집을 사줬는데 딸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니(아들의 특별수익이 발생) 상속재산은 딸이 더 받아야 한다거나, 병든 노모를 둘째가 모시고 첫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둘째의 기여분 발생) 상속재산은 둘째가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흔히 발생한다. 상속을 포기하고 싶을 때는? 많은 빚을 상속받을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인이 재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상속을 포기하면 되지만, 고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는 등 상속받을 재산의 가액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라든가, 근저당권이 설정된 아파트가 있는 등 채무와 자산이 모두 있는 경우에는 한정승인을 선택할 수 있다. 상속 포기는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여 고인의 재산과 채무를 일절 상속받지 않는 것이지만, 한정승인은 고인으로부터 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채무를 갚는 것이다. 상속 포기와 한정승인은 모두 고인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고인의 빚을 3개월이 지난 다음 알게 됐다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해야 한다. 다만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했다는 내용을 소명해야 특별한정승인 신고가 수리된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법적 지식도 부족하고 도움받을 길도 부족하다. 때문에,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미성년자일 때 비록 알았거나, 법정대리인이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도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2022년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법인 민법 제1019조 제4항이 신설됐다. 사망보험금과 실버타운 보증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사망보험금은 보험에 가입한 피보험자(고인)가 사망할 경우 그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는 사람(보험 수익자)이 누구로 지정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보험 수익자를 단순히 ‘법정상속인’으로만 지정했거나, 특정 1인을 명시하여 지정하는 등 어느 경우에도 사망보험금은 그 수익자의 고유재산이지 상속재산이 아니다. 보험 수익자를 보험계약자 자신(고인)으로 지정한 경우에는 사망보험금이 상속재산에 해당한다. 다만 위의 예는 사망보험금에 한정된다. 고인의 사망 전에 지급받을 수 있었던 보험금, 고인의 보험 중도해약 환급금, 교통사고 가해자로부터 지급받은 보상금은 상속재산에 해당된다는 점을 유의하자. 실버타운 보증금 역시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 보증금을 반환받을 자로 지정된 자는 그 보증금을 고유재산으로 취득하는 것이지 상속재산으로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쯤 되면 상속재산과 고유재산을 구별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상속재산은 고인이 사망한 후 그의 재산을 상속인들이 상속분에 따라 나누어 가진다. 즉 상속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고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 대상이 되는 상속재산에도 속한다. 반면 고유재산은 상속의 법리에 따라 수령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약에 따라 수령 권한이 있다. 고유재산으로 분류되는 사망보험금과 실버타운 보증금은 상속재산 분할의 대상도 아니고, 이를 수령한다고 하여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유류분청구 유류분청구소송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재산을 유리하게 가져간 상속자를 상대로 나머지 상속자들이 유류분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이다. 고인이 생전에 상속인들에게 증여한 ‘모든 재산’까지 유류분반환청구 대상이 된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다. 상속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고인이 사망했을 때까지 행해진 모든 증여, 즉 통상의 학비보다 비싼 유학비, 사준 자동차, 결혼할 때 해준 집, 가끔씩 준 목돈이나 생활비 등이 모두 끄집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생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집을 사주고, 딸에게는 전세보증금만 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유류분반환청구 과정에서 산입되는 총재산은 ‘집의 시가+전세보증금’이다. 그리고 그 재산의 가액은 고인의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집과 같은 경우에는 KB시세 등으로 해당 시점의 시가를 확인할 수 있고, 현금을 준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정해진 비율을 곱하여 계산한다. 그러면 딸은 여기서 얼마나 유류분을 가져갈 수 있을까? (계산의 편의상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상속인이 아들과 딸만 있다고 가정하겠다.) 딸이 가져갈 수 있는 유류분은 ‘(집의 시가+전세보증금)/4’다. 만약 이 금액이 본인이 이미 가져간 전세보증금보다 많다면 그 차액을 청구할 수 있다. 유류분 비율에 따라 산정한 금액보다 전세보증금을 이미 많이 받았다면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은 없다.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상속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 사실을 안 때부터 1년 안에, 또는 상속이 개시된 때부터 10년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소송으로 제기하여 청구해야 한다. 때문에 고인의 사망 후 10년까지는 덜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유류분청구 가능성, 더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유류분청구를 당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다만 유류분에 대해서는 “재산 형성 과정에 기여가 없고 불효나 불화 등으로 관계가 악화된 자녀들에게 재산이 무조건 귀속되도록 강제한 현행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 헌법에 반한다”는 등의 비판이 있다. 헌법재판소에 유류분 규정에 관한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청구도 10건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고, 아예 민법 개정으로 유류분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커지고 있다. 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게 증여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사망 전 1년간 증여한 경우에만 그 대상이 되지만, 고인과 제3자가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한 경우, 즉 이 증여를 하면 상속인들이 받아갈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증여를 한 경우에는 1년 전에 증여한 경우에도 가액산정의 대상이 된다.(민법 제1114조) 형제의 상속세를 대신 납부했는데, 돌려받을 수 있을까?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는 상속된 상속세 산출세액을 그 상속인이 받을 재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곱하여 계산한 금액을 각자가 상속세로 납부할 의무가 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3조의2) 그런데 이 납부 의무는 연대 의무라서, 공동상속인들 각자는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상속세에 관하여도 자신이 받을 재산을 한도로 ‘연대’ 납부할 의무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과세관청은 공동상속인 중 누군가가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면 다른 상속인들에게 미납 상속세의 납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형제 중 한 명이 납부하지 않으면 가산세를 물 수 있어 상속인 중 형편이 나은 사람이 상속세를 미리 납부하고 골머리를 앓는 일이 종종 있다. 만약 형이 대신하여 상속세를 내준 경우, 형은 동생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소송을 하여 위 돈과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부당이득반환채권은 형이 상속세를 납부한 날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므로 반드시 그로부터 10년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하자. 상속 문제는 간단해 보이지만 변호사들도 헷갈릴 만큼 어려운 법적 분야다. 더 큰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잘못된 정보로 괜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볼 것을 추천한다.
- 2023-05-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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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꿈꾸며 귀촌, 마침내 찾은 인생의 화양연화
-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풍파가 잦은 게 귀농 생활이다.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도 어찌된 영문인지 흔히 혼선이 빚어진다. 무주군 설천면 산기슭에 사는 신현석(62) 역시 두루 시행착오를 겪었다. 올해로 귀농 13년 차. 이제 고난을 딛고 완연하게 일어선 걸까? 어느덧 산정에 성큼 올라섰나? 그의 얘기는 이렇다.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다!” 그러나 농사로 손에 쥐어지는 건 여전히 변변치 않다. 어쩌면 이제야 본격적인 레이스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신현석이 귀농을 한 건 어지러운 도시를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서였다. 도시라고 매력과 평화가 없으랴. 그러나 직업상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괴로움을 씻기 위해선 시골로 들어가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대전에 살며 긴 세월을 매진한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선량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심하게 지친 몸과 마음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단다. “건축업이라는 게 스트레스가 많다. 공사를 마치고도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러면 속이 탄다. 심지어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불상사가 반복되자 사람 자체가 싫어지더라.” 사람 드문 시골에 살면 한결 나은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나? “도시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게 시골이라고 봤다. 농촌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라기론 TV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살고 싶었다. 약초를 기르며 마음 편하게, 그 무엇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살고 싶었다. 이건 사실 막연한 희망에 불과했지만 여하튼 시골에 살 작정으로 농토 3000평을 미리 사둔 게 있어 귀농을 추진하는 게 수월했다.” 첫 농사 작물은 어떤 것이었나? “매실이었다. 미리 사둔 땅이 묵은 매실밭이어서 비교적 용이하게 농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떤 작물을 기르든 유기농을 추구하자는 기본 방침대로 나름 충실한 농사를 했다. 첫 농사였지만 성과가 있었다. 당시 매실 가격이 상당히 좋기도 했고. 그러나 어느 날 매실청이 설탕물에 가깝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전국의 매실 농가 대부분이 큰 타격을 받았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활로를 찾기 위해 매실 식초를 생산했으나 영 신통치 않았다.” 결국 매실 농사를 접고 새로 도전한 게 다래 농사였다지? “무주군이 다래 농가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던 때였다. 따라서 승산 있는 작물로 판단해 다래를 재배, 토핑용 가공 상품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잔뜩 재배만 권장하고 후속 연계 지원은 전혀 없는 농정의 얄팍함을 실감했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대안을 가진 농정이 아니었다. 당시 나 역시 기대를 가지고 주변에 토종 다래를 많이 보급했다. 결과적으로 욕만 먹었지만.(웃음)” 매실 농사에 이어 다래 농사에서도 쓴맛을 본 셈인데, 귀농 초기에 홍역을 단단히 치른 것 같다. 이를 피할 방법은 없었던 걸까? 귀농 교육이라거나 사전 준비에 소홀한 측면은 없었나? “비록 손실이 컸지만 매실 식초와 머루 가공품을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긴 했다. 사전 준비는 충실하지 않았다. 귀농 뒤 교육을 받아 물정을 익혔으니까. 하지만 농사 초심자에겐 어떤 작물이든 만만치 않았다. 실패한 작물이 다수였으니까.” 대충 농사지었을 리 만무하지만 신현석은 그저 ‘자연인’처럼 살고 싶다는 기분을 가지고 시골 생활을 선망했을망정 막연한 충동에 이끌려 일을 추진하진 않았다. 그는 아마도 삶이라는 교실에서 배운 대로, 매사 구체적으로 숙고하는 버릇을 몸에 붙이고 사는 게 유능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귀농 전에 토지를 미리 장만해뒀지만 서둘러 집을 짓지 않았다. 집은 천천히 짓기로 했다. 일단 농장 저 아래 마을의 빈집을 임대해 5년쯤 살며 농사를 했다. 지역의 풍토와 경향을 파악하고, 농사 물정을 익히고, 아울러 자금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사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충분히 고려하고 헤아려 귀농 생활의 리스크를 줄여나가고자 했다. 그러니 농사인들 대충 생각하고 대충 덤벼들어 대충 지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실패에 가까운 기록이 즐비하다. “남의 논을 빌려 벼농사를 한 적이 있다. 화학비료를 배제한 자연농법으로. 그런데 이게 품이 무척 많이 들더라. 반면 소득은 보잘 게 없었다. 남들이 쌀 열 가마를 거둘 때 난 겨우 두세 가마를 수확했으니까.(웃음)” 재배 기술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그렇다. 의욕만으로 안 되는 게 농사다. 게다가 귀농 교육장에서 배운 이론적인 기술로는 한계가 자명했다. 벼농사 실패 뒤엔 콩 농사를 했는데 죽정이 수준의 콩을 소량 수확했을 뿐이다. 보리 농사도 했지만 실패했다.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누룩용 밀도 재배해봤지만 아예 제대로 자라지 않더군. 멧돼지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도 흉작에 기여했다.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손을 댄 작목마다 어긋나다니. 농사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론보다 농사에 박사인 농민들에게 농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경험을 확실하게 했다. 귀농을 할 경우엔 현지 멘토를 선정해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 그런데 크든 작든 실패의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노하우라는 게 생기니까. 덩달아 자신감도 생긴다.” 현재 주력하는 분야는 어떤 것이지? “토종 다래로 만든 청고추장을 생산하는데 꽤 인기가 있다. 주력 상품은 머루 발사믹(Balsamic) 식초다. 전에 매실 식초를 생산했던 경험을 살려 고품질 발사믹 식초 제조에 전념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발사믹 식초는 샐러드드레싱과 스테이크 소스 등으로 활용되는 식재료로 일반 식초보다 향과 풍미가 뛰어나다. 신현석은 무주군에서 유일하게 머루를 원료로 하는 발사믹 식초를 생산해 주변의 관심을 사고 있다.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정통 발사믹 식초를 만든다. 그가 식초에 뜻을 둔 건 10년 전부터인데, 이제 머루 발사믹 식초로 본격적인 행진을 할 참이라고 한다. 귀농 이후 난항과 혼선이 흔했지만 발사믹 식초를 견인차 삼아 대차게 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비로소 얻은 마음의 여유 “귀농 이후 가장 난처한 건 경제 문제였다. 사실상 이렇다 할 농업소득이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반면 거듭 자금을 투여할 일은 많았다. 시설과 장비 확보에 자주 큰돈이 들어갔다. 귀농엔 자금력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절감하며 살아왔다.” 생활비는 그간 무엇으로 충당했나? “틈틈이 건축 일을 해 생계 문제를 해결해왔다. 대전에 살 때 벌어들인 소득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내와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늘 쫓기는 기분으로 고민에 사로잡히곤 했다.” 농사와 건축업을 병행한 형국이다. 이건 이상적인 배합이지 않을까? 농외소득을 최대한 끌어올려 농사의 부진을 메워나가는 건 고육지책이라기보다 진취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단점도 있다. 건축 일을 하다 보면 농사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게 바로 그렇다. 나와 아내는 이 산골에서 여생을 살다 흙으로 돌아갈 걸 작정하고 귀농했다. 농업에 전적으로 몰두하며 살 수 있는 여건 마련이 향후 숙제다. 이제 발판은 마련됐다. 매우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당신은 무주군귀농귀촌협의회 리더 그룹에 속해 있다. 귀농인들의 실정에 밝을 테지. 농사 문제를 제외할 때 귀농인들은 흔히 어떤 사안에 가장 큰 애로를 느끼는가? “토박이 주민들과 융화하는 문제다. 대체로 원주민들은 귀농인들에게 심적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일부 주민들은 대놓고 ‘굴러온 돌’ 취급을 한다. 내가 사는 마을에선 다행히 예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13년을 살며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온 나를 내심에선 여전히 이방인으로 여긴다. 불화와 반목이 심한 마을에선 귀농인이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반면 일부 귀농인들이 물을 흐려놓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한편에만 문제의 원인이 쏠려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해결책이 있다면? “깊이 들어가 보면 농업지원금 문제로 갈등이 유발되는 걸 알 수 있다. 토박이들은 귀농인들이 지원금을 독식한다 하지만, 귀농인들은 혈연과 학연의 힘을 가동하는 원주민이나 귀향인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불합리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관에서 매우 공정한 룰을 운용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융합교육도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올더스 헉슬리라는 작가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다른 행성에서 바라보면 지옥일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서든 유쾌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시골의 풍속은 기본적으로 순한 것 같더라. “정중하게 다가가면 마음을 열어주는 게 시골 사람들이다. 본심은 다 좋다. 순박하다. 이해관계가 발생했을 때 서로 아량을 베푸는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신현석의 산골 거처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던가? 정갈하면서도 묵직한 기운을 품은 집만큼이나 그가 풍기는 분위기 역시 담백하다. 눈길은 따사로워 뿔도 발톱도 없이 사는 초식동물처럼 양순하다. 도시에서 그의 영혼까지 쥐어박았던 스트레스와 번민은 어느덧 바람처럼 흩어졌나? 농사에선 혼선과 부진이 많았지만 삶의 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고 한다. 중심을 놓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달려온 덕분인데, 그의 중심엔 ‘가족 사랑’이 들어 있다. “귀농으로 얻은 게 많다.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됐다. 게다가 아들 내외까지 이곳에 합류해 각자의 일을 한다.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산다. 난 어릴 적 혼자 성장하다시피 해 한없이 외로웠다. 따라서 가족과 동행하는 삶에 가치를 두었는데, 그걸 성취한 셈이다. 내겐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절이 없었다.” 신현석이 주는 귀농 Tip •냉정한 현실 감각을 가지고 귀농의 제반 상황부터 면밀하게 파악하라. •농사를 시작한 뒤 일정 정도 소득이 나오기까지 최소 4, 5년은 걸린다는 걸 유념하자. 여유자금 비축이 필수라는 뜻이다. •집부터 먼저 짓지 마라. 임대하거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귀농인의 집’에서 일단 살아보고 물정을 충분히 파악한 뒤 천천히 짓는 게 현명하다. 농토 역시 처음엔 임대해 쓰는 게 좋다. 찾아보면 무상으로 빌릴 수 있는 전답도 있다. •농업 기술은 현지에서 멘토를 선정해 배우자. 그래야 재배 작목 선정은 물론 판매망 문제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부가 과수 농사를 할 경우 3000평 정도 규모가 적당하다. •반짝하다가 추락하기 쉬운 유행 작물보다 기본 작물을 충실하게 짓는 게 안정적일 수 있다. •농사는 1년 내내 하는 게 아니다. 농한기나 여유시간엔 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을 해 활력을 돋우자.
- 2023-05-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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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집에서 '나이 들기'… 노후 평생 살 집의 조건은?
- 많은 사람이 직장 위치, 자녀의 교육 등을 고려해 거주 지역을 결정한다. 그러나 은퇴하거나 자녀가 독립하면 거주 환경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로망만을 좇아 섣불리 판단하면 낯선 동네와 이웃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원래 살던 집을 가꿔 활용도를 높여보는 건 어떨까? 내 취향과 기준에 꼭 맞는, 실속 있는 개조로 개성 있는 삶을 누려보자. 40·50세대에게 ‘은퇴 후 어디서 살 계획입니까?’라고 물으면 종종 ‘공기 좋은 지역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거나, ‘실버타운에 들어갈 생각이다’, ‘따뜻한 나라로 이민 가서 푹 쉬고 싶다’ 등의 대답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자연에서 온전한 쉼을 누리고자 전원주택을 지었다가 근처에 병원이 없어 고생하거나, 실버타운을 알아봤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익숙한 지역 풍경과 커뮤니티를 뒤로한 채 ‘한적하고 공기가 좋지만 편의시설은 적절히 갖춰진, 너무 낯설지 않고 적당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을 찾기란 꽤 까다롭다. 그렇다면 노후에 살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이사나 시설 입주 대신 고려해볼 방법은 주택 개조와 인테리어다. 집을 나의 신체적·정신적·심리적 상태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내 집에서 나이 들기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신체적 상태를 고려해 집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AIP는 가진 여건이 변하더라도 살던 집, 연결돼 있던 지역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나이 드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급적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시설로 옮기지 않고, 스스로 돌보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3.8%가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했다. 그중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밝혔다. 내 집만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꼭 옳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개조 계획을 잘 세운다면 안전하게 오랫동안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속해 있던 지역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들이 오랫동안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일본 정부는 ‘최후까지 내 집에서 산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고령자 주택 리모델링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문턱을 없애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나 미끄럼 방지 공사, 미닫이문 설치는 기본이다. 지자체가 20만 엔(약 200만 원)까지 보조해준다. 영국의 주택 리모델링 서비스 ‘루비 슬리퍼 솔루션스’(Ruby Slipper Solutions)는 단순 시설 개조뿐 아니라 시공 완료 후 활용 상태를 점검해 보완해준다. 전문 요양보호사 치료 서비스도 원한다면 연계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민을 아우르는 주택 개조 서비스가 마련돼있지 않다. 관련 인테리어 시장 또한 발달돼 있지 않다. 하지만 노화 혹은 인지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순발력이 떨어져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직 건강한데, 집을 벌써 고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점이 오기 때문에 예방이 필요하다. 작은 요소부터 손본다면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삶의 질이 높아진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40대일지라도 문턱을 없애면 걸려 넘어지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면 아이의 생활을 도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 개조가 고령자뿐 아니라 그 외의 가족에게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집을 정비할 마음을 먹었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버리기, 정리 정돈과 같은 ‘밑작업’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바닥이나 책상, 의자에 마구 놓아둔 물건은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어서다. 일본 부동산·주택 플랫폼 SUUMO에 따르면, 물건이 많을수록 생활이 더 윤택해진다는 환상은 버리는 게 좋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쌓아두기보다 오히려 비웠을 때 물건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없어져 해방감을 얻게 된다. 추억이 쌓인 물건들을 영 버리기 힘들 땐 ‘15분에 27개 버리기’를 제안한다.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두고 쓰레기봉투를 든 채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제한 시간 동안 27개의 물건을 버리는 방식이다. 시간과 개수는 마음대로 바꿔도 좋다. 다만 천천히 보거나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물건을 매만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렇게 ‘8할의 물건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중적으로 비우는 훈련을 반복하면 된다. 흩어진 물건을 잘 정리하고 수납하면 집안일의 효율을 높이고 안전한 이동 동선을 만들 수 있다. 시간은 1회 15분, 하루 5~8회 정도. 옷장, 거실 서랍과 같이 정리할 장소는 하루에 한 군데를 정해 실시한다. 단번에 하려고 하면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정리 정돈을 끝마쳤다면 인테리어를 바꿀 차례다.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인테리어의 모든 과정을 종합 업체에 맡기는 ‘턴키 공사’, 집주인이 직접 자재를 구매하고 시공 전문가를 선택하는 ‘직영 공사’, 직접 시공하는 ‘셀프 공사’로 나뉜다. 개인의 성향과 예상 비용에 따라 방식을 결정하면 된다. 인테리어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면 업체에 위임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믿을 만한 곳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인테리어 공사 범위와 목적,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더불어 스마트홈 기술을 적용하면 생활이 안전하고 편리해진다. 자녀의 독립, 사별, 이혼 등으로 혼자 거주한다면 위험에 노출됐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 각종 전자제품을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고, 집 안 곳곳에 비상호출기를 설치하면 좋다. 자동문이나 센서등은 개인의 반응 시간에 맞게 작동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생활 가전 제품이나 출입문 근처에 움직임 감지 센서를 설치해 두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활동 내용이나 위급 상황을 알릴 수 있다. 노후를 윤택하게 해줄 주거 디자인 6가지 신체의 노화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가족 구성원이 떠나거나 은퇴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을 테다. 다양한 생활 방식을 종합해 50대 이후 세대가 참고할 만한 인테리어를 소개한다. 인테리어 상담 전 해당 내용을 참고해 업체와 소통해보자. 1 활기찬 느낌의 밝은색을 사용하자 젊은 시절과 달리 언제나 활동적일 수 없고 시력도 점점 저하된다. 명도가 높은 색을 사용해 시야를 환하게 만들면 주변의 미세한 물건을 발견하기 쉽고, 태양광이 실내로 가득 들어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분도 전환할 수 있다. 다만 새하얀 벽은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노란빛이나 붉은빛을 띠는 흰색을 선택하자. 처마나 벽에 명도 높은 옅은 분홍을 사용해도 좋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운 색을 띠기 때문에 실내에 있는 사람의 안색도 완화된다. 2 촉감이 좋은 따뜻한 소재를 선택하자 석고나 나무 등의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석고는 조습과 항균 효과, 휘발성 유기 화학물의 흡착과 분해 기능이 있다. 더불어 신발을 신거나 걸을 때 주위에 있는 사물에 손을 얹을 일이 많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가구나 벽지 소재는 차가운 메탈보다 부드러운 나무가 적합하다. 대신 부상을 입지 않게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3 안전 대책도 디자인의 일부다 현관이나 복도, 화장실에 난간을 설치하거나, 앞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편이 좋다. 턱과 계단은 되도록 없애고 경사로로 바꾼다. 또한 기초 보수공사나 벽지를 교체할 시기가 됐을 때 난간의 아래와 위에 다른 색 벽지를 붙여보기를 추천한다. 명확하게 난간과 경사로, 방향을 인지할 수 있어 안전하고 인간친화적인 인테리어가 될 것이다. 4 가구의 디테일에도 신경 쓰자 젊은 시절과는 다른 가구 선택 기준이 필요하다. 손잡이는 끌어당기거나 잡을 때 손에 쉽게 들어오는 크기여야 한다. 무게감 있는 의자는 앉을 때마다 끌어내기 힘들고 부담된다. 회전의자 등 앉기 쉽고, 팔걸이가 소매에 걸리지 않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서랍에는 부드럽게 열리고 갑자기 닫히지 않게 조정하는 소프트 클로저를 붙여 약간의 힘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게 하자. 5 ‘눈부심’을 피하자 식탁이나 책상 위처럼 직접 빛이 필요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간접 조명을 기본으로 한다. 가장 피해야 하는 건 눈부심이다. 저녁 식사부터 취침까지 하루 일과에서 본인이 조금씩 조도를 낮출 수 있도록 해두는 게 좋다. 6 중요한 것은 ‘그 사람’다운 집이다 평생 살 집은 무엇보다 본인에게 맞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취향과 필요가 분명하다면 꼼꼼히 계획해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도예를 좋아한다면 거실의 넓이를 줄이고 작업장을 만든다든가, 음악 감상을 위해 거실을 오디오룸으로 바꾼다든가 말이다. 그동안 바빠서 할 수 없었던 일에 집중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마음에 드는 것들에 둘러싸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보자. 계획 단계에서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추천한다. 참고 주거 관련 플랫폼 ‘houzz’(하우즈)
- 2023-05-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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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치매 예방 WT 포럼 개최
-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는 오는 27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위한 Wel-Tech 기반 사회서비스 생태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2023년도 WT 산학협력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WT 산학협력포럼은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70주년을 맞이해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가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는 중앙사회서비스원과 치매 예방 산업 생태계 구축을 선도하는 ㈜한국에자이와 공동주관으로 진행한다. 본 행사는 (사)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사)글로벌중소기업지원협회, 실버산업전문가포럼, Wel-Tech Institute 및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ISG) 한국지부가 본 후원한다. 이번 포럼은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김수완 교수(소장)의 개회사로 시작되며 윤신일 강남대학교 총장의 환영사,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 원장, 이수연 서울시 복지정책실 복지기획관, 고홍병 ㈜한국에자이 대표이사, 이상용 실버산업전문가포럼 회장의 축하로 이어진다. 윤신일 총장은 환영사를 통해서 “강남대학교는 올해 개교 77주년을 맞이했으며, 사회복지학부는 설립 7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강남대학교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이하여 복지와 기술을 접목한 Wel-Tech 융합 교육의 시초가 되었고, 이제 곧 다가올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100세 시대 치매 예방을 위한 디지털 복지 기술과 사회서비스 생태계 구축 방안을 논의하는 이번 산학협력포럼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행사입니다”라고 전했다. 본 포럼에서는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 원장이 기조강연을 통해 ‘100세 시대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 구축 방향’을 제시한다. 조상미 원장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대한민국은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 체계 강화’ 및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 서비스 고도화’가 매우 시급한 과제이며 치매 예방을 위한 혁신서비스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수요자 중심 치매 예방 생태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치매 환자와 가족 당사자 입장에서의 생태계 구축 방안을 제시한다. 노영희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교수는 ‘Wel-Tech 리빙랩 기반 산관학연 협력 프로세스’를 통해 ‘사회서비스적’ 및 ‘산업적 관점’에서의 생태계 접점에 있는 이해 관계자들과의 지속 가능한 편익 교환 방안을 발제한다. 산업계에서는 ㈜한국에자이의 헬스케어 에코시스템 디자인 부서를 관장하는 김은호 이사가 한국에자이의 사례를 중심으로 ‘치매 예방 에코시스템’을, ㈜이모코그는 디지털헬스케어를 통한 환자주도형 치매 예방 사회 서비스에 관한 발표를 한다. 2023 WT 산학협력포럼은 생태계 전반에서 활동하는 대표 전문가들과 위 발제에 대한 토론회(좌장 김수완 소장)를 위해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김신겸 총무이사인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종녀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 고덕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장,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 조준배 강남구사회복지기관협의회 강남종합사회복지관 관장, 김정훈 세븐포인트 본부장, 그리고 이준호 이투데이피엔씨 브라보마이라이프 편집장이 참석한다. 강남대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는 6년째 산관학연 협력사업으로 학생 참여의 WT 리빙랩을 운영하면서, 사회서비스 및 산업적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직접 대면하며 더 나은 협력 방안을 모색해왔다.
- 2023-04-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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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은퇴자들, 노후주거 대안으로 빈집 구독 ‘호퍼’ 주목
- 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 빈집 해결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주거구독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는 다거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이동을 반기는 분위기다. 70대의 노만 겐조(乃万 兼三) 씨는 은퇴 후 가족의 사업을 도우며 수도권에서 주로 거주하지만,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50대의 세시타 유키에 씨는 리노베이션 전문 건축가로 25년간 일하다가 2021년부터 전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다거점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장인’이라고 불리는 고령자들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지역에서 일할 수 있다. 다거점 생활 선호하는 ‘호퍼’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주(定住)보다 다거점(多據點) 생활(여러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옮겨 다니는 것)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을 찾기 위해 미리 살아보고 싶은 고령자, 일을 유지하되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관심이 높다. 주거구독 서비스 어드레스(ADDress)의 ‘ADDress 다거점 생활 이용 실태 리포트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다거점 생활을 하는 사람은 프리랜서(30.7%)보다 회사원(40.4%)이 더 많았다. 다거점 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워케이션’(일+휴식)이 32.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주요 생활 거점’(24.2%)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체류지에서 일은 하지 않고 액티비티, 휴가, 관광을 위해’라는 응답은 20.2%였으며, ‘원격근무’라는 응답도 19.7% 수준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40.4%는 ‘머지않아 이주할 곳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드레스는 이들을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라고 부른다. 하나의 주거지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드레스는 “다거점 지역을 이동하는 교통비가 1만 엔 안팎”이라면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호핑하는 것’(옮겨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식비와 교통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연령대는 60대로 지역을 더 활발하게 둘러보는 경향이 있었다. 집도 ‘구독’하는 시대 최근에는 주거를 ‘구독’한다는 개념도 생겼다. 정액제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난 것. 주거구독 서비스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어드레스는 자연과 역사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들을 리모델링했다. 20여 곳의 지자체가 함께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내면 어드레스에 등록된 전국의 주택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이 단순히 집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각 주택에 ‘야모리’(家守)라고 불리는 생활 교류 서포트 스태프를 두고 있다. 어드레스 이용자들은 야모리 덕분에 지역을 좀 더 알게 되고 지역 커뮤니티에도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야모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는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이면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참여해 2만~5만 엔(약 20만~50만 원)의 용돈도 벌고, 빈집을 임대한 집주인에게는 월 약 4만 엔의 임대수익이 보장된다. 지역도 살리고 빈집 문제도 해결하면서 이용자들은 여러 지역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거구독 서비스다. 크로스 하우스(XROSS HOUSE)는 도쿄도 내에서만 특화된 주거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아파트, 개인실, 세미 프라이빗, 다인실 등 네 종류의 주거 형태를 제공한다. 비어 있는 집들을 모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 요금이 같은 집이라면 무료로 이동하며 살아볼 수 있다. 하프(HafH)는 빈집을 활용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집을 구독할 수 있어 인기다. 제2의 주거 ‘코리빙’(Coliving), 여행하고 일하는 ‘트래블링’(Traveling), 만남과 배움 ‘코워킹’(Coworking) 등 세 종류의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들도 주거구독 서비스를 반기고 있다. 빈집 이주자를 위해 ‘빈집 뱅크’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주거구독 서비스 업체들과 협업해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17년에는 주택안전망법을 개정했다. 지자체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관계인구가 되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관계인구는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를 말한다. 어드레스 설문조사에서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사원 중 40%는 부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어드레스는 “향후 기업들이 근로자의 다양한 근무 방식을 인정한다면,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지역 고용 창출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2023-04-2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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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납치됐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급증… 관련법 제정 시급
- “아들이 납치되었어요. 빨리 돈을 찾아야 해요.” 지난 2월 대전시에서 한 70대 여성은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우체국에서 현금 2400만 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우체국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제지한 덕분에 여성은 금융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고령자들은 정보기기 사용 미숙, 낮은 정보 접근성 등으로 인해 금융 사기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높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고령자 보호에 미흡한 실정이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60세 이상 고령층 대상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은 감소 추세에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2018년 70251건에서 2021년 12107건으로, 피해 금액은 2018년 4440억 원에서 2021년 612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고령층 대상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의 비중은 늘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고령층 피해 비중은 2018년 16.2%에서 2022년 상반기 56.8%로 3.5배 증가했다. 피해 금액 중 고령층 피해 비중도 2018년 22.2%에서 2022년 상반기 48.8%로 2배 이상 뛰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고령층에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 나타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문자메시지, 카톡 등으로 가족·지인을 사칭하며 개인정보 및 금전 이체 등을 요구하는 △메신저피싱, 검찰·경찰 등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 저리 대출 대환 등으로 자금 이체를 유도하는 △대출 빙자 유형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 이용 증가로 메신저피싱 금융 사기가 급증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 중 메신저피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5.1%에서 2020년 15.9%, 2021년 58.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로 가족, 지인을 사칭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파손, 신용카드 분실 등 불가피한 상황을 알리며 악성 링크에 연결을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법안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고령자 금융 피해는 가해자와 가해 경로에 따라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 △금융 착취, △금융 사기로 구분된다. 먼저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는 금융기관이 금융 상품을 부적합하게 판매한 경우를 말하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금융 착취는 상황에 따라 적용 법이 달라진다. ‘금융기관에 의한 금융 거래상 금융 착취’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다. 금융기관과의 금융 거래가 아닌 ‘친족・부양자 등에 의한 금융 착취’는 ‘노인복지법’이 적용된다. 노인 학대 방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해당 법에서는 ‘경제적 착취’를 노인 학대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는 잘 모르는 타인이나 전문적인 사기 집단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보이스피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사기에는 ‘전기통신·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된다. 즉 우리나라에는 고령자 금융 피해 유형 별 관련 법이 있을 뿐 고령자 금융 피해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법이나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법이고, 노인복지법은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찍이 고령자 금융 사기 관심 가진 해외 사례 이처럼 고령자 금융 피해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0년 정부는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근본적 종합적 대책을 마련했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 마련 △고령층 전용 대면 거래 상품 출시 △고령자 전용 비교 공시 시스템 구축 △고령층 금융 착취 의심 거래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을 약속했는데, 큰 진전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과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을 제정한다고 예고했다. 해당 방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기관이 고령자 착취 의심 사건 발견 시 금융감독원・경찰 등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실효성 확보를 위해 금융기관 직원의 면책 조항을 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방지, 차별 금지 등에 관한 사항을 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금융기관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이 금융 착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민사상・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 직원의 업무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법에 의무화하기보다는 각 금융권별 상황에 맞게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현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일찍이 고령층의 금융 사기에 관심을 갖고 정책 마련 등 대응에 나섰다. 덕분에 고령층 금융 사기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주요국의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 방지 노력’ 보고서를 통해 해외 주요국들의 정책을 담았다. 먼저, 미국은 지난 2018년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착취가 의심될 때, 금융기관 및 직원 등이 고령자 동의 없이 금융 당국에 의심 사례를 보고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노인금융피해방지법’을 제정할 때 해당 법을 참고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신종 금융사기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재무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장과 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 그룹을 구성하고, 고령층 보호 정책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소비자안전법’을 일부 개정해 고령자를 배려가 필요한 소비자로 규정하고, 필요한 대응을 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고령층의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금융기관, 지자체가 연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수사기 예방 정책을 강화했다. 정부의 규제 노력으로 2021년 피해 규모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고령자 등 학대로부터 취약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한 성인 보호 정책이 시작됐으며, 2014년 ‘돌봄법’(Care Act)을 제정해 관련 법 및 규정을 일원화했다. 더불어 금융회사에 의한 고령층의 금융 착취 및 금융 사기 피해 근절을 위해 당국이 불법적, 사기적 영업 행위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 2023-04-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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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새로운 힌트 ‘관계인구’
- “지방에 집 한 채 지어 텃밭 가꾸며 맑은 공기 마시는 삶 좋지.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이제 100살까지 산다는데 지역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나?” 지방 소멸이 코앞인 시대,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지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이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자원봉사가 끝난 후에도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계인구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18년에 이 단어를 공식 채택했다. 지역 주민이나 뜨내기 관광객이 아니라, 관심 갖고 지역 상품을 계속 구매하고, 자주 방문하며,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거나, 아예 지역과 도시에 하나씩 두 개의 거점을 두고 생활하는(일본에서는 더블 로컬이라고 부른다) 등 지역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관계’하는 사람들이 관계인구다. 관계인구사업을 전개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전체 지자체의 65%가 관계인구 늘리기 사업을 시행하여 전국의 관계인구는 총 1800만 명에 이른다. 지역 정부는 지역 생활과 사람들을 소개하며 지역의 매력을 끌어내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오래 그 안에서 삶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일종의 ‘지역 매력 표출 대작전’을 전개한다. 일상을 보여주고 ‘여기에 오면 당신도 할 일이 있고 꽤 살 만하다’고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1월 1일부터 정부가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법으로 제시했다. 각종 혜택도 쏟아진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렇게까지 준다고?’ 할 만큼 지원사업을 꽤 많이 찾을 수 있다. 조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정 기간 집도 주고 체류비도 준다. 위기를 관계로 극복하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역이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당히 많은 사람, 인프라, 밥벌이 그리고 괜찮은 문화가 있다면 굳이 위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25년 전 IMF 위기, 15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3년간의 팬데믹 위기가 빙하기처럼 사회를 얼어붙게 했다. 그 안에서 갑질, 번아웃, 공황장애를 외치는 피곤하고 절망적인 목소리가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뿌린들 그 돈은 흉물스러운 거대한 건축물로 바뀐다. 석양이 물드는 지평선을 여유 있게 감상하며 오늘의 수확을 감사하고, 제철 음식으로 따뜻하게 차린 식탁에서 다정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모두 바쁘고 모두 피곤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역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대형버스를 타고 지역의 핫플을 방문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적당히 찍고, 유명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오는 관광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한달살기처럼 오래 머물기도 하고, 워케이션처럼 일하면서 쉬기도 하고, 창업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도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지역이 무조건 끌렸어요”, “여기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계인구가 많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 희망적인 의견들이다. 얼마나 지역을 좋아하면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까지 나왔겠는가. 사회적 거리가 관계로 변하려면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여전히 지역과의 끈끈한 관계보다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원한다. 전국을 철도 중심으로 연결하다 보니 대부분 지역은 긴 시간 동안 자차 운전으로 가야 한다. 병원 없는 곳이 많아서 ‘이 지역에서 아프면 그냥 죽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다. 쇼핑몰, 갤러리를 가려면 차 타고 인근 도시로 가야만 한다. ‘문 닫는다’는 말이 상가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들린다. 한달살기 하려고 호기롭게 시골에 왔는데 벌레 보고 기겁해서 ‘나는 간다’는 말을 톡으로만 툭 던지고 야반도주하듯 하루 만에 사라져 주최 측이 황당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여유 있는 전원생활이 그리워 전원주택을 지어도 지역 주민이 ‘어서 옵쇼’ 하고 환대하는 것은 아니므로 ‘시골 사람들은 배타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종 기회비용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관계 맺기 힘들다는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도 있다. 현실과 관계 형성 사이에는 큰 장애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재빠르게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하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한다. 삶의 여유와 질을 가늠해보고 그 기회가 지역에 있다고 ‘착안’한다. 도시에서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재미있는 사람도 많이 만난다며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지역도 더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자며 외지인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때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지역의 좋은 공기를 사라”며 호기롭게 외치기도 한다. 언제나 변화 가능성은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을 좀 더 확실하게 성공시키려면 기본적인 인프라와 교통 문제를 정부가 빨리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 2023-04-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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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겪는 후기청년기 “150세 인생을 계획하라”
- 후기청년기에 들어선 40·50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다. 120세까지 산다는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또래의 명예퇴직 소식이 들려오고, 50세가 되기 전 은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는데,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후기청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김병숙(75)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150세까지 살 테지만, 기자님은 170세까지 살 거예요. 지금부터 10년에 한 번씩 직업을 8번 바꿔도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남은 50년은 뭐 할 거예요?” 순간 멍해졌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설마 그때까지 살겠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기자를 보며 “설마가 현실이 되는데, 다들 내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는 김병숙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40·50세대의 이야기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150세 시대 준비하려면 김병숙 이사장은 40여 년간 직업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경기대학교에 직업학과를 설치해 교수로 활동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한국직업상담협회를 설립했다. 책을 25권 집필했으며, 은퇴 후에는 4050을 위한 전직 지원 등 직업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 65세의 나이로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김병숙 이사장은 150세 인생 계획을 선언했다. 75세까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정시 근로를 하고, 95세까지는 시간제로 일하고, 100세까지는 봉사활동을 하고, 150세까지는 화가로 살겠노라고. 그리고 3년 뒤 계획을 바꾸었다. 95세까지 정시 근로를 하겠다고. 김 이사장은 2012년 ‘은퇴 후 8만 시간’이라는 책을 쓸 때부터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5~2019년 우리나라 최빈사망연령(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실제로 사망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은 남성이 85.6년, 여성이 90년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기대수명은 평균 83.6세지만, 사고 등으로 조기 사망하지 않는다면 평균 85세 이상 산다는 말이다. “90세 가까이 살다 간다면 지금 40·50세대는 앞으로 최소 40~5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50년 뒤면 2073년이죠?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20세기에 이미 ‘2050년이면 인간 수명은 150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30년이 지나면 2050년이네요.” 150세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60세, 80세, 100세를 각각 20세, 40세, 60세로 봐야 한단다. 40·50세대라면 한창 청년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프라임 시기에 일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가 47세입니다. 2~3년 내에 43세까지 낮아질 거예요. 최근 은행권에서 명예퇴직한 사람 중에는 20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주된 일자리 은퇴 연령이 40대고, 노동시장에 굿바이를 외치는 시점은 73세입니다. 연금을 65세부터 받는다고 하면 47~65세까지 18년을 더 일해야 합니다. 이때 노동시장에 나가서 경제생활을 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150세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린 낀 세대 2023년 현재 40·50세대를 사는 이들은 X세대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린 첫 번째 세대’라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이자 신(新)인류’라고 불리곤 했다.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취향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은 세대로 평가받지만, ‘낀 세대’인 이들은 정작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안에서 40·50세대는 ‘낀 세대’죠. 최고의 생산량을 내는 시기에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요. 윗세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들처럼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없습니다. 아랫세대인 MZ세대는 어때요? 30대는 주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하고 20대는 월급만큼만 일합니다. 그 사이에서 인적 관리를 해야 하는 40·50세대는 위아래로 치여 참 어려워요.”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지만, 사회와 조직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데다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장 힘든 시기에 직장에도 적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보통 60세까지는 사회,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혹은 은퇴하고 나를 위한 삶을 찾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와 보니 퇴직금은 3년이면 사라져요. 앞으로 50년은 더 일해야겠는데, 직업 세계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으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별안간 ‘너 뭐 좋아해? 좋아하는 거 해’ 하니까 방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나이를 먹으며 40대, 50대를 산다. 후기청년기는 누구나 거치는 시기다. X세대라고 불린 지금의 40·50세대는 120세 시대를 맞아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첫 세대가 됐다. 김 이사장은 조직에 젖어들다 보면 누구든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직업을 8번 바꾸며 살 것을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기존의 조직을 벗어나는 것도 좋다는 조언이다. “누구든 후기청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해요. 어느 날 삼성전자 수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 회사에서 그동안 인공지능(AI)을 공부하라고 했는데 하기 싫어서 안 했대요. 이제 모든 곳에 AI가 쓰이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거예요.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삼성전자 직원도 그럴진대, 우리는 어떻겠어요? 퓨처 타임 퍼스펙티브(Future Time Perspective). 미래 시간 전망을 길게 하세요. 미래 시간을 길게 보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 우리나라에는 7번의 진로 분기점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갈 때,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 등이다. 김병숙 이사장은 이 진로 분기점에 도달해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본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 3년 차에 이직하고 싶어질 때에야 닥쳐서 생각한다는 것. 40대 후반에는 또 한 번 분기점이 온다. 이때 어떻게든 버텨서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면,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40대 후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분기점에 섰을 때 고민하면 늦어요. 프라임 시기 이후에는 돈을 적게 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급여 하락세가 달라질 거예요. 10년을 분기점으로 두고 3년은 새로운 역량을 키워내는 공부를 하고, 5년은 키운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는 식으로 다리를 놔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청년 지원 정책이나 노인 일자리 지원 정책 등 여러 정책을 쏟아놓지만, 정작 중장년을 위한 정책은 많지 않다. 50세에 은퇴하고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퇴 후 퇴직금으로 창업하는 건 내 돈으로 내 직업을 사는 셈이다. 바야흐로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다. 김병숙 이사장은 고령화 시대에는 기업들도 점차 50대 이상의 인력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하죠. 인력이 없다는 뜻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이 든 사람을 써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대신 나도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 해요. 요즘은 융합 시대입니다. 세 가지 영역을 알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해요. 배움을 축적하면 나의 자본이 되는데요. 40·50세대에는 여가가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그냥 산에 올라 정상에서 ‘야호’ 외치고 내려오는 여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등산하면서 보는 주변 식물에 관심을 두다가 내가 직접 키운 차나무로 차를 내려주는 찻집을 구상한다든가 하는 식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후기청년기는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다. 김 이사장은 이때 집에서 편하게 쉬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40·50세대의 재취업은 80% 이상이 지인 추천으로 이뤄진다. 매일 출근하듯이 차려입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기술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은데, 관련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면 나에게 말해달라’며 나를 홍보하라는 팁이다. 더해서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타령을 너무 많이 해요. ‘이 나이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디 호기심을 잃지 마세요. 인생 40년 살아보고 직장 20년 다녀보면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해 모두 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건강, 재무, 여가, 사회망, 인간관계에 관해 150세 시대를 계획해보세요.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입니다.”
- 2023-04-11 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