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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소재, 이렇게 찾으세요!
- 이제 사진은 대중화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스마트폰을 바로 꺼내 촬영을 망설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진을 취미로 막 시작했거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망설인다. 사진 소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진을 시작한 지 꽤 됐고 사진 찍기가 취미인 사람들도 촬영지에 가면 주변을 휙 둘러본 후 “찍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일쑤다. 하지만 피사체를 보는 마음과 시선을 달리하면 주변에 사진 소재가 널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보기 나름’이란 말과 같이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눈높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위치를 달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습관의 이면에는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이 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뭘 계획해도 작심삼일이 된다. 현재 상황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더 괜찮은 사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자기 편한 대로 한다면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성장은 없다. 사진에도 마찬가지다. 사진 찍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다. 새로운 시선이나 마음으로 접근하면 주변에 찍을 거리, 즉 사진 소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상생활 중에 사진 소재를 발견해 촬영한다면 사진 작품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낼 필요가 없게 되어 귀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필자는 그런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사진작가나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서너 번은 다녀왔을, 해외도 간 적이 거의 없다. 해외 사진 촬영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할 여력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일상에서 소재 찾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생활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풍광이나 물체가 곧 사진 소재다. 매일 다니는 같은 곳이어도 사계절에 따라, 아침저녁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해가 맑게 뜨는 날과 흐린 날, 눈이 쌓인 모습과 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은 같은 길이어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비가 내린 다음 날도 아침 풍경이 다르다. 줄곧 다니는 길도 시간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소재는 많다는 의미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모두 사진 소재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도 찍어보자. 눈이나 눈썹, 발가락이나 불거진 힘줄, 발등도 찍어보자. 앞의 사진은 이른 아침 창틀 사이로 비친 한 줄기 햇살이 너무 좋아 냉장고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 필자의 발 옆에 놓고 찍은 사진이다.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과 자주 만나는 친구의 환하게 웃는 모습도 훌륭한 소재다. 일부러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도 좋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도 훌륭한 사진 소재가 된다. 그리고 집집마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한두 개의 오래된 인형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찍어도 된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기타를 좋아하면 기타를 사진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집 안에서 가꾸는 화분과 장식품도 소재가 된다. 바깥에서도 직장 주변의 오가는 길목에서 수없이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 서산에 걸려 있는 초승달과 하현달, 보름이 되면 창문 사이로 찾아드는 둥그런 보름달도 창틀을 액자로 해서 찍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이러한 시선으로 다가가면 언제 어디에 있든 찍을 거리는 수없이 많다. 더불어 피사체를 바라보는 눈높이(사진 전문용어로 앵글)를 다양하게 해서 보면 피사체는 더 늘어난다.
- 2017-02-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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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잡히고 해외여행을 떠나라니요
- 가슴 떨릴 때 세계여행을 떠나야지 늙어서 다리 떨릴 때 여행 가면 사서 개고생이라고 어느 장년모임에서 젊은 강사가 말한다. 돈이 있어야 세계여행을 다녀올 텐데 무슨 돈으로 여행을 가라는 말이냐는 청중들의 질문에 강사는 답변을 준비한 듯 꼭 집어서 집을 잡히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라고 한다. 주택 역모기지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강사는 신바람이 나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는 지나갔다, 집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 하지 말고 신나게 폼 나게 다 쓰고 한 푼도 자식에게 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셀프부양 시대라며 자신의 몸은 스스로 돌봐야지 자식이 나를 부양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인기가 있는 어느 스님은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모 자식 간의 트러블을 예방하기 위해서 자식이 20세가 지나면 부모 자식 간 정을 끊고 서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들의 세계를 봐도 다 큰 자식을 끼고 사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자식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지 못하고 전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세태에 이런 달콤한 강의는 자식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부모 세대에는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탓하기에 앞서 변화된 시대를 탓하고 자식들을 억지 이해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우리 세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는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자학적으로 말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모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부모를 누가 모셔야 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무려 70%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젊어서 국가에 열심히 세금을 납부했으니 늙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자식을 열심히 키워준 것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사자가 다 큰 자식 사자를 돌보는 일은 없다, 젊은 자식 개가 늙은 어미 개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일도 없다는 등 짐승의 행태를 사람에게 비유해 부모 자식 간에도 남남처럼 서로 간섭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홍보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모든 행위에 서글픔을 느낀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짐승은 아니다. 남녀가 성년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들이 태어나고 재롱떨며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살아가는 즐거움이다. 짐승이 자식에게 먹이를 주는 본능과는 또 다른 이성이 사람에게는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옛날부터 세상에서 보기 좋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부모의 즐거움이다. 여기에 대한 보답으로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수천 년 동안 해온 인류역사다. 이것이 사람과 짐승과 다른 점이다.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다고 쫓아낸 후 나 몰라라 하고 해외여행 다니면 부모 마음이 편할까. 부모는 개천에서 뒹구는데 자식인 나만 잘살면 행복할까. 부모 자식 간은 한 몸과 같다. 오른팔이 아픈데 왼팔이 희희낙락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동물에 빗대어 억지로 떼어놓고 행복 운운하는 것에는 수긍할 수 없다. 행복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고 가족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가족을 모아주는 정책을 개발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지 않고 함께 살게 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핵가족화가 고착화되다 보니 가족의 개념도 희미해져간다. 초등학생이 함께 사는 강아지는 가족이라 하고 따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아니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고 죽는다고 신나게 쓰다가 돈이 떨어지는 날 죽지 않으면 어찌하는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다. 점쟁이도 아닌데 죽는 날을 어찌 안단 말인가. 나는 해외여행보다 일하며 돈 버는 것이 좋다. 누군가 그렇게 일만 하다가 죽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일하다 죽는 것이 해외여행하다 죽는 것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여행은 절대 안 하고 자린고비처럼 돈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지만 집을 저당 잡혀서까지 해외여행 갈 마음은 없다. 내 입에 고기반찬 들어가는 즐거움보다 손자 입에 사탕 하나 물려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기쁨이다. 이제는 농경사회도 아니고 직장 때문에 핵가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유명 강사들이 핵가족을 찬양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가족 단위로 함께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임은 자명하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식하지도 않고 위생관념도 투철하기 때문에 손주들의 양육 면에서도 함께 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요즘,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아이 돌보는 양육자가 바뀌고 있다. 미안한 부모는 돈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어느 초등학생이 생일파티라며 4만원짜리 뷔페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부모가 아이들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니까 혹 나쁜 길로 빠질까봐 이런저런 생각을 못하게 여러 학원을 투어하도록 교육 프로그램도 짠다. 아이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인격형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대가족제도의 장점을 홍보해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어선생, 수학선생을 하면 일거양득이다. 대가족으로 함께 사는 지혜를 정책으로 반영 보급하도록 정부는 앞장서야 할 것이다.
- 2017-02-0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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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더 언더독> 내가 만약 동물 보호센터에 있는 유기견이라면…
- 뮤지컬 하면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신나는 음악에 짜릿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완벽한 해피엔딩을 생각한다. 창작 뮤지컬 은 뮤지컬 상식을 깨고 실질적으로 관객의 의식 속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길에 버려지고, 이용당하고 또 주인이 잃어버린 유기견의 처절한 생활, 뮤지컬 속 노래와 대사를 통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삶의 끝을 조명해본다. 잔뜩 녹이 슬은 철창 안으로 꾸며진 무대. 이곳은 유기견 보호소다. 버려진 개의 종류도 다양하다. 여행가방 속에 버려졌던 푸들, 투견장 진돗개 ‘진’, 폐기 처분된 군견 셰퍼드 ‘중사’, 그리고 강아지공장 모견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던 말티즈 ‘마티’까지. 다양한 학대와 이유로 들어온 유기견의 일상과 아픔이 공연 속에 펼쳐진다. 어두운 밤. 한 마리의 새 유기견이 들어오면 보호소에 있던 유기견 중 한 마리는 입양 보내진다. 유기견들은 보호소에 후원된 다양한 사료를 먹고 더욱더 예쁘게 돼 새 주인 만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그 문이 도대체 어디로 통하는지는 오직 셰퍼드‘중사’만 알고 있다. 뮤지컬 은 SBS 프로그램 속 코너 ‘더 언더독: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반향이 컸던 인기 프로그램이 소재였기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유기견의 안락사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흥행 양극화가 분명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 절대 즐겁게 웃고 손뼉 칠 뮤지컬이 아니다. 극 초반 멋진 군무와 주연 배우의 솔로곡 열창으로 박수가 터지지만 극에 몰입하면서 손보다는 눈이 무대에 집중하게 된다. 모견으로 강아지공장에서 숱한 학대를 받아온 강아지가 노래를 부르는데 박수 치기가 미안할 정도. 뮤지컬이라는 매개로 극을 만들었지만 떠들썩하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게 사실에 근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새끼 잃은 만신창이 엄마 말티즈 ‘마티’ 말티즈의 실제 끔직한 모습은 TV 프로그램과 각종 포털사이트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서 접했을 것이다. 동그란 슬픈 눈의 말티즈 배는 수십 번의 강제 임신·출산으로 해지고 뜯겨 있었다. 에서 하얀색 털 가운을 입고 힘없이 등장한 말티즈 ‘마티’가 바로 강아지공장에서 구조된 모견이다. 무대 뒤 영상은 강제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최악의 삶을 사는 모견 ‘마티’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티는 살아갈 힘을 잃은 생명처럼 죽기를 바라고 아파하고 힘들어 신음한다. 실제로 불법 유통되는 강아지공장의 새끼는 어미와 35~40일도 같이 못 있고 경매장으로 팔려 나간다고. 공연 속 모견 ‘마티’는 강아지로 보이는 인형을 안고 다니며 애착을 보이고 분리불안증에 시달린다. 맹인견 늙은 골든리트리버는 눈이 멀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 후반에 안락사되는 골든리트리버는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주인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주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맹인견은 다시 하늘로 가 주인과 만날 날을 꿈꾼다. 사설 보호소가 아니면 차갑고 딱딱한 그곳에 누워야 한다 유기견이 보호센터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10일에서 많게는 20일 전후다. 이들이 그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입양 혹은 안락사다. 극 초반, 신이 나서 한 유기견이 사람을 따라 보호소 밖으로 달려나간다. 다다르게 되는 곳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탁자 위. 너무 기쁘게 유기견 보호소를 뛰어나왔지만 주인이 아닌 주삿 바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5분 뒤 신나게 달리던 몸은 생명을 잃는다. 몸이 늘어진 채 커다래진 동공 속으로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마지막 장면을 담아낼 뿐이다. 뮤지컬 은 유기견과 학대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박수갈채를 연발하고 신나서 소리 지르는 공연을 생각하고 공연장에 들어간다면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대형 뮤지컬에 현실 상황을 적극 반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은 신선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은 착한 공연으로 불리며 공연 외 유기견을 위한 다양한 봉사와 사회 계몽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연장 로비에는 반려견을 맡겨놓고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반려견 돌봄 서비스를 운영한다. 또한, 유료 티켓 1매당 사료 100g이 자동으로 기부되는 ‘유기견 후원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웃고 즐기는 뮤지컬을 넘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 있는 공연의 등장이 반가울 따름이다. 물론 시니어에게도 뮤지컬 을 권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유기견이 되는 순간 벌어질 끔찍한 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한다.
- 2017-01-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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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 이야기] 유기견 보호소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에 가다
- 모바일 웹진 와 함께 반려동물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유기동물 이야기 또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집을 잃어버린 후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사설 유기견 보호소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에 다녀왔다.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이하 행강집·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은 동물보호 비영리 민간단체로 운영되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다. 백암터미널에서도 마을버스로 한참을 달려야 행강집에 이를 수 있다. ‘행강대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박운선(59) 소장은 2004년부터 유기견 보호소를 시작했다. 2003년, 애견 번식에 손을 댔던 박 소장은 인간이자 생명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업을 접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강제로 강아지 젖을 떼야 해요. 강아지들을 철창에 가둬서 강제로 교배를 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1년 동안 하다 보니까 이것만큼 나쁜 짓이 없더라고요.” 번식장에 있던 종견과 모견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켜서 입양을 보냈다. 그 자리에 유기견들이 하나둘 채워졌다. 번식장을 할 때는 강아지를 팔았기 때문에 사료값이라도 벌 수 있었다. 유기견은 전혀 수익이 되지 않았다.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리를 비우지 않고 유기견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 애견 호텔을 병행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기견 보호소와 함께 애견 호텔을 운영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모든 유기동물 보호소는 기부금이나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됩니다. 보호소나 기부금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 구조자들이나 일반인들이 구조한 유기견을 보호소에 입소시켜야만 돈이 들어와요. 후원금을 모으려면 열악한 시설과 고생하는 애들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싫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이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살던 방 하나를 비워 가정견을 맡아 관리해줬습니다. 한 마리를 한 달 돌봐주면 10만원을 받는데 그걸로 사료를 사고 행강집을 운영했죠.” 현재 행강집은 애견 호텔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 부족한 운영비는 후원금과 기부금을 통해 도움받고 있다. 넘쳐나는 유기견, 방치라는 또 다른 학대의 시작 행강집에서 유기견 480마리까지 돌봤던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는 학대가 이뤄졌다. “방치는 학대입니다. 어떤 때는 사료통 밑에 곰팡이가 난 것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있어요. 그 많은 유기견의 수만큼 일손도 필요한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내가 돌볼 수 있을 만큼만 돌보자 했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이면 두세 차례 동물을 받아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행강집으로 전화를 하는 40%가 유기를 목적으로 실제 주인이 전화하는 것 같다고 박 소장은 말한다. “40%는 주인이 데리고 와서 버린 개들입니다. 안 된다고 하면 밤에 슬그머니 묶어놓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60%만 거리에서 데려온 유기견, 학대견들이죠. 사실 감당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가다 보면 1000마리 되는 건 순식간이죠.”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안락사되는 유기견들 유기견이 발생하면 각 지역에서 운영하는 유기견보호센터로 보내진다. 전국적으로 360여 곳이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유기동물 보호기간은 10일(7일 이상 공고 포함). 이 기간 안에 주인을 찾지 못하면 보호 조치된 동물의 소유권은 자치구로 귀속된다. 10일이 지난 후에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동물들은 대부분 인도적 처리(안락사) 대상이 된다.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밖에 없다는 것. 물론 안락사시키는 날을 10일로 딱 못을 박아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10일(보호·공고 10일)에서 입양 대기 10일을 추가한 20일로 연장 시행하고 있다. 유기견의 수명은 각 지자체의 의지로 유연하게 연장할 수 있다. 물론 질병으로 회생 불가능한 유기견은 안락사시킨다. 몇몇 지자체는 계류기간이 끝나자마자 유기견의 건강, 나이 불문하고 안락사를 시행한다고. “사설 유기견보호소는 없어져야 합니다” 사설 유기견보호소 소장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20마리, 30마리 정도 보호·관리하는 유기견 쉼터가 있다. 이곳은 꾸준히 유기견들을 관리하고 사진을 찍어 공고도 올리고 입양도 보낸다. 하지만 유기견 100마리가 넘어가면 매일 목욕하고 관리하고 입양 공고 내는 것이 힘들다는 것. “솔직히 이곳에서는 유기견을 씻길 수 없습니다. 봉사자들이 올 때만 씻기는데 이때도 같이 산책하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거든요. 사설 보호소에서는 그곳에서 주는 밥 먹고 나이가 들어요. 그 안에 들어간 유기견은 죽어야 나옵니다.” 현재 행강집의 있는 유기견은 모두 250마리다. 물론 입양 보내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1년에 열 마리가 입양을 가면 정말 잘 가는 것. 하지만 이마저도 유기견들의 안전 때문에 꺼려진다. 입양 한 마리 보내려다가 한 마리가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입양할 사람이 들어오면 매달려 있다가 자기들끼리 싸우기 일쑤다. 사설 보호소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안락사로 죽어야 할 유기견이 너무 많은 것이 또 문제라고 말하는 박 소장. “유기동물센터에서 바로 입양 가는 시스템이 돼야 해요. 시 보호소에서 안락사된다고 불쌍하다고 다섯 마리 열 마리 끌어다가 사설 보호소에 집어넣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닙니다. 일단 여기는 안락사가 없잖아요. 인위적으로 죽이지는 않아요. 사설 보호소에 보내면 책임을 다했다고 느낄지 몰라도 이 아이는 죽을 때까지 보호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박 소장은 유기견 보호소를 열면서 동물복지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법 개정으로 유기동물들이 줄어들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2017-01-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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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재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외갓집 가는 길
-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 장리석(張利錫, 1916~ ) 화백은 2016년 4월 백세(百歲)를 넘긴, 그러나 아직 화필을 잡는 당당한 현역이다. 평양에서 출생하여 상수보통학교 졸업, 1937~1939년 일본 다마가와(多摩川) 제국미술학교 수학, 귀국해 1940~1945년 평양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미술부장, 이때 조수로 있다 숨진 화가 최지원(崔志元, ?~1940)을 추모하여 그의 아호를 딴 ‘주호(珠壺)회’를 구성,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최영림(崔榮林, 1916~1985), 황유엽(黃瑜燁, 1916~2010), 박고석(朴古石, 1917~2002), 박영선(朴泳善, 1910~1994), 윤중식(尹仲植, 1913~2012) 등과 5년간 동인전을 열어 평양 미술인의 자긍심을 높였다. 1950년 7월 북한 노동성에서 건립 중이던 금강산호텔 벽화 작업에 동원되어 평양을 떠난 뒤, 북진(北進)한 국군 원산 해군기지 사령부에 입대, 종군하게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1951년 1·4후퇴 때 제주도까지 내려가 4년 여 체류한 인연으로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1955년 제4회 국전에 이 특선되고, 1958년 제7회 국전에 이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화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1981년까지 서라벌예대, 수도여자사범대학, 중앙대학교에서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현대 구상회화의 산증인이 되었다. 주로 제주에 머무르며 서민들의 일상,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해녀 등을 독특한 색감으로 그리고 있다. 2005년에는 제주도에 그림 110여 점을 기증하여 2009년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 내의 ‘장리석 기념관’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다. 2014년에는 전을 열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의 그림 속에는 두고 온 고향풍 경도 많이 있는데, 내가 보았던 겨울 풍경은 , , 세 작품이었다. 눈 내린 시골마을, 옹기종기 초가집도 보이고 밤나무 옆길로 엄마와 아기, 소년과 강아지 등이 눈길을 걸어가는 시정어린 그림으로 화가의 유년시절 외가 마을의 설경을 그린 것이다. 바람에 눈발이 날리듯, 노화백의 가슴에 묻혀 있던 아슴푸레한 기억들이 연작으로 화폭에 옮겨져, 보는 이들을 묻혔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소복소복 쌓인 눈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적이 따뜻하게 해 준다. 이 작품 은 10여 년 전, 인사동 경매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낙찰받은 작품이다. 창밖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 그림 아래 아내와 차를 끓이고, 가야금 산조를 들으며 깊은 감상에 젖곤 한다. 은 박용인(朴容仁, 1944~ ) 화가의 유럽 여행 중의 한 작품이다.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 1981~1983년 프랑스 몽파르나스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Chaumière)에서 유학하고 국내 여러 미술대학에서 강의하였다. 북한산, 제주도 등 곳곳의 풍경이나 와인, 과일, 꽃의 정물도 많이 그렸다. “남극과 북극을 빼고 전 세계를 여행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유럽에 자주 머물며 알프스의 마터호른,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같은 세계적 명산은 물론 고성(古城)들을 그렸다. 이 화가는 회화의 기법상 캔버스에 나이프를 주로 써서 유화물감을 바른다. 나이프를 쓰면 그림의 두께를 더하여 마티에르(matiere, 물감의 질감)가 무겁고 깊이 있게 보이고, 평면의 화면도 시각적으로 입체적인 양감(量感)을 느끼게 한다. 미술시장에서, 외국 풍경을 그린 작품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그린 작품보다 다소 가격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경매에서 이 그림을 살 때에는 그 시작가가 높아 의외였다. “이 작가나 권옥연(權玉淵, 1923~2011) 화백 같은 경우, 외국 풍경이나 인물을 워낙 심도 있게 작품화하기 때문”이라는 경매 회사의 설명이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교외, 한적한 도로를 건너 왼편으로, 고색창연한 성당의 옆모습이 보인다. 후원에 나뭇잎을 채 떨어뜨리지 못한 나무에도 눈이 덮여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성당의 첨탑도 잿빛 하늘에 묻혀 희미하다. 지붕은 흰 눈으로 적요하다. 고목의 가로수 위에도, 풀밭에도 깊게 눈이 내려 사위가 고요에 휩싸였다. 그림을 보는 찰나, 아늑함과 경건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속세의 혼탁함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심경이 화폭에 질펀히 흐르고 있다. ‘잘 된 그림이 반드시 좋은 그림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으나, 이 작품은 아주 잘 된 그림이며, 동시에 좋은 그림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예술세계는 소재에 대한 친근감과 따뜻한 눈길이 와 닿는다. 거기에는 격정의 향수와 서정성 짙은 은유의 시어(詩語)로 잔잔한 감동이 다가온다. 정직, 성실한 자태와 순수함을 잃지 않는 작가적 심성이 화면 깊숙이 투영되고 있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화가는 “내 그림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럽풍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유럽에서는 동양적이라고 한다.”고 미소 짓는다. 사실 화가들은 설경(雪景) 그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흰색이 다른 색에 묻히고 그 밋밋함이 화폭을 평이하게 이끌기 때문이다. 동양화에서도 화선지의 흰 여백을 그대로 두어 눈[雪]의 형상화가 어려움을 나타내곤 하였다. 눈 내리는 날은 마음이 설렌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노라면 마음도 경건해진다. 입속으로 가만히 어떤 바람이라도 읊조리고 싶고,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작은 오두막, 무쇠난로에 장작불을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던 한때를 회상해본다. 눈설레 속에서 정겨운 얼굴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가고,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작곡가, 1935~ )의 몇 곡을 듣다 보면 정화(淨化)된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드는 적멸감(寂滅感), 시공을 넘어 유년의 뜰로 이어진다. ‘외가’라는 낱말은 단순히 ‘어머니의 친정’ 이라는 뜻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함축된 말이다. 외가는 외할머니가 계신 곳이고,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곳이며, 내 모든 투정이나 허물도 기꺼이 품어 주는 따뜻한 풀솜 속 같은 곳이다.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에게선 느껴볼 수 없는 자글자글한 정이, 외할머니 치마폭에서 피어난다. 김칫국물 얼룩진 저고리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아릿하다. 어머니의 어머니로 농축된 모정이 “아이고, 내 강아지” 한마디 속에 묻어난다. 진종일 눈사람을 만들다, 강아지와 뛰놀다, 눈이 그치면, 보랏빛 하늘 위에 연을 띄워 날리며 얼레에 대고 ‘우우우’ 입김을 뿜던, 그 아름답던 시절이여! >>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 2016-12-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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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이야기] 반려동물 사랑한다면 동물등록부터 하자
- 반려동물등록제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의 복지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5227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다. 연간 4000마리 넘는 반려동물이 거리에서 버려지거나 주인을 잃고 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반려동물등록제에 대해서 알아본다. 자료제공 웹진 동물등록제 2014년 1월 1일부터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전국 시·군·구청에 반드시 동물등록을 해야 한다. 단, 동물등록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을 지정할 수 없는 읍·면 및 도서(島嶼) 지역은 제외되며 반려견을 등록하지 않을 경우 4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재는 반려견만 해당된다. 최근 고양이도 동물등록제 대상으로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검토 중이다. 동물등록 방법 01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개체 삽입 02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03 등록인식표 부착 동물등록은 왜 해야 하나요? 산책 중 혹은 집에서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쉽게 찾고, 유기동물로 인한 질병 및 전염병 예방 및 유기·유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물등록제를 마쳤다면, 반려동물을 잃어버렸을 때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의 동물등록정보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하루에 약 300마리의 유기견들이 들어온다. 각 보호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22일 안에 주인을 못 찾은 유기견은 대부분 안락사시킨다. 개와 함께 외출할 때는 반려인의 성명, 전화번호, 동물등록번호가 표시된 인식표를 착용시켜야 한다. 반려동물 인식장치의 종류 01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마이크로칩은 안전할까? 동물등록제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칩(RFID, 무선전자개체식별장치)은 체내 이물 반응이 없는 재질로 코팅된 쌀알 크기의 동물용 의료기기다. 동물용 의료기기 기준규격에 맞는 제품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 기준규격, 국제규격에 적합한 제품만 사용하고 있다. 강아지 목덜미 부위에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면, 리더기로 바코드 등록번호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애완견이 유기되었을 때, 이 칩을 확인해서 소유주에게 통보한다. 가격은 4만원대로 제법 고가다. 02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목걸이형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란, 펜던트 같은 목걸이형으로 강아지 목에 걸어주는 장치다. 상시 목에 착용시켜도 되고, 산책 갈 때 목줄이나 리드 줄에 걸어도 된다. 단점이라면, 유기되었을 때 누군가 외장형 목걸이를 떼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내장형을 추천한다. 2만원에 제작이 가능하며 많은 사람이 등록하는 방법이다. 03 등록인식표 부착-강아지 이름표 마지막 방법은 등록인식표를 강아지 목에 걸어주는 것이다. 반려동물등록제 방법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아볼 수 있는 등록인식표를 목걸이 형태로 부착시키면 된다. 보호자가 가지고 있는 일반 강아지 목걸이에 각인하거나 스티커를 붙인다. 이름, 전화번호 등과 같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는다. ※ 2008년에 시작된 반려동물 등록은 2014년부터 의무화되었으며, 2015년 말 기준 총 97만9000마리가 등록되었다. 동물 등록비용 할인 대상 01 전액 감면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른 장애인 보조견을 등록하는 경우 •유기견을 입양 또는 기증받아 등록하는 경우 02 50% 감면 •무선식별장치(내장형)가 장착된 동물을 등록하는 경우 •무선식별장치를 훼손 또는 분실해 재등록하는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수급자가 등록하는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한 동물을 등록하는 경우 •3마리 이상 등록하는 경우(3마리째부터 적용) 반려견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싶어요 반려견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싶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배려해 서울시에서는 반려견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강아지 전용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강아지 전용 놀이터는 서울에 거주하지 않아도 동물등록을 마친 반려견이라면 반려인과 함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세 곳 모두 중·소형견과 대형견의 놀이공간이 구별되어 있으며, 편의를 위해 음수대와 배변장소, 휴식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 2016-1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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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연극 연출가 김정숙, 연극은 결국 사랑이다!
- 연극 연출가 김정숙(金貞淑·56)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녀를 존경해”, “멋있어”, “사랑해”. ‘김정숙’이란 이름이 거론되면 하나같이 천사를 만난 경험담(?)을 쏟아내곤 했다. 한 번쯤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회가 없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에서 끝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씨처럼. 만나보자. 예전 같으면 대한늬우스에 나올 만한 국위선양(?)도 하고 돌아왔다. 그럼 한번 소리 소문 좀 내볼까? 김정숙 연출가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하 모들)의 대표로 28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스물두 살에 극단 에저또에서 연극을 시작해 스물아홉에 극단 모들을 창단했다. “운명이죠.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고 나서 ‘저 무대에서 평생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단에 들어간 첫날, 연습실 바닥을 붙잡고 ‘아! 이제 도착했다. 여기서 절대로 떠나지 않겠어’라고 서원처럼 의식을 치르듯 속으로 말했죠.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후 단 한 번의 한눈도 팔지 않고 오로지 연극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연극을 뺀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24시간이 늘 아깝고 모자라다. 그런데도 인터뷰 날 자정 전에 책상에서 일어난 일을 제일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뿌듯해한다. “제가 몸 생각하지 않고 연극 생각만 하니까요. 어쩌다 12시가 넘어버리면 4시까지 잠을 못 자더라고요. 그런 날은 다음 날 스케줄에 무리가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진짜 그러지 말자 해요.” 그녀의 또 다른 이름 ‘극단 모시는 사람들’ 김정숙 연출가의 분신과도 같은 극단 모들은 창단 이후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연극을 굳이 몰라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 , , 등이 모들의 대표작. 특히 은 토종 창작 뮤지컬 중 최고라는 호평을 들으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뮤지컬로 성공적인 삶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브로드웨이 식의 뮤지컬을 꿈꾼 건 아니었어요. 나는 음악의 비중이 크고 내용에 영향을 주는 소리극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나타나서 편리하게 이용했던 것뿐이죠. 그런데 마치 우리가 브로드웨이를 지향해서 가야 할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내가 원했던 소리극의 형태가 아니어서 음악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닫혔어요.”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모들의 창작 뮤지컬을 보기 어렵다. 화려함 대신 소박한 사람 이야기, 고전 속 주변 인물들에 주목하는 연극이 주류를 이룬다. 행복한 연극을 아는 예쁜 사람 모들은 지난 2003년부터 과천시민회관 상주 공연단체로 입주해 있다. 시민극장을 열어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있고, 모들의 대표 연극인 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프로그램 ‘신나는예술여행’에 선정돼 전국 8개 교도소를 돌며 공연하고 있다. “저는 대학로나 대극장 공연에 연연해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시골학교나 교도소에 가서 평생 연극을 본 적 없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행복해요. 얼마나 기쁜지 제 마음에서 사랑의 샘이 퐁퐁퐁 솟는 거 같아요. 진짜로요(웃음). 내가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 내 보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최근 2~3년 동안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우리 고향 초등학교에 연극 보여주기’ 이런 걸 하고 싶어 해요. 공연하는 데 300만원이 들면 출신 동창회에 도움을 청하고, 3만원씩 100명이 내주시면 고향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요. 화려하게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런 일 말고 진짜 일을 하고 싶어요.” 에든버러를 넘어 케냐까지 한국 연극을 알리다 지난 8월, 김정숙 연출가는 모들 단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이하 에든버러 프린지)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세계 공연예술 축제의 백미인 에든버러축제는 공연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 축제기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7000여 단체, 3만여 명의 공연자와 관객이 몰려와 도시를 가득 메운다. 에든버러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 좋은 공연이건 나쁜 공연이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기회라 김정숙 연출가는 에든버러 프린지를 사랑한다. “2008년에 처음 에든버러 프린지에 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갔어요. 당시 단원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연극을 해왔는데 뭐했지? 내가 명예를 얻었나, 물질을 얻었나? 나는 연극 안에서 얼마나 행복하지? 하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세계 연극 속에서 우리를 한번 비춰보자. 놓아보자’라는 심정으로 그곳을 가게 됐어요. 처음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좋아해줬어요. 매진에 객석 점유율 80%를 넘었고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더니 사람들이 티켓 박스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때 ‘아!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확인을 서로 하게 됐죠.” 올해 모들은 어린이극 과 그리고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를 가지고 에든버러를 다시 찾았다.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 공연은 김정숙 연출가의 치밀한(?) 계산으로 진행됐다. “케냐에서 이 초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예술경영지원센터에 항공권을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두 곳은 가야 받을 수 있다더군요. 그래서 에든버러 프린지와 케냐 공연을 엮은 거죠. 그런데 공연만 가지고 가는 게 아까웠어요. 케냐는 처음이지만 에든버러는 벌써 세 번째였거든요. 그래서 후배가 연출한 과 를 에든버러에서 공연해보자 했습니다. 4월까지 필요한 서류를 내야 했는데 그때 는 정말 시놉시스와 사진 한 장밖에 없었어요.” 에든버러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다. 전쟁이 끝나서 이런 페스티벌도 생겼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 바로 위안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진 한 장과 시놉시스밖에 없었지만 에든버러 프린지 극장측은 흔쾌히 모들에게 공연장 문을 열어주었다. “이전 축제에 참가했을 때 작품으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저희가 거리쇼라든지 홍보 면에서 기여를 많이 했어요. 극장에 우리가 바로 그 팀인데 를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줄 수 있냐고 물었죠. 바로 OK 하더군요. 그 한마디로 정말 에든버러에 가게 됐어요.” 딱 시놉시스 한 장이었다. 공연에 관한 정보가 적어 일반인 대상의 홍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관객이 를 찾아왔다. “가 위안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잖아요. 하와이와 뉴질랜드에서 이 공연을 보러 오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80 노구를 이끌고 2차 세계대전을 실제 겪으신 분들이 오신 거예요. 하와이에서 오신 분은 이곳에서 볼 첫 작품으로 를 선택했다고 했어요. 4월에 공연 예매를 미리 해놨다면서 수첩까지 꺼내 보여줬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정숙 연출가는 다섯 번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 중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인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것이 소중했다고 말한다. 모들 단원과 김정숙 연출가는 낮에는 , 저녁에는 를 무대에 올리고, 밤에는 다른 팀의 공연을 보러 열심히 뛰어다녔다. 케냐에서 기립박수 받은 에든버러에서의 한 달 일정을 마치고 케냐 나이로비로 떠났다. NGO의 천국 케냐에는 NGO 활동가와 선교사 자녀들이 다니는 70년 된 국제 학교 로슬린 아카데미(Rosslyn Academy)가 있다. 이곳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700여 명의 학생이 관객이었는데 이런 공연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물론 영어로 공연을 했지만 ‘어떻게 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지?’라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시점에 쿵, 짝을 맞추는 겁니다. 공연을 완벽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관객을 케냐에서 만났어요.” 게다가 학생들의 자율적인 행동이 몹시 감동스러웠다. “교정 한 곳에서 쿠키를 팔고 있었어요. 먼 나라에서 공연 팀이 왔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요. 그런 기획을 어린이들이 했다는 말이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전 세계 아이들이 모여 편견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학교였어요. 에든버러에서는 뛰어다니고 정신없었다면 케냐에서는 큰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관록이 묻어나는 시니어 배우들 모시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김정숙 연출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공연(11.25~26 과천시민회관 소공연장)을 준비 중이고 교정시설 공연도 다녀야 한다. 과천 시민과 함께하는 연극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시민극장에 시니어 층이 많다는 얘기에 시니어의 연극 참여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극장에 60대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요. 배우 중에 저와 어렸을 때 같이 연극하던 선배가 오셨어요. 연극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신 분인데 은퇴하고 나서야 돌아오신 거죠. 오디션 때 너무 멋있었어요. 인생이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이제 진짜 배우가 될 거 같아요. 시니어들은 인생을 다 겪으신 분들이라 어떤 이야기든 무대에서 제대로 표현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무대로 돌아온다면 100% 환영하고 지원할 겁니다. 잘하실 수 있도록 적극 도와드릴 거예요. 내년에 무대에 올릴 작품에는 등장인물과 같은 나이의 배우들을 참여시킬 계획입니다.” 시간이 흘러 연극 일을 안 하게 되면 무엇을 할 건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이 누룽지를 눌러 파는 누룽지 할머니가 되고 싶단다. 누룽지 한 컵에 1000원, 한 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누룽지를 팔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마냥 철없고(?) 청순한 소녀 같다.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들을수록 맛있고 찰지다. 영락없는 이야기꾼. 아직은 우리 연극을 위해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극이 뭐냐고 물었다. 거침없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딱 하나인 거 같아요. 어쨌든 작업 안에서 마지막 선택은 항상 사랑이었어요. 일을 하다 보면 나한테 어떤 이득이 될까를 고민하잖아요. 가끔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랑을 선택했어요. 연극을 향한 사랑. ‘세상에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기는 것은 없다’는 사실, 제가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든버러축제(Edinburgh Festival)란? 에든버러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작된 공연 축제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정신을 치유하려고 만들어진 이 축제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와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Edinburgh fringe Festival)로 나뉜다. 인터내셔널의 경우 100여 개의 공연을 전 세계에서 엄선하기 때문에 초청되는 것 자체가 영광. 프린지는 1947년 채택되지 못한 공연 팀이 축제가 열리는 주변에서 공연한 것이 지금의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로 정착됐다. 올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의 14개 공연 팀이 참여했다. 2011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축제에 극단 목화의 가 최초로 초청됐으며 ‘헤럴드 에인절스’ 상을 수상했다. 김정숙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 1982년 극단 에저또 입단 1984년 연출 데뷔 1989년 5월 극단 모시는 사람들 창단 주요 수상경력 -뮤지컬 스포츠조선 뮤지컬 희곡부문 대상, 1996 서울연극제 현대소나타상, 1996 백상예술상 대상, 작품상, 희곡상. 1996 희곡작가협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 2003 -연극 희곡협회 올해의 희곡작가상, 2003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연극상, 2011 대한민국 클린콘텐츠 국민운동본부 선정 클린콘텐츠상, 2015
- 2016-11-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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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이야기] 강아지가 좋을까요, 고양이가 좋을까요?
-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나에게 어떤 동물이 맞는지 모르겠다면 집중해보시라. 적극적인 반려견, 자기중심적인 반려묘. 성격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처럼 개와 고양이에게도 성격이 있다. 알듯 말듯한 개와 고양이의 차이를 알아보고 난 뒤 나에게 맞는 반려동물을 식구로 맞아들이면 어떨까?< 편집자 주> 자료제공 웹진 눈치가 있다, 없다?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반려견. 반려인의 기분이 어떻든 무얼 하든 상관없이 놀아달라며 달라붙는다. 이런 천진스런 모습 때문에 보다 빨리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는 반려인의 기분이 안 좋으면 알아서 피해 다니는 등 눈치가 발달한 편. 단, 반려인이 정적인 일을 하고 있을 경우, 여유로운 상황으로 착각해 같이 놀자고 괴롭히기도 한다. 자기 몸 관리, 한다, 안 한다? 고양이의 경우 그루밍(혀로 몸 구석구석을 핥는 행동)을 하는 습성이 있어 몸이 비교적 청결하다. 따라서 2~3개월에 한 번 목욕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면 강아지는 약알칼리성 피부이기 때문에 세균이나 곰팡이균 번식이 쉬워 피부병에 잘 걸린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씻겨주는 것을 권장한다. 호기심 누가 많을까? 강아지는 호기심이 있어도 위험한 돌발행동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겁 없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낯선 물건도 거침없이 만지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 의사표현이 달라요 강아지와 고양이가 원수지간으로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두 동물의 같은 행동이 각기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아지는 ‘같이 놀자’는 뜻으로 앞발을 내밀지만 고양이는 강아지의 그런 행동을 공격태세를 취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누가 더 감정표현을 잘하나?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강아지보다 고양이의 감정 파악이 훨씬 쉽다. 고양이는 행복할 때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며 ‘그르릉’ 소리를 낸다. 반면 기분이 나쁠 때는 귀를 뒤로 낮추고, 털과 발톱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경계한다. 누가 반려인의 말을 더 잘 듣나? 강아지는 서열생활에 익숙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되는 사람 말은 잘 따른다. 그러나 고양이는 사람에게 복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무언가를 지시해도 잘 듣지 않을 때가 많다. 고양이는 꾸짖음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하므로 벌줄 때 신중해야 한다. 교감, 고양이가 좋아, 개가 좋아? 말을 잘 듣는 것과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은 다르다. 교감 면에서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사람의 감정을 읽고 맞춰주는 데 능숙하다. 꼬리언어 대화법 cat 편안할 때 꼬리를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을 때 꼬리 끝이 부드럽게 살짝 휘어져 내려와 있다면 아주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다. 짜증이 날 때 가끔 앉아서 꼬리로 바닥청소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때 꼬리를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며 바닥을 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짜증이 나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불만이 쌓여 있는 상황이므로 고양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 흥미로울 때 간식을 주거나 이름을 불렀을 때 꼬리를 높게 치켜들고 다가올 때가 있다. 꼬리 끝은 살짝 휘어져 있고, 때로는 휘어진 꼬리 끝을 살랑살랑 흔들기도 한다. 이는 고양이가 당신에게 다정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경고를 줄 때 고양이는 놀라거나 자신을 위협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온몸의 털을 부풀린다. 이때 꼬리가 S자로 휘어져 있다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행복할 때 고양이는 자고 있어도 꼬리를 쉼 없이 움직인다. 만약 자고 있는 고양이가 꼬리 끝을 까딱거리고 있다면 방해하지 말길. 행복한 꿈을 꾸고 있거나 기분 좋게 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민할 때 나른한 모습으로 꼬리로 바닥을 천천히 내리치는 것은 뭘 해야 할지 고민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그러나 좀 더 빠르게 꼬리를 탁탁탁 내려친다면 감정의 동요가 심하다는 의미다. 처음 봤을 때 꼬리를 높이 세우고 크게 흔드는 것은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다. 처음 보는 물건 앞이나 낯선 환경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 dog 꼬리를 낮게 흔들 때 강아지들에게는 서열체계가 있다. 꼬리를 낮게 흔드는 것은 상대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중간 정도의 높이에서 꼬리를 흔드는 것은 매우 반갑다는 표시다. 꼬리를 천천히 흔들 때 강아지가 꼬리를 천천히 흔들고 있다면 “나는 지금 자신감에 꽉 차 있어!”라는 표현이다. 꼬리가 축 늘어져 있을 때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강아지는 기운이 없는 상태다. 꼬리가 배 안쪽으로 말릴 때 겁을 먹고 있거나 매우 불안한 상태다. 강아지가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왜 겁을 먹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내 성격에 어울리는 반려견은? 01 말썽꾸러기의 대명사 비글이 속한 ‘하운드(Hound) 그룹’ 활동량이 남다른 ‘하운드 그룹’은 산책이나 운동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채워줄 수 있는 주인이 딱 맞는다. 이 녀석들은 걷는 것보다는 전력질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체력이 좋고 활동적인 주인이 제격이다. 비글, 닥스훈트, 그레이하운드, 아프간하운드 등이 해당한다. 02 초보엄마가 키우기 좋은 ‘토이(Toy) 그룹’ ‘토이 그룹’은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다 크고 나서도 변함없이 인형을 닮은 듯한 깜찍함이 장점이다.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 스킨십을 좋아한다. 애정표현을 좋아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초보엄마가 어울린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공간이 넓지 않은 곳에서도 키우기 좋다. 요크셔테리어, 포메라니안, 푸들, 시츄, 말티즈, 페키니즈 등이 해당한다. 03 주인을 잘 따르는 ‘스포팅(Sporting) 그룹’ 인명구조, 마약탐지견 등으로 활약하는 ‘스포팅 그룹’은 외모는 마냥 천사 같지만 사냥개의 천성 때문에 무엇이든 물어뜯고 씹는 녀석들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주인이 어울린다. 유순하고 사교적이어서 훈련만 잘 시킨다면 최고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골든리트리버, 잉글리시코카스패니얼, 아메리칸코카스패니얼 등이 해당한다. 04 충직한 경비견 ‘워킹(Working) 그룹’ 강인하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통제가 어렵지만, 어려서부터 훈련을 충분히 시킨다면 가장 충직한 반려견이 될 수 있다. ‘워킹 그룹’은 교육이 필수이기 때문에 초보엄마나 교육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든 사람은 키우기 버거울 수 있다. 녀석들과 비슷하게 과묵하고 뚝심 있는 사람이 어울린다. 진돗개, 시베리안허스키, 알래스칸맬러뮤트 등이 해당한다. 05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가족 같은 ‘테리어(Terrier) 그룹’ 깜찍한 애교쟁이면서도 충성심이 강한 ‘테리어 그룹’은 나이를 먹을수록 주인과 더욱 가까워지는 녀석들이다. 주인도 녀석들처럼 활발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서로 최고의 가족이 될 수 있다. 불테리어, 보스턴테리어, 미니어처슈나우저 등이 해당한다. 06 보디가드처럼 듬직한 ‘허딩(Herding) 그룹’ ‘허딩 그룹’은 목장에서 양을 모는 목양견 역할을 할 만큼 영리하고 책임감이 강해 차분하고 사려 깊은 주인이 어울린다. 녀석들은 주인을 위해 자신이 맡은 구역을 든든하게 지켜준다. 웰시코기, 보더콜리, 저먼셰퍼드 등이 해당한다. 11월호 // [반려동물이야기] 강아지가 좋을까요, 고양이가 좋을까요?
- 2016-11-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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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국과 어머니
- 가을이 온전하게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논 물웅덩이에도 얼음이 얼었다. 추수 끝자락 논에 널린 볏짚 위로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강아지 목줄을 잡은 손끝이 시리다. 이런 날이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싶다. 찬바람이 대나무 잎을 가르며 쌩쌩 불던 겨울 밤, 어린 필자는 어머니 따뜻한 젖가슴을 만지며 잠들었다. 생일이면 꼭 끓여주시던 따끈한 미역국도 생각난다. 미역국은 아이를 낳은 산모에겐 필수 음식이다. 산후조리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산모의 밥상에 꼭 올라오는 음식이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도 아이를 낳은 산모는 미역국을 꼭 먹었다. 아내가 큰아들 낳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결혼해서 두 손주를 우리 부부에게 안겨준 녀석이다. 80년생이니 꽤나 세월이 흘렀다. 아내는 서울시 망우리의 처가에서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내의 산통이 잦아져서 청량리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차를 불렀으나 도착이 늦어 처가 근처의 작은 병원에 급히 입원했고 그곳에서 첫아이를 순산했다. 여기서도 아침, 점심, 저녁 산모 밥상에는 미역국이 따라 나왔다. 아내는 매번 미역국을 다 먹지 않고 남겼다. 그나마 필자와 시어머니의 권유로 두세 숟가락 떠먹는 게 고작이었다. 미역국이 산모에게 좋다는 것은 알지만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젓갈을 좋아하는 등 다소 짜게 먹던 아내의 입맛에는 싱거운 병원 음식이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게다가 아내는 미역국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내가 미역국을 남기면 대신 필자가 먹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고 했으니 남편이 미역국을 먹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끓여주던 미역국을 잘 먹었다. 특히 부드럽게 푹 끓인 미역국을 아주 좋아했다. 필자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서 피난처를 찾아 거창 지역에서 산을 넘고 넘어 지리산 청학동으로 이주하셨고 그곳에서 화전을 일구어 밭농사를 짓고 청학동 계곡 주변에서 다랑논을 만들어 논농사도 지으셨다. 어느 가을날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빨치산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그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총질을 하지 않고 소나무 둥치에 묶어두고 떠나갔다. 어둠이 깔리자 두 분은 묶인 밧줄을 간신히 풀고 그 길로 동네를 떠나셨다. 논밭과 익어가던 곡식도 팽개치고 빈 몸으로 청학동에서 10리 길이나 떨어진 대밭 몰이라는 마을로 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필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보냈다. 옛날 시골생활이 다 그랬듯이 필자의 집도 지지리 못사는 가난한 집이었다. 보리가 익어가는 춘궁기면 뒷산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고들고들 말려둔 것을 솥에 넣어 밥을 해먹는 날이 다반사였다. 고향 마을에선 이것을 ‘송구밥’이라 불렀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생일이면 어머니는 집 안 구석에 아껴둔 찹쌀과 팥으로 찰밥을 하셨고 미역국도 함께 끓여내 주셨다. 미역은 아버지가 하동읍 장날에 40리 길을 걸어가 사오셨다. 생일 아침이면 새벽녘에 일어나신 어머니가 불을 지펴 큰 가마솥에는 밥을 짓고 작은 가마솥에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그런 뒤 안방 윗목에 정화수 한 사발과 팥물이 곱게 물든 찰밥 한 그릇, 미역국 한 대접 그리고 잘 다듬은 짚 서너 줄기를 묶어 벽에 비스듬히 세우고 삼신할머니께 기도를 드렸다. 꿰맨 자국이 있는 치마저고리이지만 깨끗이 손질해 갈아입으시고 다소곳이 앉으셔서 두 손을 비비시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아들의 무병장수를 비셨다. 그러고 나면 찰밥과 미역국은 필자 차지가 되었다. 그 시절의 미역국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미역국에 고기를 넣을 만큼 형편이 좋은 살림이 아니어서 간장이나 소금으로만 간을 맞췄을 뿐인데도 참 맛있었다. 일 년에 서너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으니 당연히 꿀맛이었다. 미역 또한 자연산 돌미역이었을 테니 지금보다 그 맛이 풍부하면서도 구수했다. 세월이 흘러 먹거리가 많아진 요즘 세상에도 미역국은 여전히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지금은 거의가 양식 미역이다 보니 예전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가 없지만 그래도 미역국을 즐긴다. 남편들은 아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기 힘들다. 물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이것저것 다 챙기는 아내들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야 더 정성이 담긴다. 서울에서 주로 자라고 생활한 아내의 입맛과 시골 촌놈인 필자의 입맛이 비슷할 리 없다. 두 사람 입맛이 비슷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다. 건강을 위한 웰빙 먹거리 바람 덕에 요즘은 아내도 시골 음식을 점점 좋아하고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비롯해 우거짓국, 된장찌개, 청국장도 밥상에 자주 오른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채소 코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가 즐겨 먹는 머위, 곰취에 아내도 이젠 익숙해졌다. “시골 촌사람 아니랄까봐 티낸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이젠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제는 아예 주변이 논밭인 고양시의 외곽 전원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당 한쪽에서 텃밭도 가꾼다. 나이가 들어가고 미역국을 좋아하는 남편과 오랫동안 살다 보니 아내도 요즘은 입맛을 들여 자주 미역국을 끓인다. 쇠고기와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끓여 한 대접 가득 퍼주면 필자는 뚝딱 먹어치운다. 물론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은 아니다. 먹거리가 많지 않았던 그 시절의 입맛과 지금의 입맛이 같을 수는 없다. 고기도 안 들어가고 양념도 안 된 미역국이지만 가끔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담백한 맛을 느끼고 싶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미역국을 먹을 때면 늘 어린아이처럼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새벽에 필자에게 줄 음식들을 마련하느라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손으로 끓이시던 미역국은 이제 필자에게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의 젖줄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그 시절이 더 그리워진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필자가 미역국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 2016-11-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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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회전근개 파열 겪은 중년여성과 정형외과 전문의의 라뽀
- 온 가족의 식사 후 설거지를 하다가, 혹은 몇 년째 키워오던 강아지를 쓰다듬다가, 평생 해왔던 천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어깨 힘줄이 끊어진다. 툭 소리도 없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들다.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맞은 것도 아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흔하게. 바로 회전근개(回轉筋蓋) 파열이라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았던 김선옥(金善玉·51)씨와 서울바른세상병원 김형식(金亨植·42) 병원장을 통해 회전근개 파열에 관해 자세히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김선옥씨는 평범한 주부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주부처럼,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김씨는 남편 사업이 갑작스럽게 기울어진 후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챙기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식당일을 했다. 그런데 밤낮없이 고단한 일을 해서인지 어느 날부터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좀 불편하긴 했지만 통증은 없었어요. 아프기 시작한 것은 올 1월부터였어요. 어깨가 너무 아파 잠에서 깰 정도였죠. 안되겠다 싶어 동네 의원을 찾았더니 진통제만 주더라고요. 그래도 참을 만해서 버티며 살았는데 올 4월부터 통증이 매우 심해졌어요. 누워서는 잠을 잘 수 없어 앉은 채로 잠을 청했을 정도였어요. 그때 서울바른세상병원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김 원장님을 찾아갔어요.” 김선옥씨는 특별히 어깨를 다친 일은 없었다고 했다. 평소에 심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도 팔을 크게 쓰는 작업은 아니어서 더욱 의아했다고 한다. “팔에 힘이 빠지고 저릿저릿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목에 문제가 생겼나 했어요. 목에 문제가 생기면 그렇다고 해서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한쪽 어깨에 이상이 생기면서 몸의 균형이 깨져 생긴 통증이라고 하더군요.” 김선옥씨는 4월에 이 병원을 찾았고 5월에 바로 수술을 받아 지금은 회복 중에 있다. 목 질환과 구분하는 방법은 ‘팔 들기’ 김형식 원장은 정형외과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환자가 김선옥씨 같은 환자라고 말했다. “많이들 오해하십니다. 보통 척추에 문제가 생길 때 발생하는 방사통과 회전근개 파열과 통증의 형태가 비슷하니까요. 또 요즘에는 의학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 환자분들이 스스로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고요. 두 통증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팔을 머리 위에 올려보는 것입니다. 이때 편하면 척추 쪽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 반대의 경우는 어깨를 의심해야 합니다.” 회전근개 파열은 어깨와 연결되는 팔꿈치 위쪽 팔뼈(상완골) 맨 위에 붙어 있는 어깨 쪽 근육의 힘줄이 파열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쪽 어깨 끝(견봉)을 만져보면 팔과 어깨가 연결되는 쏙 들어간 부위다. “김선옥 환자는 병원에 오셨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힘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죠. 게다가 염증도 심했고 물까지 차 있었어요. 그래도 힘줄이 끊어진 지 아주 오래되지 않은 상태여서 어렵지 않게 수술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어깨 힘줄이 끊어졌는데 오래 참을 수 있을까? 김 원장은 의외로 많다고 설명한다. “힘줄 손상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경우에는 제대로 인지를 못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주변 근육이 힘줄 손상을 보완해주면서 상처에 익숙해져버린 경우죠. 이런 경우에는 애써 수술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생활할 때 불편함을 못 느끼는 데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정형외과 의사들은 조금만 수술하면 예뻐지는데, 완벽해지는데 하면서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의 욕심이 아니라 환자의 요구잖아요. 그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 있다. 병원에서는 동결건 혹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라 부르고, 일반적으로는 오십견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병이다. 오십견으로 오해하고 방치하는 병 “오십견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특별한 치료 없이도 좋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회전근개 파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치료시기를 놓치면 수술이 무척 까다로워지고 어렵게 수술을 한다 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거든요.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환자들이 회전근개 파열을 오십견으로 오해하고 방치해버려요.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낫질 않으니까 그제야 병원에 오는데 이미 심각해진 후죠.” 회전근개 파열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끊어진 힘줄을 다시 이어주는 과정이 복잡해진다. 끊어진 고무줄이 반대 방향으로 튕기는 것처럼 힘줄도 끊어진 부위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진다. 이렇게 끊어진 상태로 방치하면 또 다른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상완골과 견봉 사이의 마찰로 관절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염증이 심해지면 일반적인 수술로는 회복이 어렵고 인공관절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생한다. 김 원장은 이런 방치가 의사로서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무릎관절염의 경우 큰 통증이 없다면 최대한 수술을 미루고 본인 무릎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도록 유도하는 타입이지만, 회전근개 파열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견봉의 타고난 모양이 발병의 원인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오던 주부가 특별한 외상이나 충격도 없이 힘줄이 끊어지다니. 게다가 김선옥씨는 이제 갓 50을 넘긴 비교적 젊은 나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김형식 원장은 그 원인을 견봉, 다시 말하면 어깨를 덮고 있는 뼈의 모양에서 찾는다. “어깨 관절을 덮고 있는 견봉은 사람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모양을 하고 있죠. 일자 모양의 편평형과 약간 굽은 커브형 그리고 문제가 되는 후크형이 있어요. 후크형은 갈고리 모양으로 견봉 아래쪽에 뼈가 톡 튀어나온 형태를 말하는데, 이 튀어나온 부분과 어깨 관절 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힘줄과 마찰을 일으켜요. 결국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힘줄 조직이 뜯겨져 나가고 마지막에는 끊어지고 마는 것이죠.” 평범한 주부인 김씨의 힘줄이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무직 사람들이나 40대의 젊은 나이에도 힘줄이 끊어져 회전근개 파열에 시달릴 수 있다. 다행히 김선옥씨의 경우엔 상처가 크지 않아 수술로 힘줄을 이어붙일 수 있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형적인 형태의 수술이었기 때문에 치료는 특별히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의사들이 앵커라고 부르는 실이 달린 쐐기를 상완골 끝에 박아 힘줄이 뼈에 붙을 수 있도록 잘 묶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물론 이것으로 수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발하지 않도록 상완골의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주고 주변 염증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과정도 거칩니다. 수술은 모두 다 내시경을 통해 이뤄져요. 최소한의 상처만 남겨 빠른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말이죠.” 몸은 아팠지만 부부 사이 돈독해져 기뻐 김선옥씨는 빨리 수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주변에서 나쁜(?) 유혹이 많았다. “주변에서 엉뚱한 조언들이 많았어요. 수술 안 해도 놔두면 낫는다는 얘기부터, 요가만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었죠. 그래도 이 병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으니까,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제일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안심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원장님을 보면서 신뢰도 생겼구요. 원장님이 어깨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보살펴주셔서 더 좋아졌어요(웃음).” 현재 재활중인 김씨는 수술로 인한 휴식이 부담스러운 듯 빨리 나아 일을 다시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복이 더딘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다른 환자에 비해 회복이 좀 늦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몸치’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몸치라서 그런지 재활운동도 너무 힘들어요.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도통 몸을 일으킬 수가 없더라고요.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파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물이 계속 쏟아졌어요. 그러다 도망가기도 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저에게 많이 실망하고 스스로를 나무랐어요. 내 몸을 이렇게 방치했나 싶어서 말이죠.”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다. 남편과 금실이 좋아진 것도 그중 하나다.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에요. 본인 때문에 일터로 나가게 됐고, 일하다가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갖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만회하겠다고 수술 후에는 목욕도 시켜주고, 집안일도 도맡아줘서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김씨는 몸이 완쾌되고 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물음에 운동이라고 대답했다. 평소에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주변 공원도 걷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노력들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남편과 함께. 한 번 큰 병을 앓고 나니 지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어깨 박사가 됐다. 주변에서 어깨 문제만 생기면 자신을 찾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병원에 가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저도 치료를 좀 더 빨리 받았으면 재활이 쉬웠을 텐데, 치료가 늦어 이렇게 고생하잖아요. 물론 저보다 더 병원에 늦게 와서 낭패를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그래서 늘 지인들에게 얘기해요. 일단 병원에 가서 얘기 들어보고 다른 방법을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병원부터 가라고 말이죠.”
- 2016-10-27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