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한 날에 백사 벙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해변에라도 온 기분이 든다. 물론 보고만 있을 때 얘기다. 일단 그 안에 빠지면? 낭만은 단숨에 사라진다. 모래 색이 하얀지 검은지 감상할 새가 어디 있으랴! 벙커 탈출이라는 숙제가 눈앞에 있는데.
아주 옛날부터 벙커를 이렇게 멋지게 만든 건 아니다. 벙커가 골프장 디자인 중 핵심이 된 것은 불과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고? 과거에는 벙커가 지금처럼 멋지게 꾸미는 대상이 절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럼 벙커는 뭐였냐고? 코스 내 쓰레기장 비슷한 곳이었다.
옛날엔 벙커에 온갖 잡동사니를 다 쓸어 넣었다. 퍼팅 그린에 있던 낙엽도 당연히 벙커로 밀어 넣어 치웠다. 코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꽁초나 담뱃갑을 버리기도 했다. 간식으로 통조림을 먹고 빈 깡통을 던져 넣기도 하고.
신사와 숙녀가 하는 스포츠가 골프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신사 숙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그 시절 그러니까 벙커가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었던 시절, 벙커에 빠지는 건 악몽이었다.
막간을 이용해 참고문제 하나 나간다. 벙커 속 낙엽이나 나뭇가지는 치울 수 있을까? ‘치울 수 있다’가 정답이다. 2019년 1월부터 적용한 새 골프 규칙에 따라 가능하게 됐다. 그 전에는? 치울 수 없었다. 그러니 벙커 속으로 볼이 들어가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에 닿으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벙커가 악몽이었던 이유는 또 있다. 지금 같은 ‘웨지’가 없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다른 클럽보다 짧고 클럽 페이스가 누운(하늘을 더 많이 보는) 클럽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과는 달랐다. 뭐가 달랐냐고? 바로 웨지 바닥에 바운스가 없었다. 바운스가 뭐냐고? 웨지 밑바닥을 보면 엉덩이처럼 통통한 부분이 바운스다. 바운스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안다면 중상급 골퍼다. 바운스가 있으면 클럽이 땅속에 박히지 않는다. 내리 찍어도 적당히 땅이나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가 튕겨 나온다. 그 덕분에 벙커에서 모래를 튕겨낼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웨지에 바운스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냐고? 웨지 날(리딩 에지)로 모래를 아주 적당히 잘 쳐야만 했다. 조금만 뒤를 치면 벙커 탈출에 실패했다. 볼 뒤를 바싹 치려고 하다가 볼부터 맞히면? 홈런이 났다.
그때는 어땠겠는가? 아예 벙커에 넣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는가? 큰 승부는 도저히 벙커를 피하지 못하게 세팅하곤 했을 텐데. 그 시절 지독하게도 벙커샷을 못하는 골퍼가 한 명 있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출중했다. 그의 이름은 진 사라젠(Gene Sarazen). 165㎝에 불과한 단신이었는데도 파워만큼은 대단했다. 그런데 벙커샷은 신기하게 잘 못했다. 그런 그가 벙커샷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샷 자체도 연구했지만 클럽 연구를 더 많이 한 것이다. 웨지 헤드를 이렇게 갈아도 보고 저렇게 붙여도 보고. 그러다가 사라젠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바로 웨지 헤드 밑바닥에 쇠붙이를 통통하게 붙이면 벙커샷이 훨씬 쉬워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다. 바운스를 최초로 착안한 사람은 바로 그다.
사라젠은 바운스를 붙인 웨지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벙커에 빠져도 다른 선수처럼 탈출하려고 급급해하지 않았다. 이따금 홀에 가까이 붙이는 벙커샷까지 선보이며 몇 개 대회에서는 우승도 했다. 물론 정글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던 그였으니 ‘바운스 발명’은 비밀에 부쳤고.
그런데 언론이 관심을 갖고 추적한 끝에 그의 벙커샷 비밀을 밝혀냈다. 그러곤 어떻게 됐냐고? 골프용품 업체가 그와 계약을 맺고 바운스를 단 웨지를 판매했다. 그 웨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다른 업체들이 바운스 연구를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쓰는 웨지가 널리 퍼진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라젠. 그는 어릴 적부터 골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목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일을 돕기를 더 바랐다. 꾀가 많았던 사라젠은 페렴으로 몸이 아팠을 때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의사 처방을 핑계 삼아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의 약점을 두 가지나 극복했다. 그중 하나는 작은 체구였다. 힘이 부족했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장타자가 됐다. 다른 하나는 지독하게도 못하던 벙커샷이었다. 그러나 지혜와 연구로 그 약점도 극복했다. 그러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챔피언까지 됐다. 메이저 대회 일곱 차례 우승. 그리고 지금까지 단 다섯 명밖에 위업을 이루지 못한 커리어 그랜드 슬램(메이저 대회 4개를 한 번씩 다 우승하는 대기록)까지. 이 기록 때문에 미국 PGA 투어에서 39승을 올린 게 오히려 묻힐 정도다.
불가능은 없다. 더 위대한 골퍼가 되기 위해 이름까지 사라젠 제국에서 따와 ‘사라젠’으로 지은 그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1902년에 태어난 그는 너무 아쉽게도 내가 골프가 뭔지도 모르던 1999년 세상을 떠났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으로, 골프채널코리아에서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누가 그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감히 이야기하는가? 천만의 말씀, 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베른하르트 랑거(Bernhard Langer)의 이야기다.
2019년 11월 10일. 미국 PGA 투어 챔피언스 2019 시즌 마지막 대회인 ‘찰스 슈왑 컵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가 펼쳐졌다. 먼저 경기를 마친 스콧 매캐런(Scott McCarron)은 클럽 하우스 식당에서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는 이 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그때까지 시즌 누적 포인트는 1위. 뒤쫓아오는 선수 중 포인트 높은 선수들이 우승만 하지 않으면 2019 시즌 챔피언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매캐런은 함께 TV를 보고 있던 아내를 간간이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시즌 종합 성적 2위 자리에만 머문 게 벌써 몇 번째인가? 2018년 시즌에도 포인트 1위를 달리다가 막판에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매캐런을 번번이 좌절하게 만든 주인공은 바로 랑거. 이날도 그가 우승하면 매캐런은 또 한 번 쓴잔을 마실 판이었다.
시즌 마지막 대회 막바지. 랑거가 선두를 바짝 뒤쫓았다. 그때 매캐런은 또다시 악몽이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하며 얼마나 초초했을까? 랑거는 세 홀을 남기고 선두와 한 타 차까지 따라붙었다. 드디어 들어선 마지막 홀. 여기서 버디를 잡으면 공동 선두가 될 수 있었다. 티 샷은 잘 갔다. 잘하면 투온할 수 있는 거리. 다만 그린 오른쪽이 패널티 구역(물)이라 위험해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끊어 가자니 그다음 샷으로 버디 찬스를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랑거는 긴 클럽을 잡았다. 그랬다. 그는 승부사였다. 두어 번 연습 스윙을 하더니 시원하게 클럽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런! 피니시가 약간 엉거주춤했다. 등과 허리가 불편해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 나는 골프채널코리아에서 이 대회 중계 해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누가 우승하길 바랐는지는 물어보나마나다. 그렇다. 바로 랑거다. 챔피언스 투어의 절대 강자인 ‘독일 병정’ 베른하르트 랑거. 그래서 그가 찰스 슈왑 컵 2019 시즌 챔피언까지도 거머쥐길 바랐다. 랑거의 18번 홀에서 세컨샷한 볼은 날아가면서 점점 오른쪽으로 밀렸다. 그쪽은 물인데. 결국 그린에 살짝 미치지 못하고 물에 빠졌다. 그렇게 랑거는 그 대회와 2019 시즌 전체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 순간 클럽 하우스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매캐런의 시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국내 언론 몇 곳은 “랑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제목으로 미국 PGA 투어 챔피언스 최종전 소식을 전했다. 나는 그 제목에 기분이 상했다. 샷 하나가 가른 결과를 갖고 랑거 시대가 끝났다고 쓴 언론이 괘씸했다. 랑거가 그 시즌을 어떻게 보냈는지 안다면 그들은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랑거는 지난해 시즌 두 번째 대회인 오아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보기 좋게 출발했다. 바로 전주에 열렸던 첫 대회, 미쯔비시 챔피언십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어진 몇몇 대회에서도 ‘톱 10’에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2019년 역시 랑거의 해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랑거는 1957년생으로 2019년 시즌 때 만 62세였다. 그런 그가 쟁쟁한 영건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골프 팬들은 다 아는 얘기이지만 PGA 투어 챔피언스는 시니어 투어로 만 50세부터 참가한다. 2019년 랑거의 성적엔 변곡점이 있었다. 4월 말부터 갑자기 성적이 저조했다. 같은 달 하순에 열린 대회 두 개는 참가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슬슬 “랑거 시대가 기울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바로 직전에 그가 만든 대기록 때문이었다. ‘마스터스 골프 최고령 컷 통과’ 기록이 그것이다. 그는 2019년 4월 13일에 끝난 2019 마스터스 대회 2라운드에서 이틀 합계 1언더 파를 쳐서 당당히 컷오프를 통과했다. 내로라하는 여섯 명의 젊은 선수들이 탈락한 그 대회에서 말이다. 첫날에는 71타, 둘째 날에는 72타를 각각 기록했다. 그의 나이 만 61세 7개월 때였다. 그는 이어서 남은 이틀을 지독한 난코스와 싸웠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안다. 랑거의 최종 성적은 컷 통과한 선수들 중 최하위였다. 랑거가 최고령 컷 통과 기록을 세운 2019 마스터스 대회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우승했다. 워낙 큰 뉴스여서 랑거가 선전한 얘기는 밑으로 묻혀버렸다. 랑거는 그 주에 얼마나 진을 뺐는지 두어 주 쉬고 나서야 시니어 투어로 돌아왔다. 그러곤 한동안 맥을 못 췄다. 부진은 몇 달간 이어졌다. 마스터스 대회에서 선전하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웠던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랑거의 골프가 진짜 석양길로 접어드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2019년 7월 25일부터 나흘간 영국에서 열린 ‘2019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에서 또 우승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대회까지 맹추격에 나섰다.
랑거의 도전은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첫 대회에서는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이 글을 독자가 읽게 될 때쯤에는 시즌 첫 우승을 할지도 모른다. 거장의 시대는 결코 쉽게 저물지 않는 법이다. 시니어가 됐다고 뜨거운 열정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으로, 골프채널코리아에서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VVIP에게만 허용된 초호화 공간부터 소박한 맛집까지, 전 세계 슈퍼리치들이 사랑하는 핫플레이스를 소개한다.
글 브라보 마이 라이프 편집국 bravo@etoday.co.kr
◇ 쿠알라룸푸르 ‘마인즈 리조트&골프 클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명문 골프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마인즈 리조트&골프 클럽’은 상위 1% 슈퍼리치를 위한 멤버십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엄격한 선별 과정을 통해 500명 미만의 소수정예 회원만을 수용한단다. 덕분에 방문객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황제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타이거 우즈의 우승 코스로도 유명한 이곳의 63개 홀 중 18개 홀은 한국 골프 여왕 박세리가 직접 설계에 참여했다. 코스 중심에는 60만 ㎡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마인즈 리조트 쇼핑몰과 연결돼 유람선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마치 바다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코스의 그린피(green fee)는 40만 원 선으로 알려졌다.
◇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더 클럽’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는 회원은 물론 자식과 손주 세대도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더 클럽’이 있다. 6만9000㎡의 너른 부지에 들어서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 최고급 레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한마디로 상류사회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피트니스, 사우나, 골프 연습장, 풋살, 테니스, 농구 코트 등 다양한 운동시설은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클럽을 구현하고 있다. 회원 전용 시설은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을 배려한 노력이 엿보인다. 오아시스 야외 수영장에는 어린이를 위한 모래사장과 키즈풀이 있고, 사우나에서는 가족이 함께 즐기는 ‘패밀리 데이’를 진행한다. 키즈 클럽은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피트니스의 종목별 주니어 레슨은 시즌에 따라 새로운 주제로 운영된다.
◇ 빌리어네어숍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1300억 원짜리 요트를 살 수 있을까? 슈퍼리치를 위한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 ‘빌리어네어숍’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이 사이트 카테고리는 요트를 비롯해 전용기, 헬리콥터, 자동차, 모터사이클, 시계, 레지던스 등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어마어마한 상품(?)들을 판매한다. 3억1950만 유로(약 4161억 원)에 달하는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투어 오데온 스카이 펜트하우스가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가 하면 2억6079만3700유로(약 3356억 원)짜리 보잉 B787-8 항공기도 구매할 수 있다. 사이트 내에서 가장 가격이 싼 상품은 명품 모터사이클 브랜드 두카티의 디아벨크로모. 하지만 이조차도 1만6500유로(약 2124만 원)로 만만찮은 가격이다.
◇ 네커 아일랜드
카리브해의 이국적 풍경을 품은 지상낙원. 하지만 1인당 하루 숙박료가 1000만 원에 육박하고 기본 3박 이상부터 이용할 수 있으니 일반인들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곳. 영국 기업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이 소유한 ‘네커 아일랜드’는 타인의 시선과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럭셔리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초호화 섬 리조트다. 또한 전 세계 부호들의 단골 휴양지로도 유명한데,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를 비롯해 팝 디바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등이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객들은 산호초와 터키색의 맑은 바다로 둘러싸인 네커 아일랜드에서 고급스러운 숙박, 워터 스포츠, 최고 수준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이용요금은 인원수에 따라 달라진다.
◇ 프레지던트 윌슨 ‘로열 펜트하우스 스위트’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프레지던트 윌슨 호텔의 ‘로열 펜트하우스 스위트’는 하루 숙박비만 약 9000만 원에 달한다. 빌 클린턴, 빌 게이츠, 마이클 잭슨 등 국빈급 명사와 셀럽이라야 예약 가능하다고. 국가 원수나 슈퍼리치가 주 고객인 만큼 안전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서비스가 눈에 띈다. 전용 엘리베이터와 비상구, 금고는 물론 객실 창을 모두 방탄유리로 설치했고, 보안팀이 항시 대기한다. 초호화 객실에서 희귀 고서와 예술품을 비롯해, 큰 창으로 몽블랑 호수와 알프스 산맥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 요리사와 집사 등이 특별 서비스도 제공한다.
◇ 거슨 클리닉
1920년대 미국의 맥스 거슨 박사가 창안한 거슨 요법을 중심으로 심신 안정과 건강 개선에 필요한 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거슨의 웹사이트(gerson.org)에서는 멕시코 티후아나(Health Institute de Tijuana)와 헝가리 부다페스트(Gerson Health Center)의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항암을 비롯해 각종 질환 개선을 위해 설립됐으며 유기농 식단을 기반으로 생식 주스, 자연 보조제, 커피 관장 등을 통해 몸의 기능을 돕는 곳이다. 거슨 요법을 선호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두 곳 모두 입소하면 최소 2주 동안 머무르면서 거슨 요법에 기반을 둔 힐링 프로그램을 따라야 한다. 멕시코 시설 이용비는 2주에 1만2000달러(약 1390만 원), 헝가리는 8100유로(약 1043만 원) 선이다.
슈퍼리치가 찾는 맛집은?
55도 와인앤다인 와인의 풍미와 어울리는 요리를 제공하는 ‘55도 와인앤다인’은 주식부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비롯해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의 단골집이다. 이곳 메뉴인 디너 코스 어드밴티지의 가격은 7만5000원으로 샐러드, 수프, 게살크림파스타, 푸아그라파테, 생선요리, 한우등심스테이크, 커피가 나온다.
시로’s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는 미국 시애틀의 초밥집 ‘시로’s’를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의 코스 메뉴인 시로’s 테이스팅 디너 가격은 65달러(약 7만6000원)로 수프, 애피타이저, 회, 초밥 등이 제공된다. 1130억 달러를 보유한 자산가의 식사 치곤 소박해 보인다.
루스티코 미국 전 뉴욕 시장이자,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의 단골 식당으로 버뮤다에 있다. 이탈리아식 파스타와 피자가 유명하며, 샌드위치와 샐러드 햄버거 등은 점심시간 한정 메뉴로 판매한다. 지역 해산물로 만든 요리 또한 유명하다. 식사는 전화 예약으로만 가능하다.
레스토랑 오늘 ‘레스토랑 오늘’은 한식을 주제로 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이다. SK그룹이 설립한 식문화 전문 사회공헌재단인 행복에프앤씨재단이 운영한다. SK그룹 총수는 물론 임원진, 인기 연예인 방문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 콘셉트에 맞춘 메뉴로 연회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계절마다 바뀌는 코스 요리다.
스미스&월렌스키 20년 넘게 열리고 있는 ‘워런 버핏과의 점심 경매’, 지난해는 약 54억7000만 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귀한 식사 자리는 워런 버핏의 단골 식당으로도 알려진 뉴욕의 스테이크 맛집 ‘스미스&월렌스키’에서 주로 이뤄진다고 한다.
잡어와 묵은지 서울 서초구 소재의 이곳은 만화 ‘식객’ 광어 편에 등장한 맛집이다. 단연 허영만 화백을 비롯해 LG, GS 계열 기업 총수들이 찾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태안 신진도에서 매일 공수한 생선으로 뜬 회를 2년 숙성한 묵은지에 싸먹는데 그게 아주 별미란다.
만성질환 중장년, 아침 말고 낮에 운동하세요!
추운 날 아침에 운동을 나갔다가 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을 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 빙판이나 눈길에서 넘어져 낙상하거나, 한파에 저체온증에도 걸릴 수 있어 겨울철 야외 활동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집 안에만 머무는 것보다는 적당한 운동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때 기온에 따른 신체와 운동 능력의 변화를 이해하고 준비해야 운동으로 인한 사고와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겨울철 야외 운동 시 유의할 점들에 대해 알아보자.
관절 가동 범위 늘리기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면 관절의 운동 범위가 제한된다. 관절을 구성하는 인대 근육 등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프로 골프 선수들도 겨울엔 관절의 회전 범위가 좁아지는데, 이를 간과하고 평소처럼 힘차게 스윙했다간 허리를 다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혀야 운동 능력이 발휘되고 부상도 예방할 수 있다. 이때 스트레칭은 목이나 팔, 어깨 등을 길게 뻗거나 늘어뜨리는 정적인 동작이다. 지나친 반동을 줘서 허리를 굽히거나 목을 뱅뱅 돌리는 등의 동작은 자칫 부상으로 이어진다. 목을 옆으로 돌려 손으로 가만히 누르거나 가능한 만큼만 허리를 굽힌 뒤 그 자세를 5~30초 정도 유지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실내에서 준비운동하기
항상 가벼운 스트레칭과 웜 업(warm up)을 잊지 말자.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는 혈관이 유연하지 않은 이들이 야외에서 갑자기 무리하게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다. 준비운동의 목적은 안정된 상태의 인체 조직을 운동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근육과 관절의 온도를 높여놔야 민첩성, 유연성이 좋아져 부딪히거나 넘어져도 덜 다친다. 준비운동 강도는 몸에서 약간 땀이 날 정도가 좋다. 영하의 온도에 야외에서 준비운동을 하면 체온이 쉽게 올라가지 않을뿐더러 부상 위험도 있다. 가급적 따뜻한 실내에서 몸을 풀고 나갈 것을 권한다.
목과 머리 보온하기
겨울철 운동의 핵심은 체온관리다. 두꺼운 옷보다는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게 효율적이다. 그렇다고 옷을 지나치게 껴입으면 체온이 빠르게 올라가 땀이 많이 난다. 땀은 증발하는 과정에서 체온을 떨어트린다. 목 윗부분으로 갈수록 이런 증상이 심하다. 코와 귀는 피 공급이 크게 줄어 모자, 목도리, 귀마개, 마스크 등 방한용품을 잘 착용해 보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질환자는 오후에 운동하기
기온이 낮을수록 고혈압 환자들은 혈관이 급격하게 수축하면서 심장에도 무리가 가 뇌출혈, 심근경색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당뇨, 비만 환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만성질환자는 가급적 하루 중 기온이 높은 시간에 운동하거나, 겨울 동안은 실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운동 강도 낮추기
새해가 되면 건강관리를 위해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날마다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근육이 충분히 회복하게끔 격일 정도로 일정을 잡아야 무리가 없다. 추울 때는 무거운 것을 순간적으로 들어 올리는 등 과격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 겨울철에는 다른 계절보다 체온을 유지하는 데 10~15%의 에너지가 더 소비돼 그만큼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 규칙적인 생활에 얽매여 매일 억지로 운동하기보다는 날씨와 몸 컨디션을 고려해가며 강도를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
야외 운동 중 금주하기
스키장, 골프장 등 야외 운동을 나갔다가 추위에 언 몸을 녹인다며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 술은 아주 잠시 체온을 상승시키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이뇨와 발한 작용을 촉진해 체온을 더 떨어트린다. 뿐만 아니라 체력과 사고력, 판단력이 흐려져 낙상이나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반드시 음주는 삼간다.
운동 후 따뜻하게 목욕하기
운동을 마치면 땀이 식으며 체온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재빨리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 게 좋다. 여의치 않다면 여벌의 옷을 준비해 갈아입고 평소보다 몸을 더 따뜻하게 해준다. 또 운동을 심하게 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더 쉽게 걸리니 유의한다.
시니어 피트니스 Tip
짧게 자주 운동하기 체력이 좋은 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지나친 운동은 오히려 해가 된다. 한 번에 오래 동작을 하다 보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칫 부상의 위험까지 생긴다. 조금씩 자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충분히 갖자.
격일로 운동하기 운동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근육과 컨디션 회복도 더디다. 매일 몸에 부담이 쌓인 채로 무리하는 것보다는 하루 쉬고 격일로 운동하며 차차 운동량과 일수를 늘려가는 것이 좋다.
몸에 맞게 운동하기 최근에는 유튜브에 소개된 운동법을 따라 하는 이가 많다. 보통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운동 강도나 동작이 시니어에겐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몸 상태나 연령대를 고려한 운동법을 찾도록 한다.
우리나라 저가 항공사가 세워진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운송의 주축을 이루었다. 지금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 대수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승객 이용면에서도 가장 많은 대형 항공사로 분류되고 있다. 그 외에 저비용 6개 항공사가 있는 데 에어부산, 에어서울,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이다. 대한항공이 국내선과 국제선을 포함하여 161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이 82대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울에서 제주도를 가려면 비행기 요금이 무서워서 제주도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곤 했다. 그때는 저가 요금이라는 것도 없었고 요일에도 관계없이 높은 항공기 요금을 내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비행기 요금이 없어서 부산이나 목포 그리고 완도로 배를 이용해서 제주도를 다니곤 했다. 티웨이항공(당시는 한성항공)이 2004년도에 운항이 되었고 제주항공(당시는 제주에어)이 2005년도에 그리고 진에어가 2008년도에 세워지면서 항공사별로 요일에 따라 저가 요금을 적용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제주도를 비롯하여 부산 등 비행기가 다니는 곳에 급하게 갈 일이 아니면 공휴일이 아닌 평일에 항공권을 예약하면 저가로 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공휴일과 연휴에도 간혹 저가 항공요금을 적용하는 때도 있으나 공휴일이나 연휴 또는 휴가기간에는 대부분이 정상요금을 받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하든 제주도를 비롯하여 다른 지역을 항공을 이용해서 갈 때는 급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저가 항공권을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항공사나 여행사의 항공권을 예약하고 티켓팅을 하면 된다.
비행기 요금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을 해서 조금이라도 싸게 저가로 나와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 요금은 예약할수록 할인이 많이 된 저가 요금이 많이 나오곤 한다. 하여튼 요금이 저가인 비행기를 이용하면 정상가격의 50%는 절약할 수 있다. 비행기 항공요금도 본인이 노력한 만큼 요금을 할인해서 저가로 예약하면 그만큼 절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항공사 홈페이지나 여행사에 들어가서 비행기 시간과 요금을 확인하고 본인의 일정에 맞추어 예약을 하면 된다. 인터넷에서 가격이 저렴한 좌석이 있으면 바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예약하기 때문이다.
예로 K항공사인 경우에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 각 3만2400원 티켓이 있었고 T항공사인 경우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 2만2600원, 대구에서 제주가 2만6400원 티켓이 있었다. 이렇게 싸게 나온 것이 있으면 티켓팅하면 된다.
요즘은 비행기 요금이 저가인 티켓이 있어서 다소 싸기 때문에 골프를 치는 서울 사람들도 제주도에 가서 골프를 치고 온다. 저가항공을 이용해서 아침 일찍 제주도에 가서 저녁때 늦은 비행기로 오면 서울에서 다른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 것보다 품위도 유지되고 비용도 덜 든다. 그래서 제주도 골프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제주도외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부산이나 대구 등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도 저가 비행기를 잘 선택해서 이용하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여수엑스포역은 관광지 철도역으로는 만점짜리 자리에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구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엑스포 전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왼쪽에서는 쪽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역 앞에 긴 줄로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바로 잡아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끌리듯 엑스포 전시장으로 직진한다. 높낮이 없이 평평하게 설계된 전시장 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걸리는 곳이 없다. 시니어들에겐 맞춤 산책길이다.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접근해 걷게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소문 난 오동도다. 전시장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있으니 그 섬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만한 섬!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다 돌 수 있다. 이 섬이 소문난 건 동백꽃 덕분이다. 동백꽃은 한창 피어나는 겨울보다는 지기 시작하는 초봄에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무리를 이뤄 떨어져 있는 빨간 꽃송이와 꽃잎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질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그 교훈을 실감
나게 체득하려면 동백꽃이 떨어지는 3~4월께 오동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실비로 먹는 ‘시골밥상...’ 식당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곳이 맛의 고장 여수임에랴! 오동도 앞에서 돌산으로 가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8000원짜리 여수 가정식 백반을 파는 ‘뚱땡이 할머니의 밥상 시골밥상’ 집은 언제나 손님이 차고 넘쳐 끼니때는 이용이 쉽지 않다. 칠순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와 마흔도 채 안 돼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애국자’ 따님이 운영한다. 맞은편 엠블 호텔 투숙객들도 이 식당을 많이 찾는단다.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하나하나 간을 잘 맞춘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매일 바뀌는 국 종류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더 시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식사를 끝낸 자리엔 종업원이 큰 통을 들고 가서 남은 ‘아까운’ 반찬들을 모두 담는다. 음식 재활용을 않는다는 걸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자리가 꽉 차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사진도 못 찍고 문전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쉽기는 뚱땡이 할머니와 따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그냥 보내는 눈빛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진남관 앞 ‘서울해장국’ 식당
그렇다고 애써 맛집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여수가 아니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그 오른쪽 앞과 길 건너편 거리에 여수의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은 맛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해장국’이 있다.
아니, 맛집 고장 여수에서 엉뚱하게 옥호를 ‘서울~~’로 쓰다니! 그러나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수십 년 전 여수가 관광지로 채 발돋움하기 전에 개업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은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마치 50, 60년대 서울의 빵집과 양복점 등의 이름으로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많이 썼던 것처럼.
이 식당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바싹 말린 우거지를 장어로 국물 맛 낸 된장국에 넣어 푹 끓여낸 우거지국, 바삭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 두툼한 선지국은 모두 한 그릇에 6500원,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찌개(8천 원) 등이 하나같이 별미다. 이 식당은 특히 밑반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 때 그 때 구워주는 생김을 찍어 먹게 집간장과 양념간장을 함께 내주고 갓 만들어 내오는 숙주나물, 고추멸치볶음, 계란부침 등도 모두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와 따님이 조그만 식당을 무려 종업원 10명가량을 쓰며 운영한다. 김 굽는 직원, 식재료 다듬는 직원, 우거짓국 끓이는 직원, 김치찌개 끓이는 직원 등이 제각각이다. 맛집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상을 수시로 체크하며 모자란 반찬은 알아서 채워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손님들이 저마다 이 식당 칭찬하기에 바쁘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선짓국을 들고 계신다. 궁금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40년 단골이지.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이고 배고프던 시절 추억을 떠올려 더 좋지.” 여러모로 완벽한 맛집인 셈이다.
그 밖에도 복춘식당, 조롱박 등 여수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이 일대에 많다. 서대회, 아귀찜, 아귀탕, 생선 내장탕, 돌게장, 삼치회 등이 주메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많은 아귀찜 식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부한 아귀를 넣은 아귀탕이 1만 원. 둘이서 다 먹기 부담스러운 양의 아귀찜도 2만 원 미만이다. 마산 일대가 주산지로 알려진 아귀는 여수에서 더 풍족하게 요리된다. 여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의 선어회는 여수의 특징적인 음식 중 하나다. 처음 접하면 물컹한 식감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삼치회만 찾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구이로 먹는 삼치 머리는 클수록 맛이 좋다.
진남관. 이순신광장. 장군섬
식사를 마치고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광장을 ‘참배’ 할 차례다. 여수를 하루만 둘러봐도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새삼 놀라게 된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까지 여수에 있고,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던 ‘선소’도 세 곳이나 있다. 어머니 처소는 보존작업이 마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그 앞에 새로 이순신 공원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점잖은’ 여수 시민들은 ‘이순신 자원’을 그리 요란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도 여수를 몇 번 찾기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줄은 알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도 여수민들을 여러모로 ‘살려주고 있는’ 중이다. 거북선 빵집, 이순신 햄버거 등 여수 상가의 옥호 중 이순신과 거북선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여수민들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한없는 불멸의 영웅은 여수에서 그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남관은 2020년 봄까지 보수 일정이 잡혀있어 내부 관람이 금지돼 있다. 광장의 장군 동상 앞에 실물 크기로 지어졌다는 거북선도 기자 일행이 찾았을 때는 수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보수를 해야 한단다.
진남관 입구와 장군 동상 너머 장군섬에 이르는 곳까지 장군의 위세가 당당하게 뻗쳐져 있는 일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웅 충무공에 대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참고로 해방 즈음까지는 장군 동상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단다.
종포공원 거쳐 오동도 가는 길
이순신 광장에서 오동도 방향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산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부터 여수의 포장마차 촌으로 유명해진 종포공원을 거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다. 우선 종포공원부터 걸어보기로 한다.
이 일대는 여수의 오래된 바닷가 놀이터 중 하나다. 지금은 공원으로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낚시꾼이 모여들고 고기잡이배가 들락날락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로 옆에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종일 생선 판매가 이뤄지는 선어 시장이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
몇 년 동안 성시를 이루던 포장마차 촌은 인근 하멜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정비 차원이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포장마차 촌의 모습으로 보기엔 익숙하지 않다. 행정력도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바람직한데...
종포 공원 일대에 펜션 서너 곳이 있고 펜션 부근에 맛집이 꽤 늘어서 있다. 포장마차와는 구분되는 식당들이다. 여수 특산물 중의 하나인 돌문어 식당이 많다. 돌문어삼합, 돌문어라면 등등. 진화한 여수 음식 종류 중 하나는 해산물을 활용한 라면 요리다. 이 돌문어 식당엔 점심때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젊은 층이 많다. 돌문어라면 뿐만 아니라 해물라면, 돌문어삼합 등 새로운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돌문어라면 1만 원, 네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돌문어삼합은 3만9000원.
기자도 몇 년 전 여수에 와서 라면 요리를 ‘개발’했었다. ‘꼴뚜기 라면’. 시장 아지매한테 1만 원만 주면 한 접시 가득 주는 꼬록(여수에선 꼴뚜기를 꼬록이라고 부른다)을 특별한 레시피 없이 라면과 함께 끓여주면 색다른 국물 맛을 내는 아주 맛깔스러운 라면이 완성된다. 강추!!!
몰포 나비와 나비 반도 여수
자산공원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 올라가기에 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들도 코스로 잘 잡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 체력으로도 천천히 걸어 올라갈 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산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자산으로 이름 붙여진 그 산속 공원엔 여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또 생뚱맞은 이름의 전시관이 하나 있다.
곤충체험관인데 이름하여 ‘빠삐용(나비) 전시관’이란다. 여수에 빠삐용 전시관이라니.. 입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스티브 맥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수에 빠삐용? 생각해보고 거듭 생각해 봐도 생뚱맞다!
전시관에 들어가 설명을 들어봤다. 여수시의 전직 공무원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집념으로 나비를 채집해 개인적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시에 기증해 지금은 시가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나비 표본 중에서 대표적인 전시물이 저 멀리 중남미 원산의 몰포나비. 푸른 금속성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그 나비 모양을 빼닮은 여수반도 그림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아하! 그제야 조금 몰포나비 채집자의 의도가 이해될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폈음 직하다.
“지구 저편에서 몰포나비가 너울너울 날아와 한반도 끝자락에 앉았다. 여수반도다!”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에서
여수에서는 걷다가 가끔 시내버스도 타볼 만하다. 2층 관광버스도 좋지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를 돌다 보면 대충 여수 시내의 윤곽이 들어와 다음날 일정에 참고하기에도 좋다.
물어물어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역으로 갔다. 고급 아파트촌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돼있으며 입구 상가엔 여수답지 않게 주차난이 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식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원은 ‘예울마루’다. 전시회와 음악회를 수시로 여는 이 건물은 여수 산단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는 어느 대기업이 외국인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어서 시에 기부한 것이다. 건물 외벽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 건축물 문외한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건물 바깥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예울마루 관람을 마치고 15분가량 옆의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짓고 수리했다는 선소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작품 ‘선소’
이 선소는 여수반도를 에워싼 바다의 ‘골목길’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적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웅천 쪽에서도 선소는 보이지 않고 웅천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촌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입지 선택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안정적으로 거북선을 짓고 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북선과 수전의 각종 전략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거북선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 주민 친화력, 그리고 선소 운영 능력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무공께 새삼스러운 존경의 묵례를 보내고 이번엔 선소 길 건너의 그 유명한 보리굴비 식당으로.
명사들이 찾는 여수의 보리굴비 식당 ‘석정’
굴비 하면 영광 굴비, 법성포 굴비다. 그런데 여수에 명사들도 즐겨 찾는 보리굴비 전문식당이 하나 있다. 옛 여천 지역, 여수 시청 부근에 있는 석정 식당이다.
이 식당도 덕장은 법성포에 두고 있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말려 여수로 가져와 조리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굴비 정식엔 굴비와 함께 해물 보쌈김치, 여수산 각종 나물 등 17가지의 반찬을 내놓고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굴비를 찢어 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보리굴비 속살, 군침이 돈다. 보리굴비 정식 2만 원. 여수엑스포 준비위원장을 지낸 전 건설교통부 장관 강동석 씨,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윤정희, 백건우 씨 부부 등 명사들이 오래된 단골이란다.
여수에서 11월에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대회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이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단다. 각국 한인들에게까지 이 식당 소문이 났다는 식당 측의 자화자찬이다.
식당 판매보다는 전국에 보내는 택배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물 포장된 다섯 마리에 택배비 포함하여 6만5,000원, 10마리 세트는 12만5,000원.
구여수와 신여수
여수시청이 있는 구 여천지역과 구 여수를 잇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내륙 쪽 버스들이 다니는 길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웅천지역을 지나 구 여수로 가는 길목 왼쪽에 한국화약 소유 대지가, 있으며 그 건너편엔 여수반도에서 가장 탁 트인 넓은 바다가 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대단위 리조트로 개발할 만한데, 웬일인지 방치되고 있다. 띄엄띄엄 바닷가 길을 둘러 가면 구 여수의 전통 항인 국동항이 나온다. 옛 여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동항엔 항상 낚싯배들이 수백 척 정박해있고 경매장에선 새벽마다 활발하게 경매가 이뤄진다. 바로 앞 경도엔 미래에셋이 경도 리조트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경도는 골프장과 함께 여름 한 철 먹거리인 하모(갯장어의 일본말)의 주산지이다. 경도와 고흥 일대의 하모를 최고의 갯장어로 꼽는다. 경도 안엔 하모를 회와 샤부샤부(일본말. 유비끼라고도 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혹자는 일본사람들처럼 갯장어에 기름이 끼는 7월 이후엔 맛이 별로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때의 하모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자매식당 등 국동항의 맛집들
그러나 여름철이건 겨울철이건 바닷장어 요리를 꾸준히 하는 식당들이 여수에 많다. 특히 국동항 주변엔 갯장어를 통째로 끓여 내놓는 통장어탕 식당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자매식당을 찾았다.
장어를 잘라서 국 끓이는 게 아니라 통째로 넣어 끓인 후 손님상에 내와서 종업원이 국자로 장어를 으깨서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준다. 된장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장어 맛과 함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는 토막 낸 장어를 숙주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 내놓는다. 통장어탕 14000원, 장어 소금구이 2만 원을 받는다.
여수에 가장 많은 식당이 장어탕 식당과 돌게 간장게장 식당이다. 장어탕 식당은 수산시장 안, 시청 주변, 시내 곳곳에 있다. 그중 자매식당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여수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는 멍게 젓갈이 또 일품이다. 자꾸 더 달라는 손님이 늘어나 포장 판매를 시작했단다. 한 통(3kg)에 3만 5000 원, 택배비 4000원이란다.
여수의 수산시장
여수에는 수산시장이 몇 곳 있다. 수산시장, 특화시장, 교동시장, 선어시장. 그중 수산시장이 중앙시장 격이다. 몇 년 전에 이 시장에 큰불이 나서 시장이 완전히 전소했었다. 주변의 지원과 상인들의 복구 노력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새 시장 모습으로 태어났다.
시장 내 수십 곳 되는 활어 판매대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잡는 활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생선 잡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좋다는 어느 보고서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물새횟집 아지매. 수십 년간 온 가족이 이 업에 종사해왔단다. 종포공원 옆에 자그마한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재빠르고 시원시원하게 생선을 잡고, 손님과 흥정도 시원시원하게 하며, 횟감은 그야말로 맛깔스럽게 썰어낸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일본 시장 상인들과 일 합을 겨루게 해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회를 떠 가져갈 수도 있으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으로 한 사람당 4,000원과 매운탕값 5,000원을 주고 식사를 한다. 서울의 가락시장, 노량진 시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실비다. 생선 산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세 명이 싱싱한 돔, 갑오징어, 농어, 삼치 등 각종 회를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도 6만 원 미만을 냈다.
시내의 실비식당 ‘와사비’
게장 골목 소개는 생략한다. 여수의 전통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간장게장 식당들은 이제 시설과 메뉴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신 시내의 횟집 한 군데를 더 소개하고 여수의 맛집 소개를 마친다. 여서동 네거리 근처의 ‘와사비’식당. 옥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름 때문에 최근 곤욕을 치렀단다. 얼마 전부터 보는 시선들이 좀 누그러지더란다.
옥호를 ‘고추냉이’로 바꿀 생각은?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요... 이 식당은 문 연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 6년 전께 문을 열자마자 여수에서 오래된 횟집들을 제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간단. 남자 사장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직접 생선을 잡아 오고 여수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건 통영 등지로 달려가 구해와서 오후부터 바쁘게 회를 만든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게 몇 년을 일해 얼굴이 수척해졌을 정도다. 부인은 서비스 메뉴를 개발하고 상차림을 연구하는 한편 수시로 주방에 들어가 남편과 주방 보조 여인을 돕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은 상차림과 회접시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식당도 갈치회, 삼치회가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회 한 접시에 4만 원에서 6만 원이면 세 사람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맛집 몇 곳을 소개했지만, 여수의 장점은 어느 식당에 가든 다른 지방에 비해 만족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식당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손님들 눈에도 보일 정도다. 전통인지, 요즘의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엑스포 이후 시설과 함께 식당들의 자세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먹방과 인터넷에서 칭찬은 많이 받고 악평은 덜 받는 곳, 여수가 됐다.
오동도 입구의 일출
여수에서 일출을 보는 장소로는 돌산섬 일대를 많이 꼽는다. 그중에서도 섬 끄트머리의 향일암(向日庵)은 일출로 유명해진 곳이다. 정동진과 함께 일출 사진이 워낙 많이 나돌아다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수 현지의 정보로는 요즘 오동도 입구의 일출이 장관이란다.
새벽에 일어나 이틀을 기다렸다. 해는 우리의 애를 태우면서, 햇살만 내려보내 고기잡이배들을 비춰줄 뿐이었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 대신에 빛줄기만 담았다. 일정상 일출 장면 촬영을 포기하고 서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면서 여수 지인에게 일출 촬영을 간곡히 당부했다. 간곡히 간곡히 거듭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출 사진이 메일로 왔다.
쌩큐 오 선생!
쌩큐 여수!
(사)한국숲생태지도자협회에서는 2018년부터 산림청 지원을 받아 서울시에 있는 양로원과 경로당 어르신들을 서울숲에 초청해 숲 해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싱그런 봉사단’. 봉사단은 숲 해설 자격증을 갖고 있는 60여 명의 숲해설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원들이 매일 교대로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4월부터 11월까지 평일 오후 2시부터 2시간씩 운영되는데, 하루에 10여 명에서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게임도 즐기고 여러 가지 만들기 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숲해설가들은 80세 전후의 어르신들이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서울숲을 안내하고 게임도 함께한다.
요즘 서울숲에는 목련, 개나리, 벚꽃, 철쭉, 튤립, 수선화 등 봄꽃이 만발했다. 그래서 숲 해설 주제도 ‘서울숲의 아름다운 꽃구경’으로 정해 봄꽃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봉사단원들은 어르신들에게 꽃이 피는 시기, 꽃의 특성, 번식 방법, 꽃말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기념촬영도 한다.
지난 4월 23일에는 노원구에 위치한 ‘효담라이프케어’ 양로원에서 지내는 어르신 24명이 참여했다. 그분들 중 최진학 어르신은 85세인데도 정정해 보였다. “서울숲 견학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오랜만에 넓은 숲으로 나와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놀이까지 즐겨서 너무 좋다”고 했다. 83세인 김순자 어르신도 “양로원에서 야유회를 간다고 해서 동참했는데, 아름다운 숲에서 튤립, 팬지 등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줘서 고맙고 또 오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에 위치한 서울숲은 서울시에서 운영 관리하는 공원이다. 조선시대에 임금과 왕실 사람들의 매 사냥터였던 이곳은 1908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수원지였다. 이후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활용되다가 2002년 서울 시민에게 휴식 공간을 마련해주고 녹색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무가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숲으로 탈바꿈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5000여 명의 시민과 70여 개 기업은 서울숲 조성을 위해 기금 후원과 자원봉사 참여를 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고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대표 녹색 쉼터인 서울숲은 지하철이 근처까지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입장료와 관람료도 없다.
모임이 있는 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술자리가 끝나고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저녁 자리까지는 의무에 속한다. 식사 겸 술 한잔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례적 행사가 끝나야 비로소 옵션이 풀리는 셈이다. 집에 일찍 갈 사람은 가고 각자 흩어진다.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은 한잔 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맥줏집을 찾기도 하고 요즘은 실내 스크린 골프장을 찾기도 하는데 주로 가는 곳은 당구장이다. 그런데 나는 당구를 배우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는 축구와 농구를 좋아해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반면 당구는 한때 불량 학생들이나 동네 건달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담배 연기 뿌옇고 신문지에 덮인 자장면 그릇이 놓여 있는 곳, 그것이 당구장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그래서 직장 다니면서도 당구가 끌리지 않았다. 당구 치러 가자고 하면 볼일 있다고 아예 빠져버렸다. 가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도 신문을 보거나 커피 한잔 하면서 무료하게 기다렸다. 그러면 짝이 안 맞는다고 당구 좀 배우라고 야단들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놀기에 좋은 운동이라면서 주변에서 강력히 권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 ‘그럼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는 길에 근처 당구장에 등록했다. 어떤 운동이든 기초를 배울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당구는 용어 자체가 대부분 일본어였다. 오시(밀어치기), 하끼(끌어치기), 비껴치기(비켜치기), 삐루(회전), 겐세이(방해) 등 외래어 일색이었다. 어쨌든 시원시원하게 진도를 나가면 좋겠는데 며칠 동안은 공도 안 주고 자세만 가르쳤다.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했고 자세도 불편했다.
얼마 후 겨우 공을 만지게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큐대를 다마(공)에 대고 몇 번 어르듯하다 그대로 밀어쳐야 하는데 몸이 흐트러지며 공이 계속 비켜나갔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면 별거 아니고 쉬워 보였는데 실제 해보니 전혀 달랐다. 정확한 계산도 있어야 하고 판단력도 필요했다. 그냥 대충해서 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맞은 공이 정확히 각을 이루어 다른 공을 맞힐 때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술이라 할 정도로 멋있었다. 그러나 초보인 내게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마는 핑핑 돌며 실수를 반복했다. 내 평생 구기운동을 이렇게 재미없게 해본 적이 없었다. 테니스를 할 때도 열심히 했고 재미도 있었다. 축구, 농구, 탁구 등도 그랬는데 당구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당구를 그만뒀다. 좀 더 인내했다면 지금쯤은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어울렸을 테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더 배우지 않기로 한 데에는 코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초보인 내게 칭찬보다는 질책을 많이 했다. 가뜩이나 억지로 배우러 왔는데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다. 못 쳐도 살살 달래가며 칭찬을 해줬더라면 그냥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한두 번 가르쳐주다가 다른 일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 졸다가 이따금 와서는 잔소리만 하고 갔다. 물론 당구는 가르쳐준 대로 혼자 열심히 익혀야 하는 운동이 맞다. 그러나 초보에게는 적절한 칭찬이 있어야 한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 후 바쁜 일이 있어 한두 번 빠지게 됐고 이내 가기가 싫어졌다. 결국 등록한 날짜도 남았는데 큐대를 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잘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칭찬을 해줬다면 아마 그 말에 속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의 기분은 이랬다.
‘내 돈 주고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당구를 배울 때도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그 후 지나가는 길에 올려다본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당구장 간판이 아닌 노래방 간판이었다.
‘파크(park)’와 ‘골프(golf)’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두 단어를 합친 ‘파크골프’는 생소하기만 하다. 골프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을 가진 파크골프를 배우기 위해 강신영(67), 윤종국(72) 동년기자가 춘천파크골프장을 찾았다.
촬영 협조 춘천파크골프장(강원도 춘천시 서면 현암리 889)
소규모 녹지공간에서 즐기는 골프게임
‘파크골프’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즐기는 골프를 뜻한다. 1983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98년부터 보급되어 여의도 수변공원 파크골프장을 시작으로 현재 70여 개의 파크골프장과 2만여 명의 동호인들이 즐기는 생활스포츠로 발전했다. 파크골프장의 크기는 일반 골프장의 10분의 1 정도이며 벙커, 워터 해저드 등 일반 골프장과 다름없는 지형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파크골프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5000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하다. 또 여러 개의 클럽을 사용하는 골프와는 달리 나무 재질의 클럽 하나로 티샷부터 퍼팅까지 하므로 장비에 대한 부담 또한 적다. 파크골프 지도자 권대현 교수는 “초보자도 금세 감을 익힐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한다.
강신영 동년기자
‘파크골프’에 대해 들어는 봤으나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와 매우 흡사한데 골프의 단점은 없애고 장점을 잘 뽑아놓은 것 같다. 코스가 짧고 홀컵이 커서 기술적으로 골프보다 쉽고 무엇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윤종국 동년기자
그동안 TV에서 보던 골프장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규모가 크지 않아 걷기에도 부담이 없었고 주 이용객이 50~70대의 시니어이다 보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골프가 비싸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파크골프를 시도해봐도 좋겠다.
파크골프는 매너의 스포츠
파크골프장은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매너가 중요하다. 공을 치고 난 후에는 그다음 팀을 위해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며, 특히 앞 홀이 비어 있고 뒤의 팀이 기다리고 있을 땐 먼저 홀을 지나가도록 양보(패스)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 같은 팀원이 샷을 준비할 땐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공이 비슷한 위치에 떨어졌을 경우엔 상호 간 순서를 정한 뒤 차례대로 친다. 순서를 정하지 않고 동시에 샷을 하는 행동은 절대 금한다. 복장으로는 운동화, 운동복이 있어야 하며 필요할 경우 모자를 써도 좋다. 이때 얼굴 전체를 가리는 햇빛 가리개는 제한된다. 운동화, 골프화가 아닌 잔디를 훼손할 수 있는 등산화도 피한다.
강신영 동년기자
에티켓은 그 종목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처음 접하는 종목일수록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를 숙지하고 갈 것을 권한다. 파크골프도 신사 스포츠답게 많은 룰이 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윤종국 동년기자
파크골프를 처음 배우다 보니 다른 팀보다 진도가 느렸다. 다행히 ‘패스’라는 에티켓이 있어서 뒤 팀은 앞 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앞 팀은 뒤 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 덕분에 좁은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이 밀리지 않고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산책과 운동을 동시에
장비가 없다면 파크골프장에서 1000원 안팎의 비용으로 클럽과 공을 대여할 수 있다. 장비와 복장을 다 갖췄다면 필드에 나갈 준비는 끝. 최대 4명의 팀원이 구성된다면 1번 홀에서 번호뽑기 또는 가위바위보 등으로 티샷 순서를 정한 뒤 홀을 향해 공을 치면 된다. 2번 홀부턴 전 홀에서 최저타한 조원이 첫 번째로 티샷을 한다. 공을 너무 세게 칠 경우 쉽게 OB(코스의 경계를 넘어선 경우)가 날 수 있다. 따라서 힘 조절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골프와 똑같이 18홀을 가장 적은 타수로 들어오는 사람이 승리하며 18홀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 정도. 파크골프장 3바퀴를 돌 경우 약 1만 보를 걷는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파크골프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파크골프 카페에 가입하거나 각 지부 협회나 연맹을 통해 수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
골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앨버트로스(규정 타수보다 3타 적게 치는 것)와 이글(규정 타수보다 2타 적게 치는 것)을 여러 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골프보다 쉽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웃음) 버디를 앞두고 공이 깃대를 맞고 튕겨 나왔을 땐 그 깃대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윤종국 동년기자
보기엔 분명 쉬워보였는데 막상 클럽을 휘두르고 보니 공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굴러갔다. ‘아이쿠!’ 하면서 동시에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한 홀 한 홀 발전해가는 모습에 나름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함께한 동료들이 “굿 샷” 하고 엄지를 치켜줄 땐 나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들어갈 듯 말 듯, 마치 나와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매력을 지닌 파크골프. 시니어에게 적극 추천한다.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마련됐다. 나무와 숲을 가꾸는 것이 평생 직업이던 조연환 前 산림청장의 귀촌 인생은 그렇게 준비됐다.
13년 차 귀촌인 조연환 전 산림청장 이야기
충남 금산군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귀촌 하우스에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압력밥솥으로 갓 지은 밥 냄새가 진동했다.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 살짝 출출했던 탓에 당장 밥상 앞에 앉아 한 숟가락 뜨고 싶었다. 밥상 위는 말 그대로 시골밥상. 비름나물 무침, 엄나무 장아찌. 깻잎볶음, 호박 무침, 김치, 전날에 담갔다는 오이소박이, 굴비 구이가 상 한가득이었다. 완두콩을 넣어 지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뚝딱 끝내고 숭늉을 마신 뒤, 조 전 청장이 손수 탄 봉지커피까지 들이키면 점심코스가 마무리된다. 녹우정(조 전 청장 집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정자 이름. 나무와 숲을 가꾸는 사람들의 우정이 깃든 정자라는 뜻이다) 정식이라 불러도 될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날씨가 좋을 때 사진 찍기를 부부에게 권했다. 귀촌생활에 있어 텃밭은 기본 아닌가. 텃밭이라기에 따라 내려간 곳은 그냥 큰 밭이었다. 고구마, 팥, 깻잎 없는 거 없이 다 있었다. 이 큰 밭의 고랑을 만들고 구획을 나눠 정리 정돈하는 일은 이 집 머슴인 조 전 청장의 몫이다. 총 관리감독은 마님인 정점순 여사가 한다. 텃밭이 아니라 농번기 농사꾼 부부를 제대로 만난 느낌이었다.
귀촌 13년 차란 말에는 조연환 전 산림청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13년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금산에 땅을 장만하고 귀촌을 준비한 것은 18년 전이다. 산림청이 발족된 1967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최말단 9급 산림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 전 청장. 2004년 제25대 산림청장으로 취임해 파란만장한 1년 6개월을 보내고 2006년 자리에서 물러나 귀촌했다. 산림청장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농협경제연구소장과 생명의숲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천리포수목원장 등을 잇달아 역임하며 산림 전문가로서 끊임없이 일해왔다. 2011년부터는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을 맡아 귀·산촌 희망자에게 실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색하며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퇴임을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늘 바쁜 현역 산림 운동가가 바로 조 전 청장이다.
“처음에 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과연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90명 정원에 120명이 몰렸습니다. 프로그램을 10기까지 진행했는데 졸업생을 980명이나 배출했습니다. 500명은 임업인이고 나머지는 아카데미에 와서 산을 알게 된 사람들이죠. 정확하게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귀촌했습니다. 굉장히 성공한 것이죠.”
올해 6월 출간한 ‘산림청장의 귀촌일기’도 조 전 청장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해 서두르게 됐다. 책에는 조 전 청장이 SNS에 꼼꼼하게 적어 올렸던 개인 경험과 함께 똑똑한 귀촌 설계, 귀·산촌 사례자 이야기 등을 실었다.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아내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서 무릎이 점점 안 좋아졌어요. 더 이상 농사 못 짓고 서울로 가면 책을 못 낼 것 같더라고요.(웃음) 우리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동안 책이 나오면 좋잖아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산림청 공무원이었던 조 전 정창은 어리다고 무시당할까봐 나이를 두 살 높여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괜찮은 동갑내기(?) 처자가 있다면서 소개시켜준 이가 바로 정점순 여사다. 첫눈에 반해 연애하다 1년 반 만에 결혼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연상 연하 커플이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일하지 말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이 사람을 살살 꾀어 2년 전인가 여길 팔자고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 사람한테 우울증 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밭일 못한다고 포기할 때까지 그냥 살려고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밖에서는 조 전 청장이 산림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정점순 여사도 고수 중에 고수다. 조 전 청장이 천리포수목원장을 할 때 숲해설가로 활약할 만큼 식물 생태에 관심이 많다. 남들 못 키워내는 나무며 화초며 정 여사 손에 들어오면 죽어가던 것들도 되살아났다. 너른 텃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니 고왔던 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만 나면 밭에 앉아 풀 뽑고, 복숭아 봉지를 싸고 식물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다. 조 전 청장이 말단 공무원에서 산림청장이 되기까지 정 여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조가 한몫했다는 것을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농촌에 은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십시오
“제가 강조하는 것은 귀농이 아닙니다. 귀산이나 귀농은 아카데미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골이 좋다고 하시는 분은 대환영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한국산림아카데미 최고경영자과정을 듣기 위해 모이는 대부분이 도시에서 성공한 시니어 혹은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조 전 청장은 산에 관심을 갖고 터를 잡고 들어가 길을 내고 가꾸기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을 가꾸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야 합니다. 상추 심어봤더니 또 싹이 나고 그거 뜯어서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 나눠도 줘보고 말이죠. 골프장 가는 거보다 훨씬 재밌다며 골프 끊은 분도 주위에 있습니다. 산을 알아가는 삶이 생긴 것이죠.”
조 전 청장이 정말 퇴임한 산림청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일에 관여를 하며 쉬지 않고 귀·산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산림청장’이라는 문구를 치면 유독 조 전 청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1년 6개월 짧고 굵었던 임기와 퇴임 후 여섯 번 바뀐 산림청장 자리이지만 여전히 조 전 청장이 회자된다. 그는 끝까지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퇴직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가서 농촌의 인적 네트워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2005년 8월 21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 부부와 조연환 전 산림청장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청와대 입성 이후 딱히 산책할 곳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이 산길 정비가 되지 않은 북악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이후 산림청에 기별이 와서 청와대 뒤 숲을 가꾸고 꽃을 심었다고. 그것이 고마워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부른 것이다.
“‘청장님이 이렇게 잘해주셔서 제가 뒷산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말씀하시길, ‘다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도, 그다음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도 농촌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손자들에게 내가 멱 감고 고기 잡고 놀던 시냇물을 복원해주고 싶다, 나는 퇴임하면 시골로 내려가겠다’며 계속 그 말씀을 하셨어요.”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농촌에 사람이 없으니 도시에서 성공한 은퇴자들이 자리를 잡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미래 그림이 될 것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리고 퇴임 후 시골로 내려가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조 전 청장에게 길고 긴 시간을 들여 했던 말들을 이행하고자 대통령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
“책에도 썼지만 대통령이 나한테 지시를 한 거잖아요. 내가 시골에 내려와 살아야 하는 이유, 가장 큰 명분,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 귀촌을 택했던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을 역임하시고도 봉하마을에 내려가 주민들과 밤새 토론하고 행정 관계자를 설득해가며 마을을 가꾸셨는데, 저는 산림청장을 했다고 해서 귀촌해 편하게 살고 있는 거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함께 만나러 갔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퇴임 후 부여로 내려가 휴휴정이라 이름 붙인 집을 지었다. 조 전 청장이 금산에 갈 때 같이 입주했을지도 모를 좋은 친구 중 하나가 유홍준 전 청장이다. 하지만 각자 맡은 바 소임이 달라 한 명은 산이 가까운 금산에, 한 명은 역사가 가까운 부여에 둥지를 틀었다.
“유 전 청장도 부여에 땅을 잘 마련했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봤는데 잘 꾸며놓았더라고요.”
이 두 사람은 재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제안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를 150년 후 문화재용으로 쓰자고 협약했다. 살면서 봤던 아름다운 협약으로 두고두고 기억돼 뜬금없지만 적어본다. 나무건 문화재건 한 세기는 지나봐야 알 수 있으니 미래 세대를 위한 든든한 보험(?)을 어른들이 들어준 것 아닌가.
공직자 퇴임 이후 정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쌓아온 명망을 순식간에 까먹는 이도 있고,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아름답지 않은 뒷모습을 보이는 이도 종종 보곤 했다. 푸른 산새에서 만난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의미 있는 사명과 서슴없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가 귀감이 됐다.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에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점점 더 푸르러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