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군!”
흔히 그런 말을 했단다. 손화순 관장이 부군 김민석(작고) 선생과 삼탄아트마인 설립에 나섰을 때의 얘기다. 지금은 문화재생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성행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용도를 잃고 스러진 폐탄광을 뮤지엄으로 재생한다? 반신반의도 무리는 아니었겠다. 그러나 손 관장 부부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쌓은 문화예술에 관한 경륜과 식견을 믿어서였다. 2013년에 개관한 삼탄아트마인은 결국 손 관장 부부의 지향대로 질주했다. 독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뮤지엄을 만들어냈다.
“부부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문화기획 일을 수십 년간 해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간 축적한 경험을 뭐 하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싶어지더라. 그러던 중 우연히 정선에 왔다가 폐탄광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광을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의 가치를 또렷이 인식해서였다.”
롤모델로 삼은 뮤지엄이 있었나?
“재생 공간의 세계적 사례인 독일의 졸페라인에서 느끼고 배운 게 많았다. 폐광에서 복합문화단지로 변신한 졸페라인에 몰려드는 관광객이 연간 200여만 명이나 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걸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벤치마킹했다.”
삼탄아트마인의 스케일이 대단하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주관하는 공간이라는 게 놀랍다.
“부지 면적이 1만 3000평이나 된다. 버거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기간에 뮤지엄을 완성할 욕심은 가당치도 않았다. 최소 10년, 20년, 길게 보고 가자는 기본계획을 가지고 매달렸다. 전략적으로, 단계적으로 일을 완수하자는 방침을 세웠던 거다.”
아직 미완성 상태라는 얘기?
“개관 이후 지난 10년간 주로 하드웨어를 채웠다. 현재의 완성도는 약 70%에 불과하다. 향후 소프트웨어 부문의 콘텐츠를 보강할 참이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은 셈이다.”
위치상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관람객이 많을 것 같다. 이색적인 뮤지엄이니까. 게다가 주변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여행자들과 관광객들의 관람이 잦다. 이 오지를 찾아오는 관람객이 한 해에 10만 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운영이 쉽지 않더라. 특히 불행했던 세월호 사고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뮤지엄 내부의 문제는 보완하면 되지만, 사회적 환경에서 오는 악재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게 뮤지엄 일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인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많았지만 ‘희망’을 중심에 두자 늘 빛이 보였다. 바라는 건 하나다. 삼탄아트마인이 대중의 ‘예술놀이터’로 쓰이기를 원한다는 것. 남편 생시에 공감하며 자주 나눈 얘기가 있다. 문화예술공간을 비즈니스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보시 차원의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한다…. 이 다짐들을 힘으로 삼고 있다.”
부부가 함께 나누었던 짐을 이제 혼자 지고 간다. 무거운 게 한둘이랴.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질주가 답일 뿐이다. 이런 그가 말하는 남편 김민석은 ‘늘 한 걸음 앞서갔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바꿔야지!” 새벽 2시, 야근 후 돌아와 죽어도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어제까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던 남편은 청바지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땅에 심은 건 포도나무였지만, 부부는 꿈을 심었노라 말한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편은 뭐든 이뤄진다 하고, 아내는 뭐든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꿈은 자연히, 그리고 자연이 이뤄가리라는 것이다.
테루아(Terroir)는 프랑스어로 ‘땅’을 의미한다. 와인이 만들어진 땅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한다. 충주의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 레돔 테루아’(이하 작은 알자스)는 소설가 아내 신이현(57)과 농부 남편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53)의 꿈을 심은 땅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직접 과일을 농사지어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작은 알자스에 도착했을 때, 부부는 ‘웰컴 드링크’처럼 내추럴 와인을 내왔다. 풋사과 시드르였다. ‘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더니, ‘꼬르르르’ 미세한 탄산이 잔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 맛은 어떤가 하니, 마치 와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할까? 깔끔하면서도 은은하게 산뜻함이 감돌았다. 단순히 ‘맛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걸맞은 단어를 고르던 차, 아내 신이현이 제대로 설명에 나섰다.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과일을 수확해 착즙한 뒤 필터링이나 살균 등을 거치지 않고 만든 와인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이 준 그대로 발효해서 만든 거예요. 즉 그 과일이 자란 땅이나 한 해의 기후 등에 대한 솔직한 설명과 같죠. 가령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나온 와인은 심플한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 역시 나름의 개성으로 보는 거예요. 고로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습니다. 과일이 자라던 땅과 나무,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즐기면 그뿐이죠.”
열매가 좋아하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술, 내추럴 와인을 한잔 마시는 것은 한 움큼의 땅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땅이 다르기 때문이고, 땅이 다른 것은 땅마다 스며 있는 농부의 땀방울이 다름일 테다. 더군다나 오롯이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엔 가히 그 땅에 농부의 철학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미니크는 어떤 농부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땅을 키우는 농부”라 일컬었다.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워야 해요. 일반적으로 포도밭을 한다고 하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고, 그것을 수확해 큰돈을 얻는 게 목적이겠죠.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다릅니다. 나무와 땅이 있다면, 우린 땅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보다 땅을 살리는 기쁨이 더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농사짓는 방법도 다른 거죠.”
땅을 키우는 차별화된 농법으로 도미니크는 ‘생명역동농법’을 택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기운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식물에 영향을 주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한 달력을 농사에 적극 반영한다. 꽃식물이나 잎식물, 열매식물 등 각기 다른 식물은 저마다 좋은 기운이 있는 날엔 활짝 생명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조용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단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도미니크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옮길 때 항상 별자리 달력을 펼쳐놓고 식물에게 좋은 날을 찾는다. 와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가령 포도를 따거나 착즙할 때는 열매에게 좋은 날을 골라 작업한다. 씨를 뿌려 열매를 수확하고 내추럴 와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인간은 ‘돕는 자’의 역할을 할 뿐 그밖의 모든 것은 자연의 힘에 맡긴다. 그 이름처럼 ‘내추럴’(Natural)하게 말이다. 애당초 땅에 그러한 철학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의 삶에도 그러한 양식이 깃들었기에 가능했다. 혹자는 이런 부부를 보고 마치 물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산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아내 신이현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농사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수확을 위해 인간의 손이 가장 덜 가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로는 초반에 아주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농부의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만 결국 자연스럽게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찾아오죠. 물론 몸은 고단하고 힘들어요. 그런데도 자연에 맞춰 산다는 게 엄청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그게 좋더라고요.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니 소소하지만 매 순간 성공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농업의 꽃 술, 농부의 손으로부터
부부는 매 순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타자로서 일련의 과정을 듣노라면 매 순간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위대한(?) 서막은 그들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오고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듯 포도농사와 와인 양조라면 프랑스의 여건이 더 나았을 테다. 농사에 관해선 고집스런 도미니크지만,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아내의 의견이 컸다. 사실 도미니크는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어느 땅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말이다.
“남편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남쪽으로 밭을 보러 다녔어요. 피레네산맥 근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환경도 괜찮았죠. 그런데 제게는 너무나 낯설었어요.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포도 따는 외로운 동양 할머니로 늙어갈 걸 상상하니 그건 싫더라고요. 마침 한국에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는 없길래, 도미니크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권했죠. 그렇게 파리의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남편은 농사를 짓고 싶고, 아내는 한국에 살고 싶어 무작정 삶의 터전을 바꿨다. 한국의 땅값이 얼마인지, 양조장을 짓는 데 얼마가 들지,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등등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원대한 꿈만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 망해도 좋다.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새 터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 찾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기도 했고, 공공기관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사과연구소도 가보고 포도작목반에도 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특히 과일을 직접 농사지어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돈과 수고가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의 훈수가 더해질수록 도미니크의 철학은 되레 견고해졌다.
“농업의 꽃은 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기본이라고 봐요. 농부가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 즉 생존을 위한 것이죠. 그러나 농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은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니까요. 우리가 먹는 쌀, 밀 같은 농산물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그 농산물로 만든 술은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술을 만드는 일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처롭고도 숭고한 농부의 삶
아쉽지만 첫해 사과 농사는 망했다. 안타깝지만 두 번째 농사도 망했다. 그 후로도 장마, 가뭄, 병충해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연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농부들은 관수를 대고,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기도 했지만,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 도미니크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일궈온 것처럼, 야속할지언정 편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경험은 고스란히 초보 농부에게 귀한 밑거름이 됐다.
“점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흉년이든 풍년이든 자연이 주는 것을 우리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럴수록 나무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좋고 뿌리가 깊이 나면 나무들도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거든요. 당장은 좀 힘들더라도 먼 훗날을 위해 그 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온종일 땅과 씨름하는 도미니크를 보고 있노라면 아내는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로운 마음마저 든다. 남편이야 꿈을 이루느라 그렇다 하지만, 소설가 신이현의 꿈이 ‘농부의 아내’는 아니었을 터. 그러나 한국 생활이 서툰 남편의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됐다. 생명역동농법을 위해 소똥이며 꿀벌이며 안 구해본 것이 없고, 갖가지 서류 준비며 비즈니스며 고객 응대며 자신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기꺼이 꿈의 조력자가 된다.
“도미니크가 만약 다른 일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돕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뜻깊다는 걸 느꼈고, 때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해요. 남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죠.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안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저도 바가지를 긁곤 해요. 그러고 나면 또 미안하고, 힘들어도 도와주게 되고. 사실 이 나이에 제게 새로운 꿈이랄 건 없지만, 차차 땅과 일이 안정되면 양조장을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판타지 소설이나 써볼까 상상해봅니다.(웃음)”
포도밭에서 피어나는 예술
부부가 그리는 ‘작은 알자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이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자는 마음가짐 정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힘들게 어떻게 사느냐’며 촌이 가진 소외감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전원주택 짓고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시골이 주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생각은 달라요. 가령 문화, 예술 이런 걸 왜 도시에서, 갤러리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양조장에서 ‘농부 요리사 예술가’라는 작은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예술가를 비롯해 마을분들도 오시고 함께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활기가 넘쳤죠. 그렇게 밭은 수확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장으로도 쓰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렇게 자연을 향유할 때 땅도 더 즐겁지 않을까요?”
작은 알자스의 첫 와인이 출시된 지 이제 5년 차. 아직 농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와인 사업이 대박 나서 돈방석에 앉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그렇다. 그저 현재처럼 원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그뿐, 수익은 나중 몫이다. 그런데도 주변 이들은 흔히 “대박 나시라! 성공하시라”는 말로 그들을 재촉한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응원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사는걸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금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니 제발 그런 걱정은 넣어두셨으면 해요.(웃음) 적어도 우리는 지금 후회 없이 꿈꾸고 있다 말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시가 일상에서 필요한 각종 전자증명서를 한 곳에서 수령·제출할 수 있는 앱(어플리케이션) ‘서울지갑’의 기능을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서울지갑’에서 전자증명서 신청 및 발급까지 가능해진다.
비대면 공공서비스 앱 ‘서울지갑’은 민원 서비스 담당 포털 ‘정부24’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약 250여 종의 각종 증명서를 수령·제출할 수 있다. 또한 공공복지서비스 신청 자격 여부도 증명서류 제출 없이 바로 확인 가능하다.
‘서울지갑’ 앱을 통해 발급 받을 수 있는 전자증명서는 △주민등록표등본 △주민등록표초본 △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 △건강·장기요양 보험료 납부확인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예방접종증명서 △병적증명서 총 7종이다.기존에는 ‘정부24’에서 전자증명서를 신청·발급받은 후 ‘서울지갑’ 앱에서 수령 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서울지갑’ 앱에서 민간인증서를 사용해 모바일 전자증명서 형태로 발급받아 제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게 된다.
또 서울시에서 발급하는 증명서도 모바일 전자증명서 형태로 ‘서울지갑’에 수령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다. 현재 발급 가능한 전자증명서는 △수도요금 납부 증명서 △보육교사 수료증 △서울시 행정지원인력 사용증명서 등 6종이다.
한편,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교육 수료증도 개별 사이트에 접속해 확인할 필요 없이 ‘서울지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평생학습포털은 서울시민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 강좌와 평생학습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특히 5060의 인생 설계를 지원하고, 행복한 노후 준비를 위한 교육 과정을 지원한다. 개인정보보호교육 등 법정의무 교육, 외국어, 자격증 같은 전문 강의부터 인문학, 문화예술, 취미생활 같은 강의까지 약 800여개의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1인가구 10명 중 8명 이상은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1인가구는 경제, 안전, 건강 등의 측면에서 다인가구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장년층 1인가구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사회적 고립이 우려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1인가구 30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2020년 서울시 1인가구는 139만 명으로 전체 가구 중 34.9%를 차지했다. 이는 20년 전인 200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세대별로는 청년층이 48.9%, 중장년층이 32.7%, 노년층이 18.5%를 차지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2017년 1차 조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됐다. 1인가구가 된 원인과 관련 ‘사별·이혼·별거’가 2017년 20.9%에서 2021년 28.3%로 증가했다. 1인가구에 대한 차별·무시·편견 등은 2017년 53.0%에서 2021년 15.8%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됐다. 1인가구의 월 평균 소득의 경우 2017년 조사 대비 12만원 상승한 반면, 월 평균 생활비는 43만원(2.7배) 상승하여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
1인가구 86.2%,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하지만
실태 조사 결과 서울시 1인가구의 86.2%는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36.8%는 ‘지금처럼 혼자 살고 싶어 했으며’, 그중 23.6%는 ‘평생 1인가구로 살아갈 것’이라고 응답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에 대한 주요 장점은 자유로운 생활 및 의사 결정(36.9%), 혼자만의 여가시간 활용(31.1%), 직장 업무나 학업 등에 몰입(9.6%) 등이다.
반대로 1인가구의 85.7%는 ‘혼자 생활하면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나타났다. 가장 곤란하거나 힘든 점으로 ‘몸이 아프거나 위급할 때 대처하기가 어렵다’ (35.9%)고 답했다.
더불어 1인가구의 76.1%가 ‘혼자 생활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심리적 어려움의 주요 이유는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20.2%)’,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많아 무료함(15.0%)’,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독감(14.5%)’ 순으로 조사됐다.
1인가구의 절반 이상이 식사준비(55.1%), 청소·세탁(52.7%) 등 가사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생활편의서비스 중 식사관련 서비스 이용 의향(72.4%)이 높은 호응도를 보였다.
여가활동면에서 ‘관광 21.0%, 운동 17.8%, 문화예술 또는 스포츠 관람 12.6%’ 등을 희망하고 있었으나, 실제 여가생활은 ‘영상물 시청(47.6%)’이 절반 가량 차지했다.
주거 관련해서는 1인가구 10명 중 7명이 ‘주택매물 부족(35.6%)’과 ‘주거지 비용 마련의 어려움(35.5%)’을 경험하였으며, 54.1%가 ‘주거비 부담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임차 거주 가구의 30.9%는 월소득 대비 월 주거비가 20~30%를 초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가구 경제·안전·건강 취약
1인가구는 경제․안전․건강 등 생활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다인가구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 1인가구 월평균 소득은 219만원으로 다인가구 평균 월소득인 305만원보다 86만원 적었으며, 69.3%가 중위소득 100% 이하에 분포됐다.
또한 1인가구는 다인가구보다 모든 범죄의 피해 두려움이 높았고, 폭력범죄피해의 경우 전국범죄피해율 0.57%보다 약 3배 높은 1.5%였다. 범죄 위험 장소로는 귀갓길(25.5%), 방치된 공간(21.0%), 주택 외부 공간(17.1%) 등 주로 옥외공간에서 범죄 두려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1인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31.5%로 다인가구의 11.8%에 비해 약 2.7배 높았다. 주거비 과부담 비율 또한 30.9%로 서울시 다인가구보다 16.8%포인트 높았고, 청년(35.4%)과 노년(38.5%)에서 주거비 과부담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중장년 1인가구, 사회적 고립 우려
서울시는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중장년 1인가구의 주거실태에 대해 심층조사도 병행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데이터 및 사전 심층면접조사 결과를 근거로 중장년 밀집지역(2개 지역)과 청년·중장년 혼합지역(2개 지역), 비교군(1개 지역)의 5곳을 선정해 가구 및 건물조사, 인근 생활시설 등을 조사했다.
밀집지역 중장년의 월평균 소득은 116만원으로 5개 조사지역 평균(182만원)의 63.7%, 절반 이상(57.6%)이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노후를 대비하기에 매우 불충분했다.
밀집지역의 중장년은 주말 저녁에 혼자 식사하는 비율이 93.2%였다. 특히 조사지역 전체 중장년 1인가구의 3명 중 1명은 최근 3개월 내 접촉한 사람이 없어 심각한 사회적 고립이 우려된다.
중장년 1인가구는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밀집하게 되고, 살던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정주 환경 개선을 위한 1인가구 생활서비스 지원 강화와 소득 및 시세와 연동한 통합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선 서울시 1인가구 특별대책추진단장은 “현재 서울시에서 시행 중인 1인가구 ‘4대 안심정책’(△건강 △안전 △고립 △주거)과 관련하여,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생활밀착형 맞춤 정책을 발굴, 시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양시는 ‘공공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며 개성과 위상을 돋우고 있다.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로 가꾼다는 의도를 가지고 지역 곳곳에 예술을 흩뿌렸다. 안양예술공원은 그 센터이자 견고한 플랫폼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할 만한 이 산속의 예술공원은 사실상 국내 초유의 야외 공공미술 실험장으로 등장해 선구적인 성취를 거두었다. 마음을 훌훌 털어놓기에 적당한 숲길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명소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연수 공공예술부장에게 작품 소개와 관람 방법을 들어봤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관람 출발점인 알바루 시자의 ‘안양파빌리온’이다. 시자 특유의 미니멀리즘 건축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이 건축물은 직선이 거의 없는 유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 채광 효과에 의한 빛과 음영의 변화, 곡선으로 처리한 내부 벽면이 야기하는 안락하고 부드러운 느낌 등에서도 시자 작품의 디테일과 문맥을 읽을 수 있다.”
공원에 산재한 미술품을 구경하다가 작품 ‘전망대’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하더라.
“네덜란드 작가 MVRDV의 설치 작품이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기반으로 산의 구체적인 형태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예술에 자연을 극적으로 접목한 설치 작품이다.”
플라스틱 상자를 첩첩이 쌓아 만든 ‘안양 상자 집’은 어떤 의도로 만든 작품일까? 평범한 오브제로 독특한 대형 설치 작품을 조형했다는 점에선 기발했다.
“불교적 상상력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원(寺院)을 형상화했다고 보면 되겠다. 겹쳐진 플라스틱 박스들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의 효과를 통해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절묘하게 표출했다. 밤에는 내부에 밝힌 불빛이 밖으로 흘러나가 신성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독일 작가의 작품인데, 대량의 재활용 음료수 박스를 독일에서 직접 가져왔다. 한국의 박스는 빛의 투과율이 좋지 않아서다.”
순전한 예술로서의 작품 외에 실용성과 현장의 기능성을 추구한 작품들도 있어 이채롭다. 가령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용도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런 경향을 공공미술의 특징으로 보면 되나?
“그렇다. 공공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공익성을 구현한 작품이 많다. 시민들이 산책하는 장소에 필요한 요소를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내 보완하듯이 설치 작품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대형 작품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역시 마찬가지 계열의 작품이다. 예술 작품이자 시민들의 통행로로 쓰이는 공간이니까.”
프랑스 작가의 작품 ‘발견’은 나무로 된 작고 허름한 원두막 형상이다. 이 작품은 시간 속에서 스러져 결국은 소멸할 것을 예감하고 만들었을까?
“냇가 흙 속에 묻혀 있던 쉼터 용도의 원두막을 발굴, 약간의 구조 보강을 해 복원했다. 유원지였던 과거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이며, 이런 경향 역시 공공미술의 특징이다. 공원의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보수해 관리한다.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건 어쩔 수 없고.”
한결 효율적인 관람 방법이 있다면?
“현재 코로나 상황이라 잠정 중단됐지만, 우리는 도슨트를 통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 감상의 재미와 즐거움이 커지니까.”
도슨트의 해설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라는 얘기다. 그러나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까지 만끽할 수 있는 산속 야외 미술관이니 혼자라도 충분히 즐겁다.
도시 인근에 꽃 피는 산과 맑은 냇물이 있으니 어련했으랴. 행락객들로 몹시 붐비는 곳이었다. 휴일이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소풍을 즐겼다. 덩달아 주변 일대의 식당과 주점이 성황을 이루어 난장판처럼 어지러웠다. 경기도 안양시 삼성산 자락에 있었던 예전 안양유원지의 모습이 그랬다. 이 유원지는 결국 제풀에 지쳐 시들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이 극에 달한 데다 대홍수가 계곡을 휩쓸어서다. 이렇게 사필귀정처럼 붕괴한 유원지를 딛고 문화 공간의 신예로 데뷔한 게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시가 주관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Anyang Public Art Project)의 트리엔날레를 기반으로 2005년에 첫발을 내딛은 것. 지금은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주도한다.
안양예술공원 일대엔 조각과 설치 미술, 디자인 작품 60여 점이 산재한다. 다시 말해 수많은 미술 작품으로 구성한 노천 미술관이다. 일명 ‘화이트 큐브’라 일컫는 기성 미술관들의 정형성에서 탈출, 거리와 산야로 원정을 나간 작품들의 집합장이다.
한편 이곳은 공공미술의 전당이다. 공공미술? 이건 재미있다. 소수 전문가 그룹이 마치 대중의 미의식을 대리하는 것처럼 독점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추세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발생한 게 공공미술이다. 즉 미술관에 들어앉아 사람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생활 속으로, 대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미술이다. 작가의 주관적 세계관을 앞세우기보다 미술 행위를 펼치는 지역의 장소성, 역사성,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조형물을 생산, 제작 현장에 그대로 전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안양예술공원 관람 기점은 ‘안양파빌리온’이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신사조를 주창한 알바루 시자(Alvero Siza, 포르투갈)의 작품이다. 이는 아시아에 최초로 등장한 시자의 생산물이다. 그의 건축은 논리와 합리, 그리고 개념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 건축 경향과 달라 돌올하다.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을 하니까. 빛과 재료의 물성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스트 시자를 ‘건축의 시인’이라 추켜세워도 과하지 않은 게 그의 작품은 다분히 서정적이며, 지극히 관조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저히 시각화된 여느 건축과 다르다. 간소하다 못해 금욕적이기까지 한 안양파빌리온의 건축적 성향을 보라. 튀지 않으며 모나지 않은 외관으로 주위의 경관과 조용히 조응하는 게 아닌가. 시자의 파빌리온이 어디 있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두리번거리며 찾아야 찾아지는 건 나직하고 수굿한 형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파빌리온의 내부를 볼까. 외관의 단순성과 백색 색조가 고스란히 내부로 흘러들어 간명하고 유려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단순하기만 하다면 무슨 재미? 곡면의 연쇄로 이루어진 벽면은 부드러운 리듬감으로 생동한다. 사각형과 원형, 유선형 등 다양한 형태의 창들도 흥미를 돋운다. 거대한 둥근 천장 모서리 틈새로 들이치는 자연광은 은은하게 굴절하며 공간에 빛과 그림자를 배급해 슬쩍 유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공 조명보다 미묘하고 전위적인 저 빛살은 뭐랄까, 물이 흐르는 걸 바라볼 때처럼 상서로운 기분마저 야기한다. 태양이 쏴 보낸 광선으로 구조물에 자연을 입히는 방식은 시자의 오래된 건축적 관습이다. 빛의 유입과 변화에 관한 탐색과 성찰을 설계의 기저로 삼았다. 건축 행위를 통해 빛과 사물의 존재를 탐구한 철학자라 할 만하다. 이렇게 기똥차게 빼어난 고수의 작품을 눈요기할 수 있다는 건 흔한 행운이 아니다.
공공미술이 던지는 시대적 화두
이제 거리로 나서 냇물을 건너 산으로 들어간다. 지나치는 길목마다 작품이 있다. 거리의 미술품들은 세상에 만연한 획일성과 권태를 누그러뜨린다. 삶이 우리를 녹초로 만들지만 예술 한 자락 걸친 감성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던가. 그래 미술품이 노상에 천변에 산야에 널려 있다는 건 황무지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갑다.
봄날의 산은 화사해 더 보태지 않아도 이미 낙원이다. 그럼에도 미술로 보탠 게 많으니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저 작품이 쓱 출연한다. 등산로를 따라 걷는 일 자체가 예술 향연에의 동참이다. 작품들 대부분은 까다롭지 않아 이해가 쉽다. 심지어 완구처럼 익살스런 소품들도 있으며, 걸터앉아 다리를 쉬게 만든 조형물들도 있다. 그렇다고 후루룩 건성으로 지나칠 일은 아니다. 이름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도 많으니까. 물론 작가의 이름을 보고 작품에 혹하는 건 우습지만, 농밀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간과한다면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 단무지만 질근거리다 나오는 것처럼 엉성하다.
저기 풀밭에 에페 하인(덴마크)의 ‘거울 미로’가 있다. 거울 기둥들로 원형의 미로를 만들었다. 미로란 기독교의 진리를 찾는 순례자의 유랑을 상징한다. 거울 기둥 100여 개는 불교에서 말하는 백팔번뇌의 표식이기도 하다. 기독교와 불교를 융합한 조각인 셈이다. 작가가 굳이 불교를 동원한 건 안양예술공원이 있는 삼성산이 불교의 발흥지였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이 지향하는 방법의 하나는 현장의 역사성을 작품에 담는 것인데, ‘거울 미로’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 불교적 테마를 조형한 작품은 그밖에도 여러 점 더 있다. 인도네시아의 에코 프라워트는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수백 개의 대나무로 사원을 만들어 안양의 불교적 풍토를 기렸다.
공공미술은 지역의 풍속에도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중국 작가 왕두의 ‘신기루’는 그 본이다. 그는 이미 소실된 안양유원지 시절의 건물 형태를 대리석 조각으로 재현해 냇물에 담가두었다. 이건 공공미술의 본령이 지역의 사회사를 형상화하는 데에도 있음을 알게 한다. 공공미술은 현장의 환경 개선과 기능성 보강에도 신경을 쓴다. 작품이 통째 벤치가 되기도 하고, 어수선한 주차장을 설치 예술로 성형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구현한 작품도 있다. 공공미술은 이렇게 명멸하는 세사와 역사, 바람에 실려 사라진 시간들의 사연을 예술의 두레박으로 건져 올린다. 무섭게 변하는 세상과, 더 무섭게 악화되는 환경의 문제를 가급적 예리한 갈고리로 찍어내 시대의 화두로 던진다. 비교적 단순한 내러티브와 표현 방식을 구사하지만 의도가 선명해 허영이 없다.
안양예술공원 관람의 종장에선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덤으로 등장한다.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할까. 김중업의 건축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고지식하게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과 자연을 건축에 반영했으니까. 김중업의 설계로 지어진 옛날 공장 건물을 손질해 설립한 김중업박물관에서는 그의 설계 도면, 설계 수첩, 사진, 문학적 기록 등을 볼 수 있다. 김중업은 알바루 시자처럼 차라리 시인이었다. 그는 말했다. “건축은 노래해야 한다”고.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집이다”라고. 이런 시적 메시지, 들어본 적 있는가?
한결 가치 있는 생활에 대한 열망이 그의 귀촌을 부추겼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인생을 한번 획기적으로 바꿔보자는 욕심으로 부푼 건 아니었다. ‘느림의 미학’ 같은 걸 추구하며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즐기자는 쪽에 무게를 두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귀촌을 통해 가급적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똑떨어지게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다. 그 용무란 서점 일이었다.
시골에서 서점을?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새들이야 지천이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야 마을 원주민 몇몇에 불과한 후미진 산골에서? 이건 무인도에서 혼자 ‘전국노래자랑’을 공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기획일 수 있다. 거북이를 끌고 산책하는 일처럼 요상한 이벤트이기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고서야 생존이 가능한 게 서점 사업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김미자(59, ‘그림책 꽃밭’ 사장)에겐 남다른 속대중이 있었다. 믿는 구석이 다 있었던 거다. 그 믿음이란 오직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온 것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내공까지는 아닐망정, 적어도 서점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바탕 제대로 붙어볼만한 게임으로 여겼던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그의 산골 서점은 놀랍게도 탕탕 잘나간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아동 그림책 관련 직업 활동을 했었다.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했으니까. 그림책 커뮤니티를 만들어 동네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했으며, 그림책 카페를 7년간 운영한 경험도 있다. 머릿속에는 항상 시골 생각이 들어 있었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그림책과 시골살이를 아우를 수 있는 삶을 늘 꿈꾸었던 것이지.”
김미자가 남편과 함께 이 시골로 내려온 건 2017년.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편의 퇴직금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서였다. 흔히들 귀촌지를 결정하느라 진을 뺀다. 첫 단추부터 똘똘하게 끼우기 위해 해부학 교실의 연구원처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장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루한 물색의 과정을 싹둑 잘라냈다. 숲이 있는 시골이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 여겼다. 경륜과 자신감을 완비했으니 어디에 갖다놓아도 승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리서치를 통해 몇 군데 시골 서점의 순항 분위기를 미리 눈치채기도 했다. 그는 지인이 소개한 경매 토지를 덜커덕 사들여 집을 지었다. 서점과 살림채, 그리고 북스테이 공간을 마련해 영업을 개시한 게 만 3년 전.
“처음 한동안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날마다 매상과 마진을 계산하며 고민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덩달아 매출이 늘더라. 수익의 절반은 책 판매에서, 나머지 절반은 북스테이에서 발생한다. 이젠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는 날은 없다. 덕분에 부부 둘이 먹고사는 데엔 아무런 불편이 없지. 이쯤이면 노후 생계 대책으로 충분하기에 안도감과 만족을 느낀다.”
단기간에 자리 잡다니. 이 서점은 어떤 힘과 매력을 지녔기에?
“가급적 질적 수준을 높게! 풍경은 예쁘게! 그런 모토를 정하고 충실하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예전에 일본의 숲속 도서관들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감흥이 컸다. 모델로 삼을 만했지. 아무리 외진 시골이라도 구색과 내용이 충실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 확인했던 셈이다.”
도시에도 특별히 공들인 서점들이 있지만 흔히 불황을 면제받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자연경관이 유력한 재료라 봐야 할까?
“아동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시골 서점은 그 자연과 생명에 관한 아이들의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환경 여건으로 한몫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자연을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펄펄 뛰노는 아이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숙박을 하거나 책을 구입하는 고객층은 어떤 이들인가?
“주 고객은 30~40대 부모와 아이들이다. 그림책 관련 각종 자격증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학습 차원에서 찾아오고, 시골 서점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방문한다.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당진시 일대의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아동들이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다락을 구비한 책방 공간은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되 품격을 돋워 꾸몄다. 아이들의 구미에 어울리게. 엄마들의 호감을 살 수 있게. 그림책 일색의 도서들은 모두 5000여 권.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2000여 권과 새로 구입한 3000여 권을 합쳐 공간을 채웠다.
그림책을 좋아하던가? 게임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아닌가?
“아동들은 순식간에 알아차린다. 엄마가 왜 나를 책방에 데려왔나를. 그러고서 하는 말이 이렇다. 나, 책 안 봐! 오나가나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에 몰입하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떤 처방을 사용하지?
“책이 싫으면 고양이하고 놀아! 마당에 나가 뛰어놀아! 그렇게 말해준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
엄마들은 책이 싫다는 아이들을 왜 굳이 이곳에 데려올까? 책을 강요하면 자칫 책을 더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든 책을 접하게 하려는 선한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겠나? 그러나 엄마들의 방법엔 문제가 있다. 책을 학습이나 훈육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는 늘 한다. 연령에 맞는 책을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나직이 읽어주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겐 가르침보다 위로가 필요하니까.”
마을 풍경을 볼까? 딱히 빼어나거나 미묘한 설렘을 자아내는 풍치는 아니다. 변방의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농촌 마을이다. 야트막한 야산들이 강강술래를 하듯이 1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빙빙 감싸고돌아 푸근하다. 김미자는 이 평온한 풍경에 안심을 느끼는 것 같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산과 숲이 있으니 불만이 있을 때면 애먼 남편에게 툴툴거리기보다 나무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해소하겠지. 그에겐 자연과 사계의 순환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자연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실 김미자의 귀촌은 자연에 가까이 가자는 목적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그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연이 좋다지만 날마다 산을 바라보다 보면 권태감이 밀려들기 십상이다. 거칠지만 생동하는 도시의 풍속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권태를 느낄 겨를 없이 분주한 게 시골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적 충격과 자극이 하나도 없다는 건 큰 단점이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도 아쉽다. 주변에 예술가라도 하나 산다면 해갈이 될 테지만.”
마을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시골에도 지혜로운 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시골 할머니들의 평온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에 느끼는 게 많다. 대체로 할머니들은 인간관계에서보다 땅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생을 사는 것 같더라. 그들은 아무리 노쇠했더라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 호미로 땅을 긁는다.”
도시의 노인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야생의 에너지. 시골 노인들에겐 그런 육화된 근성이 있다.
“맞다. 처신에 깨끗하고 이치에 밝은 할머니들과 사귈 수 있다는 건 시골 생활이 주는 값진 행복의 하나다.”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은 놀이로
시골이라고 눈 밝고 경우에 환한 이들이 흔할 리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삐딱이’ 그룹이 있어 활약을 하는 게 아닌가. 김미자도 초기 한동안 유별난 이웃에게 좀 시달렸지만 적절히 타협하며 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포용했다. 보다 덜 소중한 것에 보다 더 소중한 걸 훼손하고 싶진 않았던 것일 텐데, 그에게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소박한 삶의 지속이다. 물구나무 선 세상을 뒤집을 힘이야 없지만, 최소한 자신만큼은 악다구니와 돈과 허영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것이다. 귀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는 예상은 딱 적중하진 않았다. 그러나 거둔 성과와 만족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뭐냐면,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 그리고 헨리 니어링 부부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우선은 돈벌이를 하는 내가 돈에서 해방되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생활과 자본에 길들여진 남편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귀촌으로 부부가 함께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만도 어디인가?
“나는 오늘도 들에서 냉이를 캐왔다. 시골에 살며 산나물 채취로 식사를 한다는 것, 육식을 덜 하고, 덜 소비하고, 덜 욕심부린다는 것, 이건 뿌듯한 일이다.”
한때 암과 싸웠다지? 고통이 극심할 때면 어떤 생각을 하나?
“암! 무서웠다. 자주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지극히 병약했지만 엄격한 절제로 삶을 완성한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 성찰의 습관도 그에게서 얻어왔다.”
심지어 가뭄에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면서도 가여워 눈물을 흘렸던 권정생. 그는 성자가 아니었을까.
“평생 병고에 시달렸지만 강하고 꼿꼿한 분이었다. 한번은 외투를 사다드렸더니 고사하더라. 이미 있는 외투 하나로 충분하다며. 스콧 니어링도 소유에 무심해 옷 한 벌로 살았다. 그러니 어떻게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무욕으로 살았던 고수들을 무슨 수로 따를까.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돈은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을 놀이로 즐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르다. 일에 치여 산다. 속엔 답답한 게 많지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겉으로는 웃는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갖고 산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고 있으니 크게 어긋난 건 아니다.”
인생을 깊이 읽고 있다는 안도감. ‘나’를 진정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속에 산다는 확신. 귀촌의 나날을 선용하고 있다는 자부심. 속세에서 흔히 맛보기 어려운 감흥들로 김미자는 기쁜 것이다. 표정은 근엄하지만, 내부는 햇살로 밝아 바야흐로 인생의 봄날을 다시 만난 셈?
김미자 씨가 주는 귀농 Tip
시골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함부로 덤벼들 일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 하나만 믿고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 인문학적 소양과 실력, 그리고 예술적 눈썰미를 미리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기 전에 까먹어도 무방할 정도의 소자본으로 도시에 작은 북카페를 차려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 장소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가급적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찾자.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나 명소 인근도 잘만 하면 유망하다.
지난해 3분기 임금근로 일자리가 1년 전보다 49만개 늘었다. 이 중 60대 이상 일자리가 49.5%로 절반에 달했다. 정부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3분기(8월 기준)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임금근로 일자리는 1959만 9000개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9만 1000개 증가했다. 2분기 68만 1000개보다는 증가폭이 축소됐다.
전체 일자리 중 전년동기와 동일한 근로자가 점유한 지속 일자리는 1363만 9000개(69.6%), 퇴직·이직으로 근로자가 대체된 일자리는 313만 5000개(16.0%)로 집계됐다.
기업체 생성 또는 사업 확장으로 생긴 신규 일자리는 282만 5000개(14.4%), 기업체 소멸 또는 사업 축소로 사라진 소멸 일자리는 233만 4000개였다.
근로자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이 24만 3000개 늘어 전체 증가분의 49.5%를 차지했다. 50대(16만개)와 40대(3만 6000개), 20대 이하(6만 3000개)는 늘었지만 30대(-1만 2000개)는 줄었다.
특히 60대 이상은 노인일자리 사업과 연관이 있는 보건·사회복지에서 7만 9000개에서 가장 많이 늘었고, 그 뒤를 건설업(5만 3000개), 제조업(5만개)이 이었다.
차진숙 통계청 행정통계과장은 "60대 이상은 2018년 1분기 통계작성 이래 줄곧 임금근로 일자리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며 "정부 일자리 사업 영향도 일부 있겠지만 60대 이상 인구 자체가 늘고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전체 통계를 산업별로 보면 보건·사회복지(13만 7000개), 건설업(7만 6000개), 정보통신(7만 2000개) 등에서 일자리가 늘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요양·의료인력 확대, 재택근무·원격수업 등 비대면 확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도소매업 일자리도 6만 3000개 늘었는데, 무점포 소매(2만 2000개)가 증가세를 이끌었다.
반면 공공행정(-3만개), 숙박·음식(-2만9000개), 운수·창고(-6000개), 예술·스포츠·여가(-4000개) 등에서는 일자리가 줄었다. 차 과장은 "공공행정 일자리는 2020년 3분기 큰 폭(17만7000개)으로 늘어난 데 따른 기저효과로 감소했다"며 "숙박·음식업도 감소했는데 조사 대상 기간(지난해 8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4단계·비수도권 3단계)가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성별로는 남성 임금근로 일자리가 1년 새 20만3000개 늘었고, 여성은 28만8000개 증가했다. 전체 일자리에서 남성과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7.3%, 42.7%였다. 남성은 건설업(5만4000개), 정보통신(3만9000개), 전문·과학·기술(3만4000개) 등에서 일자리가 증가했고, 여자는 보건·사회복지(11만2000개), 교육(4만4000개), 전문·과학·기술(3만6000개) 등에서 늘었다.
정부는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막연히는 알겠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수행기관도 많고,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노인을 위한 정책인데 정작 노인들이 어렵게 느끼니 접근부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봤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점으로 노인 인구 비율이 7%를 넘어섰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노인 복지는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됐고, 정부는 정책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면서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2004년에 도입됐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노인복지법 제23조에 의거해 시행되고 있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 일자리 창출과 보급을 통해 사회참여와 근로 소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정책이다.
2022년 사업 확대의 중요성
더욱이 2023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4%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전원 60대 노인 세대로 편입된다. 더불어 2025년에는 예정대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약 50년 뒤인 2070년에는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통계청,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
이에 노인 일자리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정부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82만 개에서 올해는 84만 5000개로 사업이 확대 추진됐다. 만 60세 또는 만 65세 이상이라면 조건에 따라 참여 가능하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거의 모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월 30만 원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 일자리 유형에는 공공형, 사회 서비스형, 민간형 사업이 있다. 먼저 공공형에는 공익 활동(노노케어, 취약계층 지원, 공공시설 봉사, 경륜전수 활동)과 재능 나눔이 있다. 2020년 기준 일자리 참여 노인 76만 9605명 중 공익 활동에 참여한 노인은 55만 4101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평균적으로 월 30시간 일하고 27만 원을 받았다.
민간형에는 시장형 사업단,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화 친화 기업이 속한다. 이 중에서는 시장형 사업단 참여자가 가장 많았다. 2020년 참여자는 6만 879명이었고, 평균 임금은 32만 9000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화 친화 기업의 경우는 평균 임금이 100만 원을 넘었다.
고득영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노인 일자리는 참여자들의 노년기 소득에 큰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증가, 우울감 개선, 의료비 절감 등에서 성과가 있다고 인정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사업 참여 노인 가구는 미참여 가구보다 상대적 빈곤율이 7.3%p 낮고, 가구 소득도 월평균 17만 원 많다. 또 스스로 경제적 상태가 좋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사업 참여 후 14.9%p 상승했다. 이외에도 ‘건강이 좋아졌다’, ‘인간관계가 좋아졌다’, ‘아직 일할 수 있음을 느낌’ 등 긍정적인 응답을 보였다.
노인 일자리 체계 이해하기
먼저 복잡하게 느껴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 체계를 살펴보자.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정책 결정, 관련 법·제도 개선, 예산 지원 등 정책 전반에 대해 관장하며,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2005년 12월 설립됐으며, ‘1000만 노인 시대, 100만 노인 일자리 선도기관’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 노인 일자리 사업 종사자 교육 훈련, 노인 일자리에 관한 조사 및 연구, 노인 일자리 종합 정보 시스템 및 노인 인력 데이터베이스 구축·운영 등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사회 내 사업을 총괄하며 재정과 행정의 지도·감독을 맡고 있고, 사업 수행기관의 역할도 일부 맡는다. 지자체 외 사업 수행기관으로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대한노인회 등이 있다.
“나에게 딱 맞는 일자리, 어디서 찾을까?”
앞서 언급한 다양한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들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시니어가 어디를 방문하면 자신에게 가장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정리해봤다. 전국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 노인복지관, 중장년희망센터, 그리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를 소개한다.
지역 특화형+시장형 일자리 찾는다면 ▶ 시니어클럽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사업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기관이다. 실제로 2020년 시니어클럽을 통해 일한 노인은 25만 6449명으로 가장 많았다. 2020년부터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지원기관으로 변경됐고, 노인인력개발센터도 시니어클럽에 포함시켜 참여자가 더욱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니어클럽은 수행기관 중에서 시장형 사업단을 주도한다. 2020년 시장형 사업단 참여자는 총 6만 8729명이었는데, 이 중 시니어클럽을 통한 참여자는 5만 3935명으로 무려 78.5%를 차지했다.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2001년 보건복지부는 시니어클럽 5개 기관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2004년 전국으로 확대하며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명명한 것. 시니어클럽은 지역사회 내에서 일정한 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노인의 일자리를 창출·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등 전국에 17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 기관은 총 189개다.
경비원·청소원 취업 원한다면 ▶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에서는 노인 인력이 필요한 구인처, 60세 이상의 구직자를 모집한다. 취업을 알선해주고, 교육 및 취업 후 사후 관리까지 해준다. 근로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안정된 노후 생활을 보장한다는 목표다.
대한노인회가 발표한 2020년 취업자 실적을 보면 직종은 총 68개, 3만 7089명이 취업했다. 이 중 남자는 1만 9942명, 여자는 1만 7147명이다. 남자는 경비원이 6539명(여자는 164명)으로 가장 많았고, 여자는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이 6104명(남자는 2803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즐기면서 재능 나눔 원한다면 ▶ 노인복지관
노인들이 노인복지관을 찾는 이유 자체는 무료하지 않게 즐거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싶어서다. 보통의 노인복지관에서는 노인의 교양·취미생활 및 사회참여 활동이 가능하도록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 노인복지관에서는 보통 노인 일자리 사업 중에서 재능 나눔 활동 지원사업을 주관한다. 재능을 보유한 노인이 재능 나눔 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사회참여를 통해 노후 성취감 및 대인관계 향상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참여자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시간 일하고 10만 원을 번다.
노인 여가 복지시설 및 공공시설 안전 관리 활동, 노인 상담, 학대 예방, 인권 지킴 활동, 박물관 안내, 내외국인 대중교통 안내, 음악·미술·공연·전시·체험 등과 관계된 문화예술 활동 등이 있다.
40대부터 재취업 준비한다면 ▶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운영한다. 만 40세 이상 퇴직자(예정자 포함)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광역 단위에 12개 센터와 업종별 센터 1개를 운영 중이다.
중장년층에 대해 퇴직 이전 단계부터 이후 구직 활동에 이르기까지 전직 및 취업 등 전반적인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 맞춤형 인재 추천, 중장년을 위한 생애경력 설계 서비스부터 퇴직 예정 중장년을 위한 전직 스쿨 프로그램, 구직자 재취업 지원을 위한 재도약 프로그램 등이 있다.
앙코르 일자리 원하는 서울 시민이라면 ▶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40대부터 60대까지 50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서울시 시니어를 위해 사회공헌 일자리, 창업·창직·전직 지원, 종합상담 및 교육 등 노후 준비에 필요한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재단은 ‘앙코르 커리어 일자리’를 추구한다. ‘50+ 세대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하되, 사회적 가치와 수익 모두를 적절히 만족하는 수준으로 제공하는 일과 활동거리’를 뜻하며, 보다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공헌 일자리로는 ‘서울시 50+보람일자리’가 있으며, 약 3200명을 뽑고 월 57시간 이내 일한다. 시니어 인턴십 유형은 파트타임형인 ‘서울 50+ 인턴십’과 풀타임형인 ‘서울 50+ 뉴딜 인턴십’이 있다. 이 밖에도 창업·창직을 돕는 ‘점프업 5060’ 등이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자신에게 가장 맞는 활동을 찾아 제2의 삶을 시작해보자.
재취업 원하는 55세 이상 서울 시민이라면 ▶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2004년 4월 서울시가 설립,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로 운영했다. 만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재취업을 위한 상담, 교육, 알선을 담당한다. 2018년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서울시 어르신의 취업과 사회활동 지원을 위한 다양한 기반 조성 사업, 재취업을 준비하는 시니어를 위한 다채로운 훈련과 실전 인턴십 등을 개발해 서울시 어르신들의 취업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는 2727만 3000명으로 전년보다 36만 9000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 취업자가 33만 명으로 89.4%를 차지했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2일 통계청은 '2021년 12월 및 연간 고용 동향'을 발표했다. 지난해 늘어난 취업자 수는 36만 9000명으로, 이는 지난 2014년(59만 8000명) 이후 7년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앞서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에는 연간 취업자가 21만 8000명 급감했다. 이로 인한 기저 효과와 비대면·디지털 전환 등 산업 구조 변화, 수출 호조 등으로 2021년 취업자가 증가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별 취업자는 60세 이상이 540만 6천명으로 전년 대비 33만 명이 늘었다. 고용률 또한 42.4%에서 42.9%로 늘었다. 또한 20대에서 10만 5천 명, 50대에서 6만 6천 명이 각각 증가했다. 반면 30대는 10만 7천 명, 40대는 3만 5천 명이 각각 감소했다.
산업 별로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이 19만 8천 명 증가했다. 전년 대비 8.5%로 가장 증가 폭이 컸다. 이어 운수 및 창고업은 10만 3천 명(7.0%), 건설업은 7만 4천 명(3.7%) 증가했다. 또한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취업자도 3만 1천명(2.8%) 증가했다.
이로 보아 60대 이상의 취업자가 증가한 이유는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일자리 사업 관련 업종인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분야의 취업자 증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반대로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업종인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지난해 4만 7000명 감소했다. 또 도·소매업도 15만 명,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은 2만 9000명, 협회 및 단체·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도 5만 5000명 줄었다.
한편, 60대 이상은 고용률도 늘었지만 실업률도 늘었다. 2021년 실업자는 103만 7천명으로 전년대비 7만 1천 명이 감소했다. 이 중 20대는 4만 5천 명, 50대는 2만 1천 명이 감소한 반면, 60대 이상은 2만 4천 명이 증가했다. 실업률은 3.6%에서 3.8%가 됐다.
그런가 하면, 2021년 비경제 활동 인구는 1677만 명으로 전년 대비 3천 명이 감소했다. 이 가운데 연로가 이유인 경우는 238만 8천 명으로 전년 대비 13만 1천 명이 늘었다. 비경제 활동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한 가사는 601만 8천 명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