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레트로가 대세다. 기성세대의 추억으로 여겨졌던 ‘옛 것’들이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감성’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레트로는 과거의 모양·정치·사상·제도·풍습 따위로 돌아가려 하고, 이를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으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지면서 과거로 돌아가려는 ‘레트로 감성’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다시 돌아온 LP와 턴테이블의 전성기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LP(long playing record)와 이를 재생하는 턴테이블(turntable)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LP를 경험해본 중장년층뿐 아니라 레트로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1980∼2000년대생) 중에서도 집에 턴테이블을 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 올해 상반기 턴테이블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30% 증가했다. 같은 기간 SSG닷컴의 턴테이블 매출은 44% 뛰었다.
LP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내 LP 업계는 MP3 플레이어 등장과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바닥까지 내몰렸었다. 하지만 최근 LP 판매량이 증가세를 보인다. 음반 판매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은 2019년보다 73.1% 증가했다. 2018년 26.8%, 2019년 24%의 증가율을 보이다가 지난해에 급격하게 판매량이 늘었다.
LP와 턴테이블은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가 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날로그적인 작동 방식에서 신선함을 느끼는 셈이다. 중장년층의 추억이 깃든, 그리움을 상징하는 물건이 젊은 세대에게는 못 겪어 본 ‘새로움’으로 작용했다.
기성세대와 조금 다른 MZ세대의 LP 사랑
LP는 기성세대에게 ‘LP판’, ‘빽판’ 등으로 불리지만 MZ세대에겐 ‘바이닐’이란 용어가 더 익숙하다. 바이닐(Vinyl)은 PVC(염화비닐)를 말한다. LP판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빽판’이란 단어가 주는 감성은 LP가 빽빽이 꽂혀 있는 DJ 부스를 아는 기성세대가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듯이, MZ세대가 공유하는 LP의 감성은 ‘바이닐’이라는 단어에 함축돼 있다.
2016년 전후로 이런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돼 감각적인 공간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 2016년 한남동에 개장한 현대카드의 ‘바이닐앤플라스틱’을 비롯해 음반 구매와 청음이 가능한 젊은 감각의 전문숍이 곳곳에 생겨났다. 단순히 음반만 파는 게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티셔츠, 포스터, 스티커 등 다양한 굿즈를 취급하는 게 특징이다.
과거에는 10곡 이상 담을 수 있는 지름 12인치짜리 LP판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바이닐’은 더 다양한 개성을 뽐낸다. 음반 외에 스티커, 화보집 등을 묶어서 소장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LP 한 장에 가능한 한 많은 곡을 담아 가성비를 극대화했던 과거와 다르게, 수록곡 수와 관계없이 LP 자체가 하나의 굿즈로 자리 잡았다.
모래시계 보는 요즘 애들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는 해방과 6·25 이후 최대의 격동기였던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개성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1995년 ‘귀가시계’라고도 불렸을 만큼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려고 직장인들이 일찍 귀가해 서울 시내가 텅 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 지금 떨고 있냐”,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같은 명대사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에 의해 매번 회자된다.
이 모래시계가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에서 다시 인기다. 특히 모래시계 시청자가 20~30대 젊은 층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왓챠에서 모래시계를 시청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MZ세대였다.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1995년에 이들은 너무 어리거나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았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들도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중경삼림’(1994년)은 27년 전, ‘타락천사’(1995년)는 26년 전 작품이다. 5060 시니어들에게는 이 작품들이 자신들의 과거이자 추억이다. 하지만 MZ세대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영화인 셈이다.
김효진 왓챠 콘텐츠 사업 담당 이사는 “이제 MZ세대들은 과거의 것을 재해석한 콘텐츠를 넘어 과거의 콘텐츠 자체를 직접 즐기고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MZ세대들에 의해 20세기의 올드 콘텐츠들이 21세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팝시페텔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4길 44-7 한솔빌딩 102호 영업시간 매일 12:00~21:00
레코드숍이지만 CD와 LP를 비롯해 블루레이, DVD, 도서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골고루 판매한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한국 대중음악사, 음악 속의 문학 등 음악 관련 강좌를 진행한다.
#도프레코드
주소 서울 마포구 독막로 211 4층 영업시간 평일 및 주말 13:00~21:00 화요일 휴무
록 마니아들의 성지로 하드록, 메탈 등 록 장르의 음반을 주로 제공한다. 록 베이스인 만큼 퀸·오아시스 등 해외 유명 밴드 가수들의 ‘굿즈’도 구경할 수 있다.
#도프레코드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4 영업시간 매일 09:30~19:30 명절 휴무
1976년부터 30년 넘게 종로3가를 지킨 터줏대감 레코드숍. 국내음악부터 영화음악, 국악 등 여러 장르를 다루며 온라인 홈페이지도 함께 운영 중이다.
활짝 웃어보라. ‘씨익’ 하는 정도로 말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웃을 수 있는가? 열까지 셀 동안 그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가? 나는 못하겠다. 제법 잘 웃는 편인데도 그렇다. 조금 지나면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모르게 돼버린다. 정말 즐거운 일이 있다면 오래 웃는 게 가능할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 넘게 세도록 여전히 웃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온 얼굴로 웃는 웃음을 ‘뒤센 스마일’이라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학자 기욤 뒤센이 붙인 이름이다. 뒤센이 연구해보니 (하회탈처럼)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히고 입꼬리도 저 위까지 올라간 미소가 진짜 웃음이더란다. 물론 뒤센이 하회탈을 알 리는 없지만.
골퍼 얘기만 하더니 느닷없이 웃음 얘기냐고? 이번 주인공이 바로 프레드 커플스(Fred Couples)이기 때문이다. 프레드 커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가 짓는 미소다.
1959년생인 커플스의 별명은 ‘필드의 신사’다. 흔히 ‘젠틀하다’고 말하는 그 신사 말이다. 독자는 ‘신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혹시 근엄함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라고 별다르랴. ‘신사라면 역시 묵직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늘 이를 드러내고 웃는 커플스 별명이 신사라니? 왜 그럴까? 그건 딱딱함이 신사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사라면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할 것이다. 바로 그 시절의 사진 기술이 지금과 다른 탓이다. 필름 비슷한 것에 화상이 맺힐 때까지 한참 시간이 걸리던 시절 얘기다. 신사가 사진 한 장 남기려면 두 시간 넘게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있어야 했던 시절. 아이고 차라리 초상화를 부탁하고 말지. 그 긴 시간 동안 활짝 웃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옆에서 웃겨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 시절 신사 숙녀들 사진은 늘 무표정할 수밖에.
그러다가 신기술이 나왔다. 셔터를 한 번만 누르면 필름에 화상이 맺히는 카메라와 필름이 나온 것이다. 그 카메라 회사 이름을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독자가 다 아는 업체 중 하나다. 신기술은 혁명을 불러왔다. 사람들이 짓는 표정에 말이다. 이제 순간의 표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웃으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엄한 표정이 신사 숙녀의 필수조건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한결같이 미소 짓는 프레드 커플스를 ‘신사’로 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미소를 무심코 넘기던 내가 놀란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2019년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굿즈’ 대회 마지막 날이었다. 커플스는 그날 데일리 베스트(선수 중 성적이 가장 좋았다는 얘기)를 치며 클럽 하우스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서너 조 뒤에서 경기하고 있던 더그 배런(Doug Barren)과 동타였다. 이 대회 전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철저한 무명 선수 더그 배런인지라 나도 내심 연장전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아니면 배런이 실수를 해서 커플스가 우승을 하거나.
배런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PGA 투어에서만 15승을 거두고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13승을 거둔 대가 커플스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몇 년 만에 우승 기회가 온 것 아닌가? 배런이 몇 홀만 남겨두자 커플스는 연습 그린으로 갔다. 그리고 퍼팅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연장전을 대비한 것이다.
그런데 배런은 15번 홀에서 먼 거리 버디 퍼팅을 떨어뜨리면서 한 타를 달아났다. 그는 16번 홀에서도 홀 가까이 붙여 기회를 잡았으나 버디 퍼팅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지는 17번 홀은 긴 파3. 보기가 숱하게 나온 아주 어려운 홀이었다. 거기서 배런이 그림 같은 하이브리드 샷으로 홀에 바싹 붙여 버디를 낚았다. 두 타 차. 마지막 홀 배런 티샷이 페어웨이 왼편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곧이어 연습 그린에서 짐을 싸서 철수하는 커플스가 화면에 잡혔다. 그런데 커플스는 활짝 웃고 있었다. 저렇게 큰 승부에서 우승을 다툴 기회가 날아갔는데도 말이다. 흔히 속되게 말하는 ‘썩소’가 전혀 아니었다. 남을 의식해서 짓는 억지웃음(뒤센 미소와 비교해 팬암 미소라고 한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날 그의 샷 못지않게 인상적인 그의 미소 때문에 나는 커플스 스토리를 찾아봤다. 그러고는 미소에 감동했을 때보다 더 많이 놀랐다. 그가 전성기인 1992년에 33세 나이로 마스터즈 대회를 우승했기 때문이었냐고? 그가 PGA 투어에서만 컷 통과를 500번이나 했기 때문이었냐고? 특히 마스터즈 대회에서는 무려 서른 번이나 컷 통과를 해서 서른일곱 번 컷 통과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서 2위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냐고? 아니다. 내가 놀란 건 그의 개인사에 슬픔과 아픔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커플스는 한 번 이혼했다. 그런데 전 부인은 그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겨우 슬픔을 이겨낸 커플스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재혼했지만 곧 별거하게 된다. 무슨 일인지 별거 중인 부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커플스는 또다시 깊은 슬픔에 몸부림쳤다. 그 무렵 커플스는 허리를 크게 다쳤다. 마음의 병이 몸을 망쳤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는 평생 진통제를 복용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도 해맑은 미소를 세상에 보낸다.
한없이 부드러운 스윙을 자랑하는 스윙 교과서 커플스가 더 위대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미소 때문이다. 프레드 커플스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웃는 건지도 모른다. 독자와 나 우리의 미소는 어떻게 비칠까?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으로, 골프채널코리아에서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GS25가 2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화제의 캐릭터를 앞세운 프리미엄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내놓고 각종 이벤트를 준비했다.
GS25의 밸런타인데이 컬래버 상품은 '발렌타인 펭수세트 3종', '발렌타인 총몇명 세트 2종', '발렌타인 메들리 세트 2종'을 비롯해 총 7종이다. 발렌타인펭수세트에는 귀여운 펭수의 이미지가 디자인됐고 다양한 초콜릿, 스낵 상품과 함께 펭수 스티커, 펭수 미니 등신대, 펭수 노트 등 펭수 관련 굿즈가 동봉됐다. 가격은 6000원에서 1만1900원이다.
총몇명–GS25 유튜브 콘텐츠 조회 수 220만 회 넘어
발렌타인 총몇명 세트는 유튜브 구독자 수 224만 명이 넘는 유명 애니메이션 유튜버 ‘총몇명’과 컬래버한 상품이다. 총몇명의 B급 감성과 독특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유명 캐릭터인 ‘나천재’, ’민모리’ 등의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이름표와 열쇠고리 등으로 만들어져 동봉됐다. 가격은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이다.
발렌타인 메들리 세트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박토벤으로 불린 트로트 작곡가 박현우, 작사가 이건우와 컬래버한 상품이다. 트로트 감성을 잘 살린 패키지 디자인에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재미있는 연출을 할 수 있는 포토 프레임 카드 등이 동봉됐다. 가격은 6000원에서 1만 원으로 컬래버 상품 수량은 발렌타인 펭수 세트 14만 개를 비롯해 총 25만 개가 GS25에서 판매된다. GS25는 컬래버 세트 상품 기획에 맞춰 펭수, 총몇명과 유튜브 콘텐츠를 각각 제작해 공개함으로써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달 31일 선보인 GS25-펭수 유튜브 콘텐츠(펭력사무소-편의점 편)는 이달 4일 현재 13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3일 공개된 2편 콘텐츠(알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편)는 9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박토벤’ 박현우 작곡가도 GS25 30주년 기념 트로트 곡 ‘진심’을 온라인 채널을 통해 선보이며 인기몰이 중이다.
펭수 쿠션 증정, 참여형 기부 활동 등 이벤트 진행
GS25는 30주년을 기념해 밸런타인데이 이벤트도 준비했다. 오는 15일까지 차별화 세트 상품 7종을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GS앤포인트(GS&POINT)를 30배 적립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60여 종의 밸런타인데이 행사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GS앤포인트를 적립할 경우 적립 횟수에 따라 GS25의 모바일앱 나만의냉장고를 통해 펭수 쿠션 1만 개 등 총 2만5000개 경품을 증정한다. 또한 초콜릿 류를 구매하는 고객이 나만의냉장고앱에 생성된 스탬프를 누르면 기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 공헌 활동도 진행한다. 고객 참여를 통해 모금되는 금액 1000만 원은 전액 GS리테일이 부담하며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전액 홈리스 도시락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언제부턴가 TV를 틀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젊은 댄스 보컬 그룹들이 자주 보였다. 바로 10대 스타 ‘아이돌’이다. 이제 단순한 인기를 넘어 우상화되고 있는 아이돌의 팬들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아이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H.O.T.’부터 최근 방송을 통해 국민투표로 뽑힌 ‘Wanna One(워너원)’까지 아이돌 팬덤 문화 변천사를 들여다보자.
아이돌 1세대, 은행 앞에 줄서던 여고생들
지금은 은행 업무도 모바일로 간편하게 처리하는 시대. 그런데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 은행 앞에서 줄을 섰다고? 그렇다. 1996년 현재 1세대 아이돌로 분류되는 H.O.T.가 데뷔했을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 보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PC통신 시절이었다. 콘서트 티켓도 각 지역의 특정 은행에서만 판매를 했기 때문에 H.O.T.의 콘서트 소식이 들리면 여고생들은 티켓을 구하기 위해 학교도 빠진 채 새벽부터 은행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중 금수저들은 은행 거래가 많은 부모님을 통해 은밀하게 콘서트 티켓을 미리 확보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빠’들을 보기 위해선 끈기와 노력은 필수였다.
앨범 발매일이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동네 음반점도 함께 바빠졌다. 오빠들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한정 브로마이드를 준비해서 가게 문 앞에 ‘-월 –일 H.O.T. 2집 발매(브로마이드 선착순)’라는 홍보 글을 써 붙였다. 여고생들은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선착순에 들기 위해 조퇴도 불사했다. 오죽하면 H.O.T.의 음반 발매일이 되면 교육청에서 조퇴 금지라는 공문을 학교마다 보낼 정도였다.
2012년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tvN의 드라마 을 보면 여주인공 은시원(정은지 분)이 좋아하는 가수의 방송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처럼 TV 다시보기가 없던 시절엔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선 비디오 녹화가 유일한 수단이었다. 학원 때문에 방송을 놓치는 날이면 방송을 온전히 녹화하기 위해 부모님께 부탁을 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이랴. 1년에 한 번 모든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대규모 드림 콘서트나 연말 시상식 때는 혹여 우리 오빠들 기죽을까봐 오빠들을 상징하는 색깔의 우비와 풍선을 들고 현장지원 사격도 불사했다. 콘서트장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풍선의 색깔이 그해 가장 인기 많은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빠순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즈음이다. ‘빠순이’는 1990년 중·후반 혜성같이 등장한 1세대 아이돌을 “오빠, 오빠” 하고 부르며 맹목적으로 쫓아다니는 여고생들을 낮잡아 부르는 용어였다. 어른들이나 또래 남자들이 “쯧쯧, 저 빠순이들” 하며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겨 팬클럽 문화가 후퇴했냐고? 그럴 리가! 그들은 마치 잔 다르크처럼 꿋꿋하게 오빠들을 응원하고,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팬클럽 차원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으로 통 크게 기부도 하는 등 편견에 정면대응하며 건전한 문화 정착에 힘썼다.
아이돌 2세대, 아이돌 굿즈로 무장하라
1990년대를 풍미했던 H.O.T.와 젝스키스, 신화 등 굵직굵직한 그룹들의 잇따른 해체와 개인 활동으로 1세대 아이돌들이 주춤하던 시기가 지나고 2004년 드디어 2세대 아이돌의 대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방신기(東方神起)가 데뷔한다. 출중한 외모와 노래 실력을 갖춘 동방신기를 필두로 빅뱅(2006), 소녀시대(2007), 카라(2007)의 데뷔로 비로소 2세대 아이돌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1세대 아이돌과 2세대 아이돌 팬 문화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그 사이 인터넷 강국으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에 팬클럽 활동에 최적화한 환경이 아닐까!
2세대 아이돌 팬들은 주로 인터넷 쇼핑을 통해 앨범을 구매한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초도 한정 스티커나 비공개 사진이 있기 때문에 앨범 구매를 포기할 수 없다. 간혹 1990년대처럼 줄을 서서 앨범을 구매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악수회 티켓이 포함된 앨범이 큰 서점에서 판매될 경우에만 해당한다.
만약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와 악수를 하고 싶다면 소속사에서 공지한 앨범 판매처에 3시간 전에 도착해서 멤버들 수만큼 앨범을 구입하고 악수회 티켓을 받으면 된다.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팬서비스다. 콘서트의 경우 소속사에서 콘서트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주소와 예매일을 알려주면 그날부터 팬클럽 홈페이지 게시판은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지역별 PC방 목록이 공유되고, 구인 사이트에는 본인 대신 좋은 좌석을 예매해줄 대리인을 구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업데이트된다. 이외에도 ‘S대 도서관 컴퓨터가 제일 빠르다더라’, ‘통신사 근처 PC방이 제일 빠르다더라’ 등등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난무한다.
콘서트 티켓을 성공적으로 예매했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콘서트 티켓을 얻은 사람들은 콘서트장에서 자신을 빛내줄 굿즈 구입까지 마쳐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멤버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만든 티셔츠, 야광 머리띠, 응원봉은 물론이고 콘서트장에서 땀을 닦아줄 수건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간혹 콘서트장 앞좌석에서 관람하다가 멤버들이 손을 내밀 때 자신의 수건을 받아주기라도 하면 그날은 팬질 인생 최대의 계를 탄 셈이다. ‘쌀 화환’은 또 어떻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드라마나 뮤지컬 등에 진출하면 제작 발표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으리으리한 쌀 화한을 보낸다. 꽃은 시들면 버려지기 때문에 10kg의 쌀 포대를 모아 화환을 만드는 것인데 그 쌀들은 전국 각지의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부된다. 이 얼마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문화란 말인가!
2세대 아이돌들은 본격적인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 데뷔한 2pm의 경우 ‘왜 한국에서 안 보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현재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활동 중이다. 일본의 가장 큰 공연장인 도쿄돔을 마비시킬 정도로 뜨거운 아이돌의 한류 열풍은 아직까지 식을 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내가 뽑는다
그리고 바야흐로 2017년, 2세대 아이돌들의 해체와 각종 개인활동들로 주춤했던 가요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엑소(EXO), 트와이스(TWICE), 에이핑크(APINK) 등 이른바 슈퍼 아이돌들의 등장으로 팬들은 벌써부터 그들을 지원사격해줄 준비를 모두 마쳤다. 각종 시상식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1등을 하기 위해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매일 투표를 하는 정성은 기본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방한 Mnet의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데뷔시키기 위해 팬클럽들은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휴대용 휴지에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의 얼굴을 인쇄해 나눠주거나 커피차를 빌려 커피를 나눠주며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아이돌 굿즈는 더욱 다양해졌다. 소속사에서 멤버들의 얼굴을 본떠 인형을 만들어 1차 판매하고 2차로 인형 옷, 인형 소품(침대, 베개, 가방 등)들을 판매한다. ‘그런 걸 누가 사!’ 분명 그런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품절되는걸 보면 ‘나만 안 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팔린다.
MINI INTERVIEW
허윤정(26)씨는 워너원 멤버 라이관린의 팬이다. 우연히 빠지게 된 아이돌 덕분에(?) 굿즈 제작까지 취미로 하고 있다.
“예쁜 쓰레기는 예쁨으로서 그 효용가치를 다했다는 말처럼, 저는 라이관린의 예쁨을 담아낸 무언가를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죠. SNS에 판매 글을 올렸는데 싱가포르에 사는 팬이 연락을 줘서 120장을 사갔어요. 아이돌에 너무 빠지면 회의감이 올 것 같아서 요즘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중이에요. 이런 활동이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시너지가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이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