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얘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 파킨슨병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 신경과 김현아(金炫我·42) 과장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사과한다. 설명을 하다 보니 희망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킨슨병은 전문의에게도 쉽지 않은 병이다. 의사 입장에서 바라보면 환자를 어떻게 낫게 하느냐가 목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얼마나 더 연장해주느냐가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치료는 환자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중심에는 환자의 가족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하며 신체의 운동 능력에 이상을 가져오는 퇴행성 질환이다. 치매와 비슷한 병이지만 치매는 인지장애 등 기억이나 사고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파킨슨은 신체의 움직임에 장애를 일으킨다. 김현아 과장은 파킨슨병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파킨슨병의 원인은 보통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나눠요. 파킨슨병 환자 중 5~10% 정도는 유전이 원인인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40대 이전에 발병하기 때문에 구분이 쉽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환자는 60세 이상 인구 중 1% 정도에서 발병을 해요. 그래서 퇴행성, 즉 노화를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발병 환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해보면 농촌지역 거주자들의 비율이 높은데, 자세히 분석해보면 살충제나 농약에 노출된 분들이 많았어요. 이런 화학물질도 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있어요.”
손떨림 증상만으로는 진단 어려워
파킨슨병의 대표적 증상은 손떨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손떨림만 잘 관찰하면 파킨슨병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을까? 김 과장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파킨슨병 초기에 관찰되는 증상은 크게 4가지 정도가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리는 ‘안정떨림’과 근육이 굳는 ‘경직’, 몸의 움직임이 굼떠지는 ‘느린 운동’과 좀 구부정해지는 ‘자세불안정’이에요. 그런데 이런 증상이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손이 떨리지 않아도 파킨슨병이 이미 진행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과 달라진 몸의 증상이 느껴진다면 바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인 MRI(자기공명촬영)와 같은 고가의 검진이 필요 없어요. 숙련된 전문의가 환자와 직접 대면해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파킨슨병은 진단이 가능하니까요.”
파킨슨병의 특징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운동 능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손떨림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고, 근경직은 허리를 굽어지게 만든다. 종종 환자들이 “허리가 아프다”며 하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자세불안정으로 일어날 때나 앉을 때 뒤로 넘어지거나 평소 즐기던 자전거도 못 타게 된다.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증상이다.
또 하나의 특징인 ‘느린 운동’은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다. 종종 낙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김 과장은 낙상이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낙상으로 고관절이나 다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나을 때까지 누워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근육이 급격히 약해지거든요. 이렇게 운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결국 파킨슨병 증세도 빠르게 악화되어 심각한 상황을 만들죠.”
기본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다. 약물은 도파민이 뇌에 공급되도록 돕는 기능을 하며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운동 능력도 평소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문제는 이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흔히 얘기하는 ‘약발’이 약해진다는 데 있다. 김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3년에서 5년 정도 약을 복용하면 소위 온오프(on-off) 현상이 나타나요. 마치 스위치가 켜졌다 꺼지는 것처럼 약효의 지속시간이 짧아지고 급격하게 사라져요. 결국엔 약을 자주 먹게 되는데 약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서 힘든 상황이 되죠. 이럴 경우 뇌에 전극을 심어 전기 자극을 주는 ‘뇌심부자극술’을 고려하기도 해요. 하지만 치매 증세가 있는 환자에게는 가급적 하지 않고 제한적인 환자에게만 시술합니다.”
파킨슨병은 증세가 심해지면 여러 가지 합병증을 동반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눌해지는 것을 시작으로 씹고 삼키는 것이 어려워지는 연하장애가 발생한다. 배뇨에도 문제가 생기고 변비 때문에 고생도 한다. 성기능 장애나 우울증, 어지럼증도 발생한다. 또 환각 증세도 일어나는데 개미 혹은 날파리가 떼로 몰려 있는 듯한 장면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들은 파킨슨병의 진행 정도를 5단계로 나눈다. 마지막인 5단계까지 가는 기간은 보통 8년에서 10년 정도 걸리며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개인차에 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족이라고 김 과장은 말한다.
운동 중요하지만 감퇴되는 의욕이 문제
“파킨슨병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재활치료입니다. 굽어지는 등을 의식적으로 펴는 훈련을 해야 해요. 관절이 굳지 않도록 보행 연습도 해야 하고요. 문제는 환자들의 감정이 조금씩 메말라가면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점이에요. 운동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매일 재활치료를 해야 하는데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 것이죠. 이때 가족들이 나서서 힘을 줘야 합니다. 매일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문턱을 없애는 등의 노력으로 환자가 좀 더 편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또 약을 투여했을 때 약효가 얼마나 가는지, 어떤 증상들이 일어나는지 기록해주면 의료진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파킨슨병은 결국 가족의 사랑으로 치료 효과가 좌우되는 셈입니다.”
김현아 과장은 단기적인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환자의 거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환자의 발 앞에 선 하나를 긋고, 이 선만 넘어보라고 권유하면 생각보다 쉽게 넘어요. 단기적인 동기에 뇌가 반응해서 도파민이 생성되는 것이죠. 파킨슨병 환자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파킨슨병은 몸이 느려지면서 생각도 함께 느려지기 때문에 가족들의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걷기, 수영, 체조 등이 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데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지속적으로 하기 힘든 운동이다.
의료용 대마초, 국내에서는 불법
최근 유튜브에서 한 편의 동영상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파킨슨병 환자가 의료용 대마초(Medical Marijuana)를 흡입한 후 약 5분 만에 운동 능력과 대화 능력이 완벽하게 정상인처럼 돌아오는 것을 보여준 영상이다.
“저도 그 영상을 봤어요. 3기 정도로 추정되는 환자였어요. 의료용 대마초는 그 물질이 뇌세포에 달라붙어 일시적으로 도파민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이런 효과 때문에 미국의 일부 주(州)에서는 의료용 대마초 사용을 허용하고 있죠.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의료용 대마초의 장기적 효과나 부작용 등에 대해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 명쾌한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의료용 대마초 사용 자체가 국내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적극적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양한 신약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노인성 난청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청력이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45세 이상의 성인은 4%, 65~75세는 30~35%, 75세 이상은 50% 이상이 난청을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한 증세다. 문제는 방치하면 증세가 계속 나빠지는 데 있다. 40~50대에는 주로 고음만 안 들려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듣는 데 불편함을 느껴 소위 ‘가는귀먹은’ 상태가 된다. 노인성 난청이 심해지면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우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강서구 소재 귀 전문병원 소리귀클리닉 문경래 원장에게 노인성 난청에 대해 알아봤다.
노인성 난청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무엇인가요?
“소리는 잘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말귀를 못 알아듣겠어요” 하며 찾아오는 분이 많습니다. 소리가 들려도 단어에 대한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노인성 난청의 증상은 말소리가 똑똑하게 들리지 않고 작게 들리거나,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또 사람이 많이 모인 시끄러운 장소에서 하는 대화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귀가 밝고 어떤 사람은 난청 증상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눈의 노화나 피부의 노화가 사람마다 다르듯, 귀의 노화도 사람마다 그 속도가 다릅니다. 아무래도 유전적인 영향이 많지요. 젊었을 때 염증을 많이 앓았다든가 소음에 많이 노출된 적이 있다면 노화가 더 빨리 일어나게 됩니다.
노인성 난청의 진단법이 있나요?
청력검사를 통해 난청을 진단합니다. 난청의 여부와 난청이라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인성 난청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노인성 난청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난청이 생긴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환자는 나이가 들어 노인성 난청이 생긴 줄 알고 ‘나중에 보청기나 해야지’ 하고 방치하다가 내원했습니다. 그런데 검사해보니 노인성 난청이 아니라 ‘이경화증(귓속의 뼈가 굳는 병)’이라는 질환이었습니다. 이 병은 수술하면 좋아질 수 있거든요. 수술하고 난 뒤 청력이 좋아졌다며 만족해하셨어요.
노인성 난청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치매와도 관련이 있나요?
난청을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앞에서 말씀드렸던 ‘단어 분별력’이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노인성 난청으로 인해 바깥 소리들이 뇌까지 전달이 안 되면 소리를 듣게 해주는 청각 관련 뇌 부위가 녹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빨리 진단하고 필요하면 청각재활도구(보청기, 청각 임플란트 등)를 사용해서 잘 듣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청력 저하’와 ‘치매’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보고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청력 저하가 있는 환자들이 치매가 잘 온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뇌를 안 쓰면 녹슬기 때문입니다.
난청이 우울증이나 당뇨병 등 다른 질병과 관계가 있나요?
난청이 있으면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져서 만남을 꺼리게 되고, 시끄러운 곳에 가지 못하게 되어 사회생활이 점점 줄어듭니다. 노년기일수록 활발한 사회활동이 정신건강에 중요한데, 난청이 있는 분들은 사회생활을 안 하게 되면서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아집니다. 당뇨병이 있거나 만성신장질환이 있는 분들은 난청이 생길 확률이 일반인보다 더 많습니다.
노인성 난청 수술은 어떤 수술인가요?
만약 난청의 원인이 ‘달팽이관의 노화’가 아니라, 고막 손상, 염증, 소리를 전달하는 뼈의 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교정해주는 수술을 합니다. 수술 후에는 보청기나 다른 기기 착용을 하지 않아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달팽이관의 노화로 청력이 떨어진 경우에도, 청각 임플란트 삽입 수술을 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약물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나요?
전혀요. 흰머리를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희 병원을 포함해 일반적인 이비인후과의 치료 방법은 정기적인 귀 검사를 하는 ‘청력 관리’, 보청기 착용을 하는 ‘청각 재활’, 이명과 어지럼증 등 난청과 함께 동반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순으로 진행됩니다.
병원에서도 보청기를 맞출 수 있나요?
병원에서도 보청기를 맞추는 환자가 많습니다. 난청이 있으면서 수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은 보청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보청기에서 소리가 나거나, 착용을 불편해하고, 효과가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청기들이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보청기를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요?
난청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전문 청각 검사자에게 정확한 청력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이후 환자의 청력 상태에 맞는 보청기를 선택하면 됩니다. 귓속형, 귀걸이형, 오픈타입 등 보청기 종류는 다양합니다. 적응하는 시간 동안 귀에 뭔가 걸리는 느낌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참고 착용하다 보면 적응이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보청기를 제대로 조절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 지킨다면 보청기를 편하게 착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난 ‘장수시대(長壽時代)’가 되면서, 건강한 노년은 수명연장만큼이나 중요한 숙제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듯 지난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다. 노년의 건강관리와 정신건강, 운동법으로 나눠 진행됐던 강연의 주요 내용을 에 소개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 이은주 교수가 첫 번째 화두로 던진 질문이다. 이 교수는 아직 과학적으로 노화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면서 몇 가지 가능성들을 소개했다.
“노화의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노화 이론은 ‘Wear and Tear’죠. 오래 쓰면 낡아서 닳고 망가진다는 이론이에요. 인체의 노화를 막기 위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건전하게 바꾸자는 것도 상당 부분 이 이론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밖에 몸의 주요 기능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이 원인이라는 신경내분비(Neuroendocrine) 이론도 있고, 활성산소를 노화 인자로 지목하는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 이론,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프로그램(Programmed) 이론도 있어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론은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이에요. 염색체의 일부인 텔로미어라는 것이 세포의 수명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이론입니다. 복제 양의 수명은 어미 양의 남은 수명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 이미 성체가 돼 수명이 짧아진 상태의 세포를 복제했기 때문에 복제 양들의 수명이나 어미 양이 비슷한 시기에 죽는 것 아니냐는 이론이에요. 그래서 이 텔로미어를 재생해 성장을 촉진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입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미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100세 이상 인구는 2012년 조사결과에 비해 15% 증가한 1만4592명에 달한다. 이 중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세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는 100세 이상 인구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낮은 편으로 인구 10만명당 2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 65세인 1952년생이 100세까지 살 가능성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대여명조사가 있었어요. 하지만 30년 후에 태어난 1982년생의 경우는 5명 중 1명이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30%를 차지하는 일본과 같은 상태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장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장수 노인들을 조사하는 방식을 노화종적연구라 부르는데,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한국의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6배 정도 많았어요. 교육수준은 수명과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장수하는 사람들은 흡연율이 매우 낮았고 고지혈증, 당뇨, 중풍, 치매, 비만과 같은 만성질환의 빈도가 낮았어요. 간염보균자도 없었고요. 신선한 채소와 과일, 해조류, 버섯, 생선 등을 골고루 먹고, 짜고 자극적이며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멀리했어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평소에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생활 태도도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교수는 해외 백세인 조사결과 7가지도 소개했는데,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만이 없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고 ▲인지 능력이 높고 ▲여성의 경우 40세 이후에도 출산한 경험이 있고 ▲형제들도 함께 장수하며 ▲자녀 역시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래 살려면 이것 지켜라
장수를 위한 생활습관은 단순하다. 이미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금연이다. 흡연은 활성산소를 통한 노화를 촉진시키고 동맥경화, 관상동맥질환, 암 발생 등의 원인이 된다. 흡연과 함께 따라다니는 술도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간질환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치명적이다.
흡연이나 음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이들이 많은데, 쉽지 않겠지만 오래 살려면 담배와 술을 멀리하면서 스트레스에도 강해져야 한다. 이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명상이나 요가, 마사지, 그리고 등산이나 산책과 같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해소법을 추천했다.
비만과 수면 이상도 피해야 한다. 노화에 따라 기초대사가 감소하면 복부비만은 따라오기 마련인데, 식사량을 줄이는 등 식사습관을 바꿔나가야 한다. 숙면을 위해서는 음주와 밤 시간의 심한 운동을 삼가야 하고, 카페인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이 교수는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권할만한 대표적인 것으로 비타민D가 있다. 비타민D는 근력 향상과 암 예방, 항염증 등 여러 좋은 효과가 있다. 이 교수는 또 적게 먹는 것을 권했는데, 적게 먹으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이론은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김원 교수는 시니어의 운동 방법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강도’라고 강조했다.
운동은 살살 하면 효과 없다
“기본적으로 시니어의 운동 방법은 젊은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무리한 운동으로 다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지 않거나 너무 약하게 하면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만약 운동을 할 때나, 끝난 후에 통증이 지속된다면 본인에게 과도하거나 맞지 않는 운동일 수 있으니 강도를 줄이거나 종류를 바꿔야 합니다. 통증은 몸에서 피하라는 신호이지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서 규칙적으로 하시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됩니다.”
김 교수는 특히 빠르게 걷기나 조깅과 같은 유산소 운동에서 강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화’라고 조언했다.
“운동 때문에 숨이 차서 옆 사람과의 대화가 약간 힘든 정도를 중등도 운동 강도라고 이야기해요. 운동 효과를 위해서는 최소한 이정도 강도로 해야 합니다. 반면에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는 효과가 별로 없는 저강도 운동으로 규정해요.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겠죠.”
김 교수는 간혹 특정 운동을 오래해 누적 손상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운동의 종류와 강도를 변경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시니어의 다리운동, 삶의 질 바꾼다
그렇다면 근력운동은 어떨까? 헬스클럽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아령과 알통이다. 그러나 시니어의 근력운동은 하지운동, 즉 다리운동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김 교수는 조언한다.
“근력 운동하면 상체에 근육이 많이 생겨서 몸짱이 되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노년에 너무 무리한 상체 운동을 하면 어깨 통증 등이 생길 수 있어요. 실제 하지의 근육량이 상지보다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 근력 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또 일상생활에서 사고 위험을 줄이는 데도 다리 근력은 필수입니다.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에요.”
김 교수는 계단오르기가 시니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데,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는 데 좋은 운동 방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다만 계단을 내려올 때는 무릎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간 후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
최근에는 육체적인 건강만큼이나 정신건강도 100세 장수를 위해 관리해야 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장수의 조건 중 하나로 스트레스 관리가 지목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는 노년기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우울증과 치매, 신경성 3가지를 꼽았다. 이 중 우울증에 대해 김 교수는 ‘흔한 병’이라고 정의했다.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많은 질환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울증과 우울감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없고, 짜증이 나죠. 그러다 다시 평상시로 돌아갑니다. 이런 경우는 우울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증세가 보름 이상 매일, 하루 종일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해요.”
우울증의 증상은 보통 기분이 침체되고 눈물이 자주 흐르고 마음이 약해지는 슬픔형,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은 의욕저하형, 갑자기 짜증이 나고 화를 버럭 내는 감정기복형,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기억력이 저하되고 집중이 안 되는 신체증상형 등 4가지로 구분된다.
김성윤 교수는 우울증 예방과 핵심 치료 방법 중 하나로 ‘햇볕’을 꼽았다.
“우울증 약은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3분의 1밖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햇볕과 운동, 수면습관이 중요해요. 햇볕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효과가 매우 큽니다. 실제로 빛을 쪼이는 광 치료 방법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치매는 시니어들에게는 말 그대로 공포다. 신체적으로 입는 피해만큼이나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죽는 신경퇴행성질환과 혈관 이상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 생기는 혈관성질환으로 나뉜다.
창조적 행동이 치매를 예방한다
김 교수는 치매 치료를 위해서는 약과 신체운동, 그리고 뇌운동 3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과 신체운동은 짐작할 수 있겠는데 ‘뇌운동’이라니 어떤 운동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뇌운동은 사회생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고, 메모를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모임에 나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이죠. 그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뇌운동이 됩니다. 뇌운동에는 수동적인 운동과 적극적인 운동이 있는데요, 영화나 책, TV처럼 남이 만들어놓은 창조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보는 적극적인 뇌운동을 더 권하고 있어요. 일기쓰기도 좋고 무엇을 배우는 것도 좋아요. 또 스스로 길을 찾고 낯선 이들과 만나는 여행도 좋은 뇌운동 중 하나입니다.”
신경성질환도 시니어들이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신경은 운동, 중추, 자율 3가지 신경계로 나뉘는데 시니어들이 겪는 대부분의 신경성질환은 자율신경성질환이다.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등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것들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느닷없이 숨이 가빠진다거나 남들은 더운데 혼자 춥고, 시원한 날에 땀을 흘리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심리 상태에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우울, 불안, 걱정, 화,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자율신경계가 말썽을 부리면 강아지를 훈련하듯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식사나 운동, 수면 등 일상생활을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을 3개월 정도 반복하면 몸이 완전히 적응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 exhibition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 , 등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사랑받아온 픽사(Pixar,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 특별 전시다. 제작 과정에 쓰인 스케치,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약 500여 점을 각 영화별로 전시했다. 정지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zoetrope)’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담은 ‘아트 스케이프(artscape)’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일정 7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이집트 문화부, 샤르자 미술재단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3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166점을 초현실주의가 걸어온 흐름에 따라 다섯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출품작 중 상당수가 해외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미라’, ‘피라미드’로만 인식되어온 이집트의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 book
남자 혼자 죽다(성유진 외 공저·생각의힘)
고독사 중에서도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 이른바 무연사(無緣死)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209명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의 무연사 현상을 현대 사회 남성의 어려움과 연관해 밝히고자 했다.
치매박사 박주홍의 뇌 건강법(박주홍 저·성안북스)
20여 년 동안 치매 전문가로 살아온 저자가 치매를 비롯한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질병에 대한 기본 정보와 더불어 식생활, 운동, 명상치료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았다.
◇ movie
심야식당2
누적판매 24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만화 을 원작으로, 2015년 국내 개봉했던 영화 의 두 번째 시리즈다. 1편에서 함께한 마츠오카 조지 감독과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조가 다시 만났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늦은 밤 불을 밝히는 특별한 식당’이라는 콘셉트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개봉 6월 8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츠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기다리 조 등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국의 길고양이가 대만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로드무비다.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대만의 관광지 ‘허우통’과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고양이 섬’ 일본 ‘아이노시마’ 등을 돌아다니며 길 위에서의 공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화계 대표 애묘인(愛猫人) 조은성 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고양이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발자취를 담았다. 고양이의 마음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개봉 6월 8일 장르 로드무비 감독 조은성 내레이션 강민혁
◇ stage
로미오와 줄리엣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원로 연극인 오태석이 번안과 연출을 맡았다. 청사초롱 불빛 아래 한국무용과 풍물이 어우러져 한국판 이 탄생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일정 6월 18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오태석 출연 이신호, 정지영, 정진각 등
천덕구씨가 사는 법
극본을 맡은 김태수 작가는 삶은 끝나지 않은 여행이며,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는 시니어 세대에게 삶이란 견딜만하다고, 또 웃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그의 시선을 담아 누구나 겪는 노년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일정 6월 8~18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김순영 출연 오영수, 차유경 등
복순이할배
‘사랑을 모른다’라는 이유로 짝사랑에게 거절당한 태수는 돈 많고 건강한 독거노인 ‘복순이할배’에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괴짜 노인과 연애 풋내기 청년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뤘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 두레홀 4관 연출 박정우 출연 김시권, 정동진, 이재욱 등
시카고
미국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2년 만에 내한한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즈 음악을 14인조 밴드의 연주로 즐길 수 있다. 강렬한 조명 아래 관능적인 안무가 돋보인다.
일정 5월 27일~7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출연 딜리스 크로만, 로즈 라이언 등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는 이유로 사적지 지정이 해제된 탓이다. 근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그 중요성에 눈을 떠 옛 모습대로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치욕의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모습이라도 남겨둬야 한다. 더 사라지고 훼손되기 전에 역사 현장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정유재란의 역사적 의미를 천착하기 위해서라도 그 흔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에 게재하기로 한다.
글 문창재 언론인(前 한국일보 논설실장) mcj4627@naver.com
정유재란 첫 전투 칠천량 해전의 치욕은 예고되어 있었다. 수하 장졸과 백성들이 하늘같이 떠받드는 장수를 내치고, 무능하고 용렬한 장수를 앉히고 어찌 이기기를 바라겠는가.
선조는 정유년(1597년) 1월 28일 이순신을 충청·전라 양도수군통제사로, 원균을 경상수군통제사로 발령했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한 계급 강등되고, 육군으로 전출되었던 원균이 수군에 복귀하여 최전방 수역을 맡게 된 것이다. 한산도 통제영을 거제도로 전진 배치하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데 대한 문책이었다.
이 인사에는 조정을 장악한 서인세력의 비호를 받은 원균의 모략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통제영을 왜군 본진(부산포)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한산도에서 거제도 동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조정의 논의가 이순신의 입지를 더욱 압박하기도 했다.
이순신은 그 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군은 임진년 이래 경남 동부 해역 요소마다 견고한 성을 쌓고 2만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진을 코앞에 둔 곳으로 수군총사령부를 옮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이순신의 생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꼼짝달싹하지 못할 죄를 뒤집어쓴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이 다시 쳐들어오는 길목을 지켜 출동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노한 선조의 명으로 이순신은 함거에 실려 한양으로 압송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앉았다.
옥에 갇혀 국문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백의종군 길에서, 그는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전멸한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 포구와 고을을 순회하면서 흩어진 수군병력을 불러 모으고 병기와 군량을 찾아냈다. 그 사이 다급한 불부터 끄려는 듯, 조정은 그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앉혔다.
불운의 장수가 걸었던 통한의 길
이순신이 한양으로 잡혀간 것은 정유년 2월 26일이었다. 시류에 편승한 조정 중신이 모두 침을 튀기며 이순신을 죽이라고 했지만, 노 재상 정탁의 신구차(伸救箚, 목숨을 걸고 구명하는 상소문)라는 상소 덕에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했다.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난 것은 잡혀간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4월 1일이었다. 그날부터 백의종군 길에 나선 그가 복직되어 다시 통제사가 된 8월의 회령포 취임식까지, 불운의 장수가 걸었던 통한의 길을 자동차로 둘러보았다. 이순신이 5개월 넘게 걷고 말달렸던 길을 주마간산처럼 달린 1박 2일 여행이었다.
“합천 초계에 주둔한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은 이순신은 남대문 밖 관노 집에서 아들과 조카의 마중을 받았다. 고문에 시달린 육신을 치유할 여유도 없이 하루를 쉬어 길을 떠난 그는 아산 선영에 들러 눈물의 참배를 한다. 전라 좌수영(여수) 마을에 머물던 어머니의 귀향 소식 덕분에 고향 집에 며칠 유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에게 먼저 당도한 소식은 어머니 부음이었다. 아들의 하옥 소식에 허겁지겁 서해안을 따라 배편으로 올라오다 풍랑으로 와병, 끝내 주검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호송관의 독촉에 못 이겨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그는 ‘찢어지는 듯 아픈 마음’을 안고 남행길에 오른다. 공주-여산-전주-남원-하동을 거쳐 초계에 당도한 것이 6월 4일이었다.
초계는 도원수의 진을 둘 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영호남 여러 곳으로 통하는 길목을 통제하면서 육군과 수군 작전을 지휘할 적지로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왜적의 내륙 진출을 막으려면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는 게 상식인데, 어찌하여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진 궁벽한 곳에 도원수의 진을 친 것인가.
도원수가 주둔했던 곳이 어딘지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한때 초계면사무소 자리가 그곳이었다 해서 표지판까지 있었다지만, 향토사학계가 들고 일어나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 뒤 경남도와 합천군은 마을 앞 농경지를 사들여 역사공원을 꾸미면서, 고증도 없이 호화로운 원수부 건물과 객사까지 세웠다. 많은 예산을 들인 보여주기 식 사적지로 보였다.
백의종군 당시 이순신의 숙소 모여곡이라는 마을에도 이설이 있지만, 합천군 율곡면 낙민마을 설이 유력하다. 그가 묵었던 집 주인 이어해(李漁海)의 13대손이 지금도 살고 있고, 당시의 일화도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는 백의종군 길 표지석이 섰고, 그 뒤편 야산 기슭에는 마을이 정겹게 들어앉았다.
칠천량 패전 소식에 낙담한 도원수의 한탄을 듣고 이순신은 “제가 한 번 나가보고 계책을 세움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렇게 길을 나선 것이 7월 18일이었다. 곧바로 남행하여 사천 노량의 해안마을을 둘러보고 진양 수곡면 원계리 손경례(孫景禮) 집에 머물 때인 8월 3일,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 직첩을 다시 받는다.
에는 이때의 일이 매우 덤덤하게 적혀 있다. “맑음. 이른 아침 뜻밖에 선전관 양호가 교서와 유서를 가져왔다. 분부 내용인즉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숙배(肅拜)한 뒤에 받자온 서장을 써서 봉해 올렸다.” 며칠을 두고 큰비가 내려 근심과 우울증이 심해진 탓이겠으나, 복직인사에 대한 감상치고는 지나치게 무덤덤한 이 점이 바로 그의 진면목이다.
이순신에게 미안했는지, 선조는 유서에서 “지난번 그대의 직첩을 바꾸고 죄인의 이름으로 백의종군케 한 것은 과인의 지모가 밝지 못하여 생긴 일”이라고 사과했다. 그러고는 “이토록 패전의 욕을 당하게 되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尙何言哉)!” 하면서 ‘상하언재(尙何言哉)’를 반복했다.
사적지 손경례 집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목화 시배지로 유명한 산청군 단성에서 남으로 뻗은 지방도를 한참 달려가니 길가에 백의종군 길 표지석이 서 있고, 그 옆 전주에는 ‘손경례 가(家)’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급히 차를 세우고 찾아들어갔으나 동네에는 인적이 없었다. 한참 찾아 헤맨 끝에 12대손이라는 손도근(孫道根·80) 옹을 만날 수 있었다.
직계자손이냐는 물음에 손 옹은 손사래를 치면서 “직계는 서울에 살고 관리인이 집을 지키고 있는데 꼴이 이렇소” 했다. 그러면서 자기 조상 이름을 함부로 부른 데 대한 불쾌감을 내비추었다. 얼른 사과하고 당시의 일화를 물으니, 이은상의 에 다 나와 있는 이야기라면서도 “비가 많이 와서 충무공께서 우리 조상 집에 닷새를 묵어가셨다”고 자랑했다.
비에 갇혔던 길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이순신은 발길을 재촉하여 하동-구례-곡성-옥과-순천-낙안 땅을 지나 보성에 당도했다.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이제 사또께서 오셨으니 우리는 살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들은 모두 난리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순신은 말에서 내려 피란민들 손을 부여잡고 부디 몸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안쓰러움을 표했다. 젊은 장정들은 처자에게 “나는 대감을 따라갈 터이니 너희는 천천히 찾아 오거라” 하고 따라나서기도 했다. 노인들은 길가에 늘어서서 술병을 바쳤다. 통제사가 받지 않으니까 울면서 사정했다. 더 이상은 사양할 수 없었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
보성 땅에서 제일 먼저 찾아든 곳은 조양창(兆陽倉)이었다. 다행히 이 국창(國倉)에는 곡식이 봉인된 채로 남아 있었다. 순천 부유창 등 고을마다 창고가 잿더미가 되었는데, 군량으로 쓸 곡식을 구했으니 얼마나 요긴했겠는가. 창고들이 잿더미가 되고 사람 그림자가 끊긴 것은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이 청야작전을 재촉한 탓이었다. 왜적은 그렇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칠천량 패전으로 남녘 바다와 뭍을 안마당처럼 누비게 된 왜적이 본격적으로 호남 침공에 나선 것이었다.
조양창 자리는 지금 흔적도 없다. 그 사이 간척공사로 바다가 뭍으로 변한 것이다. 통제사가 묵었다는 김안도의 집도 마찬가지다. 400년 넘는 세월의 무게가 짓누른, 보이지 않는 흔적일 것이다.
보성에서 이순신은 흩어진 장수와 병졸을 모으고 군량을 보충하기 위해 아흐레를 머물렀다. 보성읍성 열선루(列仙樓)에 머물던 8월 15일 선전관 박천봉이 임금의 유지(有旨·편지)를 가져왔다. “약세인 조선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의탁하여 싸우라”는 명령이었다. 통제사는 “공문 작성 때 영의정 유성룡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경기지방 순행 중이었다는 선전관 말로 보아 조정 대신들이 유성룡 부재를 틈타 다시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넣으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밤 통제사는 대취했다. 임금의 명을 받들지 않으면 다시 함거에 실려 올라가게 될 것이고, 명을 받들면 조선수군 재건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괴로움을 잊고 싶어 그는 군관들을 불러 통음을 하고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순신은 결심한 듯 열선루 누각에 앉아 유명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장계를 썼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아직도 할 수 있사옵니다.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왜적이 바다와 뭍에서 온갖 패악을 부리는 와중에 그런 용기를 가진 인물은 이순신 한 사람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열선루는 지금 없다. 이순신의 뒤를 밟아온 왜적이 보성 땅을 분탕질할 때 불타 없어졌다. 전란이 끝난 뒤 복원되었지만 일제 때 다시 철거되었다. 불공대천지수의 사적이라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 지금은 보성초등학교와 보성군청이 들어서 있다. 몇 해 전 청사 신축공사와 도로공사 때 발굴된 주춧돌 넷과 댓돌들은 지금 군청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보성군에 따르면 곧 있을 열선루 복원공사에 그대로 쓸 계획이라 한다.
보성을 떠난 이순신은 18일 회령포(會寧浦·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닿아 삼도수군통제사 취임식을 갖고 그 유명한 ‘회령포 결의’를 다진다. 에는 그날 “수사 배설(裵楔)이 뱃멀미를 핑계로 보이지 않았다. 포구 관청에서 잤다”고 씌어 있다. 17일자 일기에 “군영구미(軍營仇未·강진군 대구면)에 당도하니 경내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수사 배설이 우리가 타고 갈 배를 보내지 않았다”고 쓴 것으로 보아 이순신이 두려워 피한 것이 분명하다.
20일 일기에는 배설이 임금의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교서에 숙배하기를 거부했다면서 “건방진 태도가 말할 수 없기에 그 영리에게 곤장을 쳤다”고 썼다. 수사의 체면을 봐서 권율처럼 고위 군관을 직접 벌하지 않고 수하에게 벌을 주어 경고한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사 취임식은 19일이었다. 배설이 가져온 12척의 전선과 120명의 장졸이 참석한 초라한 행사였다. 그러나 구국의 결의만은 드높았다. “우리는 다 같이 임금의 명을 받들었으니 의리상 같이 죽어야 마땅하다.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이 아까우랴!” 에 적힌 통제사 취임사는 이토록 뜨거웠다. 임금과 조정을 속이고 명을 받들지 않은 죄인의 신분에서 다시 수군 총수로 돌아왔으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달랑 직첩 하나였다.
회령포는 오늘날의 정남진 바닷가다. 서울에서 정남쪽 끝이라 해서 붙은 이름인데, 해남 땅끝 마을 가기만큼 멀다. 오전에 초계를 떠나 해 안에 당도하기 어려워 장흥에서 하룻밤을 유했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달려간 오월의 아침, 회진포 바다는 쪽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백성이 모두 피란 가고 빈 포구였을 그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선창에는 산뜻하고 날렵한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고, 그 안쪽으로는 번듯한 주민복지 시설과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취임식 행사를 치렀을 회령포 성터는 아름다운 역사공원으로 바뀌었다. 내륙 깊숙이 파고들었던 바다는 1960년대의 개간사업으로 비옥한 들판으로 변했다. 면 소재지가 되었으니 인구도 몇 곱절 늘었으리라.
칠천량 참패의 씨앗
글머리를 되돌려 이순신 삭탈관직과 나국(拿鞠, 잡아다 심문함)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직접 죄목은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 군을 영격하라는 임금과 조정의 명을 어긴 일이었다. 그 까닭에는 아직 정설이 없다. 기록이 서로 달라 연구자마다 추론에 그칠 뿐이다.
정유년 초 경상도우병사 김경서(金景瑞·일명 김응서)의 진에 드나들던 왜인 가나메 도키스라(要時羅)가 김 병사에게 달콤한 정보를 흘렸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수하였던 그는 강화회담 결렬이 기요마사 탓이라고 헐뜯으며 “이번에 기요마사가 다시 건너오게 되었으니 통제사를 시켜 길목을 지켰다가 일제히 공격케 하면 그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기요마사가 건너온다는 날짜까지 말해줬다. 김경서의 보고를 받은 임금과 조정은 그 말을 사실로 믿고 이순신에게 영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 명을 따르지 않았다. 초계에서 한산도까지 와 출동 명령을 전한 도원수에게 이순신은 “반드시 왜의 간계가 있을 것이오. 배를 많이 끌고 나갔다가는 도리어 역습을 당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어찌 간첩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했다.
이순신이 움직이지 않는 틈을 타 대한해협을 건너온 기요마사는 울산 서생포에 진을 쳤다. 이순신의 판단이 어떠했든 가나메의 정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진노한 선조는 “우리나라 장수가 유키나가보다 못하다”고 펄펄 뛰었다. 당장 이순신을 묶어 올리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순신을 그 자리에 천거하고 뒤를 보아준 영의정 유성룡도 어쩔 수 없었다.
이순신을 잡으러 온 의금부 도사 일행 가운데는 얼마 전 경상우수사로 부임한 원균도 있었다. “내가 통제사라면 당장 부산포로 달려가 왜적을 무찌르겠다”던 그였다. 그 시간 왜적의 동태를 파악하려고 가덕도 앞바다에 나갔던 통제사는 왕명 소식을 듣고 급거 귀항했다. 갖가지 병기와 화약류, 병력과 군량미의 끝 단위까지 세세히 인계하고 함거에 올랐다.
“사또,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이제 우리는 다 죽게 되는 겁니까!” 백성들은 함거를 가로막고 울부짖었다. 원균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을 것이다. 씻을 수 없는 치욕 칠천량 참패의 씨앗은 그렇게 잉태되었다.
“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운동이라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미 그 한계를 벗어난 감정도 있다. 서울 서초구 소재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에게 우울증과 치료 방법에 대해 자문해봤다.
독거노인 문제 우울증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앓는 시니어가 꽤 많은가요? 주요 증상은 어떤 게 있나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 시니어 조울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30~40%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조증은 기분이 갑자기 업(UP)되거나 자신감이 생기고 말수도 많아지고 돈을 많이 쓰는 행동들을 해요. 술을 안 먹었는데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정도가 심하면 의심해볼 수 있죠. 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고 수면 부족과 식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게 대표적입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책을 하고 걱정이 많아지는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모든 일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도 증상 중 하나입니다.
노인 우울증은 왜 생기는 건가요?
생물학적, 즉 신체적 변화가 큰 요인이에요. 당뇨나 고혈압, 외과 질환 등이 생기면서 치료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경제적인 부담, 은퇴 후 환경 변화 등도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남편이 은퇴 후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갈등을 겪는 부부도 많습니다. 독거노인 문제도 우울증과 연관이 깊어요. 당장 혼자가 되면 연세가 있어도 자식들과 같이 지내기 부담스러워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스트레스를 받는 어르신들이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 자제분들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고민이 있다면 상담을 해야 해요. 이성 문제, 성적인 불만족,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도 우울증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해요.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직접치료비, 간접치료비, 우울증 때문에 경제활동을 못해서 생기는 비용 등이 사회적 비용입니다. 국내 우울증 환자 수가 60만 명 정도이고 항우울제 시장은 2016년 기준 약 1456억원 규모입니다.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007~2011년 사이 40% 이상 급증했어요. 국민 4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시니어들은 어떤 증상들을 주로 호소하나요? 특별한 유형이 있나요?
‘걱정이 많아졌다’는 말을 지인들에게서 듣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이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일시적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만큼인지가 우울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많죠? 우울증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요?
방치하면 할수록 치료가 더 어려워집니다. 고혈압, 당뇨 등도 초기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잖아요. 우울증도 초기에는 취미생활이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약을 써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임의로 약 끊으면 증상 더 심해질 수도
가면우울증은 무엇인가요?
우울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우울증을 흔히 가면(假面)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의욕 저하, 수면 저하, 식욕저하 등이 나타납니다. 특히 혼자 살거나 자녀들 눈치를 보며 사는 경우 가면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몸을 자주 움직이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건전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성 우울증도 있다면서요?
계절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봄에는 기분이 업되었다가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가라앉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사가 귀찮고 예민해지는 건 일반 우울증과 같지만, 과다 수면을 취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흔히 계절성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워낙 재발률이 높아서 자칫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깊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가진단법이 있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우울증 자가진단법’이 많아요. 잘못을 저지르면 죄책감이 들면서 자책하게 되고, 만성두통이나 복통, 흉통 등의 증상이 지속되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이런 증상만으로 우울증이다, 아니다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우울증 의심이 되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을 어떻게 진단하나요?
우울증에 해당하는지 병력 산출을 통해 뽑아냅니다. 우울증은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증상이 카페인이나 음주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인지를 먼저 구별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치료 방식은요?
주로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는데 상담치료가 도움이 안 되는 환자들도 있어요. 그래서 약 처방을 주로 하고 증상이 좋아지면 약 복용을 중단하도록 합니다. 정신과 약은 오래 먹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많다거나 의존성이 높아진다는 등 편견이 많은데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 때문에 먹던 약을 마음대로 끊으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해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는 전기충격치료를 많이 했습니다. 주로 종합병원에서 하는 이 치료법은 우울증이 심할 때 효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치료 환경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서 또는 환자가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아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시니어들이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한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면 적당한 취미생활과 운동을 해야 합니다. 활발한 사회적 관계를 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활동이 줄면 위축이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있을 때 가족과 이야기하기 불편하면 병원에 와서라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약물치료도 받고요.
2050년경이 되면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정열적이고 건강한 삶을 사는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가 60부터라면, 앞으로는 100세 액티브 시니어 그룹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제는 단지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에게 노년 건강의 의미 있는 삶에 대해 들어봤다.
정신과 의사로서 노인정신건강 클리닉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우울증과 불면증, 그리고 치매로 고생하고 계신 분을 자주 상담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을 없앨 수 있을까, 불안증을 해결할까, 기억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며 새로 개발된 신약도 써보고, 상담도 하며 같이 고민하지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다행히 한두 번 방문 후 증상이 호전되어 원래의 편안했던 생활로 되돌아간 분도 계시지만, 벌써 몇 년째 고생하며 이 약, 저 약 바꿔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분도 많습니다. 온몸으로 버텨보지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야금야금 무너져 내리는 바닷가 모래성 같다고나 할까요?
청력 상실 후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 달라져
제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질병이나 증상을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약 2년 전, 돌발성 난청으로 양쪽 귀의 청력을 갑자기 잃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로 조금 회복되기는 했지만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로 청력이 완전히 돌아올 줄 알았는데 실제로 기계를 켜보니 사람 말소리가 고장 난 스피커에서 나는 잡음처럼 들려 몹시 실망했습니다. 기껏 들리는 소리가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청력 재활 훈련을 열심히 했습니다. 조금씩 나아졌고 1년쯤 지나자 일반 대화는 문제없이 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도 시끄러운 식당이나 차 안에서의 대화, 음악감상 등은 아직 어렵습니다. 이제 예전의 상태로는 못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만일 내 청력이 완벽하게 되돌아온다면 뭘 어쩔건데?” 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청력이 완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자전거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고, 독서를 하고, 모임에 나가고… 소리에 의존해야 하는 몇 가지 일을 빼면 거의 대부분 가능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남들처럼 완벽하게 듣지 못한다고 그게 뭔 대수랴? 청력 완벽해지기를 천년만년 기다리기만 하면 뭐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제 클리닉에 찾아와 상담하는 환자들, 어르신들께도 적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건강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보라
누구나 건강을 원합니다. 그런데 ‘왜 건강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대답이 궁합니다. “그거야 뭐… 몸 아프면 괴로우니까…”라는 정도의 대답들을 하십니다. 갈 곳이 정해져야 기차표를 끊듯이, 건강도 목적지가 있어야 관리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건강 자체가 목적지는 아닙니다. 여행을 좋아해서 생전에 전국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다든가, 시골에서 멋진 과수원을 가꿔보고 싶다든가, 딸과 함께 옷가게를 운영해보고 싶다든가, 2년 뒤 소박한 수필집을 한 권 내보고 싶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 위한 도구로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듯, 건강한 몸도 필요한 겁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 갈 일이 있다고 칩시다.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을 수도 있고, 부산 사는 딸이 주말에 놀러오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차를 타도 되고 시외버스를 타도 됩니다. 목적지가 분명하면 찾아가는 방법이야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맞추면 됩니다. 목적(부산의 볼 일)이 분명하므로 방법(기차, 버스)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적지(내 인생의 꿈, 희망사항, 볼일)가 명확하지 않으면, 방법(신체건강, 돈, 시간 등)에 대한 관심이 시들합니다. 딱히 갈 곳이 없는 사람이 기차시간이나 도로상황 등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갈 곳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불타는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만 꿈꾸란 법 없습니다. 노년에도 “꿈★은 이루어진다”입니다. 꿈 없으면 건강은 꿈도 못 꿉니다. 청력 회복보다는 꿈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울증, 불면증, 기억력 감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회복된 몸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고 싶은 겁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적지가 명확한 사람만 그 지긋지긋한 증상과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목적지를 정할 때 한 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부정 목적지가 아닌 긍정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 이루고 싶다는 것, 남기고 싶다는 것들이 긍정 목표, 긍정 목적지입니다. “이것만은 피하고 싶다”, “이렇게는 안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부정 목적지입니다. “암은 걸려선 안 되지…”, “치매는 무서워”, “뇌경색만은 피하고 싶어…” 등이 부정 목적지의 사례입니다. 부정 목적지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긍정 목표만이 사람을,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뒷산에 올라가지 마라” 하면 사람들은 뭘 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앞산에 올라가라” 해야 앞산을 향해 비로소 움직입니다. 더구나 묘하게도 부정 목표는 꼭 그대로 되는 수가 많습니다. 걱정하는 일도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그러니 두려움, 불길한 예상, 꺼리는 마음은 아예 갖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하기 위해 두뇌가 만들어졌다고? 천만의 말씀!
식물은 신경기관이 없습니다. 동물에만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큰 뇌를 가지고 있는 동물도 있고, “아니, 이게 뇌야?” 싶을 정도로 작고 변변치 않은 신경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도 있습니다. 그래도 모든 동물은 뇌가 있습니다. 뇌는 ‘움직이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움직이는(동) 생물(물)’입니다.
어떤 이유로 동물에 뇌가 만들어졌을까요?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에너지를 섭취하고 싶어 하고, 또 섭취한 에너지는 조금이라도 아껴서 효율적으로 쓰고자 합니다. 먹이는 항상 부족하고 모든 생물은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수십억 년 역사를 통틀어 음식이 풍족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조금 풍족해진 요즘도 지구 전체로 보면 굶는 사람투성이입니다. 그러니 ‘머리’를 잘 써서 가능한 한 에너지 사용을 요령 있게 하려고 두뇌가 생겨난 겁니다. 생각하려고 두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잘 움직이려고’ 만들어진 겁니다.
바로 여기에 정신건강의 힌트가 있습니다. 몸이 편해지면 뇌가 쉽니다. 먹이를 구하려고 고생고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쉬는 뇌는 쪼그라듭니다. 안 쓰기 때문입니다. 팔목이 부러져 깁스를 한 다음 한 달 뒤에 풀어보면 팔이 가느다랗게 약해져 있습니다. 그동안 안 썼으니까요. 뇌도 똑같습니다. 반대로 몸을 계속 움직이면 뇌가 활동을 합니다. 배고픈 채로 몸을 움직이면 뇌는 더 많이 활발해집니다. 활동하는 뇌는 사이즈가 커집니다. 이는 동물실험에서도 입증되었습니다. 먹이를 적게 준 쥐가 더 똑똑하고, 더 뇌가 크고, 더 오래 삽니다. 배부르고 편하면 안 됩니다. 장수의 비결, 정신건강과 행복은 어이없게도 ‘배고프고 몸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할까 말까 하는 일은 하는 게 정답이고, 살까 말까 하는 것은 안 사는 게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상 부지런히 움직이고, 꿈이 가득한 멋진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힘차고 건강한 노년을 기원합니다.
>>김성윤(金晟倫) 서울아산병원 교수
197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1994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재직 중이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피험자보호센터 소장과 울산의대 교무 부학장을 맡고 있다.
“100세 시대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를 위해 어떠한 앙코르 커리어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조수경 ㈜글로벌아너스 대표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 대표는 다년간 ‘Human Resource’ 회사를 경영하며 현재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항공대 중장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CEO다. 그동안 수많은 시니어들을 만나고, 외국계 대기업 임원진 커리어 상담을 해온 그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앙코르 커리어’를 말하는 이유를 들었다.
앙코르 커리어의 시작은 ‘자기 이해’
“경력이 좋은 분들조차도 은퇴 후에 무엇을 할지 물으면 막연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년퇴직 연령이 연장된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오정’이라는 말이 일반화할 정도로 45세, 50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되면서 건강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상황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른 나이에 일자리를 잃으면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승승장구하던 인생이 저물었다는 기분은 남은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어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영향력도 여전히 발휘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해도 행복한 삶과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는 보람된 일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은 필수적이죠.”
이는 조 대표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항공대와 중장년 아카데미를 만들어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앙코르 커리어 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 50년간 브라보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를 위한 성공적인 앙코르 커리어 전략을 나눠야겠다는 액션을 취한 것이다.
조 대표는 앙코르 커리어의 시작은 ‘자기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보이는 성공을 추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은퇴를 맞을 즈음이나 그 후에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인생 전반기 커리어에서는 학벌과 직장 경력이 중요하지만 앙코르 커리어에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인생 전반기에 성공과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다면 앙코르 라이프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에게 잘 맞고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MBTI, 애니어그램, 디스크 등 다양한 인성·적성 검사 툴과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말이다. 취향, 적성, 능력들을 기술한 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이고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시니어의 새로운 삶 ‘창직’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좀 더 이해했다면,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앙코르 커리어 핵심인 ‘창직’을 고민해봐야 한다. 창직은 취업 및 창업과는 다른 개념이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일자리나 직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제가 여러 대학교 중장년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시니어 취업 및 창업 과정을 진행했지만 한국에서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는 별로 없고, 양질의 일자리 찾기는 더더욱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십 년간의 사회 경험이 있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창직을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죠.”
시니어의 창직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직업이나 직종을 창출하는 개념보다는, 시니어들이 자신의 직업 경험과 지식, 경륜을 활용해 잘할 수 있고 취향에 맞는 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조 대표가 그동안 진행해온 중장년 아카데미도 이러한 시니어 창직을 위한 교육 과정이었다. 연세대 중장년 아카데미에서는 비영리 단체 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시니어들이 NGO, NPO,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과 같은 비영리 단체를 성공적으로 창직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한국항공대에서는 드론 활용 전문가 창업 과정을 만들었는데 미래 먹거리인 드론(Drone) 신산업과 연계해 시니어들이 창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국내 최초의 드론 창업 과정이었다. 이화여대에서는 국제회의, 국제기구 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MICE 산업 및 국제기구와 연계해 시니어들이 창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많은 시니어 분이 다양한 분야로 창직을 했고 지금도 시니어들의 창직 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새로운 일을 스스로 개척하는 일은 인생 2막을 아주 풍요롭게 해주는 큰 계기가 돼요.”
시니어 창직은 구체적으로 취미를 통한 창직, 봉사를 통한 창직, 창업을 통한 창직, 해외와 연계된 창직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 봉사, 창업, 해외와 연계된 창직 전략을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최근 방송된 건강 프로그램에서 동갑내기 여성 탤런트 L과 전직 스타 농구선수 H의 ‘뼈 나이’를 비교한 적이 있다. 골밀도를 주로 비교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창 뼈가 건강한 나이에 운동을 많이 한 H는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20대의 뼈 나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같은 나이의 L은 뼈 나이가 60대로 측정되면서 무려 40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다. L은 거의 골다공증 위험 수준이었다. L은 왜 이렇게 뼈가 급격히 노화된 것일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픈 그녀의 병력 때문이다. 한창 나이에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질환을 앓았던 그녀는 후유증 때문에 몸의 절반에 마비가 왔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과다 투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이 무리한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작용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끝내 고관절이 괴사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인공관절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방송활동을 다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처럼 스테로이드제를 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데, 왜 스테로이드제는 그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일까?
스테로이드 호르몬제가 신약으로 처음 선보였을 때 인류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그 효과를 극찬했다. 기존의 소염제로는 염증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효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염증과 알레르기를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 효과는 분명 축복이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는 항염증, 면역억제, 혈관수축 등의 효과를 가져오는데,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건선, 수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염증이 생길 경우, 혈관을 통해 염증의 원인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혈관을 급격하게 수축시키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필수적인 질병들이 그 대상이다. 심지어 난임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시험관 시술에서도 많은 의사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 착상 전에 산모의 몸 안에 있을 수 있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을 약간 저하시켜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착상에 실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스테로이드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즉 식품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팔면서 효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주로 노인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수법인데, 이런 수법으로 연간 10억여 원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떴다방도 많다. 식품이라 부작용도 없고, 먹기만 하면 관절염이고 통증이 싹 낫는다고 광고하면서 심지어 만병통치약처럼 과장하는 일도 많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 등지에서 관절에 특효약이라면서 지네가루를 담은 캡슐을 팔기도 하는데, 스테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함유된 내용물도 많다. 현혹된 구매자들이 주변에 참 좋은 식품이라며 소개하는 일도 많은데, 그 결과는 참혹하다. 면역력이 억제되면서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골다공증 등의 발생이 거꾸로 급습하는 것이다.
사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외용제로 스테로이드를 자꾸 쓰다 보면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는 것은 다반사다. 근골격계가 현저히 약해지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시도한 주부가 척추 압박골절을 겪은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눈꺼풀이나 눈 주위에 잘못 바를 경우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함유된 안약을 오랫동안 사용하던 청년이 녹내장 발생으로 실명 위험에 처한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도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금단증상은 주로 중독성 약물을 복용하다 강제로 끊었을 경우 발생하기 때문에 마약과 관련이 높은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30세 여성은 3세 때부터 아토피성 습진에 걸린 피부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스테로이드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자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생으로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 그녀는 커다란 고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일명 레드스킨 신드롬(Red Skin Syndrome, RSS)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 금단증상(Topical Steroid Withdrawal, TSW)이다. 그녀는 벗겨진 피부에 이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피부 드레싱을 해야 했고, 하루에 거의 20시간 이상을 욕조의 물에 몸을 담그고 피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까지 겪었다. 국부성 스테로이드 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세는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사용을 중단할 경우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할 경우 직장과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다.
따라서 장기간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결국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굴레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테로이드의 효과와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를 때는 가능한 한 얇고 정확하게 바르고, 자신이 스테로이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왔는지에 대해 처방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 또 스테로이드 복용을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고,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양을 늘리지 않는 등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면 된다. 많은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부작용 피해에 노출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 최혁재(崔爀在)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 부소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우리나라 시니어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시니어 10명중 1명은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고, 1000명 중 1명은 실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이면에는 우울증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생각은 다르다. 시니어의 우울증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심각한 병이다. 따로 이 부분만 연구하는 학회가 존재할 정도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의 이동우 홍보이사를 통해 시니어의 우울증에 대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일러스트 윤민철 작가
시니어의 우울증 무엇이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이동우 이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젊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여기저기 몸도 많이 아프며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쉽게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으레 좀 우울해지는 법’이라고 치부하면서 쉽게 간과해 버립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과 기력이 떨어져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우울증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고 적절하게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니어의 우울증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갖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 건강상태에 대한 걱정이다. 걱정이 많아지다 보면 불면, 초조, 신체적 불편감 등의 증상이 따라온다. 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양상도 흔하다. 망상 증상은 특정 사안에 대한 죄책감이나 건강염려증, 피해망상, 질투망상(의처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신체적인 이상도 원인이 된다. 뇌졸중이 대표적이다. 뇌졸중을 앓은 환자 중 20~60%는 우울증을 겪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뇌졸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발성 뇌경색과 같은 미세혈관 순환장애로 인한 뇌조직의 변화도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환자를 억지로 집밖으로 끌어내면 ‘독’
시니어의 우울증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심한 경우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치매가 원인이 되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와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누군가의 질문에 끝까지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이고, 대답을 하려는 의욕이 없거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는 경우는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로 구분할 수 있다. 또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는 발생 시점이 분명하고, 가족들이 그 시점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우울증이라 할지라도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이동우 이사는 경고한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다른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회적 활동이 많아야 하는데, 우울증에 걸리면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기 일쑤거든요. 치매가 더 잘 생길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억지로 밖으로 끌어내선 안 됩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이 남 앞에 드러나면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기 쉬우니까요. 힘내라는 응원만으로는 안 되요. 정상적인 치료를 통해 기력을 차리고 나서 운동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항우울제 복용 미루면 안 돼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할까? 많이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의 치료는 항우울제 복용이 기본이다. 우울증 환자 중 3분의 2 정도는 항우울제만 적절히 복용해도 치료가 가능할 정도. 일부에선 무조건 약에만 의지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오해라고 이 이사는 설명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수영부터 가르치는 일은 없잖아요. 일단 구명환을 던져 놓고, 안정을 취하도록 한 다음에 물 밖으로 꺼내거나 수영을 가르치는 게 순서죠. 우울증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항우울제를 통해 안정을 시킨 후, 다른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대뇌의 화학 불균형이 일어나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항우울제는 뇌의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는 이밖에도 정기경련요법, 경두개자기자극요법, 정신역동치료,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치료 등이 존재한다.
이렇듯 우울증은 ‘마음’이나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병이다. 만약 주변의 환자에게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의지를 갖고 참아 보라고 권유한다면, 환자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다. 심리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면 병원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을 이기는 생활습관
1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2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니코틴은 뇌를 스트레스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
3 균형 있는 식사를 하되, 식단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4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5 자주 웃는다. 억지로 웃거나 웃는 흉내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6 울고 싶을 땐 실컷 운다. 울음은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1 병원 방문일자를 챙겨 준다.
2 처방받은 약을 의사의 지시대로 복용하도록 한다.
3 검증되지 않은 치료방법에 대한 유혹을 떨쳐 낸다.
4 환자와 지속적인 연락을 유지한다.
5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한다.
6 환자와 함께 운동을 한다.
7 환자의 식사를 챙겨 준다.
8 환자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을 할 수 있게 격려한다.
9 환자의 우울증 때문에 당황하지 말고, 우울증에 대해 알아본다.
10 환자의 부정적인 생각을 비난하지 않는다.
11 환자가 자신의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다그치지 않는다.
12 우울증 증세가 호전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