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취하려는 의도엔 ‘거사’라고 할 만한 결연한 포부가 서려 있기 십상이다.
김미경(54)씨는 수려한 강변에 산다. 금강의 초록 물살이 살갑게 여울지는 시골에 둥지를 틀었다. 동갑내기 남편 강희씨와 함께 살아간다. 귀촌 이전엔 죽 서울에서 살았다. 남편은 가구를 손수 만들어 파는 사업으로 가장 역할을 했으며, 김씨 역시 직장인으로 서울이라는 각축장을 열심히 누볐다.
이채로운 건 부부 공히 연극판에서 활약한 이력. 남편은 무대조명이나 무대감독으로, 김씨는 배우로 활동했단다. 젊었던 날의 근 15년쯤을 극단에서 뛰었다지.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겐 이미 강 너머로 고스란히 사라진 과거사일 뿐이다. “다 잊었어요!” 연극인으로 살았던 옛일을, 그녀는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돌이킬 따름이다. 연극에 빠졌던 나날들의 열성과 꿈이라는 게 이젠 무의미한 한 줌 기억으로 잔존한다는 투로. 현재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드는 게 현명하다는 투로.
김미경씨 부부는 10년 전에 이곳으로 귀촌했다. 서울에 더 이상 애착도 미련도 없어서였다. 이게 단순한 이유처럼 들리지만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으리라. 서울에서 겪은 파란과 애환에 지친 나머지 전원생활의 목가적 풍미를 선망했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품었던 인생의 목표를 시급히 수정해야 할 필요에 직면했을 수도 있겠지. 아무려나 절이 싫어 떠나는 중처럼, 이점도 매력도 많은 서울과 선선히 결별하는 일엔 특유의 절박한 고심이 선행되었을 게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볼까.
“서울생활에 의욕과 재미를 잃었어요. 수많은 차량과 인파, 경쟁과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되는 게 서울이잖아요. 복잡하고 답답한 대도시에서 저희 부부가 원하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죠. 서울의 혼탁한 공기도 너무 싫었어요. 서울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진 않았어요. 차츰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노후를 맞이할 수는 없단 생각을 했지요. 노후엔 시골의 자연 속에서 편하게 살자! 그런 결심이 섰던 거예요.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귀촌을 해 시골생활을 익히는 게 가장 충실한 노후 준비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노후 준비라는 것. 과거엔 없었던 숙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엔 모두들 그냥 살았다. 열심히 살다가 일찍 조용히 죽으면 그만이었다. 부양할 자녀들도 많았다. 그러나 100세 시대엔 다르다. 60세쯤의 은퇴 이후 긴긴 세월을 자력으로 살아갈 갖가지 채비를 미리 해두려고 모두들 용을 쓴다. 무엇보다 노후자금 마련에 관한 강박감으로 현재를 만족스럽게 즐길 소비와 기회마저 가급적 보류한다. 자금으로만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자기 계발, 인간관계, 여가, 소일거리, 건강 등도 노후의 안락을 위해 미리 북돋워야 할 종목들이니까. 이 모든 과제들의 완수가 귀촌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김씨 내외 말이다. 이제 귀촌 10년. 그들의 귀촌은 어느 고지에 올라섰을까.
한동안 곤궁에 시달려
“서울을 벗어난 건 좋은 선택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경험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일례를 들자면, 제가 서울에선 피부질환에 늘 시달렸어요.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를 않았죠. 과중한 스트레스가 가져온 질환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에 살며 피부가 깨끗하게 회복됐어요. 잔병치레도 사라졌고요. 귀촌을 통해 지독한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나갈 수 있었던 거죠.”
“대체로 도시의 아내들은 귀촌에 거부감을 느끼죠. 불편 요소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 남편의 강권에 이끌려 귀촌했다가 끝내 적응을 못하고 홀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도 있어요.”
“우선은 시골과 취향이 맞아야겠죠. 저는 그게 맞았어요. 원래 제가 도시적 풍물보다 산골의 자연 풍경에 마음이 더 편해지는 성향입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화초를 많이 길렀어요. 이사할 땐 한 트럭 분량의 화분들을 싣고 내려올 정도였죠.”
“자연만 바라보고 살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죠. 경제활동은 순탄했나요?”
“전혀 순조롭지 않았어요(웃음).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도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게 시골이라는 건 분명해요. 심지어 나만의 지상 천국을 누릴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경제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란 도시나 마찬가지로 시골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어요. 아아, 초기 3년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는 고작 시골집 한 채를 지을 정도의 자금만 지니고 귀촌했는데, 3년여가 지나고 나자 자금이 바닥나더라고요. 진땀을 흘려야 했어요.”
가령 고매한 정신세계조차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갖춰지고서야 지속 가능하다. 지겹고 힘겹지만 면제받을 길이 없는 게 돈벌이다. 세상은 우습게 돌아가지만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는 게 또한 그것이다. 부(富)를 경멸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이미 가진 자이기 십상이다. 김씨는 마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듯이 한동안 난처한 곤궁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어쩌면 귀촌을 낭만적으로 가늠한 탓에 빚어진 사단일지도 모를 일.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부부가 열심히 일을 찾아 덤볐어요. 남편은 이 지역의 한 대안학교에서 목공 강사로 일했어요. 하지만 박봉에다 적성이 맞질 않아 그만두고 읍내에 목공 공방을 차렸어요. 저 역시 읍내에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죠. 어휴, 눈물 나던걸요. 이러자고 내가 귀촌을 했나? 서울로 다시 돌아갈까? 슬픔과 회의가 마구 몰려들더라고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을 해도 역경이 쉬 물러나지 않도록 각본을 짜둔 이는 누구일까. 그런데 말이죠, 시골에선 소득이 너끈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방식으로 원만히 살아갈 여지가 있진 않나요?”
“그런 얘기, 귀촌 이전에 많이 들었어요. 시골에 내려가 살면 생활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그게 귀촌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그러나 살면서 겪어보니 현실은 달랐어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더라고요.”
“저런! 제가 만났던 귀촌자들은 흔히 생활비 절감 효과를 귀촌의 최대 이점으로 꼽았어요. 특별한 경우이겠지만, 월 지출 50만원으로 무탈하게 사노라는 부부도 만났어요. 그들은 소비 욕망의 관성에서 벗어난 검박한 생활이 더 만족스러운 삶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이 물질의 노예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놀라워요. 저희는 힘들었어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읍내나 인근 대전을 드나들어야 하는데요, 남편 차와 제 차, 두 대의 차량이 필요했어요. 군내버스는 하루에 두 차례 운행할 뿐이라서 이용하기 어려웠죠. 대중교통망이 발달한 서울에선 교통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살아도 되지만 시골은 달라요. 차량 유지비 비중이 너무도 커요. 아무튼, 귀촌 3년째가 숨 가쁜 고비였습니다. 경제상의 한계로.”
“귀촌 3년쯤을 경과하면 보통 풍월을 읊을 시점이죠. 비로소 시골생활 물정에 익어 정착이 가능해지는 시기라는 거죠. 3년까지는 버거운 수련기간이라는 얘기이기도 할 테고.”
“귀촌을 만만하게 여겼구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충분치 못했구나, 반성이랄까 깨우침이랄까 그런 게 몰려들었어요. 3년이나 지나고서야 말이죠. 뭔가 확실한 다른 방식을 찾아야만 했어요. 읍내에 나가 허드렛일이나 하는 식으로는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 우리만의 집중된 일을 찾자는 것, 남편과 숙의 끝에 내린 결론이 그랬어요.”
낡은 지도 버리고 새 지도에서 찾은 좌표
귀촌 3년 어간에 맞닥뜨린 ‘깔딱 고개’. 목표는 좋았으나 방법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화급히 해결하고 조속히 극복해야 할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상황. 사람의 저력이나 진면목은 대체로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김미경씨 부부는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 지도에서 좌표를 찾았다. 부부는 이제 농사를 통해 갑갑한 터널을 벗어나기로 작심했다. 와송(瓦松) 재배에 돌입했던 것. 이는 썩 적절한 선택이었다. 시골생활에 비로소 탄력을 붙일 힘으로 작용했다.
“와송에 함유된 약성이 알려지면서 재배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어요. 승산이 있다 봤지요. 농토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조성하고 재배에 나섰어요. 제가 농부의 딸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난감하게도 농사엔 완전 초심자였지만 금산군농업기술센터나 이웃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기술을 배웠어요. 결과는 좋았습니다. 재배 첫해부터 쏠쏠한 수익을 올렸으니까.”
“농사는 작목 선정이 관건이라 하죠. 그러나 어떤 작물이 유망하다 싶으면 모두들 덤벼드는 통에 몇 해 안 가 과잉생산, 가격하락이라는 악조건에 봉착해요.”
“와송 농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괜찮다 싶어 농장 규모를 1600평까지 늘렸으나 해가 갈수록 수익구조가 악화됐어요. 그걸 타개하기 위해 생초나 건초 판매보다 가공에 주력, 와송 발효액을 만들어 팔았어요. 농장 규모도 400평으로 줄이고 고품질 소량 생산으로 채산성을 도모했어요. 음, 아무튼 와송 농사를 계기로 생활상의 맥락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의 영역과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죠.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고 즐겁고, 비로소 저의 성향에 맞는, 본성에 부합하는 활달한 차원으로 삶이 전환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말이죠.”
“얼어붙었던 강물이 훈풍에 다시 녹아 쾌활하게 흐르듯이? 일테면 그런 거예요?”
“일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활기차게 뛰어들어 산다는 실감으로 즐겁습니다. 귀농인들과 연합해서 갖가지 활동을 펼치고, 프리마켓을 기획해 판매를 위한 공연 연출도 하고, 유쾌한 팜 파티도 즐기고, 이젠 할 일도 너무 많고,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어요. 남편이 하는 말은 이래요. 아니, 당신이 그토록 활동적인 여자였어? 거참, 물 만난 고기 같네!(웃음)”
우왕좌왕, 전전긍긍의 시간을 거쳐 이젠 안도할 만한 궤도에 올라섰다. 즐길 만한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불 지필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건 일종의 경사! 그녀는 기껍다. 순순한 성정 그 반대 기슭에 깃들인 자신의 활달한 외향성을 밖으로 끄집어내 삶의 동력으로 삼게 됐다는 사실에. 그것으로 귀촌의 나날들에 긍정과 낙관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제야 여전히 궁하지만.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취하려는 의도엔 ‘거사’라고 할 만한 결연한 포부가 서려 있기 십상이다.
김미경(54)씨는 수려한 강변에 산다. 금강의 초록 물살이 살갑게 여울지는 시골에 둥지를 틀었다. 동갑내기 남편 강희씨와 함께 살아간다. 귀촌 이전엔 죽 서울에서 살았다. 남편은 가구를 손수 만들어 파는 사업으로 가장 역할을 했으며, 김씨 역시 직장인으로 서울이라는 각축장을 열심히 누볐다.
이채로운 건 부부 공히 연극판에서 활약한 이력. 남편은 무대조명이나 무대감독으로, 김씨는 배우로 활동했단다. 젊었던 날의 근 15년쯤을 극단에서 뛰었다지.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겐 이미 강 너머로 고스란히 사라진 과거사일 뿐이다. “다 잊었어요!” 연극인으로 살았던 옛일을, 그녀는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돌이킬 따름이다. 연극에 빠졌던 나날들의 열성과 꿈이라는 게 이젠 무의미한 한 줌 기억으로 잔존한다는 투로. 현재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드는 게 현명하다는 투로.
김미경씨 부부는 10년 전에 이곳으로 귀촌했다. 서울에 더 이상 애착도 미련도 없어서였다. 이게 단순한 이유처럼 들리지만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으리라. 서울에서 겪은 파란과 애환에 지친 나머지 전원생활의 목가적 풍미를 선망했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품었던 인생의 목표를 시급히 수정해야 할 필요에 직면했을 수도 있겠지. 아무려나 절이 싫어 떠나는 중처럼, 이점도 매력도 많은 서울과 선선히 결별하는 일엔 특유의 절박한 고심이 선행되었을 게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볼까.
“서울생활에 의욕과 재미를 잃었어요. 수많은 차량과 인파, 경쟁과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되는 게 서울이잖아요. 복잡하고 답답한 대도시에서 저희 부부가 원하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죠. 서울의 혼탁한 공기도 너무 싫었어요. 서울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진 않았어요. 차츰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노후를 맞이할 수는 없단 생각을 했지요. 노후엔 시골의 자연 속에서 편하게 살자! 그런 결심이 섰던 거예요.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귀촌을 해 시골생활을 익히는 게 가장 충실한 노후 준비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노후 준비라는 것. 과거엔 없었던 숙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엔 모두들 그냥 살았다. 열심히 살다가 일찍 조용히 죽으면 그만이었다. 부양할 자녀들도 많았다. 그러나 100세 시대엔 다르다. 60세쯤의 은퇴 이후 긴긴 세월을 자력으로 살아갈 갖가지 채비를 미리 해두려고 모두들 용을 쓴다. 무엇보다 노후자금 마련에 관한 강박감으로 현재를 만족스럽게 즐길 소비와 기회마저 가급적 보류한다. 자금으로만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자기 계발, 인간관계, 여가, 소일거리, 건강 등도 노후의 안락을 위해 미리 북돋워야 할 종목들이니까. 이 모든 과제들의 완수가 귀촌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김씨 내외 말이다. 이제 귀촌 10년. 그들의 귀촌은 어느 고지에 올라섰을까.
한동안 곤궁에 시달려
“서울을 벗어난 건 좋은 선택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경험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일례를 들자면, 제가 서울에선 피부질환에 늘 시달렸어요.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를 않았죠. 과중한 스트레스가 가져온 질환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에 살며 피부가 깨끗하게 회복됐어요. 잔병치레도 사라졌고요. 귀촌을 통해 지독한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나갈 수 있었던 거죠.”
“대체로 도시의 아내들은 귀촌에 거부감을 느끼죠. 불편 요소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 남편의 강권에 이끌려 귀촌했다가 끝내 적응을 못하고 홀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도 있어요.”
“우선은 시골과 취향이 맞아야겠죠. 저는 그게 맞았어요. 원래 제가 도시적 풍물보다 산골의 자연 풍경에 마음이 더 편해지는 성향입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화초를 많이 길렀어요. 이사할 땐 한 트럭 분량의 화분들을 싣고 내려올 정도였죠.”
“자연만 바라보고 살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죠. 경제활동은 순탄했나요?”
“전혀 순조롭지 않았어요(웃음).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도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게 시골이라는 건 분명해요. 심지어 나만의 지상 천국을 누릴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경제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란 도시나 마찬가지로 시골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어요. 아아, 초기 3년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는 고작 시골집 한 채를 지을 정도의 자금만 지니고 귀촌했는데, 3년여가 지나고 나자 자금이 바닥나더라고요. 진땀을 흘려야 했어요.”
가령 고매한 정신세계조차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갖춰지고서야 지속 가능하다. 지겹고 힘겹지만 면제받을 길이 없는 게 돈벌이다. 세상은 우습게 돌아가지만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는 게 또한 그것이다. 부(富)를 경멸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이미 가진 자이기 십상이다. 김씨는 마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듯이 한동안 난처한 곤궁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어쩌면 귀촌을 낭만적으로 가늠한 탓에 빚어진 사단일지도 모를 일.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부부가 열심히 일을 찾아 덤볐어요. 남편은 이 지역의 한 대안학교에서 목공 강사로 일했어요. 하지만 박봉에다 적성이 맞질 않아 그만두고 읍내에 목공 공방을 차렸어요. 저 역시 읍내에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죠. 어휴, 눈물 나던걸요. 이러자고 내가 귀촌을 했나? 서울로 다시 돌아갈까? 슬픔과 회의가 마구 몰려들더라고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을 해도 역경이 쉬 물러나지 않도록 각본을 짜둔 이는 누구일까. 그런데 말이죠, 시골에선 소득이 너끈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방식으로 원만히 살아갈 여지가 있진 않나요?”
“그런 얘기, 귀촌 이전에 많이 들었어요. 시골에 내려가 살면 생활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그게 귀촌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그러나 살면서 겪어보니 현실은 달랐어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더라고요.”
“저런! 제가 만났던 귀촌자들은 흔히 생활비 절감 효과를 귀촌의 최대 이점으로 꼽았어요. 특별한 경우이겠지만, 월 지출 50만원으로 무탈하게 사노라는 부부도 만났어요. 그들은 소비 욕망의 관성에서 벗어난 검박한 생활이 더 만족스러운 삶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이 물질의 노예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놀라워요. 저희는 힘들었어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읍내나 인근 대전을 드나들어야 하는데요, 남편 차와 제 차, 두 대의 차량이 필요했어요. 군내버스는 하루에 두 차례 운행할 뿐이라서 이용하기 어려웠죠. 대중교통망이 발달한 서울에선 교통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살아도 되지만 시골은 달라요. 차량 유지비 비중이 너무도 커요. 아무튼, 귀촌 3년째가 숨 가쁜 고비였습니다. 경제상의 한계로.”
“귀촌 3년쯤을 경과하면 보통 풍월을 읊을 시점이죠. 비로소 시골생활 물정에 익어 정착이 가능해지는 시기라는 거죠. 3년까지는 버거운 수련기간이라는 얘기이기도 할 테고.”
“귀촌을 만만하게 여겼구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충분치 못했구나, 반성이랄까 깨우침이랄까 그런 게 몰려들었어요. 3년이나 지나고서야 말이죠. 뭔가 확실한 다른 방식을 찾아야만 했어요. 읍내에 나가 허드렛일이나 하는 식으로는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 우리만의 집중된 일을 찾자는 것, 남편과 숙의 끝에 내린 결론이 그랬어요.”
낡은 지도 버리고 새 지도에서 찾은 좌표
귀촌 3년 어간에 맞닥뜨린 ‘깔딱 고개’. 목표는 좋았으나 방법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화급히 해결하고 조속히 극복해야 할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상황. 사람의 저력이나 진면목은 대체로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김미경씨 부부는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 지도에서 좌표를 찾았다. 부부는 이제 농사를 통해 갑갑한 터널을 벗어나기로 작심했다. 와송(瓦松) 재배에 돌입했던 것. 이는 썩 적절한 선택이었다. 시골생활에 비로소 탄력을 붙일 힘으로 작용했다.
“와송에 함유된 약성이 알려지면서 재배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어요. 승산이 있다 봤지요. 농토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조성하고 재배에 나섰어요. 제가 농부의 딸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난감하게도 농사엔 완전 초심자였지만 금산군농업기술센터나 이웃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기술을 배웠어요. 결과는 좋았습니다. 재배 첫해부터 쏠쏠한 수익을 올렸으니까.”
“농사는 작목 선정이 관건이라 하죠. 그러나 어떤 작물이 유망하다 싶으면 모두들 덤벼드는 통에 몇 해 안 가 과잉생산, 가격하락이라는 악조건에 봉착해요.”
“와송 농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괜찮다 싶어 농장 규모를 1600평까지 늘렸으나 해가 갈수록 수익구조가 악화됐어요. 그걸 타개하기 위해 생초나 건초 판매보다 가공에 주력, 와송 발효액을 만들어 팔았어요. 농장 규모도 400평으로 줄이고 고품질 소량 생산으로 채산성을 도모했어요. 음, 아무튼 와송 농사를 계기로 생활상의 맥락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의 영역과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죠.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고 즐겁고, 비로소 저의 성향에 맞는, 본성에 부합하는 활달한 차원으로 삶이 전환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말이죠.”
“얼어붙었던 강물이 훈풍에 다시 녹아 쾌활하게 흐르듯이? 일테면 그런 거예요?”
“일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활기차게 뛰어들어 산다는 실감으로 즐겁습니다. 귀농인들과 연합해서 갖가지 활동을 펼치고, 프리마켓을 기획해 판매를 위한 공연 연출도 하고, 유쾌한 팜 파티도 즐기고, 이젠 할 일도 너무 많고,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어요. 남편이 하는 말은 이래요. 아니, 당신이 그토록 활동적인 여자였어? 거참, 물 만난 고기 같네!(웃음)”
우왕좌왕, 전전긍긍의 시간을 거쳐 이젠 안도할 만한 궤도에 올라섰다. 즐길 만한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불 지필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건 일종의 경사! 그녀는 기껍다. 순순한 성정 그 반대 기슭에 깃들인 자신의 활달한 외향성을 밖으로 끄집어내 삶의 동력으로 삼게 됐다는 사실에. 그것으로 귀촌의 나날들에 긍정과 낙관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제야 여전히 궁하지만.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취하려는 의도엔 ‘거사’라고 할 만한 결연한 포부가 서려 있기 십상이다.
김미경(54)씨는 수려한 강변에 산다. 금강의 초록 물살이 살갑게 여울지는 시골에 둥지를 틀었다. 동갑내기 남편 강희씨와 함께 살아간다. 귀촌 이전엔 죽 서울에서 살았다. 남편은 가구를 손수 만들어 파는 사업으로 가장 역할을 했으며, 김씨 역시 직장인으로 서울이라는 각축장을 열심히 누볐다.
이채로운 건 부부 공히 연극판에서 활약한 이력. 남편은 무대조명이나 무대감독으로, 김씨는 배우로 활동했단다. 젊었던 날의 근 15년쯤을 극단에서 뛰었다지.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겐 이미 강 너머로 고스란히 사라진 과거사일 뿐이다. “다 잊었어요!” 연극인으로 살았던 옛일을, 그녀는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돌이킬 따름이다. 연극에 빠졌던 나날들의 열성과 꿈이라는 게 이젠 무의미한 한 줌 기억으로 잔존한다는 투로. 현재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드는 게 현명하다는 투로.
김미경씨 부부는 10년 전에 이곳으로 귀촌했다. 서울에 더 이상 애착도 미련도 없어서였다. 이게 단순한 이유처럼 들리지만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으리라. 서울에서 겪은 파란과 애환에 지친 나머지 전원생활의 목가적 풍미를 선망했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품었던 인생의 목표를 시급히 수정해야 할 필요에 직면했을 수도 있겠지. 아무려나 절이 싫어 떠나는 중처럼, 이점도 매력도 많은 서울과 선선히 결별하는 일엔 특유의 절박한 고심이 선행되었을 게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볼까.
“서울생활에 의욕과 재미를 잃었어요. 수많은 차량과 인파, 경쟁과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되는 게 서울이잖아요. 복잡하고 답답한 대도시에서 저희 부부가 원하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죠. 서울의 혼탁한 공기도 너무 싫었어요. 서울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진 않았어요. 차츰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노후를 맞이할 수는 없단 생각을 했지요. 노후엔 시골의 자연 속에서 편하게 살자! 그런 결심이 섰던 거예요.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귀촌을 해 시골생활을 익히는 게 가장 충실한 노후 준비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노후 준비라는 것. 과거엔 없었던 숙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엔 모두들 그냥 살았다. 열심히 살다가 일찍 조용히 죽으면 그만이었다. 부양할 자녀들도 많았다. 그러나 100세 시대엔 다르다. 60세쯤의 은퇴 이후 긴긴 세월을 자력으로 살아갈 갖가지 채비를 미리 해두려고 모두들 용을 쓴다. 무엇보다 노후자금 마련에 관한 강박감으로 현재를 만족스럽게 즐길 소비와 기회마저 가급적 보류한다. 자금으로만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자기 계발, 인간관계, 여가, 소일거리, 건강 등도 노후의 안락을 위해 미리 북돋워야 할 종목들이니까. 이 모든 과제들의 완수가 귀촌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김씨 내외 말이다. 이제 귀촌 10년. 그들의 귀촌은 어느 고지에 올라섰을까.
한동안 곤궁에 시달려
“서울을 벗어난 건 좋은 선택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경험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일례를 들자면, 제가 서울에선 피부질환에 늘 시달렸어요.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를 않았죠. 과중한 스트레스가 가져온 질환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에 살며 피부가 깨끗하게 회복됐어요. 잔병치레도 사라졌고요. 귀촌을 통해 지독한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나갈 수 있었던 거죠.”
“대체로 도시의 아내들은 귀촌에 거부감을 느끼죠. 불편 요소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 남편의 강권에 이끌려 귀촌했다가 끝내 적응을 못하고 홀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도 있어요.”
“우선은 시골과 취향이 맞아야겠죠. 저는 그게 맞았어요. 원래 제가 도시적 풍물보다 산골의 자연 풍경에 마음이 더 편해지는 성향입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화초를 많이 길렀어요. 이사할 땐 한 트럭 분량의 화분들을 싣고 내려올 정도였죠.”
“자연만 바라보고 살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죠. 경제활동은 순탄했나요?”
“전혀 순조롭지 않았어요(웃음).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도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게 시골이라는 건 분명해요. 심지어 나만의 지상 천국을 누릴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경제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란 도시나 마찬가지로 시골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어요. 아아, 초기 3년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는 고작 시골집 한 채를 지을 정도의 자금만 지니고 귀촌했는데, 3년여가 지나고 나자 자금이 바닥나더라고요. 진땀을 흘려야 했어요.”
가령 고매한 정신세계조차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갖춰지고서야 지속 가능하다. 지겹고 힘겹지만 면제받을 길이 없는 게 돈벌이다. 세상은 우습게 돌아가지만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는 게 또한 그것이다. 부(富)를 경멸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이미 가진 자이기 십상이다. 김씨는 마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듯이 한동안 난처한 곤궁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어쩌면 귀촌을 낭만적으로 가늠한 탓에 빚어진 사단일지도 모를 일.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부부가 열심히 일을 찾아 덤볐어요. 남편은 이 지역의 한 대안학교에서 목공 강사로 일했어요. 하지만 박봉에다 적성이 맞질 않아 그만두고 읍내에 목공 공방을 차렸어요. 저 역시 읍내에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죠. 어휴, 눈물 나던걸요. 이러자고 내가 귀촌을 했나? 서울로 다시 돌아갈까? 슬픔과 회의가 마구 몰려들더라고요.”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을 해도 역경이 쉬 물러나지 않도록 각본을 짜둔 이는 누구일까. 그런데 말이죠, 시골에선 소득이 너끈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방식으로 원만히 살아갈 여지가 있진 않나요?”
“그런 얘기, 귀촌 이전에 많이 들었어요. 시골에 내려가 살면 생활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그게 귀촌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그러나 살면서 겪어보니 현실은 달랐어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더라고요.”
“저런! 제가 만났던 귀촌자들은 흔히 생활비 절감 효과를 귀촌의 최대 이점으로 꼽았어요. 특별한 경우이겠지만, 월 지출 50만원으로 무탈하게 사노라는 부부도 만났어요. 그들은 소비 욕망의 관성에서 벗어난 검박한 생활이 더 만족스러운 삶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이 물질의 노예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놀라워요. 저희는 힘들었어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읍내나 인근 대전을 드나들어야 하는데요, 남편 차와 제 차, 두 대의 차량이 필요했어요. 군내버스는 하루에 두 차례 운행할 뿐이라서 이용하기 어려웠죠. 대중교통망이 발달한 서울에선 교통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살아도 되지만 시골은 달라요. 차량 유지비 비중이 너무도 커요. 아무튼, 귀촌 3년째가 숨 가쁜 고비였습니다. 경제상의 한계로.”
“귀촌 3년쯤을 경과하면 보통 풍월을 읊을 시점이죠. 비로소 시골생활 물정에 익어 정착이 가능해지는 시기라는 거죠. 3년까지는 버거운 수련기간이라는 얘기이기도 할 테고.”
“귀촌을 만만하게 여겼구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충분치 못했구나, 반성이랄까 깨우침이랄까 그런 게 몰려들었어요. 3년이나 지나고서야 말이죠. 뭔가 확실한 다른 방식을 찾아야만 했어요. 읍내에 나가 허드렛일이나 하는 식으로는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 우리만의 집중된 일을 찾자는 것, 남편과 숙의 끝에 내린 결론이 그랬어요.”
낡은 지도 버리고 새 지도에서 찾은 좌표
귀촌 3년 어간에 맞닥뜨린 ‘깔딱 고개’. 목표는 좋았으나 방법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화급히 해결하고 조속히 극복해야 할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상황. 사람의 저력이나 진면목은 대체로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김미경씨 부부는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 지도에서 좌표를 찾았다. 부부는 이제 농사를 통해 갑갑한 터널을 벗어나기로 작심했다. 와송(瓦松) 재배에 돌입했던 것. 이는 썩 적절한 선택이었다. 시골생활에 비로소 탄력을 붙일 힘으로 작용했다.
“와송에 함유된 약성이 알려지면서 재배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어요. 승산이 있다 봤지요. 농토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조성하고 재배에 나섰어요. 제가 농부의 딸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난감하게도 농사엔 완전 초심자였지만 금산군농업기술센터나 이웃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기술을 배웠어요. 결과는 좋았습니다. 재배 첫해부터 쏠쏠한 수익을 올렸으니까.”
“농사는 작목 선정이 관건이라 하죠. 그러나 어떤 작물이 유망하다 싶으면 모두들 덤벼드는 통에 몇 해 안 가 과잉생산, 가격하락이라는 악조건에 봉착해요.”
“와송 농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괜찮다 싶어 농장 규모를 1600평까지 늘렸으나 해가 갈수록 수익구조가 악화됐어요. 그걸 타개하기 위해 생초나 건초 판매보다 가공에 주력, 와송 발효액을 만들어 팔았어요. 농장 규모도 400평으로 줄이고 고품질 소량 생산으로 채산성을 도모했어요. 음, 아무튼 와송 농사를 계기로 생활상의 맥락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의 영역과 활동 반경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죠.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고 즐겁고, 비로소 저의 성향에 맞는, 본성에 부합하는 활달한 차원으로 삶이 전환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말이죠.”
“얼어붙었던 강물이 훈풍에 다시 녹아 쾌활하게 흐르듯이? 일테면 그런 거예요?”
“일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활기차게 뛰어들어 산다는 실감으로 즐겁습니다. 귀농인들과 연합해서 갖가지 활동을 펼치고, 프리마켓을 기획해 판매를 위한 공연 연출도 하고, 유쾌한 팜 파티도 즐기고, 이젠 할 일도 너무 많고, 오라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아졌어요. 남편이 하는 말은 이래요. 아니, 당신이 그토록 활동적인 여자였어? 거참, 물 만난 고기 같네!(웃음)”
우왕좌왕, 전전긍긍의 시간을 거쳐 이젠 안도할 만한 궤도에 올라섰다. 즐길 만한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불 지필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건 일종의 경사! 그녀는 기껍다. 순순한 성정 그 반대 기슭에 깃들인 자신의 활달한 외향성을 밖으로 끄집어내 삶의 동력으로 삼게 됐다는 사실에. 그것으로 귀촌의 나날들에 긍정과 낙관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제야 여전히 궁하지만.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소동파는 황주에서 매달 아주 적은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식솔들의 의식주는 예전에 해두었던 저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지출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는 매달 초 저축했던 돈 가운데 4000~5000개의 동전을 꺼내서 한 꿰미에 150개씩 나눈 뒤, 집 대들보에 걸어놓고는 매일 한 줄씩 풀어서 사용하였다. 가능하면 하루의 지출을 한 줄의 동전으로 제한하려고 했다. 만약 그날 저녁에 몇 개의 동전이 남으면 단지에 넣고, 그다음 날에는 다른 동전 줄을 풀어서 사용했다. 한 달이 지나면 단지의 동전을 정산해서 손님들이 올 때 접대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스야후이, )
요즘 개인형 퇴직연금(Individual Retire ment Pension, 이하 IRP)이 금융계의 핫이슈다. 지난 4월 퇴직연금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 26일부터 소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후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공적연금의 보장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보장수준을 높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 부조에 의존하는 공적연금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서 에서 “사회적 미래는 정해져 있을지언정 개인의 미래는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과 노력으로 ‘정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학연금을 받게 될 20년 뒤에는 인구구조상 사학연금 급여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며 별도의 노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리 사회적 미래가 암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도 개인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44세에 좌천된 소동파가 철저하고 체계적인 절약과 황무지를 개간해 몸소 농사를 지으며 고난을 헤쳐 나갔듯이(전원시를 많이 쓴 중국의 고대 문인들 중 장기간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연명과 소동파 둘뿐이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고 욜로(YOLO)만 부르짖다간 언덕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같은 후반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를 최소화하고 우리의 인생을 만개시키는 데 IRP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출산·고령화시대 자조노력연금의 대명사로 우뚝 설 IRP를 남이 아니라 내 잔칫상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철저히 파보고 스마트하게 이용해야 한다.
IRP란 무엇인가?
원래 IRP는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축적해나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문용어로는 통산장치(portability)라고도 부른다. 애초에 IRP는 퇴직(일시)금을 수령한 퇴직 근로자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재직 근로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7월 26일부터는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와 1주 소정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등의 퇴직급여제도 미설정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공무원·군인·사립학교교직원·별정우체국직원 등 직역연금제도 가입자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IRP의 문호가 활짝 열린 것이다. 사실상 모든 취업자가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7년 6월 말 현재, IRP 가입 건수는 226만 6000건이고, 적립금액은 13조6928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액 기준으로 2016년 성장률은 14.1%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5년과 2014년에는 각각 44.3%와 24.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가입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이전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IRP의 높은 성장률과 자조노력연금 대명사의 역할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IRP에 해당하는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가 이미 2010년에 DC(확정기여)형을 추월해 퇴직급여제도 중 가장 큰 적립금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3월 말 미국 IRA의 적립금 규모는 8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IRP를 iDeCo라고 부르는데, 2017년 6월 말 가입자 수는 54만9943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자영업자는 물론 학생·전업주부·공무원·회사원 등 20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가 대폭 확대되었다. 명실상부 전 국민적 노후준비수단으로 격상된 것이다. 바야흐로 IRP가 글로벌 대세로 부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지금 당장 살림이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도 노후는 중요하다. 일일 생활비를 아껴 단지에 모아놨다 손님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소동파처럼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IRP에 가입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바로 압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민사집행법에서는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연금채권은 전액 압류금지채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4년 1월 23일) 이후 퇴직연금은 급여압류 대상채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IRP는 퇴직연금의 한 종류다.
IRP에는 어떤 혜택이 있나?
IRP의 가장 큰 혜택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발생한 이자(배당 포함)에 대해 15.4%의 이자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IRP에 가입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이자소득세만큼 적립액이 늘어나고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IRP에는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보통 세액공제 한도액인 700만원까지 납입을 권유받거나 그렇게 납입하는 가입자가 많은데, 세액공제액을 초과하는 1100만원을 잘 활용하면 의외의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1100만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고, 중도해지나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요즘 보기 힘든 비과세 상품인 셈이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IRP 납입 최고한도액을 적극 활용하면 노후가 든든해질 것이다. 참고로 연금소득세율은 연령별로 다른데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인 경우는 5.5%, 70~79세는 4.4%, 80세 이상은 3.3%다. 단,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이더라도 종신연금을 신청하면 4.4%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IRP의 두 번째 혜택은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IRP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400만원까지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IRP에 가입하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근로자 등 급여소득자의 세액공제율은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6.5%를, 이를 초과하는 사람은 13.2%를 적용받는다. 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세를 적용받는 사람들의 세액공제율은 40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16.5%, 초과하는 사람은 13.2%다. 연간 700만원을 납입할 경우 연말정산 때 16.5%를 적용받는 사람은 115만5000원을, 13.2%를 적용받는 사람은 92만4000원을 돌려받는다([표1] 참조). 쏠쏠하지 않은가?
IRP에 대한 세제혜택은 또 있다. 바로 퇴직금을 IRP 계좌에 넣어두고 운용하다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연금수급 자격에 대해선 [표2] 참조). 많은 사람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간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금 규모와 근속기간에 따라 0~28.6%의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실제로 받는 퇴직금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그러나 퇴직금을 IRP 계좌로 이체한 뒤 연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소득세율의 70%만 연금소득세로 납부하면 된다. 퇴직소득세 대비 연금소득세가 30% 절감되도록 소득세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하더라도 60일이 경과되지 않았다면 이미 납부한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을 방문해 IRP 계좌를 개설한 뒤 수령한 퇴직금을 이체하면 퇴직한 회사에서 원천징수해둔 퇴직소득세를 IRP 계좌에 입금시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퇴직금 중 일부를 사용했다면 남은 금액만 IRP 계좌에 입금해도 입금비율에 맞춰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IRP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세액공제한도를 초과해 납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액공제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를 면제받는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다음 해에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을 넘는 근로자가 2017년에 1000만원을 납입했다면 당해 연도에 700만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고, 2018년도에 300만원을 이월신청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보너스를 받을 경우에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IRP에 가입할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중도에 해지할 경우 이미 세제혜택을 받은 납입금액은 물론 운용수익까지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망, 해외 이주 등 세법상 부득이한 인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인출액에 대해 세율이 낮은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된다. 사유 발생일 이후부터 6개월 이내에 증빙서류를 갖춰 금융회사에 신청하면 된다. 한편 IRP에 가입해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연금수령한도를 초과해 수령하는 경우 한도초과금액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연금수령한도는 연금개시 신청일 당시의 적립금을 ‘11-연금수령연차’로 나눈 뒤 1.2를 곱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연금개시 신청일 현재 IRP 적립금 평가액이 5000만원이면 첫해 연금수령한도는 ‘5000만원/(11-1)×1.2=600만원’이 된다.
IRP 가입과 적립금 운용은 어떻게?
절세상품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절세덩어리인 IRP는 매우 매력적이다. IRP 가입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분증과 [표3]과 같은 필요서류를 준비해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그만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온라인으로도 가입할 수 있으니 업무시간 중 금융기관을 방문하기 힘든 사람들은 이를 활용하면 된다. 계좌를 개설할 때는 0원으로도 가능하다. 계좌를 개설했으면 그다음은 계좌에 들어갈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표4]에서 보는 것처럼 IRP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상품도 있다.
특히 투자형 상품을 선택할 때는 수익률과 리스크를 잘 따져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현재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수익률만 보고 펀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수익률과 함께 수익률 추이,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수준, 펀드운용 시스템, 자산배분, 수수료 수준 등을 잘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금융기관별 수수료율과 장기(5년/8년) 연평균 수익률은 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에 공시되어 있다.
만약 이미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최근 나빠졌다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자. 이를 위해선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은 수익률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손성동(孫盛東)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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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 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냐?”, “환불은 안 되냐?” 하며 자식들 눈치를 본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5070세대가 모으고 아끼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이에 이번 호에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이하, 나·행·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유가 아닌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호 교수는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서 이제는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크게 ‘소유를 위한 소비’와 ‘경험을 위한 소비’로 나눌 수 있다. 과거 5070세대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자동차, 집, 옷 등을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소비의 행복감은 단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위한 소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령 학습하며 강의를 듣는 것, 여가활동,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훨씬 행복감이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경험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가장 선호하는 여행([자료1]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왜 그럴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70세대에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는 익숙하지 않다. 경험을 위한 여가활동은 기껏해야 TV 시청 정도뿐이다. 5070세대가 성장해왔던 과거 1970년대에는 마땅한 여가 활동도 없었다. 화투 정도가 전부였고 1980년대에 와서야 도심에서 탁구, 당구, 볼링, 테니스 등을 즐겼다. 최근에는 골프와 캠핑 등도 여가활동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경험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여가활동이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좌표를 배움에서 찾는 5070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60세 이상 학점은행제 등록자는 2만2915명(대학학점인정 과정 기준)이며, 55~64세의 평생교육 참여현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교육과학기술부 국가평생교육 통계조사). 또한 지난 2013년에는 1972년 방송통신대 개교 이래 최고령자인 정한택(입학 당시 91세)씨가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5070세대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위해서는 ‘갖고 싶은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활동의 주역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고수입의 활동적인 70대가 레저시장의 주도세력이다.
유병장수시대 행복하게 하는 소비
과거 학창 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의식주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욕구로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궁극적으로 꿈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욕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론이자 경험론이다. 나·행·소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1단계 생리 욕구는 의식주 관련 소비로, 2단계 안전 욕구는 건강 예방을 위한 소비로, 3단계 소속감 욕구는 친구/동호회 활동을 위한 소비로, 4단계 존경 욕구는 학습/교육 활동을 위한 소비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는 여행을 위한 소비로 매칭할 수 있다([자료2] 참조).
앞서 필자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나·행·소 첫 번째 요소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모든 5070세대가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빼어난 경치라도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은퇴생활을 하는 5070세대의 소비 성향과 욕구도 동일하지 않다. 은퇴 후에 소득이 중단되어 의식주 관련 소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자료3] 참조). 여기에 의료, 간병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험을 위한 소비’는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5070세대가 나·행·소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비욕구 5단계에 따르면 1, 2단계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와 건강과 관련된 소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자산을 모으는 웰스(wealth)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헬스(health)에 관심을 갖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야말로 최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건강하지 못하면 노후생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준비된 노후자산은 조금 부족해도 몸이 건강하면 긴 노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산의 품질이 아닌 몸의 건강품질을 높이는 소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건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지 모른다. 건강을 통해 더 젊게 살고, 더 즐겁게 살며, 더 행복하게 사는 궁극적 가치에 한발 다가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먹고, 건강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야말로 나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Clean & Dress up 소비에 인색하지 말라
몇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퇴직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70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은 다운타운에 방 여럿 딸린 자택을 소유한 나름 성공한 중산층이다. 비록 아내와 사별했지만 자녀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독립했고, 취미로 요가나 화초 재배를 하며, 가끔 손자 재롱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은퇴세대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은퇴세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 옷매무새 하나도 빈틈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한 시니어다. 옷차림새뿐만 아니다.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한다(Clean up).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은 CEO뿐만 아니라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액티브시니어들도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옷은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라며 집에서도 외출할 때도 늘 입는 아웃도어 복장은 아닌지 살펴보라. 이왕이면 깔끔하게 잘 갖춰 입고(Dress Up) 다니자.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반듯하게 차려 입은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손주들도 좋은 향기가 나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잘 차려 입은 옷은 자신감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Clean & Dress Up 소비’에 절대 인색하지 말자.
두 번째 해외근무를 앞둔 김 부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해외근무를 두 번이나 가게 된 행운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다. 10년 전, 첫 번째 해외근무를 갈 때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환희에 들떠 있었던 김 부장이다. 회사 돈으로 생활을 하고, 아이들 영어교육도 받을 수 있고, 5년간의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땐 제법 큰돈을 모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 입장에선 시댁과 멀어지니 그렇게 홀가분한 일도 없었다. 해외근무를 앞두고 가족 모두는 행복한 마음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두바이에서 5년간 근무 후 5년간 본사에서 근무하다 다시 5년간 해외근무 명령을 받은 김 부장의 표정이 10년 전과 다르다. 그가 180도 달라진 이유는 뭘까?
두바이에서의 첫 번째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김 부장의 손에는 목돈이 아닌 빚 청구서만 가득했다. 쇼핑 천국 두바이에서 아내가 쇼핑 중독에 걸린 탓이다. 가족이 회사로, 학교로 떠난 뒤의 빈자리가 아내에게는 너무 크게 와 닿았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무료한 생활에 지친 아내가 쇼핑 중독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김 부장의 계획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5년간 모은 목돈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빚 청산을 위해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김 부장은 이혼까지 생각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이런 그에게 빚 청산이 끝난 직후 떨어진 두바이 해외근무 명령이 달가울 리 없었다.
만약 김 부장이 외로운 아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미리 대처했더라면, 또 아이들이 엄마의 쓸쓸함을 좀 헤아렸다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 부장 아내의 쇼핑 행위는 전형적인 과소비였다. 과소비의 결과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순간적인 욕망을 참지 못하면 가족의 미래까지 용해되어버리고 만다. 가치소비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가치소비는 소비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채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하게 따져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무조건 아끼고 보는 알뜰소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과소비와는 다른 소비 행태다. 가치소비는 실용적이고 자기만족적 성향이 강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가치소비가 최근 중장년, 나아가 노인세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5070세대가 가치소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소중한 기회다
가치소비에서 방점은 ‘소비’가 아니라 ‘가치’에 있다. 5070세대가 진정한 가치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먼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가치가 명확하지 않으면 가치소비로 둔갑한 고가품 소비를 할 수 있다. 사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가치소비는 고가품 소비를 아름답게 포장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치소비자를 흔히 ‘포미(For Me)족’이라고 하는데, 이를 대문자로 표기하면 가치소비의 경향이 잘 드러난다. FORME는 For Health(건강), One(싱글), Recreation(여가), More Convenient(편의), Expensive(고가) 등 다섯 가지의 경향을 포괄하는 합성어다. 정보분석기업 닐슨이 작년에 발표한 에 의하면, 한국 소비자들이 ‘평균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가장 높은’ 분야는 의류·신발, 화장품, 개인용 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제품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며 가치소비로 치장한 고가품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반드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생의 전환기에 있는 5070세대의 가치소비는 전환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를 두고 싶은 분야는 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5070세대에게 가치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5070세대에게 가치소비는 정체성 찾기의 소비 버전이다. 김 부장의 아내가 진정한 가치소비자였다면 두 번째 해외근무를 앞둔 김 부장의 기분은 어땠을까?
삶의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다
가치소비자의 행동 중 눈에 띄는 것은 불필요한 물건정리다. 가치소비자는 새로운 물건만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집안 구석구석 쌓여 있는 물건 중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한다. 보지 않는 책을 중고매장에 팔고 그 돈으로 관심 분야의 신간을 사는 사람들, 옷가지나 가재도구를 중고매장 또는 아나바다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 중에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5070세대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두고 있다. 손때가 묻어 있고, 삶의 추억이 담겨 있는 까닭에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자. 물건정리는 삶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젊게 살 수 있는 하나의 포인트다
영원한 젊음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최대한 오래 젊게 살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게 살고 싶은 욕망은 더욱 깊어진다. 가치소비는 중장년이 젊게 살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써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알뜰소비를 위해 발품을 팔듯 가치소비를 위해서는 ‘손가락품’을 팔아야 한다. 가치소비자의 가장 큰 무기는 정보력이다. 그래서 해외쇼핑몰 사이트, 국내 소셜커머스 사이트 등을 꼼꼼하게 뒤지며 가격을 비교하고 할인쿠폰을 내려 받는다. 5070세대도 가치소비를 즐기려면 이런 수고쯤은 감수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주로 활용하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접속은 5070세대가 간접적으로나마 젊은이들과 교감하면서 젊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다.
얼마 전 필자가 퇴직예정자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강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벽면에 걸려 있는 현수막 문구가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YOLO’라는 글자였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직역하면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는 뜻이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려는 2030세대의 자조적인 의미가 담긴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처럼 자조적 의미가 담긴 ‘YOLO’는 5070세대에게도 이제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최근 5070세대는 더 이상 누구의 행복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세대가 아니라, 직장과 일에서 떠나 과거와는 다른 삶을 꿈꾸고 새로운 소비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소비의 반란’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모아둔 재산을 어느 정도 자식에게 남겨주고 떠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자식들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윤택한 삶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은퇴 시기도 빨라지고 있어 어떻게 하면 긴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보낼 수 있을지가 더 큰 관심이다. 많지는 않지만 모아둔 재산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5070 시니어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5070세대의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란 무엇일까. 이번 호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가성비를 추구하되 지출초과는 경계하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도 소위 ‘코스파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가 높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코스파는 비용(cost)과 효과(performance)를 합친 말로 코스파 세대는 ‘가성비를 좇는 세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버블 붕괴의 여파로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2030세대가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 효과가 큰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등장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구조적 저성장기가 고착화되면서 소비에서 ‘가성비(cost-effectiveness, 價性比)’를 따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는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싸면서 맛있는 떡’을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행동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가성비 추구 소비는 단순히 최저가 상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상품을 찾는 현명한 소비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에 입각한 소비에도 함정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가령 5070세대가 어떤 상품을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직접 매장을 찾아 상품 정보를 탐색하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그 물건을 사용한 경험자들의 사용 후기를 꼼꼼히 체크하고 가격과 기능, 특징 등을 따져본 후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상품가격 대비 효과, 즉 가성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사용 경험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용 후기를 계속해서 보다 보면 가격 대비 더 좋은 성능의 상품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애초에 계획한 수준을 벗어난 지출을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성비는 높지만 실제 내게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5070세대는 가성비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참고는 하되 구매에 대한 판단과 기준은 자신이 세운 소비계획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나에게 가치가 있는 소비에 집중하라
남은 여생 아끼지 말고 다 ‘쓰’고 ‘죽’자는 의미의 ‘쓰죽회’가 최근 화제다. 지인들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공유하는 작은 동호회 성격이지만 평소에 다니지 못한 여행뿐만 아니라 봉사 및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5070세대들의 대표적 커뮤니티 중 하나다. 자식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법도 하지만 노후에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당당하게 가치 있는 노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싶기도 하겠지만 가고 싶은 곳 못 가고, 쓰고 싶은 것 못 쓰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게 5070세대의 속내가 아닐까?
그렇다면 5070세대에게 가치 있는 노후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코 행복이다. 인간의 궁극적 삶의 가치는 행복이라는 말에 이의가 없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5070세대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다시 귀결된다. 한 언론인은 “행복은 지금 저축하고 나중에 꺼내어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 멋진 말이다. 행복할 수 있을 때 마음껏 그 행복을 누리라는 조언이다. 5070세대는 늘 행복을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를 위해 현재가 담보 잡히는 삶을 살기에는 건강도 그렇고 시간도 부족하다. 5070세대에게 지금 바로 이 순간 행복을 누리고 가치 있는 소비를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하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소비일까? 사카모토 세쓰오가 쓴 를 통해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 시니어 세대들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일본 고령 시니어 세대들은 자녀가 독립할 때쯤인 50대부터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꾸는 소비를 점차 늘려간다. 둘째, 건강유지 및 관리 분야의 소비를 늘린다. 노화에 따른 신체기능이 저하되면서 이를 순응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건강예방과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셋째, 수준 높은 노년의 삶을 위해 문화생활에 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자녀 독립 후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새로운 즐기는 문화형성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일본 단카이세대(1947~1949)다. 이들은 음악, 공연, 미술을 관람하면서 좀 더 멋을 내고 즐긴 뒤 비싸더라도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긴다.
이 세 가지를 요약하면 일본 고령 시니어들은 노후에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즐겁게 사는 데 기꺼이 돈을 쓴다. 우리나라의 시니어들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물론 노년의 행복한 소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일본 고령 시니어 세대들의 소비 트렌드를 통해 우리나라 5070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소비가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존경받는 소비원칙 ‘SPPS Up’
은퇴재무설계에서 잘 쓰는 것도 잘 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젊은 시절 아껴 쓰고 저축만 하고 살았던 5070세대가 소비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면 돈을 잘 써야 한다. 그래야 가족, 동료, 지인들이 좋아하고 존경한다. 나이를 먹어도 돈을 움켜쥐고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수전노, 자린고비, 노욕장 등의 불명예스런 이름표만 얻는다. 인품과 지성, 매력만으로 존경받기에는 2% 부족한 사람들인 것이다. 2%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을 잘 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존경받는 소비원칙 ‘SPPS Up’을 실천해야 한다.
앞의 SP는 ‘입은 닫고(Shut Up) & 지갑은 열라(Pay Up)’는 원칙이다. 나이 들어 베푸는 것 없이 잔소리만 늘면 기피 대상 인물이 되기 쉽다. 지인들에게 늘 밥 한번 산다고 호언장담해놓고 막상 기회가 오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오리발 내미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기피 대상 1호다. 반면 말없이 조용히 지갑을 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환영받고 존경을 받는다.
뒤의 PS는 ‘잘 놀고(Play Up), 잘 쓰자(Spend Up)’는 원칙이다. 시쳇말로 좀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서 ‘잘 쓰자’의 의미는 흥청망청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써야 할 곳, 즉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대상에는 맘껏 투자하라는 의미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고 가슴 떨릴 때 가는 것”이라는 어느 누구의 말처럼 건강을 잃어버리면 소비도 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가슴 떨리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잘 써보자. ‘잘 놀고 잘 쓰는 것’이야말로 5070세대의 바람직한 소비 행동이다.
지난 호까지 우리는 5070 액티브 시니어 은퇴재무설계에서 큰 축의 하나인 자산관리를 살펴봤다. 이번 호부터는 3회에 걸쳐 소비에 대해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소비는 생산에 대비되는 말로 생활의 두 수레바퀴 중 하나다. 5070세대의 자산관리가 생산시기에 축적한 잉여물의 유지 및 보관에 초점을 맞춘 재무설계의 한 측면이라면, 소비관리는 그 잉여물을 합리적으로 사용해 사용연한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재무설계의 다른 측면이라 하겠다. 자산관리와 소비관리는 동전의 양면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저울추다.
3040세대는 사회의 핵심 노동계층이자 가계의 수입을 책임지는 주축들이다. 이에 비해 5070세대는 사회의 부양계층이자 가계의 소비계층으로 서서히 이행하면서 노년을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5070세대 중에는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노동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거의 자연의 법칙이다. 순리대로 사는 게 행복의 첩경이다. 5070세대의 은퇴재무설계가 일 중심에서 합리적 소비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5070 은퇴재무설계가 합리적 소비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는 이유를 3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한적인 수입
5070세대 중에는 수입 측면에서 지금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 한다. 명퇴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자리에서 물러나 파트타이머 및 비정규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또 다른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임금피크제 적용의 주요 타깃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가계는 소비보다 수입이 많아야 그 잉여물을 자산으로 축적해 미래의 다양한 이벤트에 대비할 수 있다. 즉 ‘자산=수입-지출’ 공식을 생각해보면 된다. 5070세대는 자산 축적의 핵심 수단인 수입이 줄어드는 국면에 진입한 사람들이다. 주 수입원도 근로 및 사업소득에서 점차 연금 및 이전소득으로 전환되는 이행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쌓아온 자산의 감소를 최소화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산이 소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출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출은 크게 소비 지출과 비소비 지출로 구성된다. 비소비 지출은 ‘조세+연금+사회보험+기타 비소비 지출’로 구성된다. 기타 비소비 지출에는 이자비용, 경조비 등 가족 간 이전, 기부금 등이 포함된다. 지출에서 비소비 지출을 뺀 나머지가 소비 지출이다. 한마디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들어가는 의식주 관련 지출, 사회활동에 들어가는 교통비·교제비, 보건 및 통신비 등이 소비 지출의 주요 항목들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2016년 4/4분기 현재 가계지출에서 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6.1%다. 지출의 4분의 3 정도가 소비 지출인 셈이다. 이는 지출 관리의 핵심이 바로 소비 지출에 있음을 뜻한다.
줄여야 하는 자산 감소의 속도
성인 자녀의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년 부모의 재무적 자립이다. 성인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부모는 등골이 휜다. 반대로 노년 부모가 재무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자녀의 가계에 생채기가 생기고 형제애와 부부애에 금이 갈 수 있다. 이를 바라는 부모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재무적 자립은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아가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3040세대가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수입과 지출의 격차를 확대해 자산을 더 크게 늘리는 것이다. 수입이 줄어드는 5070세대가 재무적 자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도록, 초과하더라도 그 폭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돈과 생명이 벌이는 죽음의 경주에서 생명이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도록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장례비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산이 감소하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 해답은 바로 합리적 소비에 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소유의 크기와 행복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소비 행동을 보면 갸우뚱해질 때가 많다.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를 통해 사람들의 이러한 이율배반성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소비는 단순한 생존 수단의 구매가 아니라 관계의 능동적 양식이라고 보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탁기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 요소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 후자야말로 소비의 고유한 영역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의 필요 때문에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는 의미다.
경제적 측면에서 성장가도에 있는 3040세대는 주관적 만족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성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5070세대는 주관적 만족을 위한 소비를 지속할 여력이 부족하고, 성장 궤도에서 내려온 이상 필요에 기반한 소비습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만족에 기반한 소비에서 필요에 기반한 소비로의 순조로운 이행’이 필요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5070세대다. 5070세대의 소비 관리는 무조건 소비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줄일 곳은 줄이되 늘릴 곳은 늘려야 한다. 100세 시대에 5070세대는 아직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늘릴 곳은 과감하게 소비를 늘려야 한다. 이는 5070세대에 맞는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처럼 인생에서도 말년에 웃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5070세대에게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궁극적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도성장 경제에서 저성장 경제로 구조적 전환이 이뤄질 때 여기저기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일어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가계수입이 증가하던 국면에서 줄어드는 국면으로 진입하면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합리적 소비습관 들이기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이자 노후의 안정적 삶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의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남편과 사별한 지 8년째인 최영옥(72세, 여)씨는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3년 전에 명예퇴직을 하고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큰아들(48세) 때문이다. 부족한 경험과 자본 탓에 시작부터 불안해보였던 큰아들의 사업은 결국 1억원의 부채를 남기고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최영옥씨의 큰아들은 어머니에게 부채탕감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왔다. 큰아들의 요청을 받은 후부터 최영옥씨는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돈도 돈이지만 큰아들의 도움 요청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유독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큰아들 걱정과 함께 아들을 약하게 키웠다는 자책감이 최영옥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게다가 다른 자녀들의 눈치까지 은근히 신경 쓰이기 시작한 최영옥씨는 노후생활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자녀라는 말을 절감하며 재무상담을 의뢰해왔다.
최영옥씨 현재 상황
최영옥씨의 자녀들은 모두 독립해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있다. 큰아들은 큰며느리(43세, 회사원), 손자와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고, 작은아들(46세, 회사원)은 작은며느리(45세, 사회복지사), 두 손녀와 서울에 살고 있다. 막내인 딸(43세, 교사)은 사위(45세, 은행원), 손자 손녀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최영옥씨의 현재 재산 현황은 [표1]과 같으며 월평균 수입은 국민연금의 유족연금 40만원과 임대료 200만원, 그리고 자녀들로부터 60만원을 받아서 합계 300만원이다. 그리고 월평균 지출금액은 생활비와 보험료 및 각종 공과금과 세금으로 250만원을 지출하고 월평균 50만원씩을 저축해두었다가 경조사 등 비정기적 지출에 사용하고 있다.
최영옥씨는 갈수록 돈 문제 같은 민감한 일들을 혼자 현명하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큰아들 문제를 겪으면서 남은 생을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음의 고민거리가 해결되기를 원하고 있다.
① 큰아들의 부채 1억원 상환이 자녀에 대한 마지막 경제적 지원이기를 바란다.
② 노화된 건물관리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③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집을 옮겨 나들이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싶다.
④ 노후생활비의 위험 요소인 의료비 지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싶다.
⑤ 안정적인 연금소득을 확보하고 싶다.
⑥ 본인 사후에 자녀들이 재산 문제로 다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최영옥씨 재무진단 제안
건물매각 최영옥씨는 건물관리와 관련된 부담으로 벗어나서 안정적인 연금소득을 확보할 요량을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양도소득세를 차감하고 난 후 5억5000만원의 금액 중에서 각 자녀들에게 1억씩 해서 3억원을 증여하기로 했다. 성인자녀의 경우 1억원 이하면 증여세율이 10%이며 증여일로부터 3개월 내에 신고납부를 하면 세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증여세는 증여를 받는 자녀들이 각자 납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영옥씨는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고 교통이 편리한 강남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기존의 아파트를 매각하고 건물매각대금 중 잔여금액 2억원을 보태어 시가 6억원의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5000만원은 이사와 관련된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주택연금가입 최영옥씨는 부족한 연금소득을 확보하기 위하여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최영옥씨가 서울 강남지역으로 집을 옮겨 주택연금을 개시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생활의 편의성 고려와 함께 다른 경제적 이유도 있다. 최영옥씨가 주택연금을 수령하다가 사망하게 되면 사망 당시에 주택의 매도가격이 연금총액과 이자 등 비용을 상계하고도 남았을 때 자녀들이 그 잔액을 가져갈 수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되어 연금총액과 비용이 주택의 매도가격보다 더 높으면 자녀들이 주택상속을 포기하면 된다. 최영옥씨는 본인이 이사하게 될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72세인 최영옥씨가 6억원의 아파트를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면 매월 200만원가량의 소득을 종신토록 수령할 수 있다. 매월 200만원의 금액은 기존의 건물임대소득과 수치는 같지만 질은 다르다. 최영옥씨는 더 이상 건물의 공실 문제나 건물보수 문제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업소득이 없어졌기 때문에 월 30만원 가까이 되던 국민건강보험료와 소득세 등을 더 이상 납부하지 않게 돼 실직소득은 더 늘었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을 해도 된다.
의료비 지출 위험에 대한 대비
노후생활비의 대부분이 의료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 의료비는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 요인 중 하나다. 위험관리 전문가들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4가지의 위험관리 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를 의료비지출위험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영옥씨의 위험이전 방법
최근에는 피보험자 연령기준으로 75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보험들이 민영보험사에서 출시되고 있다. 현재 별다른 병력이 없는 최영옥씨는 100세까지 암, 뇌출혈, 심근경색 및 골절 시 진단금이 보장되고 입원 시에는 약간의 입원비가 지급되는 보험을 가입함으로써 평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보완했다. 최영옥씨가 매월 부담하는 보험료는 월 10만원(10년 단위 갱신)이다.
최영옥씨의 위험보유 방법
최영옥씨의 의료비 지출에 대비한 자가보험(위험보유)은 납입이 완료된 종신보험의 적립금이다. 평생토록 보장하는 종신보험의 특성상 종신보험의 적립금은 다른 보장성 보험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00년대 중반에 최영옥씨가 가입한 종신보험은 유니버설 기능이 있어 보험을 해약하지 않고도 적립금을 인출할 수가 있다. 다만 적립금을 인출하면 인출한 금액만큼 사망보험금은 줄어든다. 대신 이자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최영옥씨의 위험축소 방법
최영옥씨는 평소 운동과 식단관리를 꾸준히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최영옥씨의 위험회피 방법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 논의되고 있다. 연명의료란 환자의 주된 병적 상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혹은 치료에 의해서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환자의 상황이나, 치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 무의식 상태나 집중적인 의학적 치료에 의존해야만 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비록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다는 전문가의 판단이 있어도 자식이 먼저 나서서 부모의 연명의료를 중단하자고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평소 의식이 있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밝혀둘 수 있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됨에 따라 2018년 2월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최영옥씨는 의료비 지출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100세 시대엔 자산관리도 평생 동안 해야 한다. 평생학습처럼 평생 자산관리 시대다. 평생학습이 정신적·심리적 강장제라면 평생 자산관리는 재무적·경제적 예방주사이자 영양제다.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억울해 앞으로 열심히 놀고 싶은데 자산관리를 평생 하라니…. 원통한가? 그러면 곤란하다. 평생 자산관리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는 당연한 일이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노후에 몸이 아파도 큰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초연해지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들고 하고 싶은 일 하기도 어렵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바란다. 특별한 사람의 대표적 사례는 톨스토이다. 그는 돈을 매우 싫어했으며, 평생 가난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해 한 번도 가난해진 일이 없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삶을 찾아 길을 떠났고 객사하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부자를 꿈꾸었다. 글도 돈을 벌기 위해 썼으며, 선금을 주지 않으면 작품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두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을까? 톨스토이는 돈이 마를 수 없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재산을 물려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를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건전한 삶을 살았다면 꿈을 실현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오! 저런!’과 ‘오! 이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오! 저런!’을 모릅니다.” 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다. ‘오! 저런!’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단말마처럼 ‘오! 이런!’을 내뱉는다. 리스크 관리는 바로 ‘오! 이런!’의 빈도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노후자산 관리의 핵심은 돈과 죽음의 경주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고갈 시점이 더 빠르냐, 생명의 소진 시점이 더 빠르냐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돈과 죽음의 랠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교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은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죽음의 경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돈은 빠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쉬어가는 법도 없다. 가끔은 키다리처럼 보폭이 커지거나 아예 도약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체조선수처럼 큰 점핑을 하기도 한다. 그 속도와 높이를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생명의 소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오! 이런!’
돈과 죽음의 경주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돈 뭉치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산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산관리는 소득과 지출 수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2040세대에게도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고, 5070세대에게도 수익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무게 중심이 2040세대는 수익률에, 5070세대는 리스크 관리에 둬야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070세대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5070세대는 현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면 월급이 끊어진다. 퇴직 후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 뭉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률 높은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키우려고 한 돈 뭉치는 더욱 쪼그라들고 생활은 불안해진다. 현금이 계속 유입되는 2040세대는 리스크가 터져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그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가격상승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른바 물타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드는 5070세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익률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둘째 급감하는 현금 유입에 비해 지출의 규모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고정비에 가깝고,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한다. 게다가 장성한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 설상가상이다. 노후가 길어진 만큼 지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연금이 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자산관리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기술의 수용 속도를 보면 라디오 38년, TV 13년, 아이팟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등이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에 대한 수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대를 가르는 시간 기준 역시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세대를 구분할 때 3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20년에서 10년으로 짧아지더니 최근에는 5년까지 짧아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4~5년이면 세대 간의 차이와 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곧 리스크다. 자산관리에서 리스크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