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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농부들 콧대 꺾은 도시농부 김재영씨
-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커다란 생채기를 남긴 IMF. 도시농부 김재영(金宰永·58)씨 역시 나라가 휘청거릴 만한 큰 위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원래는 인쇄기계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인쇄업이 사양산업이기도 했지만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할 수 없었죠. 그래서 결국 사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봤어요.” 원래 생각했던 것은 귀농이었다. 부모가 이미 가평에서 텃밭을 가꾸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기댈 곳은 그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 아이 교육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2010년에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했어요. 기왕 귀농을 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2014년에 졸업하고 나서는 좀 더 실무적인 교육과정을 찾았어요. 이론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인연이 닿은 것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도시농업전문가양성과정이었다. 그는 이 교육을 통해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을 배웠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미있는 스토리 중 하나는 그의 아내 이광희씨의 존재다. 이광희씨는 김씨와는 부부 이상의 상호보완적 관계로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도 함께 졸업하고 도시농업전문가양성과정도 함께 다녔다. 부부가 된 이후에 캠퍼스 커플이 된 셈이다. 도시농부가 된 뒤에는 사단법인 도시농업포럼이나 서울특별시도시농업전문가회, 서울특별시시민정원사회 등의 단체를 통해 주로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올해 초의 일이다. “아내도 도시농부다 보니 여러 가지 작물을 키워요. 주로 음식이나 차에 쓰이는 허브 종류가 많은데 습한 곳에서 자라는 작물은 옥상정원이나 텃밭에서 키우기 어렵다며 제게 이런저런 주문을 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모아 부분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데 적용하고 있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서울시에서 하는 도시농업경진대회에 한번 출품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출품자가 너무 적으면 관련 기관에서 애를 먹을 수도 있어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가 출품한 것은 다양한 장치를 활용한 아이디어 텃밭. 2층 구조로 설계해 아래쪽에는 햇볕이 직접 닿으면 안 되는 음지식물을 심고 위에는 양지식물을 심는 구조였다. 타이머와 빗물받이를 이용해 우수가 저장되면 식물의 생육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한쪽에는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보조 조명을 밝히는 전원으로 썼다. 해충기피 식물의 배치도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얻었다. 그의 아이디어 텃밭은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깜짝 놀랐어요. 아내와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것뿐인데. 예전에 기계 관련 사업을 했던 것이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됐죠.” 그의 텃밭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하는 생활원예 중앙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상에 뽑혔다. 전국의 농촌 출신의 진짜 농부들을 제치고 얻은 도시농부의 쾌거였다. “도시농업은 저처럼 쉽게 농촌으로 떠나기 힘든 은퇴자들에게 딱 맞는 직종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어요. 교육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 어떻게 교육을 받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주변에 살펴보면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은 생각보다 많아요. 거기서 한 걸음씩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 2017-09-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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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 한 학기가 끝나고 또 한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받는 것이 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쓰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다. 집에서 통학 거리는 얼마나 되며 어려움이나 건의 사항은 무엇인지도 쓰고,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도 쓰게 한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학생의 현재 상황이나 장래 진로를 상담할 때 꼭 필요한 자료다. 또 학생들을 빨리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 그만큼 학생과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겪는 일이지만 한 학기에 만나는 아이들만 줄잡아 100명에서 150명 정도가 되니 이름을 다 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 과목에 따라 반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 매 학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그 학생만의 특징을 생각하고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아 읽다가 의외로 놀란 부분이 있다. 이력서 양식에서 필수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보호자가 누구인지 쓰는 칸이다. 처음엔 별 의미 없이 몇 장을 넘기며 읽었는데, 읽을수록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쓴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략 통계를 내어보니 약 절반 정도가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썼다. 처음에는 ‘아빠가 없는 학생인가?’ 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이나 그러해서 개별 상담을 하면서 물어봤다. 놀랍게도 아빠가 없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라고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보호자를 ‘어머니’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필자도 과거에 많은 이력서를 써봤지만 보호자는 늘 ‘아버지’였다. 어머니라고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머니를 보호자로 쓰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서는 아버지가 늘 집안의 기둥이었고 가정을 대표하는 분이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권위적이었고 집안을 책임지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버지에 대한 위상이 지금은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보호자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상관이 없다. 꼭 아버지만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 흔들림 없던 위상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러한 현상은 아버지에 대한 권위가 옛날 같지 않다는 의미다. 농업을 하며 살던 시대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정보통신 시대가 되면서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으로 변하는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온 가족의 손이 필요했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절대 권한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에 의지하는 시대도 아니고 자녀들도 도시로 나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권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성평등의 사회 현상이 남녀에 대한 위상을 동등하게 만드는 원인도 있다. 남존여비 사상은 박물관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이제는 재산상속도 아들딸이 동등하다. 맏이가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호주도 아버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머니도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하고 옛날처럼 아버지의 권위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보호자 칸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를 쓰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들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자식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절이다. 필자도 궁금해졌다. 과연 필자의 아들딸들은 학교에서 이력서를 쓸 때 보호자로 누구를 쓰는지.
- 2017-08-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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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밭길에서, 다시 꽃길에 서다
- 여기에 잘 웃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인상은 얼핏 과묵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빙그레 슬며시 웃는 얼굴이다. 아내의 얼굴은 통째로 웃음 그릇이다. 웃음도 보시(布施)라지? 부부가 앉는 자리마다 환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귀농을 통해 얼굴에 정착한 경관이라는 게 아닌가. 엎치락뒤치락, 파란과 요행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극이다. 조물주는 낮잠을 주무시다 깨어 심심하면 인간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논다. 이랬다저랬다, 줬다 뺐었다, 횡포가 심하다. 그러나 인간은 뜻밖에도 견고한 작품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 내 앞에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곽성진(75)·이옥희(71)씨 부부 역시 일종의 날벼락을 맞은 바 있다. 그러나 끄떡없다. 쌩쌩하다. 도시라는 정글을 벗어나 참신한 시골생활을 누리고 있다. 산봉우리들이 덩실덩실 강강술래를 하는 소백산 자락, 옴팡진 산촌에 산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곽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결혼을 했으며, 사업으로 오랫동안 승승장구했다. 선박부품업체를 경영했었다. 알아주는 눈들이 많은 사장이었다. 그러나 인간사가 흔히 그렇듯, 그가 구가했던 꽃길은 어느 사이 가시밭길로 바뀌었다. 졸지에 파산하면서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지경이었다지. 곽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완전한 추락이었어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굶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리어카를 장만해 포장마차를 차렸어요. 부끄럽습디다. 아내가 용기를 주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해야 한다고…. 아내는 안주를 만들고 저는 손님들 시중을 들었어요. 다행히 장사가 잘됐어요. 잘나가던 시절에 일식집을 수시로 드나들던 가락을 살려 일식집 스타일의 안주와 술을 내놓았는데, 그게 적중했어요. 단기간 내에 소문이 좋게 났죠. 제법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그 자금으로 통닭가게를 인수해 운영했고, 그 역시 매우 번창했어요. 이후 아내는 일식집을 개업했고, 저는 건축업에 나섰어요. 그런데 이 건축업에서 다시 철저하게 무너졌어요. 두 번째 도산을 경험했던 겁니다.” 온탕과 냉탕을 거듭 넘나들었구나. 그 와중에 세월이라는 도적은 곽씨에게서 젊음을 앗아갔다. 쓸쓸하고 스산한 황혼의 동구에서, 그는 황급히 다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초원을 뒤덮은 풀처럼 수북한 걱정과 불안이 주야간에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이때 그의 등을 툭툭 치며, 임이시여, 걱정 마소서, 까짓것 다시 시작하면 그만 아니겠소, 라는 투로 당차게 재기를 독려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 이옥희씨였다. 시골로 가자고, 농사를 짓자고, 소박한 낙원을 일구자고, 아내는 그리 주동했다. 곽씨는 선선히 응했다. 강인한 기질과 낙천적 근성을 겸비한 아내의 민첩한 상황 판단력을 믿어서였다. 부부는 즉시 귀농을 결행했다. 그게 10여 년 전의 일. 결과는 성공적. 비결은 근면 혹은 부부애. 옛일을 회고하는 곽씨의 언사는 수굿해 온순한 성정이 묻어난다. 군내에서 손꼽히는 강소농(强小農) “여기 예천군 은풍면 산촌은 원래 아내의 고향입니다. 아내에겐 유난한 향수가 있었어요. 늘그막엔 고향에 돌아가 살자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사업 파산이 결국 아내의 숙원을 이루게 한 셈이니 사람의 일이라는 게 참 묘하죠. 물론 부담이 없지는 않았어요.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게다가 모든 걸 잃은 빈손으로, 과연 시골 정착이 가능할지 불안했어요.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거처를 마련하는 일, 농지를 구하는 일,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겠죠?” “아내의 친지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자립이 가능했어요. 특히 처남이 집과 배 과수원을 빌려주고 농사를 도와줘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었죠.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사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기도 했고. 주 작목은 배였어요. 생과 상태로 출하하기도 했지만, 배즙 가공이 그보다 세 배쯤 소득이 높다는 걸 알고 배즙 생산에 집중했죠. 요즘은 칡즙, 양파즙, 가시오가피즙, 헛개나무즙도 생산합니다.” “판로 확보는 어떤 방식으로 했죠?” “미국의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게 주효했습니다. 그는 한 개인이 평균 250명 정도와 인맥을 형성한다고 봤습디다. 여기서 그의 성공철학인 1대 250 법칙이 만들어집니다. 한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그와 연결된 250명에게 호감을 사는 것과 같다는 논리죠.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제 주변의 친척, 친지, 친구 등 지인들과의 유대 형성에 공을 들였어요. 그게 판매망이 되었어요. 현재 제 핸드폰엔 2300명쯤의 고객명단이 입력돼 있습니다.” 곽씨는 이른바 6차 농업을 구현하고 있다. 1차 농업은 생산을, 2차는 가공을, 3차는 체험이나 관광 농업을 말한다. 이 셋을 통합한 게 6차 농업이다. 그의 농장 ‘소백산 웰빙농원’은 예천 군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소농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이는 거저 얻어진 성취가 아니다. 지진을 겪은 사람은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지진이 우리의 발밑을 서성거리는 걸 안다. 심혈을 기울이고서야 재앙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곽씨 내외는 온몸을 써 농사에 매달렸다. 내외가 농장에 쏟은 비지땀이 몇 드럼에 달할지는 뒷산 신령에게 물어보면 알 일이다. 땀뿐이랴. 부단한 열정, 상황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정신, 패잔병처럼 여기는 눈총을 감수하는 뱃심까지 가세했을 테지. 예순이 넘은 빈털터리 늦깎이로 농사에 입문, 마침내 기세를 돋운다는 건 아마도 거의 이변이다. 곽씨는 은연중에, 노년의 귀농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대단한 소득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농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비유하자면, 작은 옹달샘 하나를 팠는데 거기에서 사시사철 샘물이 찰랑거린다 할까? 이 옹달샘은 계속 퍼 써도 마르질 않아요. 계속 샘물이 솟구치니까.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큰 분의 뜻이리라. 제가 천주교인입니다.” “머리 좋고, 의식 있고, 신념 강한 젊은 사람들조차 고전하는 게 귀농생활이라고들 해요. 정착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어떤 점이었나요?” “초기엔 괜히 왔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어요. 농사에 문외한이었다는 것, 그게 가장 난처했어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러나 일단은 생계 문제가 워낙 다급해서 잡념을 거두고 일에만 몰두했죠. 실로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만만한 게 하나 없었지만 다 헤쳐 나왔어요. 사실,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겁날 건 없었어요. 왜냐면, 형편이 더 나빠질 수는 없었으니까(웃음).” 자연과 교제하며 산촌을 노니는 부부 사람의 난제는 대체로 시간이 해결해준다. 슬픔도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그러나 생계의 문제는 질이 다르다. 굴러떨어진 밑바닥 자체를 디딤돌로 삼아 기어이 뛰어올라야만 한다. 귀농은 그에게 비상 발령이었으며, 결과는 승전이었다. 도시에 버텨 재기를 꾀하기란 어려웠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에게 도시와 시골의 장단점을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온갖 상품 시장과 문화가 구비된 도시의 편리성에 비하자면 시골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죠. 가령,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선 수십 리 먼 길을 달려 나가야만 하니까. 그러나 시골에선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명백한 장점이 있죠. 반면에 도시는 주로 인간끼리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고 말이죠. 경쟁과 소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골에 비해, 물적 조건이 중시되는 도시에선 정서적 안정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대한 단점이라 봐요. 경제상의 기회가 많다는 건 도시의 최대 장점이겠고.” “시골의 자연이 좋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적막 속에 사는 일은 때로 고역이지 않을까요?” “단골 고객이라든가 도시의 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와 식사와 대화를 즐기고 돌아갑니다. 그리운 벗들을 불러들여 회포를 푸는 일도 낙이에요. 고즈넉한 산촌에 살지만, 나름의 사교가 적절히 이뤄지는 것이죠. 갑갑증을 느끼진 못하고 살아요.”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에 잡음은 없었나요?” “이곳이 아내의 고향이라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에 용이했어요. 아내가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맹활약을 하기도 했죠. 농토에 질긴 애착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원주민들에겐 특유의 자기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존중해야 할 대목이라 봐요. 과거의 시골 정서라는 게 붕괴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죠. 그러나 음식을 이웃과 나누길 즐기는 풍습은 여전합니다. 몸에 밴 나눔의 문화랄까. 이런 면은 꾸준히 지속되고 전승되면 좋겠어요. 그런데 남모를 고독을 느끼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호남 태생인 제가 영남에서 산 세월이 55년인데 아직도 호남사람이라며 은근히 무시한다는 거! 선거철엔 아예 입을 봉하고 살아요. 무시무시한 분위기라서(웃음).” 산등성이를 올라 사과 농장으로 들어선다. 사나운 8월의 폭염이 사과나무 잎사귀에 쏟아진다. 나무 아래론 푸른 그늘이 짙어 땀을 씻을 만하다. 재기를 목표로 삼아 귀농, 어언 70대 복판에 접어든 부부는 여전히 일벌레다. 그러나 사람이 일만 하면 무슨 재미? 여흥과 일락(逸樂)이 없다면 반쯤은 허사다. 부부는 자연과 교제하는 일로 산촌을 노닌다. 아침 햇살에 새벽안개가 어떻게 해산하는지를, 밤이면 별들이 모여 무슨 잔치를 벌이는지를 유심히 관람하겠지. 감관이 열리고, 촉수가 파랗게 서겠지. 그것으로 어쩌면 범람처럼 덮쳐오는 노년기의 우수를 능히 해치울 수도 있으렷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너럭바위, 사계 내내 짙푸른 솔숲에 번번이 눈이 가고 마음이 움직여요. 나 같은 노년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에요. 그럼에도 이즈음엔 다 부질없다는 허무감이 듭니다. 애초의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는 만족감 뒤에 찾아오는 허탈과 허무. 무엇으로 그걸 극복할지, 요즘 자주 생각에 사로잡혀요. 제가 말이죠, 사후 묘비명을 정해두기도 했어요. ‘여기 아내를 몹시 사랑하다가 떠난 사람이 묻혀 있다.’ 이게 제법 근사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마저 부질없다 느껴지는, 이 허무감의 정체는 무엇일꼬.” 인생의 황혼에 귀농이라는 새벽길을 훤하게 열어젖힌 사람의 눈가에 그늘이 서린다. 허무의 심연을 무슨 수로 건너나. 그는 화두 하나를 집어든 셈이다. 파란하늘에 뜬 흰구름 몇 조각, 당싯당싯 산을 넘는다.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8-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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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떠나지 않고 내 집에서 ‘도시농부’ 될 수 있을까
- 누구나 노후에 작물을 기르며 텃밭을 가꾸고 싶은 작은 소망이 하나씩 있다. 밥상 위에 놓을 야채 몇 가지가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좋고, 주변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더 좋다. 여기에 약간의 용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을 등지고 시골로 내려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잘만 하면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바로 도시농업이다. 도시농업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자연이 도시화되고 상당수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 살면서 농촌이 가지고 있던 일부 농업 기능을 도시로 옮기고자 하는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다. 그녀는 백악관 텃밭에서 작물을 가꾼 경험을 바탕으로 이라는 책을 2012년에 발간했다. 미국은 자생적 도시농업의 대표적 국가로 각 주정부마다 시민들이 마음껏 경작을 할 수 있도록 세세한 조례를 마련해놓고 있다. 뉴욕 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 텃밭 조성을 위한 시민사회단체가 운영하는 그린 섬(Green Thumb) 프로그램을 시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 식량위기를 도시농업으로 돌파한 쿠바의 이야기나 시민농원법을 통해 공동체 텃밭의 운영을 권장하는 일본 역시 도시농업의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도시농업의 세계적 우수사례 서울 이렇게 많은 도시가 도시농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환경 문제가 있다. 도심의 생태계를 도시농업을 통해 복원시키고 거주 환경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로도 도시농업이 꼽힌다. 각종 텃밭 관리나 농업 관련 교육 등은 은퇴자 일자리에 적합한 분야 중 하나다. 특히 ‘땅’을 기반으로 한 농업은 지역 공동체 결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결국 지역에서 거주기간이 긴 중장년층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공동체 문화가 조성되고,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금상첨화다. 국내에서 도시농업에 대해 정책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다. 서울시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모범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도시농업 1.0 사업을 통해 도시농업이 정착될 수 있는 제반 준비와 함께 다양한 실험적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2018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도시농업 2.0’을 진행하고 있다. 1.0이 관 주도의 취미·여가형 도시농업이었다면, 2.0은 민관이 결합해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에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의 도시농업 사업이 잘 적용된 대표적인 곳이 바로 종로구 행촌권 성곽마을이다. 종로구 행촌동 일대 지역은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으로 그동안 돈의문 뉴타운 사업이나 재개발구역에서 소외되어왔다. 그러다 주거환경관리사업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면서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더불어 도시농업 시범마을로 특화돼 연중 자동화 재배가 가능한 IoT(사물인터넷) 스마트팜 조성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와 지역민들은 지역공동체 거점인 ‘행촌共터’를 3호점까지 개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농업을 위한 여러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해부터 육묘장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텃밭을 가꿔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득도 올렸다. 양봉도 시작해 꿀 800ℓ를 얻기도 했다. 올해는 도시농업의 특성상 작은 면적에서 높은 효율의 수확을 얻어내기 위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더덕, 감초, 어성초 등을 심은 약초밭도 만들었다. 농부 되기 위해선 교육이 우선 도시농부가 되는 과정은 무엇이 있을까. 도시농부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관련 교육과정을 통해 농업의 기초를 쌓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지역별 농업기술센터의 교육과정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의 경우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을 통해 매년 100명 이상의 도시농부를 배출하고 있다. 도시농업 교육기관을 표방하는 민간단체들도 상당히 많다. 일부에선 “교육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 서울시에서 꼽은 도시농업 시민단체만 해도 협동조합을 포함해 44개나 된다. 관련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지역에 따라 활성화된 곳도 있지만 조직적, 재정적 어려움도 상당하다. 이러한 교육 과정의 정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가자격증 제도인 ‘도시농업관리사’ 제도가 실시된다. 지난 3월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9월 22일부터 시행 예정인 도시농업관리사는 도시민의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도시농업 관련 해설, 교육, 지도 및 기술보급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또 개정안에는 도시농업의 범위에 ‘수목과 화초를 재배하는 행위’와 ‘곤충을 사육(양봉 포함)하는 행위’를 추가해 도시농업의 범위가 넓어졌다. 해설과 교육, 기술 보급도 도시농업 도시농업이 단지 주변의 작은 유휴지에 작물을 심어 가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텃밭학교나 스쿨팜 사업 등을 통해 작물에 대한 교육과 이를 통한 인성 교육을 추진하는 단체들도 많다. 도시농업포럼의 꿈틀텃밭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교장으로 부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부터 초등학생들과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각종 교육, 채취한 농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단순한 농업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텃밭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족 간의 잃어버린 대화를 회복하고, 아이들의 인성 발달 등 긍정적인 효과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직업으로서 도시농부는 어떨까? 아직은 글쎄다. 일부에선 “농작물을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강사로 활동하는 것이 벌이는 더 낫다”고 평가할 정도. 도시농업에서의 텃밭이라는 공간은 농촌의 대규모 농업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구조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일부 지자체나 주민단체가 고부가가치 농작물에 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농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이를 가공해 서비스 사업으로 연계해야 도시농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 2017-08-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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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속 자연·자연인 붐! 왜?
-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요즘 ‘청산별곡’을 부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해 귀농·귀촌한 사람도 50만 명에 달한다. 자연과 농촌, 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TV 화면 속으로 옮겨졌다. 자연·자연인 열풍이 TV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연과 농촌·어촌·산촌·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담은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들이 급증하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도 높아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으로는 오지, 산골 등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사연과 일상, 자연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는 MBN의 , 전국 방방곡곡 산간 오지를 찾아 그곳의 생활을 경험하는 TV조선의 , 오지를 찾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꾸미지 않은 삶과 생활을 보여주는 SBS의 등이 있다. 또한 도시생활에 지친 연예인들이 자연으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젊은 자연인(30~40대)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O tvN의 , 강호동·김희선·정용화 등 도시에서 사는 연예인들이 섬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섬사람들의 생활과 일상을 경험하고 도시인이 생각하는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올리브TV의 , 농촌이나 어촌에서 생활하며 먹거리를 직접 구해 식사를 해결하는 tvN의 등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주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여행이나 체험 등 다양한 소재·형식과 결합해 만든 프로그램들도 양산되고 있다. 외국의 오지 사람들을 만나 용기, 지혜, 위로를 얻는 MBC의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생활하는 이효리·이상순 부부 집에 일정 기간 민박을 하며 바다와 자연을 접해보는 JTBC의 , 김병만·이상민 등 연예인들이 어촌과 바다를 찾아 혹독한 미션을 수행하며 어촌 생활과 먹거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SBS의 등도 자연·자연인의 모습과 의미를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귀농·귀촌인이 많기로 소문난 충남 홍성군 홍동면 사람들의 일상을 방송한 KBS의 (6월 25일 방송분)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도 최근 들어 자연인과 귀농·귀어·귀촌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농촌·어촌·산촌의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전달해주는 KBS의 은 근래 들어 코너도 다양해졌고 시청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왜 이처럼 자연과 자연인, 귀농과 귀촌 등을 다룬 TV 프로그램들이 급증하는 것일까. 의 박상혁 PD는 “많은 사람, 특히 도시 주민이 일, 건강(힐링), 가치관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산·숲·바다·섬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이 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욕구와 관심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증가 원인이 됐다”라고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하고 돈과 물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끼거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꿈꾸며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 것도 자연과 자연인 관련 프로그램의 증가를 초래했다. 또 환경 변화와 의학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지만, 은퇴시기가 빨라져 인생 2막을 열어야 하는 장·노년과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 등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 중 여생을 농촌이나 어촌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자연·자연인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에 비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주거비와 생활비도 저렴해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된 농어촌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현상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부부가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은 따로 하는 졸혼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가족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던 자연인의 삶을 사는 사람도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프로그램에 수용하는 방송 제작진의 움직임이 자연과 자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양산으로 연결된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귀농어·귀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을 선택한 사람은 49만 6100명에 달했다. 도시에서 읍·면으로 이주한 사람 중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귀농인은 2만 600명, 읍·면으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귀촌인은 47만 5500명이었다. 자연과 자연인을 다룬 프로그램은 대중,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힐링과 위로의 시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귀농과 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는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박문수(57)씨는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시의 피곤한 일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노년에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내려가 생활하고 싶은데 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과 자연인, 농어촌과 농어민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의 폐해도 적지 않다. 이들 내용이 농어촌, 농어민의 현실과 실상이 거세된 것들이 주류여서 시청자에게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에서 미디어가 농촌 현실과 농민의 노동을 도외시한 채 농촌을 목가적 이상향으로 그리거나 촌스러운 곳으로 취급한다고 비판했듯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이상적인 삶의 전형으로만 현시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TV 프로그램에서의 농어촌과 자연은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 무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TV 속 농어촌에는 심화하고 있는 도시와 농어촌의 양극화 문제, 1년 365일 일해도 빚만 느는 현실, 악화하는 가족 해체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2017-08-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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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 통해 천연염색가로 변신하다
- 늙음 뒤엔 결국 병과 죽음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애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뉴스는 비 오듯 쏟아진다. 비곗살처럼 둔하게 누적되는 나이테에 서린, 쓸모 있는 경험과 요령을 살려 잘 부릴 경우, 회춘과 안락을 구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삶의 후반전, 그 인생 2막을 열어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에 달려 있다. 이 풍진 세상의 사이즈는 간장종지 같은 게 아니고 바다처럼 크넓다. 타성과 습성에 안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전혀 새로운 삶의 파노라마 속으로 족히 여행하거나 방랑할 수 있으며, 그럴 때라야 세월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부질없이 낭비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대전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분주하게 살았던 진연순(57)씨 부부는 귀촌으로 인생 2막의 첫발을 내딛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의 시골마을이다. 진씨네 집을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은 매우 준수하고 청결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너른 살림채와 푸르른 농장 그 어느 구석 한 곳에서도 먼지나 잡풀을 찾아보기 힘들다. 난장판에 가깝도록 사물들을 널브러뜨린 채 살아가는 나에게는 거의 충격적인 풍경이다. 비지땀을 흘려 밤낮없이 근로를 하고, 청소를 하고, 미화작업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리게 되어 있는 성향의 부부가 사는 집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사실 이 부부는 바지런하기가 헤집어놓은 개미굴 속의 병정개미와도 같다. 근면과 성실로 지상에 태어난 자의 사명을 다하길 습관처럼 거듭해 도시에서의 학원사업을 번듯하게 꾸려왔다. 그러다가 6년 전에 다 정리하고 후다닥 시골에 입장했다. 시골의 무엇이 이 부부를 호명했을까? 진연순씨에게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남편이나 저나,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선 스트레스나 피로를 덜 느끼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래서 10여 년 전에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농토를 구입해 주말농장으로 활용했어요. 서둘러 귀촌하는 대신 미리미리 준비를 했던 거예요. 저희 슬하엔 남매가 있는데요, 이 녀석들이 커 독립을 한 시점에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비로소 이곳으로 완전한 이주를 했어요. 시골 정착이 비교적 순조로웠던 건 그렇게 나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수강생이 수백 명에 달했다죠? 멀쩡하게 잘 운영되던 학원을 정리하기 아깝진 않았어요?” “사실 결혼하면서부터 부부가 함께 공들여 키워온 입시학원이라 애착도 있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모로 힘에 부치더라고요. 제가 전공인 수학을 강의하며 운영했는데요, 아이들은 나이 든 아줌마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입시철이면 피를 말리는 긴장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늘 시달렸죠. 귀촌을 하고 나서는 그런 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요.” “저는 말이죠, 수학여행은 좋아했지만 수학은 참 싫었어요(웃음). 인생을 과목에 비유한다면, 수학 선생님이었던 당신의 인생은 어떤 과목을 닮았다고 보시죠?” “흠. 도덕? 제가 원래 어떤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덕적인 성격이에요. 모범생이라고 할까?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자유분방이라는 걸 용납하기 힘들었고요. 그런데 시골에 와서는 제가 천연염색에 푹 빠져 삽니다. 염색이라는 게 공예의 한 분야이고, 이른바 ‘끼’라는 게 요구된다는 걸 자주 실감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에게도 뭔가 숨은 끼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웃음).” “남편은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아내는 천연염색을 하고, 매우 이상적인 배합으로 보여요. 처음부터 그러자는 발상을 했을까?” “아녜요. 제가 일찍부터 천연염색에 취미가 있긴 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남편의 농사 역시 처음엔 깨끗한 먹거리를 길러 식구들 건강이나 챙기는 정도의 소소한 수준에 불과했죠. 그런데 일이 커졌습니다.” 천연염색은 색채의 향연을 즐기는 일 취미는 삶에 재미와 흥미를 보태준다. 권태롭거나 지겨운 일상에 생기를 부여한다. 지나친 탐닉으로 허영과 낭비의 골짜기로 빠질 수도 있는 게 취미생활이다. 진연순씨의 취미는 썩 근사한 방향으로 비약했다. 대전에 살 때부터 틈틈이 천연염색 공부를 해왔던 그녀는 시골에 살며 한결 더 진도를 냈다.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게 하나의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는 효과를 자아낼 줄은 자신조차 미처 몰랐다지. 취미로 사귀었던 천연염색이 어느덧 직업으로 진화한 거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이 기꺼운 변동! 이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인생을 만족스러운 쪽으로 끌고 가는 행운아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귀촌 초기에 저는 골방 하나를 놀이터 삼아 혼자 천연염색이나 즐기며 지냈어요. 당시엔 사실 시골생활이 외롭고 힘들었거든요. 그걸 견디게 해준 게 염색이었어요. 남편은 이 마을이 고향입니다. 낙향한 셈이죠. 마을의 많은 주민들이 남편의 친척이나 친지, 선후배들이에요. 그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농사일도 거들고, 수많은 단체에도 가입하고. 아무튼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았어요. 저는 외톨이처럼 그저 집에 틀어박혀 염색작업에 간신히 마음을 붙이고 지냈어요. 그러면서 서서히 실력이랄까, 솜씨랄까, 그런 게 늘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붙으면서 염색작업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블로그를 본 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염색 체험학습 의뢰를 해왔습니다. 그게 직업화의 신호탄이었죠.” “단기간에 널리 알려지고, 순조롭게 자리 잡힌 건가요? 천연염색을 직업으로 삼아 체험장을 운영하는 귀농인들이 가끔 있지만 시원치 않다고들 해요.” “제가 운이 좋은 걸까요? 빠르게 자리가 잡혔어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학교와 청소년 단체, 가족, 성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강을 해요. 시설도 점차적으로 늘렸어요. 실내외 교육장은 물론, 전래놀이 체험장, 잔디구장, 염료식물 재배장 같은 걸 구비했죠.” “천연염색의 매력은 뭐죠?” “순수하게 자연에서 얻어온 식물 재료들로 색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자연물에서 갖가지 신비한 색들이 나온다는 게 마음을 사로잡아요. 나뭇잎에서는 그냥 연둣빛만 나올 것 같지만 노란색이나 빨간색도 나옵니다. 쪽풀에서는 가슴 시린 파란색이 나와요. 마치 마법처럼 신기해요. 매염제를 사용하면 더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요. 염색으로 수입까지 발생한다는 점도 매력!” “금상첨화?” “일거양득!(웃음)” ‘라온뜰 농촌문화체험농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진씨 부부의 거처에 말이다. 진씨가 천연염색으로 자신의 취향과 희망을 일구듯이, 남편 박용규(59)씨는 아로니아 농장에 심혈을 기울인다. 귀촌 즉시 사업이라는 걸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단다. 이왕 시골에 살 거라면 유유자적까지는 아니라도 골치 아픈 속세의 일에서 해방돼 취미나 삼삼하게 즐기며 휘적휘적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흥청흥청 주야로 신바람 나게 노니는 일에도 대찬 내공이 필요하거니와, 부부의 적성 자체가 ‘놀자’ 과(科)가 아니라서 무위(無爲)란 그들의 소관사항이 아니었으렷다.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하는 비결 부부는 도시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일로 뛰어들었다. 아내는 천연염색을 또 하나의 배필처럼 감미롭게 맞이했고, 남편은 몸에도 좋고 벌이에도 유망하다는 아로니아 재배에 열애하듯 뜨겁게 뛰어들었다. 말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라는 남편 백씨는, 근로를 숭상하고 농사를 애호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그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농업 사업 특유의 경쟁에서 낙오될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타고난 근면으로 안착에 이르렀다. “남편의 농사엔 실패가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천마를 심었다가 실패했고, 왕벚나무를 심었다가 타산을 맞추기는커녕 포클레인으로 다 뽑아냈고요, 검정콩도 심어봤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했어요. 이후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은 아로니아 재배로 비로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한때 블루베리의 채산성이 좋았지만 너도나도 덤벼드는 통에 과잉 생산이 돼 이젠 폐업하는 농가가 속출한다고 해요. 아로니아의 수익성은 아직 안정적일까?” “아로니아도 이미 과잉 생산에다 수입산까지 마구 들어오면서 위기에 직면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해 단골 소비자를 확보해야만 해요. 남편이 생산하는 아로니아는 친환경 무농약 인증과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인증’을 받았어요. 덕분에 순항하고 있어요.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전량을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고요.” “시골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권장할 생각은 있나요?” “농사란 참 힘들어요. 아아,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엔 풀인지 모종인지 구분조차 못해 다 뽑아냈어요. 지금은 남편이 농사를 전담하지만, 남편 역시 고생이 많아요. 초심자라면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해요. 남들 말만 듣고 작물을 선택하는 건 필패의 비결이고요. 처음 몇 해의 부진을 감당하려면 자금력이 있어야 해요.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염색의 경우에도 노동과 시간과 수고가 필요해요.” “귀촌을 후회하진 않았어요? 도시도 매력적인 삶터인데 공연한 일탈을 했다는 의기소침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는….” “후회할 정도로 바보스런 선택을 하진 않아야죠. 가장 힘든 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었어요. 남편은 빨리 적응했지만, 저는 너무도 더뎠어요. 혼자 집에 박혀 염색만 했으니까. 이웃들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칫 왕따 당할 상황이었죠. 그래서 태도를 바꿨어요. 마을 아줌마와 할머니들에게 염색을 가르쳐드렸고, 염색한 손수건을 선물했어요. 때론 식사 대접도 했고요. 이후 서로 흐뭇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어린애는 볼수록 예쁜 짓을 하지만, 나이를 푸지게 먹어가면서는 미운 짓만 골라 하기 십상이다. 황혼의 광야에 서서, 마음 문고리를 안으로 닫아걸고 나 잘난 멋에만 안주하고서도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할 비결은 거의 없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아마도 그게 길이겠지.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8-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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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과 인생까지 가꿔주는 직업 정원사를 아시나요?
- 사실 정원사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좁은 주거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국내 대도시의 특성상 대다수의 한국인은 정원이 없는 주거 형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사다리에 올라 큰 나무의 모양을 전정가위로 다듬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떠오르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작은 정원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공원이나 화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사는 최근 주목받는 직업이 되고 있다. 콘크리트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도심 속에 언제부턴가 공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실제 숫자로도 확인된다. 올 3월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서울 시내에 새로 조성된 공원·녹지는 197개로 나타났다. 총 면적은 188만㎡로 여의도공원의 8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도시 내의 녹지를 넓히려는 목적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지역 주민의 심리적 안정이 가장 크다. 실제로 녹지 공간의 유무는 노령층의 뇌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해외의 연구사례도 있고, 올 초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녹지가 적은 지역에 살면 고지혈증에 걸릴 가능성이 1.5배 높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심의 폭염이나 열대야와 관련이 있는 열섬현상을 막기 위해서도 녹지를 계속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녹지 공간의 확대는 결국 관리 인력의 수요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 직업이 바로 정원사다. 각 지자체에서 앞다퉈 양성 정원사에 대한 개념이 최근 들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 정원이나 공공기관의 녹지공간을 관리해주는 개념이 컸다. 조경은 건설과 함께 이뤄지고 정원사는 관리만 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원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 경기도와 함께 시민정원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신구대학교 식물원 박종수 과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에는 정원사의 개념이 확대돼 정원 조성을 위한 디자인과 식물의 구성을 기획하고, 식수(植樹)와 관리 능력까지 두루 갖춘 사람을 말하고 있어요. 정원의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엔 정원사가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요.” 도시의 녹지가 늘어나면서 각 지자체에는 시민정원사 혹은 시민가드너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화초 등 식물의 생육에 대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대신, 일정시간 이상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를 통해 이들을 지역주민을 위한 녹지 공간 형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경우 특별한 자격증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국가기술자격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조경기능사, 원예기능사, 화훼장식기능사가 있다. 최근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농업과는 개념이 다소 다르다. 도시농업이 ‘생산’에 초점을 맞춰 건물 옥상 등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정원사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녹지를 구성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지자체는 경기도다. 경기도는 2013년 제1기 시민정원사 84명의 인증을 시작으로 경기도 시민정원사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는 오는 2023년까지 3000명의 시민정원사를 배출할 계획이다. 경기도에서 시민정원사가 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기본 교육과정인 조경가든대학을 이수하거나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졸업해야 지원이 가능하다. 대신 경기도민에게는 75만원의 교육비 중 50만원을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시민정원사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년간 96시간의 자원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들은 수료 후 지자체에서 관리가 필요한 녹지로 파견돼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일부 교육기관에 조성된 ‘학교숲’이나 마을의 공한지나 자투리땅의 공원화 등에 참여한다. 땅의 공원화는 범죄율을 낮추는데도 도움이 돼 각 지자체에서는 공원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물의 식생에 관한 교육이 청소년의 교화에도 긍정적 역할을 해서, 전북경찰청 등 일부 기관에선 지역 교육기관과 함께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시민정원사 혹은 시민가드너 교육과정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각 지자체별로 호칭도 다르고 교육시간이나 운영방식도 지역 현실에 맞추다 보니 제각각이다. 그러나 지역에 자원봉사 형태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비슷하다. 교육 후 소득 기대는 아직 ‘흐림’ 화초의 재배나 관리 등은 시니어의 주된 관심 분야이다 보니 실제 교육과정에서도 수강생들이 대부분 은퇴자들이다. 한 지자체 교육 담당자는 “정원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가 많다 보니 독특한 교육문화가 형성되고, 커뮤니티의 결속력도 상당합니다”라고 말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경쟁률이 높은 곳도 있다. 일부 지자체는 경쟁률이 2대 1에서 3대 1가량이나 되어 교육생보다 대기자 수가 더 많다. 재수, 삼수가 기본인 곳도 있다. 박종수 과장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정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이기 때문이죠. 또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꽃의 크기, 키, 화색(花色)까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원에 흔하게 심는 팬지만 해도 50종이 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교육 효과는 상당하다. 정원사 교육은 생활 속에서 활용이 쉽기 때문에 개인 정원에서 화초부터 실습해볼 수 있다. 또 심리적 변화는 덤이라고 귀띔한다. 앞으로 정원사의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녹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다 다양한 활용 방안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 각 지자체에서 도시정원사 자격을 앞다퉈 도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대구시의회에서도 시민정원사 인증제 도입이 발의된 상태다. 문제는 시민정원사를 바라보는 지자체의 시선이다. 늘어나는 녹지나 공원에 비해 관리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한정된 예산으로 ‘열정페이’만을 강요하는 구조로 정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부분의 작업을 자원봉사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직업으로서 정원사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현장의 교육 관계자들도 아직까지 취업이나 창업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수목관리자로 일부 취업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자리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소수이지만 화초 판매와 생육 방법 교육을 함께하는 플라워카페를 창업하는 사례도 있다.
- 2017-08-0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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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버스데이(HappyBusday)로 농촌 체험 떠나요
- 해피버스데이라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해피버스데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 교육문화정보원(줄여서 농정원이라 부른다) 주관으로 도시와 농촌의 동행이라는 목표로 이루어지는 농촌 체험 브랜드를 말한다. 하늘색의 산뜻한 차에 귀여운 로고가 찍혀 있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신나는 팸투어다. 농촌체험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마지막 주 토요일에 농림축산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어른은 1만 원, 어린이는 5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도시를 떠나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배우고 점심식사와 선물도 한아름 받을 수 있는 보람 있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해피버스데이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화창한 6월의 마지막 주에 필자는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6차 산업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목적지는 6차 산업의 성공으로 마을 사람의 단합이 훌륭하다는 충남 당진의 백석 올미 매실한과 영농조합 마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당진의 유명인사인 심훈기념관에도 들린다니 학창 시절 심훈 작가의 소설 를 읽고 가슴 설레던 날이 생각나 기대되었다. 오전 9시 30분 양재동에서 집합하여 참석자 모두 빨간 글씨로 해피버스데이라는 로고가 찍힌 흰 티를 받아 갈아입으니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화기애애한 기분이 느껴졌다. 같이 떠난 잘생긴 스태프들의 유쾌하고 친절한 안내로 더욱 즐거운 체험이 되었는데 6차 산업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농촌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건 1차 산업이고 농산물 가공은 2차 산업이다. 그리고 체험과 관광 서비스인 3차 산업을 합쳐 6차 산업이라고 한단다. 두 시간쯤 달려 충남 당진 ‘할매들의 반란’으로 유명한 백석 올미 영농조합에 도착했다. 곳곳에 귀여운 할매 캐릭터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김금순 대표님의 인사와 한과 마을로 발전한 내력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고향인 이곳으로 귀농해서 동네 사람들과의 의기투합해 매실을 사용한 명품 한과를 만들어 판매하기까지의 어려웠던 과정과 성공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랑스럽게 소개해준 할매 사장님들의 수줍은 미소도 친근하게 다가왔고 80세인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 높은 연세인데도 행복해 보였다. 할 일이 있고 소득이 있어서일 것이다. 58명의 할머니 사장님들은 올해의 매실한과 매출 목표를 7억 원으로 잡고 있었다. 수익금으로는 백석 올미 힐링타운을 설립하는 게 꿈이라 하는데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한과 공장이 많은데 올미마을에서는 모든 재료를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로만 만든다고 한다. 한과를 튀기는 기름도 하루만 사용한다니 그래서 맛으로나 영양 면으로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 만들어질 것이다. 대표님의 올미마을 소개가 끝나고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밥과 반찬은 정말 맛있었다. 모두 근처에서 따온 가지와 호박 등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들었고 고기만 사왔다고 한다. 점심을 마친 후에는 블루베리 수확 체험을 하러 나섰다. 토실하고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를 연신 따서 입에 넣기도 하고 나누어준 플라스틱 통에 열심히 담았다. 달콤한 블루베리를 한가득 따서 선물로 받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다시 한과 체험장으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명품 매실한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튀겨진 한과를 이곳에서 만든 조청에 넣어 밥풀을 묻혀 한과를 만들었다. 맛보고 남은 한과는 다들 나누어 가져왔다. 매실 원액도 한 병씩 선물로 받아드니 큰 횡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이곳에는 따로 마련된 판매장에서는 조청이나 한과, 매실 제품 등 다양한 농산물을 팔았다. 많은 분이 진열된 상품을 구매했고 필자도 직접 만들었다는 조청을 샀다. 김 대표님과 할매 사장님들의 따뜻한 인사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심훈기념관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웠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 계몽에 힘쓴 심훈 선생의 소설 를 감명 깊게 읽었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채영신과 박동혁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는 ,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읽으며 감회에 젖었다. 해피버스데이를 타고 블루베리 수확과 매실 한과 체험을 한 오늘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올미마을 할매들의 반란이 성공적으로 이어져 그분들이 바라는 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팸투어를 마쳤다. 우리 시니어들에게도 추천한다. 가족과 함께, 손자 손녀를 데리고 다녀오면 즐거운 하루 나들이가 될 것이다.
- 2017-07-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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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형 축제, 새만금 노마드 페스티벌
- 대한민국 정책기자단에서 색다른 취재를 하러 팸투어를 떠났다. 전북 새만금에서 지구촌 사람들이 모여 캠핑하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필자가 직접 캠핑하는 건 아니지만 축제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가슴이 설레었다. 6월 2일부터 4일까지 금, 토, 일에 전북 야미도리 새만금 오토캠핑장에서는 캠핑형 이색축제로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이 모여 즐기는 축제 한마당이 열렸다. 축제의 명칭은 새만금 노마드 축제이다. 노마드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던 필자는 미리 검색해 보았더니 라틴어로 유목민이란 말이고 캠핑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형태의 축제라 한다.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은 황무지에서 즐기는 캠핑마을, 나를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 노마드 아바타 설치예술, 어울리며 소통하는 월드뮤직, 설치 예술을 불태우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불의 제전 등이 펼쳐진다고 한다. 축제장에 가기 전에 먼저 새만금 홍보관을 방문했는데 가는 길의 긴 방조제는 참으로 인상 깊었다. 한쪽은 바다이고 방조제를 쌓음으로써 갈라진 다른 편은 호수가 되어 서로의 물빛이 달랐다. 이렇게 방조제를 쌓을 때 얼마나 큰 어려움과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홍보관에서 ‘새로운 문명을 여는 도시 새만금’이라는 동영상으로 본 기록은 매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해방 이후 모든 것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빈번한 가뭄과 1970년대 초에 불어 닥친 세계적인 식량부족으로 전국적으로 간척사업지역을 조사해 새만금간척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국민의 배고픔과 먹을거리를 해결해 보자는 순수한 구민목적의 농지조성사업으로 기공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만금의 사업은 정치, 경제, 문화적인 여건 변화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산업과 관광, 농업과 환경, 과학과 신재생 산업 등을 활용하는 목적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홍보관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들렸다. 할아버지는 간척사업에 참여했던 분으로 손자에게 그 날의 힘들었고 이루어냈을 때의 기쁨을 잔잔히 전해 주셨는데 뒤따라가며 듣던 필자도 감동을 받았다. 홍보관을 둘러본 후 축제의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지나는 방조제는 양쪽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손꼽히는 드라이브코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펼쳐졌다. 노마드 축제장에 도착해보니 정말 황무지 같은 벌판이 무척이나 넓게 펼쳐졌다. 확 트인 시야에 들어온 파란 하늘과 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곳이 축제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국제적인 행사답게 지구촌 여러 나라의 외국인이 삼삼오오 지나며 즐거운 듯 웃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넓은 축제장의 한쪽에 수많은 캠핑할 수 있는 텐트가 있고 운영진의 막사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이나 독특한 공예품을 파는 부스가 늘어서 있는데 콩고, 터키, 일본, 벨기에, 베트남, 멕시코,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먹거리와 장신구를 판매하고 있으며 서툰 우리 말로 자신의 가죽 팔찌를 열심히 판매하려는 콩고 청년도 재미있었다. 노마드축제는 참가비가 5만 원이라 한다. 그중에서 3만 원은 축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돌려주어 캠핑하는 동안 필요한 음식물이나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있다. 우리 정책 기자에게도 얼마간의 쿠폰이 지급되었는데 필자는 7천 원의 쿠폰을 받아 잘생긴 미국 청년의 부스에서 뉴욕 핫도그를 사 먹었다. 축제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짚으로 저마다 독특한 허수아비를 만들며 즐거워했고 어떤 작품이 가장 멋진지 콘테스트도 있다고 하며 마지막에는 모두 불태우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워낙 넓은 캠핑장이지만 그래도 많은 짚 허수아비를 태우며 사고는 없을지 걱정되었는데 소방차와 경찰차 등 만반의 준비가 있어 괜찮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인 달집태우기가 연상돼 참가한 많은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를 알릴 기회도 될 수 있어 좋은 취지로 느껴졌다. 한쪽에는 커다란 축제 무대가 있어 한창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었고 드론 체험하는 곳엔 긴 줄이 섰다. 즐거워 보이는 한 가족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세종시에서 왔다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였다. 다양한 축제가 있고 이야깃거리도 많은 노마드 축제가 즐겁다며 아이도 재미있어해 참석하길 잘했다는 소감을 말했다. 이렇게 넓게 펼쳐진 장소에 세계인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새만금 노마드 축제가 더 많이 홍보되어 많은 지구촌 사람이 참가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알리고 더욱 큰 성황을 이루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 2017-06-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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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원리주의의 폐해가 낳은 기아
- 스위스 출신의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의 를 읽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만 생각해, 상대적 빈곤과 불행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장 지글러의 글은 깨달음 이상으로 다가오는 분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구별에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매일 3만5000여 명의 아이들이 굶주린 채 죽어가고 있으며 10억 명 이상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촌에는 120억 명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지만 한쪽에선 굶어 죽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지구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인도적 지원과 도움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굶주린 아이들의 부모나 민족성이 게으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 지구촌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식량을 버리고 있고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당장 굶주리고 있는 목숨보다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앞서고 있습니다.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일도 강대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이익이 앞서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른 문제들이 즐비합니다. 족벌과 군벌로 무장된 분열이 정의를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적인 식량 지원은 아이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총칼로 무장한 군벌의 손에 들어가 또 다른 전쟁의 물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을 기아로 몰아넣는 이 증상을 우리는 학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대량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인간이 굶주리고 있는 동안 엄청난 양의 옥수수가 소의 먹이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3세계의 주식인 곡물은 투기 대상이 되었으며, 남쪽의 농경지는 헤지펀드의 약탈에 남아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또 자국의 탄소연료를 줄이기 위해 농업연료를 생산한다는 미명 아래 태워 없애는 옥수수는 셀 수조차 없습니다. 세계의 식량 자본가들이 시장에서 자행하는 농업 덤핑은 제3세계의 농업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밤잠도 안 자고 농사를 지어도 덤핑가로 들어오는 수입산에 밀려 제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도 빈민의 편이 아닙니다. 매년 약 600만 헥타르의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73%가, 아시아 대륙의 71%가 사막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수많은 인구가 식수가 부족해 환경난민이 되어 고향을 등진 채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사막화뿐이 아닙니다. 말레이시아, 콩고, 가봉 그리고 아마존 일대에 남아 있는 원시림이 매년 수백만 헤타르씩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이 들어서고 목재 판매회사들이 불법으로 벌채해서 숲을 마구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허파인 이 원시림의 파괴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세계적으로 환경난민이 2억5000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사이에 그 숫자는 10억 명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환경난민은 도시로 몰려들어 정착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60% 이상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게 됩니다. 문제는 도시인구의 증가가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구가 판자나 비닐, 녹슨 함석으로 지은 초라한 빈민촌에서 살게 됩니다. 환경난민의 희망은 도시에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해진 일자리도 거주지도 사회보장 자격도 없이 살게 됩니다. 그러니 정기적인 수입도 없고 의료 혜택은 물론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강대국의 음모도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자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는 사회 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거대한 행정조직을 축소해 부정부패를 줄이고 자치구역을 설정해 탈중앙집권화를 실시, 도로건설과 수도사업 그리고 보건의료사업 등을 자치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철도를 건설하고 인두세를 폐지하였습니다. 토지를 국유화하여 경자유전을 실시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농업 생산량이 크게 늘었으며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러나 부르키나파소의 성공은 정치 부패에 시달리던 이웃 국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정권의 꼭두각시 정권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상카라의 개혁을 별로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음모에 상카라는 결국 동지였던 참모에게 살해당했고 부르키나파소는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부패는 만연했고 농민은 절망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 기근, 종족 분쟁 등에 대해 선진국이나 국제원조기구들은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저자인 장 지글러는 이 책에서 토지 개량도, 사막화 대책도, 농업 지원도 결국은 응급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장 지글러는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인 신자유주의,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을 바로잡지 않고는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는 선진국에서 만든 경제원리이자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기아는 선진국의 경제논리에 의해 탄생한 것일까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 2017-06-09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