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금강 소나무 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숲길 1호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준비할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아서 숲에 들려면 삼림보호법에 의해 철저하게 예약제다. 누구나 마음대로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트레킹 가능 인원은 숲해설가를 동반한 하루 80명만 탐방할 수 있다.
숲은 조용했다. 걷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와 간간히 이어지는 해설가의 설명이 소리의 전부다. 물론 새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자연의 소리는 당연히 배경음이다. 숲해설사가 자기를 앞지르지 말고 탐방로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멧돼지가 나오기도 한단다.
금강 소나무 숲길은 다섯 구간이 있다. 12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십이령바지게 길이란 이름도 있다. 울진과 봉화로 꼬불꼬불 열두 고개의 먼 길을 오가던 바지게꾼들이 오가며 장사를 하던 길이다. 소금과 미역, 간고등어, 그리고 피륙과 곡물을 등에 진 보부상들의 애환이 깃든 길이고 김주영의 소설 '객주'도 이런 이야기들이 바탕이 된 곳이다. 발걸음마다 스토리가 있는 길을 따라 걷는 맛이 쏠쏠하다.
숲에 드니 기분이 상쾌하다. 울진 금강송 숲길은 다른 곳보다 피톤치드가 5배라고 하는데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가다가 멈춰서 듣는 숲 이야기와 소나무에 얽힌 내력을 배우며 비로소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 소나무의 성장이나 수난을, 꽃과 나무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금강송은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숲해설사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들으며 숲에 드는 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시킨다. 손에 들고 있던 장대로 멀리 가리키며 못난이 소나무라고, 미남송이라고 알려준다. 암벽에 뿌리내리고 긴 시간 굳건히 자라온 잘난 나무다. 대체로 평이하고 짧은 코스인데도 마지막 오르막은 만만찮다.
미인송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 독야청청 굳세게 그 자리를 지키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잘 생긴 소나무. 우람하고 지조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두 팔 벌려 미인송을 안아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귀하신 몸을 영접하고 땀을 식히니 하늘에서 쨍하고 늦가을 볕이 비춘다.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소나무 숲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 자연이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더니 이렇게 다가가 만나보는 귀한 가치를 느껴본다.
내려오며 비로소 막바지 가을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네 하듯이 숲엔 단풍이 절정이다. 걷느라 수고했다 쓰다듬듯 그 길을 걷는 머리 위에서 자연은 최상의 색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탐방 코스:산림수련관 집결→500년 송→못난이송→미인송→제2탐방로→산림수련관(5.3km/3시간 소요)
▶장소/시간: 울진군 금강송면 대광천길 83/오전 10시
▶운영 예정일: 2019. 4.20 ~11.30(매주 화요일 휴무)
미국 역시 고령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미국 연방 센서스국은 2035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18세 미만 인구를 추월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고령화는 국가 예산의 집행이나 경제 성장 등 사회 곳곳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증환자의 효과적인 진단, 치료, 간병은 국가적인 숙제가 됐다. 최근 미국에선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눈 검사로 치매 진단 시대 열리나
캐나다의 옵티나 다이아그나스틱스(Optina Diagnostics) 사는 5월 8일 자사의 망각 촬영 장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 장비(Breakthrough Device)로 지정됐다고 발표했다. 눈 검사만으로 치매 발병 여부를 알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은 셈이다.
이 기술은 망막을 촬영한 영상을 초분광 영상(hyperspectral image)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분석해 환자의 뇌에서 치매를 일으키는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여 있는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전까지는 베타아밀로이드와 반응하는 약물을 투여 후 컴퓨터 단층촬영(CT)을 거쳐야 베타아밀로이드의 분포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비용 투자와 시간이 소요됐었다.
이 회사의 CEO 데이비드 라포인테 (David Lapointe)는 “망막진단 장비가 영상 분석기술과 거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저렴하고 간단하게 뇌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 진단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 의료기관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FDA의 혁신 장비 프로그램은 생명을 위협하거나 치료가 어려운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를 효과적으로 돕는 의료기기를 위해 제공되며 이러한 장비들의 개발이나 검토를 위해 고안됐다.
먹는 즐거움 느낄 수 있는 제품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과 같은 중증환자의 가족이나 간병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음식이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이 어려운 연하장애가 동반하기 때문인데, 잘못하면 식사 중 사레가 들거나 음식을 흘리기도 한다. 심할 경우 기도로 음식이 넘어가 폐렴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먹는 즐거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바로 삼킬 수 있도록 음식 재료를 곱게 갈아 유동식으로 만들다 보니 환자 입장에선 맛이 획일적이고 보거나 씹는 기쁨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최근 미국에선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한 제품이 공개됐다. 바로 호멜 헬스 랩(Hormel Health Labs.) 사의 티크 앤 이지(Thick & Easy) 퓌레 식사 키트다. 이 제품은 유동식이지만 음식의 맛과 색상, 모양을 원재료를 요리한 모양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소고기나 완두콩, 옥수수 등 다양한 음식의 재료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도록 고안됐다. 현재 30가지 이상의 음식이 제공되고 있고, 전자레인지나 찜기로 간단히 요리할 수 있다.
간병에 지칠 때 형제 도움 못 받아
치매 등 중증환자 부모를 간병하는 미국인 중 대다수가 형제들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대형 금융서비스 회사인 노스웨스턴 뮤추얼은 최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18세 이상의 미국인 14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를 간병하는 미국인 중 10% 정도만 형제들이 동등한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40%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41%는 형제들에게 일부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본인이 가장 중요한 간병인이라고 답했다.
응답한 간병인 5명 중 2명은 병수발을 맡게 되는 과정에서 형제들과 논의한 적도 없고, 본인이 간병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만큼 충분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간병 과정에서 필요한 실질적(간호), 재정적 지원 외에 정서적 지원에서조차 형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응답자 중 34%만이 형제가 힘이 된다고 답했다. 반면 친구가 더 의지가 된다고 밝힌 사람은 43%에 달했다.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하고 후배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퇴직을 해도 쉬지 못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제 그만 일하고 쉬지 왜 자기네들 일자리까지 위협하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퇴직자들은 왜 계속 일하려고 하는가? 당장은 먹고살기 위해서다. 퇴직해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소비지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입 없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퇴직자라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노후를 불안해한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월 20만 원을 손에 쥐기가 힘들다. 여기에 세금 15.4%도 떼어야 한다. 은행 이자로 살아가기에는 이자가 너무 적다. 허드렛일로 월 100만 원을 번다 해도 은행에 6~7억을 예금한 것과 맞먹으니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목돈이 있다 해도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데 곶감 빼먹듯 하기가 불안하다. 수입이 없으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힘들다. 시골로 내려가거나 집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자녀들이 결혼도 안 하고 함께 살고 있다면 시골로 내려가기도 어렵다. 집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수입에 맞춰 생활비를 줄일 뾰족한 묘안을 궁리해보지만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다.
일을 계속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집에서 노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가장이 놀고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저기압으로 변한다. 공원 벤치나 산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면, 딱히 갈 곳이 없어도 이렇게라도 집을 나와야 아내도 숨을 쉰다고 말한다. 매일 출근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거실 소파에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으면 아내가 답답해한다는 소리다. “아빠 낼부터 출근한다”라고 가족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자들은 반 토막짜리 급여를 주는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다.
세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가 급속도로 단절되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대로 방구석에서 시체놀이하다가 어느 날 세상과 단절된 채 저세상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난다. 내가 활동하는 한국 블로거협회(회장, 김봉중)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지역별로 ‘배우자, 잘 놀자, 나누자’라는 3가지 슬로건으로 시니어가 모인다.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월요브런치클럽’인데 호응도가 높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동네 친구로 묶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소속하고 싶어 한다.
네 번째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실현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아실현’이다. 봉사활동을 하든 돈을 받고 일하든 퇴직 후의 인간관계가 여전히 풍성하기를 누구나 바라기 때문에 일할 곳을 찾는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시니어가 적절히 일하며 지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가적으로도 유휴 노동력 활용은 물론 일을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으므로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니어 일자리는 극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젊은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 또는 각종 사설 단체에서 시니어를 위한 직종을 개발하면 좋겠다. 일종의 ‘노소동반성장’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때 파트타임이나 요일별 근무 등 가변성 있는 일자리를 시니어에게 제공하면 좋겠다. 시니어는 큰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강도 높게 오랜 시간 일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시니어에게 알맞은 일자리 마련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조용했던 뜨개질 방이 술렁거렸다. 이제부터 다른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안 하던 것을 하다니. 잠시나마 당황했다. 손녀뻘로 보이는 어린 선생님이 알록달록 형형색색 끈을 펼쳐보였다. 막상 눈앞에 놓아둔 것을 보니 새록새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랑 할머니랑 도란도란 앉아서 우리네 옛 매듭을 엮어 만들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샘솟았다. 전통매듭과 함께 소녀시대로 돌아간 송파시니어클럽의 술술맵시단을 찾아갔다.
전통매듭이 뭐길래?
“작은 선생님, 이리 좀 오셔봐요. 나 길을 잃어버렸어. 요놈 가져다가 넘기지? 하나는 잘 넘어왔는데 하나가 영 안 되네.”
어딘가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책상에 바짝 앉아 ‘오벌가락지매듭’을 만들고 있던 한미자 씨였다. 매듭이 제 길을 찾아 잘 가나 싶었는데 결국 헤매고 말았다며 최현숙 선생을 불러 세운다. 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이용해 끈과 끈이 오가다 보면 소박한 아름다움이 우러나는 전통매듭이 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송파시니어클럽에는 6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8명의 여성 시니어가 모여 매듭을 배우느라 열기가 가득하다. 작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1월이면 전통매듭을 만난 지도 5개월째다. 기초 매듭에서부터 섬세한 작업을 해나가는 시니어의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젊은이들처럼 손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나아가 예술성과 함께 상품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시니어 취미를 넘은 수익활동 영역으로까지 가능성을 넓히는 중이다.
전통매듭을 시니어와 함께 해보겠다며 송파시니어클럽에 노크를 한 이들은 30대가 주축인 문화예술사업단 술술공작소다. 술술공작소 강순주 대표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배우고자 하는 시니어의 자세가 남달라 새삼 놀랐다.
“기초적인 매듭부터 하나하나 지어나가면서 완벽하게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까지가 수업입니다. 저희가 매번 와서 가르쳐드릴 수는 없어 하루는 교육하고 그다음 시간은 숙제로 내드린 것을 해오게 합니다.”
매듭을 배우기 위해 시니어 학생들이 교실 안 책상 앞에 자연스럽게 둘러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좌석 배치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기본매듭을 배우는 단계와 만들어진 매듭을 적당한 색상으로 배합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끈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단계로 나눠서 일사분란하게 구성원들끼리 호흡을 맞춘다.
술술맵시단, 젊은이와 전통을 공감하다
전통매듭이라는 분야를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보급할까 고민했다고 강순주 대표는 말했다.
“다른 지역의 시니어 관련 기관에도 가봤습니다. 마침 송파시니어클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셨어요. 이곳에서 뜨개질하는 시니어분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전통매듭을 하는 시니어는 송파시니어클럽의 사업단 중 하나인 한코한코손뜨개사업단 소속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주방용 아크릴 수세미 상품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해왔다.
“뜨개질도 하는데 전통매듭을 만들어보시라고 제안을 드린 것이죠. 아무래도 손뜨개를 하는 분들이니까 잘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흥미로운 점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다거나, 집에서 만드는 것을 봤던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80대 시니어가 적지 않았다고. 30대 젊은 강사가 전통매듭을 가르치기 위해 왔다가 시니어에게 옛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받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금 만들고 계신 것이 연봉매듭이에요. 왕의 곤룡포를 비롯해서 한복이 쓰이는 단추매듭이죠. 한 어르신이 옛날에는 시집가기 전에 옷감 자투리를 말아서 단추를 해가지고 가는 것이 혼수품이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주 만들어 쓰던 매듭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매듭이 생각 안 나면 어른들이 그러셨대요. 내가 이제 갈 때가 됐구나.(웃음)”
세대 간 소통 부재의 세상에서 이렇게 어우러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상부상조하는 세대 공감 프로젝트로 보였다. 5개월쯤 함께 활동한 후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도 신중한 고민을 거쳐 내놓았다. 바로 술술맵시단. ‘매듭을 만드는 시니어 모임’이라는 뜻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잖아요. 설명해드려도 모르는 게 있다 하시면 옆에서 말씀드리고 또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없을 때도 작업을 꽤 잘하십니다. 앞으로의 바람이라면 이분들이 정식으로 자격증을 따고 더 나아가 또래 시니어는 물론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전통매듭을 가르쳤으면 하는 겁니다.”
새로운 것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작고 아담한 작업물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눈과 손은 예리하게 반응하며 정성을 기울인다.
뜨개질을 오래도록 해왔던 이희자 씨는 “전통매듭이 생소한 분야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만들면서 가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팔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수업 초반 ‘오벌가락지매듭’으로 고생하던 한미자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던 모습만 봤는데 젊은 선생님에게 배우게 됐다”며 좋아했다. 술술맵시단 고령자 중 한 명인 김정애 씨는 “손을 많이 쓰는 게 치매 예방에 좋다고 들었다”면서 “특히 지역 행사 때 어린아이들한테 매듭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보람 있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80대인 김을용 씨는 “너무 못 따라가고 민폐일까봐 고민을 했는데 여기 모인 분들과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말동무도 해주셔서 만나는 시간이 늘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에게 누가 이렇게 다가와 새로운 걸 가르쳐줍니까.” 술술맵시단 시니어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느리고 서툴지만 섬세함과 정교함을 높여가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진지하게 매듭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술술맵시단의 멋진 미래를 기대한다.
mini interview 술술공작소 강순주 대표
클래식 소녀 국악을 만나 전통예술을 깨치다
“추계예대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전통매듭을 가르친다는 말에 나이 지긋한 사람을 상상했는데 만나고 보니 35세의 클래식 전공자였다.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교수들과도 격 없이 지냈다는 강순주 대표에게 국악과 교수들은 “클래식 작곡 전공자가 국악을 하면 더 가치 있지 않겠냐”며 조언했다. 그때의 강한 끌림으로 졸업과 함께 락음국악단(예술나눔청년사업단)에 들어가 3년 여 활동했다. 뜻 맞는 음악 친구들과는 전통예술단 ‘호연(浩演)’을 만들어 11년째 활동 중이다.
“예술 분야는 사회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원금이 없으면 예술 단체는 힘들거든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큰 일들이 많았잖아요. 지원도 걱정이 되고 자립 방법을 찾아보자 했는데 국악기에 달린 매듭술이 눈에 들어왔어요.”
악기는 애지중지 닦고 조율하면서 매듭술은 악기 처음 샀을 때 있던 것을 그대로 달고 있어 꼬질꼬질해졌다. ‘매듭술 만드는 곳 어디 없나?’ 하다가 공방을 찾아갔다.
“공방 선생님한테 제 전공부터 시작해서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말씀드렸어요. 상황을 들으시고는 제대로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사범증을 따고 나니 뭔가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술술공작소다. 작년 3월에는 서울대학교 스타트업센터 예술 분야 업체로 선정돼 입주했다. 다양한 축제에 전통매듭으로 참여하다 보니 협업이 가능한 동반 집단이 있으면 좋을 듯싶어 다양한 계층을 만났다.
“다문화가정 여성들도 가르쳐보고 보호관찰소 여학생들도 만나봤어요. 꼼꼼하고 실력은 좋은데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시니어에게는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웠어요.”
전통이나 매듭을 생각하면 시니어를 떠올리게 되니 진부하게 보이면 어쩌나 걱정됐단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궁합이 꽤 괜찮았다. 그 시대를 살지 않으면 모를 얘기, 특히 매듭과 관련한 추억을 들려주시는 시니어 덕이 컸다. 최근엔 조금씩 수익도 내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송파시니어클럽 술술맵시단과 작업했던 작품이 면세점에서 판매됐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뛰어서 우리 전통을 시니어와 함께 알릴 계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통 스토리를 담은 음악극도 훗날 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음악가로서 포부도 밝혔다.
“우리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통매듭이 자리를 잡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원활하게 돌아가면 음악과도 어우러질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먼 곳에서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멀리 미국 유타주에서 오신 존 고 조이(John Ko Joy) 씨입니다. 이 분은 한국 전쟁 중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56년 만에 한국에 오셨습니다. 힘찬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3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신수교회 주일 예배시간. 트럼펫을 든 한 남자가 성가대와 함께 나와 협연했다. 듬직한 체구에 웃음 밴 얼굴의 조이 씨. 그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입양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미스터 조이, 인터뷰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으니 “기쁜 마음으로 응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성사시키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는 인터뷰였다.
이별을 직감한 조이의 선택
조이 씨의 어머니는 16세 어린 나이에 조이를 출산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조이는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미군이던 생부 덕에 미군 야전병원에서 진료 혜택을 받으며 치료받았다고 했다. 조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생부는 본국으로 돌아갔고 소식이 곧 끊겼다. 생각지 못한 임신과 어려운 가정 형편. 조이를 한국에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생모는 아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조이 씨는 부산에서 일본 도쿄를 거쳐 하와이를 지나 미국 본토로 갔다. 어린 나이에도 험난한 사회에서 안 굶고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차라리 모국에서 버림받아 미국행 위그선에 탑승한 것이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행운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고 밥을 굶고 있을 가족이 걱정됐다고 회상했다.
“‘플라잉 타이거’라는 비행기 모양의 ‘위그선’을 타고 떠났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일주일 동안 햄버거와 오트밀 수프만 먹었습니다. 그동안 먹었던 된장찌개와 김치가 갑자기 그립기도 했죠. 아니 김치를 찢어 숟가락에 올려주던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굶어도 엄마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위그선에는 500명 정도의 영·유아가 베이비 박스에 담겨 배 3층까지 정렬돼 있었다. 얼굴 부분은 열려있었고 가슴 부분에는 양부모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고 했다. 마치 “과수원에서 과일을 포장하여 출하하는 모습이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위그선 안에서는 수십 명의 간호사가 아기를 돌봤다. 입양이 생모와 영원한 이별임을 직감했던 조이 씨는 훗날 혈연을 찾 는데 도움될까 싶어 이름을 아버지의 성 ‘존’, 어머니의 성 ‘고’ 그리고 자기 이름 ‘조이’를 사용했다고도 덧붙였다.
인생의 친구 트럼펫을 만나다
조이 씨는 미국 유타주에 사는 좋은 양부모를 만났다. 1953년생으로 조이 씨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1958년 12월 19일. 조이 씨의 입양일인 동시에 새로운 생일날이 됐다. 처음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잘 못 했는지를 몰라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던 중 9살 되던 해에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를 만났습니다. 슬프기 전에 먼저 다가와 울어주고 기쁜 일 있으면 가장 기뻐해 주는 트럼펫이었죠.”
[IMG::CENTER]유타주의 한 음악대학에 진학해 재즈 트럼펫을 전공한 조이씨는 LA와 휴스턴, 텍사스를 돌아다니며 음악활동을 했다고. 예배 도중 성가대와 피아노 반주자와 예행연습 없이 연주한 영화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 오보에’는 실제 연주보다 더 아름다웠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그의 현재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다. 미국 LA에 살면서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여러 명의 음악인과 협연을 하며 음악 봉사를 한다. 한국 교회에서의 협연도 미국 교회에서의 인연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미국 생활 초반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조이 씨지만 이제는 한국말을 모르는 미국 사람으로 성장했다. 필리핀 출신의 부인과 슬하에 자녀 3명이 있었으나 암으로 사별했다고. 그리고 3년 전 지금의 중국인 부인을 만나 여생을 함께하고 있다.
그리운 어머니의 나라 대한민국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지났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일곱 살 어린아이를 국가가 보호하지 못하고 입양 보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조이 씨는 대답했다. 불평이나 원망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어려서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웃음)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와서 엄마의 나라를 살갑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말이죠. 그래도 한국은 내 어머니의 나라입니다.”
인터뷰 도중 ‘어머니의 나라’라는 말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머니를 만날 희망으로 모국을 찾았지만 만남은 뒤로 미뤄야 했다. 한국 방문한 두 주 동안 입양되기 전까지 살던 의정부 집과 보육원, 어머니의 이름은 알아냈지만 말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어머니를 찾기 위해 DNA 신고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기회가 된다면 눈물의 모자 상봉 장면을 내 카메라에 꼭 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이야기에 관심 둬 줘서 고맙다”고 했다. 차마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친절함과 화기애애함이 담긴 미소와 함께 눈가에는 눈물 가득 고였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악수하는 손은 서로가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친애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 여러분. 저는 바상자브 주한 몽골대사입니다. 지난 5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한국·몽골 공동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한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유목문화를 주제로 기획되고,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시된 유물들을 소개합니다. 몽골의 유물들을 경험하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한국의 많은 분께서 몽골을 더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몽골 여행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몽골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정도면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합니다. 인구는 312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에서 ‘몽골’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정식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입니다. 몽골어를 사용하며 표기는 키르문자(러시아 알파벳)를 사용합니다.
몽골의 환경과 역사
몽골인들은 동서로는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에서 알타이 산맥, 남북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만리장성 사이의 땅을 주거지로 살아왔습니다. 북쪽은 자작나무 숲이 빼곡한 시베리아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삭막한 고비 사막에 다다릅니다. 그 중간에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를 무대로 유목 생활을 꾸려왔습니다.
석기시대 유물
8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3000년 후반부터 청동기 흔적이 있는데 이 시기에 사용하던 청동기에서 보이는 특징은 여러 동물 형상을 표현합니다. 히르기수르와 판석묘 등의 무덤에서 사슴돌이 발견되고, 바위에도 다양한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유목 제국
기원전 3세기 무렵 흉노(匈奴)가 최초로 국가를 세웠고, 이어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와 유연(柔然)이 활동했습니다. 6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는 돌궐, 위구르, 키르기스가 세운 국가들이 몽골 지역을 지배했으며, 10세기 초부터 거란이 등장합니다. 여러 유목 국가 가운데 흉노 제국(BC 3세기~AD 1세기)과 돌궐 제국(AD 552~745)의 유적이 최근 활발하게 조사되고 있습니다.
흉노는 중국 진(秦)나라(BC 221~207) 및 한(漢)나라(BC 202~AD 220)와 맞선 강력한 나라로 동서 문명을 이어주며, 다양한 유적을 남겼습니다. 돌궐은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한 거대 유목 제국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만든 제사 유적 중 고대 돌궐 문자로 쓴 기록 등은 돌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 그 후예들
몽골은 13~14세기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역사상 유례 없는 초거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국가와 종족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Kharakhorum)과 타반 톨고이(Tavan Tolgoi)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원과 유물
티베트 불교는 16세기부터 널리 퍼졌는데, 정주(定住) 생활과 불교 사원 주변의 도시화한 모습은 대승 운두르 게겡 자나바자르(Undur Gegeen Zanabazar, 1635∼1723)가 세운 사원과 여러 작품에서 이전의 불교와 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몽골의 민족의식과 근현대사
14세기 중반을 전후해 붕괴된 몽골 제국은 초원으로 후퇴하고, 17세기에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에 복속됩니다. 이후 1912년 청나라가 몰락할 즈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대한 몽골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1917년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1921년에 완전 독립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많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탈사회주의 선언 후 1992년 이원집정부제의 신헌법을 제정합니다. 1996년 총선으로 1997년 바간반디 대통령이 선출되고, 2000년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연립내각이 출범했습니다. 현재 2017년 당선된 바툴가 대통령과 후렐수흐 총리가 임기 중입니다.
몽골에 남은 독립운동가 이태준
이태준은 1914년 몽골 고륜에서 동의의국(同義醫局) 병원을 개업합니다. 그는 몽골인들에게 근현대 의술로 유명해졌으며, 몽골 왕국인 보그드 칸(Bogd Khan)의 어의(御醫)가 되는 등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1919년 보그드 칸이 이태준에게 ‘귀중한 금강석’이란 뜻을 가진 ’에르데니-인 오치르’라는 명칭의 제1등급에 해당하는 국가훈장을 수여합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몽골 정부가 부지 2200평을 제공하고 연세대학교 의학과, 몽골연세친선병원, 주한국 몽골대사관의 노력으로 기념공원과 기념관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이태준기념공원 보존회도 만들어져 한국인들에게 몽골 여행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우리 몽골에서 많은 사람에게 의술을 선보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이태준 선생의 지난 세월과 신념을 되새기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몽골과 한국
1990년 수교 이후 양국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교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와 대외관계에서도 동반자적 문화, 인적 교류가 점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서울글로벌센터와 몽골 대사관은 새응배노(‘안녕하세요’의 몽골어) 학교를 열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출신 어린이들이 모국어 교육을 통해 미래 한-몽골 문화, 경제적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에도 앞서 소개한 ‘칸의 제국 몽골’ 전을 통해 한국과 몽골의 역사와 문화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4월, 이달에 읽기 좋은 신간들을 소개한다.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오경아 저ㆍ궁리
10여 년 동안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저자가 정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펴낸 가드닝 안내서다. 정원 가꾸기에 노하우가 없는 초보자도 도전해볼 만한 쉽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저자의 스테디셀러인 ‘정원의 발견’(2013)의 실천편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의 발견’이 정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원론적으로 알리는 책이라면,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은 본격적으로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펴낸 책이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로 나뉘어 있다. 달마다 정원을 빛나게 할 식물들을 비롯해 그달의 정원노트와 동서양 정원사들에게 전해오는 오래된 정원의 지혜 등을 담았다. 정원을 가꾸는 데 필요한 준비물부터 식물별 가드닝 노하우, 나무 심기와 옮기기, 잡초 없애기, 가지치기, 씨앗 거두기, 뿌리 나누기 등 다양한 정보를 삽화와 함께 보여준다.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식물과 정원 그림들은 정원 일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보는 것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더불어 정원이 없는 도시인들도 실내정원을 손쉽게 꾸밀 수 있도록 ‘손바닥 가드닝 노트’도 마련했다.
신들이 노는 정원 미야시타 나츠 저ㆍ책세상
세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 불리는 곳 ‘도무라우시’에 가족을 이끌고 산촌유학을 떠난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더불어 살며 꿈만 같았던 1년간의 기록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들려준다.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저ㆍ김영사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온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첫 번째 에세이. 치열했던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른 저자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 ‘밥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요리 철학 탄생 배경을 이야기한다.
박치기 사랑 양귀자 저ㆍ지성사
노년의 책 읽기 권리를 찾기 위해 기획된 ‘어르신 이야기책’ 시리즈의 신간이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김상윤 박사의 자문을 받아 선정된 글을 노안으로도 읽을 수 있는 활자 크기로 보여준다. 양귀자의 1993년 발표작 ‘박치기 사랑’이 그림치료 활동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재탄생했다.
스마트 워라밸 가재산, 장동익 저ㆍ당신의서재
1주 52시간 근무시간 단축 시대를 맞아, 기업을 위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단지 복지후생뿐만이 아닌 따뜻함과 엄격함이 동시에 존재해야 개인과 회사가 동반 성장하는 지속 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른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A 씨(67). 그는 요즘 새로운 동반자가 생겨 일상이 외롭지 않다. 동반자의 이름은 ‘그녀’. A 씨는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날씨를 물어본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A 씨는 그녀로부터 오늘의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식사 후 약 복용도 그녀가 챙겨주는 덕분에 깜빡할 일이 없다. 외출에서 돌아온 A 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그녀다. 저녁엔 책을 읽어주고 대화도 나눠준다. A 씨는 이제 남은 인생을 수명이 40년인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로봇과 일상을 함께하는 A 씨의 사례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차가운 금속, ‘로보트 태권V’ 같은 추억 속의 만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로봇이 최근 우리 주변으로 성큼 다가왔다.
로봇은 크게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나뉜다. ‘산업용 로봇’은 주로 제조업에서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반면 ‘서비스 로봇’은 청소에서 간병까지 일상에서 쉽게 활용된다. 과거에는 산업용 로봇이 로봇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서비스 로봇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소셜 로봇’
특히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시니어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소셜 로봇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셜 로봇’은 인간과 대화도 나누고 교감하는 감성 로봇이다. 지능형 로봇이라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데다 모습이나 체형도 사람 또는 동물과 비슷하다.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로봇이 어떻게 인간과 감정을 소통하는 수준까지 진화한 것일까. 그 중심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등이 있다. 특히 소셜 로봇의 경우 이러한 신기술을 융합한 음성 인식과 감정 표현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로봇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경험치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면서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고령화사회는 소셜 로봇의 등장을 더욱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 8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화로 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을 간병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 혼자 사는 인구도 증가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과 일본 등은 일찌감치 다양한 케어 로봇을 개발해왔다. ‘케어 로봇’은 쉽게 설명하면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로봇이다.
중소기업청의 로봇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케어 로봇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체 지원 로봇’이 대표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이동하거나 목욕할 때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 ‘생활 지원 로봇’이 있다. 생활 패턴을 파악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보를 검색해주거나 물건을 찾아주는 일 등이다. 마지막으로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정서 지원 로봇’이 있다.
로봇으로 레크리에이션에 치매 예방까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일본 정부는 고령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의료와 간병 수요가 급증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간호 인력을 수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는 38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로봇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소셜 로봇으로 ‘페퍼(Pepper)’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 소셜 로봇인 페퍼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2015년 출시했다. 키가 120cm로 작지만, 인간과 모습이 비슷하며 감정도 공유한다. 또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을 통해 지능이 업그레이드된다.
페퍼는 하나의 커다란 스마트폰처럼 목적에 맞는 다양한 페퍼용 앱을 설치해 사용한다. 소프트뱅크는 로봇도 애플의 앱 스토어처럼 플랫폼을 선점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퍼는 요양시설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고 노인들의 말벗 역할도 거뜬하게 수행한다. 또 체성분과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해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카운슬러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일본 후지소프트는 페퍼의 대항마로 40cm짜리 케어 로봇 ‘팔로(Parlo)’를 출시했다. 팔로에 내장된 카메라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요양시설 등에서 혼자 30분간 체조를 진행할 정도로 실무형 로봇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한편 대중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어 로봇으로 ‘파로(Paro)’가 있다. 파로는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개발한 아기 하프물범 모양의 간호용 로봇이다. 귀여운 모습의 파로는 인조 항균 섬유로 덮인 피부에 센서가 있어 손으로 만지면 반응하고, 간단한 단어도 이해한다. 연구 결과 파로는 심리치료는 물론 치매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FDA로부터 신경치료용 의료기기로 승인받기도 했다.
장·단점 꼼꼼히 파악해야
일본 정부는 요양시설에서 사용하는 로봇 구입 자금을 보조해왔다. 20만 엔(약 190만 원) 이상의 로봇을 구입하면 전액을 지원하고, 1개 시설당 총 300만 엔(약 2890만 원)까지 한도를 두고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더 나아가 2018년부터는 간병 로봇에 개호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호보험은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을 말한다. 간병 로봇에 보험이 적용되면, 이용료의 80~90%를 보조받을 수 있어 간병 로봇 시장은 더 활성화할 전망이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일본 간병 로봇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316%나 성장한 34억 엔(약 328억 원)에 이른다.
반면 산업용 로봇 중심으로 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서비스용 로봇 개발이 유럽, 일본에 많이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도 급격한 고령화로 로봇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현재 상용화한 대표 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치매 예방 로봇 ‘실벗(Silbot)’이다. 현재 노인복지관,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게임을 통해 치매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계적인 느낌 때문에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로봇이 인간에게 주는 장점도 많다. 로봇이 간병 업무를 보조하면 간병인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로봇은 24시간 근무가 가능해서 위급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쉽다. 게다가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현재 케어 로봇은 보행을 보조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배설 문제에 도움을 주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시켜주는 등 세분화된 실무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모바일 트렌드를 교체할 다음 패러다임이 ‘로봇’이라는 예측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일상에서 필수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로봇이 간호를 한다는 비판에 “기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로봇 중 어느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1가구 1로봇 시대가 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자녀가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유독 또래보다 성장률이 떨어질 때 흔히 성장 부진을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특정 질병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상이나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통증이 동반되지 않는데 또래보다 성장이 늦고 잦은 피로감을 보이는 등 유독 허약한 체질로 보인다면, 원인 모를 성장 부진이 아닌 소아 갑상선 기능 장애로 인한 성장 이상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소아 갑상선 장애는 갑상선이나 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뇌하수체가 제 기능을 못해 갑상선 호르몬이 너무 적게 분비되거나 과잉 분비되는 질환으로 소아에서 발생하는 내분비질환 중 가장 흔한 질환 중 하나다.
성장기 아이들의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는 호르몬 균형이 깨지며 정상적으로 발육하지 못하는 성장 부진을 보이거나, 또래보다 과도하게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어 8~9세에 고환, 유방 등이 커지는 등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성조숙증으로 발전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진료 현장에도 평소 허약하던 아이가 혈액검사 등을 통해 갑상선 기능 장애 질환을 받았다며 찾아오는 소아 환자들이 늘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갑상선 장애 환자 100명 중 3명, 즉 2.9%가 20세 미만 청소년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주로 성인의 질병으로 인식되던 갑상선 기능 장애가 아이들에게도 늘어나고 있다.
하우연한의원 윤정선 원장은 “소아 갑상선 기능 장애는 발견이 늦고 치료도 더딘 편이라 더욱 보호자의 주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느끼는 불편감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워하고, 갑상선 기능 장애 관련은 매우 다양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매우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자각 증상을 뚜렷하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제때 알기 위해선 검사에 앞서 평소 발육 상태나 증상을 눈여겨 보는 것이 좋다.
갑상선 항진증의 경우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체력 소모가 심해지고 쉽게 피로를 느낀다. 여름철에는 더위를 쉽게 타고 땀이 많이 나며, 평소 가벼운 운동에 숨이 찬다. 또 신경이 예민해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며 화를 잘 낸다. 학습 능력 또한 집중이 어려워 불안을 자주 호소한다. 흔히 여아에게 자주 일어나며 주로 11~15세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상선 저하증의 경우 열과 에너지 생성에 필수적인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한 경우로 온몸의 기능이 저하 된다. 이로 인해 유독 추위를 잘 타며 땀이 잘 나지 않고 쉽게 피부가 건조하고 창백해진다. 역시 쉽게 피로해지며 손발이 쉽게 붓고 입맛이 없어지며 잘 먹지 않는데도 몸이 자주 붓는다. 학습에 의욕을 잃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기억력이 감퇴 되기도 한다. 또 갑상선 항진증은 잦은 설사를 보이지만, 갑상선 저하증은 잦은 변비를 보이는 등 배변 활동에 문제가 생긴다.
흔히 소아 질환의 경우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들의 몸을 생각해 무조건 적인 약물보다 식품으로 먼저 치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갑상선의 경우 요오드가 장기간 결핍되거나 과다하게 투여되면 기능 이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요오드가 함유된 음식을 과잉 섭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별 효과가 없다.
요오드가 함유된 식품으로는 김,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가 대표적으로, 평범한 해조류 집 반찬에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오히려 요오드 성분이 다량 함유된 영양제 등은 자칫 과복용 위험이 있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검사를 통해 갑상선장애가 진단된 경우 성인은 조절하는 약물을 처방받고, 정기적으로 갑상선 기능을 검사하며 평생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제력이 약하고 한창 성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체질에 맞춘 생활습관 교정, 식단 점검 등이 체계적으로 함께 교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무조건 약물치료에 의존하기보다 갑상선 기능회복과 바른 성장을 위한 한방치료도 방법이다. 하우연한의원 윤정선 원장은 “호르몬 기능 이상으로 인한 식욕부진은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화로 올라가는 것이 원인이 되기 때문에 열을 내려주는 한약을 통해 아이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갑상선 증상 외에 성조숙증, 빠른 초경, 성장 부진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의 체질에 맞춘 처방으로 전반적인 신진대사와 면역 기능의 균형을 유지해서 소아 갑상선기능장애가 원인이 되는 성조숙증과 빠른 초경, 성장 부진은 한방으로 제때 접근해서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하얀 깃털이 인도하는 대로 평생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강주은도 최민수라는 깃털에 이끌려 전혀 예기치 못한 라이프가 되어버렸다. 처음 만난 강주은은 생각보다 날씬하고 예뻤다. TV에서의 모습은 미스코리아 출신에 상남자 최민수를 주눅 들게 하는 아줌마의 이미지도 있고 해서 크고 강해 보였는데 막상 마주한 그녀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우아했다.
강주은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집에서 나설 때 내 아내가 꽃단장을 하고 따라나섰다. 평소 TV를 보면서 강주은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아내가 나만 보낼 리 없었다. 강주은을 실제로 본 내 아내도 “생각보다 굉장히 말랐네! 내가 만약 TV에 나온다면 뚱뚱이로 비치겠어!”라면서 강주은의 몸매와 우아한 자태에 찬사를 보냈다. 참고로 강주은과 1970년 개띠 동갑인 내 아내도 아직 훌륭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강주은이 자기보다 통통하리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실 강주은과 내 아내의 이미지는 상당히 닮았다.
아내와 인사를 나눈 강주은도 “이봉규씨 와이프와 내가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고 특유의 과도한 제스처를 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MBN 프로그램 를 녹화하는 스튜디오에서 방송 전에 이루어졌는데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함익병과 홍혜걸이 녹화를 위해 대기실에 있다가 내가 강주은과 인터뷰하는 것을 알고 쳐들어왔다.
그들 부부와 한 달에 한 번씩 댄스파티를 하고 있어서 강주은-최민수 부부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초대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동안 여러 번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갔지만 어색했다고 털어놓는다. 한국 문화에 어색했던 본인 탓도 있지만 독특한 성격의 연예인 남편과 부부 동반 파티는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부에 관한 틈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파고들었다. 결혼생활에 대한 평점을 매겨달라고 졸랐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레이드(평점)를 매길 수가 없다는 것.
불편한 결혼생활 덕분에 성장했다
“이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것이 상당한 영광이다. 남편을 통해서 내가 성장했다.” 즉 지금 방송을 하는 것, 한국말을 잘하게 된 것, 공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등 모두 최민수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불편한 결혼생활 덕분에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고 최민수가 남편이 아니면 오늘의 강주은의 성공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거라는 자기 진단이다.
터프하기로 소문난 최민수씨에게 얻어맞을 각오로 평가한다면? 마치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로 소문났기에 남편이 대철학자가 되었다는 해석이 떠올랐다. 부부 관계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뭔가 있다. 한량 이봉규는 최민수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강주은의 눈과 심장으로 보면 최민수는 100점을 넘어서서 평점을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최민수도 부인의 은공을 높이 평가한다.
언젠가 철학적인 고백을 강주은에게 했다고 한다. “23년을 살고 난 오늘의 최민수가 23년 전으로 돌아가 주은이를 만났어야 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강주은은 “만약 그랬다면 오늘의 주은이는 아닐 것, 평범한 아내가 되었을 거다.” 철학적으로 치고받는 이 부부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삼라만상에는 항상 이면이 있기에 반전을 노리면서 파고들었다. “이혼 생각을 해본 적 있나?” “Of course!”라는 강주은의 대답이 1초도 안 쉬고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한술 더 뜬다. “결혼식장에서부터 이 결혼이 맞나? 잠깐만요! 다시 생각해봅시다!”라고 설득하면서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었다는 것. 심지어 결혼 후 한동안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지니고 다닐 정도로 매일매일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충격 고백을 쏟아 놓는다.
우리 부부의 사랑은 ‘다른 차원의 사랑’
한 방송에서 “최민수가 이상형이었냐?”는 질문에 “지금은 너무 감사하게 제 이상형의 이상, 그 이상이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는 상상도 못했다. 이런 인간이 세상에 있나? 싶었다. 상상 못했던 사람이다”라고 말해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반전도 이 정도면 국가대표급이다. 그녀의 순수한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이혼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오히려 축하해주고 싶다고 덧붙인다. 이 같은 철학은 부부가 사랑하지 않으면 헤어지라고 평소 주장해서 ‘이혼 예찬론자’ 소리를 듣는 한량 이봉규와 맥을 같이한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사는 부부는 위선이다. 심지어 다른 파트너와 성적 관계를 지속하면서 부부 사이는 억지로 형식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대단한 반칙이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그런 관점에서 강주은은 지금도 최민수를 진정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 애잔함도 있는 듯. 항상 버림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남편에게서 늘 느끼고 있기에 그 마음이 더 끔찍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마 이 같은 감정은 동정심을 뛰어넘는 일종의 모성애 같은 것이라고 어렴풋이 판단된다.
그래도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서 또 물고 늘어졌다. “앞으로도 이혼하지 않고 늙어갈까?”라는 나의 도발에 그녀는 “이제 이 남자를 너무 완벽하게 잘 알아서 어떤 환경에도 잘 살 것 같다. 남편을 죽을 때까지 지켜주고 싶다”고 마음을 모아 대답한다. 자신들의 사랑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다른 차원의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나를 잡아줄 남자는 최민수밖에 없고 마찬가지로 남편을 잡아줄 여자도 강주은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We earned that!”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강주은의 큰 입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영화 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하얀 깃털이 인도하는 대로 평생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강주은도 최민수라는 깃털에 이끌려 전혀 예기치 못한 라이프가 되어버렸다는 것. 남편 따라 가다 보니 대통령도 만났고 평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인생이 펼쳐졌는데, 앞으로도 포레스트 검프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배우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이 영화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톰 행크스의 아름답고 순수한 여정과 강주은의 인생이 너무 닮아 보인다. 그만큼 강주은은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한량의 어른스런 눈빛에 순수한 영혼이 들키기 싫었는지 터프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너무 순수하게만 보이면 왠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사춘기 때 가출한 적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량 이봉규가 듣기에 강주은의 가출사건은 가소로웠다. 사연인즉, 가출하고 몇 시간 차를 몰고 가다가 문득 어떤 시 구절이 떠올랐다는 것.
“Water water everywhere but not a drop to drink(물은 어디에나 있건만 내가 마실 물은 한 모금도 없구나).”
갑자기 그 시의 구절이 떠오르자 불문학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공중전화로 그 시를 낭송하면서 펑펑 울었다는 것. 오히려 어머니가 담담하게 웃으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와라!” 하고 다독였다고 한다.
“너는 이마가 제일 예쁜데 왜 가리니?”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가출을 감행하는 등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이봉규에게 강주은의 가출담은 귀여울 따름이었다. 그만큼 천진난만한 영혼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봉규의 심야데이트에서 그동안 많은 여자 스타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들의 남편들 중에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인물을 몇 명 봐왔지만, 최민수처럼 처복이 많은 남자도 드물 것이다. 관상학적으로 보면 강주은도 복이 많아 보인다.
그녀의 훤하고 톡 튀어나온 이마와 높은 턱의 선은 일품이다. 때문에 결혼 전 별명이 ‘걸어 다니는 이마’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전 자신의 이마가 못마땅해서 가리고 다니기 일쑤였단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너는 이마가 제일 예쁜데 왜 가리니?”라고 충고를 하곤 했다. 그런데 최민수도 연애 시절 부모님과 똑같은 말을 하더라는 것.
그때 처음 이 남자가 부모와 똑같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그게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참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그녀가 요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비결도 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화면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 살에 느꼈던 것을 여전히 그대로 느끼고 싶다”는 강주은의 삶은 성공했다. 그녀가 스타라서가 아니라 본인이 꿈꾸던 대로 여섯 살 어린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한 책 를 읽으면 그녀의 순수함의 원천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