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자생한방병원은 지난 18일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입원 치료로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설 맞이 행사’를 진행했다고 19일 밝혔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코로나19 유행시기를 제외하고 매 명절마다 입원 스트레스로 인한 환자들의 명절증후군을 해소하고자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천자생한방병원 4층 휴게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입원환자 및 가족을 비롯한 병원 의료진, 임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서로 쾌유를 위한 덕담을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날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윷놀이, 투호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어묵, 식혜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마련했다. 또한 행사 경품으로 건강기능식품, 식료품 등도 다양하게 준비해 참여 열기를 한껏 돋웠다.
이날 윷놀이는 개인전 방식으로 진행돼 참가자가 도착지에 무사히 도착하길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윷놀이 판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투호 경기장에는 화살을 던지기 전 숨을 가다듬는 환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또한 경품 증정을 위한 추억의 병뚜껑 게임과 뽑기 게임에도 남녀노소 많은 참여 인원이 몰렸다.
행사에 참여한 한미희(63) 환자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행사를 즐기며 긍정적인 에너지는 배로 늘고 통증은 반으로 줄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천자생한방병원 우인 병원장은 “설 맞이 행사를 통해 원내 모든 분들이 웃고 즐기며 힘찬 새해를 시작하시길 바란다”며 “다음 명절에는 환자분들이 각자 고향에서 건강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자생한방병원은 인천 지역 유일 한방척추 전문병원으로서 추나요법,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 한방통합치료를 통해 허리·목디스크, 퇴행성관절염 등 척추·관절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료서비스와 환자 안전보장 시스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의료기관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건강 계획을 세우는 시니어들이 많은 가운데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생명표’가 이목을 끌고 있다. 생명표란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인 ‘기대여명’을 추정한 통계표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0세 남성의 기대여명은 23.5년, 여성은 28.4년으로 남성은 83.5세, 여성은 88.4세까지 살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10년 전보다 2.4년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통계 자료는 시니어들에게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닌 건강한 노후를 목표로 신년 건강 계획을 의욕적으로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시니어들은 신체의 기둥인 척추 건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목디스크(경추추간판탈출증)는 척추의 퇴행 속도가 빨라지는 중년 이후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목디스크 환자의 약 86%(92만 1737명)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었다.
문제는 목디스크 증상이 모호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 중 자신의 질환을 목디스크가 아닌 단순한 담 증상이나 어깨, 팔의 문제로 오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치료 시기도 늦어진다. 목디스크 치료에서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목디스크 증상은 디스크(추간판)가 탈출한 방향과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목과 어깨, 팔 전체에 나타나는 통증이다. 어깨와 팔, 손으로 가는 신경이 디스크에 눌리며 목 뒤의 뻐근한 통증을 시작으로 어깨와 팔, 손까지 방사통이 뻗어간다.
두 번째는 팔과 손에 나타나는 힘 빠짐과 저림 증상이다. 심한 경우 손끝까지 저린 느낌이 들고 손가락 감각이 둔해져 마비로도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머리 뒷부분을 욱신욱신 조이는 듯한 경추성 두통이다. 이는 튀어나온 디스크가 혈관을 압박해 혈액순환과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며, 어지럼증, 이명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만일 이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목디스크를 의심하고 조속히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을 것을 권한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과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 한방 통합 치료를 실시해 목디스크를 치료한다. 먼저 한의사가 손 또는 신체 일부를 이용해 밀고 당기는 추나요법으로 비뚤어진 경추와 눌려 있는 목 주변 신경근을 교정한다. 경추 뒷부분에서 비뚤어진 부위를 찾아낸 뒤 디스크와 신경을 본래 자리로 바로잡아 목 통증 해소와 가동 범위 변화에 도움을 준다.
특히 추나요법의 목 통증 완화 효과는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지난해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미국의학협회 공식 저널인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추나요법은 일반 진통제와 물리치료보다 목 통증 완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목 통증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추나요법과 진통제, 물리치료 등 일반 치료를 각각 시행하고 5주 후 통증 경감 폭을 분석한 결과, 추나요법군은 56%나 줄었지만 일반 치료군은 29% 감소에 그쳤다.
추나요법 다음의 침 치료는 경직된 목 주변 근육과 인대를 풀어주고, 순수 한약재 성분을 정제한 약침 치료는 경추신경을 압박하는 염증을 빠르게 해소한다. 더불어 환자의 세부 증상에 맞는 한약 처방을 병행하면 손상된 목 주변 조직을 강화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목디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르게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는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목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새해 건강 계획을 세우고 삶의 질을 개선해보자.
분당자생한방병원이 경로의 달을 노인 척추∙관절 건강관리를 위해 한방 의료봉사에 나섰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정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된 이번 한방 의료봉사는 지난 13일 노인 4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근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물가 상승 등의 여파로 생활이 어려워진 노인들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고자 마련된 자리다. 박무진 분당자생한방병원 한의사를 비롯한 의료진 및 임직원들은 진료소를 찾은 노인들의 현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증상에 따른 침치료를 진행했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는 노인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실제로 심해지는 시기다. 낮은 온도에 척추∙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가 수축하고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쉽게 무리가 오고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체온이 떨어질 경우 더욱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날 봉사에서는 건강 상담 및 침 치료와 더불어 환자 체질에 맞는 한약도 처방됐다. 분당자생한방병원은 근골격계 질환 치료 한약과 함께 기력 회복을 위한 보약과 한방파스도 제공했다. 치료 이후 노인들의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마련됐다.
이날 한방 치료를 받은 환자 김옥자씨(76)는 “쌍화탕 가격도 곧 오른다는 시기에 직접 한의사 선생님이 찾아와 침도 놔주시고 보약까지 챙겨주시니 마치 오늘이 내 생일 같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김경훈 분당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이달은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경로의 달인 만큼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며 위안을 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며 “어르신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이어질 수 있게끔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6년 개원한 분당자생한방병원은 추나요법을 중심으로 한 침∙약침치료, 한약처방 등 한방 보존치료를 통해 허리∙목디스크, 척추관협착증, 퇴행성관절염, 오십견 등 시민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또한 의료사업 수익을 정기적인 한방 의료봉사를 비롯한 독거노인 혹서기 물품지원, 독립유공자 후손 의료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9월 21일은 치매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추정 치매 환자 수는 지난해 88만 617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치매 유병률은 10.33%에 이르며 예방·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20~30대 사이에서 이른바 ‘영츠하이머’가 급증하며 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치매가 젊은 층도 위협하고 있다. 영츠하이머는 젊음(Young)과 치매(Alzheimer)를 결합한 신조어로 젊은 층에서 호소하는 건망증, 기억력 감퇴 등을 일컫는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의존해 스스로 계산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에 해당하며 향후 치매로 이어지는 전조일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다.
이처럼 치매의 위험이 커진 상황 속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 치매의 기본적인 예방법이 될 수 있다. 치매 극복의 달을 맞아 자생한방병원 강만호 원장의 도움말로 기억력을 높이고 치매도 예방할 수 있는 건강법을 알아본다.
■ 치매 예방에 탁월한 ‘인터벌 걷기’, 하루 만 보 걸으면 치매 확률 절반 낮아져
뇌 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지금 바로 유산소 운동을 늘리자. 유산소 운동은 치매를 예방하는 데 이롭다. 실제로 WHO에서 치매 예방을 위해 권장하는 지침 중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이 신체활동이기도 하다. 몸을 움직이면 뇌에 혈액과 산소, 영양분이 원활하게 공급될 뿐만 아니라 각종 신경인자를 자극해 신경의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유산소 운동과 치매 예방의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논문을 통해서도 밝혀졌다. 영국 바이오뱅크가 SCI(E)급 학술지 ‘JAMA Network Open’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9826보를 걷는 사람들은 7년 이내 치매에 걸릴 확률이 50%나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하루에 약 3800보만 걸어도 치매 발병 위험이 2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하루에 1만 보를 걷기 위해서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저강도 운동일지라도 매일 장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지루함과도 싸워야 한다. 걸음 수만을 의식하다가 오히려 근육과 관절에 무리를 줘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며 운동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걷기운동으로는 ‘인터벌 걷기’를 권한다.
인터벌 걷기란 강도에 변화를 주면서 걷는 운동법을 말한다. 3분 정도 평상시 속도로 걷다가 3분은 전신에 힘을 주며 빠르게 걷는 방법을 세 번 연속 반복한다. 걷기 강도를 조절하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빠르게 이뤄지며 혈액이 몸 곳곳으로 잘 공급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혈관벽의 탄력을 개선해 뇌졸중 및 치매 예방에 좋다. 신체 균형 발달에도 알맞아 현대인의 고질병인 목·허리디스크(경추·요추추간판탈출증) 관리에도 탁월하다.
■ 집중력 높이는 오미자차로 환절기 치매 예방, 증상 발현 시 공진단 처방 도움
부쩍 시원해진 날씨에 이미 걷기 운동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면 일교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교차가 10도 안팎으로 크게 벌어지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탓이다. 이는 기온 차에 취약한 뇌혈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압이 급상승해 혈관벽이 터지거나 혈관이 막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살펴보면 뇌졸중 환자 수는 보통 1만 5000여 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초가을, 초봄과 같은 환절기에 매우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평소 뇌혈관에 좋은 음식 등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권하는 한방차로는 오미자차가 있다. 오미자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며 리그난 성분은 건망증을 유발하는 신경독 발생을 막는다. 또한 오미자는 동의보감에 ‘몸을 따뜻하게 하고 폐와 신장을 보한다’고 적혀있어 차로 달여 마시면 환절기 기관지 건강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부쩍 심해진 일교차와 함께 치매 증상에 대해 경계하고 의료진을 찾아 주기적인 진단을 받아보는 노력도 중요하다. 치매는 무엇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치매가 생기는 원인을 혈액 정체, 영양 부족, 간과 신장의 기능 저하 등 크게 7가지로 분류한다.
이처럼 치매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므로 환자의 체질과 세부증상을 고려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효과적인 치료법 중 하나로는 한약 처방이 있으며 일대일 맞춤 치료로 빠른 회복을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3대 한약으로 불리는 공진단의 기억력 개선 및 노화 억제 효과는 연구논문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지난해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국제학술지 ‘Nutrients’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진단은 장수 유전자 ‘시르투인1’을 활성화해 대뇌피질 신경세포의 생존율을 높이고 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축삭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생한방병원 강만호 원장은 “젊은 층 치매 위험 또한 높아진 상황 속 연령에 관계없이 기억력과 집중력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생활 습관 개선과 전문적인 진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치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자생의료재단이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부산자생한방병원을 개원해 진료를 시작했다고 25일 밝혔다. 하단역 7번 출구 일성빌딩에 위치한 부산자생한방병원은 1·2·4인실 병동 총 60병상 규모로 한방재활의학과, 침구의학과, 한방내과 등 7개 진료과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진은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김하늘 병원장을 필두로 한방의료진 7명으로 구성됐다. 추나요법, 신바로약침, 동작침법(MSAT) 등 한방 비수술치료를 통해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척추관협착증, 퇴행성관절염, 교통사고 상해와 같은 척추·관절질환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생한방병원의 추나요법은 2019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또한 신바로약침의 핵심 성분인 ‘신바로메틴’은 신경재생의 효과가 입증돼 미국에서 물질특허를 획득했다. 급성 요통에 효과를 보이는 동작침법은 통증 경감 효과로 국제 통증학술지(PAIN)에 게재되기도 했다.
한·양방 협진 시스템도 부산자생한방병원에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공명장치(MRI), X-Ray, 적외선 체열검사(DITI) 등 첨단 영상진단 장비를 활용해 양방의료진 2명과 상호 협진하는 한·양방 통합진료 시스템을 갖춰 보다 정확한 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김하늘 부산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서부산 지역 개원을 통해 한방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부산 권역의 비수술 척추·관절 치료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며 “김해국제공항과 인접한 이점과 함께 다수의 해외환자들을 진료한 경험을 살려 한방의 세계화를 위한 또 다른 거점의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병이라는 불청객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인의 삶마저 크게 흔든다. 원망, 자책, 후회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모두가 함께 가라앉아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성숙의 시간으로 여기고, 같은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가 있다. 루게릭병으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의 투병기를 연재하는 웹툰 작가 긍씨(박은선, 31)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매일매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8년의 유학 생활을 정리한 후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자 돌아온 집. 아버지 별씨(박한규, 69)가 지팡이를 짚고 서서 힘겹게 인사를 건넸다. “아빠가, 못 나가서, 미안해. 고생, 했지?” 어눌하고 느릿한 아버지의 음성. 아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들은 것보다 심각하게 느껴졌다. 8년 만에 만난 별씨는 익숙하지만 가장 낯선 모습이었다.
처음은 손 저림이었다. 점점 반사신경이 둔해졌고, 손의 힘이 갑자기 풀리거나 바지를 갈아입을 때 균형을 잃는 등의 이상 증세를 보였다. 대학병원을 전전한 결과, 이전부터 앓고 있던 목 디스크로 인해 신경이 눌릴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2017년 끝자락에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통제되지 않는 몸 안에 갇혀버린 별씨 가장과 보호자의 역할을 모두 떠맡은 어머니. 가족들은 현실 부정과 절망을 반복하며 긴 시간을 방황했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이 달라진 것은 당연지사. “마트에서 아래층으로 이동하려 무빙워크에 발을 디뎠는데, 이상했어요.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무빙워크를 타는 대신 뒷사람들에게 사과하며 황급히 몸을 돌리시더라고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몇 번이나 아버지를 불렀는데 말이죠.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왜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물으니 ‘무빙워크가 너무 빨라서 발을 얹으면 넘어질 것 같았어’라고 하셨어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무빙워크가 빠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수단이 누군가에게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 존재라니. 제가 사려 깊은 시선을 갖추지 못했던 거죠.”
‘아픈 아버지’를 둔 딸을 향한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일부 사람들은 지나치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요. 나를 위해 해봄직한 행동들에 제약이 걸리는 기분도 들었어요. 연애나 여행 같은 것들. ‘부모님이 아프신데?’라면서 그걸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에게 슬픔 혹은 분노만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요.”
흔들리는 시기도 있었지만, 긍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별씨와의 시간을 차곡차곡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아버지도 ‘내 이야기가 누군가한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뜻깊은 게 아니겠느냐’고 하셨죠. 응원을 제일 많이 해주셨어요.”
‘난치병’을 벗 삼아
웹툰을 연재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긍씨는 약 5만 명의 독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가 많이 와요. 병을 앓고 있거나, 가족이 투병 중인 분들이 제법 있더라고요. 덕분에 씩씩하게 이겨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세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타이밍이 훨씬 늦게 찾아왔을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별씨 눈에는 그저 ‘막둥이’다. 매일 아침 ‘오늘도 은선이의 하루가 희망의 날이 되길 바라며. 아빠 딸로 태어나서 정말 고맙다’와 같은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가 도착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난치병을 친구라 부르시더라고요. 이놈을 벗으로 삼으면 조금은 사뿐해진 마음으로 더 자주 웃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 강인함의 경도를 제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희한테 긍정적으로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하세요. 저도 이 상황을 덫에 걸렸다고 생각하기보다 태풍이 불어와도 중심을 잃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닻이 생겼다고 여기기로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께 받은 사랑을 힘껏 돌려줄 수 있는 순간이 왔다고 봐요.”
긍씨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투병 중이라면, 병이 찾아온 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서 어떤 게 문제였는지 원인을 찾아봐야 소용없어요. 오히려 당사자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거든요. 병은 잘못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또 병이 생겼다고 해서 어제까지 잘 웃던 사람이 오늘부터 계속 울어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본인의 희로애락을 모두 소중히 여겨야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죠. 노년에 찾아오는 비극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넘어섰다. 젊은층은 물론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마냥 유용하고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생기는 질병은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50세 이상 중장년층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한 질병이 발생하는 추세다.
50세 이상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니어가 유의해야 할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한 근골격계 질병과 예방법을 소개한다.
① 방아쇠 수지
‘방아쇠 수지’는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과 부기가 생기는 질병이다. 손가락을 구부릴 때 힘줄이 마찰을 받아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진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손가락은 우리 몸에서 가장 얇은 부위로 무리가 쉽게 가는 취약한 부위다. 그런데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손가락 사용도 많아졌다. 이것이 엄지를 주로 사용하는 ‘엄지족’들 사이에서 방아쇠수지증이 많이 발병하는 이유다.
특히 방아쇠 수지는 잦은 스마트폰 사용과 더불어 반복적인 가사 활동을 하는 40세 이상 중장년 여성에게서도 많이 발생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12만7000명이던 환자가 10년이 지난 2020년에는 23만8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중 40~50대 여성이 8만2000여명으로 전체에서 34.5%를 차지할 만큼 중장년 여성에게 주의가 필요한 질병이다.
방아쇠 수지는 병세가 진행되면 손이 뻣뻣해지고 손가락 움직임이 제한되며 손등뼈에도 압통이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 방아쇠 수지 환자는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스트레칭 치료로 좋아진다. 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방아쇠 수지를 막을 수 있는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손가락 스트레칭을 권장한다. 손바닥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반대편 손으로 아픈 손가락을 잡고 천천히 올려준 후 5초간 머무른다. 이 동작을 5회 반복 시행한 뒤 반대쪽으로 한 번 구부리는 동작을 한다. 다만 엄지 손가락은 스트레칭 방법이 다른데, 엄지를 움켜쥐고 위로 향하도록 하면 된다.
② 손목터널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 앞부분의 힘줄과 신경이 지나는 수근관(손목 터널)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과 감각 이상 증세가 발생하는 질병이다. 손목터널증후군 역시 방아쇠 수지와 마찬가지로 40세 이상 중장년 여성에게서 자주 발병한다. 가사 노동과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반복적인 손목 사용이 주요 발병 요인이다.
손목터널증후군의 특징적인 증상은 엄지와 검지, 중지를 중심으로 저린 증상이 생기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다. 이를 그냥 방치하면 증상이 심해지면서 손이 타는 듯한 통증으로 이어지거나 감각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자생한방병원의 한수빈 한의사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가 손목”이라며 “양쪽 손등을 마주대고 1분간 유지한 후, 손목통증을 느낀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증이 심할 경우 병원에 내원해 진료를 받길 권한다”라며 “심하지 않다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통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칭 방법은 한쪽 팔을 정면을 향해 뻗어 반대쪽 손으로 뻗어 있는 손가락을 잡고 몸 안쪽으로 당겨준다. 자세한 스트레칭 방법은 자생한방병원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③ 거북목 증후군
C자 모양의 정상적인 목뼈가 잘못된 자세로 인해 일자로 변형되는 ‘거북목 증후군’은 과거엔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장인들에게 주로 발병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시니어들이 거북목 증후군에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노안(老眼)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노안으로 인해 스마트폰 화면 속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푹 숙여서 보는 경우가 많아진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거북목(일자목) 증후군 환자 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50~60대 중장년층 환자 수는 2014년 61만4771명에서 2018년 73만2443명으로 5년새 19.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재활의학과 신덕수 전문의는 “거북목 증후군은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 취하는 잘못된 자세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일자목을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목 디스크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평소 생활습관 개선을 통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거북목 증후군 예방 생활습관
1. 스마트폰을 볼 때는 고개를 푹 숙이지 말고, 눈높이보다 약간 낮게 들고 본다.
2. 컴퓨터 모니터는 시선보다 아래에 놓이지 않게 책 등을 쌓아 눈높이를 맞춘다.
3. 장시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은 금물! 20~30분 간격으로 목과 주변 근육을 스트레칭하고, 틈틈이 턱을 앞으로 당겨 두 턱을 만드는 습관을 들인다.
4. 베개는 목이 C자 모양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게 하고, 근육에 긴장이 가지 않도록 바닥에서 6~8cm 정도를 유지한다.
5. 엎드린 자세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자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중년이 되면 근골격계의 건강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이에 따라 허리와 무릎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공을 들이는 시니어들이 많다. 하지만 손과 목뼈에 신경을 쓰는 시니어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는 질병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무서운 질병으로 덧날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일상 속에서 서서히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손과 목에도 관심을 갖고, 스트레칭과 바른 자세를 통해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직이 숨을 고르고는 붓에 힘을 주었다. 오늘은 왠지 붓끝이 가볍다. 이제 한 획만 쓰면 된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마지막 획을 길게 내리긋는다. 미세한 흔들림도 없이 붓끝이 전서체의 획을 마무리했다. 나는 황색 부적지에서 붓을 떼고 지긋이 글씨를 바라보았다. 집안에 두 마리의 용이 화목하게 깃들어 있는 모양새다. 마주 보는 획이 기울지 않고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게다가 단아한 글씨와 잡귀를 물리치는 담백한 운필로 금방이라도 집안 가득 화평한 꽃 기운이 생동할 것만 같다. 나는 매우 흡족해하며 붓을 옆에 나란히 놓았다.
보통 부적符籍이라 함은 대개 한 해의 액厄을 피하거나 벽사壁邪와 기복祈福의 민간 신앙을 담고 있는 데서 유래한다. 요즘에는 현대적이며 새로운 글씨체를 통해 무병장수의 삶과 소망을 담긴 부적을 주로 찾는다. 적당한 먹의 농담과 담백한 운필. 그리고 기운 생동한 붓질과 여백 등이 조화롭게 그려진 부적을 높이 쳐 준다. 가게 진열대에 인쇄소에서 찍어낸 부적이 다발로 있지만 단골 손님들은 내가 직접 쓴 부적을 원한다. 내가 직접 써서 파는 것은 한 장에 십만 원 정도를 받는다. 부적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싼 것은 한 장에 백만 원까지 받는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 경지의 부적은 가로세로 획마다 금석기金石氣가 있으며 글씨는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과 다양한 서체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조형미까지 갖추고 있다. 실로 대단한 경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게다가 그보다 한술 더 뜬 최고 경지에 이른 부적은 완연한 획의 흐름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감지되며 파격적인 데다 변화무쌍하고 괴기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나는 부적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쓴다. 부적을 쓰는 날은 보통 손 없는 날을 잡는다. 부적을 쓸 때는 신령한 공력이 배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고 동쪽을 향하여 정화수를 올린다. 그리고 향을 사른 후 무릎을 꿇고 주문한 손님들의 소망을 염원하며 기도를 올린 뒤 경건하게 붓을 든다.
나는 진열장 겸 책상으로 쓰는 계산대에 앉아 방금 쓴 부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색종이 위에 마르지 않는 붉은 글씨가 물기로 번들거렸다. 부적지로 사용하는 종이는 홰나무로 만든 괴황지다. 크기는 가로 10센티 세로 15센티 정도다. 붉은 먹물은 흔한 물감이 아니라 경면주사鏡面朱砂라고 하는 특별한 안료이다. 그것의 원료는 붉은색을 띠는 광석에서 채굴한다. 원료를 작은 용기에 넣고 절구공이로 곱게 빻아서 미세한 가루로 만든다. 그리고 부적유符籍油로는 참기름이나 백설탕을 녹인 액체를 가루와 섞으면 부적 특유의 붉은 색깔과 특유의 향을 풍기는데 이것을 경면주사라 한다.
나는 고개를 들고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벽시계는 한겨울의 나른한 오후를 가리키고 있다. 가게 중앙에는 활활 타는 전기난로가 썰렁한 가게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아담한 공간에는 무속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제의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맞은편 붙박이 진열장에는 망자들의 넋을 달래줄 영가 옷이 촘촘히 쌓여있고 그 옆에는 무속인들이 굿할 때 쓰는 무신도 대신방울 오방기 장군칼 향로 장구 꽹과리 북 등 무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등 뒤로는 기도할 때 쓰는 등초 무지개초와 목향 금난향 궁연향 등 각종 향과 초가 칸칸마다 들어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실내에 놓인 간이 탁자 위로 시선을 옮긴다. 그것은 장판을 씌운 자그마한 작업용 탁자다. 무속인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골라 탁자에 놓으면 그것들을 큰 보자기로 싸서 묶는 곳이다. 그들이 한 번씩 가게에 들러 굿판에 쓸 제의 용품을 고르면 보통 서너 보따리가 넘을 때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무속인, 하면 무당이라 하여 천시하는데 정작 그들의 신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는 신령님을 섬긴다. 신령님을 무가에서는 보통 몸주라 부르는데, 그들은 몸주와 교감하는 능력을 지닌 영매자靈媒者이기 때문이다.
잠시 창밖으로 눈길을 부렸다. 하늘이 점차 흐려지는가 싶더니 진눈깨비가 풀풀 날리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팔짱을 낀 연인이 까르르 웃으며 정답게 걸어왔다. 세련된 차림에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두 사람의 어깨엔 얼음 가루가 묻은 스케이트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디 스케이트장에라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언뜻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눈길을 당겨 부적을 봤다. 부적이 거의 다 말라 있었다. 부적을 조심히 집어서 서랍장에 넣었다. 지금은 명절 전이어서 손님이 뜸한 편이다. 설이 지나면 한해의 액땜이나 복을 바라는 부적 주문이 들어오고 굿판도 자주 열릴 것이다. 내가 부적을 쓰게 된 것은 손님들 때문이다. 부적을 찾는 손님마다 직접 손으로 쓴 걸 원하기에 오빠를 통해 부적 쓰는 법을 배웠다. 처음엔 한 장 두 장 팔리던 것이 지금은 소문이 좋게 돌아 단골로 내 부적을 사가는 손님들이 제법 있다. 유리문에 매달린 종소리가 쨍그렁, 하고 울렸다. 출입문 쪽을 보았다. 조금 전에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가던 연인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언니, 우리가요, 만난 지 꼭 백 일째거든요. 그래서 부적처럼 간직할 수 있는 기념품을 찾는데, 어떤 게 있어요?”
“그러세요? 축하드려요.”
나는 현대적으로 고안된 액세서리 부적 용품이 걸려 있는 매대로 그들을 안내한다. 진열대에는 갖가지 액세서리 부적 용품들이 걸려 있다. 그들은 이것저것 가늠해보다 그중 하나를 고른다.
“언니, 이걸로 할게요.”
그들이 고른 것은 나비 문양의 매듭 핸드폰 줄이다. 날개 사이에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옴(범어)자가 새겨져 있다. 옴이란 길상의 뜻을 지닌다. 전통 문양인 나비 그림에 상감기법을 적용한 앙증맞은 부적이다.
“나비 문양이네요. 나비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한대요. 게다가 사이좋은 연인이나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하구요.”
“그래요? 그럼 우리가 잘 고른 거네요, 호호.”
풋풋한 연인들이 싱그러운 웃음을 떨어뜨려 놓고 나가자 마음 한곳이 공허해졌다. 나는 콤팩디스크를 켰다. 오카리나의 잔잔한 소리가 가게 안을 흘렀다. 혼자 있을 때면 자주 듣는 음악이다. 나는 눈을 감고 향기로운 소리에 잠겨 들었다. 짙고 푸른 숲이 보이고 맑은 계곡물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가난한 저녁을 먹고 달빛 맑은 산중에서 도란도란 자연과 대화하는 소리. 때로는 별빛 아래에 앉은 외로운 목동의 피리 소리 마냥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왔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찻잔에 부었다. 계산대에 앉아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눈발이 제법 굵어져서 분분히 날리고 있었다. 집안일 외엔 다른 일이라곤 전혀 해 본 적 없던 내가 10년 전에 불교용품점을 차리게 된 까닭은 불의의 화재 때문이다. 그 화재로 인해 남편은 세상을 떴다. 남편을 빼앗아간 그 화마의 기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내 마음 어느 한켠에는 여전히 남편과의 마지막 순간이 스냅사진처럼 뚜렷하게 찍혀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남편이 내 곁에 존재하는 듯 그의 부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환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남편을 빼앗아가 버린 그 악몽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자동차 딜러였던 남편은 여느 날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새로 다려놓은 하얀 와이셔츠에 내가 생일 선물로 사 준 넥타이를 맸다. 그리고는 셋집 빌라 이 층 계단을 바쁘게 내려갔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남편은 남보다 항상 먼저 출근을 했다. 또한 가장의 책임감 때문인지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성실함 때문인지 남편은 동기들보다도 먼저 승진하는 기쁨도 누리기도 했다.
잠시 뒤 남편이 투덜거리며 다시 계단을 올라왔다. 자가용 바퀴가 펑크 났다고 했다. 아무래도 전철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날씨가 풀렸다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날씨여서 나는 남편에게 외투를 한 겹 더 입혀주며 잘 다녀와요, 라고 하며 생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잘 다녀와요, 라고.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킨 후에 청소를 하며 TV를 켜는데,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떴다. 오전 9시 경 ㅇㅇ역 전철 내에서 50대 남성이 플라스틱 통에 든 휘발유에 불을 붙인 뒤 객실 내에 던져 차량 내부를 완전히 전소시켰다는 뉴스였다.
뉴스 자막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ㅇㅇ역은 남편이 종종 전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할 때 이용하는 전철역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범인의 방화시간과 남편의 출근 시간을 되짚어보았다. 9시 경이면 남편은 이미 회사에 출근해서 근무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남편은 보통 회사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화마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의 직업상 외근이 잦은 업무여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의 휴대폰에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만 줄곧 들려왔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계속 통화 중이더니 겨우 연결이 되었다. 저쪽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사모님,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김과장님이 9시 경에 ㅇㅇ역 방향으로 외근을 나갔다고 합니다. 저희도 지금 연락이 안 돼...‘ 나는 저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철 화재는 내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남편의 시신은 화염 속으로 사라져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큰 충격에 오열과 통곡을 하며 까무러치기를 반복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빙의 상태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넋을 놓고 살았다. 살아도 산 게 아닌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꿈속이든 현실이든 가릴 것 없이 언제든지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리가 연애할 때 서로 손을 꼭 부여잡고 마음 졸이며 봤던 이라는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슬픔에 잠긴 한 여자와 그런 여자를 두고 이승을 떠나지 못한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였다. 우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 저릿하게 관람했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몇 년 후 내 얘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을 잃은 그 도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을 무렵. 친오빠의 도움으로 수원으로 이사한 뒤 ’종로불교사‘라는 가게를 열었다. 친오빠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불교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를 연 후로 나는 남편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아왔다. 행여 힘든 일이 생기면 나 자신이 나약해질까 두려워서 일부러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 서 있는 남천나무에도 조용히 눈이 쌓여갔다. 붉게 물든 채로 말라버린 남천나무 이파리들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꼭 붙어있다. 나는 시선을 당겨 계산대 끝에 놓인 모래시계를 발견했다. 유리로 된 호리병 모양의 입구가 위아래로 마주 보게 붙어있다. 그 안에는 보라색 모래 알갱이가 들어있다.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우자 보라색 모래 알갱이가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모래 알갱이들이 시간을 거슬러 쌓인다. 모래시계를 물끄러미 응시하다 보니 남편을 떠나보낸 지 5년쯤 후에 문득 내 앞에 나타난 한 남자가 떠올랐다. 평소 친한 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남자다. 언젠가 그 남자와 애들이랑 커다란 모래시계가 있는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사 온 기념품이다. 피차 서로 미워해서 헤어진 게 아니어서 추억이 깃든 모래시계를 굳이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
초혼일 때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고, 재혼일 경우에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라고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던가. 만약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될까. 아니면 아이들의 의견을 따라 지금처럼 혼자의 삶을 선택하게 될까. 지혜롭게 사랑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행복이다, 라는 명제를 어느 책에선가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운명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바꾸기 나름일까. 여전히 나는 홀로서기라는 무거운 숙제 앞에 주눅이 들곤 한다.
그 남자는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은혜 씨를 향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도 몇 년 전 이혼이라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수수하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의 첫인상에 호감이 갔다. 그 남자가 싫지는 않았다. 아니,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나도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종종 만남을 가졌다. 남자가 모 문예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기뻐했고 축하를 건넸다. 그날 밤 우리는 수상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격렬하고도 뜨거운 사랑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사랑의 증표로 남자에게 새 자동차를 선물했다. 자동차 키를 받아든 남자는 감격하며 자신은 여태까지 한 번도 자동차를 소유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한다고 다 결혼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신은 인간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않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그 남자에게 매우 호의적인 데 반해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은 은근히 적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어쩌면 낯선 남자에게 엄마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심리가 깔려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심리가 은연중에 나타난 날이 있었다. 한번은 다 같이 어느 공원에 나들이 가는 중이었다. 그날따라 비를 뿌렸는데 자꾸 앞 유리창에 성에가 끼면서 뿌예졌다. 아직 새 차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는 어떻게 성에를 제거하는지를 몰라서 무척 당황해했다. 그 와중에 뒷좌석에 탔던 아들이 괜히 심통을 부렸다. 남자는 차량 조작법을 몰라 당황하던 터라 아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풀이를 했다. 그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이 머리를 스쳤다. 과연 내가 저 남자를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기도 했다.
내가 가끔씩 남자를 만나는 동안 유독 예민해진 아들이 은근히 속을 끓였다. 어느 날은 밥을 먹지도 않고 짜증을 부리는가 하면 예전에 안 하던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아들이 한편으로는 안 되어서 하루는 잠들기 전 나란히 누워서 대화를 나눴다.
“엄마, 그 아저씨랑 함께 사는 거야?”
“왜? 그러면 안 돼?”
“나, 그 아저씨 싫어. 나는 엄마랑 오래오래 살 거야. 엄마, 그 아저씨랑 살지 마. 알았지?”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뭔가 설움 같은 게 울컥 치밀어서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엄마는, 아무하고도 안 살아. 우리 아들하고만 살 거야.”
나는 아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아들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어코 사단이 나고 말았다. 한날은 잠시 놀러왔던 남자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거실에서 깜박 낮잠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밖에서 들어온 아들이 그걸 보고는 안 그래도 꼴보기 싫었던 터라 마침 잠자고 있던 남자의 머리통을 냅다 발로 밟아버렸다. 남자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 너무 황당하고 화가났다고 했다. 어찌 생각하면 순수한 아이로서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사랑하는 엄마를 빼앗아가는 남자가 오죽 미웠으면 그랬겠는가, 싶기도 했다. 남자는 어린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무척이나 당황하기도 하고 실망해서는 그날 이후로 발길도 뜸하다가 자동차를 돌려주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그렇게 그 남자와 사이가 멀어지고 나니 다시 예전처럼 되돌리기는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남자도 자신의 혈육이 아닌 두 아이를 감당하며 어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 후로 그 남자와는 가끔씩 안부를 묻는 친구 사이로 남기로 했다. 최근에 그 남자로부터 시집이 배달되었다. 등단 후 출간한 첫 시집이라고 했다. 나는 가만히 그의 시집을 펼쳐들었다.
모래시계의 모래 알갱이들이 거의 다 흘러내릴쯤 유리문에 달린 방울 소리를 짤랑거리며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천궁 보살이다. 보살은 올해 쉰 줄로 머리가 벌써 반백이다. 생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쪽을 쪘다. 굿이 있는 날이면 가게에는 가끔씩 들렀다. 그는 늘 피곤한 기색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가격을 흥정할 때도 고갯짓으로 거의 다 하곤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쉽게 속내를 보인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말해야 될 때도 필요한 말이 끝나면 도로 입이 닫힌다. 나는 예의 밝은 표정으로 인사말을 건넸다.
“보살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
“차 한 잔 드릴까요?”
보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탁자에 앉았다. 그날따라 보살은 더욱 초췌하고 피곤해 보였다. 나는 차를 타서 보살에게 건네고 곁에 앉았다. 볼륨을 줄인 오카리나 소리가 가게 안을 잔잔히 흐르고 있다. 보살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입에 댔다가 뗐다.
“부적이나 한 장 받을까 하고….”
“부적이라면 보살님도 쓸 수 있지 않아요?”
사실 웬만한 무속인들에게 부적은 필수여서 대개가 다 직접 써서 판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저 어깨너머로 배운 내게 부적을 써 달라니.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부적이라면 신통력이 있는 무속인들의 부적을 더 높이 치기 때문이다. 무속인 중에도 세습무인 숙무와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가 있는데, 특히 강신무의 부적이 더 영험하다 하여 부르는 게 값이다. 천궁보살도 내 짐작으론 강신무降神巫임에 틀림없다. 일전에 어느 손님이 천궁보살한테 부적을 받은 거라면서 쓴 지 오래된 부적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흔히 보는 부적이 아니라 자동 기술된 검은색 글씨였다.
“나, 부적 안 쓰네.”
“아니, 부적을 안 쓰다니요?”
“…….”
“아무렴, 제가 쓴 부적보다야 보살님이 쓴 부적이 훨씬 더 영험하지 않아요.”
“영험은 무슨...우리 집 영감이 엊그제 죽었네. 그래서 저승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부적 보시나 하려고.”
“그렇다면 영감님을 위해서 더욱 부적을 쓰셔야죠.”
“급살 맞을 냥반….”
보살은 퀭하게 들어간 눈언저리를 비비며 물기를 닦았다.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보인다. 그동안 마음고생도 어지간히 한 것 같아서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과 살아오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을 보살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것 같다. 어쩌면 보살의 마음이 시린 하늘에 떠 있는 조각달처럼 한없이 쓸쓸하리라. 남편이 떠난 이후에 내게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길을 걷다가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남편이 손짓하는 듯한 환영. 꿈속을 찾아온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눈을 뜨면 문득 혼자란 생각에 하염없이 베개를 적시던 눈물. 내 안에 간직된 남편이라는 슬픈 단어. 신의 시샘을 받은 것일까. 남편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려고 내게 많은 사랑을 안겨주었는지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힘들게 결혼한 만큼 남편은 나를 더욱 아껴주었지. 그런 남편의 따뜻한 품에서 나는 온실 식물처럼 살았다. 쉬는 날이면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하는 게 취미인 듯, 바다로 가서 개펄을 파헤치거나 산을 오르기도 했다. 한 번은 산을 오르다 토끼풀이 수북이 우거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네잎크로버를 찾기로 했다. 먼저 내가 한 잎을 찾자 남편도 곧이어 찾았다. 그리고는 네잎크로버가 잇따라 발견되었다. 남편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행운이 줄줄이 오려나 보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했던 시간들. 남편은 발견한 네잎크로버를 행운의 부적이라며 책갈피에 소중히 끼워 두었다.
실내를 흐르던 오카리나 멜로디가 다음 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보살을 향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영감님이 생전에 보살님한테 잘못한 게 많으신가 보네요?”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지. 불쌍하기도 하고….”
목이 타는 듯 보살은 손에 든 찻잔을 입에 가져가 길게 들이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기를 잃은 반백의 머리가 빗질을 자주 하지 않아서 부스스 일어나 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보살이 부적을 쓰지 않을까. 보통 무속인들은 굿이 없을 때는 사주를 봐주거나 부적을 써서 생업을 이어간다. 더러는 식당이나 상점을 하기도 하지만. 보살은 찻잔에서 입을 떼고 헛기침을 한 뒤에 목청을 다듬었다.
“우리 집 냥반이 젊었을 적부터 내 속께나 썩였지. 아들을 하나 낳고 둘째를 가지려는데 어떤 영문인지 들어서지가 않더구먼. 그래서 외아들을 금쪽같이 여기며 키웠네. 그런데 원래 난봉기질이 있던 냥반이 슬슬 바람을 피우더란 말일세. 그래서 바람기를 잡으려고 점쟁이 집에 가서 부부금슬이 좋아지는 애정 부적을 샀네. 부적은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효험이 있잖은가. 그래서 두 장을 받아서는 한 장은 꼭 접어서 영감 바지춤에 몰래 숨겨놓고 또 한 장은 베개 속에 넣었지. 그런데 부적이 효험이 없는지 이 냥반의 바람기는 갈수록 심해지더구먼. 그래서 다음번엔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서 비방을 물어봤네. 남편 바람기를 잠재우는 데는 여우자궁 만큼 좋은 부적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요새 살아있는 여우도 보기 힘든데 어디서 여우자궁을 구하냐니까. 다 구하는 수가 있다며 알려주데. 중국을 드나드는 보따리 상인들이 몰래 사가지고 들어온다는구먼. 그래서 얻기 힘든 여우자궁을 하나 얻지 않았겠나. 그리고는 그것을 내 속옷에 몰래 숨기고 있었지. 그러고 한 며칠 지나니까 아닌 게 아니라 이 냥반의 바람기가 수그러들더란 말일세. 집에도 곧장 들어오고 사업차 출장 간다는 핑계도 줄어들고 말이지. 그게 정말 효험이 있어서 그런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바람기는 없어졌네.”
“아휴, 보살님. 사내들은 젊을 적에 한 번씩 다 바람을 피운다잖아요.”
남편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한번은 빨래를 하려고 남편 바지주머니를 뒤지는데 쪽지가 하나 나왔다. 업무적인 메모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암튼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건 메모 내용이 아니라 글이 적힌 메모지였다. 그것은 일상적인 메모지가 아니고 하트 그림이 그려진 종이였다. 저녁에 퇴근하자 대뜸 당신, 어디 숨겨놓은 여자 있어요? 하고 물었다. 남편은 뜨악한 눈빛을 하다가 이내 웃으며, 당연히 있지. 여기 당신, 하고는 얼버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남편이 뭔가 숨긴다 싶어 감추고 있던 메모지를 얼굴에 디밀었다. 메모지를 본 남편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아, 그거! 하면서 고백을 했다. 며칠 전 출장길에 우연히 결혼 전 사귀었던 여자를 만났다고. 그리고 함께 차를 마시고 헤어질 때 여자가 남편에게 메모지를 건네준 거라고. 나는 남편에게 이딴 메모지를 받지 말라며 못을 박고는 씩씩댔던 기억이 났다.
보살은 눈이 약간 침침한 듯 눈을 한번 비비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일별했다. 어젯밤에 잠을 옳게 못 잤는지 눈동자도 붉게 번져있었다. 찻잔에 남은 차를 마저 입에 붓고는,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하지. 이 냥반의 바람기도 좀 잠잠해지고 사업에 열심이다, 싶었는데 덜컥 부도가 나버렸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앞으로 열차가 지나다니는데, 철로에서 놀고 있던 외아들이 열차에 치여 죽었어. 부도난 이후로 이 냥반은 도망다니느라 기별도 없고, 외아들은 죽고. 나는 실성하다시피 해서 사는 걸 작파했지. 그러다가 종종 부적을 받으러 드나들던 무당을 찾아가서 죽은 아들 넋이나 달래주려고 굿을 부탁했어. 그리고 굿판이 한창 열리고 연신 비나리를 하는데 천궁에서 온 신령神靈이 그예 턱 하니 내 몸주로 들어와 버렸다네. 그때가 아마 20여 년 전이었지.”
물끄러미 얘기를 듣고 있는 내 마음도 덩달아 숙연해졌다. 늘 입을 닫고 살아가는 보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게다가 가게에 올 때마다 늘 추레한 옷차림. 영감님의 행방불명과 외동 아들의 불의의 사고. 아마 보살은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소중한 자식을 잃고 녹록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저 앙상한 가슴에는 얼마나 깊은 한을 담고 있을까.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생떼 같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슬픔을 그 무엇에 비할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날이 어쩌면 죽는 일보다 못한 형벌의 삶이리라. 내 삶이란 것도. 남편이 남기고 간 흔적을 매일 마주쳐야 하는 슬픈 날들. 아침이면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는 베개를 안고 또 흐느껴야 하는 텅 빈 시간. 남편이 여느 날처럼 일찍 일어나는 습관처럼, 불쑥 화장실에서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물끄러미 화장실 문을 응시하기도 했다. 다른 남편들은 반찬 타박도 잘한다는데, 어떻게 된 건지 음식솜씨도 별로인 내가 밥상을 차려주면 꾸역꾸역 군소리 없이 잘도 먹었다. 한번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때는 정말 남편이 귀엽게 보여서, 일부러 맵고 짜게 국을 끓였더니 내 입맛이 변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편이다. 남편과 사내 결혼한 내가 잠깐 직장 생활한 것 말고는 결혼한 이후 줄곧 살림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남편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며 문득문득 며칠 전의 아침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침울한 아이들을 달래 학교에 보내 놓고 힘없이 앉아 남편의 체취가 밴 가구들을 만져보다 울컥 슬픔이 복받쳐오기도 했다.
가난한 우리는 소박한 결혼식을 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갔다. 마침 눈이 내려 산길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등산로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나를 덜렁 업고 가면서 내 와이프가 보기보다 무겁네, 하며 놀려댔었지. 엊그제 남편의 쉰 번째 생일날, 생일상에 밥과 미역국을 떠 놓고 그의 부재에 난 또 얼마나 흐느꼈던가. 남편은 결혼하고 십 년간 내 곁에 머무르다 떠났다. 그리고 홀로 견뎌온 십 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가끔씩 모든 게 허무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살아있으면서 이렇듯 무감각하게 세상을 응시하는 지금의 나. 어떤 날은 일이 손에 안 잡혀 매사에 흐느적거리다 하루해를 넘기기도. 그럴 때면 거울을 들고 또 다른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깨진 거울 조각 속에 내 얼굴이 들어 있는 것처럼. 그 안에 조각난 얼굴이 슬픈 눈으로 나를 지그시 건너보았다.
언젠가 남편과 함께 동해 바닷가로 드라이브 갔던 날, 처연한 장면을 봤다. 국도 한복판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차량들이 쌩쌩 달리며 일으키는 바람에 하얀 털이 날리고 있었다. 만지면 아직은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을 것 같은 들개의 주검. 나는 문득 죽어있는 들개의 몸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순간 내 손끝을 타고 끔찍한 소름과 시체의 온기가 동시에 전해져 온 것 같아 몸을 가늘게 떨며 움츠렸다. 사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량들이 들개의 몸을 타고 넘어갔다. 그럴 때마다 죽은 들개의 머리가 들썩거렸다. 죽기 전까지도 한 발만 더 뛰면 바퀴에 치여 죽는다는 것을 모른 채 앞으로만 달렸을 미련한 짐승. 어쩌면 내 삶도 길 위에 죽어있는 그 미련한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욱한 존재. 어느 순간 내 앞에 깊은 슬픔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달려오지 않았던가. 남편이 책갈피에 끼워놓은 네잎크로버의 행운이 늘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여기듯. 슬픔과 행복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둘이 아님을, 남편을 잃고서야 가슴이 저리도록 와 닿았다. 전철 화재사건 뒤 처참한 내 심정은 길에서 죽은 개의 사체 같았다. 개의 몸뚱이 위로 차바퀴가 수없이 지나다 보면 나중에는 털가죽만 남듯, 남편을 잃고 한동안 방황한 내 삶은 생명을 잃은 털가죽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바닷가 큰바위에 서서, 우리도 여기 온 기념으로 글을 새겨두자고 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싫어할 텐데, 하며 말렸다. 그러나 남편은, 옛날 선사시대에 바위에 그렸던 암각화라는 것도 일종의 행운을 비는 부적이래. 그때 사람들도 바위에 그림을 새기며 풍요를 빌었을 거야. 그리고 바위에 새긴 동물마다 상징하는 그들의 소망도 깃들어 있는 거래,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침 색깔이 나는 작은 돌멩이를 찾아서는 글을 새기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 넘치기를. 현우와 은혜 다녀감. 글을 다 쓰고 난 남편의 환하게 웃는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많은 시간. 어느 순간 남편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과 나를 지켜보리라는 느낌이 불현듯 들 때도 있다. 언뜻 등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 얼핏 뒤돌아보면 무료한 정물 풍경만이 헛헛한 가슴으로 밀려들던 상실감에 몸을 떨기도.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유독 아빠를 잘 따랐다. 퇴근한 남편과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장난을 치거나 할 때면 은근히 질투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짧은 시간 동안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안겨주고 떠난 것 같다. 평생 나누어 줄 사랑을 한꺼번에 다 주고 가려는 것처럼.
시난고난한 삶을 살아 온 보살은 나이에 비해 주름도 많이 잡혀 있었다. 그 모진 세월을 저 보살은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보살은 눈언저리로 흘러내린 몇 올의 머리카락을 갈퀴 같은 손으로 쓸어 올리더니,
“그렇게 집안 폭삭 망하고 팔자에도 없는 무당이 되었지. 사는 게 힘들 때는 한 많은 이 세상과 연을 끊으려고 골백번도 마음먹었지.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고, 모진 게 목숨인가 벼. 이를 악물었지. 죽을 때 죽더라도 이 냥반이 집에 돌아오는 것 보고 죽겠다고. 그래서 내가 배운 짓이라고는 푸닥거리밖에 없으니 굿판을 열거나 부적을 쓰면서 연명했네. 시난고난 갖은 고생하며 사는데 한날은 파출소에서 깜깜무소식이던 그 냥반 소식이 들려오더란 말이여. 웬 부랑인이 나를 찾더라고 하면서. 한달음에 가보니 허, 이 냥반이 거지꼴을 하고 쭈그려 앉아있는데, 우리 집 영감이 맞는가 싶더구먼. 가만히 보니 눈도 좀 이상해 보이는 게 정신도 온전치 않더라니. 옛날에 그 번지르르하던 행색은 어디 가고 꼭 비렁뱅이 짝이었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사락사락 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멎었다. 그 눈발은 보살의 앙상한 가슴속에서 여전히 날리는 것 같다. 황량한 들판 위로 가뭇없이 날리는 눈보라처럼. 보살의 눈동자가 텅 비어 보인다. 생기라곤 한 가닥도 없어 보이는 그런 눈빛. 예전에 내 눈빛이 그랬었지. 멍한 눈으로 앉아있는 날들이 많았다. 공원에서 낯선 이가 앉았다 간 빈자리도 쓸쓸해 보이는데, 하물며 가장 사랑하는 남편의 빈자리임에랴. 혼자인 시간에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면 햇빛 쨍쨍한 대낮이 걸려 있고, 눈을 감으면 내 안에는 굵은 눈발이 날렸다. 하루하루가 혼돈과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행여 시장이라도 다녀오다 아는 이를 마주치면 왠지 미워지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도 저이와 나는 행복의 저울질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 형편과 비슷한 집이나 조금 잘 사는 집의 행복을 저울질하며 그렇게.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 오면 일부러 돌아가기도 하며 내 처지에 대해 원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거나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전에는 간혹 싱크대 밑에 서식하던 바퀴벌레라도 스멀스멀 기어 다니면 징그러워 비명을 질렀는데, 언젠가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꾹꾹 눌러 죽이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놀랐다. 남편을 잃은 내 마음은 늘 공허했다. 부적 쓰는 법을 배운 뒤 처음으로 남편의 넋을 위해 붓을 잡던 날. 나는 한 획도 쓰지 못하고 펼쳐진 부적 종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종이 위에 남편의 얼굴이 어른거려 눈물만 떨어뜨렸다. 나는 붉어진 눈언저리를 닦고 모질게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악착같이 한번 살아보리라. 만약 신의 시샘이라면 멋지게 살아서 초라해진 내 삶을 복수하리라고. 그리고는 다시 붓을 잡고 온 기력을 쏟아 부적을 썼다.
나는 고즈넉이 난로를 바라봤다. 여전히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열기로 가게 안이 따뜻해졌다. 혼자가 된 이후 나는 한동안 불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불을 보면 자꾸만 남편이 떠올랐다. 저 뜨거운 불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 그 악몽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꿈속에서도 남편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나타나곤 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남편과 내가, 그리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이 송두리째 불길에 휩싸였던 그날의 악몽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느덧 오카리나 소리도 멎어있었다. 보살은 회한이 밀려오는 듯 눈을 잠깐 감았다 떴다. 다시금 눈에서 물기가 나오는지 손등으로 살짝 훔치더니,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온 냥반이 그래도 핏줄은 보고 싶었는지 아들을 찾더라니.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아들이 살아올 리는 없고. 아들이 열차에 치여 죽은 걸 알고는 점점 더 정신이 오락가락했지. 그래서 굿판도 열어 푸닥거리도 해보고 부적을 써서 집안 곳곳에 붙여도 봤지만 효험이 없더구먼. 나중에는 병이 깊어져 할 수 없이 병원에 입원을 시켰네. 그런데 며칠 후에 이 냥반이 병원에서 사라져 버렸다네. 다시 찾고 보니 이 양반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큰 사고를 내지 않았겠나. 그 사고로 온몸에 중화상을 입고 여태까지 식물인간과 다름없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네. 그러다가 결국 저승사자가 불러서 엊그제 저 세상으로 갔네.”
“참 안 되셨네요. 그런데 영감님이 무슨 사고를 냈는데요?”
“급살 맞을 냥반이 글쎄, 귀신에 홀렸는지 전철 안에다 불을….”
“전철요? 아니, 영감님이 전철에다 불을 냈다구요?”
“…….”
나는 너무 놀라 동공이 저절로 크게 열렸다. 혹시 보살의 말을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날의 악몽을 잊기 위해 그곳에서 이사를 왔는데, 설마 그 사건의 방화범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보살의 영감님이라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내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키어버린 듯 복잡해졌다. 나는 보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살의 얼굴이 많이 일그러져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입매가 씰룩이고 눈썹이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그 냥반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뒤로 부적을 끊었네. 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여편네가 무슨 낯으로 부적을 쓰겠나. 죽는 날까지 그저 죄인의 몸으로 살아야지….”
고개를 세우고는 남편의 부적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쓴 남편의 부적을 들고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으로 갔다. 화재 현장에는 여러 유해가 뒤엉켜있어 그 일부를 유골함에 담아 납골당에 안치했다. 유골함에 부적을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무리의 새 떼가 황혼의 서편 하늘가를 나는 게 보였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새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산과 하늘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 한편에서는 노을이 스러져 가고, 아래로는 완만한 능선이 아름답게 보일 무렵이었다. 새들은 황혼을 날면서도 서두름 없이 날고 있었다. 뒤 쳐진 새 한 마리가 바삐 무리를 쫓고 있었다. 나는 새들이 서편 하늘로 가뭇없이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해진 것도 같았다.
천궁 보살이 가게를 나간 뒤 시계를 보니 정오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나는 멍해진 기분으로 줄곧 앉아있다가 창밖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멎었던 눈발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나는 깨끗한 부적지를 꺼내어 조심히 유리판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편 얼굴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희미하게 웃는 것도 같았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망자의 부적을 정성껏 써 내려갔다.
•수상소감 - 최우수상 단편소설 박도열
“닐 암스트롱처럼 아무도 밟지 못한 미지의 땅에 소설가로서 첫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코로나 19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뜻밖에 소설 당선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올 한해 최고의 선물이 되겠습니다.
제가 소설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과 생업 때문에 소설 쓰기에 집중적으로 매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접고 비로소 소설 쓰기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소식을 접하고는 응모를 하게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으며 다방면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십 대에는 감동적인 소설을 읽고 나면 볼펜으로 필사를 해 보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저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편의 소설 습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시에도 관심이 많아서 초기에는 한동안 시에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모임에 종종 참석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소설가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분이 평소 저의 시를 보셨는지 하루는 시보다는 소설 쪽에 더 어울린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분 말씀을 듣고 나서 소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라면 으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작가로 남는 게 가장 큰 소망이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처럼 아무도 밟지 못한 미지의 땅에 소설가로서 첫발자국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게는 아픈 손가락들이 있습니다. 늘 무거운 짐으로 제 가슴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 아픈 손가락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흔히 ‘나잇살’이라 부르는 노인 비만의 특징은 두 가지다. 근육 감소와 호르몬의 불균형. 둘 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려면 호르몬의 원리를 알고, 자신의 상태에 맞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노인 비만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호르몬, 비만과 헷갈리기 쉬운 쿠싱증후군, 그리고 도움이 되는 운동법을 소개한다.
참고 내 몸을 살리는 호르몬, 국민체력 100
최근 고도비만 노인이 증가했다. 대한비만학회가 발표한 ‘2020 비만 팩트시트’에 따르면, 중장년층 및 노인의 고도비만 유병률은 지난 10년 사이에 1.5~3.8배까지 올랐다. 고령사회에서 노인 비만은 장수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른바 ‘나잇살’이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노인이 되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각종 질환에 취약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비만은 각종 성인병을 악화하는 주범이기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노인 비만의 특징은 근육 감소형 비만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노화의 영향으로 근육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 40대 이후부터 발생해 70대까지 10년에 8%의 감소가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로는 10년마다 15%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근육 감소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호르몬이다. 을지대학교 김정환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인 비만은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데, 그 원인은 성 호르몬의 감소에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노인 비만의 원인은 ‘호르몬’인 것이다.
우리 몸의 시소, 호르몬
“연예인 A 씨는 살찐 덕분에 재미난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냈다. 살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식욕을 주체할 수 없었던 A 씨는 매일 야식을 먹고,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가슴이 쥐어짜듯이 아프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다. 진단을 받아보니 ‘심근경색’이었다.”
위의 사례처럼 야식이 습관이 되면 돌이킬 수 없다. 야근 후 치맥은 정말 맛있지만, 건강에는 치명적이다. 야식처럼 자극적인 음식은 호르몬의 교란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허기를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과 식욕을 감소시키는 렙틴 호르몬은 우리 몸 안에서 적절히 분비되면서 몸의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액상과당과 트랜스지방이 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이 호르몬에 이상이 생겨서 살이 찔 수 있다.
호르몬은 체지방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비만의 가늠자가 되는 체지방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단순히 체지방이 늘면 나쁘고 체지방이 줄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호르몬은 우리 몸에 필요하며 서로 적절하게 균형 있게 분비돼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렙틴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성장호르몬이 감소할 경우 비만이 생기는데, 이는 호르몬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르몬은 우리 몸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신체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비만을 일으키는 호르몬
[1] 식욕을 늘리는 그렐린
그렐린은 일명 ‘식탐 호르몬’이라 불린다. 시상하부를 자극해 식욕을 느끼게 하고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호르몬이다.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된다. 이 시간에 야식을 많이 먹는 이유도 바로 이 호르몬 때문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간 음식은 그렐린이 급격하게 분비되지 않도록 해준다.
[2] 비만의 주범, 인슐린
인슐린은 살이 찌고 빠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자에서 분비된 인슐린은 보통 식후 3시간이 지나면 활성화되는데, 너무 많이 분비되거나 적게 분비되면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장수하는 사람의 경우 대체로 인슐린 수치가 낮다고 한다. 고탄수화물 음식, 설탕, 청량음료, 트랜스지방 등을 많이 먹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된다.
[3] 여성을 살찌우는 에스트로겐
에스트로겐은 여성 신체의 특징을 만드는 호르몬이다. 폐경 이후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 에스트로겐은 체지방에서 분비된다. 에스트로겐이 많아지면 체지방이 늘어나고, 체지방이 늘면 에스트로겐도 같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때부터 복부에 살이 찌는 남성형 비만이 나타난다.
[4] 포만감을 주는 렙틴
렙틴은 포만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지방세포가 가득 차면 이 세포에서 렙틴이 분비된다. 뇌는 렙틴의 증가를 인지하고 식욕을 억제한다. 하지만 비만한 사람은 렙틴이 많아도 식욕이 억제되지 않는다. 이른바 렙틴 저항성 때문이다. 렙틴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고도비만으로 이어진다.
[5] 활력을 불어넣는 성장호르몬
어른들도 활력을 유지하려면 성장호르몬이 필요하다. 체지방은 성장호르몬을 억제한다. 체지방과 인슐린이 많으면 성장호르몬 분비량은 줄어든다. 나이 들수록 성장호르몬 분비는 줄고 인슐린 분비가 늘면서 살이 찐다.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성장호르몬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운동은 필수다.
[6] 근육과 뼈를 키우는 테스토스테론
테스토스테론은 근육량, 체지방 감소, 정자의 활동, 뼈 질량에 관여한다. 많이 분비되면 에너지 대사가 활발해진다. 이 호르몬도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데 적게 분비되면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결혼 후 남성들이 살이 찌는 경우가 많은데, 성생활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이 소비되면서 체지방 조절 기능이 떨어져서 그렇다.
비만과 헷갈리는 쿠싱증후군
“연예인 B 씨는 젊은 시절부터 허리 디스크가 있었다. 심한 통증 때문에 수술을 고민했지만 먹고살기가 바쁘다는 이유로 때를 놓치고 말았다. 대신 스테로이드 주사를 꾸준히 맞았다. 덕분에 통증도 줄고 컨디션도 좋아져 수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갱년기 이후 살이 걷잡을 수 없이 찌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붓더니 73kg이었던 몸무게는 93kg까지 늘어났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생긴 쿠싱증후군 때문이었다.”
비만과 비슷하지만 치명적인 질환도 있다. 다이어트를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쿠싱증후군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 병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과다하게 만든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기본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분비된다. 하지만 코르티솔이 과잉 분비되면 식욕을 감소시키는 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과식을 유발하고 혈당과 혈압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복부 비만의 주요원인이다.
쿠싱증후군은 코르티솔과 관련된 신체 기관인 부신이나 뇌하수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B 씨의 사례처럼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과다 복용했을 때 발생한다. 쿠싱증후군 환자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고 비정상적으로 목 뒤에 지방이 축적된다. 허리 부위는 뚱뚱해지는 반면 팔다리는 오히려 가늘어지는 중심성 비만도 나타난다. 을지대학병원 오한진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팔과 다리는 가는데, 복부비만이나 목 뒷부분이 두껍게 툭 튀어나오면 쿠싱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하며 “언뜻 비만처럼 보이지만 이 병은 방치하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증상을 발견하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싱증후군은 위험한 질환이므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스테로이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쿠싱증후군에 걸렸다면, 약물 복용을 서서히 줄이다가 중단함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 만일 부신 종양이 원인이라면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약물 치료를 한다. 뇌하수체 종양도 없애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한다.
운동으로 비만 탈출
비만을 예방하거나 탈출하는 방법은 없을까? 해결법 중 하나는 바로 운동이다. 운동은 각종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적정한 시기가 지나면 소진된다. 하지만 분비되는 시점에서 몸의 장기를 활성화하고 컨디션을 좋게 해준다. 운동 이후 상쾌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적정한 운동은 호르몬을 자극해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스포츠 복지서비스 ‘국민체력100’ 관계자는 “식이요법으로도 다이어트를 할 수도 있지만, 노인 비만의 경우에는 운동을 통해 활력을 찾는 것이 더 건강한 삶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근육량이 감소하고 기초대사율은 떨어진다. 기초대사는 신체가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하는 기본적인 에너지다. 자세 유지, 심장과 뇌의 활동 그리고 각 장기의 활동에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신체는 기초대사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데 그중에 근육에서 소비되는 기초대사율이 평균 40%나 된다. 기초대사율을 증가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은 운동을 통해 줄어든 근육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증가시킬 수는 있다. 다만 운동 시 주의할 점도 있다. 운동 상담사 A 씨는 “젊은이와 비교해서 나이 드신 분들은 연골이 취약한 면이 있어, 다치지 않도록 특별히 운동시간이나 강도와 빈도를 신경 쓰면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만 예방을 위한 운동
① 심폐 지구력 운동 체중에 의한 허리와 하지 부담을 고려해 고정식 자전거 타기, 걷기, 수중운동(물속에서 걷기, 아쿠아로빅) 등을 추천한다. 신체에 충격이 큰 달리기, 에어로빅 등은 삼가한다.
② 근력운동 머신 및 프리 웨이트, 밴드, 물병, 의자 등의 소도구 등을 가지고 한다. 선택은 개개인의 체력적 특성 및 선호도 등에 따라서 하면 된다. 운동을 할 때는 관절에 유의하며 진행한다.
③ 유연성 운동 주 5회 정도가 적당하며, 정적 및 동적 스트레칭을 한다.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몸을 움직이며, 한 동작마다 30초씩 정지하며 진행한다.
운동 시 주의사항
① 허리 및 하지 관절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다.
② 운동 강도는 부담스럽지 않게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
③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철저하게 한다.
④ 수분을 꾸준하게 섭취한다.
⑤ 신발은 쿠션이 좋은 것을 선택해 신는다.
# 직장인 김모 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편의점 물건 배달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가계 살림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생겨난 ‘매장 내 취식 금지’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9시 영업 제한’ 등 방역 수칙들로 적지 않은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 본업을 통한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부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부업을 시작한 ‘투잡족’은 40만 명을 넘었다. 부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음식·택배배달과 대리운전은 투잡족에게 진입 장벽이 낮은 대표적인 부업이다. 최근에는 ‘디지털판 인형 눈 붙이기 부업’으로 불리는 ‘데이터 라벨링(수집·가공)’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육체노동 비중이 큰 부업 특성상 허리와 목, 손, 발 등에 근골격계 질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퇴근 후 부업에 나서는 투잡족들이 겪을 수 있는 근골격계 질환과 치료 및 예방법을 광주자생한방병원 염승철 병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매일 수km 걷는 도보 배달원…족저근막염 예방해야
국내 편의점 업계가 지난해 내놓은 도보배달 서비스의 배달원 가입자가 8만 명을 넘었다. 오토바이나 전동킥보드 등 이동수단 없이 일하는 도보 배달원의 경우 하루 평균 수km를 걷다 보면 발에 자연히 무리가 쌓인다. 또한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딱딱한 구두를 신고 오래 걸으면 보행 시 충격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달돼 ‘족저근막염’을 부추길 수 있다. 장시간 보행이나 격렬한 운동 등으로 발바닥 힘줄이 손상돼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은 발바닥에 심한 통증을 유발해 발을 딛는 게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도보 배달원들은 밑창이 딱딱한 신발 대신 쿠션감이 좋은 운동화를 신는 것만으로도 족저근막염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무리해서 일한 날에는 스트레칭과 냉찜질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좋다. 효과적인 스트레칭법으로는 발가락 스트레칭을 추천한다. 발가락을 발등 쪽으로 15초간 당기는 방법으로 하루에 총 3세트를 반복하면 족저근막의 유연성과 탄력을 높일 수 있다.
광주자생한방병원 염승철 병원장은 “한방에서는 침, 약침, 뜸 등 한방통합치료를 통해 족저근막염을 치료한다”며 “우선 침 치료를 통해 뭉쳐있는 발바닥 주변 근육의 긴장을 완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약재의 유효한 성분을 인체에 무해하게 정제한 약침을 환부에 주입해 족저근막에 생긴 염증을 제거하고 통증을 완화시키고 뜸 치료를 통해 전신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켜 손상된 부위의 회복을 빠르게 한다”고 설명했다.
◇장시간 운전하는 ‘대리기사’…허리디스크 조심해야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리운전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자는 약 16만5000여명에 달한다. 1인당 1일 평균 운행 횟수는 5.4회로 주로 오후 8시에 시작해 운행을 마치고 밤 12시에서 새벽 1시에 업무가 끝난다. 즉, 장시간 야간운전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대리 운전자의 경우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를 조심해야 한다. 장시간 운전으로 오래 앉아있게 되면 몸의 무게가 허리로 쏠리게 된다. 앉은 자세는 서 있는 자세보다 허리가 받는 하중이 약 1.5배 높아 오래 앉아있을수록 디스크(추간판)에 부담이 쌓일 수 있다.
따라서 운전을 할 때 엉덩이와 등을 등받이에 붙여 허리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출발하기 전 자신의 키에 맞게 의자를 조절해 올바른 자세를 잡고 운전하는 것이 현명하다. 페달은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도록 한다. 특히 밤 시간대는 오전에 비해 디스크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 두께가 얇아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현대판 인형 눈 붙이기 ‘데이터 라벨링’…목 건강 챙겨야
데이터 라벨링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PC와 노트북으로 정보를 단순 입력하는 업무 특성 덕분에 투잡으로 인기가 많다. 한 AI학습 데이터 가공 기업이 자사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데이터 라벨러 2611명을 분석한 결과 55.6%가 직장인, 자영업자, 공무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업무시간 동안 컴퓨터를 보고 있는 사무직 직장인이 데이터 라벨링 부업까지 하게 되면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장시간 모니터를 보고 있다보면 머리를 앞으로 기울이고 목을 구부린 자세를 취하기 쉽다. 이러한 자세가 반복될 경우 경추(목뼈)가 손상될 수 있다. 초기에는 뒷목이 뻐근하고 뻣뻣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목을 뒤로 젖힐 때 어깨와 팔, 손 저림 증세가 동반되기도 한다.
미국 척추외과전문의 케네스 한즈라즈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고개를 앞으로 15도만 기울여도 목에는 12.2kg의 부담이 가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중은 30도에서는 18.1kg, 60도에서는 27.2kg까지 늘어나 목 근육에 과도한 부하가 일어나고 경추 사이의 디스크이 손상돼 목디스크(경추추간판탈출증)를 야기한다.
염승철 병원장은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가슴과 등을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좋다. 모니터 받침대를 사용해 모니터를 눈높이보다 위로 높이 두는 것이 목디스크 예방에 좋은 방법”이라며 “코로나19로 부업을 시작한 이들이 돈과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도록 올바른 업무 습관에 관심을 갖자”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