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IN TO THE WILD - 이바 트린쿠나이테 개인전
일정 2022년 1월 8일까지 장소 ART Corner H
발트 3국 아트 신에 등장한 리투아니아 작가 이바 트린쿠나이테(leva Trinkunaite). 그의 개인전 ‘IN TO THE WILD’(인 투 더 와일드)가 햇빛담요재단의 복합문화예술공간 ‘Art Corner H’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리투아니아 루벤 아트 파운데이션(Lewben Art Foundation)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사됐다.
이바 트린쿠나이테는 동물과 자연 그리고 인간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성을 평면 회화 속에서 조망한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생태계적 위치 불평등에 주목했다.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닌 자연과 동물이 주체가 되어 인간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을 작품에 표현해냈다.
이바 트린쿠나이테는 유럽 신진작가들의 회화 연대기로 평가받는 ‘Young Painter Prize’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발트 국가 특유의 독특한 정서를 담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신작 총 13점이 전시되며, 전시 수익금은 보호종료아동의 한 끼를 위한 ‘밥집 알로’의 식사비로 기부된다.
◇ 한글, 공감각을 깨우다
일정 12월 23일까지 장소 사비나미술관
이번 전시의 부제는 ‘눈, 코, 귀, 입, 몸으로 느끼는 우리말’이다. 13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한글의 소리, 형태, 구조 등을 다각도로 탐구해 한글을 다양한 형식의 시각예술로 구현했다. 특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중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의 공감각적 요소에 주목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총 47점이 소개된다. 오감을 활용해 작품을 느끼고 체험하면서 관객은 즐겁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Book
◇플라멩코 추는 남자(허태연·다산책방)
올해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허태연 작가의 ‘플라멩코 추는 남자’가 장편으로 출간됐다.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등 한국 문학 중심에 있는 소설가 심사위원 전원에게 고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회는 “코로나19 시국에 맞는 따뜻한 작품이며, 가독성이 매우 좋다”고 호평했다.
제목만 보면 청춘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67세의 허남훈이다. 허남훈은 실제 허태연 작가의 아버지 이름이다. 허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1997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이야기 속에서라도 그분이 살아 계시길 바라며 아버지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줬다”고 말했다.
남훈은 26년 동안 굴착기를 운전하며 반평생을 살았다. 마침내 은퇴를 결심한 그는 자신의 중고 굴착기를 거래하기 위해서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자신의 굴착기 자랑만 늘어놓다 거래는 불발되고, 이후에도 몇 명을 더 만나지만 거래는 불발된다.
스스로도 ‘전형적인 꼰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훈은 변화를 결심하고, 과제를 마련한다. 남훈의 과제는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같은 소박한 것들이지만 ‘스페인어 배우기’, ‘플라멩코 배우기’같이 노인인 그에게 험난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특히 남훈의 최종 과제는 스페인에서 ‘진짜 가족’ 만나기다. 남훈의 좌충우돌 가족 찾기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시니어 세대는 나의 이야기 같다며 공감할 것이고, 젊은 세대는 부모님을 떠올릴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억척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이시아 고타·궁리)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편에는 일본 최초 민간형 어린이 호스피스인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있다. 책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이시아 고타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의 기록을 담았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논픽션 스토리다.
◇탑으로 가는 길(김호경·휴앤스토리)
금융회사 CEO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증권맨이 문화유산답사기를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2년여에 걸쳐 전탑과 모전석탑을 찾아 나섰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화재에 진심인 그가 전하는 정보는 유쾌하고 유익하다.
◇냄새들(김수정·꿈꾸는인생)
영화기자로 10년을 일하다 작가가 된 그녀. 에세이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이후 두 번째 책을 냈다. 들 시리즈 네 번째 책이기도 한 ‘냄새들’은 냄새에 관한 책 같지만 기억에 관한 책이다.
냄새에 예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며 편하게 읽을 수 있다.
●Stage
◇잭 더 리퍼
일정 12월 3일~2022년 2월 6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공연장
연출 신성우
출연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 신성우,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 이건명 등
3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 신성우가 연출을 맡았고, 잭 역을 맡아 연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다니엘 역에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까지, 쟁쟁한 배우들이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잭 더 리퍼’는 1888년 회색 도시 런던이 배경이다. 당시 실제로 일어난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극 중 사건을 따라가는 극 중 극 형태다. 퍼즐 조각처럼 얽힌 살인마의 존재를 파헤쳐가는 스릴러 뮤지컬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번 시즌 역시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전개, 클래식하면서도 대중적인 넘버로 강렬한 짜릿감을 선사하며 새로운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엘리펀트 송
일정 11월 26일~2022년 2월 13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김지호
출연 전성우, 강승호, 김현진, 신주협, 이석준, 정원조, 정상운, 고수희, 이현진 등
자비에 돌란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연극 ‘엘리펀트 송’은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병원장 그린버그가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환자
마이클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엇갈리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과 반전이 극의 포인트다. 2015년 11월 국내 초연 후 매 시즌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썸씽로튼
일정 12월 23일~2022년 4월 10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이지나
출연
강필석, 이충주, 양요섭, 서경수, 윤지성, 임규형, 황순종, 남경주, 정원영, 이영미, 안유진, 이채민 등
지난해 초연한 ‘썸씽로튼’이 1년 만에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초연을 성공으로 이끈 강필석, 서경수와 함께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은 양요섭, 전역 후 첫 뮤지컬 복귀를 앞둔 윤지성이 출연을 확정해 기대를 더한다. ‘썸씽로튼’은 1595년 르네상스 시대, 인류 최초로 뮤지컬을 제작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바텀 형제와 함께 셰익스피어, 노스트라다무스 등 톡톡 튀는 캐릭터가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 허태연·다산책방
제1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이 장편으로 출간됐다. 주인공 67세의 허남훈이 은퇴를 결심한 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책이다.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 이시아 고타·궁리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편에는 일본 최초 민간형 어린이 호스피스인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있다. 책의 저자 저널리스트 이시아 고타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의 기록을 담았다.
탑으로 가는 길 김호경·휴앤스토리
금융회사 CEO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증권맨이 문화유산답사기를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2년여에 걸쳐 전탑과 모전석탑을 찾아 나섰다. 문화재와 관련한 유쾌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는 책이다.
냄새들 김수정·꿈꾸는인생
영화기자로 10년을 일하다 작가가 된 그녀. 에세이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이후 두 번째 책을 냈다. 들 시리즈 네 번째 책이기도 한 ‘냄새들’은 냄새에 관한 책 같지만 기억에 관한 책이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것은 3년 만의 일이었다. 처음 김석중(52) 키퍼스코리아 대표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소개됐을 때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길게 길러 뒤로 묶은 머리와 유품정리 과정에서 허락을 받아 쓰고 있던 작은 캐리어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모험을 떠나는 여행가 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국내의 대표적인 유품정리사로 손꼽히는 유명인이 되었다. 유재석과 함께 TV에도 얼굴을 비췄고, 대학 강단에도 섰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는 이제 그가 양복 차림이 잘 어울리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변치 않은 것도 있다. 유품정리 분야의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전히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안부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최근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은 우리에게 다소 친숙해진 듯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 퀴즈’) 등을 통해 이 직업이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그가 이 사업을 국내에 소개했을 때 유품정리 분야는 고독사한 시체 곁의 혈흔을 지우고 사용하던 물건을 처분하는 특수청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수청소라는 사회적 인식 여전
“‘유 퀴즈’를 통해 소개되긴 했지만, 제 입장에선 많이 아쉬웠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감성적인 부분만 부각된 편집이었거든요.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소개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죠. 넷플릭스 드라마도 마찬가지예요. 특수청소의 연장선에 있는 직업으로 소개되었으니까요. 갑자기 사망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았던 흔적을 지우는 청소로 여기는 인식은 아직 여전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의 회사를 포털사이트에 기업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키퍼스코리아’를 장례 관련업에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결국 폐기물업으로 등록되었단다. 그로서는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사회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변화의 요인으로 ‘유품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품은 불길한 것 혹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죽은 사람의 물건이니 함께 사라져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어요. 유품이 추억이 되기도 하고 재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유품정리업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어요.”
또 대중의 인식 변화로 ‘사자’(死者)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본가를 정리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유품정리 분야의 의미 있는 변화로 봤다.
“단순히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물건을 비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부모님을 추모하고 추도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품정리사의 역할도 커지고 있어요. 무엇을 남길지, 버릴지 돕는 카운슬링 기능이 강화됐으니까요.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우리 일이 된 셈이죠.”
우리에게 맞는 ‘한국식’ 추모 도입
그는 11년 전 키퍼스코리아를 창업하고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분야를 국내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라는 저서 발간을 꼽았다. 본지와의 첫 번째 만남의 계기이기도 하다.
“책이 나오고 나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학교로 들어가 장례학과에서 강의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유품정리라는 서비스 시스템을 되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고인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 이외에 법적인 소유권과 관련된 상속, 고인을 기리는 장례와 관련된 것까지 개념을 확장시키고 체계화한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사업은 영감을 받은 NHK 다큐멘터리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의 주인공이자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 회사 키퍼스 대표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 사장을 통해 2010년 시작됐다. 일본의 유품정리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오다 보니 당연히 한국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 특유의 가타미와케(かたみわけ)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일본식 유품정리는 물건의 가치나 본질보다는 고인과 관련된 ‘추억’을 정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것을 우리만의 시스템으로 변화시켜 한국식 매뉴얼을 만드는 데 10년 걸렸어요. 그 기간 한국에서 노력했던 과정을 일본 키퍼스에서도 오롯이 지켜봤기 때문에, 한국식 유품정리로 변화하고 자리 잡는 것을 응원하고 있죠. 또 일본의 경우 유품정리 업체가 유품의 운송, 폐기처리, 재활용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권한을 허가받고 직접 처리하는 반면,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연결하고 컨트롤타워 역할만 한다는 것도 차이 나는 부분입니다.”
고인에 대한 추모 방식도 일본과는 다소 다르다. 일본의 경우 유품을 모아 한꺼번에 합동 공양을 드리지만, 김 대표는 집에서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것으로 바꿨다. 한국 정서에 맞게 축문으로 고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유품을 만지는 허락을 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또 유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물건에 대한 기록을 만들어 다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그간 우리에게 안 맞는 것처럼 느껴졌던 옷을 벗어버리고, 우리 몸에 맞는 것을 찾게 되었어요.”
유품정리, 장례지도학과 만나다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고 인지도가 높아지면 회사의 몸집을 키우거나 새로운 사업체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는 학교로 들어갔다. 기존의 ‘장례지도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유품정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10년 전 전국의 장례 관련 학과 교수를 대상으로 요시다 다이치 대표의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이 순회강연을 계기로 각 대학 교수들과 인연을 이어나갔는데, 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학교도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었죠. 장례지도사를 선택해 입학한 학생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장례지도사 업무 영역의 한계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지금의 업무 범위는 ‘장례식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나은 새로운 사업적 시도나 변신을 꾀하기 힘든 한계가 있었어요.”
그는 대학의 커리큘럼 자체가 전통 장례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적어도 상속법이나 유품의 행정처리를 위한 관련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서비스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가 학교에서 일본의 장례나 죽음 준비에 대한 ‘엔딩 산업’을 한국에 맞게 학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품정리 사회적 관심 중요
그렇다면 앞으로 유품정리 분야는 어떻게 바뀔까. 김 대표는 급격한 증가가 예상되는 사망자 수와 그로 인한 유품의 증가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도 매년 3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어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망하기 시작하면 그 숫자는 50만을 훌쩍 뛰어넘을 겁니다. 이 세대는 갖고 있는 물건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절약이 몸에 밴 세대죠. 이분들이 갖고 있는 물건, 그 물건의 역사적 가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질 겁니다.”
베이비붐 세대 할아버지, 아버지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8·15 광복, 한국전쟁 등 우리의 역사와 연관된 수많은 사료가 가보로 전해 내려왔지만,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자녀 세대에 이르러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자료의 보고인데, 아직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아요.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단카이(団塊) 세대의 유품정리를 고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죠. 역사적 증언과 증거물 확보를 위한 생전정리도 이뤄지고 있고요. 우리도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두는 생전정리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래된 물건의 인기가 올라가고 찾는 이가 많아지고 있어, 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물건의 경제적 가치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결국 생전정리가 노년층의 또 다른 자금 확보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환경적으로도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생전정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흔히 생전정리라고 하면 죽기 전에 갖고 있는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후에 어떻게 정리할지 미리 정해놓고 그 우선순위에 맞춰 물건을 정리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겁니다.”
생태계 조성 위한 플랫폼 구축 희망
그렇다면 키퍼스코리아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는 ‘장례·유품정리·상속 플랫폼’이라고 정의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장례를 치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유품정리·상속 분야의 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을 예정입니다.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과정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일반적인 플랫폼과 다른 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희의 검증을 거친다는 점이에요. 고객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불필요한 지출을 방지하도록 담합이나 바가지요금이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장례·유품정리·상속 생태계가 조성돼 양성화되고 산업적으로 고도화되기를 그는 희망하고 있다. 죽음과 그 과정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고 소수에 의해 음지에서 진행되는 구조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장례·유품정리·상속 분야의 산업화가 국가적으로 큰 기여를 할 거라고 믿어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상속과 증여가 활성화되면 세수 확보에도 유리하죠. 환경 측면에서도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고요. 또 유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이나 가족관계 악화를 방지하고, 고독사 예방도 가능하죠. 새로운 생태계로 변화한다면 소모적인 부분을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광한루원의 본색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 스토리의 한 배경으로 차용됐을 뿐이다. 독자적인 조성 역사와 미적 가치를 지닌 조선 중기의 빼어난 원림이라는 데 광한루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럼 주객전도? 마치 곁다리처럼 끼어든 ‘춘향전’의 사랑 이야기가 대중에게 각인돼 조선 원림으로서의 드높은 가치는 사뭇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닌가.
사실 광한루원이 ‘춘향전’의 배경 장소로 사람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광한루원과 ‘춘향전’의 연관성을 표 나게 드러낸 최초의 구조물인 사당 ‘춘향사’가 들어선 때가 불과 90여 년 전이니까. 광한루원의 600여 년 역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연원이다.
춘향사 건립 이후 현대에 이르러선 춘향관, 월매집, 완월정, 전통놀이체험장 등을 꾸미고, ‘춘향제’를 흐벅지게 펼치면서 본격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건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국가적 문화유산인 조선 원림이 관광을 위한 갖가지 시설물들과 맥락 없이 뒤섞이면서 정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일부 전문가들은 정색하며 상업주의를 자제하라고, 원림의 본질과 원형을 유지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고 일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한루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을 마치 ‘춘향전’ 영화의 세트쯤으로 여기며 즐기다가 돌아간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동을 누릴 만한 멋진 조선 원림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시 눈여겨보는 관점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내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관아 원림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관아가 주도해 본때 있게 조성한 이 원림의 스케일은 상당히 웅장하다. 깨알처럼 섬세하게 구사한 디테일로 아름답다. 유례가 드물도록 거대한 조선 원림이다. 특히 광한루는 고유한 건축 메커니즘으로 빼어나 갈채를 받을 만하다. 지방 관아가 지은 누각으로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죽서루, 평양의 부벽루 등이 있지만, 광한루를 개중 으뜸으로 친다.
광한루는 조선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며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廣通樓)에서 유래했다. 이 광통루를 남원부사 민여공이 1434년에 증축한 게 지금의 광한루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지었다.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구나!” 이렇게 찬탄한 정인지가 광한루라 이름 붙였던 거다.
투박하면서 묵직한 기운을 뿜는 돌기둥들에 떠받쳐진 광한루는 월궁(月宮)을 상징한다. 천상의 궁궐인 셈. 이렇게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계에 흔전만전 지천으로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너른 연못은 다름 아닌 은하수를 상징한다. 은하의 못 가운데에선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표상했다. 네 개의 홍예로 만들어진 오작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에 만나는 다리다. 베를 짜는 직녀에게 필요한 도구인 지기석은 연못 속에 넣었고, 견우를 위해서는 은하수를 건널 때 쓰일 배 하나를 만들어 수면에 띄웠다.
관아원림이란 한마디로 고을의 벼슬아치들이나 오고가는 시인 묵객들이 회포를 풀며 노닌 야외 정원이다. 산수엔 오고감이 없지만 인간사는 살면 살수록 시들어 덧없다.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달과 별을 끌어안고 우주적으로 부푼 상상력을 즐기며 야유회를 즐겼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벼슬이든 공부든 지상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정신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친 것이다.
원림은 원래 자연과 소통하고 싶은 선비들이 지닌 갈망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도 광한루원은 빼어나다. 오늘날엔 원림 곁으로 대로와 강변 둑이 생겨 경관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저 옛날엔 숲과 강, 멀리 지리산 자락까지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자연의 도가니였다. 관광지처럼 번잡하다고 만만하게 볼 원림이 아니다.
답사 Tip
광한루원 연못가에 어우러진 거목들이 예스럽고 웅숭깊은 운치를 자아낸다. 500살 남짓한 나이를 지닌 버드나무, 팽나무, 능수버들 등 오래 산 나무들의 거쿨진 자태를 보라! 이곳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인구 고령화 현상이 초래되면서 대응 방안이 다양하게 전개되던 와중에 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 사태가 일어났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이미 2억3000만 명이 확진되고 470만 명이 사망했으며, 의료 역사상 악명 높았던 1918년의 스페인독감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놀랍게도 그동안 선진국으로 인정되었던 국가들마저 역병을 통제하지 못했고 환자들의 병원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젊은이보다 노인의 치사율이 100배 정도 더 높다는 점으로, 미래 장수 사회에 울린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역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별로 사회 문화적 차별성이 크게 노출되어, 이번 팬데믹 출현은 미래 사회 구축에 개인적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공 정책과 문화적 요소가 더욱 중요함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사항은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들 대부분이 고혈압, 당뇨, 폐 질환, 암, 비만 등의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기저질환의 근저에는 생활 습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태의 해법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다.
면역 향상에 좋은 방안 7가지
코로나19 팬데믹이 보여준 고령 사회에 대한 엄중한 메시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고령이 되더라도 고혈압, 당뇨, 암, 폐 질환, 비만 등의 기저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 습관 개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둘, 노인 요양 개호 시설의 철저한 관리와 지원이 요구되며, 밀집과 밀폐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셋, 사회적 거리두기와 연계해 시설의 단순 폐쇄로 초래되는 노인 고립화를 해소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넷, 위기 상황에서 노인들이 스스로 생활하고 봉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 다섯, 팬데믹 상황에서 가족과 지역주민의 연대 의식과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섯, 개인의 일부 희생으로 보다 많은 공공의 혜택을 누리도록 질서를 지키는 데 협력해야 한다. 일곱, 비대면 상황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술적 시스템을 보급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치사율 저하의 결정적 조건으로 부각된 기저질환 예방이 시급하다. 기저질환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일어나는 질환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을 통한 생활 습관 개선이 중요한 대책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부터 오래 살기 위한 장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인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찾지 못했던 천연 불로초 대신 이에 준하는 약물을 직접 조제하는 연단술을 개발해, 그 소산인 단약을 방사들이 비술적 방법으로 제조하여 16세기 무렵까지 황실을 비롯한 고관대작과 부자들에게 1000년 이상 사용해왔다. 연단술은 아랍권으로 그리고 유럽권으로 전파되면서 연금술로 발전했고, 근대까지 이어져 철학과 의학의 중심 과제를 이루었다. 그러나 천연 또는 인공의 단약들은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했다. 그 반작용으로 천연 또는 인공 약제의 복용을 거부하고 신체를 직접 단련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장생술 기법이 다양하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장생술은 생활 방식 개선과 신체 단련 위주로 발달하여 역사적으로 도교가 주도하면서 종교적 위상으로 승화했다. 그 결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 달생법(達生法)과 양생술(養生術)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로장생술의 핵심은 일상생활 습관에 있다
중국의 명산 무이산(武夷山)은 자연, 생태, 문화 세 가지 영역에서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특별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주자(朱熹)가 제자를 양성한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어, 조선조 유학자들이 가고 싶어 한 성리학의 성지였다. 무이정사 가까이에는 도교 36성지 중 하나인 천유봉(天遊峰)이 있고, 그 정상에 팽조(彭祖)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팽조는 1000년 가까이 살면서 부인을 49번이나 바꾸었고, 장생술의 일환인 방중술 비법을 완성했다는 인물로 달생술의 전설적 상징이다. 그 사당 안쪽 팽조의 조상 양편 기둥에 각각 은수서산수정양성 내장생불로극공(隱水棲山修精養性 乃長生不老極功)과 찬하복기토고납신 위익수연년요지(餐霞服氣吐故納新 爲益壽延年要旨)라는 장생술의 비급 두 가지가 새겨져 있다. 맑은 물 있는 깊은 산에 살며 정기를 단련하고 본성을 다스리는 것이 불로장생의 최고 방안이며, 이슬 먹고 호흡을 다스리며 낡은 것을 뱉어버리고 새것을 받아들이면 해를 거듭할수록 건강해지는 핵심 방안이라는 의미다. 장생술의 요건인 깊은 산 맑은 물은 청정한 지역으로 공기와 물이 맑고 열심히 신체 단련을 할 수 있는 공간적 환경을 거론하고 있고, 이러한 장소에 살며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팬데믹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공간적 문제점인 밀폐, 밀집, 밀접의 심각성을 이미 1000년 전부터 거론한 것이다. 나아가 신체 단련으로는 소식하며 호흡을 거칠게 하지 말고,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 적극적인 쇄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실천적 생활 습관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도교의 양생술은 음식 섭생의 섭양술, 호흡 조절의 복기술,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신체 단련의 도인술, 음양 조화를 통한 방중술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섭양술로는 소식과 생식을 위주로 하라는 벽곡, 신선이 되는 장생식 또는 단약과 같은 약물을 복용하라는 복이가 있다. 약으로는 웅황이나 단사와 같은 광석과 지황이나 영지 같은 천연 식물이 있으며, 효능에 따라 상약, 중약, 하약이 있다. 호흡 조절의 복기술에는 조식, 태식, 폐기와 토고, 납신, 행기가 있다. 이와 같이 호흡 수련을 강조했고, 몸 안의 모든 노폐물을 제거하고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이러한 호흡법은 단전호흡 형태로 현대에도 일반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 신체 단련을 위한 도인술로는 몸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기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 요법으로 역근경, 팔단금, 오금희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국민 건강 체조인 태극권과 같은 기공 요법을 보급하여 크게 성행하고 있다.
남녀 간의 육체적 결합을 적절히 활용하여 정(精)을 보하고 기(氣)를 키우는 방중술은 기본 원리가 채음보양에 있으며, ‘소녀경’, ‘채녀경’, ‘황제내경’ 등을 통해 일반에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도교의 장생술은 도교 신봉자만이 아니라 유학자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청정한 곳에서 은일하게 지내는 청정무위의 삶과 스스로 노력하여 건강을 다지는 자강유위를 생활 규범으로 삼았으며, 이를 본받아 퇴계 선생도 신체 단련을 위한 활인심방을 개발하여 중화탕, 화기환, 도인술과 같은 체조 요법을 스스로 실천했다. 이와 같이 양생술의 핵심인 신체 단련의 도인술은 선비 사회에서도 널리 유행하여 건강을 유지했다.
백세인들의 운동
프랑스의 랑동(Lucile Randon) 수녀님은 117세로 세계 최고령 2위에 오른 분인데, 코로나19에 걸렸지만 회복했다는 뉴스가 나와 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백세인들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회복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작년 9월 말 통계로 미국에서도 코로나19에 걸렸음이 확인된 백세인 60명 중 사망에 이른 분은 단 3명에 불과해 백세인의 코로나19 치사율이 5%라는 보고가 나왔다. 같은 보고에서 대조적으로 90대 초고령자의 코로나19 사망률은 11.4%로 백세인의 치사율이 유의미하게 낮았음을 밝혔다.
일본에서도 팬데믹 기간 중 백세인의 수가 예년보다 오히려 크게 증가했음을 보고했다. 또한 7월 말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백세인학술대회(ICC2021)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백세인에 대한 매우 의미 있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저명한 인구학자 미셸 풀랭(Michel Poulain) 팀은 코로나19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벨기에의 2020년도 사망률이 80대 이상 연령대에서 평년보다 20% 이상 증가했는데, 놀랍게도 100대의 경우에는 사망률이 0.95배로 오히려 감소했음을 보고했다. 백세인이 80~90대보다 코로나19에 대한 회복 능력이 더 강하다는 의외의 사실이 구체적으로 보고된 것이다. 큰 미스터리는 왜 백세인의 코로나19 치사율이 일반 고령인보다 낮은가라는 문제다.
노인이 되어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생체 기능이 저하되고 생체를 보호하는 기능도 동시에 낮아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백세인의 코로나19 저항성은 뜻밖의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일반 고령인과 백세인의 다른 점을 비교해보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백세인 조사에서 밝혀진 백세인의 생활 습관적 특성인 활동성과 규칙성 그리고 절제성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백세인은 항상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생체 리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에서 결코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보였다. 그 결과 의학적으로는 당뇨병이환율이나 고혈압률이 일반 노인보다 백세인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생활 리듬을 지키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생활 습관은 건강을 지키고 기저질환을 예방했으며, 이러한 생활 습관은 결국 고대로부터 내려온 장생술의 재현이 아닐 수 없다.
신체 단련과 생활 습관 개선이라는 양생술이 불로초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부작용 측면에서 훨씬 안전하다는 기대치와 고가의 경비가 들지 않는다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으로 귀족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활용할 수 있었기에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장생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개개인의 일상생활 습관을 개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일반인은 일상생활의 편리함에 익숙하여 신체를 활용하고 욕구를 절제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먹는 것을 절제하고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동양식의 개선이 더욱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고령사회에서 건강장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각종 기저질환의 근원인 퇴행성 질환을 미리 예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일반인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실천적 생활 습관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터벌 워킹
이러한 측면에서 고령인이 일상생활 습관으로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방법을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적 장수 지역인 일본 나가노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권장하는 인터벌 워킹(Interval Walking)은 간단하다. 매일 3분 천천히 걷고 3분 빨리 걷는 사이클을 5회씩 반복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신슈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운동법을 3개월 이상 수행한 주민들의 심폐 기능이 크게 개선되고 고혈압과 당뇨가 회복되었으며, 3년 이상 추적한 결과 지역주민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이 30%가량 줄었다. 인터벌 워킹은 단순하게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빠르게 그리고 천천히 되풀이하여 걸음으로써 심폐 기능을 효율적으로 자극하는 가장 간편한 운동 방법이다. 이에 덧붙여, 심신을 자극해 정서적 기능도 증진하고 신체 균형 감각을 증진해 낙상 같은 사고를 방지하는 목적의 우리 춤 체조 같은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권장한다. 이러한 운동 프로그램은 모두 신체적 기능을 증진하는 성과 외에 인지 기능 저하와 면역력 저하도 방지할 수 있음이 차례로 밝혀지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병에 걸리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생활 습관 개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적인 무병장수를 이룬 경우는 기대만큼 흔하지 않다. 다만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가능한 한 아주 늦게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보이는 백세인의 모습이다.
장수인이 되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만, 결국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유로운 곳에서 건전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성실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비법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보여준 백세인의 강인한 생존 미스터리는 그들이 평생 지켜온 건강한 생활 습관이 반영된 것임이 분명하며, 미래 장수 사회의 기본 조건이 바로 생활 습관 개선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6000년 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의 삶, 바쁜 세상에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시간 여행은 이럴 때 재미를 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한 곳, 서울이나 수도권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게다가 놀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맛도 쏠쏠하다.
지하철 4호선이 닿는 곳, 오이도역.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좋다. 소박한 바다마을 오이도의 다채로운 스폿들 중에 선사유적공원은 나지막한 능선 아래 편안히 자리 잡았다.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느껴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의 자연을 산책하듯 색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 해볼 만하다.
한적한 구릉 선사유적공원
선사유적공원은 뜨겁던 햇살도 적당히 누그러진 아침나절, 혼자도 좋고 친구나 부부, 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 편한 공원이다.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공원과 비슷한 면적인 33만5859m²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서 띄엄띄엄 거리두기를 하며 느긋함과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해본다.
여기저기에 선사시대 마을을 구현한 움집들은 규모와 마을 크기가 작지 않다. 이곳은 우리나라 중부 서해안 최대의 패총 유적지이면서 다양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그래서 선사시대 서해안 생활문화유산의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문화적 가치를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2018년에 공원으로 조성해 국가 사적 제441호로도 등재됐다.
선사 마당에서는 한반도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적당한 곡선의 구릉 위에 드문드문 만들어진 움집 마을 마당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옛사람들이 오갔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TV예능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 족장처럼 불씨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통나무를 굴려서 목재이동 방법도 체험해 볼 수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 심심하지 않다.
야영 마을과 발굴터를 비롯해서 움집 생활과 수렵 모습, 둘러앉아 조개를 구워 먹는 모습은 조개구이로 유명한 요즘의 오이도 맛집 거리를 연상시킨다. 그 옛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피며 선사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보는 색다른 시간이다.
놀이 참여도 여행의 맛
움집 건물마다 주제가 달라서 한군데씩 구경하다가 문이 열린 곳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이때 안에서 누군가가 “들어오세요”하며 상냥하게도 맞아준다. 무심결에 들어가 보니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교실이었다. 선사인들의 생활도구나 의류 같은 걸 진열한 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진행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계획에 없던 조가비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나니, 체험 프로그램의 맛이 요런 것이구나 싶게 즐겁다.
아이들처럼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어? 이렇게 구워 먹었구나, 이런 데서 잤나 보다’ 하며, 그저 눈으로만 느끼다가 이렇게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며 만들어 보니 한층 이채롭고 뜻 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비상 사태에 빠뜨린 이즈음 ‘코시국’ 모습이 훗날 시간을 거슬러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될는지….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변동으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해설사 안내는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선사 마을 뒤편에 펼쳐진 억새가 꾸며놓은 예쁜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차분한 자연 속에서 제 빛을 내는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몇 년 되지 않은 신상 공원이다 보니 아주아주 오래된 신석기시대를 보여줌에도 대부분이 산뜻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꼭 새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한쪽에는 고사를 지내고 도당굿을 했다는 불타버린 당산나무가 있고, 그 옆에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세상은 또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니 공원 전체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이럴 땐 걷다가 벤치나 풀숲에 털썩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맛도 세상 행복하다. 잔디 능선길 옆으로 한적하게 앉혀진 패총전시관이 보인다. 조개무덤인 패총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각종 전시물과 영상이 오이도 지역에 있었던 신석기시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패총이 만들어진 과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다시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이도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송도 국제도시가 보이고, 더 멀리에는 서해바다까지 내다보인다. 군데군데 몇 척의 갯배가 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도시생활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호젓한 기분에 잠긴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펼쳐지는 멋진 해넘이가 장관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도 사랑의 열쇠 꾸러미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체험을 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면서 단순한 공원을 넘어 역사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10분 거리에 있는 시흥 오이도 박물관에 들러 선사인들의 삶과 역사를 더 알아볼 만하다. ♧경기 시흥시 서해안로 113-27
바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바다의 맛
오이도에는 선사유적공원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많다. 이 중에서도 섬이 아니면서 섬인 듯 빨간색 등대의 강렬함이 먼저 떠오르는 곳, 도심 가까이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오이도 거리를 꼽는다. 선사유적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는 어딘가로 훌쩍 나서고 싶었던 마음들이 모여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눈앞에 우뚝 선 빨간 등대와 비릿한 바닷바람이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설렘을 부추긴다.
등대전망대는 코로나19 여파로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빨간 등대를 중심으로 무수한 갈매기 떼가 시시때때로 날고 있어서 바다여행을 실감할 수 있다. 제방 둑으로 새하얀 생명의 나무가 한낮의 햇볕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생명의 나무는 오이도가 가진 역사와 생명, 사람의 흔적을 되살리고 후대에 길이 알리고자 제작됐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를 지나면 함상 전망대가 바다를 앞에 두고 나타난다. 쭉 걷다 보면 바닷길을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무리 지어 씽씽 지나간다. ♧경기 시흥시 오이도로 175
부둣가 쪽으로는 작은 수산시장이 난전을 이루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도로 아래로 건너가면 오이도 전통수산 시장이 있어 꽃게와 소라, 조개류 같은 싱싱한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천천히 다녔음에도 한나절이 지나 점심 무렵에 이른다. 오이도 제방을 따라 쭈욱 늘어선 음식문화거리엔 각종 활어회와 조개구이 같은 이곳만의 향토음식이 넘쳐난다. 맛집 밀집 지역으로 오이도가 패총 유적지답게 지금도 각종 어패류 요리가 지천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무한리필 되는 쫄깃한 모둠 조개구이 한판? 콜~! 가리비와 대합, 백합, 키조개 등 푸짐한 구성에 풍미를 더하는 모차렐라 치즈를 포함해 모두 무한리필로 실컷 먹을 수 있다. 치즈 조개구이가 대표 메뉴인데 알밥과 라면까지 추가된다.
슬기롭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
음식문화거리에서 유혹을 즐기고 나면 어느덧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 이른다. 이럴 때 시원한 실내에서 창의적인 놀이로 차분하게 보낼만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오이도와 인접한 섬이었던 옥구공원에 가면 재밌는 목공체험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요즘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공원에서는 이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산림 부산물을 적극 활용하는 실습으로 숲의 자원화를 실현하고 목재문화 활성화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온라인과 현장 접수를 선택해서 이용하면 된다. 두 시간 정도면 손잡이 달린 멋스런 트레이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트레이 체험비는 1만4000원이었다.)
준비된 나무 재료에 자연색감의 칠을 하고 → 사포로 문지르고 → 모양대로 짜 맞추기 → 스텐실 무늬 넣기 → 손잡이 달고 → 다시 한번 유약 칠하면 → 완성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목공 작품 하나, 볼 때마다 뿌듯하다.
시흥의 옥구공원은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워낙 넓어서 자연 생태계를 살피며 공원을 산책하기에도 좋다. 축구장에서는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군데군데 조각 작품들이 품격을 더한다. 숲 속 도서관과 장미원, 옥구 숲과 곰솔 누리 숲을 이용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으로 차분한 힐링 공간에서 심신을 안정화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 2138
축복처럼 번지는 노을 풍경, 미생의 다리
시흥에 가면 저녁 무렵에 또 한 군데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시흥 늠내길 들판에 펼쳐진 생태 교량인 자전거 다리다. 일명 '미생의 다리'로 부른다. 시흥시 월곳의 갯골과 소래포구 사이에 새롭게 만든 다리로, 일출과 일몰 시점에 다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연말이나 연초엔 해넘이와 해돋이 풍경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이 일대가 대규모 염전 지역이어서, 이 다리의 모양을 염전에 물을 대는 수차 바퀴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 제목과 같은 동음인 '미생'이긴 하지만 바둑의 미생(未生)과는 뜻이 조금 다르다.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의 다리'라는 의미다. 짭짜름한 생명력 가득한 갯골 앞에 미려한 곡선으로 놓인 미생의 다리. 이곳엔 짜릿한 노을 풍경이 여러분을 맞이한다. ♧경기 시흥시 방산동 779-43
‘헉! 이거 뭐지? 혹시 그날 아람이가 얘기했던 게 이건가?’
누리는 미술관의 다섯 번째 전시실 모퉁이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까만색 유니폼을 입고 목에는 스태프 라고 쓰인 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5전시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아저씨! 저 그림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게...”
하면서 누리가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남자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 조금 전 누리가 봤던 그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그게 저 그림이... 아, 아니에요.”
직원은 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다시 천천히 걸으며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 상태를 살피는 거 같았다.
누리는 자기가 착각을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자기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누리는 다시 그 여자그림 앞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무슨 괴기 영화나 환타지 영화에서 본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 개회식은 일주일전 목요일 오후 5시에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관을 놀이터 드나들 듯 좋아하는 누리 때문에 미술관에 자주 가시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으셨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전시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그날 할머니가 누리에게 전시 오픈식에 참석해서 작가들을 만날 거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누리는 미술관엔 자주 가서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지만, 작가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픈식이 끝나면 맛있는 다과 파티도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누리는 냉큼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렇지만 아람이는 시큰둥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아람이와 누리는 불과 32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람이는 12월 31일 밤 11시 49분, 누리는 다음 해 1월 1일 0시 21분.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하면서 잠깐 같은 날로 올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출생신고를 해서 아람이는 학교도 한해 먼저 들어갔다. 4학년이 된 아람이는 걸핏하면 3학년 보다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유세를 부렸다.
쌍둥이지만 둘은 비슷한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다.
아람이는 책을 좋아하고, 누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야무져서 누나답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누리는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그림 그리는 것, 만들기는 아람이보다 선수다.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금손 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픈식 때, 아람이가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미술관으로 왔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인사를 하고 전시 기획의도를 알려주는 동안 할머니는 메모장을 들고 제일 앞쪽 자리로 가서 앉으셨고, 누리는 다과가 차려지는 쪽 가까이 앉았는데 아람이는 지루했는지 혼자 전시실로 들어갔다.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활짝 웃으며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오랫동안 얘기 했다. 그다음엔 그 왕릉 중 8기가 우리 시에 있으니 큰 자랑거리라고 시장이 더 길게 길게 얘기했다. 누리가 보니 가슴에 꽃을 달고 한쪽에 쭈-욱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 같았다. 작가들도 지루한지 얘기하는 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기 손을 맞잡았다가 했다. 그때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된 아람이가 누리 옆으로 오더니,
“누리야, ‘류원’이란 화가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행사 식이 끝나면 재빨리 좋아하는 케잌을 먼저 집으려고 음식물들이 있는 상을 보고 있던 누리는
“나도 몰라. 아직 작가들은 인사 안 했어. 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을 거야.”
하며 작가들 쪽을 가리켰다.
그때, 드디어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또 누구에게 감사말씀을 전하는 바라고 말하던 시장님 얘기가 끝나고 작가들 인사 차례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인물과 관계된 것인지 어떤 방법과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를 짧게 얘기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얘기가 다 끝났는데 ‘류원’이란 작가는 없었다.
사회를 보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총 11명인데 그중 세 분은 개인 사정과 해외 전시에 참여하느라 못 왔으니 양해바랍니다.”
아람이는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데?”
누리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서......”
하다가 누리를 빤히 보며 물었다.
“너 다음에 또 올 거니?”
누리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관람을 하곤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시립 미술관이라서 입장료도 저렴하다.
또 미술관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입장료에 1,000원을 더 얹어 준다.
그러니 누리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1석 2조, 아니, 1석 3조도 넘는 거다.
“당연하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걸.”
“그럼 다음에 올 때 5 전시실에 있는 ‘류원’이란 화가 그림 좀 자세히 봐줘. 정말 이상했거든.”
“뭐가?”
“그건 네가 그림 보고난 다음에 얘기 할 게.”
‘그래. 아람이도 그날, 분명 나랑 같은 걸 봤을 거야.’
마음이 급해진 누리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 번호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운동화는 벗겨져 날리듯 흩어졌지만 그건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아람아, 아람아 너 그거 봤지?”
급하게 자기를 찾는 누리를 보면서도 아람이는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느긋하게 한 마디 했다.
“저런~ 누나라고 불러야지. 3학년 꼬마야.”
“웃기지마. 너 그거 봤지, 맞지?”
“음- 너, 지금 미술관 갔다 온 거구나?”
“그래. 그 ‘류원’이란 화가가 그린 여자 그림 봤어.”
“어땠는데? 너도 이상했어?”
“있잖아. 꼭 ‘헤리포터’ 영화에서 본 그림들처럼 움직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같았어.”
“그래? 내가 볼 때도 그랬어. 근데 그거 너 혼자 봤어? 무슨 말을 했어?”
“몰라.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더니 원래대로 안 움직이는 그림이 됐어. 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같아 얼른 밖으로 도망쳤지.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거기 직원 아저씨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림이 그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너랑 얘기하려고 얼른 온 거야.”
“마법 그림인가? 그런 게 정말 있는가봐. 그치?”
아람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해, 이상해. 우리 지금 가 보자.”
“안 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미술관은 6시까지만 연단 말이야.”
아람이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무슨 큰 결정이라도 내리는 듯 누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비밀을 풀어 보자.”
“무슨 비밀?”
“그림 속 여자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게 우리 눈에만 보인 건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있잖아, 동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우리가 그 여자의 원한이나 비밀을 푸는 순수한 아이들로 선택된 걸지도 모르잖아.”
아람이는 야무지게 말했지만, 누리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리야, 우선 이번 전시의도를 알아야 하고 ‘류원’이란 화가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 해.”
“그건 어렵지 않아. 전시가 설명된 리플릿도 있고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엔 전시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이번부터 할머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니까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간단하겠다.”
“아냐. 그럼 재미없지. 우리가 선택됐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는 거야. 어른들에겐 비밀로 하고.”
아람이는 다시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옴찔거리며 생각을 모으느라 애썼다.
“그래. 우선 전시 리플릿부터 보자. 너 갖고 있지?”
“물론이지. 난 여태껏 전시 리플릿은 다 모았다니까.”
누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리플릿을 꺼내 놓았다.
아람이와 누리는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시 설명이 담긴 네 면으로 된 리플릿을 읽었다.
앞면엔 전시 제목과 대표 작품 사진, 전시 날짜가 적혀있고, 안쪽 두 면에는 전시 내용과 사진 두 개가 있었다.
왕릉의 전설
-조선 왕족들의 미술관 행차-
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과 명분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왕족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주인공으로 8인을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감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전시의 소재가 된 왕족은 인수대비, 폐비 윤씨,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 그리고 철종이다.
왕릉이라는 신들의 정원에는 그들이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온전하게 충족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은 후손인 우리의 심정을 흔들어 생각을 일으킨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적 의의가 갖는 무게에 비해 현대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가벼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 표현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치열한 꿈의 허상을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누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말이야아~? 난 짜증나.”
“어른들한테 보여주는 거라 그래. 어쨌든 조선시대 왕족들 얘기를 그린 작품이란 말이지 뭐.”
“그럼, 류원이란 화가는 누구 얘길 그린 걸까?”
누리가 마음이 급해져서 뒷장으로 넘겼다.
뒷면에는 참여 작가 11명의 이름과 간단한 작품 내용이 있었다. 문경은, 태인주, 노장현, 박영훈, 류원, 신희경, 백승민, 최원범, 우정석, 김화준, 이민숙. 누리와 아람이는 류원 작가 옆에 있는 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류원은 신비한 전설 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그려오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의빈 성씨 얘기라고?”
아람이는 의빈 성씨를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 알아?”
“응.”
“어떤 사람인데?”
아람이가 좀 뻐기는 표정으로 누리에게 말했다.
“누나, 아니 '누님 알려 주시옵소서.'하면 가르쳐 주-지.”
“야! 겨우 32분 먼저 태어났다고 그 소릴 듣고 싶냐? 나 같으면 그냥 친구먹자고 하겠다.”
“싫음 말구.”
“어-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열쇠인 것만 같아서 누리는 ‘이번만’하는 맘으로 더 과장되게 아양을 떨었다.
“누님, 저는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매우 궁금하옵니다. 알려 주시옵소서.”
“좋다! 내 알려주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러더니 아람이는 누리에게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얘기는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왜? 가르쳐준다면서 왜 가?”
아람이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내가 좀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외우는 건 아니쥐이. 여기 봐-.”
아람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만화책권을 펴서 195쪽에 있는 ‘제 22대 정조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거기엔 정조 밑으로 ‘효의왕후 김씨(1753~1821)- 후사 없음’ 이라 적혀 있고, 그 다음 줄엔 ‘의빈 성씨(1753~1786)-1남, 문효세자 일찍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속 여자가 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
“이거 봐. 의빈 성씨는 겨우 서른네 살에 죽었어.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을 거야. 이 책에서 보면 화빈 윤씨가 미워한 거 같거든.”
아람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더니 말했다.
“그래서 화빈이 의빈 성씨를 죽였대?”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렇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내야지. 그림 속 여자가 우리한테 하려고 하는 말도 뭔지 알 수 있고, 영혼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
“하~ 아람아! 내가 보기엔 넌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같아.”
“뭐라구? 너도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봤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림이 말을 다 하겠니?”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 보자. 아니 이따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재밌는 사건이 우리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이건 우리 생애 최고로 짜릿한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란 말이야.”
“치~ 비밀 만들고 싶은 거야?”
“동화를 읽다보면 비밀이나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우린 언제 그런 일이 생기겠어? 만날 똑같은 날이니...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만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가 너한테 슬라임 전부 다 줄게.”
“진짜? 앗~싸~. 그러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려고 했는데... 좋아! 어떻게 하면 돼?”
“우선, 의빈 성씨에 대한 자료를 더 찾는 거야.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5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자, 이제 자료를 어떻게 찾는다? 도서관에 가야 할까?”
“에이 바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빠르지.”
아람이는 민망한 듯,
“아하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있으면 엄마랑 아빠 집에 올 시간이야. 그니까 일단 오늘은 숙제 하는 척 하면서 이 책을 보고,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찾아봐야지.”
“와~ 철저하네. 난 그냥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미술관에 가서 의빈 성씨랑 단판을 내고 싶구만...”
다음 날 오후, 누리는 학교 운동장에 땀을 흘리며 친구와 축구공으로 놀고 있는데 아람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리야, 누리야아~~ 지금 미술관 가자~~”
“너네 누나도 미술관 좋아하냐? 이상한 남매야. 나도 이제 학원 가야겠다.”
하며 친구가 교문밖으로 나갔다.
“나 입장료도 없단 말이야.”
누리는 아람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초대권을 할머니한테 두 장 받았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은 아까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해놨고.”
“역시! 짱인데.”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 맞추려면 빨리 갔다 와야 해. 뛰자~”
1 전시실에서 4 전시실까지는 건너뛰고 5 전시실로 들어간 아람이와 누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빈 성씨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잠깐, 그림은 그림인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림 앞 1m 정도로 바짝 다가가자 그림이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헉! 정말요? 왜요?”
누리가 깜짝 놀라 물었고, 아람이도 서둘러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거죠? 혹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나요?”
“아~ 글쎄... 왜 그렇게 생각지?”
“내가 다 찾아봤어요. 이름은 성덕임이고, 정조 임금님이 무척 사랑했고, 아들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에 죽고, 딸도 태어나서 첫돌도 안 돼서 죽었잖아요. 또 세 번째 아기를 낳기 두 달 전에 죽은 것도 알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머나! 나에 대해서 많은 걸 공부했구나? 고맙다. 그렇지만- ”
그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5전시실로 들어 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아람이랑 누리네! 책가방도 메고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곧장 왔구나?”
“네, 할머니.”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그림을 돌아보니 그림은 다시 멈춰 있었다.
아람이와 누리는 눈을 맞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림이 다시 움직이며 말을 시작했다.
“정조 임금님과 나는 금슬 좋은 부부였지요. 정조 임금님은 내가 죽은 후 저를 애도하는 글을 많이 써 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분이 그리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누리와 아람이와는 달리 할머니와 다른 두 분은 웃으며 그림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박선생님!”
다시 또 놀란 누리가 물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이런 작품은 누리도 처음 보지? 이런 작품을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거야. 테크놀러지가 결합되어 관객을 만나야 완성되는 작품. 관객들이랑 얘기도 나눌 수 있어.”
“그럼 그림 안에 AI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번엔 아람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여기 이 지점에 사람이 서면 센서가 작동해서 관람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분이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디지털로 된 그림이 움직이는 거야.”
“그림 뒤에 있는 분은 우릴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지는 못 해.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검색어를 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도 해야 하니까. 하하, 내가 비밀로 해도 될 걸 너무 많이 알려준 건가?”
그제야 아람이와 누리는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누리는 디지털 그림이 너무나 감쪽같아 놀라웠고, 아람이는 신비한 경험을 놓친 거 같아 크게 서운했다.
나중에 아람이와 누리에게 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얘기 듣고, 할머니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할머니는 너희들 덕분에 미술관에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더구나 그림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아람이랑 누리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수상소감 - 우수상 동화 배홍숙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 생각이 신기해 기분이 좋아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동화를 몇 편 써 두고 공개는 안했는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처음 응모해서 이렇게 상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독서 동아리 회원이 공모전이 있다고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그 분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응모 부문에 동화가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쩌면 50대 이상이 참가하는 거라면 동화 부문 응모자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듣습니다. 함께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글쓰기엔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거 같아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이후에 다른 공모전이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요청이 온다면 글쓰기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네요.
내가 쓴 에세이는 항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가 해낸 생각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동화나 그림책 글을 계속 쓰면서,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정보를 주셨던 선생님, 잘못된 파일 경로를 수정하라고 알려주신 담당자에게 감사드리며, 독서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와 외할머니, 응원해 주는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베이비부머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한 온라인 숙박 예약사이트가 지난 15일 여행 플랫폼 이용자(한국인 1003명 포함 총 2만8042명)의 의향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대별 추천 여행지를 집계했다. 이 중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게 어울리는 여행지로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선정됐다.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는 선호하는 여행지로 33%가 편안한 도시를 선택했다. 해당 사이트 사용자들이 ‘산책하기 좋은 도시’로 가장 많이 추천한 여행지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비엔나는 음악과 건축의 도시다. 왕궁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말러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주로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비엔나 곳곳에는 이들이 살았던 집과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무대나 결혼식, 장례식이 열렸던 성당도 직접 가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역사가 깃든 고풍스러운 궁전 정원을 산책하거나 위대한 작곡가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시니어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다.
알베르티나 박물관
알베르티나 박물관은 원래 1805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궁으로 건축된 궁전이다. 왕궁과 미술관으로 활용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연못’(The Water Lily Pond), 마르크 샤갈의 ‘연’(The Kite), 파블로 피카소의 ‘녹색 모자를 쓴 여인’(Woman in a green hat)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작품부터 근세 미술, 100만 점의 그래픽 아트까지, 시기와 장르를 초월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오페라하우스 뒤편에 있는 알베르티나는 멜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6)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알베르티나를 거닐다 보면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오페라하우스
비엔나의 국립오페라하우스는 파리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로 꼽힌다. 유럽 최대 규모로 객석 2200석, 객석보다 세 배 넓은 무대, 관람객이 악보를 볼 수 있게 한 천장 객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이자 짤츠부르크 음악제의 중심인 빈 필하모닉이 이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다. 클래식 애호가인 시니어라면 비엔나에서 빠지지 않고 들려야 하는 이유다.
오페라 시즌인 9월부터 다음해 6월 사이에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같은 인기 공연이 여러 차례 열린다. 7~8월은 공연 대신 가이드 투어만 진행하므로 오페라의 진수를 즐기고 싶은 시니어라면 이 시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인 쇤부른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자 유산이다. 공간은 50만 평으로 방이 1411개나 있다. 쇤부른 궁전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왕궁에는 ‘파노라마반’이라고 부르는 꼬마기차가 다닌다. 방문객은 이 기차를 타고 넓고 화려한 궁전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다. 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든 글로리에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인 쇤부른 동물원, 야자수 식물원과 마차 박물관 등 9개 정류장을 돌면 쇤부른 궁전을 힘들이지 않고 관람할 수 있다.
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년 6월마다 쇤부른 궁전 정원에서 밤의 음악제를 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험이 사라져 다시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6월을 노려 이른 여름 휴가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이전까지 미술품 수집은 수집가의 고급 취미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이른바 ‘아트테크’(Art-tech)라 불리며 재테크 수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건희 컬렉션 공개 이후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최근 미술품 수집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취미의 목적도 있지만, 투자 수단으로 미술품을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발표한 ‘아트마켓 2021’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미술품 수집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미술품 컬렉션에 관심이 많다고 응답한 이가 66%에 달했다. 또한 43%가 자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이후 미술 시장은 어려워졌지만 온라인 매출은 증가했다. ‘아트마켓 2021’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미술 시장의 매출은 2019년과 비교해 22% 감소했지만, 온라인 매출은 두 배나 증가했다. 실제로 아트페어의 62%는 웹으로 갤러리 작품을 볼 수 있는 온라인 뷰잉룸이나 디지털 버전을 제공했다. 미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매출이 늘었지만, 전통적인 컬렉터 중에서는 여전히 작품을 직접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수익률과 세제 혜택
은퇴를 앞둔 김미술 씨는 평소 예술에 관심이 커서 전시회에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면 자녀들에게 물려줄 상속재산으로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퇴직금과 저축한 돈을 모아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 소액으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은 없을까?
위의 경우처럼 아트테크 입문자라면 공동구매를 추천한다. 공동구매를 하면 소액으로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다.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을 이용하면 단돈 1만 원으로도 고가의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다. 간접투자인 리츠와 유사하다. 크라운드 펀딩을 통해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미술품의 가치가 올랐을 때 매각 후 시세차익을 보유한 지분의 비율대로 나눠 갖는다.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공동구매 플랫폼을 통해 매각된 김환기의 ‘산월’은 한 달 만에 22%의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는 2021년 6월 기준 평균 19.9%의 수익률을 올렸다. 아트앤가이드 관계자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특정 시기나 특정 이미지에 대한 선호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아트테크의 장점은 세금 부담이 적다. 부동산의 경우 취득세, 재산세, 종부세 등 내야 하는 세금이 많은데, 미술품은 양도세만 내면 된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사업자가 아니라면 미술품 거래로 얻은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간주하며,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를 세금으로 낸다. 다만 양도가액이 6000만 원 미만의 작품이거나 국내 생존 작가의 작품은 비과세다. 세율 계산 시 양도 금액에서 필요경비를 제외한 금액에 세금을 부과한다. 필요경비는 통상 양도 금액의 80~90%로 결정된다. 1억 원 이하나 10년 이상 보유하면 90%까지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10년간 보유한 작품을 1억 원에 양도했을 때 판매 금액의 2.2%인 220만 원을 양도소득세로 내면 된다.
위의 방법대로 산 미술품을 상속하면 세금이 어떻게 부과될까? 미술품 상속분은 별도의 공제 없이 상속세과세표준에 그대로 반영돼 세율이 매겨진다. 상속세율에는 10~50%의 5단계 초과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상속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미술품의 상속, 혹은 증여 평가 금액은 2인 이상의 전문가가 감정한 가액의 평균 가격으로 산정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미술품은 향후에 값어치가 오를 가능성이 커서 미리 증여하면 재산 이전 효과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 공개 이후 상속세 물납제 찬반 논쟁이 뜨겁다. 한국화랑협회 등 관련 단체는 지난 3월 대국민 건의문을 통해 문화재 해외 유출을 막고 물납제를 통한 국가적 문화유산 보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납제를 통해 운영 중인 피카소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물납은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쓰일 수 있고 국고 손실을 일으킨다는 의견도 있다. 비슷한 예로 비상장 주식의 물납이 조세 회피 수단으로 지적되면서 현재는 상속세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미술품 물납제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기 위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여아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대책⋅연금⋅노동 개혁 등 각자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한국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면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후보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관련 정책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경선 초기라 구체적인 정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노인 복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모습이다.
여권 유력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환적 공정 성장’을 대선 제1공약으로 내놓았다. 이 지사는 공정 사회, 미래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강조하며 기후에너지부, 대통령 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데이터 전담부서 설치 등 정부 체계 개편안도 함께 발표했다. 공정 성장 방안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불공정 거래와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징벌 배상,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또 다른 여권 후보 이낙연 전 총리는 5대 핵심 공약에 균형 발전, 문화 강국, 여성 일자리, 정부 혁신, 교육⋅과학 분야 정책을 내세웠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야권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위주의 정책을 내놓았다. 추 전 장관은 ‘택지조성원가연동제’를, 홍 의원은 ‘쿼터 아파트’ 공약을 발표하며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공약을 제시했다.
야권에서 윤희숙 의원은 대선 공약으로 노동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야권의 유력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현재 뚜렷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유승민 전 의원만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꺼내들었으나 노후소득 보장성을 강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연금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정책이었다. 유 의원은 “청년들이 돈만 내고 나중에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겠다”며 노인 빈곤층에 대해서는 “공정 소득으로 국가가 이 분들의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 내세운 노인 정책을 살펴보면 의료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치매국가책임제, 노인 일자리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치매등급기준을 완화해 치매의 장기요양보험에 확대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노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고도 밝혔는데, 주로 독거노인에 한정돼 있어 보편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공약에 대해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시한 점은 돋보였지만 치매노인과 독거노인으로 한정함으로써 선별적 접근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당선 후 문재인 정부의 노인 복지는 나쁜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복지정책 평가’ 보고서에서 “시장의 반발, 관료의 소극성, 보수진영의 재정안정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포용복지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후 노인 복지를 일부 확대했다. 대표적으로 기초연금 인상을 꼽을 수 있다. 2021년 1월부터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은 모두 3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유산으로 남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는 그대로 방치돼 인상 효과가 무력한 상황이다.
이는 국민연금 급여가 기초연금의 150%를 넘으면 최대 50%까지 줄게 한 독소조항이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을 70만 원 받으면 기초연금이 7만 원 정도 줄어든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 폐지를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생계급여 지급 시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 하지만 의료급여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따진다.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 가구 외 나머지는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수립 때까지 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국민연금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당시 ‘제도발전위원회’에서 2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가입자 단체가 보험료 단계적 인상안을 제출했으나 사용자 단체가 반대한다는 의유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부양의무자 기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같은 당면 과제 외에 종합적인 노인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노후소득, 일자리 보장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제도적 지원과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