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왕릉의 전설

기사입력 2021-08-27 10:00 기사수정 2021-08-27 16:21

[우수상 수상작] 동화

‘헉! 이거 뭐지? 혹시 그날 아람이가 얘기했던 게 이건가?’

누리는 미술관의 다섯 번째 전시실 모퉁이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까만색 유니폼을 입고 목에는 스태프 라고 쓰인 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5전시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아저씨! 저 그림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게...”

하면서 누리가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남자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 조금 전 누리가 봤던 그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그게 저 그림이... 아, 아니에요.”

직원은 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다시 천천히 걸으며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 상태를 살피는 거 같았다.

누리는 자기가 착각을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자기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누리는 다시 그 여자그림 앞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무슨 괴기 영화나 환타지 영화에서 본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왕릉의 전설> 전시 개회식은 일주일전 목요일 오후 5시에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관을 놀이터 드나들 듯 좋아하는 누리 때문에 미술관에 자주 가시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으셨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전시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그날 할머니가 누리에게 전시 오픈식에 참석해서 작가들을 만날 거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누리는 미술관엔 자주 가서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지만, 작가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픈식이 끝나면 맛있는 다과 파티도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누리는 냉큼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렇지만 아람이는 시큰둥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아람이와 누리는 불과 32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람이는 12월 31일 밤 11시 49분, 누리는 다음 해 1월 1일 0시 21분.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하면서 잠깐 같은 날로 올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출생신고를 해서 아람이는 학교도 한해 먼저 들어갔다. 4학년이 된 아람이는 걸핏하면 3학년 보다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유세를 부렸다.

쌍둥이지만 둘은 비슷한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다.

아람이는 책을 좋아하고, 누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야무져서 누나답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누리는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그림 그리는 것, 만들기는 아람이보다 선수다.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금손 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픈식 때, 아람이가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미술관으로 왔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인사를 하고 전시 기획의도를 알려주는 동안 할머니는 메모장을 들고 제일 앞쪽 자리로 가서 앉으셨고, 누리는 다과가 차려지는 쪽 가까이 앉았는데 아람이는 지루했는지 혼자 전시실로 들어갔다.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활짝 웃으며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오랫동안 얘기 했다. 그다음엔 그 왕릉 중 8기가 우리 시에 있으니 큰 자랑거리라고 시장이 더 길게 길게 얘기했다. 누리가 보니 가슴에 꽃을 달고 한쪽에 쭈-욱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 같았다. 작가들도 지루한지 얘기하는 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기 손을 맞잡았다가 했다. 그때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된 아람이가 누리 옆으로 오더니,

“누리야, ‘류원’이란 화가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행사 식이 끝나면 재빨리 좋아하는 케잌을 먼저 집으려고 음식물들이 있는 상을 보고 있던 누리는

“나도 몰라. 아직 작가들은 인사 안 했어. 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을 거야.”

하며 작가들 쪽을 가리켰다.

그때, 드디어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또 누구에게 감사말씀을 전하는 바라고 말하던 시장님 얘기가 끝나고 작가들 인사 차례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인물과 관계된 것인지 어떤 방법과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를 짧게 얘기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얘기가 다 끝났는데 ‘류원’이란 작가는 없었다.

사회를 보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총 11명인데 그중 세 분은 개인 사정과 해외 전시에 참여하느라 못 왔으니 양해바랍니다.”

아람이는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데?”

누리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서......”

하다가 누리를 빤히 보며 물었다.

“너 다음에 또 올 거니?”

누리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관람을 하곤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시립 미술관이라서 입장료도 저렴하다.

또 미술관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입장료에 1,000원을 더 얹어 준다.

그러니 누리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1석 2조, 아니, 1석 3조도 넘는 거다.

“당연하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걸.”

“그럼 다음에 올 때 5 전시실에 있는 ‘류원’이란 화가 그림 좀 자세히 봐줘. 정말 이상했거든.”

“뭐가?”

“그건 네가 그림 보고난 다음에 얘기 할 게.”

‘그래. 아람이도 그날, 분명 나랑 같은 걸 봤을 거야.’

마음이 급해진 누리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 번호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운동화는 벗겨져 날리듯 흩어졌지만 그건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아람아, 아람아 너 그거 봤지?”

급하게 자기를 찾는 누리를 보면서도 아람이는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느긋하게 한 마디 했다.

“저런~ 누나라고 불러야지. 3학년 꼬마야.”

“웃기지마. 너 그거 봤지, 맞지?”

“음- 너, 지금 미술관 갔다 온 거구나?”

“그래. 그 ‘류원’이란 화가가 그린 여자 그림 봤어.”

“어땠는데? 너도 이상했어?”

“있잖아. 꼭 ‘헤리포터’ 영화에서 본 그림들처럼 움직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같았어.”

“그래? 내가 볼 때도 그랬어. 근데 그거 너 혼자 봤어? 무슨 말을 했어?”

“몰라.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더니 원래대로 안 움직이는 그림이 됐어. 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같아 얼른 밖으로 도망쳤지.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거기 직원 아저씨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림이 그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너랑 얘기하려고 얼른 온 거야.”

“마법 그림인가? 그런 게 정말 있는가봐. 그치?”

아람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해, 이상해. 우리 지금 가 보자.”

“안 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미술관은 6시까지만 연단 말이야.”

아람이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무슨 큰 결정이라도 내리는 듯 누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비밀을 풀어 보자.”

“무슨 비밀?”

“그림 속 여자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게 우리 눈에만 보인 건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있잖아, 동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우리가 그 여자의 원한이나 비밀을 푸는 순수한 아이들로 선택된 걸지도 모르잖아.”

아람이는 야무지게 말했지만, 누리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리야, 우선 이번 전시의도를 알아야 하고 ‘류원’이란 화가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 해.”

“그건 어렵지 않아. 전시가 설명된 리플릿도 있고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엔 전시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이번부터 할머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니까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간단하겠다.”

“아냐. 그럼 재미없지. 우리가 선택됐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는 거야. 어른들에겐 비밀로 하고.”

아람이는 다시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옴찔거리며 생각을 모으느라 애썼다.

“그래. 우선 전시 리플릿부터 보자. 너 갖고 있지?”

“물론이지. 난 여태껏 전시 리플릿은 다 모았다니까.”

누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리플릿을 꺼내 놓았다.

아람이와 누리는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시 설명이 담긴 네 면으로 된 리플릿을 읽었다.

앞면엔 전시 제목과 대표 작품 사진, 전시 날짜가 적혀있고, 안쪽 두 면에는 전시 내용과 사진 두 개가 있었다.

왕릉의 전설

-조선 왕족들의 미술관 행차-

<왕릉의 전설>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과 명분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왕족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주인공으로 8인을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감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전시의 소재가 된 왕족은 인수대비, 폐비 윤씨,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 그리고 철종이다.

왕릉이라는 신들의 정원에는 그들이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온전하게 충족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은 후손인 우리의 심정을 흔들어 생각을 일으킨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적 의의가 갖는 무게에 비해 현대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가벼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 표현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치열한 꿈의 허상을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누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말이야아~? 난 짜증나.”

“어른들한테 보여주는 거라 그래. 어쨌든 조선시대 왕족들 얘기를 그린 작품이란 말이지 뭐.”

“그럼, 류원이란 화가는 누구 얘길 그린 걸까?”

누리가 마음이 급해져서 뒷장으로 넘겼다.

뒷면에는 참여 작가 11명의 이름과 간단한 작품 내용이 있었다. 문경은, 태인주, 노장현, 박영훈, 류원, 신희경, 백승민, 최원범, 우정석, 김화준, 이민숙. 누리와 아람이는 류원 작가 옆에 있는 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류원은 신비한 전설 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그려오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의빈 성씨 얘기라고?”

아람이는 의빈 성씨를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 알아?”

“응.”

“어떤 사람인데?”

아람이가 좀 뻐기는 표정으로 누리에게 말했다.

“누나, 아니 '누님 알려 주시옵소서.'하면 가르쳐 주-지.”

“야! 겨우 32분 먼저 태어났다고 그 소릴 듣고 싶냐? 나 같으면 그냥 친구먹자고 하겠다.”

“싫음 말구.”

“어-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열쇠인 것만 같아서 누리는 ‘이번만’하는 맘으로 더 과장되게 아양을 떨었다.

“누님, 저는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매우 궁금하옵니다. 알려 주시옵소서.”

“좋다! 내 알려주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러더니 아람이는 누리에게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얘기는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왜? 가르쳐준다면서 왜 가?”

아람이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내가 좀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외우는 건 아니쥐이. 여기 봐-.”

아람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만화책권을 펴서 195쪽에 있는 ‘제 22대 정조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거기엔 정조 밑으로 ‘효의왕후 김씨(1753~1821)- 후사 없음’ 이라 적혀 있고, 그 다음 줄엔 ‘의빈 성씨(1753~1786)-1남, 문효세자 일찍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속 여자가 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

“이거 봐. 의빈 성씨는 겨우 서른네 살에 죽었어.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을 거야. 이 책에서 보면 화빈 윤씨가 미워한 거 같거든.”

아람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더니 말했다.

“그래서 화빈이 의빈 성씨를 죽였대?”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렇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내야지. 그림 속 여자가 우리한테 하려고 하는 말도 뭔지 알 수 있고, 영혼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

“하~ 아람아! 내가 보기엔 넌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같아.”

“뭐라구? 너도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봤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림이 말을 다 하겠니?”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 보자. 아니 이따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재밌는 사건이 우리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이건 우리 생애 최고로 짜릿한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란 말이야.”

“치~ 비밀 만들고 싶은 거야?”

“동화를 읽다보면 비밀이나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우린 언제 그런 일이 생기겠어? 만날 똑같은 날이니...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만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가 너한테 슬라임 전부 다 줄게.”

“진짜? 앗~싸~. 그러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려고 했는데... 좋아! 어떻게 하면 돼?”

“우선, 의빈 성씨에 대한 자료를 더 찾는 거야.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5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자, 이제 자료를 어떻게 찾는다? 도서관에 가야 할까?”

“에이 바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빠르지.”

아람이는 민망한 듯,

“아하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있으면 엄마랑 아빠 집에 올 시간이야. 그니까 일단 오늘은 숙제 하는 척 하면서 이 책을 보고,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찾아봐야지.”

“와~ 철저하네. 난 그냥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미술관에 가서 의빈 성씨랑 단판을 내고 싶구만...”

다음 날 오후, 누리는 학교 운동장에 땀을 흘리며 친구와 축구공으로 놀고 있는데 아람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리야, 누리야아~~ 지금 미술관 가자~~”

“너네 누나도 미술관 좋아하냐? 이상한 남매야. 나도 이제 학원 가야겠다.”

하며 친구가 교문밖으로 나갔다.

“나 입장료도 없단 말이야.”

누리는 아람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초대권을 할머니한테 두 장 받았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은 아까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해놨고.”

“역시! 짱인데.”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 맞추려면 빨리 갔다 와야 해. 뛰자~”

1 전시실에서 4 전시실까지는 건너뛰고 5 전시실로 들어간 아람이와 누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빈 성씨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잠깐, 그림은 그림인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림 앞 1m 정도로 바짝 다가가자 그림이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헉! 정말요? 왜요?”

누리가 깜짝 놀라 물었고, 아람이도 서둘러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거죠? 혹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나요?”

“아~ 글쎄... 왜 그렇게 생각지?”

“내가 다 찾아봤어요. 이름은 성덕임이고, 정조 임금님이 무척 사랑했고, 아들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에 죽고, 딸도 태어나서 첫돌도 안 돼서 죽었잖아요. 또 세 번째 아기를 낳기 두 달 전에 죽은 것도 알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머나! 나에 대해서 많은 걸 공부했구나? 고맙다. 그렇지만- ”

그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5전시실로 들어 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아람이랑 누리네! 책가방도 메고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곧장 왔구나?”

“네, 할머니.”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그림을 돌아보니 그림은 다시 멈춰 있었다.

아람이와 누리는 눈을 맞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림이 다시 움직이며 말을 시작했다.

“정조 임금님과 나는 금슬 좋은 부부였지요. 정조 임금님은 내가 죽은 후 저를 애도하는 글을 많이 써 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분이 그리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누리와 아람이와는 달리 할머니와 다른 두 분은 웃으며 그림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박선생님!”

다시 또 놀란 누리가 물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이런 작품은 누리도 처음 보지? 이런 작품을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거야. 테크놀러지가 결합되어 관객을 만나야 완성되는 작품. 관객들이랑 얘기도 나눌 수 있어.”

“그럼 그림 안에 AI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번엔 아람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여기 이 지점에 사람이 서면 센서가 작동해서 관람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분이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디지털로 된 그림이 움직이는 거야.”

“그림 뒤에 있는 분은 우릴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지는 못 해.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검색어를 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도 해야 하니까. 하하, 내가 비밀로 해도 될 걸 너무 많이 알려준 건가?”

그제야 아람이와 누리는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누리는 디지털 그림이 너무나 감쪽같아 놀라웠고, 아람이는 신비한 경험을 놓친 거 같아 크게 서운했다.

나중에 아람이와 누리에게 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얘기 듣고, 할머니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할머니는 너희들 덕분에 미술관에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더구나 그림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아람이랑 누리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수상소감 - 우수상 동화 배홍숙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 생각이 신기해 기분이 좋아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동화를 몇 편 써 두고 공개는 안했는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처음 응모해서 이렇게 상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독서 동아리 회원이 공모전이 있다고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그 분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응모 부문에 동화가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쩌면 50대 이상이 참가하는 거라면 동화 부문 응모자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듣습니다. 함께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글쓰기엔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거 같아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이후에 다른 공모전이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요청이 온다면 글쓰기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네요.

내가 쓴 에세이는 항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가 해낸 생각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동화나 그림책 글을 계속 쓰면서,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정보를 주셨던 선생님, 잘못된 파일 경로를 수정하라고 알려주신 <브라보 마이 라이프> 담당자에게 감사드리며, 독서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와 외할머니, 응원해 주는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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