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낯선 전쟁’ 전시 연계 영화 프로그램 ‘낯선 전쟁: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필름앤비디오에서 오는 29일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낯선 전쟁: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는 현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과 그 흔적을 살펴보고 여성, 어린이, 난민 등 전쟁 속 약자들을 다룬 국내·외 감독 21명의 작품 20편을 선보인다. 프로그램은 ‘기억과 증언’, ‘폐허의 미래’, ‘생활과 폭탄’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기억과 증언’에서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기록 및 영상, 인터뷰 등을 통해 이전 세대의 경험과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에는 피난민, 망명자, 참전군인 등 하나의 추상적인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국전쟁 당시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로 떠난 북한 출신 감독들을 다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2017),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재미교포 4인의 개인사를 담은 ‘잊혀진 전쟁의 기억’(2013) 등이 상영된다.
2부 ‘폐허의 미래’에서는 전쟁의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소수자 혐오, 과도한 공권력, 일상적인 군사문화 등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국면이 불러일으킨 사회 불균형과 높은 긴장상태를 들여다본다. 생생한 전쟁의 여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 우리 곁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영상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의 유일한 픽션 영화 ‘환송대’(1962), 육군 의장대에 입대한 한 군인의 개인적인 모습을 담은 ‘군대’(2018) 등이 상영된다.
3부 ‘생활과 폭탄’은 국제적인 분쟁 지역에서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1950년대의 한반도를 연상시키는 이 기이한 반복은 눈앞에 놓인 영상들이 어딘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더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기적처럼, 전쟁터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힘을 잃지 않는다. 전쟁과 기근 등으로 인해 유랑할 수밖에 없는 전 세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유랑하는 사람들’(2017),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을 전선의 양쪽에서 취재하며 담은 ‘러시안 레슨스’(2010) 등이 상영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과 재난, 개인의 경험과 삶을 심층적으로 다룬 동시대 영화를 한 자리에 선보인다”라며, “비극적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이들을 담은 영화를 통해 인류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MMCA필름앤비디오 상영 영화는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서울관 전시관람 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회 상영 전 방역소독을 실시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표시된 객석에만 착석 가능하다. (매회 50석, 관람 중 마스크 착용 필수) 기간은 9월 20일까지.
사람들은 꽃철이 되면 아랫녘으로 떠나고 수목원을 찾지만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양천 향교에 간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이곳에 가면 조용한 향교 담장 위로 피어난 능소화를 볼 수 있다. 옛 교육기관에서 꽃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도심 속에서 옛 시간과 소통하는 양천 향교는 마을 골목길을 따라 잠깐 걸어 들어가 사찰 홍원사 뒤편으로 가면 있다. 산을 등지고 안정감 있게 들어앉은 모양새다. 향교는 옛 성현들의 덕을 기리고 제를 모시며 지방 향리들을 교육하던 기관이다. 현대적 교육기관이 생겨나면서 대부분 해체되었지만 아직도 전국적으로 230여 개의 향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양천 향교만 남아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조선 태종 연간(서기 1411년경)에 설립된 양천 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성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미디어 시대에 맞는 생활예절 교육과 함께 다양한 소통 창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휴관 중이다. 그래서 더 조용해진 향교다.
담장을 둘러쌓았던 능소화도 예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그래도 잊지 않고 피어나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듯 꽃잎을 활짝 열었다. 능소화의 전설 속에는 그 옛날 구중궁궐에 살던 소화라는 궁녀 이야기가 있다. 어여뻤던 소화는 임금의 사랑을 얻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 임금이 자신을 찾지 않자 그리움에 점점 병이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장 밑을 서성이고 내다보며 오매불망 임금만을 기다리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뜬 소화. 그녀는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고 했고 그 영혼이 깃들었는지 소화가 지냈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꽃이 주렁주렁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능소화다.
능소화는 오래전 사신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가져온 꽃으로 화사한 색상과 모습이 기품 있어 양반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로 사대부 뜰에서만 볼 수 있었고 민가에서는 함부로 심지 못했다. 사람들은 능소화가 다 피고 질 때 미련 없이 꽃송이를 톡 하고 떨어트리는 모습이 마치 소화의 지조를 닮은듯하다고 풀이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영광', '기다림', '명예'다.
예전에는 능소화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맘때면 멀리 경상도까지 내려가 운치 있는 한옥 담장을 뒤덮으며 피어난 능소화를 촬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강변 산책길에서 굵은 나무 기둥을 칭칭 감으며 피어난 능소화를 볼 수 있고 고속도로변의 높은 벽을 뒤덮으며 피어난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능소화 터널을 이룬 신식풍 조경의 공원도 생겨났다. 어느덧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능소화는 역시 담장을 타고 피는 게 제일 어울린다. 마침 향교 관리인이 굳게 잠긴 문을 잠깐 열어주어 동재와 서재, 그리고 강학 공간이 있는 마당까지 들여다봤다. 향교 옆길로 한 걸음 옮기면 궁산 근린공원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숲길은 여름인데도 서늘하다. 길을 따라 나지막한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아울러 겸재정선미술관과 궁산땅굴, 구암공원, 허준박물관으로 연결되는 강서 역사문화 둘레길을 알차게 돌아볼 수 있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때문에 실내 관람은 어렵다.
바이러스로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지금은 향교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주변 뜰을 거닐며 유생들의 선비정신과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는 시간도 제법 괜찮다. 게다가 한적한 분위기가 유유자적 생활 속 거리 두기에 적당하다.
향교를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하기 전에 한 번쯤 옛 성현들의 흔적을 통해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뜰에서의 담백한 어느 하루, 여름 햇살을 받은 능소화가 향교 담장 위에서 눈부시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34
△ 주변 볼거리
△서울식물원을 비롯해 겸재정선기념관, 구암공원, 허준박물관, 궁산땅굴이 이어져 있다. 향교 입구 부근에 위치한 사찰 홍원사와 전통 방식으로 면을 만들어 국수를 주렁주렁 널어놓은 ‘옛날국수’ 집 구경은 덤이다.
△이타제면소의 잔치국수(5000원)와 굴림만두(4000원)로 맛난 한 끼가 가능한 곳이 근처에 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기에 그 감동은 몇 배나 더했다.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 두 곳을 관람하기에 하루해가 모자랐다. 입장료도 제법 비싼 편인데 통합관람권으로 구매하니 대폭 할인이 된다. 올해 3월 은퇴하면 해외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진즉 포기했다. 대신 국내 여행으로 순천을 선택했다. 대만족이다. 날씨까지 화창하다.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정원 박람회를 개최했던 장소다. 112만 ㎥(약 34만 평) 부지에 23개국 83개 정원이 꾸며진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이다. 넓은 대지에 세계 유명 정원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고 있다. 언젠가 해외여행을 할 때 봤던 세계 정원과는 판이하다. 그때 본 정원들은 소꿉장난하듯 그 나라의 상징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가 숲길 따라 나라별 정원을 관람할 수 있다. 걷는 곳마다 꽃길이라 화사하고 잘 가꾸어놓은 잔디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쉬어 갈 수도 있다. 누워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긴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 정원이다.
풍차가 있는 네덜란드 정원에서는 꽃향기에 취하고 각 나라의 정원도 마치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다. 길이 175m인 ‘꿈의 다리’는 세계 최초로 물 위에 설치한 미술관이다. 14만여 명의 전 세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동천이 흐르는 꿈의 다리를 건너 한국 정원에 이르는 길에 만나는 조그만 산은 전체가 철쭉 정원이다. 봄에 가면 천상의 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전통 양식을 잘 보여준다.
부지런히 걸어도 한 바퀴 돌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듯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호수정원은 그림 같다. 잔디마당과 봉화 언덕이 있어 나선형의 꼭대기까지 걸러 올라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호숫가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가져온 책을 읽으며 쉬노라니 불어오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국가정원을 관람한 뒤에는 순천만 습지로 연결되는 스카이큐브가 있어 바로 넘어갈 수 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다. 녹색의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가슴이 확 트인다. 갈대 숲속에 만든 데크 숲길을 따라 걸으며 갈대들이 서로 몸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정겹다. 문득 올려다본 청명한 하늘에는 흰 구름이 가득하다. 마치 자연의 품속에 안긴 듯하다.
습지에서는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순천만의 상징인 짱뚱어가 진흙 바닥에서 구멍을 뚫고 기어나 오는가 싶더니 다른 놈들과 영역 다툼을 치열하게 벌인다. 그러다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후다닥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생긴 모양이 우스꽝스러운 짱뚱어는 겨울잠을 자는 동면 어류로 잠둥어라 불리기도 한다. 건강한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만 습지의 또 다른 주인은 게다. 사다리꼴 모양의 칠게는 새의 먹잇감으로 유명하며, 도둑게는 벽을 잘 타고 동작이 재빠르다. 바닷가에 있는 민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기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습지에서 한주먹하는 놈은 단연 농게다. 암놈은 몸집이 작고 두 다리도 짧지만 수놈은 한쪽 다리가 크고 길어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분명 기형의 모습인데 힘센 한쪽 다리를 치켜들며 갯벌을 주름잡는 듯한 자세다. 작은 다리로 갯벌의 먹이를 주워 먹고, 크고 긴 집게발은 자랑처럼 휘두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학창 시절 힘자랑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순천이라는 곳으로 달려왔다. 만족스럽다. 유럽의 어느 관광지 못지않다. 가끔은 이렇게 보물 같은 관광지를 찾아 국내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 계절마다 이곳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지금은 녹음으로 가득하지만 가을에는 갈색의 갈대숲이 반길 것이고 겨울에는 철새들이 날아드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운이 짙게 남는 여행이었다.
[관광 안내 정보]
관람시간: 순천만국가정원(08:30~20:00), 순천만습지(08:00~19:30)
입장료: 어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통합입장권: 어른 1만2000원, 청소년 8500원, 어린이 5500원 (국가정원과 습지 입장 가능)
주소: 순천만국가정원(전남 순천시 국가정원 1호길 47), 순천만습지(전남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 Exhibition
◇ 판화, 판화, 판화
일정 8월 16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내 현대 판화를 대표하는 작가 60여 명의 작품 100점을 통해 ‘판화’라는 특수한 장르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책방’, ‘거리’, ‘작업실’, ‘플랫폼’ 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하던 장소의 명칭과 특징을 빌려와 판화가 존재하고 나아갈 자리에 대해 고찰한다. 판화로 제작된 아티스트 북, 드로잉, 설치, 조각 등을 비롯해 인쇄문화와 판화의 관계를 나타낸 작품들, 또 타 장르와 구분되는 판화 고유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대표작 등을 폭넓게 감상할 기회다.
◇ 너의 감정과 기억
일정 12월 27일까지 장소 디뮤지엄
듣고 보는 경험을 소리, 빛, 공간 등 다양한 감각이 결합된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기존 전시실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특별 공간까지 공개하며 디뮤지엄 개관 이래 최대 규모로 꾸렸다. 관객은 오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전달되는 자극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총 11개 섹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13개 팀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관객주도형 퍼포먼스,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 비주얼 뮤직 등 사운드·비주얼 작품 22점을 다양한 범주로 소개한다.
◇ 데스 브로피 초대전: 즐거운 인생
일정 8월 31일까지 장소 흰물결갤러리
사람들의 유쾌한 모습을 포착해 재미있게 표현해온 영국 화가 데스 브로피의 초대전. 2년 전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통해 인간미 넘치는 작품들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웃음과 행복을 선사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최근 코로나19 등으로 각박해지고,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이 주는 즐거움과 그 안에 담긴 유머와 사랑을 전하고자 기획됐다. 작가 특유의 따스한 감성이 돋보이는 50여 점의 유화, 수채화, 판화 등을 통해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물씬 느낄 수 있다.
◇ 현대 HYUNDAI 50 PART II
일정 7월 17일까지 장소 갤러리현대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1부)에 이은 갤러리현대의 50주년 특별전 2부로, 갤러리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미술사 100여 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현대와 성장한 한국 작가 16팀의 대표작과 신작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통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강익중, 김민정, 이슬기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기간에는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된 대형 작품 ‘광화문 아리랑’도 만날 수 있다.
● Stage
◇ 라스트 세션
일정 7월 10일~9월 13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남명렬, 이상윤 등
위대한 두 학자 C.S. 루이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세기적 만남을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 3일, 두 주인공이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신에 대한 물음과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등을 주제로 치열한 논변이 오간다. 배우의 호흡이 중요한 2인극 형태로, 프로이트 역에 중견배우 신구와 남명렬이 캐스팅되며 눈길을 끌었다.
◇ 오네긴
일정 7월 18~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제인 번 출연 유니버설발레단
오만한 도시 귀족 오네긴과 순수한 시골 소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차이콥스키 작곡의 오페라 탄생 이후 존 크랑크의 안무가 더해지며 발레극이 완성됐다.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아름다운 발레 동작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며 애틋함을 자아낸다.
◇ 제이미
일정 7월 4일~9월 11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심설인 출연 최정원, 조권, 신주협 등
영국 웨스트엔드의 히트 뮤지컬 ‘제이미’의 세계 최초 라이선스 프로덕션 무대를 국내에서 만난다. 꿈과 자아를 찾아나선 소년 제이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신나는 팝 음악과 스트리트 댄스가 보는 내내 흥을 자아낸다.
● Movie
◇ 소리꾼
개봉 7월 1일 장르 드라마 감독 조정래 출연 이봉근, 박철민, 이유리, 김동완 등
한국형 뮤지컬 영화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소리꾼과 그를 필두로 길에서 뭉친 광대패의 팔도유랑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학규는 부패한 권력을 향해 피폐해진 백성의 마음과 단호한 의지를 노래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학규 역의 국악인 이봉근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첫 연기에 도전하며 소리꾼다운 노래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밖에 배우 박철민, 이유리, 김동완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희로애락을 팔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 가락으로 표현한다.
◇ 욕창
개봉 7월 2일 장르 드라마 감독 심혜정 출연 김종구, 강애심, 전국향, 김도영 등
욕망과 상처를 감춰왔던 가족이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렸다.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에베레스트
개봉 7월 22일 장르 액션, 모험 감독 이인항 출연 성룡, 장쯔이, 오경, 정백연 등
‘1917’, ‘어벤져스: 엔드 게임’ 제작진과 성룡, 장쯔이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 한순간 삶의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한때 정복했던 에베레스트에 재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 Book
◇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제나 매카시 저ㆍ현암사)
TED 강연 영상 ‘당신이 결혼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로 600만 뷰를 기록했던 저자가 나이가 들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한다. 외모와 건강의 변화는 물론 기억력 감퇴, 세대 갈등, 결혼의 의미 등 중년 이후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준다. 절망스러운 상황들을 유쾌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담았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저ㆍ파람북)
인간이 말에 처음 올라탄 무렵, 역사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두 나라의 전쟁을 그린다. 두 마리의 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 김훈 특유의 힘 있는 문장이 빛을 발한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ㆍ김영사)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의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실제 현장에서의 사례와 더불어 특수청소부로서의 고충과 보람 등에 대해 말한다.
◇ 인생의 태도 (웨인 다이어 저ㆍ더퀘스트)
‘계속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며 고민하는 중장년들을 위한 삶의 지혜와 위안을 선사한다. 아울러 불행했던 과거, 불안한 미래와 작별하고 오직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조언한다.
박종서(74) 관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 1세대로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예술 관련 잡지와 도록들이 꽂혀 있는 책장, 박 관장이 직접 만든 모자이크 작품과 다양한 소품들, 도자기들이 정갈하게 진열된 공간에서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옆자리에는 세 살짜리 고양이 금이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2019 디자인코리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대상자로 선정됐을 때 쑥스러웠다. 후배들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추천을 못하게 했는데 일방적으로 받게 됐다. 나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정도로 인품이 있지도 않다. 옛날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 계신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승낙했다.
코로나19로 미술관이 휴관 중인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생활은 식칼과 똑같다. 한쪽에는 날카로운 면이 있고 한쪽에는 무딘 면도 있다. 삶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어려서 구석진 곳에 있으면 너무 편안했다. 그래서 책상 밑, 어머니의 재봉틀 발판 속, 장롱과 벽 사이로 들어가 있곤 했다. 어른이 되어 등산할 때도 바위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 미술관을 지을 때 건축가에게 “유리로 만들어서 한눈에 다 보이면 안 된다. 내가 숨을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런 공간을 확보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혼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날 일을 기록한다. 어제는 잎이 삐죽삐죽한 씀바귀를 스케치한 다음 마시던 커피를 이용해 잎사귀를 채색했다. 이런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
관장님에게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그런데 디자인은 절대 사람을 울게 하지는 못한다. 감정적으로 음악만 못하다. 다만, 소유한 사람이 오래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 디자인은 항상 보편적인 개념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비행기다워야 하고, 자동차는 자동차다워야 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동차가 갖는 보편적 개념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운 게 디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안목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 스킬은 배울 수 있지만, 창의력은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안목을 키우려면 흙, 나무, 종이 등 기본 물질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다는 것은 10년 후나 20년 후에는 못 쓰는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지식의 반감기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90%가 없어진다. 지식이 반감되지 않으려면 내 손으로 만든 기억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 때 어린 시절 진흙을 가지고 놀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흙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어떻게 해야 갈라지지 않는지,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것들을 디자인에 적용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신데요.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먼저 진화했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시행착오는 이미 생태계가 오래전에 겪은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연을 못 따라간다. 황금분할 1:1.61803은 암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어놀았던 아이들 머릿속에 이미 다 들어가 있다.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그렇다. 그냥 척척 했는데, 재보면 황금분할이다. 특별한 툴이나 연장이 필요 없다. 무엇을 만들고자 할 때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초기의 생각이 변질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면 거짓일기처럼 된다.
자동차 디자인의 장인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이너는 월급이 아니라 명예와 사명감으로 살아간다. 윗사람이나 상대 부서 등 타인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델이 있어야 하고, 논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논리는 빈약해진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도둑맞은 내 생각을 찾아오기 위해서다. 독서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한 것들이 이미 글과 디자인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바로 움직여야 한다.
아들 박찬휘 씨도 현재 아우디 디자인 파트에서 일하고 있지요?
아들은 페라리, 벤츠를 거쳐 현재 아우디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에 나올 자동차 프로젝트명이 아들 이름을 딴 ‘CHAN22’라고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명예롭게 근무한다. 이곳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을 키울 때 자연을 많이 접하게 했다. 내가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같이 그렸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버렸다. 내가 그것을 모아 유학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이게 네 진짜 그림”이라며 건네줬다. 덕분에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들은 이제 진실한 그림이 무엇인지 알고, 내게 많이 감사해한다.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부딪친다. 언젠가 내가 티뷰론을 실험적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니, “은퇴 후 졸작들을 만들더라, 아빠도 그 꼴이 되고 싶으시냐,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동차는 비행기가 될 수 없다.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동차는 그럴 수 없다. 미래에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나와야 한다. 쓸데없는 것,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떼어내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디자인 명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강조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장식이 많아지고 허세가 넘친다. 지금 우리나라 차들이 그렇다. 대기업은 이제 소비자에게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에 대한 계몽적 마케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자동차부터 수소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까지 자동차의 미래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것으로 예측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차의 형태가 지금과 같은 이유는 앞쪽에 엔진과 미션이 들어가고 뒤쪽에 트렁크가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라면 앞쪽이 텅 비어도 되니, 현재의 자동차 모습일 필요가 없다. 앞으로 고밀도 사회(high density society)가 도래하면 크기도 지금처럼 클 필요가 없다. 현재 패키지 레이아웃(package layout)은 가솔린 자동차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모양과 디자인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테슬라도 그대로 하고 있다. 이게 급선무인데 관념에 묶여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소재도 철판으로만 한정하고 있는데 달라져야 한다. 카본 파이버는 철판보다 30배나 더 가볍다. 현재 쏘나타의 무게는 1톤에 가깝다. 카본 파이버로 바꾸면 200㎏ 정도밖에 안 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나는 평생 메모를 습관화했다. 신입사원 시절 일본 출장을 갔다. 비행기 옆자리에 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가는데 그분은 뭔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기록할 게 많은 일을 하시나보다” 했다. 나에 관해 물어봐서 신입사원이라고 했더니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해라. 윗사람이 지시하면 그것을 적어라. 상사가 묻기 전에 보고해라. 윗사람이 물어보는데 내가 ‘아차’ 한다면 이미 회사생활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일본 스미토모상사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때부터 메모를 생활화했고 그 내용을 모아 책도 출간했다. 요즘 세대는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기록한다지만, 우리 세대는 바로바로 손으로 쓰면서 생각도 정리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취미로 1990년대 초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빙상 500m 쇼트트랙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취미이지만 하나를 하더라도 기초만큼은 제일 탄탄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정확한 자세와 아름다운 폼은 기본이 튼튼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는 건 자세가 흔들렸거나 승부욕이 넘쳤다는 의미다. 뭐든지 기본을 먼저 갖춰야 한다. 기본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테크닉부터 터득하려고 하니까 무너지는 거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신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뭔가 일을 벌이면 사람들은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그래?” 한다. 대부분 그 말을 들으면 포기한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생각날 때 바로 시작해야 한다. ‘포니정’으로 불렸던 정세영 회장은 “결론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생각을 오래하면 하지 않을 구실을 찾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노년을 준비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산에 가면 작은 꽃, 작은 버섯, 이름 없는 가랑잎을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벌레 먹어 썩은 나무가 있으면 가져와서 그 흔적을 입체적으로 만들곤 하는데, 벌레가 그린 그림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할 수도 있다. 자연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보이는 건 아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길을 열어준다. 즐거운 일, 사랑할 일이 구석구석에 많다.
우리 연배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화물차처럼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노인들을 홀대한다. 이런 풍토는 바뀌면 좋겠다. 나이 들면 하찮고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버킷리스트가 있으신가요?
첫 번째로 이탈리아 스승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페라리 자동차를 만든 명인 스칼리에티는 나의 스승이다. 14세 때 기름 1ℓ를 넣은 오토바이를 타고 모데나에서 베로나까지 100㎞ 구간을 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올 때는 적정 속도와 연료 소모량을 계산해, 오토바이를 개조한 다음 소량의 연료만으로 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1950년대 벨로솔렉스 오토바이를 주문했다. 미술관 아래 밭 근처에 있던 밤나무가 죽었다. 지름이 1m 정도 되는 큰 나무였다. 그 나무와 오토바이를 결합한 작품으로 스승에게 보답하는 오마주 작업을 준비 중이다.
두번째는 책을 출간하려고 한다. 10년 전 ‘꼴, 좋다!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냈다. 강의 교재로 썼던 내용을 쉽게 풀어쓴 것으로, 모든 형태는 자연을 따른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지금 두 가지 책을 구상 중이다. ‘꼴, 좋다’와 같은 내용의 글을 새로 써서 큰 사이즈로 낼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스승에게 들은 자동차와 카로체리아(carrozzeria)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카로체리아는 디자인 능력을 갖춘 소량 주문제작 방식의 자동차 회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집 뒤에 있는 500평(1652㎡) 규모의 정원을 영국의 채리티 가든(Charity Garden)처럼 만들고 싶다. 자선 정원으로 운영해 입장료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 이 사업은 아내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계신데요. 사재를 들여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술관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꼭 자동차와 관련된 꿈이 아니어도 좋다.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미술가가 될 수도 있다. 그 꿈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로 있는 김상배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뭘 할지 몰라 고민할 때 내가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도마뱀을 가지고 연구해봐라” 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에 들어가더니 졸업작품으로 유리벽을 타고 오르는 로봇을 만들어 미국에서 올해의 과학자에 선정되었다. 많은 분이 여기를 자유롭게 방문하시길 바란다. 예약하면 전문가가 해주는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탄소 성분으로 이루어진 흑연 연필은 꿈을 그릴 수 있다. 연필로 꿈을 그리듯 이곳이 모두의 꿈을 그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소망도 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장욱진(1917~199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미술관이다. 장욱진은 이렇게 썼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하는 단골말이다.” 심플! 그게 말 그대로 심플하게 거저 얻어지는 경지이겠는가? 인간사란 머리에 쥐나도록 복잡한 카오스이거늘. 명쾌한 삶의 실천과 창작의 순수한 열망을 지속하지 않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자신이 지향한 가치를 정점까지 밀어붙였다. 그 무엇에 앞서 ‘심플한’ 작품으로 지지와 갈채를 받았다. 그런 장욱진의 유화, 벽화, 판화, 수묵 등 23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존재하다니.
장욱진은 번잡한 도시를 피해 살았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 자체가 싫다”고 했다. 자연, 고요, 고독. 그에겐 이 셋이면 충분했다. 그러하니 장욱진미술관을 도심에 두랴. 산 아래, 냇물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으니 적격이다. 미술관 건물은 나무들의 초록이 술렁거리는 산들과 눈을 맞추며 들썩이나? 큼지막한 규모에 흰색 외벽을 두른 건물이 생동해 밝다. 애써 멋부린 치레 없이 산뜻하고 단순한 외관이다.
어떻게 보면 세련된 대형 창고 형태? 산을 은유적으로 축약한 미니어처? 수직 일색의 벽면과 삼각 지붕의 연쇄로 이루어진 다면체라 멀리서 언뜻 볼 적엔 정체가 집히지 않아 아리송하다. 외부 마감 자재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 가볍고 소박한 재료로 도배한 셈이라 묵직한 맛은 없지만 위압이 없어 편안하다. 화려하거나 기발하거나 심각할 게 없는 외관이다. 실용성과 단순미를 성실하게 구현해 어엿하다. 장욱진의 담박한 캐릭터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내비친다.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돼
이 미술관은 개관한 해인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의해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민한 건축가가 지은 기념물로서의 미술관은 재미있다. 화가라는 주체의 성향,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에서 모티브를 끌어내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가는 화가를 닮은 집을 짓는 걸로 실력을 입증한다. 장욱진미술관은 이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장욱진을 잘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장욱진을 표상하기 위해 설계자가 미술관의 내·외부에 매립해둔 유비(類比)와 알레고리를 찾아 즐길 만하다.
이 미술관의 외양은 사실 상당히 흥미롭다. 정원에 서서 바라보면 그저 좀 도드라지는 다각형 건물일 뿐이지만, 드론을 띄워 살펴보거나 뒷산 중턱에 올라 내려다볼 경우엔 다르다. 실을 꼬아 만든 노리개 매듭 형태라서 이색적인 건물의 전모가 비로소 부감되는 게 아닌가. 텅 빈 중정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각으로 뻗은 지붕마루의 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설계자는 ‘최-페레이라 건축’의 공동대표이자 부부 사이인 최성희와 벨기에 출신 로랑 페레이라. 이들은 설계에 나서기 전 장욱진의 작품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콘셉트의 맥락을 잡아나갔다. 숙고 뒤 얻은 결론은 화가의 작품에 숱하게 등장하는 집과 방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하자는 것.
“가장 단순한 형태로 화가의 세계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작고 단순한 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겹겹의 공간이 아니라, 장욱진의 그림에 나오는 한옥 홑겹 방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공간을….”(최성희)
장욱진은 명리(名利)에 무심해 붓 한 자루 손에 움켜쥐면 그만이었다. 목으로 털어넣을 술 한 잔이면 만족했다. 언젠가 그의 작품이 최고가(最高價)로 거래된다는 소리를 듣고서 하는 말이 이랬다. “그림에 가격을 매기다니. 난 슬퍼!” 그의 그림만 자연을 닮은 게 아니었다. 장욱진의 생태계 역시 자연에 가까워 탈속(脫俗)으로 순박했다. 설계자는 이러한 화가의 성정 역시 고스란히 건축에 반영했다.
“거창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장욱진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급스런 자재 대신 가벼운 플라스틱 재료로 외벽을 마감한 이유가 이와 같다.”(로랑 페레이라)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
미술관 내부 1층 전시실에선 기획전 ‘장욱진을 찾아라’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과 장욱진 그림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전람회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소품도 두 점씩 걸려 한결 실속 있는 전시회다. 지하층에서부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경관이다. 단순미의 추구를 기조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계단 부위만큼은 특별하다. 층계의 딱딱한 획일적 흐름을 배제, 폭과 커브의 각을 유연하게 구성해 리듬감을 부여했다. ‘주로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자의 이와 같은 의도가 기교적으로 여실히 발현된 공간이다.
층계 공간은 벽면과 천장까지 온통 새하얀 색이다. 고로 2층 공간 전체가 지루한 화이트 큐브일 것 같은 예감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장욱진 상설전이 열리는 네 개의 전시장 모두 유별하니까. 모양새와 벽면의 색상, 조도(照度)까지 제각각이니까. 공통점이라면 모두 자그마한 방의 형태와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막살이 단칸 골방을 자주 그린 장욱진에게 바치는 오마주처럼. 덕분에 그림과 공간이 합을 이루었다. 작품 감상을 한결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정밀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욱진의 작품은 커봐야 30호 미만이다. 손바닥 사이즈의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림 안엔 장욱진의 우주가 들어 있다. 까치가 날고, 붉은 해가 뜨고, 나무 우듬지에 묻힌 아이가 낮잠을 때리고, 콧수염 달려 웃기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옹기종기 모인 도토리들처럼 앙증맞은 일가족이 등장하고…. 장욱진이 관조한 자연과 인생의 다채로운 모습이 간결한 화풍으로 시각화됐다. 토속적인가 하면 모던하고, 관념과 직정(直情)이 교차하고, 문인화풍인가 하면 해학적 민화풍이다.
누가 뭐래도 장욱진의 그림은 정겹고 평화롭다. 우리가 놓치고 살지만, 실은 그리워 마음속에 도사린 삶의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한다. 작의를 짐작하기 어려워 득득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는 미술품들이 난무하지만, 그의 그림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으니 대승적이자 이타적이다. 그러나 쉽기만 하랴. 어린 것이 끼적인 낙서처럼 쉽게 다가오지만,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도(道)와 선(禪)까지 읽어내려면 숨이 차다. 어린애 시늉을 해 그린 그림과, 어린애로 돌아간 심상으로 그린 그림은 천양지차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면 어렵고 복잡하던 것들이 쉬워진다 했다. 장욱진은 수행으로 그림을 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도 찔끔 요실금처럼 새나오다 마는 게 예술이다. 장욱진도 괴로웠을 게다. 오죽하면 “나에겐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했겠는가. 그림이 죄? 그림 그리는 사람이랍시고 부린 객기가 없지 않았겠으나, 그에게 많았던 건 고독의 죄가 아니었을까. 예술의 핏줄인 고독이라는 놈. 장욱진은 고독해서 술 마시고, 고독해서 서울대 교수직을 헌신짝처럼 벗어버렸다. 그러고선 해탈? 그림으로 볼 적엔 그렇다. 강퍅한 세상을 가뿐하고 따뜻하게 읽는, 장욱진의 저 헐거운 그림들의 정신을 보라.
전시실엔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이 걸려 있다. 일화가 많은 ‘진진묘’(眞眞妙)도 볼 수 있어 반갑다. 간략한 선묘로 된 이 작품은 부인 이순경(현재 101세) 여사를 불상의 모습으로 그린 초상화다. 생활에는 대책 없는 헐렁이였던 장욱진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부인의 조력 덕분이었다. 그런 아내가 불경을 외는 모습을 보고 별안간 그려낸 게 이 작품이다.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채 1주일에 걸쳐서. 그림을 완성한 뒤엔 여러 달을 앓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했던 아내는 작품을 팔아 없앴고, ‘진진묘’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던 화가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무엇에 그리 아쉬웠을까? 대표작이 사라져서? 아내에게 그림으로 모처럼 바친 애련(哀憐)의 마음을 몰라줘서?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 선생
“아버지는 차라리 스님이자 자유인이었다”
“아버지는 숫돌에 몸을 갈 듯이 그림 작업으로 몸을 혹사했다. 밥벌이에는 무관심했다. 그게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늘 저자세였다. 얼굴엔 항상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엔 얼마나 가엽던지….”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75, 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 선생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긍심과 함께 아직껏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에게서 겪은 화가로서의 고통과 고독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또렷이 봤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부녀간의 정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가 말하길, ‘간이 맞는 딸’이라 했다. ‘경수가 화실에 다녀가면 냉수 한 사발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도 했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독히도 말이 없었지. 표현도 어눌했다. 술을 드시고 하는 얘기도 외마디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가령 어떤 식으로?
“‘너는 누구냐? 나는 또 누구냐?’ 뭐 그런.(웃음) 나도 그림에 생각이 있어 아버지에게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응?’ 하는 한마디였다. 나는 그게 ‘안 돼!’라는 응답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뜻을 접었다. 화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딸에게까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어서였다.”
장욱진 화백은 40대 때 6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별안간 그만두고 나왔다. 왜 그랬다고 보나? 딸로서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나?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셨다. 사표를 낸 걸 알고 가장으로서 무책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대뜸 하긴 했다. 그러나 금방 후회되더라. ‘누군들 아버지처럼 감히 직장을 팽개칠 수 있을까? 아버지 같은 자유인이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차라리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장경수 선생은 최근 ‘내 아버지 장욱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비범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과 창작의 일상을, 가족과의 조용한 유대와 쓸쓸한 사랑을, 과도한 음주와 유랑하는 영혼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욱진 화백이 한창 무르익은 작품을 하던 시기에 돌연 타계해 아쉬웠다.
“그림은 아버지의 내면이 표출된 한 부분일 뿐이다. 좋은 화가였으나, 더 정확하게는 스님이고 자유인이었다.”
가슴에 남은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면?
“세상과 사물을 데면데면하지 않고 친절하게 보라 하셨다. 친절하게 보면 거기에 모든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걸 알 수 있다며. 이 금언을 나는 좌우명으로 품고 산다.”
아버지 사후, 장경수 선생은 “한 1년쯤 울었던 것 같다”고 했다. 너무도 허탈해서. 그는 장욱진미술관이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다”고 한다. 영별(永別)은 슬프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속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자연과 건축은 좋은 사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축은 자주 자연을 도발한다. 도시 근교 산자락을 파 젖히고 들어앉은 건물들의 현란한 형형색색을 보라. 자연하고 불화를 즐기는 취향? 심술? 그러려면 그러라지, 자연이야 대범하여 그저 태연하다. 지나다니며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만 피곤하다. ‘이응노의 집’을 향해 걸어가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이러하다. 자연과 친화 관계 맺기에 성공한 건축을 만나는 즐거움의 반향이다. 자연과 좋은 사이로 지내는 미술관을 보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이응노의 집’으로 고고싱!
‘이응노의 집’은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의 생가 터에 지은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는 생의 후반을 줄곧 파리에서 살았으나 고향을 못내 못 잊어했다. “나는 충청도 홍성 사람이외다!” 그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향 땅이 그리워 자랑처럼 흔히 홍성을 얘기했다. 그리운 게 고향의 산천뿐이었겠는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성장기의 순수했던 ‘나’에 대한 그리움도 컸을 게다. 고향이란 인간의 욕망이 회항하는 귀소(歸巢)다. 영혼마저 한 자락 실린 고감도의 어떤 차원이다.
한국을 넘어 유럽으로 창작활동의 범주를 확장했던 거목 이응노. 그의 창작력은 한 번 터져 멈출 줄 모르는 활화산처럼 격렬했다. 미술의 온갖 장르를 편력하며 쏟아 부은 다재다능은 또 어떻고? 이 걸출한 화가는 미술에 목숨을 걸어 얻을 걸 다 얻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응노의 집’을 건립할 때 눈총들이 쏟아졌다. 싫어하는 소리들과 반대하는 입장들이 분분했다. 이응노라 하면 ‘동백림 사건’부터 떠올리며 ‘불온한 인물’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에 의해 왜곡된 혐의는 벗겨졌고,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은 2년 6개월간의 옥고로 갚았음에도 여전히 잔존하는 여파. 미술계 내부에서조차 불편해하는 눈들이 있었다. ‘이응노의 집’은 이 일각의 소음과 맞선 단호한 결행으로 건립되었다. 건립 주체는 홍성군 당국. 그들은 2011년, 마침내 ‘이응노의 집’을 개관해 지자체가 멀뚱히 앉아 한심하게도 펜대만 굴리는 ‘철밥통’ 집단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고개 숙이고 마을 일원으로 끼어든 품새
‘이응노의 집’은 2만6000㎡(약 8000평)의 널찍한 부지에 조성되었다. 991㎡(약 300평)의 미술관을 본동으로 하고 북 카페와 다목적실을 곁에 배치했다. 원래 있었던 지형을 그대로 두고 조경을 한 야외정원은 순박하면서 평온하다. 떠올랐다 가라앉는 상념처럼 일렁이는 정원의 저 부드러운 곡선들. 돌처럼 가만히 앉아 쉬기에 좋은 공간이다. 정원 전면엔 연(蓮)이 자라는 못이 펼쳐진다. 연못과 정원을 거쳐 뒷산으로 흘러들어가는 산책로 역시 그지없이 자연스럽다. 무리가 없어 순리를 느끼게 하는 이 모든 유순한 외경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하등의 낯설음을 야기하지 않는 풍경들의 협연. 티 나지 않게 공들인 결과일 게다.
본동 건축을 볼까. 지나치게 크지 않은 사이즈로 지어져 소박하다. 위압이나 위세가 없어 얌전하나 은근히 세련돼 당당하다. 그 무엇보다 멀고 가까운 곳의 지세 성격과 산세 리듬에 조응해 정당하다. 과거부터 터를 잡고 존재해온 마을과 마을 사람들까지 고려한 수굿한 모습이라 안성맞춤이다.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마을의 일원으로 끼어든 품새이지 않은가. 이런 구색, 이런 조합이 어디 흔할까보냐. 설계자의 의도가 정밀하게 구현된 걸 느낄 수 있다.
미술관 벽채의 색상을 보자. 황토를 이기고 다져 발랐으니 황토색이다. 굳이 황토를 채택한 건 그게 향토의 빛깔을 뿜어서일 게다. 대지의 살갗 색깔 말이다. 그러나 온통 황토색 일색이면 지루하겠지. 외벽을 분할하며 개입한 흑회색 벽면이 대비와 조화를 이루어 조용히 생동한다. ‘이응노의 집’을 설계한 이는 중견 건축가 조성룡. 그는 건축물이 튀거나 돋보이는 걸 질색으로 여긴다. 인위가 자연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일 게다. 사람의 기술이 자연과 풍속을 말처럼 타고앉아서는 무례하다 봐서일 게다.
홍성군청과 설계자는 생가 터만 휑하게 남은 부지에서 이응노의 형적을 찾는 일로부터 사업을 착수했을 것이다. 화가는 이곳에서 열일곱 살까지 살았다. 그러나 생가는 물론, 뭐 하나 남아 있는 유적이 없는 상태였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심정으로 생가를 복원했을 테다. 다행히 소년 이응노에게 미술의 싹눈을 틔워준 자연은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안도하지 않았을까. 나지막한 산들은 충청도 말씨처럼 느릿느릿 푸근하게 품을 펼친다. 저만치 띄엄띄엄 산재한 농가들의 지붕 위로는 새가 기쁘게 날고 솔바람이 감나무를 흔들며 지나간다. 인근에서 소음을 쏟아내며 물방개처럼 허우적거리는 차량만 아니라면 마냥 예스러울 농촌 풍경이다. 이응노는 고향에서의 성장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열일곱 살까지 자연 속에서 자랐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런 나를 도와주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방해했다. 나는 남몰래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그러면서 외로움을 잊었다.”
찡하지 않은가. 고향 산천은 이응노를 길러 그림에 눈뜨게 했으나, 다만 홀로 외로이 온갖 것에다 끼적거릴 수밖에 없었다지 않은가. 홀로 외로이! 이는 예술을 부양할 수 있는 본성의 토대이며 모든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응노는 고향의 자연과 고향 사람들의 당연한 무신경을 통해, 어차피 홀로 가야 하는 창작의 외길을 견딜 고독의 힘과 강철 같은 인내심을 기른 게 아니었을까. 이응노의 광적인 창작 욕구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의 다산성(그는 자그마치 3만여 점의 작품을 생산했다!)의 싹은 이미 고향에서 발아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이응노의 눈으로 이곳의 평범한 자연을 평범치 않은 기분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응노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음을 상기하며.
그림에 살고 그림에 죽었던 작가
미술관 내부로 들어선다. 로비를 돌아서자 외부처럼 수수한 실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치레와 꾸밈을 한껏 자제해 담박하다. 혹여 전시공간의 장식성이 전시작품으로 향하는 시선들의 집중도를 해할까 염려해 꾸린 의도가 완연하다. 외형에서와 마찬가지로 설계자는 자신의 존재는 물론 공간 자체의 미감까지 과하게 부각되지 않도록 신중한 고려를 했다. 그럼에도 멋 부린 티 없이 멋스러운 게 있다. 벽과 벽 사이에 설치한 대형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자연 채광이 자아내는 효과가 그렇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 밝음과 어둠의 공존으로 공간에 깊이감과 긴장감을 부여했다.
전시실은 네 개로 구성됐다. 현재 ‘고암 이응노의 사생과 소묘’라는 타이틀의 전람회가 진행 중이다. 전시 작품들은 물론 ‘이응노의 집’의 소장품들이다. 이 미술관은 1000여 점에 달하는 이응노의 작품과 유품을 소장했다. 화가의 유족들과 뜻있는 사람들에 의한 기증품이 많지만 홍성군이 직접 구입한 작품들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사들일 작정이라 한다. 군 단위 지자체가 예술품 구입에 적극 나선다? 아마도 드문 일일 게다. 지역 정책에 예술이 가세하고서야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 터. 시대를 읽는 홍성군의 촉이 예리하다.
이제 전시회에 나온 그림을 둘러볼까?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이응노가 전국을 기행하며 사생한 그림들 1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습작처럼 가볍게 스케치한 작품들 일색이어서 살짝 아쉽다. 그러나 대가의 노련한 필치와 호방한 운필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흔히 이응노가 말년에 그린 ‘군상’ 시리즈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부단히 화풍을 변주하고 전복해 경계를 무너뜨렸다. 어느새 저기까지 갔나 했더니 또 저만치로 내달리는 폭주 열차? 그는 혈관에 팽배한 아드레날린을 주체 못하는 사람처럼 격렬하게 그리고 또 그렸다. 추상미술이 판치는 파리에서 동양의 정신을 기저로 한 ‘문자 추상’ 또는 ‘서예적 추상’으로 유럽 화단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작품에서 유럽인들은 ‘범신론적 미학’을, ‘주술적 매력’을 발견했다. 주술! 작품 이전에 이응노 자신이 이미 주술의 올가미에 걸린 게 아니었을까. 미술이라는 주술에.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그림에 살고 그림에 죽는다.”
이응노의 예술은 만발했다. 그러나 삶엔 그늘이 서려 불운했다. 옥고도 고난이었지만, 이후의 시간들도 밝을 수만은 없었으니. 정치적 파랑에 휩쓸리다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가야 했으니. 그는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로. ‘이응노의 집’ 허공에 서늘한 바람 한 점 서성이걸랑 고인을 기릴 일이다. 바람이 그의 기척인 양.
‘이응노의 집’ 설계한 건축가 조성룡
거장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
“그거 아는가? ‘이응노의 집’은 참으로 눈물겹게 지은 기념관이라는 거.”
조성룡 선생의 첫마디에 저릿하다. ‘이응노의 집’ 설계자인 그는 건립 과정상의 곡절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눈물겹게 지었다”는 한마디에 이미 모든 게 들어 있지만, 그는 ‘이응노의 집’이 여느 미술관과 다르게 많은 애환을 거쳐 건립된 공간이라는 걸 놓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사실 ‘이응노의 집’은 손쉽게 지어진 기념관이 아니다. “좌파 화가에게 무슨 기념관이냐? 어림없다!” 홍성군에 의해 기념관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서부터 일부 주민들 속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에 홍성군은 ‘이응노의 집’이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북돋울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준공 직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건축물의 모양새가 너무 소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고암 이응노의 담백한 예술정신을 담고자 한 설계자의 진중한 의도를 납득하지 못했던 셈이다.
“홍성은 고암의 예술혼이라는 켜가 잠재한 곳이다. 나는 그 ‘켜의 드러내기’를 설계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켜’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걸 주안점으로 했나? “고암이 성장기에 보고 자란 자연 환경을 존중해 일을 진행했다. 이곳의 수려한 용봉산과 월산은 물론, 평온한 마을 풍경은 한 소년을 예술로 이끌어준 벗이자 스승이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자연 경관을 고려해 건축을 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건축물은 물론,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러운 외부 정원에서도 설계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관람객이 이곳 쌍바위마을 사람들의 일상적 통행로인 다리와 농로를 거쳐 정원과 만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동선을 통해야 고암 선생이 늘 바라보았을 시골 풍경의 정취를 누릴 수 있어서다.”
생가 복원엔 본으로 삼은 자료가 있었나? “어느 시골집을 그린 고암의 풍경화를 참고로 했다. 생가 뒤편에서 울타리를 이룬 대숲과 채마밭도 원래 있었을 것으로 가정하고 되살렸다.”
상업적 의도를 중심에 둔 미술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이 점에서 농촌의 한적한 자리에 있는 ‘이응노의 집’은 매우 귀하게 느껴진다. “거장의 소장품이 있고, 아울러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있는 이 미술관은 특유의 공간이다. 그 무엇보다 고암의 숨결이 배인 장소라 소중하다. 농촌에 있는 미술관치고는 관람객도 많은 편이다.”
조성룡 선생은 소마미술관과 의재미술관도 설계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한다.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은 책 ‘건축과 풍화’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풍화’의 개념을 이런 요지로 설명했다.
“건축물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기의 영향으로 낡기 시작한다. 따라서 가급적 풍화를 지연시키기, 노화가 되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이게 짓기. 이게 나의 목표이자 사상이다.”
● Exhibition
◇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일정 7월 26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담당하는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한 전시다. 전통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서’(書)가 근대 이후 현대성을 띤 서예로 다양하게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비롯해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현대 서예와 디자인 서예 등 다양한 서예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 등 총 4개 주제로 구성해 서예, 전각,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 작품 300여 점, 자료 70여 점을 선보인다.
◇ 백년을 거닐다: 백영수 1922~2018
일정 8월 9일까지 장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일평생 창작에 몰두하며 독자적인 작품관을 구축해온 백영수 작가의 작품을 만날 기회다. 더불어 작가의 아틀리에를 재현한 공간 및 아카이브 섹션을 구현해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부 ‘백영수의 삶을 거닐다’에서는 실제 사용했던 그림 도구와 생전 인터뷰 영상 등을 통해 작가의 삶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2부 ‘백영수의 작품을 거닐다’에서는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 105점을 연대기별로 전시해 작가의 화풍이 정립되는 과정을 확인한다.
◇ My Dear 피노키오展
일정 6월 26일~10월 4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00년 넘게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피노키오’를 소재로 2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대규모 복합 전시다. 전 세계 유명 작가들의 회화, 영상, 대형 조형물, 그림책, 팝아트 등 170여 점의 다양한 시각예술 복합 콘텐츠를 한자리에 모았다. 피노키오의 원작자 카를로 콜로디의 희귀 빈티지 도서와 산문 및 오브젝트도 함께 공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예술로 표현하는 ‘에르베 튈레의 사운드 워크숍: OH!’를 비롯해 ‘My Dear 피노키오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 대지의 연금술
일정 8월 30일까지 장소 엄미술관
인류세라는 거대한 전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연이 건강하게 상호 융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시적 물음을 던진다. 아울러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양자의 관계를 밝고 이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이는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원천에서 나온 것이며, 서로에게 배우며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성찰에서 비롯됐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아트 디렉터인 제이콥 쿠즈크 스틴슨의 상상력과 기술이 더해진 독창적인 작품들을 통해 생태계를 향한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 Stage
◇ 모차르트!
일정 6월 11일~8월 9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아드리안 오스몬드 출연 김준수, 박강현 등
청년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의 비극적인 삶의 여정을 그린다. 2010년 초연 무대를 꾸민 서숙진 디자이너가 다시 합류해 모차르트의 내면과 천재성을 더욱 극명하게 표현해낸다. 무대, 의상, 소품 등 미학적 요소들 역시 초연 버전을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해 더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 에스메 콰르텟 데뷔 리사이틀
일정 6월 9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에스메 콰르텟(배원희, 하유나, 김지원, 허예은)
런던 위그모어 홀 공연을 비롯해 영국 전 지역 15회에 걸친 대장정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에스메 콰르텟의 국내 첫 공식 리사이틀이 열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진은숙의 현악사중주곡 파라메타스트링, 슈만 현악사중주 1번 등을 선보인다.
◇ 브로드웨이 42번가
일정 6월 20일~8월 23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철도가 있었다. 빠른 속도의 이동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영향을 끼쳤다. 접이식 이젤, 튜브형 물감의 등장으로 밖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쉬워졌다. 이런 변화들은 빛과 색채의 회화를 도입하려는 세잔, 드가, 르누아르,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점차 발전되는 경제적 풍요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그림의 대상도 변했다. ‘자연의 풍경’에서 ‘풍요롭고 여유로운 지금 여기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리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림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1889년 완공되었다. 에펠탑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 발전과 변화는 과학적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필요로 했다. 여기에 맞춰서 ‘조루즈 쇠라’ 같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났다.
한편, 인상주의의 성공을 넘어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에 갈망을 품은 화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파리를 떠났다. 세잔, 고흐, 고갱이 그들이다.
인상주의의 전성기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시기였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 획득과 물질문명의 발달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네, 고야 등이 대표적이다. 이어서 회화는 마티스 등 야수파와 피카소 등의 입체파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탐욕과 물질의 팽창은 전쟁으로 폭발했다. 이후의 그림은 고통과 비극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가 오랫동안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 이 시기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그림들을 모아 ‘프렌치 모던:모네에서 마티스까지’전이 ‘고양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곳으로 그림 감상 여행을 떠났다.
1800년대 중반 대대적인 도시 정비로 파리가 지금의 형태로 재편되는 시기에 파리 근교에 모여 순수한 자연과 농민들의 가치를 그린 화가들이 있었다. 사실주의 화가 밀레, 카미유 코로 등이다. 이들은 신화나 영웅 이야기가 아닌 농촌을 중심으로 눈 앞에 펼쳐진 환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농촌 그림은 인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쥘 브르퉁’의 농민 그림이 더 인기가 있었다.
전시회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여인도 ‘쥘 브르통’의 ‘양초를 들고 있는 농민 여성’이었다. 대서양에 접하고 있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흑백색 전통 의상을 입은 노파가 양초와 묵주를 든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당시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검소하고 소박한 종교적 자세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이 화폭에 담겨 있다.
‘쥘 브르통’의 다른 작품으로 감자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 여성을 그린 '귀갓길'도 있다.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감자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모습이다. 1848년 혁명의 영향 때문인지 농촌 노동자들을 영웅화하고 싶어 한 당시 사회의 허구가 반영되어 장밋빛 하늘을 그린 배경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그려진 여인은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되고 곱다. 그것은 고흐의 말처럼 작업실에서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주의의 한계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농부는 농부답고, 밭 가는 사람은 밭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두 번째 만난 여인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스파르타의 젊은 여인’이다. 야외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한 그는 가장 좋아하는 모델을 선택해 자신의 시정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그림에 나오는 여인은 작가의 이상적 여성상이었다. 집시 복장 차림의 나른한 자세와 눈길에서 작가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어서 ‘앙리 팡탱 라투르’의 ‘마담 레옹 마스터’를 만났다. 마네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 그림 역시 명암을 깊게 해 정확히 신중한 묘사를 한 사실적인 초상화다. 그녀가 입은 화려한 이브닝드레스와 그 뒤에 감춰진 우울한 분위기가 당시의 경제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라는 모순된 시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인의 체념한 눈빛은 기본적 욕구와 욕망마저 포기한 무너져버린 생의 의지가 보여 애잔한 아픔의 해일이 밀려왔다.
주최 측의 의도였는지 바로 이어서 애잔한 가슴을 먹먹한 비애로 만든 조각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다나이드 이야기’를 주제로 형벌을 받아 밑바닥이 빠진 항아리에 계속 물을 채워야 하는 ‘다나이스’를 표현한 로댕의 조각 작품이다. 이 ‘다나이드’는 로댕에게 조각적,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제자이자 연인 ‘카미유 클로텔’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을 만난 순간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는 가냘픈 등줄기와 팔에서 살갗의 온기가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은 운명을 말하듯 방향을 돌린 얼굴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전하는 절망에 대한 공감 때문에 미술관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슬픔, 고통, 불행이 너무나 아름다운 우아한 선과 볼륨으로 표현되어 여인의 운명을 품앗이 하고 싶다는 깊고 깊은 한숨의 울림이 가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다나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여인을 만났다. 당시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예술의 번창을 상징하는 여인으로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 볼디니’의 ‘여인의 초상’이다.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작가는 뉴욕의 자선가 ‘플로렌스 블루멘탈’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검은 머리카락과 드레스가 하얀 피부가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역동적인 자세를 순간 포착한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옆에 있는 의자에 눈길이 멈췄다. 곡선을 ‘가우디’는 신의 선이라고 말했지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선이 그림 속에 있었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가 그린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여인’도 만났다. 마티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북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그린 이 그림에서 그는 모델인 이탈리아 여성 ‘로레토’에게 모로코 전통 의상을 입혀 그림을 그렸다. 분홍색 천의 의자, 길고 검은 머리카락, 녹색 간두라에서 야수파의 특징인 보색대비가 잘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은 ‘드가’의 ‘몸을 닦는 여인’이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실내 빛의 효과와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 특성이 나타났다. 드가는 주로 매춘부들을 모델로 고용해 누드화를 그렸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번성했던 당시 매춘업의 실태와 작가의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이 나타난 현상이다. 그림은 단색의 밑그림으로만 돼 있어 미완성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는 모델의 자세는 작가의 훔쳐보는 시선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노골적인 여성 혐오주의자였던 드가가 가지고 있던 자기모순의 내면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이젠 초록이 완연하다. 탁 트인 세상을 보러 가볍게 훌쩍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어진다. 시골 마을에 스며들듯 이루어진 '이원 아트빌리지'는 반짝이는 초여름빛을 받으며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위치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 이원 아트빌리지의 하루는 충분한 여유와 쉼을 주는 시간이다.
미잠리(美蠶里). 이곳 지형이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막 시작된 초여름이 싱그럽다. 방문을 허락하면서 하신 말씀이 '요즘 볕이 좋고 온 천지에 피어난 꽃들이 너무 예뻐 혼자 보기 죄스럽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애초부터 '함께 하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건축가 원대연 교수와 사진작가 이숙경 부부가 이원 아트빌리지를 만들어낸 것은 2003년이었다. 한때 롯데호텔, 롯데월드, 압구정 현대백화점, 여의도 63 빌딩 등의 국내의 굵직한 건축 작품의 설계와 공사를 진행했던 건축가 원대연. 그리고 '(주)플러스 건축'을 설립, 건축전문지 '월간 플러스' 창간, 후학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더없이 왕성한 시절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문화와 일상을 엮어서 '여행 넘어서기'라는 책 1,2,3권, 건축 가이드북 ‘살수록 고마운 집 - 자연에, 좋은 집에, 멋진 나날들’을 출간하기도 한 작가다.
“생명의 집을 지을 수 있으면 다 버려도 좋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바삐 돌아가는 세상일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삶의 리듬을 원했다.
그 무렵을 이용재 건축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국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투시도의 달인 원대연은 만날 반복되는 일에 치이고 지금 내가 왜 살고 있는 거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고민했다. 전국의 땅을 보러 다닌다.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가 맘에 든다. 아예 이월면으로 보따리 싸서 내려간다. 생태마을 건립에 나선다. 왜 만날 남의 것만 만들어 주냐. 외부 간섭 없이 나만의 자유로운 건축을 실현하겠다. 이제부터 넘어야 할 가장 큰 상대는 나 자신이다.'
마침내 6년 만에 이원 아트빌리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5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자연에서 싹이 돋아 자연의 숲이 이루어진 건축의 숲을 본 것이다. 인공조미료가 배제된 건강 자연식품의 건축을 만난 것이다. 옥내 공간에 집중된 기존 건축과는 달리 옥내 공간과 옥외 공간이 등가로 다루어지면서 풍부한 공간 연출을 하고 있는 Vernacular 한 건축이다." - 건축가협회상 수상 수상에 대한 심사평에서
입구의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마을 사람이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 논과 밭과 마을길이 아트빌리지와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함께 자연스럽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일이 기다린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상촌 미술관 제1관, 2관, 3관. 이숙경 사진작가의 작품과 건축가의 그림,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문화공간을 찾아 걷는 맛이 시작된다. 전시관이나 세미나실뿐 아니라 자연 경사를 그대로 살린 골목길을 따라 발견되는 건축 예술이 흥미롭다.
어디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예쁜 골목과 샛길이 이어지는 열린 공간이다. 목련 갤러리 뒤편으로 목련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너른 다목적 행사장과 공연장, 갤러리와 소소한 아트공방들, 색색의 담장을 지나 작은 숲 쉼터를 만나면 누구라도 거기 그냥 한 번 앉아서 쉬고 싶어 진다. 토기인형과 담 아래 꽃들이 편안히 피어난 조붓한 길을 걷다 보면 샛길과 계단을 통해 숨겨진 듯한 공간이 나타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에선 모든 게 나지막하다. '사람 눈에 허술해 뵈고 만만해 뵈고 편안한 게 좋은 집'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나지막한 집이 쑥쑥 자라나는 나무에 뒤덮여서 안 보이기를 바란다'는 원대연 건축가.
전망대로 올라가면 나무판자를 겹겹이 얹어 만든 너와지붕이 눈 앞에 펼쳐진다. 너와지붕 너머로 이어지는 이월면 미잠리 농촌 마을이 자연스럽다. 어울림이다. 이렇게 한 바퀴 돌다 보면 이상한 '균형'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어느 것 한 가지만 유난하지 않고 돌 하나 소나무 한 그루도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 역할의 의미를 있다는 것.
결국은 마당과 골목길, 그 모든 건축물과 뒷동산이 어디든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길을 찾는 요즘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의미 없음을 알려준다. 아트빌리지의 길을 따라서 걸으며 상상력을 만끽하고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그런 건축의 힘을 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트빌리지 옆으로 난 오솔길을 잠깐 걸어가면 광장처럼 널따랗고 멋진 공간이 기다린다. 신록의 계절이다. 산 아래 울창한 숲과 잔디밭이 어우러진 그곳에 부드러운 바람이 가득 차 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 내림이 눈부시다. 중앙엔 넓은 원형으로 울퉁불퉁한 돌의자가 던져진 듯 놓여있다. 거기 앉아 회의도 하고 여유롭게 수다와 휴식이 즐거울 수 있는 숲 마당, 자연 속에서 놀아볼 수 있다.
"야생화를 300~400개쯤 심었지요. 잘 피어나서 계절별로 책 찾아가며 사진을 찍어놨는데 그러나 어느 정도 살다가 반 이상은 죽더라고요. 이곳이 아무리 자연이라고 해도 야생화는 야생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심지 마라, 옮기지 마라, 살아있는 건 그 자리에 두어라 해요."
건축 예술가의 열정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마을이 이 땅에 만들어졌고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건축가가 제시한 공간을 통해서 다수의 누군가는 공감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관계성이 수용되고 그 꿈이 지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운영의 부침을 맞으면서 2012년 개방을 멈추었고 나름대로 대비를 한다.
"이 곳을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그럴 경우 그동안 내가 지켜왔고 생각해온 마을이 유지될지 걱정됩니다. 아마 이 나무들이 온전히 있기 어려울 듯해요. 요즘은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어요. 눈이 올 때 이 숲의 풍경이 다양합니다. 또 사계절 따라 늘 다르죠. 지금도 깜깜한 밤에 사진을 찍으면 칼라가 정말 이뻐요. 어제도 영산홍을 찍었는데 빨간색이 낮과 밤이 달라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또는 달밤에도 찍어요.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색감이 대단합니다."
푸릇푸릇한 식물들의 향이 뿜어 나오는 선큰 가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정원 계단에 둘러앉아 멋지게 세월을 사는 이의 건축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특별하다.
비밀의 문을 연 듯한 그 옆의 오디오실은 신세계다. 가치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오디오와 스피커, 그리고 재킷 포장이 그대로인 희귀 소장품 레코드판이 잘 정돈되어 있다. 70대 은발의 곱슬머리 건축 예술가는 음악 한 곡을 걸었다. 그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던 '매기의 추억'이 감동적이었던 건 단지 오디오의 성능 때문이었을까. 그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생생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원 아트빌리지, 이곳에서는 한두 시간 또는 한나절이면 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 마을의 따뜻한 고요함에 푹 빠져봐야 한다. 숲에 들어 자연의 빛과 바람과 하늘을 마주는 순간 자연 속에 그만 묻혀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름다움은 천천히 느리게 즐겨야 제 맛이다. 청정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는 건축 마을에 푹 잠겨 보냈던 하루. 생거진천(生居鎭川), 충북 진천 이월면 미잠리의 이원 아트빌리지에 가면 느리고 무심히 자연 속에 스며드는 온전한 날이 된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길 306-1 / 이원아트빌리지에 가고 싶다면 미리 연락을 해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지금도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일반 단체 방문객이 예약을 통해서 방문한다.
주변 볼거리와 맛집
△이월성당 (梨月聖堂)
그곳에 가면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이 있다. 원대연 건축가가 설계를 봉헌하여 지어진 '이월 성당'. 이원 아트빌리지를 나와 밭둑 옆으로 잠깐 달리다 보니 멀리 성당 뾰족탑의 십자가가 보인다. 자연의 흐름의 바라보듯 시골 들판을 내려다보는 듯한 위치에서 저녁노을을 받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 292-5번지
△ 진천막국수
진천에는 건강한 맛집이 여럿 있다. 그중에 메밀로 만든 시원한 막국수가 인기다. 메밀 새싹이 수북이 얹혀 나오는 메밀 새싹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는 따뜻한 육수도 함께 나온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국수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다. 무채와 열무김치도 심심하고 맛있다. 속이 실하고 큼직한 메밀만두도 빠뜨리지 말고 맛볼 것. // 진천 막국수 / 충북 진천군 이월면 진광로 725 / 막국수 7000원, 메밀 왕만두 5000원
△ 미잠米과
생거진천 쌀로 만든 건강한 빵. 진천에서 농사짓고 정미소도 직접 운영, 도정, 제분하여 쌀빵을 굽는다. 쌀눈이 살아있는 빵으로 특허출원, 쌀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건강기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밀가루 알레르기 환자 등의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SNS 등의 입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 요청이 많다고 한다. 방문 고객에게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식빵은 물론이고 쌀 인절미 크림빵, 현미깜바뉴 등 미잠미과 만의 쌀빵 종류가 다양하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 403 /10:00~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