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뛰어넘는 곳에 예술이 있을 것이다. 예술이란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기에. 그 어떤 권능에도 휘둘리거나 꼬리치지 않는 자율적 행위이기에. 그러나 자유 혹은 자율을 근간으로 삼기가 쉽던가. 매사 스텝이 꼬이고 뒤엉겨 좁은 세계에 갇히는 게 사람이다. 신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 위안을 구하고서도 돌아서면 외로워 보채는 게 사람이다. 도돌이표처럼 자주 되돌아오는 자문은 하나. 나는 누구인가?
경주시 남산 자락 소나무 숲속에 사는 정미연(65)은 성화(聖畫)로 이름을 얻은 화가다. 얻을 만하기에 얻은 이름이다. 무겁지 않을까, 이름이라는 것. 얻으면 얻을수록 어깨에 얹히는 하중도 커지는 게 이름이다. 더구나 성화란 성(聖)을, 지고지순을, 염결(廉潔)을 구현하는 그림이니 속세에 몸을 둔 화가로서는 얻는 게 있을수록 버거워 불편감에 사로잡힐 수 있을 게다. 그림은 고결하나 삶은 어이 부박한가? 이런 의문이 들솟아서.
그러나 그는 세속을 어지간히 건넜다고 한다. 신앙으로, 기도로, 그림으로 부박한 삶의 때를 어지간히 헹구어 이젠 마음의 소란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 어지간히 건넜다는 안도감, 그게 때로 순간의 착시처럼 흩어지는가. 그는 여전히 남은 갈등과 갈증을 해 저물기 전에 처리하고 싶다. 살면서 내내 움켜쥐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더 옹글게 타야 할 필연을 느낀다는 거다.
“어떤 선각자가 말했다. 인생은 선반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는 것과 같다고. 잠시라도 닦지 않으면 먼지가 쌓인다고. 실로 그렇다. 잠시만 방심하면 유혹이 스며드는 게 인생이지 않던가. 내 안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줄곧 그런 물음을 품고 살아왔다. 신앙으로 그 답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안에는 여전히 갈등이 도사려 있다. 갈등과 자주 싸운다.”
“당신이 알아낸 당신은 누구인가?”
“창조주의 피조물이다. 여기엔 아무런 회의가 없다. 신의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는, 내 존재의 근원이 창조주와 연결돼 있다는 확신이 깊어져서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 서툴다. 나는 누구인가 파고들어 매번 깨닫는 또 하나의 진실은 내가 부족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신달자 시인은 정미연의 성화가 ‘천상의 모습은 물론, 천상의 평안마저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게 한다’고 극찬했더라. 성화가 지닌 감화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작가의 기량? 태도?”
“나에게 성화 그리기는 기도다. 신앙이 무르익기를 염원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지. 절실한 신앙으로 영성을 갈구하는 마음, 정신, 그런 게 그림에 담기기를 희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작으나마 성취가 있었다면 그건 주님이 주신 선물일 뿐이다.”
“화가란 천성적으로 일탈자일 수 있다. 어떤 규율에 길들여지기를 싫어하는 성향이 있지 않던가. 종교생활에서 오는 구속감이 따분하진 않나?”
“초기엔 구속감이 싫었다. 아이고, 나 늙으면 열심히 믿을래! 그런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웃음) 그러나 모든 게 운명처럼 돼버렸다. 성화 작가로 자리매김이 되면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들어가게 되더라. 그 역시 신의 사랑이었다. 결국은 신앙의 진정성, 나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생래적으로는 좀 도발적이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싸움도 불사하는 기질이 다분했거든.”
“가령 어떤 싸움?”
“나의 아버지는 완고해 딸의 미대 진학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법대에 가 법관이 되길 바라는 일념으로. 그러나 난 삐딱선을 탔다. 미술에 품은 뜻을 굽힐 수 없어 정면으로 맞붙어 결국은 고집쟁이 아버지를 꺾었다. 그 시절의 기질대로 살았다면 성화를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묵주기도책과 성화
아비들은 흔히 살아온 공력으로 현명하나 고루하다. 외눈으로 자식을 바라봐 일방적인 통제와 선동을 일삼기 십상이다. 사막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물고기처럼 수영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랑이 아니라 할 것도 없다. 모순이 없는 사랑이 있던가. 신의 사랑으로 사는 정미연의 눈은 광각렌즈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발견한다. 그러하니 완고했던 아버지를 두고서도 사랑 이외에 무엇을 더 말하랴. 어머니는 온전한 사랑의 화신이었던 모양이다. 살아생전 ‘성모님’이라 불린 분이었다지. 결혼 전 가톨릭에 입문했으나 ‘한동안 날라리 신자로 살았다’는 정미연이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그 어머니가 남긴 묵주기도책 때문이었다.
“심한 관절염으로 30여 년을 걷지 못한 채로 지내면서도 8남매를 어엿하게 길러낸 어머니였다. 노년엔 촛불을 밝히고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는 일로 일관하셨지. 어머니의 표정도 기운도 얼마나 맑았던지, 어린 내 가슴에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갈증이 일렁이곤 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절을 올리는 일도 잦았다. 그런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낡은 묵주기도책을 펼쳐들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게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였다.”
“어머니가 남긴 성스러운 이미지에서 성화 그리기를 착상했다는 얘기?”
“그것만은 아니다. 묵주기도책을 만들어 어머니 영전에 봉헌하고 싶었다. 묵주기도책은 성모님과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성화와 묵상기도문들로 이루어지는데 성화를 내 손으로 그리고 싶었던 거다. 완성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죽을 만치 앓기도 했다. 기도문은 신달자 선생이 맡아주셨다. 과분하게도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주목했다. 가톨릭 성도들에게 묵주기도책은 흔히 후손에게 상속할 신앙의 유산이자 가보로 간주된다.”
성화로 방향을 바꾸기 이전, 정미연의 그림은 사뭇 달랐다. 아름답거나 미묘하거나, 억눌리거나 튀어나오거나, 인간이 지닌 복잡한 내면을 자유분방한 혹은 고즈넉한 작풍으로 표출하기에 능했다. 그러다가 기도와 관조를 실은 성화로 이행했던 것. 그런데 묵주기도책을 위한 성화를 그릴 때 정미연은 한 가지 재미있는 발상을 했다. 기존 성화들이 답습해온 서구적 양식에서 좀 벗어나 한국적 전통 양식을 가미하자는 착안을 했더란다. 그는 예수의 옷을 한복으로 갈아입혔으며, 성모에겐 잔주름 곱살한 한국 어머니의 얼굴을 부여했다. 석굴암 전실이나 에밀레종 비천상을 성화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한국적이고 토착적인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불안했다. 이거 제대로 그리는 거 맞아? 혼자 고민하다 정교회 한국대교구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님(91, 그리스 태생)이 미술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감수를 청했다. 그림을 본 대주교님께서 흡족해 이러시더라. ‘나를 아버지로 여기라!’ 이후 각별한 은혜를 입었다. 그분의 소박한 삶과 실천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어떤 분이기에?”
“하염없이 높은 분이 늘 하염없이 낮은 자리에 임하셨다. 생활부터 극도로 검소해 입은 옷은 바늘로 꿰맨 자국투성이였다. 조용한 눈빛과 절제된 언어엔 자비와 존엄이 서려 세상 사람 같지가 않을 지경이었지. 신령스럽다, 그런 표현이 맞을라나?”
“깨달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천진한 어린애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삶에 대한 모든 욕심과 의문이 사라져서.”
“영성으로 충만한 존재. 대주교님은 그런 분이었다. 그저 소리 없이 빙긋이 웃어주시는 표정만으로도 깊은 위안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제가요, 당뇨도 있고요, 약도 한 움큼씩 먹고요, 저 앞으로 어떡해요?’ 그렇게 내가 방방거리면 ‘오늘 하루의 걱정거리는 오늘 하루로 족해!’ 하시더라.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할 것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내 안의 근심이 순간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게 아닌가. 이 특별한 분과 함께 그리스의 수도원들을 한 달간 순례하기도 했는데 실로 값진 여행이었다.”
“수도원 순례라. 문외한들은 생각하기 힘든 여행이다. 정결하고 엄숙할 수도원의 무거운 공기부터 연상돼서.”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봉쇄 수도원에 머물기도 했다. 대주교님과 동행했기에 가능한 여정이었지. 며칠씩 머무는 곳마다 나를 사로잡더라. 고뇌와 기쁨으로 신을 찬미하는 수도자들, 헌신을 다투고 사랑을 경쟁하는 수녀들, 성스럽고 아름다운 미사, 놀라운 성화들, 고요한 밤에 은총처럼 창밖으로 내리는 눈송이…. 성모님의 음성이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전율을 느끼곤 했다. 무지렁이 같은 나를 보듬는 예수님의 손길을 깨닫기도 했다. 귀국해서는 평화신문에 순례기를 연재했지. 대주교님께선 글을, 나는 성화를 맡았다.”
고통은 신에게 더 가까이 가는 기회
민첩한 거동, 자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분위기에 생기를 집어넣는 순간순간의 센스. 돌돌돌 명랑하게 흐르는 시냇물쯤? 그의 언동엔 거침이 없어 청명한 물살을 연상시킨다. 기도로 진리를 간구하고, 성화 그리기로 영성에 찬 삶을 갈구해왔으니 파란만장 세상사야 이미 관통해 가뿐한가? 그는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이라는 믿음과 실감으로 기쁘다지. 기쁘기에 평화로운 내부엔 에너지가 샘물처럼 고인단다. 흔히들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진을 빼며 그림과 씨름하지만 그는 색과 선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에세이도 많이 썼다. 그간 여러 권의 서화집을 출간했다.
“내가 다작을 한다. 일단 구상을 하고 나면 작업에 속도가 붙어 손쉽게 그림을 완성한다. 남편의 적절한 통제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몰입이 지나쳐 건강을 해쳤거든.”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기념관엔 당신이 만든 성상(聖像) 조각 작품들이 들어가 있다. 성화 작가로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 셈이다.”
“이름이나 위상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미술계에선 성화를 쳐주지도 않는다. 외도로 여긴다. 한때 이름에 욕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게 본분임을 알고선 부끄러웠다. 성화는 순수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 영혼을 다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성화가 나올 수 없거든.”
“사람이 순수할 수만 있겠는가? 진정으로 순수해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던걸. 신의 숲, 그 안전지대에 들어간 당신은 어떤가?”
“아집과 불순에 휘말린 마음이 망둥이처럼 날뛰기도 한다. 그러나 믿는 자는 믿으면 믿는 대로 된다는 걸 알기에 믿음의 힘으로 망둥이놈을 수월하게 밀어내지. 진실한 신앙인들은 안다. 천사가 늘 우리를 보호한다는 걸. 기적은 성경 안에만 있지 않다. 삶이란 온통 기적이지 않던가? 그렇지 아니한가? 날마다 이어지는 우리의 들숨과 날숨 자체부터가 기적이지 않은가. 세상엔 위선과 탐욕이 횡행하지만 삶을 기적으로 받아들일 경우엔 부정적인 마인드라는 게 들러붙을 자리가 없어진다.”
“인도의 어떤 수행 무리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신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이토록 외롭죠? 왜 이토록 괴롭죠?’ 천사가 우리 곁에 있을지라도, 세상의 암초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선 홀로 고통스럽게 계속 노를 저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초라한 숙명이지 않나?”
“삶은 고통스럽지만 나는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경로이자 기회로 삼는다. 신을 섬기는 자에게 극복하지 못할 고통은 없다. 있다면 그건 신의 소관사항이지. 신에게 맡기면 그만이지. 그렇다면 삶을 통째 긍정하지 못할 게 뭐란 말인가. 부족한 나는 부끄러워 성경 한 구절의 말씀이나마 실천으로 이루고자 노력한다. 이젠 더 먼 길을 떠나고 싶다. 삭발 수도자로 살고 싶다. 그렇게 될 거다. 가족은 어쩔 거냐고? 부부가 함께 간다. 남편도 공감하니까.”
그는, 나다운 나를 찾아가는 삶에 올인하는 거다. 내 삶이 꼬였다 느껴지는 건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걸 알 때다. 어라,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아니네? 이 새삼스러운 발견은 괴롭지만 문제를 풀 실마리? 정미연의 드라마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해 다시금 ‘나는 누구인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질투로 얼룩졌던 마티스와 피카소의 우정을 소개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젊은 예술가들의 산실로 불리던 파리에는 다양한 국적의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었다. 스페인에서 온 풋내기 청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1906년 그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당대 프랑스 화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였다.
프랑스 북부 시골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법학을 공부하다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대 초반 파리로 갔다. 이후 회화 양식과 색채와 빛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명성을 얻었고 야수파의 우두머리가 됐다.
‘색채의 혁명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던 이 대작가는 무명작가인 피카소의 그림을 보자마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마티스를 뛰어넘고 싶었던 피카소
그 무렵 마티스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만든 조각품의 신비로움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골동품 가게에서 콩고 조각품을 구입한 그는 동료 화가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어 예술가들로 북적이던 아지트로 향했다. 마침 피카소도 그곳에 와 있었다. 그는 마티스가 가져온 ‘흑인 두상’ 나무 조각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황급히 일어나 자신의 작업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원시 아프리카 미술을 재해석해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을 통해 인체의 비율과 ‘색채’를 고민했고, 피카소는 마법처럼 느껴지는 ‘초월적 힘’에 심취했다.
마티스가 아프리카 조각품의 원시성에서 영감을 받고 그린 ‘삶의 기쁨’(1906)과 ‘푸른 누드’(1907)가 발표됐을 때 비평가들은 “불편한 느낌을 주는 도발적인 작품”이라며 주목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피카소는 비판을 쏟아냈다. “무릇 화가라면 단순한 색깔로만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형태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의 작품을 깎아내렸던 것. “색이 무엇인지 인류에게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말로 칭송되던 마티스의 작품에 대한 도전적 발언이었다.
피카소는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다. 마티스가 활용한 기법들은 철저히 지양했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있는 듯 없는 듯 곡선으로 처리하고 강렬한 색으로 아우라를 발산한 ‘삶의 기쁨’은 피카소에겐 매우 중요한 도전 대상이었다. 그는 바짝 긴장했고, 힘찬 직선으로 원시적 생명력을 표현한 ‘아비뇽의 처녀들’(1907)로 응수했다.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평론가들은 그림 경쟁을 벌이게 된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심리’를 분석하며 마티스보다 더 뛰어나고 싶었던 피카소의 속내를 지적했다.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해 미술계의 1인자가 되고 싶었던 피카소가 스승처럼 따랐던 마티스를 경쟁상대로 만들며 자신의 욕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흠모와 질투의 ‘붓 대결’
마티스는 신중하고 사색적인 사람이라 홀로 조용히 작업하는 걸 좋아한 반면, 피카소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어울리며 작업을 했다. 비슷한 취향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늘 서로의 작품에 끌렸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마티스와 피카소의 이른바 ‘붓 대결’은 그렇게 흠모에서 질투, 그리고 경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피카소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마티스를 강박증 환자로 몰아세우며 공격했다. 마티스도 이에 질세라 피카소의 콜라주 기법을 쓰레기라 비웃었다. 급기야는 서로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헐뜯었다.
피카소에게 실망한 마티스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교류를 끊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렀고 두 사람의 입장은 뒤바뀌었다. 피카소가 미술계의 거장이 됐을 때 병약해진 마티스는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954년 8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가 생을 마무리하면서 남겼다는 한마디는 피카소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내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지 말아주게.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그림들 옆에서 내 그림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마티스의 사망 소식을 듣던 날 피카소는 슬픈 얼굴로 창밖을 보며 “마티스가 죽었어, 마티스가 죽었어”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자책감 때문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는 ‘캘리포니아 아틀리에’를 그리며 떠나간 마티스를 추억하고 애도했다. “다시 태어나 그림을 그린다면 마티스처럼 그리고 싶다”고 말했던 피카소는 1973년 92세에 눈을 감았다.
● Exhibition
◇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미국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럽 컬렉션 중 59점의 대표작을 만날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모더니즘 예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등 총 45명 작가의 작품들을 풍경, 정물, 인물, 누드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각 작품의 의미와 특성을 통해 모더니즘 전반에 걸친 미술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간대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며,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접수 후 입장 가능하다.
◇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 오브제 시리즈
일정 7월 28일까지 장소 아이러브아트센터 셀린박 갤러리
개인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테마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셀린박 디자이너가 작업한 사물 시리즈 전이다. 앞서 2018년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과 2019년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 초청돼 전시한 바 있다. 비판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사회 구조의 이면적인 모습을 사물기호증(움직이지 않는 특정 물체에 초점을 둔 성도착증의 일종)과 관련지어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 구조와 제도의 모순으로 생긴 결함을 통찰하도록 이끈다.
◇ 모두의 건축 소장품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관
서소문 본관 ‘모두의 소장품’ 전과 연계한 전시로, 동시대 수집의 범위와 행위를 성찰하고 미래의 소장품 형식을 탐색한다. 1980년대 초반 중구 회현동에서 현재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축된 서양 고전양식의 구 벨기에 영사관을 중심으로 건축 수집의 기원, 의미, 방법을 체험하는 2개의 섹션으로 마련했다. 건축을 수집하는 8개 국·공·사립 기관과 40여 명의 건축가가 함께한 150여 점의 전통 건축과 근·현대 건축자료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잠정 휴관으로 서울시립미술관 SNS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다.
◇ 메이커 탐구생활
일정 9월 30일까지 장소 크리타
과학과 예술의 유쾌한 연결을 이어가는 메이커 세 팀이 함께한 전시다.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공학 유튜버 ‘긱불’(GEEKBLE), 을지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메이커의 경계를 허무는 ‘프래그’(PRAG),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메이커테인먼트 콘텐츠를 선보이는 ‘크리타’(CR!TA)가 참여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은 일상의 탐구에서 시작된다”라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전시품 외 큐레이터 기획공간을 별도로 꾸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최대 10인까지 입장 가능한 소규모 전시 예약제를 잠정 운영하며, 일일 8회 진행된다.
● Stage
◇ 2020 디즈니 인 콘서트
일정 5월 23~2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대극장 출연 디즈니 콘서트 싱어즈, 디토 오케스트라
미국 월트 디즈니 본사의 프로듀서이자 음악 작·편곡가로 활동해온 테드 리케츠가 전 세계를 무대로 선보였던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이다. ‘인어공주’,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을 비롯해 ‘겨울왕국 2’까지, 디즈니 대표 명작들을 대형 LED 화면과 더불어 60인조 이상의 풀 오케스트라 연주로 즐길 수 있다.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으로, 손주와 함께라면 더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로빈
일정 5월 1일~8월 2일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정태영 출연 김대종, 임찬빈, 박정원 등
지구 밖 행성을 배경으로, 유능한 과학자이지만 자식과의 교감에 서툰 아빠와, 답답한 우주를 벗어나 지구로 돌아가려는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부녀 사이에 중재자로 나선 로봇 ‘레온’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기억,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일깨운다.
◇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일정 6월 27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출연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 커트 올즈 등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최초 1만 회 공연을 돌파하며 가장 오래된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새롭게 단장한 월드 프로덕션 팀이 8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아 더욱 압도적인 스케일의 무대와 진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 Movie
◇ 나는 보리
개봉 5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진유 출연 김아송, 이린하, 곽진석, 허지나 등
농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1세 ‘보리’는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다. 그런 보리가 소외감을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소원을 빌게 되며 벌어지는 일련의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정겨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보리네 가족의 일상과 주인공의 고민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제24회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해 국내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
개봉 5월 14일 장르 공연실황 감독 제임스 파우웰, 장 피에르 출연 마이클 볼, 알피 보 등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선보였던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됐다. 콘서트 형식의 작품으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공연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 보이콰이어
개봉 5월 14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와 지라르 출연 더스틴 호프만, 캐시 베이츠 등
상처가 있는 소년이 국립 소년합창단에서 인생 스승을 만나며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더스틴 호프만과 캐시 베이츠 등 연기파 배우들의 참여로 기대를 모은다.
● Book
◇ 백세 일기 (김형서 저ㆍ김영사)
올해 4월, 만 100세 생일을 맞아 펴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신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상’,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 100세의 지혜가 깃든 ‘삶의 철학’, 고맙고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 등 4가지 주제로 70여 편의 글을 엮었다. 한 세기를 살아보니 알게 된 깨달음과 솔직한 심정, 그간의 희로애락 등을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게 들려준다.
◇ 천년의 수업 (김헌 저ㆍ다산초당)
존재와 죽음, 자존과 행복, 타인과의 관계 등 인생에서 주요한 9가지 질문에 대해 통찰한다.
수천 년 동안 서양 고전이 던져온 물음들을 통해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 50, 이제 나를 위해 산다 (호사카 다카시 저ㆍ상상출판)
50세를 앞두거나 접어든 사람이 참고할 만한 ‘행복 습관’ 80가지를 정리했다. 취미, 공부, 인간관계, 건강, 마음가짐 등 행복한 노후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 더 월 (론 란체스터 저ㆍ서울문화사)
2019년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황폐해진 미래 세상에서 벌어질 문제를 그린다. 시사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으로 갈등을 드러내면서 경고의 메시지도 담았다.
모든 예술가는 '돌+아이'여야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그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돌+아이’ 중의 하나인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다는 로트렉 작품 전시회. 물랑 루즈의 작은 거인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로트렉 전은 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5월 3일까지 열린다.
최근 미술계에 정착된 도슨트 해설도 풍성하다. 특히 젊은 관객들을 몰고 다녀 도슨트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 시간대에 맞춰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이 있을 정도이니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작품 감상을 훨씬 풍성하게 할 수 있어 강추!.
전시회를 알차게 보려면 도슨트 해설 시간 전에 넉넉하게 도착해 미리 작품을 한번 훓어 본다. 도슨트 해설시 기본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정우철 도슨트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1시간 정도 로트렉의 삶에 대한 스케치를 곁들인 작품 세계에 대한 해설을 듣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래서 사람은 한 가지라도 더 배워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물랑 루즈의 빨간 풍차를 그린 화가, 난쟁이, 알코올 중독자, 매춘굴에서 살다시피 했던 성 도착자, 로트렉을 떠올릴 때 따라붙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로트렉은 파리 최고의 귀족 가문 자제로 태어났다. 한데 이 가문은 재산을 타인에게 나눠주기 싫은 탐욕적인 가문이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촌 간의 결혼으로 가문의 계승자를 돌려막았다. 계속된 근친결혼으로 인해 유전적으로 뼈가 부서지는 병이 대를 걸러 나타났고 하필이면 로트렉의 아버지 대를 건너 이 병이 로트렉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불운의 귀족 로트렉은 14세 되던 해 넘어지면서 허벅지의 뼈가 부러지게 되고 이후 로트렉은 하반신 성장이 멈춰버렸다. 하반신 성장이 멈춘 채 상반신만 성장하는 난쟁이로 어른이 된 로트렉은 백작인 아버지처럼 승마나 사냥 등을 하지 못하고 대신 어머니의 지원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화실에서 종일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의 냉대와 멸시를 이겨내야 했다.
아들로 인정받지 못한 로트렉은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천박한 귀족성에 치를 떨기도 했다는데 그가 그린 삽화 중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는 귀족은 그의 아버지를 빗대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말풍선으로 “천박해, 너무 천박해” 까지 그려 넣은 로트렉은 아버지의 차별과 냉대, 멸시를 받으며 그림에 대한 집착을 키워낸 예술가다. 이에 반해 한없이 너그럽고 죄책감을 가진 채, 평생 로트렉을 보살피며 그의 마지막 죽음까지 지켜줬던 어머니는 로트렉에게는 인자한 성모 마리아 그 자체였다.
‘천박한 아버지와 성스러운 어머니’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모에 대한 천착을 넘어 로트렉이 다음으로 천착한 것은 파리 몽마르트르 아랫마을의 유곽을 이룬 매춘부들이었다. 로트렉은 아예 이곳에 방을 얻어 자유스럽게 그들과 교류하며 귀족의 눈에 보기엔 뒤틀렸지만, 사실은 생존의 삶 그 자체인 삶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그리고 기록했다. 그의 대표작 대부분은 물랑 루즈에서 춤을 추는 무희거나 노래를 부르는 가수,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매춘부 등을 그린 작품들이다.
현대 회화의 대가인 피카소가 존경했던 화가, 로트렉
피카소는 그의 작품 ‘푸른 방’에서 로트렉에 대한 존경의 오마주로 ‘푸른 방’ 작품 속 공간인 벽면에 로트렉의 작품인 메이밀튼 포스터를 그려 넣기도 했다.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도 없었을 것이라는 후대 예술가들의 평이 아니더라도 19세기 후반인 로트렉의 활동시대가 무색할 만큼 현대의 팝 아트 같다. 지금 2000년대의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올드 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전문가 설명에 의하면 그림 전체를 꽉 채우기보다 사물의 특성을 극대화해 캐치하는 로트렉 특유의 기법 때문이라고 한다.
로트렉의 이 기법은 현대 회화에 가장 크게 미친 영향이라고 하니 조롱과 멸시, 냉대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이룬 로트렉의 정신세계는 현대인 모두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포스터와 삽화 등의 일러스트전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열린 로트렉 전시회를 통해 현대 포스터, 그래픽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트렉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나 스스로 나를 지키고 뭔가를 이뤄내는 일에 대한 자기 단련은 어디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화두를 자신에게 던져본다.
예술의 전당에서 5월 3일까지 전시가 계속되며 도슨트 가이드를 통해 관람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별도 요금 없음).
모네, 세잔, 샤갈, 르누아르, 로댕 등 서양 근·현대 화가들의 걸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사장 이재준)은 지난 2월 아람미술관에서 전시 개막 후 4일 만에 코로나19로 휴관에 들어갔던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전을 지난 4월 7일부터 재개관했다.
클로드 모네와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등 후기 인상파의 대표작을 비롯해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의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총 45명의 회화와 조각 59점을 전시함으로써 서양 미술사의 황금기이자 혁명기를 관통하는 사조를 망라했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명한 유럽 컬렉션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그 과정의 대표 작가들 작품을 통해 미술사의 맥락과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크기와 소재, 미술사조가 각각 다른 전시품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앞서 말한 100년 동안 프랑스는 1848년 혁명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미술사도 리얼리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이 등장하며 모더니즘이 전개됐다. 그 중심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맨 먼저 장 프랑소아 밀레의 ‘양 떼를 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으로 고단한 노동자들이 삶을 주로 그렸던 밀레는,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보았던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이기도 하다.
밀레에게 깊이 공감했던 클로드 모네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을 담아내 색채 묘사의 혁명가라 불린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활용된 그의 작품 ‘밀물’은 가파른 벼랑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을 사용하여 해안선에 자리한 오두막집의 배치를 극적으로 강조했다. 그의 힘찬 붓놀림은 휘몰아치는 자연의 힘을 전달하는 듯 강렬하다.
전시는 풍경, 정물, 인물, 누드의 총 4개의 장르로 구분돼 자연주의에서부터 추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모던 시기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풍경 섹션에서는 모네의 ‘밀물’ 외에, 구스타브 쿠르베의 ‘파도’, 폴 세잔의 ‘가르단 마을’ 등을 만날 수 있다. 정물 분야에는 르누아르의 ‘파란 컵이 있는 정물’, 앙리 마티스의 ‘꽃’ 등이 전시돼 있다. 인물 부분에는 밀레, 모리조, 부게로 등의 작품이 있고, 누드 파트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작품 ‘청동시대’, 에드가 드가의 ‘몸을 닦는 여성’ 등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서 기자를 안내해준 고양문화재단의 김언정 수석큐레이터는 이런 대규모 전시를 유치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와 현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서양미술 전환기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골고루 프렌치 모던 시기의 중요한 작가들을 다 모아서 기획하고 작품을 가져온 경우는 많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 같은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하기 위해서 특정 기획사가 아니라,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브루클린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라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기획사가 개입하지 않은 덕분에 시민들도 저렴한 입장료(성인 1만 원, 고양시민은 5천 원)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 관람을 원하는 관람객은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www.artgy.or.kr)에서 사전예매를 통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시간대별로 관람 인원을 제한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아람누리
코로나19 여파로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이고 영화관에도 관객이 없다. 아예 휴관을 한 문화공간들이 많아서 딱히 어딘가를 갈만한 곳도 없다. ‘TV는 내 친구’도 하루 이틀이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음악이며 동영상 짤 등을 찾아보는 이제 볼만큼 봤다.
‘궁하면 통하는 법’.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룩한 재빠른 응용력에 5G 인터넷 인프라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문화계에 부는 코로나 19 적응시대의 문화 공유는 기존 오프라인 관람객에 온라인 관람객을 추가하는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는 오프라인에 온라인 관람을 추가하는 추세지만 앞으로 문화계는 온라인 관람 및 향유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뉴스나 콘텐츠를 신문이나 방송 등으로 소비하던 시대에서 현재는 모두 인터넷 및 SNS 등 온라인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화적 대변혁의 시대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말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는 BC가 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orona를 가르치는 단어가 될 것’이라는 칼럼을 실어 전세계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의 한 기원을 가르는 충격적 문화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한결 같은 학자들의 전망이다.
현재 K 방역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얻고 있는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온라인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그 동안 온라인 분야가 부수적인 분야로 머물렀던 문화계의 온라인 공유는 음악 공연과 미술 전시회 등 전 분야에서 자리잡고 있어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문체부와 문체부 소속 산하기관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한데 모아놓은 문화포털에서는 ‘집콕 문화생활!’이라는 콘셉트로 방구석에서 즐기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 등을 즐길 수 있는 사이트들을 소개해놓았다.
무료로 즐기는 고품격 온라인 공연
◇국립국악원
지난달 17일부터 주중 매일 오전 11시에 국악 한 편!! 이라는 슬로건으로 춘향가, 심청가, 가야금산조, 남도시나위 등의 공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공연도 감상할 수 있으므로 언제든 들어가서 즐길 수 있다.
◇국립극단 온라인 상영회
국립극단은 2016년에 공연했던 세익스피어 원작의 ‘실수연발’을 온라인 상영하고 있다. 1시간 55분 공연 전작이 올라와있어 코로나로 방콕하고 있는 연극팬들을 위한 훌륭한 팬 서비스라는 댓글 호응이 뜨겁다.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취소된 현대무용 공연 ‘혼자 추는 춤’ 시리즈의 10개 작품을 무관객 공연으로 제작, 무료 감상할 수 있도록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방구석1열에 딱 알맞은 콘텐츠. 야외 생활이 아무래도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코로나 정국에서 방구석에서라도 따라 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경쾌한 공연이다. 강추!!
◇국립오페라단
‘집콕 오페라 첼린지’라는 이름으로 국립오페라단이 긴급 업로드한 작품은 2019년 10월 상영했던 ‘호프만 이야기는 2시간 41분 공연 전작이 국립오페라단 공식 유튜브 체널에 올라가 있다. 1주일에 1편씩! 보고 싶었던 오페라 전막 감상에 도전하기라는 부제가 붙은 국립오페라단의 집콕 생활 응원 오페라 공연은 평소 접하기 힘든 공연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추천 집콕 생활이다.
◇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은 무용단원이 직접 지도하는 집콕 스트레칭 영상 및 가극단원이 지도하는 배우들의 환절기 기관자 꿀팁 등 ‘스펙TV특별편’을 제작해 실내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꿀팁을 전수하고 있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 손안의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현악 5중주, 바이올린 4중주와 더블베이스, 퍼커션, 플루트 4중주 및 클라리넷 5중주 등 실내악을 중심으로 무관객 공연 생중계를 실시한다. 집에서 답답하게 머무르는 오케스트라 애호가들이라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프로그램. ‘내 손안의 콘서트’ 지난 공연까지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있다.
심심한 손자손녀와 함께 온라인으로 즐기는 문화 콘텐츠
◇어린이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산하의 어린이박물관에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전시 및 영상이 모여져 있다.
또한 국립민속박물관 산하에도 어린이박물관이 마련돼있어 온라인 놀이 체험 공간이 마련돼있다. 이곳 사이버놀이터에서는 컴퓨터로 민속놀이를 컬러링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민속 놀이를 배우는 코너가 있고 놀이체험마당 코너에는 지도 퍼즐 맞추기, 물건 알아 맞추기, 다른 그림 찾기, 네오 점프, 에어리언 점프, 컬러 점프, 네오 매치 등 어린 자녀 및 손자 손녀와 함께 즐기기에 적합한 교육 사이트다..
◇국립국악원의 e-국악아카데미
국악 애니메이션을 통해 엉덩이가 들썩이고 흥이 절로 나는 국악 교육을 시킬 수 있다. 어린이들이 보다 쉽게 국악을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국악 형태의 창작동요 나는야 껌딱지, 꽃마을, 밥도독, 밤밤밤부리, 별님이 가시연꽃에게, 아침소리 등의 창작동요 10곡 이외에도 60여개의 창작동요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업로드 돼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한국 전래동화, 외국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의 동영상 동화 456편이 영어 및 중국어, 베트남어, 몽골어, 태국어 등의 5개국 언어로 자막 처리돼 구비돼있다. 손자손녀와 함께 보며 다국어 동화구연 교육을 통해 언어교육과 동화 교육을 함께 시킬 수 있는 곳이다.
힘내라 대구! 대구미술관
코로나 바이러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00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소장전을 컴퓨터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대구미술관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적으로 휴관을 한 상태.
유튜브 박물관이란 말처럼 유튜브 상에 현재 전시하고 있는 전시회를 대구미술관 학예사들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는 온라인 미술전시회 감상을 맛볼 소중한 기회.
또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대구와 광주의 ‘달빛동맹’을 미술관 프로그램에서 구현한 ‘달이 떴다’는 대구시립미술관의 소장품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기획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구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병상을 내어주고 도움을 줬던 도시가 광주였다는 점에서 직접 가서 볼 수는 없지만 유튜브 상에서 만나보는 ‘달이 떴다’는 한번쯤 볼만한 온라인 전시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 한국의 신진작가와 중견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당신 속의 마법’이 온라인 전시로 기획돼 업로드 돼있으므로 멀리 대구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손안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국외 미술관 관계자 초청 특강, 대구미술관 실습생 블로그 등 미술관과 관련된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kfRXhh7ib_bOzUmDNFWghg/featured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큐레이터 라이브 투어가 진행된다. 큐레이터가 미술관을 직접 돌아보며 작품 해설을 하고 있어 말처럼 방구석 1열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전시회 감상 영상이다.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학예사 전시투어가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가장 최근 전시로는 덕수궁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술관에 書’ 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書’ 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한국 근현대 서예전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관으로 전시가 불가능해졌다가 이렇게 영상으로 만나게 됐다.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직접 설명하며 한국 근현대 서예에 관한 설명을 해주고 있어 서예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들어와 댓글을 남겨놓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https://youtu.be/Sx1Vr7vNtcw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과천관에서 열릴 ‘한국 공예 지평의 재구성 5070’ 전시회도 투어 영상과 VR영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얼마 전 박수근 그림 한 점을 강원도 양구군에서 사들였다는 기사가 났다.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 시리즈 6점 중 한 점이다. 구매 가격이 무려 약 8억 원이다. 시골 재정이 어려운데도 이러한 과감한 결정을 한 양구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 방학이나 휴가철에 자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지구촌 사람들 삶의 모습이나 환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힐링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신비로운 자연경관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마다 찬란한 문화유산은 자랑거리다. 여행 중 어디를 가든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 박물관이요 미술관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을 봐야 하고, 네덜란드에 가면 뭉크의 ‘절규’를 봐야 한다. 유명한 그림 한 점이 있는 곳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렵다.
지난번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 벨베데레 궁전을 들렸을 때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처음 그의 진품 ‘키스’작품이 공개된다는 거였다. 우리가 사진이나 서적을 통해서 많이 봐왔던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진품이 100년 만에 전시되는 것이고 또다시 진품을 만나려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번에 못 보면 내 생애 진품은 구경도 못 하는 것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기념관에 도착하니 관람 인파로 가득하다. 요즘은 사진기술도 발달하고 복제품도 얼마든지 있는 시대다. 유튜브에는 클림트의 ‘키스’작품 제작 방법까지 알려져 많은 사람들 따라 그리고 있다. 그렇게 쉽게 볼 수 있건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을 품고 몇 시간을 기다려 진품 앞에 섰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과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작가의 고뇌와 영혼이 전이되어 오는 느낌이다.
또 한 번은 일본 다카마쓰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을 갔을 때이다. 모네의 ‘수련’시리즈 몇 점이 전시되어있다고 했다. 또 긴 줄을 서야 했다. 여긴 더 엄격하다. 한 번에 꼭 열다섯 명씩만 들어간다. 앞 조가 다 보고 나서야 다음 조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전시장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로 빽빽이 붐비던 생각을 하면 천양지차이다. 모네의 진품 한 점이 지역경제에 큰 힘이 되는 셈이다. 유명 화가의 진품을 보는 것 자체만도 감동이었지만 그 쾌적한 공간에 그림 감상을 한 경험이야말로 특별히 대우를 받은 느낌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라 사진 한 장 없지만, 눈과 마음으로 찍어온 감동이 지금도 짜릿하게 전해온다.
양구군이 박수근(1914~1965)의 대표작품 '나무와 두 여인' 을 7억 8750만 원을 들여 구매했다고 한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1년 치 작품구매 예산을 몽땅 투입해 27×19.5cm짜리 손바닥만 한 그림에 투입한 셈이다. 소장자도 박수근 미술관을 위해 1억 원의 통 큰 할인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특히 소설가 박완서 ‘나목(裸木)’의 영감이 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2년 당시 미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 부에서 박수근과 박완서가 있었다. 훗날 작가 박완서가 함께 일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박수근을 주인공으로 쓴 작품이 나목이다. 처음엔 잎도 없는 ‘고목’이라 생각했으나 그 그림이 시든 ‘고목(古木)’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박수근의 이 그림은 당시 가난했던 서민의 삶의 모습을 연민의 시선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 한다.
이러한 미술품이 장차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 브랜드임을 믿는다. 그림 구매를 위해 백방으로 뛰며 설득한 미술관 관장과 이를 만장일치로 찬성한 양구 군청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이 작품은 오는 5월 6일부터 열리는 특별전 ‘나목: 박수근과 박완서’에서 선보인다고 하니 나도 꼭 찾아가서 관람을 해야겠다.
이선화 추상화가(52세)의 작품은 색채와 그림이 모두 인상적이다. 컬러풀한 색채는 열정과 에너지를 전하고, 역동적인 그림은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작가 자신도 늘 밝은 기운을 발산해 주변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시가 대부분 취소된 가운데, 고양시에 있는 한양문고의 ‘갤러리 한’에서 3월 3일부터 6월 8일까지 이선화 작가의 ‘생명소통’ 전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는 작년 8월에 초대전을 한 이후 반응이 좋아 2번째로 하는 전시다. 그는 20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30년이 넘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10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았어요. 중학교 때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나도 색채의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색감이 뛰어난 작가’라는 평을 듣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어요.”
대학졸업 후 여러 해 동안 미술 교사로 재직했을 때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외할아버지는 화가였고, 어머니도 어린 그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목단꽃을 그려주곤 했다. 언니와 여동생 역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예술가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 집안에서 성장하다 보니 화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늘 생명력, 에너지, 색채에 관심을 두었고, 40대부터의 표현 주제는 생명소통이다. 작품과 제목에도 물고기와 새, 나무, 바람, 물 등 장자의 자유 사상과 생명체들 간의 소통을 담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생기와 울림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심리학과 동양철학, 명상 관련 책을 즐겨 읽은 덕분에 이런 사고가 가능하다.
“생명도 중요하고 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우주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한 줌도 안 되는데 서로 연결이 되어 있죠. 사람을 포함한 생명 하나하나는 우주 안의 하나의 세포라고 생각해요.”
그는 작품을 통해 추상화의 동서양적 만남을 시도했다. 추상화의 출발은 서양이지만, 추상적 사유와 미학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는 우리나라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주로 써요. 오방색이 우리 민족의 심성에 가장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음양오행의 의미를 담고 있는 청, 적, 황, 백, 흑색은 서로 충돌하면서 조화를 이루죠. 마치 카오스와 코스모스, 즉 혼돈과 질서가 함께 있는 우주와 같아요. 이런 것들이 생명력을 표현하는 제 회화를 만드는 요소들이에요.”
그의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어떤 기운이 느껴지다가, 가까이서 보면 온갖 생명체들이 서로를 향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이 자신의 그림에서 때로는 온화하고, 때로는 격정적이며, 때로는 시원한 치유의 바람을 느끼길 바란다.
“컬러 테라피, 즉 색채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제 그림과 소통을 하는 모든 분에게 생명력과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그림을 통해서 감상자들의 트라우마를 줄여주고 활력 있고 행복한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죠.”
그의 작업을 보면 현대미술 대중화를 위해 고민한 흔적도 읽을 수 있다. 선입견 없는 마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담으려고 인문학 공부를 꾸준히 한 덕분인 듯하다. 그 스스로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예술 활동에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추상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가 전하는 감상법은 명쾌하다.
“예술가는 대상을 표현하고 평론가는 작품을 해석하려고 하죠. 그런데 감상자는 그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작품을 머리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바람의 의미를 묻지 않고 바람을 느끼듯이, 꽃의 의미를 묻지 않고 꽃향기를 맡듯이, 파도의 의미를 묻지 않고 파도에 몸을 던지듯이 말이에요. 그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은 오롯이 감상자 고유의 것이 될 것이고, 감상자는 창조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화여대와 홍익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그동안 20여 차례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석하며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 중국 상하이를 비롯해 런던 ‘어포더블 아트 페어(Affordable Art Fair)’와 홍콩 ‘하버 아트 페어(Harbor Art Fair)’ 등 해외 여러 곳에서 전시를 했다. 2017년에는 20여 명의 한국 작가들과 함께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아트 쇼핑(Art shopping)’에도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키아프, 화랑미술제, 롯데호텔 아트 페어, 부산국제화랑미술제 등에서 단체전과 국회 아트갤러리, 현대백화점 등에서 초대 개인전을 했다. 작품은 박영사, 고영 테크놀러지, LG생활건강, 리더스경제신문사 등 많은 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도 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활용해 스카프, 넥타이, 스탠드 조명 등의 아트상품을 만드는 것도 소통을 위한 일 중에 하나다. 5월 한 달간 ‘갤러리 한’ 전시장에서는 추상화 개인 레슨도 할 예정이다. 그동안 종종 자신의 작업실에서 캔버스와 물감, 붓 등의 재료를 제공하고 2시간 동안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왔는데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추상을 힘들고 낯설게 생각했던 이들이 추상의 매력에 빠져들기도 한다.
김용택 시인은 ‘봄날’이라는 시에서 “나 찾다가 / 텃밭에 /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 물을 따라 /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라고 노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이 바뀐 이즈음, 책을 가까이하며 위로를 받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정갈하고 고즈넉한 책들의 고향, 종이의 고향에서 시집을 펼쳐 보고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봄맞이 산책을 떠나도 좋겠다.
‘종이의 고향’으로 떠나는 소박한 여행
파주출판도시는 책들의 고향이자 건축의 도시, 영화의 도시, 생태의 도시다. 출판인들이 모여 도시 건립을 위한 ‘위대한 계약’을 체결한 지 올해로 20년이 흘렀다. 이곳에는 출판사, 인쇄소, 영화사를 포함해 500여 개의 업체가 자리를 잡았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부터 책방, 박물관, 북카페, 갤러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근거리에는 야트막한 심학산이 있고, 거리 곳곳에 아담한 벤치가 있어서 잠시 멈춰 쉬기에 좋다. 겨울에 갈대가 우거졌던 샛강 변은 지금 서서히 초록빛으로 변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얕은 강 위를 한가롭게 거니는 재두루미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오다가 문발IC로 진입하면 오른쪽에 ‘출판도시의 심장부’라 불리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있다. 이곳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가 돋보이는 건물로 2004년 제14회 김수근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박물관, 강연장, 숙박 시설이 있는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으로 인문학 강연, 작가와의 만남, 예술작품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2014년 이곳 1층에 개관한 ‘지혜의숲’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서재이자 독서공간이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모두 개인과 출판사에서 기증받은 것으로, 15만여 권의 책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카페도 있어 커피를 한잔 마시며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안쪽에는 ‘북소리’라는 할인서점이 있고, 2층에는 헌책방 ‘보물섬’이, 3층에는 출판산업체험센터가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책에 둘러싸여 느긋하게 하루를 지내면 어떨까.
바로 옆 ‘지혜의숲3’ 1층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기증한 책들이 다양한 형태의 서가에 들어차 있고, 좌석들은 편안한 형태로 꾸몄다. 2층부터 5층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이다. ‘종이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 객실은 TV가 없는 대신 책들이 비치돼 있다. 79개의 객실 중 박경리, 박완서, 김훈 등 작가들의 전집이나 소장품으로 꾸민 ‘작가의 방’과 출판사 책으로 구성한 ‘출판사의 방’도 있다. 객실 크기는 9평 정도로 TV없는 하룻밤을 보내기에 적당하다.
건물 왼편의 응칠교 근처에는 전북 정읍에서 ‘김동수 씨 작은댁’의 사랑채를 옮겨 세운 ‘서호정사’가 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쓴 안내문을 보면, 1971년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 지정된 ‘정읍 김동수 가옥’은 김동수의 육대 조상 김명관이 1784년경에 지었다. 김명관의 둘째 아들 김상하가 1834년에 김동수 씨 작은댁을 십여 년에 걸려 지었으니, 현재 186년의 역사를 지닌 고가다. 출판도시에 하나뿐인 이 건물에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도시를 지향한다는 출판도시의 뜻이 담겨있다. 5월이면 한옥 담장을 따라 흰 꽃 등나무에 향긋한 꽃이 주렁주렁 피어날 것이다. 국어학자이자 시인인 일석 이희승 선생이 아끼던 50년 수령의 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혜의숲 뒤편에 놓여있는 야외 벤치에 앉아 갈대 샛강을 구경하거나, 건너편 책방거리까지 갈 수 있도록 꾸며놓은 ‘김소월 시의 다리’를 산책하노라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얼굴을 간질인다. 진달래꽃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야간조명 덕분에 밤에는 더 낭만적이다. 출판도시에서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책 만들기’까지, 책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열화당책박물관, 미메시스아트뮤지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등을 해설사와 함께 투어할 수 있는 특별한 산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건물 정면 맞은편에 있는 피노키오뮤지엄과 카페 헤세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한가롭고 여유 있게 책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소박한 여행을 떠나보자.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