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와 이때의 어스름한 빛을 ‘황혼’이라 한다.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어스름한 단계에 무슨 사랑이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의 인생에서 황혼은 죽음만을 준비하는 차분한 시간이 아니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8월호는 커버스토리에서 ‘황혼 부부’에 관한 은은한 편견을 벗겨내는 그들만의 로맨스와 부부관계를 소개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중년 부부 소통법, ‘관심 더하고 남 탓 줄이고’ 황혼 부부 행동 가이드, 부부가 함께하는 은퇴 설계, “내려놓으니 보였다” 퇴직 부부의 다시 쓴 이모작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황혼에 이른 부부가 함께 나아갈 지표도 제시했다.
김찬숙 고문의 ‘매일 나누고 베풀며 어른이 되어가는 삶’을 표지와 기사로 만날 수 있다. 서울대 총동창회 고문이자 서울대치과대학 총동창회 고문이기도 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성실하게 채워온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이제 ‘아이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할머니’로 거듭나고 있는 김찬숙 고문을 만나 답답했던 인생 고민의 답을 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구해줘 부동산에서는 ‘경매로 노후 자산 만들기’를 이야기한다. 연일 집값이 고점을 찍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서 경매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경매 열풍의 이유를 알아보고 경매 시 주의사항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령이 된 창업주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바로 가업 승계다. 사전에 가업 승계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상속세로 인해 2세대 경영자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생활 속 법률 상식에서 소개한 ‘가업 승계를 위한 솔루션’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다.
코로나19로 답답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이야기도 준비했다. 공항이란 장소는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그 설렘을 잊고 지낸 지 어느덧 2년째. 국립항공박물관에서 비행기와 하늘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나며 하늘 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 것은 어떨까?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이다. 경탄할 만한 조선 원림을 구경할 수 있는 담양 소쇄원을 추천한다. 옛 선비들은 수상한 세상에 질려 일쑤 산야로 스며들었다.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3~1557)도 그랬다. 잘 나가던 스승 조광조가 훈구파에 몰려 유배되자 그는 세상에 염증을 느껴 산골짝으로 들어가 줄곧 산중 원림 ‘소쇄원’을 가꾸며 살았다. 아름다워 정들기 쉬운 소쇄원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 8월호는 ▲중년의 사랑을 보듬어주는 ‘브라보 마이 러브’ ▲김용준 프로의 골프 레슨 ‘이완’과 ‘수축’ ▲요즘 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는 신문물 설명서 ‘앱, 크루와 함께하는 요즘 러닝’ ▲5060 마음에 핀 청춘의 꽃, 팬덤 문화로 활짝 피다 ▲메타버스, 시니어 플랫폼으로 가능할까? 같이 알짜배기 콘텐츠로 시니어 독자들을 찾아간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8월호는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다.
상속도 교육처럼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자세가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에는 100세가 장수의 표준이 아니라 평균 수명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이 길어진 만큼,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 다음의 사례와 질문을 통해서 상속에 관해 알아보자.
도움 및 참고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 ‘상속을 잘 해야 집안이 산다’, '생활법률 상식사전'
최근 시니어들은 상속에 관심이 많다. 하나금융그룹의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50대 퇴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들을 위한 ‘상속, 증여는 생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58.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피상속인 수는 9555명으로, 10년 사이 150% 이상 증가했다. 실제로도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음은 그 사례 중 하나다.
“평생 복지 사업 분야에서 일했던 김기부(70) 씨는 자신의 모교인 A대학교에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평소 거래하던 은행 금고에 보관했다. 유언장은 전부 자필로 작성했는데, 도장은 따로 찍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100억 원대의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때마침 이 사실을 알게 된 A대학교는 고인의 뜻대로 전 재산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유족은 이에 반대했고, 결국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수용했다. 김 씨의 유언은 민법상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해당한다. 김 씨가 직접 모든 내용을 작성했기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장을 빠뜨린 건 큰 실수였다. 자필증서는 유언의 내용과 작성일, 주소와 성명을 직접 쓰고 도장까지 찍어야 완전한 유언이 된다. 위 경우에서 법원은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식을 준수하지 못한 유언장을 효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유언의 요식성’ 때문이다. 법은 유언에 엄격한 형식을 요구한다.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와 구수증서에 의한 것 등 다섯 가지가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자필증서와 공증사무실에서 공증을 받는 공정증서다. 이것마저도 법에서 정한 구체적인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는 “유언은 사후에 당사자에게 내용을 확인할 수 없기에 유언의 요건을 법에서 엄격하게 정한다”고 말했다.
만약 김 씨가 도장을 찍은 유언장을 작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유언의 내용대로 학교 측이 전 재산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유류분을 통해서 재산을 받을 수 있다. 상속인들이 김 씨의 재산 형성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었거나, 김 씨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해서 가족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면 유족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일정한 부분은 법률로 상속을 보장하는데, 이를 유류분이라고 한다. 유류분의 비율은 법에서 정하고 있다. 배우자나 직계비속(자·손)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이다.
최근 법원은 유류분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대해 양 변호사는 “예전에는 부양 의무에 대한 보상으로 유류분을 인정했지만, 최근에는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거나 부양 의무를 소홀히 한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상속과 관련해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실질적인 사항을 점검해보자.
Q&A로 보는 상속
Q. 아버지에게 혼외자가 있다면 상속 재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상속 재산 파악과 상속인 확인이 우선이다. 정부가 마련한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사망한 분의 재산 내역을 한꺼번에 확인하면 된다. 이 서비스는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 시 함께 신청할 수 있다. 상속인이 연락 두절된 경우라면 법원에 재산 관리인 선임 청구를 하거나 법원을 통해서 연락이 끊긴 형제자매를 찾아볼 수 있다.
Q. 생명보험금 수령도 단순승인으로 간주하나?
생명보험의 수익자가 ‘법정 상속인’으로 기재됐고, 법정 상속인이 생명보험금을 수령했다면 이는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기에 상속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 민법 제1026조의 법정 단순승인으로 볼 수 없다. 반면 상해보험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므로 이는 상속 재산이 된다.
Q. 스마트폰에 남긴 유언은 효력이 있나?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메모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서는 효력이 없다. 다만 유언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면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녹음에 의한 유언이 효력이 있으려면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증인이 이에 참여해 유언자의 이름과 함께 유언이 정확하다는 취지를 구술해서 녹음해야 한다.
Q. 반려견을 돌봐줄 사람에게 재산을 줄 수 있나?
현행 민법상 ‘부담부 유증’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다. 유언을 통해 재산을 증여하고, 증여받는 자에게 그 가액 범위 내에서 제사를 지내달라거나 반려견을 보살펴달라고 할 수 있다. 공익단체 기부 역시 부담부 유증이나 별도의 유언 집행자를 정하는 방법으로 유언을 한다면 가능하다.
알아두면 좋은 상속 용어
① 유증 유언자가 유언을 통해 자기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행위다.
② 사인증여 증여자가 생전에 특정인과 맺는 증여 계약으로 효력은 사망할 때 발생한다.
③ 단순승인 상속인들이 채권과 채무를 포함한 고인의 재산을 전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④ 한정승인 재산을 상속받되, 상속 재산의 한도 내에서 채무를 책임지겠다는 의사표시다.
⑤ 상속포기 상속 재산 받기를 전면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빚이 재산보다 많을 때 한다.
사례> A는 B와 1968년 초부터 동거하다가 1971년 12월 15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 둘 사이에 자녀 C를 두었다. A는 B와 서울에서 혼인생활을 하던 중 1981년경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곳으로 이주하여 B 및 C와 함께 생활하다가 1987년경 스리랑카로 이주하여 건설업체 생산업체 등을 운영하였다.
A는 1995년 3월경 여자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후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스리랑카에서 알고 지내던 노르웨이 여성과 스웨덴에서 동거를 시작하였다. B는 A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1995년 6월경 A가 운영하던 사업체들을 정리한 후 귀국하였다.
그 후 A는 귀국하였으나 B의 연락을 피하였고, 2006년경 노르웨이 여성이 사망할 때까지 스리랑카에서 동거하며 생활하였다. A와 B는 A가 최초 가출한 이후 자녀 C의 결혼식장 등에서 잠깐 만났을 뿐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16년 넘게 서로 떨어져 별개로 생활을 영위해왔다. A는 자녀 C가 결혼할 때 상당한 돈을 지원하였다.
B는 귀국한 이후 시댁 식구들과 연락하거나 시댁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투병 중인 시아버지를 문병하거나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없었으며, 자녀 C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B는 A와 혼인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혼인생활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다.
A는 B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하였다.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될까.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민법의 기본적인 태도이나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는 장기간의 별거 및 혼인 파탄에 관하여는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한 A에게 주된 책임이 있으나 자녀에 대해서는 최대한 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B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A가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동거하였지만, B가 시댁과 따로 생활하면서 B는 물론 자녀 C의 시댁과의 유대관계도 사실상 단절되었다. 또한 B가 그 유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거나 A로 하여금 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갈등원인을 제거하고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이 혼인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는 과정에서 피고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 대한 인용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양태·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된다.
[사례] A는 1984년경 B와 결혼하였다가 2002년 이혼하였다. A와 B는 이혼 이후에도 같이 살다가 결국 2011년경 사실혼 관계마저 파경에 이르렀다. A는 B를 상대로 사실혼 해소에 따라 재산분할소송을 하였고, 이에 따라 29억8800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넘겨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살고 있는 K시는 일반 증여에 해당되는 3.5%의 취득세율을 적용하여 A에게 1억460만원의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에 대해 A는 사실혼인 경우에도 법률혼처럼 혼인관계 해소에 따라 재산분할에 적용되는 취득세 특례세율 1.5%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A의 주장에 따르면 납부하여야 할 세금이 4480만원으로 5980만원이나 줄일 수 있다. 그러나 K시는 A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이에 A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A는 승소할 수 있을까.
민법은 사실혼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학설과 판례를 통해 일정한 법적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부부 사이에는 동거, 부양, 협조의무가 있으며 정조의무도 있다. 사실혼이 해소되는 경우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권도 인정된다. 법률혼 상태인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 재산분할에 따라 재산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때 일반 증여에 해당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례에 따라 산정된 취득세를 납부하게 된다. 이와 달리 사실혼의 경우 법률혼이 아니기 때문에 재산분할로 인한 재산취득의 경우 일반 증여에 해당하는 취득세를 납부해야 했다.
위와 같은 사례가 문제된 시기에는 구 지방세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서 협의이혼, 재산분할 청구가 있는 경우 취득세 세율에 대한 특례를 적용하고 있었지만 사실혼의 경우에는 위 특례를 적용하지 아니하였다(그러나 지금은 협의이혼, 재산분할청구, 재판상 이혼의 경우 특례를 적용하도록 지방세법 등의 규정이 변경되었다). 대법원은 올해 9월 19일 “위 지방세법 규정은 원칙적으로 협의상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한 규정이지만 재판상 이혼 시에 준용되고 혼인의 취소 및 사실혼 해소의 경우에도 해석상 준용되거나 유추 적용된다”고 밝혀 사실혼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의 경우에도 취득세 특례가 적용된다고 하였다(대법원 2016두36864 사건 참조). 이에 따라 위 사례의 경우 A는 5980만원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사실혼에 대하여 취득세율 특례를 적용하는 것은 획기적인 판결로 볼 수 있다. 과세 측면에서도 사실혼에 대하여 법률혼과 동일하게 인정을 해주어야 하고 이로 인해 사실혼 관계가 더 두텁게 보호되는 효과가 있다. 향후 취득세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실혼 관계 존재에 대하여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사실혼 여부에 대하여 과세관청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이를 증명한 사람에게 사실혼의 존재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앞으로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평소 사실혼에 대한 자료를 잘 모아둘 필요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사례 A는 B와 1980년 1월 1일 혼인하였으나 성격차이로 불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1995년 1월경 A는 부모님을 위해 고향 집을 수리하기 위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B와 갈등이 심해져 결국 이혼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B가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자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이혼을 못하고 있었다. A는 B와의 불화 중 C를 알게 되었고, C가 위자료를 빌려 주어 B와 이혼하였다. A는 B와 이혼 후 C와 1998년 1월 혼인신고를 하여 법률상 부부가 되었다. A와 C가 혼인한 이후 B는 A와의 사이에 낳은 딸을 데리고 나타나는 등 A와 C의 혼인생활을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C는 A와 B가 위장이혼한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A와 C의 다툼이 심해져 1999년 1월부터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A는 C와 별거하게 되자 C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C는 직장도 그만두고 A와 혼인생활을 하였으나, 별거하면서 생활비를 받지 못하였다.
C는 2000년 1월 2일 A를 상대로 과거의 부양료 및 혼인해소시까지의 부양료를 청구하였다. C의 청구는 용인될까.
부부 사이의 부양의 의무는 민법 제826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이고 부양을 받을 사람의 생활과 부양의무자의 생활을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 공동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1차적 부양의무이다.
위 사례의 경우 A와 C는 법률상 부부이고, A는 C에 대하여 부양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A는 자신의 급여를 통해 C가 자신과 같은 정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생활을 보장하여야 할 부양의 의무를 진다.
C가 A에게 청구한 부양료를 살펴보면 1999년 1월 1일부터 2000년 1월 1일까지의 부양료(과거 부양료)와 2000년 1월 2일부터 혼인해소 시(예를 들면 이혼할 때까지)까지의 부양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부양의 의무는 혼인 시부터 부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의 이행을 청구받기 이전의 부양료의 지급은 청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부양의무의 성질이나 형평의 관념에 합치된다”고 하여 과거의 부양료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의 이행청구를 요구하고 있다(참조 : 대법원 2008.06.12. 자 2005스50 결정).
위 사례에서 C가 1999년 1월 1일부터 2000년 1월 1일 사이에 부양료를 청구하는 등 부양의무 이행을 A에게 요구하지 아니하였다면 위 기간의 부양료는 받을 수 없다. 따라서 C는 2000년 1월 2일부터 혼인이 종료하게 되는 시점까지의 부양료를 인정받을 수 있다.
참고로 자녀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양의무 이행의 청구가 있어야 과거의 부양료를 인정받을 수 있다.
양승동(梁勝童)
연세대 법대, 대학원졸. 사법연수원 3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현재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
양천사랑복지재단 고문변호사 겸 이사.
조선인들 중 두 번째 해외 나들이를 한 사람은 1888년 미국에 공사로 파견된 박정양(朴定陽, 1841~1905.11) 일행이다. 사절단의 ‘일원’이며 가이드로 수행한 인물이 호러스 알렌(Horace Allen, 1858~1932), 한국어 이름 안련(安連)이다. 알렌은 조선이 서양 국가들과 개항조약을 맺은 후 1884년 조선에 온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이다.
조선-미국 개항조약에 선교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 6조에 ‘조선 개항장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해당 지역에서 건물 또는 토지를 임차하거나 주택 또는 창고를 건축할 수 있다’, 8조에는 ‘언어, 문학, 법률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토지나 주택을 사서 교회 등 문화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초대 미국 공사 푸트(Lucius Foote)는 기독교 박해가 자행된 조선에서 선교사 신분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알렌을 ‘미국 공사관에 속한 무급 의사’로 임명한다.
알렌은 조선에 도착한 지 3개월 후인 이해 12월 갑신정변에서 개화파의 공격으로 죽어가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閔泳翊)을 치료한다. 한밤중에 피투성이가 된 민영익이 업혀 와서 치료받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픽션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 운명적 만남 덕분에 그는 명성황후와 황실의 신임을 듬뿍 받는다. 명성황후는 알렌이 조제한 약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알렌이 감기약을 알약으로 주었다면 그 후 다른 의사가 조제한 가루약은 같은 성분이라도 먹지 않고 알약으로 바꾸어 오라고 할 정도로 알렌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미국인’ 알렌이 구한말 ‘소용돌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것은 숙명처럼 보인다. 그는 1887년 조선정부의 참찬관(參贊官, 오늘날의 서기관) 자격으로 박정양의 미국행을 주선하고 수행하며 1890년에는 미국 외교관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정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높이 사서 알렌을 서울 주재 미국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했다. 1897년 9월에는 공사관 최고위 직인 공사로 승격된다.
그러나 러일전쟁 시기 미국이 한국문제에 적극 개입할 것을 주장하고 본국 정부의 친일-반러시아 정책을 비판함으로써 테드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과 국무부와 마찰을 빚어 1905년 3월 해임된다. 연세대는 의료 선교사로서 그의 공적을 기리는 ‘알렌관(Allen Hall)’을 만들었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상반된다. 조선의 의학 발전과 독립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는 호의적 평가와, 미국인들을 위해 이권을 얻는 데 급급한 이기적 인물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 문제는 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그의 전기가 가장 잘 설명해 줄 것이다. 1962~1970년 위스콘신 대학 총장을 지낸 역사학자 프레드 해링턴(Fred Harrington)이 쓴 이 책의 제목은 우리말로 옮기면 이다. 그는 처음엔 선교사로 일했고, 그 다음 조선 왕실과의 친분을 이용해 미국인들의 이권 획득을 도왔으며, 마지막엔 미국 공사로서 일본인들을 상대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광린 교수가 로 번역했다.)
그의 전기에서는 조선에 대한 애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종 등 황실과 당시 조선사회 전반에 만연한 미국에 대한 호감으로 인하여 그를 친한적(親韓的) 인사라고 인식했을 뿐이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을 지지하고 영토적 야심이 없다고 믿은 고종은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아 이 지역 외교무대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게 도덕성뿐이었다. 한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도나 능력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평가이다.
그런데도 고종은 미국이 조선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알렌에게 수차례 묻는다. 알렌은 이에 서슴없이 “미국인들에게 광산 이권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한다.
아시아에서 최대 금광인 운산금광(평북 운산)은 이렇게 해서 미국회사가 차지하게 되었다. ‘노다지(no touch)’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 금광이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이 강제로 이를 매입할 때 미국 외교문서는 ‘운산금광의 매매와 양도는 미국의 선구자적 금광 사업가들이 동양의 미개발된 땅에서 44년간 이익을 남긴 흥미로운 사업을 종결짓는 것’이라는 감동적이며 애수에 찬 논평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나 영국은 고종이 금광만이 아니라 철도, 전차, 전기 등 각종 이권을 ‘팔면서’ 높은 배당금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고종의 비자금은 주로 이를 통해 조성된 것이다.
그는 보고서에서 조선을 부정,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곧 망할 나라라고 묘사하고 있다. ‘조용한 아침(Morning Calm)’이란 이제 옛말이다. 조선은 이제 아침이 지나 춥고 음울한 고요의 땅(the Land of the Cold Grey Calm of the Morning After)이 되어가고 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自治]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과거와 같이 지배자(overlord, 중국)를 가져야 한다’, ‘고종은 로마가 불타는 것을 보면서 악기를 타는 네로와 같이 궁녀들과 유희나 즐기고 있다’, ‘정부가 바뀌면 천연자원과 잠재성을 가진 국민을 가진 이 나라에 약간의 희망을 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 승리한 나라가 조선을 삼키고, 국민들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면서 탐욕스럽고도 비인간적인 관리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 간 전쟁의 결과가 무엇이든 한국은 그 승자에게 먹힐 것이다’. 이것은 알렌 개인의 평가라기보다는 당시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의 일반적인 인식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후일 서양 열강들이 일본의 강제합병에 찬성하거나 묵시적으로 동의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의사 출신 알렌은 특히 조선인들의 비위생적인 모습에 대한 혹평도 빠뜨리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목욕을 하지 않으며 우물물을 소독 없이 식수로 사용하여 선교사들이 이질 등 질병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건 알렌의 편견이라 할 것이다. 기후에 관계없이 매일 목욕을 하는 게 위생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은 기후가 습하여 목욕을 자주 해야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조선인은 우물물을 먹어도 이질에 걸리지 않는데 선교사들만 걸린 것은 풍토병에 대한 면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고를 지닌 인물이 조선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간다.
△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과 졸, 한국일보사 기자, 런던정경대 석ㆍ박사(외교사 전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학연구원장 등 역임. 저서 등.
갑과 을은 1976년 3월 9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다. 둘 사이에는 성년인 자녀 3명이 있다. 그런데 갑은 2000년 1월경 집을 나가 그의 딸을 출산한 병과 동거를 시작했다. 을은 갑이 집을 나간 후 혼자서 세 자녀를 양육했다. 직업이 없는 을은 갑으로부터 생활비로 지급받은 월 100만원 정도로 생계를 꾸려갔지만, 갑은 2012년 1월경부터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갑은 을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63세가 넘은 을은 위암 수술을 받고 갑상선 약을 복용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을은 갑과의 혼인관계에 애착을 가지고 혼인을 계속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갑이 제기한 이혼소송은 인용될까.
2015년 말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혼외자를 언급하면서 배우자와 이혼하겠다고 말하고, 그 배우자는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텔레비전, 신문 등에서는 최 회장의 이혼을 다루면서 ‘유책주의’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이혼제도에 관한 각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혼인에 따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 두 가지로 처리된다. 하나는 그 상대방에게만 재판상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유책주의다. 다른 하나는 부부 당사자의 책임 유무를 묻지 아니하고 혼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실, 즉 혼인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인 파탄을 이유로 하여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예외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①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 ②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③세월이 감에 따라 혼인 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해져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게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이다. 즉 이런 세 가지는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다.
최태원 회장 사례에서는 이혼소송을 한다면 최 회장이 혼외자를 둔 유책배우자인 것은 분명해 보이나 대법원이 유책주의의 예외로 인정한 경우에 해당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의 사례에서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을 확인, 갑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갑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고,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도 을이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거나 갑의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에 비추어 최 회장의 경우는 어떻게 될지 결론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B씨는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아들 C씨를 두고 있었다. A씨를 만나 교제하다가 청혼을 받아들여 혼인하였다. A씨는 B씨와의 혼인 중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일부와 새로 매입한 부동산을 B씨 명의로 명의신탁을 했다. 그럴 정도로 겉으론 사이가 좋아 보였으나 사실 이들의 혼인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A씨는 B씨에 대한 불만이 많아 자주 심하게 다투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다툼 끝에 B씨를 살해하였다. B씨 명의의 재산은 모두 B씨의 아들 C씨에게 상속됐다. A씨는 B씨에게 명의신탁한 재산을 찾으려고 C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A씨의 청구는 인용될까. A씨는 B씨의 배우자이지만 B씨를 살해한 사람이어서 민법 1004조 1호에 따라 상속인이 될 수 없다.
위 사례의 쟁점은 혼인 중에 이루어진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약정이 일방의 배우자가 사망하여 부부관계가 해소된 경우에도 유효한지 여부다. 즉 일반적으로 명의신탁을 받은 사람이 사망하면 그 명의신탁관계는 재산상속인과의 사이에 그대로 존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에서도 동일하게 볼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에 의하면 부동산 명의신탁 약정은 기본적으로 무효이나 위 법률 제8조에서 예외 사유를 두고 있고, 위 법률 제8조 제2호는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등기한 경우’로서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약정 및 그 약정에 기하여 행해진 물권변동을 유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은 ①문언(文言)상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신탁 등기의 성립 시점에 부부관계가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 부부관계의 존속을 그 효력요건으로 삼지 아니하고, ②일단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 부부간 명의신탁에 대하여 그 후 배우자 일방의 사망으로 부부관계가 해소되었음을 이유로 이를 다시 무효화하는 별도의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 ③유효한 부부간 명의신탁의 경우 부부관계가 해소된 이후에 이를 그대로 유효한다고 인정하더라도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가 훼손될 위험성이 크지 아니한 점을 근거로 부부간의 명의신탁이 일단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었다면 그 후 배우자 일방의 사망으로 부부관계가 해소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명의신탁 약정은 사망한 배우자의 다른 상속인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1. 24. 선고 2011다99489 판결)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B씨의 사망으로 인하여 C씨가 B씨 명의의 부동산을 모두 상속한 경우 C씨는 A씨와의 관계에서는 B씨의 지위를 이어받아 명의수탁자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즉 A씨는 B씨의 상속인인 C씨에게 B씨와의 명의신탁 약정을 근거로 A씨 자신의 부동산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단 이번 사례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이 유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부부간 명의신탁이 무효라고 한다면 다른 법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J씨는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2012년 3월 말경에 사망하였다. 상속인으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 장녀 B씨, 차남 C씨가 있었다. J씨는 일본에서 재산을 모으지 못했고 오히려 빚만 있는 상태였다. 장녀 B씨는 2012년 6월 5일,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는 상속포기기간을 3개월 연장 받은 후 2012년 8월 27일 도쿄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하였다. B씨의 상속포기 신청은 2012년 8월 8일 수리되었고,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의 상속포기신청은 그 해 9월 13일 수리되었다. 이에 반해 차남 C씨는 상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J씨는 대구 동구와 경북 영천시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차남 C씨는 이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는 “차남이 자신만 상속받기 위해 대한민국 부동산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일본에서 상속포기를 하게 한 다음 이전등기를 했다”며 자신들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지분에 대해 C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 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K씨와 A씨의 청구는 인정될 수 있을까.
위 사례에서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가 일본 법에 따라서 상속포기를 하였는데 그 상속포기가 유효하여 배우자 K씨와 장남 A씨가 상속인이 될 수 없는지, 아니면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3개월 내에 상속포기 신청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J씨 사망 3개월이 지난 후에도 대한민국에서 상속포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상속인의 지위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J씨가 일본에서 사망한 후 그 배우자와 장남, 장녀가 상속포기신청을 하였으므로, 상속포기 절차에 대한 관할 법원 및 상속포기에 관해 어느 나라의 법률을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즉 K씨와 A씨가 대한민국에 있는 상속재산에 대하여 대한민국 법원에 별도의 상속포기 신청을 하여야만 하는지가 문제되고,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3개월 내에 상속포기를 하여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K씨와 A씨는 “도쿄 가정법원에 한 상속포기신청은 국제사법 제17조 제5항이 행위지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물권 그 밖에 등기해야 하는 권리를 정하거나 처분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J씨가 소유한 대한민국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K씨와 A씨의 상속포기는 일본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고, 대한민국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구고등법원은 “국제사법상 상속에 관한 준거법은 사망한 J씨의 본국 법인 대한민국 민법이 원칙이지만, 법률행위 방식인 행위지법은 일본의 법에 의한 것도 유효하기 때문에 원고들(K씨와 A씨)이 일본 법원에 신청한 상속포기도 유효하다”고 밝히고 “따라서 원고들은 모두 상속포기 기간 내에 상속포기 신청을 했으므로 상속포기 기간인 3개월이 지난 뒤에 상속포기를 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
위 사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일본(타국)에 살다가 사망한 경우 상속인들이 일본 법원(타국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청했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부동산 등 재산에도 상속포기의 효력이 미친다는 점을 밝힌 판결이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 K씨와 A씨가 일본에서 한 상속포기 신청의 효력은 유효하다. 이에 따라 C씨가 유일한 상속자로서 대구 동구와 영천시에 있는 부동산을 상속받았으므로, K씨와 A씨가 C씨를 상대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례1> A씨는 생명보험 계약을 하면서 보험계약자는 A씨, 피보험자는 A씨로 하고 보험금 수익자는 배우자인 B씨로 하였다. 그 뒤 A씨가 사망한 후 배우자 B씨가 보험금을 받았다. 이에 대해 A씨의 채권자들이 보험금은 상속재산이므로 자신들에게 채권을 변제하라고 요구하면 B씨는 거부할 수 있을까 없을까?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보험금의 수익자를 배우자나 자녀들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가입자가 사망하면 보험계약에 따라 보험금 지급청구권을 갖게 되는데, 그 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상속재산에 포함이 되는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속재산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상속인들 간의 상속재산 분배의 효과가 다르고 제3자, 특히 피상속인의 채권자에 대한 대항 여부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갑’이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하면서 배우자인 ‘을’을 수익자로 지정하였다면 ‘을’은 ‘갑’이 사망하는 경우 보험금 전액을 받은 후 나머지 재산도 법정상속분에 따라 받을 수 있다. 보험금이 상속재산이 아니라 을의 고유한 재산이라면 갑의 채권자는 상속을 이유로 B씨에게 채권 변제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갑’이 사망해 ‘을’이 보험금을 수령하였는데 ‘갑’에 대하여 채권을 갖고 있는 채권자가 ‘을’에게 상속을 원인으로 보험금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을’은 고유재산임을 이유로 위 채권자의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위의 사례에서 B는 보험금이 고유재산임을 근거로 A의 채권자들의 채권변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사례2> A씨가 남편 B씨를 피보험자로 하고, A씨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하여 생명보험을 체결하였다. 보험계약자이면서 보험수익자인 A씨와 B씨가 동시에 사망한 경우 보험금 수익자는 누구일까?
우리 상법 제733조 제1항에서는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 또는 변경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만일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하지 아니하고 사망하는 경우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보험수익자를 변경하지 않고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되는 것이 원칙이다(제2항). 보험수익자가 보험 존속 중 사망한 때에는 보험계약자는 다시 보험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으나 지정권을 행사하여 다른 사람을 보험수익자로 지정하지 아니하면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제3항). 보험계약자가 지정권을 행사하기 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제4항).
그런데 보험계약자이자 보험수익자와 피보험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상법 제733조 제3항 후단에 준하여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이 보험수익자가 되고 이는 보험수익자와 피보험자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도 같다고 본다.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이 피보험자 사망이라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에 보험수익자의 지위에서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보험금 지급청구권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라고 본다.
단 대법원은 보험금 지급청구권을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한 재산이라고 하면서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8조 제1항의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받는 생명보험 또는 손해보험의 보험금으로서 피상속인이 보험계약자인 보험계약에 의하여 받는 것은 상속재산으로 본다’는 규정을 헌법이나 실질적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된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