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이 드라마는 가상의 공간인 주상복합아파트 ‘헤라팰리스’의 펜트하우스를 둘러싼 갈등과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펜트하우스는 어떨까? 어떤 사람이 거주하고, 부동산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최근 영국의 억만장자이자 가전 브랜드 ‘다이슨’의 창립자 제임스 다이슨 회장은 싱가포르의 펜트하우스를 6200만 싱가포르달러(약 520억 원)에 매각했다. 이 펜트하우스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64층 건물의 꼭대기 3개 층으로 약 1950㎡ 넓이에 4개의 침실과 개인 야외 수영장을 비롯한 카바나, 와인 저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고급 펜트하우스는 한국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고가의 펜트하우스를 구매할 수 있는 ‘부자’가 증가한 덕분이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0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한국 부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약 25만 명이던 한국의 부자는 5년 사이 약 35만 명으로 10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부동산 자산은 비중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16년 51.4%였던 부동산 자산의 비중은 2020년 56.6%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금융 자산은 43.6%에서 38.6%로 하락했다.
다른 요인은 바로 ‘중대형 면적에 대한 수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늘어난 홈루덴스가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홈루덴스는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실내에서 여가활동을 보내는 이들을 일컫는다. 집을 비우던 낮에도 전염병의 여파로 가족끼리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는 경우가 생겼고, 이는 중대형 면적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약 270대1에 육박했다. 다른 면적의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수치다. 부동산 관계자는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늘면서 기본적으로 큰 면적을 자랑하는 펜트하우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청약 치열…1순위는 사생활 보호
실제로 펜트하우스는 청약에서 소수의 세대만 모집하지만 경쟁률은 치열하다. 흥미로운 건 강남이나 한남동처럼 전통적인 부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인기가 높다. 지난해 청약 접수를 진행한 세종시 한림풀에버는 가장 높은 청약 경쟁률이 펜트하우스에서 나왔다. 136㎡형으로 두 가구를 뽑는데 686명이 청약에 접수해 경쟁률은 무려 343대1이었다. 속초디오션자이의 전용면적 131㎡ A타입 펜트하우스도 114대1까지 경쟁률이 치솟았다. 당시 355가구 모집(특별공급 제외) 전체 평균 청약 경쟁률은 17대1이었다. 이에 대해 부동산114 관계자는 “펜트하우스가 지방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는 서울보다 좋은 조망권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사람의 면면은 화려하다. 기업인, 국회의원, 연예인 등 유명한 자산가들이 거주한다. 실제로 개그맨 주병진은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등장해 거주하는 상암동 카이저팰리스 펜트하우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로덴하우스 웨스트빌리지 펜트하우스를 판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이 펜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서울시 고급아파트 주거선택요인 중요도 분석’에 따르면 나인원 한남 입주 대상자를 중심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펜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 1순위는 ‘사생활 보호’였다. 입지 환경에 해당하는 자연환경과 부동산으로서 미래 가치는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자산가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라고 말하며 “고액 자산가일수록 사생활 보호를 위해 타인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을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인기 있는 럭셔리 펜트하우스
▲ 나인원 한남
전통적인 부촌인 한남동에 자리 잡고 있다. 입지 조건을 보면 남산을 뒤에 두고 한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에 해당하는 길지다. 사생활 보호도 철저하다. 층마다 단독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아파트 주 출입구부터 주차장, 동 출입구, 현관에 이르는 4단계 보안 체계가 작동 중이다.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사사키 요우지가 조성한 산책로가 있고, 국내 최대 규모의 클럽하우스도 단지 내에 위치한다. 복층과 펜트하우스 가구는 별도의 지정 차고와 전용 창고도 있다.
▲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성수동에 위치해 한강은 물론 서울숲, 남산을 볼 수 있다. 대림산업은 조망 프리미엄을 더하기 위해 특화설계를 적용했다. 모든 가구에서 서울숲이나 한강 조망이 가능하도록 층별 가구 수를 3가구, 9층 이하는 4가구로 조정하고 T자로 건물을 배치했다. 각 세대 내부에는 창문 중간 프레임을 없앤 아트 프레임과 넓게 펼쳐지는 270도 파노라마 뷰가 적용돼 거실, 주방, 욕실 등 집 안 곳곳에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 에테르노 청담
스페인 건축 거장 라파엘 모네오가 설계에 참여했으며, 청담동에 위치한다. 모네오는 1996년에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다. 지하 4층부터 지상 20층까지로 29세대만 거주할 수 있다. 대지 면적에 비해 세대 수가 적기 때문에 희소성이 높고, 올림픽대로와 오솔길공원이 가까워 막힘없는 한강 뷰를 제공한다. 내부 층고가 높아서 공간감과 개방감이 뛰어나다.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뉜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가는 사람,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 어느 것이 더 맞고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걸 ‘용기’라 읽고 ‘모험’이라 쓴다. 이번 호에서는 전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타투이스트 조명신(56)을 만났다.
의사와 타투이스트. 이 두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수술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한쪽은 엘리트에 가깝고, 다른 쪽은 고독한 예술가 같다. 바둑으로 치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백돌이고,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는 흑돌처럼 보인다. 물론 의미의 경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지의 대조는 확실하다.
이 거리감을 증명하듯 수술복을 입은 채 타투 시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는 궁금했다. 메스를 들던 의사가 왜 수술복을 입고 몸에 타투를 새기는 걸까? 의사로서 남극에도 다녀오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공부한 이유는 뭘까? 특이한 이력에 관한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 그를 만나 지나온 시간 속 사연을 들어봤다.
성형외과 의사 시절 타투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당시 의사로서 타투 제거 시술을 많이 했다. 진짜 다양한 타투를 많이 지웠다. ‘착하게 살자’, ‘영숙아! 사랑해’와 같이 다소 유치한 문장부터 화려한 꽃이나 화살표가 꽂힌 하트 등을 지웠다. 일종의 낙서라고 보면 된다. 10대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닐 수 있지만,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했던 타투를 지우는 분이 많았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병원에 장미가 그려진 타투를 지우러 온 분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려진 문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장미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 시술한 분을 찾아갔다. 그분은 송탄 미군 부대 앞에서 ‘키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셔서,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분 덕분에 타투이스트로서 첫걸음을 잘 뗐다. 당시 타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였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성격상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의사 교육 과정에 타투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타투 시술을 시작했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미국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메스를 들지 않는 의사, 아쉬움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위에 있는 형과 누나들이 다 재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에 부담이 컸다. 알다시피 등록금부터 생활비, 월세 등등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나? 우리 집 형편으론 그게 빠듯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의사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성적도 잘 나와서 의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다만 경제적 부담 없이 다니고 싶어서 여러 의대를 알아봤는데, 마침 한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매달 용돈을 지원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였지만,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길과 달라서 방황했다.
원래의 꿈은 고고학자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별을 관찰하거나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잠시 보류했다. 의사가 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그 꿈들을 내려놓았다.
매머드 연구가 그 연장선일까요?
연구까지는 아니고 매머드와 관련된 공부를 잠깐 했다. 끝내 못 이룬 고고학자의 꿈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지도 교수님이 사하 공화국으로 매머드 연구를 하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다녀왔다. 사하 공화국에는 냉동 상태로 발견되는 매머드가 많아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의사로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인류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다녀왔다. 예전에는 남극에도 잠깐 있었다.
남극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월동의사로 다녀왔다. 알다시피 남극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없다. 의사라고 해서 남극 기지의 월동의사로 무조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특수성이 있어,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기회였다. 한 명을 뽑았는데 여덟 명이 지원했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 전략적 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관장 부서가 복지부였는데, 복지부 장관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 7가지를 적어서 편지를 보냈다. 장관 대신 실무자가 편지를 읽고, 나의 적극성을 높이 샀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결국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보건의 시절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의사로서 본분을 잊은 적 없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다. 밑에 있는 직원도 와서 만류하고, 동료 의사도 반대하고, 타투이스트도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 의사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걸 하냐”는 식이었다. 홈페이지에는 “이게 그림이냐? 학원이라도 다녀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아무 맥락 없이 “밤길 조심하세요” 하며 험악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타투이스트는 직접 찾아와서 자중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이제는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주로 어떤 타투를 하시나요?
정해진 틀은 없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다만 의사이다 보니 메디컬 타투에 신경 쓰고 있다. 의료 문신 혹은 재건 문신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타투가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타투는 복원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백반증 환자의 경우 하얗게 된 부위를 타투를 이용해 보통의 살처럼 만들어준다. 의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타투를 하면서 내 신분을 한 번도 망각한 적은 없다.
타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성형외과를 하면서 3만 건 정도의 쌍꺼풀 시술을 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투는 시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기억난다. 특히 한 부자(父子)의 사연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대가 없던 부자였는데, 타투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 아버지는 타투를 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말리셨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나중에는 등판에 타투를 새기고 가셨다. 마지막 시술을 받고 가시면서 고맙다고 했다. 타투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들과 말문을 열게 됐다고 하시면서. 그 기억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다.
타투는 구속할 수 없는 자유
20년 동안 타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투는 늘 새롭다. 코와 쌍커풀은 정형화된 방법으로 시술한다. 하지만 타투 세계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법이나, 귀걸이를 고르는 취향도 다 다르지 않나? 타투도 마찬가지다. 같은 독수리 도안이라도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새로움이 없었다면 지루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알려준 건 키미이지만, 실제로 나를 키운 건 고객이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그렇지 않나? 나도 똑같다. 타투도 같은 형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내용을 담는 일이다. 끊임없는 새로움이 내 원동력이다.
삶의 롤모델이 있나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반 고흐를 존경한다. 둘 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해바라기이지만 고흐는 전부 다 다르게 표현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것도 모자라 패션에 자신만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목표는 없다. 그냥 타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2년째 소방관에게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찰관과 응급실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료 시술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테러가 발생할 당시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분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영어가 빼곡하게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들의 이름이었다. 미안과 존경의 표시로 말이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도 나중에 소방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결심을 이제야 실행하게 됐다.
타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구속할 수 없는 자유다.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독수리를 새기고 싶으면 새기면 된다. 20대에 할지, 나이 들어서 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것이다.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란 말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 미생은 가능성을 품은 순간을 뜻한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헷갈린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선택의 결과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조명신 원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가 선망하던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공중보건의 시절 남극 월동 의사에 도전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수술실에서 메스를 드는 대신 몸에 타투를 새겼다. 유년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탐구했다. 현재도 타투이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메디컬 타투를 시술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바둑판 안에 갇힌 돌로 남기를 거부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도전하고 있다.
그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락한 안정이 아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를 좇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이지만 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 ‘안정’ 대신 ‘모험’으로 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년에 소박하게 타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조명신 원장의 또 다른 모험을 응원한다.
2021년 신축년이 밝았다. 새해가 되었다고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게임 속에서 ‘리셋’ 버튼을 누르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듯 1월 1일부터는 새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지난해 모두가 고생한 만큼 올해는 희망찬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해보면서,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버킷리스트 (The Bucket List, 2007)
병상에서 만난 두 노인 ‘카터’(모건 프리먼)와 ‘잭’(잭 니콜슨)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앞두고 죽기 전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평생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죽음 앞에서는 공평한 두 사람이 병상을 박차고 나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버킷리스트를 이뤄나가는 모습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할리우드 노장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이 영화로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대중화되면서 평생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는 문화가 확산됐다. 새해를 맞아 뜻깊은 계획을 세우고 싶다면, 영화를 보며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iness, 2006)
한물간 의료기기를 판매하며 어린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와 어렵게 살아가는 세일즈맨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가 절망 끝에서도 행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무일푼 노숙인에서 무급 인턴으로, 자산관리회사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의 CEO로 거듭난 월가의 신화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고,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행복의 열쇠를 찾아낸 가드너의 굴곡진 삶이 윌 스미스와 그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의 절절한 부자 연기로 극대화된다. 영화 후반부쯤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가드너가 카메오로 등장하니, 두 눈 크게 뜨고 집중해서 시청해보자.
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16년째 잡지사에서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는 사진 에디터 ‘월터’(벤 스틸러)가 잃어버린 잡지 표지 사진을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매일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시간을 보내던 월터는 여행지에서 자신의 상상들이 현실로 이뤄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인생에 전환점을 맞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상어와 싸우고, 폭발 직전의 화산으로 돌진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월터는 현실로 돌아와서도 더이상 상상에 갇히지 않고 상상을 눈앞의 현실로 이뤄나가며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히말라야 산맥 등 대자연을 넘나들며 성장해나가는 월터의 환상적인 여정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독자는 몇 살에 골프를 시작했는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돼서 지금은 손을 놓았다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꼭 용기를 내면 좋겠다.
내 아버지 김정홍 옹은 2014년 늦가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진짜로 평생 처음. 그는 1940년생이다. 메이저 대회 세계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런 그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만 74세 때. 갑자기 골프를 치기로 작정한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동년배 중에 골프를 치는 이가 몇 있어서 어울리기 위해서라고 짐작만 했을 뿐. 아버지는 이듬해 봄에 친구들과 필드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당시에 아마추어치곤 기량이 상당했던(실은 기량이 상당하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버지에게 그립부터 가르쳤다. 그리고 클럽 페이스가 상당히 많이 닫힌 드라이버를 구해서 선물했다. 초보 골퍼가 고통받기 마련인 슬라이스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스윙을 제대로 익히는 것만으로 슬라이스를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몇 달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는 골프에 빠져들었고 입문 후 6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진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한 시간 가까이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한꺼번에 너무 오래 연습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허리를 이따금 삐는 그가 무리할까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는 틈이 나면 내게 샷을 배우고 또 혼자서 그것을 익혔다. 진짜 연습다운 연습을 한 것이다. 연습은 한자로 익힐 ‘연’, 배울 ‘습’ 아닌가?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아버지가 친구들과 필드에 나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이삼 일 전 나는 시뮬레이션 골프 연습장(흔히 말하는 스크린 골프)에 그와 함께 갔다. 실전을 대비해서. 그리고 거기서 부자간 라운드를 했다. 결과는? 그는 109타를 쳤다. 정말이다. 파3인 13번 홀에서는 파도 하나 잡았고. 나는 몇 타나 쳤냐고? 버디 6개 보기 2개로 68타를 쳤다. 그것도 챔피언티에서 대회 모드로 놓고.
아차, 얘기가 딴 길로 샜다. 다시 내 아버지 얘기로 돌아가자. 며칠 뒤 그는 아침 느지막이 데리러 온 친구들과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모 골프장으로 첫 필드 라운드에 나섰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결과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라운드가 끝났을 무렵부터 전화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다가 밤에 집에서 만났을 때야(그렇다 나는 아버지와 한집에 산다) 그에게 물었다. “오늘 재미있게 치셨어요?”라고. 혹시 속이 상했을지도 몰라 ‘몇 타나 쳤냐?’라는 질문은 꾹 참았다. 그런데 곧이어 나온 대답에 나는 눈이 커졌다. 아버지는 “친구들이 연습장 등록해야겠다고 하면서 가더라”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는 레드티에서 98타를 쳤다고 했다. 흔히 숙녀들이 주로 쓴다고 해서 레이디티라고 한다. 그러나 주니어도 쓰고 노신사도 쓰기도 하니 레드티가 더 멋진 표현이다.
98타!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독자는 처음 필드에 나간 날 몇 타를 쳤는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쳤다. 볼도 무수히 잃어버렸고. 그런데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생애 첫 라운드에서 ‘파백’을 하다니. ‘파백’은 100타를 처음 깨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친구들이 연습장에 등록하겠다며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가 ‘내뿜은’ 장타가 부러워서였다고. 그제야 돌이켜보니 그랬다. 시뮬레이션 골프 연습장에서 아버지의 드라이버 티샷은 160m 가까이 나갔다. 그보다 100m 이상 더 멀리 보내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아버지의 친구들이 볼 때는 입이 떡 벌어지는 거리였던 것이다.
아들에게 골프를 배웠다고 하니 친구들이 더 부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싱글 핸디캡퍼(평균 핸디캡이 한 자릿수인)인 아들이 그해 10월에는 급기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된 것은 애독자라면 다 아는 얘기다. 첨 듣는다고? 그렇다면 아직 애독자 인증을 하기엔 멀었다. 이미 10회 남짓 나간 이 칼럼을 첫 회부터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내 아버지가 늦깎이로 화려하게 골프 월드에 입문한 것은 순전히 행운 덕분만은 아니다. 그는 첫 라운드를 준비하는 6개월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골프를 수련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지만 마음을 열고 상수(上手)로부터 조언을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어디 자식에게 조곤조곤 물어보기가 쉬운가?
내 아버지와 동갑인 잭 니클라우스는 지난 9월에 미국 미주리주에서 열린 페이슨밸리컵 때 이벤트 행사에 출전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일랜드 홀인 파3에서 타이거 우즈 등과 니어리스트(티샷으로 볼을 홀에 가장 가까이 붙인 선수가 이기는 것)를 겨뤘다. 등이 약간 굽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니클라우스는 거뜬하게 볼을 그린에 올렸다. 그를 보며 6년 전 내 아버지가 골프채를 처음 잡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골프에 나이는 없다. 몇 살에 시작하든 의지만 있다면 실력이 향상된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벤 호건(Ben Hogan)이 한 말이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가을 초목이 서리를 만난 격이니 만사를 조심하라. 도모하고 자 하는 일이 있다면 시기를 잘못 선택하여 운기가 불량해지니 잘 살펴봄이 길할 것이다.
•84년생 : 억울한 일이 생기나 올바른 마음이 통하게 한다.
•72년생 : 귀인이 돕는다. 도울 거리를 잘 제공하라.
•60년생 : 서방이 불길하니 서쪽에서 오는 사람을 믿지 마라.
•48년생 : 감언이설은 조심하고 충고하는 말에 소득이 따른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메마른 가지에 한줄기 소나기라 갈증은 풀리나 충분치 못하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다소 해갈은 될 것이나 해결을 보기는 어렵다. 좋은 시기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림이 길하다.
•85년생 : 생각지도 않던 이성운이 오나 오기 발동하면 없어진다.
•73년생 : 팔도에서 다 모여도 마음이 드는 것이 없다.
•61년생 : 새로운 일은 청사진만 요한 하다. 투자는 조금 해보자.
•49년생 : 한 건은 잘되고 나머지는 힘들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합심하여 일은 성사되나 여흥을 조심하라. 오늘의 일진은 희로애락이 번갈아 일어나니 이는 방심한 가운데 발해지는 것이다. 망동하지 말고 자중함이 길하다.
•86년생 : 생각하던 것이 내게 닦아 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74년생 : 나의 말이 통하지 않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나 친구가 돕는다.
•62년생 : 장하도다. 노력의 대가가 이제야 나타나는구나.
•50년생 : 매사 순탄하나 가짜가 진짜 행세하니 도둑을 조심하라.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점점 열리나 친구를 조심하고 도적을 조심하라. 인간 구설과 손재가 발하니 좋은 운기가 감할까 두렵다. 매사에 신중할 것이니 소지품을 잘 지키기 바란다.
•87년생 : 남을 돌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마라. 돌보는 중에 이득이 있다.
•75년생 : 고였던 물이 길을 만나 바다로 가니 일이 술술 풀린다.
•63년생 : 일시적인 도움은 있으나 영원하지가 않다. 하루는 잘 넘긴다.
•51년생 : 눈 속의 송백이 그 절개를 변치 아니한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천신이 나를 도우니 기쁜 일이 많도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귀인의 도움도 있고 운기가 화통하여 만사가 여의해진다. 그러나, 경거망동은 금물이니 좋은 운기에 겸손함이 필요하다.
•76년생 : 재운이 좋으니 기회를 놓치지 마라.
•64년생 : 우연히 재물을 얻어 하루아침에 부자 되는 운이다.
•52년생 : 원기가 서로 생기니 백사가 유통하도다.
•40년생 : 급살이 침노하니 도둑을 조심하라. 도둑은 안에서 발생한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선악을 잘 가려 사람을 두면 만사가 형통하리라. 귀인과 악인이 주위에 있으니 어찌 구분하기 쉬울 것인가 하지만, 좋은 말은 독이 되고 듣기 싫은 말은 약이 됨을 명심하고 하길 바란다.
•77년생 : 재운은 오는데 싸움으로 체면이 상한다.
•65년생 : 명예에 뜻을 두니 금전에 손해가 크다.
•53년생 : 가뭄에 비를 만나니 잊고 있던 것이 제물이 된다.
•41년생 : 백사에 흠이 없으나 화재를 조심하라
◈ 말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상)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곳곳에 영광이고 가는 곳마다 환영이다. 오늘의 일진은 뜰 안에 만 가지 꽃들이 봄을 만나 개화한 모습과도 같으니 모든 일이 여의해지고 기분마저 화평하다.
•78년생 : 새로운 일거리가 나선다. 잘 고르면 평생 일이다.
•66년생 : 운수가 대통하니 재수가 여의 하도다.
•54년생 : 한 집안이 평안하니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
•42년생 : 운이 서방에 있으니 범이 날개가 나도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집안에 모두 한마음이니 꾀하는 일을 이룬다. 가화만사성이라 가정이 화평하면 모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잘 이루어짐과도 같으니 가족 간의 화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79년생 : 혼미한 중에 후배가 도우니 나도 도움을 주라.
•67년생 : 경쟁자가 도리어 나를 도우니 마음을 바로 씀이다.
•55년생 : 처마 밑에 신발도 신어야 내 것이지 무엇이든 잘 보존하라.
•43년생 : 그동안 모르게 한 일이 명예를 높이는 일이 된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좋은 것이 변하여 흉하게 되니 망령되이 움직이지 마라. 길함에 액이 낄 우를 범할 수 있으니 가벼이 행하지 말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침착히 처리할 것이니 꿩이 변하여 닭이 안 되도록 주의하라.
•80년생 : 애정행로에 방해가 많으나 힘으로 밀어붙이니 성사된다.
•68년생 : 뜻밖의 재물을 얻을 수니 기회를 잃지 마라.
•56년생 : 손재수로 기분이 망가지나 잃은 만큼 들어온다.
•44년생 : 안 들어 옴을 원망하지 마라. 나중에 다 들어온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면 자연히 몸이 편하도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과욕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지나친 욕심은 버리길 바란다.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필요하다.
•81년생 : 내가 남을 속이면 남도 나를 속이는 일이 많다.
•69년생 : 몸이 재운에 태워지니 동산이 환하도다.
•57년생 : 나르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이롭게 대인을 만난다.
•45년생 : 반드시 재물을 얻는다 아니면 집안에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시운이 길함을 만났으나 마음이 바르고서 얻어진다.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나 과욕으로 인해 길함을 잃을 우가 있으니 오늘의 일진은 망동하지 말고 은인자중함이 필요하다.
•82년생 : 우연히 재물을 얻을 운이다.
•70년생 : 걱정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면 다시 일어선다.
•58년생 : 자존심을 버리면 길성이 보인다.
•46년생 : 투기심을 버리고 조용히 지내면 손재는 면한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어린나무를 심으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룬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처음은 미약하나 후에는 많은 결실을 보게 됨을 의미한다. 노력하지 않은 가운데서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열심히 매진하라.
•83년생 : 나쁜 생각을 많이 하면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난다.
•71년생 : 동방에 길함이 있고 서방은 불길하다.
•59년생 :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알맞게 불어주니 재수가 대통이라.
•47년생 : 몸가짐을 겸손히 하니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배우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 ‘종이꽃’은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에 등극했다. 작품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해당하는 ‘백금상’을 수상했다. 안성기는 한국 최초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휴스턴국제영화제는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뉴욕 영화제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휴스턴국제영화제 측은 “상실과 아픔, 그리고 죽음 중간에 있는 영혼의 가슴 아픈 공명을 담아냈다”면서 “배우 안성기는 섬세하지만 선명하게, 공감되는 품격 있는 연기로 깊은 감성을 표현해냈다”고 평가했다.
국민배우 안성기부터 풍부한 감정선과 연기력으로 사랑을 받은 유진 그리고 다양한 작품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는 김혜성이 출연한다. 안성기는 장의사 ‘성길’ 역을 맡아 김혜성과 특별한 부자 궁합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혜성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삶이 무너진 성길의 아들 ‘지혁’ 역을 맡았다. 유진은 내면의 상처를 가졌지만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은숙’ 역을 맡았다.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성길 부자를 변화시키는 인물이다.
영화 ‘종이꽃’은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들과 살아가는 장의사 성길이 옆집으로 이사 온 모녀를 만나 잊고 있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이야기이다. 상실과 아픔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묵직한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낸다. 특히 각자의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희망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관객에게 위로를 선사할 예정이다. 영화 은 10월 개봉 예정이다.
머리를 올린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첫 번째 정규 홀 라운드를 할 때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이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많은 이가 이런 표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쓰인다.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훈련받아온, 기생이 되려는 댕기머리 처녀가 한 남자에게 선택을 받아 밤을 보내고 쪽을 져 올리는 걸 의미한다. 머리를 올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기녀생활을 하게 된다. 골프는 17~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에서 즐기던 운동이다. ‘신사의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운동인데 골프 첫 라운드를 하필이면 기녀의 첫날밤을 의미하는 말로 표현하다니 괴리감이 크다.
국내에 골프가 처음 소개된 건 1900년 고종 37년, 정부 세관관리였던 영국인들이 원산 바닷가에서 6홀의 코스를 만들어 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일반인들이 골프를 하게 된 건 이보다 한참 뒤인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자리는 원래 1929년에 개장한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이었다. 골프는 지금도 여전히 부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된다. 일제강점기에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그려보면 “머리를 올린다”는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 유추가 되면서 씁쓸해진다.
“첫 라운드 가자”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된다. 좋게 생각하면 실전을 위한 준비가 그만큼 철저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골프 그린에 서기 전까지의 과정은 많은 노력을 요한다. 연습장에서 3~6개월 정도 기본기를 익히고 골프 매너도 따로 익혀야 한다. 요즘은 스크린 골프장에서 어느 정도 규칙을 습득한 후 필드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
곧바로 정규 홀에 가는 것보다는 실전 경험을 위해 9홀의 퍼블릭 골프장을 먼저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잔디의 감촉과 야외에서 골프를 칠 때의 감각 등 그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공을 칠 때 서 있어야 할 위치 등 그린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알아야 서로 쾌적하게 공을 칠 수 있다. 골프는 단순히 채를 휘둘러 공을 홀컵에 넣는 운동이 아니다. 동반자를 배려하고 매너를 지키면서 즐기는 스포츠임을 인식해야 한다.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으로 필드에 서기 위해 해온 노력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또 머리를 올려준다는 표현으로 우월감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담백하게 “첫 라운드에 가자”라고 표현하자.
최근 신중년의 로망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다. 육중한 배기량의 고성능 엔진에서 나오는 무게감과 힘을 갖춘 바이크로 국도를 달리며 산하를 감상하는 경험은 남다른 중독성을 갖게 해 많은 이들을 모터사이클의 신세계로 뛰어들게 하고 있다. 윤수녕 강원모터사이클연맹(KMF) 회장 겸 모토쿼드 대표는 척박한 국내 모터스포츠계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며, 선진문화의 도입과 안전교육을 추구하는 모터스포츠 전문가 1.3세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토피스타’ 강원도 인제 행사를 앞둔 그를 만나 꾸준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는 국내 모터사이클 세계를 슬라이딩해봤다.
최근 국내 모터사이클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강원도 인제군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이곳에 모터스포츠 경주장인 인제스피디움이 있기 때문이다. 모토쿼드는 모터사이클과 스포츠카로 가능한 레저와 스포츠 활동 사업을 하는 회사로, 윤수녕 대표는 이곳 인제스피디움에서 이륜차 마니아를 위한 기초 리그인 로드레이스 모토피스타와 강원 인제 모토스피드페스타라는 이륜 라이더 축제 등 다양한 경기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크를 탄 지 어언 30년째라는 그에게 바이크의 매력에 대해 묻자 단숨에 ‘도심 탈출’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인의 일상은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카테고리가 정해진 반복된 삶이죠. 그런 삶에서 빠져나와 일탈이라든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안전한 경로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현대인의 일탈이라고 하면 음주나 유흥이나 레저 등을 떠올리겠지만 그에 비해 훨씬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게 모터사이클이에요. 자신이 있는 위치를 이동시켜주니까요.”
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모터사이클은 확실하게 배우고 안전을 확보해 취미로 제대로 접하면 그 어느 것보다 빠른 도심 탈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두세 시간이면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파묻힐 수 있는 게 사실이니, 그의 말이 머릿속으로 훅 들어왔다.
모터사이클은 종합예술과 같다
윤 대표가 말하는 모터사이클의 또 하나의 강점은 개방감이다. 달리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탈 때는 사각의 틀 안에 갇히지만 모터사이클은 바람을 맞는 맛이 있어요. 온몸이 그걸 인지하죠.”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가 흔히 모터사이클을 봤을 때 떠올리는 피지컬적인 면보다는 멘탈적인 면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그 또한 국내 모터사이클 문화를 선도하면서 수많은 선수를 발굴했는데, 그 과정에서 체력 단련을 통한 피지컬의 증량보다는, 이 무생물과 교감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잘 해서 사고 없이 경기를 헤쳐 나가는 게 더 중요 포인트라고 강조한다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정신교육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안전이다. 모터사이클의 특성상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단번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유치원, 고등학생이 아니라 40대 전후 어른들이 주로 배우러 오시죠. 그 정도 나이의 사회적 포지션이면 남의 말 듣기가 쉽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은 정말 배워야 하는 스포츠예요. 컨트롤하고 정비하고 좋은 컨디션 유지하게끔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성도 들여야 하고 비용도 드는 복합적인 스포츠죠. 예술로 치면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종합적인 스포츠예요. ‘야 빠르다’ 하는 건 일반적인 시선이고 들여다보면 혼연일체적인 게 있고, 정식 경기장에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기를 올려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입니다.”
인제스피디움을 발판으로 모터스포츠 문화 정착 추구
윤 대표가 말하는 정식 경기장이란 당연히 인제스피디움이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이벤트는 ‘모토피스타’. 국내 아마추어 선수가 로드레이스에 입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로 피스타는 이탈리어로 질주, 경주란 뜻이다. 시즌 포인트로 연간 챔피언을 뽑으며 강원모터사이클연맹 산하의 모토피스타는 매년 4라운드가 진행된다. 윤 대표가 인제스피디움을 배경으로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 중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경기장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이지만 쉽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이 균형 감각이에요. 피지컬은 서양 사람만 못해도 훨씬 더 균형 감각이 있어 모터스포츠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굉장히 희박하다가 이걸 스포츠로 받아들이고 아카데미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한국적 절차를 밟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10년 전이었습니다.”
사실 다수의 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대로 인제스피디움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과 단체들 사이의 갈등으로 몇 년간 잡음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일종의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외부인사로서 인제스피디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되었고, 당사자들 간의 교섭을 이끌며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모터스포츠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 착공
“사실 우리나라는 모터스포츠 문화의 단계로 보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경기장이 먼저 우뚝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거죠. 그래서 중간에 허브가 될 수 있는 아카데미나 R&D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일본만 봐도 큰 경기장들 중에 60년 된 곳이 있는데 그 경기장 하나만으로도 인제군만 한 도시가 먹고살 정도로 다양한 유관시설들과 인프라가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인제군을 모터스포츠 특화지역으로 만들자는 거예요.”
윤 대표는 인제스피디움을 중심으로 한 모터스포츠의 멀티플렉스화 계획을 들려줬다. 그 첫 발걸음이 내년에 착공되는, 라이더들의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다.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스포츠 분야는 제대로 크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교육도 그렇고 스포츠와의 접목을 추구하기 위해 내년에는 교육 사업 분야에 집중하고자 해요. 교육받은 라이더들이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게 경기죠. 그래서 인제 하면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하고 싶어요.”
라이더들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
레저용으로 쓰는 바이크는 250cc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250cc 이상 되는 바이크의 등록 대수를 보면 10년 전만 해도 3만 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5만 대 이상이 등록되어 있다. 통계만 봐도 레저로 바이크를 즐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레저용 바이크는 고가의 상품이라 사회적 포지션이 높고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죠. 흔히 크고 시끄럽고 손 가는 게 많다고 생각해 배우기를 망설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용기를 내시라, 도전하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확실하게 배우면 안 다치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가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을 보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통 예민한 사람들이 바이크를 타고 오면 “시원하다”고 말한다는 거다. 그런데 온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모터스포츠다.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사고라도 날까봐 온갖 신경을 다 쓰는데 그러면서도 뭔가가 해소된다는 거죠. 집중이 집중을 치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와서 스트레스를 푸시고 갑니다. CEO나 교수, 의사, 디자이너, 연구원, IT 분야 종사자들이 많아요.”
바람처럼 바이크를 타며 인생을 향유하다
바이크 타는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타다가 라이더가 된 윤 대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의외의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하고 전제를 깔았다.
“지극히 개인적 얘기지만 명상 쪽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명상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매인 삶이 모터사이클로 탈출하는 것과 비슷하죠.”
과연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생각했다. 일찍이 미국의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로버트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과 선 체험 간의 교차점을 탐구한 소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집필해 명작의 반열에 올린 바 있다. 윤 대표는 모터사이클을 “보이는 바람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정신적인 자유가 거기에 있고 그 사람의 정신세계 또한 거기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한 바이크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빠르고 강하게 타는 게 아니라 고독한 바람같이 타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바람이 산들바람일 수 있고 강풍일 수도 있는데 자연과 동화된다는 의미죠. 뭔가 지나갔는데 아무렇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것처럼.”
대형 바이크를 타고 1·2차선을 넘나들며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문화를 알면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제는 강원도 인제 전역의 아름다운 곳, 산하 등 그런 곳들을 이동하는 도구로서의 바이크가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고 봐요.”
부자(父子)가 함께하는 모터사이클 투어 꿈꾼다
사실 윤 대표의 아버지도 아들처럼 모터사이클 마니아다. 스위스 알프스부터 터키, 스페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라이딩을 하는 아버지를 둔 그가 모터스포츠 세계에 입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버지 건강이 허락되면 서울에서 출발해서 실크로드를 달리고 유럽까지 가는 대장정을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못 가지만…. 9월에 강원도 전역에서 하는 평화 모터사이클 랠리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도 이제 50대에 이른 만큼 나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벌판 같은 경기장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드를 향한 그의 의지와 사명감은 쉬이 꺼질 것 같지 않다.
“필드 플레이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긴 하죠. 하지만 건강관리를 하면서 되도록 오래할 생각이에요. 아버지도 내일모레 여든이신데 현역이신걸요.(웃음)”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깨달을 때쯤 사내 윤수녕 대표가 멋진 라이더로 서 있었다.
아내랑 말다툼을 했다. 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내 방으로 와 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싸움의 원인은 별것 아니었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시간이 필요했다. 기분이 나쁘면 TV를 켜거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 기분도 더더욱 아니다. 이럴 때 나만의 비법이 있다. 인터넷으로 바둑 게임을 한다. 바둑을 두는 시간만큼은 몰입이 되어 잡념은 포맷되고 머리는 리셋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에 다니던 형님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당시 형님 실력은 8급 정도 됐던 것 같은데 나는 4점을 놓고 뒀다. 둘 다 걸음마 단계의 초보 기력으로 꼼수도 두고 잡히면 물려달라고 떼도 썼다. 어떤 때는 대범하게 “바둑돌 죽지 사람 죽나!” 하면서 큰소리치기도 하고 상대 바둑돌 잡는 재미를 즐기며 서로 배웠다. 그 시절이 벌써 40여 년 전이다. 군대생활을 할 때는 바둑 좀 둘 줄 안다고 하늘같은 상관인 대대장과도 수담을 했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바둑을 매개로 폭넓은 교류를 맺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바둑 좀 둔다 하면 좋은 바둑판과 바둑돌을 세트로 준비해놓고 집으로 손님들을 초청했다. 동네 기원도 늘 벅적였다. 바둑 관련 추억의 하이라이트는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구내식당에서 남들보다 밥을 빨리 먹고 바둑판이 비치된 휴게실로 달려갔다. 도착하는 순서로 상대를 찾고, 한발 늦으면 구경꾼이 되어야 했다. 구경꾼들이 훈수를 두면 동네 바둑판이 되어 멀쩡히 살아 있는 돌이 죽기도 하고 죽은 돌이 살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훈수 덕택에 묘수가 만발했다. 직장에는 바둑동호회가 있었고 정기대회 때는 푸짐한 상품이 걸리기도 했다. 전철을 타면 바둑 책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과거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직접 만나 바둑판을 앞에 놓고 바둑을 뒀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으로 인해 바둑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바둑을 둘 때는 바둑돌과 바둑판이 필요 없다. 대적할 상대를 찾는 방법도 간단하다.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같은 급수의 명찰을 단 선수들이 즐비하다. 살고 있는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접속을 해온다. 밤낮이 없다. 새벽 1시에 접속해도 상대를 찾을 수 있다. 다들 환호하며 맞아준다. 휴일도 없다. 365일 언제나 접속이 가능하다.
나이 들어갈수록 바둑을 잘 배워뒀다는 생각을 한다. 바둑은 머릿속으로 변화의 수를 읽으며 최선의 수를 찾는 게임이다. 치매 예방에 딱 좋다. 골치 아픈 일에서 잠시 해방되고 싶을 때나 할 일이 별로 없는 시간부자들에게도 맞춤 취미다. 조치훈 프로기사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고 했지만 아마추어인 일반인들은 그냥 재미로 두면 된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도 여럿 있다.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어 배우기도 쉽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어 좀 일찍 배워두면 더 좋다. 잠시 넋을 놓고 바둑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시니어의 또 다른 낭만이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고 너무 빠지지는 말자.
데뷔 42년 차 코미디언이자 배우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임하룡이 이번엔 뮤지컬 무대를 통해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화려한 군무가 돋보이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순진무구한 사랑꾼 ‘애브너 딜런’을 연기하며, 그는 황혼의 버킷리스트를 또 하나 이뤘다. 언제나 웃음을 주는 연기자로 대중과 만나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17년 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인데요. 소감이 어떤가요?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그 마음을 달래기도 했죠. 이번에 뮤지컬 제의가 들어와 마음을 다잡았고, 역할에 몰입하며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뮤지컬 무대에 다시 서는 게 황혼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걸 이루니 아주 뿌듯하고 기분이 좋네요.
Q. 애브너 딜런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주인공은 아니지만 꽤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좌지우지하는 역할이거든요. 한 여자를 위해 (극중)공연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나중에는 자신도 무대의 매력에 빠지게 되죠. 외형적으로 묘사하면, 돈 많고 배 나온 전형적인 옛날 부자 스타일이랄까? 그래서 요즘 내가 캐릭터 때문에 뱃살을 못 빼고 있죠.(웃음) 솔로 무대가 별로 없고 앙상블 위주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더 연습해서 기량을 펼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Q. 뮤지컬 무대가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KBS2 ‘개그콘서트’도 없어져서 아쉬운데, 어찌 보면 뮤지컬이 그런 공개 무대의 성격과 닮은 것 같아요. 춤과 노래와 연기가 어우러지고, 그날그날 관객들과 호흡하며 즉흥적인 상황도 벌어지죠. 이번에 뮤지컬을 해보니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서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게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매력인 듯해요.
Q. 또 다른 황혼의 버킷리스트가 있다면요?
옛날부터 생각해온 게 있어요. 한때 KBS2 ‘유머 일번지’에서 제가 연기했던 ‘추억의 책가방’이나 ‘도시의 천사들’을 코미디 뮤지컬 스타일로 무대에 올려보고 싶어요. 이전에 ‘청춘을 돌려다오’는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그렇게 선보인 적이 있어요. 또 ‘지붕 위의 바이올린’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도 큰 배역이 주어지는 작품이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연기 인생은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요?
내년에 칠십이니까, 한 삼십 년 또 준비해야겠네요. 백세시대잖아요.(웃음) 특별한 계획이랄 건 없고, 장르와 관계없이 언제나 웃음을 선사하는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코미디언과 배우로서 그동안 큰 사랑을 받아온 만큼, 남은 생도 이 길에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일에 주력하려 합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일정 8월 23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박인선 출연 임하룡, 송일국, 최정원, 전수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