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대출을 받으며 생계를유지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기에 대출 연체자가 크게 늘었다. 이럴 때 정부는 ‘배드뱅크’(Bad Bank)를 만들어 돈을 빌려준 은행이 망하지 않도록 지원한다. 재정을 지원하는 은행인데, 왜 나쁜(Bad) 은행일까?
배드뱅크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부실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사들여 처리하는 구조조정 기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실채권전담은행, 가교운용사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이 대출을 받고 오랜 시간 갚지 못해 부실채권이 됐다면, 배드뱅크는 대출을 해준 은행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의 상황에 맞춰 채무 조건을 조정해 채무자가 채무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늘어난 부실채권으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은행은 다시 재정 건전성이 좋은 은행이 되어 투자를 받는 등 굿뱅크(Good Bank)로 전환할 수 있다. 또한 돈을 빌린 사람이 연체를 거듭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배드뱅크라는 이름 때문에 나쁜 은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은행과 채무자의 재정 건전성을 돕는 착한 은행인 셈이다.
보통은 정부 주도로 공적 기금을 투입, 배드뱅크를 설립해 대출채권을 매입하고 상환 일정을 조정하거나 채무 감면을 지원한다.
금융위기마다 등장, 왜?
배드뱅크는 금융위기가 올 때 주로 등장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2007~2010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러 국가에 배드뱅크가 설립됐다. 이를테면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긴급 경제안정화법의 일부로 배드뱅크 설립이 제안됐다.
우리나라에서 배드뱅크가 처음 등장한 건 외환위기 때였다. 당시 과도한 부실채권이 많아 여러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은행의 줄도산을 막기 위한 배드뱅크 정책이 도입됐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기업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신용카드 대란으로 인한 개인 신용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자 채무를 감면해주기 위해 배드뱅크를 추진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배드뱅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의 배드뱅크는 없었다. 하지만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로 민간 차원의 배드뱅크 ‘웰브릿지자산운용’이 설립됐다.
배드뱅크 설립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배드뱅크는 보통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국가 자산이 들어간다. 자칫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어, 꼭 필요한 상황에 적절한 지원을 꼭 필요한 대상에게 해야 한다.
코로나 배드뱅크 ‘새출발기금’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채무를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배드뱅크를 설립한다. 가칭 ‘새출발기금’이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연장했는데, 오는 9월 말 종료된다. 올해 1월 말 기준 이 조치를 받고 있는 대출은 총 133조 4000억 원 규모로 70만 4000건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새출발기금을 마련, 3조 6000억 원을 출자하고 최대 30조 원 규모의 채무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이뤄졌던 ‘한마음금융’(노무현 정부), ‘국민행복기금’(박근혜 정부) 등을 포함해 가장 큰 규모의 채무조정이다. 정부는 9월 말 관련 지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배드뱅크는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개인사업자, 법인 소상공인 중 대출 원리금 상환을 90일 이상 연체했거나, 부실 발생 우려가 있는 차주를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은 원리금을 장기간 나눠 갚을 수 있도록 거치 기간을 부여하거나, 장기 분할 상환 대출로 전환하거나, 금리 감면 혜택 등을 적용한다. 장기 연체자의 경우 신용채무 원금을 여력에 맞춰 60~90% 감면하는 조치도 포함된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추가 연장하는 ‘주거래 금융회사 책임관리제’도 도입한다. 추후에는 이미 폐업한 자영업자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초의 배드뱅크 ‘멜론은행’
멜론은행은 미국에서 15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해외 시장 확장으로 1987년 최초로 손실이 발생한다. 재정 정상화가 어려워지자 멜론은행은 최초로 민간 배드뱅크를 설립한다. 공적 자금 없이 1988년 14억 달러의 불량 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그랜트스트리트 국제은행’(Grant Street National Bank)은 모든 채권을 상환하고 목적을 달성한 뒤 1995년에 해산됐다.
신한은행이 디지털리터러시 연구소, 이지태스크와 함께 중장년 대상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과 일자리 연결을 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디지털리터러시연구소는 국민연금공단의 사내벤처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지태스크는 온라인 시간제 일자리 매칭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3사는 이번 MOU를 통해 매월 중장년 10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을 제공한다. 더불어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디지털 일자리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디지털 일자리 1000개 창출 프로젝트’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또한 실무 협의체를 구성해 ▲프로젝트 기획·디지털 일자리 사업 발굴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운영 ▲사회적 가치 실현·일자리 연계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영종 신한은행 퇴직연금그룹장은 "일자리 창출과 스타트업 성장 지원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동반성장 프로젝트의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금융권에서는 최초로 시니어 고객을 위한 디지털 맞춤 영업점을 열고, 고령자 맞춤형 ATM기기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26일 발표한 ‘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에는 창직의 길을 걷고 있는 다양한 사례자들의 이야기가 포커스그룹인터뷰(FGI) 형태로 실렸다. 이중 중장년 창직 그룹의 녹취록을 토대로 그들이 창직을 하게 된 계기 및 과정, 경험자로서 느끼는 문제점 및 희망 사항 등을 정리해봤다. 익명의 참여자들이 개척한 창직 사례는 아름다운길여행가,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윷놀이전문가, 도시농업관리사, 웨딩쇼퍼 등이다.
창직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
△아름다운길여행가=대학 때 법을 전공했는데, 그 시절 계속 등산을 다녔었어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했었죠. 그런 과정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콘텐츠가 완성된 듯합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몇 해 전 부친께서 돌아가시면서 조문객을 맞이했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왜 돌아가셨느냐, 연세가 몇이셨느냐 그런 것들인데, 생각해보니 고인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거예요. 신문을 봐도 ‘누구 부친상’ 이런 식이지, 당사자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에 착안해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가, 운영하던 회사를 폐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도 개인 창업자로 일했지만, 시니어가 되어 창직·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건 차이가 굉장히 컸어요. 예전에는 어떠한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해당 업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자본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하려니 그런 자본이 없잖아요.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
△윳놀이전문가= 55세에 다소 이른 퇴직을 했어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재취업 기회를 노렸지만 정말 하늘에 별 따기더라고요.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막막해하던 차에 노사발전재단에서 중장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했어요. 원래는 제가 금융기관 출신이다 보니 관련한 쪽으로 컨설팅을 해주셨거든요. 근데 그 일이 싫어서 기껏 회사 나왔는데 또 하긴 싫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제가 하는 강의에 윳놀이로 5분 정도 넣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몇 시간짜리 강의가 된 거죠. 제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창직으로 결합해 이뤄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시니어가 청년층보다 창직에 유리하다고 봐요.
△도시농업관리사= 제가 농협에서 일하다 퇴직했는데, 사람들이 ‘농협에서 일했으니 농사 짓는 거 어떠냐?’고들 많이 했어요. 이건 오해인 게, 제가 행정적인 업무를 한 거지, 농사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러다 일단 심심해서 강동구에서 텃밭 분양받아서 작물을 키워보는데, 자꾸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봐요. 근데 저라고 뭐 아는 게 있나요? 집에 와서 책보고 공부해서 가르쳐드리고 했죠. 그러다 제대로 해봐야 겠다 해서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교육도 받고, 자격증들도 따고, 관련된 모임에서 회장까지 하다 보니 강의까지 하고, 그게 알려지면서 점점 일이 확장된 셈이에요. 어쨌든 직장 생활과 달리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웨딩쇼퍼= 아들이 결혼식 당일에 제 차를 가지고 가더라고요. 아니, 주인공이 어떻게 직접 운전을 한다는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서비스가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 막상 그 내용이 허접하더라는 겁니다. 그럼 이 일을 우리 시니어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환갑이 넘어 창직 한다고 하면 좋은 얘기 못 듣습니다. 리스가 크기 때문이죠. 가족들도 불안해했고요. 그래서 당장은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관련 교육을 듣거나 자격증·공모전 준비를 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죠. 그렇게 4수만에 육성사업에 선정 돼서 2000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그 후도 주변에도 터놓고 일도 확장해나간 거예요.
현 지원책들의 문제점과 바라는 점
△아름다운길여행가= 혼자서 뭔가를 끌어가는 게 힘들기도 하고 안타까워요. 창직자 사이에 소통 교류의 장이 너무 없습니다. 좀 연계가 됐으면 해요. 관련 협회 쪽에도 문의해봤었는데, 결국 비용 문제가 걸리더군요. 쉽진 않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 선에서 혼자 해나가다간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창직을 준비하며 찾아보니 관련 지원제도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청년층 대상이고, 중장년 대상은 한 2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나마도 홍보가 안 되어 모르는 경우가 꽤 있죠. 저는 소셜 벤처로 해서 예비 창업 패키지 일환으로 5000만 원 정도를 지원 받았는데, 이게 또 대표자 월급으로는 사용이 안 돼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원 하나 명기해놓고 월급을 지급하는 희한한 구조도 생기죠.
△윳놀이전문가= 살펴보면 창직이라는 걸 청년층하고 많이 결부 시키는데 사실 그들은 한계가 있거든요. 뭐냐, 경험이 없잖아요. 그러니 은퇴 세대의 경험 요소를 십분 살려 활용하면 좋은데, 정보의 비대칭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봐요. 예전에 다른 자리에서 건의한 적이 있는데, 요즘 저출산 문제로 초등학교마다 빈 공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해서 마치 초등학교 의무교육 받듯 은퇴세대도 관련된 교육을 받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도시농업관리사= 우리 분야도 정부 지원 사업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단기 지원이에요. 거의 1년이면 끝나버리죠. 중복 지원은 또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지속적으로 창직을 이어가고 관리하려면 5년 또는 중장기 사업으로 지속해서 지원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웨딩쇼퍼=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조건을 택해야 하는데, 가령 일자리형으로 할 거냐, 혁신형으로 할 거냐, 비영리로 할 거냐, 사회 서비스로 할 거냐 이런 거예요. 제 경우엔 혁신형으로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일자리형에 가까워요. 그런데 일자리형의 경우엔 직원들을 채용하면 4대보험 가입이 의무거든요. 저희 요원들은 전부 프리랜서인데,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혁신형으로 하려 하니 그건 또 채택이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그런 괴리가 좀 있었고, 또 사실상 창직과 창업은 다르거든요. 어찌 보면 창업을 위해 ‘창직’이라는 걸 구실로 삼을 수밖에 없었죠. 발명가가 사업까지 하긴 어려운 것처럼 둘을 잘 구분해서 현실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위 인터뷰를 진행한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과 이윤경 강남대학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중장년층의 창직 과정 역시 애로 사항이나 어려움은 있지만, 청년층과 달리 자신의 경력을 이용하여 프리랜서나 창업을 통해서 자신만의 직업을 구현 하고 있었다”며 “은퇴 이후에 찾은 새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창직 경험 자체에서 얻는 자기만족이 높다. 창직의 동기나 창직을 통한 요구 사항들이 청년층과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된 지원책을 통해서 본인의 경력을 살린 새로운 일자리 들을 만들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자료 원문=‘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군!”
흔히 그런 말을 했단다. 손화순 관장이 부군 김민석(작고) 선생과 삼탄아트마인 설립에 나섰을 때의 얘기다. 지금은 문화재생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성행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용도를 잃고 스러진 폐탄광을 뮤지엄으로 재생한다? 반신반의도 무리는 아니었겠다. 그러나 손 관장 부부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쌓은 문화예술에 관한 경륜과 식견을 믿어서였다. 2013년에 개관한 삼탄아트마인은 결국 손 관장 부부의 지향대로 질주했다. 독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뮤지엄을 만들어냈다.
“부부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문화기획 일을 수십 년간 해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간 축적한 경험을 뭐 하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싶어지더라. 그러던 중 우연히 정선에 왔다가 폐탄광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광을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의 가치를 또렷이 인식해서였다.”
롤모델로 삼은 뮤지엄이 있었나?
“재생 공간의 세계적 사례인 독일의 졸페라인에서 느끼고 배운 게 많았다. 폐광에서 복합문화단지로 변신한 졸페라인에 몰려드는 관광객이 연간 200여만 명이나 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걸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벤치마킹했다.”
삼탄아트마인의 스케일이 대단하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주관하는 공간이라는 게 놀랍다.
“부지 면적이 1만 3000평이나 된다. 버거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기간에 뮤지엄을 완성할 욕심은 가당치도 않았다. 최소 10년, 20년, 길게 보고 가자는 기본계획을 가지고 매달렸다. 전략적으로, 단계적으로 일을 완수하자는 방침을 세웠던 거다.”
아직 미완성 상태라는 얘기?
“개관 이후 지난 10년간 주로 하드웨어를 채웠다. 현재의 완성도는 약 70%에 불과하다. 향후 소프트웨어 부문의 콘텐츠를 보강할 참이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은 셈이다.”
위치상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관람객이 많을 것 같다. 이색적인 뮤지엄이니까. 게다가 주변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여행자들과 관광객들의 관람이 잦다. 이 오지를 찾아오는 관람객이 한 해에 10만 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운영이 쉽지 않더라. 특히 불행했던 세월호 사고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뮤지엄 내부의 문제는 보완하면 되지만, 사회적 환경에서 오는 악재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게 뮤지엄 일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인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많았지만 ‘희망’을 중심에 두자 늘 빛이 보였다. 바라는 건 하나다. 삼탄아트마인이 대중의 ‘예술놀이터’로 쓰이기를 원한다는 것. 남편 생시에 공감하며 자주 나눈 얘기가 있다. 문화예술공간을 비즈니스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보시 차원의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한다…. 이 다짐들을 힘으로 삼고 있다.”
부부가 함께 나누었던 짐을 이제 혼자 지고 간다. 무거운 게 한둘이랴.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질주가 답일 뿐이다. 이런 그가 말하는 남편 김민석은 ‘늘 한 걸음 앞서갔던 사람’이다.
금리 인상과 생활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서울시와 경기도가 소득이 불안정한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사업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설립한 서울도시금속회수센터(SR센터)를 통해 취약계층 등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SR센터는 중소형 폐전자제품·폐휴대전화 등 폐금속 자원으로부터 유가물을 추출해 자원화하는 시설로,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시광산(Urban Mining)' 사업을 위해 설립했다.
SR센터를 운영하는 '에코시티서울'은 올해 6월 기준 유급 근로자 총 58명 중 66%에 해당하는 38명을 취약계층(저소득, 장애인, 고령자, 노숙인, 한부모 등)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기업 최소 의무 고용 비율 30%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채용 심사과정에서 동점자가 있을 경우 취약계층을 우선 선발했다. 센터 근로자 중 정규직은 91%로 입사 1년 미만의 직원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현재 재직 중인 근로자 중 취약계층의 5년 이상 근무 비율은 78%로 직장 내 만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비슷한 나이대 중 60세까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꼽았다.
경기도는 도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노인 일자리 사업을 추진한다. 도는 코로나19에 따른 활동 중단으로 참여 시간이 부족한 노인 일자리 사업 참가자에 대해 1인당 배정된 활동 시간을 모두 소진할 수 있도록 근로 시간 연장 활용을 안내했다.
더불어 올해 노인 일자리 사업 목표치인 9만 3751명 중도 포기자 발생 등에 따른 불용예산을 활용하면서 4700여 명을 추가 모집해 일자리를 확대한다. 기존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을 현재 185개에서 추가 확보하고 경기도형 좋은 노인 일자리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사업 확대에 관한 내용을 지난 6일 ‘2022년 노인일자리 사업 시·군 온라인 정담회’에서 시·군에 공유한 바 있다.
오는 12일부터 퇴직연금제도(DC‧IRP)에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된다. 1%대에 머무르는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한 방침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저금리 환경임에도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으로 86% 이상 운용돼 왔다. 고용노동부는 그 배경으로 가입자(근로자)의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무관심, 금융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이 탓에 최근 5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1%대에 머물렀다.
이에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 근로자 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전지정운용제도를 도입을 추진했다. 지난해 12월 위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가 도입됐다.
사전지정운용제도란 가입자의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정해 놓은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퇴직연금제도 운영 경험이 풍부한 미국, 호주, 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가입자의 적절한 선택을 유도해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작용한 덕분이다. 이에 적극적으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는 가입자를 위해 도입했으며, 실제로 위 국가의 사전지정운영방법은 연 평균 6~8%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근로자가 운용을 지시하지 않는 등 퇴직연금에 무관심한 경우를 대비해 자동으로 적용되는 운용상품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원리금보장상품이나 펀드(집합투자증권)로 구성할 수 있으며, 고용노동부장관 소속 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와 고용노동부 승인이 필요하다.
기업은 사업자가 제시한 사전지정운용방법을 근로자대표 동의를 받은 뒤 도입하고, 근로자(가입자)는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사전지정운용방법 정보를 제공받아 그중 하나의 상품을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 지정하게 된다. 이때 퇴직연금사업자는 근로자에게 손실 가능성을 명확히 설명하고, 근로자의 의사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등의 보호 절차를 지켜야 한다.
사전지정운용방법(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거나,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의 운용을 원하면 적용하게 된다. 또한,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 운용하던 중에도 언제든지 근로자가 원하는 다른 방법으로도 운용 지시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측은 선택권 보장과 퇴직연금사업자 간 경쟁을 제고하기 위해 운용 현황 및 수익률 등을 공시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측은 “사전지정운용제도를 통한 퇴직연금의 효율적 운용으로 수익률이 제고되어, 근로자의 노후소득 확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속도에 불을 붙였다. 비대면 원격·재택 근무가 확대되면서 특정 소속을 갖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만큼 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가 됐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쉽지 않은 시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플랫폼 비즈니스 일자리는 늘었다. 음식 배달, 택배, 가사 서비스, 돌봄 서비스 등의 일자리가 많아진 것.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긱 이코노미’가 성장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는 ‘임시로 하는 일’이라는 뜻의 긱(Gig)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약 284조 원이었던 긱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52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정규직의 시대가 온다
긱 이코노미의 확산은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N잡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앞으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었다. 최근에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나선:나도 선수’라는 플랫폼도 생겼다. N잡 시대의 정보에서 소외되는 중장년을 위한 재능 거래 플랫폼이다. 오히려 중장년이 N잡러가 되기 적합하다는 것.
은퇴 이후 불안정한 일자리가 중장년층을 취약계층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유연한 근무를 원하는 중장년에게 디지털 플랫폼 일자리는 기회일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민간에서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잘 참여하지 않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중장년층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74%는 구직 활동에 가장 관심이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희망하는 비율이 약 50%에 달해 절반을 차지했다. 물론 생계형 일자리를 원하는 중장년층도 있지만(30%), 대부분은 오랜 시간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만 일하거나, 하루 세 시간만 일하는 형태의 일자리를 원했다. 숙련도 높은 시니어에게 긱 이코노미가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중장년분들이 교육을 듣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지속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원하고, 사회 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의지가 있었다”며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들이 단지 수업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 활동을 연계해서 목적에 다다를 수 있도록 일자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나는 디지털 격차
은퇴 이후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니어의 욕구는 무척 높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97.6%는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는 평균 71세까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일자리가 줄면서 중장년 일자리도 감소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정년 60세 연장법을 만들고, 기업 차원에서도 은퇴 후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한정되거나 그 자리가 매우 적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재취업 시장의 경쟁도 치열하다. 은퇴 후 재취업에 도전했다가 여러 차례 실패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이도 많다.
디지털에 취약한 중장년층에게 비대면 시대는 눈뜬장님으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2년 동안 무인 매장이 늘고 키오스크를 도입한 가게도 많지만, 서울에 사는 55세 이상 시니어 중 키오스크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54%로 절반이 넘는다.
액티브 시니어라고 불리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힘들더라도 이런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디지털 역량을 높이려면 대면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배점태 컨설턴트는 “디지털 교육에 대한 중장년의 관심은 높아졌는데, 코로나19로 대면 교육이 불가능해지면서 답답해하는 분이 많았다”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교육에 대한 적응도는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화상 대화 등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긱 이코노미가 중장년층에게 적합한 고용 시장이 되려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긱 이코노미가 디지털 플랫폼을 발판 삼아 확산되는 만큼, 중장년층의 디지털 격차를 줄여줘야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교육뿐 아니라 새로운 고용 시장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도 필요하다. 또 중장년층이 사회 취약계층이 되지 않도록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사회 안전망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이하 취업지원센터)가 예비 사회적기업 코액터스와 ‘워라벨 시니어 드라이버’ 일자리 창출 협약을 맺었다. 본 협약을 통해 취업지원센터와 코엑터스는 시니어 일자리에 걸맞은 직무 설계 및 일자리 연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워라벨 시니어 드라이버’는 영업 부담과 주말 근무 없이 주 4일제로 일하는 완전월급제 형태로, 동종 업계에서는 최초 사례다. 실 근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여유 없이 고된 업무보다는 취미와 여가를 함께 즐기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을 선호하는 중장년에게는 안성맞춤인 일자리로 볼 수 있다.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시니어 맞춤 근무 조건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면 이러한 시간제 일자리에 시도해보길 권한다”며 “업계에서는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은 시기상조라 판단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요시 여기는 시니어가 증가하는 만큼 시간제 일자리 역시 하나의 근무 조건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취업지원센터와 코액터스는 7월 19일 시니어를 위한 채용설명회에서 해당 분야 취업에 관심 있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직무조건 설명과 실제 근무지 및 차량 체험, 현직 드라이버와의 만남 등을 진행한다.
취업지원센터 희유 센터장은 “드라이버 직종을 신규 개발하려했으나 시니어에 적합한 직무 조건을 찾지 못했다”며 “이번 협약을 통해 주말과 저녁이 있는 워라벨 시니어 드라이버를 배출할 수 있어 기쁘다. 운전 경험 많은 시니어가 적극 지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코액터스 송민표 대표는 “이번 협약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하여 어르신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 밝혔다. 코엑터스는 앞서 2018년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택시’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으며, 관련 플랫폼인 ‘고요한M’을 운영 중이다.
‘고요한 M’ 드라이버로 지원 시 서류 평가, 면접, 운전능력 평가를 거쳐 채용 심사 과정을 거치며, 운전이 가능한 서울시 거주 만 55세 이상 시니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해당 취업에 관심 있는 구직자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신속지급 대상이 아니라서 손실보전금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 사업체 23만 곳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증빙서류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13일 오전 9시부터 소상공인 사업체 23만 곳을 대상으로 손실보전금 확인지급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중기부는 코로나19 방역조치 등으로 발생한 소상공인·소기업 등의 손실을 보전하고자 손실보전금 지원을 시행했다. 손실보전금은 방역지원금과 같이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일회성 지원금으로, 분기별로 매출 손실에 따라 지급하는 ‘손실보상금’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번 손실보전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소기업 및 중기업(연 매출 50억 원 이하) 약 371만 개사를 대상으로 하며, 피해 수준에 따라 업체당 600만~1000만 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앞서 중기부는 지난 5월 30일부터 별도의 서류제출이 필요 없는 소상공인손실보전금 신속지급을 진행했다. 348만 개사를 대상으로 했는데, 지난 12일까지 337만 개사(신속지급 대상 348만 개사의 97%, 전체 지급 대상 371만 개사의91%)에게 약 20조 5천억 원을 지급했다.
이어 6월 13일부터 시작된 확인지급은 온라인 등을 통해 소상공인이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지원대상 여부 확인 등을 거쳐 손실보전금을 지급하는 절차이다. 손실보전금 지급을 위해 추가 자료 확인이 필요한 매출감소 소상공인 등 23만 개사를 대상으로 한다.
확인지급 대상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행정정보를 통해 손실보전금 지원요건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급을 위해 간단한 증빙서류 제출이 필요한 경우다.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와 비영리단체 중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이 이에 속한다. 이 경우 간단한 증빙자료 제출 시 확인 후 1주일 내 손실보전금이 지급된다.
두 번째, 행정정보를 통해 손실보전금 지원 요건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지만, 신속지급 방식으로는 신청할 수 없었던 경우다. 본인 명의 휴대 전화, 공동인증서, 간편인증을 통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미성년자 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변경된 경우 등이다. 입원, 사망, 해외체류 등으로 대리인이 받아야 하거나 타인 명의 계좌로 지원금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위임장 등을 제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이미 신속지급을 통해 손실보전금을 받았으나 지원유형(지급금액) 변경을 희망하는 경우다. 매출규모・매출감소율 변경을 원하는 경우 부가가치세과세표준증명 또는 부가가치세면세수입금액증명을 준비해야 한다. 상향지원 대상인 평균 매출감소율 40% 이상 업종에 해당하는것을확인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부가가치세확정신고서 또는 사업장현황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네 번째는 지급 대상으로 조회 되지 않으나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신청하는 경우다. 매출감소 등 손실보전금 지급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는 사업체는 부가가치세과세표준증명과 부가가치세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후 국세청 조회를 통해 매출 감소 등 지원 대상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1・2차 방역지원금을 받은 사업체 중에서 매출이 증가했으나 2020년 8월 16일 이후 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조치를 이행한 사업체는 행정 명령 이행확인서를 제출하면 기본 금액(600만 원)을 지급 받을 수 있다.
확인지급 신청은 오는 7월 29일까지 약 7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확인지급은 사업체 대표가 직접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누리집(소상공인손실보전금.kr)에 접속해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온라인 신청’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본인 인증이 불가능해 온라인 신청이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전 예약 후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센터에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여자가 어떻게 군대를 갑니까?”
노기에 찬 여학생의 질문에 창구 직원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그에게는 그저 운수 나쁜 날이었으리라. 회사의 신입사원 입사원서를 접수하는 날. 당연히 남자들만 지원받고 있는데, 다짜고짜 여자가 찾아오다니. 결국 이날의 항의는 무위로 끝났지만, 그녀는 그 불공정의 억울함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평생의 연료가 된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회장은 당시 기업들이 남자 지원자만 받기 위해 내건 조건은 ‘군필’이었다고 설명했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될 때까지 악습은 계속됐죠. 여성들이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채’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나마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조건이 붙은 서약서를 써야 가능한 일이었죠. 그런 시대였어요.”
무작정 선택한 공무원의 길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들은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않았다. 금융권이나 교직 정도가 선호되는 직업이었고,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80학번이었던 이 회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공무원의 길에 도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꼭 경제적 능력을 갖고 싶었어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남성에게 종속적이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직업은 반드시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기 어려웠죠. 제 전공이 도시행정학이다 보니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모두 행정고시 공부를 하는 분위기였어요. 동기가 함께 공부하자고 권해서 자연스레 저도 시작하게 됐죠. 1학년 때 행시에 합격한 3학년 선배를 우러러본 적이 있는데, 자연스레 롤모델로 삼은 것 같아요.”
그녀는 당시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털어놓으며 웃었다. 선배에게 물어보니 ‘기안’을 잘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와 “그 기안이란 게 뭐냐”고 되물었던 기억도 있다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미지의 세계였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덤벼든 것은 아니다. 선택의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시험에 떨어지면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상황 인식은 그녀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은 자신감이 넘쳤죠. 따르고 배울 롤모델도 많았고, 떨어지더라도 취직할 곳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절박했어요. 그래서 붙고 나서도 ‘공무원이 되었다’는 성취감보다는 ‘직업을 가졌구나’란 기쁨이 더 컸을 정도니까요.”
기업에 찾아가 부당함을 항의했던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여성으로는 네 번째다.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선구자라는 뜻은 반대로 해석하면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처음 출발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였어요. 그곳에서 10년을 일했죠. 당시엔 부처들 중에서도 굉장히 관료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었어요. 여성 사무관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의 능력을 알아주는 부처로 가자고 과감한 선택을 했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공무원 조직은 기본적으로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곳이에요.”
그녀가 선택한 곳은 정무장관 제2실.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새로 설치된 기관으로 사회 문화에 관한 업무들, 그중에서도 여성과 아동, 청소년, 노인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 건의,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이 선택은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성 정책이라는 큰 사회적 책무와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무장관실은 10년 후인 1998년 대한민국 여성특별위원회로 개편되었고, 3년 후인 2001년 여성부로 개편된다. 지금의 여성가족부 전신이다.
“제가 느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욕이 컸죠. 당시만 해도 정시 퇴근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재택근무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육아휴직이란 단어조차 없었죠. 산후휴가제도가 있었지만 60일에 불과했어요. 보육 시설이나 어린이집은 꿈도 못 꾸고요.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다른 사람의 조력 없이는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거죠. 엄마와 직업인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는 것이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니 직장이나 사회 혹은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러한 생각은 유연근무제나 직장 보육시설 지원 등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개선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히 어린이집의 양적·질적 확대에 대한 정책은 공직 생활의 뿌듯한 성과 중 하나다.
“현직에 있을 때 보육정책국장을 2년 6개월 역임했어요. 여성들이 안심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맘 편히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엄마 입장에선 아이들이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또 프로그램이 어린이집마다 제각각이면 그것도 엄마 입장에선 신경 쓰이죠. 그래서 표준보육과정을 만들어 어느 어린이집을 가도 아이들이 같은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또 어린이집의 통합 관리가 가능한 보육행정 전산망도 구축하고요. 보육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했죠. 제 스스로가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개선하고 정책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보람 있었어요.”
여성은 눈에 띄어야 살아
이 회장은 2013년 3월 여성가족부 차관에 오른다. 임명직인 장관을 제외하고,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에 발을 딛은 것이다. 이후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옮겨가면서 한 달간 장관직무대행까지 했다.
“차관으로 발탁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죠. 당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여성 관련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어요. 하지만 차관급 후보에 오를 만한 여성 고위 공무원이 많지 않았던 시기이고, 선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요. 다행히 각 부처에서 일 잘하는 유능한 여성을 발탁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차관에 오를 수 있었죠.”
남성 중심의 사회, 그것도 폐쇄적인 조직이라고 평가받는 정부 조직 안에서 그녀는 늘 개척자여야 했다. 따르고 배울 만한 롤모델도 없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아요. 승진할 수 있을까, 저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무관일 때는 서기관이 될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과장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식이었죠. 당시엔 여성이 극소수였고, 우리에겐 기회가 안 주어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차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그만큼 힘들었던 세월이지만, 열심히 하면 날 알아봐 주는 상사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회장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부당함이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을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태도다. 남들과 같은 방식이나 같은 정도의 노력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소수자가 인정받으려면 일반 다수자의 2배, 3배의 일을 해야 합니다. 똑같이 일하면 절대 인정 못 받아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해요. 소수자의 운명 같은 것이죠. 다른 접근 방식으로 일하고, 벌여놓은 일을 반드시 책임지는 식으로 일했어요. 회의 석상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했고요. 소수자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아요. 물론 그런 태도와 함께 성과도 인정받아야 하고요. 소수자의 숙명에 맞서 살았죠.”
바뀐 신분도 열정 막지 못해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후 이 회장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남들처럼 느긋하게 여행을 하거나 취미생활에 몰입할 법도 한데, 한가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무원 생활할 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데 매료된 상태라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글쓰기에도 집중해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연재하거나, 그간의 경험을 정리한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등을 집필했다. 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의 자서전에도 참여했다.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글솜씨를 인정받아 대필작가가 아닌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퇴직을 앞둔 후배들에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요. 퇴직 후 그 다음 날부터 일하라고 말하죠. 커리어를 중단하지 말고 이전과 똑같이 일하라고 당부합니다. 몇 달 쉬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에 익숙해지거든요. 퇴직 후의 인생을 만드는 것은 현직 시절의 삶인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여성 정책에 대한 경험이나 양성평등에 대한 노력 등 당시의 가치관과 철학이 지금의 삶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세계여성이사협회도 마찬가지죠.”
세계여성이사협회는 전 세계 60개국 80여 지부에서 8500여 개 기업의 이사로 활동하는 3700여 명의 여성 이사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이며, 한국 지부는 2016년 9월에 창립됐다. 창립 당시에는 회원이 40여 명에 불과했다. 동의하는 여성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이 모임의 가입 조건인 상장기업이나 공기업의 등기이사 등과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여성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의 이사회에 여성이 참여하는 국내 비율이 3%가 안 됐어요. 일본도 9% 정도 되고 유럽 국가들은 30~40%나 되는데 우리는 매우 낮았죠. 그래서 우리도 법 개정을 추진했어요. 다양한 법 중에서도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서 여성의 비율 의무화를 시도했죠.”
그래서 은퇴 후 다시 국회를 찾았다. 사실 이 회장에게 국회는 그리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은 아니다. 국회는 여성 공무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과장 때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다리를 꼬았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옷차림이 화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수시로 호출당하기도 예사였다. 다행히 그 경험은 법 개정의 돌파구가 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설득해 상장사 여성 이사 할당제 도입에 관한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다.
“세계 기업들 사이에선 ESG 경영, 즉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핵심 요소로 꼽아야 한다는 흐름이 있어요. 여성 이사 할당제는 이 지배구조의 다양성과 연관이 있죠. 글로벌 기업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조차 안 해요. 우리 기업들도 변해야 하는 시점이고, 저희의 노력이 우리 기업들의 체질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요.”
세계여성이사협회의 주도로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올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자산총액 2조 원이 넘는 기업은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즉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을 임원으로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NGO라는 민간인 자격으로 선봉장에 서서 공무원 못지않게 사회를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물론 이제 시작이죠. 상장기업 외에 공공기관의 이사회에도 여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되면 공공기관 역시 여성 임원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여성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시너지가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