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와인을 따르자.
그리고 잠시 와인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유와 낭만을 가져 보자. 1년 내내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절대 필요조건인 최상의 포도를 생산하려 땀을 쏟으며 온갖 정성을 다한 농부의 숨결이 서사시처럼 짠하게 전해 온다. (포도밭) 포도가 충분히 땅의 기력과 태양의 따스함을 받으며 당도와 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인간의 주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최고 품질의 포도가 없으면 훌륭한 와인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자 선물이다. 여기에다 인간의 간단없는 노력이 첨가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연주하는 합주곡에 한 번쯤 겸손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봄이 어떨까? 모든 것이 바쁘고 팍팍하게 돌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다르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 한 잔의 와인을 따르자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자. 그 한 잔의 와인 속에는 오랜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비밀스러운 코드처럼 속삭이고 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와는 상관없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고 치부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역사도 문화도 새롭고 낮선 것들이 서로 만나고 상충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는 것 아니겠는가! 각자의 경험과 상상에 따라 무수한 얘기들이 들려올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상징되는 와인, 최후의 만찬에 예수가 제자들과 나누어 마셨던 와인, 방주 이후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주조해 무척이나 즐겨 마시며 900살이 넘도록 장수한 노아, 그리스의 밤 와인 향연이었던 심포지엄, 로마의 광란적인 ‘바카날레’, 와인의 주신인 디오니소스, 루이 16세가 단두대로 끌려가기 전에 마셨던 마지막 와인, 프랑스혁명 당시 넘쳐났던 혁명의 와인, 나폴레옹이 애호했던 샹베르텡, 아비뇽 유수 이후로 교황의 와인이 된 샤토네프 뒤파프 등등.
한 잔의 와인에는 지난날의 무수한 이야기와 사건들이 담겨 있다. 조금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와인은 서구 문명의 중요한 한 축이다. 따라서 와인은 서구 문명이란 거대한 곳간을 열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열쇠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와인을 취감을 위한 단순한 알코올로 마시는 데 그치지 말고 와인이 수천 년 동안 간직해 온 인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가며 음미해 보면 어떨까?
다시 한 잔의 와인을 따르자
그리고 와인이 발산하는 미묘한 색깔에 눈길을 멈추며, 잠시 환상에 젖어 보자. 레드 와인의 경우 가장자리가 보라색을 띠는 검붉은 빨강에서 체리 빛이 도는 옅은 빨강까지 그 느낌이 다양하고 현란하다. 화이트는 잔의 가장자리에 초록색을 띠는 옅은 노랑에서 짚 색을 거쳐 황금의 짙은 노랑까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로제는 옅고 투명한 빨강에서 잿빛이 감도는 분홍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미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샹파뉴라면 쉼 없이 치솟아 오르는 거품의 윤무를 음미해 보자. 몸의 일부가 간지러운 듯한, 아니면 가벼워지는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거품이 잠자는 우리의 여러 감각을 깨우는 느낌에 젖어 보자. 그리고 색상의 짙고 옅음과 투명함을 눈여겨 살펴보자.
다시 한 잔의 와인을 따르자.
당연하지만 잔은 3분의 1이상을 채우지 말자. 황홀한 향들이 잔의 나머지 공간에서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도록. 이제 천천히 코로 잔을 옮겨 깊숙이 들이마셔 보자.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 와인이 발산하는 향에 매료되어 보자.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무덤을 찾아 젖꼭지를 빠는 것은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인도하는 것이 바로 냄새다. 엄마의 고유한 체취가 갓난아기에게는 유일한 등대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맡아온 여러 향들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 보자. 그리고 과일 향, 꽃 향, 미네랄 향, 동물 향 그리고 때로는 화약 향까지 다양한 와인 향의 팔레트를 느껴 보자. 이런 과정에서 기억의 지층 깊은 곳에 숨겨 있던 어떤 기억들이 문득 기억의 표면 위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한 번 더 향을 맡아보자.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화성이 덜한 미세하고 미묘한 향들이 미각을 자극할 것이다.
잠시 얘기를 돌려보자. 쟝-피에르 빌램(Jean-Pierre Willem)이라는 프랑스 의사가 있다. 가봉에서 슈바르츠 박사의 마지막 조수 생활을 했으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의사로서 가장 많이 활동해 기네스북에도 오른 사람이다. 지금은 ‘맨발의 의사회’를 창설해 가난한 국가의 의료봉사를 지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특히 향 치료(aroma-therapy)에 관한 저술을 많이 했으며,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는 나에게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들려주며, 그곳에서는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향을 이용한다고 했다. 덧붙여 향은 인간의 뇌에 바로 작용을 하기에 가장 심오한 치료법이라고도 했다. 프랑스의 일부 병원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고 치료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향, 특히 바닐라 향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미처 우리가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향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와인은 향의 정원이란 점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잠시 우회해 보았다.
자, 이제 다시 와인을 한 잔 따르자d
그리고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어 보자. 정신을 가다듬고 보물찾기라도 하듯 와인이 간직한 신비의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겨 보려 노력하자. 삼키기 전에 와인이 전해 주는 다양한 맛과 질감을 최대한 여유롭게 즐기자. 벨벳이나 실크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있을 테고, 거친 타닌이나 높은 산도로 까칠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로 생각의 물꼬를 터 보자. 방금 마신 이 와인이 1년, 2년, 3년… 10년 후에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렇게 세월이 지난 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훌륭한 와인처럼 시간과 더불어 보다 성숙하고 깊이와 조화를 더한 멋있는 사람으로 발전해 있을까? 아니면 하찮은 와인처럼 쇠약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이제 와인에 대한 총체적인 느낌을 솔직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이 와인 참 괜찮네요’ ‘마시기에 편한 훌륭한 와인이네요’ 정도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더 이상 와인을 잔에 따라야 할 당위성 혹은 필요성은 없다. 이미 마실 만큼 마시지 않았나? 분위기와 즐거움을 위해 계속하려면 그렇게 하시라.
끝으로 와인의 속삭임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보자. 와인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난 오직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태어났어요. 그 즐거움은 좋은 사람들과 나누면 나눌수록 커져요. 즐거움이 커지려면 가능한 한 과음은 피하세요. 특히 다른 술을 잔뜩 마시고 절 맨 마지막에 마시는 것은 모욕이에요”
글 신광철 시인, 작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자유를 주어라. 내 안에는 많은 길과 많은 말과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에 익숙해져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산 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방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거머쥐기 위해서, 또는 지배하기 위해서일까. 인생에 목표를 두고 달려왔던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단순하다. 대부분 돈 권력 명예 그리고 사랑과 성이 중요한 목표였고, 이것들에 ‘더 많이’라는 구체적 목표 외에는 별 것이 없다. 과연 인생 60을 살아온 지금도 그런가. 그렇다면 그 인생은 올바른 삶인가 묻고 싶다.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걸 꿈이라고 한다. 인생의 방향은 집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종교에서 말하는 꿈이 아니라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순결한 내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이 진정한 꿈이다. 꿈을 향해 사는 것이 최선이다. 세상에 태어난 진정한 이유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
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늦은 나이는 없다. 가장 이른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늦은 시간은 다음이다. 더 나쁜 결정이 있다. 포기다. 포기하는 순간 죽은 것이다. 60년 동안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행복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영원한 갈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행복은 내 안에 있는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꿈을 실현하는 것이 행복이고, 내 안에 있는 따뜻함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긍정의 토대 위에 놓여 있는 온기다. 존재를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자람과 넘침을 받아들이고, 살아 있음을 살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행복이 온다. 젊게 사는 방법은 육체가 젊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젊게 사는 방법이다.
내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꿈이라고 한다. 꿈을 나는 등대라고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더라도 다시 바라보면 별처럼 빛나는 꿈, 꿈은 그래서 별이다. 인생의 영원한 등대가 꿈이다. 꿈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는 것이 행복이다. 꿈은 노력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땀을 기다리고 있다. 꿈은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나 자신에게.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나의 꿈은 글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버려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버리고 글쓰기에 돌입했다. 글 중에서도 시가 쓰고 싶었다. 시는 굶어야 만날 수 있는 세계다. 산업사회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것이 시다. 산업사회는 인간을 도구로 보는 사회다.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간을 본다. 생산과 관계되지 않은 것은 도태되는 사회가 산업사회다. 시인이 생산하는 시는 돈이 되지 못한다. 교환경제 속에서 시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재화를 생산하는 굴뚝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인은 빛나는 존재다
그래서 바꾸었다. 시가 돈이 되지 않으니 돈이 되는 글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두 접점에서 만난 것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독특하고 희귀한 존재였다. 빛나는 존재였다. 파고들수록 깊고 넓은 세계가 있었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한국인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균대에서 자랑스러운 것을 말하고 싶다. 한국인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루어 냈다. 먼저 세상에서 말을 정리한다는 것은 엄두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특정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말은 만들어진다. 말은 상당 부분 비논리적이고, 비계획적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놀라운 언어다.
우리의 말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얼굴부터 살펴본다. 눈 코 귀 입. 몸으로 들어가 본다. 살 피 뼈 등 배. 자연으로 가면 한도 없다. 강 산 들 물 눈 비 풀 꽃 씨 그리고 땅이 있다. 땅이 한 글자라면 하늘도 한 글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은 두 글자인 이유가 있다.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한늘이다. ‘한’은 무한히 큰 공간을 말하는 우리말 한이다. ‘늘’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시간으로 우리말 늘이다. 무한공간인 ‘한’과 무한시간인 ‘늘’이 만나 ‘한늘’이 되었고 ‘ㄴ’이 탈락하여 하늘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 중에서도 우리와 가까운 것들은 한 글자로 되어있다. 호랑이 늑대 승냥이 고양이 같은 동물은 여러 글자로 되어 있지만 우리와 밀접한 가축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있다. 놀랍다. 원칙을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다. 가축의 이름을 본다. 소 말 양 닭 개. 모두 한 글자다. 돼지도 가축인데 두 글자다. 돼지는 옛말로는 ‘톳’ 또는 ‘’이라고 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토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돼지는 돼지새끼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지’는 동물의 새끼를 말한다. 강아지, 송아지 등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톳과 아지가 만나 톳아지가 도야지로, 도야지가 돼지로 되었다. 곡식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밀접한 곡물들은 보리를 제외한 쌀 벼 밀 콩 깨 등으로 대부분 한 글자다.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두 글자로 만들어져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한국인에게 잠재되어 있고, 또한 숨어 있다. 우리의 능력을 우리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인이다. 세계에서 드문 일이, 한국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예상 외로 많은 것에 놀랍다. 나물도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어느 나라도 들이나 산에서 나는 야생 나무나 풀을 음식의 재료로 상식하는 민족은 없다. 약초로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전 국민이 산이나 들에서 풀과 나뭇잎을 상시로 뜯어다가 밥상에 올리는 나라는 없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프리카나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지만 나물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야생하는 나무와 풀들의 약리 성분과 독특한 맛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탐구심이 강하다. 끝까지 파고들려는 기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어이 달성하고 마는 강인함이 있다.
나는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인생은 우연이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우연은 준비되어 있어 인연과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인연은 우연을 가장해서 온다고 말한다. 내가 한국인을 만난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을 만나면서 인생도 달라졌다. 한국인의 놀라운 세계가 나를 흥분시켰고, 나를 즐겁게 했다. 들어갈수록 오묘한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들어본다. 세계 어느 나라의 건국이념이 경계를 허물고 인간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내용을 가진 나라가 있을까. 한마디로 없다. 다 같이 이롭게 잘 살자는 홍익인간은 인류공존의 기틀을 만드는 초석이 될 건국이념이다.
다시 뛴다, 인생은 육십부터
인생에 불을 질러라.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은 독립된 섬이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가 있고, 새가 있지만 인간은 고립되어 있다. 고립을 피하여 배를 만들었지만 외롭다. 사람, 고립된 섬이다. 손을 잡고 있어도 너는 내가 될 수가 없다.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어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키운다.
그래서 나는 ‘삶아 난 너를 사랑한다’고 선언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지 않고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기만임을 알았다. 나를 사랑한 후에 남을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쉬운 듯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속성을 알아야 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자기보호본능이 있다. 자기보호본능은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초적인 방어기제였다. 자기보호본능의 핵심이 이기심이다. 생명체의 기본 속성이 자기보호본능이고, 자기보호본능의 핵심이 이기심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 한가운데 기둥처럼 서 있는 것이 이기심이라는 이론이다. 이기심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다.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이 가져오는 것이 이기심이다. 경쟁과 싸움이 따른다. 하지만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봤다. 이기심은 적을 만들지만 진정한 이기심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타인이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만들면 적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진정한 이기심은 배려와 봉사였다.
또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어떤 길을 가도 내 인생임을 자각하는 순간 두려움은 상당 부분 없어진다. 신에게 기도하는 손보다 실천하는 손이 더 아름답다고 우긴다. 모자라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데리고 사는 것이 힘들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모자라고 어리석은 자신을 자각하고 완성을 향하여 한 발씩 나아간다는 데 있다. 욕망이 아름다우면 노래가 될 수가 있다. 꿈이 아름다우면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글쓰기를 인생의 과업으로 설정한 것이 고난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즐겁게 가려 한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는 만큼 장애를 도전으로 넘어보려 한다. 글쓰기와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 곤란을 안겨 주겠지만 웃으며 갈 것이다. 아름다운 욕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따뜻한 이기심은 배려와 봉사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한 이기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한다.
>> 신광철 시인, 작가
한국문화콘텐츠 연구소장으로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언제나 ‘긍정이’와 ‘웃음이‘를 반려동물처럼 데리고 다니세요”라고 당부하는 문학가이자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