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전화 주실 줄 알고 기다리다 다시 해요.”
“응… 손님 만나는 중이어서….”
“그랬어요? 그럼 그렇다고 문자라도 주시지… 나는 함께 점심하려고 전화했던 건데.”
“손님과 점심 약속을 했던 터라… 미리 말하지 그랬어?”
“미리 말한다고 약속 잡아주실 것도 아니면서.”
“뭐 어쨌든. 그나저나 잘 지내고?”
“네, 저는 잘 지내요. 조만간 점심 사드리고 싶네요.”
“점심은 무슨. 됐고.”
“그럴 줄 알았어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예의 그 ‘손님’이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는 바람에 통화가 오히려 길어졌다. 점심 식사 중에 그 여자의 전화가 왔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 손님과의 자리가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핑계 삼아 그 여자의 전화를 따돌리고 싶었을 뿐. 손님이라야 등산을 함께 다니는 동네 지인으로 별 용건 없이 그냥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전화했어?”
“보고 싶으니까 했죠.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우리가 얼굴 보고 싶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사인가? 아무튼 난 지금 바빠. 그만 끊자고.”
얼굴 보고 싶다며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사이,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이, 껄끄러운 사이. 그렇다, 그녀와 나는 옛 연인 사이다. 눈 씻고 찾으려 들면야 한 자락 추억이야 없지는 않겠지만 그딴 건 찾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수록 씁쓰레함만 남은 관계.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아직도 내게 미련이 있다는 거겠지만, 나는 한마디로 노 생큐!다. 안 그러면 또 뭘 어쩔 건데? 지금 와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인데.
사업 실패와 연이은 가정 붕괴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한 100억 정도 가진 재산가다. 굳이 돈을 강조하는 이유는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 그런 조건 좋은 여자가 내게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얼마나 조건이 좋은 남자길래 그런 잘난 여자가 죽자고 매달리는 거냐고? 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렇다고 백수건달이나 제비족은 아닌, 어쨌거나 그녀에게 만만하게 보인 50대 중반 독신남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세 번째 남편감이냐고? 천만에 말씀! 누구 맘대로!
10년 전 나는 사업에 실패했다. 40대 중반이었다. 그 여파로 아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자 가족들로부터 보기 좋게 버림을 받았다. 물론 내 잘못이 컸다. 외국 유명 브랜드 의류 수입상을 했던 나는 불황을 맞아 기울어가는 사업체를 정리할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어떻게든 살려보리라 무모한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나를 설득하며 마음 졸이다 못해 인내심이 바닥 난 아내는 반은 홧김에, 반은 살 길을 찾아 미국 친정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정과 사업체가 박살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는 물론 생이별한 자식들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살할 궁리만 모색하던 처참한 나날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고통 많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자살 생각으로 가득 찼다. 1년 후 이혼 서류를 보내온 아내의 요구에 이렇다 할 대꾸나 변명 한마디 없이 응했던 것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탓이었다.
그럼에도 늘그막에 외손주 둘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처가의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어쨌거나 두 아이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장래가 밝아진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아내는 나에 대한 원망과 일말의 복수심으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차단한 것이리라.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고 재기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간간이 들어오는 경영 계통 강연 수입으로 그때그때 생활비를 벌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등산과 마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망한 나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아, 그녀는 사업상 나의 고객이었다. 내가 쫄딱 망한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해온 것이었다. 쫄딱 망한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게다가 한 미모하는 이혼녀. 로또 대박과 맞먹는 행운이 아니냐고? 게다가 아내까지 미국으로 내뺀 상황이었으니. 글쎄, 계속 들어보시라.
나도 처음엔 그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재기를 꿈꿨다. 그녀를, 아니 그녀의 돈을 통해 회생할 가능성을 탐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불쌍한 여자다. 그녀의 인간관계, 특히 남자관계는 늘 돈이 중심이었다. 첫 결혼도 두 집안이 서로 돈을 보고 딸과 아들을 교환했던 것이니 애정 없는 혼인 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고, 결국 남편의 외도로 3년 만에 파탄이 났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 측에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탐냄으로써 이뤄졌다. 20년 연상의 재벌급 홀아비, 그녀로서는 재력적 지위가 급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기쁨도 하늘을 찔렀다. 재물에 마음이 꽂힌 사람들은 더 많은 재물을, 권력을 탐하는 부류들은 더 높은 자리를,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무한 인기를 갈구하는 법이니. 사람은 저마다 우상을 모시고 살며, 우상 숭배란 맹목적인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미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돈에 집착하고 돈에 갈증이 든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닌가.
그녀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에너지를 쏟을 곳이라곤 오직 돈에 관계된 것이었기에, 앞뒤 재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되어 많은 돈을 잃고 그만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두 번째 이혼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만난 것이다. 비록 이혼을 했어도 받은 위자료와 본인 재산 등으로 내게 대줄 수 있는 사업자금은 충분했다.
자, 이런 상황이다. 처음에야 나도 횡재한 기분이었다. 속물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이니까. 거처가 마땅찮았던 나는 바로 강남에 있는 그녀의 80평대 아파트로 들어갔고,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됐다. 1년이 지났을 무렵, 한마디로 나는 그녀에게서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오직 돈, 돈, 돈만 알 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돈 타령에, 아마 꿈조차 돈에 대한 것을 꿨으리라.
그녀에게서는 어떤 내면의 향기도, 내적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 책은 고사하고 글 한 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사색에 잠긴다거나 주변이나 일상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자연에 대해서도 교감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아마도 푸른 여름은 만 원권 지폐로, 노란 가을은 오만 원권 지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그녀의 아파트를 나왔다. 들어갈 때도 맨몸, 나올 때도 맨몸. 여전히 집도 절도 없었던 나는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처럼 어느 산자락 빈집에서 한 달가량 몸을 의지해 있었다. 그 후 낯선 소도시로 흘러들어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작은 강연, 독서 모임 등을 이끌면서 내 입을 먹이며 살고 있다.
나와 그녀의 관계에는 환멸만 남고
혹자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면이니 감수성이니 그딴 게 밥 먹여주냐고. 봉을 잡았으니 빌붙어서 몸이라도 편할 수 있지 않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 한번 살아보시라. 입만 열면 돈타령에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나는 열을 준대도 덧정 없다.
만약 그 여자가 그나마 머리에 든 것이 있는 나를 흠모하여 자신에게는 없는 지성이나 교양을 취해보리라는 갸륵함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애초에 그런 코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서 무엇을 보고, 내가 가진 어떤 점이 그녀를 끌어당겼을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를 자기 재산 증식시켜주고 관리해주는 머슴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디 가서 재산을 불릴지, 하나보다는 둘이 힘이 되니 속된 말로 만만한 나를 ‘꼬붕’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애초 애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녀에게 애정 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기나 할까. 내가 아는 한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신뢰나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으니. 설혹 내게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는 것에 한해서 허용하는 게 고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녀가 지금도 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불쾌할 수밖에.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지성, 외모, 상식과 자존감을 갖춘 사람이기가 어려울까? 솔직히 그럴 것 같다. 그런 여자들은 남자 또한 엇비슷한 수준에서 만나고 싶어 할 텐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능력 면에서 현저히 기울어져 있으니 두루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여자들만 꼬인다고 할지. 겨우 한 여자 만난 것을 두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냐고? 내가 설마 한 여자만 두고 그러겠나. 그 사이에 두 여자가 더 내게 호감을 표해왔는데 역시 비슷한 여자들이었다. 돈밖에 없고 천박한. 돈 많고 무식한 여자, 돈밖에 모르는 여자들이 꼬이는 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말 미국은퇴자협회(AARP)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제2의 인생연구’에서 미국 고령자를 대상으로 ‘노화’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연구에 참여한 시니어들은 건강, 재무, 관계, 죽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그 결과부터 요약하자면, 이전보다 노화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연재를 통해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 네 번째 순서로 ‘관계’에 대해 알아봤다.
AARP ‘제2의 인생연구’에서 미국 중년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인간관계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또는 친구와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평가한 이들은 40대 이하에서 56%였으나, 60대 69%, 80대 85% 등 나이에 비례해 그 수치가 증가했다. 한편 70대와 80대 각각 3%, 2%만이 주변인과 자신의 관계를 아주 낮게 평가하며, 나이에 반비례하는 양상을 띠었다.
미국 노인들은 자신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더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60대 이상 중장년 세대의 50% 이상이 앞으로도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역으로 60세 미만의 중년층에서는 과반수가 보다 의미 있는 관계로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유형의 관계에서 더 기쁨을 느끼느냐고 묻자, 전 연령대에서 가족을 친구보다 우선시했다. 아울러 앞선 결과와 마찬가지로 두 영역 모두 나이에 비례해 관계에 만족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노인병 전문의 루이스 애런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가 양적으로 축소되면서 질 높은 관계가 형성된다. 대체로 가장 오랜 세월 함께 지낸 배우자나 자녀, 형제 등 가족에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이 들수록 넓지는 않더라도 핵심적인 관계는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 미국 성인의 35%는 사회적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라 록 AARP 부사장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노년기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며 “직접 만남이 힘들다면, SNS 등을 통해 손주와 소통한다거나,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를 다져나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노인들은 디지털 연락처(이메일이나 SNS 주소 등) 관리도 중요하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확장하면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고, 사회적 고립감도 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는 “나이가 듦에 따라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이슈들이 등장한다. 가령 직장 생활을 하면서 왕성하게 넓혀온 인적 네트워크가 은퇴와 동시에 사라지며 일종의 ‘관계 번아웃’을 경험할 수 있다. 또는 자녀의 독립이나 결혼 등으로 인해 겪는 ‘빈둥지증후군’, 배우자나 가까운 친구의 사별로 생기는 ‘상심증후군’ 등 심리적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관계 축소 또는 변화로 인해 자칫 무기력증, 우울증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부분 역시 관계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마음 터놓고 의지할 수 있고, 평소 나의 상태를 살펴줄 가족이나 친구가 꼭 필요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70여 년간 서울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며 빠르게 도시화했다. 끊임없이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서울은 주택 부족에 시달렸다. 주택난 해결을 위해, 또 더 쾌적한 주거 환경 조성을 위해 도시의 모습과 집은 바뀌어 갔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생활 모습 역시 달라져 갔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서울에 지어졌던 다양한 집의 형태, 서울시민의 생활 변화를 들여다보는 전시 ‘서울살이와 집’을 마련했다. 오는 11월 4일(금)부터 내년 4월 2일(일)까지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서울생활사조사연구 ‘서울시민의 주생활’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1부 ‘서울, 서울사람, 서울집’, 2부 ‘서울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3부 ‘서울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 등의 주제로 구성됐다.
1부 ‘서울, 서울사람, 서울집’에서는 서울 시역의 확장,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로 복잡해진 서울의 모습과 부족해진 집을 짓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 생활의 변화를 야기한 제도와 가구 및 가전의 등장을 연표와 정보 그림(인포그래픽)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2부 ‘서울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에서는 서울의 다양한 집들 중 대표적인 도시형 한옥, 재건주택, 2층 슬라브양옥, 아파트라는 4종류의 집을 소개했다. 각 집의 안과 밖의 모습,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서울시민의 삶을 영화와 미술작품, 실제 크기로 재현된 연출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게 구성했다.
2부에서 활용한 영화는 박종호 감독의 ‘골목 안 풍경’(1962)로, 성북동의 어느 도시형 한옥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안암동 재건주택의 모습은 당시의 평면도를 바탕으로 실제 크기로 재현‧연출한 공간을 체험케 한다. 한형모 감독의 ‘돼지꿈’(1961)이라는 영화를 통해 비슷한 후생주택 생활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이후 1970년대에 많이 지어졌던 2층 슬라브양옥을 소개하는 곳에서는 안민정 작가의 ‘우리 집 세부도’(2015)라는 작품을 통해 그 시절 셋방살이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전시는 1970년대 중후반에 준공된 13평의 잠실시영아파트가 실제 크기로 구현돼 당시 공간을 재현 및 연출했다. 당시 잠실시영아파트에 살았던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인터뷰 영상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3부 ‘서울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에서는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집을 원하던 사람들이 점차 집 자체의 재화적 가치에 집중하게 된 모습들을 광고 키워드의 변화로 살펴본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집 안에서 일어나는 생활상의 변화가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집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을 설문조사의 결과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1950년대 말 그리고 1970년대 말의 어느 평범한 서울사람의 집이 재현된 공간에서, 그때 그 시절 방의 크기와 집 안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며 “가족들과 함께 조부모, 부모가 살았던 옛 집을 회상하며 시간 여행을 다녀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및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특별시교육청 공식 유튜브에 ‘조부모참견시점’이라는 교육 콘텐츠가 올라왔다. 손주 육아를 위해 배움을 마다치 않는 요즘 조부모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기본적인 육아 방법부터 인성 교육, 소통 기술 등을 비롯해 조부모의 심신 건강 솔루션까지, 손주 돌봄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황혼육아 프로그램과 더불어 참여자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취재 협조 및 장소 제공=광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황혼육아 그룹 인터뷰 참여자들
ㆍ최영숙(63) 6살, 2살 두 명의 손주를 함께 케어하는 육아 베테랑이다. 노후에 다소 여유로워진 시간을 육아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을 위해 손주 돌봄에 할애하기로 했다.
ㆍ김혜경(74) 손주의 등교 전, 하교 후 부모의 돌봄 공백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손주에게 배우는 점도 많단다.
ㆍ송영희(68)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우려돼 직접 손주를 돌보게 됐다. 자신 역시 과거 자녀들을 조부모에게 맡겼던 경험이 있다.
ㆍ윤옥경(64) 맞벌이인 아들과 며느리를 돕기 위해 2년 전 황혼육아에 뛰어들었다. 남편 또한 교육에 관심이 많아 함께 손주 육아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 및 민간 기관 등을 통해 조부모를 위한 교육이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다. 기존에 부모와 아이 대상 프로그램 위주였던 광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의 경우에도 올해 황혼육아 대상자를 위한 특별 수업을 열었다. 송영희 씨와 윤옥경 씨가 참여한 7월 ‘지혜로운 조부모의 육아법’을 시작으로 9월 ‘즐거운 조부모 놀이법’ 등을 펼치며 지역 조부모들에게 유익한 강의로 호평을 얻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보면 ‘손자녀 개월 수에 따른 놀이법’, ‘오감발달 신체 놀이법’ 등 아이들을 위한 부분도 있지만, ‘스트레스 없는 손주 육아 비법’, ‘조부모의 몸과 마음 챙김’ 등 조부모를 배려한 구성도 눈에 띈다.
최영숙 씨가 참여한 ‘손주돌보미 양성교육’의 경우 구 단위로는 유일하게 조부모 교육과 더불어 이수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총 25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매달 30만 원을 지원받는다. 올해 교육은 총 11과목으로 ‘영아 발달의 이해’를 비롯해 ‘베이비 마사지’,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교육’, ‘아동 인성지도 및 성교육’ 등으로 다채롭게 마련됐다.
김혜경 씨가 참여한 강남구 못골도서관의 ‘황혼육아 마스터 프로젝트’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조부모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6월부터 9월까지 운영했는데, 도서관이라는 특성에 알맞게 그림책을 활용한 육아 기법을 전수했다. 아울러 창의 미술, 음악 놀이, 오감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뿐만 아니라 조부모의 뇌 건강과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수강생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Topic 1 황혼육아 프로그램 및 정책
Q 황혼육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는무엇인가요?
옥경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육아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남편도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나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혜경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어서 손주 돌보는 시간 외에는 남편을 케어했어요. 근래에 남편이 데이케어 센터에 다니면서 내 시간이 좀 생겼어요. 덕분에 도서관에도 가고 거기서 하는 황혼육아 프로그램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희 저희 아이들도 조부모님 손에 컸어요. 그 영향인지 다들 예의도 바르고 인성도 훌륭하게 잘 큰 것 같아요. 저도 우리 손주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이런저런 정보를 보던 중에 강의도 듣게 됐습니다.
Q 황혼육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희 조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육아 교육은 참 좋다고 생각해요. 무슨 교육이 있다고 하면 필히 가보고 싶고, 알고 싶어요. 우리 손주를 어떻게 관찰하고 육아를 해야 할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잖아요. 다만 기간이 조금 짧다고 생각해요. 한두 번으로는 부족해요.
영숙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홍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주면 사람들도 많이 올 테고, 같은 입장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겠죠. 그리고 EBS 같은 공영채널에서 손주 연령별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줬으면 좋겠어요.
혜경 저희 손주는 초등학생이에요. 요즘 교과서는 옛날과 다르게 수준이 많이 높아졌더라고요. 우리 애 숙제라도 도우려면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죠. 물어보는 데 모른다고만 하면 대화 자체가 안 되니까요. 육아 교육이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지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도 많이 만들어줬으면 해요.
Q 구체적으로 원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더 있다면요?
영희 이론 교육도 좋지만 몸으로 하는 놀이를 알려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과거 세대가 즐겼던 오자미(헝겊에 콩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주머니) 던지기 같은 것은 우리 세대도 재밌고, 손주들에게는 새로울 테니 그 나름대로 즐겁잖아요.
옥경 저희 집 애도 요즘 오자미로 촉감 놀이를 하고 있어요. 그게 아이들 발달에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Q 서울시 육아 조력자 수당에 대해 알고 있나요?
영숙 손자 손녀를 안 봐주려는 조부모들도 있는데, 수당을 준다고 하면 아무래도 자녀를 도우려는 사람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혜경 수당이 얼마인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지원해주는 손주 연령대가 너무 낮은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육아 부담은 더욱 커지는데 말이에요.
영희 육아 수당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황혼육아를 하는 조부모들을 신경 써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봐요. 더불어 이 정책을 모르는 분들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육아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옥경 수당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는데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준다고 하면 받아야죠.
Topic 2 우리들의 황혼육아
Q 어떤 방법으로 육아 정보를 얻나요?
옥경 주로 유튜브나 책을 참고해요. 사례도 다양하고 전문가 의견도 많거든요. 공부한 내용을 노트에 적어 요약본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주기도 했어요.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항상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영희 저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많이 봐요. 오은영 박사님 말씀은 항상 육아에 도움이 돼요.
Q 내가 하는 육아 방식을 자녀가 틀렸다고 지적한다면?
옥경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면 아이들 정서 발달에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애들 엄마, 아빠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부부들이 똑똑해서 잘못된 정보로 육아하지도 않고요.
영희 우리 세대의 방식을 고집한다고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자녀를 키울 때는 ‘안 돼’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 박사님이 부정적인 언어는 아이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시는 걸 봤어요.
옥경 맞아요.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그냥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고치는 게 서로한테 좋다고 생각해요.
Q 자녀를 육아할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옥경 자녀를 키울 때는 제가 주 양육자여서 그런지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 양육자니 부담이 덜하고, 내 생각대로 하는 게 없어서 오히려 편해요. 손주도 너무 예쁘고요. 부모 자식 간 관계도 예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혜경 젊을 땐 직장 생활을 했으니 거의 방치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늦게 퇴근해서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하고. 애들 볼 때마다 미안해요. 손주 육아를 할 때는 제 주관을 고집하기보다 자녀들이 부탁하는 방식대로 해주죠.
영숙 저는 애들을 굉장히 엄하게 키웠어요. 바르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손주들에게는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자식들이 손주를 혼내는 것 같으면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편이에요.
영희 다들 그때는 부모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서툴 수밖에 없었죠.
영숙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어요. 우리 세대는 자식들에게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쳤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손주가 저 나이쯤 되면 해야 하고 밟아야 할 단계가 있는데 말이죠. 자녀들은 아이가 하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이에게 의견을 묻더라고요. 억지로 시키려고 애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나요.
옥경 지금은 할아버지들도 손주 돌보는 데 참여를 많이 하잖아요.
영희 맞아요. 우리 손주는 요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남편한테 “할비, 할비” 하면서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라다녀요. 그러니까 남편도 손주를 더 예뻐하죠.
Q 손주를 돌보면서 즐거울 때는 언제였나요?
혜경 우리 할머니 항상 고맙다고 편지를 써주더라고요. 뒤쪽에 그림도 열심히 그려가지고. ‘어른돼서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라는 문구도 너무 기특했어요. 그걸 코팅해서 아직도 가지고 있죠.
영희 우리 손주가 “할미, 할미” 하면 피곤했던 것도 싹 가셔요. 애 돌볼 맛 난다 싶어요. 물론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때도 있어요. 삶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어요. 그래도 좋은 일이 많으니 행복하게 지내려고 해요.
영숙 저도 같은 맥락인데요. 손주가 제 얼굴을 보고 반갑다며 팔짝팔짝 뛸 때 너무 예뻐요.
옥경 편지는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울시 양육자 생활 실태 및 정책 수요 조사’(0~12세 자녀를 키우는 서울시민 2005명 대상)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84.7%가 돌봄 기관을 이용해도 추가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맞벌이 가구의 주요 돌봄 조력자(중복 응답)는 ‘조부모·기타 친족·이웃’(영유아기 56.9%, 초등기 41.7%)이 가장 많았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조부모’라는 의미다. 인생 2막을 손주 육아로 시작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각 가족, 그리고 조부모 사이에서 황혼육아는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돌봐요
성역할이 뚜렷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꾸리는 데 남녀 역할이 따로 없다.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전국 4490가구, 8358명 대상)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완화되고 있다.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에 동의하는 비율은 42.1%에서 29.9%로 떨어졌다.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에 대한 동의 비율은 17.4%로, 6년 전 2016년의 53.8%에 비해 큰 감소세다.
이러한 흐름은 조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 경기, 인천 거주 만 55세 이상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을 대상으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은 할아버지가 손주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전히 여성이 아이 돌봄 노동을 대부분 부담하고 있지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 스마트해진 조부모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돌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양육의 주체가 부모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발달 상태와 성향에 따른 맞춤형 육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부모 역시 관련 교육을 수강하거나 책, TV 등을 통해 ‘요즘 육아’를 공부하는 데 힘쓰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스마트폰 조작에 익숙해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라인을 통해 육아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추세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조사’에서도 유튜브나 SNS 등 온라인을 활용해 육아 정보를 얻는다는 조부모가 대부분(72.7%)이었다. 최근 인기 있는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TV 프로그램을 찾아본다는 이는 48.6%에 달했다. 잡지나 책 등 인쇄 매체를 이용한 정보 습득은 30.9%로 나타났다(복수 응답).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손주 돌봄은 부모와 조부모의 화합이 중요하다”며 “서로 양육관의 차이를 이해하고, 손주 육아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주의 ‘부모’가 아닌 ‘조부모’임을 잊지 않아야 하며 아이의 안전, 식사, 수면 등 최소한의 역할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손주 사랑도 통 크게!
현재 조부모가 된 베이비부머 세대는 구매력이 막강하다. 과거의 조부모 세대와 달리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스포츠 등 야외 활동을 즐긴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소비자 정책 동향에 따르면, 고령 소비자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가구당 평균 387만 원으로 전체 소비자 월평균 소득의 약 66.5%에 이른다. 지출 역시 약 261만 원으로 평균 가구원 수를 감안할 때 전체 소비자의 82.4%에 이르는 수치다.
고령자 세대에 새로 편입한 조부모들은 스스로가 활동적인 소비 주체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특유의 강력한 구매력으로 손주에게 지출을 아끼지 않는 모양새다. 장난감 시장의 ‘큰손’ 역시 조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옥션이 2018년 장난감·교육 완구·인형 등 어린이날 대표 선물 품목에 대한 연령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50~60대 구매량이 3년 전보다 품목별로 최대 2배 이상 증가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4월 한 달 동안 장난감 전체 품목에 대한 50~60대 구매량 또한 2015년 대비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대 구매 신장률이 74%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41%로 뒤를 이었다.
사랑하는 마음 못 따라가는 체력
자녀를 돕기 위해 손주를 맡아주는 일이 늘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질환, 이른바 ‘손주병’을 호소하는 조부모도 증가했다. 이미 한 번 육아를 경험했기 때문에 손주를 돌보는 데 능숙할 수는 있지만, 자녀를 기르던 당시와는 달리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있을 터. 황혼기에 접어드는 조부모는 육아 과정에서 아이를 안고 눕히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며 손목 부위의 힘줄과 신경에 자극을 받아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손목 스트레칭과 보호대 착용 등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더불어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안고 있는 자세는 척추에 부담이 된다. 허리를 숙이는 동작만으로도 척추뼈 사이의 디스크(추간판)에 평소보다 2.5배에 달하는 압력이 전달된다. 여기에 10kg 이상 되는 아이를 업고 있다면 하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인혁 부천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무릎을 깨워주고, 연골에 좋은 음식 및 영양제를 챙기면 더욱 좋다”며 “한방에서는 연골 보호를 위한 약재로 모과를 쓰는데, 이는 무릎 연골 보호 및 뼈 건강, 근육통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고 조언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근 고령화 속도에 따라 기존 64세에서 최대 69세까지 생산연령인구로 포함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때문에 황혼육아로 인해 조부모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즉 ‘노후 육아 양립 정책’을 논의할 때가 온 것이다.
지원 대상자는 누구인가?
만 36개월 이하 영아를 둔 서울시 거주 중위소득 150% 이하의 양육 공백이 있는 가정으로, 육아 조력자가 월 40시간 이상 돌볼 경우.
지원 금액은 얼마이고, 신청은 어떻게 하나?
영아 1명당 매월 30만 원(2명 45만 원, 3명 60만 원)으로 최대 12개월 지원. 25개 자치구와 협력해 거주지 관할 동 주민센터 및 온라인을 통해 진행 계획.
월 40시간은 어떻게 산정했고, 증빙 방법은 무엇인가?
한 달 중 맞벌이 가정에서 통상 양육 공백이 발생하는 평일 20일 기준 하루 2시간을 최소 수행 조건으로 보았음. 증빙 방법은 온·오프라인 모니터링 실시 등 효율적 수행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
정책 시행 전 논의할 부분이 남았다면?
돌봄 수행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방안 및 촘촘한 세부 지원 절차 마련 계획. 이용 가정의 다양한 양육 여건 및 시행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사례를 검토해 반영할 예정.
황혼육아 지원책, 이런 건 어떨까?
❶ 조부모 육아휴직제도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하는 정책으로, 법으로는 규정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한국 맞벌이 부부에게 적합하다. 부모는 계속 근무하고 조부모가 대신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비용을 지급받는 방식이다.
❷ 일하는 조부모 육아·일 양립 정책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노년에도 일자리를 희망하는 조부모가 많다. 일하는 조부모가 갑자기 손자녀를 돌봐야 할 경우 일정 기간 휴직을 허락하는 등의 제도를 고안해볼 수 있다.
❸ 조부모 손주돌보미 어드바이저
실제 호주에서 손자녀 양육 경험이 있는 조부모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제도로, 노인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도 꼽힌다. 조부모 양성교육 및 지원을 받은 이들에 한해 재교육을 받거나 상담 등을 통해 ‘조부모 어드바이저’로 활동할 기회를 준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빅 이슈 저출산과 고령화. 일·가정 양립을 추구하는 정책들로 출산을 장려하지만, 여전히 아이 돌봄 문제는 조부모가 해결사다. 한편 최근 고령화 속도에 따라 생산연령인구를 15~64세에서 최대 69세까지 늘리자는 추세다. 그러나 앞선 정황에 따라 일각에서는 생산인구로 활동 가능한 베이비붐 세대가 육아로 인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즉 이제는 ‘노후·육아 양립’을 위한 정책을 논의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 황혼육아 실태를 보여주는 귀한 보고서가 하나 있다. 바로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KICCE)에서 2015년 내놓은 ‘조부모 영유아 손자녀 양육실태와 지원 방안 연구’(이하 조부모 양육실태 연구)다. 그 안에는 국내 조부모의 육아 실태를 비롯해 관련 지원 사업 및 정책 제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놀랍고도 아쉬운 부분은 7년 전 해당 연구 이후 여타 기관에서 규모 있는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과거 내용과 현재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조부모 양육실태 연구’에 따르면 ‘비자발적’ 육아 참여율은 76%, 하루 육아 시간은 7시간대, 양육비를 받는 경우는 41%였다. 이와 비교해 올해 본지가 진행한 황혼육아 실태조사를 보면 ‘비자발적’ 육아 참여율은 72%, 하루 육아 시간은 약 7시간, 양육비를 받는 경우는 46%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찾기 어렵다. 당시 보고서에서는 2011년 처음 도입된 광주광역시 ‘손자녀돌보미’ 제도와 서울 서초구 ‘조모돌보미’(현 손자녀돌보미) 사업을 다뤘는데, 현재 시·구 단위에서 이뤄지는 조부모 관련 수당 정책을 시행하는 기관은 두 곳이 전부다. 2015년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본부장 역시 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2014년에 강남구에서도 손주돌보미 사업을 시범 운영했어요. 이듬해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2015년에 돌연 중단하게 됐죠. 어린이집 미이용 자녀 양육자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과 중복 지원이라는 이유로 보건복지부에서 ‘사업 불수용’을 결정한 거예요. 이후에도 지자체에서 관련 사업이 없는 건 아마 조례로 추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관련 근거법이 명확하지도 않고, 일부 육아수당과 내용이 겹친다는 등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으니까요. 자칫 수당을 명목으로 황혼육아를 부추기거나 부정 수급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었어요. 아시다시피 예나 지금이나 자녀에게 양육비를 받는 조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자식을 도우려고 하는 건데 경제적 부담을 주기 미안하단 거죠. 그러니 이 부분을 사회적으로 국가가 인정해주고 지원해줌으로써 조부모가 당당하게 육아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년부터 시행하는 서울시 조부모 돌봄수당
제자리걸음을 하는 황혼육아 정책에 최근 고무적인 소식이 들렸다. 바로 올해 8월 서울시가 발표한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 내 조부모(친인척) 돌봄수당 지급 계획안이다. 개괄적인 내용은 ‘조부모 등 4촌 이내 가까운 친인척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민간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에 월 30만 원의 돌봄수당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앞서 본지의 설문조사에서 해당 정책에 관한 반응을 살펴본 결과 10명 중 7명가량이 ‘적절한 편’이라고 답했다(75.6%). 지원 기간이나 금액 면에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관련 정책이 생긴 것 자체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로 읽힌다.
서울시 아이돌봄담당관 돌봄공동체팀 담당자는 “기존 손주돌봄사업을 시행 중인 광주광역시, 서초구 사례 및 보건복지부가 매년 실시하는 ‘전국보육실태조사’ 등을 참고해 사업 내용을 마련했다”며 “특히 현행 아이 돌봄 서비스의 틈새를 보완하는 취지에서 출발, 36개월 이하 영아 양육의 경우 혈연 돌봄을 선호하는 양육 현실을 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시 ‘조부모(육아 조력자) 돌봄비 지원 사업’ Q&A
△지원 대상자는 누구인가?
만 36개월 이하 영아를 둔 서울시 거주 중위소득 150% 이하의 양육 공백이 있는 가정으로, 육아 조력자가 월 40시간 이상 돌볼 경우.
△지원 금액은 얼마이고, 신청은 어떻게 하나?
영아 1명당 매월 30만 원(2명 45만 원, 3명 60만 원)으로 최대 12개월 지원. 25개 자치구와 협력해 거주지 관할 동 주민센터 및 온라인을 통해 진행 계획.
△월 40시간은 어떻게 산정했고, 증빙 방법은 무엇인가?
한 달 중 맞벌이 가정에서 통상 양육 공백이 발생하는 평일 20일 기준 하루 2시간을 최소 수행 조건으로 보았음. 증빙 방법은 온·오프라인 모니터링 실시 등 효율적 수행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
△정책 시행 전 논의할 부분이 남았다면?
돌봄 수행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방안 및 촘촘한 세부 지원 절차 마련 계획. 이용 가정의 다양한 양육 여건 및 시행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사례를 검토해 반영할 예정.
이윤진 본부장은 서울시의 방침에 대해 “아직 구체화할 항목이 몇몇 더 필요하지만, 전반적인 수치나 내용은 적당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해당 정책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대상이 조부모 등 4촌 이내 친인척인데, 이 정도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봐야겠다. 물론 조부모마저 안 계시는 가정도 있으니 그 부분을 고려했겠지만, 부정 수급 문제 등을 고려하면 처음엔 대상을 좁히고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는 “정책 시행으로 조부모에게 더 많은 육아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반영해 조부모 외 친인척도 양육에 참여하게끔 설계했다”며 “혈연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민간 서비스 이용을 지원해 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하고자 한다. 본 사업을 통해 돌봄 공백 가정의 경제적 부담 완화로 양육 환경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노후·육아 양립 위한 다양한 정책 필요
통상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은 1년인데, 발달 단계상 만 1세는 여전히 양육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 길지 않은 이 기간마저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나 아동 학대 문제 등으로 어린 자녀를 기관이나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꺼리는 가정이 많다.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조부모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육아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기관 확충 정책이 황혼육아 부담을 덜어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수당 정책은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볼 수 있다. 즉 손주 양육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조부모의 현실이라면, 조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뒷받침돼야 할 테다.
이 본부장은 “요즘 조부모들은 충분히 생산가능인구로 활동 가능한 체력과 능력을 지녔다. 손주돌보미처럼 일정 기간의 양성교육을 거쳐 어떤 사업의 틀 내에서 수당을 책정한다면, 그들도 더 당당하게 육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부모가 단순히 육아만 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손주돌보미 인력을 추후 황혼육아 가정에 멘토로 활용하거나, 양성교육 지도자로 성장시키거나, 관련 사업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생산활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조부모 손자녀 양육 지원 정책도 이러한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하며, 이는 장차 고령화 사회 대응 방안의 일환으로 노령 인구에게 일자리 제공이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능력을 거래하는 ‘재능마켓’은 은퇴 후 구직난 속 시니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기회의 장이 되는 것. 또 나이가 들면서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시니어에게도 좋은 대안이 된다. 취미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 중장년 인재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 전문가 서비스 매칭 플랫폼 ‘숨고’ 등이 대표적인 재능마켓이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에게 재능마켓은 도전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왠지 2030을 위한 장일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단 하나씩 시작해본다면 시니어에게도 재능마켓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좋은 기회가 된다. 재능마켓에 도전해보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먼저 그 시장에 뛰어든 시니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60대 후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다. 2007년 12월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제주를 자주 오고 갔다. 그러면서도 도시를 벗어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닷없이 서귀포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알레올레 차방’을 운영하는 배정자(81세) 씨는 제주로의 귀촌이 “운명적이었다”고 말했다.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배 씨가 프립을 통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만 원을 내면 그녀의 집 거실에서 그녀가 가꾼 차밭을 감상하며 그녀가 키운 꽃을 말린 꽃차를 내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차와 함께 곁들이는 색색의 구절판 다식은 눈도 마음도 즐겁게 해준다. 이곳에 다녀간 이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Q 2009년 2월 서귀포로 귀촌하고 에어비앤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서귀포로 내려오면서 무엇을 할지 정하고 온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제주 올레길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숙소가 많이 없었거든요. 지인이 올레길을 가려 하는데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죠.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하게 됐어요. 잠자리뿐만 아니라 아침도 만들어 제공했어요.
Q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뜰을 가꾸는데, 꽃이 많아요. 2013년인지 2014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때 우연히 꽃차 교육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배웠거든요. 그러면서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어요. 이후에 꽃차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 강사로 조금씩 활동을 하게 됐지요. 또 뜰에 있는 꽃으로 차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프립에서 꽃차 호스트로 활동하게 되었죠.
Q ‘알레올레’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알레는 불어에요. 영어로 말하자면 'go!'의 의미죠. 어딜 가라는 뜻은 아니고요. 유럽의 축구 경기를 보면 응원할 때 ‘알레! 알레!’ 하고 외치는 걸 볼 수 있어요. “자자, 열심히 해! 뛰어! 힘내!”라는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에요.
올레는 제주 올레길의 올레입니다. 이전에 에어비앤비할 때 알레올레라는 이름을 썼는데요.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알레올레 차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Q 차방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해에 80세가 됐어요. 나이가 드니 제일 걱정되는 게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나를 알고 제대로 살다 가야 할 텐데 싶더라고요. 아마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치매를 두려워할 거예요.
그래서 운동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사실 나이 들어가며 가장 부족해지는 게 사람들과의 소통이에요. 만나는 사람들도 제한적이죠. 온종일 서너 마디 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정말 치매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무의미한 일상을 좀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내가 좋아하는 찻자리를 열어 젊은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시작했죠.
Q 온라인 플랫폼으로 차방을 시작하신 건데,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잖아요. 제가 인스타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또래와 비교하면 많이 하는 편이지만, 디지털 시스템이 노인이 하기에 그렇게 편하지가 않아요. 그래도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조금씩 해나가고 있어요. 적극적인 마음으로 배우려고 하면 누구든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플랫폼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약속하고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Q 많은 분들이 수익을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모든 시간에 모든 사람을 꽉 채워 운영하고 있지는 않아요.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 그래요. 하루에 평균 두 팀 정도 하는데 가장 적을 때는 두 사람이 왔다 가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충분히 넉넉한 용돈 정도를 얻고 있습니다. 아, ‘노인’에게 넉넉한 용돈이에요.(웃음)
Q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20대 중후반부터 70대까지가 저희 차방을 찾는 고객들인데요. 자제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찾아오니 매일이 다르잖아요.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Q 운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전체 손님 중에 한 40% 정도가 혼자 오세요. 제 프로그램은 원래 한 타임당 4명 정도를 받게 설계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예약은 거의 안 받아요. 만약 혼자 오신다면 한 분만 받아요. 이곳에 와서 이야기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으시거든요. 요즘 젊은 분들이 고민도 많고 아픔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과 섞이면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저는 차방을 비즈니스로 생각해서 수입을 내려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찾아온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할머니가 손주 이야기를 듣고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할머니 생각은 이래.”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제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볼 때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Q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어떤 세대와 이야기를 해도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고, 찾아온 손님들도 만족해하시고요. 어느 연령대가 오더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에게도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기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는 손님들에게 방명록을 받아요. 우리는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싶은 건 방명록에 안 쓰는데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니면 아니라고 한다면서요?(웃음) 고맙게도 차방을 운영하는 10개월 동안 많은 분들이 방명록에도, 프립에도 좋은 리뷰를 많이 적어주셨어요.
차방을 찾아주는 분들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알레올레 차방에 오시는 모든 분들은 저에게 ‘귀한 선물’이에요.
인생 2막을 손주 육아로 시작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각 가족, 그리고 조부모 사이에서 황혼육아는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 ‘황혼육아’와 함께 등장한 신조어를 알아보자!
할마·할빠 손주를 직접 키우는 ‘할머니엄마’와 ‘할아버지아빠’의 줄임말.
학조부모 학부모와 조부모의 합성어.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뿐만 아니라 취학 이후 손주의 교육도 맡게 된 조부모를 칭한다.
피딩(FEEDing)족 피딩(FEEDing)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Financial), 육아를 즐기며(Enjoy), 활동적이면서(Energetic), 자녀에게 헌신적인(Devoted)의 줄임말로, 손주를 맡아 돌봐주는 50~70대 조부모를 뜻한다.
에잇 포켓(Eight Pocket)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친조부모, 외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 등 가족 구성원 8명의 지갑이 열린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주변 지인까지 합세해 아이를 챙기는 ‘텐 포켓’(Ten Pocket)도 등장했다.
할류열풍 손주에게 고가의 장난감, 의류 등을 선물로 사줌으로써 소비 시장에서 주류가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컫는 신조어다. 구매력 높은 조부모가 최근 육아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양상을 빗댔다.
헬리콥터 그랜마·그랜파 자녀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맴돈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헬리콥터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랜파, 그랜마’의 합성어. 맞벌이로 바쁜 자식 내외를 대신해 손주의 놀이부터 독서, 패션까지 챙기는 트렌디한 조부모를 말한다.
리터루족 돌아온다는 뜻의 ‘리턴’(Return)과 부모에게 의지하는 성인 자식을 일컫는 ‘캥거루족’의 합성어. 출산 후 육아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가거나 인근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표현이다.
맘고리즘 맘(Mom)과 알고리즘(Algorithm)의 합성어로,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육아가 반복되면서 평생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표현한 단어.
손주병 자녀를 대신해 조부모가 손자와 손녀를 돌보며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점을 이르는 말.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맞벌이와 아이 돌봄 사각지대, 육아휴직 제도 등 육아 관련 이슈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해묵은 문제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55~69세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 대상,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98.4%가 현재 손주를 돌보고 있는 조부모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육아 정책에 포함했으면 하는 조부모 대상 복지로는 연금 및 세금 혜택(64.9%), 상품권 및 바우처 제공(60.9%), 건강 및 체력 증진 지원(24.8%), 양육 프로그램 및 도우미 지원(18.3%) 순(복수 응답)이었다. 구체적으로 바라는 양육 프로그램 형태로는 ‘육아 코칭 프로그램’(58.3%), ‘체력 증진 프로그램’(51.7%),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39.1%)을 꼽았다. (복수 응답)
주수산나 연세대학교 BK21 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황혼육아에 임하는 조부모들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구조적 변화를 위해 우리 사회가 다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