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볼 수 있는 곳, 완주 경천면 싱그랭이 요동마을로 떠난다. 자연이 일상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는 싱그랭이 마을, 산속 가득 서늘한 바람이 쉬어가는 고적한 절집 화암사와 자연 생태 환경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 그리고 마을 주변으로 너른 콩밭이 펼쳐진 완주 싱그랭이 요동마을에서 순한 힐링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을 입구에 들자마자 오래된 노거수가 대뜸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듯하다. 500년 넘도록 마을의 수호신으로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다. 나무 그늘 아래엔 마을 어르신들이 한낮 일손을 멈추고 휴식 중이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홍성태 싱그랭이 영농조합 이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싱그랭이 요동(堯洞)마을은 그 옛날 전라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 잠시 쉬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장승길 옆으로 서 있는 커다란 시무나무는 표시목으로 20리마다 심었는데 완주 고산현이라는 지점에서 딱 8km 지점입니다. 여기에 돌 하나 던져놓고 ‘발병 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 떠나는 곳으로,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헤진 짚신 하나 고을 어귀 나무에 걸어놓고 가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거(新巨)렁이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죠. 그런데 신거마을을 지역 방언 등의 이유로 편안하게 부르는 대로 쓸까 어쩔까 투표를 했어요. 15년 전이죠. 그때 마을 주민들이 정감 있고 부드러운 어감의 싱그랭이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싱그랭이 마을은 사방으로 콩밭이다. 홍성태 이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저기 콩밭에서 새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보이네요. 주변의 모든 밭이 콩밭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산골이잖아요. 천수답이나 관개시설이 안 되어 있어요. 옛날부터 콩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수매가 줄고 콩값이 반 토막이 되기도 했고 판로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두부 공장을 해보자 의견을 모아 매일 두부 만들어내기에 이른 겁니다. 완주는 로컬 푸드가 유명한데 우리 영농조합의 두부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콩밭식당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조법으로 재배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천연 간수를 사용해 조금 거친 듯 고소한 두부로 만든 들깨순두부와 두부전골 등의 두부 요리가 일품이다. 노포 맛집 느낌의 깊은 맛이 난다. 소박한 밥상인 듯하지만 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손끝 여문 솜씨로 정갈하고 맛깔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의 자연 생태
마을의 느티나무와 콩밭길을 지나 화암사로 가는 길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잠깐 멈췄다. 완주의 생태 활동은 이곳 요동마을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아늑한 산 아래 야생화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 앞마당엔 제철 맞은 꽃들이 지천이다.
마을의 자연 생태와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해 마련된 곳, 또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지속 발전이 가능한 자연을 가꾸어나가기 위한 공간이다. 150여 종의 야생화와 복수초, 댑싸리 등이 자라고 있다. 요동마을이 있는 경천면은 완주의 북쪽 지역인데 복수초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전문성을 지닌 에코 매니저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에 따라 식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에 관심 있다면 자연 소재를 이용한 석부작(石附作) 만들기 등의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주변 들판과 언덕에서 자라는 야생화가 자연스럽다. 정원 양옆으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온실은 천장까지 온통 유리로 둘러싸였다. 자그마한 다육이와 꽃을 피운 화분들, 그리고 풀인 듯 자연스러운 식물들과 다양한 모양의 석부작들이 가득하다. 다른 쪽 공간은 씨를 파종하여 키워내는 육묘장이다. 도심에서 자라는 식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마을 사랑을 실천하는 주민들과 싱그랭이 요동마을 생태활동가의 땀과 노력이 엿보인다. 산골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 사랑을 이곳에서 느껴본다.
“초반엔 여러 가지 종을 키웠는데 이제는 몇 가지로 압축해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다알리아가 꽃을 피웠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데다 번식력도 좋아 구근을 키워서 심었어요. 또 허브는 수입 희귀종이 많은데, 사실 저쪽 산모퉁이만 돌아가도 많거든요. 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재배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채취 가공하고 방향제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죠. 5년 전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차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늙은 절집, 느린 발걸음으로 화암사
완주의 싱그랭이 마을에 간다면 가장 먼저 화암사 절집을 갈 생각에 설렌다. 싱그랭이 요동마을이 화암사가 있는 불명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을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화암사는 산속에 숨어 있다고 할 만큼 유난스러움 하나 없이 숲속 깊이 파묻혀 있다. 규모도 소박하다. 단청의 화려함 같은 것도 없다. 수수함에 먼저 마음이 당기는 절집이다.
불명산 화암사에는 신라 왕의 꿈속에서 부처님이 던져준 연꽃으로 딸 연화 공주의 병을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 연꽃이 한겨울 완주 깊은 산봉우리에 피어 있었다고 한다. 불심이 깊어진 왕이 연꽃이 있던 자리에 화암사(花岩寺)라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절이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마을길을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가벼운 등산 코스처럼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입구의 연화 공주 정원 숲길은 1km 남짓으로 완만하다. 여기선 느린 발걸음이 어울린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다 보면 불명산 숲길의 운치에 반하고 만다. 좁다란 숲길이 온통 풀섶이거나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해서 밀림인 듯 착각하게 하는 포인트가 간간이 나타난다. 물론 급경사의 험한 코스와 너덜길도 있지만 이럴 땐 수행하듯 조심히 걸으면 된다. 골짜기의 물소리와 절로 생겨난 작은 폭포를 지나 숲 사이로 화암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끼가 덮인 바위 절벽에 절집이 앉혀 있어서 우선 놀랄 수밖에.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니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잘 늙은 절’이란 말이 떠오른다. 불명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보물 제662호 누각 우화루 누마루에 걸린 목어의 나무 질이 한참 나이 먹어 잘 늙은 절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절 마당을 중심으로 자리한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가 기품 있다. 고적하기만 한 누마루 너머 틈으로 푸르른 신록을 내다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바랄 게 무언가 싶은 순간이다. 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아앙식 구조 건물 극락전 뜰에 털썩 걸터앉아 숲에 파묻힌 화암사를 내다보니 “아, 좋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행 정보
싱그랭이 요동마을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377/ 지번 가천리 892
싱그랭이 에코 정원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474
불명산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지번 가천리 1078
비가 내린다. 비는 감정의 농도와 온도를 높여준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시킨다. 그렇다면 비 내리는 날에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에 장맛비가 내린다. 그래 사람이 거의 없어 적적하다. 비는 쉼 없이 내려 풍경을 변주한다. 미인은 주렴 사이로 보라 했던가. 그래야 운치가 돋는다 했다. 미인뿐이랴. 주렴처럼 드리워지는 빗발 사이로 보이는 광한루원의 풍경 역시 맑은 날과 달라 오히려 이색 정취를 자아낸다. 비에 흥건히 젖은 누정과 수목의 표정을 주시할 만하다. 육안보다 심안으로 봐야 할 것만 같은 내향성이 서려 있다.
광한루원은 남원시의 자랑거리이자 관광명소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유명해진 건 광한루원이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등장해서다. 사람들은 흔히 광한루원과 ‘춘향전’을 동격쯤으로 여긴다. 그래 광한루원에 와서 춘향과 이몽룡이 남긴 열애의 행적을 더듬는다. 그러나 광한루원의 본질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의 한 배경 장소로 쓰였을 뿐, 본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원림(園林)의 귀감이라는 데에 광한루원의 정체성이 있다.
사실관계가 그러하지만 흔히 간과한다. 광한루원에 와서 원림에 꾹 방점을 찍고 답사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 춘향의 상열지사를 염두에 두고 풍경을 바라본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흥을 즐길 만한 조선 원림이 엄연히 이곳에 있으나 ‘춘향전’을 표상하는 구조물들이 혼재해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관점의 조절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낸 셈치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그게 광한루원을 담뿍 마음에 담는 방법일 테다.
광한루원은 관아가 주도해 지은 관아 원림이다. 관아 원림이란 고을의 관원이나 시인 묵객들이 연회와 풍류를 즐긴 야외 정원이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원림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름이다. 광한루의 스케일은 매우 웅장하다. 위엄이 넘친다. 상징과 지향을 담은 사물들의 디테일로 아름답기도 하다. 정원과 연못 역시 호방하고 수려하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누각이다. 남쪽에서는 간결한 구조로 보이지만, 북쪽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장식적인 외관에 눈길이 쏠린다. 거기에 세 겹의 작은 지붕 아래로 층계를 설치한 회랑이 있어서다. 월랑(月廊)이라 부르는 묘한 구조물이다. 이걸 조성한 이유가 있다. 광한루는 초창 이후 중수를 거듭했다. 그 와중에 정자의 총량이 너무 과중해 북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이 난처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계단이 있는 회랑을 덧대어 지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여느 정자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한 형태미와 기능성을 확보하게 됐다. 이와 같은 건축적 개성과 위트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한루엔 당대 문호들이 쓴 시문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멋들어진 정자가 있으니 드나든 시인이 한둘이었으랴. 여기에서 붓에 먹을 적신 묵객이 한둘이었으랴. 호남을 지나는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고 한다. 지리산 솔바람이 드나드는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이 자주 오갔으리라. 끽다와 음풍영월이 있는 풍류도 다반사였을 테고. 조선의 문인 임제가 광한루에 올랐을 때엔 매화라도 피었나? 매화 가지에 달이라도 걸렸나?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깬 채 밤이 깊어졌다고, 함께 노닌 사람과 헤어질 땐 꽃이 지더라고, 임제는 그렇게 시로 노래했다.
광한루는 세종의 총예를 받았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 때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에서 유래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다!”라고 찬탄한 데에서 비롯됐다. 정인지가 괜히 달나라 운운한 게 아니다. 광한루가 애초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지어졌으니까. 즉 광한루는 천상의 궁궐인 셈이다. 옛사람들은 상상력을 발동해 결국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에 모래알처럼 무수히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넓고 유려한 연못이 바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 가운데엔 섬 세 개를 만들어 삼신산을 표상했다. 광한루원의 기저엔 이렇게 신선 사상이 깔려 있다. 도교, 유교, 음양론, 풍수지리 등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상징 구조들로 어우러져 있다. 안팎이 두루 광활한 세계관으로 상통하는 원림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앞줄에 설 조선 정원이다.
신선을 마음에 들여놓고
다시 빗속을 운전해 정자를 찾아간다. 지리산 기슭,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 있는 퇴수정(退修亭)이다.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 1825~1907)가 1870년에 지은 누정이다. 그는 토목건축을 관장하는 벼슬살이를 하다 은퇴하고 여기 후미진 산골짝에 은거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결국 자연으로 흘러가는가? 퇴직 뒤엔 정해진 순서처럼 산림에 여생을 의탁했던 선인들의 유전자가 후세까지 이어지나? 박치기의 고향은 함양군 안의면이다. 그러나 퇴직 후엔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박치기가 지은 퇴수정의 모습이 그의 선조 박명부가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지은 농월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닮아 흥미롭다. 경치 좋은 냇가에 지은 정자라는 점에서도 퇴수정과 농월정은 유사하다. 경관을 보는 취향과 정자를 짓는 경향에 집안 내림이라는 게 있지 않았나 싶다.
박치기는 널리 이름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근사한 정자를 지어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전공이 건축이었으니 퇴수정에서 구현된 건축 미학의 완성도를 보지 않고도 가늠할 만하지만, 실제 이 정자는 빼어나 인상적이다. 당대 누정 건축의 첨단 기술력으로 빚어낸 작품일 수도 있다. 명품 정자라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정자의 규모는 작아서 소박미가 물씬하고, 흠결 없는 비례로 조화롭다. 은근한 세련미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퇴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은 정자다. 가령 배흘림기둥을 구사해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다.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막돌 초석 대신 사각 다듬돌을 놓은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건축 공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을 꼽자면 훤칠한 냇물과 동행하는 정자라는 점이다. 지리산에서 굴러 나온 계류가 정자의 코앞을 흘러가는 게 아닌가. 기기묘묘한 물가의 암반들과 물속의 바위들까지 퇴수정의 동아리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숲과 물 사이에 들어앉은 정자다. 자연과 긴밀하게 얽힌 집이다. 박치기의 생리는 초야를 닮아 거친 나물밥만으로도 자족했다. 퇴수정 마루에 올라서는 곧잘 객과 더불어 술과 거문고를 즐겼다지. 그는 신선을 닮고 싶어 산수에 묻혀 산 인물이다. 속세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안에 신선을 들여놓고 자연에서 노닐 경우엔 경지가 달라진다. 신선을 흠모한다는 건 이미 도(道)에 밝다는 뜻일 테니까.
김주완 남원문화원장
“남원 문화의 성장 지리산의 영향력 덕분”
예로부터 남원을 일컬어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의 고을’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땅이며, 비옥한 들판이 펼쳐지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저 옛날의 농경사회 시절,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풍부해 의식주가 넉넉할 경우엔 문화마저 덩달아 융성했다. 남원이 딱 그랬다. 농업이 발달한 덕분에 향토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현대에까지 상속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수두룩한데, 이를 견인차로 삼아 남원은 문화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김주완 남원문화원장의 얘기는 이렇다.
“농업경제의 힘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먹고사는 게 무난해 예술이 발흥한 거다. 삼국시대부터 남원이 교통의 요충이었다는 점도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교통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외부의 다양한 문화 유입이 활발했으니까.”
남원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지리산이 남원 문화에 미친 영향도 클 것 같다.
“남원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어머니 산’이다. 삶의 희망과 안식을 지리산을 통해 얻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원의 문화예술 역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성장했다고 본다. 남성적인 판소리 동편제를 완성한 가왕 송흥록의 성취는 지리산이 주는 정신적 영향력에 의해 가능하기도 했다. 남원은 문학의 요람이다. 고전소설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이자 발상지이며,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남원 사람이다. 이 모든 문학적 성장의 뿌리 역시 지리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6년째 남원문화원을 이끌고 있다. 그간에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큰 성과 하나를 소개하겠다. 과거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베 짜는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은 이 소녀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전말기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사단을 꾸려 일본 현지를 찾아가 여러 기록을 뒤지는 등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마침내 영상 다큐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
매우 뜻깊은 발굴 사업을 성공시킨 셈이다. 소녀는 포로로 끌려갔으나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일어섰던 것 같다. 자신이 지닌 직조(織造) 재능을 일본 지역민들에게 전수해 직조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아닌가. 소녀의 사후, 일본인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추모비를 세웠다 한다.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의 명민한 자질에 감동할 수밖에.
소녀 관련 발굴 자료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다큐 상영은 물론, 그림책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연극이나 창극, 혹은 소설로 가공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할 것이다.”
문화원마다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화원의 사업과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 개발에 고심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엔 어떤 기법이 필요하다 보나?
“외부에서는 문화원이 주민들의 참여나 관심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고 본다. 미진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열린 문화원’을 지향한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문화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 산림청 개청 이후 47년 만에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 탄생했다고 떠들썩했다. 외부 인사가 아니라 연구직 공무원이 국립수목원장 자리에 오른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수목원 역사를 그려온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의 이야기다.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 여학생이라고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혼자였다. 그저 막연하게 누구나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식물’이었을까.
내 삶은 ‘녹색 우주’
“대문 앞 가장 굵고 오래된, 집의 기둥 같은 단풍나무는 우리 아빠 나무, 동그랗고 아름다웠던 늘 푸른 사철나무는 우리 엄마 나무, 주목 나무는 동생 나무였어요. 저는 맏딸이라 꽃을 맡았어요. 황철쭉이었죠. 어머니가 꽃을 워낙 좋아하셔서 집 안에도 꽃이 많았고, 봄이면 매년 어머니랑 꽃씨를 심었어요.”
이 원장의 가족은 조그마한 정원 한편에 저마다의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 건 어릴 때부터 꽃과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가정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까. 대단한 목표를 가졌던 게 아니라 그저 남들과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식물이 좋아 선택한 전공이기에 이 원장은 식물 연구하는 일이 ‘우연이면서도 필연’이라 생각한다고.
그에게 지도교수는 식물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꽃’을 연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식물분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이후 1994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임업연구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왔다. 우리나라에 ‘국립수목원’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 원장은 식물 분류 및 수목원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식별이 쉬운 나무 도감’,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등 30여 권의 저서와, ‘한국산 조팝나무 속의 분류학적 연구’ 등 100여 편의 논문을 냈다.
1999년에는 임업연구원 중부임업시험장 수목원과가 산림청 국립수목원으로 신설되면서 광릉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수목원으로 승격했다. 이유미 원장은 수목원 발전의 흐름 속에서 희소멸종위기 식물 보전, 전국 생물 다양성 조사, 국가표준식물명 제정, 한반도 식물지 사업 등 다채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4년에는 국립수목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3년 동안 유용식물증식센터를 개원하고, DMZ 자생식물원을 열었다. ‘우리 식물 주권 바로잡기’로 소나무에도 붙어 있던 일본식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어 알렸다. 우리 특산식물 33종을 세계자연보전연맹의 권위 있는 보고서 ‘레드 리스트’에 국내 최초로 등재했고, 국내 자생식물 2945종을 망라한 ‘한국 관속식물 분포도’를 발간했다.
“돌아보면 참 놀라워요. 어쩌면 남들이 가는 길을 막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민간이 할 수 없지만, 꼭 필요한 일은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도감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그런 일을 찾다 보니 굵직하고 지평을 여는 일들이 된 것 같아요. 수목원이 발전해온 흐름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셈이죠.”
이유미 원장은 “내가 평생 몰두하는 일이 자연이라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했다. 자연을 보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매일 다르게 느껴졌단다. 무궁무진함이 담긴 자연과 식물이야말로 그에게는 ‘녹색 우주’라고 했다.
‘여성’이라는 타이틀과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던 이 원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여학생은 혼자라 희귀한 존재 취급을 받았다. 이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가 ‘최초’라는 말이 좀 많이 붙긴 했죠?(웃음) 남녀 차별이 많던 시절이었고, 필드를 다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선입견도 많았죠. 직업 특성상 ‘여직원 혼자 보내도 돼?’라는 말이 종종 나오니까요. 하지만 남자도 힘이 센 사람, 약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빨리 달리는 사람, 느리게 달리는 사람 정도의 차이를 두려고 하죠. 한창 연구할 때는 ‘여성’이라는 말이 따라다니지 않도록 ‘여성’을 지우고 ‘전문가’로서 일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또 그런 시간을 다 지내고 보니 오래 일하는 여자가 드문 모양이에요.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할 때는 ‘여성’을 지우려고 노력했는데, 기관장이 되니까 반대로 조직이나 사회 안에서 여성이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선배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더 고민하게 됐죠.”
식물과 세상 연결하는 ‘플랫폼’
이유미 원장은 처음 국립수목원장을 맡을 때부터 수목원을 식물과 세상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었다. 국립세종수목원으로 온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식물 덕후들이 모이는 장을 보고 나니 더욱 확신을 얻게 됐다. 반려식물로 유명한 베고니아를 키우던 배 팀장에게 사계절전시온실의 작은 공간을 내주었더니, 온라인에서 식물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안 주임의 활약으로 약 300종의 베고니아 컬렉션을 만들더라는 것.
어느 날 열린 수목원 축제에서는 분야별 식물 덕후 40여 명이 모여 자신의 장을 열더니 그들의 팬들이 새로운 걸 보러 모여들었다. 말 그대로 반려식물 축제 마당이 열린 것. 이제는 식물 덕후들이 자발적으로 수목원 내에서 ‘반려식물 상담소’도 운영한다. 수목원을 식물과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꿈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광릉숲을 중심으로 한 국립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이렇게 세 개의 국립수목원이 있다. 각 수목원은 기능이 조금씩 다르다.
“식물을 보전하고, 전시하고, 교육하는 건 국립수목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죠. 다만 기능적으로는 조금씩 달라요.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은 기초 종에 관한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드볼트라는 야생식물 종자저장고가 있고,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훼손된 생태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합니다. 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수목원이죠. 축구장 90개만 한 면적의 논이었던 곳을 가꾸어나가는 거예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보니 정원·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어요.
연구원 시절부터 우리나라에도 국립수목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연구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막연하게 꿈꿨던 일들이 구체화되고 있어요. 훨씬 잘된 것들도 많고요. 수목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일들이죠. 보전도 처음 해보고, 기초 연구 틀도 만들고, 정원이라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수목원법이 제정되고, 도심형 수목원까지 왔죠. 이런 것들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20여 년 전부터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꿈꾸고 만들어온 그림에서 파생된 결과예요. 지금도 참 기적 같습니다.”
이유미 원장은 국립세종수목원에서 ‘도심형 국립수목원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열섬 현상, 미세먼지, 탄소 줄이기, 기온 낮추기 등 식물이 가장 필요한 곳은 역설적으로 도시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조금 더 가속화된 반려식물 트렌드가 이를 보여준다. 이 원장은 이제 공존과 생명 순환을 고민한다. 보기 좋게 개량된 야생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매해 버려진다. 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것. 그동안의 정원이 ‘식물 소비’였다면, 이제는 생명이 순환되도록 할 때다. 자연주의 정원이 유행한 배경이기도 한데, 그만큼 이제는 생물 다양성, 다른 생명과의 공존 등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한국식 정원은 자연을 들여온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야생에 있던 식물들이 공원에 들어와 매해 피고 지려면, 나비나 벌 같은 ‘폴리네이터’가 있어야 하거든요. 꽃을 피웠을 때 수분을 해주어야 할 친구들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꿀벌도 사라진다는 말이 종종 들리죠. 다양한 생명이 함께 깃들어 살아야 하는 거예요.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도록 만드는 과정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화가 되어야겠죠.”
야생의 식물이 우리 곁으로 오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반려식물로 유명한 식물은 대부분 외국 종이다. 정원과 관련해 화분 같은 소재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이유미 원장은 ‘홍지네고사리’, ‘파초일엽’ 등 우리나라 자생종이 반려식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
‘실험적인 정원’이라는 뜻의 트라이얼 가든(Trial Garden)도 시도한다. 일명 케이테스트 베드(K-Test Bed) 사업이다. 자생식물이나 우리나라 꽃과 나무로 만든 신품종이 정원 소재로 적합한지 시험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민간 육종가들이 연구한 품종들이 꽃 농사로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정원식물 전시·품평회는 높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돼 수출까지 이어지려는 참이다.
19세기 영국에서 긴 항해 동안 운반되는 식물을 보관했던 상자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미니 온실처럼 현대식으로 개량해 특허도 냈다. 아직 판매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집 안에 온실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하나 내었다. 식물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드는 일이다.
이유미 원장은 “나무를 꼭 친구로 두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존재는 ‘나무’다. “수백 년씩 자라 속이 비어가고 굳어가는 나무들도 봄이면 어김없이 말랑말랑한 새싹을 내놓습니다. 그 새싹이 또 꽃을 피워요. 나이가 들수록 자아가 강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나무처럼 평생 말랑말랑한 느낌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늘 지나다니는 집 앞, 회사 앞에 어떤 나무가 서 있는지 아세요? 혹시 은행나무 꽃을 본 적 있으세요? 가을이 되어 온몸이 노랗게 물들고서야 ‘은행인가 보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나무 안에 삶도 위로도 나의 모든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 아래 멈추어 서서 한번 바라보세요.”
72홀 규모를 자랑하는 코스타 나바리노(Costa Navarino)는 유럽 최고의 골프 리조트다. 2022년 ‘투데이즈 골퍼’(Today’s Golfer)지는 이곳을 유럽 CC 중 1위, 세계 11위에 선정했다. 2022년 월드골프어워즈에서는 세계 최고의 떠오르는 골프 데스티네이션(World’s Best Emerging Golf Destination 2022)으로 코스타 나바리노를 꼽았다.
그리스는 인구 1030만 명, 면적은 13만 2000㎢로 우리의 1.3배다. 수도는 아테네이고, 화폐는 유로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해 나타나며, 그리스인(98%)이 대부분이다. 언어는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그리스정교(98%), 이슬람교(1%)다. 시차는 우리나라가 6시간 빠르다. 반도인 그리스 본토는 남서쪽은 이오니아해, 남쪽은 지중해, 동쪽은 에게해가 둘러싸고 있다. 코스타 나바리노는 아테네국제공항에서 남서쪽으로 300km 지점에 위치한다.
코스타 나바리노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서부의 그리스 메시니아 지역에 위치한 지중해의 여행지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지중해 해변 풍경을 자랑하는 이 지역은 4500년의 역사에 의해 형성되었다.
코스타 나바리노 골프 리조트는 그리스 내륙에서 몇 안 되는 골프 코스 4개를 갖춘 곳으로, 최고급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만을 경험하기 위해 그리스에 들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또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골프 매니지먼트사인 트룬골프(Troon Golf)가 컨설팅 파트너로 나서 유럽 특유의 골프 관광을 체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곳에는 5성급 호텔과 개인용 숙박시설, 4개의 시그니처 골프 코스와 이벤트를 위한 컨벤션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시그니처 코스는 사구 코스(The Dunes Course)와 베이 코스(The Bay Course), 국제 올림픽 아카데미 코스(The International Olympic Aca demy Golf Course), 힐스 코스(The Hills Course)로 구성된다.
베이 코스(파71, 5536m/5168m)는 리조트 타입으로 2011년 개장했으며, 카트 필수 이용 코스다. 전설적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Robert Trent Jones Jr.)가 설계한 이 코스는 전략적인 플레이와 포지셔닝 골프에 약간 더 중점을 둔다.
베이는 올해 만다린 오리엔탈 코스타 나바리노를 맞이할 예정이다. 인근 나바리노 워터프런트 리조트에는 W 코스타 나바리노가 있다.
목가적인 배경은 산기슭을 지나 역사적인 나바리노만을 따라 이어진다. 대부분의 티는 숨 막히는 바다 전망을 제공하고, 코스는 세 개의 다른 자연경관인 시사이드, 협곡, 작은 숲을 통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억에 남는 라운드를 만들어낸다.
베이 코스의 흙막이(지하 건축의 Earth-sheltered) 클럽하우스는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2000㎡ 이상의 면적을 가진 클럽하우스는 나바리노만과 울창한 메시니아 지역의 다양한 풍경을 굽어보는 베이 코스의 멋진 경치를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위치에 자리한다.
1번 홀부터 내리막의 멋진 레이아웃과 그린 뒤로 2번 홀과 이오니아해가 펼쳐지면서 시원하고 탁 트인 멋진 배경을 보여준다. 그린 스피드는 11피트에 가깝게 관리해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쉽지 않다.
2번 홀(파3, 148m/139m)은 17번 홀과 더불어 시그니처 홀이다. 오른쪽으로 이오니아해를 따라 멋진 뷰가 이어진다. 불어오는 바람이 문제. 핀의 위치에 관계없이 티 샷을 왼쪽으로 에이밍하는 전략이 필수다.
3번 홀과 4번 홀은 연속 파5 홀이다. 4번 홀 중간에 크리크를 지나 오른쪽으로 올리브나무들이 이어져,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뷰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최소 100년 이상 된 올리브나무들로 가득하다. 또한 많은 홀에서 이오니아해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뷰가 환상적이다.
14번 홀(파4, 291m/282m)은 짧은 파4 홀이지만 티 박스 오른쪽으로 도그레그의 큰 호수가 이어지면서 착시가 일어난다. 현혹되지 말고 멀리 보이는 벙커 좌측을 에이밍해서 티 샷 하지 않으면 물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17번 홀(파4, 280m/262m)은 2번 홀과 더불어 베이 코스의 시그니처 홀이다. 짧은 파4 홀이지만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거대하게 이어지는 이오니아해의 바람은 변수가 아닌 상수이기 때문이다. 페어웨이에서 5m 거리면 바닷물에 적셔볼 수 있다. 뒤로 2번 홀이 이어진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홀이다.
햇살이 마냥 싱그럽다. 어찌나 밝고 환한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들이다. 서늘한 숲과 푸름이 제맛인 곳에서 초록의 신선함에 한껏 파묻혀보고 싶은 날들이다. 짙어져가는 녹음 속을 호젓하게 걸으며 치유의 숲을 누릴 수 있는 적기다.
‘생거진천 치유의 숲’은 충북 진천군에서 조성한 산림욕장이다. 자연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건강한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휴양 활동을 제공하는 곳이다. 바쁜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 숲을 떠올려보자. 숲속에서 풍성한 피톤치드와 숲 사이의 햇빛과 바람을 즐기는 힐링 여행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살아서는 진천이 좋다는 뜻의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산과 물, 그리고 풍수적으로도 빠질 것 없는 여행지다. 더구나 조금 덜 알려진 편이고 인적도 드물어 유유자적한 힐링의 시간이 된다. 진천둘레길 힐링 숲으로 떠오른 무제산 무제봉 아래 치유의 숲은 사색하며 걷기 좋은 숲이다.
치유의 숲에는 입구의 전통 한옥 힐링비채와 마주 보는 산에 위치한 숯채화효소원 두 동의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4경로의 치유숲길은 물소리맑음숲길 700m(청각), 마음치유숲길 1.2km(촉각), 숲내음숲길 1.5km(후각), 하늘맑음숲길 2.8km(시각)로 이어졌다. 단아한 한옥 힐링비채는 건강치유센터다. 숯채화효소원은 숯온열치유실은 물론이고 세미나실을 이용해 자연과 함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두 군데 모두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산림 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숲은 대체로 완만해서 아이뿐 아니라 몸이 불편해서 천천히 걷는 이도 큰 무리가 없는 산길이다. 신록으로 물든 숲에 들면 신선한 숲 내음에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입구에서 몇 걸음 이동하면 곧바로 계곡이다. 물소리맑음숲길과 마음치유숲길 이정표를 따라서 가기만 하면 어려울 게 없다.
걷다 보면 산길 옆으로 쉼터가 보이는데, 그리 힘들지 않아도 잠시 앉아 숲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몇 걸음마다 네트벤치나 명상욕장이 나타나 편하게 누워서 숲 사이로 하늘을 보며 쉬는 시간은 세상 더없는 힐링 타임이다. 탁 트인 기분으로 ‘오늘 이 숲은 내 거다’ 해볼 만하다. 네트망에 한참 누워 있다 보면 청량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복잡한 생각도 사라지며 한없이 평온해진다. 그러다가 깜빡 잠들기도 하는 달콤한 시간이다.
걸을 때마다 푸름으로 꽉 찬 숲이 운치 있다. 깊은 숲으로 오를수록 빼곡한 나무 덕분에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함이 기분 좋다. 건강한 숲길과 싱그러운 풍경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묵은 체증도 사라진다. 산길 어디에나 피어난 야생화가 눈에 들어오고, 작은 옹달샘에서는 유영하는 물고기도 보인다.
운동 삼아 장시간 걷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에게는 짧은 느낌일 수도 있으나 숲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치유의 숲 포인트다. 흙길과 데크가 반복되는 오감테마 치유 숲길을 거치고 나면 온몸이 기분 좋게 반응한다.
생거진천 치유의 숲에는 자연휴양림도 있어서 하루쯤 숲속에 파묻혀 지낼 수도 있다. 진천자연휴양림과 산림문화휴양관이 연결되어 있고, 무제산 무제봉 등산 코스가 이어진다. 무장애나눔길과 데크로드, 놀이 공간과 습체원의 운치 있는 자작나무까지 멋지게 조성된 치유의 숲이다.
숲의 다양한 환경 요소를 통해 인체의 면역과 이완을 얻는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정신적 건강의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는 시간,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떠나 숲을 다녀오면 비로소 부드럽고 투명해지는 일상이 이어진다. 더 나아가 삶의 활기와 자신감이 채워진다. 여름은 역시 숲이다.
아름다운 농업, 똑똑한 농장 ‘뤁스퀘어’
‘농업 기술과 문화가 연결되는 미래 농촌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뤁스퀘어’(Root Square)가 충북 진천의 이월면에 자리 잡았다. 산과 들판, 골짜기와 하천, 논과 밭으로 펼쳐진 풍경이 떠오르는 농촌, 뤁스퀘어는 뉴노멀 시대의 농촌을 보여준다. 농업을 주 테마로 하여 미래 농업 복합문화공간 스마트팜 재배 시설이 생겨났고, 카페나 식당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미래 농촌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요즘 도심 근교나 시골에 카페나 책방을 차려놓고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는 걸 종종 본다. 뤁스퀘어 또한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충북 진천군 시골 외곽에 자리한 그저 멋진 카페인 줄 알았다면 시종일관 놀랄 일을 마주하게 된다. 약 6000평 규모의 공간에 온실, 재배 공간, 책방, 음식점, 카페, 주거 공간이 각각 색다르게 마련되어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다.
뤁스퀘어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작고 귀여운 식물을 키우는 공간을 만난다. 뤁스퀘어는 스마트팜 농업회사 ‘만나 CEA’의 스마트팜 기술로 재배하는 작물들이 꽃보다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질이나 유럽 상추 등인데, 이것을 구해 직접 집에서 키워보며 수확의 기쁨도 느껴볼 수 있다.
스마트팜 바로 옆 라운지엔 기프트 숍과 일식 레스토랑이 연결된다. 농사에 필요한 갖가지 농기구와 장바구니가 얼른 집어 들고 싶게 예쁘다. 텃밭을 가꾸고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담을 도구들을 보며 작게나마 농사를 짓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식물이 자라는 것이 인테리어가 되고, 창밖 수(水) 공간을 내다보며 식사할 수 있는 소바공방의 냄새도 잘 어우러진다. 공방 창 너머로는 물을 가득 채워 하늘이 담기고 초록의 나무가 담긴 풍경이 눈앞에 있다. 은은하게 물속에 담긴 자연이 또 다른 힐링을 불러온다.
수(水) 공간 밑에 위치한 스템가든이야말로 이게 뭘까 하며 살피게 되는 놀라운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확 풍겨오는 냄새는 흙냄새와 이끼 냄새인가 싶기도 하다. 식물이 가득 차 있으니 당연히 풀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나무 향까지. 그야말로 자연의 냄새만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높은 천장고와 넓은 공간 안에 이끼 낀 바위와 식물들, 사방으로 낸 큰 창 밖으로는 주변의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펼쳐진다.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진천을 둘러싼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실내로 들어온다. 논 한가운데서 백로가 먹이를 쪼아 먹는 풍경도 뤁스퀘어만의 전망이다. 평화로운 정경에 절로 눈이 시원해진다.
스템가든은 자연을 내부로 들였다. 물이 흐르고 물이 떨어지고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난다. 식물들 사이로 데크가 가로지르고,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언덕 옆 무대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콘셉트의 공간이 자리하고, 이동하는 동선 또한 매력적이다. 이곳에서 자란 예쁘고 깨끗한 채소와 식재료가 브런치 메뉴와 디저트가 되고, 근사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문밖으로 나오면 잔디가 깔린 너른 광장이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잔디밭을 거닐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는 이들이야말로 평화로운 전원의 그림 한 점이다. 잔디밭 저편으로 야외에 설치된 뤁스퀘어의 새로운 공간 LG스마트코티지를 관람하면 때때로 로망이던 현실이 여기 있음을 알 것이다. 작은 집 오두막이란 뜻의 코티지(Cottage)는 목가적인 시골 생활에 어울리는 건축이다. 이 모든 것이 마음 돌봄을 위한 공간이다.
후덥지근한 여름, 집에서만 있기 지루하다면 가족과 함께 시원하게 보낼 축제는 어떨까? 물도 맞고 머드도 묻히고, 은어도 잡는 다양한 축제들을 한번 살펴보자!
보령머드축제
07.21~08.06 머드광장
낮에는 머드를 흠뻑 적시며 시원하게! 밤에는 다양한 공연,불꽃쇼 등으로 낭만의 여름밤을 즐기자!
정남진 장흥 물축제
07.29~08.06 탐진강 및 편백숲우드랜드 일원
‘물’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공연, 전시, 체험, 대회 등을 신나게 경험하자!
봉화은어축제
07.29~08.06 봉화읍 체육공원 및 내성천 일원
봉화의 맑고 깨끗한 내성천에서 벌어지는 은빛 은어의 향연과 다양한 공연! 은어 맨손 잡이 체험도 할 수 있다.
장수 쿨밸리 페스티벌
07.28~08.06 방화동자연휴양림
대한민국 최초 계곡 축제 개최를 기념하고 신구세대가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는 패스티벌!
송도해변축제
07.29~08.06 송도달빛공원 일원
무더운 여름! 낮에는 시원한 물놀이로,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하는 공연으로 온 가족과 함께 ‘빛과 물의 향연’을 즐겨보자!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 풍경 푸르러 첫눈에 싱그럽다. 청명한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한갓진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택들. 산야의 초록과 고택의 수묵색이 차분하게 어우러져 푸근하다.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군자마을이다. 원래 2km 정도 저 아래 ‘외내’에 있었으나 1974년 안동댐이 들어설 때 이곳으로 집단 이주했다. 수몰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택과 고택 사람들의 몸살이 자심했을 테다. 억지 춘향으로 밀려났으니까. 군자마을만이 아니라 안동의 많은 전통마을이 불운을 맞이했다. 일부 마을은 그대로 수몰됐으며, 군자마을처럼 문화재로 지정된 마을의 고택은 이건(移建)으로 살아남았다. 당시 안동의 유림에선 논의가 많았더란다. 결국 ‘문중을 지키는 소리(小利)보다 국가가 도모하는 대의(大義)에 승복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군자마을은 ‘외내’에서 통째 옮겨온 고택 20여 채로 이루어져 있다. 이건 이후 어언 반백 년이 지났다. 상처를 씻어주는 건 언제나 세월이라는 약이다. 이건 과정에서 곁들인 새 단장으로 고택 마을 특유의 고졸한 맛은 덜 익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흔해 생기가 감돈다. 답사객들, 또는 한옥 스테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유구한 세거로 이어진 후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지금은 소수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을이 지닌 역사성과 고건축이 지닌 미감을 힘으로 삼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옛 마을의 생존 방식과 풍속이 이렇게 진화한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도 우람하게 자라 너른 그늘을 드리운다. 마을을 에워싼 숲과 전면으로 탁 트인 조망도 빼어나다. 풍경의 절반은 청산이요, 나머지 절반은 하늘이거나 구름이다. 군자마을은 이렇게 자연 안에 있다. 쉴 만한 곳이며, 눈요기할 만한 곳이고, 기억에 남길 만한 곳이다.
군자마을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가 조선 초기부터 600여 년 동안 세거한 곳이다. 입향조는 농수 김효로(聾叟 金孝盧, 1454~1534)다. 그는 생원시(生員試)에 붙었으나 출세에 뜻이 없어 매양 초야에 묻혀 살았다. 퇴계가 김효로를 일컬어 ‘결백한 절개를 지켰다’고 한 걸 보면 정치의 탁류에 발 담그기를 싫어한 인물이었음을 알 만하다. 김효로를 사표로 삼아 성장한 덕분인가? 그의 친손과 외손 중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왔다. 이른바 ‘오천 7군자’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렇다.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 정구(寒岡 鄭逑)는 안동부사로 재임할 때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 마을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탄복했다지. 이후 군자리라 부르게 됐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 후조당(後彫堂) 대종택으로 들어선다. 군자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며, 마을의 깊은 유서를 웅변하는 대표적 건물이다. 입향조 김효로의 장손인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1567년에 초창, 자신을 호를 따 ‘후조당’(後彫堂)이라 이름 붙였다. 후조당은 안채, 사랑채, 사당, 별당 등으로 구성됐다. 대종택답게 규모로나 건축 미학으로나 빼어나다. 특히 후조당 별당의 가구(架構)와 구색이 흥미롭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서편엔 6칸 대청을 설치했다. 대청 동편엔 2칸의 온돌방을 배치했고, 잇달아 마루 1칸과 가마 형태의 작은 온돌방 1칸을 덧붙여 위트가 실린 건물 형태를 연출했다. 천장 부위에 설치한 소슬 대공은 매우 희귀한 받침 형식인데, 여말선초의 기법이라 한다. 화각을 한 마루 대공의 화려함도 수작으로 평한다. 6칸 대청의 칸마다 단 사분합문(四分閤門)의 묘미는 또 어떻고? 모조리 들어 올려 걸쇠에 걸면 단박에 외경이 안으로 들이친다. 햇살과 바람이 밀려든다. 사분합문은 이렇게 풍경을 변주한다. 아울러 공간을 확장하는 기능을 해 문중의 제례나 회합 같은 대형 행사를 너끈히 치를 수 있다.
선비가 쓴 요리책 ‘수운잡방’
후조당 별당에 걸린 현판은 퇴계가 썼다. 군자마을 선비들은 다들 퇴계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김부필 역시 제자였다. 후조당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건을 위한 건물 해체 때 지붕 아래 합각에서 고서, 문집, 교지, 토지문서, 노비문서 등 희귀한 문화유산이 다수 발견돼 큰 화제가 되었던 것. 문중 선조들이 600여 년간 은밀하게 소장했던 고문서와 전적들이 천장에서 쏟아지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기상천외한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겠다. 당시 발견된 수천 점의 유물 중 일부는 보물 제1018호와 제1019호로 지정됐다. 사람들은 대개 군자마을의 고택에 관심을 갖지만, 이곳 문중 사람들의 자긍심을 돋우는 건 바로 이 기록유산들이다.
그렇다면 군자마을의 군자들이 지닌 정신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명민해 학문에 밝고 처신에 맑았다. 흔히 탈속한 풍모와 깨끗한 운신을 일삼아 세상의 농간과 꿍꿍이에 초연했다.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도학자란 세속보다 산림에서의 은거와 공부로 오히려 삶의 진수를 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지 않았던가. 군자마을 ‘7군자’의 중심인물이었던 김부필은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둔했다.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스승 퇴계가 벼슬을 권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때 퇴계가 읊은 칠언절구가 있다. ‘후조당 주인은 소박하고 절개가 굳어/ 임금의 임명장이 내려와도 기뻐하지 않았다/ 매화와 마주 앉아 빙설 같은 향기를 맡으며/ 그저 도(道) 공부에만 매진하더라.’
이제 탁청정(濯淸亭)을 볼까. 입향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 김유(金綏, 1491~1555)가 1541년에 살림집을 지으면서 바로 옆에 함께 건립한 별당 정자다. 군자마을엔 두 개의 종가가 마을의 기풍과 질서를 주도해왔다. 항렬로 보아 큰집인 후조당 종가와 작은집인 탁청정 종가가 바로 그렇다. 탁청정의 이름은 김유의 호에서 따왔으며,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 한석봉은 도산서원의 현판을 쓰기도 했는데, 서예가들에 따르면 탁청정 글씨가 도산서원의 것보다 빼어나다고 한다. 탁청정은 정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로 매우 아름답다. 허전한 구석 없이 당당하고 흠결 없이 수려해 당대 최고수 목수가 지은 집임을 짐작케 한다.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치고 탁청정처럼 웅장하고 우아한 정자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뜰에 있는 연못에선 여름이면 연꽃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라 누각으로 스며든다.
이토록 경탄할 만한 정자를 지어놓고 김유는 무엇으로 소일했나? 그의 뇌에 세팅된 최고의 가치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지 않았을까. 그는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무과엔 실패, 그 길로 벼슬을 포기하고 향촌에 살며 도학자로서의 영일(寧日)을 구가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유는 ‘어찌 명리(名利)를 좇으랴. 삶이란 즐거워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학덕은 드높았고 인격도 고매했다. 즐기는 방식에도 기품이 있었다. 부모 봉양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함)에 충실함으로써 선비의 본분을 다했다. 특히 접빈객에 공을 들였다. 그는 열 살 연하의 퇴계를 비롯해 당대의 시인 묵객들과 두터운 교유를 했다.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과 풍류가 화개(花開)처럼 번졌으리라. 이름난 이들만 접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걸인에게도 대접을 했다는 게 아닌가. 그의 집 주방에선 늘 술이 익어가고 음식이 요리됐다. 김유는 요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 보물 제2134호)을 저술하기도 했다. 남존여비의 비루한 관념이 엄연하던 시대에 선비가 요리책을?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아마도 김유는 삶이라는 여행을 경계 없이 넘나든 게 아니었을까. 수신(修身)이 깊지 않고선 가능치 않은 경지다.
권석환 안동문화원 원장
유교 자체에 무슨 폐단이 있으랴
‘안동학’이라는 게 있다. 안동 지역의 역사·문화·지리·민속 등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지역학이다. 이 흔치 않은 학문 장르의 존재를 통해 안동의 문화적 광량(廣量)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동 사람들은 흔히 유교 문화와 불교 문화는 물론 민속 문화까지 번성한 곳으로 안동을 능가할 지역이 없는 걸로 본다. 권석환 안동문화원 원장을 통해 안동의 문화와 안동문화원의 일에 대해 들었다.
“‘안동정신’의 핵심은 ‘의’(義)를 중시한다는 데 있다. 여기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일찍이 고려 건국 때 안동의 지도자 김선평·권행·장정필이 정의로운 편에 섰다. 일제강점기 때엔 전국 어느 곳보다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게 왜 그런가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안동 출신으로 성리학의 태두였던 퇴계 선생의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게 그 배경이 됐다. 즉 의리를 본분으로 가르친 퇴계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얘기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표방하고 있다. 이른바 ‘선비정신’이 여전히 살아남은 지역이라는 뜻을 담은 슬로건인가?
“현대의 다양화된 사회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가지고 살 수야 있겠나. 그러나 유교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이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게 유교니까. 다시 말해 선비정신을 어떻게든 이어가자는 게 안동의 바람이다. 사실 안동은 전통과 예절이 그나마 잘 지켜지고 있는 고장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에 유교가 가르치는 모럴이 지닌 폐단은 없을까?
“옳은 삶을 가르치는 유교 자체에 무슨 폐단이 있을까? 다만 가르침을 시늉만 낼 뿐 실제로는 이기심을 채우는 얌체들은 이 지역에도 많다. 매사 조상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처신을 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권 원장님은 전통 유가의 후예로 오랫동안 유림활동을 했다. 일상의 처신에서 중시하는 가치들이 있다면?
“기본적인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지키고자 한다. 상경여빈(相敬如), 즉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 대하듯이 하라는 가르침과,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시 현대사회에서도 요긴한 미덕이라 믿는다.”
얼마 전에 펼쳐진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는 시민 중심의 참여형 축제로 성황을 이뤄 호평을 받았더라.
“안동문화원이 주관한 축제로 성과가 컸다. 안동문화원이 부각되는 효과를 낳기도 해 보람을 느낀다. 향후 젊은 층을 축제에 적극 끌어들여 질적 성장을 도모할 참이다.”
안동의 문화답사 때 놓치지 않고 찾아보길 바라는 명소를 꼽아달라.
“도산서원을 찾아가 사당에서 절을 하는 걸로 퇴계 선생을 뵙고 그 정신을 담아오면 좋겠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월영교에서는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라고. 이 둘만으로도 안동이 오래가는 기억으로 남을 게 틀림없다.”
그는 안동만의 먹거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500년 전통의 종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수운잡방 체험관’을 통해 음식의 낙원을 경험하라는 것.
불가리아 수도는 소피아다. 북쪽 국경의 대부분을 흐르는 도나우 강이 루마니아와 경계를 이루며, 흑해의 해안선이 동쪽 경계가 된다. 남쪽으로 그리스와 터키, 서쪽으로는 세르비아 및 마케도니아와 접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2500달러이며, 유럽연합(EU) 가입국이다. 인구는 약 670만 명, 국토 면적은 11만 1002㎢로 우리의 1.1배다. 국가 꽃은 장미로, 장미오일의 전 세계 생산량 30%를 차지한다.
겨울 평균 기온은 -1℃, 여름 평균 기온은 21℃다. 강수량은 고원지대를 제외하고 전 지역에 걸쳐 평균 530~685㎜다. 한여름 골프를 치러 오는 유럽인으로 가득하다.
골프 역사 짧지만 클럽 수준 높아
불가리아 골프장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에 처음으로 에어소피아(Air Sofia) 골프클럽이 개장했으며, 2001년 불가리아 골프협회가 창설되었다. 골프 역사가 가장 짧은 유럽 국가 중 하나다. 불가리아는 2023년 현재 6개 골프클럽에 7개의 골프 코스가 있다. OKOL 골프클럽은 2023년 하반기 완공 예정이며, 수도 소피아 주변에 4개, 바르나(Varna) 지역에 3개가 있다.
피린 골프&컨트리클럽은 소피아공항에서 남쪽으로 160km 지점에 위치한다. 1.5㎢ 면적에 위치한 믿을 수 없는 게이트 리조트(Gated Resort)다. 2009년 유러피언골프디자인의 이안 우스남(Ian Woosnam)이 설계했으며, 5홀 파인 코스(Pine Course)는 2011년에 개장했다. 피린(Pirin), 릴라(Rila), 로도피(Rodopi)의 3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특히 산 정상의 만년설은 8월을 제외하고 11개월 내내 눈 덮인 장관을 보여준다. 유명한 스키 리조트 반스코(Bansko)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계곡에 자리한다. 2021년 월드골프어워즈가 선정한 불가리아 최고의 골프호텔, 유럽 대륙 100대 리조트 골프장으로 선정되었다.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 퍼스트 클래스 숙박 시설 및 골프 코스로 일 년 내내 골프, 스키, 스파 휴가를 위한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70개 객실의 부티크 5성급 호텔, 편안한 아파트 단지 및 개인용 고급 샬레가 있다. 또한 20개 이상의 테마 레스토랑, 슈퍼마켓, 바, 상점, 5500㎡의 웰니스 센터, 스포츠 센터, 7개의 수영장, 골프 아카데미가 있는 복합 시설이다. 불가리아 최고의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다. 필자는 70개 객실이 있는 부티크 호텔에서 4박을 했으며, 지하 1층에는 스파가 있어 투숙객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다.
멋진 피린 산맥의 우뚝 솟은 등줄기를 배경으로 이안 우스남 코스와 피린 파인 코스는 마케도니아 아마추어오픈을 비롯해 WAGR, 터키항공, 볼보, AUBG, BDO 등 매년 40개 이상의 대회를 개최한다.
이안 우스남 코스
이 클럽의 자랑은 라이더컵 캡틴이 설계한 뛰어난 18홀 코스다. 이 코스는 모든 레벨의 골퍼가 도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칠고 험한 지형을 통해 모험을 떠나게 해준다. 80개의 벙커, 산의 초목, 4개의 호수와 강이 있는 이 코스는 우리네 골프 코스와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홀에 크리크가 흐른다. 피린 산맥에서 내려오는 맑고 투명한 물은 작은 개울과 함께 크고 작은 바위와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상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골프장과 리조트 전체를 감싸는 3개의 산 정상에 만년설이 가득한 환경은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절경이 아닐 수 없다.
3번 홀(파3, 181/155m) 멋진 내리막 파3 홀이다. 티 박스 앞의 작은 나무들로 홀이 잘 안 보이는 블라인드 홀이며, 그린 앞에는 큰 폰드가 있어 한 클럽 길게 잡는 것이 좋다. 6번 홀 티 박스에서 뒤로 바라본 3번 홀 모습이 인상적이다.
7번 홀(파5, 510/483m) 살짝 내리막의 긴 파5 홀이다. 페어웨이를 따라 왼쪽으로 근사한 빌라들이 그린 왼쪽 앞까지 길게 펼쳐진다. 그린 100야드 앞부터 좁아지는 페어웨이와 오른쪽의 나무와 폰드가 위협적이다. 필자는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야 처음으로 파를 했다. 스트로크 인덱스 1이다.
9번 홀(파3, 172/150m) 라운드하는 3일 내내 앞바람을 안고 티 샷을 했다. 만만치 않은 거리일 뿐 아니라 티 박스 오른쪽부터 그린 오른쪽까지 이어지는 멋진 크리크가 오르막으로 펼쳐진다. 크리크에는 맑고 투명한 물, 잘 만들어진 바위와 돌, 그리고 갈대 같은 나무들이 있어 아름다운 뷰를 보여준다.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15번 홀(파3, 154/131m) 시그니처 홀이다. 티 박스 오른쪽에서 흘러내리는 크리크가 그린 앞쪽과 왼쪽으로 큰 호수를 만드는 그림 같은 내리막 홀이다. 그린 오른쪽 벙커도 심리적으로 부담된다.
피린 파인 코스
골퍼들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도전이 필요한 코스다. 소나무 숲에 위치한 5개 홀로 구성되어 있다. 홀의 번호는 1번이 아닌 5번부터 시작되어 9번으로 끝난다. 7번 홀은 짧지만 매우 독특하다. 240야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90도 도그레그 홀이다. 만일 티 샷이 짧으면 오른쪽 큰 나무들로 가득한 숲을 넘겨 그린을 공략하거나, 앞쪽으로 샷을 한 후 오른쪽으로 그린을 공략해야 한다.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설계다. 본 경기에 앞서 워밍업을 하기 위한 좋은 코스이며, 연습에도 최상이다.
96세 김두엽 화가와 그의 아들, 정현영 화가의 개인전이 서울시 노원구 소재의 더숲 아트갤러리에서 7월 2일까지 열린다.
김두엽 씨는 여든셋에 그림을 시작해 올해로 14년 차 화가다. 2020년 아트스페이스 이지갤러리 초대 개인전, 미담 갤러리 초대 개인전, 생각하는 정원 갤러리 초대 개인전 등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그림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지만, 우연히 그린 사과 한 알을 시작으로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 화가의 그림은 구김살 하나 없이 화사하고 또렷하다.
그가 창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간 데는 아들 정현영 화가의 도움이 컸다. 정현영 화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등단해 여수국제미술제 초대전, 광양미술협회전, 동덕아트 갤러리 100人 초대전 등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김두엽 화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붓을 잡고 있으면 힘이 좀 나는 것 같다”며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려보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자세한 전시 내용은 더숲 아트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장년이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고려할 때 ‘취미’는 큰 영향을 끼친다.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을 말한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을 즐기다 연계된 직업을 갖게 되면, 당신도 ‘덕업일치’(德業一致,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은 무료한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한 취미가 일로 발전한다면 취미를 즐기는 동시에 건강도 챙기고, 직업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다. 일석사조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취미를 발전시켜 일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덕업일치’와 함께 ‘하비프러너’(Hobbypreneur)가 언급된다. ‘취미’를 뜻하는 하비(Hobby)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러너(Preneur)의 합성어다. 취미를 발전시켜 창업하고 수익을 창출한 사람을 일컫는다. 디지털 시대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온라인 플랫폼 판매자 등이 많아지면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중장년이 직업으로 발전시킬 취미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봤다.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친자연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취미를 소개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직업 상담가는 “사실 취미를 일로 연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구직 시 취미는 플러스 알파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게 좋아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학교 급식실에 취업할 때 도움이 된다”면서 “중장년분들을 보면 평생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 마음 편히 노는 법을 모른다.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축복할 경우지만, 일을 할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고 당부를 전했다.
사부작사부작 취미 살리기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으로 불린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세계 2위에 이른다. 전 세대에서 관심이 높지만, 중장년층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중장년 세대에게 커피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들은 다방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마셨고, 식후 입가심이 되어주는 믹스커피를 좋아했으며, 카페가 많아지고 난 현재는 원두커피를 즐기고 있다.
원두커피의 맛을 알게 되면서 중장년층을 포함한 전 세대는 커피 만드는 법에 관심을 두게 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서 홈 카페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자,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커피 만드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집에서 가까운 바리스타 교육기관 또는 학원을 찾아가면 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고용노동부에서 훈련비를 지원해주는 제도. 1인당 최대 5년간 300만~5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를 활용하면 무료로 교육받을 수도 있다.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민간형 자격증인 바리스타 자격증을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하다.
커피 만드는 법을 알면, 시니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 수입을 거둘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 일자리 가운데 민간형 사업의 주력 분야는 카페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 공급과 수요 모두 많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취업이 유리하다. 카페 창업도 가능하다. 내가 만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셈이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적 소양을 살려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개그맨 김현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제2의 삶을 사는 중이다. 워낙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 지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그는 이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그는 악보를 통째로 외워 지휘한다고 한다.
김현철과 같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중장년이 많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악기 연주를 배우고 아마추어 활동을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윤경은 유튜브 채널 ‘김윤경의 소소한 클래식’을 통해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아마추어들의 연주 활동을 지원한다. 김윤경의 사례 역시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은 취미를 살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소한 취미도 잘 살리면 소득이 생긴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시니어 작가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되기에 늦은 나이란 없기 때문이다. 중앙지와 지방지, 종교지 등 13개 신문의 ‘202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보면, 전체 당선자 96명 중 40대 이상이 38명이었다.(40대 12명, 50대 이상 26명)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는 68세의 노수옥 씨로 그는 ‘광남일보’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아니어도 온라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창구가 많이 형성돼 있다. 블로그 마케팅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작가가 되고 책도 낼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글짓기 대회도 많은 상황이다. 본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역시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열어 시니어 작가를 응원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 살리기
나이가 들수록 초록초록한 풍경의 자연이 좋아진다. 자연을 느끼며 가벼운 산책이라도 운동을 하면 심신이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2017년 영국 요크대학교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녹지 공간이 노인의 정신적 웰빙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단순히 걷기부터 등산, 트레킹까지, 숲에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직업과 연결될 수 있다. 숲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고 보면 무궁무진하다. 2018년 당시 김재현 산림청장은 ‘숲에서 일하는 100가지 방법’ 안내서를 내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취미 기반 직업은 ‘숲해설가’다. 자신이 좋아하는 숲을 거닐면서 소득도 벌 수 있다. 자연휴양림, 수목원, 도시 숲 등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설하고 체험 활동을 돕는 일을 한다. 산림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에서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평가를 거쳐 산림청장으로부터 자격을 부여받는다.
2020년 한국갤럽이 추적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등산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등산은 부동의 1위였다. 등산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등산을 가장 즐기는 세대는 중장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을 즐기는 중장년이라면 ‘산악전문지도사’를 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산악전문지도사는 산악 안전사고 예방 및 대응, 전문 등반(암·빙벽 등반) 안내, 안전한 산행 가이드 등 올바른 산행 문화를 선도하는 전문 인력을 말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서 민간 자격을 발급하며, 2019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숲과 관련된 직업이라고 해서 꼭 활동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목공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목공예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다. 목공예 제작 및 판매 업체,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할 수 있고, 개인 공방을 운영할 수도 있다.
◇걷기 취미 살려 걷기 강사 된 박미애 씨
“살기 위해 걷기 시작, 행복 전파하고파”
“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하루에 10㎞를 걸어요.”
일상에서 매일 하는 걷기는 취미를 넘어 직업이 될 수 있다. 걷기 전문가가 되면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 부산에 사는 걷기 강사 박미애(62) 씨는 이 사실을 몸소 입증한다.
박미애 씨는 한국걷기 그랜드슬램을 3회나 달성했다. 한국걷기 그랜드슬램 워커는 1년 내에 장거리 대회 4개, 총 521㎞를 완보한 자를 말한다. 박미애 씨는 “중학생 때부터 걷기는 내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걷기는 힐링’이라는 사실은 결혼 후에 깨달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요. 시어머니는 대장암, 시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셨어요. 매일 간호하며 사는 삶이 너무 팍팍했죠. 또 공부를 잘해서 외고에 3년 장학생으로 진학한 아들이 갑자기 일반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정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걸었습니다. 한참 걷고 나면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죠.”
본격적으로 걷기 전문가가 된 것은 2017년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에서 주최한 ‘해안누리길 종주 대회’에 참여, 8일간 160㎞ 종주에 성공했다. 걷기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서 박미애 씨는 ‘나도 잘 걷는 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모임 ‘청춘 도다리’ 강연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에서 강연하면서 박미애 씨는 걷기 강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걷기 지도사 자격증 1·2급도 취득했다. 민간 자격증으로, 2급은 16시간 교육을 통해 쉽게 취득할 수 있다. 경력이 있어야 자격이 되는 1급은 전문성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박미애 씨는 강사로 일하면서 걷기의 기쁨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그는 2020년 동서대학교 미래커리어대학 시니어운동처방학과에 진학했다.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박미애 학생은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걷기에 관심이 많고 실천하고 있는 시니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들 충분히 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강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인체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봐도 건강 문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걷기 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걷기 학교 설립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미애 씨는 걷기가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해준다며, “걷기가 나를 살리고, 우리 가족도 살렸다”고 표현했다.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동생에게 박미애 씨는 100㎞를 걷게 했다고. 걷기의 긍정적인 효과를 느낀 동생은 건강을 되찾은 현재도 매일 10㎞씩 걷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박미애 씨의 남편이 척수 손상으로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박미애 씨는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매일 걸었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걷기’라는 취미가 불러온 긍정적인 나비 효과에 그는 오늘도 행복을 느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굉장히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걷기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나이 들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삶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