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
일정 2023년 1월 8일까지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
장 줄리앙(Jean Jullien)은 프랑스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와 영국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독창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작품 스타일은 세계적인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면 거기’는 장 줄리앙의 첫 번째 회고전이다. 장 줄리앙의 초기 작품부터 그가 새롭게 탐구해온 최신 작품들까지 총망라된다. 일러스트와 회화, 조각, 오브제,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하게 변주된 1000여 점이 전시됐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장 줄리앙의 스케치북 100권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장 줄리앙은 항상 스케치북을 갖고 다니면서 인상적인 순간을 즉흥적인 드로잉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들은 하나의 완성작을 탄생시키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100권의 스케치북은 그중 일부다.
전시장은 ‘100권의 스케치북’, ‘드로잉’, ‘모형에서 영상으로’, ‘가족’, ‘소셜 미디어’ 등 총 12개 테마로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록한 거대한 스케치북이 펼쳐져 관람객을 맞는다.첫 회고전을 연 장 줄리앙은 “창의적인 삶이란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작품으로 표현돼왔는지 그 과정을 이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기억
일정 2023년 1월 20일까지 장소 경운박물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생애를 돌아보며 황실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박물관에 있는 의친왕 관련 유물과 대한 황실 후손들이 소장하던 유물 및 개인 소장 유물을 총망라하는 국내 최초 의친왕 유물전이다. 전시는 의친왕의 왕자 시절부터 △의친왕 책봉 △미국 유학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전반적인 생애와 활동을 살펴본다. 특히 일제강점기 전후한 황실의 독립운동을 비롯해 의친왕과 함께한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역사적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친왕의 사진, 훈장, 기념장, 임명장, 의궤, 복식, 선언서, 의친왕 글씨 액자 및 족자, 사동궁 생활유물 등 120여 점이 공개됐다.
●Book
◇나이듦의 철학(제임스 힐먼·청미)
저자 제임스 힐먼은 저명한 융 심리학자다. 그는 책을 통해 나이 듦을 영예롭게 여기고, 그에 합당한 지성으로 창의적인 발상을 제시한다.
제임스 힐먼은 인생에서 가장 오해받는 두려운 시기, 즉 노년에 혁명적으로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인간 수명의 연장을 문명이 쓸데없이 빚어낸 과오로 보는 유전적 결정론과 정반대 주장을 펼친다. 노년의 고역스러운 일들을 지성으로 파악 가능한 통찰로 보고, 나이 듦에 대한 관습적인 생각을 비틀었다.
제임스 힐먼은 나이 든 사람을 조상, 젊은이의 본보기, 사회의 문화적 기억 및 전통의 전달자로 본다. 저자는 “나이 듦은 ‘오래됨’의 문을 열고 노년은 그 문을 좀 더 활짝 열어젖힌다. 그게 나이 듦의 핵심일 것이다”라면서 “노인이 지혜를 짊어지고 있다는 말은 노인은 그 자신이 오래됐기 때문에 이 오래된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노인과 세계는 동일한 존재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노년에 접어들지만 노년의 변화에 당황하거나 절망하기 마련이다. 나이 듦에 대해 저자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며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노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깊은 자기 이해를 하라고 말한다.
◇빅지니어스 : 천재들의 기상천외한 두뇌 대결(김은영·마음의숲)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 칼럼니스트가 썼다. 아인슈타인, 뉴턴 등 천재들은 라이벌과 경쟁하며 현대문명에 발전을 가져왔다. 천재들의 싸움을 읽다 보면 과학 이론과 역사 상식도 알게 된다.
◇애도 클럽(타일러 페더·문학동네)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지 10년. 저자는 마침내 지난날의 상실을 마주하고 회고록을 썼다. 암 진단과 투병 과정, 장례식과 추모식, 그 후의 일상을 모두 담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을 홀로 끌어안은 모든 이에게 위로를 전한다.
◇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했다(브래드 스털버그·부키)
성과 전문가인 저자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는 동서양의 고대 철학, 과학과 심리학,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고, 이를 소개한다.
●Stage
◇스위니토드
일정 12월 1일 ~ 2023년 3월 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에릭 셰퍼
출연 강필석, 신성록, 이규형, 전미도, 김지현, 린아 등
스릴러 걸작으로 꼽히는 뮤지컬 ‘스위니토드’가 3년 만에 돌아온다. 1979년 초연된 후 토니 상, 드라마 데스크 상, 로렌스 올리비에 상 등 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극은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발사 벤저민 바커가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후,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터핀 판사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치밀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이다.
‘스위니토드’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스토리와 넘버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강필석, 신성록, 이규형, 전미도, 김지현, 린아 등 국내 최정상 뮤지컬 배우가 출연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 넘치는 무대가 기대된다.
◇미저리
일정 12월 24일 ~ 2023년 2월 5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황인뢰
출연 김상중, 서지석, 길해연, 이일화, 고인배, 김재만
연극 ‘미저리’는 미국 대표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90년 동명의 영화가 흥행해 국내에도 스토리가 잘 알려져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폴 셸던을 향한 열성 팬 애니 윌크스의 광적인 집착을 그린 스릴러다. 주인공 폴 셸던 역은 초연부터 출연한 김상중이 맡으며, 서지석이 새롭게 합류했다. 애니 윌크스 역에는 김상중과 초연부터 환상의 호흡을 펼친 길해연이 돌아오고, 이일화가 새롭게 나선다. 보안관 버스터는 초연부터 이 역을 맡은 베테랑 배우 고인배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김재만이 연기한다.
◇물랑루즈!
일정 12월 20일 ~ 2023년 3월 5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알렉스 팀버스
출연 홍광호, 이충주, 아이비, 김지우, 손준호, 이창용, 최호중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 ‘물랑루즈!’는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한 작품이다. 제7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 포함 10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1890년대 프랑스 파리의 클럽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과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으로 오리지널 창작진 및 제작진이 직접 참여한다. 165명의 작곡가와 31명의 퍼블리셔가 창작한 70곡 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홍광호, 아이비, 김지우, 손준호 등 유명한 뮤지컬 배우들도 대거 출연한다.
●Exhibition
◇바티망
일정 12월 28일까지 장소 노들섬 노들서가
건물 외벽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설치 예술 ‘바티망’(Ba^timent)이 국내에 착륙했다. ‘바티망’은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며, 현대 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1973)의 대표작이다.
‘바티망’의 구조는 실제 건물 모양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와 거울로 이뤄졌다. 이에 관람객이 작품에 올라서면 마치 건물 외벽에 매달린 듯한 모습이 거울에 반영된다. 더불어 관람객은 바티망 위에서 창의적인 포즈를 취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고,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예술적인 경험에 빠져든다. ‘바티망’은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18년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를 투어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2017년 도쿄와 2019년 베이징에서 진행된 투어에는 하루 평균 4500명 이상 방문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는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티망’뿐 아니라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비행기’(El Avio′n, 2011),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등 일상적 소재를 매개로 신선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의 다양한 설치·영상·사진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에바 알머슨, Andando
일정 12월 4일까지 장소 전쟁기념관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불리는 스페인 출신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의 국내 세 번째 전시다. 3년 만에 내한한 에바 알머슨은 “한국은 항상 두 팔 벌려 따뜻하게 환영해주는 특별한 나라”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전시의 테마인 ‘Andando’(안단도)는 스페인어로 ‘계속 걷다’라는 뜻으로, 전시는 에바 알머슨의 일생을 회고한다. △삶을 그리다 △가족 사전, 일상의 특별함 △사랑 △자가격리자들의 초상화 △광장 △애니메이션 △자연 △삶 △연약함과 강인함 △축하 △영감 등 총 11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드로잉, 유화, 대형 조형물, 조각 등 150여 점이 전시됐으며, 최초로 공개된 다수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
●Book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플뢰르 펠르랭·김영사)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느낍니까, 프랑스인이라고 느낍니까?” 이 질문은 2013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이 들은 말이다. 당시 플뢰르 펠르랭의 답은 ‘프랑스인’이었다. 생후 6개월 때 프랑스로 입양된 지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답이었다.
플뢰르 펠르랭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특임장관으로 발탁된 후 통상·관광·재외교민 담당 국무장관,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을 지내고 퇴임했다. 이후 2016년 파리에서 코렐리아캐피탈을 세운 그는 벤처 투자자로 변신, 유럽 스타트 업계의 큰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초 출간되는 그의 첫 에세이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는 그가 프랑스에 ‘도착’한 날부터 정치인과 사업가로서의 최근 활동까지 담았다. 동시에 2013년 자신을 마치 ‘딸처럼’ 환영했던 한국인에게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성별, 배경, 경계를 이탈해 눈부신 성취를 이어가는 펠르랭의 서사는 소통과 공감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서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를 추천했다.
◇조선의 대기자, 연암(강석훈·니케북스)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연암을 기자의 원조라고 생각했다. ‘열하일기’에는 조선의 정치와 학문 풍토, 선비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직설적 비판과 질타가 포함돼 있다. 연암의 기자 정신은 현재의 기자들에게도 본보기가 된다.
◇전 세계 최초로, 향기를 마신다(김용식·모아북스)
‘마시는 향기’란 천연 재료에서 나온 천연 향기를 포집한 것으로, 우리 몸에 바르거나 마실 수 있는 물질이다. 한의학 박사인 저자는 상세한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시는 향기’가 건강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 마을에 저녁이 내리는 소리(한창수·페이퍼로드)
소년 모모의 친근한 이웃들은 사실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 위대한 철학자들이다. 모모는 일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인생과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렵게만 느꼈던 철학 사상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Stage
◇브로드웨이 42번가
일정 11월 5일 ~ 2023년 1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오루피나
출연 송일국, 이종혁, 정영주, 배해선, 신영숙, 전수경, 홍지민, 오소연, 유낙원, 김동호 등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뮤지컬 배우 지망생 페기와 연출가 줄리안, 한물간 프리마돈나 도로시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996년 한국 최초 정식 라이선스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시즌은 한국 초연 26주년을 기념한 공연으로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을 자랑한다. 브로드웨이 최고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은 2016년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뮤지컬에 데뷔한 송일국, 다섯 시즌 연속 캐스팅된 이종혁이 연기한다. 한때 최고의 뮤지컬 스타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잃어버린 프리마돈나 도로시 브록 역에는 정영주, 배해선이 캐스팅됐고 새로운 캐스트로 신영숙이 합류한다. 제작자 메기 존스 역은 ‘브로드웨이 42번가’ 초연 멤버이자 역대 최다 출연 타이틀을 기록하고 있는 전수경, 그리고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홍지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드라큘라
일정 11월 15일 ~ 2023년 1월 15일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안재욱, 정동하, 테이, 김진환, 유승우, 이병찬, 종형, 김법래, 이건명 등
3년 만에 돌아오는 ‘드라큘라’는 1995년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유럽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1998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 드라큘라의 매혹적인 스토리에 몰입감을 높이는 무대 연출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드라큘라’에서는 신성우, 안재욱, 정동하, 테이가 드라큘라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특히 초연부터 지금까지 드라큘라 역을 연기한 신성우는 관록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또한 아이콘 김진환, ‘슈퍼스타K’ 출신 유승우, ‘내일은 국민가수’ 이병찬, DMZ의 종형 등도 출연하며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에쿠우스
일정 11월 8일 ~ 2023년 1월 29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이한승
출연 장두이, 최종환, 한윤춘, 김시유, 강은일, 백동현 등
1975년 국내 초연 이후 매 공연 센세이션을 일으킨 연극 ‘에쿠우스’가 3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올해는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62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장두이, 최종환, 한윤춘, 김시유, 강은일, 백동현 등 공연계 중견 배우부터 신예 배우까지 색다른 조합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에쿠우스(Equus)는 라틴어로 말(馬)을 뜻한다.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과 그의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근원적 고찰을 담아낸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영화 ‘토이 스토리’는 살아 있는 장난감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다. 우리에게도 영화처럼 장난감을 진짜 친구라 여긴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동심을 간직한 덕분일까. 어른들은 고장 난 장난감을 버리면서도 아이가 실망할까봐 “장난감이 아파서 병원 갔다”는 식의 말을 종종 꾸며낸다. 그리고 그 하얀 거짓말을 참으로 만들려는 이가 있다. 김종일(77)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이다.
1만 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의 베테랑이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하라는 얘기다. 이 시간을 채우기까진 대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난감병원 ‘키니스’가 문을 연 지도 어느덧 만 11년이 흘렀다. 최초가 된다는 건 꽤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에 외롭고 험난하다. 이럴 땐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10여 년 전 장난감병원 설립을 앞둔 김종일 이사장에게도 뜻을 나눌 동료가 필요했다.
“인하대 금속공학과 교수를 지냈는데, 일찍부터 은퇴 후를 고민했어요. 내가 가진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다 지금의 장난감병원을 떠올렸는데,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장난감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게 많아요. 애들이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음료를 흘리면 쉽게 고장 나 버리죠. 이걸 고치려면 전자 신호나 회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거든요. 일단 주변에 알고 지내던 동료 교수들이랑 전자업체 연구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고맙게도 대부분 흔쾌히 승낙해줬어요. 덕분에 은퇴 후 바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죠.”
그렇게 지원군이 모이자, 김종일 이사장은 사비 3000만 원을 들여 비영리 민간단체 키니스장난감병원을 설립했다. 그를 비롯해 함께하는 이들 모두 봉사하는 마음으로 무보수 재능기부를 택했다. 선한 마음으로 모인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박사’라 부른다. 대부분 60~70대로 본업이 박사인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난감 박사’라는 뜻으로 통한다.
“돈 받는 일도 아닌데 다들 사명을 갖고 임해주니 감사하죠.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분들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최고의 장난감 박사라 자부할 수 있어요. 장난감 수리 쪽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열심히 연구해온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웃음)”
사연 안고 입원하는 장난감 환자들
키니스장난감병원을 방문하려면 먼저 온라인 진료실에서 ‘입원 치료 의뢰서’를 작성해야 한다. 김 이사장은 의뢰서에 올린 사진과 사연을 보고, 70% 이상의 치료 확률이 있을 때 입원 결정을 내린다. 치료가 안 됐을 경우 오히려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기에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물론 희박한 성공 확률에도 의뢰자가 원한다면 치료를 시도해보는 편이다. 이렇게 입원하는 장난감이 매년 1만 개에 달한다. 이 많은 장난감을 박사 6~7명이 고쳐내려니 종일 허리 펼 새도 없이 치료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또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들어오는 장난감들도 60대 후반인 막내 박사가 송장 붙이기부터 포장까지 도맡아 해낸다. 인터뷰 당일에도 실시간으로 방문객과 택배 박스가 정신없이 오갔다. 봉사가 아닌 혹사에 가까운 업무량이지만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박사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장난감마다 사연이 있잖아요. 특히 돌 전 아이들 장난감 중에는 모빌이 가장 많이 들어와요. 그맘때는 엄마들이 온종일 애랑 붙어 있는데, 그나마 모빌이라도 틀어줘야 엄마도 밥 먹고 쉬거든요. 근데 그게 고장 났으니 얼마나 쩔쩔매겠어요. 또 애착하던 장난감이 없어서 잠 못 잔다는 아이들도 있고, 이런저런 사연 떠올리면 얼른 잘 치료해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 달리 아이들 물건의 경우 다소 허술하게 만들어져 고치기 난해한 게 많다고. 키니스에서는 택배비 외의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데, 치료를 위해 부품을 새로 사거나 박사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할 때도 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고쳐지지 않는 장난감은 나오게 마련. 간혹 고장 난 제품을 그대로 다시 받은 고객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단다.
“가끔 장난감이 안 고쳐졌다거나 더 고장 나서 왔다면서 안 좋은 후기를 남기는 분들도 있죠. 우리 박사들은 실명제로 일하는데, 자기가 치료한 장난감이면 글만 봐도 다들 알 수밖에 없거든요. 참 속상하고, 어떨 땐 상처도 받아요. 치료가 잘 안 됐을 때 슬퍼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도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은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장난감 잘 고쳐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더 많습니다. 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노는 사진도 자주 올라오고, 고사리손으로 감사 인사를 적어 보내는 꼬마 손님들도 있고요. 그럴 때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낍니다.”
고장 난 장난감, 기부로 환골탈태
아픈 장난감 치료와 더불어 키니스의 주요 활동은 나눔이다. 설립 이래 해마다 저소득층 가정을 비롯해 보육기관, 장애인 시설, 치매센터(어르신들의 인지력 향상에 장난감을 활용) 등 곳곳에 1000여 개의 장난감을 기부해왔다. 특히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절대 거르는 법이 없다고. 보내는 물품의 일부는 다른 곳에서 기부한 고장 난 장난감이다. 물론 박사들이 성심껏 치료한 후 전달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 맞은편에는 ‘아나바다 본부’가 있다. 익히 아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기증받은 장난감들을 전시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난감과 교환해 갈 수 있다. 미래에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며 자원을 아끼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성장 시기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계속 바뀝니다. 아이들이 쉽게 질려 하기도 하죠. 또 얼마 안 하는 장난감은 조금만 고장 나도 쉽게 버리더군요. 그렇게 계속 새 장난감을 사주면 돈도 들지만 자원 낭비가 심하잖아요. 그러니 가급적 쓸 만한 것들은 고쳐 쓰고 바꿔 쓰고 하자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환경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부분을 일러주고 함께 실천하면 좋은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해요.”
비슷한 취지로 최근 지역마다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곳이 적잖이 생겨났다. 일정 기간 단위로 회비를 내거나 보증금을 내면 무료로 장난감을 빌려주는 식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경험하게 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물론 이 역시 훌륭한 서비스지만, 김 이사장은 아쉬운 부분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경험해보니 장난감은 고장 안 나기가 힘들어요. 아기들은 물고 빨고 던지면서 놀잖아요. 조금 큰 아이들도 먹다가 음식물을 흘린다거나 실수로 떨어뜨려서 망가지기 일쑤죠. 그런데 대부분 대여점의 정책을 보면 장난감이 고장 났을 때 수리비 명목의 비용을 내야 하더라고요. 키니스에 장난감 맡기는 분 중에도 대여점에서 빌린 게 고장 나서 갖고 오신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도 못 고치면 그만큼 돈이 나갈 테죠. 그러다 보니 엄마들도 애들한테 맘껏 갖고 놀게 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더군요. 또 장난감에 애착이 생겼는데 반납한다고 하면 아이가 슬퍼하고 실망할 거 아녜요. 그런 점들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은퇴 후 장난감 박사를 추천합니다
최근 키니스는 인천광역시 고령사회대응센터와 함께 ‘장난감 수리 전문가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난감 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인데, 이를 통해 양성된 인력은 인천 무료 장난감 대여소에서 장난감 수리 전문가로 활동한다. 지난해에는 인천시노인인력개발센터와 ‘장난감 척척박사 사업 활성화와 맞춤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이러한 인력을 전국의 장난감 대여소에 배치한다면 앞서 언급한 수리비 부담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아울러 그 어느 세대보다 은퇴 이후 중장년들이 장난감 박사로 함께 해주길 바라고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초반에는 공구랑 장비 마련한다고 사비를 많이 썼어요. 또 그때만 해도 박사님들 경험이 부족하니 기술도 지금만 못했고요. 요즘은 여기저기서 후원도 꽤 들어오고, 우리만의 노하우도 웬만큼 쌓였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우리 일을 권할 만한 좋은 여건을 만들었다고 봐요. 간혹 기술 없다고 주저하는 분들도 있는데, 와서 익히면 되니 큰 문제는 아녜요. 중요한 건 ‘봉사하려는 마음’ 그게 얼마나 진심인가죠. 게다가 나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데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나처럼 너무 나이 든 노인은 좀 그렇고(웃음) 60대 후반이면 딱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 여생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앞두고 있을 때 한 꼬마 손님이 찾아왔다. 장난감이 잘 치료되어 기분 좋은지 껑충껑충 뛰며 병원 문을 나서려는데, 김 이사장이 황급히 무언가를 챙겨 아이에게 다가갔다. 막대사탕이었다. 손님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는 아이들을 보면 과자든 풍선이든 꼭 뭔가 하나를 쥐어 보내야 직성이 풀린단다. 사탕을 받아 들고 신이 난 꼬마를 보는 김 이사장의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표정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이내 예상 답안이 흘러나왔다.
“내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고칠 겁니다. 이렇게 매일 뜻밖의 동심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지금처럼 다른 욕심 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해요. 아, 욕심나는 타이틀이 하나 있긴 한데요(웃음). 어린이날 창시자 방정환 선생처럼, 먼 훗날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장난감병원 설립자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그만큼 키니스가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이고요. 그게 제가 미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 거대 담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긴다. 그의 과학 이야기에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그는 “내 삶은 우연과 우연의 중첩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과학을 전하는 원종우 작가 이야기다.
‘파토’(Pat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원종우 작가의 이력을 쭉 듣다 보면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철학도, 록 뮤지션, 대중음악 운동가, 칼럼니스트, 정치사회 논객, 음모론 전문가, 다큐멘터리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그를 수식하는 말이다.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런던 칼리지 오브 뮤직&미디어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이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 ‘딴지일보’ 편집장 및 논설위원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과학과 사람들’ 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데, 그의 답은 한결같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거대 담론을 농담처럼 던지는 과학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거대 담론이라 불릴 만한 과학 이야기를 농담을 섞어 쉽게 전달하는 팟캐스트다. 2019년 말 기준 누적 1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구독자 수는 약 9만 명, 유튜브 구독자 수는 약 8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에게 과학을 더 쉽게 알리고 싶었던 원종우 작가가 2013년 ‘과학과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시작한 채널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록 음악을 하던 그는 어떻게 과학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그의 과학 사랑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한 살 무렵, 당시로서는 거금인 4000원을 주고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라 불리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 ‘코스모스’를 샀다.
“당시에는 대중교양 과학 서적이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무리 똑똑하대도 그 책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요? 대신 예쁜 컬러의 우주 그림이 많았고, 1부는 스토리가 재밌었죠.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세상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할 즈음에는 대중 과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다루는 것 같은 ‘바닷속에서 상어를 만났을 때 건전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고치는 과학’ 같은 접근이었다. 과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셈인데, 원 작가는 반대로 바라봤다. 특히 인문학 대중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이 대중화될 때 두 가지 소비 방식이 있었어요. 수박 겉핥기처럼 가볍게 다루거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방식. 둘 다 좋은 소비는 아니죠. 쉬운 과학은 오히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거대 담론을 편하게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과학은 스토리지만 어떤 건 수학이고 어떤 건 실험이잖아요. 대중이 이걸 100%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그 안에서 딱 한 가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꼭 가져갔으면 했어요. 과학으로 인문학 이야기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팟캐스트에서 제가 지향했던 부분이에요. ‘자, 지금부터 내가 거대 담론을 말할 거긴 한데, 듣는 사람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시선으로 들었으면 해’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가 팟캐스트에서 다룬 상대성 이론 이야기만 모두 합해도 8시간 분량이다. 양자역학은 더 많은 분량의 오디오가 있다. 내용도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그는 그 안에 핵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면서 눈이 열려요.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요. 제가 과학을 통해 느꼈던 경외감, 놀라움, 충격, 그리고 세상을 일상적인 경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지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전문가의 입을 통해 거대 담론을 설명하면서 청중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중간에서 통역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교수가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면 ‘나는 바보인가’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제가 중간에서 ‘사실 몰라도 돼요’라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청중은 긴장을 풀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이해하는 사람도 생겨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시대
미디어 채널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다. 팟캐스트가 흥행한 이후 유튜브와 같이 개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대중을 상대하는 개인이 늘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 이상 통역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어려운 과학 이론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제가 연구자는 아니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한계를 느꼈어요. 이제는 대중 앞에 나서는 연구자도 늘었고요. 과거에는 연구자가 대중을 상대하면 ‘연구할 시간도 없으면서 한가하네’ 같은 안 좋은 시선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내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과학만큼이나 좋아하지만 한참이나 미뤄두었던 ‘픽션 쓰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다. 과학적 근거 위에 쌓아 올린 8개의 픽션이 실린 책이다. 각 픽션의 앞뒤에는 ‘앞설과 뒷설’을 달아 과학적 이해를 도왔다. 그는 픽션을 통해 생각해볼 지점을 남겼다. 영원히 죽지 않는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죽음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거나, 자의식이 없는 AI만이 지구에 남아 살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과학기술의 장점을 알지만, ‘인간에게 영생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이 정말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한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다가, 원 작가는 앞으로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0년을 산다는 게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120세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천천히 늙는다는 뜻이죠. 안티에이징의 연구 속도가 어마어마해요. 쥐 실험에서는 실제로 노화를 역전시키기까지 했어요. 쥐를 젊게 만든 거죠. 만약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우린 정말 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인류는 그런 기술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길게, 더 젊게 살 거예요. 좋게 말하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요. 문제는 그 시간의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죠. 그러니 그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수밖에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지 않을까.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Well-dying) 개념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게 웰다잉에 대해 묻자 특유의 유머가 나왔다. “웰다잉의 반대는 배드 리빙 앤드 다이(Bad Living & Die)일 텐데요. 안 좋게 오래 살다가 안 좋게 죽는 거죠.(웃음) 모두가 느끼는 공포일 텐데요. 웰다잉에 대해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고 멀리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 50대니까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남은 생을 생각할 때는, 현재가 아니라 20~30년 뒤의 세상을 생각해야 해요. 그때는 또 얼마나 기술이 발전해 있겠어요? 연금, 기본소득 같은 개념도 오늘의 관점이 아니라 문제가 닥칠 미래 시점에 어떤 기술, 과학 등이 주변에 있을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해요. 사회는 거기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한 AI나 로봇의 발전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노화를 눈치 보지 않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원 작가의 아버지는 올해 94세다. 지난해만 해도 정정했던 분인데, 올해 들어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자식들이 돌봄을 자처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의 돌봄만을 허락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이도 87세. 노노(老老) 케어다. 결국 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가 ‘남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한다.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수용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럴 때 AI, 로봇, 기계가 충실히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 앤 프랭크’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따분한 전원생활을 하는 프랭크에게 아들 헌터가 ‘VGC-60L’이라는 로봇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인간을 돕는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렸다.
“상상을 해볼까요.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어 3, 4시면 일어나죠. 아무리 가족이 나를 잘 챙겨도 새벽 3시에 밥을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로봇은 항상 곁에 있고 부르면 원하는 걸 해결해줘요. 그렇다고 뒷말을 할 걱정도 없고요. 내가 돌봄을 받는데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심지어 그냥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꺼버리면 돼요. 로봇의 내면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생긴다는 거죠.”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이런 과학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영생을 주는 기술이 나왔을 때 10억 원이 넘는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는 거예요. 소위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 개념이 단순히 건강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회를 낙관적으로 봐요. 유동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라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중간중간 에러가 생기지만, 인류는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끔 조직된 생명체입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인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죠. 인류는 공도동망(共倒同亡)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결국 기술은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겁니다.”
스스로 일궈놓은 나만의 세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정말 120세까지 살게 된다면, 50세에 은퇴해도 7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내야 한다. 살아온 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 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 작가는 ‘나만의 세계를 꼭 일구시라’ 당부했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나이가 120세여도 신체는 50세일 수 있죠. 그러면 그 사람은 50세의 능력치로 일하면 돼요. 노인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죠. 과학기술이 이런 성과를 낸다면 사회는 그에 맞춰 움직일 거예요. 노화로 인해 일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다만 그 기술이 적용될 때까지 우리는 늙어가잖아요. 이 시기를 살아갈 시니어들은 내가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시간을 살아갈 내가 일궈놓은 세계가 있어야 해요.”
뭐라도 좋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는 악기 연주를 적극 추천했다. 오랜 시간 기타를 연주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해보세요. 남이 알아주고 몰라주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악기는 손가락이 고장 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늘어요. 어제보다 낫고, 내일 되면 오늘보다 낫습니다. 마흔이 넘은 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칩니다. 그러니 좀 더디게 늘겠죠. ‘이걸 계속할까?’ 묻더라고요.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20년 뒤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라고요. 피아니스트 될 거 아니잖아요.(웃음) 무엇보다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 역시 음악을 다시 해 앨범도 내고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저 그 과정이 좋다고. 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곤 했지만 꿈이 궁금했다. 그의 꿈은 ‘세계 평화’다. 무언가를 꿈꿔야 한다면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가치’를 꿈꿨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오늘도 그는 농담처럼 거대 담론을 던진다.
종로구 탑골미술관(관장 희유)은 22일(목)부터 10월 15일(토)까지 탑골미술관 첫 미디어아트 기획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No time to spare)를 개최한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한 전시로, 미디어 아티스트 5팀의 작품을 통해 ‘시간’을 주제로 어르신의 축적된 삶의 서사를 재조명한다.
탑골미술관은 디지털 매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문화 예술 향유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감각할 수 있는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복합적인 전시를 향유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예술적 가능성을 찾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삶의 여정으로서 개인이 갖는 ‘시간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노인 혹은 노인 주변부에 머무른 이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감각을 살피고자 한다. 미디어를 매개로 미디어가 갖는 매체성, 그를 둘러싼 개인의 서사, 몸이 품고 있는 시간을 재조명함으로써 전시의 시간이 경유하는 길로 관객을 유도한다.
전시 제목인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생애 마지막 선집 ‘No Time to Spare’를 참고했다. 우리의 삶에서 할 일이 없는 시간이란 없고, 그 때문에 남겨둘 시간도 없다는 책의 표현에서 늙고 스러지는 대신 끈기 있고 명료한 삶의 시간을 보내는 노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이 겹겹이 쌓여 몸의 지식을 갖고 있는 노인에게 남겨둘 시간은 없다. 전시는 이러한 ‘이야기의 시간’을 경유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축을 만들고 있다.
전시는 인공지능 로봇, AR, 인터랙션 설치 등 노진아, 다프네 라이트(Daphne Wright), 무진형제, 아르동(남기륭), 우박 스튜디오 총 5팀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을 과거 흔적의 시간과 현재의 이야기로 나눠 소개한다.
노진아와 다프네 라이트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관객과 감정적으로 교감하며 현재의 이야기를 담는다. 노진아의 시간이 쌓여 학습된 인공지능 로봇 ‘나의 기계 엄마’는 상황에 맞는 표정과 말을 인간과 유사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작가와 엄마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현실과의 연결 관계를 만든다.
이와 달리, 다프네 라이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낯선 외모와 순서를 뒤바꾼 발화 방식을 택해 몰입을 위한 관계를 끊어낸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소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감정적 공감을 현재로 이끌고 있다.
무진형제, 아르동(남기륭), 우박 스튜디오는 시간의 과거, 흔적을 발견하는 데 주목한다. 먼저 아르동(남기륭)은 사물 간의 관계를 묘사하며 과거 시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애장품이 갖는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사물의 시간성을 눈과 귀, 몸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무진형제는 오랜 시간 개인의 몸과 언어로 기억되는 장소를 자연스럽게 담아 삶의 흔적을 살피고, 그 순간을 함께하길 제안하며, 시간의 감각과 물성을 연결하여 흔적을 발견하고 퍼내길 반복한다. 끝으로 우박 스튜디오는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자체에 주목하며 과거 시간의 쌓임을 신체 데이터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주름, 목소리 등 수집된 신체 데이터는 나를 증명하는 고유한 인증서로 발급된다. 이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이며, 작품의 시간 또한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 수 있게끔 구성하고 있다.
전시는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주변 참여적 시선을 함께 갖고, 전시의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2일에는 몸에 새겨진 흔적을 찾아 디지털 인증서로 발급하는 우박 스튜디오의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10월 14일(금) 오후 2시에는 아르동 작가와 함께 애장품에 얽힌 스토리를 공유하고, 이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이미지로 바꾸기) 해보는 ‘애장품의 대화’가 준비돼있다. 10월 15일(토) 오후 1시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전시의 디자인을 맡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들과 디자인 자문을 맡은 ‘일상의실천’이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실천을 위한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탑골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희유스님은 “이번 탑골미술관의 첫 미디어아트 전시를 통해 그동안 서울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이 미디어아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작품을 느끼고 감각하며 다양한 예술 경험을 향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탑골미술관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한다.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한다.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선이 서로 의지하며 맞닿은 형태의 사람 인(人)은 책과 또 다른 책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모양새다. 조우성 변호사는 특유의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분쟁을 겪거나 억울하게 지탄받는 이들이 본질을 찾도록 돕는다. 이번 북人북에서는 남다른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상한 변호사’의 내공을 담았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최근 성황리에 종영했다. 이 작품은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우영우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내용을 다뤘다. 6월 29일 0.9%로 출발한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마지막 16회에서 17.5%라는 기록을 세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는 변호사들이 경험한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구성했다. 16부작 중 4화, 11화, 13화, 14화에는 조우성 변호사의 저서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의 일부 내용이 차용됐다. 형들에게 속아 아버지로부터 받은 토지 개발 보상금을 5대3대2로 나누겠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은 막내, 불법 도박장을 드나들다 우연히 로또 1등에 당첨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한 아내 등 실제 그가 맡았던 사건들이 각색돼 드라마에 등장했다.
검사가 되지 못한 이유
조우성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7년부터 18년간 국내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일했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분쟁조정위원, CDRI 기업분쟁연구소장 등을 거쳤다. 현재 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의 대표이자 올해로 26년 차 변호사다. “시골 출신인 데다 장남이다 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고도 고시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죠. 연수원 동기로는 윤석열 대통령,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있어요.”
1992년 연수원의 실무 교육을 받고 1993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수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직접 피의자들을 앞에 두고 경찰에서의 진술 과정을 확인한 다음, 보완할 내용을 적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 담당한 ‘아리랑 치기’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리랑 치기는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말한다. 대학생 김 군이 술에 취한 피해자 최 씨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안에 있던 현금 5만 원을 절취했다는 것이 범죄 사실의 요지였다.
“김 군의 사정을 들어보니 참 딱했습니다. 입원 중인 어머니의 수술비가 필요했대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뿐이라 학교가 끝나면 늦게까지 근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나 봐요. 집에 돌아가던 길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의 양복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 했어요.”
일단 범죄 사실에 대한 진술을 정리한 뒤, 그는 김 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피의자신문조서에 자세히 기재했다. 더불어 김 군이 대학교에서 장학생이며 교내 봉사상을 받은 내역도 포함시켰다. 내용을 확인한 검사는 난감하다는 듯 “조 시보님, 이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니라 변호인이 작성한 변론요지서 같습니다. 이 아래로는 전혀 필요 없는 내용이에요”라며 지적했다. 비슷한 사례를 여러 차례 겪은 뒤 검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 그는 결국 변호사를 택했다.
소송 아닌 화해 권하는 괴짜
갓 변호사가 됐을 때는 내공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 수많은 소송 건과 자문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며 사무실에서 쪽잠을 잤다. 설상가상으로 나이 많은 의뢰인들과 결혼, 이혼, 자식 관련 문제 등으로 상담해야 하니 법적 지식만으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어르신들과의 대화를 직접 이끌어야 하는데, 법 조항만 기계적으로 늘어놓으면 발전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양을 높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동양 고전을 보게 됐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기보다 책에 깊이 파고들었어요. 나름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터득하게 됐죠. 어느 순간부터는 의뢰인들과 대화가 통하더라고요.”
사건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승소지만, 조 변호사는 사람과 그의 감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사건의 단면만 생각하는 것은 두 시간짜리 영화를 시작한 지 40분 지난 후의 지점부터 보는 일과 같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변호사와 영화 상영 중간쯤 영화관에 도착한 관객은 이러한 면에서 닮았다. 우선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보지 못한 앞부분의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히 듣는 일이 중요하다.
‘그분과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상대방으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때, 상대방이 좀 이해되는 부분은 있나요?’의 순으로 질문을 던지며 상태를 판단한다. “형제간의 재산 분쟁에서 형을 대리한 적이 있습니다. 2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해 승소했지만, 의뢰인은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얼마 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검투사처럼 싸워서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차라리 의뢰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동생과 화해하는 쪽으로 이끄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 후로는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의뢰인께 분쟁 상대와 대화 혹은 사과를 먼저 권하게 됐어요. 근본적인 감정을 잘 보듬어주면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9부 능선 넘어선 ‘조변보감’
임상의학이 직접적인 진단 및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면, 예방의학은 병의 원인을 찾고 그에 따른 예방 방법을 개발하는 분야다. 그는 ‘임상 변호사’의 삶을 마무리하고, ‘예방 변호사’로서 더 멀리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개인의 사건을 맡아 처리하고 승소를 끌어내는 일에서 나아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법에 관련된 정보를 재밌게 소개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여전히 법률이라는 분야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용어가 딱딱하고 내용이 어렵다 보니 법적 다툼이 일어났을 때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분쟁 전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예방 변호사’의 덕목 아닐까요.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유튜브, 책, 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가 소개하는 법률 상식을 알아가셨으면 해요. 실제 상황에서 잘 활용할 수 있게끔 돕겠습니다.”
‘생각의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책
by 조우성
중장년이 되면 본질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면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 우선이죠. 내 안의 힘을 믿고 인생의 목적을 다시 설정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추천한 책들이 남다른 통찰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저)
“세계적인 MBA 와튼스쿨의 교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가 강의하는 ‘협상 코스’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진정한 의사소통,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실전에 유용한 전략 등 협상을 위한 기본 개념은 물론, 통념을 뒤엎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도 담겨 있죠. 저자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사례를 들며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의 비밀, 가격 흥정과 생활의 혜택을 얻는 비법 등을 독자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냈습니다.”
노이즈 :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외 2명 저)
“저자는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를 편향과 잡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쉽게 파악 가능한 편향을 제거하고, 다소 발견하기 어려운 잡음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편향과 함께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인 잡음을 최초로 규명한 연구 보고서인 이 책은 형사사법제도, 의료제도, 비즈니스 예측, 근무평정, 지문 감식, 정치 등 여러 분야 속에 숨은 잡음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 저)
“우리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한다고 여깁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구분 짓기도 해요.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립니다.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거죠. 우리는 윤리를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대상으로 여기지만 규칙은 변하고,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겁니다. 거듭된 발전으로 변화한 사회 속에서 어떤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할지 고민해볼 수 있겠습니다.”
채근담 (홍자성 저)
“채근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합니다. 송나라 학자 왕신민이 ‘사람이 항상 나무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죠. 이 책도 읽다 보면 나무뿌리 같은 투박하지만 깊고 담담한 맛이 느껴집니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진리나 깨달음도 소박하고 단순해요.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그 본질과 기틀을 깨닫게 하며, 헛된 욕심을 다스려 항상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길을 제시하고 있어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어르신 문화예술 축제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이 10월 20일(목)부터 22일(토)까지 개최된다. 아마추어 예술가로 활동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문화를 매개로 나이 불문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 8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실버문화페스티벌 최초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가 꿈꾸는 실버 유니버스’를 주제로 꿈꾸는 시니어들의 실버 스테이지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경연 대회, 어르신 중심 온·오프라인 문화 콘텐츠 ‘문화나눔한마당’이 열린다.
‘2022 샤이니스타를 찾아라’는 숨은 아마추어 어르신 문화예술가를 발굴하는 경연 대회다. 전국 16개 권역에서 진행된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6개 팀의 경연 무대가 10월 22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유튜브와 화상채팅 서비스 줌(Zoom)을 통해 온라인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다.
생중계에는 사전에 촬영한 본선 경연 영상과 당일 ‘버추얼 스테이지’(Virtual Stage)가 활용된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문자투표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또한 줌으로 진행하는 ‘세대 공감 퀴즈쇼’, 본선 출연 팀을 비대면으로 응원하는 ‘방구석 응원전’ 등 행사를 관람할 방구석 관객들을 위한 코너도 마련한다. 무대 이후 트로트 가수 박군의 축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홈페이지 사전 투표 10%, 실시간 문자투표 10%, 심사위원 투표 80%를 합산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어르신의,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을 위한 ‘문화나눔한마당’
‘문화나눔한마당’은 △에듀버스(교육) △헬씨버스(건강) △컬쳐버스(체험) △콜럼버스(공모) △투게더스(세대 공감) 5개의 테마에 따라 어르신 중심의 온라인 문화 콘텐츠를 공개한다. 8월 12일부터 10월 28일까지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매주 금요일 업로드되고 있다.
에듀버스의 ‘제1회 실버문화포럼’과 ‘인문학 특강-나이듦 수업’은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의 유일한 오프라인 프로그램이다. 실버문화포럼에서는 실버 세대와 실버 문화에 대한 강연과 좌담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포럼은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실버문화페스티벌에서 실버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이어지는 인문학 특강은 책 ‘나이듦 수업’의 저자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연으로, 어른으로 늙을 용기를 알고 일과 삶을 재구성해 노인으로서 가치를 확립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실버문화포럼은 10월 12일 오후 2시, 인문학 특강 ‘고미숙의 나이듦 수업’은 같은 날 오후 7시 서울시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실버 세대 문화와 축제에 관심이 있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참여 가능하다. 행사들은 추후 영상으로 제작돼 10월 28일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된다.
헬씨버스에서는 △젊은 세대가 즐기는 댄스를 배우며 성장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조명한 ‘시니어 스우파’(스스로 챙기는 우리들의 파워) △전현나 시니어 모델의 일상을 따라가며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꿔가는 모습을 담은 일상 다큐 ‘뷰티인사이드’ 등 건강한 시니어를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컬쳐버스에서는 △일상 속 문화 공간을 탐방하며 쓰레기도 줍고 건강도 챙기는 어르신 크루의 현장 밀착 취재 ‘일석삼조 플로깅 프로젝트-쓰담 달리기’ △삶의 ‘단짠’ 경험을 연극으로 풀어내는 어르신 인형극단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아낸 휴먼 다큐 ‘우리들의 두 번째 블루스’ 등 활기찬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 기반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콜럼버스에서는 △메이크오버를 통한 아빠들의 숨겨왔던 매력 발굴 프로젝트 ‘숨은 아빠 찾기’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저씨즈’와 함께하는 ‘릴레이 실버 댄스 챌린지’ △어르신들에게 의미 있는 헌옷을 수선해 재탄생시키며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부여하는 시니어 업사이클링 프로그램 ‘너와 나의 공유 옷장’ 등 도전하는 시니어를 위한 공모 및 캠페인을 진행한다.
투게더스에서는 같은 직업을 가진 주니어(젊은 세대)와 시니어(선배 세대)가 삶과 직업에 대해 대화하며 세대 공감을 이루는 토크멘터리(토크와 다큐멘터리를 합친 형식) ‘세대 간 잡(job) 수다-코-리어’를 9편으로 나눠 공개한다.
우영우 댄스 챌린지 함께한 더뉴그레이 ‘아저씨즈’는 누구?
THE NEW GREY(더뉴그레이)는 시니어 패션 콘텐츠 에이전시로, 시니어 모델 또는 인플루언서를 발견하고 관리하며 양성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를 포함한 기업과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패션 메이크오버 캠페인을 벌여 다양한 기업과 브랜드 협업을 진행했다. 주로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주요 SNS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으며, 팔로어 300만 명, 최근 6개월 동안 누적 조회수 5억 회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한편 더뉴그레이 소속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 그룹 ‘아저씨즈’가 함께한 ‘우영우 댄스 챌린지’는 9월 21일까지 참여 가능하다.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술을 일컬어 실버테크(Silver Tech)라 한다. 과거엔 기술이 좋아도 사용자의 접근성이 떨어져 무용지물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친화력이 강한 시니어가 늘면서 실버테크도 더욱 각광받는 추세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화두인 만큼, 치매를 비롯한 질병의 진단 및 치료·예방에 쓰이는 다양한 기술을 살펴봤다.
Step 01. 진단테크
◇ 치매 진단 간단하게, 알츠가드
디지털 치료제 전문기업 ‘하이’의 ‘알츠가드’(Alzguard)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초기 치매 환자를 선별하는 경도인지장애 자가진단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도구로 소비자의 생리학적 데이터를 측정하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기술이 핵심이다.
기존의 바이오마커가 특정 혈액이나 소변, DNA를 측정하듯, 디지털 바이오마커는 IT 기기로 대상자의 디지털 정보를 수집해 질환을 선별한다. 먼저 사용자가 스마트폰 앱을 받은 뒤 7가지 영역의 인지 능력 검사를 진행하면, 목소리(보이스마커), 동공 움직임(아이트래커), 심박수 변화(HRV) 등을 분석해 진단을 내린다. 알츠가드의 경우 초기 치매 환자를 88% 정확도로 선별하는데, 사례가 축적될수록 인공지능을 통한 예측도는 더욱 높아진다. 현재 순도 높은 데이터를 위해 치매안심센터나 기업을 중심으로 보급 중이며, 차후 일반 소비자를 위한 공유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 치매 분석과 건강관리, 알츠윈
알츠하이머를 이겨내겠다는 뜻을 담은 ‘알츠윈’(Alzheimer+Win)은 디지털 헬스 케어 기업 세븐포인트원의 인공지능 비대면 치매 진단 솔루션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10여 년간 3차례, 총 2000여 명에 대한 임상 연구를 진행해 그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2021년 7월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알츠윈 기반 기술의 정확도는 일반 의료진에 의한 ‘MMSE’(간이 정신 상태 검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알츠윈은 인공지능 기술 기반으로 치매 초기에 저하되는 언어유창성 능력 등을 평가해 치매 위험 진단 시 지역치매안심센터나 의료기관과 연결해 선별검사와 치료를 신속하게 돕는다. 아울러 네이버와 합작해 ‘알츠윈 인지케어콜’을 개발,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지 건강관리까지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Step 02. 치료테크
◇ 톡으로 인지 기능 개선, 새미톡
경도인지장애로 손상된 인지 기능의 재활과 개선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다. 중장년에게 친숙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지 훈련과 더불어 인지 기능 저하 여부도 진단받을 수 있다. 별도의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 채널에서 ‘새미톡’을 검색 후 ‘채널 추가’ 버튼만 누르면 된다. 특별한 장치 없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활용함으로써 디지털 표적치료제의 장점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해당 서비스는 유료로 30일 9900원, 1년 5만 9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기업용 B2B 상품도 있다.
◇ 인지 훈련 로봇, 보미
현재 치매를 근본적으로 낫게 하는 약물은 없는 상태로,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로봇인지치료센터에서는 치매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로봇을 통한 인지중재치료를 제공한다. 센터에서 활용하는 일명 손자로봇 ‘보미’는 환자의 얼굴, 목소리, 동작을 인식하고, 로봇을 손자처럼 기르는 개념을 접목했다. 일상에서 필요한 인지 기능 향상을 돕는다.
실제 경도인지장애 단계 환자들이 보미를 활용한 5개 프로그램을 4주간 하루에 60분씩 이용했을 때 대조군보다 작업 기억력이 더욱 향상된 것이 입증됐다. 보미는 환자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밥을 주게끔 하고(미래 기억 훈련), 장 보러 가서 사야 할 물건을 기억하고 계산하며(기억력 및 계산 능력 훈련), 보미가 원하는 옷을 맞게 입혀주는(시공간 능력 훈련) 등의 행위를 통해 인지력 향상을 돕는다.
Step 03. 예방테크
◇ 손쉬운 인지 훈련, 슈퍼브레인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 ‘로완’의 ‘슈퍼브레인’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후원으로 각계 전문가들에 의해 개발된 인지 훈련 프로그램이다. 인지 중재 치료에 기반 하여 경도인지장애환자, 경도·중증도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행위평가 신청 후 비급여 처방 및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 슈퍼브레인은 미국, 유럽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Finger 프로그램)을 한국 어르신 눈높이에 맞게 기획했다. 재미있고 친숙한 생활 속 콘텐츠를 한눈에 확인하고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AI 치매 중재 시스템을 통해 인지능력 변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시간 맞춤형 가이드를 제공한다. 최성혜 인하대학교 교수팀이 임상에서 인지 학습과 혈관 위험인자 관리, 운동, 영양, 동기 등 5개 영역에서 다중 중재 효과를 입증했다. 현재 재가형(인터넷 기반)과 기관형으로 구분해 50여 개 병·의원, 치매안심센터, 복지관 등을 통해 서비스 중이다. 아울러 지난해 LG유플러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치매 예방 관리를 위한 각종 디지털 콘텐츠 및 솔루션 사업도 확장할 계획이다.
◇ VR 기술로 우울증 개선, 센텐츠
가상현실과 의료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케어 솔루션 ‘센텐츠’는 9단계로 조정된 인지 자극 콘텐츠가 35주 과정으로 구성됐다. 기존 가상현실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은 회상요법을 접목해 개발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VR 회상요법’이란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노인의 기억 속 과거 환경을 구축해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경험하게 하는 방법인데, 이를 통해 우울증 및 치매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2018년 MIT 연구팀은 VR 회상요법이 노인의 정신 활동을 자극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인지 능력 등을 향상시킨다고 밝혔다. 센텐츠 사용자들은 머리에 VR 기기를 착용하고 고향, 계절, 풍경 등 50여 가지 스토리를 가상 경험함으로써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력을 증진할 수 있다. 현재 가정방문 요양 서비스 패키지에 포함하거나, 데이케이센터 등에 그룹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버테크 아이템
1) 스마트 기저귀
어르신이 사용하는 기저귀에 센서를 부착해 기저귀의 오염 정도를 파악하도록 설계됐다. 센서등과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기저귀를 언제 갈아야 하는지 알려줘 욕창이나 요로감염, 발진 등 2차 질병을 예방한다.
2) 꿈의 자전거
자전거 사이클을 이용해 가상현실을 주행하며 기억력 증진 및 근력 향상과 치매 지연에 도움을 주는 기기다. 실내에서 사용해 안전하고, 주행 방향이나 속도 등의 조정이 가능하며, 훈련 데이터를 관리해 환자의 재활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다.
3) 톡톡스틱
음성 안내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지팡이다. 넘어지거나 낙상할 경우 지팡이가 이를 감지해 내장된 스피커와 스마트폰을 통해 SOS 전송 및 음성 도움 기능을 제공한다. 또 사전 등록한 보호자에게 위치 전송이 가능해 실종 사고 등에도 대처할 수 있다.
4) 스마트 벨트
노인의 보행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다. 김광일 분당서울대 노인병내과 교수가 노인의 보행 속도 저하에 따른 근감소증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에 활용했다. 보행 속도 외 사용자의 허리둘레, 과식 및 활동 습관 등도 확인 가능하다.
임업후계자 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증에서 출발해 미래산림연구소의 ‘귀산촌·임업후계자 과정’ 수업에 동행했다.
미래산림연구소는 산림청 지정 전문 교육기관이다. ‘귀산촌·임업후계자 과정’은 5일간 40시간 수업이 진행된다. 3일간은 귀산촌에 대해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고, 2일간은 현장 교육을 한다. 귀산촌 현장을 찾아 선배로부터 임산물 재배와 귀산촌 경험을 공유받는다. 조경진 미래산림연구소 대표는 국립산림과학원,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등에서 일한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이번 6기 수업은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13일에는 강원도 평창과 홍천에서, 14일에는 충청북도 충주에서 현장 교육을 했다. 본지는 충주 현장 교육에 함께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16명 수강생의 열정은 시들지 않았다.
조경진 대표는 “보통 50대 중반이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이날 교육에는 부녀가 다정한 모습으로 동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수업을 듣게 됐단다. 조 대표는 “꼭 귀산촌이 아니더라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수업을 듣는다”라면서 “은퇴 후 귀산촌을 생각한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충주 수안보면에 위치한 순수자연주의 농장 ‘슬로우파머’다. 정성훈 대표는 건설회사에 다니다 퇴사하고 귀산촌했다. 정 대표는 슬로우파머를 친환경 임산물 체험과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농촌 체험지로 발전시켰다. 지난해에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으로 ‘제17회 생활원예 중앙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정성훈 대표는 처음 귀산촌을 했을 때부터 자리를 잡기까지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특히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정 대표는 직접 농장을 돌면서 곰취, 산마늘, 능개승마 등의 임산물 재배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진 점심 식사에는 수육과 슬로우파머에서 재배한 나물들이 나와 건강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충주시 소태면의 ‘보늬숲밤농장’이다. 이곳의 김의충 대표는 열아홉 살부터 밤농사를 짓기 시작해 42년 차에 접어들었다. 현재 김 대표는 아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닭도 함께 키우는데, 밤을 먹고 자란 닭과 달걀은 건강하고 맛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3만 5000평의 농장에는 김의충 대표가 사랑으로 키운 밤나무가 가득하다. 김 대표는 친환경 농법으로 밤을 재배한다면서 농사꾼의 마음가짐과 열정에 대해 강조했다. “농사짓는 사람은 나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밤나무에 대한 지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26일 발표한 ‘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에는 창직의 길을 걷고 있는 다양한 사례자들의 이야기가 포커스그룹인터뷰(FGI) 형태로 실렸다. 이중 중장년 창직 그룹의 녹취록을 토대로 그들이 창직을 하게 된 계기 및 과정, 경험자로서 느끼는 문제점 및 희망 사항 등을 정리해봤다. 익명의 참여자들이 개척한 창직 사례는 아름다운길여행가,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윷놀이전문가, 도시농업관리사, 웨딩쇼퍼 등이다.
창직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
△아름다운길여행가=대학 때 법을 전공했는데, 그 시절 계속 등산을 다녔었어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했었죠. 그런 과정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콘텐츠가 완성된 듯합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몇 해 전 부친께서 돌아가시면서 조문객을 맞이했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왜 돌아가셨느냐, 연세가 몇이셨느냐 그런 것들인데, 생각해보니 고인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거예요. 신문을 봐도 ‘누구 부친상’ 이런 식이지, 당사자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에 착안해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가, 운영하던 회사를 폐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도 개인 창업자로 일했지만, 시니어가 되어 창직·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건 차이가 굉장히 컸어요. 예전에는 어떠한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해당 업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었고 그런 것들이 자본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하려니 그런 자본이 없잖아요.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
△윳놀이전문가= 55세에 다소 이른 퇴직을 했어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재취업 기회를 노렸지만 정말 하늘에 별 따기더라고요.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막막해하던 차에 노사발전재단에서 중장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했어요. 원래는 제가 금융기관 출신이다 보니 관련한 쪽으로 컨설팅을 해주셨거든요. 근데 그 일이 싫어서 기껏 회사 나왔는데 또 하긴 싫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제가 하는 강의에 윳놀이로 5분 정도 넣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몇 시간짜리 강의가 된 거죠. 제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창직으로 결합해 이뤄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시니어가 청년층보다 창직에 유리하다고 봐요.
△도시농업관리사= 제가 농협에서 일하다 퇴직했는데, 사람들이 ‘농협에서 일했으니 농사 짓는 거 어떠냐?’고들 많이 했어요. 이건 오해인 게, 제가 행정적인 업무를 한 거지, 농사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러다 일단 심심해서 강동구에서 텃밭 분양받아서 작물을 키워보는데, 자꾸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봐요. 근데 저라고 뭐 아는 게 있나요? 집에 와서 책보고 공부해서 가르쳐드리고 했죠. 그러다 제대로 해봐야 겠다 해서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교육도 받고, 자격증들도 따고, 관련된 모임에서 회장까지 하다 보니 강의까지 하고, 그게 알려지면서 점점 일이 확장된 셈이에요. 어쨌든 직장 생활과 달리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웨딩쇼퍼= 아들이 결혼식 당일에 제 차를 가지고 가더라고요. 아니, 주인공이 어떻게 직접 운전을 한다는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서비스가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 막상 그 내용이 허접하더라는 겁니다. 그럼 이 일을 우리 시니어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환갑이 넘어 창직 한다고 하면 좋은 얘기 못 듣습니다. 리스가 크기 때문이죠. 가족들도 불안해했고요. 그래서 당장은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관련 교육을 듣거나 자격증·공모전 준비를 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죠. 그렇게 4수만에 육성사업에 선정 돼서 2000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그 후도 주변에도 터놓고 일도 확장해나간 거예요.
현 지원책들의 문제점과 바라는 점
△아름다운길여행가= 혼자서 뭔가를 끌어가는 게 힘들기도 하고 안타까워요. 창직자 사이에 소통 교류의 장이 너무 없습니다. 좀 연계가 됐으면 해요. 관련 협회 쪽에도 문의해봤었는데, 결국 비용 문제가 걸리더군요. 쉽진 않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 선에서 혼자 해나가다간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메모리얼스토리전문가= 창직을 준비하며 찾아보니 관련 지원제도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청년층 대상이고, 중장년 대상은 한 2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나마도 홍보가 안 되어 모르는 경우가 꽤 있죠. 저는 소셜 벤처로 해서 예비 창업 패키지 일환으로 5000만 원 정도를 지원 받았는데, 이게 또 대표자 월급으로는 사용이 안 돼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원 하나 명기해놓고 월급을 지급하는 희한한 구조도 생기죠.
△윳놀이전문가= 살펴보면 창직이라는 걸 청년층하고 많이 결부 시키는데 사실 그들은 한계가 있거든요. 뭐냐, 경험이 없잖아요. 그러니 은퇴 세대의 경험 요소를 십분 살려 활용하면 좋은데, 정보의 비대칭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봐요. 예전에 다른 자리에서 건의한 적이 있는데, 요즘 저출산 문제로 초등학교마다 빈 공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해서 마치 초등학교 의무교육 받듯 은퇴세대도 관련된 교육을 받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도시농업관리사= 우리 분야도 정부 지원 사업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단기 지원이에요. 거의 1년이면 끝나버리죠. 중복 지원은 또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지속적으로 창직을 이어가고 관리하려면 5년 또는 중장기 사업으로 지속해서 지원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웨딩쇼퍼=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조건을 택해야 하는데, 가령 일자리형으로 할 거냐, 혁신형으로 할 거냐, 비영리로 할 거냐, 사회 서비스로 할 거냐 이런 거예요. 제 경우엔 혁신형으로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일자리형에 가까워요. 그런데 일자리형의 경우엔 직원들을 채용하면 4대보험 가입이 의무거든요. 저희 요원들은 전부 프리랜서인데,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혁신형으로 하려 하니 그건 또 채택이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그런 괴리가 좀 있었고, 또 사실상 창직과 창업은 다르거든요. 어찌 보면 창업을 위해 ‘창직’이라는 걸 구실로 삼을 수밖에 없었죠. 발명가가 사업까지 하긴 어려운 것처럼 둘을 잘 구분해서 현실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위 인터뷰를 진행한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과 이윤경 강남대학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중장년층의 창직 과정 역시 애로 사항이나 어려움은 있지만, 청년층과 달리 자신의 경력을 이용하여 프리랜서나 창업을 통해서 자신만의 직업을 구현 하고 있었다”며 “은퇴 이후에 찾은 새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창직 경험 자체에서 얻는 자기만족이 높다. 창직의 동기나 창직을 통한 요구 사항들이 청년층과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된 지원책을 통해서 본인의 경력을 살린 새로운 일자리 들을 만들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자료 원문=‘신직업 창직·확산 보고서-누가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