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잊히지 않는 추억 속 음악. 그 곡이 수록된 앨범은 지금까지 몇 장이나 팔렸고 현재 가격은 얼마일까. 그때 그 시절 추억의 영화음악과 희귀 음반의 가치를 살펴봤다.
추억 속에는 항상 음악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즐겨 들었던 음악이나 연인과의 애틋한 시간을 만들어준 음악, 또 기쁘거나 슬픈 순간을 함께한 음악, 남자라면 군대에서 외로움을 달래준 음악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런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추억이 떠오른다.
그중에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영화 속 추억의 장면으로 빠져들게 한다. 단순한 배경음을 넘어 스토리를 이끌어 몰입시키는데, 관객은 마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영화음악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추억의 명곡으로 회자된다. ‘영화는 가도 음악은 남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 속 OST 앨범 얼마나 팔렸나
영화 ‘보디가드’(1992년)에서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휘트니 휴스턴을 받쳐 안았을 때 나오는 음악 ‘I´ll Always Love You’는 보디가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빌보드 차트 14주 연속 1위를 점령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꼽힌다. 1993년 불황 속에서도 1000만 장 넘게 팔렸고, 현재까지 4500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1970년대 말 디스코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한 ‘토요일 밤의 열기’(1977년)도 만만찮다. 무명 배우였던 존 트라볼타를 한순간에 청춘의 우상으로 만든 이 영화에는 영국 록 그룹 비지스의 사운드트랙 ‘Night Fever’를 비롯해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등이 담겼다. 이 앨범에 수록된 사운드트랙 가운데 4곡은 싱글 차트 1위에 랭크되는 기록을 세웠고, 누적 판매량은 4000만 장에 달한다.
또 존 트라볼타의 영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해 대성공한 ‘그리스’(1978년)는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존의 노래와 춤 앙상블로 기억된다. 이 영화 속 사운드트랙은 1978년을 미국 역사상 음반산업이 가장 맹위를 떨친 시절로 만들었다. 앨범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과 그룹 마르셀스의 ‘Blue Moon’, 리틀 앤소니 앤 더 임페리얼스의 ‘Tears on My Pillow’ 등이 수록됐으며, 현재까지 3800만 장이 팔렸다.
‘더티 댄싱’(1987년)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패트릭 스웨이지가 제니퍼 그레이를 양손으로 받쳐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은 잊히지 않는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또한 춤을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사운드트랙의 인기도 엄청났다. ‘The Time of My Life’, ‘Be My Baby’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1998년 5월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앨범의 누적 판매량은 3200만 장이다.
셀린 디온의 목소리도 좋지만, 연주곡도 많은 사랑을 받은 ‘타이타닉’(1997년)의 사운드트랙 역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기 충분하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제임스 호너는 웅장하면서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인 음악을 넣어 감동을 줬다. 메인 테마인 ‘My Heart Will Go On’과 ‘The Sinking’, ‘Death of Titanic’ 등은 두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앨범은 그동안 3000만 장이 판매됐다.
◇시대를 대변하는 ‘옛 음반’의 가치
추억을 여는 열쇠는 영화 속 명장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에는 늘 음악이 함께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든 원하는 음원을 다운받거나 스트리밍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구하고 싶은 LP(Long Playing) 음반은 인터넷 사이트나 옛 레코드 가게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찾는 앨범이 희귀 음반이라면 품을 많이 들여야 한다. 이젠 구할 수 없는 앨범도 있다. 생산량이 많지 않고, 대량 폐기됐거나 쉽게 버려진 탓에 남은 수가 매우 적어서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소위 ‘상태가 좋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이런 앨범은 일부 음반 수집가만이 소유한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거래 소식을 통해 그나마 대략적인 가격을 알 수 있다.
음반 수집가들이 뽑은 국내의 희귀 음반 중 최고가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가 수록된 앨범이 꼽힌다. 이 곡은 윤심덕이 연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하기 전 죽음을 결심하고 부른 노래로 알려지면서 당대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국내에서 실체가 확인된 음반은 6장 정도로, 수집가들 사이에서 6000만 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 현재 중고음반 거래시장에서의 가격은 1억 원이 넘을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연실의 ‘아리랑’(1930년)이 실린 음반은 초창기 한국 대중가요가 영화음악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현재 1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또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 우승을 기념한 채규엽·손기정의 ‘마라손 제패가’(1936년) 음반은 당대 최고 가수였던 채규엽의 노래와, 손기정 선수의 당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희소성이 높다. 이 음반 가격은 1500만 원 정도로 평가받는다.
퇴폐적인 가사라는 이유로 두 차례 금지곡이 된 박신자의 ‘땐사의 순정’(1959년)이 실린 음반은 1950년대 여성들의 춤바람이 사회적 문제가 된 시대상을 반영해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앨범은 200만 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용필의 데뷔 앨범 ‘뮤지칼 사랑의 일기’(1971년)도 희귀 음반으로 구분된다. 재밌는 사실은 앨범 재킷 뒷면에 나온 이름이 ‘조영필’로 잘못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이 앨범은 300만 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세상에 한 장뿐인 음반 값은 얼마?
해외에서는 비틀스 멤버들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 잘린 인형, 피 묻은 고깃덩어리를 안고 찍은 사진을 재킷에 사용한 ‘Yesterday and Today’가 희귀 앨범에 속한다. 1966년 발매되자마자 재킷 사진 논란으로 회수 조치됐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지난해 경매에서 23만4000달러(약 2억7700만 원)에 낙찰됐다.
프린스의 열 번째 앨범 ‘The Black Album’은 원래 세상에 내보내지 않기로 한 앨범이었다. 1987년 프린스의 변덕으로 초판 50만 장을 출하 직전 전량 폐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홍보용 음반을 받은 관계자 몇 명이 폐기 약속을 어기고 몰래 음반을 간직하면서 희귀 앨범이 됐다. 2016년 프린스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세상에 나온 이 앨범은 4만2298달러(약 5010만 원)에 팔렸다.
희귀 음반의 끝판왕이라면 힙합그룹 우탱 클랜의 앨범 ‘Once Upon a Time in Shaolin’일 것이다. 2008~2013년까지 녹음해 단 한 장만 찍은 앨범이기 때문이다. 우탱 클랜은 이 음반을 발매하면서 2103년까지 음반에 실린 곡들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만 단 한 장만 존재하는 이 앨범을 파티 등 공적인 장소에서 틀지의 여부는 소유자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2017년 이베이에서 102만5100달러(약 12억1400만 원)에 낙찰됐다.
회현지하쇼핑센터로 떠나는 ‘추억여행’
옛 레코드 가게가 있다는 서울 중구 회현지하쇼핑센터로 향했다. 예전에 이곳은 최신 가요와 팝송은 물론 희귀 음반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에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의 성지로 불렸다. 1990년대 중반까진 그랬다. 그런데 이곳을 찾은 날, 20~30대로 보이는 손님이 자주 보였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LP 음반인데, 최근에는 젊은 손님이 늘었다고 했다.
젊은층이 이 음반의 매력에 빠진 건 아날로그 감성 때문일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LP 음반은 모든 음역대를 왜곡 없이 담아낸다. 그러나 MP3와 CD는 고역대와 저역대의 일부를 잘라내서 인위적인 소리가 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아날로그를 완벽히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리빙사를 둘러봤다. 진열대 바닥부터 천장까지 LP 음반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총 8만여 장의 중고 LP 음반이다. 음반 찾는 걸 도와 달라고 하니 직접 찾아보길 권했다. 진열장을 하나하나 넘기다 보면 예상치 못한 희귀 앨범을 발견할 수 있다고.
고른 음반은 가게 안 턴테이블에 직접 올려 감상할 수 있다. 음반이 올라간 턴테이블이 빙글빙글 돌고 카트리지의 바늘이 내려앉으니 ‘지지직’ 짧은 잡음 뒤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입체감이 살아 있는 묵직한 소리가 세대를 거슬러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올 초, 전화기 너머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친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드디어 할아버지가 된다! 그러니 손자들이 가장 많은 네가, 할아버지 되는 법 잘 가르쳐주기 바란다~”
그의 외아들이 워낙 늦게, 더구나 연상과 결혼해서 손자 보기를 거의 포기했던 친구다. 그래서 그동안 손자들 사진 보여주기에는 1만 원, 구체적인 자랑 설명에는 2만 원의 범칙금을 수령하며 심술을 부렸었다. 그러나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시작한 전화들이 다음과 같은 사연들로 인해 점차 하소연으로 변해갔다.
태명 대며 갈비 뜯기
일단 ‘임신 축하금’이라는 명목의 지출이 시작되었다. “이거 라떼는 없었는데…”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이 항목이 워낙 광범위하게 전파된 눈치였다. 그래서 ‘지들도 나이 먹어가지고 애 만드느라고 애 많이 썼으니 보신이라도 시키자’ 하는 마음으로 두둑한 봉투를 마련했다. 그 후 손자를 보려면 출산 전부터의 추억이 중요하다며 카카오스토리를 억지로 깔아준 아들 녀석이, 며느리가 산부인과를 다녀올 때마다 초음파 사진들을 보내왔다. 이런 것은 꿈도 못 꾸었는데 참 좋은 세상이다 싶었다. 옆의 각도에서 보니 코가 높아서 예비 아빠를 닮았단다. 태아의 초음파 사진으로 인물 모양새까지 분석하는 것을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참 재주가 좋다고 생각했다.
좀 지나더니 ‘뱃속의 아기’라고 부르지 말고 ‘콩딱’이라는 태명을 부르란다. 심장이 ‘콩콩’ 잘 뛰면서 자궁에 ‘딱’ 붙어 잘 크라는 의미라고 한다. ‘들찬’(들에 가득 찬)과의 경합에서 선택된 태명이란다. 이 태명 부르기가 태교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예비 아빠 엄마는 안 불러도 될 상황에서도 연신 태명을 일부러 부르며 부모 연습을 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갈비가 드시고 싶단다. 그것도 그 비싼 한우 갈비를. 절대 며느리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콩딱님’께서 드시고 싶단다. 그런 어리광을 또 언제 받아주겠나 싶어 ‘내 돈 내고’ 한우갈비집을 오랜만에 갔다.
예비 할머니는 더 신나고
예비 할머니는 신이 났다. 할머니라는 호칭이 싫다던 그는, 백화점 쇼핑의 대의명분을 확보한 기회를 살려 유아용품점들을 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들의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문자가 한몫했다. “그것도 안 해주시며 할머니 되려고 하심? ㅋ”
우선 예비 아빠가 어린 시절 입었던 배냇저고리는 이제 너무 낡았다며 수십만 원짜리 저고리를 골랐다. 그 외에 아기 옷을 세탁하기 위한 아기용 세탁기도 따로 샀다. 어른 옷과 함께 세탁하면 균에 오염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모차는 친구가 10년째 타고 다니는 승용차 가격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아들 녀석은 “제 아들의 첫 차잖아요. 요즘은 승차감보다 하차감(내려서 보는 흐뭇함)이 더 중요하다고요”라며 외국산 명품 브랜드를 고집했다. 임부용 영양제도 전달했고 산후조리용 기장 미역을 현지에 주문했으며, 사진관에서 찍은 민망한 며느리의 임신부 사진을 실눈 뜨고 봐야만 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노산이라서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예비 할머니는 시를 잘 받아서 태어나야 한다며 사찰에 가서 택일을 받고 축원기도를 부탁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말이다. 그러나 아들과 예비 손자를 뒤에 업은 예비 할머니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내친김에, 돌림자를 딴 이름은 친가에서 지어줘야 한다며 작명소까지 일찌감치 다녀왔다.
양수가 갑자기 터져 원래 잡은 날보다 이틀 먼저 수술을 하고 콩딱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이라 면회가 아예 되질 않았다. 1인당 4만 원짜리 백일해 예방주사를 맞아야 아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노부부가 가정의학과까지 다녀왔는데. 퇴원하면 사진관에서 또 출산 기념사진을 찍을 거라는 아들에게, 병원비와 산후조리원 비용에 보태라면서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는 액수를 차치하고서라도 합리성이 결여된 지출 항목들과 쓸데없는 과정이 많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정부 지원의 산후도우미 시스템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아기용품 대여 서비스는 찾아보지도 않고, 육아휴직을 하면 수당이 적어질 것 같아 유아용 카시트 사는 게 걱정이 된다며 눈치를 보는 아들 녀석이 얄미워지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기 사진을 보며 친구들이 “어? 손자가 자네랑 판박이네” 했더니 입이 귀에 걸리면서 “그렇지! 식구들도 다 그렇다고 하네~” 하며 밥값을 계산했다.
아기 울음소리의 대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92명으로, 2018년 0.98명보다 더 낮아졌다. 1970년 출생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이고, 평균이 1.63명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아기 울음소리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들이 너그럽게 수용될 수 있다. 또한 ‘우리 때는 없었던 것’들이 서먹하고 수용하기에 어색하지만,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호응이 있었기에 존재 가능한 것들이라는 관점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애들을 낳아 다시 아비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할아버지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기꺼이 통장 잔고 감소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 친구는 늦게 배운 조부(祖父)질에 날 새는지 모르며, 손자 사진 범칙금 납부의 큰손 노릇을 기꺼이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당연히 여행 풍속도도 달라졌다. 여럿이 다니는 여행은 점차 사라지고 혼자 혹은 둘이 떠나기 좋은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렇게 훌쩍 떠나 갑갑했던 마음을 풀어놓고 당일치기로 놀기 딱 좋은 곳이 있다. 바로 강화도다!
강화도령이 살았던 터전, 용흥궁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이 강화도령이었던 시절에 지냈던 곳이다.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하는데, 당시 강화도령은 가족이 모반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14세 때 이곳 강화로 유배되었다. 원래는 보잘것없는 초가였으나 훗날 강화도령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집을 보수 단장해 용흥궁이라 불렀다. 사람이 살지 않아 좀 휑한 모습이지만 관리는 잘되어 있었다. 150년 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 별채, 마루, 작은 정원, 우물, 반질반질한 문고리를 보며 강화도령 이원범으로 살던 철종의 모습이 느껴져 짠했다. 14세부터 19세까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하며 평민으로 살았던 터전이다. 강화도령 이원범, 철종의 이야기가 깃든 용흥궁 담장에는 능소화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용흥궁은 강화 나들길 1코스다. 강화읍 관청리 441-0
한옥의 멋,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담 넘어 건너편 언덕에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의 외양이 독특하다. 얼핏 보면 성당 같지 않고 마치 절처럼 보인다.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 불교 사찰 양식을 융합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마당 한쪽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 보리수가 10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찰의 범종처럼 생긴 종도 보인다. 분명 성당인데 절의 분위기가 더 느껴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다. 서로 다른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남다름을 본다.
성당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상사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엔 초대 주교 고요한 신부의 비석과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강화 시내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높은 언덕이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목재로 이루어진 깔끔한 실내가 성스러움을 더한다. 동서양의 오묘한 분위기가 잘 조합된 실내다. 열린 창으로 자연의 풍경이 한가득 들어온다. 양 벽면에는 강화성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진열돼 있다. 밖으로 나가면 뒤편으로 낮은 담장의 사제관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계단 난간 등 건축물의 일부가 복원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성당이다. 강화읍 관청길 27번길 10
소창길’을 아시나요
용흥궁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나와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1960~70년대에 강화도 산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심도직물의 흔적이다. 직물 공장은 강화도 경제의 대표적 징표다. 강화도서관 옆으로 이화직물 터가 있고, 아기들 기저귓감으로 많이 쓰였던 친환경 직물 ‘소창’을 만들어내던 유명 직물 업체들이 터를 잡고 있다. 그래서 이 골목에 ‘소창길’ 코스가 새롭게 더해졌다. 강화 중앙시장 B동 3층에 위치한 ‘관광플랫폼’이 스토리워크 길 출발지다. 1960년대의 직물공장 전경과 소창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데 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산하다. 가는 길에는 100년의 세월을 품은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낙원 떡집’이 있다. 순수한 떡 맛을 자랑한다. 질 좋은 강화 쌀에 첨가물은 소금 한 가지밖에 안 넣는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소박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읍내 중심에 있는 50년 전통의 ‘강화국수’ 집으로 가면 된다. 강화도에 가면 알싸한 순무김치 맛도 봐야 한다.
※소창길 코스 중앙시장 관광플랫폼에서 출발해 심도직물 굴뚝 - 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 - 이화직물 터 - 금융상사 - 조양방직 - 동광직물 - 남화직물 - 상호직물 - 경도직물 - 소창체험관으로 이어진다. 2시간 정도 소요.
빈티지 감성 카페, 조양방직
과거의 방직 공장을 그대로 살려서 빈티지한 매력을 보여주는 레트로 감성 카페다. 조양방직은 1933년 홍 씨 형제가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방직공장으로 한때 엄청난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 시절의 흔적들이 빈티지한 멋으로 탈바꿈해 핫한 카페가 됐다. 그 옛날 우리의 언니와 누나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기계를 돌리던 시절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
평화로운 궁궐터, 고려궁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는 곳. 고려 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38년간 머물렀던 궁궐의 터다(사적 제133호). 당시의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고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 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봤던 이방청만 남아 있다. 푸른 잔디가 시원하게 깔린 자연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강화읍 강화대로 394
조용한 마음의 울림, 교동마을과 향교
느릿느릿 옛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시간이 멈춘 듯한 교동마을로 가볼 일이다. 예스럽고 정감 있는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지치고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강화읍에 위치한 강화 향교(고려 전기에 창건)와 우리나라 최초 향교인 교동 향교 방문도 빠뜨릴 수 없다. 강화나들길 1-18코스다. 강화군 교동남로 229-49
해안도로 따라 의미 있는 드라이브 코스, 덕진진
강화도에는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의 5진(鎭)과 광성보,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의 7보(堡)를 합친 강화 12진보(鎭堡)가 있다. 그중 덕진진은 김포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포대였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볼 수 있는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전적 시설 풍경은 산책과 드라이브 코스로 의미 있다.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섬에서 즐기는 슬기로운 문화생활 ‘도솔미술관’, ‘해든뮤지엄’, ‘전원미술관’
최근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떠나 작품 전시를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즈넉한 강화 땅에서 감상하는 개성 있고 멋진 미술관. 언택트 여행으로 유유자적 멋진 시간을 누려보자.
도솔미술관은 초지진과 가깝고 고즈넉해서 좋은 사람과 조용히 산책할 겸 가보면 좋은 장소다. 강화 들판을 달려 소나무가 예스러움을 더해주는 작은 마을에 다다르면 단정한 한옥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총 4개의 전시관이 있는 도솔미술관은 야외전시관, 2개 층의 실내 전시장,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뜰안채 야외전시장에서는 사진작가의 아프리카 바오밥나무 작품이 전시돼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별관을 비롯해 2개 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에서 매달 바뀌는 전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창가에 걸터앉아 강화 들녘을 유유자적 내다보며 함께 온 사람과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풍경이 아름답다. 강화군 길상면 길상로 210번길 52-71
해든뮤지엄은 갤러리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의 긴 경사면에서부터 설레게 된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건축물로 2013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 베스트7’에 뽑히기도 했다. 실내 사진 촬영이 안 돼 아쉽지만 야외의 조각작품과 설치미술, 그리고 대형 미러가 볼 만하다. 정원의 휴식공간과 잘 어울리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 강화군 길상면 장흥로 101번길 44
전원미술관은 강화도에서 출생한 한국화가 유광상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과 일본 유학 시절에 그린 그림 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강화군 송해면 솔정리 561
이색적이고 따뜻한 ‘동네 책방’
강화군청 부근엔 볼거리가 많다. 강화성당과 용흥궁, 중앙시장, 궁터, 중앙시장 청년몰, 소창길…. 이곳들을 다 돌아본 뒤 한숨 돌리며 조용히 서점을 들러보는 건 어떨까. 소금빛 서점, 국자와 주걱, 책방 시점 등은 강화도 간 김에 누리는‘소확행’이다.
‘소금빛 서점’ 이 있는 고택 계단을 올라서면 대문 바로 앞 양옆으로 ‘그 여자 그릇 유림상회’와 ‘그 남자 책방 소금빛 서점’이 있다. 그 남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이 진열된 소금빛 서점은, 얼마 전 방영 종료된 SBS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에서 배우 이민호가 책 읽는 장면을 찍은 장소로 더 알려졌다. 그 여자의 그릇 유림상회는 채색이 독특한 그릇 한 점쯤 갖고 싶게 하는 곳이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책과 그릇이 있는 감성 공간이다(서점과 그릇가게 앞의 대문을 열면 100년 고택 대명헌을 만난다. 김구 선생이 한동안 머물렀다는 운치 있는 한옥 숙박업소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강화읍 남문안길 7
‘국자와 주걱’은 한적한 마을의 한옥을 책방으로 꾸민 시골 책방 겸 북 스테이다. “작은 책방. 작고 불편함. 그러나 좋은 책. 따뜻한 밥상. 깨끗한 잠자리. 그리고 많은 정”이라는 책방 소개글이 다정하다. 책만 보러 갔다가 주인장의 푸근한 인심에 다시 찾는 곳이다. 큰 도로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꼬불거리는 좁은 길로 주춤주춤 운전해 들어가면 이 특별한 책방과 만난다.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428번길 46-27
아름다운 일몰에 반하다, 장화리
강화도의 마지막 코스는 누가 뭐래도 일몰 풍광이 장관인 장화리다. 강화도 남부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강화 갯벌과 서해의 해넘이는 여행자들의 관심사다. 이곳에서의 일몰 시간은 아주 짧다. 찰나의 장화리 노을 앞에서 두근두근하면서도 경건한 시간을 맛보며 강화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배우 이광기(52)를 보면 여전히 소년의 이미지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지만 천진한 외모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젊음, 그리고 호기심과 도전의식의 천성을 보여주는 행보가 그렇다. ‘태조 왕건’, ‘정도전’ 등의 작품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요즘 아트 디렉터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중이다. 유튜브 개인 채널에서 예술 경매라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예술과 종합적인 공연 프로그램을 결합한 릴레이 라이브 ‘온라인 아트쇼’ 런칭을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듯한 세상이지만, 엄혹한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한 삶과 변화를 추구하는 분야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예술 분야.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예술의 특성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 아트 디렉터로 제2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배우 이광기가 있다.
2000년부터 일찌감치 작품 수집을 시작하여 콜렉터로서 자신의 기반을 닦은 그는 요즘 한창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될 온라인 아트쇼 준비를 위해서다.
예술과 공연, 온·오프라인의 결합, ‘아트쇼’를 만들다
“이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예술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기획했어요. 마침 아트경기에서 프로그램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연락이 와서 기획안을 올렸는데 다행히 통과가 돼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죠. 물론 그 돈으로는 부족하기에 옥션에서 일부 수익금, 그리고 후원해주시는 지인들에게 후원금을 받아서 진행하게 됐어요.”
200평 규모의 이광기가 소유한 스튜디오 ‘끼’에서 전반적인 이벤트들이 진행되는 아트쇼는 예술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 이벤트로서 기획되었다. 김미경 강사의 팬데믹 시대 분석 강연과 함께 첼리스트 김규식, 피아니스트 조윤성 등 연주자들이 클래식부터 트로트까지 포괄하는 장르의 음악 공연을 한다. 또한 음악 치유 명상 콘서트와 젊은 작가들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및 라이브 경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사전예약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스트리밍을 통해 온라인에서도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와 긴 장마로 인한 피해가 속출한 현재, 위기를 예술로서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목적을 밝혔다.
“아트쇼를 통해 말 그대로 다원예술을 실천하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걸 하나의 롤 모델, 브랜드화해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합니다.”
‘아트 디렉터’ 이광기를 만나다
수년 전만 해도 배우 이광기가 순수예술계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저도 사실 지금이 행복해요. 그러나 연기자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역할을 해봤고, 연기나 예술이나 맥락에 있어 뿌리는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순수예술 분야의 일을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다. 10년 전에 아이티 봉사를 다녀오면서 삶의 전환점을 갖게 된 그는 그때 처음으로 월드비전과 함께 그림으로 자선 전시회를 해서 기금을 모았다. 그리고 좋은 그림들이 낙찰될 때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그의 제2의 인생도 열렸다.
“나중에 이걸 공중파에서 해서 대중들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늘리고 작가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능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몇몇 제작사와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모험하기를 어려워하더군요. 이해합니다. 워낙 요즘은 시청률에 민감한데 미술로 시청률이 나오기는 힘드니까요.”
그렇게 노크만 하다가 작년부터 뭔가 슬슬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가 만든 1인 방송국 ‘광끼채널’에서 중점으로 하는 콘셉트는 미술 경매와 쇼를 결합한 새로운 포맷이다.
“이건 경매를 차용한 쇼다. 나는 작가들을 소개하자. 물론 팔리면 작가도 좋으니 열심히 하고.(웃음) 그렇게 매주 해서 벌써 20회가 됐어요. 너무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백 퍼센트 낙찰되었다는 점이죠.”
행복하게 만드는 게 가장 가치 있는 투자
아트 디렉터로서뿐만 아니라 유튜버로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광기. 다수의 사극에서 유독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이렇게 얼리어답터적이고 프런티어적인 사람이었나 싶다. 그의 이런 ‘진취적인 정신’의 이면에는 예술에 대한 사랑이 굳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행복해야 해요. 그렇지 않은 그림을 가지려고 하면 투기가 되는 거죠.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작품이 주인공이 되면 투기가 되는 겁니다. 그 균형을 잘 잡아야 해요.”
그는 그림이 부동산이나 주식과는 다르게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은 그 무엇보다 분명한 유형의 가치라는 것이다.
“아침마다 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고 같이 공유할 수 있고. 그림처럼 내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게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문화를 또 다른 투자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어떤 투자보다 가치 있는 투자예요.”
작품은 많이 볼수록 보는 눈이 생겨
올해로 콜렉터로서 어느새 20년 차. 이쯤 되자 이광기가 미술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많이 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과감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내가 좋아야 해요. 남이 좋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굳이 살 필요 없습니다. 저건 소장가치가 있다고 해도 내 집 벽에 걸지 못하면 뭔 소용인가요. 나와 교감되는 작품을 찾아야죠.”
그는 상업성, 예술성, 역사성으로 볼 때 작가가 이 중 한 가지만 갖고 있어도 성공했다고 본다. 이 기준을 보면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들 중 사고 싶은 게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저평가받고 있는 사람이 백남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미디어 아트의 대가 백남준이 저평가받고 있다니 의외의 말이었지만 그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백남준 선생님 작품은 상업성, 예술성, 역사성을 다 가지고 있죠.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로 미술사에 기록됐고, 백 선생님이 퍼포먼스의 귀재였으니 스토리와 상업성도 있고, 예술성도 있죠. 이런 작가는 흔치 않은데 그에 비하면 저평가된 셈이죠.”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남준의 작품이 어렵다고 여기지만 잘 찾아보면 그렇지도 않다며 자신이 소장 중인 백남준 작품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판화 작품이었다. 백남준이 판화 작업도 했다니 의외였고 “잘 찾아보면 있다”는 이광기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백남준 작품을 미술관에 대여도 해주고 있어요. 그러면 뿌듯하죠. 뭔가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미술품으로는 그게 가능하니까요. 어마어마한 가치라 생각해요.”
50대, 또 다른 삶을 선물로 받았다
이광기는 요즘 앞으로의 기대 때문에 설렌다고 한다. 아트 디렉터로서, 유튜버로서 50대를 맞이한 그에게 미래는 넓게 열려 있었다.
“아직까지는 투자인 셈이죠. 별것 없어요.(웃음) 적자가 안 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 어려운 시기에 저와 손잡고 일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도모하면 좋을 듯해요.”
사실 작금의 코로나19 상황은 과거에 자식을 잃은 그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고 아이티로 봉사를 떠났으며 현재의 이광기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이했다.
“십 년 전 큰 상처가 없었고 아이티에 가지 않았다면 방송인 이광기로 남아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을 거예요. 오십이 될 때, 요즘은 백세시대니까 인생의 반을 산 거라 생각했어요. 또 다른 삶을 선물로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받은 선물이니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나눔을 생각해요. 십일조를 하는 마음으로 하면 어렵지 않더군요.”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해
이광기에게는 요즘 미션이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다.
“매주 실시간으로 60여 명이 들어오는데 100~150명 정도만 되어도 좋을 거 같아요. 구독자 수는 1900명 조금 못 되는데 모두 충성 구독자예요. 여기서 조금 더 늘어나려면 콘텐츠를 다양하게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테리어, 부동산, 요리,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시도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영상 콘텐츠를 개인이 직접 만드는 세상이 됐기에 그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플랫폼 공간만 있으면 방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온라인 콘텐츠로 무엇을 할 것인가다. 그는 당분간 그 부분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유경제에 기반한 블록체인 구조가 보편화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그는 그 생각을 따라 공유가 만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계속 파고들 계획이다.
“중요한 건 내가 주체가 되는 거죠. 스스로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예술 분야에선 나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가치를 더 크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My Dear 피노키오展, 아무런 정보 없이 가서 봐도 친근한 전시 제목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이 진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래서 정직함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게 했던 이야기 ‘피노키오의 모험’.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의 동화로 탄생했고 우리에게는 월트 디즈니가 각색하고 제작한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더 익숙하다. 착한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 인형 이야기는 동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껏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가까운 벗처럼 친숙한 캐릭터인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책이나 영화 등에서 봐왔던 것과는 달리 쉽게 접하지 못했던 관련 희귀 도서나 소품들도 진열되어 있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국내외 작가들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표현한 피노키오 작품 173점도 전시돼 있다.
환하고 밝은 분위기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 섹션 '서막: 피노키오의 모험'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섹션의 작가는 카를로 콜로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누구나 유명 작가들의 피노키오의 해석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플래시 없이 대부분 촬영도 가능하고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영상이나 나무로 설치된 작품과 소소한 소품 전시가 계속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촬영을 할 수 없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 작품 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나무토막으로부터 학교에 다닐 즈음의 나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유아기를 지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그렇게 곧바로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많은 작가가 피노키오 캐릭터에 집중할 때 피노키오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품 속에는 피노키오의 성장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다.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 시대적 풍경이 피노키오의 유년기를 떠올리게 했다. 화풍은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소박하고 적막한 골목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앤서니 브라운, 제럴드 맥더멋, 마우리치오 콰렐로 등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션 거장들이 그려낸 개성 넘치는 피노키오를 볼 수 있도록 몇 개의 전시관이 이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민경아, 조민서 작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성으로 우리가 몰랐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풀어놓아 시종일관 흥미롭다.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그림과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영상 역시 재미있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도 있는 관람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시간 맞춰 도슨트 해설을 들으면 이해도 쉽고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된다.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복합 전시 'My Dear 피노키오展'이다
전시장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주부가 유난히 많았다. 피노키오라는 동화적 특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 콜로디는 동화를 쓰면서 "어른들은 즐겁게 해 주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작가들의 동화적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기성세대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준다.
전시장 입구부터 노랑과 분홍, 파랑 등의 밝고 과감한 색감이 압도한다. 그림동화다운 따스하고 서정적인 느낌 속에 푹 파묻혀 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낄 것이다.
전시기간: 6월 26일~10월 4일
관람시간: 10시~19시(매표 및 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 원
★ 그림자 극장: 토․일요일 11:30 / 13:30 / 16:00 (선착순 20명)
★ 도슨트 해설: 화요일~일요일 11:00 / 13:00 / 15:30 / 17:00
★ 구연동화 : 피노키오의 오리지널 이야기(화요일~금요일 14:30 / 16:30)
음식료업종의 외형성장 요건을 두루 갖춘 CJ제일제당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올해 국내 가공식품부분 수익성과 재무건전성 개선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고성장이 본격화될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시장 기대치 부합하는 2분기 실적
이베스트투자증권은 CJ제일제당의 올 2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6조1246억 원, 영업이익이 60.6% 성장한 2815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신증권 역시 2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7% 늘어난 5조8809억 원, 영업이익은 45% 증가한 2533억 원으로 내다봤다. 두 증권사 모두 CJ제일제당의 2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부합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이 분석한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가공식품 내 가정간편식(HMR)시장은 매년 15%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CJ제일제당의 HMR사업은 전체 시장 성장 속도를 소폭 상회할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4~5월 국내 HMR 및 간편식 하위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국탕찌개, 냉동레디밀이 30%대 성장, 죽이 20%대 성장하는 등 전 분기 16% 성장 기조가 확대 지속되고 있어서다.
소재·소재성 식품은 높은 B2B 비중 및 매출 감소로 2분기에 부침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고정비 부담은 제한적인 부분은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가공식품 내 소재성 식품(장류, 조미료) 역시 배달 수요 및 소포장 등의 B2C 수요로 어느 정도 선회하며 매출 방어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글로벌 식품이 주력 지역인 미국, 중국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는 점에 주목했다. 슈완스는 피자에서 2위, 파이·아시안에피타이저에서 1위 카테고리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이 중 에피타이저류는 북미지역 에스닉푸드 관심 상승과 함께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시장의 경우 기존에 매출 비중이 작았으나 최근 프리미엄 식당 등이 커지고, 징둥닷컴에서 만두 교자 1등을 차지하는 등 주력 제품의 성장을 확인했다. 글로벌시장 전체적으로 B2C 채널 확장이 매출 성장의 한 축을 차지하는 트렌드가 명확하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2분기 해외 매출 비중을 약 60%으로 파악했다. 1분기에는 57%였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CJ제일제당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업종 내 최선호주로 지목했다. 이와 함께 목표주가는 50만 원으로 상향조정했다. NH투자증권도 투자의견 ‘매수’와 업종 내 최선호주를 유지하고, 목표주가를 국내 가공식품 동종업체 밸류에이션 상승에 따라 50만 원으로 상향했다. CJ제일제당의 전 거래일인 지난 17일 주가는 종가기준 38만 원이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J제일제당에 대해 “음식료업체들의 중장기 성장동력인 △해외 시장에서의 고성장(미국, 중국, 베트남 등) △메가히트 제품(비비고 브랜드) △가정간편식 매출 증가 등을 고루 갖춘 독보적 음식료 업체”라고 설명했다.
집 밖을 나서면 걷거나 또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서 목적지를 향하게 된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그리고 여행을 하거나 아주 먼 거리 이동을 할 경우엔 비행기나 기차, 버스는 물론이고 여객선 등의 교통수단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
그동안 누가 뭐래도 여행의 맛은 기차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각 지역의 모습과 계절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셀렌 여행길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KTX라는 빠른 기차를 이용하면 전국 아무리 먼 지역도 당일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시간 단축을 선사한 것이다.
얼마 전 섬 여행을 했을 때는 다섯 가지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KTX로 두 시간 달려간 도시에서 버스로 한 나절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호젓한 섬 신안의 12사도 순례길을 앞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이동수단의 기본인 두 발로 긴 시간 걷는 행위가 사색과 치유의 시간을 준다는 것, 그래서 걷기 열풍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자전거로 돌아보아도 좋다. 근래 들어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언택트’(비대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분홍색 자전거를 빌려 천천히 섬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다.
다시 섬을 나올 때는 여객선을 타고 나와 약 한 시간 정도 요트를 타는 호사를 누렸다. 신안 섬 다도해를 즐기는 요트 투어가 있었다. 요트는 누구나 타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다. 예전보다 대중화하고 있는 중이어서 가격도 많이 낮아졌기에 한 번 용기를 내볼 만하다. 누구나 즐겨봄직한 다채롭고 재미있는 해양 레포츠다. 우리나라에는 부산, 제주, 여수, 통영, 신안 섬 등 요트 타기 좋은 바다가 많다.
그리고 목포로 나와 역으로 가기 전에 잠깐 해상 케이블카로 도심을 즐겨볼 수 있다. 땅과 바다는 물론이고 하늘 높이 날아보자. 케이블카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목포 시내 전경과 유달산의 속살을 내려다볼 수 있다.
유달산 아래로 명량대첩의 요충지였던 고하도가 용의 모습으로 앉혀져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목포 근대문화 거리와 옥단이 길을 찾아본다. 내리막 끄트머리쯤에 세월호가 누워 있어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다. 틈새 시간을 이용한 도시 구경이다. 짧은 여행 중에 묵묵히 두발로 걷고, 버스, 자전거, 여객선, 요트, 해상 케이블카, 왕복 KTX가 함께했다.
우리에게 탈거리가 이뿐일까.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보트 타기와 패들보트가 있다. 부모 세대는 그저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구경이나 하는 줄 안다. 물론 패들보트는 강습을 받고 타도 일어나려면 물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아이들처럼 우뚝 서진 못해도 그저 물 위에 엎드려 유유히 손으로 물을 밀어내며 바다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 없이 재미있다. 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놀이라는 고정관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카약을 한 번 타보는 건 어떨지.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보트 위에 둘이 앉아서 유유히 물 위를 나아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다. 서툴게 노를 저어도 바다 위를 즐길 수 있다. 안전교육과 구명조끼, 안전요원까지 있으니 그리 겁낼 일은 아니다.
또는 바다 위를 빠르게 달리는 보트 타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신난다. 튀어오르는 바닷물을 맞으며 망망대해를 신나게 달려 바다 동굴이나 기암괴석에 다가가 신비로움을 확인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상쾌함에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또 한 가지, 최근 어딜 가든 각 지자체에서 여행객 유치를 위해 마련한 시설 중 짚라인(짚와이어)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듯 출발해서 하늘길을 가르며 바다 위를, 그리고 산 위를 미끄러져 간다. 온 산하의 정경과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이나 전망대에서도 보이지 않던 풍광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 땅의 자연이 이리도 아름다웠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즐거움은 하동 금오산, 가평 남이섬, 단양 만천하 스카이워크. 보령 짚트랙, 강릉 아라나비 짚와이어, 정선 짚와이어, 김천 짚와이어와 출렁다리, 군산 선유도 등지에 가면 누릴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모험적이란 생각에 지레 겁낼 일은 아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수이고 사용법이나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문제없다. 미리 몸무게와 키를 재고 동의서 작성과 해당 질환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렵거나 헷갈리는 것 하나 없이 쉽고 신나는 놀이다. 타기 전에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하지만 막상 타고 나면 또 하고 싶어 한다. 하늘을 나는 스릴을 만끽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짜릿함을 경험한다. 비행의 두려움도 단숨에 극복하게 된다. 연인들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이색 데이트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지역마다 스토리 투어 버스, 스토리 자전거, 하늘 자전거, 숲속 기차가 숲을 달린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다. 상공에서 걷는 아찔함을 즐기는 스카이워크, 출렁거림의 묘미를 즐기며 걷는 출렁다리도 지역마다 계속 생겨나고 있다.
굳이 해외까지 갈 필요 없다. 편리한 이동수단과 신나는 탈거리는 의외로 많다. 여행 떠나기 전에 미리 꼼꼼히 확인하고 예약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면 더 확실하다. 수고로운 여행이나 동적인 놀이는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활짝 웃어보라. ‘씨익’ 하는 정도로 말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웃을 수 있는가? 열까지 셀 동안 그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가? 나는 못하겠다. 제법 잘 웃는 편인데도 그렇다. 조금 지나면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모르게 돼버린다. 정말 즐거운 일이 있다면 오래 웃는 게 가능할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 넘게 세도록 여전히 웃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온 얼굴로 웃는 웃음을 ‘뒤센 스마일’이라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학자 기욤 뒤센이 붙인 이름이다. 뒤센이 연구해보니 (하회탈처럼)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히고 입꼬리도 저 위까지 올라간 미소가 진짜 웃음이더란다. 물론 뒤센이 하회탈을 알 리는 없지만.
골퍼 얘기만 하더니 느닷없이 웃음 얘기냐고? 이번 주인공이 바로 프레드 커플스(Fred Couples)이기 때문이다. 프레드 커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가 짓는 미소다.
1959년생인 커플스의 별명은 ‘필드의 신사’다. 흔히 ‘젠틀하다’고 말하는 그 신사 말이다. 독자는 ‘신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혹시 근엄함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라고 별다르랴. ‘신사라면 역시 묵직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늘 이를 드러내고 웃는 커플스 별명이 신사라니? 왜 그럴까? 그건 딱딱함이 신사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사라면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할 것이다. 바로 그 시절의 사진 기술이 지금과 다른 탓이다. 필름 비슷한 것에 화상이 맺힐 때까지 한참 시간이 걸리던 시절 얘기다. 신사가 사진 한 장 남기려면 두 시간 넘게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있어야 했던 시절. 아이고 차라리 초상화를 부탁하고 말지. 그 긴 시간 동안 활짝 웃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옆에서 웃겨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 시절 신사 숙녀들 사진은 늘 무표정할 수밖에.
그러다가 신기술이 나왔다. 셔터를 한 번만 누르면 필름에 화상이 맺히는 카메라와 필름이 나온 것이다. 그 카메라 회사 이름을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독자가 다 아는 업체 중 하나다. 신기술은 혁명을 불러왔다. 사람들이 짓는 표정에 말이다. 이제 순간의 표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웃으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엄한 표정이 신사 숙녀의 필수조건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한결같이 미소 짓는 프레드 커플스를 ‘신사’로 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미소를 무심코 넘기던 내가 놀란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2019년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굿즈’ 대회 마지막 날이었다. 커플스는 그날 데일리 베스트(선수 중 성적이 가장 좋았다는 얘기)를 치며 클럽 하우스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서너 조 뒤에서 경기하고 있던 더그 배런(Doug Barren)과 동타였다. 이 대회 전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철저한 무명 선수 더그 배런인지라 나도 내심 연장전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아니면 배런이 실수를 해서 커플스가 우승을 하거나.
배런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PGA 투어에서만 15승을 거두고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13승을 거둔 대가 커플스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몇 년 만에 우승 기회가 온 것 아닌가? 배런이 몇 홀만 남겨두자 커플스는 연습 그린으로 갔다. 그리고 퍼팅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연장전을 대비한 것이다.
그런데 배런은 15번 홀에서 먼 거리 버디 퍼팅을 떨어뜨리면서 한 타를 달아났다. 그는 16번 홀에서도 홀 가까이 붙여 기회를 잡았으나 버디 퍼팅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지는 17번 홀은 긴 파3. 보기가 숱하게 나온 아주 어려운 홀이었다. 거기서 배런이 그림 같은 하이브리드 샷으로 홀에 바싹 붙여 버디를 낚았다. 두 타 차. 마지막 홀 배런 티샷이 페어웨이 왼편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곧이어 연습 그린에서 짐을 싸서 철수하는 커플스가 화면에 잡혔다. 그런데 커플스는 활짝 웃고 있었다. 저렇게 큰 승부에서 우승을 다툴 기회가 날아갔는데도 말이다. 흔히 속되게 말하는 ‘썩소’가 전혀 아니었다. 남을 의식해서 짓는 억지웃음(뒤센 미소와 비교해 팬암 미소라고 한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날 그의 샷 못지않게 인상적인 그의 미소 때문에 나는 커플스 스토리를 찾아봤다. 그러고는 미소에 감동했을 때보다 더 많이 놀랐다. 그가 전성기인 1992년에 33세 나이로 마스터즈 대회를 우승했기 때문이었냐고? 그가 PGA 투어에서만 컷 통과를 500번이나 했기 때문이었냐고? 특히 마스터즈 대회에서는 무려 서른 번이나 컷 통과를 해서 서른일곱 번 컷 통과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서 2위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냐고? 아니다. 내가 놀란 건 그의 개인사에 슬픔과 아픔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커플스는 한 번 이혼했다. 그런데 전 부인은 그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겨우 슬픔을 이겨낸 커플스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재혼했지만 곧 별거하게 된다. 무슨 일인지 별거 중인 부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커플스는 또다시 깊은 슬픔에 몸부림쳤다. 그 무렵 커플스는 허리를 크게 다쳤다. 마음의 병이 몸을 망쳤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는 평생 진통제를 복용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도 해맑은 미소를 세상에 보낸다.
한없이 부드러운 스윙을 자랑하는 스윙 교과서 커플스가 더 위대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미소 때문이다. 프레드 커플스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웃는 건지도 모른다. 독자와 나 우리의 미소는 어떻게 비칠까?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으로, 골프채널코리아에서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들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재,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는 관광 업계다. 특히 호텔 업계가 받은 충격은 매우 심각하다. 상당수 호텔이 고육지책으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려 애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서비스 개발을 통해 작년과 같은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호텔이 있어 화제다. 바로 속초에 있는 마레몬스 호텔이다. 2018년에 취임해 올해로 3년 차, 마레몬스 호텔의 비전 아래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윤기석 대표를 만나 성공 노하우를 들어봤다.
윤기석(58) 마레몬스 호텔 대표의 경력을 보면 호텔뿐 아니라 코카콜라 직함도 있다. 의외이지만 그때 윤 대표로선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마케팅하다 보면 아이템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글로벌 대외 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서 가게 됐죠.”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코카콜라는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도 사표를 내야 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그는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현 스위스 그랜드 호텔), 강원랜드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온 곳이 속초 마레몬스 호텔이다.
“마레몬스 호텔에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죠. 전부 다 맡아야 했거든요. 처음 왔을 때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비록 지방의 작은 호텔이지만 고객의 니즈에 특별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R&D 작업을 했습니다. 침구의 위치부터, 미니바 구성, 메뉴 편성까지. 직원이 미소는 짓는데 고객 질문에 제대로 답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상품에 대한 철저한 로직과 이해가 절실했습니다.”
마레몬스 호텔의 경영 해법은 R&D
마레몬스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영화와 드라마가 가장 많이 촬영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속초의 핫플레이스다. 마레몬스 호텔의 브랜드 슬로건은 ‘대포항의 보석’, 마케팅 슬로건은 ‘우리는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연구 개발을 한다(We do the R&D for Better Service)’이다. 그런데 묘한 데가 있다. 기업 연구실에서는 익숙하지만 호텔 업계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 바로 R&D(연구 개발)라는 표현이 보인다.
“각 호텔 체인은 매뉴얼이 있어요. 하지만 연구하는 데는 없죠. 우리가 말하는 R&D는 고객이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할 때까지 디테일한 서비스로 최고의 만족도를 이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마레몬스 호텔의 R&D는 디테일한 서비스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호텔에 갈 때 침구가 깨끗하고 편안하길 바란다. 마레몬스 호텔은 이러한 고객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탁 공장을 갖추고 무조건 네 번을 헹궈 이불 속으로 들어갈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말린다.
“제가 처음 호텔에 왔을 때 소비자들의 블로그를 보니 호텔에서 보이는 속초 전망에 관한 평이 다수였어요. 그런데 그건 마레몬스 호텔이 이미 가진 거잖아요? 그래서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죠. 상품 지식과 스토리를 엮어서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맞다, 틀리다의 해답은 늘 고객이 갖고 있죠.”
윤 대표가 흡족하게 여기는 고객 칭찬 기준은 두 가지다. ‘너무 잘 잤다’ 그리고 ‘아침이 너무 맛있다’. 호텔은 쇼핑센터가 아니므로 여기저기서 찾을 것이 아니라 호텔의 고유 임무인 ‘잘 먹고, 잘 자는’ 데에 충실하자는 거였다.
“많은 호텔이 아침 식사에서 기물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저는 한국인이 맛있어 하는 음식에 초점을 맞췄죠.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리스트업했더니 짜장면이 있더군요. 아침에 짜장면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대박이 났어요. 집에 있을 때는 짜장면이 말이 안 되는 아침 식사 메뉴이지만 밖에 나와서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을 즐길 때는 짜장면도 가능한 거죠. 그리고 ‘나물 난장’이란 이름을 붙인 코너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호텔에선 다 나물이 나오죠. 그런데 대개는 3색 나물이고 그 이상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저희는 14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또 베이커리도 100% 외주 없이 자체 제작합니다. 아침 식사만 전담하는 파티시에를 따로 두고 있으니까요.”
고객 일생을 연계한 맞춤형 패키지
“구호에 그치면 R&D가 아니다.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는 윤 대표의 말은 마레몬스 호텔의 다양한 섬세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금의 위기상황에서도 호텔 매출을 뒷받침하는 것은 맞춤형 패키지 상품들이다.
“작년에는 속초에서 화재가 크게 났어요. 상당수 호텔의 객실 점유율이 10%대로 주저앉았죠. 저희는 그때 솔로 패키지를 만들어 40%대 유지에 성공했어요.”
마레몬스 호텔의 솔로 패키지는 말 그대로 혼자서 묵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다. 2019년 주중에만 객실을 다 유치했고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작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단다. 또한 솔로뿐만 아니라 연인, 허니문, 시니어 등 다양한 계층에 맞는 패키지를 만들어내고 세부적인 내용들은 서로 연계해 마레몬스 호텔에서의 추억이 계속 쌓이도록 했다.
“사람들이 속초에 오면 회를 먹거나 시장을 가거나 하는데, 제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이 마레몬스 호텔에만 있다가 가게 하는 거예요. 온전히 호텔에 머물면서 문화를 향유하거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호텔의 발전을 막는 수직적 조직 문화
마레몬스 호텔의 역동성은 윤 대표가 말한 R&D의 힘일 터다. 마레몬스 호텔에서는 윤 대표의 주도로 브레인스토밍을 매주 진행한다.
“호텔은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계속 성장하기가 어려워요. 특히 세계적 체인은 헤드쿼터에서 방향을 정해주기에 더욱 어렵죠. 그에 비하면 마레몬스 호텔은 자유로운 편입니다. 뭔가 더 나은 걸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죠.”
그는 호텔에서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꼽았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며 그는 대담하게도 ‘구글 같은 호텔’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직적인 체제에서는 서비스가 제대로 나올 수 없어요. 모든 걸 매뉴얼화했기 때문에 그 내용에서 벗어나는 환경에서는 직원 핸들링이 안 되는 거죠.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직원과의 관계를 유연화해야 손님을 대할 때 순발력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원에게 애사심을 강요하기 전에 직원이 애사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는 편이다.
“호텔이 먼저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직원도 자연스럽게 애사심을 갖게 되지 않겠어요?”
윤 대표는 늘 새로운 걸 고민한다.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 스프레딩을, ‘지금’보다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남들이 생각하기 전에 한발 먼저 움직이는 그는 지역의 자랑거리, 삶의 기쁨으로 마레몬스호텔이 입소문 나길 고대한다.
군계일학으로 빛나다
“호텔업은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무형의 서비스 본질은 진정성이고요. 거짓은 언젠간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도 고객들은 다 눈치 챕니다. 제가 걸어온 과정들이 마레몬스 호텔을 이끄는 훌륭한 경험과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직원들과 함께 다져 나갈 계획입니다.”
윤 대표는 자신부터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직원 힐링을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주말에는 직원들과 서빙을 같이한다. 물론 직원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하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직원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고, 고객이 식사를 마친 뒤 정리할 때마다 고객의 니즈와 데이터가 새롭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업무에서의 효율화와 간결화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각 부문의 관리 상태를 주로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스마트하게 관리한다. 말이나 글로 소통하는 게 때로는 소모전 같다는 생각에서다. 핸드폰으로 서비스 교육을 하고 핵심 내용을 압축해 전달하는 등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있다.
웨딩의 메카로서 500대 규모의 주차장이 구비돼 있는 마레몬스 호텔 객실은 총 150개. 그중 설악산을 볼 수 있는 8개 객실을 제외하고 모든 객실에 바다 전망을 갖춰놓고 고객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윈터 웨딩, 리마인드 웨딩, 웨딩 저니, 프라이데이 캔들 라이츠 웨딩 등 다양한 콘셉트로 1000명 규모의 하객 수용이 가능한 피로연장도 갖추고 있다.
윤 대표가 제시하는 디테일한 R&D 개발이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 학을 찾고 화려하게 비상하듯, 국내 호텔 업계 판도를 바꿀 마레몬스 호텔의 발걸음이 궁금해진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누구나 다 때가 있다. 누구나 기회가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누구나 몸에 때가 있다는 말이다. 때가 되면 때가 낀다. 때가 쌓이면 때가 붙는다. 때가 오래 지나면 때가 붓는다. 때가 길면 때가 두껍다. 누구나 다 때가 있다!
앞의 때는 時(때 시), 즉 시간이고, 뒤의 때는 垢(때 구),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따위가 섞여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時垢(시구)라는 말도 있을 법하다. 이슈가 되는 한 시대의 폐해나 고질, 해결해야 할 시대의 적폐,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사람들, 그런 의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말은 없다.
시대의 폐해야 반드시 해소해야 하지만 때는 왜 밀어야 하지? 그냥 더러우니까? 밀면 시원해서? 몸무게 줄이려고? 노느니 이 잡는 기분으로(이가 뭔지 모르는 세대는 이해 불가능!)? 가족이나 친지간의 발가벗은 우애나 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 나는 잘 모르겠다.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자료를 못 찾았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목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동네 대중탕은 거의 다 없어진 지 오래인데, 헬스클럽도 영업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아예 욕탕이 없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샤워야 집에서 할 수 있지만 탕에 들어앉아 쉬거나 때를 밀기가 어렵다. 강남에 사는 어떤 사람이 목간한 지 오래됐다고 하기에 “우리 동네까지 발가벗고 걸어오셔. 사우나 표 드릴 팅게”라고 약 올린 적이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 우리 동네 스포츠센터는 욕조가 크고 운동시설이 다양하다. 이곳도 정부 시책에 따라 문 닫은 적은 있다. 2주 만엔가 재개장했을 때 반갑고 고마웠다. 아내의 권고에 따라 ‘재입욕 기념’으로 실로 오랜만에 때를 밀었는데, 가락국수 같은 것들(윽, 더러워!)이 물 내려가는 걸 막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그러나 내 때만으로 그리 된 건 결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날 시원하긴 했지만 때를 왜 밀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 목욕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원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정도일 뿐 때를 미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 것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때밀이 관광을 오는 건 이국적인 흥취, 돈 뿌리고 한국인들 부려먹는 쾌감 그런 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를 왜 밀까 궁금해 하다가 서울 어느 지역 맘 카페에서 ‘감명 깊은’ 글을 읽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 임신 중인 엄마들이 회원인 그 카페에 오른 글의 제목은 ‘때 안 밀고 살 수 있는 방법 없나요?(제목부터 더러워서 죄송)’였다. 대충 인용한다. “매주 때를 밀어야 살 수 있는데 정말 할 일이 많아서 때까지 밀 시간이 없음. 바르고 샤워하면 때 안 밀어도 되는 제품 없을까? 샤워하면서 슬쩍 문지르면 되는 거. 왜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그런 게 없을까? 내 길지도 않은 인생, 때 미는 시간과 노력을 다른 일에 좀 써보고 싶다.”
그러자 다른 엄마들이 무슨 때밀이 요술장갑, 이집트 수세미, 비누 묻혀 닦으면 끝나는 오션 타월을 추천하고, 바디크림 쓰면 견딜 만하다, 매일 샤워하면 된다, 목욕탕 안 간 지 20년도 넘는데 전엔 며칠 안 가도 하얗게 피부가 일어나더니 지금은 샤워만 해도 아무 문제없다, 우리 아이들 태어나서 한 번도 때 안 밀었다, 때 안 민 지 20년 됐는데 지금은 몸 불려도 때 안 나오고 벌겋게만 된다 등등 백가쟁명 갑론을박 찬반양론 설왕설래가 아주 볼 만했다.
사실 글을 올린 엄마는 때를 안 밀겠다는 게 아니라 때 미는 수고를 덜고 싶다는 취지였다. 나는 그와 달리 때를 왜 미느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천자문’에 骸垢想浴 執熱願凉(해구상욕 집열원량)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때가 있으면 목욕 생각나고, 뜨거운 걸 쥐면 서늘한 걸 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더러운 걸 싫어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 심정은 누구나 같다.
동양의 에티켓 교범 ‘예기(禮記)’ 내칙(內則)에는 부모를 모시면서 “닷새가 지나면 물을 데워놓고 몸을 씻기를 청하고 사흘이 지나면 머리 감을 물을 마련하되, 그 사이 얼굴에 때가 끼었으면 쌀뜨물을 끓여 세수하기를 청하고 발에 때가 끼었으면 물을 데워 씻기를 청하라”(五日則燂湯請浴 三日具沐 其間而垢 燂潘請靧 足垢 燂湯請洗)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목욕은 사실 매일 하지 않고 닷새 걸러 해도 무방하다. 얼굴과 발만 간간이 잘 씻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면 된다. 이와 달리 마음의 때, 이른바 심구(心垢), 바꿔 말해 번뇌는 매일 벗기고 씻어내야 한다. 이에 관한 어떤 불자들의 문답. “마음의 때가 벗겨지면 목욕할 때 몸의 때도 더 많이 나올까요?”, “마음이 맑아지면 혈관 속 피도 맑아지고 독소물질 노폐물 같은 탁기(濁氣) 생성 물질이 피부로 배출되기 때문에 각질이나 때가 되어서 조금이라도 더 나올 겁니다.”, “아, 기대되네요. 상상만 해도 개운한 느낌!” 정말 그럴까? 재미있는 말이지만 믿어야 될지 잘 모르겠다.
때 이야기를 하다 보면 1984년 6월 17일자 한국일보 사회면 톱 ‘선데이 스토리’가 생각난다. 열일곱 살에 때밀이를 시작해 15년 만에 1억 원을 번 사람의 성공담이다. 입사 3년 차 기자의 기사를 부장(오인환, 나중에 공보처장관) 지시로 내가 중간 데스크를 보아 넘겼는데, 끝 부분이 확 달라져 있었다. 그의 성공과 성실에 초점을 맞춘 마지막 문장을 부장이 “젊은이들이여 자기 때는 자기가 미는 게 어떤가”로 바꾼 것이다. 때밀이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부각시킨 걸 보고 ‘기사란 이렇게 쓰는 거구나’ 하고 배웠다. 퇴폐 이발소, 터키탕 등 향락산업이 큰 사회 이슈일 때였다. 말하자면 그게 그때의 ‘時垢’였다.
때를 왜 밀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오히려 때가 더 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있다. 나는 한글 아호로 ‘글때’를 쓰려 한다. ‘글을 읽거나 글씨를 쓰는 일이 몸에 밴 것’이 글때다. 남의 글의 꼬리를 가볍게 탁 쳐서 기운생동(氣韻生動)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게 글때의 힘이다. 그러니 글때는 더 올라야 하고 더 몸에 붙어야 한다. 문지르거나 벗기려고 하면 안 되는 때다. 사실 이런 때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누구나 다 때가 있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