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 인생을 즐기면서 살면서 사회생활도 하는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아직까지 사회단체 참여 경험이 있는 고령자는 30%를 넘지 않고,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고령자도 50%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중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44.0%이며, 사회단체 참여 경험이 있는 고령자는 28.7%로 나타났다.
먼저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고령자는 44.0%인데, 이는 2년 전보다 0.6%p 낮아진 응답률이다. 전체연령대의 인간관계 만족도 응답(52.8%)과 비교해도 8.8%p 낮다. 연령대별로 보면, 65~69세가 45.3%로 가장 만족도가 높았고, 그 뒤를 70~79세(44.3%), 80세 이상(41.4%)이 이었다.
다만, 인간관계 중 하나인 가족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다. 2020년 전반적인 가족관계에 만족하는 고령자는 51.3%로 지난 10년간 3.6%p 증가한 수치다. 특히 고령자의 61.9%는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 만족했고, 지난 10년간 2.6%p 증가했다. 그러나 남자는 만족이 증가했지만 여자는 불만족이 증가했다. 자녀와의 관계에 만족하는 고령자는 70.4%이며 지난 10년간 7.5%p 증가했다.
사회적 관계망은 어떨까. 2021년 기준으로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있는 고령자는 69.1%이며, 이는 지난 10년간 2.4%p 감소한 결과다. 그런가 하면, 고령자의 70.1%는 우울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으며, 지난 10년간 2.2%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1.7%p 감소한 반면, 여자는 5.1%p 증가했다.
또한 고령자의 28.7%는 사회단체 참여 경험이 있는데, 전체연령대 참여율(35.8%)보다 7.1%p 낮았다. 친목 및 사교 단체에 참여하는 경우가 55.8%로 가장 많았고, 이어 종교단체(43.0%), 취미‧스포츠 및 여가활동(33.3%) 순으로 나타났다. 고령자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5.2%로 2년 전(6.5%)보다 1.3%p 감소했으며, 전체연령 참여율(8.4%)보다도 3.2%p 낮았다.
그런가 하면, 고령자는 주말(휴일) 여가생활(복수 응답)로 주로 동영상 시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영상 시청 응답률이 무려 88.3%를 차지했으며, 휴식은 77.5%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 6년간 동영상 시청은 5.2%p, 휴식은 26.2%p 증가했다.
더불어 고령자는 자신의 여가 활용에 대체로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족도 조사 결과 보통 55.3%, 불만족 27.5%, 만족 17.2% 순으로 나타났는데, 지난 10년간 만족은 4.3%p 증가한 반면 불만족은 5.6%p 감소했다.
고령자가 여가생활에 불만족한 사유는 경제적 부담 43.8%, 건강·체력문제 33.3% 순이었다. 지난 10년간 경제적 부담은 16.3%p 감소한 반면, 건강·체력문제는 3.7%p 증가했다.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고령자 88%가 여가활동으로 동영상 시청을 한다고 나왔는데, 매년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현재 고령자분들은 가족을 부양하느라 삶을 즐기지 못한 터라 여가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고령자분들은 평생을 일하고 자식들을 양육하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또한 부모님을 부양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노인이 되면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리 노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신기원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령자와 신중년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는 차별되고,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이제 50대, 60대가 된 분들은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하고, 삶을 즐기면서 살려고 한다. ‘액티브 시니어’(은퇴 이후에도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대)라는 말도 나왔다”라면서 “그래서 이번 통계에서도 스스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고령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나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인권침해나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중은 8.7%로, 장애인, 이주민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더불어 조사 결과, 국민들은 특히 60세 이상이 노인차별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침해 차별을 많이 받는 집단’ 조사에서 60세 이상은 13.7%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타 연령대의 2배 수준이다.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윤영미(60). 그녀의 제주도 집 이름은 ‘무모한 집’이다. 직접 작명했다는 윤영미는 “제 인생을 돌이켜보니 저는 굉장히 무모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무모하다’는 꼭 부정적인 말은 아니다. 누군가의 무모한 도전과 열정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한다.
윤영미 역시 무모한 성격 덕에 아나운서가 됐고, 더 나아가 ‘여성 최초’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윤영미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은 60대에 접어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윤영미에게 아나운서는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우연히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은 그녀는 진행의 매력에 푹 빠졌고,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예 아나운서 명찰을 달고 다니던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녀를 ‘윤영미 아나운서’라고 불렀다.
윤영미는 반드시 아나운서가 되어야만 했다. 목표를 정한 그녀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었다. 방법이 없다면 찾아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윤영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청량리역 역장을 찾아가 “왜 여자는 방송을 안 하냐”고 물으며 방송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에 한 달여 동안 안내 방송을 한 그녀는 ‘최초의 지하철 방송 여자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영미는 대학 졸업 후 춘천MBC 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당시 춘천MBC에는 공채 제도가 없었는데, 아나운서 시험을 볼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패기 덕에 윤영미는 1985년 춘천MBC 아나운서가 되면서 꿈을 이뤘다. 이어 그녀는 1991년 SBS 개국 당시 경력직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SBS 입사 후에도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 ‘최초의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제가 워낙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는데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저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걸 직접 해보고, 뭐라도 시도해보려는 편이에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이기도 했고요. 저희 어머니도 늘 ‘안 되면 끝까지 해봐라. 분명히 길이 보인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런 말들이 많은 힘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아나운서 처음이라고?
춘천을 벗어나 SBS라는 큰물로 옮겨가니 고충이 따랐다. 윤영미는 “SBS에 들어가서 한 3년 동안은 TV 방송을 못 했다. 제 자리가 없었던 거다”라면서 “당시 아나운서 중에 순위를 매기자면 저는 거의 꼴찌였다”라고 말했다. 쟁쟁한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위기의식을 크게 느낀 윤영미. 그녀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윤영미가 찾은 돌파구는 ‘야구’였다. 당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자 캐스터가 없던 시절이었다. 윤영미는 자신이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야구의 ‘야’자도 몰랐기에 그녀는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당시에는 야구에 미쳐 살았던 것 같아요. 매일 근무 끝나면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봤어요. 당시에는 신문밖에 없으니까 스포츠신문을 탐독하고, 야구 중계를 켜놓고 따라 하면서 중계 연습을 했죠. 1년 동안 고시 공부하듯 공부했더니 야구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당시 아나운서 국장이었던 이계진은 윤영미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캐스터 오디션 기회를 줬다. 윤영미는 당당히 합격하며 마침내 ‘여성 최초 야구 캐스터’가 됐다. 그렇게 그녀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야구 캐스터로 활약하며 이름도 널리 알렸다. 지금도 그녀는 1994년 4월 7일 광주 첫 중계부터 한국시리즈 중계 등 영광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후 2000년대 윤영미는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는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무대를 선보였다. 아나운서라는 고정관념을 깬 혼신의 무대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윤영미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이 됐다. 신신애와 이박사 성대모사는 물론 시원한 입담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최초의 아나테이너 탄생이었다.
“당시 ‘엽기 아나운서’라고 주목받았는데, 요즘 같았으면 짤이 엄청 돌아다녔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사실 아나운서실에서는 품위가 떨어진다면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는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인지도가 높은 아나운서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미지 실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왕 할 거면 어설프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즐겼을 뿐이에요. 시청자분들도 처음에는 제 모습을 낯설게 느끼다가 아나운서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때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처음 나온 거죠.”
윤영미는 50대 진입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도전을 했다. 2010년 12월 S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것.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방송국에서는 50세가 되면 방송 진행보다 교육 등 다른 것을 하기를 원한다.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는 필드에 계속 있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아나운서로 빛나는 윤영미. 그녀가 생각하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일까.
“저는 특별히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것도, 대단한 특기를 가진 것도 아니에요. 제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성실성밖에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성실하겠지만 저는 굉장히 프로의식이 강해서 평생 지각, 결석을 해본 적이 없어요.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아침 방송에 늦을까봐 전날 출근해 책상에서 잔 적도 있고요. 항상 미리 가서 준비하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믿음을 준 것 같아요.”
제주도, 그리고 가족
윤영미는 프리랜서가 된 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종편 채널은 물론 홈쇼핑 채널에도 출연하고, 강연도 하고, 책도 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늘 가슴에 품고 있다. 현재 그녀는 제주도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책을 쓰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가 제주도의 매력에 이끌려 정착하게 됐다.
제주도 살이를 한 지 벌써 3년째. 윤영미는 올해 종달리로 이사했다. 그 집이 바로 ‘무모한 집’이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 ‘윤영미의 무모한 집’도 운영한다. 이사를 하고 수리·인테리어 과정을 거쳐 집이 재탄생하는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의 전통 양식을 살리면서 모던함을 가미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돌 부엌과 돌 인덕션, 찻장 등 윤영미의 감각이 녹아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저는 방송이 있기 때문에 서울을 왔다 갔다 해요. 그래도 한 달에 반은 제주도에서 사는 것 같아요. 남편은 제주도에 계속 있고요. 제주도 집에 있다 보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행복해요. 평생 생각만 하고 못 해봤던 일을 짧게나마 실현한 것 같아서 또 다른 꿈을 이룬 듯한 느낌이 들고 뿌듯해요.”
그런데 무모한 집은 정확히 말하면 윤영미가 산 집이 아니다. 6년 반 동안 장기 렌털한 집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도 아닌데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윤영미 역시 생각보다 많은 돈을 썼지만 후회는 없다. 그녀는 “저는 남들과 다르다. 내가 행복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에 살던 제주도 집은 ‘체리집’이었어요. 벚꽃(체리 블러섬)이 굉장히 아름다운 집이었거든요. 이번 집은 감나무가 있어 ‘감나무집’이라고 하려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남의 집에 그렇게 억대의 돈을 투자하느냐, 무모한 짓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저도 돈이 그렇게 많이 들 줄 몰랐는데, 무모한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 인생 자체를 돌이켜보니 저는 굉장히 무모한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모한 집’이라고 이름 지었죠.”
윤영미는 자신의 무모한 삶에 관해 얘기하면서 ‘결혼’을 언급했다. 결혼 또한 무모했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서른다섯 살에 출판사 직원이었던 황능준 씨와 결혼했다. 화려한 아나운서였던 윤영미의 선택은 다소 의외였다. 결혼 전 소개팅, 선을 많이 봤는데, 황능준 씨만큼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즉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한 것인데, 결혼 생활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윤영미는 가장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했다. 황능준 씨가 결혼 후 3년 만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전업주부가 됐기 때문. 졸지에 가장이 된 그녀는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윤영미는 지난해 한 방송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가장의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늘 밝고 당당한 그녀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더욱이 윤영미는 남편과 ‘졸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냐고 묻자 그녀는 “지금 남편과 거의 떨어져서 살고 있기 때문에 졸혼이나 마찬가지다. 30년 정도 같이 살았으면 많이 산 거다”라고 말했다.
“남편의 장점은 밝고 긍정적이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결혼할 당시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만 좋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아요. 가장으로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보면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윤영미가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산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 때문이었다. 현재 20대인 두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특히 첫째 아들은 미국 아이비리그에 편입한 바 있다.
“첫째는 경영을 전공해서 월스트리트 쪽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고, 둘째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해요. 나중에 정말 우리 집을 지어줄지도 모르죠.(웃음) 저는 아이들이 무엇이 됐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애들을 속박하며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애들이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윤영미는 어느덧 60대 시니어가 됐다. 동안 소리도, 젊게 산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잘 모르겠단다. 그냥 자신의 방식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을 뿐이라고. 윤영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과 여행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무모한 도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뛰어들 그녀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우리 애들 학비를 대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제주도 집을 6년 반 계약했으니 잘 살아야죠. 또 욕심이 있다면 강원도나 전라남도에 새집을 얻어 제주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생의 목표는 오늘을 재밌게 살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예요. 독자 여러분도 마음에 어떤 갈망이 있다면 앞뒤 보지 말고 무조건 행하면서 즐기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hibition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일정 8월 28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내 최초의 아스테카 특별전이다. 아스테카는 마야, 잉카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으로 꼽힌다.
전시에서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해 독일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문화재 208점을 만날 수 있다. 총 5부로 구성됐으며,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 전까지 아스테카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1부와 2부에서는 아스테카의 문화와 종교 등 그들의 독특하고 복잡한 세계관과 신화를 설명하고,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 및 정치, 경제 체제를 소개한다. 3~5부에서는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과 그 가운데 핵심적인 건축물인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 대해 알 수 있다.
특히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13~16세기 아스테카인은 인간이 지하세계에서 나온 거인의 뼈로 창조됐다고 믿었다. 높이 176㎝, 무게 128㎏의 소조상은 기괴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인신공양과 활발한 정복전쟁에서 비롯된 잔혹한 이미지, 스페인 정복자를 신으로 오해했다는 이야기와 달리 아스테카 문명의 예술과 지식은 매우 발달했다”라면서 “멕시코에서 이뤄진 최신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정복자가 왜곡하고 과장하기 이전 아스테카의 본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나의 하루 이야기-헝가리에서 온 사진
일정 9월 12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헝가리 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세 아이의 사진을 통해 1936년과 2021년 헝가리 어린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약 70km 떨어진 작은 마을 볼독(Boldog)에 사는 두 소녀의 사진은 지난 80여 년 동안 헝가리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보여준다. 또 헝가리 남서쪽에 위치한 퇴코파니(To¨ro¨kkoppa´ny)에 살고 있는 피테르 코바치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오던 전통 놀이 ‘파프리카’(Paprika) 게임을 친구들과 즐겨 한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피테르와 친구들이 파프리카 게임을 현대화해 즐기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Book
◇오늘 한 끼 어떠셨나요?(이우석·꿈의지도)
저자 이우석 소장은 스포츠서울에서 20여 년 여행기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밥과 여행에 관한 글을 썼다. 퇴사 후 그는 ‘놀고먹기연구소’라는 회사를 차리고 미식과 여행에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오늘 한 끼 어떠셨나요?’는 문화일보에 연재 중인 ‘이우석의 푸드로지’를 엮은 것이다.
이우석 소장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식재료와 음식을 네 가지 주제 ‘따뜻한 밥 한 끼’(국밥·솥밥·꽃게·덮밥·볶음밥·달걀·순대·불고기·닭곰탕·배추), ‘제철에 먹는 별미’(도다리쑥국·봄나물·조개·보리·막국수·민물고기·새우·추어탕·버섯·굴·냉면·대구), ‘한잔 술 부르는 일품요리’(곱창·양고기·복어·소고기·갈비·전·오징어·족발·육회), ‘정식 부럽지 않은 분식’(떡볶이·오뎅·만두·라면·국수·돈가스·햄버거)으로 나눠 소개했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식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순대는 몽골 기병의 행동식이며, 대구 떼를 쫓다가 뉴펀들랜드를 발견한 사실, 공깃밥이 1960년대 분식장려운동에서 탄생한 배경, 어묵이 아니라 ‘오뎅’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등을 알려준다. 이우석 소장은 음식과 함께 맛집 230곳도 소개했다. 이 소장이 20여 년간 직접 맛보고 검증한 곳이다. 일 년에 360일은 맛집 순례를 하는 저자가 적어도 몇 번씩은 방문한 집들이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안병억·열대림)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저자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12가지 핵심어로 명탐정 홈즈를 새롭게 바라본다. 컨설팅 탐정, 과학수사, 천재성, 네트워크, 전쟁 등을 주제로 홈즈와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가치관, 그리고 동시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본다.
◇사우디 집사(배영준·델피노)
저자 배영준은 현대중공업에 근무하고 있다. 사우디에서 근무한 적 있는 그는 당시의 경험을 녹여 소설을 썼다. 소설은 프랑스 국립 집사학교를 졸업하고 사우디 왕가의 집사가 된 한국인
피터의 모험기를 그린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닐 올리버·윌북)
저자 닐 올리버는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해온 고고학자다. 그는 지구 위의 특별한 유물과 유적 36개를 엄선해 거기에 담긴 인류의 깊은 사연을 들려준다. 역사, 예술, 문화, 지리, 인류학을 아우르는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Stage
◇레 미제라블
일정 8월 5일 ~ 15일
장소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연출 유준기
출연 윤여성, 김명수, 정욱, 박웅, 임동진, 문영수, 최종원, 강희영 등
연극 ‘레 미제라블’은 한국 연극 역사와 함께한 배우들이 2011년부터 만들어온 공연으로 매번 전회 매진을 기록한 작품이다. 2020년 코로나19를 뚫고 공연이 올라 화제를 모았으며, 2년 만의 귀환이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걸작을 원작으로 한다. 19세기 프랑스대혁명 전후 혼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진정한 휴머니즘과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윤여성, 김명수, 정욱, 박웅, 임동진 등 원로 배우와 문영수, 최종원, 강희영 등 중견 배우들이 이번에도 명품 연기를 펼친다. 더불어 400여 명의 오디션 지원자 가운데 발탁된 젊은 배우들이 화합의 무대를 펼칠 예정으로 기대를 더한다.
◇두 교황
일정 8월 30일 ~ 10월 23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민영
출연 신구, 정동환, 서인석, 서상원, 남명렬, 정재은, 조휘 등
원로 배우 신구와 정동환이 연극 ‘두 교황’으로 만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우정을 다룬 연극 ‘두 교황’이 영국 초연 이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펼친다.
신구는 서인석, 서상원과 함께 베네딕토 16세 역에 캐스팅됐다. 정동환은 남명렬과 프란치스코 역을 소화한다. 영국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이 극본을 썼다.
규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베네딕토 16세와 자유로운 진보 성향의 개혁파 프란치스코의 대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 6월 연극으로 초연됐고, 같은 해 12월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엘리자벳
일정 8월 25일 ~ 11월 13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옥주현, 이지혜, 신성록, 김준수, 노민우, 이해준, 이지훈, 강태을, 박은태 등
뮤지컬 ‘엘리자벳’이 10주년을 맞았다. 2012년 초연 당시 15만 관객을 동원하고 각종 뮤지컬 어워즈 상을 석권한 스테디셀러 대작이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한 서사와 음악, 무대예술, 3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호평받고 있다.
이번 10주년 공연에는 ‘엘리자벳’의 독보적 흥행을 이끌어낸 옥주현·신성록·김준수·이지훈·박은태·민영기 등의 배우들이 귀환한다. 또 이지혜·노민우·이해준·강태을 등의 뉴캐스트들이 합류, 역대급 무대를 예고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반짝이는 것은 늙지 않는다. 일을 향한 열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짝이는 이 역시 늙지 않는다. 춘삼월 여린 잎 같던 목소리는 푸르다 못해 영글었고, 소년은 단단한 어른이 되었지만 반짝이는 두 눈은 24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사람을 사랑하며 오래도록 푸른 청년(靑年)으로 남을 임형주(37)의 이야기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최연소’, 하나 덧댄다면 ‘최초’를 꼽겠다. 2003년 만 17세 나이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정사상 최연소 애국가 독창자가 됐다. 같은 해에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단독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국내 3대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여는 대기록은 10년 전에 세웠다. 데뷔 15주년에는 앨범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한 독창회를 열면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무대(대극장, M씨어터, S씨어터, 체임버홀)에 서본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음악가로서 세울 수 있는 기록은 전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두 살 소년이 상상 못한 숫자들
수집하듯 온갖 기록을 쓸어 담은 세월이 24년이다. 지금의 임형주는 데뷔 25주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 팝페라 테너지만, 1998년 데뷔 당시 열두 살 소년은 이 모든 기록적인 숫자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4년이 ‘꽃길만 걷는’ 시간이었을 것 같지만, 그는 스스로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평가한다. 선배가 없는 팝페라 장르에서 활동하는 건 흙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작업과도 같았다.
지쳤던 걸까. 언제부터인가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만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노래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명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뜬소문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로마시립예술대학 성악과 석좌교수, 미국 그래미상 심사위원, 음악평론가 임형주로 살았다. 대중과 멀어지면서 ‘세월호 추모곡 가수’, ‘애국가 소년’쯤으로 이미지가 축소됐다.
그러다 가수 임형주가 지난 5월 JTBC ‘뜨거운 씽어즈’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췄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예상 못 한 깜짝 등장이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은 다 차치하고 진정성을 전하는 노래가 최고의 노래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출연진의 도전을 응원한 그는 시니어 합창단과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겸손한 자세와 청아한 목소리가 갖는 힘은 여전했다. ‘뜨거운 씽어즈’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함께 부르는 장면의 유튜브 동영상은 두 달 만에 134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중의 관심이 전보다 덜하리라는 예상을 뒤엎은 수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수로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데뷔한 지 오래되다 보니 ‘왕년의 스타’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도 잘 출연하지 않았으니 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의 데뷔 무대이자 첫 방송 출연이었던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영상은 ‘온라인 탑골공원’(1990~2000년대에 유행한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계정을 총칭하는 신조어)에 게재됐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하지 않느냐며 너스레 떨지만, 대중의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있는 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 사랑을 위한 노래
그는 노래를 고를 때도 대중을 생각한다. 스스로 청중이 되어보고, ‘팝페라 테너’라는 정체성을 되새기며, 이 시대의 대중이 무얼 가장 원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고민한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곡들로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연인의 애정보다는 인류애에 가깝다.
“연인의 사랑을 다루는 가수는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를 다루었어요. 대중이 가장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인 팝을 통해서 인간애를 노래하죠. 사실 예술은 무한하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는 향유, 즐기는 데 있거든요. 저는 세상에 듣기 좋은 음악과 듣기 싫은 음악, 딱 두 가지 음악만 있다고 이야기해요. 예술가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죠.”
고고하고 우아한 음악을 한다는 생각에 괜히 으스대는 클래식 전공자들을 종종 봤다. 그 역시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싫었기에 팝페라 테너로 전향했다. 정치·경제만큼이나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그는 뿌듯한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전부터 ‘문화예술의 일상화’를 주장하던 입장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전하기 위함이다. 즐기기 위해선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콘텐츠가 일상에 스며들 자리는 없으니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며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감상은 물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고,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로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세계 유수의 작가와 작품명이 쏟아졌다. 최근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한 책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지난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도 그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타인을 돌보는 마음, 그 사랑이 있기에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다.” 인간애를 노래하는 가수다운 모습이다.
숲을 만드는 일을 꿈꾸다
올해로 서른일곱의 나이지만, 데뷔한 지 24년이 지났다. 인생의 3분의 2를 올곧이 음악에 바친 셈이다. 인간 임형주의 삶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지만 흘러간 과거가 아쉽지는 않다. ‘음악과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몇 시간 지나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앨범 제작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지만, 사람은 죽어도 앨범은 세상에 남아 있을 걸 생각하면 열심히 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굉장히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다른 음악가들보다 조금 이르게 은퇴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커리어상 최정상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지금이 제 목소리의 전성기임이 느껴지거든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뒤에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하려고 해요. 돌이켜보니 데뷔하던 때도 왠지 ‘나는 일찍 은퇴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네요.”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을 떠올리자니 가수 임형주를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태도다.
현역에서 은퇴한다 해도 문화예술계에 일조하려는 계획은 확고하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행사를 직접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가 꽃이자 나무라면, 가수로서 노래 부르는 것은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일이다. 예술감독은 행사에 쓰이는 모든 음악을 심고 가꾸며 배치한다.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개·폐막식이라는 하나의 숲을 만드는 작업이다.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줄 묘목을 가꿀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국내 대학에서 제안한 교수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팝페라’의 길을 걸을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행정가로도 활약하고 싶다. 인생 2막에 대한 계획을 늘어놓는 모습이 장래 희망이 너무 많아 고민인 어린아이를 닮았다.
바빠 나이 들 시간조차 없는 청년
차차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지만, 당장은 9월에 발매될 정규 앨범 8집 ‘Lost In Memory’를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번 앨범에는 1970~1980년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 대중가요를 담을 예정이다. 독립군 애국가나 ‘봉선화’, ‘사의 찬미’ 등 1920~1960년대 노래를 수록한 정규 7집 ‘Lost In Time’과 시대적으로 연결되는 앨범이다.
“지난 앨범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는 ‘잃어버린 추억’에 대해 다뤄보려고 해요.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에는 트로트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곡가 길옥윤, 박춘석, 이봉조와 그들의 뮤즈인 패티김, 혜은이, 정훈희나 이미자의 가요를 녹음하고 있어요. 패티김의 ‘이별’이나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정훈희의 ‘안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빠질 수 없죠.”
10월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신보와 같은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8집에 실린 노래 외에도 가을에 어울리는 추억의 팝송이나 연주곡을 함께 선보이려 한다고. 5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를 곁들일 예정이라, ‘사랑은 생명의 꽃’(패티김)처럼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곡을 듣다 보면 특히나 코끝이 찡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선 첫 베스트 앨범을 내려고 한다. 그의 모든 대표곡을 앨범 한 장에 담을 예정이고, 앨범 발매 기념 독창회 역시 진행하려 한다. 내년에 코로나19가 완화되면 국내나 해외 순회공연도 떠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전국 25개 도시를 돌아보고 싶어요. 숫자 맞추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TV 프로그램이나 매체 인터뷰 등 섭외 제안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해요. 순회공연을 돌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난 뒤겠지만, 내년은 인간 임형주이자 음악가 임형주로서 제 인생을 결산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바빠서 나이 들 시간이 없다”던 유명 배우의 발언이 떠올랐다. 임형주는 배움을 멈추고 안주하려 할 때 사람이 비로소 ‘늙는다’고 생각한다. 고로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잠을 설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받고 싶은 상이 남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라고 대답한다. 오래도록 푸르를 청년일 수밖에.
최근 폭염 위기경보 수준이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작년보다 22일 빠르게 격상하는 등 때 이른 무더위에 피서를 떠나는 국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계곡, 하천, 바닷가 등으로 피서를 떠나는 국민들에게 물놀이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최근 5년간 물놀이로 인한 사망자는 총 147명으로 피서 절정기인 8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시기별로 보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12.2%(총 147명 중 18명), 7월 38.1%(56명)를 기록했으며 8월에만 49.7%로 절반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중 50대 이상이 전체 147명 중 49명(33.3%)으로 가장 많았다. 40대까지 연령대를 늘리면 7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10대 28명(19.0%), 20대 26명(17.7%), 40대 21명(14.3%) 순으로 이어졌다.
장소별로는 하천이나 강에서 사고가 주로 발생했다. 하천에서 40.1%로 총 147명 중 59명이 사고를 당했으며, 계곡 26.5%(39명), 해수욕장 18.4%(27명), 갯벌과 해변을 포함한 바닷가 14.3%(21명) 순으로 사고가 발생했다. 주된 사고 원인은 수영미숙(31.3%)이었다. 구명조끼 미착용 등 안전 부주의(29.3%), 음주수영(17.0%), 튜브전복(8.8%), 높은 파도‧급류(6.8%)가 뒤를 이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물놀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소개했다. 우선 물놀이 장소는 안전요원이 상주하는 곳으로 정하고, 물놀이 위험구역과 금지구역에는 출입하지 않아야 한다. 위험구역에는 급류, 소용돌이, 수중 암반 지역, 금지구역으로는 저수지, 댐, 방파제 등이 해당되며, 생활안전지도 홈페이지에서 여행 가려는 지역이 물놀이 관리지역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물에 들어갈 때는 심장에서 먼 다리→팔→얼굴→가슴 순서로 물을 적신 후 천천히 입수해야 하며, 간단한 준비운동도 필수로 해야 한다. 특히, 물놀이나 수상 스포츠를 즐길 때는 자신의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선택해 꼭 착용할 것을 권했다.
수영대결 등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무리한 경쟁은 위험하므로 자제하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자진해서 물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음주 후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물이 차거나 피곤하면 경련이 오기 쉽다. 이 때는 몸의 힘을 빼서 편안한 자세가 되도록 한 후 해당 부위를 주무르고, 증상이 나아지면 즉시 물에서 나와야 한다.
또한 계곡이나 하천 바닥은 굴곡이 심하고,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곳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행안부는 하천의 다릿기둥 아래는 물살에 바닥이 파여 주변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 있으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할 경우 주위 안전요원에게 알려 도움을 요청하거나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 수영에 자신이 있어도 가급적 주변에 있는 튜브나 스티로폼 등 물에 잘 뜨는 물건을 이용해 안전하게 구조해야 한다.
구본근 행정안전부 예방안전정책관은 “해마다 여름이면 기본적인 물놀이 안전수칙만 지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안타까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라며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경우 더욱 위험하므로 물놀이 할 때에는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안전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잡]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기술로 거론되는 ‘드론’은 자율 항법 장치에 의해 자동 조종되거나 무선 전파를 이용해 원격 조종되는 무인 비행 물체를 말한다. 군사용 무인항공기로 이용되다가 재난 감시, 농업, 방송, 물류 등으로 이용 범위가 폭넓어졌고, 필요성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드론과 관련된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드론교육지도사는 중장년층 여성의 유망 직업으로 통한다.
드론교육지도사는 학생들에게 드론과 관련해 교육해주는 선생님이자 드론조종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직접 드론을 조립하고 조종하게 해주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드론교육지도사는 교육기관 및 시설 등 드론과 관련된 모든 현장 활동에서 드론에 관한 이론과 실무 교육을 할 수 있다. 단, 전문가용 드론이 아닌 토이 드론과 관련해 교육·지도를 할 수 있다.
드론교육지도사 자격을 취득한 후, 중학교 자유학기제 강사, 초등학교 방과후 교사, 문화센터 드론 전문 강사, 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부 강사, 도서관 아동기관 드론 전문 강사 등으로 보통 취업이 이루어진다. 홈스쿨 교습소 운영도 가능하다.
그러나 강사를 넘어 드론교관이 되거나 항공촬영 방제 등 국가 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면 드론교육지도사가 아닌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한다.
드론교육지도사 자격 취득
드론교육지도사 자격증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나오는 국가공인자격증이 아닌 민간자격증이다. 자격증 발급 기관은 100여개에 이른다. 한국 드론교육 협회, 대한 드론협회 등이 있다. 각 협회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자격증을 발급한다.
드론교육지도사 자격증은 ‘이수’의 개념이 강하다. 각 기관마다 배정된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수료증 혹은 자격증이 발급된다.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육을 성실히 받았는지 검사하는 수준으로 시험은 어렵지 않다. 필기시험은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면 충분히 풀 수 있고, 실기시험은 간단한 드론 조종 수준이라고 한다.
자격증에는 1급과 2급이 있는데, 2급은 보통 이론 60시간 이상, 실기 10시간 이상 교육을 수료하면 취득할 수 있다. 1급은 2급 취득 이후 이론 60시간 이상, 실기 2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하면 취득 가능하다. 사실 1급과 2급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2급만 취득해도 강사로 일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교육지도는 기본적으로 드론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드론 비행 원리, 조종 기초와 수리 방법 등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통신 방법, 드론 센서와 IOT(사물인터넷) 접목, 드론 재료와 부품, 임무 장비 등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드론 비행제어 시스템 SW(소프트웨어), 드론 자율주행과 코딩 SW, 드론 항공 촬영 방법 등도 알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드론 스포츠, 드론게임 등 드론을 다양하게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드론교육지도사는 드론에 대해 가르쳐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스스로 드론 종사자라기보다는 드론선생님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학생을 이해하는 자세, 밝고 긍정적인 태도, 스피치 능력 등의 소양도 요구된다.
중장년 여성에게 추천 이유
앞서 말했듯이 드론교육지도사는 학교와 기관 등에서 일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초등학교 전국 6040개), 중학교 자유학년제 드론 수업(중학교 전국 3213개), 고등학교 진로 체험(고등학교 전국 2360개), 대학교 비교과 과정 드론 수업 등에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청소년회관, 다문화 지원센터, 여성회관, 서울 50+센터 등에서도 드론 교육을 할 수 있다.
특히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드론 교육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코딩(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컴퓨터에 명령하는 것) 교육을 배우는 경우도 많은데, 드론을 배우면 코딩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모형 비행기를 만들고 난리면서 창의력을 길렀다면, 현재는 드론이 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드론교육지도사의 수요 또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드론교육지도사는 중장년 여성에게 추천된다. 양육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친절하게 드론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론교육지도사는 드론을 잘 다룬다면 좋겠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다룰 필요는 없다. 때문에 드론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도 3개월 정도면 드론을 잘 다루고 지도교육사가 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한다. 물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거나, 손 감각이 좋은 여성은 유리할 것으로 추천된다.
또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도 드론교육지도사의 장점이다. 드론교육지도사는 보통 프리랜서로서 일한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경력이 2~3년 이상 쌓이면 업계에서 인정받고 수익도 안정화된다. 초기 수입은 월 100~150만 원 수준이지만 경력이 쌓인 후 여러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 웬만한 직장인 부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
정리하자면 드론교육지도사는 양육 경험이 있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층 여성에게 특히 추천되는 직업이다. 이에 따라 여성회관,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에서 드론교육지도사 양성 과정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지자체에서 드론교육지도사 관련 강좌가 열린다면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자. 꼭 업으로 삼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녀를 키우거나,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최근에 아내와 재결합을 하게 되었어요.”
“뭐라고요? 그럼 우리 관계는요?”
“우리 관계는 달라질 게 없지요. 내가 아내와 재결합한 건 순전히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고, 나는 여전히 경혜 씨를 사랑하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당신인 거죠.”
“…….”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안도감은 또 뭔가.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와의 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나는 또 뭔가.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저 태도는 또 뭔가. 가증스럽다 할지, 뻔뻔하다 할지, 나를 두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냐고 따져야 할지, 머릿속은 아우성을 치지만 말문은 닫힌 채 혼란스러웠다.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번민했을 그를 생각하면 내가 오히려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아니, 어차피 내가 자기를 못 떠날 걸 알고 속 편하게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심중, 그의 자세가 아니라 그가 헤어졌던 아내와 재결합했다는 사실이다.
이혼 20년 만에 만난 ‘뇌섹남’
그와 사귄 지 5년째,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서로 호감이 갔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전 남편은 결혼 10년 차 무렵인 30대 중반에 도박에 빠졌다. 우리는 동갑내기 공무원 부부로 미래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의 생활 태도를 나태하고 해이하게 했던 것 같다. 도박을 끊어보려고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단도박 모임 등에도 나갔지만 그의 의지는 매번 무너졌다.
도박 중독자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면서 몇 번의 스치는 만남이 있었지만, 오십 중반에 가슴 설레는 남자, 맞춤한 나의 인연을 찾았다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라는 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랑이 나이와 반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만남 자체의 기회도 점점 줄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그만큼 희박하니,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포기하게 되는 게 중년 연애 시장의 생리이니. 그런 상황에서 이혼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사랑,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행복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두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쪼들림이 없었고, 은퇴 후엔 연금이 있으니 경제적 이유로 남자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만큼 ‘사랑’이 중요한 요소였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하지만,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밥 정도는 먹여줄 수도 있다는 여유조차 품었다. 그랬는데 그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유복한 집안에 자연계열의 명예교수라는 직업도 직업이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식견과 스포츠, 요리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 점이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지적인 데다 타고난 유머 감각은 수수 털털한 동네 아저씨 같은 그의 겉모습을 완성하는 필수 자질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것이다. 그의 세련되지 못한 외모조차 그가 가진 장점을 겸손하게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엔. 콩깍지가 씐 거라면 영원히 벗겨지지 않기를! 또한 그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로 허물어지는 것은 순간이라며, 서로 존중하는 관계 유지를 위해 세 살 적은 내게 늘 존댓말을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이른바 ‘뇌섹남’에 반한 것이다.
졸지에 내연녀로 전락
그는 여러 차례 외국 기업체와 협력 연구를 하면서 국내를 자주 비웠기 때문에 5년을 만나는 동안 평범한 일상보다는 출장을 겸한 외국 여행을 함께 자주 했다. 양보다 질에 치중하는 데이트랄까, 밋밋한 생활을 나누기보다 외국의 낯선 분위기에서 자극적이며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그를 만나는 내 자부심을 더욱 부추겼다. 우리는 캡슐에 싸인 것마냥 둘만의 시간 속에서 즐겼기 때문에 서로의 신상에 대해 자주 물어보거나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혼했고, 홀아버지가 계시며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를 닮은 영특한 머리로 사회에서 성공적인 위치에 있다는 정도가 다였다.
자신의 이혼 사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내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그가 불쑥 아내와 재결합했다고 하니 충격일 수밖에.
“그게 언제였나요?”
“한 6개월 전쯤.”
“뭐라고요? 6개월이나 되었으면서 그동안 왜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지금 말하는 이유는 뭔가요?”
“경혜 씨한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거듭 말하지만 경혜 씨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전과 같다니까요. 그리고 아내는 서류상 재결합한 거지 함께 살지도 않아요. 아내는 큰아들 집에서 지내기로 했으니까요. 나는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내 아파트에 가서 확인해볼래요?”
적반하장이라더니. 도대체 이 남자는 뭘 믿고 이리 당당한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
당당한 그, 궁색한 나
“당신이 아내와 살든 안 살든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졸지에 내가 당신의 내연녀가 되는 거잖아요. 우리 사랑이 불륜이 되는 거고요.”
“꼭 그렇게 천박한 말을 가져다 우리 사이에 붙여야겠어요? 처음부터 내가 당신을 속인 것도 아니고, 도중에 아내와 서류상 합쳤다고 해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건가요? 경혜 씨는 그깟 종잇조각 때문에 우리 사랑을 팽개쳐야겠어요? 그 정도로밖에 날 사랑하지 않나요? 거듭 말하지만 아내를 사랑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늙고 병든 아내가 불쌍해서, 그 여자가 아내의 지위를 껍데기로나마 되찾고 싶어 해서 회복시켜준 것뿐이에요. 내 말 못 알아듣겠어요?”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았다. 그에게 말려드는 느낌이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찾아지지 않아 가슴만 답답했다. 아내에게도, 내게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말투는 또 뭔가. 아내에게 귀책 사유가 있었는데 세월 지나 용서해주기로 한 건진 모르지만, 나는 자기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안 이상 우리 사이가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서류 따라 당신 마음도 결국 변할 거라고요.”
기어이 속내를 들켰다. 그가 우위를 점하도록 스스로 길을 터준 꼴이 아닌가. 계속 만나더라도 약점 있는 쪽은 그이니 내가 큰소리치면서 관계를 이어가도 시원찮을 판에 되레 저자세로 나가다니. 그의 전략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내를 두고도 당당하게 연인을 만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자는.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요. 경혜 씨 좋을 대로 하세요. 기어코 나와 헤어지겠다면 받아들여야지 별수 있나요. 저야 붙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요.”
어라? 공을 이렇게 넘길 줄이야. 이런 말로 나에게 압박을 가해올 줄이야. 살살 몰아가다 결정 골을 넣자는 건가?
“도대체 당신 아내는 어떤 사람이며, 나이가 몇이길래 당신이 그렇게 가여워하는 거죠? 이참에 물어볼게요. 도대체 당신네 부부의 이혼 사유는 뭐였나요?”
본질을 또 빗겨가고 있었다. 그걸 알아 이제 와서 뭘 할 거라고. 나는 분명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아요. 경혜 씨에 비하면 완전 할머니죠.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건강한 편은 아니에요. 이혼 사유요? 내가 말 안 했던가요?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더랬어요. 연상의 아내가 바람이 나니 많이 당황스럽더라고요. 부부 사이에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죠.”
상당히 의외였다. 아내가 얼마나 잘난 여자길래. 객관적으로 봐도 그보다 더 조건 좋은 남자, 멋진 남자가 흔하지는 않을 텐데, 부부의 일은 부부밖에 모른다더니. 아니, 이 남자의 말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자신에게 귀책 사유가 있었는지 알 게 뭐람. 이혼한 사람 중에 자기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솔직히 몇 명이나 되나.
눈 한번 질끈 감아?
“아내가 아니라 당신이 바람 난 게 아니고요?”
심사가 꼬여 있던 내가 이렇게 어깃장을 놓았다.
“뭐라고요? 경혜 씨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나를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불씨가 엉뚱하게 튀고 있었다.
“아니면 아닌 거죠, 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실수를 무마하려 드는 나, 그 틈새를 파고드는 그.
“경혜 씨에게 실망했어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니, 그럼 경혜 씨에 대한 내 사랑도 의심할 수 있겠군요.”
“누가 그렇대요? 그냥 해본 말이니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지금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할 상황인가. 왜 점점 내 입지가 궁색해져가는지 당혹스러웠다.
“내 쪽에서 문제를 만들었으니 여하간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이상 없는 거지요?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요.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하진 말아요. 거듭 말하지만 아내는 그냥 서류상 복귀이지 내 생활에 끼어들게 하진 않을 거예요. 자식들 엄마 대우로 충분해요. 그래야 애들한테도 떳떳할 것 같고요.”
그는 당장 헤어지자던 나의 처음 기세가 누그러진 것에 적이 안심했는지 긴장을 누그러뜨린 채 응대했다.
그는 시종일관 왜 이리 당당할까. 당당하다 못해 오히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이 화법은 뭔가. 나는 자꾸만 졸아들고 있다. 내 나이가 육십이다. 이 남자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눈 질끈 감고 몰랐던 일로 하고 계속 만나? 아, 어찌해야 하나.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KBS 공채 38기 한상헌 아나운서가 최근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위치한 포천노인전문 요양센터에 방문해 기부금과 물품을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포천노인전문 요양센터는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 이래 현재까지 운영 중인 노인전문 요양센터로, 시설 내에서 어르신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있다.
포천노인 요양센터 관계자는 “한상헌 아나운서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센터를 방문해 많은 기부금과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생활 물품을 전달했다”며 “직접 봉사활동을 하며 어르신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민 그의 선행이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상헌 아나운서는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다”며 “센터에 지속해서 기부와 봉사도 이어가면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도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상헌 아나운서는 현재 KBS1 주말 정오 뉴스와 KBS1 라디오 매주 월요일~금요일 밤 한상헌의 스포츠스포츠를 통해 시청자와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
농촌에선 해 지면 할 일 없다더니 다 옛말인가. 전라남도 화순의 작은 창고에서는 매일 밤 드론이 힘차게 날아오른다. 시속 60㎞ 속도로 날아다니며 요란하게 부딪치고, 골문을 시원하게 파고드는 드론볼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다 함께 모여 동고동락하던 연습 시간, 그로 인해 일궈낸 값진 승리가 주는 희열 앞에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주어진 시간은 3분. 소형 드론을 감싼 드론볼을 공중에 떠 있는 골문에 집어넣어야 한다. 각 팀에선 5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수비수 3명, 길잡이 1명과 유일하게 득점이 가능한 스트라이커(공격수) 1명으로 구성된다. 수비수 드론은 골문을 지킨다. 길잡이 드론과 상대팀 수비수 드론이 치열한 육탄전을 벌인다. 길잡이가 비집어 길을 터놓으면 스트라이커가 눈 깜짝할 새 골대를 통과한다. 스코어보드가 올라가는 순간이다.
드론축구 경기는 3세트 중 세트 득실로 승부를 가른다. 한 세트만 해도 스무 골은 가볍게 터진다. 선수단 성향에 따라 전략도 다양하다. 수비수는 스트라이커가 선취점을 얻어낼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가 하면,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상대 팀 스트라이커를 격추시켜 다시 못 날도록 바닥에 꽁꽁 묶어두기도 한다. 세트가 끝나기 전에는 드론을 감싼 기체가 파손되거나, 배터리가 방전돼도 선수를 교체할 수 없는 규칙 탓이다. 정비는 세트 사이 주어지는 5분 동안만 가능하다.
드론, 고요한 농촌의 밤을 가르다
화순의 농부들은 어쩌다 이 생소한 스포츠에 빠져들게 된 걸까. 하율호 단장과 평소 친분이 있던 박인철 유림어스 감독이 드론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꾸준히 제안한 게 시작점이 됐다. 하 단장도 처음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아는 드론이란 비료를 살포하기 위한 방제용이 전부였고, 무엇보다 생소한 스포츠에 도전할 마음이 선뜻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지칠 줄 몰랐다. 그는 드론축구단을 운영해 나주 문평중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하고, 전남 영광에서 노인 대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드론 교육을 진행한 경력이 있었다. 드론축구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줄곧 거절하던 하 단장도 연습용 드론이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모습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설득만 어려웠지,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 단장이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참여 의사를 밝힌 농부 몇몇과 선수단을 창단한 뒤 4종 드론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국내 최초 노인 드론축구단 ‘유림어스’의 시작이다.
드론 띄우기도 어려워하던 평균 65세 농부들이 어엿한 드론축구 선수로 성장하기까진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박 감독이 개인적으로 챙겨온 드론을 부수는 건 다반사일 정도였으니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재미가 붙자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정기 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연습장을 찾아 드론을 날렸고, 유튜브를 보며 혼자 공부하거나 손자들에게 과외를 받기까지 했다.
이들은 내친김에 연습장까지 직접 마련했다. 쓰던 창고를 비워 애플수박 농사에 쓰던 그물망을 두르고, 선박에 두는 플라스틱 구명부환을 천장에 매달아 골대를 만들었다. 드론볼 부품을 미리 사서 ‘셀프 정비소’도 갖췄다. 정식 경기만큼 치열하지는 않지만 연습 중에도 드론볼이 부서지거나 드론이 자주 고장 나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식 경기장 반절에 불과한 크기지만 이들이 열정을 불태우기엔 충분했다. 지난해 제1회 전남도립대총장배 전국드론축구대회에서 창단 7개월 만에 첫 승을 거뒀고, 지난 2월 열린 광주광역지회장배 드론축구대회에서는 당당히 4위를 차지하며 우수상까지 받았으니까.
이렇게 좋은 드론축구, 왜 안 하세요?
하율호 단장뿐 아니라 유림어스 선수들, 박 감독까지 입을 모아 말한다. 드론축구는 노인, 특히 도시가 아닌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제격인 취미라는 것. 드론축구 선배로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드론축구는 경기 시간이 3분으로 짧기 때문에 순간 집중력이 좋아야 해요. 순식간에 내 편 네 편 할 것 없이 드론볼이 엉키기 때문에 내 드론볼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정면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내 드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애먼 곳 쳐다보고 있으면 질 수밖에 없거든요. 드론볼을 어떻게 움직여야 득점할 수 있을지 계산하려면 순발력도 좋아야 하고요.”
즐길거리가 비교적 다양한 도시와는 달리, 해 지면 꼼짝없이 집에 틀어박혀 TV나 봐야 하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그러나 드론축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장비와 농기구 보관하던 창고만 있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드론 국가자격증 취득도 크게 어렵지 않다. 최소 3명은 모여야 경기 출전 자격이 주어지므로, 훈련차 모여 인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스포츠에 비해 체력 소모가 덜하다는 점은 특히 매력적이다.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하니 치매 예방은 덤이다. 게다가 유림어스 선수단은 ‘국내 유일 노인 드론축구팀’으로 여러 차례 매스컴을 탄 덕분에 응원해주는 팬들도 생겼다. 경기가 끝나고 관객은 물론 상대 선수단의 응원과 박수갈채를 받노라면, 승패와는 무관하게 성취감과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노년기에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 모든 감정이 유림어스가 도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최근에는 화순군청이 시행하는 지원 사업에 응모해 5000만 원의 지원금을 따냈다. 이 돈은 화순에 드론축구 정식 경기장을 짓는 데 고스란히 쓰일 예정이다. 지금 사용하는 연습장 크기가 작아 경기할 때 거리감을 잃은 경험이 아쉬움으로 남은 탓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드론축구를 즐기고픈 마음도 한몫했다.
건강한 열정이 옮겨붙은 덕분인지, 화순에선 지난 2월 새로운 선수단이 탄생했다. 40~50대로 구성된 유림어스 2기, ‘화순어벤져스’ 팀이다. 현재 6명이 모인 화순어벤져스와는 매달 셋째 주 월요일에 모여 합동 훈련 겸 대항전을 진행한다. 창단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젊어서 그런지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선배들은 내심 부러운 티를 낸다. 그래도 1기가 실력에선 훨씬 앞선다.
유림어스 3기이자 ‘국내 최초 여성 노인 드론축구단’의 탄생도 머지않았다. 유림어스 1기 선수단의 아내들이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작년에 드론축구 장비를 처음 맞출 때, 저희 선수단 모두가 아내 몫의 드론볼까지 미리 사뒀었죠. 3기가 창단되면 브라보에 가장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하 단장과 선수단이 호탕하게 웃었다.
아직 3부 리그에 속한 유림어스의 목표는 2부 리그 승격이다. 물론 갈 길이 멀다. 3부 리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야만 2부 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사전에 포기란 없다. 유림어스의 드론볼은 새로운 골대를 향해 오늘도 날아오르고 있다.
[TIP] 나도 드론축구 즐기려면?
1 자격 요건 드론축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4종 드론 국가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4종은 250g 이상 2kg 이하의 소형 무인동력비행장치에 대한 면허로, 온라인 교육만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다. 항공교육훈련포털에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무인동력비행장치 4종(무인비행기) 교육을 수강하면 된다.
2 비용 드론볼, 드론 배터리, 충전기, 조종기 등 드론축구에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려면 1인당 약 130만 원이 든다. 드론볼의 경우 필요한 재료를 구매해 직접 조립해야 한다.
3 선수단 창단 및 합류 드론축구단에 소속돼야 드론축구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거주하는 지역의 지회, 지부의 팀에 합류하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과 새로운 팀을 꾸릴 수도 있다. 경기 출전은 최소 3명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단 구성원도 3명 이상(수비수 2명, 공격수 1명)이어야 한다. 대한드론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선수단 창단 신청을 하면 된다. 그 외 드론축구를 연습할 수 있는 전국의 드론축구장은 대한드론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골프의 계절이 돌아왔다. 날이 따뜻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골프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어졌다. 하지만 시니어들의 골프를 향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 한 카드사가 골프장 이용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50~60대가 약 48%로 절반을 차지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넓어져 골프의 인기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골프 인구는 현재 515만 명으로 집계됐다. 500만 명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골프를 시작하는 시니어들이 많아질수록 골프 부상을 겪는 환자도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골프가 정적인 운동이라 부상이 없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주된 부상 종류는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다. 대한스포츠의학회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허리·몸통 부상이 28~3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선수 생활 내내 허리디스크로 고생한 것이 대표적이다.
골프로 왜 허리가 아플까. 골프가 편측·회전 운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골프채를 힘차게 반복적으로 휘두르는 동작이 가장 큰 원인이다. 회전 운동은 척추뼈 사이의 완충 작용을 하는 디스크(추간판)를 쥐어짜게 해 디스크 손상을 유발한다. 또한 편측 운동 특성상 몸의 한쪽만 근육이 발달해 신체 불균형으로 이어지는 등 허리디스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시니어가 이러한 부상에 노출될 위험이 20~30대보다 높다는 점이다. 디스크의 수분 함량이 노화에 따라 점점 줄어들고 탄력성을 잃어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분 함량은 80%지만 50대를 기점으로 7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척추 퇴행이 진행된 시니어일수록 골프 부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건강하게 골프를 즐기는 시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비거리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공을 멀리 날려야 한다는 욕심은 허리의 가동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동작으로 이어지고, 허리에 강한 충격이 순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힘껏 스윙을 반복한 후 허리 통증이 느껴지면 무리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스윙 전 충분한 스트레칭이다. 미리 관절과 근육을 늘려주면 스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충격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 골프장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으로 ‘몸통 돌리기 스트레칭’이 있다. 편안히 앉은 자세 혹은 서 있는 자세에서 손을 깍지 낀 채 머리 위로 쭉 뻗는다. 이 자세는 등과 허리 근육을 늘려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이어 가볍게 상체를 좌우로 4~5회 돌려준다.
이런 노력에도 골프 운동 이후 허리디스크의 전조 증상인 요통이 느껴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충분한 휴식과 냉찜질 등으로 초기 대처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척추 퇴행이 진행된 시니어라면 보다 면밀한 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요통을 가볍게 여기고 붙이는 파스 등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를 방치하면 디스크의 손상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허리가 약해진다. 이어 반복된 스윙으로 인한 충격에 디스크가 터져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허리 상태를 판단하기보다는 가까운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료와 이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을 중심으로 침치료와 약침, 한약 처방 등이 병행된 한방 통합치료를 통해 허리디스크를 치료한다. 특히 편측 운동으로 생긴 신체 불균형은 추나요법을 통해 해결한다.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손 또는 신체 일부를 이용해 비뚤어진 척추와 주변 근육을 적절한 방향을 밀고 당겨 신체 균형을 잡아주는 수기 요법이다.
이어 충격 등으로 경직된 근육과 인대는 침치료를 통해 긴장을 풀어준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 치료에 임상적 효과가 입증된 약침은 돌출 혹은 터진 디스크로 인해 생긴 염증을 빠르게 없애는 데 좋다. 여기에 뼈와 근육, 신경 재생을 돕는 한약을 체질에 맞게 복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번 주 골프 약속을 잡은 시니어들이여, 앞서 언급한 두 가지를 꼭 기억하자.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비거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그리고 스윙 전 몸통 돌리기 스트레칭을 하자. 즐겁게 취미로 시작한 골프로 골병 들 일은 없어야 한다.
허리 건강에 도움 되는 스트레칭
몸통 돌리기 스트레칭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서 있는 상태에서 깍지 낀 손을 머리 위로 뻗는다. 등을 쭉 늘려 몸을 이완시킨다. 이어 a상체를 좌우로 천천히 회전하는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이다. 여기서 시선은 최대한 정면을 향하도록 하고, 총 4~5회 정도 좌우로 가볍게 돌려주는 것이 좋다. 골프 하기 전 이 동작을 통해 뻣뻣한 상체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면 부상 방지에 효과적이다.
기역자 스트레칭 허리를 삐끗했다면 기역자 스트레칭을 추천한다. 이 스트레칭은 골반이 올바른 위치를 찾아가도록 도와줘 허리 만족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인 동작이다. 아울러 복근 발달에도 좋아 코어 근육을 향상시킬 수 있다. 먼저 상체를 숙여 의자 등받이 윗부분을 잡는다. 허리는 살짝 아치를 만들어 골반을 앞으로 내민 자세를 취한다. 이어 어깨를 아래로 지그시 눌러 허벅지 뒷부분이 이완되도록 하고 척추 만곡 형태를 약 15초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