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네 번째 순서로 ‘공인중개사’에 대해 알아봤다.
◇ 공인중개사, 왜 유망할까?
공인중개사는 오래 전부터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로 실질적으로 노년기 대비에 좋은 일자리다. 국가전문자격인 ‘공인중개사’는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고, 한번 취득하면 갱신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도전하는 데 무리가 없어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도 시도해 볼 만하다.
-김경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장
40대 이상 중장년은 오랜 사회활동 경험을 통한 대인처세술, 폭넓은 대인관계, 복합적인 인지능력 등이 성공적인 공인중개사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 직업전환의 부담이 적으며 소자본으로도 개인·합동사무소 중개법인 등의 설립이 가능하다. 소득의 경우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단기간 내에 기존 업무와의 소득 격차를 최소화 또는 상향할 수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은퇴 후 20년 이상의 사회활동을 준비 할 수 있는 평생직업이다.
-KCI 한국자격증정보원 ‘공인중개사’ 소개란
부동산중개사로도 불리는 공인중개사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직업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을 열어 운영하는 이들을 보면 중장년이 상당수다. 눈으로도 쉽게 확인될 정도로 중장년의 수요가 높은 직업임을 알 수 있다. 공인중개사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기투자자본(인테리어, 집기 및 업무시설 등)이 비교적 적게 들고, 진입 장벽이 낮다고 알려져 제2직업으로 염두에 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는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 공장, 토지 등의 부동산에 대해 거래 당사자 간 매매, 교환, 임대차 등의 득실 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고 중개한다. 부동산 이용과 개발에 대한 상담이나, 주택과 상가 분양 대행, 경매 대상 부동산에 대한 권리 분석, 입찰대리 업무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때문에 실무에서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대인관계 능력, 협상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개 의뢰를 받은 부동산의 지변, 평수 등을 파악해 매입자와 예정자에게 시세, 재테크, 향후 전망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장 답사나 시장 조사 등도 진행한다. 부동산이나 금융 정책, 세무 및 법률 지식, 부동산 경기나 동향 등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이 요구돼, 지식을 습득하는 데 흥미가 있어야 적성에 맞는다.
아파트나 주택 등의 경우 봄, 가을 이사철 주말에 고객이 많은 편이다. 고객의 여건과 편의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근무 시간은 다소 유동적이다. 영업 차원에서 시장조사나 매물분석, 온라인을 통한 고객 상담 등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부동산 현장 방문 외에는 특별히 체력 소비가 되지 않고,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아 나이에 제한 없이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의 관심이 높게 나타난다.
◇ 공인중개사, 나도 될 수 있을까?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중개 일을 하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 공인중개사 시험(국토교통부 주관)에 합격증이 필요하다. 시험은 1차와 2차가 있는데, 둘 다 합격해야(매 과목 100점 만점 기준 40점 이상,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 자격증이 발급된다. 시험은 연 1회 시행되기 때문에, 시험 일정을 잘 숙지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인중개사 시험의 경우,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1차를 합격해야 2차 시험 응시가 가능한데, 두 시험을 하루에 동시에 치를 수도 있다. 다만, 1차 시험에 불합격했을 경우 2차 시험은 무효 처리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나 여건에 따라 단기간에 1·2차를 동시에 대비하기도 하고, 시간을 두고 두 해에 걸쳐 각각 준비하기도 한다. 시험 합격률은 20~30% 내외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이 전무 하다면 사이버대학 등 관련 대학이나 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된다.
자격 취득 후에는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나 대학에서 위탁받아 시행하는 실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다면 부동산중개사사무실에 중개보조원으로 취업한 후 실무경험을 쌓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해도 된다. 중개보조원은 주로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부동산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꼭 부동산 관련 학력이나 전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 따르면 자격증 시험 준비나 취득 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협회) 관계자는 “이전에는 은퇴 후 창업 등을 목표로 한 중장년층이 시험 응시생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요즘은 개업공인중개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청년들의 응시율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창업의 목적 외에도 건설사 또는 분양사 등 관련 업계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 용도로 자격증을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 공인중개사, 도전을 꿈꾸고 있다면?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고, 진입 장벽은 낮은 만큼 제2직업으로 떠올려본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염두에 둘 부분이 있다. 먼저, 현재 공인중개사의 경우 과포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 수는 2023년 4월 30일 기준 11만 7786명이다. 통계청 집계에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는 2202만 2753명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당 수요 가구가 약 187명으로 계산된다.
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사무소당 가수요층을 300가구로 본다. 공인중개사는 자격 배출이 많고(2022년까지 52만 여 명),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개업공인중개사 수가 과포화 상태라 할 수 있다”며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 휴·폐업자 수가 1만 3217명에 이를 정도로 중개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최근 전세사기 등 불미스런 사회적 이슈에 따른 부담이나, 개업공인중개사끼리의 경쟁 구도와 갈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협회 관계자는 “타인의 거의 모든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을 거래하는 업종이므로 안전한 거래와 권리 이전에 신경 써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 윤리와 소명 의식도 필요하다” 며 “부동산 중개 업무는 다량의 정보 취득과 다양한 기법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동종 업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나만의 사무실 운영 및 홍보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전한 부동산 중개를 위해 타 중개사무소에서 일정 기간 소속공인중개사 등으로 활동하며 중개 기법을 익히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직업도 있어요!" 공인중개사 자격증 활용 직업 5選
[1] 부동산개발업자
· 유사 명칭: 부동산디벨로퍼(Developer), 부동산시행자, 부동산개발자
· 숙련 기간: 4~10년
· 하는 일: 사업 대상 부지의 입지여건, 주변수요 등을 분석해 적합한 부동산상품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용지구입, 인허가절차 진행, 자금마련, 건축, 마케팅, 분양, 입주, 정산, 사후관리까지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2] 부동산정비사업관리자
· 유사 명칭: 재건축정비사업자, 재개발정비사업자, 도시환경정비사업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사업시행자로부터 위탁을 받아, 조합설립 및 정비사업 동의, 조합설립인가 신청 등을 진행한다. 사업성검토 및 정비사업의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인가 신청, 분양 및 관리 처분계획 수립을 대행하거나 자문하기도 한다.
[3] 부동산경매인
· 유사 명칭: 부동산 경매사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법원 경매나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법인에 의해 시행되는 공매 등 부동산경매 시장에 나온 경매 물건에 대해 권리분석과 현장 확인 업무를 하고 의뢰인의 경매 참여를 지원한다.
[4] 부동산신탁관리원
· 유사 명칭: 부동산처분신탁관리원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부동산 소유주로부터 신탁청약을 접수하고, 신탁에 따른 내용을 설명한다. 신탁부동산에 대한 물건, 환경, 법적규제, 이용상황, 인근의 임대료 등을 조사하고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신탁부동산의 종합관리계획을 작성하고, 소유권이전 및 신탁등기를 한다.
[5] 부동산컨설턴트
· 유사 명칭: 주택상담원, 재건축상담원, 부동산상담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토지나 건물의 최적의 활용방안을 분석하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수집·분석한다. 부동산의 보유, 매매, 개발의 타당성을 검토하거나 개발 최적시설·최적규모를 판정, 투자수익성을 파악한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2020 한국직업사전'
다크 투어리즘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인 핵심 테마는 전쟁과 항쟁(식민지)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아직 생소한 개념인 다크 투어리즘을 어떻게 계획하고 즐길지 모르겠다면, 위의 두 역사를 중심으로 명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PART1. 항쟁의 역사 : 일제강점기
[1] 남산 국치의 길
남산은 낭만적인 야경이 돋보이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 통치를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당시의 상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 바로 ‘남산 국치의 길’이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눈에 띈다. 과거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인정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다. 해방 후 당시의 치욕스러움을 기억하고자 사라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어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향해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터를 둘러본 뒤에는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 한양공원을 찾는다.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으로, 당시 공원 입구에 세웠던 비석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옛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일부가 나온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조성한 신사로, 해방 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며 현재 우리가 아는 남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로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 이러한 역사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코스]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니 이 점 참고하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봐도 괜찮다.
[2]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하 서대문형무소)은 일제강점기 시절 4만여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곳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철거 논의도 이뤄졌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기능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관 형태로 복원됐다. 서대문형무소 하면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상징적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따스한 봄볕 아래 그림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외관과 비교해 내부는 삭막하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방과 고문실, 시구문 등을 복원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드러냈다. 당시의 수형기록표나 사진들을 보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모진 세월이 전해져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올 한 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이끈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를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독립운동가는 황기환, 이희경, 나용균이었다. 강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구나 윤봉길처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처음엔 생소했다. 세 분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준비한 김철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과거 서대문형무소는 인왕산, 안산, 무악재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 수감자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현저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 방문객들이 등산을 겸해 오시기도 한다. 아울러 실제 수감자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이 오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임을 꾸려 자체적으로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교훈여행(다크 투어리즘의 우리말)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분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신념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신 후에는 근처의 독립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등도 찾아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코스]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로,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PART2. 전쟁의 역사 : 한국전쟁
[1] 피란수도 부산 소막마을
지난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현재 부산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지속 연구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는 유독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 또한 피란기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높은 언덕까지 판잣집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선별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그중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도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2018,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 지정)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기 위한 검역소와 소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집들로 변모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한국의 근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산물인 셈이다.
[코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이다. 하루에 몽땅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피란민들의 삶을 음미하며 살펴보길 바란다.
[2] DMZ 평화의 길
시간을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추천한다. 도보 여행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테마 코스 중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조성한 길이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꼬박 1년 뒤인 2019년 4월 27일 강원도 고성 구간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로써 일반 시민들도 DMZ(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철원, 파주, 양구 등 구간이 속속 개방되며 현재 총 11개 코스가 마련됐다. 전 구간 예약탐방제(두루누비 사이트 이용)로 운영되며, 올해는 대체로 4월 하순부터 예약을 시작해 11월 전후로 마감될 예정이다.(여름 혹서기 및 장마 기간 임시중단)
[코스]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코스, 고성 B코스 *현재 고성B코스는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Interview]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길”
최근 유행인 ‘다크 투어리즘’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해온 이가 있다. 2017년 출간 도서 ‘다크투어’의 저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곳곳을 여행하다 다크 투어리즘에 눈을 떴다. 현재 그는 역사문화 여행 모임 ‘컬처클럽’을 7년째 운영 중이다. 모임을 통해 국내외를 누비며 직접 도보여행 길도 발굴한다. 저서에 소개된 '대한 제국의 길', '서대문의 길', '용산의 길' 등도 직접 개발한 다크 투어리즘 루트다. 그런 김 대표를 통해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Q. 중장년들에게 다크 투어리즘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역사가가 됩니다. 각자 역사의 증인이고, 역사평론가가 되며, 아마추어 역사가가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역사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관광을 하면 화려한 곳, 훌륭한 곳, 멋진 곳을 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하죠.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두운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dark tour)도 필요합니다. 이런 곳에서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역사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실패에서 얻는 교훈, 재발방지 다짐을 하게 되는 거죠.
Q. 다크 투어리즘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에티켓이 있을까요?
A.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자신의 단견으로 이해해버리거나 현지에서 가볍게 말하기 쉽니다. 즉 공부가 필요하죠.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도 만날 수 있는데 역사를 모르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목소리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Q. 해외와 비교해 국내 다크 투어리즘이 지니는 특징이 있나요?
A. 예전에는 한국에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이 없고, 유적, 유물이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지요. 근래에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하고, 기념관, 유적지, 친절한 안내판, 간단한 표지석 등을 두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현재는 외국과 수준이 비슷해졌습니다. 다만 몇몇 장소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둡게 만들어져 있어 과도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Q.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다크 투어를 할 때에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 군데, 스무 군데 리스트를 만들어 많이 다녀왔다한들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알려는 호기심, 진정성이 바탕이지요. 다크 투어리즘이 좋다고 너무 연달아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여행지와 섞어서 다니길 권합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말레이시아는 흔히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영어를 사용하고, 사회적 인프라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며 부동산 투자가 활발한 점 등을 들어 은퇴자를 위한 해외 이주 정보를 다루는 미국 매체 ‘인터내셔널 리빙’에서 ‘은퇴자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로 여러 차례 추천된 바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6.5%이다. 그러나 5년마다 장노년 인구가 약 2%씩 증가해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노인을 위한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2020년 열린 온라인 포럼 ‘고령친화도시: ’MyAgeing™‘과 함께 가꾸는 미래의 삶’에서는 은퇴자, 연금 수령자, 노인을 위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시니어 주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패널들은 말레이시아의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새로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은 채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으로 쫓겨난 시민들이 나이가 들어 필요한 때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나중에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
노인들 또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Aizan Hamid 연구교수는 포럼에서 “말레이시아의 노인 약 77%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늙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노인들이 연령이나 소득, 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의 지역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페락(Perak)주 타이핑(Taiping)시
페락 주 서부의 타이핑은 고원 휴양지인 라루트 언덕을 비롯, 녹지가 많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에 타이핑 시는 노인에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지역 이니셔티브를 조성하고,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GNAFCC)에 가입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는 이동 시 진동을 최소화한 고령자 및 장애인 친화적인 중형 전기버스(EV-Bus)를 운행하고 있다. 도시 개발을 위한 ‘페락2030비전’ 중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도 포함돼 최근 관광지를 경유하는 노선을 신설했으며, 시범 운행 이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는 할인된 가격에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을 예정이다.
또한 노인과 장애인 등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타이핑 시의회와 말라야 국립 대학교는 2017년 ‘마치노에키 프로젝트’를 타이핑에 도입했다. 마치노에키란 일본의 쇠퇴한 도시 중심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된 프로젝트다. 지역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해 화장실이나 휴식 공간 등의 시설이나 지역에 대한 지식, 안내를 제공한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고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굴러가는 이 프로젝트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마을 환경 정비로 인한 보행성 개선으로 주민들이 차를 타는 대신 걷게끔 이끄는 효과까지 수반한다. 타이핑 시의회는 이러한 정책들과 그로 인해 축적한 지식들을 푸트라자야시 노인 협회에 공유하며 고령친화도시 조성 프로젝트에 있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페낭(Penang) 주정부와 페낭2030비전
페낭주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의료관광지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은퇴 이민지 중 한 곳이다. 또한 페락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으로, 2020년 60세 이상 인구는 14.9%이나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6.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는 2018년 ‘페낭2030비전’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활동적인 노후’(Active aging)가 중요 요소로 포함됐다. 페낭학회(Penang Institute)에 따르면, 주정부는 이를 위해 고령친화적 인프라를 강화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등의 형태로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페낭2030비전이 제시하는 장노년 친화도시 정책’ 보고서가 소개하는 내용에 의하면 페낭 주정부는 ‘안녕 디지털’(#Dah Digital)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클리닉’(Digital Clinic)에서는 동영상 편집기술이나 구글렌즈 사용법, 스캠, 피싱 등 사이버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등을 무료로 교육한다. ‘디지털 페낭’(Digital Penang)의 2022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캠페인으로 2022년 101개의 강좌가 개설됐으며 총 2465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다.
많은 사람이 직장 위치, 자녀의 교육 등을 고려해 거주 지역을 결정한다. 그러나 은퇴하거나 자녀가 독립하면 거주 환경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로망만을 좇아 섣불리 판단하면 낯선 동네와 이웃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원래 살던 집을 가꿔 활용도를 높여보는 건 어떨까? 내 취향과 기준에 꼭 맞는, 실속 있는 개조로 개성 있는 삶을 누려보자.
40·50세대에게 ‘은퇴 후 어디서 살 계획입니까?’라고 물으면 종종 ‘공기 좋은 지역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거나, ‘실버타운에 들어갈 생각이다’, ‘따뜻한 나라로 이민 가서 푹 쉬고 싶다’ 등의 대답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자연에서 온전한 쉼을 누리고자 전원주택을 지었다가 근처에 병원이 없어 고생하거나, 실버타운을 알아봤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익숙한 지역 풍경과 커뮤니티를 뒤로한 채 ‘한적하고 공기가 좋지만 편의시설은 적절히 갖춰진, 너무 낯설지 않고 적당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을 찾기란 꽤 까다롭다. 그렇다면 노후에 살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이사나 시설 입주 대신 고려해볼 방법은 주택 개조와 인테리어다. 집을 나의 신체적·정신적·심리적 상태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내 집에서 나이 들기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신체적 상태를 고려해 집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AIP는 가진 여건이 변하더라도 살던 집, 연결돼 있던 지역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나이 드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급적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시설로 옮기지 않고, 스스로 돌보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3.8%가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했다. 그중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밝혔다. 내 집만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꼭 옳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개조 계획을 잘 세운다면 안전하게 오랫동안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속해 있던 지역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들이 오랫동안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일본 정부는 ‘최후까지 내 집에서 산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고령자 주택 리모델링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문턱을 없애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나 미끄럼 방지 공사, 미닫이문 설치는 기본이다. 지자체가 20만 엔(약 200만 원)까지 보조해준다. 영국의 주택 리모델링 서비스 ‘루비 슬리퍼 솔루션스’(Ruby Slipper Solutions)는 단순 시설 개조뿐 아니라 시공 완료 후 활용 상태를 점검해 보완해준다. 전문 요양보호사 치료 서비스도 원한다면 연계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민을 아우르는 주택 개조 서비스가 마련돼있지 않다. 관련 인테리어 시장 또한 발달돼 있지 않다. 하지만 노화 혹은 인지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순발력이 떨어져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직 건강한데, 집을 벌써 고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점이 오기 때문에 예방이 필요하다. 작은 요소부터 손본다면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삶의 질이 높아진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40대일지라도 문턱을 없애면 걸려 넘어지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면 아이의 생활을 도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 개조가 고령자뿐 아니라 그 외의 가족에게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집을 정비할 마음을 먹었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버리기, 정리 정돈과 같은 ‘밑작업’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바닥이나 책상, 의자에 마구 놓아둔 물건은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어서다. 일본 부동산·주택 플랫폼 SUUMO에 따르면, 물건이 많을수록 생활이 더 윤택해진다는 환상은 버리는 게 좋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쌓아두기보다 오히려 비웠을 때 물건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없어져 해방감을 얻게 된다.
추억이 쌓인 물건들을 영 버리기 힘들 땐 ‘15분에 27개 버리기’를 제안한다.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두고 쓰레기봉투를 든 채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제한 시간 동안 27개의 물건을 버리는 방식이다. 시간과 개수는 마음대로 바꿔도 좋다. 다만 천천히 보거나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물건을 매만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렇게 ‘8할의 물건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중적으로 비우는 훈련을 반복하면 된다. 흩어진 물건을 잘 정리하고 수납하면 집안일의 효율을 높이고 안전한 이동 동선을 만들 수 있다. 시간은 1회 15분, 하루 5~8회 정도. 옷장, 거실 서랍과 같이 정리할 장소는 하루에 한 군데를 정해 실시한다. 단번에 하려고 하면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정리 정돈을 끝마쳤다면 인테리어를 바꿀 차례다.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인테리어의 모든 과정을 종합 업체에 맡기는 ‘턴키 공사’, 집주인이 직접 자재를 구매하고 시공 전문가를 선택하는 ‘직영 공사’, 직접 시공하는 ‘셀프 공사’로 나뉜다. 개인의 성향과 예상 비용에 따라 방식을 결정하면 된다. 인테리어에 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면 업체에 위임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믿을 만한 곳인지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인테리어 공사 범위와 목적,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더불어 스마트홈 기술을 적용하면 생활이 안전하고 편리해진다. 자녀의 독립, 사별, 이혼 등으로 혼자 거주한다면 위험에 노출됐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 각종 전자제품을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고, 집 안 곳곳에 비상호출기를 설치하면 좋다. 자동문이나 센서등은 개인의 반응 시간에 맞게 작동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생활 가전 제품이나 출입문 근처에 움직임 감지 센서를 설치해 두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활동 내용이나 위급 상황을 알릴 수 있다.
노후를 윤택하게 해줄 주거 디자인 6가지
신체의 노화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가족 구성원이 떠나거나 은퇴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을 테다. 다양한 생활 방식을 종합해 50대 이후 세대가 참고할 만한 인테리어를 소개한다. 인테리어 상담 전 해당 내용을 참고해 업체와 소통해보자.
1 활기찬 느낌의 밝은색을 사용하자
젊은 시절과 달리 언제나 활동적일 수 없고 시력도 점점 저하된다. 명도가 높은 색을 사용해 시야를 환하게 만들면 주변의 미세한 물건을 발견하기 쉽고, 태양광이 실내로 가득 들어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분도 전환할 수 있다. 다만 새하얀 벽은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노란빛이나 붉은빛을 띠는 흰색을 선택하자. 처마나 벽에 명도 높은 옅은 분홍을 사용해도 좋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운 색을 띠기 때문에 실내에 있는 사람의 안색도 완화된다.
2 촉감이 좋은 따뜻한 소재를 선택하자
석고나 나무 등의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석고는 조습과 항균 효과, 휘발성 유기 화학물의 흡착과 분해 기능이 있다. 더불어 신발을 신거나 걸을 때 주위에 있는 사물에 손을 얹을 일이 많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가구나 벽지 소재는 차가운 메탈보다 부드러운 나무가 적합하다. 대신 부상을 입지 않게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3 안전 대책도 디자인의 일부다
현관이나 복도, 화장실에 난간을 설치하거나, 앞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편이 좋다. 턱과 계단은 되도록 없애고 경사로로 바꾼다. 또한 기초 보수공사나 벽지를 교체할 시기가 됐을 때 난간의 아래와 위에 다른 색 벽지를 붙여보기를 추천한다. 명확하게 난간과 경사로, 방향을 인지할 수 있어 안전하고 인간친화적인 인테리어가 될 것이다.
4 가구의 디테일에도 신경 쓰자
젊은 시절과는 다른 가구 선택 기준이 필요하다. 손잡이는 끌어당기거나 잡을 때 손에 쉽게 들어오는 크기여야 한다. 무게감 있는 의자는 앉을 때마다 끌어내기 힘들고 부담된다. 회전의자 등 앉기 쉽고, 팔걸이가 소매에 걸리지 않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서랍에는 부드럽게 열리고 갑자기 닫히지 않게 조정하는 소프트 클로저를 붙여 약간의 힘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게 하자.
5 ‘눈부심’을 피하자
식탁이나 책상 위처럼 직접 빛이 필요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간접 조명을 기본으로 한다. 가장 피해야 하는 건 눈부심이다. 저녁 식사부터 취침까지 하루 일과에서 본인이 조금씩 조도를 낮출 수 있도록 해두는 게 좋다.
6 중요한 것은 ‘그 사람’다운 집이다
평생 살 집은 무엇보다 본인에게 맞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취향과 필요가 분명하다면 꼼꼼히 계획해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도예를 좋아한다면 거실의 넓이를 줄이고 작업장을 만든다든가, 음악 감상을 위해 거실을 오디오룸으로 바꾼다든가 말이다. 그동안 바빠서 할 수 없었던 일에 집중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마음에 드는 것들에 둘러싸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보자. 계획 단계에서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추천한다.
참고 주거 관련 플랫폼 ‘houzz’(하우즈)
예약된 시간에 병원을 갔는데 한참 흘러서야 진료를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통증에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아도,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처지일 때도 있다.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기에, 당연한 듯 참게 된다. 그러나 이 당연한 기다림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칼럼 한 편을 보내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연함이 강자의 일방적인 생각이거나, 약자가 수긍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공감이 아닌 폭력이 된다. 우리는 종종 상대와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당연함도 착각일 수 있다. 특히 병원에서 의사들은 환자와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배가 망가져 침몰하면 환자는 물속에 잠기더라도, 병원과 의사는 안전하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이 정한 원칙을 진심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치유라는 약속을 믿기 위해 그저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정신과 교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10년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간병 보호자로 살았다. 그 경험을 담은 책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그는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이란 공간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존재이고, 당연하게 요구되는 그 기다림은 자신들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한 말기 암 환자의 웃음
60대 중반 여성 말기 위암 환자가 있다. 완치라는 희망으로 병원이 요구하는 그 모든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50대를 병원에서 보냈다. 10여 년 동안 셀 수 없는 검사를 했고, 위를 모두 잘라냈고, 힘든 항암 주사도 견뎠다. 하지만 병은 멈추지 않고 몸의 다른 장기로 번져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던 당연함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됐다. 기적과 같은 가능성을 얘기하며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는 의사의 제안을 처음으로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치료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환자의 당연한 도리를 거부한 순간, 담당의사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 했고 동시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은 병원에서 사라졌다. 병원이란 곳은 고통의 크기보다 치료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그 당연함을 말기 환자가 되어서야 새롭게 알게 됐다.
호스피스를 권유받았지만 병원에 이골이 난 그는 그냥 집에서 지냈고, 이내 복수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복수 천자라는 것이 간단한 시술인 줄 알았지만 과정은 항암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미리 혈액검사를 하고, 오래 기다려 짧은 외래진료 후에 주치의의 복수 천자 처방이 떨어지면, 다시 영상의학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초음파 검사로 주삿바늘로 찌를 부위에 표식을 받고, 주사실로 가서 누워있으면 한참 뒤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와서 배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지 8시간 만에 첫 복수 한 방울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와 탈진으로 이틀을 드러누운 후에야 그와 남편은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호스피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넘은 세월을 함께 했던 병원과 작별했다. 그가 호스피스 신청을 위해 우리 병원에 들고 온 진료의뢰서에는 위암과 다발성 전이 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병원 공포증’이라는 소견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만큼 병원이라면 그는 진저리를 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그가 호스피스를 찾은 진짜 이유는 어디선가 호스피스에 가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복수 천자를 위한 것 외엔 입원치료는 물론 그 어떤 주삿바늘이 몸에 닿는 것도 거부했기에 호스피스팀이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로 연결됐다.
나는 가정형 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배를 휴대용 초음파로 간단히 살핀 후 바로 복수 천자를 시작했다. 1시간 동안 무려 4ℓ 정도 되는 복수가 빠져나오자 그는 ‘허파에 바람 든 사람’마냥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웃음소리를 냈다. 병원에서 반나절을 허비해야 받을 수 있는 이 간단한 시술을 내 집 내 침대에서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복수 증가 속도가 빨라 최소 주 2회 복수 천자를 해야 하는데, 인력은 부족하고 방문할 환자는 많고, 그의 집은 너무 멀어 규칙적으로 주 2회 방문이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그의 거동이 자유롭고, 남편은 은퇴 후 여유가 많으니 주 2회 내 진료실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 나는 그에게 그동안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 약속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가장 한가한 시간에 맞춰 그는 내 진료실로 방문했고, 나는 즉시 비어있는 옆 진료실에서 복수 천자를 시행했다. 모든 것들은 사전에 준비해뒀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복수 천자가 이뤄졌다. 1시간 안에 4~5ℓ의 복수가 빠져나가면 그는 날 듯한 가벼운 몸이 되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체중이 38㎏ 남짓인 그에게 4~5㎏의 복수를 배에 담고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는지 그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꼬박꼬박 방문했다.
원칙의 당연함이 아닌 ‘배려’가 필요한 때
그렇게 석 달이 흘러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고,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그는 조금씩 수척해져 갔다. 그만큼 월요일과 목요일의 만남도 익숙해졌고, 병원 공포증이 있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이 두 번의 외출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는 복수 천자를 시행하기 전 늘 습관처럼 애원하듯 뱃속에 있는 복수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최대한 뽑아달라고 했다. 마치 복수를 증오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수척함이 맘에 걸려 병원에 온 김에 영양제 주사나 알부민 주사라도 맞고 가라고 부탁해도 그는 말없이 씨익 웃으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나는 또 어김없이 주사라도 맞고 가라는 부탁을 거절당한 후, 왜 그렇게 약이나 주사는 거부하고 복수에 대해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이제 몇 개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처음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불러주진 않고, 갑자기 배가 산처럼 커지더라고요. 이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해요. 선생님, 조금 더 지나면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럽고 힘든 때가 오겠죠? 사실 요즘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어야 할 텐데, 과연 이게 언제 끝나는 걸까요? 그걸 빠짐없이 다 겪어야 하느님이 불러줄까요? 그냥 어디가 더 망가지더라도 상관없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또 한 달이 흘렀다. 난 가끔 복수배액관을 심는 시술이나, 알부민 주사를 슬며시 권유했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늘 똑같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복수를 뽑아달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봄의 문턱에서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그는 매우 힘들어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알 수 없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모든 뼈마디와 뼛속까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전에 받아놓은 마약진통제가 있지만 그전부터 자신은 그 약이 전혀 듣질 않기에 애초에 진통제를 챙겨 먹을 생각은 포기하고 그냥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그의 태도에 속상해 오래 살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아픈 걸 참지 말라며 타박했다. 그리고선 다른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제발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그는 광대가 더 도드라진 수척해진 얼굴에 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 아프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견딜 수 없게 아픈 게 반갑기도 했어요.”
난 아픈 게 반갑다는 그의 궤변에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더 나빠진 거잖아요.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워졌어요. 이제야 하늘이 나를 불러주는 것 같아요.”
나는 차마 그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그가 매일 겪었을 고통과 죽음을 향해가는 고독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기에 그는 더 나빠진 몸이 오히려 반갑다고 하는 걸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만나러 1주일에 두 번 병원에 오는 게 제 유일한 외출이고 즐거움이에요. 세상에는 저한테 친절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 병원에 올 때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쉽고 편하게 이뤄지니 너무 신기해서 지난 10년 동안 쌓였던 화가 다 풀리는 것 같아요. 몸은 아파도 잠도 잘 자고 마음은 너무 편해요.”
10년 동안 참았다는 말이 서글펐다. 우린 그동안 병원의 규칙과 절차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믿었기에 환자들도 기꺼이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공감대 위에 의료진과 환자는 수평적인 눈맞춤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매우 달랐다. 우리는 직업이었지만, 환자는 자기 삶 전체를 짊어지고 우리가 당연하다 그어 놓은 그 선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또 참으면서 말이다. 더 이상 목숨에 연연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할 수 있게 된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외치는 당연함의 본질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한 가지 깨달음은, 세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당연함이 존재하지만 그 당연함을 넘어서는 친절을 우리는 배려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원칙의 당연함보다 배려의 당연함이 지금까지 세상의 질서를 지켜 온 진짜 버팀목은 아니었을까?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09년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그가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제를 사회, 역사, 철학, 의학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펴냈다. 현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지며 골프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봄 시즌은 골프 성수기에 해당하는 만큼 일부 골프장에서는 부킹 전쟁이 빚어지기도 한다. ‘골프 부킹이 능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와 함께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챔피언십과 US오픈도 얼마 남지 않아 골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PGA 투어의 경우 스포츠스타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즈 토너먼트에서 기권을 선언하는 등 갖가지 이슈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기권을 선언하게 된 배경으로는 건강 상의 이유가 꼽혀 골퍼들의 건강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흔히 골프는 정적인 운동인 탓에 부상 위험이 적은 스포츠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스윙을 편측으로 반복하는 과정에서 허리에 부담이 누적돼 근골격계 질환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의 도움말로 봄철 골퍼들의 척추 부상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법들에 대해 알아보자.
골프 라운딩 후 이어지는 허리 통증…원인과 주의해야 할 질환은?
골프는 한쪽 방향으로만 몸을 회전하는 편측운동으로 허리 부상이 잦은 것이 특징이다. 몸의 한쪽 근육만 비대칭적으로 발달해 신체의 균형이 깨지게 되며 이는 골반과 허리에 부담을 준다. 또한 골프채를 힘차게 휘두르면 척추뼈와 뼈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디스크(추간판)가 비틀려 손상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심할 경우 디스크가 돌출 혹은 파열되는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와 같은 근골격계 부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허리디스크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해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따라서 허리 통증이 심해지거나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서둘러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은 “온화해진 날씨에 본격적으로 골프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허리는 프로 골퍼들도 흔히 다치는 부위인 만큼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며 “만약 라운딩 후 허리 주변으로 통증이 심하다면 운동을 강행하기보다는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들에게 호발하는 ‘허리디스크’, 수술이 능사는 아냐
유명 골프선수들 중에도 허리디스크를 겪은 이들이 많으며 타이거 우즈 또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타이거 우즈가 개인 교습을 받을 정도로 완벽한 스윙자세로 유명한 스티브 스트리커 선수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신인왕으로 불리는 윌 잴러토리스 선수도 허리디스크가 도져 수술 후 이번 시즌을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허리디스크 환자 중에는 수술치료를 택하는 이들이 많다. 통증을 없애고자 급하게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 후 통증이 재발하거나 기능장애가 개선되지 않는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이라고 한다. 수술 형태에 따라 낮게는 10%에서 높게는 40%의 발생 률을 보이며 수술이 거듭될수록 성공률도 현저히 낮아진다.
실제 타이거 우즈의 경우 4번의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음에도 증상이 재발해 5번째 수술을 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여러 번의 슬럼프를 보냈으며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인해 경기를 기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허리디스크 재발 및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침습적 치료에 대해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에 한방통합치료 효과적, 라운딩 전후 스트레칭 필수
우리 몸의 대들보라고도 불리는 척추의 건강이 악화되면 삶의 질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조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 튼튼하게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 침치료, 한약 처방 등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한방통합치료를 통해 허리 통증 및 허리디스크를 치료한다.
특히 한방통합치료의 경우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 치료에도 유효성을 보이며 이 같은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저널 ‘임상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Medicine)’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방통합치료를 실시한 결과 허리통증 숫자평가척도(NRS)가 입원 시 중등도 이상의 통증인 5.77에서 퇴원 시 경증 수준의 3.15로 감소한 것이 확인됐다. NRS는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0~10 사이 숫자로 나타낸 지표로 숫자가 클수록 증상이 심함을 의미한다.
골프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라운딩 전후로 충분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이 되는 동작으로는 ‘대퇴사두근 이완 스트레칭’이 있다. 먼저 무릎과 발등을 대고 척추를 바르게 세운 뒤 오른쪽 무릎을 90도 각도로 세운다. 이어 양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린 후 무게 중심을 천천히 앞으로 이동시킨다. 15초간 자세를 유지한 다음 반대쪽도 동일하게 3회씩 실시하면 허리와 골반 주변 근육이 이완되면서 뻐근한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은 “이 외에도 골프공을 줍거나 티를 꽂을 때 허리뿐만 아니라 무릎도 같이 구부리는 등 척추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봄철부터 척추가 부상당하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해 안전하고 즐겁게 골프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제천(69, 영동자연호두농원)이 아내와 함께 영동군 산골로 귀농해 호두나무 농원을 경영한 지 올해로 15년째. 농사 기술도, 안목도 푹 익었을 연륜이다. 성취한 것의 수효가 드물지 않을 경력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소득은 여전히 신통치 않다.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해볼 겨를 없이 부지런히 뛰었지만 손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구겨진 기색이 없다. 웃음이 흔하게 터져 나온다. 난처한 현실을, 남모를 애환을 얼버무리는 웃음이라기보다, 불운과 부진을 통째 이의 없이 받아들여 차라리 긍정하는 심리의 소산일 테다. ‘뭔가 미묘한 간계가 침투해 나를 고생길로 데려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김제천은 귀농으로 치르는 홍역의 책임이 일면 섣불리 일을 저지른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제천의 농원은 완전히 외진 산중에 있다. 마을은 저 너머 멀리에 있어 고독을 벗 삼기에 적격인 곳이다. 숲속의 공인된 가수들인 산새들만 이따금 지지재재 노래할 뿐 별반 들려오는 게 없다. 산세가 기차게 수려한 것도 아니라 경관에 넋 놓고 종일 해찰하는 폐단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즉 잡념 없이 일에 홀린 듯, 종일 농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기에 딱 좋은 입지다. 게다가 김제천은 ‘뭐든 자청해 덤벼든 일에는 갈 데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의 소유자다. ‘멍 때리기’나 게으름 피우기는 당최 적성에 맞지 않다. 해서 늘 일에 묻혀 살아왔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을 쓰겠다는 투로 부단히, 부지런히, 농사 하나에 전념하며 15년 세월을 살았다.
그는 대전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귀농했다. KT에 근무하다 뜻한 바 있어 명퇴를 하고 이 후미진 산골짝에 들어왔다. 애초 농사에 입문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물 좋고 산 좋은 시골에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며 한가하게 살고 싶었던 거다. 유유히 노닐기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서 인생의 가을을 참신하게 누리고자 했다.
“귀농보다 귀촌하는 기분으로 이곳에 자리 잡았다.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내려온 게 아니었다. 부부 둘이 먹고살기에 지장 없을 정도의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농업 소득을 바랄 이유가 없었다.”
터는 어떻게 마련했나?
“귀농 전에 3만 평 규모의 임야를 사들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한적하게 살기에 좋은 곳이라서. 그저 소소하게 텃밭 일구고, 가족이 따먹을 수 있을 정도의 몇몇 과일나무를 기르며 살기에 적당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땅을 살 때엔 신중하게 고민부터 하라는 충고는 고대 로마의 ‘농업론’에도 나오더라. 당신의 얘기는 널따란 임야의 활용 방안을 구상하지 않은 채 덜커덕 사들였다는 걸로 들린다.
“별 생각 없이 매입했다. 면적이 넓은 데다 가격도 싼 편이라 일단 사들였으니까. 그렇게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서 감나무, 포도나무, 다래 등을 몇 그루씩 심었다. 도시에 사는 손자들을 가끔 불러들여 자연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별 할 일 없이 지낸다는 게 예상보다 따분했다. 성격상 마냥 놀면서 지내지 못하겠더라고. 도시에서와 달리 일에서 해방돼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 있었지만, 딱히 몰두할 일이 사라지자 갑갑증이 몰려들었다. 그래 시작한 게 호두 농사다.”
호두를 작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작목 선정을 위해 임업진흥청 같은 곳에서 농업교육을 받았는데 호두 농사를 권했다. 임야를 이용한 과수 농사 가운데 호두가 유망하다는 얘기였다. 여느 과수와 달라 나무를 소독해주지 않아도 되는 등 관리와 수확에 용이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결 쉽고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작목이라는 거였다. 이러한 홍보에 이끌려 호두 농사를 시작한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어떻게 다르던가?
“재배부터 생산까지 일반 과수 농사에 필요한 공정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퇴치가 어려운 외래 해충의 발생에 따른 피해와 어려움이 컸다. 호두나무가 1000그루로 늘어나면서는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힘겨웠다. 다른 과수들은 관련 기관에서 생산물을 수매해주지만, 호두 유통엔 그런 시스템조차 없다는 것도 뒤늦게 안 약점이다. 이래저래 작목 선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착오가 있었던 셈이다.”
귀농 교육장 강사들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가 흔하던데.
“강사들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는 밝다. 그러나 실제 상황엔 둔감하다. 농업의 현장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는 거. 나는 이러한 정황을 미처 몰랐다.”
김제천은 귀농의 목적을 또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로 호두 농사에 뛰어들었다. 물샐 틈 없는 사전 준비와 구상을 하고도 일이 이상하게 풀려나갈 수 있는 게 귀농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그는 예상하지 못한 곤란을 수시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성실한 근로와 기민한 머리로 상황을 돌파하길 거듭했지만, 어쩌면 그의 내부에 풍성하게 서려 있을 강인하고 낙천적인 기질에 힘입어 주저앉는 시늉조차 해본 적이 없지만, 15년간 흘린 비지땀과 남모를 고뇌의 총량은 아마도 드럼통에 담고도 넘칠 정도일지도.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고달픈 노역은 임야의 토질을 보강하는 데에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땅 거죽 하부엔 온통 돌투성이더란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던 것. 해서 그는 땅을 파 돌들을 끄집어냈다. 큰 돌은 정으로 깨부숴 파냈다. 그러곤 퇴비를 듬뿍 묻어주는 작업까지 손수 다 했다. 지하에 일일이 배관을 하는 관수 시설도 필수였다. 허리 휘어질 고생이 자심했을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야생 짐승들의 훼방도 그를 괴롭혔다지.
“멧돼지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열매를 먹기 위해 호두나무 줄기를 마구 찢어놓더라. 청설모, 삵, 담비, 때까치 등도 방어하기 어려운 애들이다. 특히 무리 지어 날아와 호두 열매를 노련하게 파먹는 때까치의 실력엔 당할 재간이 없다.”
감전 효과를 발휘하는 전선을 설치하고, 심지어 대포 쏘는 소리를 내는 장비까지 동원해 방어하는 농가를 보자면 농사라는 게 실로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옛날 전통사회의 농부들은 짐승들과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먹는 걸 관습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게 차라리 현명한 걸까?
“딱히 방비책이 없다. 그런데 짐승들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야야! 애들아! 적당히 먹고 가라. 너희들이 먹고 남은 걸 우리가 거두면 된다!’ 이렇게 체념하고 그냥 놔두는 거다. 그게 상책이라 생각해서다. 고만한 일로 속 끓일 게 뭐 있겠나?(웃음)”
호두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어떤 것일까?
“호두가 훼손되지 않게 열매를 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이건 기계 작업이 불가능하다. 대나무 장대로 조심스럽게 털어야만 한다. 호두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일일이 끄집어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펜치를 들고 하나하나 껍질을 까 형태가 손상되지 않도록 분리한다. 세심한 손놀림이 필요하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겨울철엔 주로 아내와 함께 이 작업을 한다. 농한기가 없는 게 호두 농사다."
연간 순수익을 말해줄 수 있나?
“800만 원쯤 된다.”
저런! 너무 적다.
“호두 농사의 수익성이 이렇게 열악하다. 그러니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나?(웃음) 잘나가는 포도 농가나 복숭아 농가의 수익에 비하면 10%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연금이 있어 의식주 생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귀농하려는 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농사로 돈 벌기 어렵다는 거! 연금이라거나 믿을 만한 게 없다면 아예 시골에 오지 말라는 거!”
원점으로 돌아가 귀농을 다시 한다면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싶지?
“복숭아 농사 정도가 좋겠지. 복숭아가 이 지역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귀농하려거든 부디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 생산 여건과 유통 구조가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형편이 된다면 귀농보다 귀촌을 해 농사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게 현명하다.”
성장하는 나무들의 신비로움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기. 족쇄 없는 영일(寧日)을 보내기. 그는 그런 걸 원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원했던 삶과 현재의 삶이 상당히 불일치한다. 그렇다고 낙심으로 찡그리고 살면 우습다. 별처럼 마냥 빛나는 삶이 어디에 있겠나. 그는 15년간 정당하게 일하고 호두나무들을 공정하게 대했다. 따라서 여전히 당당하다. 내가 기죽을 일 있나 봐라, 하듯 부진한 행진을 해온 호두 농사에 새삼 발동을 건다. 으슬으슬 진저리칠 만한 현실이지만 이왕 내친걸음 끝까지 가보겠다 한다. 농사 기술이야 이미 일취월장했다. 크고 알맹이가 꽉 찬 고품질 호두를 생산한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덕분에 배우고 깨달은 게 많다. 궁리 끝에 늘 도달하는 건 반성이더라. 삶도 농사도 반성으로 돌아보면 얻을 게 많다.”
산중에서 반성을 일삼아 뭔가 환해지는 게 있다면 그게 도인(道人)인데?(웃음)
“어! 내가 도통하려나? 하하하. 여하튼 시골의 삶을 로망으로 삼은 이들이 많지만 돈 욕심을 다 내려놓지 않고선 어렵다. 귀농이 곧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의식주 걱정 없고, 몸 안 아프고, 게다가 괜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에 매달고 산다면 그보다 나은 게 있을까.
“내가 감성적인 인간은 아닌데 산골에 살다 보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자식처럼 아끼며 기르는 호두나무들이 우렁차게 성장하는 걸 바라보면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건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재미에 내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호두 농사에 헌납한 15년 세월. 말 못 할 고통이 왜 없었으랴.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고통스러워야 살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통도 지옥도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김제천이 주는 귀농 Tip
•시골 생활에 낭만적인 로망을 품은 이들이 많지만, 현실의 시골은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자.
•무턱대고 집이나 땅부터 사는 건 위험하다. 사전에 1, 2년 정도 농촌 빈집을 빌려 살아본 뒤 적응 가능성부터 판단하라.
•부부가 뜻이 맞지 않은 채 귀농하거나 단신 귀농은 금물이다. 정착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임야에 농사를 지으려 할 경우엔 인허가 사항부터 꼼꼼히 점검하고 진행하라. 지자체의 농촌활력센터를 찾아 문의하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농산물 유통을 위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하라. 좋은 농산품을 생산해도 유통의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숱하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인공지능 열풍이 불며 이제 막 대중화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특히 노인 돌봄 분야에서는 그 중심에 SK텔레콤이 있다. 2019년 4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노인 돌봄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 이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동안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SK텔레콤이라는 기업이 이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내가 알고 싶다면 회사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편하다. 인공지능 돌봄서비스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는 ‘소셜세이프티넷’팀으로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 지배구조 개선) 추진’ 산하의 ‘ESG 얼라이언스’ 소속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 서비스는 지속 가능한 경영 차원의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안전망 역할 차원에서 돌봄이 필요한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석된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인식 향상 보람
그렇다면 그간 무엇을 이뤄냈을까? 초창기부터 개발에 참여한 정승룡 부장은 “인공지능이 돌봄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킨 것”을 먼저 꼽았다.
“4년간의 성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인공지능 돌봄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뤄냈고, 저희 서비스가 이 분야에서 대표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90여 개 지자체에서 1만 8000여 명의 어르신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를 실시한 지자체 중 90% 이상이 다시 저희를 찾아주셔서 효과성도 입증된 셈이죠.”
이 서비스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르신 돌봄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정부에서도 AI나 IoT 기술을 활용한 시범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소 무모할 수 있었던 최초의 시도로 실제 시장에서 이 서비스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제도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선행 기술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태희 팀장은 돌봄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정서적 접근’을 꼽았다.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로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지만, SK텔레콤이 이 분야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돌봄과 관련한 기술은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센서 기반의 IoT 기술은 어르신들이 감시받는 기분이 든다며 외면하기 일쑤였고, 스마트폰은 디지털 문해력이 낮으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또 스마트워치 같은 장비는 무겁기도 하고 충전 등의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고.
“기술 공급자나 자녀, 가족 같은 관리자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고 어르신 스스로가 서비스 소비자가 되어 이 기술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가벼운 농담을 나누는 정서적 접근을 통해 더 친근하게 서비스 이용에 참여하신 거죠.”
물론 이 서비스가 처음부터 지자체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낯선 기술 분야인 데다 전례가 없는 사업이라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또 SK텔레콤의 새로운 돈벌이 수단 아니냐는 색안경 역시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김건훈 매니저는 “불려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이 쓰이는데 항목에 서비스를 위한 통신이나 스피커 같은 가전, 음원 서비스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해가 쉽지 않았겠죠. 또 회기에 영향을 받는 공공기관의 특성도 고려해야 했고, 관리 인력의 수급까지 많은 것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담당을 나눠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녔어요.”
수많은 인명 살린 ‘아리아’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를 살펴보면 AI 스피커 기반 ‘NUGU’ 서비스에 돌봄 기능을 위한 3가지 특화 콘텐츠가 더해진 형태다. SOS 긴급구조 서비스와 치매 지연 서비스인 ‘두뇌톡톡’, 심신 안정 서비스 ‘마음체조’가 그것이다. 특히 SOS 긴급구조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정승룡 부장은 예상 이상의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아리아 살려줘’를 외치신 분이 5000명이 넘어요. 그중 실제로 위험 상황에서 구조된 분이 460명 정도 되고요. 인공지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바로 119 안전신고센터로 접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위급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간에는 주관사인 행복커넥트가, 야간에는 보안업체 SK쉴더스가 관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이용량이 늘면서 소방청과 협약을 맺고 공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한 활용 사례는 인공지능의 유용성을 확인시켜준다. 경기도 화성의 고령 여성은 안마의자 오작동으로 팔이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됐다. 전화기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다 “아리아 살려줘”를 외쳤고, 출동한 119 대원에게 구조되었다. 늦게 발견됐으면 팔의 괴사 위험이 있었고, 극단적인 경우 고독사까지 일어날 수 있었다.
올 3월 발생한 사건도 마찬가지. 한 고령자가 거동이 어렵고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까지 겪으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구조된 후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인공지능이 없었다면 뇌혈관질환에서 중요한 ‘골든타임’을 넘길 수도 있었다.
학술적 성과 낸 치매 지연 서비스
치매 지연이라는 표현이 다소 낯설다. 하지만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치매 판정 이후 할 수 있는 최고의 의학적 처치 역시 ‘지연’이다. 대부분의 치매 처방약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매 진행을 늦추는 지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뇌톡톡은 이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메타기억교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이 언제든지 편리하게 인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한 이 프로그램은 장기기억력과 작업기억력, 언어유창성 면에서 효과가 입증돼 2021년 미국 의학 저널 ‘JMIR’지에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정승룡 부장은 “두뇌톡톡은 어르신의 인지능력 향상을 통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로의 이환을 2년 정도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프로그램을 완주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가족의 도움이나 치매안심센터의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된다면 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AI 전화 서비스를 통해 음성 마커, 그러니까 말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만이 눈치챌 수 있는 특징을 확인해 우울증이나 치매, 파킨슨병 발병 가능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래 요양 서비스의 중심 AI
최근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요양 서비스 대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인공지능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물었다. 김건훈 매니저는 노인 요양 서비스 분야에서 당장 인공지능이 전문인력의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노년층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약하는 것은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50~100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면 200~300명으로 수혜자가 늘어나는 것이죠. 저희가 많이 받는 오해 중 하나가, 요양 서비스 직종이 사라지거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요양 서비스 중 휴먼터치, 즉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것이 효과성이 큰 분야도 있으니까요. 비대면 분야 또는 저숙련 인력이 하는 단순 업무를 인공지능이 거들어줌으로써 기존 인력이 휴먼터치에 쏟을 시간을 더 확보해주는 겁니다. 더 위급한 사람이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또 요양 서비스 분야의 흐름 중 하나인 ‘에이징 인 플레이스’도 지적했다. 결국 부족한 요양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이 아닌 집에서 고령자를 돌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환경 조성을 위해 인공지능 기술은 필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먼저 말을 건네보시길”
최근 인공지능 열풍의 중심에는 거대 언어 모델인 챗GPT가 있다. 문태희 팀장은 챗GPT의 발전 가능성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도 활용 가능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인공지능 서비스 분야에서 더 개인화되고 정서적 지원에 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예상해요. 한정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챗GPT도 출현할 것이고, 고도화되면서 서비스가 더욱 향상되겠죠. 또 응급 상황에서 당황하는 사용자에게 행동 지침을 안내하거나, 가족에게 경고할 수도 있겠죠. 인지 기능 유지나 건강 모니터링 분야에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놀랐던 부분은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회복지 분야, 요양 서비스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고민이 단순한 기술의 적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현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향후 전망에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이해가 어려운 중장년 세대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에 대해 문태희 팀장은 “일단 말을 건네보시라”고 전한다.
“저희 부모님도 처음엔 사용을 낯설어하시다 지금은 잘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연히 익숙지 않은 이 기술이 낯설 수밖에 없죠. 하지만 사용자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만큼, 잘 활용하시면 오래된 친구처럼 옆에 두고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용기 내어 아리아를 한번 불러보시면 좋겠어요.”
“아들이 납치되었어요. 빨리 돈을 찾아야 해요.” 지난 2월 대전시에서 한 70대 여성은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우체국에서 현금 2400만 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우체국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제지한 덕분에 여성은 금융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고령자들은 정보기기 사용 미숙, 낮은 정보 접근성 등으로 인해 금융 사기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높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고령자 보호에 미흡한 실정이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60세 이상 고령층 대상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은 감소 추세에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2018년 70251건에서 2021년 12107건으로, 피해 금액은 2018년 4440억 원에서 2021년 612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고령층 대상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의 비중은 늘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고령층 피해 비중은 2018년 16.2%에서 2022년 상반기 56.8%로 3.5배 증가했다. 피해 금액 중 고령층 피해 비중도 2018년 22.2%에서 2022년 상반기 48.8%로 2배 이상 뛰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고령층에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 나타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문자메시지, 카톡 등으로 가족·지인을 사칭하며 개인정보 및 금전 이체 등을 요구하는 △메신저피싱, 검찰·경찰 등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 저리 대출 대환 등으로 자금 이체를 유도하는 △대출 빙자 유형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 이용 증가로 메신저피싱 금융 사기가 급증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 중 메신저피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5.1%에서 2020년 15.9%, 2021년 58.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로 가족, 지인을 사칭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파손, 신용카드 분실 등 불가피한 상황을 알리며 악성 링크에 연결을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법안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고령자 금융 피해는 가해자와 가해 경로에 따라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 △금융 착취, △금융 사기로 구분된다. 먼저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는 금융기관이 금융 상품을 부적합하게 판매한 경우를 말하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금융 착취는 상황에 따라 적용 법이 달라진다. ‘금융기관에 의한 금융 거래상 금융 착취’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다. 금융기관과의 금융 거래가 아닌 ‘친족・부양자 등에 의한 금융 착취’는 ‘노인복지법’이 적용된다. 노인 학대 방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해당 법에서는 ‘경제적 착취’를 노인 학대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는 잘 모르는 타인이나 전문적인 사기 집단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보이스피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사기에는 ‘전기통신·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된다.
즉 우리나라에는 고령자 금융 피해 유형 별 관련 법이 있을 뿐 고령자 금융 피해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법이나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법이고, 노인복지법은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찍이 고령자 금융 사기 관심 가진 해외 사례
이처럼 고령자 금융 피해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0년 정부는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근본적 종합적 대책을 마련했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 마련 △고령층 전용 대면 거래 상품 출시 △고령자 전용 비교 공시 시스템 구축 △고령층 금융 착취 의심 거래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을 약속했는데, 큰 진전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과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을 제정한다고 예고했다. 해당 방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기관이 고령자 착취 의심 사건 발견 시 금융감독원・경찰 등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실효성 확보를 위해 금융기관 직원의 면책 조항을 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방지, 차별 금지 등에 관한 사항을 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금융기관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이 금융 착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민사상・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 직원의 업무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법에 의무화하기보다는 각 금융권별 상황에 맞게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현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일찍이 고령층의 금융 사기에 관심을 갖고 정책 마련 등 대응에 나섰다. 덕분에 고령층 금융 사기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주요국의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 방지 노력’ 보고서를 통해 해외 주요국들의 정책을 담았다.
먼저, 미국은 지난 2018년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착취가 의심될 때, 금융기관 및 직원 등이 고령자 동의 없이 금융 당국에 의심 사례를 보고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노인금융피해방지법’을 제정할 때 해당 법을 참고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신종 금융사기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재무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장과 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 그룹을 구성하고, 고령층 보호 정책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소비자안전법’을 일부 개정해 고령자를 배려가 필요한 소비자로 규정하고, 필요한 대응을 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고령층의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금융기관, 지자체가 연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수사기 예방 정책을 강화했다. 정부의 규제 노력으로 2021년 피해 규모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고령자 등 학대로부터 취약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한 성인 보호 정책이 시작됐으며, 2014년 ‘돌봄법’(Care Act)을 제정해 관련 법 및 규정을 일원화했다. 더불어 금융회사에 의한 고령층의 금융 착취 및 금융 사기 피해 근절을 위해 당국이 불법적, 사기적 영업 행위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택시라는 공간은 참 묘하다. 내 앞에 멈춰 선 택시에 오르는 순간 택시 운전사와 잠시 잠깐이나마 인연의 호흡을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화를 나누든 안 나누든 서로의 에너지가 엉기고, 그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일부러 생각에 빠져들거나 짐짓 딴청을 하기도 하지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내내 운전사의 존재가 의식되어 도무지 편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쪽에서 말을 걸어주면 편할 것 같지만 그 말이라는 것이 도통 내게는 관심도 없는 주제이기 일쑤라 여전히 고역이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게 뱃속 편하다. 어지간해서는 내가 택시를 타지 않는 이유다. 몸 좀 편하자고 마음은 좌불안석이니. 비싼 돈까지 내고서 말이다.
유난한 예민함이라고? 그쯤되면 병이라고? 택시를 모는 사람은 그게 직업인지라 승객에 대해 시시콜콜 관심을 갖진 않을 거라고? 승객의 인상이 아주 험상궂어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 같은 불안감이나 늦은 밤 취객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는 한. 물론 섹시하고 야한 여성이 탔을 때 슬쩍 성적 호기심이 동하기도 할 테지만. 여하튼 그런 좀 별난 경우가 아니고서야 승객에게 무슨 그리 관심이 있겠냐고? 혹 말을 시키더라도 대꾸를 안 하면 그쪽에서도 알아서 입을 다물 텐데 뭐가 걱정이냐고?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운전사 거슬려 택시 못 탄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며 놀린다.
1년 만에 탄 택시, 인연이 기가 막혀
그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그날 또한 택시를 탈 불가피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벚꽃에 취해 발을 접지르기 전까지는. 봄바람 안온한 지난해 4월 중순,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었다. 딱 1년 전 일이다. 어디 멀리 따로 꽃 구경을 갈 필요는 없었다. 온 천지가 벚꽃이었으니까. 집 앞, 동네 산책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만족스러웠으니. 땅에 시선 둘 짬 없이 고개를 온통 쳐들고 다니는 시기가 1년 중 꽃철과 단풍철이 아닌가.
아뿔사! 동네 벚꽃길에 이런 턱이 있었나. 도저히 ‘턱이 있을 턱이 없는 곳’에서 발목을 삐끗했다. 발등이 커브를 그리듯 휘어지며 시큰한 느낌과 동시에 눈앞이 아득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지와 겨우 3cm 정도 차이 나는, 보통 계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단차를 가진 곳에서 발목을 접지른 것이다. 어이없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거짓말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으니. 그 위치 그대로 퍼질러 앉아 발목만 하릴없이 주물러야 할 상황인데, 이번에도 또 거짓말처럼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어디 다치셨어요? 병원이나 댁에 모셔다드릴까요?”
조수석 창문을 내리면서 나이가 꽤나 들어 보이는 운전기사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요즘 택시에는 고령 운전자가 많다더니.
‘이게 무슨 경우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지나가는 택시가 먼저 나서다니….’
운신을 전혀 못 하는 처지에서 반갑기도 했지만 반사적으로 긴장과 의심이 올라왔다. 평소 택시 타기 싫어하는 이유와는 차원이 다른. 아무리 60줄에 든 여자라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다친 자리 1m 전쯤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출발하려던 찰나 주저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고, 혹시나 운이 좋아 승객일 수 있을까 하여 친절을 겸해 물어본 것일 뿐이었다니, 특별히 수상한 상황도 아니었다.
“네… 그럼, 요 앞 정형외과로 저를 좀 데려다주시겠어요? 제가 발목을 다쳐 꼼짝을 할 수가 없네요. 짧은 거리지만 부탁드립니다.”
실로 1년 만에 타는 택시다. 봄볕 화사한 정오 무렵이었고, 병원은 코앞이다. 무슨 흉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차창 밖으로 말을 붙일 때 본 운전사의 인상도 온화하고 곱상하다. 말투도 배운 사람 분위기다. 얼굴 보고 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안심이 된다.
사별 아내 못 잊어 잡은 운전대
그 사이 발목 아래부터 발등이 자색고구마 색을 띠면서 소복하게 부어올랐다. 통증보다 겉의 상태가 더 겁이 났다. 기사는 나를 배려해 병원 입구에 바투 택시를 세웠지만 나는 도무지 일어나 걸을 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채 돌아보던 기사가 지체 없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끌어올리더니 운전석에서 내려 돌아와 나를 부축했다. 황공스럽도록 고마웠다. 병원 로비 원무과 앞 빈자리에 나를 앉혀주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듣는 둥 마는 둥 황급히 자리를 뜨나 싶더니 5분쯤 지나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마도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해놓고 급히 다시 돌아온 듯싶었다.
그가 없었다면 접수도, 진료도, 처치 후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반나절을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나는 돈벌이를공친 그의 시간을 걱정하면서도,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옆에 붙어 있는 어색함과 황당함에 어쩌지 못하면서도, 과분한 신세를 졌다며 이제 그만 가보시라고 하지는 못했다. 병원에서도 그를 나의 보호자로 알고는 그에게 이런저런 지시와 주의사항을 전하고 있었으니.
그와 나의 만남은 그런 기연으로 시작되었다.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이야. 그가 택시를 몬 경력이라야 1년 남짓. 4년 전 별안간 사별한 아내를 이렇게도 못 잊고 저렇게도 못 잊어서 마음 대신 운전대를 잡았단다. 택시를 몰면 싫어도 이리저리 쏘다니게 되고, 손님을 태우고 긴장하는 사이 피곤으로 지친 몸 그대로 쓰러져 자다 보면 아내 없는 일상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그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꽤 규모가 큰 건축회사의 임원을 지내다 정년 퇴임을 했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이제야 오붓하게 부부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려니 했는데, 퇴임한 지 3년 만에 아내가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고는 허망하게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오직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는 여자였다며, 그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본인도 슬하의 1남 1녀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며, 내 앞에서도 서슴없이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워낙 규모 있게 살림을 꾸려온 사람이라 노후자금도 부족하지 않게 비축되어 있었고, ‘삼식이’ 대열은 완전히 남의 일일 뿐 부부 금슬도 유달리 좋았다고.
이제 우리 함께 달릴까요?
“그러면 뭐하나요? 결정적으로 건강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는 걸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자기를 죽이고 살아서 병이 났지 싶어요. 자기 주장은 고사하고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이었으니까요. 세월이 4년 남짓 흘렀지만 아직도 아내의 빈자리가 커서 하루 일을 마쳐도 집에 들어가기 두렵곤 했지요. 그때 마침 발을 다친 당신이 눈에 띄었고 내친김에 병원까지 동행했던 거지요. 당신은 먼저 간 아내와 많이 닮았어요. 죽은 사람과 비교되니 기분이 별로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단아한 분위기에 조신한 행동거지, 나이까지 비슷하니 내게는 마치 아내가 환생한 것만 같네요.”
몇 차례 더 나를 태워 병원을 오가며 만난 지 석 달쯤 되었을 무렵, 이런 말을 하면서 겸연쩍게 그러나 만족스레 웃는 그를 보며 나도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 말이 나에 대한 고백이자 청혼처럼 들렸다면 괜히 오버하는 것일까.
“아내 연배의 여성을 태우거나 거리에서 지나치듯 볼 때면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금 올라와 마음이 힘들어지곤 했더랬지요. 그런 내게 신이 선물을 주신 거지요. 그날 아내와 닮은 당신을 만나게 해주셨으니까요. 몇 년이나 끙끙대며 자기를 잊지 못하는 내가 딱하고 안쓰러워서 아내가 당신을 보내줬는지도 모르죠.”
이쯤 되면 오버가 아니지 않나?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첫 만남 이후 한결같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만 봐도. 접지른 발은 이미 다 나았건만 여전히 내 발이 되어주고 있으니. 영업용 택시에서 자가용 승용차로 갈아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참,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를 전혀 안 했네. ‘택시를 기피하는 여자’라는 것 말고는. 나도 그와 같은 사별자다. 나는 50세에 남편을 간암으로 보냈다. 그러곤 두 아들을 결혼시키고 얼추 십 몇 년을 혼자 지냈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남기고 간 돈이 좀 있어서 생활이 그다지 쪼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평생 살림만 한 터라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대부분 집에서 책을 보며 소일한다. 이따금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가 있지만, 내가 택시를 매개로 한 ‘황혼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친구들은 ‘택시 대박’이라는 둥, ‘택시 내숭’이라는 둥 나를 놀린다. 친구들이 보기에도 뒤늦게 찾아온 나의 사랑이 좋아 보인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