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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자본을 긴장하게 하는 비타민C의 항암효과
- 마침내 비주류 의학계의 연구로만 그치고 발표되지 않았던 비타민C의 효능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타민C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끊임없이 발표됐으나 주류의학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항암제로 인정받거나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주류의학계가 비타민C의 항암효과를 외면한 것은 왜일까요? 물론 경제적 이익 때문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자본 다국적제약업체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값싸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비타민C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타민C의 항암효과를 적극적으로 밝힌 사람은 하병근 박사입니다. 하병근 박사는 1966년에 태어나 199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와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하병근 박사는 어린시절부터 호흡기 계통의 난치병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현대 서양의학에 한계를 느껴 스스로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난치병 환자인 하박사는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박사는 비타민C메가도스 요법으로 삶의 희망을 찾고 비타민C 전도사가 되었으나 안타깝게 병마가 아닌 의료사고로 인해 2012년 47살의 젊은 나이로 끝내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하병근 박사의 투병기에는 항암제로서 비타민C의 효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때껏 의과대학에서 배운 비타민C 지식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광활한 대자연처럼 펼쳐지는 비타민C의 세계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에 견줄 만했다. 그 신대륙은 미래의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비타민C를 이용한 치료법을 찾던 나는 ‘비타민C 치료법으로 소아마비를 고쳤다’는 논문이 인용된 한 저술을 보게 됐다. 그런데 그 논문의 발표시점은 1948년. 이미 반세기가 지나 있었다. 논문을 찾으러 한달음에 오하이오주립대 의대 도서실을 찾았지만 워낙 오래 전 것이라 바로 찾을 수 없었다. “창고에 보관 중”이라는 사서에게 “그래도 꼭 찾아 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얼마 후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고전들. 반세기 전의 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의학의 뒤안길을 따라갈 수 있었고, 주류의학이 전하지 않고 물려버린 의학의 단면을 마주하게 됐다. 소아마비 치료에서 간염을 비롯한 여러 바이러스 질환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타민C 치료법이 논문으로 소개돼 있었다. 왜 이런 사실을 의사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비타민C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왜 그들이 전하는 치료 효과는 알려지지 않은 걸까, 주류 의학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의 임상례를 확보하고 있는데 왜 그동안 임상시험조차 시도하지 않은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병근 박사의 투병기 중에서) 이처럼 주류의학은 항암제로서 또는 희귀난치성질환의 치료제로서 비타민C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하병근 박사는 비타민C를 만나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병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았으며,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또 다른 많은 환자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비타민C가 암 재발과 전이의 원인인 암 줄기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암 줄기세포는 항암 치료 등을 받고 암을 치료한 후에도 일부가 몸속에 남아있어 암을 재발시키거나 전이를 일으키는 세포입니다. 암 줄기세포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당을 분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비타민C는 이 과정을 억제하는 억제제로서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타민C는 암 세포만을 골라 공격하기 때문에 기존의 항암 치료처럼 신체에 부담이 없고 구토나 피로 등의 부작용도 없으며 몸 스스로의 자연치유력도 높여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국제 의학전문지 ‘온코타깃’ 최신호에 실린 영국 샐퍼드대학 마이클 리산티 교수팀의 최근 암세포 제거 실험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이 팀은 실험실에서 배양된 암세포에 여드름 치료제로 쓰이는 항생제 독시사이클린을 투입했습니다. 3개월간 투입량을 점진적으로 늘렸고, 그 뒤에 비타민C를 추가 투입했습니다. 비타민C는 암세포가 체내에서 흡수하는 여러 영양소 가운데 포도당 한 가지만을 흡수하도록 제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영양소 중 포도당을 들어냈더니 포도당만 먹는 데 익숙해져 있던 암세포가 굶어 죽었습니다. 기존 항암제에 비해 100배 이상의 항암효과를 보인 것입니다. 리산티 교수팀은 지난 3월에도 비타민C를 효율적으로 투입할 경우 항암제보다 암세포 제거에 최대 10배까지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리산티 교수는 이번 결과에 대해 “비타민C와 항생제의 결합제가 암세포 제거에 탁월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비타민이 암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으로 앞으로 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래도록 비타민C의 항암효과를 연구했던 하병근 박사와 같은 비주류 의학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냉소주의로 가득했던 다국적제약업체를 중심으로 한 주류의학계에서 비타민C의 항암효과를 인정하고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연구를 이끌어 간다면 인류의 건강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니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100세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7-06-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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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무대 떠난 女스타의 삶과 연기
-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에 함께 출연했던 차인표가 “김영애 선생님은 촬영을 시작할 때 분장실에서 50회 끝날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 직업을 떠나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하신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김영애는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해 에서부터 , , , , , , 그리고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12년 사극 에 출연할 당시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한 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 , 등에 출연해 김영애의 대체 불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영애는 몸이 아파 소리 지르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죽더라도 연기하며 죽을 것이라는 평소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연기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기는 내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연기하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다.” 김영애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또 한 명의 중견 연기자가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연기 열정을 불사르다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2월 19일 7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김지영이다. 그녀는 1960년 영화 로 데뷔한 뒤 수많은 연극,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뛰어난 조연 연기를 펼쳤다. 죽기 직전까지 드라마 , 등에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차기작을 준비했을 정도로 연기 열정이 남달랐다. 김지영은 57년 동안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비록 식모, 주모, 첩 등 시청자나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멋진 배역은 아니었지만, 김지영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승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그녀는 시대극, 사극, 현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 ‘조연 연기의 지존’으로 평가받았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강원도 등 지역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해 ‘사투리 대사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김지영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기가 너무 좋아.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불행도 연기할 때는 다 잊을 수 있어. 김지영 인생에 연기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지”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병세가 악화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새로운 작품을 해야 한다며 운동을 하는 등 연기 의지를 드러내셨다. 5월에 새로운 작품을 할 예정이었다. 새 작품 준비를 하다 숨을 거두셨다.” 김지영 가족들의 전언이다. “어머니 여운계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배우 여운계를 기억해줘 감사하다. 배우 여운계를 사랑해줘 감사하다.” 2009년 5월 22일 폐암으로 숨을 거둔 연기자 여운계의 딸, 차가현씨가 한 말이다. 암세포가 온몸을 덮는 순간에도 연기에 임한 연기자가 바로 여운계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암도 여운계의 뜨겁고 끝없는 연기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2007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SBS 사극 에 출연한 데 이어 수술 후 곧바로 드라마 에 복귀했고 2008년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일일극 에 출연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삶 69년 중 48년을 연기자로 살아왔다.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다 1962년 KBS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여운계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왔다. 여운계는 출연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기자는 정년이 없어요. 죽는 순간이 정년이지요. 연기자는 연기를 펼치는 마당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말처럼 연기를 하다 생을 마감한 천생 배우였다. “대장암 다 치료됐어요. 드라마 다시 하니까 살 것 같아요. 드라마를 하면 정말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던 여배우는 김자옥이다. 대장암 수술 후 작품에 출연했던 김자옥은 얼마 안 돼 암이 폐로 전이된 상황을 알게 됐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2014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로 연기를 시작해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멜로 연기를 펼쳐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 만났던 그녀는 “투병생활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 드라마 출연하면 좋은 글 많이 써줘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암이 폐로 전이된 이후에도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출연 당시 쾌유를 비는 말을 하자 김자옥은 “걱정하지 하지 말아요. 빨리 나아 활동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비록 실천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지만, 김자옥은 죽는 순간까지 연기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암의 고통 속에서도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공포에 굴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삶을 선택했던 김영애, 김지영, 여운계, 김자옥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연극 연기의 지평은 확장됐고 연기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비록 그녀들은 떠났지만, 자신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연기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 2017-05-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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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졸업장
-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지난 달 초, 이달에 종료되는 산정특례 종료예정 통지를 받았다. ‘졸업’이라고 되뇌고 나니 가슴이 벅찼다. 우수한 학생은 월반하여 일찍 졸업하였지만, 취업절벽에 막힌 요즘 대학생은 유급을 자청하여 지각 졸업한다. 암환자가 뛰어넘어야 할 5년은 월반도 유급도 없다. 한 달여 전부터 대장암 ‘5년 졸업검진’이 시작되었다. 양팔에 번갈아서 주사기가 꽂히고 체혈, C/T촬영, 비수면 내시경 검사가 여느 때처럼 반복되었다. 지난 5년처럼 병원에 갈 때는 뱃속에 폭탄이 들어있는 것처럼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무엇인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검사는 어김없이 통과하여야 한다. 5년 전 이맘때 대장암이 발견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국가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었으나 사회은퇴 후 보라매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용종 1개와 선종 3개가 발견되었다. “용종만 발견되면 곧 시술이 가능하나, 선종은 당장 시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진행해야 된다.”고 말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한 달 후 내시경 검사 시 채취한 조직에서 다른 이상이 없어, 비수면 대장내시경시술을 하였다. “시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는 격려 및 주의사항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검진결과를 기다라는데 담당의사가 “선종제거시술 시 채취한 선종 한 군데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산정특례 등록절차를 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암 세포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고 시술 부작용도 없으니 안심하고, 통상 암환자에게 실시하는 치료과정도 아직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었다. 앞으로 3개월, 6개월, 1년, 3년 단위로 주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함을 친절히 설명하면서, “상심하지 말고 건강관리에 유념하라. 한마디로 암은 자각증상이 나타나면 너무 늦다”고 말했다. ‘암환자!’ 암 확진 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줄 알았던 말이다. 아내와 아들딸 가족, 손주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큰 위로를 받았다. 매 주마다 산행과 모임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암을 이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동네에서 자라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와는 동창산악회에서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암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이 친구로부터 살아있는 암상식을 많이 배웠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우정이 깊어갔다. 암 극복을 위하여 자연 속으로 들어가거나 약초를 찾는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진 때마다 주치의선생에게 물었고, 대답은 항상 같았다. “특별히 좋거나 나쁜 음식이 없으니 섭생에 연연하지 말라. 과음ㆍ과식을 삼가고, 스트레스와 체중관리에 노력하라”고 하였다. 처자식ㆍ손주ㆍ친구들과 어울려 관악동네에서 평범한 방식으로 암을 이기는 건강관리를 하였다. 드디어 5월 11일 오후, 한 달 넘게 진행한 검진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주치의 선생이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고 5년 졸업을 선포하였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복음이다. “야호! 보라매 5년 졸업” 아내, 아들, 딸 가족에게 문자가 뛰었다.
- 2017-05-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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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친구
-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며칠 후 대장암 검진 예정이다. 벌써 5년 차가 되었다. 암 확진 전과 후의 삶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벌써부터 검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매우 초조한 마음이다. 오늘 유난히 건강을 일깨워주고 먼저 가버린 ‘참 괜찮은 친구’가 그립다. 시골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필자는 이 친구와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진학하면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야 함께 서울에서 동창 산악회에 참여하면서 자주 만났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나누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가족과 아이들도 친하게 지냈다. 서로 살아가는 생김새가 비슷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좋은 친구였다. 우리들의 우정은 그렇게 점점 더 깊어갔다. 친구는 중견기업에서 얼마 동안 근무하다가 어느 날 과감하게 창업을 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다 바쳐 사업을 알토란같이 만들어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고, 아들에게 후계자 훈련을 시키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성공한 사업가이면서도 행동거지는 늘 겸손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듣는 친구였다. 5년 전, 필자는 은퇴를 하면서 친구와 건강에 관련한 대화를 진지하게 나눴다. 필자와 친구는 바쁘다는 핑계로 종합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번 기회에 검진을 꼭 받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해 필자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용종과 선종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선종은 당장 시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진행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채취한 조직에서 다른 이상이 없어 비수면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그동안 의사가 권하는 주의사항도 잘 지켰고 출혈 등의 이상도 없었으므로 상쾌한 기분으로 검진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정색을 하더니 “선종 제거 시술을 할 때 채취한 선종 한 군데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산정특례 등록절차를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제야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검진을 예약하고 있던 친구는 필자 소식을 듣고는 “우리는 살만큼 살았다. 자식들도 가정 다 이루고 손주까지 두었으니 아무 걱정 마라”며 위로하였다. 그러고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아들이 있는 자기 처지를 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의 말은 어느 누구의 위로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대장암 확진 후 몸을 추스르며 지내던 어느 날 산행에서 그를 만났다. 건강했던 몸매는 흔적이 없었고 너무나 야윈 모습에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얼마 전 밤중에 복통이 심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약물로만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평소 속이 거북한 증상이 가끔 있었는데 소화제를 먹으면 이상이 없어 소화 장애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 뒤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서로 의지하며 마음을 주고받던 친구는 영영 떠나고 말았다. 요즘 뱃속에서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다.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동안은 배가 뒤틀리고 쑤시다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다. 이번 5년 차 검사에서는 암 환자 졸업장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암 극복을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거나 약초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진 때마다 주치의 선생에게 물으면 대답은 항상 같다. “특별히 좋거나 나쁜 음식이 없으니 섭생에 연연해하지 말라. 다만 과음ㆍ과식을 삼가고, 스트레스와 체중 관리에 노력하라”는 말이다. 처자식ㆍ손주ㆍ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방식으로 암을 이겨볼 것이다. 건강을 일깨워준 참 괜찮은 친구! 아쉬운 마음 가득하지만 이제 아픔 없이 편히 쉬길 바란다.
- 2017-05-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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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한국이 좋아 귀화한 중국 출신 여성과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의 라뽀
- “샤오메이즈(小美子, 이쁜아) 넌 죽지 않아. 꼭 살아날 거야. 걱정하지 마.” 오빠는 막내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서해를 넘어 한국까지 날아온 오빠가 동생은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게 오빠의 조혈모세포는 동생 몸으로 흘러들어 생명을 살렸다. 바로 중국 출신의 귀화인 등희하(滕希霞·38)씨의 이야기다. 이 감동적인 만남에는 든든한 후원자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박진희(朴眞嬉·51) 교수가 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등희하씨는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해외생활을 동경하던 평범한 소녀였다. 1997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외국을 향한다. 한국이었다. 물론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고향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역시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중국어 강사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게 됐고, 2007년 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사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귀화도 신청했죠. 서울생활에 익숙할 때쯤 같은 학원 강사를 통해 남자를 소개받았고, 2009년에 결혼했어요. 얼마 뒤 아들도 얻었고요. 남편과 함께 작은 중국 음식점을 열어 장사도 열심히 했죠.” 갑작스런 하혈에 놀라다 모든 것이 평탄하게 잘 흘러갔고 행복했다. 장사도 그럭저럭 잘되었고, 둘째 임신 소식에 새로운 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여기까지였다. “어느 날부터 하혈이 계속 됐어요. 2011년 6월쯤이었어요. 동네 병원에 가니까 난소암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병원을 두 번 더 옮겼어요. 그렇게 길병원까지 오게 됐죠.” 결국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유산됐고, 그 후에도 출혈은 계속됐다. 피 검사결과 백혈구 수치가 문제였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처음에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믿을 수 없었어요. 우리 집안에는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없었거든요. 보통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이 걸리잖아요. 또 그 주인공들은 금방 죽어버리고. 저도 그렇게 될까봐 너무 겁이 났어요. 길병원을 믿을 수 있나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이식수술 “똘똘한 친구예요.” 박진희 교수는 등희하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요. 제가 최대한 환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녀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병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남편과 하는 가게 이야기에서부터 시댁이야기, 한국생활에 대한 이야기까지요.” 등희하씨의 치료를 진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많았다. 먼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등희하씨 없이 한국어가 서툰 남편 혼자서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녀의 투병으로 가게는 포기해야 했다. 수익원이 없어지니 치료비가 문제였다. 박 교수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백혈병은 전체 암종 중에서 치료비가 가장 많이 드는 암으로 꼽혀요. 다행히 보험제도가 잘되어 있지만 그래도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회사업실을 통해 한국혈액암협회 지원을 받거나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어요.” 등씨 입장에선 박 교수가 의사이기 이전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였던 셈이다. 박 교수와 길병원의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치료를 위해서는 조혈모세포의 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증자를 기다리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가족을 병원으로 불러 가능성을 타진했겠지만, 그녀의 가족은 모두 중국에 있어 이식은커녕 검사조차 쉽지 않았다. 박 교수와 병원 관계자들은 중국 병원과 직접 연락을 해야 했다. 그녀의 가족들 중 누가 이식에 적합한지 검사를 부탁했고, 검사결과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다행히 두 오빠가 적합했고, 그중 회사원인 큰오빠 대신 사업을 하는 작은 오빠가 기증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넘어야 될 또 하나의 산이 있었다. 이식을 위해 장기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있어야 했는데 거절된 것이다. 또다시 박 교수와 길병원이 나서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난 2012년 3월에야 겨우 이식이 이뤄졌다. 등씨는 “교수님과 병원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우리 집안 식구들이 모두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있어요. 남편은 물론이고 작은 오빠도 한국에 왔을 때 인사를 드렸고, 어머니도 한국에 오셨을 때 병원을 찾아 교수님을 뵈었어요. 덕분에 딸이 살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가족 사랑이 가장 큰 힘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역시 가족이다. 이식이 필요하다고 형제들에게 전했을 때 주저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가족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했다. 기증자로 결정되자 작은오빠는 한 달 전부터 좋아하는 술도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동생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몸에 좋다는 것 다 찾아먹다 간수치가 오를 정도로 몸 관리에 신경을 썼다. 물론 남편도 힘이 됐지만, 가장 의지가 된 것은 올해 8세가 된 아들 리우한이다. “제가 아이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이를 제가 낳았나 싶을 정도예요. 백혈병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는 아들이 세 살이었는데, 항암치료를 위해서 무균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를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로웠어요. 남편은 유리창 너머로 통화라도 할 수 있었지만,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의 노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버텼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죠.” 감기와 비슷한 백혈병 초기 증세 백혈병 또는 혈액암으로도 불리는 이 병은 어떤 병일까. 우리의 혈액은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되는데, 혈액세포들의 생산은 조혈세포가 맡는다. 백혈병은 조혈세포가 암세포로 인해 비정상이 되면서 혈액세포 생성에 문제가 생기는 병. 박 교수는 “어느 날부터 감기가 낫질 않는다든가 멍이 쉽게 들고, 빈혈 증상이 나타난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요. 대부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증상들이니까,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중요해요. 하지만 혈액암은 제대로만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하는 병이에요. 경제적 부담이 문제인데, 소아혈액암의 경우 후원단체나 기관이 많아 그래도 큰 걱정은 덜은 상태죠”라고 설명했다. 일부 혈액암의 경우 치료를 위해 고가의 표적치료제를 사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표적치료제인 글리백은 미국에서 보험이 없으면 환자가 월 6000달러(한화 약 700만원)를 부담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복제약값 월 200만원 중에서 5%인 1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영양제 가격 수준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니어, 즉 고령혈액암 환자들이 문제라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의학계에서도 과거엔 적극적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어요. 연령과 관계없이 신체나이(상태)만 충분하다면 완쾌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문제는 비용을 후원하는 기관들이 고령혈액암 환자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사회적 후원이 필요해요.” 베르니케 증후군으로 고생하다 등희하씨의 치료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치료비 걱정은 해결됐지만,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등씨가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겨우 먹은 것도 다 토해내는 통에 너무 힘이 들었어요. 몸속의 백혈구를 모두 죽이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몸의 면역기능이 약해지니까 식도에 곰팡이가 생겼어요. 가뜩이나 잘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목에 문제까지 생기니 더 힘들었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몸무게가 6kg이나 빠졌어요.” 조혈모세포 이식은 환자 입장에선 간단한 과정이다. 수혈받는 것처럼 누워서 받기만 하면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치 수술처럼 표현되는 것은 극적 연출이지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등씨는 치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든 치료를 하고 나서도 두 달 동안 꼼짝 못했다. 사랑하는 아들도 제대로 안아주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박 교수는 그녀가 겪은 증상이 베르니케 증후군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비타민 등의 영양결핍이 겹친 탓이다. 계속 어지럽고 눈앞의 물체가 흔들려 보이는 증상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긍정적인 생각이 날 살려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낸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녀의 백혈병은 ‘완쾌’ 단계에 있다. 이제 재발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란다. 혹시 다른 암이 발병될 수 있으니 정기적인 검진만 하면 된다. 등씨는 요즘 새로운 직업에 재미를 붙였다. 한국화장품 회사 소속으로 중국의 SNS를 통해 현지 젊은 여성들에게 화장품을 알리고 구매를 돕는 일을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아닌데다 흥미로운 분야라 즐겁게 일한다. 등씨는 늘 긍정적인 자신의 태도가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었던 투병생활을 이겨낸 것도,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해나가는 것도 긍정적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와 비슷한 병을 앓는 분들이 이 기사를 보신다면 꼭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병을 이겨내겠다, 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 2017-02-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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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간암과 사투를 벌인 바닷가 사내와 암 잡는 방사선종양학 전문의의 라뽀
- 거친 바다 마을 출신의 사내라 해도 이 우주선 같은 치료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폭풍우 속 배 위가 더 속 편하지 않았을까. 돌아가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의 소음은 조용했지만 시끄러웠다. 임재성(林在聲·56)씨는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가 큰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암(癌)이라는 큰 병을 말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보통 암이라고 하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선고에 당황하게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임재성씨는 그에 반해 억울한 구석이 많은 경우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던 그는 교직에 있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평탄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업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됐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주변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도 1남 1녀다. 마치 동사무소 입구에 꽂혀 있는 홍보물 표지 사진 속 가족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반짝이는 가족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년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래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실제로 간염 환자가 겪는다는 식욕부진이나 피로감 같은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어요. B형 간염도 어머니를 통해 받은 것이니 크게 동요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정기적인 검사만 제때 받으면 되겠지 하고 평소처럼 생활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요. 그때만 하더라도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을 모실 때였죠(웃음).” 그 시절부터 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B형 간염은 까딱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검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균열은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광주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암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정기검사 때마다 만났던 의사의 태도였다. “간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아직 B형 간염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던 그 의사에게서 느닷없이 암 진단을받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요즘 의술이 좋아져 초기 간암은 치료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위로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암 선고는 그에겐 충격이었다. 여느 암 환자처럼 그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과 분노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죽기 전에 손주는 볼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해야 하나, 고통은 어느 정도나 될까, 더 괴로워지기 전에 차라리 생을 끝내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의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검게 변해 죽어 있는 물고기들이 바닷가로 잔뜩 밀려오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렇게 암 선고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처가 쪽 친척으로부터 일산으로 올라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으니 진단이든 치료든 그곳이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곳 아니겠냐는 조언이었다. ‘약사님’ 친척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고는 국립암센터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김태현(金泰現·46) 교수를 만났다. 비장의 카드 ‘양성자치료기’ 김태현 교수는 “임재성씨는 간암 환자 중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환자예요”라고 설명했다 . “B형 간염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독 한국과 중국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에 반해 일본과 서양인들은 C형 간염 보균자가 많죠. 최근에는 간염 예방 백신의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그래도 B형 간염 보균자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이 간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이 일어났다 나았다를 반복하는데, 이러다 암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씨의 경우 간암 초기였기 때문에 경동맥 화학색전술로 치료를 했는데, 원하는 만큼 예후가 나오지 않아 간암고주파열치료술까지 시도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간 전체에 여러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는 방식이고, 간암고주파열치료술은 특정 암세포에 고주파를 쬐어 높은 마찰열을 발생시켜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임재성씨의 증세가 다발성(多發性)이라는 것이었죠. 암세포가 또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어요. 접근이 무척 어려운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성자치료였어요.” 400억원 넘는 꿈의 치료기 양성자치료기는 CT나 방사선치료기와 같은 ‘의료기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시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도 장비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 그 위로 건물이 지어졌다. 지어진 건물 안으로 장비를 넣는 것이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양성자치료 장비는 가속기 반경이 4km 정도였다. 우주의 기원을 좇는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가속기를 통해 수소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면 튕겨져 나오는 방사선을 받아 암세포에 쏘이는 방식이다. 의사들에게 이 장비가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는 일반적인 방사선치료 장비와 달리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일반 방사선 장비는 방사선을 투과할 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사선 조사각을 이리저리 돌려 쪼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양성자치료기는 정확히 암세포에만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미미하다. 암세포를 죽인 뒤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일반적인 방사선치료가 식욕부진이나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는 2007년부터 본격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에 한 대가 더 도입돼 국내에 2대가 운용 중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약 480억원이었고,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1000억원 선이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치료 시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대가 안 되는 귀한 장비다. 치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암종, 치료기간, 치료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800만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건강한 간 조직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요. 임씨와 같이 만성 간변병증이 있는 경우는 낮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때문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다행이죠.” 암 환자 더욱 위험하게 하는 건 ‘얇은 귀’ 임씨가 양성자치료기를 통해 본격적인 치료를 받은 것은 2016년 2월부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들은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B형 간염 보균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B형 간염 보균자가 많은데, 그에 비해 경각심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와 함께 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어요. 바로 언론이에요. 요즘 종편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믿어선 안 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암 환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다급하니까요. 이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엉터리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암 환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모임을 갖는 등 활동을 해왔는데, 불필요하게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효과가 좋다고 암 환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식품들에 대해 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 암에 좋다는 음식 중 상당수는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되레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간암은 간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데 간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예후가 좋을 리 없죠.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음식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 임재성씨는 그래도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암이라는 장벽을 만났지만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일찍 암을 발견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덕분에 초기에 치료를 받았잖아요. 또 간암에 효과적이라는 양성자치료기를 알게 되어 혜택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기 직전에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로 뽑혀 치료비 부담도 줄였고요.” 양성자치료는 아직 모든 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암종을 대상으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워낙에 가무에 능했는데, 이제는 술과 이별을 해서 대신할 만한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드럼연주를 시작했어요. 절로 흥이 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더라고요. 보통 큰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신경 안 써주냐, 왜 이건 안 해주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병은 자신이 챙겨야 해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이 좋아지길 바라면 그게 이뤄지겠어요? 또 이런저런 주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에 따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2017-01-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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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새 생명을 얻다
- 은퇴하면서 비로소 종합건강검진 기회를 가졌는데, 암 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되었다. 말수가 적은 의사는 “조기 발견으로 암세포를 제거해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의사의 묵직한 한마디에 새 생명을 얻었음을 실감했다. 은퇴와 종합검진 필자는 5년 전 은퇴했다. 샛별 보면서 집을 나와 달빛을 벗 삼아 귀가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방학을 한 학생처럼 해방된 기분이었다. 은퇴 후의 장년은 건강관리가 제일 중요하다는데, 무엇부터 챙겨야 하나? 건강검진기록부터 살폈다. 국가검진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나이를 감안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긴 했지만 바쁘고 검사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다. 은퇴 후 비로소 필자를 돌보는 황금 같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퇴임 전 종합검진 예약을 했다. 그리고 퇴임 며칠 후 암 검진을 받았다. 대장암 발견과 치유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용종 1개와 선종 3개가 발견되어 제거 시술을 했다. 2주 후 상쾌한 기분으로 검진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정색을 하면서 “선종 한 곳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아차!” 뭔가 심각한 상황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담당의사는 “배가 아프거나 자각 증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더니 “암은 증상을 느끼면 이미 늦다. 조기 발견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암세포는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고 시술 부작용도 없으니 안심하라. 치료 과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주기적인 추적 관찰만이 필요함을 친절히 설명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필자에게 유일한 위안의 말이었다. ‘암환자’라는 사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뱃속에 시한폭탄이 들어 있어 곧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는 뱃속이 뒤틀리고 쑤시다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들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졌다. 대장암과 함께 위장·방광·당뇨·전립선과 갑상선도 암 전이 가능성 때문에 검진을 했지만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스런 결과에 위안을 받으면서 암 극복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암세포 제거 시술 후 어느덧 5년이 다 되어간다. 봉사하면서 사는 새 삶 앞으로 살아갈 세월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얻었던 소중한 은혜를 후세대에 되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평생교육기관에서 시민강좌 강의와 청년창업 멘토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백 마디 말보다 작은 실천 하나가 진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숭고한 정신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시청·구청과 사회평생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평생학습·교양강좌를 찾아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손주에게 들려 줄 새 이야기’도 배운다.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하게 등산도 한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운동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등산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건강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 은퇴에 감사한다.
- 2016-11-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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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 함부로 말하지 마라
- 사회를 은퇴하면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대장에서 상피내암이 발견되었다. 암환자가 되기 전과 후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으나 큰 탈 없이 견디고 있다. 내년 이맘때면 이른바 ‘5년’이 된다. 사회평생교육에서 건강에 대한 강좌를 많이 접했다. 어느 강사는 “건강하니까 건강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고, 설령 불치병에 걸려도 연명치료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암환자가 되어서도, 지금과 같이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수강생들의 반응이었다. 국가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대장은 1차 검사에서는 별 이상이 없지만, “나이를 감안하여 내시경검사를 받아 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바쁘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이를 실천하지 못하였다. 보라매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용종 1개와 선종 3개가 발견되었다. “용종만 발견되면 곧 시술이 가능하나, 선종은 당장 시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진행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 달 후 내시경 검사 시 채취한 조직에서 다른 이상이 없어, 비수면 대장내시경시술을 하였다. “시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는 격려 및 주의사항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검진결과를 기다라는데 담당의사가 “선종제거시술 시 채취한 선종 한 군데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산정특례 등록절차를 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암 세포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고 시술 부작용도 없으니 안심하고, 통상 암환자에게 실시하는 치료과정도 아직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었다. 앞으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주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함을 친절히 설명하면서, “상심하지 말고 건강관리에 유념하라. 한마디로 암은 자각증상이 나타나면 너무 늦다”고 말했다. ‘암환자!’ 암 확진 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줄 알았던 말이다. 가족력을 보아도 암은 부모님, 형제자매 누구에게도 없다. 절제와 성실한 생활규범을 잘 지키면서 살아 왔다고 자부했는데, 왜 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암환자가 되었단 말인가! 뱃속에는 꼭 시한폭탄이 들어 있어 곧 터질 것 같은 기분이다.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동안은 뱃속이 뒤틀리고 쑤시다가, 별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다. 대장암과 함께 종합검진 때 체크되었던 다른 분야도 혈액검사, 초음파, C/T촬영 등 검진을 1년에 몇 차례씩 계속하고 있다. 검진 때마다 의사선생에게 물었고, 대답은 항상 같았다. “특별히 좋거나 나쁜 음식이 없으니 섭생에 연연하지 말라. 과음과 과식을 삼가고 스트레스와 체중관리에 노력하라.”고 말하였다.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과에 위안을 받았다. 완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5년’이 되어간다. 처자식과 손주, 친구들과 어울려 관악산 동네에서 살면서 평범한 방식으로 암을 이기는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 할 때도 많았다.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오르고 사회공헌 자원봉사에 앞장섰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 2016-07-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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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되는 이야기] 골든 에이지를 위한 영양제 요법(3)
- 영양제에 관해서 대중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오해가 바로 영양제는 몸에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약과 달리 잘 챙겨 먹을수록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특히 평소에는 영양제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병을 앓거나 앓고 나면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영양제가 언제든지 많이 먹어도 좋은 것일까? 질환의 종류에 관계없이 몸에 좋은 영양제라면 다 챙겨 먹는 것이 어떻든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영양제도 각기 역할이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먹어야 한다. 앓고 있는 질환에 따라 도움이 되는 영양제도 있고, 거꾸로 질환을 악화시키는 영양제도 있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많이 알려진 질환들을 대상으로 도움이 되는 영양제와 오히려 해가 되는 영양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암 일반적으로 암환자들에게는 정통적인 치료법 못지않게 각종 영양제와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의 유혹이 많다. 암세포는 분열 속도가 폭발적이기 때문에 환자의 영양상태가 좋든 나쁘든 간에 똑같은 영양소를 뺏어가므로 암에 걸렸을 때는 체력의 유지와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 고영양 식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영양제가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엽산 엽산을 복용하면 암으로 발전하기 쉬운 선종성 용종의 발생을 줄여 대장암, 직장암이 적게 발생한다고 밝혀져 있다. 먹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이 엽산을 고함량 복용하면 자궁경부이형증이 덜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음주로 인한 여성의 유방암 발생률을 낮춘다고 알려졌다. 음식 중의 엽산은 단백질이나 당과 결합되어 있어서 몸에 흡수되기 어렵기 때문에 영양제로 보충할 것을 권장한다. 칼슘 대장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직장암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면 대장의 용종이나 선종성 용종을 감소시키거나 재발을 억제하고 또한 이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을 50%까지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비타민D 폐경 이후 여성들이 칼슘과 비타민D를 같이 복용했을 때 암 발생률이 60% 감소했다. 칼슘만 복용했을 때보다 효과가 더 우수했으므로 비타민D가 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카로틴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베타, 알파 카로틴은 폐경 이후 여성의 난소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흡연자가 베타카로틴을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폐암 발병률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비타민E 비타민E는 활성산소가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억제하고 소화기관 내에서 니트로사민 같은 발암물질이 생기지 않게 한다. 또한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E를 보충하면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으며 대장암이나 폐암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 비타민E 200IU를 10년 이상 복용하면 방광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레늄 항산화 미네랄인 셀레늄은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장암, 식도암, 위암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고, 폐암, 전립선암, 피부암 등에 대한 효과는 부정적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항산화 효과는 높지만, 아직 임상적으로 각종 암에 대해서 얼마나 유효하게 억제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편이다. 당뇨병 당뇨병의 치료에 관해서도 알려진 민간요법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각종 약초에서부터 닭의 쓸개까지, 정말 많은 식품들이 추천된다. 하지만, 당뇨병 자체가 과도한 영양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식이섬유 여러 연구에서 차전자피, 구아검, 펙틴과 같은 식이섬유가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져 있다. 특히 식사 후에 당분이 흡수되는 것을 늦추어 혈당이 상승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혈액 중의 총 콜레스테롤과 LDL(저밀도 지방 단백질)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당뇨 환자에게 발생하기 쉬운 고지혈증도 개선한다. 차전자피의 경우 식후 혈당이 14~20%, 총 콜레스테롤은 9%, LDL은 13%나 감소시켜 준다. 식후 혈액 중의 인슐린 농도도 낮춰 줘 대사증후군이나 성인병의 주된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도 감소시켜 준다. 이외에도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고 변비나 과민성대장증상등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어 여러 용도로 추천된다. 크롬 인슐린의 감도를 높여 혈당을 낮추며 고지혈증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일반적인 당뇨병뿐 아니라 당뇨병 전 단계인 고혈당증, 임신당뇨,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한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 당뇨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체중 증가나 체지방 축적을 감소시키는 작용도 한다. 대체의학에서도 크롬이 부족하면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하루 200ug부터 1000ug까지 권장하는데, 600ug을 넘으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그네슘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혈액 중의 마그네슘 농도가 낮다. 따라서 마그네슘의 결핍과 당뇨병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그네슘을 섭취하면 공복 시의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 100mg을 더 섭취하면 당뇨병 발생 가능성이 15%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단 이 결과는 음식으로 섭취한 마그네슘에 대한 결과여서, 영양제로 섭취한 마그네슘도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마그네슘은 근육 경련(눈 떨림), 변비, 속쓰림, 신장결석, 골다공증, 두통 등 다방면에 쓰이는 성분이다. 밀크시슬 서양 엉겅퀴 풀이라고도 하는 밀크시슬의 추출물은 원래 간장 영양제나 치료약으로 많이 쓰이는 성분이다. 공복시 혈당, 당화혈색소, 총 콜레스테롤, LDL, 중성지방 등을 모두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밀크시술 추출물은 생약 추출물이기 때문에 원료의 처리 과정부터 완제품 제조까지 완벽해야만 안전성과 효과를 보장할 수 있어, 불확실한 건강기능식품보다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글루코사민, 홍삼제품 관절 기능을 좋게 하는 글루코사민은 핵심 원료 자체가 당 성분이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 글루코사민을 과량 복용할 경우 글루코사민 성분이 당을 상승시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홍삼제품도 주의하여야 한다. 홍삼 자체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지만 홍삼제품은 단맛이 나도록 과당과 각종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루 몇 팩씩 복용하다 보면 혈당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시틴, 기타 식물 추출물의 발효제품들 레시틴은 당뇨나 신장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려움이나 두드러기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식물 추출물 발효제품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꼭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최혁재(崔爀在) 약사 경희의료원 약제본부 예제팀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 2016-06-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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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온뒤 칼럼] 체온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떨어진다?
- 체온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떨어진다고 한다. 암세포는 35도에서 가장 증식을 활발하게 한다고 한다. 결론은 체열을 통상적인 정상온도 36도보다 높은 37도가량 유지해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체온면역설이다. 요즘 신문과 방송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 의사 사이토 마사시가 쓴 란 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0년 출간 이래 일본에서 80만권이나 팔렸다고 한다. 사이토 마사시는 일본인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양내과 전문의다. 그는 이 책에서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떨어지고 반대로 1도 올라가면 500~600퍼센트 올라간다고 강조한다. 이론적 토대는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루박사가 제시했다. 일본 니가타대 의대에서 면역학을 가르치는 그는 체온저하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이것 때문에 백혈구 가운데 림프구가 감소하면서 면역이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2004년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저서 을 통해서다. 우리나라에선 한의학을 중심으로 체온면역이론이 중시되고 있다. 2015년 12월 14일자 한 신문에 따르면 메르스 유행 시 환자들의 체온이 신기하게도 36.5도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의사의 고백이 나온다. 처음에는 체온계 고장을 의심했지만 체온계는 정상이었고 환자들의 체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폐암을 앓다 완치된 환자의 사례도 나온다. 진단 시 체온이 35.8도였지만 수술과 생활습관으로 완치되어 11년째인 요즘 37도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스나 폐암이 체온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체온과 면역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정말 체온이 떨어지면 질병에 걸리고 체온을 높이면 건강에 도움을 줄까? 나는 체온면역설이 몇 가지 관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들이 말하는 체온의 정의가 모호하다. 알다시피 체온의 종류는 다양하다. 구강체온, 직장체온, 피부체온까지 측정 부위에 따라 다르다. 생리학 교과서를 보면 직장체온은 대단히 안정적이다. 나체로 건조한 공기에 노출될 때 11.7도에서 54.5도까지 0.6도 안팎으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구강과 직장에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극심한 추위에선 35.6도까지 떨어지고 극렬하게 운동할 땐 40도까지 오를 수 있다. 피부체온은 가장 변동 폭이 크다. 보통 적외선 카메라로 측정하는데 외계온도에 따라 10도 이상 춤을 춘다. 추운 겨울에 재면 내려가고 더운 여름에 재면 올라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피부체온이 대개 구강과 직장보다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피부체온은 실온에서 잴 때 보통 33도이며 구강체온은 36도, 직장체온은 37도를 보인다. 기사에 말하는 메르스 환자의 체온을 어떤 방식으로 쟀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동일한 환경에서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사에선 누가 몇 명을 대상으로 어떻게 측정했는지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체온이라면 당연히 낮게 나올 수 밖에 없다. 둘째 면역의 정의가 모호하다. 면역은 대단히 어려운 주제다. 아직까지 면역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백혈구 숫자나 아드레날린 수치 등 몇 가지 작은 지표 하나를 갖고 면역이 올라갔다 혹은 내려갔다 단정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면역이 무엇을 말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이토 마사시의 책을 구석구석 읽어보았지만 어디에도 면역이 어떤 방법으로 측정한 것인지 설명이 없다. 대단히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다. 14페이지에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면역력은 30퍼센트나 떨어진다”라고 나와 있다. 앞뒤 아무런 설명이 없다. 왜 20퍼센트도 아니고 40퍼센트도 아니고 하필 30퍼센트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15페이지엔 “반대로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은 무려 500~600퍼센트 올라간다”고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 설명이 없다. 숫자에 대한 설명은 물론 왜 그러한지 기전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나의 말이 곧 진리니까 그대로 믿으라는 것처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보 도루 박사의 책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그는 백혈구 안에 림프구와 과립구 숫자의 비율로 설명했다. 체온이 내려가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림프구의 비율이 줄고 그래서 면역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면역=림프구 비율’로 바라보는 단순함에 놀랐지만 그래도 약간이라도 그럴 듯한 설명을 해준 게 어딘가 싶다. 마찬가지로 그의 책 어디에서도 30퍼센트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셋째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경우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백번 옳아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이 떨어진다고 해도 체온저하가 정말 면역저하의 원인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통계적 연관성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원래 질병이 있거나 몸이 안 좋으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다. 체온저하는 몸이 안 좋거나 질병이 있어서 나타난 하나의 결과일 뿐인데 겉으로 보기에 몸이 좋지 않게 된 혹은 면역이 떨어진 원인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내놓는 대책이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운동해서 근육을 키우라고 말한다. 여기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면역을 포함한 우리 건강에 도움될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과정이 틀렸다. 엉뚱하게 체온을 끌어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체온은 대뇌 깊숙이 위치한 시상하부가 관장한다.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정상이다.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인간은 항온동물임을 기억해야한다. 체온은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둘다 바람직하지 않다. 서적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국내언론의 보도도 문제가 많다. 메르스 환자가 체온이 낮았다는 기사는 어이가 없다. 어떤 연구기관에서 어떤 방법으로 몇 명을 대상으로 측정했더니 결과가 어떠했다는 기본적인 팩트도 나와 있지 않다. 그냥 ‘익명의 누가 그러더라’라고만 기술하고 있다. 폐암 환자 완치사례에 대한 기사도 단지 한 사람의 케이스만으로 전체 폐암으로 일반화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암세포가 35도에서 가장 잘 자란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이다. 전 세계 유력 학술잡지의 논문들을 모조리 뒤져도 그런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시험관 실험에서의 결과일 뿐이다. 암환자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몸에서 35도란 체온은 추운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 저체온증이 시작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 체온면역설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 건강서적의 무분별한 수용이 불러온 해프닝의 하나다. 사람들은 운동하고 금연하라는 뻔한 이야기에 식상하다. 그러다보니 이색적인 주장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가끔 이를 부추기는 전문가들이 있다. 박사나 의사, 대학교수 가운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근거주의에 입각해야 하며 근거가 없다면 의학적 개연성에서만이라도 보편타당하게 납득되는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언론도 건강 관련 보도에서 흥미 위주에서 벗어나 신중하고 객관적일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 2016-02-18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