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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과 단절 속,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
- “아무도 없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이 무채색이 되었다가 누군가 날 알아주면, 단 한 명이라도, 갑자기 숨이 쉬어지고 세상이 색깔을 입게 돼. 그제야 살아볼까 하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호 주제를 일찌감치 ‘날 알아주는 한 사람의 힘’으로 잡고 여유를 부리던 필자는 마감이 점점 다가오면서 여러 목소리와 이야기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시댁 형님들과 나눈 대화방에서 글머리를 찾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큰형님! ‘하늘꽃’ 지고 ‘땅꽃’ 피는 계절 모진 서너 해, 역병 맞은 세상 꿋꿋하게 견디더니 긴 세월 품었던 설움 한꺼번에 폭발한 올봄. 산수유, 벚꽃이 천지사방 만발했습니다. 그동안 자기 순서 지키며 차례로 피던 봄꽃이 너나 할 것 없이 꽃망울 펑 펑 펑 터트렸으니까요. 긴 겨울 메마른 가지 애써 외면하면서 덩달아 하늘 볼 일 마다했는데, 마을마다 거리마다 천변(川邊) 따라 펼쳐진 꽃 대궐 덕분에 하늘 한껏 올려다보며 봄을 만끽했습니다. 필 때도 갑자기, 질 때도 후두둑 하더니 행여 아쉬울세라 영산홍, 철쭉, 민들레, 오랑캐꽃, 할미꽃까지 땅꽃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시샘이나 하듯 노랑, 보라, 진분홍, 연분홍 색색 향연을 펼치지 뭡니까.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을 5월엔 아마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담쟁이덩굴, 등나무 잎겨드랑이에서 주렁주렁 앙증맞은 꽃을 피우겠지요.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연결해 가득 충전해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 아닐까요. 이름 모를 혹은 이름 없던 꽃에 일일이 이름 붙여 불러주면 내게 다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낳아 이름 지어 명자야, 경희야, 향순아, 옥임아, 종섭아 부르고 또 부르던 부모.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부모. 우울하고 기운 없는 날,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어버이날, 스물넷 어린 새댁이던 필자는 같이 살던 시부모님 몰래 친정에 다니러 갔습니다. ‘힘들다, 시어른과 같이 지내기 참 무섭다, 엄마 아버지 너무 보고 싶다’ 입 밖으로 하소연이 시작되려던 찰나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얼른 집에 가거라. 어른들 걱정하실라.” 아버지는 딸내미 옷차림새만으로도 허락 없이 왔다는 게 보이는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때는 참 서운하고 서러웠는데 철이 조금 든 지금 생각해보니 시어른들 눈 밖에 날까 봐 애틋한 마음 숨기고 서둘러 시댁으로 보내셨다는 걸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내 편’ 응원이 필요할 때면 필자는 부모님 뵈러 갑니다. 좋아하는 배추전 잔뜩 부쳐주시면 손으로 주욱 찢어 양념장 콕 찍어 맛나게 먹습니다. 사랑 한가득 충전해 배부르면 그제야 웃음 찾아 돌아오곤 합니다. 아름다운 신부, 두봉 주교 올해 93세를 맞은 두봉(杜峰, 본명 르네 뒤퐁) 주교는 1969년부터 1990년 정년까지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냈습니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난 그의 한국식 이름 두봉(杜峰)을 풀면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라는군요. 극빈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였던 한국에 파견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어려운 나라로 가는 것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는 그는 마음 그릇 크기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꼬박 두 달 반 배를 타고 도착한 한국에서 스물여섯부터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헌신하고 봉사한 두봉 주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당시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 시절 한국 사람은 좋았다며, 그렇게 참담한 지경에 처했음에도 참 떳떳하고 친절하고 인간다운 인간이랄까 한국 사람이 풍기는 인상이 좋았다고 회고합니다. 불우한 청소년과 농민을 돌보고 교육하고 인권을 신장하는 일에 한평생 헌신해온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기쁘고 떳떳한 삶의 원동력 한국으로 선교 온 32년간 신부가 된 아들에게 매주 편지를 보내온 아버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자식을 한국에 바치는 입장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두봉 주교 품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편지를 쓴다. 친애하는 나의 작은 르네야. 나는 어둡고 흔들리는 외로움 속에 서서 편지를 쓰고 있단다. 여긴 비가 너무 많고, 한국에는 비가 너무 적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하늘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어머니도 떠난 텅 빈 집, 병상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삐뚤빼뚤 써 내려간 편지를 생전 아버지 대하듯 귀하게 여기는 두봉 주교. 특히 1986년 5월 9일 아흔이 되신 아버지가 부친 마지막 편지를 자주 꺼내봅니다. 보름에 한 번 프랑스로 답장을 보내던, 이제는 구십 훌쩍 넘긴 아들이 1986년 구십 아버지한테 시간여행하듯 답장을 합니다. “아빠, 고마워요. 내가 아빠 엄마로부터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 편지 30년 동안 계속 보내주신 것 고마워요. 난 아빠 엄마 너무 좋아.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영원히 행복하게 사실 거예요. 나도 언젠가 따라갈 거예요. 따라갈 때까지는 돌봐주시고, 그 다음에도 함께 기뻐할 거예요. 고마워요, 고마워.” 누군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두봉 주교는 생전이나 돌아가신 뒤나 아버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힘이 70년 가까이 낯선 땅에서 사랑을 나누고 헌신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누군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끼나요. 곁에 가족이 있어도 고립과 단절로 외로워하는 게 요즘 우리 모습입니다. 각자 방문 쾅 닫고 마음도 굳게 닫아걸고 말입니다. 열려고 있는 문인지, 닫으려고 있는 문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두드립니다. 문도 두드리고 맘도 두드려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숨통 트이고 휴, 살 만해지니까요. 진정 난 몰랐었네 다리가 불편한 아들에게 곁을 주지도,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은 엄마. 학교에서 직장에서 불구라고 차별받으며 서러움만 켜켜이 쌓여가던 아들. 남편마저 일찍 여읜 엄마는 아들이 약해질까 하는 노파심에 되레 강하게 키우려 했지만, 평생 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아파합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jtbc)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런 엄마가 덜컥 치매에 걸리면서 가족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고통은 증폭됩니다. 치매로 기억을 잃은 엄마가 어느 날 요양원에서 사라집니다. 불편한 다리로 주변을 찾던 아들은 저만치 요양원 마당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치우는 엄마를 발견합니다. 자식 고생시키는 엄마에게 버럭 화가 났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 앞의 눈을 쓸어준 사람 가난했던 그때 달동네 꼭대기에 살던 모자는 한겨울 내리는 눈 때문에 엄청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등교할 때마다 누군가 깨끗하게 쓸어놓은 덕에 눈길을 넘어지지 않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랫집 아저씨가 눈 쓰는 모습을 본 아들은 ‘아, 저분이 그동안 눈을 쓸어주셨구나’ 합니다.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은 엄마가 습관처럼 눈이 오는 날이면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들은 깨닫습니다. ‘내가 비탈길에서 넘어질까 봐 엄마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눈을 쓸었던 거구나.’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또 눈을 쓸러 나갔던 것입니다. 그제야 얼어붙은 아들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엄마를 향한 원망과 서러움과 미움이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립니다.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 돋도록 자녀의 경제적 독립과 출세, 아니 취업과 결혼이 힘겨운 최근엔 사람 노릇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비는 게 부모 심정입니다. 내 자식 걱정에만 우리가 안달할 때, 사회 한편에서는 부모 학대와 유기로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시설 보호를 마치고 해마다 2000~3000명씩 ‘자립준비청년’(예전에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렸던)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보육원 졸업할 때 지급되는 정착금(1000만 원)과 자립수당(5년간 월 40만 원)이 조금씩 올라서 경제적으로 힘이 된다지만,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 불안과 무력감이 삶을 포기하도록 몰고 가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 청년의 경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고 합니다. 소통하고 의논하고 연락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고 없고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사례가 참 많다네요. 보육원 원장님이나, 시설 프로그램에서 만난 멘토나, 그 누구든 고민을 들어주고 모르는 것 물어보면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 한 명만 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도록 저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내가 당신 받침이 될게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귀 기울이고, 가슴으로 안아줄 때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갓난아기 업을 때 포대기 두르고 아기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주면 한결 가볍습니다. 책이며 서류며 물건이며 온갖 것 가득 넣은 가방을 어깨에 멜 때도 한 손으로 아래를 살짝만 받쳐줘도 아프던 어깨가 훨씬 가볍습니다. 공책에 교과서에 연필로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면 뒷장에 우툴두툴 글자가 튀어나오고 물듭니다. 그럴 때 플라스틱 책받침 하나 끼우면 뒤탈이 없어 속상하지 않습니다. 살짝만 받쳐주어도 우리 짐은 가벼워지고 삶의 무게는 덜어지고 아팠던 어깨는 견딜 만해집니다. 서로 받쳐주며 손 잡고 맘 잡고 살아볼까요?
- 2023-05-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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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득한 시작을 함께할 ‘인생 첫 선생님’, 최순나
- 첫 등굣길, 가방끈을 꼭 움켜쥔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최순나 교사는 그런 부모의 걱정을 기대로, 아이의 설렘은 계기로 바꾼다. 어른들이 만든 딱딱한 교육의 틀은 잠시 접어둔 채 맨발로 땅을 딛거나 풀을 만지며 계절을 사색하게 하고, 글로 풀어내게 돕는다. 그 덕분인지 2학년이 되면서 1학년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글을 담은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 속 제자들은 말한다. “후배들아, 학교는 재미있어!” “수업 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시계를 볼 줄 모르는데, 쉬는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먹기 싫은 반찬이 급식으로 나온다면?” 초등학교 생활을 앞둔 일곱 살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법한 고민이다.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은 먼저 학교를 겪어본 대구 대봉초등학교 2학년과 최 교사가 모든 것이 낯선 예비 1학년을 위해 만든 책이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지만 속 깊은 조언과 응원이 담겼다. 부모들을 위해서는 자립심이 부족한 아이를 학교에 잘 보내는 방법, 담임선생님과 원활히 소통하는 법, 자녀의 친구 관계에 대처하는 법 등 다양한 지침도 적었다. ‘1학년’을 위한 선생님 최 교사는 1988년 초등학교에 부임해 지금까지 열세 번을 1학년과 보냈다. 올해는 1학년 7반 담임을 맡았다. “초등학교 입학으로 아이는 자신의 삶을 근사하게 살아내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죠. 여덟 살 인생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첫 선생님이 되고자 해요.” 그는 주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향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강아지풀로 손을 간질이거나, 여름비를 가만히 손으로 받아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글로 쓰게 한다. 자연과 교감하며 관찰력과 감각을 발달시키고, 경험을 글로 쓰며 어휘력이 발달하도록 돕는다. 고사리손으로 눌러쓴 시와 이야기들이 모이면 최 교사는 책으로 엮어내고, 다시 선물한다. ‘어린이 저자’들의 탄생이다. “신규 교사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매일 글쓰기를 권했어요. 바빠서 못 쓰는 날은 나름의 이유와 함께 바빴다고 한 줄이라도 쓰게 했죠. ‘글’이라는 표현 수단으로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기록하며 스스로 한 다짐과 후회는 다음 날 아침, 조금은 괜찮은 선생으로 살아낼 힘이 됐어요. 아이들도 그 기분을 느꼈으면 해요. ‘일기’라는 이름보다 ‘하루 담기’, ‘삶이 있는 글쓰기’라는 다소 낯선 이름을 붙여 압박감을 줄여주고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어쩜 이렇게 정성껏, 따뜻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아요.” 우리는 맨발 교실의 주인공 탁 트인 운동장에서 매일 아침 최 교사와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운동장을 빙빙 돈다. 해가 쨍쨍한 날은 발바닥을 뜨끈히 덥히고, 비 온 다음 날은 촉촉하고 되직한 흙을 느끼며 대화를 나눈다. 특히 줄넘기, 오래달리기 등을 통해 온몸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우선 억지로 시키기보다 얼마나 뛸 건지 먼저 묻는다. 스스로 목표를 선택하고, 그걸 이뤄냈을 때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어떤 아이는 다섯 바퀴를 뛰고도 거뜬하지만, 또 다른 아이는 한 바퀴도 힘들어한다. 많이 달리지는 못하지만 ‘나는 행복하다’며 그대로를 즐기는 아이가 있고,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점차 나아지는 아이가 있다. 어떤 경험이든 다 배움이 된다. 그 상황을 온전히 겪어내면서 자신만의 대응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선택과 결정을 하도록 기회를 줘요. 어른이 되기 전,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기반을 닦아주는 거죠. 얼마 전 ‘교실의 주인은 당연히 선생님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교실의 주인은 우리였네요!’라는 한 아이의 말이 스미더라고요.” 엄마 아빠, 걱정 마세요! 최근 과도한 사교육, 끝없는 비교,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이 뒤섞여 학부모들의 염려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최 교사는 그럴수록 자녀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의젓하고 성숙하게 세상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삑삑 소리만 나던 리코더에서 어느 날 맑은 음이 날 때, ‘나, 이것도 해냈으니까 다른 일도 곧 잘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어른은 그저 지켜봐 주고, 응원하면 된다. “공동체 사회에서 약간의 잡음을 견딜 줄 알아야 멋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교육의 위기 속에서도 학교는 여전히 의미 있는 곳이죠. 아이의 성취에 부모만큼 기뻐할 교사, 마음을 나누고 함께 자랄 친구들이 있어요.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하죠. 학생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키워주려 노력하는 선생님을 믿고 맡겨주세요. 경쟁과 결과 중심이 아닌, 본질을 깨닫는 교육을 위해 힘쓸 테니까요.”
- 2023-05-1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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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MUT(멋):] 손에 얽힌 이야기
-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의 일부를 옮겨 싣는다. 첫 번째 주제는 손이다. 1 내게 손은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다. 삶의 흔적이 가득 묻어 있기 때문이다. 손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인생이 느껴진다. 나이테와 같은 주름살과 결혼반지가 어우러진 친할머니의 손은 할아버지와의 사랑과 추억을 증명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반지를 끼고 다닌다. 그런 할머니의 손을 보면서, 언젠가 내 손에 새겨질 삶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된다. 2 각얼음을 연상시키는 액세서리로 무장한 아버님의 손. 3 삼천포에서 미용실을 하는 어머님의 손. 어머님의 머리는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의 모든 색상으로 염색을 해보시고는 뻔한 색이 재미없어 핑크색으로 염색했다고 말했다. 4 성북동 새이용원 이덕훈 이발사의 손. 그는 19세부터 이발사인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이발 기술을 배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다. 누구보다 멋진 손에 염색약이 묻어 있다. 5눈에 띄는 지팡이를 지닌 아버님. 연락처를 ‘스핑크스 아버님’으로 저장해뒀다. 6 ‘디올 어머님’. 별칭은 처음 뵈었을 때 ‘디올’(Dior)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계신 데에서 착안했다.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분이다. 그의 당당한 모습이 내 눈에는 코코 샤넬(패션 브랜드 ‘메종 샤넬’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처럼 보인다.
- 2023-05-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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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멋진 50+세대’가 제시하는 노후 거주, “다양성 부여해야”
- ‘시니어의 집은 곧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다. 바로 2022년 시작된 일본의 ‘어른의 생활 기분’ 캠페인이다. 캠페인을 시행하는 곳은 사단법인 ‘케어링 디자인’(Caring Design)이다. 디자인, 건축, 의료, 간호, 복지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50+세대를 대상으로 한 주거나 의료, 돌봄이 이뤄지는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고자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소고‧세이부 백화점에서 ‘라이프 디자인 살롱’이라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시니어 맞춤 주거 리모델링 사업 및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수천 건의 시니어 주거 관련 컨설팅을 진행한 케어링 디자인은 2020년 온라인 세미나 ‘100년 인생 생활의 디자인’을 열었다. 일본 유명 건축가인 아베 쓰토무(阿部勤)가 ‘중심이 있는 집’을 소개하는 영상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됐다. 그라데이션으로 다양성 주는 노후의 집 노후 인테리어와 관련해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그의 설명 중 ‘집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하기’, ‘부엌 집기들이 전부 보이도록 수납공간을 설계하기’이다. 그의 집은 이름처럼 내부에 중심이 되는 방이 있고, 벽 너머에는 3면에 창문이 있어 외부처럼 느껴지는 공간, 정원으로 구성돼있다. 그는 중심에서 바깥으로 넓어지는,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때와 기분에 따라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계단에는 모아둔 서적을 보관하고, 복도를 취미용 화실로 활용하는 식이다. 부엌 설계는 독신 남성이 나이가 들어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료 손질과 세척, 조리와 식사까지, 순서를 고려해 불필요한 동선을 없앴다. 또한 중심이 있는 집 부엌의 모든 집기는 전부 외부에 드러나 있는데, 이 역시 노화로 인한 특성을 고려한 부분이다. 노화로 인해 건망증이 생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집기는 사용하지 않게 되므로 집기들이 전부 보이게끔 부엌의 수납공간을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직접 지은 집에서 50년간 살고 있는 건축가가 ‘100세 시대에 집이 갖춰야 할 디자인’에 대해 소개하는 이 영상은 2023년 4월 기준 누적 조회수 28만 회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영상이 2022년의 ‘어른의 생활 기분’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모태가 됐다. 집은 곧 인생의 표현 방식 어른의 생활 기분 다큐멘터리는 미래 시니어 주거의 본보기가 될, 50대 이상의 ‘멋진 어른’들의 생활을 소개한다.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집을 꾸미고, 생활환경을 구현한다. 노후에는 살기 편하고 안전한 거주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고, 삶의 색깔을 구현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 다큐멘터리는 현재 총 3편이 공개된 상태다. 191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현대적인 디자인의 민박집으로 개조하고 찾아오는 세계인들과 꾸준히 교류하고자 하는 여성, 집 근처에 오두막과 허브 정원을 조성한 여성과 자연 속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짓고 자택 겸 작업실로 활용하는 작가 부부의 삶과 삶이 묻어나는 집을 조명한다. 3편의 영상은 모두 평생 숙성시켜온 삶의 방식을 완성하는 곳이 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당 캠페인을 소개한 책 ‘뉴그레이’에서는 ‘시니어의 거주지가 단지 안전한 상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미디어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케어링 디자인 편집부는 향후에도 취재를 이어나가 100세 시대를 맞이할 현대의 어른을 위한 롤모델들을 계속해서 다큐멘터리로 소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어로 제작돼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노후의 집을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면 이웃 나라의 50+세대들이 벌이고 있는 실험적인 시도들을 눈여겨 봄 직하다. 유튜브 자막 생성 기능을 활용하면 한국어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2023-04-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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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단상] 후기청년 세대 단단해지려면
- “곱고 희던 그 손으로/넥타이를 매어주던 때(중략)/인생은 그렇게 흘러/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 그 먼 길을/어찌 혼자 가려 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故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김광석은 통기타 하나로 시대의 아픔과 대중의 삶을 전달한 음유시인입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1995년에 가수 김목경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른 것으로, 김목경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런던에 살 때 건너편 집 부부의 모습을 보고 노래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1980년대 런던에 사는 60대 부부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요즘 60대를 인생의 황혼기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학의 발달 등으로 사람의 신체·건강 나이는 젊어졌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나이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했습니다. 10명 중 9명 이상이 “나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나이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나이보다 더 어리게, 더 늙지 않게, 아이들처럼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는 ‘어른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1년 기준 우리 국민 평균수명은 83.6세입니다. 1950년대 초반 48세(유엔통계)였으니 70년 사이 1.7배나 늘어난 셈입니다. 평균수명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67년 평균수명은 90.1세입니다. 유전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인류의 평균수명이 113세에 이를 것”이라고 했고, 진화 인류학자인 카델 래스트는 “평균수명 12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을 보면 소년을 19세 미만(소년법 2조), 청년을 19세 이상에서 34세 이하(청년기본법 3조1항), 노인을 65세 이상(노인복지법 2조5항)으로 각각 규정합니다. 중년은 35세 이상에서 65세 미만입니다. 정신·신체 나이는 늘어만 가는데, 법은 과거에 머물면서 고용·사회 안전망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합니다. 청·장·노년의 기준을 바꾸고 정년을 늘려야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의 저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청년은 10~39세, 중년은 40~69세, 노년은 70세 이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 교수는 “그래야 젊은 베이비부머가 한국 사회의 빚이 아닌 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인구절벽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건강한 생산연령인구 300여만 명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세대 역할의 변화도 불가피합니다. 인간의 긴 수명으로 인해 ‘나이가 곧 계급’이라는 인식은 재고돼야 합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50+세대 일자리가 늘어도 일터는 정상 작동할 것입니다. 부모 자식, 선·후배 간 관계도 보다 수평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지령(誌齡) 100호를 맞아 그런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함께 전국의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을 중장년(33.8%)보다는 X세대, 낀 세대 등(62%)으로 보는 응답자가 더 많았습니다. ‘실제 나이보다 젊게 느낀다’는 응답이 65%였고, 10년 이상 젊게 느낀다는 응답자도 14.4%나 됐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4050세대를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로 ‘후기청년’을 제시하는데, 68.4%가 자신을 후기청년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젊어진 중년, 그래서 스스로를 청년으로 칭하는 이들의 미래가 녹록지는 않습니다. 100세 시대, 120세 시대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절반 이상이 ‘걱정된다’, ‘겁난다’, ‘절망적’이라고 답했습니다.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65세 이상이 되어도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73%에 달했지만 정작 ‘계획대로 노후 일자리 준비를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습니다.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고 정년을 연장하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합니다. 정년연장•폐지에 대해선 2030세대도 80%가 동의합니다. 연금 개혁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마련 중입니다. 20년 가까이 된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의 개정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줄어든 아이 울음소리와 늙어가는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생애주기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설문조사에서 후기청년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들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청년 세대(후기청년을 포함한)야말로 출산과 육아, 고령화 부담을 직접 책임지는 세대입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년 세대가 단단해지려면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규준과 역할은 물론 교육과 보육, 주거 등 정책을 재정립해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을 수 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합니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 2023-04-0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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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노소 좋아할, 키덜트의 천국에 가다
- 취미 앞에선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평등하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 있다면 즐길 자격은 충분하다.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이나 만화, 게임에 열광하는 게 정 눈치 보인다면, 손주 혹은 아들 손을 잡고 소개된 장소를 방문해봐도 좋겠다. 한우리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국제전자센터 9층은 키덜트의 성지다. 게임기, 피규어 등 다양한 상품을 구경할 수 있고 중고 거래도 가능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심형탁, 지숙이 방문한 후로 더욱 주목받았다. 한우리는 게임기 위주 소매상이다. ‘호객 행위가 없고, 정품만 취급하며,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고 소문이 나 인기가 높아졌다.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노원역 근처, 대구 반월당역 근처에 분점이 있으며, ‘겜우리’라는 온라인 상점도 영업 중이다. 건담베이스 일본 회사 ‘반다이 스피리츠’에서 운영하는 직영 모형점이다. 주력 상품은 건프라(건담 프라모델)이며, 프라모델 조립 관련 공구들도 판매하고 있다. 소매점이나 대형 할인점에 비해 많은 종류의 상품군과 물량을 갖추고 있다. 넓은 매장에 크고 작은 프라모델이 전시돼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종 피규어나 식품 완구도 취급한다. 서울을 포함해 수원, 고양,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 곳곳에 매장이 있다. 킨키로봇 베어브릭(곰 모양의 블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디자이너 토이와 피규어를 취급하는 브랜드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나 브랜드들의 협업 제품을 엄선해 수입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과 용산구 한남동에 매장을 두고 있다. 깔끔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매장 내부와 늘어서 있는 다양한 베어브릭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유명 미술관에 온 듯하다. 옥인오락실 옥인오락실은 서촌에서 가장 오래된 오락실인 ‘용오락실’(1988년부터 2011년 5월까지 운영)을 모티브로 그 자리에 2015년 문을 열었다. 10평 정도 좁은 공간엔 고전 게임 오락기 10여 대가 늘어서 있다. 보글보글, 테트리스, 스트리트파이터, 철권 1945, 스노 브라더스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레트로 열풍 덕인지 서촌의 대표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았으며, KBS ‘동백꽃 필 무렵’,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비롯해 다양한 드라마, 영화, 광고 등이 촬영된 곳이다. 스누피가든 ‘스누피’는 미국의 작가 찰스 슐츠가 1950년부터 신문·잡지에 50년간 연재했던 네 컷짜리 만화 ‘피너츠’(Peanuts)의 주인공이다. 스누피가든은 스누피를 비롯한 ‘피너츠’ 캐릭터들을 주제로 제주에 조성된 2만 5000평 규모의 테마 공원이다. 실내 전시 공간에는 ‘피너츠’를 탄생시킨 찰스 슐츠의 철학, 캐릭터들의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야외 정원에는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과 희귀식물, ‘피너츠’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루어 오랜 시간 거닐기 좋다. 스탬프 투어를 하며 가든을 둘러보면 재미가 배가된다. 스누피가든 지도에 정원 8곳의 도장을 찍는 것이다. 스탬프를 다 모으면 작은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피너츠’ 친구들의 밝고 솔직한 유머는 아이뿐 아니라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뜻밖의 위로가 된다. 스누피가든을 기획한 김우석 에스앤가든 대표는 “스누피가든은 아이, 엄마, 할머니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 2023-02-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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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주말에 키덜트 구경갈까?
- 취미 앞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평등하다. 이번 주말, 손주 혹은 아들과 함께 방문해볼만한 키덜트 성지를 소개한다. 한우리 ‘키덜트 성지’ 대표주자. 게임기, 게임CD나 피규어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효령로 304 국제전자센터 9층 9114호 운영시간 10:00~20:00, 매주 첫째, 셋째주 일요일 휴무 건담베이스 일본 ‘반다이 스피리츠’의 직영 모형점이다.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프라모델 조립 관련 공구, 각종 피규어나 식품 완구도 취급한다. 주소·운영시간 서울, 수원, 고양, 대구, 대전, 부산 등 지점별 상이 킨키로봇 베어브릭과 디자이너 토이와 피규어를 판매한다. 미술관처럼 전 세계 예술가나 브랜드와의 협업 제품을 전시해둔 것이 특징.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46길 65-2 히든파크 2층 운영시간 12:00~21:00 옥인오락실 10평 남짓한 공간에 고전 게임 오락기 10여 대가 늘어서 있다. 서촌에서 가장 오래된 오락실 ‘용오락실’(1988~2011)이 모티브.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28 1층 운영시간 연중무휴 24시간 운영 스누피가든 스누피와 피너츠 캐릭터들이 가득한 테마 공원. 야외 정원에서 도장을 찍는 스탬프 투어를 끝내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금백조로 930 운영시간 9:00~18:00 요금 성인 18,000원
- 2023-0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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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마음을 울리고, 세상을 울리는 사람들
- “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뤄주고, 남의 추함을 이뤄주지 않으나,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논어’ 안연편 필자가 오늘 소개할 세 사람은 바로 군자(君子)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자기를 살펴 고치고, 그동안 해온 업(業)을 배움과 덕으로 더욱 널리 펼치는 모습이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어느결에 새 마음이 헌 마음이 되었습니다. 다져 먹었던 결심과 각오는 흔들리고, 마음에 새겼던 약속은 또 다른 변명과 구실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영웅호걸 찾기 힘든 시절, 업을 이어 승화시킴으로써 세상에 나누는 여장부(女丈夫) 세 사람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대설 내리는 날, 구둣방에서 혹독한 한파가 몇 날 며칠 계속되더니 드디어 큰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날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남편 등산화 수선을 맡기러 평소 눈여겨보던 답십리 사거리 구둣방을 찾은 것입니다. 하필이면 대설로 천지 분간도 안 되는 날을 잡았지 뭡니까. 교차로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잰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저만치 백열등 알전구가 노란 불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다. 속으로 안심하며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사장님?” 인사를 건넵니다.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구두 수선집입니다. 40년 가까이 해온 이 일의 진짜 주인은 남자 사장님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여자분이 가게에 종종 보이더니 아예 사장님 자리를 꿰찼네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조심스레 여쭤보았습니다.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남자 어르신은 이제 안 보이시네요. 어디 편찮으신가요?” 대답을 듣지 못해 민망해진 필자는 더는 묻지 못하고 본론을 꺼냈습니다. 등산화 바닥이 많이 망가져서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요. 세상 뜬 남편 대신 업을 이어 붙이며 “한 3년 됐어요.” 낡은 신발 바닥을 잘라내고, 덧대고, 기우고, 못질로 신발 몸체와 단단히 연결시키는 과정을 빨려들듯 지켜보느라 처음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 대꾸도 않는 제게 그녀는 다시, “칠십도 안 된 남편, 담낭암과 황달로 3년 전에 보냈어요. 그이 생전에 어깨너머 배운 것과 밖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걸로 닫았던 가게 문 다시 열었어요.” 왜 맨손으로 작업하시느냐 물으니 장갑을 끼면 감각이 무뎌져 정교함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손톱 밑이며 손바닥과 손등까지 시커멓게 변한 손이 마치 ‘뻬빠’(사포) 같습니다. 거친 자신의 몸을 문대어 운동화며 구두며 장화며 부드럽고 매끄럽게 하니까요. 신발 바닥 덧대는 여자 요즘엔 서방 알기를 개떡같이 아는 세상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남편 구두 반짝반짝 닦아 현관에 대령은커녕 벗어놓은 신발 걷어차거나 밟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제 뒤에 앵클부츠 한 짝을 들고 온 초로의 여자분이 필자에게 요즘 젊은 것들 흉보며 한 말입니다.) 필자 역시 별다르지 않아서 먼지투성이 남편 신발을 꺼내놓자니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요. 한데 구둣방 여주인은 험하고 더러운 데며 온갖 곳을 돌아다녔을 등산화를 소중히 안고 구석구석 매만지고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헤매고 다녔는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왜 관리는 제때 안 했는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그맣고 여린 손으로 낡고 더러워진 신발을 귀한 물건인 양 정성스레 대하는 그녀 머리 뒤로 후광이 퍼지는 듯 마음이 짜르르해졌습니다. 아프고 상처 난 마음, 억울함과 분노로 막히고 뭉친 마음에 반창고 붙인다고 다니는 필자는 그날 비좁은 구둣방에서 숨고 싶어질 만큼 작아졌습니다. 숟가락 장단에 희로애락 담아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나무 숟가락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유행가 따라 장단을 맞추며 춤추는 이복자 숟가락난타협회 대표. 실용음악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음악치료 석사과정을 공부한 이 대표는 일평생 음악학원을 하며 생업을 이어오다, 환갑이 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평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아 아예 시도하지 못하거나, 배우는 과정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에 일상에서 흔히 쓰는 도구를 악기 삼아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악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단순명료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모, 네모, 별, 화살표, 이렇게 딱 네 개 기호만으로 만든 그녀만의 악보는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별도 볼 수 있고, 세모, 네모 다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을 쉬운 악보와 도구로 풀어준 이 대표는 숟가락 난타를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위기가 가져온 인생 반전 이 대표는 숟가락난타협회를 만들어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대면, 비대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강사 양성과 공연에 열중했습니다. 그 공로로 2021년 제40회 스승의 날 기념 ‘한국강사신문이 선정한 제1회 대한민국 명강사 12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숟가락 난타 강사이자 음악가로 활동하며 자신이 양성한 제자들이 전국 방방곡곡 숟가락 난타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힐링·음악치료 분야에서 수상한 만큼 그 정성과 열정을 인정받은 셈이지요. 어쩌면 코로나19는 이 대표에게 인생 2막을 열어준 전화위복의 불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면 수업 중심이던 음악학원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모든 활동이 멈췄을 때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접하며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년이 훌쩍 넘도록 운영해온 음악학원을 딸에게 물려준 이 대표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노후에 펼칠 로망으로 간직했던 꿈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음악 분야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악기와 음악을 쉽게 접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더 늦기 전에 펼치게 되었지요. 오랜 궁리 끝에 ‘세상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배워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바로 숟가락 난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악기 가운데 관객 호응이 가장 좋은 점도 함께 즐기기 안성맞춤이고요. 마음 장단 맞추기는 참 어려워요 흥과 끼라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민족은 악기가 있건 없건 가락과 장단에 맞춰 잘 놀 줄 압니다. 쿵짜락 쿵짝 삐약삐약. 왕년에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춰보셨습니까. 지역마다 독특한 장단이 있습니다. 장단 맞추기 쉬울까요? 즐겁고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숟가락 난타를 개발해 전국을 다니며 장단 맞추기를 가르쳐온 이 대표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갈등이라고 합니다. 어제 막역한 친구였다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적이 되어 자신을 공격해오는 경우는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네요. 평생 음악학원에서 십대 안팎 어린 교육생들만 상대하다 숟가락 들고 만나는 어른들은 영판 달랐으니까요. 스스로 마음 단련하는 법을 익히느라 고생도 했지만, 숟가락 두드리며 가슴속 진심이 상대에게 전해져서 서로 위안이 되는 따뜻함을 나누었으면 하는 게 이 대표의 바람입니다. 밥 먹던 숟가락이 이제는 신명과 즐거움을 먹고 그 행복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높이 말고 낮게, 예술을 나누는 천사 하프 소리는 사람이 듣기에 가장 좋은 음파를 낸다고 합니다. 서툰 연주도 신경을 긁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요. 초보자가 연주해도 아름답게 들린다는 게 하프가 지닌 강점이라네요.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닐까요. 하늘에서만 연주할 것 같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하프를 지상으로 가져와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배우고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이가 바로 안영숙 한국하프교육협회 회장입니다. 사실 회장보다 교수라는 호칭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안 회장은 한국에서 하프 연주자, 일명 하피스트 1세대로 불리는 유학생 1호입니다. 악기 제작자로 변신한 하피스트 하프 대중화라는 목표에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정서적으로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안 회장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프는 이동과 보관이 너무 불편할 뿐 아니라 실제 연주할 때도 불편을 넘어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정말 까다롭고 비싼 악기입니다. 이런데도 그동안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걸 이상하다고 느낀 안 회장은 자신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주변의 무관심과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결국 목공학교를 5년이나 다니면서 사서 고생을 한 끝에 미니 하프 ‘줄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녀의 노고는 속속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0일 제1회 줄리 하프 국제 콩쿠르 본선을 한국영상대학교에서 열어, 초등부에서 실버 부문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하며 하프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12월 21일에는 ‘2022 한국 소비자 베스트 브랜드 대상’ 악기 개발 및 하프 교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직접 만든 소형 하프로 하프 대중화와 악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안영숙 회장. 줄리 하프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악기 수출뿐 아니라 교육센터를 통해 누구나 쉽게 하프에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저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충남 공주시 단골 철물점에서 직접 고른 철사줄을 매어 하프를 손보던 안 회장은 가게에서 즉석 연주를 합니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연주했던 ‘문 리버’(Moon River)가 그녀의 손을 타고 계룡산까지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오늘도 헌 구두 하나 꺼내며 옆 사람 표정과 눈빛에 상처 입고, 가족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폐부 깊이 찌르는 송곳이 되어 아플 때. 이런 날이면 필자는 신발장을 기웃거립니다. 뭐 고칠 것 없을까 공연히 이 신 저 신 꺼내놓습니다. 오늘은 아들 구두 손볼 차례입니다. 새 신 바닥 앞뒤로 미리 고무창을 덧대면 발바닥도 덜 아프고, 우툴두툴 고무 요철이 미끄럼도 막아주고, 신발 수명도 늘려준다고 하니 일석삼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둣방에 미리 오신 옆자리 손님은 자기 것과 딸내미 롱부츠까지 바닥 창을 덧대달라는 주문을 하네요. 구두처럼 우리 마음에도 다치기 전, 아프기 전 미리 반창고 하나씩 붙여보실까요.
- 2023-02-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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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으로 돌아간 그들, ‘중년의 이유 있는 일탈’
-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30대, 40대, 50대의 나이와 관계없이 ‘어른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키덜트라 불리는 집단이 그 예다. 한국 사회 속 ‘어른’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그저 좋아하는 놀이를 소비하고 즐기며 삶의 활력을 찾는다. 과거에는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이제 어느 분야에 푹 빠진 ‘덕혈구’ 흐르는 덕후들의 세상이 됐다. 서울시 서초구 국제전자상가(국전) 9층은 여러 개의 가게가 구역을 나누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드래곤볼, 짱구, 포켓몬 등 온갖 캐릭터 모형(피규어)부터 게임기, 프라모델, 가챠(캡슐 뽑기), 코스프레 의상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9층의 한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A 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캐릭터 상품은 인기가 많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으로 치부됐던 것 같다”며 “자녀 혹은 손주에게 선물한다는 핑계를 대거나, 아내 몰래 조금씩 피규어를 모으고 있다고 이실직고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그래도 비교적 개인의 취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내가 50대 키덜트라 그런지 취향이 비슷한 동년배 고객을 만나면 더욱 반갑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방방곡곡 ‘키덜트 명소’로 통하는 곳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 용산구의 레고(조립 블록) 매장에서 만난 47세 직장인 B 씨는 “퇴근길에 매장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건졌을 땐 조립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며 “회사 업무 부담이 커져 스트레스가 쌓이고,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애매한 위치가 돼 씁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블록을 조립하면서 머리를 비운다”고 말했다. 중년, 키덜트가 되다 키덜트는 추억 속 동심의 세계를 성인이 된 후에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소설, 패션, 장난감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뚜렷한 소비 성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키덜트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1990년대 추억의 만화 ‘포켓몬스터’를 좋아했던 아이가 자라 키덜트가 됐다고 하자. 어엿한 사회인이 된 후 경제활동을 하면서 포켓몬빵, 피카츄 열쇠고리 등 관련 상품들을 사 모으거나 직접 경험해보며 취미로 발전시켰을 테다. 성인이 된 후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구입했다가 얼떨결에 본인이 즐기는 경우도 있다. 50세 주부 C씨는 “딸이 포켓몬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에 빠져서 구해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시간 날 때마다 편의점을 돌아다닌다”며 “처음엔 스티커에 왜 그렇게 다들 진심일까 싶었는데, 계속 모으다 보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른이 돼 살다 보면 주변 사람과 조건에 머무르고, 갖고 있던 꿈도 타협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값싼 스티커에 즐거움을 느끼고 움직이는 나를 보면 ‘어릴 적 마음과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걸 느낀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사회의 반작용 일부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마음껏 못 해본 게 한이 돼서’ 장난감이나 게임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심리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상에서 키덜트가 늘어나는 이유로 ‘비대면 시대에 따른 촉각의 불충족’을 꼽았다. 영화 ‘퍼펙트 센스’를 예로 들어보자. ‘퍼펙트 센스’는 어느 날 전 세계 곳곳에서 원인도 모른 채 감각이 하나씩 마비되는 이상 현상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순서대로 잃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감각을 잃는 순서의 의미다. 네 가지 감각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화는 끝을 맺지만, 김 교수는 “인간에게서 사라졌을 때 가장 괴로운 감각이자 원초적으로 가장 중요한 감각은 촉각”이라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면서 촉각은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감각이 됐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덕에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보고 듣는 간접경험의 창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직접 만지며 체험할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때문에 즉각적으로 만지며 놀 수 있는 상품이 주목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두둑한 지갑과 함께 돌아온 X세대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년이 된 X세대가 키덜트 문화 확산의 기폭제라고 말했다.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로, 현재 40대 전후 세대를 말한다. X세대 안에는 ‘영포티(Young Forty)’도 포함된다. 영포티는 나이에 비해 젊은 삶을 사는 40대를 지칭한다.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당시 국민의 3분의 2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의식했을 정도다. X세대는 경제·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특별히 없는 상태에서 성인이 됐기 때문에 에너지가 자기 내면으로 향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교수는 “결혼하고 아기를 안 낳아도 덜 이상하고, 이혼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게 지금 40대”라면서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희생하던 이전 40대와는 달리 트렌드에 밝고 자신을 위한 소비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영포티를 중심으로 키덜트 시장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치해 보이지만 꼭 필요해 여전히 키덜트가 ‘나이에 맞지 않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다.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추상적인 나를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을 원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생산적이지 않은 물건을 소비하고 놀이를 즐기며 일상생활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거나, 비슷한 디자인임에도 유명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옷을 더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생산적인 취미처럼 보이더라도, 즐기는 과정 자체가 생산적인 자기계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핀란드 투르쿠대 인문학부가 브라이스 인형(머리 스타일과 화장, 홍채 색, 의복 등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사람 형태 인형)을 갖고 노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자들은 인형 놀이를 매개로 새로운 취미 생활에 입문하거나 이전에 없던 능력을 기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했다. 인형에게 입힐 옷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이라는 새 취미를 갖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타인과 사회적 교류를 하는 셈이다. 이은희 교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취미 활동에 제약이 됐다고 꼬집었다. ‘40대면 직장에서는 부장 정도일 테고, 아이는 둘 정도 있어야지’, ‘60대면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살되, 점잖은 행동으로 젊은 세대의 본보기가 돼야 해’ 등의 잣대 말이다. 그는 키덜트 산업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키덜트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을 ‘사회·문화적 차이’로 봤다. “사회적 나이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타인의 즐길 권리를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골프·여행·등산과 다를 바 없는 분야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2023-02-0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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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의 강점 시니어에 제격… “뒤늦은 꽃 책으로 피어나길”
- 책 읽는 사람은 스스로 돌아보고 내면을 다듬는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좋은 친구가 있다면 성장하기를 멈췄던 삶이 꽃처럼 피어난다. 무겁고 딱딱한 내용의 책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백화현(63) 작가는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전문 출판사 ‘백화만발’(百花晩發)을 만들었다. ‘온갖 꽃이 뒤늦게 활짝 피어난다’는 뜻의 이름에는 각자의 인생을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장소 협조 가원 시니어 도서관 백화현 작가는 30년 넘게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교 안에서 독서운동을 해왔다. 아이들 저마다의 능력이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교과서와 수업 방식으로 배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진정한 배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독서라고 판단한 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독서와 도서관 이용을 권했다. 시니어와 독서, 해법은 그림책 2015년 교사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 보니 어른들도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서점 서가에는 어려운 어휘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두꺼운 책이 가득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비교적 젊은 어른인 3040대가 많았고, 60대부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서를 곧잘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 호흡이 긴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데, 대다수 책은 시니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백화현 작가는 책이 친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책에 대한 장벽부터 낮춰야 했다. 독서의 물꼬를 트는 데는 그림책이 효과적이리라 판단했다. 일반 도서에 비해 비교적 내용이 단순하고, 큼직한 삽화가 있어 빠르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백 작가는 삶의 경험이 다양할수록 진정한 독해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삶의 굴곡을 겪은 경험 덕에 몇 장의 그림과 적은 양의 글로도 많은 것을 읽어내고 이해할 수 있어서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의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그림은 긴 설명을 읽어낼 필요 없이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고요. 글은 읽으면서 성찰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림책의 짧은 이야기에는 함축과 비유가 담기기 때문에 사고력을 키우고 상상의 여지를 만끽할 수 있으니 초심자에게 제격이에요.” 그러나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른도 읽을 수는 있지만, 아이들 시각이 반영된 이야기에 어른이 이입하며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어른을 위한 몇 안 되는 그림책은 지나치게 함축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뜩이나 책이 어려워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화현 작가는 기획 아이디어를 적은 종이 한 장 들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을 찾아갔다. 독서운동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시니어 그림책’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출판사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렇게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출판 브랜드 백화만발이 탄생했다. “이건 우리 이야기네!” 백화만발의 시니어 그림책은 있는 그대로 시니어들의 삶과 고민을 다룬다. 어린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모아 각각의 그림책으로 엮어냈다. 80대 노인이나 50대 중년, 경비원이나 전업주부로 한평생 살아온 어머니까지. 최대한 많은 시니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주인공의 상황이나 처지를 다양하게 설정했다. 백화만발 그림책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 70쪽을 넘기지 않아 15분 내외로 읽을 정도의 분량이어야 한다. 7080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4050세대는 보조인물로 등장한다. 그림에는 지나치게 비유적인 의미를 담지 않고, 어휘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으며 쉬워야 한다. 글씨는 12포인트 이상이 이상적이나, 글씨가 커져 그림과 배치하기 어려우면 크기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타협한다. 또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 하드커버 표지로 제작했다. 자식 세대인 4050이 먼저 사서 읽고, 부모 세대인 7080에게 선물했으면 해서다.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의 시니어 그림책이 세상 빛을 봤다. 2020년 1월, 1권 ‘할머니의 정원’부터 3권 ‘선물’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는 옛 동료인 은퇴 교원들에게 ‘직접 읽고 부모님께 권해드리라’고 한 권씩 선물했다. 모두들 “이런 책이 있었냐”, “세상에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책’의 탄생을 반겼다. 각자 이입하는 책은 다르지만 굳이 꼽자면 첫 번째 책 ‘할머니의 정원’이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책에는 자식도 배우자도 떠나고 몸도 성치 않은 채 혼자 살며 괴팍해진 ‘경자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경자는 새로운 가사 도우미 민희와 점차 우정을 쌓으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정원’이라는 꿈을 가꿔나간다. ‘인생 책’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도중에 덮었다는 후기도 들려온다. 전국의 많은 ‘할머니’들은 아마도 경자 할머니와 자신의 삶이 겹쳐 보여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할머니가 진정한 우정으로 인해 밝아지는 장면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을 테다. ‘5090세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꿈을 드리고자 한다’는 백화만발의 기획 의도가 통한 셈이다. “판매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서 이미 나온 아홉 권의 그림책이 더 소중해요. 너무 늦지 않게 독자의 관심을 받고 판매돼야 시니어 그림책 시장이 생겨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올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시니어들이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생겨나겠죠? 시니어들이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찾게 되는 날까지 열심히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해요.” 만나서 읽어야 하는 이유 백화현 작가는 시니어들이 ‘모여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니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책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이어도 상관없다. 독서를 주창하는 궁극적 목표가 사람과의 교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교류를 가능케 하는 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초고령사회’라는 과제와도 관련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준비가 놀랍도록 부족해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드는데,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관심조차 없으니 TV나 유튜브만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마음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으면 슬프고 실망하고 외로워서 괴팍해져버린 ‘경자 할머니’가 되고 말아요. 그런 분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이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진다면 그 사회도 함께 암울해지고 말겠죠.” 책과 사람을 잇는 독서 모임은 그래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체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책을 가운데 놓고 그림과 글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책을 읽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 하고,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제대로 질문해야 하며,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잘 들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교류를 통해 사람은 우정을 쌓고,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희망을 찾게 된다. 경자 할머니의 새 가사 도우미 ‘민희’ 같은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주는 것이다. 백화현 작가는 책 읽는 법을 배우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삶에 활력을 되찾는 시니어들을 많이 봐왔다. 그림책 읽는 법을 처음 배운 80대 어르신들이 ‘너무 좋다’며 박수 치던 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에 쟁쟁하다. 배운 대로 그림책을 뜯어보며 눈을 반짝이던 이들은 지금도 자체적으로 모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있다. 산발적인 움직임이 문화로 정착되려면 아직 필요한 것이 많다.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 혹은 책을 같이 읽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여전히 도서관보다 TV, 유튜브를 찾는 것이 현실이지만 희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최근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국내 최초 ‘시니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독서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도라, 어떻게 하면 이용자를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죠. 더디지만 독서 모임도 생겨나고 있어요. 독서 운동을 함께 했던 시민단체 중 한 곳으로부터 ‘전국에 5만 개의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해에 전해 들었죠. 제가 성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잡았던 목표치가 ‘독서 모임 30만 개 만들기’였어요. 한참 못 미치는 수치긴 하지만 대면 모임이 어려운 시기였던 걸 생각하면 의미가 있죠.”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야기 그림책을 백 권까지 만들고 싶다. 시니어의 취미, 요즘 문물, 향수를 느낄 만한 전통문화 등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책 ‘어른 그림책 여행’처럼 그림책 세계가 궁금한 어른을 위한 길라잡이나, 4050세대를 위한 ‘심화’ 단계 시니어 그림책도 포함된다. 새해에는 백화현 작가의 바람대로, 바지런히 펴낸 그림책을 펼쳐 새로운 삶을 꽃피우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 2023-02-07 0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