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나라에서는 5070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재무설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속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새로운 길이므로 낯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관점을 바꿔야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산관리, 소비관리, 가치관리라는 3가지 측면에서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의 은퇴재무설계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 자산관리
아무리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눈높이가 평균적인 시선보다 높은 만큼 돈의 역할 역시 크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 돈을 잘 관리하여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돈을 더 잘 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인데, 은퇴재무설계에 대한 이해는 그 선결 과제다.
먼저 관점을 ‘자산에서 소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2040 시절 재무설계의 핵심은 내집마련. 노후자금, 자녀교육비 등 목적자금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목돈을 모으는 것이다. 즉 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다. 그러나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5070세대의 재무설계는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현금흐름, 즉 소득창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연금을 활용하면 쉽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일시적으로 자금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즉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생활비와 유동성을 함께 고려하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둘째로는 ‘자산에서 소득으로’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축적에서 인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산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일시금 방식, 연금 방식, 프로그램 방식 등 다양한데 이들을 흔히 인출 방법이라 부른다. 각 방식은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 장단점이 다르므로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감안해 특정 방식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방식을 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인출 방법의 구체적 형태는 월 지급식 상품 선택으로 나타나는데, 예금형·즉시연금형·수익배분형 등이 있다.
셋째로는 ‘수익률에서 위험관리로’ 전환되는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한다. 2040세대는 임금 또는 사업소득 형태로 계속 현금이 유입되고 투자기간이 길어 수익률 중심의 자산관리를 할 수 있다.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현금으로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매입할 수 있어, 가격상승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5070세대는 수명 연장으로 과거보다 투자기간이 길어졌다 해도 유입되는 현금의 양이 크게 줄어들어 수익률보다는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5070세대에게 유입되는 현금은 대부분 생활자금 용도여서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해 유입되는 현금이 크게 줄거나 들쭉날쭉하게 되면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 소비관리
5070세대는 축적해놓은 자산은 많은데 일을 통한 수입이 없거나 적다. 저축해놓은 돈에서 곶감 빼먹듯 생활비를 조달해야 한다. 합리적인 소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무조건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5070세대의 특성을 감안한 소비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로, 가족 중심의 소비에서 나 중심의 소비로 소비의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가치 중심의 소비다. 5070세대는 중년으로서 2040세대와는 삶의 중심축이 다르다. 2040세대의 삶의 중심축이 성장에 있다면 5070세대의 삶의 중심축은 의미에 있다. 가족의 성장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소비에서 기부·자선·봉사 등 가치 있는 소비로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사회적 관계망은 육체적·심리적 건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 가치관리
‘가치관리’는 일반적인 재무설계에서는 쉽게 간과되기도 하지만,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화목, 건강, 행복을 바란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판단과 구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가족의 파탄을 불러오는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속 및 증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직 젊은데 서두를 필요가 뭐가 있냐며 뒤로 미루면 안 된다. 판단력이 좋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관리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꾸준한 실천과 그 가치다. 노후에는 의료비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재무적 측면에서 건강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일본의 노후파산 사례에서 보듯이 노후에 건강이 악화되면 재정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에 직면해 급기야 노후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노후의 의료빈민(medi-poor)은 정말 비참하다. 건강관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면서 돈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또한 급격한 건강 악화에 따른 인생의 하드랜딩을 방지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30년 이상 정든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순간 1억원의 연봉을 받던 필자는 연봉 0원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나름 준비는 했지만 그동안 화려했던 현실은 사막과 동토의 땅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되어 방향 감각도 점점 둔해져갔다. 그런데 마침 이때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종로 3가에 있는 도심권50플러스센터 및 KDB 시니어브리지센터와 같은 교육 과정(인생설계 아카데미)이 있어 참여했다. 인생 2모작 준비를 위한, 액티브 시니어의 길로 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인생 2막의 나침반, 액티브 시니어연구원
필자는 위 센터의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함께 수업을 들은 교육생들과 의기투합했다.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방황하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대기업, 금융기관,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참여해 만든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연구원. 본 연구원은 참여자들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사장시키지 않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례 중심으로 강의할 수 있는 전문 강사로서의 길을 찾아주면서 한편으로는 퇴직 전후의 시니어들이 강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연구원의 첫 사업은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액티브 시니어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연 2회 과정으로 고려대 측과 무사히 협의를 마친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강사진의 자질 향상을 위한 강의안 작성 및 시연 일정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교육 과정에 필요한 재능기부 명강사 확보에도 주력했다.
마침 베이비부머들이 퇴직 후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시니어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신문 매체 홍보와 학교 측의 협조가 순조롭게 이뤄져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정원 40명이 금세 채워졌다. 연구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강사로서의 자질을 발휘해 재능기부 강사로 참여했고 본 과정은 2014년 3월 6일 출범식을 가졌다.
액티브 시니어의 정신 : PRAVO
본 연구원 이사회는 교육 방침이자 모토로 ‘PRAVO’를 제정했다.
1. Pride : 자존감 중시
2. Relation : 소통, 관계 중시
3. Active : 적극적인 활동
4. Valuable : 가치 있는 삶 지향
5. Occupied : 평생 현역
이제 시니어들은 정년퇴직 이후 과거처럼 ‘뒷방 노인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함께 사회 및 경제 발전에 참여하고 상호 윈윈하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발휘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교육 과정은 은퇴 설계 4분야, 즉 건강, 재무, 관계, 시간 관리에 대한 사례 중심 발표로 이뤄졌는데 현실감 있는 생생한 강의로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 과정은 수강생들이 재능기부와 봉사를 하는 등 다른 유사 강좌와 차이점을 보였다. 자문 및 진행 교수가 멘토로 참석해 교육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 것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주축을 담당했던 시니어들이 비록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대단한 능력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이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온 본 과정은 이번 3월이면 어느새 제7기생 교육 과정에 들어간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 및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사회 곳곳에 진출해 ‘PRAVO’ 정신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강의 수요 창출하고 콘텐츠 보급한다
고려대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 출신들은 현재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제1기 한정수씨는 70세의 나이에 스타 강사가 됐고 김미정씨는 전업주부에서 감성하모니 코치로, 변용도씨는 인생 2막을 용도변경하는 전문 스타강사로서 열정 넘치는 인생 2막의 삶을 보내고 있다. 제2기 김점옥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의 노래를 하며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기부터 6기까지 14인의 활동 상황은 롤모델화해 올해 상반기 라는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더평생진로정보연구소’,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한국생활건강연구원’, ‘앙코르브라보노’, ‘희망도레미’ 등에서 활동하는 본 연구원 출신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꿈
본 연구원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전 지역에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과 같은 지사를 설립해 서울 지역 활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국의 도·시·읍·면에 지부를 두고 고려대 평생교육원의 ‘액티브 시니어 전문가 과정’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니어 전문 강사만 최소 500명 이상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시니어 평생 현역의 꿈을 실천하는 전당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지금도 시연 활동을 매월 지속하고 있으며 특별강사를 초빙해 강의도 들으면서 연구 회원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많은 회원들이 자원봉사활동은 물론 공무원 연금공단 강사, 시니어 명강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면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의 김봉중 회원은 한국 시니어 블로거 협회 회장이 되어 활발한 PRAVO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연구원은 동작50플러스센터 인큐베이팅룸(이솔터룸)에 입주해 있다.
베이비 부머의 대규모 은퇴가 부각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은퇴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기업을 위주로 교육 등 소수의 사업이 진행 중이며 늘어나는 수요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스스로 방안을 마련하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기대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근로자의 은퇴 준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내 은퇴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온 휴잇(AON Hewitt)의 200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90%의 미국 기업들이 은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은퇴 이후를 위한 준비가 더욱 중요해지는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는 ‘미국의 사내 은퇴교육 우수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퇴직연금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 기업들의 은퇴교육은 초기발전 단계인 1980년대 퇴직연금 등 기업복지제도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뤄지다가 기대수명 증가, DC형 중심의 퇴직연금시장 변화 등 은퇴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서 현재와 같은 교육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이뤄진 사내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UPS, 티파니 앤 컴퍼니, 와이어하우저 등이 우수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도 벤치마크 대상이다.
다국적 운송기업인 UPS는 근로자의 연령별 니즈(Needs)에 맞는 재무교육으로 근로자의 은퇴준비를 준비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기존의 직무교육을 넘어 은퇴준비에 도움이 되는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연령대별 맞춤 교육을 실시하고,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을 적절히 병행해 활용하고 있다.
UPS는 기업의 전폭적인 관심 및 지원을 얻고, 외부 전문기관과 협업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많은 근로자가 교육에 참여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세계적인 보석 및 은세공 기업인 티파니 앤 컴퍼니는 ‘Take 5’라는 캠페인 형식의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티파니는 HR컨설팅사인 벅컨설팅(Buck Consulting)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캠페인 형태의 은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교육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으며, 교육 내용을 요약한 가이드북을 배포해 교육 이후에도 근로자가 관련 내용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도록 했다. 이 같은 은퇴교육은 ‘타이밍’(timing)과 ‘브랜딩’(branding)을 적절히 조합해 성공적으로 근로자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와이어하우저는 근로자가 은퇴 이후의 삶 전체를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울러 은퇴교육은 재무적인 은퇴준비뿐 아니라 생애설계와 같은 비(非)재무적인 주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생애설계는 인생의 한 단계인 은퇴에 대한 근로자들의 성찰과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준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교육 담당자와 기업의 강한 의지, 연령대별 맞춤형 교육,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활용, 근로자 친화적인 교육장세팅 등이 와이어하우저 은퇴교육의 성공 요인으로 지목된다.
와이어하우저는 편안한 강의실 분위기과 부부동반 등 근로자 친화적인 교육세팅 및 근로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활용했다. 또 수준 높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각 교육 주제별로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은퇴교육은 근로자의 노후준비뿐 아니라 근로자의 생산성 및 직무 몰입도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의 은퇴교육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역시 은퇴준비 관심이 커지고 있어 노후준비를 돕고, 은퇴 자신감을 높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은퇴교육이 아직 초기단계에 있는 만큼, 기업들이 ‘파일럿 프로그램’ 등 실행 가능한 교육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보고서는 근로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근로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교육과 반복학습이 이뤄져야 하며, 외부 전문전문가와의 협업 활용도 우수한 교육내용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얘기가 나왔다. 20~30년 정도 걸리면서 진행된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활성화돼 있지는 않다.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초기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주로 은퇴 후 재취업이나 창업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 실장은 베이비부머 은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교육의 필요성이 늘어나는 상황과 관련해 “교육에는 시간과 장소를 배정하고 교육을 맡을 강사도 투입하는 등 비용이 발생한다”며 “회사에서는 이를 소모성 경비로 생각하기보다 투자개념으로 이해하고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사원들의 로열티와 의욕이 높아지고 우회적으로 생산성 향상 등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강사 등 외부자원을 사회 인프라의 하나로 정부가 구축해 지원하고 기업이 활성화하면 효과가 클 것이다”며 “정부가 직접 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