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서종면에서 요리를 재미로 시작한 ‘요리하는 남자’ 방수형(45)교수는 아내를 위해 텃밭에 다양한 허브식물과 케일을 가꾸기 시작했다. “요리는 해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어요. 시도하는 게 더 중요해요. 맛이 있든 없든 그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싶어지거든요.” 그가 내놓은 음식 앞에 고요한 평화를 느꼈다. 요리를 통한 나눔의 기쁨이 이것인가 보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장소 협찬 송스키친
남성미 넘치는 외모와 색깔 강한 연기로 익숙한 방수형 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 교수는 그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게도 ‘앞치마 두른 남자’들의 세계에 그 누구보다도 일찌감치 발을 담근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요리를 한다는 그의 요리 세계에는 어떤 레시피가 숨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니가 음식 간을 볼 때면 저에게 맡기곤 했어요. 왜 저에게 맡겼느냐면, 본인이 간 보는 게 귀찮으셨을 테니까(웃음).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그래도 가족들 중에서 제일 정확하게 맛을 볼 줄 알아.’”
무사, 살인자, 조직폭력배 등등 선 굵은 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방수형 교수는 ‘센’ 인상과는 달리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좋아하는 요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얘기가 아니던가.
어머니의 나물 조기교육(?)을 받으며 자라다
방 교수는 4년 전 호서예술전문학교 식품조리학과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요리를 배운다는 게 식당이라도 차린다는 생각 없이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방 교수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도 그렇고 어머니께서도 워낙 음식을 잘하셨어요. 특히 나물에 관해 잘 아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니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 좋은 음식을 알게 됐죠.”
방 교수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행복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일요일이 되면 나물을 캤고 그럴 때면 꼭 방 교수를 데리고 다녔다. 그가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요리에 대한 그의 경험과 생각은 이라는 에세이집으로 다듬어져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만들 수 없는 그 시절 무밥의 맛
방 교수의 어머니는 나물을 잘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초에 관해서도 도통했다. 그런 지식은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쓴 물’을 자주 먹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외할머니가 봄에 쑥을 캐서 쑥물을 우려내 그에게만 줬던 것이다. 쑥은 지혈 작용과 함께 염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쓴 물을 자주 먹었던 것이 자신의 미각을 발달시킨 것 같다고 말한다.
“외갓집에서 가장 싫었던 음식이 무밥이었어요. 그런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왜 그렇게 먹기 싫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제가 만들면 그때 그 시절의 무밥 맛이 안 나와요.”
그가 요리를 배운 것은 어머니의 손맛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가장 잘하는 게 시래기 된장국입니다. 제가 워낙 좋아해서 요즘도 어머니 집에 가면 두 그릇씩 먹게 돼요. 어머니가 수많은 요리들을 많이 해줬어요. 그중에서 간단하게 만드는 것들이 최고인 듯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해주었던 맛에 연구를 통해 접근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한다는 즐거움
방 교수는 어렸을 때는 생존을 위해 먹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시골 소년답게 산 밑 물가에 가서 수영하고 오는 길에 기찻길 옆에서 무를 뽑아 먹고 산딸기나 으름을 따먹었던 즐거운 추억들이 있다. 그러나 맛 자체를 느끼지는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배우로 일하며 혼자 살게 되면서는 더욱 맛을 위해 먹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요리해 먹을 때 어머니가 해준 맛과 비슷해야 성에 찼다고 한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면서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맛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하게 되더군요.”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맛있는 걸 만든다는 것. 즉 정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요리에 대한 의욕을 다소 잃은 것 같아요. 음식의 맛도 시간이 지나니 미세하게 변하더군요. 아마 사랑을 줄 대상이 없어져서일 겁니다.”
방 교수가 가장 사랑을 주는 대상이라면 아내일 것이다. 그의 아내는 1990년대 ‘광고계의 퀸’으로 불리며 대한항공, 삼성전자, LG화학의 전속모델이었던 박리디아 씨.
“아내가 러시아에서 3년 반, 뉴욕에서 4년 반 동안 유학 생활을 했어요. 그런 데다 선천적으로 유럽식이나 미국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음식 취향이 너무 달랐습니다. 아내는 유럽식이지만 저는 토속 음식을 좋아했으니까요.”
두 사람은 공통의 맛을 찾아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내가 아침에 일찍 학교를 가거나 출근해 저보다 항상 바빠요. 그래서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계란탕을 준비하죠. 케일, 쪽파, 마늘 다진 거를 섞어서 새우젓으로 간을 해 만든 간단한 계란탕이면 그 사람도 저도 아침으로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이소박이도 좋아하게 됐어요. 주말에는 약백숙으로 식사를 함께 하죠.”
깐깐한 방 교수가 만든 오이소박이 한입 베어 물면 그가 고민하는 삶, 자연, 사회, 문화, 영화가 입안에서 알싸하게 씹힐 것 같다.
요리는 타이밍과 과정이 중요
방 교수의 요리는 철저한 자연식을 추구한다. 그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피부 질환인 아토피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병이라고 비판했다.
“저희 때만 해도 피부질환으로 고생했던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아토피는 면역 질환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영양학에서는 인 성분이 부족하면 피부질환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현대문명의 대량생산체제로 만든 대형 마트의 농산물에는 인 성분이 부족해요. 채소가 땅에서 스스로 영양을 흡수하면서 자라야 하는데, 그냥 비료를 뿌려서 만드니까요.”
그는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은 재료로 만든 제품을 골라서 먹는 게 몸에 유익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지는 건 무엇보다도 건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재료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요.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자연에 가까워져야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회복이 쉬워집니다. 그러니 최대한 자연에 가까이 접근해야 해요. 음식도 생활도 생각도.”
방 교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리의 포인트는 크게 ‘타이밍’과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이 있는데, 그 타이밍에 먹어야 맛있는데 안 먹으면 화나죠(웃음). 그리고 김치찌개를 제가 참 잘 해요. 그런데 특별한 재료라는 건 없어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똑같은 재료라도 어떤 순서로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죠. 예를 들어 콩나물국밥을 잘하는 집에서는 밥을 국 안에 넣어 끓이지 않고 따로 둡니다. 흔히 서울의 콩나물국밥집에서는 밥을 끓여버리는데, 끓이면 밥의 전분이 다 풀어져서 콩나물국의 육수 맛이 안 나게 돼요. 생각해보세요. 옛날 드라마를 보면 ‘주모 국밥 하나 말아주쇼’라고 하지 ‘끓여주쇼’라고는 안 하잖아요.”
그는 ‘수저로 몇 큰 술’ 같은 레시피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저는 재료를 퉁퉁 넣어줍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리고 화학조미료는 아예 안 넣어요.”
자신이 요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보라
“여성의 사회 진출과 맞벌이가 많아지고 캠핑문화가 발달하면서 최근의 남자의 요리 현상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부부라면 서로를 도울 줄 알아야죠.”
어머니의 손맛을 찾기 위한 의지, 그리고 건강을 위한 철저한 자연식의 추구는, 요리가 사랑하는 사람, 지인, 세상과의 소통이기에 가능한 법도일 것이다. 그에게 요리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우선 함께 캠핑을 자주 다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인 자신이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좋다는 거죠. 캠핑을 가서 스스로 음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 지방의 향토 음식들을 많이 먹고 다니면서 그 재료나 만드는 방법을 가볍게 물으면 나중에 자신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앨빈 토플러는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인 게 아니라 조금을 갖고 있더라도 누릴 수 있어야 부자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활용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내가 술을 흥청망청 마시는 삶을 살면 그런 분위기를 계속 이끌어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자제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누구에게서 받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해서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봅니다.”
요리를 통한 나눔의 기쁨. 이는 소통보다 좀 더 나아간 자족적인 기쁨이다. 그래서 부자에 대한 개념도 그는 남달랐다.
“제가 부러운 게, 예쁜 기와집에 10년, 50년 된 장이 담긴 항아리 쫙 깔아놓고 사는 분들이에요. 그게 진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러워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집밥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
“집에 있을 때는 열무김치, 오이, 김치, 계란 프라이 등등 간단하게 먹게 됩니다. 부유한 집안이라도 매일 어마어마하게 차려놓고 먹지는 않아요. 그렇게 하면 병이 나지 않을까요?”
※네이버 지식IN 파워지식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스머프 할배 정성기님의 블로그 글을 저희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 성격에 맞게 재구성-편집한 기사입니다.
글ㆍ사진| 정성기
요새는 열무와 얼갈이가 아주 싸고 또 구하기 쉬우니 여름 김치의 재료로 적격이기 때문에 오늘은 시원한 맛을 내는 열무와 얼갈이로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법을 쉽지만 자세하게 그 과정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얼갈이는 보통 단으로 묶어서 팔고 1년 내내 생산되지만 봄철에 일찍 나오는 것을 얼갈이배추라고 하는데 얼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녀석들이 얼고 녹으면서 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 봄에 딱딱하게 언 땅을 대충 갈아서 심어 채소로 여러 가지 용도로 먹은 것이라 그런 것 같아요.
동네 채소가게에서 5000원에 열무 3단과 얼갈이 1단에 대파 1단까지 미리 주문하여 싱싱한 녀석들을 준비하여 작업을 하는데 열무와 얼갈이를 다듬는 일이 무척이나 귀찮지만 하나하나 차분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얼갈이와 열무를 다듬고 씻어 소금물에 4~5시간 정도 재우는 것이 좋아요.
양념으로는 양파 큰 것 1개를 잘게 썰고 대파는 잎과 줄기를 섞어 얇게 썰어서 넣고, 매운 청양고추도 몇 개를 잘게 썰어 넣어요. 거기에다가 다진 마늘은 통마늘 1개 이상의 분량을 준비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여름철 김치라도 양념이 진해야 김치 맛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얼갈이는 대충 반으로 자르고 열무는 무 꽁댕이만 싹둑 자르고 그냥 썰지 않고 김치를 담그려 해요. 이렇게 소금물에서 4~5시간 재운 것들을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고 있지요.
열무 중에서 좀 꼬치가 여문 것 같은 총각무만한 것 몇 개와 그래도 쓸만한 것은 깎아서 이렇게 김치를 버무릴 때 쓰기 위해 담아둡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려니 좀 야한 것 같지만 알타리무를 왜 총각무라고 부르는지는 다 알지요?
오늘은 열무 3단에 얼갈이 1단이라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는데 미리 준비한 양념 위에 1근을 거의 다 붓고 버무릴 때 맛을 보고 덜 매우면 더 부을 생각으로 옆에 고춧가루 통을 준비를 하고 시작합니다.
이렇게 큰 고무 다라이(일본어지만 우리말 대야는 좀 그래요)에 열무와 얼갈이를 담아 김치를 버무릴 준비를 완벽하게 하였지요.
그리고 양념과 고춧가루를 넣은 뒤, 멸치액젓을 알맞게 붓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여기에 밥을 몇 숟갈 물에 넣고 죽처럼 만들어 이렇게 붓고 으랏쌋싸하면서 버무리는데 이렇게 녹말풀 대신에 밥을 죽처럼 만들어 부으면 김치가 익을 때 밥알도 같이 삭아 더 맛이 있고 좋아요.
빨간 고무 다라이에 부은 모든 재료를 넣고 무도회에서 댄스파티를 하듯 은은한 왈츠에서 시작하여 빠른 2/4박자의 폴카로 분위기를 바꾸다 다시 경쾌하고 템포가 빠르고 즉흥적인 4/4박자인 지터벅(흔히 지르박)으로 혼을 빼고 마지막 단계에서 고상한 블루스로 상대를 리드하면 자연스럽게 "아이! 몰라요."하며 이브닝드레스의 지퍼를 내리고 브래지어의 호크를 풀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사에서 다 은은하고 부드럽게 여자도 요리해야 뭐가 이루어지듯 맛있는 김치도 음양의 순리를 역행하지 않고 만들어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광고 카피처럼 열무·얼갈이김치도 왈츠로 시작하며 상대에게 "반했어요!"하면 "사랑해요! 밀키스~"가 나오고 폴카와 지터벅에서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다 다시 블루스에서 "그래 바로 이 맛이야!"로 되어 오늘의 김치는 맛을 봐야 맛을 아는 '원초적 본능'으로 마무리하며 열무와 얼갈이가 하나가 되어 그 무엇을 이루는 것이지요.
매운 김치는 이렇게 김치통에 넣고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 여름밤의 꿈만 꾸며 편히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만드느라 고생해도 기분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