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딩족(경제적 여유가 있고, 육아를 즐기며, 활동적이고, 헌신적인 조부모), 헬리콥터 그랜마·그랜파(손주의 교육부터 패션까지 챙기는 조부모) 등 황혼육아 관련 신조어들이 등장하며 그야말로 할류열풍(손주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조부모)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과연 이러한 흐름은 중장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적당한 돌봄’의 경우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체력 저하나 여가 축소, 노후 재정 문제, 자녀와의 갈등 등 부정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 조부모 육아 실태조사를 통해 ‘금빛’ 황혼육아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
ㆍ조사 기간 : 2022년 7월 29일~8월 4일 ㆍ조사 대상 : 손주를 돌보는 55~69세 조부모 302명
ㆍ조사 기관 : 한국리서치 ㆍ조사 방법 : 온라인 설문 ㆍ표본 오차 : 신뢰수준 95.0%, ±5.64%
서울, 경기, 인천 거주 만 55세 이상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을 대상으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가 맞벌이 자녀를 돕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로 74.8%는 "맞벌이 자년를 돕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평균 주 3회 이상, 하루 6.8시간, 1년 이상 손주를 돌보고 있었다. 응답자 중 70.4%는 코로나19 사태로 육아 부담이 더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벌어진 맞벌이 부부 자녀 돌봄 공백을 조부모 세대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조부모 육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양상도 달라진 모습이다. '남아선호사상'이나 '친손주만 내 핏줄'이라는 뿌리박힌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손주의 성별은 남자 48.7%, 여자 51.3%로 유사했고, 응답자 중 94.6%는 육아 참여에 성별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또, 손주와의 관계는 외가(67.2%)가 친가(32.8%)보다 2배가량 높았으며, 5명 중 1명은 할아버지가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경혜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거엔 ‘친손주’라는 의식이 강해 외가보다 친가에서 아이를 맡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다. 부계 중심에서 최근 양계로 바뀐 시대 흐름과 더불어, 주 양육자인 엄마 입장에서 더 교류가 편한 친정 쪽에 육아를 부탁하는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주 돌봄 시간과 주기 등에 대해 “결국 황혼육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손주의 연령(발달단계)과 양육보조자의 유무 등이다. 유아기 손주의 경우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반면 손이 많이 가 다른 시기보다 육아가 더 힘들 수 있다. 게다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독박육아라면 그 고충은 더 심해진다. 최근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많이 사라지며 할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늘었다. 그렇게 곁에서 함께 돕는 이가 있느냐, 또 얼마나 돕느냐에 따라 육아의 질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제덕아 사랑해. 제덕이 파이팅.” 지난 26일 김제덕을 키운 친할머니 신이남 씨(86)가 손자에게 보내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가 전파를 탔다.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손자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느냐는 질문에 신 씨는 “제덕아, 개밥 주러 가자”고 말했다. 다섯 살배기 손자와 함께 강아지에게 밥을 줬던 추억 덕분이다.
“코리아 파이팅!”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을 뒤흔든 함성의 주인공, 열일곱살 김제덕은 할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지난 1일 귀국한 뒤 JTBC와 인터뷰에서 그는 “올림픽 준비하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할머니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6세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손자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2016년 SBS 예능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초등학교 6학년 김제덕은 “올림픽 국가대표가 돼 할머니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다.
조부모 손에 자라 성공한 아이들로 ‘미스터트롯’ 정동원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말 KBS ‘인간극장’에 출연한 정동원은 폐암 진단을 받은 할아버지를 위해 가수로 성공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정동원의 할아버지는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정동원이 참가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노래를 가르쳐 주고 가수의 꿈을 응원해 준 할아버지 덕분에 손자는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 트로트 가수가 됐다.
조부모 육아의 좋은 예는 서양에도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도맡아 키우다시피 한 빌 게이츠, 복잡한 가정사로 하와이 외갓집에서 자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들 중에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양육법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걸까.
무한한 사랑과 지지, 손주 정신 건강에는 백신
전문가들은 조부모 육아가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선물한다고 말한다. ‘양육유형이 아동의 문제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작성한 최복경은 결론에서 “부모 중심의 육아보다 조부모가 함께 양육하는 형태가 더욱 유리하다”고 적었다.
어린이집 원장을 지냈던 최복경은 실제로 2~5세 영유아 원생 36명에 대한 ‘행동 관찰일지’를 두 달간 작성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조부모의 보살핌 유무에 따라 기본 생활습관, 의사 소통, 사회정서 발달 면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관찰했다.
결과는 조부모 육아의 완승. 생활습관과 의사 소통, 사회정서 발달 모두 조부모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우위를 보였다. 최 원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조부모 육아와 맞벌이 부모 육아는 정서적 안정감 때문에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육 경험이 있는 조부모로부터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으면, 일하는 아이의 부모들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어 아이가 세상에 대해 신뢰감을 쌓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해외 연구 사례도 존재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글렌 H 엘더 교수 연구진은 조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성취감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조부모와 자주 만나고, 조부모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하다고 말한 아이들이 외부 환경과 관계 없이, 자신의 학습능력을 최대로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조부모와 손주가 가까이 살고, 자주 만날수록 아이의 성적과 성취도가 높다는 얘기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연구진은 10대까지 조부모와 친밀한 아이들이 친사회행동(봉사와 기부 등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행동) 성향이 높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조부모가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것보다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쳐 주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로 조부모에게 친밀함을 느꼈다.
조부모 양육이 아이들을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만들 확률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 등 8개 국가의 논문 23편을 비교 분석한 중국 상하이 대학교의 안 루오펭 교수는 “조부모에게 지금 세대에게는 오히려 풍요에 따른 과식과 비만이 문제임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꼽은 문제점은 조부모의 ‘지나친’ 너그러움이다. 그러나 조부모의 너그러움은 손주들에게 정신적 안정감의 기반이 됐다. 조부모가 너그러움의 정도만 조절한다면 손주의 몸과 마음에 좋은 영향만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 건강을 위협받는 일이 잦아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조부모의 무한한 사랑은 손주에게 ‘정신 건강 백신’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조부모 육아가 주목받고 있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황혼이혼한 사람들이 그 다음에 뭐하는지 알아? 다른 짝 찾아 또 결혼하더라. 이걸 황혼재혼이라고 하지. 황혼재혼이 황혼이혼만큼 죽죽 늘어나는 것도 모르겠네? 늘그막에 이혼하고 늘그막에 재혼하는 사람이 무지 많다는 말이여. 통계 한번 볼 텨? 아녀, 통계는 좀 있다가 보셔. 처음부터 숫자 늘어놓으면 머리 아파할 사람 많을 테니 객담(客談) 하나 먼저 해주겠어.
재혼하려면 반드시 이혼부터 먼저 해야겠지? 황혼재혼도 마찬가지고. 황혼이혼의 원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게 뭐겠어? ‘결혼’이야. 결혼 안 하면 이혼도 없는 거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여라, 그래야 의견 충돌로 다툴 일이 줄어든다. 같은 취미를 가지지 마라,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 게 좋다. 끼니는 각자 알아서 챙겨 먹어라. TV는 아내 것이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대 더 사라.” 인터넷을 뒤지면 이혼·재혼 전문가들이 ‘황혼이혼 원인과 예방법’이랍시고 이런 걸 가르쳐주는데, 결혼 안 하면 이런 거 알 필요도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이런 절대적 진리 ‘결혼 안 하면 이혼도 안 한다는 진리 따위는 난 몰라’라며 재혼하는 사람, 그것도 황혼재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니 ‘결혼’이라는 것에는 뭔가 마력이 숨어 있는 모양이지? 결혼 경험은 1회, 이혼 경험은 0인 나 같은 사람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모르는 뭐가 있나봐. 어쨌거나 한국 사회에서 황혼재혼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지 통계 한번 들여다보자고.
통계청의 ‘인구동향’에 그게 잘 나와 있는데, 요약하면 “한국의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 데-젊은이들 집 사기 어렵고 아이 키우기 힘드니까 결혼 안 한다잖아-반해 황혼재혼은 늘고 있는 거야. 2020년도 전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전년보다 10.7% 감소했는데, 예순 넘은 할배·할매들의 재혼은 9938건으로 1년 전의 9811건보다 127건, 1.3%가 늘었다는 거지. 작년 전체 혼인 건수가 준 건 코로나19 영향도 컸다고 하는데, 할배·할매들은 인생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코로나19 따위 겁 안 내고 새로운 짝을 찾아 훨훨 날아간 거지. 황혼재혼이 증가한 건 추세적인 거라네. 지난해 황혼재혼 건수 9938건은 4년 전인 2016년의 8229건에 비하면 무려 20.7% 급증한 거라니까 말이야.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결혼이라고 했지? 재혼의 가장 큰 원인은 뭔지 바로 알겠네? 이혼이지. 이혼한 사람이 재혼하는 거잖아. 통계청 ‘인구동향’에는 이런 것도 나와 있어. “올해 1분기 이혼 건수는 2만5206건으로 전년 동기 2만4358건 대비 3.5% 증가했다. 이 중 혼인 지속 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올해 1분기 1만191건으로 전년 동기 8719건 대비 무려 16.9% 늘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9년 3만8446건과 2020년 3만9671건인 황혼이혼 건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황혼이혼 건수는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건수 4492건보다 2배 이상 많다.” 세상에, 제 짝이 하는 짓 모든 걸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니! 자꾸 늘어나고 있다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혼이 정상이 될 것 같군. 물론 이건 농담이고, 제 짝이 싫어도 참고 산 예전 분들 이야기가 생각나네. 그중에 이런 게 있더라고.
저기 경상도 먼 산골 마을 영감님이 아침나절에 할머니가 하시는 게 못마땅해서 집을 나가신 거야. “이메이(이따위) 집구디(집구석)에서 저 할마이(할머니)한테 속 디비지며(터지며) 사느니 죽더라도 나가서 죽을란다”라며 할배가 저고리 소맷자락에 팔을 꿰고 있는데도, 할매는 “아이고, 내 할 말을 누가 하노. 그칸다꼬(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까봐? 나가든동 말든동(나가든 말든), 죽든동 말든동 마음대로 하라캐라(하라고 해라). 내가 나갈라 캤는데 참 잘됐네”라며 할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휑하니 댓돌 위 신발 꿰 신고서 다신 안 돌아올 것처럼 나가신 이 할배가 해 빠지고 막 캄캄해진 저녁쯤 집에 돌아오셨네. 할배의 이런 가출이 자주 있었던 듯 마을 사람이 “할배요, 이번에도 앞산은 못 넘으셨네요? 할배가 언제 앞산 넘어가시나, 여기서 지켜봤는데 할배가 안 보이기에 내사 이번에도 돌아오실 줄 알았지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더니, 할배는 “사나(사내)가 집은 나가도 앞산은 넘어가면 안 되는 게라. 그래하면 진짜 끝장인 게라”라고 겸연쩍게 웃으셨다는 것. 그러면 할머니는? 그 이웃 사람이 “할매요, 할배가 다시는 안 돌아오면 좋겠다 카고는 처마에 등불은 왜 켜놨능교?”라고 물었더니, 할매는 “여자는 남자가 집 나가면 그때부터 기다려야 하는 게라”라고 대답하셨다는 이야기다. (할매는 할배가 출타하시면 집 잘 찾으라고 처마에 등불을 달아놓는 게 수십 년째라는 이야기를 미처 못 했군!)
그런데 이제는 처마에 등불이 아니라 집 전체를 LED등 수십 개로 환히 밝혀놓아도 그 할매에게 다시는 안 돌아가겠다는 할배들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 이혼 상담소를 찾는 할배급 남성들이 늘었다는 게 그 증거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올 3월에 낸 통계를 보면 2020년 상담소를 찾아 이혼 상담을 한 60세 이상 노년은 1154명으로 전체 상담 건수 4139건의 27.2%였는데, 이 중 남성이 426명으로 43.5%나 됐다는 거지. 2010년 10.5%, 2015년 27.2%였던 남성 이혼 상담 비율과 비교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 아닌가? 하지만 고령 남성의 이혼 상담과 이혼이 늘었다고 해도 그들 모두가 황혼재혼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 ‘고령자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지. ‘2019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재혼 건수는 총 4106건인데, 이 중 남자의 재혼 건수는 2759건으로 전년 대비 2.8% 늘어난 데 불과한 반면, 여자의 재혼 건수는 전년 대비 12.1% 늘어났다는 거야. 이런 차이에 대한 설명은 없네. 그렇지만 짐작은 할 수 있지. 이혼하고 나면 남자는 돈이 없게 되지. 돈 없으면 여자들이 관심을 안 갖지.
한 황혼재혼 회사의 전문 상담사는 “재혼 상대를 찾으려는 고령자들은 함께 여행하고 젊어서 하지 못한 취미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더라”고 말하던데, 돈 없으면 그게 되겠어? 국외든 국내든 여행 가서 맛집, 멋집 찾아다니며 ‘즐감’하는 인생사진 찍으려면, 한두푼으로 되는 게 아니지. 황혼이혼은 돈 없어도 할 수 있지만, 황혼재혼은 돈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황혼 로맨스’(늘그막이 즐기는 아름다운 성생활 포함)는 대부분 고령 남성에게는 그냥 꿈일 뿐인 거야. 체력도 안 따를걸. 고령 남성의 체력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 해줄 게 있네. 한번 들어봐. 재미있어. 제목은 ‘신혼 시절을 그리워하며.’
할아버지가 막 잠들려는데 할머니가 신혼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신혼 시절이 좋았지요. 그땐 잠자리에 들면 내 손을 잡아주곤 했죠…”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을 뻗어 잠시 손을 잡았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몇 분 지나자 할머니는 또 “그런 다음 키스를 했지요. 아, 참 옛날이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좀 짜증스러웠지만 할머니에게로 몸을 틀어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그러고는 내 귀를 살짝 깨물어줬는데, 그때가 다시 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이불을 발로 차고는 벌떡 일어났다. “당신 어디 가요?” 할머니가 묻자 할아버지는 “틀니 찾으러 간다, 왜?”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제 마지막 통계 하나를 같이 보자고. 5년 전 영국 통계인데, 이혼한 사람 중 22%가 이혼을 후회했다는군. “이혼하기 전에 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답한 사람이 그중 54%, “그(그녀)와의 기회가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42%였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조사를 안 하는지 통계를 찾지 못함.) 아무리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함부로 할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결혼을 지속시키는 건 서로 가엾어하는 마음’이라는 건 알아? 오래 함께 살면 ‘사랑’이 ‘가엾어하는 마음’이 되는 거라고. 할배가 앞산을 못 넘고, 할매가 처마에 등불 달아놓는 것도 가엾어하는 마음 때문이겠지. 사랑이 식었다고 이혼하려 나서지 마. 가엾은 마음까지 사라졌나, 곰곰 생각해봐. 나는 그렇게 살고 있어. 정말이야. 모르지. 내 짝도 내가 가엾어서 날 데리고 사는지 누가 알겠어?
*‘결혼을 지속시키는 건 가엾어하는 마음’이라는 건 오진영의 새 책 ‘새엄마 육아일기’에서 따옴.
*경상도 할배·할매 이야기는 페이스북에서 본 것을 필자가 약간 각색.
조부모는 손주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그랬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부모의 역할과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조부모의 모습을 통해 좋은 조부모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당신은 어머니의 형상을 한 천사였어요. 내가 넘어질 때면, 당신이 와 날 잡아주겠죠.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멀어질 테죠. 그리고 신이 당신을 데리고 돌아갈 때,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집에 돌아왔구나.’ 영국 출신의 1991년생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이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Supermarket Flowers’의 가사다.
그는 뛰어난 작곡 실력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2010년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휩쓸었다. 인지도와 수익 등을 고려했을 때 세계적으로 뛰어난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그는 “좋든 나쁘든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저의 첫 반응은 기타를 잡는 것입니다”라고 할 만큼 일상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앞서 소개한 곡은 외할머니 사후에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어머니의 관점에서 쓴 가사다.
가수로서의 명성도 대단하지만 효손으로도 유명하다. 한창 앨범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는 와중에도 당시 아프셨던 외할머니의 병동에 매일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에는 ‘Nancy Mulligan’이란 곡이 있다. 곡 제목은 외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왔고, 이 노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얘기를 그리고 있다. 그가 이렇게까지 외할머니를 아꼈던 것은 그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학창 시절 그는 빨간 머리 때문에 생강 소년으로 불렸고, 어릴 때 잘못된 수술로 인해 말을 더듬는 증세가 있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학교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 무명 시절에는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SNS를 통해 그의 실력이 입소문 나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가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노랫말처럼 외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격대교육과 학조부모
조부모는 사랑을 전해주는 ‘천사’의 역할과 더불어 지혜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격대교육’이 있었다. 격대교육이란 조부모가 부모를 대신해 손주를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에 따르면 포손불포자(抱孫不抱子)라 하여, 군자라면 손주는 안아도 아들은 안지 않는다고 했다.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굳이 왜 이렇게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맹자’에 나온다. ‘맹자’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면 기대가 지나치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생긴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 세대를 건너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퇴계 이황 선생은 맏손주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격대교육을 했다고 전해진다. 시대가 달라도 말하는 주제는 비슷했다. 특히 맏손주가 과거 공부를 게을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꾸중하는 편지를 보내서 손주를 타일렀다. 퇴계 선생은 과거 공부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장려했기에 과거 공부를 게을리하는 손주를 혼낸 것이다.
또한 원칙과 도리를 지키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것을 늘 당부했다. 예를 들어 손주가 조정 대신을 많이 안다고 동네방네 자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주의 태도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천하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평소에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은 받지 않았고,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주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퇴계의 마지막 30일을 담은 문집을 쓴 이가 바로 맏손주다.
그렇다면 현재 조부모의 모습은 어떨까? 세월이 지나도 손주에 대한 교육열과 관심은 높다. 이른바 ‘학조부모’란 신조어도 탄생했다. 학부모와 조부모의 합성어로, 육아뿐만 아니라 취학 후에도 조부모가 손주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할머니 치맛바람이 거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동 및 청소년 교육 전문가는 “공개수업이나 상담에 참여하는 학부모님 가운데 조부모님이 많다. 조손 가정이 아니더라도 맞벌이 가정의 경우 조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손주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의는 좋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손주를 너무 다그치면 안 된다. 잘되라는 뜻으로 하는 얘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복되거나 듣기 싫은 말이 되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손주에게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대성 부산시교육청 학부모교육 강사는 “전달할 내용을 무조건 단호하게 말하기보다는, 따뜻한 태도로 공감하는 표현을 먼저 하고 난 뒤에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지혜의 길잡이로서 지혜 전수도 좋지만, 손주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좋은 조부모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3계명
❶ 마음 상태를 고려 ▶ ‘걱정’이라는 명분 아래 하는 말이지만 손주가 듣기 불편해한다면 그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잔소리와 조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말하기 전에 손주의 마음 상태를 고려하자.
❷ 말은 따뜻하게 ▶ ‘개인’을 중요시하는 손주 세대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들의 마음 상태를 공감하고 따뜻한 표현을 써보자. 사실에 기반하는 것보다는 그 사실로 인한 아이의 마음 상태를 생각하자.
❸ 칭찬으로 자신감 UP ▶ 아이들은 칭찬을 받을수록 자신감이 올라간다.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반복적으로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칭찬을 많이 받을수록 손주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세계 석학과 함께 미래 세대 성장 고민
우리 사회의 고민 중 하나는 미래 세대가 좋은 환경 속에서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 관심에 발맞춰 올해 개관 20주년 맞은 서초여성가족플라자(대표 박현경)가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잠재력 개발’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5월의 마지막 날, 행사가 열린 서초구청 대강당에는 서초구 어린이집 종사자와 손자·손녀 보육에 관심 있는 중·장년 여성 약 15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박현경 대표는 세미나 개회사를 통해 “서초여성가족플라자가 양성평등 실현을 선도하는 여성ㅍ가족 중심 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이번 세미나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와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조 강연자로는 세계적인 석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회정책학과 앤 뷰캐넌(Ann Buchanan) 교수와 미국 오리곤 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제인 스콰이어스(Jane Squires) 교수가 강단이 섰다. 뷰캐넌 교수와 스콰이어스 교수는 각각 ‘아동의 잠재력 극대화하기’, ‘자녀 문제행동 조기진단과 개입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가족, 특히 부모의 관심 있는 돌봄이 영유아기 뇌 성장과 향후 감정, 행동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현상을 사례 분석과 연구 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허계형 교수와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정윤경 교수가 한국 대표로 강단에 섰다. 각각 ‘성공하는 아이 양육 : 놀이와 관계 형성’, 행복의 기초공사 : 자녀에게 다가가는 공감 대화법’이라는 발표로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영국의 시니어도 아이 양육 참여해
모든 강연을 끝으로 질문 시간이 진행됐다. 영유아기 자녀교육에 있어 시니어 역할에 대한 외국 사례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영유아기 발달에 부모 영향이 지대하지만 바쁜 부모를 대신해 조부모 즉, 시니어의 역할이 한국사회에서 크기 때문이다. 이에 뷰캐넌 교수는 “조부모의 양육과 역할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시니어가 손자·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참여를 원하는데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결과를 최근 연구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에는 특히 그랜드페어런츠플러스(Grandparentsplus)라는 기관이 있다고 했다. 그랜드페어런츠플러스는 시니어 세대 중 양육 참여를 하고 싶은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연결해준다. 서초여성가족플라자 홍보담당관에 따르면 2016년 '에듀시터 양성과정’을 운영한 바 있으며, 올해 서초구 내의 타 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성과정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손자·손녀를 돌보는 조부모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전문화와 양성 교육에 대한 인식도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인식할 수 있었다.
과거 족보나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고려시대(918~1392년) 임금 34명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로 나타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셈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임금은 21대 영조로,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뛰어넘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의 장수 비결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자는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외조모가 몇 년 전 향년 92세로 굴곡 많은 생을 마감하시는 모습을 보며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일반적으로 100세 시대란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 즉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략 2020년경이면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의 의료기술 발달 속도와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할 때 5070세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살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5070세대는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안에도 자산 축적에 관심이 많았다. 즉 은퇴설계를 할 때도 수익률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축적된 재산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열심히 저축하고 모아온 자산 등이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한순간에 없어지거나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 코앞으로 다가온 100세 시대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위험과 우발적으로 생기는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앞으로 5070세대가 부딪칠 수 있는 대표적 위험 3가지를 살펴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자.
의료비 리스크
보장자산을 사망에서 노후 의료비로 재편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는 몇 명 정도 될까? 2015년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3159명으로 여성이 2731명, 남성이 428명으로 여성이 6배 정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조사에서는 100세 이상 인구를 17만562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1만4000명 정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 기준으로 말소 여부로 판단하는 반면 통계청은 인구센서스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하는 조사 방법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는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생겼다. 과연 차이가 나는 1만4000여 명의 100세 어르신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은 거동의 불편과 질병 등을 이유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치료 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생명보험협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수명, 즉 전체 평균수명(82.4세)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이 76.4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수명을 73.2세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정도 병치레를 하다 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노후에는 질병이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후 질병이 재무적인 측면에서 특히 위험한 이유는 일정 연령이 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오래 살수록 그 위험의 정도가 급증하며, 질병의 정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후에 발생하는 질병은 자연스런 현상이란 점에서 건강관리만 잘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예방이 쉽지 않고 한 번 발병하면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노후에 발생되는 치료비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다. 건강보험공단(2015)의 조사에서처럼 연령이 증가할수록 1인당 연간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1인당 생애 총의료비가 65세 이후에 절반 이상 발생하는 것은 노후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5070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의료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 먼저 국민건강보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5070세대가 은퇴 후 의료비가 1000만원 발생했다면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 요양기관별로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63.4%(약 630만원)를 부담하고 나머지 36.6%(약 370만원)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개인부담분을 분해하면 건강보험 급여 대상 의료비의 20.1%와 비급여 의료비 16.5%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구조를 감안할 때 5070세대의 노후의료비 부담은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부분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는 가장의 유고에 대비한 사망보장 중심의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었다면, 50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의 위험관리로 보장 자산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한다. 2040 시절에 가입해두었던 보험을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으로 재검토하고, 행여 중복보장으로 인해 과도한 보험료 지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분석해 웰스(wealth)가 아닌 헬스(health) 시대에 맞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자녀부양 리스크
현명한 노후준비는 ‘자녀의 경제적 독립’
대한민국의 5070세대가 늙은 염낭거미를 닮아가고 있다. 염낭거미는 독거미의 일종으로 새끼가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위해 제 살을 먹이로 주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5070세대는 은퇴 후에도 성인이 된 자식 뒷바라지를 걱정하고 있다. 혹자는 자식뒷바라지가 100세 시대에 무슨 위험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으면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연금 외 변변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생물학적 성인자녀가 사회학적 성인자녀로 탈바꿈하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른 심리적 고충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는 점에서 엄청난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경기침체에다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이라는 사회적 현상까지 더해져 부모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성인자녀가 늘고 있다. 동거를 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성인자녀도 꽤 많다. 이는 선배 세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고민이란 점에서 5070세대에겐 새로운 리스크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대학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곁에 머무는 자녀를 ‘낀 세대’라는 의미의 ‘트윅스터(Twixter)’라 부른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KIPPERS: 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 이탈리아에서는 모친이 해주는 음식에 집착한다는 의미의 맘모네(Mammone)라고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젊은 층을 캥거루족, 취업을 했어도 경제적 독립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30~40대를 신캥거루족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5070세대가 은퇴 이후 성인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이 연출되면 이들의 노후준비 자산은 급속하게 줄어들게 된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노후준비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부양 리스크에 대한 통일된 대처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생각하면 실천할 수 있는 방안 두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부양기간과 지원 범위를 자녀와 함께 정하는 것이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에서 20~50대 성인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나?”라고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0.9%는 적어도 취업 전까지는 자녀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8년에는 이 비중이 26.1%였던 점을 감안할 때 성인자녀의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자녀의 경제적 미독립이 게으름 등 개인적 소양 탓보다는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경제적 지원 범위와 기간을 자녀와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에서 정하고, 독립을 이루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둘째 소규모 청년창업이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소규모 청년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창업의 경우 어느 정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능력이 된다면 한없이 지원하고 싶지만, 5070세대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수년 전 은행에서 퇴직한 박씨(60)의 경우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과 아파트, 그리고 퇴직금이 전 재산이다. 그런데 명문대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을 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던 자녀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창업자금을 요청하더란다. 지원을 해야 하나, 말려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박씨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고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자녀에게 사업계획서를 요청하고, 자금을 한꺼번에 지원하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지원하며, 아버지가 아닌 채권자로서 계약서까지 썼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혀를 찰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대하는 게 정답에 가까운 차선책인 것 같다.
금융사기 위험
내 돈 지키는 5가지 행동지침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은퇴자들이 어이없게 금융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드라마의 소재거리로 활용될 정도로 은퇴자들이 쉽게 금융사기 표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은퇴자들은 비록 고정수입은 크게 줄어들었다 해도 퇴직금과 모아둔 유동자산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여기에다 금융시장의 변화에 둔감한 상황에서 줄어든 고정수입을 보충하고픈 조급한 마음에 고수익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져 금융사기범의 미끼를 덥석 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투자자교육재단에서는 금융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① 50대 후반의 기혼자, ② 자신의 판단과 금융 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 ③새로운 생각이나 판매 선전에 귀가 솔깃한 사람, ④ 최근에 건강 또는 금융상 어려움을 겪은 사람 등. 이 중에서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사람은 금융사기에 당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금융사기를 당하게 되면 힘들게 모아온 자산을 다 잃을 수 있다. 아래에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5가지 행동지침을 소개한다.
첫째, ‘아는 사람인데 잘해주겠지, 전문가이니까 잘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려라!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고객의 이익보다 금융기관이나 종사자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다.
둘째, 금융업에 종사하는 개인이 제공하는 보고서가 아닌 금융기관의 보고서를 받아라! 가끔 개인이 작성한, 고수익을 보장하는 보고서를 믿고 투자에 나섰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약속 뒤에는 대부분 고객의 자금을 유용할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고수익을 미끼로 두 자릿수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호시탐탐 돈을 노리는 금융사기꾼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셋째, 배우자의 사망, 이혼소송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조심하자! 사람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돈과 연관된 도움의 손길은 주변 사람과 충분히 상의해 결정해도 늦지 않다. 채근하는 사람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삶의 전환기나 시련기에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
넷째, 장점만 있는 금융투자상품은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때는 그 상품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한 후 투자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금융사기꾼이 노리는 것은 높은 수익률에 쉽게 흔들리는 고객의 마음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수익을 확정 보장하거나 마감임박이라면서 투자 권유를 종용하는 경우 금융사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엄마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수많은 동년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20대에는 결혼과 출산, 30대와 40대는 지난한 육아, 50대에는 고장 난 몸과 싸웠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나이 앞자리는 6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수많은 58년 개띠처럼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장례식장, 예식장 빼고 거의 모든 자리에 입고 나간다. 뒷모습만으로는 우리 엄마와 남의 엄마를 구분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렇다고 엄마의 지금 패션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엄마에게는 이름 석 자만큼이나 옅어져버린 ‘자신’.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라는 말을 패션을 전공하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남들에게 말했다. 엄마의 이름 석 자와 엄마라는 육체와 정신을 쏙쏙 빼먹고 자란 나는 할 말이 없다. 지금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엄마에게 무작정, “엄마 그 오렌지색 점퍼는 정말 아니지 않아?”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 엄마와 수많은 남의 엄마에게 패션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자신을 찾는 법에 관한 지도를 내밀어본다. 우선 이 지도의 가이드로 적당한 4명의 인물을 꼽아봤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h98008272@gmail.com
◇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인생 철학이 녹아 있는 옷을 입어라"
“옷을 잘 입은 사람은 옷보다는 그 사람이 기억나요.” 몇 해 전 라는 영화가 개봉될 즈음 실제 주인공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노라노는 1947년 국내에서 출발한 두 번째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을 간 신여성으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6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패션쇼를 열었으며, 기성복이란 제도를 프랑스보다 앞서 만들었다. 인터뷰를 했던 그때 이미 노라노는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노라노는 심플한 디자인의 캘빈클라인 시계를 차고, 어깨선에 딱 맞는 벨벳 재킷을 입고 있었다. 단정한 커트 머리에 보라색 아이섀도를 바른 모습에서는 바지런함이 느껴졌다. 잘 입었다, 못 입었다가 아니라 참 노라노답다는 생각이 인터뷰 말미에 들었다. 인생을 일부러 ‘루틴’하게 만들었다는 노라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혹시라도 더 일찍 깨면 5시가 될 때까지 누워 있는다) 45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똑같은 식단의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동네 공원을 45분 걷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시까지 출근한다. 퇴근은 당연히 6시, 칼 같이 맞춘다. “시계나 다름 없죠. 세상에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생활을 이렇게 루틴하게 만들어놓으면 쓸데 없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죠.” 그녀의 철학은 패션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스무 살부터 일을 했어요. 직장 여성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생활이 단순해야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패션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요.” 머리를 짧게 유지하는 것도, ‘시그니처 룩’이라고 불릴 만큼 똑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것도 모두 이런 패션철학 때문이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는 말에 노라노만큼 적당한 사례는 없다. 멋지게 입고, 트렌디하게 입는 것이 답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철학이 스타일에 녹아 있으면 그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 사업가 겸 스타일리스트 린다 로딘 차라리 ‘안티’ 안티에이징
“난 60대가 될 때까지 늙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종종 젊은 사람들 위주로만 돌아가는 문화 때문에 힘들기도 해요.” 곧 일흔을 바라보는 린다 로딘은 여전히 주말이면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고, 종종 ‘중고장터’를 통해 자신의 옷과 탐나는 남의 옷을 교환해서 입는다. ‘패션은 여자들의 창의력을 강물과 같이 흐를 수 있게 도와주는 돌파구’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그래서 가끔 짧은 스커트에 타이츠를 신고(자신의 다리가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롤업 청바지를 애용한다. 부엉이처럼 큰 컬러 안경과 새빨간 립스틱도 즐긴다. 물론 한때 그녀도 하얗게 센 머리를 염색할까, 주름진 이마에 필러를 맞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필러를 맞고 마주한 제 얼굴은 제가 아니었어요. 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할머니가 보일 뿐.” 그녀는 차라리 ‘안티’ 안티 에이징을 외쳤다. 젊어 보이는 것에 포커싱되는 중년의 패션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인 줄 알았던 ‘신선함’을 그녀에게 돌려줬다. 유니클로의 생지 데님을 툭툭 걷어 입고, 바삭한 화이트 셔츠에 빨간 플랫 슈즈를 신은 린다 로딘의 패션에서는 나이라는 코드가 읽히지 않는다. 그저, 린다 로딘이라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를 기억하자
자신을 찾는 일에 불특정 다수, 즉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또 다른 정계 인물이 있다. 얼굴보다 구두로 첫 취임기사를 장식한 영국의 총리 테리사 메이. 그녀의 패션은 한마디로 멋지다. 20대 여자들의 트렌디함과 중년 여성의 묵직함, 워킹 우먼의 단호함이 한 벌에 담겨 있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구두를 사고(입술 모양이 그려진 앙증맞은 플랫슈즈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사이하이 부츠를 신는 과감한 여자다. “저는 늘 여성들에게 ‘고정관념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이 되라’고 말해요. 만일 당신 개성이 옷 또는 신발을 통해 보인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 바람에 테리사 메이의 연관 검색어에는 ‘슈즈 마니아’가 뜬다. 우리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했고, 벨벳으로 만든 무언가에 항상 반했다. 하지만 언제나 손에 들린 건 물세탁이 가능한 실용적인 옷이었다. 테리사 메이에게는 구두 쇼핑이 취미활동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창고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를 찾는 놀이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무언가를 떠올리자. 엄마에게 보라색 벨벳 슈즈가 필요한 것처럼.
◇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나’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자
흰머리에 쇼트커트, 수영으로 다져진 다부진 어깨, 조금의 경사도 느껴지지 않는 빳빳한 허리. 당당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이 프랑스 여자는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다. 방탄 가공을 거쳤을 법한 그 단단한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고 ‘최초’로 IMF 총재 자리에 앉았다. 줄곧 ‘남초’ 직장에서만 생활해온 그녀는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서 총을 잡기보다는 립스틱을 잡았다. 무채색의 팬츠 슈트로 넥타이맨들과 경쟁하는 대신 핑크색 스커트로 여자다움의 힘을 강조했다. “생각은 그만하고, 행동 좀 하시죠”라는 말을 자주 해 ‘아메리칸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행동파인 그녀 앞에서, “일이 힘들어서, 이게 편하니깐”이라는 말로 유니폼 같은 무채색 패션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 우먼들은 용납이 안 된다. 그녀는 수년간 IMF 총재 역할을 해오며 능력마저도 스타일리시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여전히 스카프 쇼핑을 즐기고 핑크색 트위드 슈트를 입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60대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그녀의 지금 룩은 뚝심 있게 지켜온 자기 자신 그 자체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남성지 를 거쳐, 와 의 패션 에디터로 10여 년간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로 패션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시어머니와 장모, 어느 회사의 CEO. 미혼 여성은 미혼 여성대로, 기혼 여성은 기혼 여성대로, 대한민국 중년여성들은 각자 주어진 책임과 의무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자로서 가졌던 꿈과 정체성을 잃어가기도 한다.
“나와 함께 늙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전반이 존재하나니.”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시 ‘랍비, 벤 에즈라’의 한 구절이다. 통념과는 달리 인생의 절정기가 인생 후반에 온다는 이 구절은 나이 듦과 잘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꽃중년은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과 다른 길을 향한 갈망, 성취감과 상실감, 자신감과 회의, 체념과 희망, 흥분과 무력감 등이 동시에 찾아오는 시기다.
여전히 중년은 기회가 주어진 가능성의 시간이다.
한평생을 자식과 남편, 가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의 열정과 역량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간의 에너지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구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바퀴가 돌다 보면 어느 한쪽이 부서지고 닳게 마련. 무엇이 더 필요한지, 버릴 것은 없는지 구석구석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멈추고 쉬어야 한다. 자신을 내어주는 일과 내게 필요한 것을 재충전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 시기가 바로 50대, 60대, 70대인 것이다.
관계 맺기에 로그인을 잘해야 할 꽃중년
중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고립’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들은 기존의 외부 인맥이 끊어진다.
개인적인 인맥을 유지하기에는 이사, 가사, 육아 등등 주어진 일들과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에 대하여 가족들에게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꾸려지는 공동체다. 그러나 여성들은
어느 순간 사람은 간 데 없고 역할만 남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은 그 ‘역할’들 속에 파묻히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맺은 가장 소중한 인연(人緣)
나이 들수록 소수정예 친구와 좁고 깊게 사귄다.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다. 한 심리학 교수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돈을 벌수록 남을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64세 최인순 씨는 “남편이 저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제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남편 입장에서 보면 제가 정말 쉬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요. 게다가 남편은 제가 하는 모든 말을 ‘수다’라 칭하며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기기도 해요” 라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여성의 인간관계는 어디서부터 올까? 바로 ‘말’이다. 여성이 대화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게 주목적인 남성과 달리, 여성은 내 기분을 상대방과 함께 나누고 공감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대화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수다 금지령을 내린다면 많은 우울증 환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여자가 말이 많다며 인신공격하는 남자는 더 이상 신사가 아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말을 끊는다. 길어지는 대화에 남편은 점점 지루해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용건만 간단히 말하기보다는 최근에 재미있고 슬픈 일 등 새로운 정보를 말하면서 상대방이 공감해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정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더 잘 나누기 위해 여성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성의 뇌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남편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아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남녀의 대화 속도는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떠한 결정을 해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응대만 해줘도 아내는 행복해한다.
그렇다. 부부클릭 전문가 소장은 “여자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감정이 좋은 사람과의 관계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자들이 남성에 비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있어 수다는 단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인 것 같다.
남편 아닌 다른 인연과의 관계 맺기
가족 아닌 관계를 잇고 싶은 여성들은 사는 지역에서, 혹은 종교 단체에서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리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만난 친구들이 평생 친구가 되는 이유는,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나이 때에 만나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게 된 인연들은 서로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없을 뿐더러, 보여준다 해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족, 그리고 가족 외 관계에서 부딪히게 되는 이 모든 상황들은 중년 여성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년 여성이 관계를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건 어려우니 현재 있는 관계, 그중에서 정말 내가 믿어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솔직하게 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니 자꾸 가리게 되고 서로 오해가 쌓이고 친해졌어도 왠지 공허하게 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기존 관계 중에서는 가족, 그중에서 우선 배우자를 들 수 있다. 중년이 되면 남성들은 남성 호르몬이 내리막길이고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면 사회가 아닌 가족과 보낼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서 아내와 같이 늙어간다는 걸 보다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반면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댁과 남편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시점이 오고, 그렇게 되면 조금 더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중년 여성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고 남편을 영혼의 동반자로 생각해서 솔직한 대화를 하면 관계 회복이 가능해진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재설정할 수 있다. 이미 장성한 아이는 어른 대 어른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은 서로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간 살아온 시간과 경험들 때문에 너무 서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서드 에이지 여성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오랜 친구들에게 “우리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떠냐”라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면서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다.
강현식 누다심심리상담센터 대표가 이런 방법도 제안했다. “지역 문화센터나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곳에 가는 방법이다. 그곳에 가서 서로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마음이 풀리고 인맥이 넓어지기도 한다. 잘 보이려 애쓰지 말고, 솔직해져 보라.” 이 모든 방법들에서 중요한 것은 숨기지 않고 솔직해지려는 자신의 다짐이다. 그 다짐이 없으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강 대표는 강조했다.
중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특히 강 대표는 “우울증, 울화병, 쇼핑중독 현상은 모두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게 몰두한다고 해도 공허감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마음의 공허함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해소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어떤 여성들은 그러한 공허감을 해소하기 위한 관계를 맺을 때, 남편이나 자녀 같은 가족과의 관계 개선은 뒤로 미룬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여성들은 가족 안에서 그동안 관계가 아니라 역할과 희생만을 했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들은 그토록 쉽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밖에서 관계 개선이 잘 된다고 해도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돌아오게 되는 곳은 집이고 그 안에는 가족이라는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