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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만우 선생님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대학 시절,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은사님을 그리워하며 민병삼 소설가께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해 5월의 교정은 참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청옥색 무명을 펼쳐놓은 것 같은 청명한 하늘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꽃가루처럼 쏟아져 눈이 부셨습니다. 그 5월 어느 날이 저한테는 벅차고 두려운 하루였습니다. 숙명에 묶이는 순간이었고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제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해에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가 1965년 가을학기였지요. 과묵하신 선생님은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을 만큼 범접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이듬해에 마침 학교신문 에서 문학상 공모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문학에 뜻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교지에 고작 콩트나 발표했던 게 전부였을 만큼 일천해서 감히 문학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단편소설을 덜컥 내고 말았습니다. 아마 치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이 선정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그게 입선작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느닷없이 “민 군, 소설을 써보게” 하고 슬쩍 떠보는 듯한 어조를 흘리셨지요. 저는 그저 선생님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소설을 써보라고!” 하고는 더 보태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갑자기 소설을 쓰라니… 저는 선생님의 제안을 환청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벅찼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지요. 그건 제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습작을 권하셨다는 건 언감생심 낭중지추까지는 아니라도, 저한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지요. 그건 감격을 넘어서 미래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숙명으로 묶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세대가 1960년대를 질곡에 비유했지만 저한테는 그게 억압된 자유와 희망 없는 민주주의에 묶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그것이었지요. 민주투사들은 저 같은 부류를 여물이나 처먹는 돼지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졸업하고 취직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비로소 고백하지만 그때 습작을 하면서도 ‘소설’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써야 소설다운지를 깨닫지 못하고 대구 쓰기만 했지요. 그러다 보면 소설이 될 것으로 믿었고요. 시간은 냇물처럼 흘렀습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소설’은 잠시 접어야 했습니다. 기약 없는 유예였지요. 문학? 소설? 그건 구름이었습니다. 취직이 먼저였으니까요. 선생님은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서 동분서주하셨지요. 그저 추천장이나 써주고 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자를 데리고 직접 회사나 학교로 찾아가는 게 예삿일이 돼버렸습니다. 이때 선생님이 저를 부르셨어요. 마침 경남 거제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구한다며, 제 동기 중에서 희망자를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이 제 운명을 또 한 번 바꿔놓았습니다. 그 학교에 제가 갈 것을 자청했습니다. 선생님이 놀라시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굳혔고, 농어촌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엷게 번졌습니다. 제가 작심하고 소설에 전념할 것 같아 기특하다는 표정이었지요. 그때가 1967년 2월 하순이었고, 신학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부임할 곳이 도서지방이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두어 시간을 가야 했습니다. 서울역에 졸업 동기들과 함께 선생님이 배웅을 나오셨어요. 뜻밖이었습니다. 선생님까지 나오실 것으로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거제도에 가서 딱 1년만 있으라고 하시면서 담배 한 보루를 손에 쥐어주셨어요. 자식 같은 나이의 제자한테 담배라니…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습니다. 사실 저는 기약 없이 떠났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면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저를 배웅하시던 선생님 얼굴이 어른거려 곧 채찍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단편 한 편씩을 선생님한테 우송하기로 스스로 다짐했지요. 그 약속은 거의 지켜졌습니다. 문제는 원고의 질에 있었습니다. 제가 읽어봐도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플롯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해 오로지 이야기 만드는 일에만 몰두한 탓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반성할 줄을 몰랐습니다. 반성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학지를 통해 등단하려면 2회 추천을 받아야 했지요. 그때 선생님이 월간의 소설 추천위원이셨습니다. 추천위원으로 선생님을 비롯해 김동리, 황순원, 오영수, 안수길 선생 등이 계셨습니다. 어쨌든 습작에 게을리하지 않아 1968년 8월호에서 선생님한테 초회 추천을 받았습니다. 1차 관문을 통과해 절반의 성공을 한 셈이었지요. 그때가 마침 여름방학이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선생님이 남해안으로 여행하는 길에 제가 머물러 있는 ‘장승포’에 들르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춰 부두로 나갔지요. 선생님이 배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보고 은사이기 전에 아버지와 해후하는 듯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장승포에서 딱 하룻밤 묵으신 선생님은 이튿날 곧장 남해로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은 버스에 오르시면서 “계속 써!” 하는 말씀만 남기셨어요. 그 짤막한 두 마디에서 행간을 읽지 못했으면 매우 섭섭했을 뻔했습니다. 저는 그다음 해에 거제도를 떠났지요. 꼭 2년을 있었습니다. 서울에 오기는 했으나 교사 자리가 저를 기다린 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또 이 학교 저 학교로 저를 데리고 다니셔서 모 여고에 채용이 됐습니다. 그때가 1969년 2월이었습니다. 저는 추천완료를 받기 위해서 소설 습작에 매진했습니다. 심지어 숙직을 대신하면서까지 썼으니까요. 소설을 쓰는 일이 중노동일 때가 많았습니다.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못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걸 선생님한테 배웠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1970년 에 추천이 완료됐지요. 선생님한테 사사한 지 햇수로 4년 만이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작가가 됐습니다. 기쁜 마음에 앞서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작가로서 홀로 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작고하신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선생님은 저에게 참스승이셨습니다. 중국의 한퇴지(韓退之)는 ‘사설(師說)’에서 ‘옛날의 학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라 함은 도(道)를 전하고, 업(業)을 주고, 의혹을 푸는 소이(所以)다’라고 했습니다.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 선생님. 선생님은 품격이 높고 맑은 풍류사종(風流師宗)이셨습니다. 저에게는 진정한 사부님이셨고요. 제가 등단한 지 올해로 47년이 됐습니다. 아직은 뇌와 손가락이 망가지지 않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민병삼(閔丙三) 소설가 - 소설가. 충남 대전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월간 으로 등단. 소설집 , 등. 장편소설 , , , , , , 등 다수. 한국소설문학상, 동서문학상, 유주현문학상 수상.
- 2017-09-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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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추천 전시, 도서, 영화, 공연
- ◇ exhibition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 , 등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사랑받아온 픽사(Pixar,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 특별 전시다. 제작 과정에 쓰인 스케치,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약 500여 점을 각 영화별로 전시했다. 정지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zoetrope)’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담은 ‘아트 스케이프(artscape)’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일정 7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이집트 문화부, 샤르자 미술재단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3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166점을 초현실주의가 걸어온 흐름에 따라 다섯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출품작 중 상당수가 해외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미라’, ‘피라미드’로만 인식되어온 이집트의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 book 남자 혼자 죽다(성유진 외 공저·생각의힘) 고독사 중에서도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 이른바 무연사(無緣死)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209명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의 무연사 현상을 현대 사회 남성의 어려움과 연관해 밝히고자 했다. 치매박사 박주홍의 뇌 건강법(박주홍 저·성안북스) 20여 년 동안 치매 전문가로 살아온 저자가 치매를 비롯한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질병에 대한 기본 정보와 더불어 식생활, 운동, 명상치료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았다. ◇ movie 심야식당2 누적판매 24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만화 을 원작으로, 2015년 국내 개봉했던 영화 의 두 번째 시리즈다. 1편에서 함께한 마츠오카 조지 감독과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조가 다시 만났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늦은 밤 불을 밝히는 특별한 식당’이라는 콘셉트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개봉 6월 8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츠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기다리 조 등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국의 길고양이가 대만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로드무비다.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대만의 관광지 ‘허우통’과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고양이 섬’ 일본 ‘아이노시마’ 등을 돌아다니며 길 위에서의 공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화계 대표 애묘인(愛猫人) 조은성 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고양이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발자취를 담았다. 고양이의 마음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개봉 6월 8일 장르 로드무비 감독 조은성 내레이션 강민혁 ◇ stage 로미오와 줄리엣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원로 연극인 오태석이 번안과 연출을 맡았다. 청사초롱 불빛 아래 한국무용과 풍물이 어우러져 한국판 이 탄생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일정 6월 18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오태석 출연 이신호, 정지영, 정진각 등 천덕구씨가 사는 법 극본을 맡은 김태수 작가는 삶은 끝나지 않은 여행이며,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는 시니어 세대에게 삶이란 견딜만하다고, 또 웃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그의 시선을 담아 누구나 겪는 노년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일정 6월 8~18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김순영 출연 오영수, 차유경 등 복순이할배 ‘사랑을 모른다’라는 이유로 짝사랑에게 거절당한 태수는 돈 많고 건강한 독거노인 ‘복순이할배’에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괴짜 노인과 연애 풋내기 청년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뤘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 두레홀 4관 연출 박정우 출연 김시권, 정동진, 이재욱 등 시카고 미국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2년 만에 내한한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즈 음악을 14인조 밴드의 연주로 즐길 수 있다. 강렬한 조명 아래 관능적인 안무가 돋보인다. 일정 5월 27일~7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출연 딜리스 크로만, 로즈 라이언 등
- 2017-05-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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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읽기] 10월의 추천 전시ㆍ도서ㆍ영화ㆍ공연
- ◇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 2016-10-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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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년] '못잊어, 한국문학의 별들'
- 글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1945년 8월 15일, 한 사상가의 표현대로 ‘도적처럼’ 찾아온 해방은, 고통스러운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과 맞닥뜨리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준 이날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박탈당했던 모국어의 근원적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이때는 일제 강점기에는 간행되지 못했던 이육사, 윤동주, 심훈 등의 유고시집이 간행되었고, 여러 종의 사화집도 잇달아 출간됨으로써 역동적인 문학 출판 시대를 열게 된다. 해방 직후 출간된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청록집』과 서정주의 『귀촉도』는 우리 나라의 정상 시편으로 손색이 없는 위상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청록집』은 자연을 근대시의 주요한 시적 대상으로 아름답게 재현해내면서 우리 말의 가락과 이미지를 높은 예술적 형상 속에서 구현함으로써 이 시대의 가장 화려한 사화집으로 등극되었다. 더불어 김영랑, 김광균, 유치환, 김광섭, 김현승, 신석정, 김상옥, 이호우 등이 우리 서정시의 미적 경지를 우뚝하게 올리는 가편들을 쏟아냈다. 소설 쪽에서는 해방 전후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염상섭, 이태준, 채만식, 김동리, 계용묵, 허준, 황순원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당대적 상황 인식으로서의 소설은 8·15가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해방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이념 대립과 남북 분단을 낳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족사적 출발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증언하였다. 그 불충분한 해방이 분단과 전쟁을 곧 야기한 것은 우리가 두루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순수서정에 뿌리를 내리다 1950년대 벽두에 터진 6·25전쟁은 우리 역사를 근원에서부터 바꾸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물리적 충격을 주었던 이 전쟁은 이후 우리 문학의 가장 강력한 존재 근거이자 동시에 한계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과 가난, 반공과 서구 추수라는 공통된 체험을 통해 이 시기의 문학적 주체들은 문학적 아비를 상실한 채 폐허 속을 거닐게 된다. 이때부터 우리 시의 주류 미학은 ‘순수서정’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특별히 서정주는 독자적인 상상력과 탁월한 시적 의장(意匠)으로 한국 시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된다. 공동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49)을 펴낸 ‘신시론’ 동인들은 모더니즘 시운동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이 시기의 소설은 전쟁을 직접 겪은 작가들의 경험적 증언으로 채워졌다. 그들의 작품 세계는 방향 상실과 불안 의식 등에서부터 생활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매우 섬세한 심리적, 현실적 리얼리티를 담게 되는데 김동리, 김성한, 이범선, 오유권 등이 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 의식의 치유 과정을 그린 손창섭, 서기원, 반전 이념을 담아낸 박영준, 황순원, 선우휘, 오상원 등도 기억할 수 있다. 이밖에도 장용학, 이호철, 임옥인, 박경리, 강신재, 박연희, 오영수 등이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작가들이 절대 가난과 싸우면서 소중한 기록을 남긴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흐름에 불을 지피다 1960년대에 일어난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경험과 가치를 인식시키는, 호환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의 시문학은 대개 세 가지의 흐름을 형성한다. 하나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그에 대한 저항의 저류로서 김수영과 신동엽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을 통해 우리 시는 4·19혁명이 가져다준 이념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 민족주의의 상보적 형상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 다음 하나는 인간 내면과 형식 탐구의 흐름으로서 김춘수가 대표적이다. 김춘수의 시는 관념의 배제를 노리면서 존재와 언어의 관계에 대해 천착하는 일관성을 보였다. 마지막 하나는 전봉건, 김종삼, 천상병처럼 전 시대로부터 창작을 꾸준히 이어온 시인들에 의해 구축된 현대적 감각의 세계였다. 김남조, 박재삼, 박용래, 김관식 같은 서정의 흐름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설 쪽의 대표적 사례는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이 작품은 남과 북의 이념적 대립과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로 상징되는 절망,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분단과 외세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남정현의 『분지』는 이 시기 최대 문제작으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분단 문제는 박경리, 이호철 등의 작품에서 심화된 형상을 얻는다. 특유의 감각적 문체로 도시적 삶의 위선을 그린 김승옥의 서사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1960년대 문단을 강타하였다. 그만큼 이 시기는 우리 문학의 다양화가 비로소 이루어진 때라고 할 수 있다. 민중적 서정시와 노동현실 소설화 1970년대의 문학적 감각과 상상력은 ‘유신’이라는 정치 체제와 전태일 사건이라는 충격적 사건으로부터 그 형식과 내용이 시작되었다. 이 두 가지 축은 당시의 작가나 시인들로 하여금 권력에 대한 문학적 관심의 본격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시에서는 민중적 서정시가 경제 발전의 불균형과 그에 따른 민중의 피해 과정을 가장 본격적으로 그려냈는데 신경림, 고은, 김지하, 조태일, 정희성, 문병란 등의 시가 주목되었다. 그런가 하면 황동규, 정현종, 마종기, 김광규, 김명인 등이 보여준 음역은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이 주는 소외와 내적 파탄을 증언, 가시화함으로써 한국 시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주었다. 이 시기의 소설은 현실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 본격화하였다. 그 대표적 형태가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이었고 이문구가 그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노동 현실의 소설화는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 등이 주도하였다. 또 이 시기에 비로소 씌어지는 대하소설 박경리의 『토지』, 권력을 비판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분단 문제를 다룬 윤흥길의 『장마』 등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소설이 호응을 얻었다는 점인데, 이는 4·19로 비롯된 역사의식의 성장과 급격한 시대 변동에 따른 역사적 단절감의 회복 욕구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1970년대는 대중소설이 폭넓게 출현하였다. 한수산, 최인호, 조선작, 조해일, 박범신 등이 그 구체적 목록이다. 이 시기는 우리 문학의 사회적 상상력이 깊어진 시기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창작과비평’ 그리고 ‘문학과지성’ 19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안에 구비된 강한 기억과 저항의 힘은, 창작과 비평 모두에서 정치적 상상력의 만개를 가져왔다. 시 부문의 대표적 흐름은 노동시라고 불린 일군의 경향으로서 박노해와 백무산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또한 김남주는 줄기찬 저항성으로 한 시대의 가장 뜨거운 전사 시인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일정한 대타적 영역을 형성한 해체시는 기존의 시문법에 대해 강렬한 도전을 보냈으며, 정치적 전위가 아니라 미학적 전위로 나섰다. 특히 황지우는 언어 실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탁월성으로 문학적 성가를 누렸다. 이어 박남철, 김영승, 장정일 등이 더욱 급진적인 실험적 해체시를 양산했다. 또한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서도 개인사의 굴곡을 통한 사회 반영 혹은 인간의 존재 탐구에 매진해온 시인들로는 이성복, 최승자, 최승호, 기형도 등이 있었다. 소설 쪽에서는 1980년대를 휩쓴 진보의 열기에서 비켜선 자리에서 문학을 했던 작가들도 있는데 그 대표 격이 이문열이다. 소설 기법의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군으로는 이인성, 최수철이 있다. 그리고 기법 실험의 극점을 보여준 서정인의 『달궁』, 역사소설의 기법으로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낸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등도 소재 확대를 가져온 예에 속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준 작품들도 많이 창작되었다. 문순태, 임철우, 윤정모, 최윤 등은 그러한 유에 속하였다. 해방 직후의 삶을 통해 역사적 비극의 원천을 형상화한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와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쓴 소설이나 언어 자체를 탐색하는 소설들도 다수 나왔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등이 그 실례일 것이다. 이 시기는 매체와 작가군이 폭증한 시대로서 대중이라는 개념이 본격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작가들의 대활약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적 감각에 뿌리를 둔 시쓰기 방식이 크게 대두하였다. 그 주자로 우리는 유안진, 천양희, 신달자, 노향림, 김승희, 최문자, 김혜순, 황인숙, 허수경, 정끝별, 나희덕, 박라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생태적 상상력의 시편들이 쏟아진 것도 괄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이시영, 이하석, 고형렬, 고진하 등의 시나 『녹색평론』 같은 근대적 기획에 대해 의혹과 도전을 보내는 패러다임이 이에 중요한 흐름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향은 ‘정신주의’라는 명칭을 부여받는 일군의 시적 경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는데 조정권, 최동호 등이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시적 발언은 김정환, 도종환, 박영근, 최두석, 이재무, 안도현 등에 의해 이어졌다. 이른바 ‘몸’의 시학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경향은 정진규, 김기택, 채호기, 박주택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는 주체, 권력, 이성, 중심의 언어에서 타자, 탈권력, 감성, 주변의 언어가 목소리를 얻어가고 있는 것을 실증하였다. 소설 부문에서는 여성성의 잠재적이고 대안적인 가능성을 문학적 감수성과 결합시켜 풍요로운 형상화가 이루어졌다. 공지영, 오정희, 신경숙, 은희경, 이혜경, 김향숙, 공선옥 등이 주도한 이러한 패러다임은 관용과 너그러움, 희생, 포용성으로 그 정서적 지향을 움직여갔으며, 어떤 것도 절대 구심이 될 수 없다는 융통성 있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과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지나간 시대의 오래된 기억들을 독자 앞에 되불러주었으며, 구효서, 정찬,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한강, 전성태 등도 자기 몫을 충분히 하며 새로운 언어들을 갈무리하였다. 이러한 복합적 흐름을 20세기에 형성했던 우리 문학은 21세기에 들어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그 외연과 실질을 확장하고 심화해가고 있다. 시에서는 이른바 ‘미래파’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적 경향이 중요한 비평적 대상이 되었고, 소설 쪽에서도 다양한 작가군이 들어와 새로운 창작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해방 후 70년 동안 우리 문학이 일구어온 역사는, 이렇게 가파른 역사와 삶을 비추어온 별자리처럼 한편으로는 선연하고 한편으로는 흐릿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기 거명된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득하지 않은가?
- 2015-04-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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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간 그는 독거노인의 ‘아들’ 이었다
-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던 홀몸노인을 8년 동안 친어머니처럼 돌본 뒤 임종까지 지킨 경찰관이 화제다. 주인공은 충북 보은경찰서 정보보안계에 근무하는 오영수 경사. 오 경사는 2005년 속리산파출소에 근무하면서 이금주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이 할머니는 당시 유일한 혈육이던 아들을 잃고 슬픔 속에서 힘겹게 살고 있었다. 오 경사는 이런 할머니를 거의 매일 찾아가 건강을 살피고 말동무를 해주는 등 친아들 이상으로 극진히 모셨다. 할머니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한 뒤 홀몸노인 돌보미로부터 식사와 청소를 지원받고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여행도 함께 다녔다. 때문에 오 경사의 아내와 아들 딸도 이 할머니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정을 나눴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상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할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을 잃고, 급기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불편할 지경이 됐다. 지난해 8월에는 가게 문을 닫은 채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 경사와 가족들은 요양병원이 있는 경기도 안성을 수시로 오가면서 할머니를 극진히 간호했다. 오 경사는 지난 3일 안성시 소재 요양원에서 이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안성으로 달려가 임종을 지켜봤고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위패를 속리산 복천암으로 옮겨 49재도 봉행했다. 또한 오 경사는 소식이 끊겼던 할머니의 며느리와 손녀를 수소문해 장례까지 치렀다. 이 할머니는 임종 전 속리산 초입에서 운영하던 기념품 가게 등 전 재산을 정리해 불교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경사는 “이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뒤 어머니를 모신다는 생각으로 돌봤다”며 “불심 깊고 정 많던 할머니께서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가셨다”고 애도했다.
- 2014-01-10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