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속 중장년 인구가 늘어나며 이들 세대를 위한 전유 공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이하 행복캠퍼스)는 인생 후반전 일·취미·사회공헌 등을 아우르는 생애전환 플랫폼으로 발돋움 중이다. 특히 ‘캠퍼스’라는 명칭처럼 강남대학교 내에 위치해, 대학생과 교류하며 풋풋했던 시절을 다시 만끽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행복캠퍼스는 1955~1974년생 경기도 주민을 대상으로, 이들 세대의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단순히 프로그램 제공에 그치지 않고, 동년배가 함께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지역공동체로 거듭나게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행복캠퍼스 내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비슷한 관심사를 발견한 이들이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나가는 식이다. 그 예로 이곳 캘리그래피 수강생들은 뜻을 모아 용인세브란스병원 어린이 환우들을 위한 ‘캘리그래피 선물 행사’를 열었고, 치매예방지도사 자격증 취득자 동아리에서는 지역 주간보호센터, 종합사회복지관 어르신을 위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정근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센터장은 “불안한 노후를 함께 고민하고 헤쳐나갈 전우(戰友) 같은 동년배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압축성장 시대를 정신없이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에게 성공적인 나이 듦을 준비할 ‘인생 에너지 충전소’를 제공해 기쁘다”고 말했다.
일·취미·사회공헌 세 마리 토끼를 잡다
행복캠퍼스 참여가 망설여진다면 일단 현장부터 찾아가 보자. 캠퍼스로 향하는 동안 교정을 거닐며 얻는 활력과 낭만에 매료될 것이다. 도착하면 도심 속 북카페를 연상케 하는 전용공간이 눈에 띈다. 용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는 커피 한잔하며 책 한 권 읽어봄 직하다. 캠퍼스 생활을 더 알아가고 싶다면 상담을 신청하면 된다. 행복캠퍼스는 학기제로 종합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1학기 3~6월, 2학기 9~11월). 개별상담과 집단상담으로 이뤄지는데, 동년배 상담사를 통해 캠퍼스 활동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다(필요시 전문 상담기관 연계).
행복캠퍼스를 다니면 인생 재설계 및 생애전환 교육(정규 교육) 참여가 가능하다. 일·취미·교양·예술·사회공헌 등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반영한 인생 재설계 교육이 이뤄진다. 이 또한 학기제로 운영되고, 1학기 5개 이상 교육과정이 열려 1인당 2개 강좌까지 수강 신청할 수 있다. 모든 수업은 무료이며, 과정별 재료비 및 자격증발급비, 교재비 등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대부분 수업은 커리큘럼의 70% 이상 수료시 행복캠퍼스 센터장 명의 수료증을 발급하는데, 이후 사회공헌이나 일자리 참여, 동아리 등 사회적 활동으로의 연계도 꾀할 수 있다.
먼저 일자리에 관심 있는 중장년에게는 취·창업 프로그램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모티콘 작가, 스마트스토어 및 디지털 마케터 양성과정 등 교육을 통해 수익 창출 역량을 강화해볼 수 있다. 이케아, 한국야쿠르트, GS편의점 등 기업과 함께하는 취업설명회나 자기소개서쪾이력서 작성 특강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발굴 중이다. 만약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창업설명회나 관련 프로그램을 비롯해 공유사무실(인큐베이팅)을 통해 사무공간 및 컴퓨터, 프린터 등 각종 집기 사용이 가능하다.
커뮤니티나 사회공헌 활동이 목적인 이들을 위해 그에 따른 서비스도 마련됐다. 현재 운영 중인 동아리는 총 7개(행복캘리, 책사랑, 청춘서당, 채티, 보드라미, 행캠SNS, 하모니 등)로 교육 이수 후 인원을 구성하면 한 학기에 5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캠퍼스에서는 동아리 회원들이 당사자 중심의 사회공헌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성교육을 통해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중장년 스카우트’를 운영한다. 그밖에 원데이 힐링특강이나 동아리 체험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중장년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공간을 활용하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캠퍼스에서 얻은 활력, 갱년기 우울도 떨쳐내 -최혜정(56) 씨
“여자라면 누구나 갱년기를 겪죠. 저도 한 3년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보냈어요. 다시 활력을 찾고 싶었고, 나를 위한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했어요. 주변에 이런저런 기관들을 가봤지만 맞춤한 교육을 찾긴 어려웠죠. 마침 온라인을 통해 행복캠퍼스를 발견했어요. 브이로그, 스마트스토어, 드론 등 제가 원했던 분야의 교육을 강남대학교에서 들을 수 있다니 너무나 기뻤죠. 처음 캠퍼스에 왔을 때 우리 세대를 많이 배려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시설 면에서도 그렇고, 강사나 관리자분들도 중장년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저는 스스로 ‘도저너’(도전+er)라고 말하는데요. 이제 인생의 정오를 갓 넘긴 나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진정으로 내 삶을 사는 건 오십 이후라고 봐요. 많은 동년배가 저와 함께 이곳에서 멋지게 나를 위한 도전을 해나가며, 행복한 후반전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N잡러를 꿈꾸며 두 번째 스무 살을 보내다 -최병준(50) 씨
“아버지 병간호를 한 5년 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시길 ‘지금처럼 살다 은퇴하면 어떻게 되겠냐. 아버지처럼 남겨줄 게 없는 사람 되지 마라. 예전에 너 하고 싶어 했던 글도 쓰고 노래도 만들어봐라’ 하셨는데, 순간 확 깨달았어요. 그 후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다니며 블로그도 운영했죠. 꾸준히 하다 보니 책도 냈고, 북클럽을 운영하거나 강의할 기회도 생겼어요. 그러다 행복캠퍼스도 알게 됐죠. 교육 시스템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이 마음에 들더군요. 저는 아직 퇴직 전인데, 인생 2막 ‘N잡러’라는 꿈을 위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며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것들 말고 내면을 채워줄 무언가도 필요하잖아요. 그걸 캠퍼스 활동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느끼는 젊음, 활기, 즐거움으로 마치 ‘두 번째 스무 살’을 사는 것 같아요.”
캠퍼스의 활기 속, 젊은 세대와 교류도 활발
행복캠퍼스의 일부 수업은 강남대학교 강의실을 이용한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20대 학생들을 만나며, 캠퍼스의 활기를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생들 또한 행복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전공 관련 실습(사회복지학과, 실버산업학과, 평생교육학과 전공)을 통해 이곳 중장년과 교류한다. 지난봄 강남대학교 축제가 열리던 날, 행복캠퍼스에서도 세대통합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바로 ‘2356 세대통합 행캠 페스티벌’이다. 7개 동아리가 운영하는 체험 부스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중장년과 대학생은 너나 할 거 없이 나이를 잊은 채 함께 어울리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세대 어울림이 가능하다는 게 행복캠퍼스의 최대 장점일 테다. 김정근 센터장은 “세대통합 페스티벌 같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하고 실현해나갈 방침”이라며 “우리가 직면한 고령화 이슈는 단지 특정 세대만의 이슈가 아닌, 온 세대가 함께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때문에 다양한 세대가 만나는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세대단절을 해소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 행복캠퍼스 1학기는 막바지 단계다(6월까지). 방학 중에는 ‘동년배 특강’이 열린다. 9월부터 시작될 2학기 참여를 희망한다면 캠퍼스를 방문해 상담 신청을 권한다.
위치 경기도 용인시 강남로 40 강남대학교 심전2관 9~11층
경기 남부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가 문을 연 지도 3년이 지났다. 20년 넘게 행복한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김정근 센터장, 그가 그려나가는 행복캠퍼스에 대해 물어봤다.
Q. 중장년의 어떤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 캠퍼스를 운영하시나요?
A. 행복캠퍼스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 내에서 20대 학생들과 어울리며 연령 친화적 생애전환 교육, 동아리 및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는 점인데요. 나이가 들어도 위축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끔 독려하고 있습니다. 또 참여자들이 지역공동체 활동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사회적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과 존재감을 얻길 바랍니다. 아울러 중장년이 행복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자원을 모으는 중추적 전문기관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Q. 이곳에서 중장년과 대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나요?
A. 어찌 보면 부모와 자녀 세대죠. 아직 한국에서는 두 세대가 공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 드물고 낯선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어색함을 조금씩 해소해보려 합니다. 가령 중장년은 요즘 젊은이가 관심 있어 하는 스마트스토어나 SNS 활용 사진찍기 등을 배워나가고, 대학생들은 부모 세대가 갖는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고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을 공유해나갑니다. 특히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이러한 교류를 통해 중·노년층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관련 서비스와 제품을 기획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Q. 행복캠퍼스를 운영하며 더 강화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앞서 얘기한 세대교류를 더 강화할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해나갈 계획입니다.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아 발돋움 단계지만, 지역 내 비영리기업, 영리기업, 스타트업 등과 협력해 퇴직을 앞둔 중장년이 지역사회 재취업 및 사회공헌, 취미 활동 등을 이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노후 준비 리빙 랩(Living Lab)’ 역할을 수행하려 합니다.
Q. 캠퍼스를 찾는 중장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이곳에 오면 노후에 대해 막연히 갖던 고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해결해갈 수 있습니다. 개인 맞춤형 노후 준비는 물론, 공감대를 느낄 동년배를 만나는 즐거움도 얻게 되죠.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행복캠퍼스에 발을 내딛기까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나이 듦의 불안’을 ‘나이 듦의 기쁨’으로 변화시켜줄 첫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 한번 와보세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중장년이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고려할 때 ‘취미’는 큰 영향을 끼친다.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을 말한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을 즐기다 연계된 직업을 갖게 되면, 당신도 ‘덕업일치’(德業一致,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은 무료한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한 취미가 일로 발전한다면 취미를 즐기는 동시에 건강도 챙기고, 직업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다. 일석사조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취미를 발전시켜 일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덕업일치’와 함께 ‘하비프러너’(Hobbypreneur)가 언급된다. ‘취미’를 뜻하는 하비(Hobby)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러너(Preneur)의 합성어다. 취미를 발전시켜 창업하고 수익을 창출한 사람을 일컫는다. 디지털 시대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온라인 플랫폼 판매자 등이 많아지면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중장년이 직업으로 발전시킬 취미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봤다.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친자연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취미를 소개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직업 상담가는 “사실 취미를 일로 연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구직 시 취미는 플러스 알파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게 좋아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학교 급식실에 취업할 때 도움이 된다”면서 “중장년분들을 보면 평생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 마음 편히 노는 법을 모른다.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축복할 경우지만, 일을 할 목적으로 취미를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고 당부를 전했다.
사부작사부작 취미 살리기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으로 불린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세계 2위에 이른다. 전 세대에서 관심이 높지만, 중장년층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중장년 세대에게 커피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들은 다방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마셨고, 식후 입가심이 되어주는 믹스커피를 좋아했으며, 카페가 많아지고 난 현재는 원두커피를 즐기고 있다.
원두커피의 맛을 알게 되면서 중장년층을 포함한 전 세대는 커피 만드는 법에 관심을 두게 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서 홈 카페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자,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커피 만드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집에서 가까운 바리스타 교육기관 또는 학원을 찾아가면 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고용노동부에서 훈련비를 지원해주는 제도. 1인당 최대 5년간 300만~5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를 활용하면 무료로 교육받을 수도 있다.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민간형 자격증인 바리스타 자격증을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하다.
커피 만드는 법을 알면, 시니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 수입을 거둘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 일자리 가운데 민간형 사업의 주력 분야는 카페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 공급과 수요 모두 많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취업이 유리하다. 카페 창업도 가능하다. 내가 만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셈이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적 소양을 살려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개그맨 김현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제2의 삶을 사는 중이다. 워낙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 지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그는 이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그는 악보를 통째로 외워 지휘한다고 한다.
김현철과 같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중장년이 많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악기 연주를 배우고 아마추어 활동을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윤경은 유튜브 채널 ‘김윤경의 소소한 클래식’을 통해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아마추어들의 연주 활동을 지원한다. 김윤경의 사례 역시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은 취미를 살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소한 취미도 잘 살리면 소득이 생긴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시니어 작가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되기에 늦은 나이란 없기 때문이다. 중앙지와 지방지, 종교지 등 13개 신문의 ‘202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보면, 전체 당선자 96명 중 40대 이상이 38명이었다.(40대 12명, 50대 이상 26명)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는 68세의 노수옥 씨로 그는 ‘광남일보’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아니어도 온라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창구가 많이 형성돼 있다. 블로그 마케팅으로 수입을 거둘 수 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작가가 되고 책도 낼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글짓기 대회도 많은 상황이다. 본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역시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열어 시니어 작가를 응원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 살리기
나이가 들수록 초록초록한 풍경의 자연이 좋아진다. 자연을 느끼며 가벼운 산책이라도 운동을 하면 심신이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2017년 영국 요크대학교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녹지 공간이 노인의 정신적 웰빙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단순히 걷기부터 등산, 트레킹까지, 숲에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직업과 연결될 수 있다. 숲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알고 보면 무궁무진하다. 2018년 당시 김재현 산림청장은 ‘숲에서 일하는 100가지 방법’ 안내서를 내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취미 기반 직업은 ‘숲해설가’다. 자신이 좋아하는 숲을 거닐면서 소득도 벌 수 있다. 자연휴양림, 수목원, 도시 숲 등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설하고 체험 활동을 돕는 일을 한다. 산림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에서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평가를 거쳐 산림청장으로부터 자격을 부여받는다.
2020년 한국갤럽이 추적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등산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등산은 부동의 1위였다. 등산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등산을 가장 즐기는 세대는 중장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을 즐기는 중장년이라면 ‘산악전문지도사’를 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산악전문지도사는 산악 안전사고 예방 및 대응, 전문 등반(암·빙벽 등반) 안내, 안전한 산행 가이드 등 올바른 산행 문화를 선도하는 전문 인력을 말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서 민간 자격을 발급하며, 2019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숲과 관련된 직업이라고 해서 꼭 활동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목공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목공예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다. 목공예 제작 및 판매 업체,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할 수 있고, 개인 공방을 운영할 수도 있다.
◇걷기 취미 살려 걷기 강사 된 박미애 씨
“살기 위해 걷기 시작, 행복 전파하고파”
“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하루에 10㎞를 걸어요.”
일상에서 매일 하는 걷기는 취미를 넘어 직업이 될 수 있다. 걷기 전문가가 되면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 부산에 사는 걷기 강사 박미애(62) 씨는 이 사실을 몸소 입증한다.
박미애 씨는 한국걷기 그랜드슬램을 3회나 달성했다. 한국걷기 그랜드슬램 워커는 1년 내에 장거리 대회 4개, 총 521㎞를 완보한 자를 말한다. 박미애 씨는 “중학생 때부터 걷기는 내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걷기는 힐링’이라는 사실은 결혼 후에 깨달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요. 시어머니는 대장암, 시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셨어요. 매일 간호하며 사는 삶이 너무 팍팍했죠. 또 공부를 잘해서 외고에 3년 장학생으로 진학한 아들이 갑자기 일반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정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걸었습니다. 한참 걷고 나면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죠.”
본격적으로 걷기 전문가가 된 것은 2017년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에서 주최한 ‘해안누리길 종주 대회’에 참여, 8일간 160㎞ 종주에 성공했다. 걷기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서 박미애 씨는 ‘나도 잘 걷는 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모임 ‘청춘 도다리’ 강연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에서 강연하면서 박미애 씨는 걷기 강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걷기 지도사 자격증 1·2급도 취득했다. 민간 자격증으로, 2급은 16시간 교육을 통해 쉽게 취득할 수 있다. 경력이 있어야 자격이 되는 1급은 전문성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박미애 씨는 강사로 일하면서 걷기의 기쁨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그는 2020년 동서대학교 미래커리어대학 시니어운동처방학과에 진학했다.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박미애 학생은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걷기에 관심이 많고 실천하고 있는 시니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들 충분히 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강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인체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봐도 건강 문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걷기 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걷기 학교 설립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미애 씨는 걷기가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해준다며, “걷기가 나를 살리고, 우리 가족도 살렸다”고 표현했다.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동생에게 박미애 씨는 100㎞를 걷게 했다고. 걷기의 긍정적인 효과를 느낀 동생은 건강을 되찾은 현재도 매일 10㎞씩 걷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박미애 씨의 남편이 척수 손상으로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박미애 씨는 남편을 간호하면서도 매일 걸었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걷기’라는 취미가 불러온 긍정적인 나비 효과에 그는 오늘도 행복을 느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굉장히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걷기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나이 들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삶을 응원합니다!”
이왕 즐길 취미, 더 잘해야 할 것 같아 지레 포기하게 되는가?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생산적인 취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면? 색다른 취미가 호기심에 은근히 불을 댕겨도 ‘저건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지’ 하며 멀찍이 내려두게 되는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주저하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사진 각 사 제공
STEP 1 워밍업
심호흡 크게 하고,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편한 자세로 누워보자. 손에 책을 들지, 리모컨을 쥘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소중한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받을지도 모른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에, 도전할 용기가 저절로 솟구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풀어줄 수만 있다면.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Sink or Swim, 2019)
2년 차 백수인 중년 남성 베르트랑이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 남성들과 수중발레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베르트랑은 수중발레단 모집 광고를 보고 수영장을 방문했다가 연습에 열중하는 이들을 발견한다. 베르트랑과 예민 까칠한 로랑, 파산 직전의 사장 마퀴스, 히트곡이 전무한 로커 시몽이 한 팀을 결성해 남자 수중발레 세계선수권 대회에 도전장을 내민다.
스웨덴 싱크로나이즈드 남자팀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중년 남성들이 물속에서 첨벙대고, 엄한 코치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사우나에 갇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이 무모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한 해 앞서 동일한 소재로 ‘스위밍 위드 맨’(Swimming With Men, 2018)이라는 영화가 제작됐다.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겠다.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시청 가능.
KBS1 다큐ON ‘래퍼와 시인’(2023)
70대 노인 두 명이 래퍼와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1945년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이른바 해방둥이 세대인 77세 임원철 씨, 일흔이 가까워 한글 공부를 시작한 74세 조남예 씨의 도전기.
임원철 씨는 자식에 손주까지 키워낸 일흔의 나이가 되어서야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대학 입학으로 인생 처음으로 공부의 꿈을 펼치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는 한 번 더 용기를 내 ‘실력 있는 래퍼’가 되어보고자 도전한다.
조남예 씨 역시 평생의 소원이던 글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래퍼 마이노스, 시인 김승일이 멘토로 나섰다. 라임을 배운 뒤 그의 인생을 가사에 담은 곡 ‘해방둥이’를 비트에 맞춰 녹음하고, 20여 편의 시를 엮어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옛말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유튜브,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넷플릭스 ‘파티셰를 잡아라!’(Nailed it!, 2018~)
흉측한 케이크를 탄생시키는 미국의 베이킹 경연 프로그램이다. 엉망진창 능력의 아마추어 제빵사들은 도전 과제로 프로 제빵사의 케이크를 따라 만들어야 한다. ‘걸작’을 구워내면 상금 1만 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펼쳐지는 난장판. 망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실력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해냈다’(Nailed it)는 점이 중요하니까.
2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경쟁 프로그램 후보에 올랐고, 니콜 바이어는 최우수 진행자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큰 인기를 얻으며 프랑스, 독일, 멕시코 등 각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영화 ‘치어리딩 클럽’(Poms, 2019)
웰다잉을 위해 실버타운 ‘선 스프링스’로 입주한 마사.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친화력 좋은 이웃 셰릴의 등장으로 실버타운 역사상 처음으로 치어리딩 클럽을 결성하게 된다. 나이는 많아도 열정만은 청춘인 8명의 예비 치어리더들은 전국 치어리딩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지만, 방해물이 만만치 않다.
영국 BBC ‘100인의 여성’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Poms)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출연하는 중년 배우들 역시 실제로 치어리딩을 해본 적 없음에도, 훈련을 통해 모든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시청 가능.
STEP 2 자신감 만땅, 이제 뭘 도전해볼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가득한데, 무슨 취미가 있는지 몰라 브레이크가 걸렸다면? 흔한 취미는 싫거나, 남들은 취미를 어떻게 즐기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책을 참고해보기를 권한다.
책 ‘사계절 취미 잡화점, 호비클럽으로 오세요’
황지혜 작가는 ‘취미 수집가’다.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취미로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모은다. 혼자 도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비클럽’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한다. 화분에 씨앗을 심고, 막걸리를 만들어 나눠 마시거나, 필름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는 등 계절별로 멤버들을 모아 취미를 함께 즐기고 서로의 취향을 나눈다. 황 작가가 말하는 취미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잘하는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모든 것’이다. 도전해보고 싶은데 망설여질 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을 때, 잡화점처럼 온갖 취미를 모아둔 이 책을 펼쳐보자.
책 ‘오늘부터 그림’
‘대충 그럴싸하게 그린다’가 콘셉트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지 않고, 쉽고 즐겁게 그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제작된 책이다.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느끼거나, 그리기가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취미는 취미일 뿐, 전문가와 경쟁하거나, 생계 수단으로 삼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대작을 만들 것도 아니니까. 못생겨도 매력 있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 이 책과 함께 도전해보자.
[TIP] 마음먹은 취미, 여기서 시작하세요
1 오뉴 새로운 여가 활동을 찾고 삶을 새롭고 액티브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여가 플랫폼. 스마트폰에서 오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 중이다. 1층은 카페, 2층에선 여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별도의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으니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2 위드플 5670세대 시니어 전용 여행 플랫폼. 당일, 반나절, 숙박으로 이뤄진 여행 상품 ‘새로울지도’와 2~3시간 관심사를 향유할 수 있는 소그룹 커뮤니티 프로그램 ‘원데이클래스’가 있다. 위드플의 프로그램에는 테마가 있고, 여행의 경우 가이드가 아니라 실제 전문가가 함께한다. 숲해설 클래스의 경우 숲해설가가 남산 트레킹 코스를 함께 걸으며 숲 냄새를 맡아보고, 솔방울을 만져보게 하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숲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3 서울시50플러스재단 캠퍼스 및 센터 서울시에 거주하는 중장년을 위해 통합지원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이다. 캠퍼스는 서부·중부·남부·북부 4곳, 센터는 도심권·동작·영등포·노원·서대문·성북·금천·강서·서초·강동·양천·성동·강북 등 13곳이다. 캠퍼스와 센터마다 여가·취미·일·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울시50플러스포털 홈페이지의 ‘직업교육+’ 메뉴 중 ‘교육신청’을 선택하면 각 캠퍼스 및 센터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취미나 여가 관련 강좌와 신청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4 클래스101 온라인 강의 플랫폼으로, 개인의 능력을 거래하는 ‘거래마켓’의 대표주자. 다양한 취미 활동을 배우기에는 제격이다. 공예, 부업, 주식, 일러스트, 코딩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강의가 마련돼 있다. 또한 강의 프로그램별 맞춤 준비물이 모두 포함돼 있어, 뜨개질 강의를 신청하면 코바늘과 실을 받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상품에 가입해 4000개 이상의 온라인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는 1년 구독 서비스가 출시됐다.
“다들 은퇴 후 일상이 즐거운가요?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요즘은 너무 재미가 없네요. 하루가 한 달,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져요.” 한 온라인 은퇴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회원들은 “이젠 해외여행도 감흥이 없다”,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지겹다”며 동조하는 댓글을 남겼다. 막연히 긴 자유 시간이 역으로 족쇄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에 여가를 채울 여생의 자원, 취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도움말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은퇴 후에는 수면, 식사 등 생리적 필수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이 자유다. 이 기나긴 시간을 얼마나 유익하고 성취감 있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 직장 생활과 육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던 때는 퇴직 후 여유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다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놓여나면 당장은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며 미뤄왔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앞서 글을 남긴 은퇴자처럼 이 또한 지루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올 수 있다.
중장년을 위한 취미 공동체 및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는 “퇴직 후 지나치게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장년에겐 큰 도전일 수 있다. 처음 몇 년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신이 나지만, 이내 막막해지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라며 “직업과 일을 대신할 만한, 자기 정체성을 다시 잡아줄 지속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 즈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취미가 중요해지는 때”라고 말했다.
취미의 긍정적 효과, 즐기지 못한 이유는?
취미는 중·노년기의 다양한 영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먼저 휴식, 운동 등의 활동을 통해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체력과 활력을 증진할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교류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형성 기능을 얻고, 나아가 의미 있고 성취감 높은 활동으로 자아실현도 가능하다.
임효연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생산 시간 외 스스로 계획 가능한 시간이 확장된다. 이렇게 얻은 방대한 자유는 노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크게 신체적·정신적·사회(관계)적·환경적 영역에 작용한다. 이 시기 취미는 일상에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연결고리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취미를 통해 긍정적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신체적·정서적·사회적·환경적 조건이 따라야만 취미 생활도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취미나 여가 활동이 취약한 분들은 심신 건강이나 관계적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즉 개인의 여건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논문(‘노인의 여가 활동 욕구와 심리사회적 노화 인식’, 2016)을 통해 한국 노인들의 소극적인 여가 및 취미 활동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논문에는 노인들이 현재보다 더 유용하고 바람직한 여가 및 취미 활동 욕구를 지닌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들이 원한 것은 주로 스포츠 참여 등 건강 활동과 문화·예술 관람 활동 등이다. 대조적으로 ‘2020 노인실태조사’(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한국 노인의 여가 활동 절반은 산책, 바둑, 원예 등 휴식 및 교양 활동인 것으로 나타난다. 논문에서 노인들이 바란 영화 관람, 악기 연주, 운동 등 문화·예술·체육 활동은 10% 내외였다. 또 해당 조사에서는 노인들의 주된 활동 중 하나로 TV 시청을 꼽았는데, 대상자들은 1일 평균 4.2시간을 TV(또는 라디오) 앞에서 보냈다. 임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듯, 노년기 취미·여가 활동이 다소 소극적이고 단조롭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임 교수는 “가치의 문제로 본다. 현재 우리 중장년은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다. 이들의 젊은 시절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했다. 즉 노는 것이 죄악시되는 사회였다”며 “때문에 막상 은퇴 후 자유가 찾아와도 ‘놀아도 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잘 노는 법을 성취하지 못했기에 실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 여전히 경제 활동을 하거나 빈곤에 처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도 취미 생활이 녹록지 않다”고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승숙 대표는 “중장년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스스로 경제 활동에 그만 매달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그리고 경제 활동에 계속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구분하는 부유함의 척도는 개인 인식과 선택의 문제다” 라며 “취미가 중요해지는 건 전자의 경우다. 후자는 언젠가 해볼 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회 정도로 필요성을 느낄 수 있지만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텅 빈 시간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일이 멈춘 사람들(전자)에겐 필요성을 넘어 결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취미는 실존 문제, 노년기 정체성 부여해
취미가 중요한 만큼 어떤 취미를 갖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박 대표는 “취미는 의무도 아니고 트렌드도 아니다. 취미란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이 처한 실존 문제로,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찾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그가 기준으로 삼는 취미의 조건은 있다. 바로 ‘몇 살까지 할 수 있는가’, 즉 취미의 지속 가능성이다. 현재 박 대표는 70~80대를 넘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재미를 붙이고 능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취미를 보기보다는 오랜 기간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주고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취미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직업만큼이나 취미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누군가에겐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기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임효연 교수는 중장년기에 유익하고 바람직한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사회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 직업적 역할에 자신의 정체성을 몰두해 살아왔다면, 나이 들어 그 역할을 상실했을 때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직업에만 자신의 자아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밖에 자유 시간을 잘 계획하고 활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나이가 들어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며 “사회적으로도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는 기업 문화,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취미·여가 시설 및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임 교수 또한 중장년의 취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만한 기반은 마련됐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우려스러운 점은 중·노년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취미 또한 굉장히 다양해질 텐데, 그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느냐다. 나이대별로 과거에 경험하고 즐겼던 문화가 다른데, 이러한 욕구의 다양성을 얼마나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양적인 차원보다는 질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중장년의 취미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에 집 한 채 지어 텃밭 가꾸며 맑은 공기 마시는 삶 좋지.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이제 100살까지 산다는데 지역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나?” 지방 소멸이 코앞인 시대,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지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방은 가난하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가난하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0% 내외다. 100% 자력으로 살기 힘들다는 의미다. ‘빚도 능력’이라는 우스갯소리는 통하지 않는 오래된 비참한 현실이다.
국비와 지방비가 8:2로 굴러가는 지방 재정 수입 구조 속에서 가난을 타개하려면 국비 사업에 목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정부 국비 사업은 엄청 많다. 하지만 국비 사업만 따라다니다 보면 지방의 자치나 자율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릴 수 있다.
국비 사업이 나올 때마다 지방비 매칭이 필요한가 여부를 따지게 된다는 지방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돈 들어가는 사업이냐, 남의 돈으로 하는 사업이냐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사업에 접근하면 좋은 사업 결과가 나올까 싶다. 결국 악순환의 개미지옥에 빠질 게 분명하다.
아직은 가능성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타개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이 자력으로 노력해서 돈을 확보하면 된다. 지방세를 높인다든지 지방 출신으로 수도권에 가서 크게 성공한 출향민으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 어떤 지방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자. 기부금을 1년에 500만 원까지 보낼 수 있다. 여러 곳에 나눠 내도 무방한데 세액공제가 100% 되는 것은 10만 원이 최대 금액이다.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10만 원씩 50곳에 기부하면 기부자는 완전히 세액공제를 받아서 좋고 돈 받은 지자체는 기부받아서 좋다.(10만 원 초과 금액은 16.5%를 세액공제) 게다가 기부금의 30%는 고맙다며 답례품도 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1타 3피의 만만세 대작전이다. 바로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이 그것이다.
이 작은 희망이 거센 기부금 열기로 이어져, 국비에 목맬 필요 없이 완전히 자립하여 자기 지역만의 자금으로 자체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일본이 2008년부터 시행한(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금의 원형인) 고향납세 이야기다.
2021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고향납세 기부 건수와 금액은 4447만 건, 8302억 엔에 달한다. 일본 기부자들은 돈이 많고 지역을 너무도 사랑해서 이렇게 많은 기부가 이루어진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남의 지갑을 열기 힘들 듯이 돈이 오가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누가, 왜 내는가의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율은 119개국에서 88위 수준이다.1) 정치인에게든 시민단체에게든 북극곰을 살리기 위해서든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그 지방이 내 고향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먹고살기도 바쁘다.
답례품으로 기부자를 현혹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많은 고향납세 기부 플랫폼에서는 상위에 랭크되는 답례품 목록이 나온다. 멜론, 성게알, 털게 등이 늘 상위에 오른다. 지방 특산품을 싸게 구입하면서 좋은 일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색 답례품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지역에서는 ‘무료 보육을 실시하고 싶어요. 도서관에 가면 책도 보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도서관에 온 할머니들과 편하게 전통놀이도 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지역 전체에 무료 전기 셔틀버스도 운영하고 싶어요’라며 지역의 노력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 소식을 본 사람이 만약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일단 재미있고 좋은 일이니 기부를 해봐야겠다. 내 기부금이 잘 쓰이는지도 궁금하고, 혹시 내 아이를 키울 만한 곳인지도 모르니 가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보니 놀랍게도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돈이 잘 쓰이고 있고, 얼른 나도 이주해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지방에서 재미있고 신나게 살고 싶다. 바로 물품 답례가 아닌 정책 답례로 성공한 일본 가미시호로 지역의 이야기다.2)
이처럼 꼭 물품 답례가 아니더라도 정책 답례라는 방식이 가능하다. 정책 답례가 이루어지려면 지방도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정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좋게 평가할 수 있는 지방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리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도 성장하고 튼튼해질 수 있다. 바로 이게 기부의 선순환 효과다.
그러나 아직은 꾸준한 기부를 통해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그 좋은 의미가 현실로 나타나기 어렵다. 고향사랑e음 플랫폼이나 농협에서만 기부가 가능하지만, 민간 기부 플랫폼이 열리거나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든다면 기부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이제 4개월이 지났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즘 세대는 자기 고향이라는 개념보다는 할아버지 고향 정도의 개념만 있다고 한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내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다. 고향이 뭔지도 모르는데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반드시 사랑하지 않아도, 반드시 화려한 답례품을 받지 않아도, 참신하게 노력하는 지방을 찾아서 기부한다면, 그런 곳으로 내가 이주해 행복을 공유하는 기적 같은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1. 영국자선지원재단(CAF)의 2022년 세계기부지수 기준
2. 윤정구·조희정 역. 2021.‘시골의 진화: 고향납세의 기적, 가미시호로 이야기’, 서울: 더가능연구소.(黑井克行. 2019.‘ふるさと創生: 北海道 上士幌町の キセキ’. 木樂舍.)
퇴직 후 진로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보기도 하지만, 적성에 맞을지는 의문이다. 제2직업은 평생 일자리로의 도약을 위한 시작점과 같다. 더욱 신중하게 내게 알맞은 일을 찾는 것이 관건.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상상우리가 제안하는 자가진단 ‘커리어 인사이트 가이드 16’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중장년층 비중은 전체 인구 대비 40.3%를 차지하고 있다. 2030년엔 5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중장년 세대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인생 2막 설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또 그 일을 어떻게 준비해나가야 할지, 우왕좌왕 급한 마음에 섣부른 선택으로 실패를 거듭하거나 좌절을 겪기도 한다.
‘상상우리’는 우리 세대 중장년이 당면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중장년의 경험과 지혜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역량 강화 교육을 비롯해 취·창업 컨설팅, 온라인 취업 플랫폼 운영 등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상우리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청년층 못지않게 중장년층의 진로 탐색 및 설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물론 시중에 다양한 진로 진단 도구들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장년 세대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중장년의 경우 청년과 달리 개인마다 쌓아온 경력과 경험이 다르고,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이 달라 다채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상상우리는 이러한 특성과 성향을 반영한 새로운 진단 도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그들이 축적해온 노하우와 사례, 전문가들의 연구를 집약해 ‘커리어 인사이트 가이드 16’(Career Insight Guide 16, 이하 CIG 16)을 개발해냈다.
36개의 질문으로 진로 탐색부터 가이드까지
CIG 16은 중장년에게 특화된 진로 성향 진단 도구로,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객관적인 진로 파악이 가능하도록 고안됐다. 수많은 임상 통계 자료와 연구를 기반으로 신뢰도 높은 표준화된 자료를 마련해, 진로 탐색을 위한 빠르고 효과적인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MBTI처럼, 중장년이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4가지 요소(인생 가치, 행동 성향, 경제 조건, 활동 방식)를 기준으로 총 16개 유형에 따라 진로 성향을 분류한다. 진단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의 유형에 적합한 결과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다. 아울러 유형별 일자리 및 구직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역량과 교육, 실행 방법을 제안한다.
물론 4가지 기준 외에도 진로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고, 때로는 외부 환경이나 진단 당시 응답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결과는 상이할 수 있다. 상상우리 측은 “CIG 16 진단 결과로 진로 탐색에 한계를 두지 말고 진로 성향을 파악하는 기초 자료로 삼길 바란다. 나아가 전문 컨설턴트와의 후속 컨설팅으로 자신에게 맞는 진로 목표를 수립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료 제공 상상우리
퇴직 후 재취업 과정은 녹록지 않다. 경력이 무색할 만큼 퇴짜 맞은 이력서가 쌓여가고, 면접 기회는 좀처럼 잡기 힘들다. 그마저도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 일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뭐가 잘못된 걸까.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없다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단계다. 이에 재취업 상황별 전문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장년 구직자의 행태를 짚어보고, 그 해결점을 모색해보려 한다. ‘시니어 잡:담회(Job:談會)’ 그 두 번째 순서는 ‘이력서편’이다.
Episode_1 “OO 씨 몇 대손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이력서에는 지원 동기, 성장 과정, 장단점 등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항목이 있다. 이때 중장년들은 직무와 무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연대기식으로 늘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진행자 한 직장에 오래 다니거나 이직 경험이 없는 경우라면 지금의 온라인 이력서 형태가 생소할 수 있겠어요. 다들 어떤 점을 어려워하시나요?
권미경 커리어컨설팅 대표(이하 미경) 최근에는 이력서보다는 ‘입사 지원서’라 해서 자기소개서나 경력기술서 등을 포함해 서류를 마련해요. 아무래도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자기소개 부분을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황성철 상상우리 수석컨설턴트(이하 성철) 이력서는 크게 연대기형과 기능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유사 업종에 취직한다면 연대기형 이력서도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새로운 업종이나 직업에 도전하려면 기능형 이력서가 필요한데, 이때도 연대기형으로 작성한다는 거죠.
최성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성희) 연대기형 이력서를 작성할 때 주로 본인을 직책으로만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원부터 시작해 과장, 차장, 부장이 됐다는 식으로요. 직책을 쓰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핵심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걸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성철 성장 과정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지원 직무와 관련해 어떤 전문성을 키워왔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말 그대로 본인의 성장사를 적는 경우죠. 어느 가문의 몇 대손으로 태어나, 형제 관계가 어땠고, 초등학교 시절은 이렇고… 이력서에 이런 진부한 내용이 들어가면 채용 담당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어렵죠.
황영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영희) 또 어려워하시는 것 중 하나가 ‘지원 동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어요. 내가 이 회사에 지원한 동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먼저 지원하는 회사에 대한 정보와 내가 지원하는 직군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기업 홈페이지나 관련 뉴스 등을 살펴보면 좋죠.
성희 생각보다 중장년들이 직업이나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요. 워크넷 홈페이지의 직업 사전 페이지에서 검색하면 관련 정보를 쉽게 보실 수 있어요. 그런 내용을 이력서에 녹여내는 과정도 중요해요.
영희 채용 공고 분석도 해보면 좋아요. 지원하는 기업에 내가 희망하는 직무 외에도 다른 채용 공고는 어떤 것들이 올라와 있는지, 또는 내가 원하는 직군에 대해 다른 회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뽑는지 등을 분석하는 거죠. 그러면 덤으로 그 회사의 인력 구조나 상황, 업계 트렌드도 얻을 수 있어요.
성철 채용 공고에 있는 자격 조건이나 우대 항목도 꼼꼼히 살펴야 해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나 합격 전략도 살펴보면 좋고요. 최근 이슈인 챗GPT에 ‘OO 기업 채용 핵심 전략 알려달라’, ‘자기소개서를 써달라’ 이런 내용을 입력해봤는데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단,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란 뜻은 아니에요. 몇몇 단어나 문장을 참고하되 결국 자기 언어로 쓰셔야죠. 이력서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형식이나 양식에 대한 도움은 될 것 같아요.
진행자 자사 이력서 양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때론 자유 형식을 요구하기도 하잖아요. 청년들은 채용 플랫폼 서식을 활용하던데요. 중장년들은 어떤가요?
성희 저는 컨설팅할 때 채용 플랫폼에 등록된 서식은 쓰지 마시라고 해요. 퇴직한 분들 중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허수로 이력서를 넣는 경우가 많거든요.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플랫폼에 등록된 서식 그대로 보내는 건 ‘실업급여용이구나’라고 판단해 선호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가급적 별도 양식으로 작성해 메일로 보내시길 권해드려요.
영희 그래서 마스터 이력서를 하나 준비해두면 좋습니다. 마스터 이력서에 핵심 역량과 이력을 잘 정리해뒀다가, 지원 기업에 알맞은 쪽으로 수정, 보완하는 거죠. 같은 이력서를 여러 회사에 돌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경쟁력이 없어요. 그 회사와 직무만을 위한 포인트가 담겨 있어야하죠.
미경 맞아요. 같은 이력서를 회사 이름이나 직무만 바꿔 내는 분들이 있는데요. 기업명 같은 고유명사를 틀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죠. 그런 이력서는 바로 아웃이에요.
Episode_2 “MBTI 교육도 들어놨어요.이만하면 스펙 괜찮겠죠?”
이력서 공백을 채우려 직무와 무관한 자격증이나 이수 교육 등을 과하게 써넣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겸손해(?) 주요 성과나 핵심 역량을 축소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진행자 청년들의 경우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잖아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고요. 중장년들도 그런가요?
미경 아무래도 청년들보다는 경력이 있다 보니 더 쓸 게 많은 편이죠. 이때 어떤 역량을 넣을 것이냐가 중요해요. 모조리 다 넣는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전에 공공기관 이력서에 직무와 전혀 무관한 바텐더 자격증을 쓰신 분을 봤어요. 그런 식으로 불필요한 자격증이나 이력을 나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성희 맞아요. 일단 양적으로 승부하려는 분들도 있죠.
미경 특히 고학력 분들은 자신이 낸 논문 같은 것도 올리더군요. 직무와 동떨어진 내용인데도 말이죠. 바쁜 채용 담당자들이 굳이 그 긴 논문을 읽어볼까요? 아니라고 봐요.
성철 관점의 오류라고 생각해요. 회사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써야 하는데, 내 입장에서 어필하려는 것들을 쓰니까요.
영희 이런저런 자격증을 정말 많이 따신 분들도 있는데요. 10개든 20개든 다 써내지 마시라고 해요. 지원 분야에 꼭 필요한 5개 정도로 추려서 임팩트 있게 보여주는 게 좋죠.
미경 이력서 쓸 때 웬만하면 ‘MBTI 교육 이수’ 같은 것은 넣지 마시라 합니다. 요즘은 중장년을 위한 교육기관이 많고 프로그램도 다양하잖아요. 정말 안 받아본 교육 없이 다 들으러 다니는 분도 있더라고요.
영희 교육을 위한 교육을 받는 분도 상당하죠.
성철 교육 쇼핑이라고 하죠. 그리고 요즘 블로그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력서에 넣는 게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영희 대외 활동 이런 걸 쓰실 때도 가려 쓰시는 게 좋아요. 항상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작성하시면 좋겠어요.
진행자 혹시 이력을 과장해서 스펙 부풀리기를 한다거나 거짓 스펙을 적는 경우는 없나요?
미경 중장년은 과대포장은 잘 안 해요. 있는 그대로 쓰는데 그게 과했다면 모를까. 역으로 자신의 업무 성과 같은 걸 축소하시려 하더군요.
성희 아무래도 중장년들은 자신을 어필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시절과 문화를 살아오셨고요. 괜찮은 성과가 있어서 그걸 돋보이게 쓰시라 하면 ‘이건 내가 혼자 한 게 아닌데’라며 주저하세요. 보통 팀원들과 함께 이룬 성과에 대해 그러시죠. 그런 과한 겸손이 이력서 문장에서도 드러나곤 해요. 계속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라는) 전제가 붙고, 확신 없는 문장이 되고,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거든요.
영희 맞아요. 업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데도 그런 부분까지 축소하시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성철 한편으론 우려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성과는 이전 직장의 백그라운드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을까? 이력서에 적으면 내가 할 줄 알 거라고 기대해서 뽑으면 어쩌지? 그런 부담을 느끼는 거죠.
영희 이직이 잦았던 경우 이런 부분을 축소하는 분들은 있어요. 해외에서는 덜한데 한국 기업은 이직을 많이 한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성철 역으로 한 회사만 오래 다닌 분들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영희 실상 중소기업에 취직하거나 규모가 작은 곳에 가면 두루두루 일당백을 하는 사람을 원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직무에 적합한 이직을 하면서 자기 역량을 키운 사람이면 오히려 환영하는 것 같아요. 이직을 많이 한 게 마이너스라 느낀다면, 그 안에서 긍정적으로 어필할 부분을 잘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이직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는데, 단순히 팩트로만 나열하시면 호감도가 떨어질 수 있거든요.
Episode_3 “사진이 어려 보인다고요? 젊었을 때 찍은 건데요”
잘 작성한 이력서도 한 끗 차이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증명사진은 물론 이력서와 구직자의 매력을 함축하는 커버레터 작성, 첨부파일 형식 등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게 좋다.
진행자 같은 내용이라도 채용 직무에 맞는 자신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밖에 구직자들이 간과하는 이력서 작성 시 주의 사항이 있을까요?
성철 맞춤법 확인은 기본이고요. 과도하게 전문용어나 영어, 한자를 사용하는 것도 지양해야 해요. 또 요즘은 디지털 문해력이나 컴퓨터 활용 능력도 이력서 단계에서 묻는 경우가 많거든요. 흔히 상·중·하로 선택하게 돼 있는데, 창피하니까 ‘중’ 정도로 해두시더라고요. 면접에서는 드러나지 않아 채용에 성공했지만, 결국 실무에서 들통이 나 이틀 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봤어요.
미경 저는 항상 사진을 신경 쓰시라 말씀드려요. 간혹 증명사진인데도 남자분들은 화려한 나비넥타이를 했다든지, 여자분들은 민소매에 커다란 귀걸이를 했다든지 격식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찍은 분들이 있더라고요. 직무에 따라 좋게 보는 곳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좋은 인상을 얻기 힘들죠. 정말 스펙이 좋은데도 사진 때문에 반감을 사는 이력서도 많아요.
성철 젊은 시절 사진을 내는 분도 있어요.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는 사진 속 인물을 기대했는데 막상 그게 아니라면 당황스럽죠.
성희 저도 그런 고객이 계셔서 여쭤봤어요. 왜 자꾸 옛날 사진을 고수하시냐고요. 그랬더니 자신의 늙은 모습이 싫고 불편하시대요. 재취업 활동에서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도 필요한데, 아직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경 요즘은 사진관에서 옷도 대여해주고, 3만 원 정도면 하나 찍거든요. 오래된 증명사진을 갖고 계시다면 이참에 업데이트하셨으면 해요.
성철 그런 점에서 오래된 사진을 그대로 내민다는 건 성의가 결여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어요. 구직 활동을 할 때 최소한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인데, 그걸 안 했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아요.
성희 생각보다 비즈니스 매너를 잘 모르는 중장년이 많더군요. 보내는 사람 이름이나 이력서 파일명, 메일 제목 등을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경향도 있고요.
성철 맞아요. 메일 보내실 때 정중한 첫인사와 끝인사를 잘 쓰셔야 한다고 당부하죠. 이력서 커버레터도 상당히 중요하고요.
미경 메일로 보내지 않고 취업 플랫폼에 올릴 때는 헤드라인이 관건이에요. ‘제2의 인생을 여기서 시작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표현은 진부하죠.
성희 제가 느끼는 진부한 단어는 ‘성실’이에요. 성실이라는 요소는 어떻게 보면 기본 덕목과 같거든요. 성실이라는 단어 대신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게 더 도움이 돼요.
영희 이력서가 곧 ‘마케팅 레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막연히 ‘날 채용해주세요’라는 것보다는 제대로 준비하고, 그걸 담은 표현을 통해 나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내는 작업이죠.
성희 맞아요. 이력서를 이렇게 비유해보면 어떨까 해요. ‘나’라는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작성하는 것. 제품 사용설명서가 잘 쓰여 있어야 구매력이 올라가듯, 나를 잘 설명하는 글이라야 채택될 확률이 높아지죠.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나’를 잘 정리해보시길 바랍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2019년(27.7%)보다 6.4%p 높아졌다. 사회적 고립도는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았다. 19~29세의 사회적 고립도는 26.7%지만 60세 이상은 41.6%로 높아졌다. 독거노인 비율도 늘었다. 2000년 16%였던 독거노인 비율은 2022년 20.8%에 달했다.
5060 취미플랫폼 ‘오뉴’(ONEW)를 운영하는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우리나라 노인 외로움이 왜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하다 2020년 8월 로쉬코리아를 설립했다. ‘시니어는 소중하니까’의 줄임말 ‘시소’로 시작해 최근에는 ‘오뉴’로 플랫폼을 리뉴얼하고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공간을 열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이 모두 없어지는 날을 꿈꾼다는 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로쉬코리아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로쉬코리아(LOSH KOREA)는 ‘외로움이 여기서 멈춘다’(Loneliness stops here)는 의미에요. 왜 우리나라 시니어가 겪는 외로움과 고립이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세 명이 공동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긴 한데요. 이 경우에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약자여야 이용할 수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용하면서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세요. 왜 그럴까 살펴보니 이분들이 원하는 활동이 아닌 거예요. 활동을 통해 성장하거나 영감을 받지 못하는 거죠. 아무래도 복지 차원의 프로그램들은 예산이 정해져 있고 최대한 많은 분에게 혜택을 드리려다 보니 퀄리티를 높이기가 어렵더라고요. 몇 번 가보고 맞지 않으니 집에서 TV를 보거나 경로당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은퇴 전후인 것 같아요. 그때가 골든타임이라고 봐야 하는데요.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디서 활동해야 할지, 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이때 발견하지 못하면 그렇게 사회와 멀어지면서 노후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민간에서도 이런 부분을 누가 바꿔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로쉬코리아를 시작했습니다.
Q 처음에는 어떤 서비스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디지털 교육 서비스를 먼저 했어요. 그럼 스스로 정보를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삶이 변화가 안 되더라고요. 들여다보니 정보를 찾긴 하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는 거예요. 복지관은 70대 이상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문화센터나 살롱은 40대 타깃이 많고요. 동호회는 문턱이 너무 높은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주 즐겁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시소’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지역 근처에 어떤 문화, 여가 프로그램이 있는지 요즘 MZ들에게 보내는 것처럼 똑같이 안내해드렸어요. 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서 교류하실 수 있도록 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저희와 오프라인에서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실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서비스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한 번 더 확인하고자 마지막으로 생활도움서비스를 해봤어요.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집에서 필요한 어려움을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콘셉트였습니다. 병원 이동, 집안 수리 등 다양한 도움을 드렸는데요. 경제적·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어 했고,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집에 방문하면서 저희 서비스를 알려드렸거든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얼굴이 밝아지시고 삶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서비스를 업으로서 더욱 명확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은퇴 후에 복지관, 문화센터를 갔다가 좌절을 경험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하셨던 분이 있었어요.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일상에 활력을 찾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플루언서가 되어 저희를 통해 찾은 활력을 저희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의 팬이 되신 거죠. 그럴 때면 벅찬 기분을 느껴요.
Q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뉴’ 서비스까지 하게 되신 거군요. ‘오뉴’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오뉴’는 5060을 뜻하는 숫자 5, 6을 이어서 발음한다는 의미도 있고, 영어로 ‘Oh, New!’라는 뜻도 있어요.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여가 활동을 찾고 삶을 새롭게 액티브하게 보내시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으시면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개인에 맞춰 ‘큐레이션’을 하고 있어요. 관심 있는 분야에 연관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뜨도록 해 활동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푸쉬 알림을 통해서 여가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채널을 통해서는 다수의 5060분들에게 여가, 문화를 제안하는 콘텐츠들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매월 1만 2000명 정도의 시니어 분들과 만나고 있고요. 저희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5000명 정도 됩니다.
Q 복지관, 문화센터, 살롱 등 다른 문화 서비스들과 차별화된 ‘오뉴’만의 특징은 어떤 걸까요?
고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 제안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특히 첫 키워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을 제안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 고객이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취미를 찾는다고 생각해볼게요.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라면 음식, 운동, 병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중 운동을 검색해서 운동 중에서도 춤을 고르고 춤 중에서도 발레, 훌라댄스, 현대무용 등을 보다가 훌라 댄스를 선택해 취미로 즐겼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대부분 맞춤 서비스는 그다음 서비스로 춤에 관련된 것들을 제안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다시 첫 번째 건강 키워드로 돌아가요. 다음에는 건강한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안하거나 운동 중에서 춤이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식이죠.
맞춤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는 먼저 콘텐츠로 만들어서 이용하시는 분들의 반응을 살펴요. 관심이 많은 것은 기획해서 원데이 클래스로 먼저 해보고요. 거기서 반응이 좋은 것들은 정규 클래스로 편성합니다. 지금 이슈가 된다고 무작정 제안하기보다는 고객별 성향 등을 반영한 데이터들을 보고 제안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업계에서 유명한 선생님들도 모실 수 있었고요. 클래스 퀄리티도 높아지게 됐습니다. 기획을 탄탄하게 하면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고객들의 피드백을 단계적으로 반영해서 조금 더 뾰족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인데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추천 데이터도 더 많이 쌓일 것이고 ‘오뉴’만의 색깔이 확고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동안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셨는데요. 지난해부터는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시네요!
저희 서비스를 더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문화, 여가 프로그램은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은평구에 있을 때 점점 은평구에 사시는 고객분들의 비율이 줄더라고요. 성동구, 왕십리 등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여쭤보니 사는 지역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여러 지점을 다니며 문화생활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니고 싶다는 힌트를 주셨어요. 그래서 공간에 방문도 하고 주변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찾다 보니 삼청동으로 오게 됐어요.
‘오뉴하우스’는 삼청동에서 북촌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에 있는데요. 이곳이 5060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뉴하우스 1층에서는 유명 카페 바리스타가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요.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2층에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1층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갈 때 자연스럽게 수업하는 모습도 보고 회원들이 그린 그림 전시도 볼 수 있어요.
또 오뉴하우스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비정기적으로 빌려서 사용하는 공간이 있고요. 옆 건물은 지금은 1층만 사용하고 있는데요. 재봉틀, 미술처럼 도구가 필요한 클래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술품 전시를 열기도 해요. 나중에는 2, 3, 4층도 다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Q ‘오뉴하우스’ 공간을 만들 때는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고객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국에 유명한 ‘어니언’ 빵집을 간다면 아침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가신다는 거예요. ‘런던베이글’ 같은 곳은 갈 생각도 못 하고요. 그 공간이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머무르지는 못하시는 거예요. ‘스타벅스’는 가도 ‘블루보틀’은 부담스러운 거죠.
시니어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블루보틀’ 보다 커피도 맛있고, 다른 곳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도 있고, MZ들의 커뮤니티보다 훨씬 즐거운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오로지 시니어를 위한 공간인 거죠.
Q 1층 카페에는 여러 상품도 전시되어 있네요?
저희 수업 중에 조향 클래스가 있었는데요. OEM으로 만든 '오뉴' 제품이 있고요. 와인 클래스에서 다룬 와인을 전시하기도 하고요. 책도 두었습니다. 또 저희가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레코드와 재봉틀 클래스를 하거든요. 오뉴하우스를 찾는 분들이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실 수 있도록 가져와서 두었어요. 저희 공간에 있는 상품들은 이렇게 스토리가 담겨 있고요.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기업들과 협업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도 많이 하신다고요?
CJ에 건강식 브랜드 라인이 있는데요.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한 제품을 먹을 고객들이 포만감을 느낄지 궁금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랑 프로그램을 열어서 협업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용자분들이 식단 챌린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이 과정에서 피드백과 데이터를 모아 CJ에 넘기면 이런 내용을 반영해 제품을 만드시는 거죠.
예를 들어 제주도에 있는 호텔이 5060 고객을 타깃팅 하고 싶다고 하면, 저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예요. 그냥 이용료를 저렴하게 해드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숙박 플랫폼과 저희가 다를 게 없잖아요. 여행 가서 클래식 듣고, 트래킹 하고, 수업도 넣고, 호텔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요.
‘어딩’이라는 트래블 커머스 플랫폼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5060을 위한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최근 이렇게 기업과 고객을 연결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종종 생기고 있어요.
Q ‘오뉴’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5060 시니어 분들의 여가생활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취미를 잘 큐레이션 해드리는 것’이에요. 개인의 상황, 성향, 경제적 여력에 맞는 여가 콘텐츠를 정말 잘 제안해드리고 싶어요. 무료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밖에 없는 줄 아시지만, 삼청동에만 하더라도 퀄리티 좋은 무료 전시가 정말 많거든요. 이런 큐레이션을 잘 해드리면 여가 생활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저희의 업을 좀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가의 범위를 펼치는 거예요. 지금은 문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행도 있을 거고요.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소비가 결국 다 여가와 맞닿잖아요. 저는 미식도 여가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경험제를 연결할 수 있는 회사, 소상공인들과 함께 기획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안하고 싶어요.
아직은 저희 수업이 서울 지역에서만 열리는데요. 앞으로 지역도 넓힐 생각이고요.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수업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복합 문화 공간도 지역별로 하나씩 늘려갈 생각이에요. ‘오뉴하우스’에는 유명 카페 출신 바리스타, 프로그램 기획자, 디자이너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15명의 팀원이 진심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여러분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공간입니다. 1층 카페에 그냥 놀러 오셔도 좋고요.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두가 오뉴 프로그램에 대해 잘 설명해 줄 거예요.
자신의 업에서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으니까, 모든 시니어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라질 때까지 정말 우직하게 나아갈 거예요. 저희가 하는 일을 공감하고 응원하신다면 많은 분이 아이디어를 주시고 필요한 걸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울림을 주는 홍보 영상, 잘 정리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어언 30년 가까이 해보니 깨달은 점이다. 기존의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효과적인 방식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2019년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홍보학자입니다.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해왔어요. 누군가 제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현장’이라고 답할 겁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다. 주변국의 역사 왜곡 시도에 항의하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홍보 영상을 만들거나 독립운동 유적지에 비치할 안내서를 발간하고 한국어 간판을 제작해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서 교수는 일 년 중 여섯 달은 해외에 있을 정도로 출장이 잦다. 그는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여유 시간으로 반나절 정도는 꼭 마련해둔다고 한다.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해 방치돼 있거나,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안내 시설 등이 노화돼 찾기 힘든 유적지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 교수는 다니면 다닐수록 관리가 부족한 지역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적지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필요하다.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 현지에서도 해당 장소를 관리하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관리가 잘 된 유적지를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은 관광객들은 입소문을 내며, 그로 인해 점차 방문객이 늘어나는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 이러한 선순환이 많은 유적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시민들의 전반적인 역사 인식도 향상되는 결과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그가 다크 투어 분야에 뛰어든 것은 2019년. 여태 해오던 일을 확장시켜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뜻이 맞는 여행사를 찾은 그는 직접 다녔던 루트 그대로 여행 코스를 짰고, 다달이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참여하며 정성을 들였다. 지금까지 서 교수와 함께하는 여행사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 역시 실비만 받고 다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보학자, 현장에 직접 나서다
첫해의 성공으로 시즌2를 계획하던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삼키며 온라인으로만 활동해야 했던 서 교수는 지난 2월 말, 3년 만에 오프라인 다크 투어 프로그램 ‘항일운동 역사투어’를 진행했다. 삼일절을 기념하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라 목적지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로 결정했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주민만 스무 명이 넘고, 그 후손들은 일 년 내내 태극기를 걸어둔 채 생활해 ‘항일의 섬’, ‘태극기의 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함경도 북청군, 부산시 동래군과 더불어 국내 3대 항일운동 성지로 불리지만 인지도는 훨씬 낮다는 점이 아쉽던 차, 이번 기회에 소안도를 제대로 소개해보리라 마음먹은 것.
“이번에는 45인승 차 한 대를 빌렸어요. 이 차만 다 채워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일본 하시마 섬(군함도)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배우 송혜교 씨의 후원으로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다크 투어에 관심 갖는 분위기가 고조되던 2019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웬걸, 막상 신청을 받아보니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함께할 분들을 ‘선정’해야 했어요. 놀랄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안도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아온 것은 처음입니다.” 소안도에서 만난 지역 해설사의 한마디는 서 교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40여 명과 함께 소안도 외에도 국내 최대 강제노동 지역인 ‘옥매광산’, 안중근 의사 위패가 있는 ‘해동사’를 찾았다. 사람들은 설명을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성공적인 다크 투어의 필요조건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곳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어땠는지, 우리 조상들은 하필 이 지역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 교수는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 발발 당시의 현장 사진을 큰 종이에 출력해오기도 하고, 지역 해설가를 섭외하기도 한다. 좋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사전 준비가 탄탄해야 관광객들이 현장에서 더욱 감명받고, 그렇게 느낀 교훈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더해지는 서경덕 교수의 너스레는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 일정이 끝난 뒤 지역 대표 맛집에서 여행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시간을 꼭 가졌다. 아무리 의미와 교훈이 중요한 여행이라도, 여행만의 잔재미를 느낄 구간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행 전문가도 아니에요.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해야 잘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다크 투어를 통해서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은 입소문이죠. 그래야 좋은 후기들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를 찾고,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유적지를 지켜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안도를 함께 방문했던 분들도 ‘SNS 홍보단’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공유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앞으로 3년이 적기인 이유
서경덕 교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유적지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홍보 방식으로 다크 투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갈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오히려 K-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제 해외여행도 자유로워졌으니 그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2025년까지의 행보가 중요해요.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먹거리, 화려한 경복궁,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에는 사실 이런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고 유적지도 방문하게끔 하는 거죠. 당장 올해는 정전 70주년이자 한인 이민 120주년이에요. 그러니 한국전쟁과 연관 있는 배우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하거나, 유해 발굴 현장을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괜찮겠죠.”
공식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귀중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진행한 다크 투어 코스를 SNS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한국 문화 알림이로 유명세를 탄 서 교수의 개인 SNS 계정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크 투어는 굉장히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3040 부부가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으로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의 유적지를 짧게나마 다녀오는 일이 일상화됐으면 해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저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5월 11일(목)부터 15일(월)까지 5일간 개최되는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집행위원장 희유) 개막이 공식 선포됐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의 이번 주제는 ‘일상의 회복,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개막식은 지난 11일 오후 3시 충무로 대한극장 3관에서 개최됐다. 창작 음악 그룹 '모던가곡'의 축하공연,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최기찬 의원의 축사로 포문이 열렸다. 이어 이수연 서울시 복지기획관, 박노숙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협회장,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비롯한 다양한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스님은 개막식에 참석해 "일상의 회복, 과거와 현자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영화제가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용기와 위로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기주봉과 지주연의 환영 인사도 더해졌다.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영상 ‘The Flim is Rolling with Digital’을 감상하고 영화제의 지향점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트레일러는 이상인 감독의 작품으로, 젊은 세대의 배우와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 간의 소통을 비추면서 영화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트레일러와 더불어 전체 상영작을 살펴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EPK)이 상영됐다. 개막작인 질리스 맥키넌 감독의 '라스트 버스'를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고전 영화를 비롯한 국내외의 다양한 상영작 소개가 이어졌다.
이후 이번 영화제의 출품된 총 474편(국내 작품 320편, 해외 작품 154편)의 작품 중 본선 진출작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그래도 사랑해’의 김명희 감독, ‘까치의 육아일기’의 차경미 감독, ‘연인’의 허건 감독, ‘사라지는 것들’의 김창수 감독을 포함해 국내 출품작 중 본선에 진출한 노인 감독의 작품 1편, 청년 감독의 작품 15편이 서울시장상을 받았다.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희유스님은 “수많은 관객과 함께 여러 감독의 노력과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세대를 불문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희유스님의 발언을 끝으로 공식 개막이 선포됐다.
1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5일까지 5일간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가 5일간 열린다. 충무로 대한극장 및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을 통해 장편 작품 14편, 단편 작품 57편으로 구성된 총 7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국내외 단편 경쟁 부문의 11개 섹션을 포함해, 국내외 장편 초청, 기주봉 배우전, 배리어프리(barrier-free) 명예의 전당까지 다양한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는 무료로 상영되며, 상영 후에는 영화로 소통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