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생명은 현재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보험과 대출 등 업무 문서를 모두 전자문서로 전환하고, 전자증명서 및 전자위임장을 통해 모바일에서 서류를 주고받는 등 페이퍼리스 시스템을 도입해 디지털 보험회사로 탈바꿈했다. 현재 미래에셋생명의 대부분 업무는 고객이 직접 모바일에서 어플리케이션이나 웹 창구를 활용해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더불어 미래에셋생명은 챗봇이나 채팅 상담 등 디지털 상담 서비스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모바일 기반의 안정적 업무 환경을 갖춘 상황에서 페이퍼리스 시스템까지 구축되면서 고객의 편의도 대폭 개선됐다. 예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10일, 디지털 기반 언더라이팅(보험 가입 심사) 시스템 ‘Mi-choice 선심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방식으로, 보험 가입설계 단계에서 언더라이팅 결과를 제공해 고객들이 보다 간편하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기존 언더라이팅 시스템은 최종 심사 결과 확인까지 상당한 시간 소요가 불가피했지만 Mi-choice 선심사시스템 도입으로 FC(설계사)들은 고객의 사전 고지와 확인된 병력 정보로 고객의 보험 상품 가입 가능 여부를 청약 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심사결과에 따른 청약 보완 서류 발생 시 이를 자동출력하여 고객으로부터 서류 제출 등의 절차를 최소화해 고객 편의성을 제고했다. 이번 신규 시스템 도입으로 고객뿐만 아니라 FC의 사용 편의성도 극대화됐다. FC는 가입설계하는 보험 상품과 고객의 상황에 맞춰 생명보험사의 ‘선청약 후심사’ 방식과 손해보험사의 ‘선심사 후청약’ 방식 중 한 가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손해보험사 방식으로 심사가 지연될 경우 FC가 직접 청약서를 출력하고 심사방식을 생명보험사 방식으로 전환해 심사 시간 지연을 방지할 수 있다.
미래에셋생명의 디지털화는 업무 처리 방식뿐만 아니라 보험 상품에서도 볼 수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여름, M2E(Move to Earn) 서비스 앱 ‘가자고’의 개발사 이지테크핀과 업계 최초로 임베디드(Embedded) 보험이 결합된 보험 아이템을 출시했다. 임베디드 보험은 비보험사의 상품 또는 서비스 구매 시 보험사의 보험상품이 내장되어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M2E 서비스는 걷기 등의 운동을 하면 리워드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로, 블록체인 기반과 가상화폐 및 NFT(대체불가토큰) 등을 연계하며 최근 유저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서비스다. 앱 ‘가자고’ 역시 걷기와 등산 등 건강관리 활동량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 M2E 서비스로, 받은 보상은 모바일 쿠폰으로 전환하여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 미래에셋생명과 제휴로 모집된 앱 ‘가자고’ 속 걷기 챌린지 참여자들은 앱 내 보상과 함께 보험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매년 약 450개의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폐교를 활용해 지역 재생을 하는 '모두의 폐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문을 닫은 학교를 다른 시설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다.
문부과학성의 2022년 ‘폐교시설 등 활용 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폐교 전국 활용률은 80%에 이른다.
공립 폐교는 영어마을, 드론 조종사 양성 교습소, 스타트업 육성시설, 자동차 전시장, 양조장, 물류 센터, 고령자 주택, 숙박 시설, 글램핑장, 레스토랑, 목공실, 수족관, 체험형 농업 테마파크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도심에서는 사무실, 요양 시설, 대학 캠퍼스 등으로도 사용된다.
폐교가 새로운 시설로 활용될 수 있는 건 2010년부터 문부과학성이 ‘모두의 폐교’(みんなの廃校)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은 폐교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설 활용을 원하는 희망자와 폐교를 소유한 지방 자체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지자체의 귀중한 재산으로서 폐교가 지역 특성에 맞게 재활용됨으로써 지역 활성화나 산업 진흥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폐교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토지 용도 변경, 리모델링이나 증축에 필요한 서류 등 소통해야 하는 행정기관 창구를 일원화해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0.8명으로 우리나라도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폐교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도록 문부과학성에서 공유한 대표 폐교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1. 오와니 자연 마을 생햄 공방
(おおわに自然村 生ハム工房)
아오모리현 오와니초 오와니 제3초등학교는 생햄을 만드는 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오모리현에서 나는 원육을 생햄이나 비엔나 등으로 가공하는 공장이다. 이 학교는 목조 건물이어서 통기성이 좋아 생햄 제조에 적합했다고. 더불어 생햄을 만드는 과정 중 초기 작업을 체험하는 공방도 운영한다. 교무실은 냉장실로, 보건실은 작업실로, 각 교실은 햄 건조장으로, 현관은 훈연고로 리모델링 했다. 농업을 가공 산업 및 서비스업과 융합해 농촌에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을 6차 산업이라고 하는데, 이 사례는 지역의 원육을 사용하고, 햄으로 가공하면서 지역에 고용 창출까지 할 수 있는 6차 산업 사례로 꼽힌다.
2.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
(なめがたファーマーズヴィレッジ)
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야마토 제3초등학교는 체험형 농업 테마파크 ‘나메가타 파머스 빌리지’로 변모했다. 나메가타시의 특산물은 고구마다. 폐교가 된 야마토 초등학교에 고구마를 주제로 식품 가공 공장, 뮤지엄, 레스토랑, 카페를 설치했다. 학교 주변에는 숙박시설, 클럽하우스, 고구마 농장, 고구마 저장고 등을 지어 학교를 중심으로 농업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학교의 현판을 그대로 두어 학교라는 흔적을 보존했고, 학교를 둘러보면서 고구마에 얽힌 역사와 지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3. 드론 기술연구소
(サイトテック㈱本社・技術研究所)
야마나시현 미노부초 나카토미 중학교는 주식회사 사이트텍의 본사이자 기술연구소로 사용된다. 현재로써는 기술연구소로 드론의 시험비행 등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드론 개발, 제조, 검사, 연수 등 다양한 업무에 활용할 예정이다. 바람의 영향이 있어 학교 체육관과 같이 드론을 비행하면서 시험할 수 있는 대형 공간이 필수적이라고. 다만 학교였던 곳을 사업장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소방법 규제 등을 지자체가 조율해주며 폐교 활용에 도움을 줬다.
4. 나라현 카시하라 종합 청사
(奈良県橿原総合庁舎)
나라현 구이세이 고등학교는 나라현 카시하라의 종합 청사로 이용된다. 나라현 중부 지역의 행정 시설을 집약한 종합 청사다. 약 8개의 사무소가 모여있는 곳이다. 이를 통해 행정 서비스를 일원화할 수 있었으며, 행정시설 관리 경비 절감 등의 효과를 얻었다. 넓은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활용, 휴일이나 주말에는 민간에 개방해 야마토 미야마(大和三山) 산의 절경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5. 히카리 양식장
(ひかり養殖場)
시마네현 이즈모시 광중학교는 카와하기(カワハギ, 취치의 일종)를 기르는 육상 양식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바다에서 양식하는 것이 아니라 육상에서 새로운 어종을 키우는 방식으로 쇼와 개발공업소와 JR서일본 이노베이션즈가 새롭게 제안한 비즈니스다. 쇼와 개발 공업의 아라키 카츠유키(荒木克之) 사장은 광중학교 졸업생으로 폐교가 된 곳을 어떻게든 다시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키운 카와하기는 지역 음식점, 간토·간사이 지역으로 출하된다. 새로운 산업의 발전과 함께 고용창출, 민간사업자 등과의 교류를 기대하고 있다.
6. 글램핑장
(グランピング)
시즈오카현 시마다시 유니치초등학교는 글램핑장으로 거듭났다.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 등에서 이용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5종류의 21개 텐트 등을 설치했다. 교내에는 교실과 교장실 등을 리모델링해 샤워룸, 대욕장을 만들었다. 기존 체육관에서는 각종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다. 글램핑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시마다시의 지역 식재료 등을 이용하거나 주변 시설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교류인구 증가나 지역 이주로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학교 시설을 이용해 지역 주민 커뮤니티로 활용 등도 고려하고 있다.
가사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중년 여성에게는 명절증후군과 갱년기 증상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명절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갱년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여성 갱년기에 대한 궁금증을 김영선 경희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여성 갱년기는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 기능이 감소하면서 폐경과 관련된 신체적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를 말하며, 폐경 전기와 후기를 모두 포괄한다. 대개 1년간 생리가 없을 때 폐경으로 진단한다. 폐경은 주로 50세 전후에 발생한다. 갱년기는 평균 4~7년 정도다.
여성 갱년기 증상에는 안면홍조, 빈맥, 발한 등이 있다. 급성 여성 호르몬 결핍이 원인이다.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감퇴,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있을 때 증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
갱년기는 모두가 겪는 증상이라며 고통을 참는 경우가 많지만, 의료기관을 찾아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 행복한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다.
Q. 잘 알려진 증상 외에 갱년기에 나타나는 특이 증상에는 무엇이 있나요?
A. 갱년기 여성은 여성 호르몬, 즉 에스트로겐 감소로 지방 분해 능력이 떨어져 복부 비만이 2배 이상 증가합니다. 또한 비뇨생식기 위축으로 질 건조증과 가려움증, 성교통과 배뇨통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골 손실로 인한 골감소증 및 골다공증도 유발됩니다. 그 외에 두통, 성욕 감소 등 폐경증후군 증상이 특이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Q. 폐경은 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그리고 늦을수록 좋을까요?
폐경이라는 것은 난소 기능의 소실로 인해 월경이 영구적으로 중지되는 상태일 뿐, 노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폐경이 되는 나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며, 사회경제적 위치나 초경 연령, 이전 배란된 난포 수 등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50대가 되기 전 생리가 멈추는 것을 조기 폐경이라고 하는데, 폐경 이후 발생하는 여성 질환에 더욱 잘 노출될 수 있습니다. 폐경기는 너무 늦게 나타나도 좋지 않습니다. 늦은 폐경은 55세가 지나서까지 생리를 계속 하는 경우인데, 자궁 내 질환이 있어 환경이 좋지 않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리가 지연되거나 지속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로 인해 빈혈 및 피로감, 무기력, 신체 노화 등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늦은 폐경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Q. 갱년기 우울증 원인과 대처 방법, 극복 방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의 사회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했으나, 최근에는 연구 결과를 통해 신경생물학적 원인이 갱년기 우울증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폐경을 전후해 내분비계의 변화는 대뇌의 전두엽과 기저핵에 산재된 신경세포군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합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사람들과 여가 활동 및 친교 활동을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나 마음에 쌓이는 화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햇볕을 쬐면서 산책, 경보, 자전거, 스트레칭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해 여성 호르몬제를 많이 복용하는데, 의학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인가요?
A. 여성 호르몬 요법은 여러 가지 폐경 증상의 완화 및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안면홍조와 야간 식은땀, 비뇨 생식기계 위축과 관련된 증상을 줄이고, 감정적인 증상들(우울증, 불면증, 신경질, 주의산만)의 호전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욕 감소 증상이 호전되고, 골다공증 예방 및 치료에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의사와 상담한 후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치료와 마찬가지로 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여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치료를 하기 전에 일반적인 신체검사와 산부인과 검사를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작하면 됩니다.
Q.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또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A. 갱년기 호르몬 요법 중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 복합 요법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유방암 발생이 증가할 수 있으나, 에스트로겐 단독 요법은 사용 후 7년간 유방암의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다만 호르몬 요법은 허혈성 뇌졸중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60세 이상의 폐경 여성에게 호르몬 요법은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호르몬 요법은 폐경 후 일찍 시작할 것을 권장합니다.
Q. 갱년기 증상 예방에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칼슘과 비타민 D를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메가6 지방산의 일종인 감마리놀렌산 또한 혈액순환과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을 주어 갱년기로 인한 열감과 손발 저림, 발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두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뼈 형성을 촉진하고 골밀도를 증가시킵니다. 비타민 B군은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시켜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도 가능합니다. 마그네슘은 신경 이완 작용을 통해 기분 변화와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노주선 한국인성컨설팅 대표가 물었다. 중장년에게 은퇴 후 대인관계는 ‘너무 어려운 숙제더라’고 하니 돌아온 질문이다. 대인관계를 재정립하고 싶다는데 꿈 이야기라니.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은퇴 후 고립되지 않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만들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그의 말을 들어보자.
노주선 한국인성컨설팅 대표는 기업에서 리더십 교육, 채용 평가, 저성과자 교육, 심리 케어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만나는 수많은 중장년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에서 30년을 일하고 임원 자리에 올랐어도, 공공기관에서 고위 공무원 자리까지 올랐어도, 은퇴하는 순간 마음 둘 곳을 잃는다.
나이 50이면 절반 살았다
그를 만난 중장년들은 많은 것을 하소연한다.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는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말로만 듣던 꼰대가 나인가 싶다. 집이라고 다를까. 아내는 매일 모임 있다고 나가고 회사에만 있는 줄 알았던 MZ세대는 우리 집에도 있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도, 취미 생활 하려고 가입한 골프클럽에서도 재력 자랑, 자식 자랑이 가득하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점점 더 위축될 일만 생기는 것 같다. 한창때는 안 그랬는데, 사람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이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노 대표는 재취업 교육을 할 때 항상 ‘어릴 적 꿈’을 묻는다. 50대는 인생의 후반이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온 것일 뿐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애주기를 재정립해볼까요? 건강수명이 76세쯤 됩니다. 60세에 은퇴해도 16년은 활동을 더 해야 하죠. 30세 정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고,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은퇴 나이를 평균 내어 55세쯤 은퇴한다고 생각해봅시다. 25년을 활동했고, 앞으로 20년을 더 활동해야 합니다. 건강수명을 기준으로 한 거니 기대수명인 83세까지 생각하면 활동을 마치고도 여생이 더 남아 있어요. 자, 0세에 태어나 90세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그래프를 그려볼까요? 우리는 이제 인생의 절반을 왔을 뿐입니다.”
노 대표는 남은 20년을 설계할 때 어릴 적 꿈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지금 다니던 직장이 꿈이었던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대통령, 과학자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이제 와 대통령을 다시 꿈꾸자는 말이 아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노하우를 펼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 좋은 때라는 말이다.
50대라면 인생의 절반을 살았을 뿐이라는 관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또 있다. 은퇴 후의 삶은 이전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나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였든,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다 해야만 합니다. 동시에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리더의 역할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예요. ‘왜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시작될 수밖에요.”
“여러분의 삶을 존중하세요”
관계로부터의 고립은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시작된다. 노 대표는 자존감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짚었다. 은퇴 후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면 대인관계도 없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자존감을 잃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근본은 자기 존중감, 자존감에서 나옵니다. ‘나는 유능한데 왜 사회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지’라고 생각하면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맞나?’ 의심하게 되고, ‘그동안 해온 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우울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스스로 말해줘야 합니다.”
노 대표는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을 만든 에릭 에릭슨을 언급했다. 사람은 60세가 넘어 노년기에 들어서면 지혜와 자아 완성(Integrity)의 특성을 가져야 한단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고, 나의 가족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체력도 환경도 젊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노 대표는 ‘이전과 삶이 달라진다’는 걸 받아들이고 사회로부터의 인정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자존감을 채우는 게 너무 어렵다면 또래들을 만나보세요. ‘우리 왕년에 그랬지’라며 추억을 나누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젊은 세대에게 하면 꼰대가 되죠. 윗세대에게 말하면 ‘우린 풀 뜯어먹고 살았다’고 합니다.(웃음)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는 그 마음을 알아요.”
노 대표는 아예 중장년의 ‘라떼는 말이야’ 성토장을 열어준다. 그가 운영하는 서비스 중에는 무조건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로 글을 써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또래들이 ‘그때 저도 그쪽에서 일했는데, 우리 참 힘들었죠’라며 공감해준단다.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당당하면 관계도 잘 풀린다. 노 대표는 말한다. “Respect your life! 여러분의 삶을 존중하세요.”
대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그럼에도 대인관계를 맺는 일, 타인과 대화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노주선 대표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나이를 잊을 것. 둘째 맞춤형 접근을 할 것. 셋째 나의 쓰임을 살필 것.
“여러분은 이제 고등학생쯤 된 겁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활동할 거니까요. 그러니 나이를 잊어야 합니다. 만약 고등학생 과외를 하다가 초등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야겠죠? 과거에 내가 잘나갔더라도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경험을 어떻게 적용할지 나의 쓰임을 잘 살펴보세요.”
‘관계’라 함은 첫째 관계를 맺을 대상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셋째 관계를 통한 이익과 만족이 있어야 유지된다. 중장년은 주로 업무나 성과 중심의 관계 패턴을 많이 배워왔다. 사적인 관계가 많지 않고, 혼자 무언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다.
“80대 이상이면 일제강점기를, 70대 이상이면 6·25전쟁을 겪었어요. 행복, 즐거움, 만족 등의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예요. 칭찬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나오거든요. 게다가 남성성이 강조되는 가부장적 문화였죠. 우리나라를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끈 주역임에도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에게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비업무적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업무적 삶에서 비업무적 삶으로 중심이 이동한다. 그래서 비업무적 대화를 연습해야 한다. MZ세대와의 대화가 어려운 중장년이라면 더더욱 성과 중심적 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 대표는 ‘스몰 토킹’을 연습해보라 제안했다. 미국에 이민을 간다면 미국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MZ세대의 관심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하시면서 우리 중장년 말로 ‘아이스 브레이킹’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스몰 토킹이 그런 거예요. MZ세대의 관심사로 워밍업을 해보세요. 비업무적 대화는 이런 연습이 쌓여야 합니다. 만약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면 접점을 찾아보세요. 예를 들어 자녀가 아이돌에 푹 빠져 있는데, 나는 아이돌 노래가 너무 정신없어 듣기 힘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운동이나 게임처럼 함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보는 거죠. 관계의 재정립은 비업무적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중장년이 대인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관계의 편향’ 때문이다. 지나치게 업무적인 관계가 많다는 것. 따라서 동호회나 취미 활동으로 비업무적 관계를 늘려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다만 비업무적 관계를 목적으로 할 때는 성과 지향적 모임보다 취향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면 슬퍼질 수밖에. 노 대표는 ‘생각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면 얼마나 대우받았겠어요? 하지만 은퇴 후는 달라요. 20대 청년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면, 20대 청년과 같은 급여를 받지만 30년간 쌓은 노하우가 있으니 중장년은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이에요! 신혼부부가 빚을 내어 집을 마련했어요. ‘우리 이 빚을 언제 다 갚아?’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까요? ‘그래도 우리가 집을 마련했네’라고 생각하면 다르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예요.”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을 때, 가족 사이에서 겉도는 것 같을 때, 마음 나눌 친구가 없을 때 좌절하지 말고 나를 안아주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아왔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 “여러분이 얼마나 훌륭한지 아십니까? 지금부터 30분 동안 자신에게 칭찬해주세요. 리스펙트 유어 라이프를 꼭 기억하세요!”
중년은 왜 외로울까. 부와 명예를 쌓으며 인정받던 사회에서 물러나면서 오는 1차 충격. 그리고 위로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2차 충격이 있다.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된 가족마저 그들을 외면한다. 마음 둘 곳 없는 중년이 정신적인 고립에 빠져 있다. 극복 방법은 없는지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배드민턴 운동을 좋아합니다. 30대 때 운동을 시작해서 10년 정도 치다가 쉬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무릎이 안 좋아져서 힘들더라고요.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죠.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1962년생인 김찬호 교수는 최근 자신이 겪었던 배드민턴 일화를 얘기했다. 당시 그는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중년이 받아들이기 제일 어려운 일은 ‘상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중년의 정신적 위기는 바로 ‘상실’에서 시작된다.
돈만 벌다 보니 어느새 고립
김찬호 교수는 중년의 고립에는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고 봤다. 현재의 40~50대(1983~1964년생)는 어떤 성장의 시간을 보냈는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그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일에 몰두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단절됐다.
“IMF 이전에는 노동시장 바깥에서도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이웃끼리 친하게 지냈고, 친척과의 왕래도 잦았죠. 그러니까 퇴직하고 나서도 외롭지 않았어요. 그런데 IMF 이후에는 삶이 생존이 됐어요. 주부들도 일터에 나가야만 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력투구했죠.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기 어려워졌고요. 그나마 맺는 관계는 권력 관계나 이해관계였죠. 고립으로 가는 지름길이 만들어진 거예요.”
김 교수는 중년의 고립에 대해 “여유 없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산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오직 ‘돈 잘 버는 것’이 목표인 삶을 살았다.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노력해서 산 만큼 자녀 양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녀는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고, 명문대나 대기업 등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자녀가 대신 실현해주기를 바랐다.
“중년의 기러기 아빠(자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가 많은데, 그들을 단적인 예로 얘기해볼게요. 기러기 아빠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정서적인 통로가 다 막힌 상태에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일에만 몰두합니다. 자기 내면도 가꾸지 못한 채로요. 그러다가 돈 버는 것을 못 하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죠. 가족들은 이미 아버지를 돈 버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돈 잘 버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 실직, 퇴직, 사업 실패 등 일자리 상실은 큰 충격을 안겨준다. 이제 남은 건 좌절감과 패배 의식뿐이다. 그래서 창피한 마음에 중년은 고립되기를 자처하는데, 그런 존재를 가족들도 환영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10~20대 자녀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불편해한다. 사회적 고립이 가정 내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년에는 자기와 화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자기를 온전하게 수용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맞아들여요.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남한테 그 사랑을 요구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꼰대가 되고 권위주의자가 되는 거예요. 인정 결핍을 가진 굉장히 빈곤한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죠. 자녀한테 대접받고 싶으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자녀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하려고 하면 누가 좋아하나요? 다른 사람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신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
김찬호 교수는 저서 ‘대면 비대면 외면’에서 ‘고독’에 대해 흥미로운 표현을 했다. ‘고독’이라는 글자에 각각 ‘립’(立)을 붙이면, ‘고립’과 ‘독립’이 된다는 것. 사람들은 독립을 추구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고립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스스로 독립을 훈련할 수 있다면 타인과의 만남도 한결 충실해진다.
중년이 스스로 독립하고자 한다면, 김 교수는 마음의 공간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의 공간이 작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가 일어나고, 결국 고립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퇴직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상실감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조직에서 주어진 것을 시키는 대로 하는 삶을 살았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지 못했어요. 그런데 퇴직을 하면 온전히 스스로 하루 24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크게 나눠보면 건강, 일, 재정, 그다음에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네 가지를 하나하나 오랜 시간 동안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뭔지,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있어요. 인간관계가 부족해서 개선하면 거기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일을 하고, 그래서 건강도 회복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김찬호 교수는 “인생 점검이 끝나면 나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고립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자신의 스토리가 없거나, 또는 있어도 그 스토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라고 설명했다.
“저희 아버지가 올해 99세입니다. 요즘 아버지를 뵈러 일주일에 세 번은 가는데, 사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주에 한 번 갈까 말까였어요. 아버지가 60년 동안 같은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지겨웠거든요. 그러다가 최근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즐거워하신다면 기꺼이 들어드리기로 마음을 바꿨죠. 아버지는 분명 스토리가 있는 분이에요. 여기서 스토리란 잘 살아온 삶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스토리밖에 없다고 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아버지가 왕년에 잘나갔을 때 얘기보다 힘들었을 때 얘기를 해주시면 훨씬 더 와닿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그다음은 실전이다. 김찬호 교수는 자신의 취약함, 콤플렉스, 열등감 등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마주하라고 조언했다. 스토리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서 풍부해지기 때문. 김 교수는 모임 활동을 추천하면서, “익숙한 사람끼리 계속 모이는 것은 좋지 않다. 새로운 모임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워 자기 변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자신이 만들어지면 안 쓰던 마음의 근육을 쓰게 돼 단단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은 시간의 노예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에 매여 있지만 시간을 창조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면서 “다음 세대에는 좋은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달라지길 바란다. 저도 아버지와의 대화를 늘린 이유는 충만해진 제 마음이 퍼져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김찬호 교수. 현재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야 외롭지 않은 노년을 맞고, 행복한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중년을 넘어 노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동아리 단체 채팅방에 50명 정도 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요즘 부친상, 모친상 비보가 많이 올라오는데, 20년 후에는 본인상이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결국 마지막에는 한 사람이 남겠죠. 그 한 사람은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할까요? 디지털 세상에서 진짜 고립된 거죠. 이런 고립을 대비해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이번 추석은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적게는 6일, 길게는 12일까지 연휴를 보냈다. 이에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여유롭게 고향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았던 반면, 고물가 기조와 교통난 등을 고려해 집에서 휴식을 취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긴 연휴 동안 집에서 쉰다는 것은 가사노동을 주로 전담하는 시니어 여성들의 입장에서 할 일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차례상 준비뿐만 아니라 가족의 삼시세끼를 차리고 집 안 정리정돈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휴에 어깨를 평소보다 많이 사용해 통증이 느껴진다면 자신의 어깨 건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깨는 우리 몸의 관절 중 유일하게 360도 회전이 가능한 만큼 그 구조가 복잡하고 불안정하므로 사용량이 많아질 경우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표적인 어깨 질환으로는 ‘어깨충돌증후군’이 꼽힌다. 어깨충돌증후군은 어깨 관절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견봉뼈와 팔 위쪽 뼈인 상완골 사이가 좁아져 관절을 움직일 때마다 마찰이 발생해 염증과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가벼운 통증과 뻐근함 정도에 그치지만, 이후 점점 통증이 심해져 팔을 들어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운동 범위가 제한된다. 어깨를 특정 각도로 움직일 때 ‘툭’ 하며 소리가 나기도 한다.
신체 노화가 가속화되는 40~50대 시니어 여성을 중심으로 질환이 다발한다는 점도 어깨충돌증후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40~50대 여성 어깨충돌증후군 환자 수는 12만 3522명으로 전체 여성 환자(24만 7016명)의 절반이 넘는 51.1%에 달했다.
이러한 어깨충돌증후군을 방치하면 어깨 힘줄이 찢어지는 ‘회전근개파열’이나 어깨 힘줄 조직에 석회가 침착되는 ‘석회화건염’ 등 추가적인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유착성관절낭염’(오십견)까지 발전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추석 이후 어깨 통증이 나타났다면 어깨충돌증후군을 의심해 조속히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과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 한방 통합 치료를 통해 어깨충돌증후군을 치료한다. 먼저 추나요법으로 제자리를 벗어난 어깨 관절 주변 조직들의 위치를 바로잡고 특정 근육과 힘줄에 걸리는 부담을 줄인다. 이후 약침 치료로 염증을 해소해 통증을 줄이고 침 치료를 병행함으로써 근육과 인대의 긴장을 완화한다.
극심한 어깨 통증과 가동 제한이 동반되는 경우 응급 침술인 동작침법(MSAT)이 가장 효과적이다. 동작침법이란 환자의 주요 혈자리에 침을 놓은 상태에서 한의사의 지도 아래 능동·수동적으로 어깨를 움직여 치료하는 방법으로, 빠른 통증 경감과 어깨 가동 범위 회복에 효과적이다. 더불어 환자의 증상에 맞는 한약을 처방해 손상된 근육 및 인대 조직을 회복시키고 재발을 방지한다.
특히 어깨충돌증후군을 비롯한 어깨 질환에 대한 동작침법의 치료 유효성은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게재한 SCI(E)급 국제학술지 ‘탐구’(EXPLORE)에서 객관적인 연구 결과로 입증된 바 있다. 연구팀은 어깨 통증 환자 80명을 40명씩 동작침법군과 대조군으로 나누고 한방 통합 치료를 진행한 결과, 동작침법과 한방 통합 치료를 병행할 경우 한방 통합 치료를 단독으로 진행했을 때보다 어깨의 가동 범위와 통증 및 장애 개선 속도가 빠른 것으로 확인됐다.
어깨충돌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깨 사용량을 줄여 어깨 관절에 휴식 시간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온수 샤워나 따뜻한 수건으로 찜질하는 것도 긴장된 어깨 근육을 풀어주고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혀주는 데 효과적이다.
견고한 기계도 자주 쓰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 몸의 관절 건강에도 적용된다. 추석 연휴 중 가사노동량이 늘어 몸에 부담으로 쌓였다면 어깨 관절 건강도 악화될 위험이 크다. 어깨 부상은 식사를 하거나 씻을 때, 옷을 갈아입을 때 등 일상생활 전반에 불편을 준다. 따라서 조기에 병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경남 진주시는 예로부터 인재 배출이 잦았던 고장이다. ‘영남 인물의 절반이 진주에서 나왔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특히 충신이 많았다. 고려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구국의 화신이라 일컬을 만한 이들의 비범한 행장이 이 고장에 잇따랐다. 그래 ‘충절의 고장’이다. 오늘날 충의(忠義)의 얼로 빛나는 진주의 각별한 역사성을 웅변하는 명소를 꼽자면? 단연 진주성이 아이콘이다. 임진왜란 때의 전사(戰史)와 의용의 서사를 고이 간직한 진주성을 둘러보지 않고 진주를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진주성은 진주시내 강변에 있다. 성의 남벽 아래로 남강이 굽이쳐 수려한 풍광을 빚어낸다. 강물과 벼랑이 지닌 전략적 가치에 착안해 성을 구축했다. 본래 내성과 외성으로 짜인 이중구조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내성보다 규모가 컸던 외성은 스러지고 내성만 남았다. 성곽의 길이는 1790m, 높이는 5~8m에 달한다. 삼국시대 때 토성(土城)으로 축조됐던 진주성이 석성(石城)으로 거듭난 건 고려 말 우왕 때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몇 차례 고쳐 지었다. 따라서 축성의 변천사와 기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된다.
공북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선다. 널찍하고 훤칠한 성내 공간 곳곳마다 잘 단장돼 생경한 기분을 자아낸다. 천년 고성이되 마치 신축한 것처럼 매우 미끈한 게 아닌가. 근래의 복원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걸 알 만하다. 한때는 고즈넉한 폐허와 잔해 사이에 간신히 존재했겠지만 고칠 것 고치고, 다듬을 것 다듬고, 보탤 것 보태어 회생했다. 복원사업 이전의 성내엔 민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그걸 다 철거해야 했다. 그러니 대대적인 복원사업이 필연이었겠다. 작업자들은 진주성의 본연과 본질에 부합하는 복원을 완수하기 위해 실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성내의 지형은 리듬이 있다. 평지와 경사지, 야트막한 언덕과 구릉지,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며 거대한 타원을 그리는 성곽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었다. 너른 잔디밭과 다양한 수목들이 초록을 뿜어 소풍과 산책을 즐길 만한 공원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진주성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곳집이다. 일쑤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곳이다. 수성(守城)과 승전을 꾀하기 위한 갖가지 구조물이 즐비한 곳이다. 전투 지휘소로 쓰인 서장대와 북장대, 포를 쏘았던 포루, 전공을 새긴 사적비와 순절의 넋을 기리는 사당 등이 있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까지 성내에 있어 답사객들의 호감을 산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으로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새겼다. 당시 장수는 진주목사였던 김시민 장군. 1592년 10월 김시민은 전라도와 이어지는 전략 요충이었던 진주를 삼키기 위해 쳐들어온 2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쳤다. 김시민이 거느린 병력은 관군과 의병을 합쳐 3800여 명에 불과했다지. 중과부적 상황이었지만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김시민의 명민한 지략이 작동해서였다. 이를테면 그는 성 밖에 주둔한 의병들에게 왜군을 교란할 수 있는 교묘한 작전을 전개하게 했다. 성내의 부녀자들에게 남자 옷을 입혀 군사가 많아 보이게 했다. 야간엔 악공들의 피리 소리로 왜군의 심리를 교란시켰다.
지략뿐인가, 김시민은 개혁적 성향의 무장이라서 휘하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관행을 타파했으니 매사 솔선수범으로 군대의 사기를 북돋웠다. 신식 병기 동원에도 신경을 썼다. 이래저래 승전은 애당초 떼어놓은 당상 같은 것이었을지도. 하지만 김시민은 전투 막판에 왜군의 총탄을 맞고 순절했다. 그때 나이 38세였다. 그가 숨을 거두자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성내 백성들의 곡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던가. 비단 김시민을 애도하는 호곡뿐이었으랴. 대첩이 끝난 자리에선 죽은 자들을 끌어안은 산 자들의 오열이 터져 나왔으리라. ‘조선왕조실록’은 당시의 참혹한 정경을 적치여산(積置如山), 즉 ‘시체가 쌓인 모습이 산과 같다’고 기록했다.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사방 30리 안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해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진주성은 일종의 성지(聖地)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선인들의 역사가 선연한 게 아닌가. 전쟁에 따르게 마련인 지옥의 묵시록을 술회하는 성이라는 점에서는 반전(反戰) 메타포가 응축된 곳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전쟁이란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수시로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슬픈 숙명이지만.
다산 정약용이 극찬한 ‘진주검무’
진주성 남쪽 기슭, 성곽에 인접한 곳엔 촉석루(矗石樓)가 있다. 크고 당당하고 수려한 누각이다. 한때 국보로 지정됐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지정을 해제했다. 지금의 모습은 1960년의 보수작업을 통해 얻었다. 진주성 아래로 굽이치는 남강과, 저 멀리 산야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진주성 최고의 전망대다. 조선 선비들이 풍류와 사색을 즐겼던 영남 제일의 정자다. 전투 지휘소이기도 했다. 따라서 촉석루 역시 전쟁이라는 부조리극이 낳은 상처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촉석루 아래 강변에선 진주성대첩 즈음 한 여인이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 자결, 영원히 남을 충절의 화신이 됐다. 바로 논개다. 진주 관기(官妓)였던 그의 재능은 미색으로 향기를 뿜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음인가. 시대를 읽는 냉철한 눈까지 겸비했나? 그는 기꺼이 한 몸 바쳐 한 시대의 참화에 빛을 흩뿌렸다. 촉석루 아래 강변엔 논개가 왜장과 함께 투신한 바위 ‘의암’(義庵)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어느 날 촉석루에 유람을 왔다가 ‘일개 작은 여인이 왜적의 우두머리를 섬멸하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가?’로 시작되는 ‘진주의기사기’(晋州義妓祠記)를 썼다. 논개의 거룩한 행장을 기리는 글이다. 다산이 진주에 와서 탄복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진주에 전승돼 오늘날까지 맥이 이어지고 있는 ‘진주검무’를 보고 찬탄했던 것. 검무는 여성 무용수들이 무사 복장을 하고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이다. 촉석루에 앉아 이 춤을 감상한 다산은 참을 수 없는 흥에 겨웠나? 그는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 검무를 추는 미인에게 드림)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검무를 추는 여인의 매력적인 자태와 춤사위의 삼엄한 격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명편이다.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석학이었던 다산은 음악과 춤에도 조예가 깊었다. 음악과 악기를 연구해 ‘악서고존’(樂書孤存)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런 다산이 진주검무를 시로 써서 극찬했다.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초대 예능보유자는 ‘진주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인’ 고(故) 김수악이다. 김수악이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 목석도 들썩였단다. 춤으로 도가 튼 달인이었다. 진주검무의 맥은 오늘날 예능보유자 유영희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는 70대에 접어들었지만 예인다운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춤사위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고.
김길수 진주문화원장
“일제강점기 때 기생 단체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진주의 자연지리 가운데 빼어나기론 단연 남강이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굽이치는 남강의 폭은 넓고 물살은 유유해 아름답다. 예로부터 진주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온 생명의 젖줄이다. 진주의 보배에 해당하는 진주성이 남강가에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진주의 역사와 문화는 남강과 함께 흘러왔다. 그렇다면 진주의 문화답사 1번지는? 김길수 문화원장은 진주성과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를 꼽는다.
“진주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다. 그러나 진주성을 찬찬하게 답사하는 이는 드물어 아쉽다. 대체로 촉석루와 논개 유적인 의암만 훑어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진주성을 한 바퀴 도는 온전한 답사 방식을 채택하면 좋겠다. 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관람과 남강변에 조성된 성 밖 산책로를 통해서도 역사의 숨결을 음미할 수 있다.”
‘의기 논개’ 역시 진주의 대표 캐릭터다. 논개의 행장이 지역 정서에 미친 영향엔 어떤 게 있을까?
“일개 기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세계 역사상으로도 논개가 유일무이하다. 나라를 위하는 일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다는 걸 실천한 인물이 논개이자 논개 정신이다. 따라서 지역 정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3.1만세 운동 때 진주에선 기생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돼 국권 회복에 앞장섰다.”
‘진주검무’는 물론 가무악(歌舞樂)의 대가였던 고 김수악 선생의 예술은 현재 어떤 식으로 전수되고 있는지?
“김수악 선생이 양성한 제자들이 뒤를 잇고 있다. 진주에서 교방예술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는 셈이다. 우리 문화원은 선생의 제자들을 문화학교 강사로 영입해 강의를 맡기고 있다. 향후 ‘김수악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전통 민속이 흔히 현대의 풍속에 밀려 퇴색하고 있다. 반면 진주에선 ‘진주 소싸움’의 명맥이 이어져 흥미롭다.
“농업이 번성했던 과거부터 진주 사람들은 농한기에 소싸움을 즐겼다. 일설엔 진주가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이라 신라와 백제 편으로 나눠 소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도 있다. 한편 소싸움 무대로 적격인 남강 백사장이 있어 명맥 유지가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주요 문화원 사업을 소개해달라.
“외람된 얘기지만 진주문화원은 전국 문화원 중 으뜸이라 자부한다. 지역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식견과 애착을 토대로 인화단결을 꾀해온 결과라고 본다. 중점 사업은 진주의 ‘의로운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콘텐츠 개발이다. 지속적으로 순절 의병들을 발굴, 연구해왔다.”
타지의 문화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업을 추진한다지? 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순절 의병들을 찾아내고 조명하기 위해 의병 활동이 많았던 전라도의 여러 문화원들과 손잡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든 의병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문화원은 전국 각지의 문화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문화예술 교류사업을 하고 있다. 이건 앞으로 더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이제 전국 공공 도서관에서도 한의학 건강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자생의료재단(이사장 박병모)은 지난 4일 한국도서관협회(회장 곽승진)와 건강 강좌 운영 및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상호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5일 밝혔다.
이날 서울시 강남구 자생한방병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박병모 자생의료재단 이사장, 곽승진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을 비롯한 양 기관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전국 2만 2000여개 도서관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대국민 독서 운동, 도서관 보급 및 설립∙운영 지도 등을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비영리법인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한의학 건강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자생의료재단은 전국 21개 자생한방병원∙자생한의원과 연계해 건강 강좌가 필요한 각 지역의 도서관에 프로그램 및 의료진 등 인프라를 제공한다. 한국도서관협회는 강좌가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희망 도서관을 모집하는 등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자생의료재단은 한국도서관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근골격계 질환 예방 및 치료에도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박병모 자생의료재단 이사장은 “책을 모아두고 장소를 제공하던 도서관이 점차 건강, 재테크 등 정보를 얻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열리는 한의학 건강강좌를 통해 심신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자생의료재단은 노인종합복지관, 공무원∙기업 워크샵 등에 꾸준히 의료진을 파견해 목∙허리디스크, 퇴행성관절염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한의학 건강 관리법을 교육 중이다. 또한 발달이 취약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동척추건강지킴이’ 프로그램도 운영해 건강한 성장을 돕는데 일조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주거 대안으로 ‘공동체 주택’이 떠오르고 있다. 공동체 주택이란 독립된 공동체 공간(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한 주거 공간으로,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 간 소통‧교류를 하며 생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 활동을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말한다. 그간은 청년을 중심으로 공동체 주택이 증가·보급되어 왔는데,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는 고령자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정말 고령자 공동체 주택은 필요할까, 그리고 장단점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고자 서울시 내에 있는 어르신 공동체 주택 ‘해심당’을 직접 찾아가 봤다.
‘따로 또 같이’ 공동체 주택
서울시 도봉구 소재의 어르신 맞춤형 공동체 주택인 ‘해심당’(海心堂)은 바다와 같은 마음과 따뜻한 햇살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도봉구청, 사회단체가 협업해 만들었다. 기존 노후 주택을 신축해 재탄생된 곳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총 21세대가 살 수 있으며, 1층에는 장애인, 2·3층은 1인 가구, 4층은 부부 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배리어프리(무장애) 디자인이 도입됐다. 거주 공간뿐만 아니라 복도 등 공용 공간에도 손잡이를 설치했고, 단차를 최소화했다. LH 최초로 소규모주택 배리어프리(BF·무장애)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해심당의 입주 조건은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로 정해져 있다. 임대료 시세는 주변 시세의 45% 수준으로 보증금은 월 800만 원, 임대료는 월 40만 원 정도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저렴하다고 느껴지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앞서 말했듯이 4층을 제외하고는 해심당의 거주 공간은 1인 가구를 위해 설계됐다. 입주를 원해 방을 둘러 본 이들은 ‘집이 임대료 대비 좁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터줏대감인 이현민 자치회 총무 역시 “공간 자체가 작긴 하다. 입주 당시 물건을 많이 정리했고, 늘 정리해야만 한다. 반대로 장점도 되는 것 같다.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게 되고, 또 생활하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심당의 매력은 ‘공동체 주택’이라는 데 있다. 이에 따라 1층에는 카페 ‘향’이 있고, 2층부터 4층까지 각 층에는 입주민들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안마 의자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옥상의 ‘키친 가든’이다.
키친 가든은 해심당 설계에 참여한 이연숙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특히 신경 쓴 공간이다. 정원과 텃밭이 합쳐진 복합 공간으로 도시 농업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꽃, 식물뿐 아니라 채소, 허브 등을 심고, 입주민들은 직접 기른 작물을 수확해 먹는다.
특히 키친 가든 관리를 맡은 이현민 총무는 이곳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매일 정원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무엇이 심어져 있고, 열매는 언제 맺는지 다 알고 있다. 이현민 총무는 “교수님이 친환경을 목표로 만든 곳이라서 사용하는 비료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화학 비료를 막 뿌려서 나는 반대했다. 그래서 우리가 주민인데 왜 교수님 편을 드냐고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공용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보니 갈등도 종종 일어났다. 입주민들은 얘기를 나누며 의견을 조율했고, 본래의 목적대로 친환경 도시 정원 형성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기른 작물을 나눠 먹으면서 이웃 간의 정도 더욱 끈끈해졌다. 올여름에는 샐러드 파티도 열렸다. 이현민 총무는 “최근에도 호박이 나서 모두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요리를 못 하시는 분들은 안 가져가려고 해서 내가 감자를 사서 호박과 같이 전을 부쳤다. 그래서 모두에게 호박이 돌아갔다”라고 덧붙였다.
가족 아닌 가족, 노인 갈등 해결해야
해심당은 노인들이 이곳에서 공동체로 외롭지 않게 살며, 자립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계된 곳이다. 초반에는 일자리 제공도 했다. 실제로 이현민 총무는 입주와 동시에 일자리가 생겼다. 1층 카페 ‘향’에서 실버 바리스타로 일한다. 이 총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는 열정을 발휘했다고. “특별한 직업이 없었는데 해심당 입주 후 2년째 일하고 있다. 집에서 내려오면 바로 일할 수 있고, 주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취미, 운동 등을 함께 하는 커뮤니티 활동은 예상과 달리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LH의 공동체 활동 지원이 끊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해심당의 임대 관리를 맡은 김익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본부장은 “다른 서울시의 공동체 주택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 공통점이 있고, 유대관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만 65세 이상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면서 “작년에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총 16강짜리의 심리 치료 및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했다.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의 체력적 조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김익 본부장은 짚었다. 그는 “사실 건강한 분들이 계셔야 커뮤니티 활동도 가능하다고 본다. 해심당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다 같이 모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고, 곧 요양원에 가신다는 분도 계신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공동체 활동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어르신들이 크고 작은 다툼을 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현민 총무는 “정말 많이 싸웠고, 지금도 맞춰가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는 가족 아닌 가족 사이기 때문에 싫어도 매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익 본부장은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르신들이 사소한 것으로 많이 다투신다. 그런데 금방 화해하시기도 한다”면서 “싸우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김익 본부장은 이현민 총무가 공동체 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칭찬했다. 이현민 총무는 “참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남편이 부도를 두 번씩이나 맞아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저는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제가 어디를 가나 몇 명만 모이면 리더가 되는데, 그래서 여기서도 총무가 됐다. 총무라고 어떤 보수가 있는 것도 없는데,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이라 불이익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꼭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현민 총무는 공동체 주택에 장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그는 “다 같이 모여 사니까 외롭지 않은 게 제일 크다”라면서 “저도 누군가 도와줄 수 있고, 제가 어려움에 처하면 저를 도와주는 분들도 많다. 그럴 때 의지가 되고 보람도 많이 느낀다. 가족처럼 외식하러 나가서 맛있는 것 먹는 것도 좋고”라고 설명했다.
김익 본부장은 “우리 회사에서는 나중에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이곳을 관리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고독사 예방 등, 노인에게 공동체 주거 공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간 운영 기관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심당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이현민 총무도 앞으로 노인 공동체 주택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주식계의 개그맨’ 박민수(50) 씨는 순수한 광기를 지닌 유쾌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 땅의 아버지다. 쌍둥이 아들을 위해 은퇴도 미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절실하게 하는 중이다.
여의도 증권 유관기관 24년 차 직장인이자 주식투자 1타 강사. 샌드타이거샤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구독자 225만 명을 자랑하는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인지도까지 쌓아 올린 사나이. 박민수 씨와 마주하기 전에는 능력 있는 직장인의 흔한 성공 스토리로 보였다. 주식투자에 성공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린 뒤 실타래 풀리듯 각종 섭외 대상이 되는, 우리네에겐 무척 어렵지만 그 동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50대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평소에 저는 굉장히 침착해요.”
차분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의외였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이라고 여겼던 영역마다 박민수 씨의 의도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서, 쓸모를 찾아서
직장인은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박민수 씨도 그렇다. ‘쓸모’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그에게 나이 들어 쓸모없어질 수 있다는 건 실체적 불안 그 이상이었다. “쉰 살이 되기 6~7년 전부터 회사에서의 내 쓸모가 줄어들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회사 밖에서의 쓸모가 비자발적으로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요. 쉽게 말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언젠가 생길 일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릴까’ 생각하면 엄청나게 절실해지는 거죠. 굶기면 안 되잖아요?”
박민수 씨는 고3처럼 살아가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식투자 뉴스를 정리해서 네이버 카페에 올리고, 직장으로 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업무를 본다. 운동 삼아 가급적 목동 집까지 1시간 30여 분 걸어서 퇴근하고,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쓰기 등 자기계발을 한다. 라디오나 유튜브 촬영이 있을 때면 꼬박 며칠을 준비에 매달리기도 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루틴에 변함은 없다. “절실함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가족이 있잖아요. 책임감인지 의무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에너지를 올려줘요.”
40대 초반까지 그는 쓸모를 회사 안에서만 찾았다. 밤샘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술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회식 자리는 꼭 참석했다. 그렇게 ‘에이스’라 불리며 승진이 동기보다 2년 이상 빨랐지만, 몸은 정직했다.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2018년에 협심증으로 쓰러졌어요. 그때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큰일 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당시 쌍둥이가 초등학생이었어요. 중환자실에 누워서 본 두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내가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야 할 게 있더라고요.”
박민수 씨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른여섯에 “넌 뭘 잘하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불현듯 ‘주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후 점심도 굶어가며 주식 공부에 매달려 7년 만에 종잣돈 3000만 원을 8억 원으로 불렸다. 그 노하우를 아이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물려받을 텐데, 아직 어리잖아요. 쓸데없는 짓 해서 다 까먹을까 봐 걱정되는 거죠. 아빠만의 투자 방법과 원칙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루에 3시간 자면서 3주 동안 쓰니 책 한 권 분량이 됐어요.”
2018년 9월 출간돼 현재까지 10만 부 이상 팔린 ‘주식 공부 5일 완성’은 이렇게 완성됐다. “인쇄소 가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했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내용이 좋으니까 책을 내보라’고요. 그래서 진짜 투고를 해봤어요.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임프린트(한 출판사에 속한 별도의 하위 브랜드)에 원고가 흘러갔나 봐요. 마침 대표가 증권사 경험이 있는 분이라 가치를 알아봤고 출간이 이뤄졌어요.”
책은 2020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형 재테크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그 계기는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됐다. “제가 먼저 출연 요청을 했습니다. 답변은 2개월 후에 받았어요. 촬영 후 업로드까지 다시 2개월이 걸렸고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 소위 말해 빵 터졌죠. 인생 역전이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 재테크 유튜브 채널 ‘김작가TV’ 출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문의했고, 정중히 고사하자 재차 어필해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 6개월 사이 책 7만여 권이 팔렸다.
최고민수, 침착맨을 만나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의외의 보상을 줬다. ‘침착맨’ 이말년 작가와의 인연이다. 박민수 씨는 2021년 초 MBC 웹예능 전문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기획 시리즈 ‘말년을 행복하게’에 일일 주식투자 강사로 출연하며 ‘침착맨’과 안면을 텄다. ‘최고민수’라는 애칭도 그때 생겼다. ‘주식계 박찬호’라는 설명이 붙을 만큼 지치지 않는 열강에 ‘침착맨’이 “최고네요, 선생님. 닉네임도 바꾸세요, 최고민수”라고 하면서다.
인연은 ‘침착맨’ 채널까지 이어졌다. 7번 정도 출연했고, 그중 한 콘텐츠는 100만 뷰가 넘었다. “본인 채널에 와서 주식 강의를 1~2시간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수를 했어요. 주식 강사로 섭외된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거예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등등 걷잡을 수 없이 말이 새버렸어요. 6시간 방송을 했는데 정작 주식 강의는 20~30분에 불과했죠. 집에 가면서 무지 걱정했어요.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신선하게 봐주셨어요.”
콘텐츠에 대한 열의와 쉬지 않는 입은 이제 박민수 씨의 캐릭터가 됐다. 경제사 특강, 주식 종목 고르는 10단계 특강, 주식 ETF 투자법 7단계 특강 등 평균 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방송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10시간 42분짜리 일본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는 그 정수로 꼽힌다. 박민수 씨는 한시도 말을 쉬지 않았고, 구독자는 그 모습을 오롯이 즐겼다. 영상은 90만 뷰를 기록 중이다.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로 인지도가 굉장히 올라갔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 가는 사람이에요. 말했잖아요, 저는 ‘쓸모’가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출연 전 일주일 정도 준비에 매달려요. 기타큐슈 여행도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실은 항일 투어로 계획한 거라 일본 역사까지 속속들이 공부했죠. 내 밥값을 다하기 위해, 내 쓸모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앞으로 3년, 은퇴 후는 내 마음대로
박민수 씨는 3년 뒤 은퇴를 꿈꾸고 있다. 그때가 되면 가장의 부담을 다소 내려놓아도 괜찮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3년 뒤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생각이에요. 아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면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은 월급이 소중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은퇴하면 2년 정도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다른 일을 할 텐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 준비를 잘 해야죠.”
앞으로 3년, 그는 망가질 준비가 돼 있다. 내성적이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는 개인 성향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예 스스로를 ‘주식계 개그맨’으로 포지셔닝할 정도다. “다들 그래요. 얼굴 내놓고는 못 하겠다고요. 그런데 가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절실하면 부끄러운 거 없습니다. 일단 하는 거예요. 은퇴를 꿈꾼다면 더욱더요.”
은퇴 후 박민수 씨는 ‘침착맨’ 같은 삶을 꿈꾼다. 예능 PD를 꿈꾸며 방송국 최종 면접까지 본 경험이 있는 그다. 제2의 인생은 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나날로 채워지길 바라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최고민수의 중2병’. 박민수 씨는 3년 뒤 유쾌한 방황을 예고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여행 유튜버예요. 지난해 빠니보틀(구독자 190만 명의 여행 유튜버)님도 만났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그때는 진짜 내 맘대로 막 삐뚤어져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