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책을 읽다가 체코의 속담에 마주쳐 한방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 속담은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였습니다. 이렇게 속담의 추궁을 받다 보니 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속담이라기보다 하나의 잠언, 격언으로 보이는 말을 음미하면서, 한 해의 마무리와 지난여름의 일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영화가 있었지만, 지난여름에 나는 무슨 일을 했던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르는데, 남들이 오히려 더 아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활동하는 계절, 뜨거운 감정 소비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어느덧 다 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가을도 배웅하고, 모든 것이 침잠하고 스스로 감추어 웅크리는 차가운 계절을 맞았습니다. 갈수록 가을은 짧아지고, 봄도 오는 듯 바로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이제 여름과 겨울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서 배운 계몽편(啓蒙篇)은 계절의 의미를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봄이 되면 만물이 처음 생겨나고 여름에는 만물이 성장하고 자라나며 가을에는 만물이 성숙하고 겨울에는 만물이 감추어진다. 그런즉 만물이 생겨나서 자라나며 거두어지고 감추어지는 것이 사시의 공이 아닌 것이 없다.”[春則萬物始生 夏則萬物長養 秋則萬物成熟??冬則萬物閉藏? 然則萬物之所以生長收藏 無非四時之功也]
사계절의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장수장(生長收藏)입니다. 이 겨울을 맞아서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닫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저장할까.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장시 ‘황무지’에서 ‘여름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Summer surprised us)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지/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길러주었어’(Winter kept us warm,/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라고 합니다.
겨울은 그러니까 모든 게 죽는 계절이 아니라 되살리기 위해서 따뜻하게 묻어두고 그 생명을 잘 기르기 위해 감추는 시기입니다. 동양의 사유나 철학에서는 자연의 운행질서는 조물주의 신공(神功)이며 우리 인간은 그 질서를 거스르지 말고 잘 순응하고 조화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겨울이 지나지 않고 봄이 오랴?”라는 게 있습니다. 세상일에는 일정한 순서와 법칙이 있는 법입니다.
겨울은 달력으로 입동부터 입춘 전까지, 천문학적으로는 동지부터 춘분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맹동(孟冬) 중동(仲冬) 계동(季冬)의 삼동세한(三冬歲寒)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보내야만 그 이듬해의 삶을 충실하게 꾸려갈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이 폐쇄되면 내부의 세계가 넓어진다. 겨울은 내면의 계절이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또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라는 글에서 “겨울은 ‘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절망 속에 희망을 잉태한 거대한 역설의 구근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엇의 시를 연상시키는 문장입니다.
청마 유치환도 ‘나는 고독하지 않다’라는 글에 “온갖 생물을 시들리고, 움츠려뜨리기 마련인 것으로만 알고 있는 그 서글프고 가혹한 추동(秋冬)이라는 계절이 실상은 온갖 생물의 생명들이 다시 움트고 소생함에는 없지 못할,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나는 겨울을 ‘벗과 책의 계절’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옛 선비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난로회(煖爐會)라는 모임을 즐겼습니다. 벗들을 불러 모아 화로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난로회 또는 철립위(鐵笠圍)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관서 땅은 시월에 눈이 한 자 넘게 쌓이면/겹겹의 휘장에 푹신한 담요 깔아 손님을 잡아두고/삿갓 모양 솥뚜껑에 노루고기를 구워/가지 꺾어 냉면에다 파란 배추김치 먹는다네.” 흥겹고 정겨운 술자리의 모습이 약여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에는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잣나무와 소나무가 더디 시드는 걸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는 논어의 말이 씌어 있습니다. 추사는 중국 연경에서 경세문편(經世文編)을 구해 유배지에 가져다준 제자 이상적에게 이런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림에 ‘오래 서로 잊지 말자’는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을 찍었습니다. 빈궁하고 어려워지면 벗과 우정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도연명의 ‘의고(擬古)’라는 시에는 의복이 언제나 남루하고, 한 달에 아홉 끼니를 먹을 만큼 가난하고, 10년을 관(冠) 하나로 지내지만 언제나 얼굴빛이 좋은 동방의 선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을 보려고 새벽에 강나루를 건너가니 거문고를 끌어당겨 나를 위해 연주를 합니다. 도연명의 시는 “바라건대 그대 곁에 머무르면서 지금부터 한겨울을 지냈으면”[願留就君住 從今至歲寒]으로 끝납니다. 맑은 인격의 만남이 참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독서를 하기 좋은 때인 삼여(三餘)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과 밤, 일을 못 하는 비 오는 날을 말합니다. 농사만을 짓고 살던 시대에 만들어진 말이지만 오늘날의 생활에 맞게 개념을 확대해 적용하면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어느 책을 읽어야 좋은가. 독서에도 그에 맞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보다 아름다운 수필’을 쓴 사람으로 평가받는 중국 청(淸)초의 무명 문인 장조(張潮·1650~1703?)는 “경서(經書)를 읽는 데는 겨울이 알맞고, 역사서를 읽는 데는 여름이 알맞고, 제자백가서를 읽는 데는 가을이 알맞고, 여러 사람의 문집을 읽는 데는 봄이 알맞다”고 했습니다.
계절별로 다 이유가 있지만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와 같은 경서는 방 안에 앉아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겨울에 읽어야 좋다는 뜻입니다. 여름에 역사서를 읽는 것은 낮이 길기 때문인데, 지금도 여름 휴가철에 대하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벗과 사귀고 어울리며 속으로는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음으로써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1년을 맞는 힘을 갈무리하고 비축하고자 합니다. 2015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지만, 제야와 송년처럼 가는 것과 보내는 것의 아쉬움만 생각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체코의 속담을 바꾸어 말하면 “여름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겨울에 무엇을 했느냐고”라는 질문과 추궁 앞에 의연하게 마주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1569~1618)은 수많은 조선조 인물 가운데 여러 모로 특이한 사람입니다. 고리타분한 유교질서에 염증을 냈던 허균은 어머니 상중에도 기생을 끼고 놀아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에는 ‘천지간의 괴물’이라고 기록된 인물입니다.
그가 광해군 3년(1611)에 귀양지인 전북 함열에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도문대작(屠門大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8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음식 안내서입니다. 귀양살이를 하다 보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종류별로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가며 한번 맛보는 것처럼 한다는 게 집필 동기였습니다.
허균이 참 가엾습니다. 처형 직전에 “잠깐 할 말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무시당한 채 처참하게 죽은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음식을 먹고 갔을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처형장에서 지은 절명시(絶命詩)에는 “황천길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잘까?”[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이 왜 먹는 생각을 할까? 음식이란 몸을 살찌우거나 생존을 이어주는 영양소만이 아니며 정신의 허기를 달래고 불안을 덜어주는 그 무엇입니다. 생존의지에 관한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음식은 마시고[飮] 먹는[食]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저작(詛嚼)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심신을 기르고, 세상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과 정을 다지고, 그 시대와 사회를 섭취합니다.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 예기(禮記)가 갈파한 대로 음식과 남녀의 정, 쉽게 말해 먹는 것과 섹스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원초적 본능을 다스려 사회질서와 양속(良俗)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제도와 절차를 만들고 규제와 금지 장치를 마련해왔습니다.
음식은 예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숟가락 젓가락 포크는 어떻게 쥐고 어른 앞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운 뒤 식사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밥상머리교육은 인간의 품성을 결정하는 원초적 교육기제입니다.
쌀을 뜻하는 글자 ‘米’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됩니다. 옛 어른들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88번이나 농부의 손길이 가야 하는 걸 알라며 이 글자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예절은 먹는 방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 자체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먹을 게 귀하고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밥풀을 남기면 꾸중을 들었고, 맛있는 것만 먹거나 같은 반찬을 두 번 떠가는 것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댄 주래프스키 교수(미 스탠퍼드대·언어학)의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에 의하면 고급한 식사일수록 에티켓을 따집니다. 요리의 이름이 길수록, 식재료의 출처를 거론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음식 값이 비싸집니다.
음식은 정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요? “음식 끝에 의 상한다”는 말,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에서는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심과,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통인 가난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술꾼 3형제는 명절에 모이면 소주를 궤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면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웁니다. 어차피 가실 분인데, 병상에 누워 “한 잔만, 한 잔만” 하는데도 끝내 술을 드리지 않았던 불효를 그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또는 주부는, 또는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정으로 다듬고 무치고 사랑 양념을 넣어 음식을 만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었던 반찬이나 요리가 맛이 없어지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음식은 소통입니다. 왕조시대에 기근이 들고 흉년이 심하면 왕은 부덕의 소치라고 자성하며 하늘에 빌면서 반찬 가짓수를 줄였습니다. 이른바 감선(減膳)의 소통정치라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 자기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손님 접대랍시고 내놓은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는 달리 해석하면 서로 다른 음식을 통한 소통의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배려입니다. 우리는 요리를 잔뜩 빚어 내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전에 중국인들은 “이미 익힌 걸 날것으로 되돌릴 수 없지요”[熟不還生]라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고(장 지글러 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절반은 먹거나 더 먹거나 또 먹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기아의 진실, 과식과 체증의 진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0~1052)은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강 위를 오가는 사람들/농어 맛을 즐길 줄만 아는데/그대들 보시게나 작은 배 하나/풍파 속에 출렁거리는 것을.”[江上往來人 但愛?魚美 君看一葉舟 出沒風波裏] 농어만 즐기지 말고 농어를 잡는 이들의 고생도 알라는 뜻입니다.
굶주리는 이들도 많고, ‘혼밥’이나 불기 없는 1회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족과 따뜻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고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사람, 함께 먹자고 남에게 권할 만한 메뉴나 음식점에 무지하거나 무신경한 사람,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남을 위해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는 사람의 삶은 끝내 불행합니다. 구차하고 용렬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어느 책에서 “여성이 매일같이 요리를 하는 것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일상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TV화면을 점령하다시피 한 먹방, 쿡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입니다.
요리는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먹을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생명을 살게 합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지만 음식은 삶입니다. 그리고 살림입니다. 이 경우의 살림은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나 세간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움직이는 것, 푸른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촉촉한 것, 선한 것, 맛있는 것입니다. 일용(日用)하고 장복(長服)하는 음식을 통해 삶과 살림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 늘 즐거움과 행복이 되기 바랍니다.
글 이상용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 콧구멍에 봄바람이 들랑날랑하거든 감사하라.
어제 죽은 재벌은 오늘 아침 라면도 못먹는다. 돈도 없고 끈도 없고 힘도 없으면 걸어서 종합병원에 가 보라. 걷기만 해도 감사하다. 밥상에 반찬이 없다고 투덜대지 마라. 국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라.
서울역의 노숙자를 보라. 모든 걸 포기해도 희망만은 꽉 잡고 있어라!
새로운 명함에 ‘나는 나’ 어떤가
명함에 새길 직업과 직함이 없다고 실망 마라. 직함이 없고 이름만 있는 명함이 무서운 거다. 자기 분야에 실력 있고 경쟁력 있는 전문가들을 보라. 이름에 전화번호만 적어 놓은 사람들이 많다. 이젠 새로운 명함에 뭐라고 쓸까? ‘자유인’, ‘출발!’ ,‘나는 나다!’ 이러면 어떨까?
이제부터 어떤 명함을 갖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내 명함은 오래전부터 그냥 ‘뽀빠이 이상용’이다. 이걸로 이상 무다.
요즘 아내한테 두들겨 맞는 남편이 늘어난다는데, 안 맞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집에만 있으니 맞지. 일찍 나가서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하고, 숨쉬기 운동도 해서 살아 있음을 증거하라. 팔팔 살아 있음을 온 세상에 보여라.
나는 원래 TV에 나올 만한 인물이 못 된다.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키 작지, 까맣지, 못생겼지, 나이 많지…. 잘 하는 건 남들보다 말 잘하고 조금 건강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걸 살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내 나이에도 늘 바쁘다. 나는 새벽마다 책 한 권씩 매일 읽는다. 5km씩 꼭꼭 걷는다. 자신을 갖고 나이를 잊는다.
사람은 증명사진보다 X-레이가 더 잘 나와야 한다. 알간? 마지막에 살아 있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다.
여러분, 파이팅! 벌떡 일어나라!
난 평생 신용카드가 없다. 현찰이다. 나에게 카드는 돈이 아니라 그냥 플라스틱일 뿐이다. 컴퓨터의 마우스에는 손도 안 대봤다. 하기 싫다. 책이 좋다.
여러분, 파이팅! 벌떡 일어나라!
돈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느니 병원 주위를 빙빙 돌고 뛰어라.
돈이 많으면 돌아버린다. 돈이 많다 = 돈多(다). 돈, 돈 하다가 진짜 돈(豚), 돼지가 되는 수도 있지.
이제 양 눈에서 손을 떼고 뒤로 한 발짝씩 물러서라. 세상이 넓고 크게 보일 것이다. 손과 발과 목을 털털 털며 힘을 빼고 걸으면서 그간 쌓인 노폐물을 빠져나가게 하시라.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기죽지 말고 폼을 잡아라! 그간 평생을 여자 위에서 일해오지 않았나? 계속 그렇게 밑에 기죽어 있으면 몇 년 뒤엔 남자가 애를 갖게 될까 겁난다. 벌떡 일어나 남자의 기본을 찾아라.
여러분! 어제 세상 떠난 사람 많습니다. 지금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며 희망을 가집시다.
뽀빠이가 책을 많이 읽는 이유
나는 내가 부족한 걸 안다. 부족한 걸 채우기 위해 밥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새벽 3시부터 책을 읽는다. 무슨 책이랄 것도 없다. 무조건 다 읽는다.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내는 이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 책은 나름대로 소중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전 처음 내는 책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묻어나기에 나는 소중히 읽고 가리지 않는다. 주로 읽는 것은 유명 인물들의 에피소드, 무심코 던진 말들이다. 겉만 보고 무조건 사는 책은 함석헌이나 이어령이 쓴 작품, 그리고 탈무드, 이솝우화다.
나의 말을 키워 준 책은 이다. 깨알 같은 작은 글씨이지만 깨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두 번을 읽었다. 그 깊은 뜻을 캐어 현대, 젊은이, 여성, 유머라는 잎을 달아서 나의 입맛에 맞게 키운다. 그렇게 열린 과일은 영양분이 듬뿍하다.
그래서 내 말엔 깊이도 있고 칡뿌리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정신병원에 불이 나서 환자들이 튀어나왔다. 속에서 어땠느냐고 물으니 “뜨거워 미칠 뻔했어요.” 두 번 미치는 거다.
환경미화원이여, 낙엽과 쓰레기를 사랑하라. 그게 없으면 넌 바로 해고다. 쓸어낼 게 있음에 감사하라.
세상에 죄가 없으면 안 된다. 하느님이 백수가 된다. 왜? 용서할 것도 없고 심판할 것도 없으니. 죄 없으면 교회도, 성당도, 절에도 안 간다. 그러면 중도, 목사도, 신부도 단체로 돌아가신다.
나에게 레퍼토리는 바로 ‘밥퍼토리’다. 쌀을 아끼듯 나는 레퍼토리를 아낀다. 새로 생긴 소재는 아끼고 보듬어서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삼킨다. 남에게 이야기해 주어 즐거워하면 된다.
요즘은 81세가 회갑이다
나는 일흔이 넘었다. 그런데 왜 이리 70이 넘어도 노력할까? 그 이유는 모자란 게 너무 많아서다. 지지 않으려고 그런다. 요즘은 81세가 회갑이다. 나보다 키 크고 잘생기고 쌍꺼풀 지고 돈 많았던 사람들이 어제까지 세상 뜬 사람 많다. 난 밥은 걸러도 독서는 삼시 세끼 다 챙긴다.
여러분, 양식이나 회나 뷔페나 퍼지게 먹고 설사하느니 라면 먹고 굵게 싸는 게 낫지요.
기도하라, 구하라. 부 하 산 용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부처님 하느님 산신령님 용왕님, 단체로 도와주소서!!
‘앗사리하다’ 는 표현을 들어보거나 한적 있는 분들이 간혹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앗사리하다’ 는 표현의 의미를 오남용하거나 그 말이 일본말인지 모르고 하는 분들이 대다수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앗사리하다’는 ‘앗사리‘에 ’하다‘라는 우리말이 붙어져 형용사처럼 쓰이고 있다. 사전에서는 앗사리(あっさり를 1. 깨끗이, 간단히, 시원스레, 선선히. 2. 산뜻하게, 담박하게, 개운하게“ 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싸움을 벌이고 그 결과에 따라 깨끗이 승복하고 이긴 자의 처분에 맡긴다면 이는 앗사리 한 것이다. 반대로 승복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거나 뒷말이 많으면 앗사리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나는 일본을 이해하고 일본인을 표현함에 있어서 이 ‘앗사리‘는 참으로 적당한 단어라고 해석하신 이어령 선생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일본의 강은 우리나라와 달리 물살이 급하게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는 섬나라 유형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일본인이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이 ‘앗사리‘하게 승복하고 이긴 자의 뜻에 자신을 적응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막부를 통해 군림해 오는 동안에 작은 반란 사건이 몇 개 있었고 그 중에 일본 시대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히데요시를 따르던 무리들이 막부의 도륙 작전에 저항하면서 싸운 기록들이 있지만 그리 흔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근세에 홋가이도 점령 시 원주민을 대학살 한 것은 별로 화제로 삼지도 않는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을 침략하여 병합한 것은 19세기 20세기의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만이 아니라 많은 서구 열강들이 후진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은 예들이 많으므로 유독 ‘일본만 나쁘다’라고 하는 외국세력들 중에서도 한국이 매우 불편하다. 예를 들면 대만은 똑 같이 일본에 점령 당해 고통을 겪었지만 한국처럼 일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한국이 ‘앗사리’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일본 우익들의 망언과 역사인식 후퇴는 여기에서 연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는 인구의 1% 전후로 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일본에서 1년 이상 살았어도 요란한 교회 건물이나 시끄러운 찬송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불교도 많은 것 같지만 우리가 아는 불교와는 또 다르다. 흔히들 신도라고 한다. 종교의 발달사로 볼 때 우리민족이 고대 시대에나 가지고 있던 다신교가 오늘날 일본인들이 믿고 있는 종교일 뿐이다. 절에 가서도 기도하고, 마을 큰 느티나무에서도 기도하고 그저 아무데 가서도 기도하고 미꾸지를 꽂으면 되는 매우 편리한 종교이다.
신도에서는 따라서 내세가 없고, 당연히 원죄론도 존재하기 어렵다. 그저 현재 내가 잘되도록, 시험에 합격하도록 기도하고 만족하면 그 뿐이다. 흔히들 독일과 일본의 2차대전 이후 비교를 인용하지만 내세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 후진적인 일본 종교에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전혀 중요한 의식상태가 아니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그만큼 후진적인 종교 ( 샤머니즘)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본인들의 정신 속에는 자신들에게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에게는 ‘앗사리하게’ 굴복하지만, 미국 덕에 주권을 회복한 한국에 대해서는 그러할 이유도 없고 ‘센고 우마레( 전후 출생세대)인 자신들이 현재의 한국인에게 크게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내 조상 모시는 야스꾸니에 내가 가서 절하던 말든 시비 걸지 말라는 샤머니즘 적 사고가 진하게 들어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한국에 대해, 일본이 혐오스러운 한국, 즉 혐한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적어도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여질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나 불교적인 사상이나 유교 사상을 신봉하는 어느 나라도 일본인의 과거반성 무시 태도를 용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일본의 일부 진보세대만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다.
따라서 필자는 양국간의 역사인식 문제는 양국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 풀어나가야 할 장기적인 숙제로 생각하며 단기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에 침략당하고 36년동안 주권을 잃은 데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고 전후 일본 덕택에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했다는 어떤 분의 논리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일본인만이 그런 주장을 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은행
-한주통산 이사
-세종공업 상무(슬로바키아 사장)
# 퇴임후가 더 중요했습니다
미국 노인이 땅을 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95세 생일날 쓴 일기입니다.
“65세에 정년퇴임했습니다. 별 고민 없이 안락한 여생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95세 생일 잔치때 얼마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퇴임 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죽기만을 기다리는 삶, 덧없고 희망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부터 어학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나중에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반면, 1인 방송 ‘도전 365’(www.wing365.com)대표 심현용씨(사진 ·62)같은 꿈을 실현하는 도전적인 삶도 있습니다. 심씨는 사업을 하다 외환위기 타격으로 PC방을 전전하는 바닥 인생까지 갔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젠 SBS TV ‘하우머치’의 1인 창조기업 1호에 방송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습니다. 서울시 소셜방송 자키 등 여러 일을 합니다.
그는 캠핑카에 카메라를 싣고 전국의 행사장, 이슈의 현장, 축제, 세미나 등을 현장 생방송합니다. 기업-단체 등의 의뢰를 받아 유료방송도 하고, 후배들 교육도 합니다. 1인 방송 경력 14년차이고, 세월호 사건 생중계는 1주일간 누적 시청 180만명에 최고 동시접속 7만명도 기록했습니다. 그의 무기는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혹은 소셜미디어)입니다. 그는 촬영한 영상을 유스트림-아프리카TV-올레 IPTV-다음 TV 등에 올리고, 나아가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를 통해 추가로 알립니다. 1인 미디어로서 당당하게 활동합니다.
두 사례중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꿈 실현에 도전하면 젊음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팔순이 넘어서도 청년처럼 활동하는 이어령 박사가 좋은 스승입니다. 필자는 여러번 뵈었는데…이 박사는 “나는 계속 꿈(비전)을 꾸고있어서 늙지않는다”고 말합니다.
# SNS를 무기로 새 출발하세요
시니어의 새 출발은 SNS를 무기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젠 국민의 71%(50대는 63%,60세 이상은 14%)가 스마트 기기를 쓰기 때문에, SNS활용이 손쉽습니다. 움직이면서도 SNS 콘텐츠를 보고, 내 글과 사진도 올릴수 있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SNS 세상에의 진입이 늦었습니다.
“우리는 네이버, 다음도 있고 싸이월드도 있다”고 자만하는 사이,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유튜브, 구글플러스,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개도국 사람들보다 SNS 활용이 뒤지고 있고, 한국은 10대~20대도 초보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시니어라고 해서 SNS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 칼럼과 함께 소셜미디어 세상을 여행하시면서, 1년만 열심히 하면 젊은이 못지않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강사나 나눔활동, 소규모 창업 등 여러 기회를 잡을수 있습니다. 최근 1~2년새 50대 이상의 SNS 활용이 아주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SKT가 지난해 4월 한달에 SNS를 한번 이상 쓴 사람을 조사해보니, 50대 SNS 이용자가 66만여명으로 10대의 60만명을 추월하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톡을 연장자들도 많이 쓰면서 생긴 변화로 보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2013 정보문화 실태조사’에서도 50대 이상의 디지털 생활이 급격히 활성화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카톡의 영향으로 ‘실시간 메시지 서비스’이용률이 50대의 경우 2012년 63%에서 2013년 81%로 뛰었지요.60세 이상도 32%에서 68%로 급등했습니다. SNS 이용률은 50대 39%, 60세이상 22%로 높아졌습니다.
# SNS에 도전해야하는 이유 SNS에 왜 도전해야 할까요
첫째, 내 경쟁력과 콘텐츠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시니어에게는 세상에 전해 줄 경험과 지식이 있습니다. SNS는 그걸 효율적으로 전파해주는 도구이며 나도 당당한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지식 나눔이나 컨설팅 등으로 봉사도 할수 있습니다. 내 브랜드가 생깁니다. SNS에 내가 올려논 경험과 지식은 검색을 통해 후대들에게도 활용됩니다.
둘째, 남에게 도움이 되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행복감은 나에게 건강을 주며, 늘어난 활동과 교류도 건강을 선물합니다.
셋째, SNS는 내 관심분야 정보를 습득하는 무료 통로입니다. SNS에서 관심 분야 전문가를 찾아 적극적으로 친구를 맺으면, 전문가가 글-사진을 올릴 때마다 내 SNS 방에 자동배달돼 옵니다. 넷째, SNS에는 모임활동이 많아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습니다.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들도 찾게해줍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납니다.
다섯째, 수입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SNS 기반으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강사활동을 하거나 책도 내고, 1인 창업도 가능합니다.
여섯째, SNS를 열심히 하면 나도 몰랐던 나의 강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글 솜씨, 사진 솜씨 등을 알게되고, 키우게 됩니다. 이 시리즈 칼럼을 통해 여러 SNS도 소개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워크 도구들도 소개하겠습니다. 매번 짭짤한 스마트폰 앱 하나씩을 미니로 소개합니다. 여행을 시작하실까요?
김일 소셜미디어나눔연구소장/본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