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손으로 효과음을 내면서 오로지 소리만 들려준다. 제목에는 먹방, 롤플레이, 자연현상, 수면 등과 같은 단어가 달려 있다. 이쯤 되면 뭘 말하려는지 알아차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번 큐레이션의 주제는 바로 ‘ASMR’이다.
‘ASMR’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임말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을 뜻한다. 바람 부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을 제공한다. 이런 설명 등을 요약해 ‘청각을 통한 오감 만족’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근래에 생긴 개념은 아니다. 2010년대 미국과 호주 등에서 유행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걸 왜 이 시점에 소환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9월 모바일 설문조사업체 오픈 서베이가 발표한 ‘건강관리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정신건강을 위한 행동 1순위는 충분한 수면이다. 코로나19가 없었던 지난해보다 3.1%P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숙면의 어려움을 호소한 경우는 작년보다 7.6%P 증가했다. 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상 동영상 혹은 ASMR과 같은 음성 콘텐츠를 찾는 경우가 47%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ASMR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ASMR 채널을 소개한다.
ASMR Boyoung 반보영
엄마나 애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귀를 파다가 깜빡 잠든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 채널은 사물을 이용한 소리를 주로 들려주는데, 특히 귀 청소를 콘셉트로 한 영상이 가장 많다.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실제로 누가 귀를 파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영상 중간에 눈앞에 있는 사람처럼 상황극을 해서 몰입도가 더 높다. 영상으로 이런 경험을 하면 좋은 점도 있다. 귀이개가 닿는 차가운 촉감이나 잘못 건드렸을 때의 고통이 없다. 한마디로 잠에 빠지도록 해주는 가장 좋은 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덤으로 빗질이나 샴푸하는 소리를 담은 영상도 있는데, 듣다 보면 미용실에 온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뚜비 Ddoobiii ASMR
실제로 황시목 같은 검사가 있을까? 직장에 황시목 같은 후배가 있으면 어떨까? 황시목의 사무실은 어떨까? 깨끗할까? 참고로 황시목은 얼마 전에 방영을 끝낸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끝나도 여운은 늘 남는다. 정말 좋은 드라마는 또 봐도 재밌다. 이 채널은 영화 혹은 드라마 속 장소나 장면 그리고 등장인물이 연상되는 ASMR을 들려준다. ‘황시목 검사의 사무실’이나 ‘호그와트 주방’이 그 단적인 예다. 드라마나 영화가 남기는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이 채널을 추천한다. 자기 전에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너무 피곤해서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들어도 좋다. 잠도 자고 드라마도 느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TV창비
갑자기 출판사 유튜브 채널을 소개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기에 출판사 채널이랑 ASMR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이 채널이 시인의 ASMR을 마련했다. 시를 낭독하는 채널은 유튜브에 많다. 하지만 시인이 자신이 쓴 시를 직접 읽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요즘 상황은 코로나19 때문에 낭송회를 여는 일도, 참여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런 시기라서 그런지 더 반갑다. 시각의 청각화가 이런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박소란 시인의 ‘모르는 사이’를 추천한다.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단잠에 빠져든다. 그만큼 효과는 입증된 셈(?)이다.
힐링사운드 ASMR
이 채널 소개는 많이 망설였다. 혼자만 알고 싶은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구독자 수는 적지만 영상은 알차다. 영상을 들으면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상우가 떠오른다. 대나무숲에서 조용히 소리를 채집하던 그처럼 채널 운영자는 직접 자연의 소리와 영상을 모은다. 그만큼 생생하다. 평균 8시간이 넘는 긴 영상이지만 계속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동시에 마음이 평온해져서 보고 있으면 몸이 노곤해진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빗소리, 계곡물 소리를 듣다 보면 커다란 숲에 들어선 듯한 기분도 든다.
*구독자 수는 2020년 10월 기준
강원도라 하면 누구라도 산과 바다가 고루 펼쳐진 대자연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해로 떠나고 바다를 둘러싼 수려한 강원도의 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 자연 속에 문화 예술의 멋이 자리 잡고 있다. 폐교에 펼쳐진 예술의 풍성함과 메밀꽃 이야기의 정취 속에서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린다.
언제부터인가 시골 학교의 폐교가 늘면서 비어 있는 공간 이용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게 되었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출되면서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떠나버려 폐교가 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잇따르며 생긴 공간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떠난 학교가 미술관이나 창작실, 도서관 캠핑장, 또는 카페와 같은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무이예술관은 시골마을의 자그마한 무이초등학교였다. 폐교된 이후 서양화가 정연서, 이천섭, 조각가 오상욱, 도예가 권순범 등의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예술관으로 변신시켰다. 폐교를 이용한 공간을 여러 군데 가본 적이 있는데 무이예술관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 예술작품이 넘쳐나는 게 특별하다.
교실마다 장르별 작품들이 꽉꽉 채워져 있다. 가끔은 조각 작품을 앞에 두고 버스킹도 한다. 무이예술관, 이곳이라면 꽉 채운 가을날 하루를 보낼 만하다. 이곳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덧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고 감성은 더없이 말랑해져서 비로소 숨통이 트여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무이예술관은 입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조형물이 시골 학교를 그저 조촐하게 꾸민 예술관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전한다. 복도에 발을 들이면 창가의 새하얀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고 흰색 천의 직조 틈 사이로 복도 가득 빛이 쏟아진다. 창가에 줄지어 전시된 조각 작품들은 가을볕에 멋스럽게 빛난다.
둘러보니 원래도 작은 학교였던 것 같다. 몇 개의 교실이 있는 건물 한 동이 전부인데 교실(전시실)마다 회화, 조각 작품, 도예 작품들이 가득하다. 빽빽하게 전시된 서예 작품도 고요히 묵향을 풍긴다. 또 한쪽 전시실에는 역시 봉평의 예술 공간답게 새하얀 메밀꽃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복도에서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삽화와 함께 스토리텔링을 감상할 수 있어 문학적 분위기에도 잠겨보게 된다.
볼거리는 끝이 없다. 스튜디오 겸 작업실이 열려 있어 예술가의 공간을 훔쳐보는 맛도 쏠쏠하다. 체험 공간과 아트 숍이 함께 꾸며져 있어 참여 활동도 가능하다. 복도 창가나 틈새 공간도 그냥 놔두지 않고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계단참의 소품들을 구경하면서 위층에 오르면 모임이나 파티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문 열고 옥상으로 나가면 무이예술관의 바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공간이다.
예전엔 운동장이었을 조각공원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있어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잔디 마당은 발걸음마다 부드럽다. 아이들은 조각품들 사이에서 뛰어놀고 엄마 아빠는 예술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이 깊어가는 운동장엔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날리고 발아래는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이곳을 오가는 누구라도 갬성 충만이다.
커피 향 따라 가본 전시관 끄트머리의 갤러리 카페. 사방으로 널찍한 덱에 앉아 운치 있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 안은 운동장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아 테이블에 앉아 편안히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시간을 누릴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과 소통이 공존하는 무이예술관에 가면 가슴 가득 예술의 기운을 얻어 나오게 된다.
살다가 잠시 멈추고 천지의 가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깊게 숨을 쉬어볼 만한 곳. 폐교에 담긴 예술 작품과 따스한 휴식 공간에서 충분한 감성 충전을 했던 참으로 괜찮았던 가을날 하루,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었던 시간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이효석 문학의 숲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 소설의 배경지인 봉평엔 메밀밭뿐 아니라 소설 속 내용을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이효석 문학의 숲’이 있다. 발걸음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덱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산책길을 따라 소설 속 장터와 등장인물들이 막걸리를 마시던 충주집과 물레방아 등 소설 속 내용이 길목마다 새겨져 있어 하나씩 읽다 보면 어느새 전편을 다 읽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는 계절에 이효석 문학의 숲에서 단편문학 한 편 읽으며 산책하는 시간, 좋지 아니한가.
한 사람의 생애에 필(feel)이 꽂혀 일생을 바칠 수 있을까? 그러는 사람의 삶은 정녕 아름답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올인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남한산성 만해 한용운 기념관 전보삼 관장이다. 그는 어떻게 한 사람의 삶에 그토록 매료된 걸까? 그 궁금함을 풀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가을이 오는 남한산성을 찾은 건 실로 오래만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와본 지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하기야 서울 살면서 남산에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히려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 하면 필수 코스가 남산이다. 아마 그들이 나보다 더 자주 찾지 않나 싶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은 주로 산성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음식점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떠난다. 필자도 그럴 심산으로 남한산성을 찾았다가 만해 한용운 기념관 안내판을 보고 둘러보게 됐다. 그러다가 이 기념관이 관이 만든 게 아니라 한 민간인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 욕구가 발동했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던 소년
전보삼 관장은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했다고 한다.
“강릉 집 근처에 포교당이 있었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그곳에 가서 뭐든 묻곤 했지요. 윤회, 삶과 죽음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스님들 사이에는 강릉 포교당에 가면 당돌한 중학생이 한 놈 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하네요.”
그는 중학교 때 이미 내용도 잘 모르는 ‘반야심경’을 줄줄 읽고 ‘팔만대장경’도 구매해서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생을 바꾼 책,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궁금한 것이 많았던 이 학생에게 어느 날 포교승이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던져줬는데, 이 시집이 전 관장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의미를 모르던 반야심경의 내용을 ‘님의 침묵’에 대입해보니 이해가 되었지요. ‘님은 갔습니다’라는 의미가 색즉시공(色卽是空) 아닌가요? 모든 물질적 형상들은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색즉시공이죠.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즉시색(空卽是色) 아닙니까? 그때부터 ‘님의 침묵’과 만해에 필(feel)이 꽂혔지요.”
*공즉시색(空卽是色):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현상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실체라는 말. ‘반야심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해의 시집을 읽으며 전 관장은 더 깊은 불교 공부를 했고 만해 한용운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만해에 관한 물건들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만해 한용운의 연구에 푹 빠지다
만해에게서 인생의 숭고한 삶의 가치를 깨달은 전 관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실천하리라 약속했다.
“첫째는 만해가 말년을 보냈던 성북동의 심우장을 찾는 일이고, 둘째는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만해의 묘소를 찾아보자 한 것이었지요. 마지막 다짐은 만해의 제자 강석주 스님을 찾아 생전의 만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후 그는 삼청동 칠보사에 기거하는 강석주 스님을 찾아 만해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해의 사상에 더욱 매료된다.
“강석주 스님이 기억하는 만해 스님은 ‘나라 사랑에 있어서 부처 같은 분’이었습니다. 또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독립운동사에서 만해의 업적은 아주 특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3·1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분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기도 했지요.”
전 관장은 1979년 12월, 만해 묘소를 찾아 주변을 정비하고 상석과 비석을 세워 묘비 제막식을 주도했다. 이뿐만 아니라 1981년 심우장에 기념관을 설립했다. 이로써 그는 스스로에게 한 세 가지 약속을 다 지켜냈다. 1980년 6월에는 ‘한용운 사상연구’를 펴냈고, ‘만해의 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1990년에는 성북동에서 남한산성으로 기념관을 옮겼다. 이때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를 팔아 남한산성 근처 땅을 샀고 1998년에는 사재를 털어 현재의 기념관을 재개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념관에는 어떤 것이 있나?
기념관이 소장한 자료 하나하나에는 전 관장의 손때가 묻어 있다. 소장품에는 ‘님의 침묵’ 초간본과 130여 종의 판본이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 시집도 있다. 이 밖에 만해 친필 유묵과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추서한 건국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 학술논문, 연구자료 등 3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 자료 수집 비화
만해와 관련된 자료라면 어디든 달려가 자료를 수집한 전 관장은 ‘님의 침묵’ 초간본을 샀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8년 고서 경매장에 처음으로 ‘님의 침묵’ 초간본이 나왔어요. 그러나 이 책은 팔려고 내놓은 것이라기보다 경매장 흥행을 위한 상징적으로 나온 것이었어요. 아예 팔 생각이 없었으므로 시세보다 10배가 더 높은 가격을 붙여놓았어요. 그때 소장자를 알아놓고, 당시 교수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1년을 모아 50만 원을 주고 구매했지요.”
사설 기념관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전 관장은 또 한 가지 비화를 들려줬다.
“소장품 중에 국가에서 만해 한용운에게 수여한 훈장이 있어요. 원래는 소장자의 집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당시 총무처에 재발급을 의뢰했는데 훈장을 재발급한 사례가 없다는 거예요. 제가 여러 차례 기념관에 전시해 후세에 알릴 거라고 설득한 끝에 재심의가 처음 열렸고 결국 훈장 재발급을 받아냈지요. 훈장 재발급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일이랍니다.”
남한산성으로 기념관을 옮긴 동기
만해 기념관은 만해가 말년을 보낸 성북동 심우장에서 1981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90년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당시 심우장은 문화운동을 하기에는 좋았지만, 공간이 좁고 외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남한산성이 떠올랐어요. 남한산성은 호국의 성지로 알려져 있고 찾는 사람도 많잖아요. 남한산성을 찾는 이들 중 10%만이라도 기념관에 들러 만해 스님을 알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 몰입한 아름다운 삶
전보삼 관장은 만해라는 한 사상가의 삶에 매료되어 몰입한 사람이다. 사설 기념관을 운영하며 사비로 자료를 수집하고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후세에 알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앞으로 남은 생의 계획을 묻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해 정신을 선양하고, 만해 정신과 철학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 정신과 사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흰머리가 뒤덮인 전보삼 관장의 생애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만해 기념관에서 열리는 행사
수시로 좋은 전시회 및 행사가 열린다. 10월 30일까지는 전길수 선생이 기증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전길수 선생은 1941년 경남 함양 출신으로 ㈜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평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40여 년 전부터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구룡산인 김용진, 긍석 김진만, 해강 김규진, 위당 이계호, 소하 김익효, 의재 허백련의 작품 등 기운 생동하는 사군자 작품 60여 점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체험 학습장도 운영
체험학습을 통해 만해의 사상과 민족 혼을 일깨우는 학습장이다.
● 만해의 시를 이용한 시화 족자, 시화 등, 시화 부채 만들기 외
● 탁본: 태극기, 만해 영정, 남한산성 고지도 외
● 어린이 활동지: 만해와 역사 여행 등
전보삼 관장 약력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 취득, 신구대학교 교수 정년퇴임.
경기도박물관장(2015~2017년), (사)한국박물관협회회장(2009~2015년) 역임.
현재 (사)한국문학관협회장(2016~).
코로나19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든 모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나 학원 수업은 물론 결혼식이나 종교 활동도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인터넷을 이용한 가상공간 모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시니어들도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발만 동동 굴릴 것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대화의 장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해봐야 한다.
매월 만나 정보를 교환하던 강사들 모임이 있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만날 수 없게 되자 한 분이 'ZOOM'이라는 인터넷 앱을 이용해 모임을 갖자고 제의를 했다. PC에서도 가능하고 스마트 폰에서도 할 수 있다며 우리도 해보자고 부추겼다. 모임의 호스트가 'ZOOM'에서 방을 개설하고 참석할 사람들을 초청하고 비밀번호를 부여하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완벽한 비밀의 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방에 10여 명이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스피커를 켤 줄 모르는 분도 있었고 실수로 나가게 된 방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런 모임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나는 제법 능숙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과 같이 실제로 해보는 게 어깨너머로 백번 보는 것보다 낫다.
'ZOOM' 사용은 40분간만 무료이고 그 이상 시간이 넘어가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시간당 사용료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시니어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우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모임에서는 'ZOOM' 사용료 때문에 ‘ZOOM' 사용을 포기하고 카톡방에서 대화를 이어간다고도 했다. 우리도 예외이지 않아 시간 초과로 끊어지면 다시 방을 만들어 초대했다. 이 과정이 번거로웠지만 다들 교육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했다. 이제 'ZOOM'의 맛을 알았으니 기꺼이 돈도 지불할 생각이다.
이런 참에 서울시에서 ‘2020 서울시민이 만들어가는 평화, 통일 사회적 대화’라는 주제로 'ZOOM'을 이용한 화상 대화를 열 예정이니 참여하겠느냐는 의사를 물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선뜻 응하겠다고 했고 내부 심사 뒤 운 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오프라인에서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ZOOM'을 이용한 화상 토의를 한다는 부연 설명을 들었다. 언택트 시대의 변화된 모습이다.
참석자들은 연령별, 성별, 지역별로 고르게 나눴다. 대부분의 사람이 'ZOOM'을 이용한 화상 회의 경험이 없어 주최 측에서 불안했는지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을 온라인으로 두 번씩이나 연습시켰다. 나는 예습해둔 경험이 있어 자신감을 갖고 토론회에 임했다. 중계 스튜디오는 서울시 시민청 태평홀,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3개 구청에서 선발된 총 200명이었다. 10명씩 20개 조로 나뉘었고 나는 17조에 소속됐다.
각 조에는 조장이 있고 회의를 주재하는 퍼실리테이터가 있다. 토론회 주제는 3가지였다. 제1주제는 ‘한반도 평화통일 체제’, 제2주제는 ‘재난예방, 방역, 보건의료 등 남북 협력’, 제3주제는 ‘2032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추진’이었다. 주제별로 전문가의 설명을 30분씩 듣고 10명씩 구성된 각 조로 돌아가 각자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이를 퍼실리테이터가 취합했다. 한 사람이 각 조를 대표해 전체 토론회에서 있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ZOOM'에서 개별 토론방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전체 방으로 모이기도 하는 작업은 본부가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우리 조의 퍼실리테이터는 경남 김해에서 지내는 사람이었는데 인터넷 회의라 거주 장소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 접속 장비만 있으면 장소와 거리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같은 민족인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한다는 대명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지만 체제를 극복해야 하고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과 비협조적인 북한을 달래야 하는 등 산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잘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일수록 6․25전쟁 등 과거를 용서하고 경제적으로 우월한 남한이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본 뜻깊은 시간이었다.
코로나19의 종식이 언제쯤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만을 계속할 수는 없다. 인터넷을 이용하고 카톡을 활용하고 전화와 편지를 이용해서라도 서로의 마음만큼은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언택트 시대. 'ZOOM'이라는 화상회의 기능을 모두가 잘 익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려지고 싶어 만 나이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희소식인 ‘현대 나이 계산법’이 등장했다. 현대 나이 계산법은 실제 나이에 0.8을 곱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전체 인구에서 85세 이상 인구 비중이 50여 년 전 85세에 0.8을 곱한 68세 이상 인구 비중과 비슷해 만들어진 계산법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생활 습관과 환경의 변화로 노화 속도가 달라지면서 현대 나이와 같은 개념이 나타났다.
1970년만 해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61.9세였다. 당시에는 60세만 넘겨도 대단하다고 느껴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다. 그러나 2020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3세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노래 제목처럼 61세는 노인으로 여기지 않아 환갑잔치도 가족 식사 정도로 단출해졌다.
평균 수명과 환경이 변화하면서 노년층의 라이프 스타일도 변화하고 있다. 최신 기술에 대한 적응도 빨라져 인터넷,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고령층을 일컫는 용어인 ‘실버 서퍼’도 등장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급률은 37.8%, 60대는 80.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11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세대별로 조사한 결과 유튜브 앱의 한 달 사용 시간은 10대(86억 분), 50대 이상(79억 분), 20대(64억 분), 30대(46억 분), 40대(42억 분)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50대 이상이 20~30대보다 유튜브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노년층은 건강하고 젊게 사는 것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이를 위해 외모에 시간을 할애하고 운동 및 취미 생활을 하는 비중이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인 65세 이상은 건강, 외모 관리에 사용한 시간이 5년 전보다 17분 증가했다. 또한 30대 이하는 여가를 주로 미디어 이용, 교제 활동, 게임 및 놀이로 사용했지만 40대와 50대는 스포츠 및 레포츠 활동을 각각 3순위, 2순위에 올려 스포츠와 레포츠 활동을 즐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노년층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요가다. 탄력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고 낙상이나 관절 부상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층의 요가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지역 보건소 및 노인 센터에도 요가 수업이 마련돼 있다. 또한 유튜브에서도 ‘건강백세요가’, ‘65세 이상 시니어 요가’ 등 노년층을 위한 요가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보다 외모 관리에 신경 쓰는 실버세대가 많아지면서 목주름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목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관리가 까다로운 부위다. 목의 경우 피부가 얇아 주름이 생기기 쉽고 다시 탱탱한 피부로 되돌리기도 어렵다. 얼굴 주름의 경우 20대 때부터 마사지, 미용 시술 등을 이용해 관리한다. 목주름은 얼굴에 비해 뒤늦게 신경 쓰지만, 눈에 잘 띄는 부위인 만큼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
목주름은 옷이나 메이크업으로 가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리프팅 시술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이들도 있다. 목은 얼굴보다 탄력이 떨어진 경우가 많아 일반 실리프팅보다 더욱 강력한 시술이 필요하다. 탄력밴드를 이용한 리프팅은 주름과 피부 처짐의 주요 원인인 근막층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 주변 조직과 결합해 근막을 지탱해 줘 주름과 피부 처짐 개선에 효과적이다.
바노바기 성형외과 반재상 대표원장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동안의 기준과 현재 가진 고민이 다른 만큼 동안성형도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한다”며 “무엇보다 본인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며 의학적인 도움을 받기에 앞서 잘못된 생활습관이 있다면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우리나라 사계절 중에서 여름철 건강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요즘 같은 폭염에 지치고 땀을 많이 흘리면 체력 소모가 많다. 필요한 영양을 반드시 보충해줘야 한다. 당분이 많이 첨가된 찬 음료나 아이스크림 같은 얼음 종류의 음식은 위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참외나 수박처럼 수분이 많고 시원한 과일로 대체하는 게 좋다. 요즘은 사계절 언제든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제철 과일의 맛과 영양은 따라올 수 없다.
참외는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천연 항산화제인 베타카로틴이 풍부해서 나쁜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걸 막아준다.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엽산은 특히 씨가 붙은 부분에 많다. 식이섬유도 나트륨을 제거해주고 활성산소를 억제, 제거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박은 수분이 엄청 많아 수분 보충, 피부 보습에 좋다. 이뇨작용 효과도 커 나트륨 등 노폐물 제거와 부기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항산화 물질인 베타카로틴과 리코펜, 칼륨과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수박의 단맛과 비타민C는 피로 해소를 도와준다.
참외와 수박은 무더위를 이기는 여름철 대표 과일이다. 참외와 수박을 이용한 손쉽고 간단한 음식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해본다. 특별한 추가 재료도 필요 없고, 냉장고에 남아 있는 채소들을 활용하면 된다.
♧참외 샐러드
재료: 참외, 게맛살(또는 닭가슴살), 무순, 방울토마토
드레싱: 레몬즙, 까나리액젓, 올리브오일, 설탕, 매실청, 다진 마늘, 다진 견과류
*참외 외의 채소나 소스 재료는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
♧참외 냉국
재료: 참외, 오이, 방울토마토
국물: 물, 국간장, 설탕, 매실청, 소금, 파, 통깨
♧참외 피클
재료: 참외, 설탕, 소금, 식초, 물, 월계수 잎, 향신료 약간
*분량의 재료를 끓여 식힌 후, 슬라이스해서 병에 담아둔 참외에 붓는다. 냉장보관.
♧이국적인 수박 주스 ‘땡모반’
재료: 수박, 얼음. 레몬즙 또는 탄산수. 소금. 꿀 또는 올리고당, 사이다
*블렌더에 재료를 넣고 갈아준 뒤 컵에 3분의 2쯤 담고 나머지는 사이다로 채운다.
수박은 잘라서 먹는 맛도 있지만 주스로 마시는 것도 좋다. 태국 음료인 수박주스는 ‘땡모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 번쯤은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이국적인 음료를 만들어보자.
SK텔레콤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선보인 ‘인공지능(AI) 돌봄’ 서비스가 고령층의 활동량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은 지난 17일 AI 돌봄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백서 ‘행복커뮤니티-독거 어르신과 인공지능의 행복한 동행 365일’을 발간했다.
AI 돌봄은 AI 스피커 ‘아리아’를 활용해 독거노인에게 대화, 음악, 뉴스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사물인터넷(IoT) 기기와 연동해 낙상 등 위기 상황에서 관계 기관에 알림을 보내는 ‘긴급 SOS’ 기능도 있다. SK텔레콤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사회적 기업 행복커넥트가 지난해 4월부터 서비스해왔다.
백서에 따르면 서비스를 이용한 고령층은 이전보다 통화 건수와 데이터 사용량이 늘었다.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두 배 증가다. 스스로 어떤 목표를 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이 활동량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AI 돌봄을 이용한 고령층의 자기 효능감은 이용 전 평균 2.6점에서 3.1점으로 상승했다.
AI 돌봄에 탑재된 ‘긴급 SOS’를 통해 올 들어 지난달까지 519건의 신고가 접수돼 고령자 33명이 구조됐다. 이 서비스를 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23개, 이용 중인 고령층은 4700명이다.
SK텔레콤은 AI 돌봄 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달 들어선 치매 예방 효과가 있는 체조 프로그램인 ‘마음체조’ 서비스를 새로 선보였다.
민화는 정통 회화를 모방해 생활공간을 장식할 목적이나 민속적 관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실용화다. 이러한 민화의 개념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민화란 조선시대 후기 서민층의 무명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말한다.
도자기, 족자, 병풍, 부적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 민화는 그린 이와 쓰임새를 생각하면 당연히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친숙한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자 어느 순간 민화는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리고 떨어져 있었던 만큼 지금은 낯설고 어려운 그림처럼 느껴지게 됐다. 이러한 장벽을 작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민화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그림이에요. 그리고 오방색을 기본으로 화려하게 표현해 색채가 강하죠.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엇보다도 민화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다.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됐기 때문에 저마다의 소망이나 목적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민화를 가르칠 때는 민화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가르칠 때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호랑이 그림에는 주술의 의미가 들어 있고, 씨가 많은 것들은 다산을 뜻한다는 식으로요.”
이 작가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기존의 민화와 똑같이 그리는 걸 지양한다. 대신 그림에 쓰일 소재들이 가진 뜻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대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저는 그림은 느낀 대로 편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인 표현 기법은 알려줘야 하죠.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이라도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심성이 고와지고 감수성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화실 갈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전통 미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열정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제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게 아니라 취미로 해서 즐겁게 오래할 수 있었다고 봐요. 요즘도 토요일마다 화실을 가는데, 그날이 제일 즐거워요. 그렇게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하죠. 체력을 위해 주말에는 등산을 하고 학교 출근해서 조회 시간 이전에 직원들과 40분 정도 산책을 해요. 강권하지 않는데도 다들 적극 참여합니다.”
그녀가 현재까지 만든 작품은 80~90점 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한 숫자다. 병풍도 소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리기 시작한 지 5년 정도는 기존 작품을 많이 재현했다. 그 후로는 창작에 매진했고, 지금은 재현과 창작의 균형을 맞추는 중이란다.
“요즘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을 이용한 마블링 기법으로 창작을 시도하고 있죠. 물론 민화의 기본은 유지하면서요. 정년퇴임할 즈음에는 개인전을 해볼까 합니다.”
제2인생 설계는 은퇴 10년 전부터
이 작가는 제2의 인생을 민화와 함께하려고 마음먹었다. 은퇴 후에도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센터 등을 통해 꾸준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큰 걸음의 시작이다. 돈을 벌기보다는 재능을 기부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직장에서나 정년을 맞이했지 인생은 계속되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줄 계획이다. 아울러 제2의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 설계는 최소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봐요. 할 수 있는 일, 친구 관계, 사회 기여, 재력, 시간 등을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야겠죠. 제가 처음에 민화를 그릴 때는 남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해요.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학교에서도 리더십이 잘 발휘되고, 교육청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부족한 거야 항상 많죠. 그러니 늘 공부하며 노력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민화 작업의 낯선 마블링 기법 시도도 그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선생님이 힘들어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하며 자신부터 바뀐 현실에 맞추려 노력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지금, 어쩌면 그녀가 민화라는 우리의 옛것을 통해 보여주는 활력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희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인구구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척추 변형 등 근골격 관련 질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에서 50%에 달하는 유병률이 보고되고 있다.
척추 변형은 유소년기에 발생한 척추 변형이 계속 진행되거나, 퇴행성 척추질환의 악화, 뇌성마비 등 신경학적 질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노화현상으로 척추 기립근을 비롯해 근육량이 감소하고, 골다공증이 악화되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외상이나 척추 수술 경험도 원인으로 꼽힌다.
성인 척추 변형은 주로 허리 통증을 동반한다. 디스크 질환, 척추 협착 정도에 따라 다리가 저리거나 하지 마비 등의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척추 변형이 내부 장기를 압박할 경우 소화불량이나 호흡 곤란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신경학적 장애나 손상이 없는 환자는 통증을 조절하고 신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비수술적 치료를 진행한다. 약물치료, 물리치료, 온열치료, 스트레칭 및 허리의 코어근육 강화운동 치료 등이 대표적이다.
김수연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통증 조절을 위해 해당 부위에 주사를 놓거나, 신경 주사 치료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며 “보조기를 이용한 치료는 소아의 경우 척추가 더 변형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성인에게는 효과가 없어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술적 치료는 척추 변형의 각도를 교정하는 방법이다. 통증이나 저림 증상 등이 비수술적 치료로 조절되지 않거나, 하지 마비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에 시행한다. 또 허리가 많이 굽어 앞을 보기 힘들거나 걷는 것이 어려운 환자, 혹은 변형된 척추의 내부 장기 압박에 따른 증상이 나타날 때도 고려한다.
김수연 교수는 ”수술적 치료는 환자의 어깨와 골반 높이, 척추 변형 정도 등을 고려해 각도 교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수술 후 2~3개월 동안 보조기를 착용해 교정된 척추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골다공증 환자의 경우, 골다공증 치료를 함께 진행해 뼈 건강을 향상시켜야 수술 후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
김수연 교수는 “성인 척추 변형은 암과 심뇌혈관 질환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통증과 다양한 증상을 유발해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허리 통증과 함께 다리 저림이나 소화 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척추 변형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전후를 즈음해 나는 알프스로 발길을 돌렸다. 히말라야 지역을 지겨울 정도로 쏘다닌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본의 아닌 ‘가난의 전시’가 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지역의 국가들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덕분에 물가가 말도 안 되게 싸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트레커에게는 반가운 일일지 몰라도, 나이 든 어른으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나 자신이 마치 ‘가난의 갤러리를 배회하며 우쭐대는 부르주아 관람객’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알피니즘의 역사를 봐도 히말라야보다는 알프스가 우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프스는 안중에도 없었다. 히말라야에 그토록 집중한 것은, 박정희 시대가 낳은 ‘성과 우선주의’의 우스꽝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높은 곳에 먼저 오르는 놈이 장땡’이었던 시절의 유물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진열대에서도 치워진 지 오래다. 등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트레킹이라는 개념이 시작되고 크게 발전한 지역 역시 알프스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알프스는 제쳐놓고 히말라야만 고집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오해들
알프스 트레킹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히말라야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알프스 트레킹을 할 경우 대개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산장의 편의시설(샤워실, 화장실, 침대, 식당 등)은 매우 만족스럽다. 최소한 서울의 3성 내지
4성급 호텔 수준이다. 3성급 이상의 호텔에 머물면 당일 저녁식사와 다음 날 아침식사를 제공받는데 비용이 10만 원 수준이다. 과연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1박에 3000원도 안 되는 히말라야의 로지에 비하면 비싸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다르지 않은가.
알프스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는 음식과 와인이다. 산장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서울의 웬만한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레스토랑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근사한 와인을 제값 주고 마실 수 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알프스 주변 국가는 이른바 ‘서양의 선진국’들이다. 선진국에서의 트레킹 비용을 최빈국과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 오해는 “알프스에 가면 자기 짐을 모두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랬다. 인건비가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프스에는 차량과 케이블카 등을 이용한 딜리버리 시스템이 정착한 지 오래다. 즉 커다란 카고백에 짐을 잔뜩 넣어 가도, 당일 필요한 짐만 배낭에 챙겨 길을 떠나면, 딜리버리 서비스맨들이 그날의 종착지인 산장에 나머지 짐을 옮겨준다.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이제 짐이 무거워 알프스에는 못 가겠다는 말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림엽서 속 풍경 같은 ‘투르 뒤 몽블랑’
알프스 트레킹의 시그니처 코스는 당연히 투르 뒤 몽블랑(Tour du Mont Blanc, TMB)이다. 프랑스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걸어서 넘는 아름다운 길이다. 당신이 알프스로 진출한다면 제일 먼저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곳곳에 깔끔한 편의시설이 넘쳐나는, 그림엽서 속 풍경 같은 길이다. 그래서 일단 알프스 트레커들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면, 이제 눈을 돌려 알프스 곳곳에 숨겨진 트레킹 코스들을 들여다보라. 당신은 건강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 매혹적인 코스들을 다 둘러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나는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여름을 알프스에서 보냈다. 알프스 자락의 3대 산악도시로 흔히들 프랑스의 샤모니, 스위스의 체르마트, 이탈리아의 쿠르마유르를 꼽는다. 대부분의 트레킹 코스는 이 도시들 중 한 곳 이상을 통과한다. 내가 가본 아름다운 코스들 중 한 곳은 투르 몬테로사(Tour de Monte Rosa, TMR)다. 체르마트를 끼고 돌며 마터호른(Matterhorn, 4478m)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 전역은 스키장용 케이블카 노선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체력이 부치는 사람은 차량과 케이블카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심산(沈山)
작가, 심산스쿨 대표, 코오롱등산학교·한국등산학교 강사. 산악 관련 저서로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마운틴 오디세이-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산과 역사가 만나는 인문산행’ 등이 있다.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