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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즐길 만한 전시ㆍ공연ㆍ영화ㆍ도서
-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 2020-01-0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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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반복을 표현한 '강박 X 강박'전
- 서울시립미술관은 2020년 3월 8일까지 이색적인 타이틀인 '강박 제곱' 전을 연다. 굳이 제목을 강박 제곱으로 한 것은 강박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내적인 강제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일상에서 반복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사회적 구조 문제 속에서도 살피려는 것이다. 현대인의 강박 중 하나는 늘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더욱 심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 욕망 등으로 이어진다. 1. 뉴 미네랄 콜렉티브 팀(에밀리아 스카눌리터와 타냐 부스)의 '공허한 지구(Hollow Earth)' 에밀리아 스카눌리터는 1987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이고 무명 때 인천 레지던시에서 2년간 살았다. 삼겹살도 좋아한다. 타냐 부스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두 작가가 만난 곳은 비옥한 토양과 녹지로 뒤덮인 노르웨이의 트롬쇠이다. 두 작가는 지질학과 환경에 관심이 많아 현대 강대국들의 채굴 산업, 국제 정치,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 등에 대한 느낌을 영상으로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2. 우정수 작가의 강박은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한다. 고대나 중세의 공포가 ‘죽음’에서 왔다면 현대의 공포는 ‘가난’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가난’에서 온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가난에 대한 불안, 부에 대한 강박이 있다. 작가는 최근에 ‘뉴트로’도 현대인이 가진 강박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표현했다. 작품은 ‘서사’ ‘젊은 화가들’ ‘물 위의 남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이 있다. 3. 오메르 파스트 작가는 다큐멘터리, 극,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어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주인공은 주로 전쟁이나 테러에 같은 충격적인 사건 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덧붙여지고 윤색되어가는 기억과 과거의 환영이 뒤엉킨 복합적인 이야기가 반복, 변형, 순환된다. '5,000피트가 최적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미국 프레데터(predator-마국 군 최첨단 무인정찰기 겸 공격기) 드론 조종사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와 재연의 형식을 번갈아 가면서 드론 조종사의 경험과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나는 범죄 이야기를 엮어간다. 기억은 결코 완전히 복원되지 않고 매번 재구성되며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 차이는 틈을 만든다는 점을 제시한 작품이다. 4. 차재민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지배와 폭력이 도시개발, 노동, 국가 권력과 정책 등으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특히 소외된 사람이나 물건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예술로 풀어낸 것이다. 영상 작품 '사운드 가든' 가로수가 된 훈련목이 뿌리째 뽑혀 옮겨지는 모습은 자신의 상처를 말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상담의 과정과 닮았다. 둘 다 상처가 있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회복을 꿈꾸고 있다. 이 반복되는 영상 이미지는 상처에서 벗어나 회복을 희망하는 인간의 강박과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5 정연두 'DMZ 극장 시리즈' 작가가 DMZ에 관심을 가진 것을 어느 날 외국에 사는 친구가 남북문제로 나라가 어지러우면 자기 집으로 피난 오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다. 이 작품은 파주의 ‘도라 극장(도라산 전망대)’이다. 도라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한 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 왕 씨와 결혼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경순왕을 위해 낙랑공주는 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그 산에 도읍을 의미하는 ‘도’자와 신라의 ‘라’자를 합쳐 ‘도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장소는 분단의 현실과 통일이라는 이 시대의 강박을 담고 있다. 6. 김용관 '신파(New Wave) 60분 애니메이션' 과학을 근거로 한 미래의 상상이 SF(사이언스 픽션 science fiction)이고 예술을 근거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아트 픽션(art fiction)이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미래에서 현재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이 종횡무진 누비며 경험하는 가운데 작가의 미래 예술에 대한 집요한 상상이 나타나 있다. 또한, 미래 어느 시점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공간의 이미지들이 데이터화돼 ’새로운 예술’이 불가능해진다. 신파는 매 순간 새로운 예술을 찾는 현대 예술과 현대 예술가들의 강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작품이다 7 .이재이 '한때 미래였던' 미국 텍사스의 로이스시티와 코르시카나 고속도로변에 버려진 퓨투로 주택 (futuro house 타원형 비행접시 모양의 이동 주택)은 1960년대 후반 완벽한 형태의 미래지향적 주택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기대했던 미래이지만, 그냥 지나가 버린 미래이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기대로 지어진 퓨투로 주택이다. 미래에 대한 강박이 만든 폐허의 현장에 찰나를 상징하는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8. 김인배 '건드리지 않은 면 untouched side' 작가는 잘린 연근으로 통 연근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압출법 단열재’인 10cm의 ‘아이소 핑크’를 사용한 것이다. 반복을 나타내고 하나하나 쌓는 단면은 그 앞에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반복에는 굴곡의 차이가 있듯이 모든 반복에는 차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쌓다 보면 그 안은 건드릴 수 없는 면이 되는 것이다 9. 에밀리아 스카눌리터 'T1/2' 이 작품은 올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핀추크아트센터에서 주관하는 ‘퓨처 제너레이션 아트 프라이즈(Future Generation Art Prize) 2019 대상’을 수상했다. 시립미술관에서는 상 타기 전에 섭외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상 받은 후 첫 전시다. 이것은 반감기 즉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방사성 붕괴 때문에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기호이다. 이 작품은 5년간에 걸친 작업과 리서치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인어의 시선을 통해 지구에 거듭 상처를 내는 인간과 그들의 세계를 초인류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다 10. 리메인더 라운지 (remainder lounge) 전시 참여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이미지, 영감을 받은 책, 각종 리서치 자료들, 제작하는 동안 파생된 글, 사진, 드로잉 등 작품과 직, 간접으로 관계가 있으면서 작품으로 실현되지 못한 나머지들을 펼쳐 놓았다 김용관 작가의 여러 버전 글, 정연두 작가의 앨범, 이재이 작가의 퓨투로 하우스 도면, 이재이 작가의 영어책 등이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한 번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 나는 ‘나의 강박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면서 강박에 빠지고 말았다.
- 2019-12-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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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 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1978년에 데뷔해 올해로 예순다섯 살. 그러나 이치현의 모습에서 그 세월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1980년대를 휘어잡던 순간의 ‘이치현과 벗님들’ 리더 이치현이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한 젊음과 변치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성숙하고 테크니컬해진 그의 라이브를 보면 시간을 거꾸로 먹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심지어 신곡을 준비하면서 내년부터는 ‘전투를 치르듯’ 전국 라이브 투어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 그의 음악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올해로 벌써 41년째 롱런 중인 이치현과 벗님들은 흔히 ‘한국의 비지스’라 불린다. ‘당신만이’, ‘사랑의 슬픔’, ‘다 가기 전에’, ‘집시여인’ 등의 히트곡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보여주는 곡들이며 여전히 애청되고 애창되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치현에게는 여전한 젊음과 특유의 우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수에 젖었다기보다 ‘이 일이 내가 맞는 건가,(웃음)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며 생각이 많아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거죠.” 반쯤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는 사실 가수가 될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명곡들과 그의 감미로운 음색을 생각하면 의외의 얘기였다. 어쩌다 가수가 된 기타리스트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산타나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연주자가 활동하기가 어렵잖아요? 더구나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누구에게 곡을 줄 수도 없었고.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불러야지.(웃음)” 산타나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라틴 록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다. 사실 잘 살펴보면 이치현이 그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탁월한 기타리스트로서 여전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 대표 히트곡 ‘집시여인’, 그리고 그의 최근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라틴 스타일로 더욱 세련되게 편곡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라틴 록과 밴드 사운드에 기반을 뒀지만 그가 한 가지 장르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팝 발라드에서부터 신스 팝, 로큰롤까지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해왔다. 그룹사운드를 하면 한 장르를 계속 파야 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변화를 시대에 따라 맞춰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음악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들 그렇게 대중가요 가수이지만 밴드 사운드에 기반하고 있는 그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를 뚝심 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외국처럼 장수하는 밴드가 없다는 점을 봐서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갈등에서 와요. 경제적인 위기는 능숙해요. 워낙 바닥을 치며 올라갔고 무명생활도 오래해서.(웃음) 가장 힘든 게 ‘내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둘까?’ 하면서 내 음악에 한계를 느낄 때죠.” 그가 자신의 음악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시대적인 문제와도 결부된다. 라이브 밴드를 추구하는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가요계의 주류도 밴드 사운드를 유지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얼마 전 7080세대에게 논란이 됐던 KBS의 ‘콘서트 7080’ 폐지 건이 그렇다.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콘서트 7080’이 폐지된 데는 물론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죠. 7080시절 음악했던 사람들을 막상 찾아보면 지금 음악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 새 앨범을 내지 않고 ‘추억팔기’만을 하는 가수들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시청률이 떨어지게 됐고요. 음악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어야 하고 뮤지션은 신곡 활동도 꾸준히 병행해야 하잖아요.” 지나친 쏠림 현상 안타까워 요즘 사회나 기업체들을 보면 7080세대가 주류가 됐다. 이치현과 같은 시대의 가수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트로트가 7080세대의 음악적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 물결이 너무 거세다 보니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라이브 밴드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현실에 그는 더욱 힘들어하고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차원, 음악적 현실에 대한 고통이었다. “시대의 변화이겠지만, 요즘 가수들은 거의 탤런트가 돼야 해요.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고. 난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내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다 보니 이 모양이지.(웃음)” 변화된 음악 현실에 방황도 깊어졌다. 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계속 방황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미국을 네 번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 있기 싫어서 미국에서 공연하려고요. 환경이 안 변하면 내가 못 살겠기에. 곡은 안 써지니 밤마다 괴롭고…. 내가 해야 할 음악의 장르를 못 잡는 거예요. 안 그랬거든요.” 소극장 투어로 팬 저변을 넓히다 그래도 그는 마침내 결론을 냈다. ‘좋은 경치를 봤다고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2016년에 내놓은 정규 앨범 14집 이후 오랜만에 싱글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바로 소극장 공연 투어다. “한 해가 끝날 때 되면 ‘올해 잘 보냈나?’ 싶죠. 나이가 드니 비보도 많이 듣게 되고, 시간도 확 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는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걸 실행하자고 결심했어요. 그게 내년 3월부터 시작할 전국 소극장 공연이죠. 깨질 때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딪쳐볼 거예요.” 그는 이미 1984년부터 5~6년간 무려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즉, 소극장 무대의 맛과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사실 그래서 작년에는 그런 소극장 무대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킨 적도 있다. “관객들이 예전에는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다들 어른이 되어 주차장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웃음) 공연은 꽉 차서 끝났어요. 그분들이 말하길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에서 얼굴 표정을 다 읽고 땀 흘리고 그러는 걸 보면서 함께 공연하는 거니까요.”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본 그의 성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는 앞으로 나와서 ‘나대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쪽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성향이 남아 있기에, 그의 젊은 시절은 지금보다 더했을 수밖에 없다.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제게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어요. 원래 남 앞에 못 서는 성격인데도 한 거니까요. 그래서 1984년에 4집 앨범 녹음하며 방송을 접고 대학로에 들어갔죠.” 그의 소극장 공연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인간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여대생들 앞에서 1000회를 공연한다는 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때 성격이 변했어요. 대화하는 법을 억지로 힘들게 익힌 거예요. 지금도 저는 제가 봐도 어색해요. 그래서 방송 녹화한 게 있으면 가족들하고 안 보죠. 나 혼자만 보면서 반성할 게 뭐 있나, 왜 저랬을까 합니다. 그게 본 성격인 거 같아요.” 무대와 객석은 구분되는 게 품격 그는 프로답게 자신이 대중음악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관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노정이 어쩌면 이치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좀 까다로워서 무대 같지 않으면 안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후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라이브 카페 같은 데서 공연하기도 했죠. 당연히 환경이 열악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잘되는 걸 보니 거기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중과 마주하되 자신의 격만 안 떨어뜨리면 되겠다 생각한 거죠. 물론 무대와 객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게 품격이니까요.” 칠순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역시 팬들이다. 그의 팬클럽은 회원 수 1500여 명이 가입한 ‘늘벗회’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그를 지지해준, 역사가 깊은 탄탄한 팬들로 그의 공연에 항상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자 위안 아닐까.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될 것 음악이 운명이라는 말처럼, 그의 딸 둘도 음악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지 목소리가 바뀌었다. “첫째 딸은 플루트를 해요.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와서 올해 동창하고 결혼했죠. 결혼 안 시키려 했어요. 들어간 돈이 얼만데.(웃음) 사실 재밌게 살고 있어요. 둘째도 원래는 음악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음악심리학으로 바꿨어요. 작은애는 지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음악과 관련이 있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음악은 본인과의 싸움이 너무 심해요.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건축가라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는 중학교에서 미술 관련 상을 휩쓴 기대주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예고에 진학하지 못해 미술인으로서의 꿈은 접혔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건물의 건축 재료를 살펴보고 두들겨본다고 한다. “음악은 사람을 너무 좁게 만들어요. 물론 음악의 세계는 굉장히 넓죠. 그러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좁아요. 음악 대신 빌딩 하나 지어보고 싶고 그렇죠.(웃음)”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치현의 가족들 중 음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교육학과를 나온 아내는 도서관에서 살며 자녀들 교육에 평생 매달렸다. 요즘 그는 부쩍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요. 젊었을 때는 같이 못 놀아줬고 ‘여보, 여보’ 하며 살갑게 다가가는 성격도 못 되고…. 우리나라 부부들이 나이를 먹으면 각자 놀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가보면 서로 목도리를 해주며 손잡고 다니면서 카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흰머리의 노부부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칠십부터는 같이 손잡고 다니면서 외롭지 않게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은 같은 감성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그는 감성과 추억으로 버무리고 채워질 소극장 라이브를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신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거듭 아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그리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선 그가 도달해야 할 음악적 성공의 지지자로 응원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들게 될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한다. 그 희망이 오늘 이치현을 또 설레게 할 것이다.
- 2019-12-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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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인생 포기한 걸로 알지만
- 생활이란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처럼 멍에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활공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향에 있다. 오체투지처럼 궁구하는 삶이 있으며, 경주마처럼 각축하는 삶이 있고, 바람의 사주를 받아 가뿐히 떠도는 삶이 있다. 연극인 최영환(49)은 아마도 바람과 동맹을 맺은 계열에 속할 것이다. 그는 한결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귀촌했다. 누군들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지 않으랴.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가급적 자유롭게 쓰고 가고자 하는 갈망. 이는 거의 가당찮은 꿈일망정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과 탄력을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고(苦)라지. 그러나 고통 속에 나뒹굴 때라야 비로소 자유로운 지평을 절박하게 찾아 나서는 게 사람이다. 최영환이 그랬다. 요컨대 그는 삶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간의 삶에 섞인 혼선에 몹시 식상했던 것 같다. ‘괴로운 자각’이라 할 만한 격렬한 회의가 우레처럼 그의 머리를 쳤던 모양이다. 그는 서울에 살며 연극판에서 땀 흘려 뛰었다. 극단 ‘죽죽’에 소속, 연기활동을 해왔다. 일찍이 열일곱 나이 때 연극에 입문했던 그는 1991년, ‘부산연극제’ 최연소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섰다. 이후 서울의 대학로를 근거로 삼아 20여 년간 연극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대차게 덤벼들어 긴 세월 비지땀을 쏟은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발견하고 남몰래 울상을 지었던 것 같다. ‘나, 연극배우 맞아? 이건 뭐 이룬 게 없질 않은가?’ 그는 아마도 그렇게 독백했을 게다. 그간 수없이 무대에 서서 대사를 읊조렸겠지만, 오직 자신에게만 들려준 그 독백의 톤은 연극이 아니라서 한결 절절했을 것이며, 번뇌의 산물이었기에 그 맛은 유감스럽게도 소태처럼 쓰디썼을 테지.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날마다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극활동을 해왔고, 딴에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회의가 몰려들었던 거죠. 딱히 스케줄 없는 날이 늘어났고, 그저 술이나 마시게 되고. 야, 이건 참 무의미한 생활이구나, 타성에 젖어 휩쓸려가고 있구나, 그런 자각으로 괴로웠지요. 연기자다운 활동의 미비와 열악한 생계 상황, 이중고가 있었던 겁니다.” 그는 새로운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황급히 활로를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찾은 대안이 시골살이였다. 그즈음 마침 일단의 대학로 연극인들이 단양군의 농촌으로 귀농을 했다. 최영환도 거기에 합류했다. 적적하고 적막한 농촌에 연극판을 펼쳐 고독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어기영차 북돋우고, 손수 농사까지 지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연극과 농사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공동체의 모델을 본때 있게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표방한 동아리였다. 독특한 패기에 찬 이 공동체에 동참한 최영환은 서울의 집과 단양을 오가며 지냈다. 즉 절반쯤 귀농한 상태로 3년여를 살아왔다. 그러다 성향이라는 게 맞질 않아 동아리를 탈퇴했단다. 그리곤 팍팍한 서울생활을 아예 싹 청산, 처자를 대동하고 단양군 영춘면 면 소재지로 본격적인 귀촌을 했다. 달랑 3000만 원 들고 귀촌 이후 2년이 흐른 현재, 그는 찻집을 운영하며 낯선 객지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언제 어디서건 자유로운 영혼. 해서, 사방팔방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척척 받아들이기 위해 그간의 반백년 인생에서 쌓은 모든 재능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여로의 종착만큼은 근사한 것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게 귀촌생활이다. 또 그러나 최영환 역시 만만치 않은 인간이 보유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을 터인즉, 이 사람이 펼쳐 보이는 귀촌생활의 양상이란 어쩌면 연극보다 흥미진진할지도. “이곳에 내려온 지 불과 2년이 지났지만 5년 이상이 지난 것처럼 친숙함을 느낍니다.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결과죠. 서울은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어요. 전화통화량을 가만히 따져봤더니 서울 지인들과는 10%, 이곳 주민들과는 90%. 어느 사이에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별안간 대학로를 떠난 당신을 두고서 지인들이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연극 동네 특유의 동지 의식이라는 게 있을 텐데.” “웬 귀촌? 그러면서 다들 놀라는 눈치이던걸요. 아예 인생 포기한 걸로 알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극인들의 이탈은 흔합니다. 대략 60% 정도가 중도에 분야를 바꿔 빠져나가죠. 경제문제 등 여러모로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연극배우란 배고픈 직업이라고 알려졌죠. 유능한 데다 열정마저 겸비한 인재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건 참 섭섭한 현실이에요.” “이름난 배우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난감하기 마련이죠. 대리운전 기사를 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벌며 버텼으나, 뭔가 확실한 타개책이 아니면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시골에 가서 소박한 생활을 하자, 그런 작정을 했던 겁니다.” 혼자 살 때엔 그럭저럭 지냈더란다. 혼밥과 혼술도 홀가분한 자유의 증빙으로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반, 좀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아이까지 얻은 뒤론 사정이 급박해졌다. 아자아자! 시골에서 나를 맘껏 풀어놓고 생활의 야전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그리 자신과 담판을 짓고 귀촌했던 것이다. 연극이야 버릴 수 없는 동행. 미련 이상의 관습으로 삶에 이미 들러붙은 것이라서 이삿짐에 실려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연극 행위가 없는 삶은 식물인간처럼 절망적일 지경은 아닐지라도 좌우간 탁 놔버릴 수 없는 애착이 이미 깊었기에, 그는 귀촌의 나날을 연극을 위해서도 사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어엿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방편을 찾고, 덩달아 연극활동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하자는 것. 최영환의 귀촌 청사진엔 그 두 가지 목표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웃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무얼 하기 위해 귀촌했는가를 기탄없이 밝혔지요. 연극단체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모두들 귀를 기울이더군요.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아하, 그 무슨 극단을 만들어 지원금이나 빼먹으려는 속셈 아니여? 그런 의심에 찬 소문들이 돌기도 했으니까.” “낯선 사람 하나가 시골에 등장한다는 건 시골이라는 무대 위에 배우 하나가 올라선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마련이죠. 모두가 그의 동태를 예의주시 감상하게 되니까. 감상 평론도 중구난방으로 무성하고요.” “통과 의례라는 게 있게 마련이죠. 면 소재지 상가 거리 복판에 찻집을 차리자 주변 상인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도 완연했어요.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영세한 상가에 경쟁자 하나가 출현했다고 본 거죠.” “다양한 자영업 중에 찻집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유망하다 판단해서?” “아내가 바리스타예요. 커피집이 적격이라 봤어요. 소자본으로 오픈할 수 있는 업종이기도 했고요. 저희는 달랑 3000만 원을 가지고 귀촌했는데, 가게를 차리고 셋집 주택을 얻는 데 다 썼지요. 찻집 운영으로 연 1500만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립니다. 월세 나가지, 겨울 비수기엔 힘들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차차 호전될 거라 봐요.” 찻집엔 ‘꽃피는 커피’라는 상호가 걸려 있다. 아담하고 소박해서 정겹다. 가게 좌우로는 식당, 옷집, 식육점, 주점, 빵집 등속이 있고, 맞은편엔 하나로마트가 있다. 상업이 성행할 리 없는 고즈넉한 시골이지만 그나마 요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더라도 세 식구의 믿을 만한 호구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서, 최영환 부부는 찻집일 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치운다. 가게는 한 사람이 지키면 되기에 나머지 한 사람은 일거리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간다. 의외로 일거리가 많은 게 시골이란다. 주로 막노동이지만 최영환은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 전전해왔다. 아로니아 가공공장에 단기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인근 사찰에서 총무 일도 봤다.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절박한 진실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첫발 내딛은 ‘청춘극단’ 면 소재지의 하오 풍경은 나른하다. 부스스 마른 볏짚처럼 광택 없는 거리. 별 목적 없어 보이는 한가한 걸음새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드나드는 몇몇 아낙네들. 수족관처럼 조용한 정경이지만 스피커로 외쳐대는 물오징어 판매 차량이 등장하자 별안간 사람들이 북적이며 몰려든다. 최영환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을 참을 수 없어서다. 2년여 사이에 발휘한 사교성 덕분에 이미 그는 이 동네 사람 다 됐다. “제가 서울에서보다 더 바쁘게 삽니다. 이웃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사는 것이죠. 청년회나 탁구동호회 등 소소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있으며 감투를 쓰기도 했어요. 시골의 배타성이나 텃세에 대해 많이 듣고 내려왔지만 여기는 다르더라고요. 상당히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에요.”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 이건 귀촌 성공 필살기 1칙이라 할 만하죠.” “제가 원래 가만히 있질 못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 춤을 신나게 추기도 했어요. 이웃과 어울려 살지 않고선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극단을 꾸려 키워나가기 위해서도 주민 속으로 파고드는 일이 필요해요. 부지런히 눈도장 찍으며 살아왔어요.” “서울의 연극단체들도 흔히 가시밭길을 걸어요. 도발적인 투지가 아니고선 시골 극단을 착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 아니겠어요? 현재 어떤 연극활동을 하고 있죠?” “겨우 첫발을 내딛은 단계입니다. 천천히 가되 충실히 기반을 다지고자 해요. 참여 인력은 이 지역 사람들로 영입할 생각이고, 우선은 제가 연기와 연출 등 모든 걸 도맡아 해나갈 참입니다. 구상과 포부는 크지만 재정 문제 등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극단 이름은 ‘청춘극장’입니다. 올여름엔 낭독공연물 ‘절대사절’을 선보였지요.” “단원은 몇 명이나 되죠?” “저를 포함, 세 명입니다. 당분간은 2인극 정도 공연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단원 중 한 명은 제 아내이지요. 연극에 대한 아내의 열정이 은근히 대단해요. 작은 동네이지만 열심히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을 거라 굳게 믿으며 함께 노력하고 있지요. 일단은 생활 안정이 화급한 과제이지만, 부부가 공히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과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게 즐겁습니다.” 최영환은 대학로 극장에서 아내 이동순을 만났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에 출연 중 관객으로 찾아온 이동순과 눈이 맞았던 것. 연극 애호가였던 이동순은 ‘관객모독’을 자그마치 100여 회나 관람했더란다. 그 바람에 극단 단원들의 환대를 받았는데, 유독 최영환에게 필이 꽂혔던 거다. 부부 사이엔 어여쁜 유치원생 딸 하나가 있다. 아내의 나이는 올해 33세로 최영환보다 열여섯 살 연하. 남녀의 가슴에 연정이 돋으면 술 취하듯 흥겨운 황홀이 밀려드는 법이니 그걸 사랑이라 한다. 여기엔 경계나 모순이 없어 나이 차 따위는 무의미하다. 세상을 보는 촉에선 세대 차가 있겠지만.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스타일이라서 매사 공감대가 넓은 편입니다. 다소 이견이 있어도 합리적이다 싶으면 곧바로 긍정하지요. 어! 그래? 해보지 뭐! 이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뭐든 두려움 없이 해보자는 것, 하다하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그런 낙관을 공유하며 사는 겁니다.” 오랫동안 스타 등극을 소망하며 연극배우로 진력했던 사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흥흥거리며 살아왔으나, 이제야 세상 무서운 걸 알겠노라’고 술회하는 남자. 그, 최영환은 여전한 물적 부실 앞에 서 있으나 훌훌 벗어던져야 할 껍질은 이미 벗어던졌다. ◇ 최영환이 주는 귀촌 Tip ◇ •이민보다 더 힘든 게 귀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적 설정부터 정확하게 하자. 막연한 낭만이나 도피적 망상에 의한 귀촌은 절대 금물이다. •경관을 기준 삼아 귀촌 지역을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 충분한 사전답사와 원주민 접촉을 통해 지역의 인심과 풍토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소읍이나 면 소재지에서의 자영업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친척이나 동창 등 인맥 중심으로 고객이 형성되는 게 시골의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원주민과의 융화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같이 거들어줄 수 있는 정도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9-12-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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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일만 하고 살아온 58년 연기 인생, 정혜선
- 한복을 입고 표지 촬영을 진행하는 연기자 정혜선을 보면서 새삼 한복이 무척 어울리는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청률 60%를 넘긴 전설적인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딸을 구박하는 독한 어머니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로나 국민 어머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녀는 곧 팔순을 바라보는 1942년생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자태를 보니 어쩌면 긴 세월 빚어낸 어머니 상이 우리에게 영원처럼 고정된 게 아닐까 싶었다. 정혜선은 1961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연예계에 처음 입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에서도 뽑히고 무용도 하고 노래도 잘하는 편이었어요. 수도여고에서는 방송반 활동과 웅변을 하며 상도 꽤 받았고요. 아버지가 원고를 써주는 등 많이 도와주셨어요. 심지어 탤런트가 뭔지도 모르던 때에 아버지가 지원 원서를 가져다줬어요.” 대부분의 가정집에 TV가 없던 그 시절, ‘뭔가를 알았던’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보면 아무래도 그녀는 연기자로 살아갈 운명이었나보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딴따라로 부를 만큼 인식이 좋지 않았을 것인데 딸의 재능을 알아본, 열린 생각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시작이 평탄했다. 가족의 지원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1967년 KBS ‘실화극장’에서 간첩 두목 등 캐릭터가 강한 역할에 캐스팅되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녀는 성격파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어머니 역할을 그때부터 많이 했어요. 그 시절은 배우가 별로 없었으니까. 얼굴에 주름 그려가며 어머니, 할머니 역을 소화해내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죠.” 연기자, 그리고 어머니 역을 주로 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을까? 그녀는 30대부터 할머니 역할을 주로 맡았다. 불과 31세에 MBC 드라마 ‘새엄마’에서 시어머니 역을 연기했다. 1977년에 한 설문조사에서 할머니 역할을 잘하는 연예인 2위로 뽑히더니, 1978년에는 아예 1위가 되었다. 연기자로서의 첫 절정기는 1983년이었다. 마흔 즈음에는 MBC 드라마 ‘간난이’에서 손주들을 데리고 거친 세상을 사는 80세 꼽추 할머니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각종 상을 수상했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의 연기자 그녀는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보다는 ‘쎈’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런데 인기가 많아지자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때 가수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간난이’ 에서 80세 할머니로 출연해서 불쌍한 손주들을 지극히 보살피는 역할로 각종 연기대상을 휩쓸었던 그해 1983년 대한민국을 빛낸 사람이라고 해서 롯데호텔에서 디너쇼를 열어줬어요. 그때는 철딱서니가 없었죠. 그 재주로 디너쇼를 했다니.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별거 다 했어요.” 같은 해에 매니저 제안에 앨범도 하나 녹음했다. 잠깐 가수활동을 하며 남긴 유일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망각’. 발라드풍의 처연한 노래인데, 직접 가사도 썼다. 잊어야만 했기에 잊었노라고 지워야만 했기에 지웠노라고 너와 나의 아름다운 그 옛날 추억이 못 잊어 생각나면 아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워보리 여자로서의 삶은 불행했다 노래 가사에 배인 슬픔과 애잔함을 증폭시키는 애절한 창법을 들으니 자연스레 그녀가 겪은 고통이 떠올랐다. “서른두 살에 다시 싱글이 됐죠. 여자로서 정혜선은 불행했지. 그 부분에서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해요. 여자로 태어나 남편 잘 만나 아이 행복하게 키우면서 가정 잘 이끌어가고 그랬어야 했는데… 짚신도 짝이 있는데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는 건 비극이에요. 물론 그동안 날 좋아하는 이도 있었고 중매도 들어오곤 했지만 지금은 혼자야.” TV에서 보는 정혜선은 거칠고 과격한,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독해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실제의 정혜선은 조용하고 나긋나긋하며 차분한 목소리를 지닌 천생 여자의 모습이다. 담담하게 자신을 패배자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 모습에서 자기 삶을 희생하며 사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30·40대에 할머니역을 맡던 그녀는 60대가 넘으면서 카리스마와 온화함이 있는 ‘사모님’과 ‘여사님’ 연기를 주로 했다. 또 기품 있는 한복 차림으로 각인시켜주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역할엔 그녀만 한 배우가 없다. 그렇지만 “나도 살았는데…” 남편과의 결별은 이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빚까지 갚아나가야 했다.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것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기대어 신세를 질 만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도 채권자 분들이 순순히 기다리기로 해서 제 출연료를 3분의 2씩 가져갔죠. 그런 걸 생각하면, 그분들에게 고맙죠. 지금은 다 고인이 되셨지만.”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가 단돈 100원도 안 준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급격히 높아진 자살률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나 같은 사람도 죽지 않고 잘 사는데 왜 자살을 하지…. 나는 자살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안 죽었어요. 빚을 갚아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은 생각도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죽는 방법도 있었네. 그런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웃음)”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그녀의 퍽퍽한 웃음소리에 좀 아팠다. 나누고 베풀며 겸손하게 개인으로서, 여자로서 정혜선은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모두의 배우로서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녀의 방송활동에는 슬럼프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연기하며 힘들었던 순간이 없다 할 정도로 매일 최선을 다했으므로 기억이 안 난다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이 예약되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방송국에서 시청률 높으면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제대로 못 갔죠. 늘 바빠서 쉴 틈이 없었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일의 연속이었어요. 물론 내가 워커홀릭 성향도 있지만, 연출자들이 나를 도와주려고 더 불러줬던 것 같아요.”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이탈리아를 가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잠시 억울해했다. 요즘은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다 가는 유럽 여행 아닌가. 수십 년을 대한민국 국민의 어머니로 살았던 사람이 일하느라 이탈리아도 못 가봤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어머니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일만 하는 정혜선이었죠. 일 안 하면 죽는 줄 알았으니까.(웃음) 그런데 요즘 쉬면서 생각해보니 일이 다가 아니구나 싶어요. 너무 늦게 알았지. 지금은 쉬면서 봉사도 하러 다녀요. 내가 나서기만 해도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자주 가고 있어요. 무엇이든지 내가 쓰임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이번 표지 한복 협찬을 해주신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20여 년 곁에서 지켜봐온 정혜선 선생은 한결같은 성실함과 노력으로 늘 수수하게 살아서 때로는 연예인인지 자연인인지 분간이 안 간다”며 뚝배기처럼 소탈하시다 거들었다. 그녀는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요. 어려운 사람 있으면 가능한 한 힘닿는 대로 돕습니다. 그러니 무언가에 꽂히면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연기자에겐 숙명적 성향 같아요. 그저 일만 하고 살았지.” > 이루지 못한 예술을 향한 꿈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녀가 연기생활을 하면서 안 해본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가수, 드라마와 연극은 기본이고 심지어 뮤지컬 배우도 했다. 그녀의 기억 속 뮤지컬은, 정말 원 없이 노래를 불렀던 ‘사운드 오브 뮤직’. 연극은 ‘햄릿’. 무대에 세 번이나 섰다. 물론 영화도 찍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50여 작품에 출연했죠. 그것도 액션 영화에. 내가 한때 액션 스타였어.(웃음) 그때는 정말 그걸로 잘나갔어요. 지금 들으면 젊은이들은 깜짝 놀랄 테지만.”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이 베테랑 배우에게 욕심나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이 싱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욕심이 없다”고 단칼에 자르듯 말했다. 다만 그녀에게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하고픈 일에 대해 묻자 오래전 묻어버린 꿈을 아련히 기억해내며 그 시간들에 휩싸이는 듯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이 많아요. 그런데 ‘부자가 됐으면’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사업은 내 길이 아니에요. 그러나 아무래도 예술에 대한 꿈은 있었죠. 특히 무용. 무용 선생님이 ‘영자야(정혜선의 본명), 넌 무용해야 해’라고 해주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집이 가난했죠. 그런데 무용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부모님 생각을 해서 안 했어요.” 아니다 싶으면 결코 하지 않는다 정혜선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 것과 운동을 따로 안 하는 대신 걷는 것을 꼽았다. “사실 이제 내일모레면 팔십이니까 걷는 것도 귀찮죠. 집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 쐬는 게 가장 행복해요.(웃음) 스케줄 없을 때는 여기저기서 식사하자고 하니 사람을 만나게 되네요. 내가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하루에 꼭 두세 가지 일은 있더라고.”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 예상 가능하듯 그녀는 남다른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 얼마 전 꽤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파격적인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내가 거기 나가서 남을 즐겁게 해줄 용기가 없어요. 과거에는 디너쇼까지 하면서 끼를 보여줬는데 지금은 다 늙어서.(웃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오랜 세월 정혜선이란 정체성을 만들어낸 신념 그 자체였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한다 겸손하고 배려심 많은 성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온 그녀는 진정성 있는 삶으로 탄탄한 신뢰를 쌓아왔다. 초심을 지키며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우직함이 그녀의 힘이다. 그녀는 이번 추석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바쁠 예정이란다. “지인과의 인연으로 NBS한국농업방송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맡았어요. ‘그땐 그랬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가 내레이터를 하기로 했어요. 한 달에 두 번 방송을 하는데 작업을 해야 하니까,(웃음) 어디로 움직이는 건 당분간 불가능해요.” 작든 크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충전하는 좋은 시간으로 즐긴다. 그저 평범하면서도 평탄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처럼. “나는 애써 관리해온 게 아니라 책임감 있게 살았던 것뿐”이라는 그녀의 말에는 연륜과 관록이 묻어 있다. 그녀 삶의 원동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설명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우리가 봐왔던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향처럼,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아련하면서도 올곧고 강인한 모습으로서. 연연하지 않는 삶, 이렇게 살아서 또 한 번의 아침을 맞듯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다.
- 2019-09-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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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의 문화캘린더
-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부는 9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일정 9월 3~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려 생체 실험을 하다가 자신의 숨은 자아에 영혼을 잠식당해버리는 지킬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대중에게 익숙한 ‘지금 이 순간’, ‘한때는 꿈에’ 등 서정적인 넘버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앙상블을 이룬다. ◇ 영화 '집으로...' 개봉 9월 5일 출연 김을분, 유승호 등 한때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 ‘집으로...’가 추석을 맞아 18년 만에 재개봉한다. 일곱 살 개구쟁이 서울 소년 상우와 그런 손자를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는 시골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 제19회 불갑산 상사화 축제 일정 9월 18~24일 장소 전남 영광군 불갑사 관광지 일원 사시사철 야생화가 아름다운 불갑사 인근에서 매년 가을 상사화를 테마로 여는 축제다. 올해는 ‘상사화, 천년 사랑을 품다’를 주제로 상사화 꽃길 걷기, 국악공연, 앙상블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공연,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일정 9월 20~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음악극이다. 대한독립군의 영웅이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던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한다. ◇ 제48회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 일정 9월 27일~10월 6일 장소 경북 안동시 탈춤공원, 시내 일원 ‘여성의 탈, 탈 속의 여성’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전통사회 속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삶과 꿈을 그려낼 계획이다. 행사 동안 할미탈, 부네탈, 왕비탈 등 다양한 여성 탈을 테마로 한 공연과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일정 9월 28~29일 장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일대 도심 속 자연을 벗 삼아 재즈의 선율에 흠뻑 빠져볼 기회다. 국내 정상급 재즈 뮤지션의 무대는 물론 대중음악과의 협업 무대까지 고루 경험할 수 있다.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도시락을 가져오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되니 가을 소풍 떠나듯 축제를 즐겨보자.
- 2019-08-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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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는 향기가 고프다
- 공기를 통해 코로 전달되는 숱한 냄새는 우리 일상에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직접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감정의 변화는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등의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형의 존재인 향기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급스러움과 품격을 높여주는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과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향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도움말 최아름 ㈜아이센트 대표 언제부턴가 자주 가는 백화점 혹은 극장 등에 들어서면 익숙해진 향기에 이끌린다. 세련된 장식이 된 호텔, 전시관,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시설은 마치 ‘패션의 완성은 향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고유의 향을 간직하고 있다.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듯 공간 또한 인식하게 되는 것. 이를 일컬어 ‘향기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나 상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발산해 이용자가 향기와 함께 훗날에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향기 마케팅이 각광받는 이유 1990년대를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향기와 구매 욕구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왔다. 향기 마케팅 회사 ‘에어아로마(air-aroma.com)’ 웹사이트에는 향기가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쉽게 설명해놓았다. 향기는 소비자의 지출을 늘리고 장기적인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보다 깊은 감성 교류로 인해 이용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미국의 후각연구소(Sense of Smell Institute)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민감하며 하루 중 감정의 75%가 후각의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대략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인식하며,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냄새는 1년이 지난 후에도 65%는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반면, 시각적 이미지는 50% 정도만 되살아나고 기억의 한계는 3개월 정도라 한다. 후각으로 기억되는 잔상이 길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해 산업적 접근을 시도한 분야가 향기 마케팅이라는 설명이다. ‘빵 굽는 냄새’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기를 이용한 마케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봤더니 1997년 4월 ‘베이커리’라는 매거진에서 소개한 ‘빵 굽는 냄새를 향기로 구현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 최초의 향기 관리 업체인 (주)에코미스트코리아(현 (주)바이오미스트테크놀로지)에 ‘빵 굽는 냄새’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던 것. 빵 굽는 냄새가 고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빵을 구울 수는 없기에 빵을 굽지 않는 시간에도 ‘빵 굽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풍길 수 있도록 향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료를 보니 (주)에코미스트코리아는 마늘빵 향을 개발했고, 소량으로도 25평 규모의 매장에서 하루 종일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며 기사가 마무리됐다. 실제 빵집에 마늘빵 향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에코미스트코리아 최영신 대표는 미니 인터뷰를 통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리는 데 더 큰 효과가 있다”며 “이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향기 마케팅에 관련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 매일매일 변화를 맞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사회 속에서 향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글로벌 향기 마케팅 회사 (주)아이센트의 최아름 대표는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보이지만 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연결되고 감정적인 자극을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요즘은 쇼핑이나 영화 관람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소비자의 방문이 필수인 서비스 공간을 훨씬 더 기억에 남게 하려고 감정적 연결고리를 향기에서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러한 마케팅을, 공간에 향기를 머무르게 하는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대상에 몰입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물론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가 해당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른 마케팅보다 따뜻한 감정과 신뢰를 주는 것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환경 향수로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향기 마케팅이 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가 만든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은 세계 최대 향료 회사 중 하나인 피르메니히에 의뢰해 화장실 악취를 꽃향기로 바꿔주는 ‘화장실 향수’를 개발해 개발도상국 화장실 개선 사업에 힘쓴 바 있다. 또 화장실이 부족해 이로 인한 질병에 노출된 아이와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도 이 향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향기 마케팅 회사 아이센트 또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체취, 화장실 냄새 등과 같은 악취를 효과적으로 중화해주는 환경 향수를 개발했다. 이 향수는 특허받은 성분으로 만들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환경으로 바꿔준다. 시니어가 많이 드나드는 공동 시설의 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최 대표는 언급했다. “시니어가 활동할 때 좋은 향기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오렌지 향 같은 시트러스 노트 계열의 향은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며 초콜릿,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은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한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 2019-07-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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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문화캘린더
- 여름방학과 휴가가 시작되는 7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오페라 ‘텃밭킬러’ 일정 7월 3~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남의 집 텃밭에서 훔친 작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그 가족의 우스꽝스럽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애달픈 사연을 담았다. 가족 구성원 캐릭터를 통해 부조리한 자본주의 사회 속 시민들의 현실적인 삶을 투영한다. ◇ 전시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일정 7월 9일~10월 27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이탈리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에서 대여한 287점의 에트루리아 보물들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종교, 제사,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그리스·로마 문명에 영향을 끼친 에트루리아인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 일정 7월 10일~8월 25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 손주와 함께 즐길 만한 공연이 시리즈로 마련됐다. 캐나다, 일본 등 국내외 우수 공연단체가 참여해 음악극 ‘아빠닭’, 무용극 ‘댄싱뮤지엄’, 그림자극 ‘루루섬의 비밀’ 등 3개 작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 축제 '2019 안양申필름예술영화제' 일정 7월 12~14일 장소 평촌 중앙공원, 평촌CGV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독립·예술영화 대표 영화제로, 축제 기간 42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개막식에서는 ‘별들의 고향’(1974)의 이장호 감독이 공로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더불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안양시가 선택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특별 상영된다. ◇ 뮤지컬 '맘마미아' 일정 7월 14일~9월 14일 장소 LG아트센터 2004년 국내 초연 이래 15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맘마미아’가 2019년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왔다. 원년 멤버인 최정원, 신영숙, 김영주, 남경주 등을 필두로 박준면, 서만석 등 새로운 얼굴들이 함께 화려한 무대를 장식한다. ◇ 영화 '나랏말싸미' 개봉 7월 24일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등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세종과 신하들의 갈등과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송강호가 세종 역을 맡아 애민정신이 투철한 임금의 면모와 더불어 그동안 업적에 가려져 있던 ‘인간 세종’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 2019-06-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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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코 홍보대사 할배돌 ‘지오아재’를 만나다
- 인생 2막을 시작한 시니어를 수소문하던 중에 지인에게 지오아재를 소개받았다. 초겨울 날씨로 접어든 12월 초, 방배동에 위치한 연습실을 방문했다. 평소에는 주 2회 하루 3시간, 공연이 있으면 3~4회 연습을 한다고 한다. 상상했던 것보다 좁고 허름한 연습실이었다. 지오아재는 동년기자 두 명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캐럴을 화음에 맞춰 불러줬다. 지오아재(G.O.Age)는 노익장의 ‘그린 올드 에이지(Green Old Age)’를 독일식으로 발음한 이름이다. 구성원은 테너 박승호(76)와 이규대(67), 바리톤 주정서(67)와 손종열(65), 베이스 서준석(66)이다. 총 5명의 평균나이는 68.2세다. 지오아재는 그동안 KBS1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도 소개됐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홍보대사로도 임명되는 등 매스컴도 좀 탔다. 음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할배돌에게 물었다. Q. 어떤 목적으로 뭉치셨나요? 이규대 ‘평생 하고 싶어 하던 음악을 다시 한 번 해보자’ 하며 뭉쳤습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동년배에게 보여주면서 인생 2막의 삶에 대한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박승호 노래 잘하는 달란트를 활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서준석청년과 시니어 간의 소통 역할을 담당하려고 합니다. 손종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시니어도 프로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주정서 삶의 장르는 다양합니다. 음악은 인생의 한 장르에 불과합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인생 2막의 삶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습니다. Q.어떤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됐나요? 이규대 그룹 결성은 제가 생각한 일입니다. 고등학교 후배 손종열 씨가 아마추어 합창단 단장을 하고 있어요. 성가대 지휘를 45년간 할 정도로 음악에도 푹 빠져 있고요. 이 친구를 통해 파트별 대상자를 수소문했어요. 서준석 2016년 초부터 개별적으로 만나오다 그해 5월 다 같이 만나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이규대 우리는 처음부터 프로 못지않았습니다.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베이스 서준석 씨, 퍼스트 테너 박승호 씨 등 구성원의 재능이 많습니다. 진작 만났다면 큰 성공을 거두었을 거예요. 리더 이규대 씨는 198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7080세대 가수다. 다른 구성원은 프로는 아니지만 수십 년간 합창단과 성가대 활동을 해왔고 개인 음반을 낼 정도로 내공이 만만치 않다. 특히 이규대 씨가 작사·작곡이 가능하다는 게 그룹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기억력도 나빠져 가사를 외우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집중력과 순발력도 떨어지고 호흡도 짧아져 박자에 대한 감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연습을 많이 해도 며칠만 안 하면 금세 잊어버리는 율동은 소화할 수 있는 신체나이가 아니라 포기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Q.그러면 할배돌은 포기하신 건가요? 이규대반드시 춤이 있어야 아이돌, 아니 할배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노래로 경쟁하기로 했습니다. Q.음악을 하는 요즘, 행복하십니까? 서준석 이 나이에 할 일이 있으면 행복한 거죠. 주정서 가끔 저희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분이 있어 살짝살짝 연예인이 된 기분도 느낍니다. 박승호 그토록 하고 싶었던 노래를 하는데 당연히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날은 부도수표, 다가올 미래는 약속어음, 현재는 가장 확실한 현금입니다. 이규대 중학생도 알아보고 인사하니 기분이 좋네요. 주위에서 어떻게 바라보나요? 이규대 30여 년 만에 음악을 다시 해보겠다고 하니까 아내가 처음에는 사고만 치지 말라고 했어요. 2017년 첫 앨범을 낸 후 저러다 그만두겠지 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1년 넘게 꾸준히 하니까 이제는 아내가 인정해주고 지원도 합니다. 손종열 친구들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저희들을 부러워합니다. 서준석 홍대 앞에서 버스킹할 때 젊은이들이 지오아재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줘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 손주 녀석들은 나이 들면 할아버지처럼 살고 싶다고 합니다.(웃음) Q.추구하는 음악 장르는요? 이규대 솔직히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지만 경쾌하면서도 삶의 진리, 사랑의 힘 같은 철학적 의미를 전해주는 음악을 선호합니다. 서준석 시니어에게 용기를 주듯 젊은이들에게도 음악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온 한 젊은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할아버지, 제가 나중에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 이런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을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오아재는 ‘지금 여기’, ‘이제야 사랑을’, ‘그것이 내 인생’, ‘사랑별곡’ 4곡을 발표했다. 대표곡으로 ‘지금 여기’를 꼽는다. ‘지금 여기(Here And Now)’는 높고 낮은 음의 영역을 오가며 랩, 국악 장르를 포괄하는 경쾌한 리듬의 노래다. 신나게 부를 수 있는 곡이긴 하지만 시니어가 따라 부르기에는 다소 어렵고 오히려 젊은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서 의미가 있다. 가사에는 과거의 성공과 실패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 Q.첫 무대는 어떠했나요? 이규대 야심차게 준비한 ‘지금 여기’는 리듬도 빠르고 랩과 안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는 곡인데 연습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자를 살짝 놓치면서 음정까지 불안했죠. 그 순간은 반주 소리도 잘 안 들렸어요.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주정서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Q.지금은 어떠신가요? 서준석 미꾸라지가 용 됐지요. 무대에 익숙해져 연주소리는 물론 청중들의 반응도 다 보입니다. 40여 회 공연을 하다 보니 무대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나 기획사는 있나요? 이규대요즘은 매니저 대신 매니지먼트 기획사를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기획사와 일하려면 수입이 많거나 재정적 여유가 있거나 특출나게 잘나가는 경우에나 가능하지요.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닙니다. 대신 자체 기획사가 있습니다. 서준석 이규대 씨가 ‘예소리네’를 만들었습니다. 이규대 씨의 막내딸 이자람의 예명인 예솔, 그러니까 ‘예솔이네’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한 이름입니다. 이자람은 국악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Q.국악 리듬을 곡에 넣으셨더군요? 이규대 전통 리듬이 있어야 서양 음악인들이 관심을 보입니다. 서양 음악은 아무리 잘해도 별 반응이 없는데 국악을 연주하면 금세 빠져듭니다.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려면 국악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딸이 국악을 전공해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Q.경비 조달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규대 첫 앨범 제작비는 제가 댔고 활동비는 N분의 1로 부담합니다. 출연료를 받으면 반은 앨범 제작비를 공제하고 나머지는 공동 경비로 사용합니다. 많이 벌면 좋겠지만 아직 손익분기점에도 이르지 못했어요. 그래도 수입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Q.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규대 올해 두 번째 앨범을 낼 계획입니다. 틈틈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 계획도 있나요? 서준석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음악으로는 통할 수 있으니까, 전 세계 시니어와 소통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에 K-POP만 있는 게 아니라 K-GRAND POP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규대 해외 진출을 대비해 ‘지금 여기’를 영어와 일어로 번역해놨습니다. 2018년 6월, 홍콩 BTV가 기획한 ‘120세 기획 프로그램’에 지오아재의 활동이 소개됐다. 이 프로그램이 한국, 일본, 미국 등지에서 인생 2막의 삶을 사는 주인공을 촬영해 방영하는데, 한국에서는 지오아재가 출연했다. 지오아재는 기획사도 없고 연습실도 협소하고 수입도 많지 않지만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어 성공이 기대된다. 음악을 통해 시니어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젊은이들에게는 닮고 싶은 시니어 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Q.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규대 시니어 모임에 많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재능기부도 하고 싶고요. 무료공연도 가능하니 기회가 되는 대로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노인대학, 복지관 등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캠코 홍보대사로도 임명되었습니다. 캠코는 1000만 원 이하의 장기 소액 연체자를 위한 구제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활용해 인생 2막을 잘 기획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정서 나이 먹은 사람도 살아가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나이 든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죽을 때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자신 또는 남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규대 대부분의 방송이 20대에 편중되어 있어 시니어가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볼 수 있는 장수무대도 트로트나 뽕짝 일색입니다. 통기타 치고 팝송 부르던 세대를 만족시키는 무대가 없어 아쉽습니다. 손종열 가곡에 관심이 많아 가곡 부르기 모임을 인사동에서 매달 한 번씩 갖고 있습니다. 서준석 시니어 잡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있는데 시니어를 위한 음악은 없습니다. 청춘합창단도 1회 행사로 끝났습니다. 낙원상가 4층에 있는 낭만극장에서 박 대표가 ‘딜라일라’를 부르면 60대 이상 청중이 모두 따라 부른답니다. 주정서 시니어의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춤추고 떼창하고 싶다”는 구호도 봤습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본 것처럼 시니어 떼창(합창) 모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대문 문화일보 지하 홀에서도 시니어가 모여 함께 노래를 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낙원상가 4층 낭만극장에서도 음악 모임을 합니다. 시니어를 위한 무대에 다들 굶주려 있는 겁니다. 박승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 음악 무대 마련에도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 2019-02-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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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마음도 세탁기에 넣으면 깨끗해질까!
- 거품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근 통 안의 옷들을 보면서 어쩌다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을 잘 표현한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바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연말 대학로(알과핵 소극장/극단 모시는 사람들)에서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연극을 봤다. 30년 넘게 대를 이어 세탁소를 운영하는 강태국 씨의 세탁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다뤘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중견 극작가 김정숙 씨가 쓴 희곡으로 2003년 예술의전당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2005년 대학로 공연까지 33만 관객을 동원했다. 동아연극상, 희곡상도 수상했다. 극작가 김정숙 씨는 현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이기도 하다. 연극은 시간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암전 상황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잠시 후 불이 켜져서 보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 후 다시보기로 난장판이 된 상황을 되짚어온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오아시스 세탁소를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강태국 씨는 세탁소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단지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정이 오가도록 자신이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 맡긴 어머니의 옷이 생각나서 찾아온 초라한 행색의 남자에게 옷을 찾아 그냥 내어주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가 하면 무명 연기자가 오디션을 볼 때마다 손님이 맡기고 오래 안 찾아가는 옷을 빌려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로 오늘내일하는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세탁’이라는 말을 남기자 세탁소를 습격한 자녀들은 세탁소에 걸린 옷들을 뒤지며 할머니의 유품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연극은 욕심을 부리고 서로 밀치던 사람들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탁기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옷걸이마다 빼곡하게 옷이 걸린 무대를 보니 한 친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동창인 그녀는 계절별로 옷 세 벌만 남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만날 때마다 늘 눈에 익숙한 간결한 옷차림이다. 여럿이 만난 자리에서 누군가 “세 벌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하고 물었더니 “많이 갖고 있으면 나중에 여러모로 힘만 들지” 하면서 미리 정리하는 삶을 연습하고 싶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몇이 “대단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극작가이자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대표는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세탁소 혹은 세탁기에 담긴 생각을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다. 인간관계가 점점 야박해지고 물질만능주의로 물들어가는 현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연극이었다.
- 2019-01-09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