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 스토리’는 살아 있는 장난감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다. 우리에게도 영화처럼 장난감을 진짜 친구라 여긴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동심을 간직한 덕분일까. 어른들은 고장 난 장난감을 버리면서도 아이가 실망할까봐 “장난감이 아파서 병원 갔다”는 식의 말을 종종 꾸며낸다. 그리고 그 하얀 거짓말을 참으로 만들려는 이가 있다. 김종일(77)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이다.
1만 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의 베테랑이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하라는 얘기다. 이 시간을 채우기까진 대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난감병원 ‘키니스’가 문을 연 지도 어느덧 만 11년이 흘렀다. 최초가 된다는 건 꽤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에 외롭고 험난하다. 이럴 땐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10여 년 전 장난감병원 설립을 앞둔 김종일 이사장에게도 뜻을 나눌 동료가 필요했다.
“인하대 금속공학과 교수를 지냈는데, 일찍부터 은퇴 후를 고민했어요. 내가 가진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다 지금의 장난감병원을 떠올렸는데,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장난감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게 많아요. 애들이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음료를 흘리면 쉽게 고장 나 버리죠. 이걸 고치려면 전자 신호나 회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거든요. 일단 주변에 알고 지내던 동료 교수들이랑 전자업체 연구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고맙게도 대부분 흔쾌히 승낙해줬어요. 덕분에 은퇴 후 바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죠.”
그렇게 지원군이 모이자, 김종일 이사장은 사비 3000만 원을 들여 비영리 민간단체 키니스장난감병원을 설립했다. 그를 비롯해 함께하는 이들 모두 봉사하는 마음으로 무보수 재능기부를 택했다. 선한 마음으로 모인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박사’라 부른다. 대부분 60~70대로 본업이 박사인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난감 박사’라는 뜻으로 통한다.
“돈 받는 일도 아닌데 다들 사명을 갖고 임해주니 감사하죠.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분들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최고의 장난감 박사라 자부할 수 있어요. 장난감 수리 쪽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열심히 연구해온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웃음)”
사연 안고 입원하는 장난감 환자들
키니스장난감병원을 방문하려면 먼저 온라인 진료실에서 ‘입원 치료 의뢰서’를 작성해야 한다. 김 이사장은 의뢰서에 올린 사진과 사연을 보고, 70% 이상의 치료 확률이 있을 때 입원 결정을 내린다. 치료가 안 됐을 경우 오히려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기에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물론 희박한 성공 확률에도 의뢰자가 원한다면 치료를 시도해보는 편이다. 이렇게 입원하는 장난감이 매년 1만 개에 달한다. 이 많은 장난감을 박사 6~7명이 고쳐내려니 종일 허리 펼 새도 없이 치료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또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들어오는 장난감들도 60대 후반인 막내 박사가 송장 붙이기부터 포장까지 도맡아 해낸다. 인터뷰 당일에도 실시간으로 방문객과 택배 박스가 정신없이 오갔다. 봉사가 아닌 혹사에 가까운 업무량이지만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박사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장난감마다 사연이 있잖아요. 특히 돌 전 아이들 장난감 중에는 모빌이 가장 많이 들어와요. 그맘때는 엄마들이 온종일 애랑 붙어 있는데, 그나마 모빌이라도 틀어줘야 엄마도 밥 먹고 쉬거든요. 근데 그게 고장 났으니 얼마나 쩔쩔매겠어요. 또 애착하던 장난감이 없어서 잠 못 잔다는 아이들도 있고, 이런저런 사연 떠올리면 얼른 잘 치료해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 달리 아이들 물건의 경우 다소 허술하게 만들어져 고치기 난해한 게 많다고. 키니스에서는 택배비 외의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데, 치료를 위해 부품을 새로 사거나 박사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할 때도 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고쳐지지 않는 장난감은 나오게 마련. 간혹 고장 난 제품을 그대로 다시 받은 고객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단다.
“가끔 장난감이 안 고쳐졌다거나 더 고장 나서 왔다면서 안 좋은 후기를 남기는 분들도 있죠. 우리 박사들은 실명제로 일하는데, 자기가 치료한 장난감이면 글만 봐도 다들 알 수밖에 없거든요. 참 속상하고, 어떨 땐 상처도 받아요. 치료가 잘 안 됐을 때 슬퍼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도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은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장난감 잘 고쳐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더 많습니다. 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노는 사진도 자주 올라오고, 고사리손으로 감사 인사를 적어 보내는 꼬마 손님들도 있고요. 그럴 때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낍니다.”
고장 난 장난감, 기부로 환골탈태
아픈 장난감 치료와 더불어 키니스의 주요 활동은 나눔이다. 설립 이래 해마다 저소득층 가정을 비롯해 보육기관, 장애인 시설, 치매센터(어르신들의 인지력 향상에 장난감을 활용) 등 곳곳에 1000여 개의 장난감을 기부해왔다. 특히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절대 거르는 법이 없다고. 보내는 물품의 일부는 다른 곳에서 기부한 고장 난 장난감이다. 물론 박사들이 성심껏 치료한 후 전달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 맞은편에는 ‘아나바다 본부’가 있다. 익히 아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기증받은 장난감들을 전시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난감과 교환해 갈 수 있다. 미래에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며 자원을 아끼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성장 시기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계속 바뀝니다. 아이들이 쉽게 질려 하기도 하죠. 또 얼마 안 하는 장난감은 조금만 고장 나도 쉽게 버리더군요. 그렇게 계속 새 장난감을 사주면 돈도 들지만 자원 낭비가 심하잖아요. 그러니 가급적 쓸 만한 것들은 고쳐 쓰고 바꿔 쓰고 하자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환경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부분을 일러주고 함께 실천하면 좋은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해요.”
비슷한 취지로 최근 지역마다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곳이 적잖이 생겨났다. 일정 기간 단위로 회비를 내거나 보증금을 내면 무료로 장난감을 빌려주는 식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경험하게 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물론 이 역시 훌륭한 서비스지만, 김 이사장은 아쉬운 부분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경험해보니 장난감은 고장 안 나기가 힘들어요. 아기들은 물고 빨고 던지면서 놀잖아요. 조금 큰 아이들도 먹다가 음식물을 흘린다거나 실수로 떨어뜨려서 망가지기 일쑤죠. 그런데 대부분 대여점의 정책을 보면 장난감이 고장 났을 때 수리비 명목의 비용을 내야 하더라고요. 키니스에 장난감 맡기는 분 중에도 대여점에서 빌린 게 고장 나서 갖고 오신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도 못 고치면 그만큼 돈이 나갈 테죠. 그러다 보니 엄마들도 애들한테 맘껏 갖고 놀게 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더군요. 또 장난감에 애착이 생겼는데 반납한다고 하면 아이가 슬퍼하고 실망할 거 아녜요. 그런 점들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은퇴 후 장난감 박사를 추천합니다
최근 키니스는 인천광역시 고령사회대응센터와 함께 ‘장난감 수리 전문가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난감 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인데, 이를 통해 양성된 인력은 인천 무료 장난감 대여소에서 장난감 수리 전문가로 활동한다. 지난해에는 인천시노인인력개발센터와 ‘장난감 척척박사 사업 활성화와 맞춤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이러한 인력을 전국의 장난감 대여소에 배치한다면 앞서 언급한 수리비 부담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아울러 그 어느 세대보다 은퇴 이후 중장년들이 장난감 박사로 함께 해주길 바라고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초반에는 공구랑 장비 마련한다고 사비를 많이 썼어요. 또 그때만 해도 박사님들 경험이 부족하니 기술도 지금만 못했고요. 요즘은 여기저기서 후원도 꽤 들어오고, 우리만의 노하우도 웬만큼 쌓였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우리 일을 권할 만한 좋은 여건을 만들었다고 봐요. 간혹 기술 없다고 주저하는 분들도 있는데, 와서 익히면 되니 큰 문제는 아녜요. 중요한 건 ‘봉사하려는 마음’ 그게 얼마나 진심인가죠. 게다가 나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데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나처럼 너무 나이 든 노인은 좀 그렇고(웃음) 60대 후반이면 딱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 여생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앞두고 있을 때 한 꼬마 손님이 찾아왔다. 장난감이 잘 치료되어 기분 좋은지 껑충껑충 뛰며 병원 문을 나서려는데, 김 이사장이 황급히 무언가를 챙겨 아이에게 다가갔다. 막대사탕이었다. 손님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는 아이들을 보면 과자든 풍선이든 꼭 뭔가 하나를 쥐어 보내야 직성이 풀린단다. 사탕을 받아 들고 신이 난 꼬마를 보는 김 이사장의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표정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이내 예상 답안이 흘러나왔다.
“내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고칠 겁니다. 이렇게 매일 뜻밖의 동심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지금처럼 다른 욕심 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해요. 아, 욕심나는 타이틀이 하나 있긴 한데요(웃음). 어린이날 창시자 방정환 선생처럼, 먼 훗날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장난감병원 설립자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그만큼 키니스가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이고요. 그게 제가 미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노숙자가 고령화하고 있다. 평균 연령대도 약 2세 높아졌으며, 60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은 2021년 11월 노숙자 1300명을 대상으로 지자체 직원들의 개별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후생노동성에서 실시하는 ‘노숙자 생활실태조사’는 5년에 한 번씩 진행된다.
2021년 ‘노숙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자 중 60세 이상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특히 70세 이상 비율은 34.4%로, 지난 2016년의 19.7%보다 14.7%p 증가했다.
노숙자의 평균 연령대는 63.6세로 2016년 대비 2.1세 높아졌다.
노숙 생활을 한 기간이 10년 이상인 사람은 전체의 56.3%, 20년 이상인 사람은 25.1%였다.
이들이 잠을 청하는 곳은 공원이 27.4%로 가장 많았고 하천이 24.8%로 뒤를 이었다.
현재 수입을 얻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전체의 47.9%였으나, 이 중 80%는 월수입이 10만엔(약 98만 원) 미만이었다.
향후 일을 하면서 자활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19.3%였으며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응답은 39.9%에 달했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NPO 법인 ‘홋도플러스’(ほっとプラス)의 후지타 타카노리(藤田孝典) 이사는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취업이 어려운 나이이거나, 연금을 받고 있어도 집세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노숙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생활 보호뿐 아니라 부족한 상담 제도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배우 이원종(56)과의 인터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기분이었다. 그와 나눈 이야기에는 희로애락이 녹아 있었으며, 그의 다양한 모습도 깃들어 있었다. 이원종은 연기에 관해 얘기할 때는 한없이 진지했고, 재밌거나 행복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세상 깊은 보조개 미소를 지었다. 특히 그 미소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았다.
사실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이원종은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처럼 편안하다. 지난 8월 연극 ‘더 테이블’로 2017년 이후 5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원종. 한껏 고무된 그는 10월에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저는 연극무대에 계속 서고 싶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집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죠. 하지만 10년간 쌓은 연극 경력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까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배우로서 누린 혜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은 제게 보약이고, 링거예요. 드라마나 영화로 열심히 달렸으니 연극으로 열심히 잘 쉬기도 해야죠.”
타고난 배우의 우연한 탄생
지금은 천명과도 같은 배우의 길. 역사의 서막은 우연히 시작됐다. 경기대학교 재학 당시 이원종은 예쁜 여학생을 보고 따라서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도 배우에 큰 뜻은 없었다고. 그러다 강원도 최전방으로 입대한 후 신의 계시 비슷한 것을 느꼈다.
“군대에 있다 보니 1, 2학년 때 연극했던 것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휴가 나오면 도서관에 가서 연극에 관한 책을 무작위로 골라 읽었어요. 연극의 ‘연’ 자도 몰랐는데 책을 읽다 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복학한 후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공부도 열심히 했죠.”
배우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원종은 무작정 대학로로 향했다. 여러 극단을 전전하던 끝에 마침내 그는 극단 ‘미추’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추는 과거 MBC와 마당놀이를 공동 주최하던 유명한 극단이다.
“실전 무대 연기에 대해 극단에서 많이 가르쳐줬어요. 연극배우는 많은 탤런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탈춤이나 한국무용, 발레 같은 현대무용도 해야 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것이 좋죠. 그런 것들을 배우고 자신을 채우면서 배우들은 ‘연극뽕 맞았다’는 표현을 썼어요. 저는 연극뽕을 아주 제대로 맞았죠. 하하.”
이원종은 미추에 들어가고 이듬해인 1992년 ‘오장군의 발톱’ 주연을 맡았다. 그 작품으로 러시아에 공연도 하러 가고, 연극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연극배우의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1990년대는 이원종에게 가난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원종은 1994년, 6세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연기 선생님으로 두 사람은 가진 것 없이 사랑으로 가정을 이뤘다. 그는 “마당놀이 한 번 하면 50만 원 번다. 공연을 3개월 동안 하는데, 연습은 또 석 달 한다. 그러면 1년이 거의 다 지난다”라며 1년 연봉이 50만 원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기 때문에 그는 젓갈 장사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명세 감독이 이원종에게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출연 제의를 해왔다. 그러나 이원종은 ‘연극은 순수예술, 영화는 대중예술로서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이명세 감독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러브콜을 보냈고, 마침내 이원종은 마음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끝내 출연을 거절했으면 그는 평생 후회할 뻔했다.
“감독님이 저의 거절에도 대본을 주시고, 배역도 저한테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형사 역할과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짱구 역할이 있었는데, 결국 형사 역할을 했어요. 장장 7개월 동안 촬영했죠. 그때는 필름으로 촬영해서 한 신 한 신이 무척 소중했고, 연기 연습을 더 철저히 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 거의 다 배웠죠.”
이후 이원종은 2001년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현각 스님, ‘신라의 달밤’에서 조폭 마천수로 등장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 SBS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종로 두목 구마적을 연기해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극 중 구마적과 김두한(안재모 역)의 대결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 64%까지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원종은 “ 20년이 지났는데 저는 아직도 구마적”이라면서 “구마적은 내게 행운이자 숙제”라고 표현했다. “가수도 평생 히트곡 하나 남기기 어렵다고 하는데, 배우로서 닉네임 하나를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죠. 반면 역할이 제한된다는 단점도 있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어요.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코믹한 연기도 많이 했죠.”
OTT의 유행, 또 다른 전성기로
올해 이원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먼저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이하 ‘종이의 집’)에 모스크바 역으로 출연했다. ‘종이의 집’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동명의 스페인 드라마가 원작이다. 이원종은 원작의 모스크바와 싱크로율이 높아 제작진이 캐스팅 1순위로 점찍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종이의 집’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그린다. 원작의 성공으로 기대감이 매우 높았으나,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후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원작을 따라 하려는 것이 느껴져 이질감이 강하게 들었다는 반응이다. 이원종은 이에 대해 안타까운 탄식을 했다.
“우리가 조폐국을 털었잖아요. 우리나라 돈은 유럽 전역에서 쓰이는 유로화와 달리 남북한에서만 쓰이는 돈이에요. 그리고 원작에서는 조폐국에서 10억 유로, 한화로 1조 3700억 원 정도를 털었지만, 우리는 4조 원을 털었어요. 그것을 어떻게 운반할지도 재미가 될 수 있죠. 겨울에 후반부인 7~12부가 공개될 예정인데, 한국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본격적으로 재밌어질 예정입니다.”
또한 ‘종이의 집’을 통해 젊은 배우들과 호흡한 이원종은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종서의 연기에 대해 “날것의 매력이 있다”면서 칭찬한 바 있다. 이원종은 전종서를 비롯한 젊은 세대의 연기를 칭찬한 것이라고 짚었다.
“전종서는 제가 지금까지 봐온 것과 다른 연기를 하는 거예요.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사물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거죠. 참 신선했고 같이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저는 현재 50세가 넘었고, 그 친구는 20대잖아요. 지금 20대는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느꼈고, 30대, 40대가 되면 어떤 연기를 할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또 이원종은 쿠팡플레이 드라마 ‘범죄의 연대기’에 출연한다. 범죄물에 유독 많이 출연하면서 형사와 범죄자를 오간 이원종. 이번에는 피해자 대표 역을 맡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원종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예로 그는 OCN ‘손 the guest’에서 박수무당 역을 연기했는데, 무당을 직접 여러 명 만나보고 탐구했다. 덕분에 실감 나는 연기가 가능했다.
“‘범죄의 연대기’에서 맡은 역할은 대학교 강사인데 사기를 당한 사람이에요. 아는 변호사한테 부탁해서 기록물도 확인해봤는데, 실제로 교수들이 사기를 많이 당하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이 어떤 과 교수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도록 열어두셨어요. 제가 관심이 많은 철학과 교수로 설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원종은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무대에 오른다. 10월 4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공연이 열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원작으로, 외딴 산장에 모인 남녀 8명과 한밤중에 침입한 은행 강도범의 인질극을 그린다. 이원종은 극 중 도모미의 아버지 노부히코 역을 연기한다.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배우 13명이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쳐요. 요즘 이런 연극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어두운 이야기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엉뚱하고 독특해요. 거기서 나오는 재미를 자신합니다.”
실제 이원종은 어떤 아빠일지 궁금했다. 슬하에 두 딸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이원종은 “아버지가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자상하고 친근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애들이 제가 자상하다고 느낄지 아닐지는 또 모르는 일이죠. 큰딸은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고, 둘째 딸은 외국 대학교에 다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저는 큰딸한테 한 달에 월세 개념으로 30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립심을 길러주고 싶어서죠.”
‘기회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원종은 어떤 작품이든 어떤 역할이든 노력을 쏟는다. 그래서 매 작품 다른 모습이 나오고, 새로운 연기가 보인다. 외국 작품처럼 우리나라 작품의 주인공도 나이가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원종이 주인공 그 자체인 작품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떤 배역을 맡아 연기하든지 ‘이원종이라는 배우, 참 재미있더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는 물리적인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아 잘 소화해내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1965년생인데 내년에는 제게 맞는 작품이 뭐가 될지 아직 모르죠. 그런데 50세든 60세든 마음은 똑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나이는 먹었지만 저도 청춘이에요. 늘 사랑하는 것을 느끼죠. 그러니까 60대도 60대에 맞는 사랑과 이별이 있는데, 그게 제게 연기로 주어진다면 잘 소화해내고 싶다는 거예요.”
마네의 인상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처음 본 당대 사람들은 ‘예술이 아니다’,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대중은 그들을 ‘창시자’라 일컬었고, 작품들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저마다 산통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 모바일 아트로 미술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모바일 아티스트 정병길(69) 씨다.
어떠한 창조적 본능이나 이끌림 같았다. 정병길 씨가 그림을 그린 까닭 말이다. 학창 시절 다른 숙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림이나 공작(工作) 과제는 눈을 반짝이며 해냈다. 슥슥 휙휙 그렸다 하면 사생대회 1등은 떼놓은 당상. 뛰어난 실력에 담임선생님이 미대를 권유한 적도 있었다. 물론 뜻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엔 다른 꿈이 더 앞섰다. 우장춘 박사처럼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어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원하는 전공보다는 장학금을 주는 농협대학을 택했고, 곧장 밥벌이를 시작했다.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화실까지 마련해가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목표로 하는 꿈보다는 오래 지니고픈 로망이었기에 쉬이 접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여느 직장인처럼 인생 1막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
“농협 지점장까지 하다가 2010년에 은퇴했어요.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그만두고도 2~3년 더 일할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당장 몇 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눈 한번 질끈 감고 일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써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그것도 무명인이 문예활동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긴 게 큰 착오였죠.”
박수 받은 창직, 현실은 맨땅에 헤딩
정병길 씨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도 남달랐다. 당초 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해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은퇴 후 1년 동안 칩거하며 쓴 글을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2년 뒤엔 두 번째 책 ‘이젠 아빠를 부탁해’를 펴냈다.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그림으로는 ‘상하이아트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개인전도 열며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결국 홍보 문제다 싶더군요. 신문 광고도 몇 번 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죠. SNS를 배워 직접 홍보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관련 강의를 듣다 만난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이 모바일 미술 앱을 소개해줬습니다. 태블릿 PC에 떠듬떠듬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당시 강사에게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줬더니, 모바일 미술을 업(業)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게 창직의 신호탄이 된 셈이죠.”
‘모바일 미술’(아트)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그림 앱을 이용해 창작한 미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물감, 붓, 캔버스나 이젤 등이 필요 없고, 그 덕분에 별도로 화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이나 SNS상에 작품을 게시하거나, 출판물에 사용하기도 하고, 캔버스나 종이 등에 출력해 유화나 수채화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그런 모바일 미술이 정병길 씨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정보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입소문을 탄 장르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했다. “옳거니!” 창조적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렇게 개척자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모바일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선생님도 없었어요. 거의 독학으로 기법을 습득하고 펜업(삼성전자 그림 공유 서비스) 도움을 받았죠. 작품을 만들어 뭔가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 분야를 알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SNS에 강좌 정보를 올렸더니 수요가 꽤 있더군요. ‘그러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죠.”
그렇게 ‘모바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이를 개념화하고, 강좌와 전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시대가 발전하며 모바일 미술용 앱과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관련 툴(Tool)이나 출력 기술이 정교해지며 이 분야는 상승세를 탔다. 혹자는 찰나의 아이디어가 운때 맞았다 여길지라도, 이는 나름의 안목을 갖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얻은 선물과 같다. 그 성과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척자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미술계는 기득권의 장벽이 높고 굳건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예술 분야 개척자들을 보면, 대부분 목숨 걸어가며 단초를 마련하잖아요. 저는 아직 모바일 미술 때문에 목숨까지 건 적은 없지만, 돈은 참 많이 까먹었습니다.(웃음) 노후에 도움 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리스크가 될까봐 걱정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와닿더라고요.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전하긴 해도 뭔가 즐거움이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노후 리스크죠. 그래서 기왕 시작한 거 최대한 부딪혀보려 합니다.”
‘NFT, 줌’ 신기술과 만나는 모바일 아트
현재로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단 투자하며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모바일 아티스트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과제인 셈이다. 현재 작품을 판매하거나 저작권료로 얻는 소득은 높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과 직업을 알리는 강의를 통한 수입이 주가 된다. 여타 예술처럼 경매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평가받아 높은 금액이 책정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데다, 작품의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일반적인 경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지만,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그림 파일을 종이나 다른 소재에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미술의 가치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까?
“판화 역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잖아요. 대신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고, 찍는 순서대로 숫자 표기와 서명을 남기죠. 가령 판화 아래 1/10이라고 표기돼 있다면, 10개 찍은 작품 중 첫 번째 에디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판화의 개념으로 가치를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또 실크스크린 판화는 판면의 구멍에 잉크를 넣어 찍는데, 이 기법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작품이라도 툴을 이용해 색이나 요소를 수정하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쉽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을 접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근래 디지털 수집품 거래가 활발해지며, 이러한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구로 NFT가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모바일 미술 작품의 경우 파일 형태로 저장돼 NFT로의 변환이 용이하다. 정병길 씨 역시 이러한 장점을 살려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집중한 아이템은 바로 ‘줌’(Zoom,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주로 방과후교실이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모바일 미술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하고 기술을 익힌 그는 이제 줌에 관해서도 반전문가가 됐다. 최근 2년 사이 ‘줌을 알려줌’, ‘줌 활용을 알려줌’이라는 줌 활용서를 두 권이나 펴냈으니 말이다. 물론 줌 역시 모바일 미술과의 접점을 꾀하고 있는 그다.
“제 목적은 모바일 미술의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데, 그동안 시공간의 제약이 많았거든요. 특히 섬이나 농어촌에 사시는 어르신처럼, 문화 수혜 격차를 겪는 지역민에게 줌으로 모바일 미술을 전파하려고 해요. 또 그런 분들도 모바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줌 전시회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꼭 전에 없던 무언가를 해야만 창의적인 건 아니에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하느냐에 따라 창작과 창직이 가능하다고 봐요.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신기술과 잘 연결 지으면 누구든 저처럼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병길 씨는 2020년 설립한 모바일아티스트협동조합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고, 장차 자격증 발급 절차 등도 논의해볼 방침이다. 그런 그가 모바일 아티스트로서 갖는 최종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모바일 아티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어쩌면 자칫 거대한 포부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해 가수들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곳곳에 노래방이 즐비한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예술이 결국 거대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바일을 통해 손쉽게 미술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 가수처럼, 우리 모두 저마다 작은 예술가가 되는 거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 예술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롭게 표현해야 삶이 풍요로워져요. 많은 중장년이 모바일 아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20초 남짓한 짤막한 순간에도 무언가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을 무위(無爲)로 흘려보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또한 목표라 답한다. 어딜 가든 획 하나라도 긋고 오는 게 목표라고. 그 말을 들으니 수많은 획이 켜켜이 모여 언젠가 미술계에 큰 획을 긋게 될 정병길 씨의 모습이 더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는 시간. 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조급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아직 인생은 늦지 않았으니까.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놓은 작품만 1600점이 넘는다고 해요.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고 하고요. 그분의 삶은 제게도 큰 영감과 희망을 줍니다. 제가 힘을 얻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네요. 여러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일본 시니어 매거진 ‘하쿠메쿠’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걱정을 덜 하는 경향이며, 절약과 저축을 통해 노후 경제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하쿠메쿠는 주식회사 캐리어맘과 함께 30~79세 일본 여성 687명을 대상으로 한 ‘돈에 관한 의식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 참여자들이 자신의 자금 운영 방법에 대해 만족하는 비율은 50% 정도였으며, 그 비율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증가했다. 70대의 경우 만족한다는 반응이 61.6%로 가장 높았고, 이어 60대 57.2%, 50대 44.0%였다. 30대의 경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19.3%로 가장 낮았으며, 40대도 39.6%에 그쳤다.
노후 자금에 대한 생각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났다. 향후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전체 평균 54.2%가 우려를 표했는데, 연대가 높을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 30대의 90.4%가 돈에 관해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한 반면, 70대는 35.3%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60대는 40.2%, 50대는 66.5%, 40대는 75.9% 등 연령대와 수치가 반비례하는 양상이다.
50대 이상 중장년에게 노후 자금을 위해 현재 하는 노력이 무엇인지 묻자, ‘절약 한다’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50대 64% △60대 57.9% △70대 67.7%). 그 다음으로는 ‘저축’을 꼽았는데, 50대의 경우 69%가 저축에 할애하고 있었다. 같은 항목에 대해 60대는 50.8%, 70대는 41.4%로 점점 낮아지는데, 이는 취업 상태의 유무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50대의 47.5%는 취업 전선에 있었지만, 60대는 24.8%, 70대는 6.1%만이 일을 한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를 공동 주최한 캐리어맘의 츠츠미 카나에 대표는 “돈에 대한 인식이 호경기를 경험한 50대를 경계로 나뉘는 양상이다”라며 “취업난을 겪었던 40대 이하는 일을 하면서도 늘 자신의 수입에 대한 불안이 큰 상태인 반면, 버블경제기를 지나온 50대 이상의 경우 일에서도 벌이보다는 보람을 추구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쿠메쿠 연구소 우메즈 유키에 소장은 “세대가 격차가 부각된 결과다”라며 “부모 세대는 돈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자녀세대는 향후 자금에 대한 불안이 크다. 물론 응답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시니어들 역시 자신들보다는 자녀나 손주 세대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기업이나 개인도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해볼 타이밍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제2의 인생 연구’ 리포트 결과를 비교해보면, 미국 역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재정 상태를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례 없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절약을 통해 자신의 노후 자금을 슬기롭게 운영하며 경제력을 유지한다고 응답했다. 앞선 조사에서의 일본 시니어들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한국 또한 나이가 들수록 평균 가구 지출이 낮아지고, 소비 자산에 맞춰 절약하는 모습은 일본, 미국과 같았다. 한편 자신의 경제 상태 평가에 대해서는 다른 두 나라와는 결과가 반대였다. ‘2020 고령화연구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서 59~64세 응답자의 경우 자신의 경제 상태 점수가 60점대였으나, 65~79세는 50점대, 80세 이상은 40점대로 고령일수록 그 만족도가 떨어지는 양상을 나타냈다.
●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일컫는다. 공자가 50세에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천명은 인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우주의 섭리나 보편적 가치를 이른다. 쉰 살이 되던 해, 이광식(71) 천문학 작가는 지난 삶을 내려놓고 우주를 탐닉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인생은 ‘별 볼 일’이 더 많아졌다.
이광식 작가가 천직이라 여긴 출판사 일을 그만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주 때문이었다.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천문학 서적을 두루 펴냈고, 한국 최초로 천문 잡지 ‘월간 하늘’을 창간하며 사심을 담았지만, 우주를 향한 갈증은 계속됐다. 발은 땅에 닿아 있어도 머릿속은 늘 별밭을 거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자신의 처지가 억울해졌다.
“하루는 야근하고 가는데 어느 집 베란다에 누런 조등이 걸려 있더군요. 그걸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이렇게 정신없이 밥벌이하다 죽으면 저런 조등 하나 켜고 끝나겠구나. 내가 사는 우주라는 동네는 아직 산책도 못 해봤는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대문 걸어놓고 지내다 집 안에서 죽는 꼴이잖아요. 마침 출판사를 인수하겠다는 임자도 나타났겠다, 그길로 일을 접고 강화도 퇴모산에 들어왔습니다.”
우주의 가르침, 그것은 사랑
‘우주로 떠나기 전(죽기 전) 백수가 되어 맘껏 빈둥빈둥 게으름 피우며, 읽고 싶은 책 읽고 별 보며 우주나 사색하다 가자.’ 이것이 그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리고 퇴모산에 들어오며 모든 것을 단번에 이뤄냈다. 쉰이라는 나이에 자칫 무모한 선택일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이 또한 천명이었을까. 우주를 사색하던 시간 속 그는 천문학 작가라는 제2의 직업을 얻었다.
“낮에는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밤에는 별을 보고 책도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수식이 많은 천문학서는 반도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오죽하면 중고등학생 수학, 과학 참고서를 사다가 공부했다니까요.(웃음) 그렇게 해도 천문학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더군요. 어쨌든 10년 정도 관련 책만 100여 권 읽다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천문학 서적을 재미있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집필을 시작했죠.”
가을부터 시작한 작업은 그해 겨울에 마무리됐다. 교양천문학서 스테디셀러에 빛나는 ‘천문학 콘서트’(2011)가 그렇게 탄생했다. 인문학적 융합형 천문학 도서라는 호평에 이어, 쇄를 거듭하며 인세도 적잖이 받았다. 들어온 돈은 고스란히 별과 우주를 산책하는 데 쓰였다.
“그 인세로 지금 사는 집 2층 베란다에 개인 관측소 ‘원두막 천문대’를 지었어요. 요즘도 가끔 올라가 10인치 돕소니언 반사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죠. 여름엔 안드로메다은하를 많이 보는데, 지구로부터 250만 광년 떨어져 있어요. 인간의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라고 해요. 또 우리가 보는 별은 대개 수백 년 전에 출발한 빛 알갱이들이죠. 그렇게 별과 우주의 방대한 시공간에 비하면 인류는 모닥불에서 탁 튀어 올랐다 사그라지는 불씨 한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천문학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밤하늘을 마주할 때면 그러한 물음을 통해 삶을 성찰한다고. 오랜 사색 끝에 이 작가가 내린 결론은 하나, 바로 ‘사랑’이다.
“수십 년 우주를 고찰하며 깨달은 점은 ‘결국 인간이 할 일이라곤 사랑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인데, 그 장구한 시간 앞에 우리네 인생은 그야말로 찰나입니다.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궤도에서 찍은 사진 속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아요.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지요. 그렇게 조그만 행성에서 길어야 100년 남짓 머물면서 욕심내고 아옹다옹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천명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슬기로운 삶이라 생각해요. 셰익스피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죠. ‘머지않아 헤어질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라.’ 그게 우주가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불을 끄고 별을 켭시다
이광식 작가는 우주를 잊고 사는 현대인을 일컬어 ‘우주불감증’을 앓는다고 표현했다. 특히 지금처럼 광해(光害)가 심하기 전, 깜깜한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꿈을 키웠을 중장년조차 우주감수성을 잃어가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에 우주와 별을 더 가까이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우주와 별을 알아가고, 나와의 관계를 이해하면 보다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갖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실제 거리만큼이나 별과 인간의 관계는 다소 멀게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에 그는 인간은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라며 관계성을 설명했다.
“흔히 별을 까마득한 존재라 여기는데, 알고 보면 인간은 별 먼지로 이뤄졌습니다. 수소를 제외한 지구상 모든 물질은 별과 초신성에 의해 생겨났으니까요. 철, 칼슘, 탄소 등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 또한 별들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셈이죠.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버이별’에서 몸을 받고 태어난 존재랍니다. 즉 별이 없으면 인류도, 나도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별과 인간은 밀접한 관계죠. 별지기들이 별을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별지기 대부분이 이러한 별의 존재를 알리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가령 어떤 별지기들은 길가에 천체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행인들에게 토성을 보여주는 등 자신이 아는 별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천체 망원경이 많이 보급되고 관측 기술이 발달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별 보는 일’을 어렵게 여긴다. 하지만 이 작가는 “당장 오늘 밤이라도 별지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제가 수백만 원 하는 어마어마한 장비를 가진 줄 알아요. 그런데 지금 있는 굴절 망원경도 20만 원 정도고, 원두막 천문대에 놓은 몸체만 한 반사 망원경도 100만 원대입니다. 그거면 달 분화구는 물론이고 목성 줄무늬도 관측 가능해요. 관심 있다면 투자할 만한 금액이죠. 꼭 망원경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북극성을 비롯해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만 2000개가 넘거든요. 그러니 별지기가 되고 싶다면 일단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보세요. 동시에 우주와 별과 나의 관계를 헤아린다면 그것으로 별지기의 자격은 충분합니다.”
이 작가는 서울 같은 불야성 도시에서는 별 관측이 어려우니, 강원도나 강화도 등 인가가 적은 지역을 찾길 권유했다. 더불어 그는 한국의 빛 공해 문제를 일컬으며, ‘별 볼 일’ 많은 세상을 위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이 빛 공해가 심각한 걸로 세계 2위라고 해요. 빛 공해 지역이 국토의 89.4%를 차지하죠. 때문에 국내에서 밤하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양양 ‘별빛 보호지구’처럼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단순히 별 관측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수면 장애나 생태계 교란 등 환경 문제도 일으킨다고 해요. 그러니 인간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밤에는 불을 끄고 하늘의 별을 켜보면 어떨까요?”
“2022년 개기월식 놓치지 마세요!”
인터뷰 말미에 이광식 작가는 별지기를 꿈꾸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희소식을 전했다.
“다가오는 11월 8일은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월식은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해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죠. 우리나라 어디서든 관측할 수 있는데, 좀 더 잘 보려면 주변에 큰 건물이나 높은 산이 없고 동남쪽 하늘이 트인 지역이 좋아요. 꼭 실제로 그 장엄함을 마주하시고, 우주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1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약자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그중 절반 이상이 고령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제25조’에 따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하는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016년 이후 5년만이다. 여기서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교통약자 유형별로 살펴본 결과, 65세 이상 고령자가 약 885만 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57.1%)를 자치했고, 어린이(321만 명, 20.7%), 장애인(264만 명, 17.1%), 영유아 동반자(194만 명, 12.5%), 임산부(26만 명, 1.7%) 순이었다. 아울러 장차 고령화 속도에 따라 고령자 교통약자는 5년간 약 218만 명 급증(연평균 5.6%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교통약자 수는 2016년(1471만 명) 대비 약 80만 명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약 6만 명 감소한(-0.1%) 데 비하면 그 비율이 크게 상승한(+7%)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교통약자 이동편의 정책 추진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특히 전체 교통약자 교통사고 비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에서도 고령자의 경우 감소폭이 가장 적어 더욱 관심이 필요한 유형에 속한다.
고령자의 경우 지역 내 이동에서는 대중교통 외 도보 이용(17.3%) 비율이 높았고, 지역 간 이동에서도 승용차 외에도 시외·고속버스(24.7%)와 기차(12.3%) 등 대중교통을 적지 않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유형에서 지역 내 이동 시에는 버스(51.6%)와 지하철(14.2%) 등 대중교통을, 지역 간 이동 시에는 승용차(66.2%)를 애용하는 결과와는 다소 상이했다.
한편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정책을 묻자 고령자들은 ‘버스, 지하철에 편의시설을 설치해 대중교통 이용 편리 도모’(33.7%)를 가장 많이 답했다. 이어 ‘몸이 불편한 교통약자에 대한 특별 이동수단 확대 설치’(28.9%), ‘안전하여 장애물이 없도록 도로의 보행환경 개선’(21.1%) 등을 꼽았다. 고령자들은 세부 조사를 위한 심층 인터뷰에서 “버스 전광판 및 노선도의 글자크기가 좀 컸으면 좋겠다”, “안내 음성이 너무 작다”, “환승 구간이 긴 지하철에 무빙워크가 있으면 편할 것 같다. 중간에 의자라도 있었으면 한다” 등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윤진환 종합교통정책관은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교통 약자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관할 교통행정기관에 미흡한 사항을 개선하도록 저극 권고할 것”이라 밝혔다.
반짝이는 것은 늙지 않는다. 일을 향한 열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짝이는 이 역시 늙지 않는다. 춘삼월 여린 잎 같던 목소리는 푸르다 못해 영글었고, 소년은 단단한 어른이 되었지만 반짝이는 두 눈은 24년 전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사람을 사랑하며 오래도록 푸른 청년(靑年)으로 남을 임형주(37)의 이야기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최연소’, 하나 덧댄다면 ‘최초’를 꼽겠다. 2003년 만 17세 나이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헌정사상 최연소 애국가 독창자가 됐다. 같은 해에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단독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국내 3대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여는 대기록은 10년 전에 세웠다. 데뷔 15주년에는 앨범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한 독창회를 열면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무대(대극장, M씨어터, S씨어터, 체임버홀)에 서본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음악가로서 세울 수 있는 기록은 전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두 살 소년이 상상 못한 숫자들
수집하듯 온갖 기록을 쓸어 담은 세월이 24년이다. 지금의 임형주는 데뷔 25주년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 팝페라 테너지만, 1998년 데뷔 당시 열두 살 소년은 이 모든 기록적인 숫자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4년이 ‘꽃길만 걷는’ 시간이었을 것 같지만, 그는 스스로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평가한다. 선배가 없는 팝페라 장르에서 활동하는 건 흙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작업과도 같았다.
지쳤던 걸까. 언제부터인가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만 등장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노래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명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뜬소문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로마시립예술대학 성악과 석좌교수, 미국 그래미상 심사위원, 음악평론가 임형주로 살았다. 대중과 멀어지면서 ‘세월호 추모곡 가수’, ‘애국가 소년’쯤으로 이미지가 축소됐다.
그러다 가수 임형주가 지난 5월 JTBC ‘뜨거운 씽어즈’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췄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예상 못 한 깜짝 등장이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은 다 차치하고 진정성을 전하는 노래가 최고의 노래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출연진의 도전을 응원한 그는 시니어 합창단과 함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겸손한 자세와 청아한 목소리가 갖는 힘은 여전했다. ‘뜨거운 씽어즈’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함께 부르는 장면의 유튜브 동영상은 두 달 만에 134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중의 관심이 전보다 덜하리라는 예상을 뒤엎은 수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수로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데뷔한 지 오래되다 보니 ‘왕년의 스타’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도 잘 출연하지 않았으니 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의 데뷔 무대이자 첫 방송 출연이었던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영상은 ‘온라인 탑골공원’(1990~2000년대에 유행한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계정을 총칭하는 신조어)에 게재됐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하지 않느냐며 너스레 떨지만, 대중의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있는 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 사랑을 위한 노래
그는 노래를 고를 때도 대중을 생각한다. 스스로 청중이 되어보고, ‘팝페라 테너’라는 정체성을 되새기며, 이 시대의 대중이 무얼 가장 원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고민한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곡들로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연인의 애정보다는 인류애에 가깝다.
“연인의 사랑을 다루는 가수는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 휴머니티를 다루었어요. 대중이 가장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인 팝을 통해서 인간애를 노래하죠. 사실 예술은 무한하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는 향유, 즐기는 데 있거든요. 저는 세상에 듣기 좋은 음악과 듣기 싫은 음악, 딱 두 가지 음악만 있다고 이야기해요. 예술가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할 줄 알아야 하죠.”
고고하고 우아한 음악을 한다는 생각에 괜히 으스대는 클래식 전공자들을 종종 봤다. 그 역시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싫었기에 팝페라 테너로 전향했다. 정치·경제만큼이나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그는 뿌듯한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전부터 ‘문화예술의 일상화’를 주장하던 입장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전하기 위함이다. 즐기기 위해선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콘텐츠가 일상에 스며들 자리는 없으니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며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감상은 물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고,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로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세계 유수의 작가와 작품명이 쏟아졌다. 최근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한 책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지난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도 그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 “타인을 돌보는 마음, 그 사랑이 있기에 사람은 오늘도 살아 있다.” 인간애를 노래하는 가수다운 모습이다.
숲을 만드는 일을 꿈꾸다
올해로 서른일곱의 나이지만, 데뷔한 지 24년이 지났다. 인생의 3분의 2를 올곧이 음악에 바친 셈이다. 인간 임형주의 삶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지만 흘러간 과거가 아쉽지는 않다. ‘음악과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몇 시간 지나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앨범 제작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지만, 사람은 죽어도 앨범은 세상에 남아 있을 걸 생각하면 열심히 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굉장히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다른 음악가들보다 조금 이르게 은퇴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커리어상 최정상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지금이 제 목소리의 전성기임이 느껴지거든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뒤에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하려고 해요. 돌이켜보니 데뷔하던 때도 왠지 ‘나는 일찍 은퇴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네요.”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끝을 떠올리자니 가수 임형주를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태도다.
현역에서 은퇴한다 해도 문화예술계에 일조하려는 계획은 확고하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행사를 직접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노래가 꽃이자 나무라면, 가수로서 노래 부르는 것은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일이다. 예술감독은 행사에 쓰이는 모든 음악을 심고 가꾸며 배치한다. 국가 기념식이나 올림픽 개·폐막식이라는 하나의 숲을 만드는 작업이다.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줄 묘목을 가꿀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국내 대학에서 제안한 교수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팝페라’의 길을 걸을 후배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행정가로도 활약하고 싶다. 인생 2막에 대한 계획을 늘어놓는 모습이 장래 희망이 너무 많아 고민인 어린아이를 닮았다.
바빠 나이 들 시간조차 없는 청년
차차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지만, 당장은 9월에 발매될 정규 앨범 8집 ‘Lost In Memory’를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번 앨범에는 1970~1980년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 대중가요를 담을 예정이다. 독립군 애국가나 ‘봉선화’, ‘사의 찬미’ 등 1920~1960년대 노래를 수록한 정규 7집 ‘Lost In Time’과 시대적으로 연결되는 앨범이다.
“지난 앨범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는 ‘잃어버린 추억’에 대해 다뤄보려고 해요.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에는 트로트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곡가 길옥윤, 박춘석, 이봉조와 그들의 뮤즈인 패티김, 혜은이, 정훈희나 이미자의 가요를 녹음하고 있어요. 패티김의 ‘이별’이나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정훈희의 ‘안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빠질 수 없죠.”
10월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신보와 같은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8집에 실린 노래 외에도 가을에 어울리는 추억의 팝송이나 연주곡을 함께 선보이려 한다고. 5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를 곁들일 예정이라, ‘사랑은 생명의 꽃’(패티김)처럼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곡을 듣다 보면 특히나 코끝이 찡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선 첫 베스트 앨범을 내려고 한다. 그의 모든 대표곡을 앨범 한 장에 담을 예정이고, 앨범 발매 기념 독창회 역시 진행하려 한다. 내년에 코로나19가 완화되면 국내나 해외 순회공연도 떠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전국 25개 도시를 돌아보고 싶어요. 숫자 맞추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TV 프로그램이나 매체 인터뷰 등 섭외 제안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해요. 순회공연을 돌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난 뒤겠지만, 내년은 인간 임형주이자 음악가 임형주로서 제 인생을 결산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바빠서 나이 들 시간이 없다”던 유명 배우의 발언이 떠올랐다. 임형주는 배움을 멈추고 안주하려 할 때 사람이 비로소 ‘늙는다’고 생각한다. 고로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잠을 설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받고 싶은 상이 남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라고 대답한다. 오래도록 푸르를 청년일 수밖에.
서울시가 민선 8기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중장년의 경제활동 및 사회참여를 지원해온 복지정책실을 평생교육국으로 이관한다는 조례 개정이 지난달 11일 입법 예고 후 열흘 만인 21일 통과됐다. 그 과정에서 중장년층의 일자리 사업을 전담하던 인생이모작지원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는 최근 고령화 속도에 발맞춰 지자체마다 중장년 일자리 사업을 강화하는 것과 비교해, 되레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당시 입법 예고 직후 관련 내용이 화두로 떠오르자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의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50+는 계속 존재해야 합니다”, “50+는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등 이들 내용의 주된 키워드는 ‘50+’였다. 여기서 시민들이 말하는 50+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하 50+재단)을 의미한다. 그 이유인즉 인생이모작과가 폐지되는 상황과 더불어 서울시50플러스재단 업무 담당 부서가 평생교육국으로 바뀐다면 노후 준비 및 일자리 관련 사업이 줄고 단순 교육 관련 사업에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의견서를 제출한 시민 윤 모씨는 “전체 시민의 20% 넘는 중장년의 지원 정책은 상담부터 일자리까지 종합적으로 지원돼야 한다. 중장년층 50+정책을 평생교육으로 이관하면 인생 이모작지원 사업의 범위가 너무 협소화될 우려가 있어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이 모씨는 자신을 “50+재단의 인턴십, 보람일자리 등의 활동을 통해 제2커리어를 개척하고 있는 은퇴자”라 언급하며 “예정대로 부서가 이관되면 50플러스센터는 여가나 즐기는 장소로 전락할 것이다. 현장을 무시한 채 사무 행정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50+재단은 이제 서울시 중장년에게 많이 알려지고, 매년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경청해 입법을 결정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세계에서 인정 받는 모델 홀대 이유는?
2017년 대한민국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그해 서울시와 50+재단이 50+세대(50~64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95%가 ‘서울시의 50+지원정책’이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압도적인 결과였다. 해당 보고서에서 손수호 인덕대 교수는 “단순 생계형 일자리 연계가 아닌, 인생재설계, 커리어모색과 같은 프로그램과 더불어 사회적 지원이나 협동조합과 연계하는 정책들이 사회적 기회는 물론 ‘보람’이라는 가치를 제공해 수혜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라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서울시 50+지원정책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가장 추천하고 싶은 항목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100세 시대 대비 상담, 교육, 일자리 커뮤니티 등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50+지원시설 확대’(52%)라 답했다. 새로운 일자리 모델 발굴에 대한 의견도 39%로 적지 않았다. 이에 허남철 경기대 초빙교수는 “50+세대에게 중요한 건 다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해 나갈 수 있도록 상담, 교육, 일자리, 커뮤니티 지원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 해석한 바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50+재단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인생이모작 프로그램 발굴 및 일자리 사업을 추진해왔다.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중장년 취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울50+인턴십',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 '50+적합일자리' 등 새로운 분야로의 취업을 희망하는 50+세대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을 연계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공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높이 평가 받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2020 대한민국 일자리 우수사례'에 '서울50+인턴십',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선정되기도 했다.
나아가 OECD ‘공공부문 혁신 우수사례’ 선정, 제2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정책대상 최우수상 수상, WHO 서태평양지역 건강한 고령화 혁신사례 선정 등 해외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에 타 지자체 및 기관에서 앞 다퉈 벤치마킹했고, 2015년 ‘서울특별시 장년층 인생이모작 지원 조례’가 제정된 이후, 서울시 자치구를 포함한 전국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중 68곳이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전국적으로 50+정책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올해 보건복지부는 50플러스재단을 모델로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노후준비지원센터를 지정하도록 노후준비지원법을 지난달 개정했다. 앞으로 서울의 각 자치구도 지역 노후준비지원센터를 지정하는 업무를 시와 협의해야 하는데 정작 시의 담당 부서는 없어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도만 하더라도 올해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50플러스재단 설립을 6개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50~60대의 노후 설계, 평생교육, 취·창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 중장년 행복캠퍼스’를 기존 2곳에서 7곳으로 대폭 확대하는 방침을 세웠다. 올해 초 발표한 ‘서울시 50+세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과정을 겪으면서 노후 설계 지원을 위해 가장 필요한 영역을 묻는 항목에서 1위는 건강관리(75.8점)였고, 2위가 일자리(69.1점)로 나타났다. 감염병 우려 등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일자리 지원에 대한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와 달리 오히려 일자리 지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하니 50+ 시민들은 불안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해명에 해명, 이제 해결을 위해 재고할 때
입법 예고 게시판을 비롯해 그 원성이 적지 않았으니, 서울시도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마냥 모르지는 않았던 눈치다. 지난 13일 서울시 기획조정실은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사회참여, 일자리 지원 등의 사무를 그대로 평생교육국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소관 사무의 관할이 변경되는 것이므로 기능 축소는 있을 수 없다”며 “서울시는 평생교육 기능과 연계하여 중장년층 대상의 종합적인 행정 서비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시의 표면적인 해명은 여론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15일 홍국표 의원(도봉구 제2지구, 국민의힘)은 제311회 임시회 본회의 오분발언을 통해 관련 사항을 재점화했다. 홍 의원은 “우리 사회 대다수 중장년층이 노후 준비를 위해 일자리를 계속 필요로 하고, 산업현장에서의 기술과 지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중장년을 위한 적극적인 일자리 지원이 요구된다”며 “서울시는 일찍이 중장년 일자리 전담부서(인생이모작지원과, 50+재단)를 설치했고, 중앙정부토 서울시를 벤치마킹해 작년 12월 ‘노후준비지원법’을 개정해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노후준비지원센터를 지정·운영하도록 했다. 중앙정부와의 정책적 공조와 증가하는 중장년층 취업 지원 수요를 고려하면 더욱 지원을 확대해야 하므로 서울시 조직 개편안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서울특별시의회 공식 유튜브채널
박유진 의원(은평구, 더불어민주당)도 이러한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박 의원은 “평생교육국의 현재 조직도를 보면 산하에 교육정책과, 평생교육과, 청소년정책과, 친환경급식과 등이 있다. 누가 봐도 교육에 특화·집중돼 있는 거지, 일자리 창출의 방향성과는 결이 안 맞는다”며 “중장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어려운 일을 지금까지 묵묵히 해 온 조직에게 더 큰 기회와 열정을 북돋아 줄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이지, 결이 비슷하다고 해서 조직통폐합이라는 미명으로 날려벌일 일이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단지 전임 시장의 공들인 치적이라 해서 과감히 날려도 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생이모작으로 대표됐던 중장년층 취업이나 일자리 창출에 대해 평생교육국이 그만한 역량과 기회를 만들 준비를 갖췄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작업에 속도를 더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능이 비슷하거나 중복된 투자출연기관 최소 3~4개는 통합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시 투자출연기관 26곳 중 50+재단, 평생교육진흥원, 공공보건의료재단, 기술연구원 등이 주요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에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조합 협의회는 일방 통행식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제출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조직 진단과 연구 용역 등을 종합해보면 시민과 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배려와 소통은 없고 오로지 전시성, 홍보성, 경마식 태도 일색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공공 서비스보다 이윤 추구'라는 정책 방향은 시민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인력재배치는 사업 신설, 축소, 폐지 등 재구조화에 따라 2023년 예산편성과 연계되는 사항으로, 약자와의 동행 등 서울시민을 위한 시정철학이행을 위해 필수적 조치”라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과 관계자는 조직 개편과 관련한 이러한 우려에 대해 "업무 축소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닌, 단순 부서 이관이다"라며 "과거 인문학, 교양 위주의 평생교육과 달리, 전직 교육이나 커리어 탐색 등 일자리와 연계된 교육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본다. 담당자들 또한 부서 이동만 있을 뿐 기존의 업무를 이행하는 게 원칙이다"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이 내세운 ‘약자와의 동행’을 위한 일련의 행보에 자칫 50+세대가 약자로서 뒤처지진 않을지, 과연 평생교육국은 50+세대와 동행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