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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 피해 실내로…7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환경보호가 전 세계의 과제로 당면한 가운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전시가 열렸다. 모든 생태계의 집인 지구, 인간이 거주하는 건축물, 새와 곤충의 서식지 등 세 개의 집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혹한 환경오염을 이야기한다. 이상 기후로 집단 고사한 침엽수, 아사한 동물, 남·북극의 해빙 등 죽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실제 고사목과 박제 동물, 영상 등으로 선보이며, 아파트를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생산 및 폐기되는 사물을 작품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실뿐 아니라 마당, 로비, 건물 외벽 등 여러 곳을 전시 장소로 활용해 미술관 전체를 인간을 둘러싼 환경처럼 보이도록 했으며, 특히 옥상에는 서식지를 잃은 새와 곤충의 보금자리를 설치해 전시 일정과 무관하게 올가을까지 남겨둔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시지만 그 자체가 탄소 배출 행위라는 모순을 고려해, 전시 준비 과정에서도 폐기물과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생활화했다. 배우 박진희가 국문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인류가 직면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나무 인형의 비밀 - 체코 마리오네트 일정 8월 29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 국가 체코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체코의 흐루딤인형극박물관과 협력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체코 인형극을 중심으로 156점의 인형과 무대 배경, 실황 영상 등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18세기 유랑극단에서 출발한 체코 인형극은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 도시 간 소식을 전달하며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시는 이 같은 기원을 시작으로 인형극 부흥기를 맞은 20세기 초중반, 다양한 인형극장이 탄생한 20세기 후반까지 인형극의 발전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살펴본다. 또한 단순히 역사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존을 마련해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체코에서 직접 공수해온 마리오네트 인형과 손가락 인형, 음향 장비 등을 통해 인형극을 재현해볼 수 있으며, 유랑극단이 타고 다니던 마차에 들어가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아 여름방학이 시작된 손주와 함께 방문하면 더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 Book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 (박경이 저·도트북)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용감하게 오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산 등반가다. 이들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자르고,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이유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왜 산을 오르는가?’ 어쩌면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산악인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여성 산악가 박경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으로 대신한다. 에세이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는 고산 등반가의 삶과 철학을 저자가 ‘죽음의 지대’ 히말라야 고산에 직접 오르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로 현장감 넘치게 풀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자기 존재의 참된 의미를 사유하고, 자신을 포함해 편견과 차별이란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했던 세계 여러 여성 산악인의 고충을 담담히 반추한다. 책은 단순히 감상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산 등반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셰르파와 루트 개척, 베이스캠프 생활 등 기본 상식부터 트레킹 준비물, 고산병 극복 방법 등 실전에 필요한 정보까지 한데 담아 등반 의욕을 고취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죽으러 산에 가지는 않지만 죽을 걸 알면서도 산을 오른다”는 많은 고산 등반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관중도 심판도 없지만 반칙하지 않고 정직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다 보면 서문에서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린다. 등산의 진정한 묘미는 정상이란 결과보다 자신을 믿으며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산을 탈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나태주 엮·앤드) ‘풀꽃시인’ 나태주가 한국 시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역작을 갈무리해 엮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국민 시 ‘엄마야 누나야’부터 조지훈의 희귀 시 ‘병에게’까지 총 125편이 담겼다. ◇킵 샤프 (산제이 굽타 저·니들북) 나이가 들어도 인지 기능을 총명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구체적인 12주 프로그램을 통해 막연하게 느껴지는 뇌 건강 영역을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한기봉 저·디오네) 평생 세상을 뾰족하게 바라보았던 언론인 출신 저자가 평범한 중년으로 돌아와 세상살이의 단상을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짧지만 강렬한 60여 개의 글이 또래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 Stage ◇마리 앙투아네트 일정 7월 13일~10월 3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김소현, 김소향, 김연지, 정유지, 민우혁, 이석훈, 이창섭, 도영 등 18세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뮤지컬로 다시 돌아온다. 올 7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때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각종 오명 속에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조명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혁명을 선도했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오리지널 버전과 달리, 한국 버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에 비중을 실어 두 여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특히 당대 부의 상징이었던 파리 베르사유 궁전과 빈민가 마레지구를 무대 위에 재현해 계급 간 갈등 구조를 명확히 그려낸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귀부인 드레스와 다채로운 가발도 재미를 높이는 포인트.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 대중에게 친숙한 사건을 위주로 재해석해 공감대를 더한다. ◇렁스 일정 9월 5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연출 박소영 출연 이동하, 성두섭, 오의식, 이진희, 류현경, 정인지 등 매 순간 선한 의도로 행동하기 위해 고민하는 한 연인이 사랑, 환경, 출산 등의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하며 ‘좋은 사람’의 정의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환경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남자의 정답 없는 갈등이 진정한 ‘선’(善)의 의미를 묻는다. 특별한 장치 없이 두 배우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전개가 몰입도를 높인다. ◇비틀쥬스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알렉스 팀버스 출연 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등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2019년 현지 초연 이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이다. 황당한 사고로 유령이 된 부부가 자신의 신혼집에 이사 온 한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장난꾸러기 유령 ‘비틀쥬스’와 합세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중부양을 하는 캐릭터와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등 마술 같은 연출이 놀이공원에 온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 2021-07-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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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하는 사업 아이템 선정 비법…시니어 창업 가이드②
- 직업군인이던 40대 후반의 A씨는 태양광사업이 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제대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 자금 3억 원으로 태양열 보일러 제조업을 시작했으나 2년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지자체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아 보니 아이템 분석 없이 ‘한방’을 꿈꾸며 사업에 뛰어든 것이 패인이었다. A씨는 순간의 아이디어를 믿고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사업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 제품을 설명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성격이었다. A씨 사례는 금융위원회 기업금융나들목 홈페이지에 게시된 실제 창업 실패 사례다. A씨 같은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업종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충분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떤 업종을 선택하는가는 예비창업자들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다. 주변 사람들의 괜찮을 것 같다는 말에 즉흥적으로 결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 자영업자 매출정산 플랫폼 ‘더 체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고 결정하는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창업 아이템 선정 기본 원칙 창업 아이템을 정하는 데 왕도는 없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다양한 아이템을 찾아보는 것. 청년 창업은 실패해도 회복할 시간과 기회가 있다. 하지만 시니어가 사업에 실패하면 생활고를 겪게 된다. 따라서 시니어 예비 창업자라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니어 창업은 비수기가 없고 구매 행위가 계속 발생하는 업종이 적합하다. 편의점이나 종합분식집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만화대여점이나 컴퓨터 게임장 같이 계속 신상품이 공급되는 업종일수록 좋다. 다만 계절성이 강하거나 대기업과 경쟁이 예상되는 업종은 피해야 한다. 혼자 사업장을 운영하기 힘든 노인이라면 종업원을 구하기 쉬운 업종을 선택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아이템을 정하기 전에 인허가 등록, 면허 같은 법적 요건도 사전에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되는 업종이 있는가 하면 창업자 본인이 업종에 관련된 자격이나 기능을 취득해야 하는 업종도 있다. 자격이나 기능을 보유한 종업원을 채용해야 할 때도 있다. 창업 아이템을 정했다면 선택한 아이템의 시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해야 한다. 시장성은 선택한 업종의 입지조건, 시장규모, 경쟁현황 같은 것이 주요한 포인트다. 예컨대 편의점 운영을 계획 중이라면 주변에 편의점은 몇 개 있는지, 유동인구는 얼마나 되는지를 꼭 따져 봐야 한다. 수익성은 가깝게는 손익분기점 달성 시기와 관련된다. 인테리어 공사비, 임대료 같은 고정비를 고려해 몇 년 안에 흑자를 실현할 수 있는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멀게는 사업을 더 이상 못하게 됐을 때 그동안 지출한 고정비용을 권리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최적 아이템은 적성과 경험을 살리는 아이템 아동가족학을 전공하고 가족상담전문가로 일하던 B씨는 상담사 일을 그만둔 뒤 카페를 차렸다. 카페에서 음료를 제공하고 상담을 예약한 방문객에게는 상담을 해 준다. 전문가의 심리상담소이자 힐링을 위한 카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전문상담사인 B씨는 상담을 받는 이들이 집 주변이나 상담실 주변에 있는 카페에서 상담사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경험을 통해 카페 창업을 결심했다. 미국 창업전문잡지 ‘Inc.’에서 500여 개 창업회사를 선정해 창업 아이템 출처를 조사한 결과 43%가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분야에서 아이템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적성과 경험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이 최적의 창업 아이템인 셈이다. 창업자의 경험과 지식, 기술이 결합할 때 사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유망사업군 다음은 자영업자 매출정산 플랫폼 ‘더 체크’가 선정한 유망사업군이다. 1. 고령화에 따른 유망사업군 ㆍ노인 주거 및 의료 레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타운 ㆍ홈 헬스케어 기기 및 서비스 상시 원격 지원 카운슬링 ㆍ시니어 맞춤 여행 레저 서비스 ㆍ지능형 홈 시큐리티 단말 시스템 및 유아에듀테인먼트, 반려동물 전문점 ㆍ베이비시터, 간병인, 가사지원 인력 공급 서비스 ㆍ성형클리닉, 피부관리 클리닉 2. 사회가치 변화에 따른 유망 사업군 ㆍ유비쿼터스 지갑, 웨어러블 컴퓨터, 명함 ㆍ모바일 블로그, 스마트 카드, 디지털 저작권 관리 ㆍ복합 리조트형 테마파크, 개인용 멀티플렉스 영화관, 자가 진단 헬스케어 기기 ㆍ친환경 주택, 대체에너지 ㆍ친환경 자동차, 온실가스 격리, 고정시스템 ㆍ폐가스, 폐전기 재활용 설비, 시스템
- 2021-07-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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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중년의 톰 행크스를 만나다
- 젊은 시절부터 외화를 즐겨 본 시니어라면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에 대한 옛 기억이 하나씩은 있다. IQ 75의 순수한 청년 ‘포레스트 검프’부터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떠난 ‘진짜 사나이’, 시애틀에서 사랑에 빠진 로맨티스트까지. 그는 장르 불문 다양한 역할로 스크린을 통해 시니어를 만났다.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이 되었지만 연기 열정은 예전 못지 않은 그.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톰 행크스의 최근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뉴스 오브 더 월드 (News of the World, 2020) “오늘 밤, 온 세상의 멋진 뉴스를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1870년, 한 남자가 군중 앞에서 신문을 읽는다. 그는 제퍼슨 카일 키드 대위(톰 행크스).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가 아니라 인쇄소를 운영하다 전쟁으로 가족과 일자리를 잃은 방랑자다. 전후의 혼란한 상황 속 뉴스를 접하기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뉴스를 전해주는 일을 한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길을 가던 키드는 피습당한 마차에서 살아남은 인디언 소녀 조애나(헬레나 젱겔)를 만나고, 소녀를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톰 행크스 연기 인생 최초의 서부극이다. 그러나 기존 서부 영화와 달리 전투보다 평화에 주목하고, 액션보다는 휴머니즘을 담으려 한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백인과 인디언, 두 사람의 동행을 통해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소통’이란 대안을 제시한다. 서부극에 빠질 수 없는 황야와 거친 들판을 러닝 타임 내내 비추지만, 마냥 쓸쓸하고 황량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톰 행크스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랬듯, 결국 인류애의 실현을 희망하는 작품이다. 2.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내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가시를 세우며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잡지 기자 로이드 보겔(매튜 리즈)이다. 날카로운 성격으로 고발 기사를 써 상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취재원의 기피 대상 1호가 된 그. 이달은 영웅 특집을 준비해야 하는데, 인터뷰에 응해주는 이가 없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톰 행크스) 취재를 맡는다. 비리 폭로 전문인 로이드는 미담뿐인 로저스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한 마음으로 그를 만난다. 그런데 웬걸, 정신을 차려보니 인터뷰의 주도권을 뺏긴 채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것 아닌가. 푸근한 미소와 눈빛 때문일까. 만남이 거듭될수록 로이드는 그 앞에서만 ‘무장해제’가 되어간다. 연륜 있는 시니어가 젊은이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서사는 영화 ‘인턴’을 떠올리게 하지만, ‘휴머니즘 장인’ 톰 행크스만의 연기가 ‘인턴’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물 간 주고받는 대사에 잔잔한 위로를 얻고, 마침내 톰 행크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작품. 로저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오프닝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돼 쇼 한 편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3. 홀로그램 포 더 킹 (A Hologram for the King, 2016) 인생이 이렇게 꼬여도 꼬일 수 없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망했고, 아내와 이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에게 3차원 홀로그램 장비를 팔고 오라는 고난도의 미션을 받는다. 세일즈맨 ‘엘런 클레이’(톰 행크스)의 이야기다. 영업을 위해 도착한 타국에서의 생활은 사막 한가운데 낙오된 것처럼 힘겹고 낯설기만 하다. 와이파이는 물론 배를 채울 만한 식당도, 에어컨도 없으며 미팅 관계자는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등에 정체 모를 혹까지 생겼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클레이는 왕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 2막을 열어나간다.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은 인생에 위기를 맞은 세일즈맨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머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지만 실적 압박,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등 중년 남성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과 불안을 타국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로 극대화한다. 장면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이슬람 문화권의 이국적인 풍경이 재미를 더한다.
- 2021-06-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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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 않은 완성을 위하여
- ‘한국의 어린 왕자’로 불리는 ‘연어’부터 연탄재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해준 ‘너에게 묻는다’까지 동심과 자연을 오가며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를 보여줬던 안도현 시인(61). 올해 그는 환갑을 맞이했고, 1981년 시 ‘낙동강’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산 세월은 어언 40년이다. 여전히 시를 쓸 때면 떨린다는 시인은 지난 40년간의 세월을 정리하며 신간 ‘고백’으로 돌아왔다. 신간 ‘고백’의 서두에서 그는 이 책은 스무 살의 안도현에게 건네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무 살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40년의 세월을 정리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그에게 물었다. “책을 통해 위로와 고백을 전하고 싶었다. 일단 스무 살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젊을 때는 떨림과 설렘,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지 않나? 나 역시도 그랬다. 특히 시인의 꿈이 쉽지 않은 길임에도 묵묵히 정진했던 스무 살의 안도현을 늦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설렘과 같은 감정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지만, 오직 시 앞에선 여전히 떨리고 설렌다. 이 책을 통해 스무 살의 내게 건네는 위로와 동시에 여전히 시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이번 책은 산문집이지만 시가 연상될 만큼 짧고 강렬하다. 특이한 건 자연의 멋스러운 풍광을 담은 사진 위에 얹어진 글에 모두 제목이 없었다. “이번 책은 독자들에게 ‘숨구멍’이 됐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2년 차로 접어들면서 모두 심신이 지친 상태다. 그래서 진지하거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읽으면서 숨을 한번 크게 내쉴 수 있도록 가볍고 짧은 글과 더불어 사진을 시원하게 배치했다. 제목을 달지 않은 건, 독자들이 스스로 제목을 붙여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안식년과 같은 해직과 절필 40년의 세월을 정리하면서 묶은 이 책처럼, 그는 오랫동안 터전을 잡았던 전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는 고향인 예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 년 좀 넘었는데 정말 좋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새소리를 듣는 재미가 있다. 마당의 풀을 뽑거나, 비닐하우스의 채소에 물을 주고, 때때로 동네 산책을 다닌다. 지금이 삶에서 제일 행복하다.” 그는 고향에 터전을 잡는 동시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계간지 ‘예천산천’을 만들고 있었다. “예천산천은 현재 5호까지 나왔다. 잡지를 통해 예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현재와 과거, 예천의 역사적 인물,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쳤던 할머니의 얘기 등과 같이 숨겨진 얘기를 통해 예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 다양한 행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요새는 우편 발송만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떨리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소박한 시골 생활을 즐기는 그에게도 매번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사 시절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최근에는 약 4년 동안 절필을 하기도 했다. “내가 쓰는 시는 책상 위에서 시작해 광장으로 나갔다. 개인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있었다. 개인적으로 문학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바라보고, 공동체를 위한 일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 해직과 절필도 나의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일이다.” 덧붙여 그는 이 시간을 “시련이 아니라 헤치고 나갈 과제였다”라고 정의했다. “돌이켜 보면 해직과 절필은 일종의 안식년이자 성찰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았던 ‘연어’도 교사 해직 시절에 쓴 것이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것이 바로 ‘연어’였다. 절필하면서 쓰는 대신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지나간 삶과 써온 시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영영 시를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또 쓰니까 써지더라. 그 결과가 절필을 마친 후 처음으로 지난해에 출간한 시집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원동력 40년간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시를 써온 시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시는 무엇일까? 더불어 시인의 삶에서 시는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를 아직 쓰지 못했다. 내 시를 아껴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써온 시를 다시 보면 부끄럽다. 다만 시를 쓰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시를 쓰면서 삶을 반성했고,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볼 줄 알게 됐으며, ‘나는 나다’가 아닌 ‘나는 너다’와 같은 역지사지 자세로 살려고 노력했다. 아마 내 삶의 원동력은 ‘시’인지도 모른다.” 끝으로 시인으로서의 목표와 좋은 시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밝혔다. “돌이 쌓여 있네. 돌탑이구나. 이게 시가 아니다. 저 돌탑 안에서 바깥을 보면 어떨까? 저 돌은 어떤 할머니가 어떤 상황에서 지나다 올려놓은 걸까?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영감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 너머를 상상할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남다른 생각, 자기만의 언어, 새로운 발견. 이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게 좋은 시다. 앞으로 살면서 그런 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 이날 우리는 바람 부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아래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제자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 바람을 말할 때의 그는 정겨운 선생님이었지만, 시 앞에서 떨림을 고백할 때는 스무 살의 안도현이었고, 자신의 시를 말할 때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시인이었다. 다만 그 부끄러움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랑의 고백이 미완의 관계를 완성하듯, 시를 향한 떨리고 부끄러운 마음은 부끄럽지 않은 시를 완성시킬지도 모른다. 삶의 부끄러움을 고백했으나 시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윤동주 시인처럼. 앞으로 그가 쓸 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 2021-06-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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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기운과 함께 찾아온 6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일정 5월 11일~8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상징인 ‘라이프’ 사진전이 4년 만에 돌아온다. 1936년 창간된 ‘라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 곳곳에 뛰어들었고, 찰나의 순간을 역사로 만들어내며 세상을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꾼 전설적인 사진 잡지다. 전성기 시절 총 1350만 부가량 발행하고 정기 구독자 수가 800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피, 땀, 눈물을 담은 이번 전시는 2013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과 2017년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기 위하여’에 이은 마지막 시리즈로 3부작의 서사를 마침내 완성한다. 지난 두 번의 전시가 격동의 시대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이번 전시는 우리 삶에 보다 가까운 일상을 포착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선동하거나 미래를 자극하기보다, 혼란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맞설 여유와 원동력을 선사한다. 1000만 장의 방대한 사진 자료 가운데 엄선한 100장의 작품과 더불어 ‘라이프’와 함께한 사진가 8명을 조명해, 프레임 저 너머 그들이 추구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일정 5월 1일~8월 29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70년에 걸친 피카소의 예술 인생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미술사에 혁명을 일으킨 입체주의 작품부터 신고전주의 화풍의 회화, 조각, 도자기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을 국내 최초로 감상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쟁의 잔혹성을 예술로써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이라 불린다. 입체주의 시대를 함께한 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가 가장 사랑한 여인 마리 테레즈,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클린 로크 등 그의 뮤즈를 그린 그림도 전시의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총 7섹션으로 나눈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피카소의 전 생애를 탐험하는 듯한 신비롭고 생생한 시간을 선사한다. ● Book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저·북로그컴퍼니) 미국에 ‘모지스 할머니’, 영국에 ‘로즈 와일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 할머니가 있다. 83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어느덧 12년 차 화가로 활동 중인 94세 김두엽 할머니다. 그녀의 소소하고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최근 110여 점의 작품과 함께 한 권의 그림 에세이로 탄생했다. 늦깎이 화가를 결심한 사연부터 아들, 며느리,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지난 90년 인생에 대한 반추가 알차게 담겨 있다. 김두엽 할머니의 인생은 그야말로 굴곡진 언덕길 같다.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가족과 귀국하고, 우리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해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80세가 넘도록 나물 장사, 세탁소 운영 등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며 고된 나날을 보냈다. 힘들었던 삶이 원망스러울 법도 하건만,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지난한 인생과 달리 화사하고 포근하다. 로즈 와일리의 화풍처럼 때로는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일상 속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픈 날마저 고운 색으로 추억하고 아름다운 것만 눈에 담고자 했던 그녀만의 강인한 의지와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책은 83세에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8세 일본에서 만난 첫사랑과 눈물겨운 시집살이,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는 오늘날의 일상까지 그녀의 삶 면면을 모두 담아낸다. 그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훑고 나면, 영화 같은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할머니의 염원이 아주 오래, 가능하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고독사를 피하는 법 (리처드 로퍼 저·민음사) 장례업에 종사하는 앤드루가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 특유의 유쾌한 문체로 ‘관계 맺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살집팔집 (고종완 저·다산북스) 시니어가 만나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른 저자가 아파트 매매의 ‘A to Z’를 말한다. 핵심 이론부터 전국 아파트 단지의 가치 분석, 슈퍼 아파트 목록까지, 뜨는 부동산 이슈를 총망라한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저·페이퍼로드) 건축 평론가이자 시인인 저자의 서울 예찬기. 문학과 시, 역사 속에 그려진 서울로 그때 그 시절을 반추하는가 하면, 저자만의 시선으로 동네 곳곳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다. ● Stage ◇레드북 일정 6월 4일~8월 22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박소영 출연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 송원근, 서경수, 김인성 등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독특한 여인이 있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문제는 이 여인이 신사의 나라 영국, 가장 보수적인 시기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도 개의치 않고 뛰어난 상상력과 글재주로 외설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레드북’을 출간한 그녀는 당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신성 모독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뮤지컬 ‘레드북’의 내용이다. ‘레드북’은 미래를 꿈꾸는 여성 안나와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이 잡지 ‘레드북’ 출간 후 벌어지는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한 편견에 맞서나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시대, 갖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껏 욕망하고 표현하는 안나의 진취적인 모습이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주인공 안나 역으로 차지연, 아이비, 뉴 페이스 김세정까지 합류해 3인 3색의 매력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완벽한 타인 일정 5월 18일~8월 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대극장 연출 민준호 출연 유연, 양경원, 유지연, 김재범, 박소진, 이시언 등 2018년 국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7명의 주인공이 저녁 식사 도중 서로의 휴대전화 알림을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전과 게임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무대 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극대화되며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1976 할란카운티 일정 5월 28일~7월 4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유병은 출연 오종혁, 이홍기, 산들, 김륜호, 안세하 등 1976년 미국 켄터키주 광산회사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함성과 투쟁을 그린다. 흑인 라일리의 자유를 위해 함께 뉴욕으로 떠나는 다니엘의 여정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광부들의 희망의 노래가 감동을 전한다. 배우와 무술감독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유병은 연출가와 젊은 창작진의 열정적인 협업으로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스케일을 선보인다. ※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 2021-06-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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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 3막을 위한 ‘할머니 공부’
- 2012년, 50대 중반에 손주를 본 작가 박경희(60) 씨는 금쪽같은 손주가 태어난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덜컥 겁이 났다. 50대에 할머니가 되는 법은 들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난해 자신과 주변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손주는 아무나 보나’를 펴냈다. 나름의 독학인 셈이다. 그 무수한 고민 덕분이었을까, 이제 그녀는 익어가는 자신과 쑥쑥 자라나는 손자를 느긋하게 관망하는 여유가 생겼다. 베테랑 방송 작가에서 ‘오아민 할머니’로 인생 3막을 일궈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든 것이 남들보다 한걸음 빨리, 숨 가쁘게 찾아왔다. 박경희 씨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고 곧바로 첫째를 낳았다. 한숨 돌릴까 싶더니 연년생으로 둘째 아들이 세상 밖에 나왔다. 라디오 작가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사이 커버린 첫째는 자신과 견줄 만한 속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짝을 만나고, 결혼하자마자 첫아이를 본 것까지 빼닮았다. 정신 차려보니 풋보리 같은 손자 아민이가 자신을 ‘할머니’라 부르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미지의 세계에 빠진 듯 혼란스러웠다. “김혜자 선생님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같이할 때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김혜자 선생님도 저처럼 이른 나이에 손주를 보셨거든요.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할머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느낌이 드셨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공감은 했지만, 사실 실감은 못 했어요. 그런데 아민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그제야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됐어요. 뭐랄까, 여자로서의 막이 닫힌 느낌? 좋고 나쁨을 넘어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었어요.” 인생에 갑작스러운 변화의 바람이 불면 누구나 그렇듯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경희 씨에게는 손주가 태어난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모니터 앞에 앉아 이상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싯적 아주머니라는 호칭조차 거부했던 그녀였기에 훗날 손주가 자신을 떠올릴 때 멋지게 기억되길 바랐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손주와 할 일이 하나둘 떠올랐다. 작가 박경희로서의 욕심도 생겼다. 그러자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끝에 다다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니어를 위한 에세이 ‘손주는 아무나 보나’를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아민이가 태어난 후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휴게소처럼 달리다 잠깐 멈춰서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거죠. 처음에는 인생의 막이 내린 것 같았는데, 사실 세 번째 막이 열리고 있었더라고요.” 손주로 되찾은 청춘 책을 쓰기 위해 주변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니던 경희 씨는 한 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수십 년간 몸담은 직장을 떠나고 백수로 돌아갈 생각에 수심 가득하던 남성들의 얼굴이 손주가 태어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피어났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다 은퇴한 경희 씨 남편의 친구는 “마음은 청춘인데 세상이 나를 뒷방 노인네 취급한다”며 한탄하더니, 손주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기분”이라며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은퇴하면 가정을 책임진다는 큰 몫이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바쁜 부모 대신 손주를 봐주면 자식이나 며느리, 사위가 감사해하고 든든하게 느끼니까 ‘아직 여기에 내 역할이 있구나’ 깨달으면서 삶의 낙을 찾는 거죠.” 은퇴하지 않은 남성들도 고독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병원장으로 재직 중인 경희 씨 친구의 남편은 과업으로 힘들어하며 매일 기운 빠지는 소리를 입에 달고 지내곤 했는데, 손주를 보고 난 뒤 180도 달라졌다. 그녀가 메신저로 전해받은 동영상 속에는 우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장아장 걷는 손주를 사랑스레 바라보는 인자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경희 씨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말수도 적고 덤덤한 경희 씨 남편은 표현에 서투르지만,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모양이다. “남편은 아민이가 태어났을 때도 덤덤했어요. 근데 손주를 본 기쁨은 나보다 더 큰 것 같더라고요.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고 하잖아요. 남자들은 손주를 볼 때 그게 무척 실감나나 봐요. 가끔 아민이 데리고 외식하러 가면 남편이 더 좋아해요. 두 아들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과 손주에 대한 감사함이 표정에서 보이죠.” 두 사람 사이 웃을 일이 많아지니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 원래도 사이가 소원한 건 아니었지만 하는 일도, 관심사도 달라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 손주는 교집합의 행복이었다. 손주가 똥을 싸도 기특해하는 것까지 똑같다. 때로는 손주와 나들이 간다는 구실로 근교 데이트도 즐기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눈다. “두 아들 정신없이 키울 때는 남편과의 추억이 많지 않은데, 요즘은 손주 덕분에 그때 누리지 못한 여유를 즐기고 있어요. 노년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졌죠. 약간의 신혼 분위기랄까요.(웃음)” 워킹맘 며느리와의 특별한 연대 18년간 라디오 프로그램 ‘김혜자와 차 한잔을’ 작가로 활동하며 결혼 후에도 일을 놓지 않았던 경희 씨는 그 당시 흔치 않은 워킹맘이었다. 하지만 방송국이나 잡지사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가사에 소홀하지 않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던 시어머니 밑에서 엄격한 시집살이를 하며 본의 아니게 일과 육아, 가사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경희 씨는 늘 최선을 다했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나름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한테 못 챙겨주는 부분이 있는지, 놓치는 정보는 없는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워킹맘도 30여 년 전 경희 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충을 겪고 있다. 경희 씨의 며느리도 그렇다. 개발자로 일하는 며느리는 손주가 태어나고부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라 주변의 손을 빌려야 했다. 경희 씨 역시 아들과 며느리가 부탁하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황혼 육아에 전념할 생각이었지만, 오랜 논의 끝에 아들네와 가까이 사는 사돈이 돌봐주기로 결론지었다. “ ‘손주를 아무나 보나’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제가 아민이를 맡아 키우며 쓴 책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근데 사실 그러지 못한 미안함으로 쓴 거거든요. 이 땅에 아민이 외할머니 같은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으로요.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나 시부모로서의 올바른 역할과 책임, 말 못 할 고민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였죠. 이런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거든요.” 손주를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는 경희 씨는 며느리와 손주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때 워킹맘 며느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였다. 이후 분기별로 며느리와 손주에게 필요한 책을 주문해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10살이 된 손주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이 읽을 만한 상상력 가득한 소설을, 며느리에게는 초보 엄마를 위한 에세이를 보내주는 식이다. “워킹맘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요. 아이 교육에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굉장히 후회하거든요. 그래서 시어머니로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되, 며느리에게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지원해주고 싶었어요. 딸 같은 마음이라기보다는 같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연대, 응원 같은 거죠. 특히 조부모는 자식 키우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잖아요. 그중 실패담은 빼고 효과적인 노하우만 전수해주니 며느리가 싫어할 이유가 없죠.(웃음)” 럼피우스 할머니를 꿈꾸다 손주를 만나는 날이면 경희 씨의 머릿속은 이야기보따리로 가득하다. 첫째 아들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재주를 발견한 순간, 두 아들이 과자 하나를 두고 꼬집으며 싸웠던 일화, 경희 씨 고향인 양평에 얽힌 추억까지 옛이야기를 들려주면 손주의 눈은 흥미롭다는 듯 커다래진다. 그녀는 그런 손주를 보며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내 말이 숭숭 새는 것 같아도 기억에 남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전해주신 말씀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라서다. “두 아들 키울 때 해주지 못한 것을 손주에게 쏟게 되는 것 같아요. 다행인 건 아민이 아빠도 그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서운함을 조금씩 씻어내는 것 같더라고요. 언젠가 한번은 아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아민이에게 전한 적도 있어요. ‘아민아, 사실 너네 아빠는 혼자서도 뭐든지 참 잘했어’라고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법은 경희 씨가 손주와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대신 손주의 의견을 구한다. 명령보다는 의문문을,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토론을 선호한다. 영화 한 편을 같이 보고 난 뒤에는 감상평을 나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데려가서는 작품이나 유물에 얽힌 내용을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이들에게는 현장 학습이 중요하거든요. 책에서 보는 열목어와 눈으로 보는 열목어는 다르잖아요. 직접 경험하면 나중에 교과서로 배울 때 얼마나 쉽겠어요.” 경희 씨의 바람은 바버러 쿠니의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의 럼피우스 할머니처럼 손주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미스 럼피우스’는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 럼피우스가 먼 훗날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인생담을 또 다른 꼬마들에게 전해주는 내용이다. 할머니이기 전에 이야기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할머니의 품을 편안한 쉼터라고 여겼으면 좋겠어요. 요새 아이들은 숨 돌릴 틈도 없잖아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본인이 어떤 할머니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평소와 같은 날도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저는 그걸 아민이 덕분에 느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해 경희 씨와 대학로 방송통신대학교 뒷길을 거닐었다. 그녀는 촬영도 잠시 잊은 듯 길가에 핀 꽃의 이름을 읊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멋진 할머니를 둔 아민이가 내심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2021-05-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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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살아 있는 책”
- 해외여행이 낯설었던 1990년대 초반, 대학생 신분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 ‘유럽 일기’를 시작으로 여행작가 채지형(51)은 세계 일주 1세대로 불리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숱한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책, 강연과 연재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여행의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그녀가 2016년 이후 5년 만에 그간의 여행을 정리하며 써 내려간 신간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로 돌아왔다. 신간은 지난 5년의 공백을 설명하는 주석과 같은 여행기다.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부터 여행지에서 수집해온 영수증, 냉장고 자석, 인형 등과 관련된 사연, 아버지와의 추억, 여행에서 마주친 사람과의 대화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녀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지난 5년은 참 다사다난했어요. 좋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어요. 평생을 함께할 짝꿍이 생겨서 좋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아파서 큰 수술을 받기도 했어요. 틈날 때마다 여러 군데에서 강의도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의뢰받은 원고를 쓰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정작 다녀온 여행을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출장이 줄어들면서, 지난 여행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번에 책을 내게 됐어요.” 지난해는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혔다. 실제로 2020년은 1994년부터 매해 해외로 떠났던 그녀가 유일하게 해외를 못 나간 해라고 한다. 대신 새로운 여행의 맛을 알게 됐다고. “작년은 국내 여행의 재발견이라 부르고 싶어요. 예전과 달리 깊게 국내 여행을 다녔어요. 물론 해외를 못 나가서 아쉬웠지만요. 사실 그동안 국내 여행은 일로 가거나, 가끔 부모님과 함께 가는 효도 여행이 전부였던 탓에 즐길 새가 별로 없었어요. 이번엔 일주일이나 한 달씩 진득하게 한곳에 머무는 방식의 여행을 했는데, 참 새로웠어요. 이렇게 조금 느긋한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찾고,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여행 유전자와 귀여운 앨범 1994년 대학생 신분으로 떠났던 배낭여행은 그녀를 세계 일주 1세대로 이끌었고, 세계 일주의 경험은 어엿한 여행작가의 길로 가게 했다. 도대체 여행의 어떤 매력에 매료된 것일까? “6개월이나 1년씩 긴 여행을 떠나던 유럽 친구들이 되게 부러워서 긴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세계 일주를 하면 여행에 대한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하고 나니 더 하고 싶더군요. 제일 무서운 맛이 아는 맛이라는 것, 그때 깨달았어요.(웃음) 생각해보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우쿨렐레나 카타칼리 메이크업처럼 평소에 배우지 못했던 것도 배워보고, 다양한 문화나 종교를 접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제 삶에 끊임없이 좋은 자극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아요.” 사실 그녀에게 여행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년 시절 매년 여름이면 친척들끼리 모여서 야외로 캠핑 가는 것은 기본이고, 한번은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45인승 버스를 빌려서 전국을 유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진짜 여행을 좋아하셨어요. 신문·잡지 레저면에서 소개하는 여행 기사를 전부 스크랩하셨어요. 어찌나 열심히 하셨던지 스크랩북을 보지 않고도 전국 여행지 맛집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할 정도로 줄줄 꿰고 계셨어요. 여행지에 가면 ‘종’이나 ‘배지’ 같은 걸 꼭 사서 돌아오셨는데, 제가 인형이나 냉장고 자석을 수집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일종의 여행 유전자라고 할까요?” 실제로 냉장고 자석은 냉장고의 옆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그녀의 작업실은 인형의 방이라 불러도 될 만큼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인형으로 꽉 차 있었다. 아무리 유전자라고 해도 이토록 열심히 수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인형처럼 귀여운 걸 좋아했어요. 크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제 공간이 생긴 후로는 더 열심히 모으게 되더라고요.(웃음) 인형을 살 때는 좋은데 돌아올 때는 짐이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요. 집에 있는 다른 친구들하고 어울릴지도 살펴보고요. 첨엔 귀엽고 좋아서 샀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게 앨범 같아요.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는 것처럼, 인형을 보면 그 여행지의 순간을 다시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새로운 무대의 출발, 책방 여행은 일종의 모험이지만, 이방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외롭고 힘들 때도 분명히 있었을 터. 오랫동안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하면서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고 여자로서 불쾌한 경험도 있었지만, 여행을 떼놓고 제 삶을 말할 수 없게 됐어요. 같은 시간이라도 여행지와 일상에서 받는 느낌은 달라요. 한번 여행을 떠나면 다른 인생을 산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주어진 배역을 통해서 다른 삶을 체험하는 배우와 비슷해요. 다만 여행은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서 주인공도 만나보고, 주인공이 처한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를 같이 보는 느낌이에요. 말하자면 살아 있는 책이라고 할까요?” 여행작가를 배우로 비유했을 때, 그녀가 목표로 하는 다음 무대는 어디일지 궁금해서 살포시 물어봤다. “일단 작년에 4개월 정도 머문 동해에 관한 얘기랑 신혼여행기를 늦기 전에 정리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동네 책방에 흥미가 생겨서 관련된 서적을 탐독 중인데, 앞서 말한 작업이 정리되면 여행과 관련된 책방을 만드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싶어요. 책방 주인이 새로운 무대의 출발이 될 것 같아요.” 그녀에게 여행이 곧 삶이었고, 삶이 여행 그 자체였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인형을 수집하며 그 추억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겼다. 여행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새로 적은 버킷리스트는 여행을 통해 하나씩 지워갔다. 동시에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둔 채 스스로 성찰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짐했다. 앞으로도 그녀의 삶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끝내 바다에 닿듯 결국 여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운영하는 여행 책방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활짝 피우는 날을 기대하며 마친다.
- 2021-04-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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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신한은행과 업무 협약 체결…시니어 비즈니스 강화
- 시니어 전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15일 신한은행과 50+ 시니어 고객 대상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매거진은 시니어를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 플랫폼 미디어로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콘텐츠 잡지에 선정된 유일한 시니어 전문 매체이다. 이번 협약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시니어들의 품격 있는 건강생활, 연금생활, 여가생활, 소비생활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신한은행 고객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양사는 금융 및 시니어 관련 콘텐츠를 상호 교류하며, 각 사의 플랫폼을 활용해 은퇴 비즈니스 관련 다양한 신사업을 상호 지원키로 했다. 우선 양사는 시니어 콘텐츠 공모전을 공동 진행할 계획이다. 만 50세 이상인 액티브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인생이모작’,‘앞으로 꿈꾸는 나의 모습’,‘퇴직 후 1년의 생활’ 등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시니어들의 실제 삶에 대한 내용을 담은 우수 창작품을 선정해 상금과 상패를 시상할 예정이다. 선정된 수상자들은 ‘신한미래설계 온라인 플랫폼’ 및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매거진 칼럼에 정기 기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번 공모전은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시니어들의 문화예술 확산에 기여하고 인생 2막에 대한 새로운 좌표설정의 지침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김덕헌 이투데이 상무 겸 이투데이피엔씨 본부장은 “신한은행과의 업무 협약을 통해 시니어 리즈에 맞는 다양한 뉴스 콘텐츠를 생산해 양사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다양한 협업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2021-03-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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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3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일정 5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과 더불어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에민쥔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1989년 발생한 천안문 사태에 혐오를 느낀 유에민쥔은 다음 해 베이징에서 화가로 등단해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으로 그가 겪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 얼굴이 등장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국민으로서의 절망을 역설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으로 나타낸 것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유화부터 대규모 조형 작품, 최근 선보이는 꽃 형상의 얼굴 작업까지 1990년부터 이어지는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총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각 섹션은 유에민쥔의 트레이드마크인 웃음 속 감춰진 의미를 삶과 죽음, 인간 사회 등 다각도로 바라본다. 전시 기간 코로나19로 인해 도슨트의 대면 해설 대신 앱 ‘도슨트’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며, 아이돌 그룹 샤이니 온유가 따뜻한 음성으로 읽어낸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일정 5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34년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벽에는 그의 절친 구본웅의 그림과 쥘 르나르의 경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예술가들은 미샤 엘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르네 클레르의 영화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1930~50년대 격동의 시기, 장르는 다르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시대의 전위를 꿈꿨던 문예인들의 뜨거운 연대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은 정지용·이상 등 문학인과 구본웅·황술조 등의 화가를 통해 일제강점기 및 해방기 문학과 미술의 밀월 관계를 조명한다. 총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방 ‘제비’를 배경으로 한 공간을 시작으로 신문·잡지 등 인쇄 미술, 대표적인 문학·미술인 커플의 관계도,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작가의 글까지 총 300여 점의 다양한 시각 자료로 두 장르의 지적 연대를 살핀다. 가난과 모순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숭고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 Book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이주희 저·청림출판) 50대에 들어선 저자가 여유롭고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위해 필요한 어른의 태도를 책에 담았다.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오늘날 중년들의 걱정 근심을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이나미 저·쌤앤파커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가 황혼으로 접어든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성찰한다. 죽음과 이별 등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고 소탈하게 풀어내 공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박찬일 저·인플루엔셜) 셰프 박찬일이 평균 업력 64년 노포의 장사 철학을 한데 모았다. 우래옥부터 할매국밥, 청진옥까지 화려한 장사 기술과 손익 계산 없이 ‘자기다움’으로 승부하는 노포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다. ● Stage ◇팬텀 일정 3월 17일~6월 27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박은태, 카이, 전동석, 규현, 김소현, 임선혜, 이지혜, 김수 등 “세상이 무너진 이 순간, 너의 음악이 되리라.”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진한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 ‘팬텀’이 3월 네 번째 시즌의 막을 올린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흉측한 얼굴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에릭’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으며, 국내에서는 2015년 관객과 처음 만나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며 ‘뮤지컬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렇게 그대 품에’, ‘그대를 찾아내리라’, ‘그의 얼굴을’ 등 캐릭터 간 서사를 강화하는 곡을 새로 추가하고, 작품의 백미인 발레 장면의 비중을 높여 몰입도를 더했다. 어둠 속에 사는 에릭에게 빛 같은 존재인 크리스틴이 있듯이, 뮤지컬 ‘팬텀’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관객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위로할 예정이다. ◇검은 사제들 일정 2월 25일~5월 30일 장소 유니플렉스 1관 연출 오루피나 출연 김경수, 이건명, 박가은, 지혜근 등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이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올해 초연 무대를 올리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신학생 ‘최부제’와 교단의 눈 밖에 난 ‘김신부’가 악령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을 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원작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무대와 연출, 음악 등으로 오컬트 분위기를 극대화해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으스스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 사건 일정 2월 15일~5월 9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성재준 출연 김종구, 홍승안, 김찬종, 정민, 조풍래, 백기범 등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의사였던 도일이 탐정물에 관심을 보이고 세기의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40여 년 동안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 소설을 쓴 도일의 강렬한 열망과 내면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 2021-02-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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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멋을 찾는 여정
-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어 통·번역 분야로 진출하고자 했던 알렉스 강(57)은 우연한 기회에 ‘시니어 모델’을 접하고, 그 길로 뛰어든다. 이후 본격적인 시니어 모델 일을 시작한 그는 코로나19가 덮친 지난해 상반기에 시니어 모델 에이전시를 설립한다. 어학 박사에서 시니어 모델로, 시니어 모델에서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가 된 그를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으면서 모델 및 대표로서의 철학과 멋지게 나이 듦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한 잡지의 커버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남성 잡지 ‘맨즈헬스’의 커버에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중년의 남자를 보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 덕분에 건강이나 몸에는 자신이 있던 그였다. 그때부터 꿈을 품었다. “그 잡지를 본 뒤 그분처럼 잡지의 커버모델이 되는 꿈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맨즈헬스가 주최하는 피트니스대회에 무작정 신청서를 냈지요. 그게 모델 시작의 첫걸음이었어요.” 그는 그 대회에서 유일한 50대였고, 그나마 비슷한 또래의 사람은 40대 참가자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20~30대들이었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멋을 어필했다. 그 결과 스포티즘 모델 분야에서 상위권에 드는 성과를 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지인이 시니어 모델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시니어 모델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시니어 모델이 된 것은 우연과 우연이 얽혀서 만든 필연이었다. 숨겨진 모델의 끼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오랫동안 공부하던 사람이라서, 모델 일이 순조롭고 쉽지는 않았을 터. 어학 공부는 혼자 묵직하게 정진하면 되는 작업이지만, 모델은 아무래도 남들 앞에 서고 주목을 받는 일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전혀 반대였다. “막연한 불안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이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모델의 끼가 숨어 있었던 것 같아요. 어학과 비슷한 점도 있었고요. 어학은 언어의 표현을 다루잖아요. 모델도 비슷해요. 단지 수단이 언어에서 몸으로 바뀐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모델은 나의 몸으로 어떻게 멋을 표현할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모델로서 그가 가진 강점은 무엇일까? “다른 모델들에 비해 키가 작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어요. 대신 워킹 실력이라든지, 무대를 장악하고 스스로 멋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아요. 단점을 상쇄할 만큼요. 무대에 서면 조금 긴장이 되지만, 그 무대에서 한바탕 논다는 생각으로 즐겨요. 이것이 모델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시니어 모델로서 특별한 몸 관리법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운동을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하고,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멋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건강과 더불어 체력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25년간 해왔더니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물론 대표가 되어 바빠진 이후로는 이전보다 운동 시간이 줄어서 아쉬움이 있죠. 예전에는 하루에 꼬박꼬박 2시간씩 일주일에 5일은 운동을 했는데, 요새는 4일 정도 하면 정말 많이 한 거예요.(웃음) 체력 관리는 물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흰머리가 나면 염색을 하곤 했는데, 모델이 된 후에는 시니어 모델로서의 자연스러운 멋을 살리기 위해 그냥 놔둬요. 그게 인위적인 것보다 훨씬 나아요.” 모델에서 대표가 되기까지 그렇다면 모델을 하다가 왜 갑자기 모델 에이전시를 설립하게 된 걸까? 코로나19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어떤 의지가 그를 모델 에이전시 대표로 이끌었던 걸까? “사실 에이전시 대표가 된다고 했을 때 가족부터 시작해서 지인들 모두가 말렸어요. 코로나 때문에 어떤 걸 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원래는 지난해 3월에 오픈하려고 했는데, 조금 미뤄서 6월에 오픈했어요. 한 번 마음먹은 건 꼭 이뤄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그 연장선에서 제대로 된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고민했어요. 절박함이 강력한 의지로 이어진 것 같아요.” 모델이 되는 것만큼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가 된다는 것도 상당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악재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절박함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가 시니어 모델을 하면서 보니 모델 중에 자존감이 낮은 분이 참 많았어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살다가,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이제 자신의 인생을 찾으러 오신 분들이에요. 연극배우나 가수를 꿈꾸던 찬란한 시절을 가슴에 묻고 가정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하셨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탓에 자존감이 낮고, 남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모습을 봤어요. 불합리한 대우도 문제지만,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에이전시를 설립해보고 싶었어요.” 고심 끝에 에이전시의 이름을 ‘엘리트’라고 정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존감 높은 엘리트 모델을 만들고 싶은 그의 포부가 담겨 있다. 엘리트에 담긴 최상의 의미처럼 좋은 강사진을 모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편법을 쓰지 않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욕심 없는 마음 모델 에이전시에는 전속 모델도 있는 법. 전속 모델을 뽑을 때 기준은 무엇일까? 그의 기준은 두 가지, 바로 ‘개성’과 ‘심성’이다. “브랜드 가치가 있는 분을 전속 모델로 모시려고 해요. 단순히 외적으로 잘생기고 이쁜 사람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이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분을 뽑아요. 예를 들어서 키가 작은 분이라도 충분히 시니어 모델이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외적으로 아름답지만, 좋은 모델이 될 수 없는 분도 있고요. 최근에 뵌 분도 키는 작지만, 사진을 찍었을 때 자신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더군요. 그런 분이 모델로서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봐요. 다른 한 가지는 심성이에요. 모델 일은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좋은 심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힘들다고 봐요.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 표현력도 더 좋고요.” 최근에는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엘리트 모델 에이전시의 전속 모델 윤영주 씨가 MBN 시니어 패션모델 예능 프로그램 ‘오래살고볼일’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녀를 어떻게 전속 모델로 캐스팅한 걸까? 사실 그녀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지인 소개로 슈퍼모델 출신 한 분을 알게 됐고, 그 사람을 원장으로 섭외했다. 알고 보니 윤영주 씨의 며느리였다. 그 인연이 전속 모델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계속된 우연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희 에이전시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주위 분들 덕분이에요. 주변에서 제가 하는 일의 취지에 많이 공감해주셨어요. 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분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건 그의 욕심 없는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평소에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해요. 소소한 욕심을 부리다가 큰 걸 놓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주 양보하고, 작은 것이라도 남들에게 베풀려고 해요.” 나만의 멋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회사 운영도 무탈하게 잘하고 있지만, 경영인으로서 고충은 없을까? 모델은 본인만 신경 쓰면 되지만, 대표는 모두를 아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므로 분명히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수강생이 코로나19 때문에 수업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죠. 모집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쉽기는 합니다.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대표로서 나름의 고충이죠. 또 사람을 많이 대하다 보니, 거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있고요. 그래도 경영인으로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운동할 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면 뿌듯한 것처럼 에이전시 대표로서 설정한 목표를 차례차례 이뤄나갈 때 참 보람 있어요.” 그가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모델 활동을 계속해서 하는 건 어떤 가치에서 비롯된 걸까? 그는 모델로서의 가치 중 하나로 ‘내면적 성장’을 꼽았다. “외면적인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내면적으로 성장했을 때예요. 사소한 것에 얽매여 치졸하게 굴지 않고, 누가 보든 안 보든 나쁜 짓 안 하겠다는 마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이처럼 이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시니어 모델은 나만의 멋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모델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멋을 찾을 때 비로소 더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멋지게 늙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비결로 도전정신을 꼽았다. “도전하지 않을 때 비로소 늙는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게 무엇이든 얼른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설령 실패했더라도, 한 줌의 가능성은 있어요. 저 역시도 계속된 우연과 인연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전했다면 취미 삼아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는 것보다는 프로정신을 갖고 임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지거든요.” 어학 박사에서 시니어 모델, 모델에서 에이전시 대표까지 그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가 뜨거워서인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았다. 대표 입장에서 얘기를 할 때는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신기한 건 그의 말처럼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수강생과 강사들이 와서 연신 그와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거나 응원을 했다. 아카데미 내에 팬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타고난 인복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말처럼, 튼튼한 몸과 더불어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모델 활동과 대표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자만심은 없었다. 모델로서 외면보다는 내면에 더 집중한다는 알렉스 강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사람답게 사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유혹과 변수에 휘둘리기 쉽고,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나쁜 마음을 먹기가 참 쉬운 세상이다. 그렇기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늘 자신을 점검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마음가짐. 진짜 멋지게 늙어가려면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가 평소의 소신대로 늘 자신의 멋을 잃지 않고, 멋지게 늙어가기를 응원한다.
- 2021-02-17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