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주는 존재, 자식은 받는 존재 김미나 동년기자
‘내 몫은 얼마나 될까’, ‘언제쯤 주실까?’
그러나 짜다는 소리 들으며 부를 축적하신 부모님께 성화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투잡을 뛰고 하얀 밤 지새우며 일했지만, 누구는 연봉 3억이란 말에 손을 떨궜다. 언젠가는 주시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도 아이들이 자라고 사교육에 등골이 휠 때마다 절심함으로 밀려왔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가던 사촌 언니의 넋두리에 드디어 종지부가 찍혔다. 부모 도움 없이 성공하는 일이 정말 힘든 세상이라며, 내 자식 뒤처질까 증여를 해주셨다는 것이다. 환한 목소리로 곧 이사를 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는 언니는, 가뿐하게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꽃밭으로 들어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아들 유학도 보냈다. 만만치 않은 등록금 폭탄에도 한숨이 터지지 않았다. 중년 이후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노후자금 끌어다 자녀 유학비 대는 것이라지만 언니 마음은 늘 아들에게로 향했다. 남편과 부딪혀도 위로를 해주는 건 아들이고, 엄마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먹기 좋은 쪽에 놓아주는 사람도 아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자녀들은 나만큼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에 직면하니 더 안쓰러웠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자조가 씁쓸해도, 받은 것이 있으니 주기가 한결 수월했다. 인생에서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만 한 것이 없고 그 맛을 봤으니 어쩌랴.
유학을 마치고 모두들 어렵다는 취업 허들도 가뿐히 넘은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둘이 결혼 말이 오간 모양인데 외동딸인 여자 친구 앞으로 번듯한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집에서 신혼살림을 하기로 했다니 돌아서 빙그레 웃었다.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다. 신혼살림을 하려던 그 집이 살고 있는 세입자와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입주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쌉싸래한 기분을 내색할 수도 없어 아들 가진 쪽에서 적잖은 전세금을 내줬다. 얼마 후 며느리의 임신 소식에 그간의 속상함은 어디론가 내빼고 애정이 솟았다.
연이은 한파가 휘몰아쳐 뼈마디가 시큰거리고 마음까지 곤두박질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짧은 추위에도 내의를 챙겨주던 아들이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장장한 대화 중에 엄마의 단락은 없었다. 장모님께서, 매서운 추위에 사위 감기라도 걸릴까 두툼한 패딩 사 입으라 50만 원을 보내셨다는 감동 소감만이 물결쳤다. 엄마도 거기에 공감하라는 메시지를 폭풍 전송하고 있는 남자가 아들이었다. 사돈댁 지원에 제스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상응하는 임신 축하금을 보냈다. 아들은 오래된 집이라 아기 키우기에 춥고 불편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흘렸다.
찌르르하면서 멍함이 파고들었다. 아들은 잊고 있나보다. 막대한 유학비와 조건 없는 억대의 전세자금이 흘러 들어간 벅찬 사정을. 그때 감사 표현을 지금 감동의 조각만큼이라도 했던가. 제 돈 가져가는 것처럼 당당했지. 크고 작은 결제를 할 때도 머뭇거림 없었지. 주저 없이 카드를 썼지. 손 벌려 받은 것이니 그렇게 써도 되는 돈이라 생각했겠지. 부모가 영원한 봉이냐고 말하려다 사촌 언니 스스로 말문을 닫았다. 마치 자기가 들어야 할 말처럼 뜨끔해했다. 애써 모은 내 돈 쓸 때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부모님이 고생하며 번 돈 쓸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날 뚝 떨어진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고 잘 먹고 잘 사니 어깨가 가벼웠다.
울적한 마음 달래보려 남편 앞세워 여행을 기획했다. 그런 사촌 언니에게 아들은 말했다. 3~4년 후에 아이 크면 그때 함께 가자고. “어이쿠, 이게 바로 친구들이 뜯어말렸던 ‘육아 도우미’ 패키지 여행이로구나.” 손주와 가는 여행에 따라나섰다가는, 독박 육아에 여행 경비 떠맡을 돈줄로 내몰려 여행은커녕 스트레스만 뒤집어쓰고 돌아오게 된다 하지 않았던가. 사촌 언니는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여행을 떠났다. 답 없는 질문을 변명으로 툭 던지면서.
애초에 부모는 주는 존재, 자식은 받는 존재로 태어난 것일까.
자연으로 돌려주고 싶은 유산 백외섭 동년기자
지난 여름휴가 때 지인으로부터 제주도 초대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산관리사인 내가 이번 그의 여행에 동행해 상속재산 ‘제주 땅’을 찾고 그 활용 방안 자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휴가를 겸해서 떠난 상속재산 찾기 여행. 이른 아침 거북바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는 자신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그 땅이 있을 것이라 했다. 모친에게 상속등기를 해놓은 땅인데, 성산일출봉에서 가깝다는 ‘제주 땅’을 아직 본 일은 없다 했다. 아직 젊은 그는 재능기부 창업상담 활동을 하면서 나와 만났고 가끔 산행을 같이하면서 교류하는 사이다.
상속은 멀리 그의 외조부로부터 시작됐다. 옛날에는 상속지분이 지금처럼 ‘남녀평등’하지 않았다. 아들과 딸, 호주상속자 차별이 심했다. 제사를 모시는 장자에게는 듬뿍 주고, 출가한 딸의 몫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날처럼 상속분쟁으로 패가망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의 외조부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다. 집과 선산, 문전옥답은 아들 몫이 될 터였다. 외조부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세 딸도 생각했다. 농토의 일부를 정리한 뒤 현금을 마련해 딸들에게도 재산을 똑같이 나눠줬다. 이는 상속과 구분하기 어려운 증여였다. 그의 어머니와 이모들은 생각지도 않은 돈을 받고 생활 여건에 따라 긴요하게 사용했다. 어렸을 때 그가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큰 회사 제주지사에 근무했던 그의 부친은 장인에게서 받은 돈이므로 땅에 묻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장래에 집 지을 생각으로 적당한 곳의 임야를 샀다. 개발전망이나 투자가치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던 옛날이야기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서울로 발령이 났고, 그 후로는 제주도에서 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그의 가족은 그 땅을 보지도 않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곳인데도 누구 하나 찾는 사람도 없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 땅에 있었다. 우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분석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창작예술 사업가였는데,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차를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뭔가 창작소재를 찾고 싶은 눈치였다.
얼마 후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던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주소대로 안내를 받은 곳은 해안의 반듯한 도로와는 전혀 다른 비포장도로였다. 한참 더 들어가서야 차가 멈췄다. 우리가 찾는 ‘임야’였다.
하지만 도로보다 조금 낮게 야트막한 늪이 펼쳐져 있었다. 물오리 몇 마리가 수영을 즐길 정도로 물이 있었다. 상당한 넓이의 임야 중 절반이 그랬다. 경사진 땅으로 가려면 늪에 배를 띄워야 할 형편이었다. 이른바 맹지였다.
“허허! 이게 뭐야?”
그의 헛웃음이 주변으로 메아리쳤다.
가까운 곳에 몇 가구가 사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마침 ‘토박이 부동산’ 어르신을 만났다. “옛날에는 모두 땅이었는데, 웬일인지 지반이 점점 내려앉아 물이 고였다”고 설명해줬다. 토지로 활용하려면 늪을 메워야 하는데 지반이 약한 제주에서는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일출봉 앞 백사장에서 우린 맥주를 들고 마주 앉았다. 낮에 봤던 물오리 몇 마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풍경, 물오리가 사는 늪이 좋았다. 그러니 그 ‘제주 땅’을 자연으로 돌려주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공평한 나눔에 대한 생각 박종섭 동년기자
공평한 나눔이란 어떤 것일까? 어느 집이든 이런 물음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크든 작든 돈과 연관이 되면 하나의 답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상속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걸려 있다. 핏줄을 나눈 형제도 있고 배우자도 있다. 아무리 우애가 좋은 형제라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겪지 않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6남매를 키우신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히 일해 돈이 생길 때마다 근처의 땅을 사들이셨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논마지기깨나 있는 집안이 된 것이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부모님이 땅을 살 때마다 명의를 자식들 앞으로 하나둘 해놓으셨다는 걸 알게 됐다. 집 앞 논은 큰아들, 고개 넘어 서 마지기는 작은아들, 그리고 주산골 밭 한 뙈기는 막내아들, 이런 식이었다. 그때는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았고 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그 유산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됐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감사해하며 부모님 제사를 지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아들에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이 땅은 팔지 않고 네게 물려줄 거다. 그러니 너도 팔지 말고 훗날 네 아들에게 물려줘라. 저 건너 밭은 네 사촌형 밭이니 사촌끼리도 잘 지내도록 하라.”
내 처가도 형제간 우애가 정말 좋다. 부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셔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제들은 시골에 자주 모여 즐겁게 지냈다. 가을이면 텃밭의 배추를 뽑아 온 가족들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맛있는 보쌈김치도 만들어 두툼한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곁들이며 축제를 열었다. 남은 텃밭에는 형제들이 나눠 먹자고 건강에 좋다는 ‘아로니아’ 나무를 심었다. 형제들이 모여 거름 주고 김매고,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함께 수확을 하곤 했다. 어느 가족 못지않게 형제들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작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옛날 어른이라 그런지 덩치가 가장 큰 뒷산은 장남에게 벌써 명의이전을 해놓으셨다. 나머지 논밭 그리고 집이 있는 대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있다. 분배 과정에서 서운함이 있었고 결국 형제들은 옛날 같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물론 법이 있기는 하지만 형제간 문제는 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살아 계실 때 어느 정도 정리하시고 가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특별수익’을 챙긴 손윗사람이 먼저 마음을 비우고 아랫사람을 품어야 한다.
공평한 나눔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나눠놓고 선택 우선권은 상대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상황은 거의 없다.
“지금은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웃음), 다시 생을 산다면 발레를 하고 싶어요.”
유년기에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소녀. 그러나 너무 훈련이 고되고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그만둔 그 소녀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가수 혜은이의 얘기다.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제3한강교’ 등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던 노래들의 주인공인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을 불사르는 듯한 무대를 선보이면서 여전히 가수로서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해봤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1990년대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지만, 그 의미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은 있었다. 혜은이를 197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972년 10월 유신으로 시작되어 1979년 10·26 사건으로 끝나는 1970년대의 엄혹함은, 오히려 그렇게 엄혹했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더더욱 낭만을 꿈꾸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갈망을 채워준 가수가 혜은이였다. 동양적이고 발랄한 얼굴과 그와 대비되는 서구적인 길쭉한 체형. 길옥윤 사단이 만들어낸,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과 그 노래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가창력. 혜은이라는 이름은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당시 대중가요의 가장 세련된 경향으로서 역사에 새겨졌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KBS 음악 프로그램 ‘가요무대’ 출연을 준비하는 사이에 대기실에서 만난 혜은이는 조금 살이 빠진 느낌이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공연들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일까. 수도권과 대도시 위주로 했던 지금까지의 공연과는 달리, 이번에는 소도시까지 훑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그녀로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문득 지난 호 남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굉장히 신나 한다고 말해준 것이 생각나 그대로 그녀에게 전해줬다.
“어휴, 선배님은 공연 안 하면 못 사는 분이야. 내가 무명일 때 그분 리사이틀에 찬조 출연한 적이 있어요. 열아홉, 스무 살 시절이었는데 공연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지.(웃음)”
그러나 공연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론 혜은이도 못지않다. 데뷔 이후 어느덧 수십 년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혜은이의 노래는 더 진화하면 했지 퇴화하지 않았다. 그녀의 공연을 본 사람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예순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워풀한 그녀의 목소리와 뛰어다니며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젊은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관록과 에너지가 공연을 휘어잡고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가 천직이었다
45년. 공식적으로 혜은이가 데뷔해서 지금까지 가수로서 보낸 시간이다.
“사실은 더 오래됐어요. 정식으로는 45년이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서 노래를 불렀으니. 무명 시절이 4년 정도 있었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이제는 가요계의 대선배가 된 그녀에게 인사하려고 후배들이 끊임없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후배들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고죠. 노래를 한결같이 똑같이 부르세요.”
한 후배 가수의 말에서는 음악인 혜은이를 향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상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하면서 이게 나의 즐거움, 천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어려서는 가장 노릇을 해야 했고, 생계형 가수로 살았죠. 어찌어찌하다 유명해져서 활동을 할 때도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죠.. 첫 결혼이 잘못돼 정신없이 살았고, 두 번째 결혼에서도 난리가 나서….”
쉽지 않은 얘기,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그 얘기였다. 무대 위에서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가 견뎌온 세월의 무게만큼 묵직했다.
뒤돌아보면 자식들이 보물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쁘고 딴 곳을 쳐다볼 새도 없이 일하다 보니 ‘노래란, 가수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변화가 찾아왔다. 데뷔 30주년이 됐을 때였다.
“노래가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얼마 안 됐어요. 10년 남짓? 15년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맨날 10년이라고 하네.(웃음) 그제야 ‘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네?’ 깨달았죠. 가수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녀는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많은 행복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흐뭇해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거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하죠. 제 목적은 딸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이든 나를 기다려주는 팬들이 있었고요. 그것들이 제 목적이었죠. 그래서 버텼고 앞으로도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고 자식 둘이 전 재산”이라고 말하는 혜은이는 그 말처럼 딸과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딸과는 ‘30년 기도해서’ 요즘 같이 살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말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겠어요. 그래서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고 말해요. 결혼을 하겠다면 하고 아니면 말고.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 조리사 자격증 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딸은 스킨스쿠버 강사로 일하는데 투잡해야겠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시작했어요. ‘엄마, 한 가지 일로는 돈 못 모으겠어’ 하더라고요.(웃음)”
내 목소리 지키는 게 중요
후배들의 찬탄처럼, 혜은이가 가수로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가수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은 가수의 의미를 모른 채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가수를 철저히 직업으로서 여겼기에 그토록 자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가수가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한 신뢰와도 이어졌다.
“옛날 가수들과 요즘 가수들을 실력으로 비교하면 요즘 가수들이 훨씬 잘하죠. 우리 때는 레슨 이런 게 있기나 했나요?(웃음) 타고난 게 있으면 가수가 됐고 작곡가들과 녹음할 때 연습하는 정도였죠. 지금은 기계적인 사운드가 발달해서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하는 후배가 많아요. 그래도 역시 반짝하는 후배들은 가창력이 없는 후배들이고 10년 넘게 오래하는 가수들은 노래를 잘하는 후배들이에요.”
그렇다면 공식 활동기간이 45년인 그녀의 현재 마음가짐은 어떨까?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타성에 젖어서 변하게 돼요. 안 변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요즘 노래를 더 잘 부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옛날의 내 목소리를 지키는 데 더 힘을 쏟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에프엠대로 하는 거예요.”
사실 자기 목소리를 좋아하는 가수는 드물다. 혜은이 또한 임재범의 굵고 허스키한 소리가 좋다고 한다. 그녀의 맑고 소녀 같은 목소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과는 다른 것에 끌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신곡을 녹음할 때 다르게 부른다고 부르면 노래가 안 되더라고요. ‘선생님, 다시 한 번 불러보실까요. 조금 더 잘하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말 듣게 되고. 그러다 결국 찾아내는 건 내 원래 목소리예요. 지금은 옛날보다 노래를 훨씬 잘 불러요. 음량도 더 넓고 풍성하고. 그러나 예전의 그 순수했던 목소리는 못 내죠, 그래서 저에게는 그게 진짜 어려운 거예요.”
혜은이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에 대해 묻자 ‘물론 데뷔곡’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실 애착 안 가는 노래가 있을까. 콘서트를 하면 시작, 중간, 끝 부분을 대표해야 하는 노래들이 있기 마련이죠. 내 경우에는 그 위치에 분명한 노래들이 있어서 공연 프로그램을 짤 때 편리하긴 하죠.(웃음) 요즘은 모든 공연의 피날레를 ‘열정’으로 맺고 있어요. 나온 지 한 30년 됐나? 그런데 마치 엊그제에 나온 것처럼 불러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시절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이라는 가사가 담긴 ‘열정’은 그 가사처럼 활화산 같은 박력과 리듬감으로 관객을 방방 뛰게 만드는 노래다. 그 노래를 들으면 항상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혜은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말에 그녀는 다소 씁쓸하다는 듯 말했다.
“옛날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사는 데 시달리고 힘들다 보니까…. 45년 가수 생활을 했지만 중간 20년 정도는 개인 사정으로 빛을 못 발휘했죠. 내 골든타임을 놓친 거예요. 사실 많이 억울하죠.”
그러나 이대로 그냥 마무리할 혜은이가 아니다 싶었다. ‘다시 새로운 도약을 해보자. 난 할 수 있다’라고 되새겼다. 혼자서는 못하지만 팬들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자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결심이 이번 공연의 핵심이다.
“혜은이를 사랑한 수많은 팬에게 노래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공연 투어는 중소도시를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측은지심에서 시작된 남편과의 의리
혜은이에게 깊은 사연이 된 남편 김동현 얘기를 여기서 반복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미 너무 많이 얘기됐지 않았나. 그저 조심스럽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 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부부로서 잘 지낼 수 있었던 지혜가 있었는지. 어찌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냥, 측은지심. 상대를 불쌍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 같아요.”
그녀는 인간의 삶이란 항상 ‘맞다, 아니다’의 두 가지라고 말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사람과 안 살려면 끝을 봐야 하지만, 함께 살려면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나름대로 힘들었겠구나. 내가 이렇게 힘든데 당사자인 상대는 얼마나 힘들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이만 봐도 그렇다.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내가 주사를 맞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마음으로는 아픔을 느끼지만 육체로는 느낄 수가 없다. 상대의 아픔을 알 수가 없으니, 그것에 대해 함부로 재단을 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제 종교가 기독교예요. 그래서 항상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이 실수했을 때, 무조건 질책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인생 공부 무지 많이 했죠. 말로 다 할 수 없어요.(웃음)”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공식적인 혜은이의 출생 연도를 보면 1956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1954년생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났는데 목포로 나가서 호적 신고를 하느라 신고를 늦게 했대요. 호적에 나이가 그리 되어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데 마음이 그리 안 돼.(웃음) 그래도 ‘호적 나이대로 할래’라곤 못하겠어요. 2년이 어디야?(웃음)”
나이 얘기가 나오니 옆에 있던 매니저가 한마디 거들었다.
“팬들이 물어보면 호적이 아닌 실제 나이로 말씀하시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 다들 ‘나는 나이를 줄이고 싶어 죽겠는데 왜 나이를 올리시지?’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호적 나이대로 할 거야. 아마 칠십이 가까워지면 그럴 수 있을 거야.(웃음)”
인터뷰 말미로 가면서 그녀의 웃음이 더 많아졌다. 준비했던 무대가 끝나서일까?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일까? 그 웃음 속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그 시절 그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는 공연만 생각하고 싶어요. 뮤지컬도 해봤는데, 뮤지컬은 아쉬운 게 개인 콘서트를 했을 때의 기쁨과 속 시원함이 없어요. 다 같이 하는 거니까요. 지금 나한테 절실한 건 노래하는 거예요. 나만을 위해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게 정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아닐까요.”
많은 어려움과 맞서 싸운 사람
얼마 전 방송에서 혜은이는 45세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을 놓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죠. 그런데 실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또 그런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까봐.(웃음)”
그녀는 오랫동안 미로와도 같은 길을 걸었고, 거듭 출발선에 서야 했다. 묵직한 울림과 고통을 알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변하지 않는 가수로서의 자신으로 그들에게 보답한다.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가수로서도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했고 많은 어려움과 맞서 싸웠죠. 피하지 않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러길 참 잘했다 싶어요.”
혜은이의 시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무대가 있는 한, 그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노후준비가 시니어들의 화두로 떠 오른 지가 제법 되었다. “내 노후는 어떻게 되겠지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칠까”하고 큰소리는 치지만 길어지는 수명을 생각하면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보고 싶었던 참에 국민연금공단의 ‘노후 준비 자가진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2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별로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갖고 7명씩 소그룹을 만들어 심층적인 문제 진단을 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재산이나 친구 관계와 건강문제를 모두 다 공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심층적인 개인별 진단을 위한 희망자를 받기에 신청을 했다.
보름정도 지나서 국민연금공단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담이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서로 타진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집 가까운 공단지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자신을 ‘노후준비서비스팀 노후준비 전문상담사’라고 소개한다. 먼저 내가 가진 재산을 모두 말하도록 했다. 부동산을 위시하여 저금, 보험, 보유주식은 물로 직장수입까지 다 말했다.
술, 담배, 운동 등 나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툭 털어놨다. 종교활동이나 사교모임 등 여가를 보내는 분야도 터치한다. 부부간 가사분담이나 형제간 우애도 물어보고 노년기 친구들 관계도 궁금해했다. 정확한 내 자산상태를 알기 위해 동의를 해주면 관계기관을 통해 자료를 추출할 수 있다고 해서 이 부분도 동의를 해 주었다.
내 처지로는 재무 분야가 제일 궁금했다. 검토결과 ‘실손보험’이 없는 것이 취약점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중대 질병 시 치료비와 입원비를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해 있는 점이 그나마 다행으로 나타났다. 노후 수입은 국민연금이 있고 다음으로 은행과 보험회사의 개인연금보험이 있다. 증여는 절세차원에서 자녀들에게 기간을 두고 사전에 조금씩 나누어 주라는 조언도 들었다.
이번 크게 도움받은 점은 연금수급예정에 대해 세금 문제였다. 연금도 수령 금액이 높아지면 세금을 내야 하므로 수령 기간 5년을 10년으로 장기수급을 하도록 권유받았다. 깜박 놓치고 있는 부분이었다. 또 하나는 국민연금을 더 받기 위해 받을 시기를 연기했는데 만약 내가 죽고 아내가 연금을 받을 때는 가산된 연금이 아닌 기본연금으로만 산정된다는 제도다. 남자가 일찍 죽을지 안다면 연금을 받는 시기를 늦추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수익형 부동산의 구매는 임대수익성을 따져봐야 하는데 소득세,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 공과금과 관리비용, 공실률 등을 고려한 실질수익을 고려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임대부동산 관리는 시설관리와 임차인 관리까지도 신경 써야 하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일일이 말하지 못할 정도로 상세한 진단을 받았다. 두시간 이상의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세밀한 진단을 해 주리라고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감동했다.
노후 여가활동을 하기 좋은 우리 동네 기관을 알아주고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사이트도 안내를 해주었다. 막연한 조언을 듣기보다는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라면 족집게과외처럼 콕 집어 알려주는 전문가와 1대1 상담을 받아보고 하루라도 빨리 궤도수정을 하면 좋겠다.
현금 및 유가증권, 귀금속류, 부동산(회원권), 주식(상장 및 비상장 불문), 금융자산(금융상품) 등의 전통적인 상속 재산 이외에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 문의가 늘고 있다. 미술품은 고급 취미를 즐기면서 저금리 시대의 대체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세무변호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동산, 주식 및 금융자산은 실명 등기 또는 등록이 의무이고 그 평가기준이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어 과세당국이 양도, 증여 및 상속과 같이 그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쉽게 포착해 과세할 수 있다. 반면, 미술품은 양도, 증여 및 상속 여부와 같은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과세당국이 쉽게 포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이를 포착하더라도 그 과세표준(즉,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미술품 부과 세금, 이렇게 다르다
그렇다면 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어떻게 부과될까? 원칙적으로는 미술품의 생성단계(작가의 측면), 유통단계(화랑, 경매 회사의 측면), 소비단계(수집가, 미술관의 측면)로 구분해야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범위인 수집가 측면에서 미술작품을 양도, 증여 및 상속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미술품 과세를 소개한다.
먼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이 미술품을 양도할 경우다. 양도인은 미술품 양도로 인해 일정한 소득을 얻는다. 그 소득에 대해서는 ①그 양도가액이 건당 6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 한해(금액 기준), ②그 작품이 외국 작가의 작품이거나 또는 양도 시점에 국내 원작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 한해(작가 기준), ③‘양도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된다(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④기타소득으로 과세되는 경우라도, 미술품 양도가액의 80%, 미술품 보유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양도가액의 90%까지 필요경비가 인정되고, 실제 소요된 필요경비가 위 금액보다 크다면 실제 소요된 금액만큼 필요경비가 인정된다(고율의 필요경비 인정). ⑤분리과세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미술품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양도가액에서 위 필요경비를 차감한 금액에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을 적용한 금액을 원천징수한 뒤, 다음 달 10일까지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으로 세금 납부가 종결된다(세금신고 및 납부의 간편성).
요약하면, 다른 경우에 비해 소득세 부담이 적고 소득세 신고납부의 절차도 간편하다. 또한 미술품 거래에는 부가가치세가 면세된다. 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까지 과세되는 귀금속 거래에 비해 유리하다. 주식거래와 달리 증권거래세도 없고, 부동산(회원권) 거래와 달리 취득세도 없다. 게다가 실무적으로 볼 때 미술품은 등기·등록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양도의 경우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원천징수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과세당국이 포착해 과세하기는 더더욱 어렵다(참고로 양도인이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 경우 원천징수불이행가산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다운계약서, 불법적 요소 주의해야
양도와 달리,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경우에는 다른 재산 대비 유의미한 절세제도는 도입되어 있지 않다.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때는 다른 재산과 동일하게 증여 또는 상속세를 신고 및 납부해야 한다. 다만, 증여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기 위해서는 증여 또는 상속 재산을 증여 또는 상속일 당일의 ‘시가’가 얼마인지를 금액으로 평가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인 이상 전문가의 감정평균금액과 국세청위촉 3인에 의한 감정평가심의회 감정가액 중 높은 금액으로 미술품의 ‘시가’를 결정한다. 미술품의 경우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작품별 소장가치 및 투자가치가 가격 형성의 기초가 되어 참고할 만한 다른 가격을 찾기 어렵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평가에 주관적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 그 평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평가금액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최선은 아니겠지만 차선으로 위와 같은 ‘시가’ 결정의 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 때문인지 위와 같은 미술품의 ‘시가’ 결정에 대한 세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실무상으로는 세무조사 단계에서 피상속인의 미술품 취득가액이 입증될 경우 그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는 사례도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고려해 일단 미술품 취득에 대해서는 소위 ‘다운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다운계약서’ 작성은 오히려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서 조세포탈죄로 처벌받을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다운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취득가액을 기재한 매매계약서나 경매기록을 보관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고, 실제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기록들은 관리를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챙겨두는 것이 자녀들의 상속세 또는 세무조사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길이다.
한편,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달리 상속 재산인 미술품으로 물납(物納)할 수 없다. 즉 미술품의 경우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에게 다수의 미술품을 상속하려면 그에 대한 상속세 납부재원을 반드시 함께 마련해야 한다. 미술품을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공익법인에 출연해 자녀들에게 관리하게 함으로써 당장의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절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공익법인의 경우 미술품 출연 이후 생각보다 까다로운 규제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미술시장은 거래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거래비용이 과다하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을 추진 중이고, 부동산처럼 일정 기준 이상은 등록제 또는 공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지적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향후 어떻게 미술품 관련 법과 세제가 정비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도록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하고, 개인 소장자의 미술품 양도에 대한 과세기준을 현행 6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며, (이번에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미술품 구매에 대한 손금 인정 한도를 건당 취득금액기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 이를 통해 전체적인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 및 양성화되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당연히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 규모도 매우 커졌다.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억 원이 넘는 상황에서 과거 부자의 상징이었던 백만장자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부자 축에도 들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개인들의 재산 규모가 확대될수록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상속과 증여의 문제다. 과연 자녀에게 어떻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을까? 일률적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고민할 법한 사례들을 통해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재산의 대물림과 관련해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대표적인 사례 세 가지와 그에 대한 해법을 나름대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사례1. 상속이 좋을지, 증여가 좋을지
김갑동(가명) 씨는 상속을 해주는 것보다는 미리 증여를 하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이익이라는 말도 들었고, 아들이 원하기도 해서 아들에게 미리 증여를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아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서 앞으로도 꽤 오래 생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재산을 증여한 이후 아들이 자신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많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미리 증여를 해준 후 생계가 곤란해지거나 자식들이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무시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를 할 때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고 부양할 것을 약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만약 자식이 그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이미 증여한 재산의 반환을 청구하면 법원이 받아들여줄까? 이러한 증여는 법률상 ‘부담부증여’에 해당될 수 있다. 증여를 하되 증여받는 사람, 즉 수증자에게 일정한 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부담부증여를 받은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자는 계약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다(민법 제561조).
문제는 그러한 부담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의 여부다. 증여는 원래 부담 없이 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부담이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 즉 부모가 부담의 존재(재산을 증여하는 대신 부양하기로 했다는 사실)를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 부모 자식 간에 계약서를 작성하고 증여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니 부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이른바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증여를 하는 대신 부양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만약 이를 어기면 증여한 재산을 다시 반환한다는 취지의 계약서인 것이다. 이런 계약서를 작성해두면 나중에 자식이 의무를 위반할 경우 부담부증여임을 주장, 입증하기가 매우 용이해진다. 즉 증여 재산을 다시 반환받기가 수월해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고 꺼려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긴 하지만, 미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증여하기 전에 꼭 효도계약서를 작성해둘 것을 권한다. 그리고 효도계약서의 내용은 가급적 구체적일수록 좋다.
사례2. 위대한 상속, 아름다운 증여
김을동(가명) 씨는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에게 잘해주고 대를 이을 손자도 있어서 아들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취지의 유언장을 작성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유언장을 작성하면 자신이 사망한 후 아들과 딸들 사이에 분란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딸보다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다. 특히 가업을 물려주고 싶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유류분제도라는 것이 있어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유류분이란 상속 재산 중에서 피상속인(부모)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고 상속인(자녀)을 위해 법률상 반드시 남겨둬야 할 일정 부분을 말한다.
‘상속 재산 중 남겨둬야 하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상속으로부터 배제된 상속인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상속으로부터 배제된 배우자나 자녀들은 생전 증여나 유언이 없었다면 자신이 원래 받을 수 있었을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1112조).
법정상속분 전체를 반환받지 못하고 2분의 1만 반환받도록 한 이유는, 피상속인의 이익과 상속인의 이익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이익을 균형 있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피상속인에게는 유언의 자유가 있고, 자기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유류분제도는 상속인이 상속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내지는 이들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상속인과 상속인이 서로 2분의 1씩 양보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러한 유류분제도가 있기 때문에 만약 사례2와 같이 김을동 씨가 아들에게만 전 재산을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을 경우 딸들은 아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딸들의 권리의식이 투철해진 요즘 이러한 유언장을 작성할 경우 김을동 씨의 우려대로 사후에 자식들 간에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아무리 아들에게 전 재산을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해서는 분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딸들의 유류분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산은 딸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아들에게 주는 것으로 유언장을 작성할 것을 권한다.
사례3. 성년후견인과 유언대용신탁
김병동(가명) 씨에게는 자식이 하나 있는데 정신지체자이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모두 탕진해버리거나 사기를 당해 나중에 생계유지도 못할 것이 걱정이다.
김병동 씨의 경우처럼 자식에게 장애가 있거나 또는 나이가 너무 어려 재산을 물려주더라도 온전히 재산을 보존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 걱정하는 이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생전에 증여를 해도 걱정이고 사후에 상속을 해줘도 걱정이다. 자녀가 정신지체자이거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자녀를 위한 성년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은 자녀의 신상보호와 재산관리를 맡아서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성년후견인은 일반적으로 재산관리의 전문가도 아니고 관리를 맡은 재산을 횡령할 위험도 있다. 우리보다 성년후견제도를 먼저 시행했던 일본의 경우에도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횡령해 문제가 된 사건들이 있다. 이런 위험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제도가 바로 유언대용신탁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자신이 사망한 후에도 재산이 자신의 뜻대로 처분되고 활용되기를 희망하는 재산승계 수단이다. ‘사후설계’에 관한 피상속인의 욕구를 해소시켜주기 위한 대안으로 2012년에 도입되었다(신탁법 제59조).
유언대용신탁은 말 그대로 유언을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유언과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피상속인)가 생전에 신탁계약으로 자신의 재산을 신탁에 맡기는 것으로서 위탁자의 생전에 이미 신탁이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나 유언은 유언자 사후에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이 아니라 계약이기 때문에 엄격한 유언의 방식을 갖출 필요도 없고 유언법정주의(법에 정해진 사항에 대해서만 유언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유언대용신탁이 유언에 비해 매우 편리하고 융통성 있는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의 전형적인 예를 들면, 위탁자 갑이 수탁자 을과 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신탁원본(처음에 신탁에 맡겼던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신탁수입을 갑의 생존 중에는 갑에게 지급하고 갑이 사망하면 신탁원본 및 신탁수입을 병(상속인)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때 수탁자는 반드시 금융기관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일반 개인도 수탁자가 될 수 있지만, 자녀를 위해 안심하고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하는 것이 좋다.
정신지체 자녀를 위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피상속인이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치자. 그 건물을 신탁하면서 자신이 죽더라도 자녀에게 건물을 넘겨주지 않고 자녀가 사망할 때까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수익만을 지급함으로써 자녀가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자녀가 사망하면 그 자녀의 상속인에게 이전시키든지 아니면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자녀를 위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피상속인이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치자. 그 건물을 신탁하면서 자신이 사망할 당시 자녀가 미성년자인 경우, 건물을 바로 자녀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녀가 성년자가 될 때까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수익만을 지급하고, 자녀가 성년자가 되면 비로소 건물의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이처럼 기존 제도로는 커버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새로운 재산승계 수단이다.
이런 제도를 잘 활용하면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이 탕진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승계될 수 있다.
귀농·귀촌은 시대적 화두다. 그러나 막상 도시인이 귀농·귀촌을 하려고 하면 막연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당연히 지역과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창군은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다양하고 실제적인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농업기술센터 김상래 기술지원과장과 황창윤 귀농·귀촌 담당과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 귀농·귀촌의 현재, 그리고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조언을 듣고 준비된 상황을 짚어봤다.
2015년 6월 평창군으로 귀농해 여름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이철성 ‘아빠랑 딸기랑 아이랑’ 대표는 11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자랑하는 고품질 딸기를 연간 60여 톤 생산하고 있다. 6월부터 국내 유명 백화점에 독점 공급을 시작한 그는 해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태아와 임신부, 출산부를 위한 여름 딸기 비영리 공급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여름 딸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비영리 교육기관인 ‘미션 코리아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영어, 수학, 과학 및 예체능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평창군으로 귀농했다. 거리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귀농·귀촌한 사람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잘 준비된 계획과 나눔의 마음으로 성공적 귀농·귀촌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귀농·귀촌의 딜레마
최근 일선에서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고도화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인도 삶의 대안으로 귀농·귀촌을 눈여겨보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한 TV 프로그램은 일정 시청률 이상을 보장하는 분명한 트렌드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은 여전히 큰 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개인들 각자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치르는 복마전에 가깝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빈약한 인프라와 텃세에 실망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평생을 한자리에서 산 고향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대로 도시인들의 ‘뜨내기 기질’에 질려서 스트레스받는 게 현실이다.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지역 단체의 적극적인 중개자적, 중재자적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평창군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이 컸다. KTX도 개통되어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인 평창은 2017년 기준 귀농 가구가 114가구로 강원도 전체 1074가구의 약 10.6% 정도다. 그중 약 75%인 86가구가 1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귀농인구는 100여 가구 내외, 귀촌 인구는 1200가구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귀농인구의 경우 2016년 대비 2017년 귀농 가구 수가 27% 증가했고, 귀농 가구원 수도 9.5% 증가하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정착 지원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제공
평창군도 다른 지역 지자체와 비슷하게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이 절실한 상황. 그를 지원하기 위해 평창군은 여러 가지 금전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사업’이 있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농업 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농지 구입이나 농업용 시설 설치 등의 농업 창업에 3억 원, 주택 구입이나 신축에 7500만 원을 연리 2%, 5년 거치 10년 원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지역을 젊게 만들기 위한 ‘귀농인 정착지원금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청·장년층을 귀농인으로 적극 유치해 미래 농업인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으로 20세 이상 45세 이하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년 차 농업인에게는 월 80만 원, 2년 차에게는 월 5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지원된다. 또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1개소당 500만 원의 주택 수리비가 지원되고 농업기계, 농업용 시설, 농업 자재 등의 구입비 50% 지원하고 있다.
교육과 창업으로 귀농·귀촌 성공 유도
평창군은 귀농인 정착 지원이 때로는 인구 늘리기 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소모적인 경쟁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었다. 이 점을 유념해 실제적인 귀농인 정착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 핵심은 교육과 창업이었다.
김상래 과장은 “귀농·귀촌은 생활의 거주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변동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귀농·귀촌은 삶의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귀농인 스스로의 철저한 준비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만큼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에 대한 기본정보 숙지하라
김 과장은 개인의 귀농·귀촌 준비를 위해 우선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nfarm.com)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권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교육은 물론 민간기관 공모교육, 현장실습 교육장, 귀농·귀촌과 관련한 기본 공통교육, 청년교육, 소그룹 강의 등 귀농·귀촌과 관련한 교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귀농인이 선택한 품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면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평창군도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평창군은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농업경영 마인드를 함양하고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한 취지로 ‘신규 농업인 기초영농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귀농인의 농촌 정착 환경 조성뿐 아니라 귀농·귀촌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으며, 농촌 정착에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여기서는 소득작목선정 방법, 미래형 농업 마케팅 전략,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관리와 소통 등 다양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귀농인 현장실습교육’을 마련해 신규 농업인과 지역 선도 농업인이 함께하는 영농 실습 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인 영농 방법과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창군에서는 현장실습에 소요되는 교육훈련비 귀농인 월 80만 원, 선도농가 월 4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농 창업 지원 사업’은 귀농인의 귀농 창업 우수 아이템 발굴 및 소자본 창업 지원으로 귀농인의 소득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귀농 창업 아이디어 발굴과 지적재산권 확보, 농업 기반 조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귀농 교육 우수 수료자를 대상으로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지혜 터득
귀농·귀촌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민의 텃세다. 도시인은 특히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평창군은 매년 ‘평창군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1박 2일 코스로 진행되는 귀농·귀촌 페스티벌은 예비 귀농·귀촌인을 초정해 정책 안내, 영농 체험, 선도농가 방문, 평창군 투어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지역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귀농·귀촌인과 마을주민 간 갈등 해소 및 소통을 위한 갈등 해소 교육을 실시하고 화합 행사를 개최하는 등 마을 여건에 맞는 세부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귀농해 농촌생활을 꿈꾸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농촌형 삶을 선택하고 준비한다면 자연에 몸을 맡기려는 도시민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김 과장은 더욱 알차고 다양한 귀농·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귀농·귀촌인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5년 전에 살던 서울 광진구에 있던 아파트를 올 3월에 팔았다. 6월 4일 잔금 수령 일 등도 관계인들 요청으로 5월 말로 당겨 처리하였다. 현직에 있을 때 계약관계 일들, 법률적인 일들을 오래 처리한 경험이 있어 임차인과의 관계, 새 매입자 또는 매입자가 물색한 새 임차인과의 관계 등 복잡한 4자 관계에서 금전 정산일 들도 모두 정리하고 열심히 처리했다.
직접 모든 것들을 확인하며 발로 뛰며 처리했지만 돌아보니 미진한 점들이 많다. 현직에서 주어진 일들에 성실히 임하며 부모 역할도 열심히 한 후, 집 한 채와 일정 금액의 노후자금을 가진 은퇴자들이 본인의 재산과 일정 금액의 현금을 보호하고 활용하는데 내가 겪은 필수적인 몇 가지 정보와 지식은 상당히 유용하리라 생각되고 최소한 방어적으로 조심하도록 권유하고 싶다. 그것들은 질권, 재산세 부과기준일, 채권양도이다.
1 질권
근대사회 및 자본주의는 근대민법의 3대 원칙인 사유재산권(소유권) 절대의 원칙, 계약자유(사적자치의 원칙, 과실(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급속도로 발전했다. 물론,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빈부의 격차와 경제적인 공황 등으로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이 보완되었다. 이중 소유권 절대의 원칙은 공산주의와 구분되는 큰 기준이거니와 여기에서 용익물권이라는 지상권/지역권/전세권과 담보물권이라는 유치권/질권/저당권이 나온다.
질권은 시계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 같이 목적물을 유지하는 권리와 우선변제를 받는 권리이다. 시계 대신 임대차보증권/지명채권/주식 등 권리질을 잡을 수도 있다. 광진구에 2004년에 마련한 우리 부부의 새 아파트는 정년을 준비하며 잘 이용했고 3자녀들이 수도권에 적응하는 과정에 잘 사용하였다. 정년 후에도 잘 이용하다가 아내가 맞벌이하는 큰딸 부부의 의 두 아들, 즉 외손자들을 봐 줄 사정이 생겨 용인시로 이사 오면서는 전세(임대차)를 내주었다.
내 집같이 아끼며 사는 세입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4년 전인 2014년에는, 세입자께서 사업자금이 필요하여 은행으로부터 전세자금 3억 5천만 원을 융자받겠다며 절차상 필요한 소유주의 동의를 요청해 왔다. 동의를 해주겠다고 하니 첫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에 필요한 법적 요건인 질권 설정을 해야 하니 필요 절차와 서류의 동의절차를 요청해 왔다.
그러자고 했더니 먼저, 은행을 돕는 어떤 법무법인이 신원을 확인하며 직원을 용인 집에까지 보내 이런저런 서류에 도장을 받아갔다. 그런 다음 첫 융자은행은 친절한 안내문을 보내주었다. “임차인은 임대차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저희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임대차보증금에 대해서는 본 은행이 임차인보다 먼저 반환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동시에 8가지 경우 발생 시에는 반드시 알려달라는 주의사항들을 안내해 왔다. 이 중에는 매매 등으로 소유권이 변경되는 경우와 다른 금융기관의 전세자금 담보대출을 허락한 경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년이 지나 전세 계약 기간이 연장되었고 3년이 지나자 임차인께서 이번엔 은행을 갈아타면서 전세자금 융자 이자를 줄이는 융자를 하겠다며 동의를 요청해 왔다. 세입자도 60대여서 이자율을 낮추면 노후자금에 여유가 생길 터여서 또 동의해 줬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은행에선 전화확인만 해오고 사람을 보내어 서류 확인 등의 절차는 밟지 않았다.
아파트가 매매되고 6월 초에 매매 잔금을 받으려는데 임차인께서 5월 말에 두 번째 은행의 융자를 갚아야 하니 임대보증금을 맞춰서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은행에 확인해 보니 임차인 명의의 융자금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는 첫 은행에 아파트 매매 사실과 그전에 임차인이 타 은행에 변경 융자한 사실을 알리며 임대차(전세)보증금을 아파트 소유자는 누구에게 환급할 의무가 있느냐고 확인했다. 그제야 임차인이 2016년 말에 융자금을 상환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무책임했다. 그리고 기어이 2016년 12월 20일 자로 질권 해지 통지서를 직접 받았다. 은행의 질권 설정 서류엔 2018년 6월 초까지 임대차기간이 명기됐었기에 그래야 법률적인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5월 말 임대차(전세)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임차인과 두 번째 은행에 같이 가서 해당 융자금을 상환함을 직접 확인했다. 그래야 3억 5천만 원의 질권분쟁에서 벗어나고 아파트 매매에 따른 심적 부담을 개운히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선의로 임차인의 편의를 위해 질권 설정을 동의해 준다 해도 엄청난 법적 책임과 직접 발로 뛰는 확인 일들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의해줄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권 설정 금액의 두 배 이상 금액에 대한 분쟁과 손실 우려가 발생할 수 있겠다.
2 재산세 부과일 기준
광진구 아파트의 매매 전후의 하자보수비에 대한 매매 당사자들과 기존 임차인 및 새 임차인 간의 하자보수 책임과 비용 분담 등 잔잔한 일들을 다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7월 어느 날 해당 아파트에 대한 재산세가 부과됐다. 매매 사실과 5월 말에 잔금 처리된 사실을 관계구청에 알리고 재산세 부과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매년 6월 1일 기준으로 재산세 반이 부과되고 9월에 나머지 반이 부과된다고 한다. 우리 부부 아파트의 소유권 변경 등기이전이 6월 1일 이후에 이뤄졌으므로 재산세 부과 정정을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9월에 부과되는 것만이라도 새 매입자에게 부과해 달라고 했으나 그것도 6월 1일 기준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근대민법의 3대 원칙 중에 가장 근간이 되는 소유권절대의 원칙에 따르면 소유 없이 재산세를 내는 격이니 고쳐야 한다고 본다. 매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되는 것은 다분히 행정편의를 손해를 끼친 것이므로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논쟁과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6월 1일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됨을 알고 특약조항에 재산세 납부자를 명기하거나 소유권 이전 의무 일을 합의하면 되리라고 본다. 혹은 매매대금 협상 시 알고 반영하면 될 일이다.
3 채권양도
20여 년 전 단독주택 2층에서 거주할 때 임차인이 1층 몇 칸을 얻어 우유 배달업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사업이 성장일로이더니만 어느 날 전세보증금을 양도하고 우유 회사가 양수인이 되었음을 통보해 왔다. 급기야는 임차인이 이사하겠다고 하면서 전세보증금 반환 준비를 해달라고 해왔다. 채권양도양수 통보를 받은 후 수년이 지나서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법정관리가 되고 회사정리법에 따른 복잡다단한 정리채권 확정의 소송들을 진행하던 때여서 양도채권의 효력을 알고 있었다. 받을 채권, 즉 금전에 대하여 압류, 임시압류, 추심명령, 이전명령 등 소위 법적 보전처분들이 뒤엉켜 있어도 채권양도가 통지된 이후엔 양도된 채권이 가장 효력이 강하여 이후의 보전처분들은 전혀 힘을 못 쓰는 것이었다. 만일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줬다면 우유 회사에 동일금액을 이중 반환할 법적 의무가 생기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히 이해시키고 우유 회사와의 직접정산을 권유했다.
이렇게 질권, 재산세 부과 기준일, 채권양도 세 가지만의 기본 개념과 법적 효력을 잘 알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처한다면 젊었을 때 오래도록 애써 모은 각자의 재산과 노후자금은 예기치 않는 손실이나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는 파수꾼이 되리라고 본다.
우린 어린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아도 될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퇴근길에 피자를 사줄게’라던가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점수가 좋게 나오면 자전거나 휴대폰을 선물로 사 줄게’ 같은 약속이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별생각 없이 쉽게 하고 편리하게 잊어버리는 게 더 문제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이야기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들이 따라오며 울었다. 아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집에 가 있어라 그러면 곧 돌아와 돼지를 잡아 줄게.” 이렇게 달래어 아이를 떼어놓고 시장에 다녀왔다. 아내가 집에 와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했다. 아내가 정색을 하며 말렸다. “아이를 달래려고 농담을 했을 뿐입니다.” 증자가 대답하기를 “어린아이와 농담이라니요. 아이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를 통해 배웁니다. 만약 자식을 속이면 이는 자식에게 속임을 가르치게 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되고 이는 옳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리고 증자는 돼지를 잡아 삶았다고 한다. 지금도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는 일은 큰일 때나 가능하다. 당시로도 재산 목록 두세 번째인 돼지를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식의 옳은 교육을 위해 증자는 재산의 손실을 보면서도 단호하게 돼지를 잡았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오래전 일로 당시는 어린이집이 별로 없을 때였다. 전봇대나 담벼락에 아이 봐줄 사람을 구한다는 전단이 붙었던 시절이다. 아래층에 50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같은 동네 다섯 살짜리 아이를 돈을 받고 돌봐주기로 했다. 아이엄마가 출근하면서 아이를 할머니 집에 맡겼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울었다. 아이엄마가 “금방 올게”, “화장실 갔다 올게”라며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아래층에서 아침마다 아이의 울음소리로 마치 전쟁터 같았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면 당연히 우는지 알았고, 그런 아이가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그 아이는 다음 해 유치원을 다녔다. 아이 엄마가 수업 참관을 하는 날. 다른 아이들은 엄마를 힐긋 쳐다보고 곧 엄마를 잊어버리고 아이들 틈에 섞여 잘 놀았다. 그러나 이 아이만은 엄마가 그냥 가버리지 않을까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해바라기가 되어 엄마만 쳐다봤다. 아이엄마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 집 첫 손녀 이야기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겨우 6~7개월 된 기어 다니는 손녀를 두고 직장에 복귀해야 했다. 며느리가 없는 낮 시간대는 할머니인 아내가 돌봐주기로 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손녀에게 며느리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이유와 오후 몇 시경이면 돌아온다는 말을 한다. 아이는 말은 못 하지만 알아듣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가도 칭얼대지도 않았고 할머니의 보살핌을 잘 받아들였다. 신기한 일은 택배라던가 관리사무소 직원 방문 등 손님들이 와서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이가 며느리가 돌아올 시간쯤에 며느리의 발소리가 나면 귀를 쫑긋 세우고 현관 쪽으로 기어간다는 것이다. 엄마의 발소리를 알아차리고 엄마의 귀가 시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매 맞는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폭력적인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짓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사회가 점점 혼탁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부모에게 있다고 본다. 아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약속을 하고도 쉽게 잊어버리는 신뢰 하지 못하는 부모의 태도로부터 대물림하듯 배운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해하지도 않고 임시방편으로 또 다른 거짓말로 둘러대는 등 신뢰를 주지 못하는 부모의 행동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모를 것 같아도 다 안다. 부모를 믿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세상에 누굴 믿고 살겠는가!
유방암은 다양한 암종 중 여성을 괴롭히는 대표주자로 꼽힌다.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체 한국인에게 발생한 암 중 5위로 많았다.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 지으면 순위는 2위로 훌쩍 올라선다. 총 1만9142명의 여성이 자신의 유방암을 발견했다. 발생 시기도 문제다. 지난해 유방암의 발생 연령은 40대가 가장 많았고, 50대가 그 뒤를 이었다. 자식들이 수험생이 되거나 대학에 입학하는, 인생에서 소위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 발생하는 셈이다. 남편이 경제력을 잃어 부인이 가장이 되어야 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방암을 사회적으로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유방암센터장인 이근석(李根碩·51) 교수를 통해 유방암에 대해 시니어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들어봤다.
“그것이 가장 답답한 부분이지요. 정확한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최근에는 유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발병할 확률이 높은 위험군을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근석 교수는 유방암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스트레스에서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유방암의 원인은 여성호르몬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성의 일생 중 여성호르몬이 생성되는 초경부터 폐경까지의 가임기 중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면 유방암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어요. 즉 임신과 출산 횟수가 많으면 발병률이 낮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임신과 출산 경험이 적거나 없으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안젤리나 졸리의 선택은 옳았을까?
유방암 예방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있다. 바로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검사 결과 BRCA 1, 2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돼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자 미련 없이 스스로의 가슴을 절제했다. 외모가 재산인 여배우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사전적 절제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의 선택을 전문의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 교수는 모든 여성이 유전자 이상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전자 검사를 했을 때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는 5~10% 내외에 불과합니다. 모두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검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어머니 등 가족 중에 병력이 있다면 검사해볼 것을 권해요.”
유전자 이상이 발견된다면 졸리처럼 사전적 절제를 하는 것이 나을까? 이에 대해 이 교수의 의견은 엇갈렸다.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유방암이나 난소암 발병 확률이 60~70% 정도 됩니다. 난소암은 조기진단이 어렵고 증상으로 인해 암이 발견되었을 때는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아 사전 절제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유방암은 발견이 쉬운 부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사만 하면 조기진단이 가능해요.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미리 약을 먹거나 예방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답답하지만 그래도 사전 절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유방암 예방의 또 다른 적 ‘비만’
유방암 발병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에 비만도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간혹 가슴 크기에 따라 유방암 발병이 달라지냐는 질문도 받는데, 크기는 사실 발병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만은 영향을 줘요. 비만세포가 많으면 여성호르몬을 만들어내는 효소인 아로마타제 분비가 활성화되거든요. 그래서 시니어는 유방암 예방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식단조절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체지방 관리를 위해 채식만 고집하는 등 과격한 관리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유방암 진단 방법 중 가슴을 압착해 촬영하는 유방촬영술 결과를 가장 신뢰한다. 초음파로도 진단이 되지만 조직의 석회화를 제대로 관찰하는 데는 유방촬영술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가진단법을 통해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슴은 민감한 부위이다 보니 작은 상태, 조기진단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간혹 유선의 멍울과 헷갈리기도 하기 때문에 뭐가 만져진다고 해서 모두 암이라 하긴 어렵습니다. 자가진단을 한달에 1회 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표적치료제 만병통치약 아냐
유방암 치료는 일반적인 암 치료 과정을 그대로 따른다. 암세포를 절제하고, 항암제를 쓰는 화학적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암의 크기에 따라 방사선 치료는 생략되기도 한다.
“흔히 유방암 수술이라 하면 가슴 전체를 절제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최근에는 의료기술이 발전해 조기진단이 늘면서 부분절제술도 많아요. 이런 경우 수술 후에 재건술을 하지 않아도 수술 전과 외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어요. 또 암의 크기가 커서 전절제 후 재건술을 할 경우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치료비 지원이 되어 부담도 많이 줄었습니다. 다만 유방암의 재발 가능성은 치료 후 2~3년 동안 가장 높기 때문에, 2년 정도 경과를 지켜보고 재건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만병통치약’처럼 관심을 받고 있는 표적치료제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전체 유방암 환자 중 표적치료제에 효과를 보이는 환자는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는 효과 있는 치료제예요. 예전에는 다른 유방암에 비해 암세포 증식이 빨라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표적치료제 등장 이후에는 치료가 한결 쉬워졌어요. 물론 이 약만 투여하면 낫는 게 아니라 다른 치료도 병행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 약의 등장으로 환자의 생존율이 한결 높아졌습니다.”
가족의 보살핌 중요해
이 교수는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환자의 마음가짐과 가족의 도움이라고 말한다.
간혹 유방암 치료를 받고 나면 남편이 아내에게 거부감을 보이거나 심한 경우 외도로 이어져 가정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이전처럼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남편과 부인 모두 꺼리지 말고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하실 것을 권합니다. 정서적으로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반려동물이 가족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펫팸족(pet과 family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3가구당 1가구가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며 반려동물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헴슬리는 반려견 ‘트러블’(몰티즈 종 암컷)에게 12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29억 원)의 유산을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트러블의 상속금은 200만 달러(약 21억 원)로 감액됐지만, 2010년까지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다 세상을 떠났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4마리의 반려견들에게 3000만 달러(약 320억 원)를 물려주기로 약속했다. 자신이 떠나도 반려견들이 충분한 보살핌을 받기를 바라는 배려라고 밝혔다.
이는 ‘먼 나라’의 별난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이 가족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68.3%에 달했다. “반려동물에 과한 정성을 쏟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는 답변은 82.6%나 됐다.
내 개와 고양이를 위한 미래 대비 최대 1000만 원까지 신탁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 70대 L 씨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 화장실용품, 병원 진료 등으로 월 평균 2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쓴다. 얼마 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종양 치료로 수술과 입원을 하는 바람에 100만 원이 훨씬 넘게 들었다. 하지만 L 씨는 “고양이들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친구 같은 존재이기에 여건이 허락하는 한 좋은 돌봄을 해주고 싶다”며 “재산은 얼마 없지만 소액이라도 가능하다면 만일을 위해 고양이 의료비와 미래 생활비 마련을 대비한 펫신탁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펫신탁(Pet Trust)은 반려동물 주인이 죽거나 병환 등으로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될 때를 대비해 미리 금융기관에 반려동물 양육자금을 맡기는 상품이다.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새 양육자에게 약속된 유산을 지급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벌써 널리 통용되고 있지만, 국내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펫신탁은 법률상 동물 앞으로 직접 유산을 상속할 수 없어 수익자와의 별도계약 체결이 필요한데, 크게 3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주인은 자신을 대표로 관리회사를 설립하고 반려동물에게 남기고 싶은 재산을 사전에 회사로 옮겨놓는다. 동물보호, 동물구호와 관련한 단체도 신탁관리자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본인 사망 후 맡게 될 새로운 주인을 수익자로 하는 유언서를 작성하고 반려동물 사육을 위한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관리회사는 새로운 주인이 제대로 동물을 키우는지 신탁감독인을 두고 관리한다.
국내의 펫신탁은 KB국민은행이 첫선을 보였다. 2016년 10월 반려견을 위한 ‘KB펫코노미신탁’을 처음으로 출시했고, 같은 해 11월 고양이 기르는 가구들의 요청으로 가입 대상을 고양이[猫]까지 확대했다.
신탁재산 교부 방법은 일시금 또는 분할지급을 선택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일시금 지급 방식이었으나 반려동물 보호·관리 강화를 위해 리뉴얼 과정을 거치며 분할지급 방식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가입 대상도 폭넓다. 현재 개나 고양이를 기르지 않아도 가입할 수 있다. 만 19세 이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입양을 계획 중인 고객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일시금을 맡기는 경우 200만 원 이상, 월 적립식인 경우 1만 원 이상이면 가입이 가능하다. 납입 최고한도는 1000만 원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양육자금 상속기능 외에도 반려동물의 입양과 의료비 등을 위한 자금 일부 인출 기능이 부여돼 자금 활용의 유연성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 1% 미만 '7세 이하만 가능’ 등 제약 많아
주부 B 씨는 최근 반려견의 잦은 구토로 걱정이 많다. 강아지 배에서 ‘쿨렁’ 하는 소리가 들리면 또 토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치료비 부담 때문에 매번 병원에 데려갈 수가 없어 근심이 많다. B 씨는 “강아지가 구토를 해 동물병원에 몇 차례 다녔는데도 사료를 불규칙하게 먹어서인지 증상이 자주 반복된다”며 “애견보험 가입도 고려하고 있지만, 과연 보험료에 비해 얼마나 실속 있는 보장을 받을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고 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보험사는 NH농협손해보험(반려동물장제비보험)·교보라이프플래닛보험(펫사랑M정기보험)·롯데손해보험(롯데마이펫보험)·삼성화재(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현대해상(하이펫애견보험) 등이다.
이들 펫보험 중 NH농협손보의 반려동물장제비보험과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의 펫사랑M정기보험은 반려동물의 진료비를 중점 보장하는 보험이 아니다. NH농협손보의 반려동물장제비보험은 반려동물이 사망할 경우 장례비용을 제공하는 보험이다.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의 펫사랑M정기보험은 펫 용품 할인과 무료 케어 혜택으로 눈길을 끄는 상품이다.
반려동물 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 중 효시격인 상품은 삼성화재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이다. 반려견의 상해·질병 치료비 손해 및 피보험자 소유 개로 인한 배상책임손해를 보상해준다. 상해·질병 치료비 손해(사망 제외)는 자기부담금 1만 원을 제외한 금액의 70%를 보상하며 배상책임손해의 경우 자기부담금 10만 원이 공제된다. 이 상품은 보험기간 1년의 순수보장성 상품이며, 신규가입 시 가입 동물이 만 6세 이하여야 한다.
롯데손해보험의 ‘롯데마이펫보험’은 반려견은 물론 반려묘도 가입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고양이 병원비도 보장해주는 이례적인 상품이다. 7세 이하 개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수술·입원비를 담보하는 ‘수술입원형’과 통원진료까지 보장하는 ‘종합형’ 상품을 판매한다. 수술 1회당 최고 150만 원, 입원 1일당 10만 원을 담보하며 종합형은 통원 1일에 최대 10만 원까지 추가 보장한다. 2마리 이상 동시 가입할 경우 보험료를 각각 10% 할인해준다.
현대해상의 ‘하이펫애견보험’은 여타 보험에서 보장이 되지 않는 피부질환, 구강질환, 고관절, 슬관절 질환 등을 특약을 통해 해결해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여타 보험들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유전적 질병, 중성화, 미용, 임신·출산 등은 보장받을 수 없다. 보험가입 기간 1년간 총 보상한도는 500만 원이다. 자기부담금 1만 원을 제외하고 최대 80%까지 보상된다. 생후 90일에서 만 7세 이하일 경우 가입이 가능하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이지만, 이들 3사의 펫보험 가입률은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펴낸 ‘반려동물시장의 성장과 보험업계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선 펫보험에 가입하려면 기본적으로 반려동물의 확인·등록을 위해 ‘반려동물 등록제’를 통한 등록번호가 필요한데, 반려동물의 등록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지적된다. 반려동물의 등록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반려동물의 연령을 속이거나, 하나의 보험으로 유사한 외모의 반려동물에 대한 보험금을 수령하는 등의 문제점들도 제기되고 있다.
보험 보장 범위의 한계도 있다. 반려동물 가족의 니즈가 큰 정기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중성화 등이 보장 범위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김도연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보험 수요를 높이려면 슬개골 탈구 등 실질적으로 반려인들의 수요가 높은 의료 행위에 대한 보장 추가가 필요하며, 동물병원과의 제휴를 통해 보험 가입한 반려동물의 의료 이용을 관리하는 등 모럴해저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들 보험의 연간 보험료는 대략 20만~40만 원대(반려동물 종류 및 연령, 보험사 및 보장별 상이)로 보험료 부담도 적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