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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권력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 실제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불분명하지만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다. 어느 할아버지가 가출을 했다. 아들에게 편지를 써놨는데 “3번아 잘 있어라. 5번은 간다”라는 다소 모호한 내용이 있었다. 3번은 누구를 뜻하고 5번은 누구인가? 그 집의 권력순위 1위가 고등학생인 손자이고 2위는 며느리, 3위는 가장인 아들, 4위는 애완견, 마지막 5위가 할아버지라고 했다. 이 내용을 풀어보면 “아들아, 애비는 서러워서 집 나간다”라는 말이 된다. 1번, 2번은 권력 순위라기보다는 집에서 관심을 많이 받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불편한 진실은 집에서 순위의 근거가 나이가 많다거나 돈 벌어오는 거와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점이다. 돈을 많이 쓰는 사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을 쓰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권력 순위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친구 모임에서도 돈을 펑펑 잘 쓰는 친구가 늘 대장이다. 다음으로 돈 많은 친구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도록 아주 기분 좋게 펌프질하는 친구다. 직장에서 필자는 돈을 벌어오는 부서에 있었다. 수입을 많이 올리면 당연히 사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봉급쟁이 고용 사장의 속 깊은 예쁨은 필자보다 예산부장이 더 많이 받았다. 적자일 때는 필자가 들볶이지만 흑자일 때는 예산부장이 먼저, 필자는 늘 후순위로 칭찬을 들었다. 예산부장은 회사의 살림을 맡은 사람이다. 어느 날 사장으로부터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돈을 벌어왔지만 실제 그 돈을 쓰게 해주는 사람은 예산부장이다. 예산을 적절히 편성해서 내가 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은 안주인이다. 돈 벌어오는 남편은 성능 좋은 돈 버는 기계 대접이나 받는다. 정부의 기획예산처 장관도 다른 장관들보다 파워가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오면 뭐하나. 내가 쓸 수 없다면 그림의 돈이다. 아내는 자식들 앞에서 필자를 항시 앞세운다. “아빠가 오리고기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오늘 저녁 외식은 오리고기로 하자” 하면 아무도 토 달지 않고 오리고기 집으로 낙착이 된다. 필자는 음식 메뉴 선택은 늘 아내에게 정하라고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필자 의중을 살핀다. 표정이나 말투에서 힌트를 얻어 필자 마음을 읽어낸다. 그리고 아빠의 뜻으로 몰고 가면 아이들도 반대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가 우리 집 권력순위 1위라고 늘 믿고 있다. 집 안에서 쓰는 돈 대부분은 아내의 손을 거친다. 설날 세뱃돈도 우리 부부 몫으로 합산해 아내가 단독으로 준다. 아내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지만 그 돈의 바탕은 할아버지이고 아버지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외식하면 아내가 카드로 계산을 한다. 이 장면을 아이들도 다 보고 있으니 당연히 할머니가 사는지 알까봐 아내는 “오늘 저녁은 할아버지가 쏘는 것이니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려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아내는 직접 돈 쓰는 재미를 느끼고 나는 인사 받는 재미로 으쓱해진다. 최근에 경치 좋은 바닷가 리조트로 놀러갔다. 우리 부부와 딸 내외 그리고 외손자를 포함해 다섯 명이 갔다. 전날 저녁, 회를 안주로 과음을 해서인지 늦잠까지 잤다. 아침식사를 하러 나가자고 했지만 밥 생각이 별로 없었다. “곧 점심을 먹으면 되니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먹자”라고 필자가 제안했다. 모두가 좋다며 컵라면을 사오겠다고 했다. “아니 컵라면 말고 끓여먹는 라면이 좋지”라고 즉각 제안을 했다. 당연히 아내가 필자 말에 맞장구쳐줄 줄 알았다. 그런데 “설거지하기 귀찮으니 컵라면 먹어요”라며 필자 말을 무시해버렸다. 게다가 필자 눈치를 살펴야 할 사위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컵라면 사오겠습니다” 하고 뛰어나갔다. 별것 아니지만 약간 체면이 손상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한 일에 정색하기는 싫었다. 속으로 ‘이거 불안한 1위의 권력이 유지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기는 했다. 가정 내 가장의 권력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소설가 김훈은 남자는 죽는 날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의 파워는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남자들이 퇴직을 하고 수입이 없어 아내로부터 용돈을 받아쓰는 순간 날개 부러진 새의 신세가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말하기 곤란한 곳에 돈 쓸 일도 있고 정당한 곳에 썼다고 해도 일일이 다 말해야 하는 상황도 마치 남자의 자존심이 구겨지듯 서럽다. 아이가 잘 때도 사탕봉지를 끌어안고 자듯 남자는 돈줄을 죽는 날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지금까지 번 돈을 아내에게 다 주지 않았다. 봉급의 일부를 아내에게 주고 재산 증식 등 대부분의 굵직한 돈 관리는 직접 했다. 물론 아내가 궁금해하지 않도록 쓰는 곳을 오픈했고 아내는 의심하지 않고 이해하고 잘 따라왔다. 아내는 엄밀히 말하면 가정살림을 꾸리는 필자의 고용 사장으로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의사대로 살림을 잘 해나갔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오너보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고용 사장이 실제 일은 다 한다. 우리 부부는 컵라면 사건처럼 작은 일에는 독단을 부리기도 하지만 늘 배려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 우리 집 권력순위 1위는 나인가? 아내인가? 필자가 아내를 받쳐주지 않으면, 아니 아내가 필자를 받쳐주지 않으면 우리 부부는 모래성의 성주에 불과하다. 평행선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바퀴처럼 언제나 함께 달려야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집의 권력 1순위는 부부가 공동 1위라 하는 것이 맞겠다.
- 2018-06-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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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뢰 피해 예방의 세계적 기술 보유
-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기상청 기상레이더센터에 따르면 낙뢰 발생 횟수는 총 62만 9411건으로, 연평균 12만 5882건에 달했다. 주로 장마철인 7~8월에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낙뢰가 집중되는데, 매년 낙뢰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안전처 집계 결과, 해당 기간에 총 354건, 연평균 약 71건의 낙뢰 피해 사고가 발생했으며, 7~8월 낙뢰 피해 건수는 전체의 56%(197건)를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충남 동북부는 우리나라에서 낙뢰가 가장 많이 발생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현재까지 낙뢰와 관련된 화재는 모두 60건으로, 3억 6000여 만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월별로는 8월이 27건, 7월이 19건 등으로 여름철에 전체의 82%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낙뢰와 예기치 못한 전기안전사고로 인해 재산과 인명피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2008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낙뢰’ 피해를 국가재난계획에 포함했고, 2010년부터는 낙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서지보호기(SPD)를 적용하도록 전기설비기술기준에 제도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KS규격 SPD를 적용을 법제화하였지만 낙뢰 피해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낙뢰 피해를 방지하는 낙뢰 및 서지보호기를 전문적으로 개발, 제조하여 낙뢰 피해 예방에 근본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한국서지연구소(대표 김선호)는 KS표준을 뛰어넘는 고성능 제품으로 시장에서 획기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업체다. 한국서지연구소는 SPD 전문 제조사로 낙뢰보호전문기업이다. 2007년 자체개발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SPD보다 낙뢰에 따른 서지전압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낙뢰로 인한 전기안전사고로 재산과 인명피해의 증가에 대한 대응 방안을 연구하기 위하여 1997년 낙뢰서지연구소를 개소하고 연구활동을 시작하여, 2005년 11월에 한국서지연구소를 설립하여 낙뢰·서지 보호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고성능 서지보호기를 연구 개발 및 생산하는 업체로서 수처리시스템, 상하수도시스템, 풍력·수력·화력 발전, 감시제어설비, 보안설비 등 환경, 에너지시스템 원격제어와 PLC를 사용하는 모든 설비를 보호하는 SPD 전문기업이기도 하다. 김선호 대표는 “1980년 KT에 입사한 후 24년간 전송, 교환기 및 선로분야에 근무하면서 입사 당시부터 낙뢰 피해로 인한 불편을 보면서 지냈다”면서 “그 당시 장거리 전송을 담당했던 나선반송장치가 낙뢰를 한 번 맞으면 망가져, 모든 통신이 마비돼 이를 복구하는 데 무척 힘들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피해가 계속 반복되고 늘어나고 있어 낙뢰 피해 방지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선호 대표는 이러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낙뢰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예방은 해보고자 1997년 ‘낙뢰서지연구소’라는 개인 연구실을 집 지하실에 자비를 털어 만들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서지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CCTV용 서지보호기를 전원부와 통신부 그리고 영상부 모두를 일체형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내부에 각 선로의 전위차를 해소하는 모듈을 내장하여 피보호체로 인입되는 모든 선로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초고성능 서지보호기 ‘Super SPD’와 EMP방호 장비 등을 개발 낙뢰보호기술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다. Super SPD는 전원이나 신호에 대한 감쇄를 전혀 주지 않으면서도 서지제거 능력이 40~80dB에 달하여, 낙뢰나 기타 서지에 의한 충격에도 전압 변동 폭을 획기적으로 낮춰 전자기기를 보호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서지보호기업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방호수준이며 이는 객관적인 공인시험성적서의 수치로도 잘 나타나 있다. 기존의 보호기에 6000V가 유입되면 1500V 정도의 전압이 남아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지만, Super SPD는 50V 이하의 보호성능과 미군 MIL규격의 50kV의 EMP에 대하여 불과 100mA 수준의 노이즈만을 남겨 적의 EMP 공격에도 완벽하게 보호하는 우수한 보호성능을 자랑한다. 한국서지연구소는 2009년 정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인증을 취득했고 70여 품목의 주력제품에 대해 UL인증을 취득한 바 있다. 김선호 대표는 “2007년 9월 법인전환을 계기로 전원용과 통신용 주력제품에 대한 UL과 CE 등 국제규격 인증을 취득했다”며 “2008년 3월에는 벤처인증을 취득하고, 2008년 8월에는 NET인증을 취득했으며 이어 12월 NET인증기술을 활용한 56개 신제품에 대하여 중기청의 성능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2009년 3월, 56개 성능인증 제품에 대하여 우수조달 제품에 선정된 바 있고, 2009년 6월에는 IEEE 고위 임원이자 미국 SPGS사 조지 지글러 회장이 내방하여 8일간의 자세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125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또 그해 12월에는 세계일류상품인증을 획득했다. 세계 최초로 서지보호소자(GCA)를 독자 개발해 지난 2008년 ‘GCA를 사용한 서지전압 억제기술’이 지식경제부 신기술(NET) 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UL인증 취득과 현재는 수출국가별로 미국, 일본, 역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 멕시코는 물론 EU에 국제특허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전기 품질 개선 및 전기안전 원천기술인 ‘누전차단기 Trip방지 기술’ 과 EMP방호를 위한 PCI Protector에 관련한 120여 건의 지적재산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이 이뤄지면서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제2009-312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한국서지연구소 고성능 SPD는 주로 거듭되는 낙뢰 피해로 애로를 경험한 공사업체를 위주로 관공서 및 공공기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로 수자원공사, 국방부, 한전, 도로공사, 경찰청, 산림청 등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고성능 서지보호기를 설치한 후에 피해가 거의 없어진 효과를 보았기에 한 번 설치했던 경험이 있는 곳은 한국서지연구소 보호기를 계속 찾고 있다. 2011년에는 낙뢰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대전 세동마을에 낙뢰보호기를 무상으로 설치한 사례가 있다. 2008년경부터 대전 유성구 세동마을에 대규모 낙뢰피해가 발생해 거의 모든 가정의 전기제품이 고장 나는 등 피해를 겪었고 이후에도 수시로 피해가 발생해 주민들이 낙뢰가 발생할 때마다 전기제품 플러그를 전부 뽑는 등 큰 불편을 겪어왔는데 이 같은 주민 불편사항을 듣고 한국서지연구소에서 무상 지원을 제의하여 지원하였다. 지원규모는 약 9800만 원 상당으로 세동2통 마을 모든 가정인 74가구에 약 2주일 동안 낙뢰방지기를 설치하며 심야보일러나 지하관정을 사용하는 가정엔 추가 장비를 설치하였고, 같은 해 대전 원앙초등학교에도 낙뢰 피해가 커 학생들의 학습에 지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2300여만 원 상당의 서지보호기를 무상으로 설치함으로써 이후 낙뢰 피해를 근절한 사례도 있다. 지금껏 낙뢰 피해 예방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한 한국서지연구소 김선호 대표는 “향후 새로이 개발한 반도체 Chip을 활용한 ‘서지보호를 겸하는 EMP보호장치’ 신제품을 양산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을 개척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적성국가의 핵EMP공격에 대한 방호뿐 아니라 불손세력의 EMP를 활용한 테러에 대한 방호에 기여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 2018-06-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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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과적인 ‘자동차 안전점검’
- 우리나라 차량 등록대수는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2016년 6월 말 기준 2140만 대가 넘었다. 경찰청 집계에 의한 교통사고는 평균 21만 건∼23만 건(2008∼2012년)으로 자동차로 인한 사고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시동이 걸리면 무조건 출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동차만 타면 질주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야성의 본능이죠. 또 다른 차가 추월하고 끼워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다른 차가 내 차보다 앞서가는 것은 마치 경쟁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어쨌든 이런 성향이 사고를 일으키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자동차 사고는 매우 치명적이어서 큰 부상과 사고를 유발해 가족과 이웃의 불행을 발생시키며 재산상의 손실도 매우 크게 일으킨다. 효과적인 차량 관리는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차량 점검 사항 1. 자동차 주위를 돌아보면서 차량 외관에 손상이 있는지 본다. 2. 타이어 공기압은 정상적으로 되어 있는지 살펴본다(펑크 여부 확인). 요즘 타이어는 주브가 없기 때문에 큰 이물질(못, 날카로운 금속 등)이 타이어에 끼기 전에는 운행 중에는 공기가 빠지지 않고 정차나 주차 시에 공기가 누출된다. 3. 보조 타이어 공기압은 4∼6개월에 1회 정도 점검한다.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공기가 자연 감소된다. 4. 차 바닥에 물 또는 오일이 떨어진 흔적이 있는지 확인한다. 차량의 수명이 길수록 개스킷이나 고무링의 마멸로 누수. 누유가 된다. 누수나 누유는 자동차 고장의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 5. 등화장치를 점검한다(방향지시등, 전조등. 번호등. 브레이크등). 야간 운전을 할 때 전기 장치가 고장나 있으면 사고를 일으키기 쉽다. 6. 브레이크 조작 시 즉시 멈추지 않고 미끄러지는 느낌은 없는지 살펴본다. 브레이크는 생명 보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동 후 1∼2분 후 출발은 엔진오일이 엔진 내부에 골고루 순환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자동차의 수명을 연장시키며 특히 겨울철의 예열은 엔진의 충격을 감소시키며 경제적인 운행을 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장시간의 공회전은 공해를 유발시키며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주의한다. 운행 중 점검 사항 1. 운전석 계기판 경고등 상태를 확인한다. 정상인 차량은 시동 후 1~2초 이내에 소등된다. 경고등이 계속 들어와 있으면 가까운 정비소에 들러 수리한다. 특히 배터리에 경고등이 계속 켜져 있으면 운행 중 멈출 수도 있으므로 즉시 수리가 필요하다. 2. 이상한 냄새나 소리가 나지 않는지 살펴본다. 오래된 차량은 배기가스가 내부로 스며들 수 있다. 차량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은 고장이 났다는 신호일 수 있다. 운행 후 점검 사항 1. 시동을 끈 후 기어를 P 위치에 놓은 후 보조 브레이크를 확실하게 당겨준다. 특히 언덕길에 주차할 때는 핸들 방향을 보도블록 방향으로 놓는다. 가끔 기어가 풀려 주차해놓은 차량이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2. 전기장치 스위치(전조등. 라디오. 에어컨 등)가 ‘OFF’로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3. 창문과 문의 잠김 상태도 확인한다.
- 2018-05-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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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유일한 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
- 전기 보급과 함께 빠르게 사라져버린 것이 있다. 등잔이다.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막대 사이에 흙으로 빚은 잔을 끼워놓은 것. 잔 안에 심지를 넣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면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졌다. 과거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지금은 없다. 신문물의 등장으로 기억에서 빠르게 잊혔지만 등잔은 우리 삶에 있어 고마운 물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마구 버려졌던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100년 넘게 모아놓은 등잔을 마주하러 한국등잔박물관에 찾아갔다. 金家三代, 등잔의 소중함을 알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사람 길보다 바람 길이 더 많이 나 있는 인적 드문 곳에 한국등잔박물관(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 문화재단)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세월만도 21년째. 한국등잔박물관의 전신인 고등기(古燈器)전시관(1969년 수원에서 개관)부터 따진다면 49년 전통에 특색까지 갖춘 독보적인 박물관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미래를 볼 줄 아는 한 가족의 뜻과 의지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대에 걸쳐 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형구 관장은 선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성이 깃든 한국등잔박물관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옛날부터 그림이나 골동품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사서 모았습니다. 은행이 없을 때는 더 했었죠. 물론 저희 집안에서도 고가의 예술품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희 삼대가 열심히 모았던 것이 바로 등잔입니다.” 등잔은 모아봤자 돈 되는 물품이 아니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쓸모없어져버리고 가치가 떨어져 애물단지가 됐다. 그러게 왜 돈 안 되는 등잔인가? “우리 인간의 삶에 해가 지고 나서 전기가 없을 때 등잔이 없으면 밤에 생활이 안 되잖아요. 인생의 반이 밤이잖아요. 밤을 밝혀준 중요한 물건을 아무도 모으지 않는 거야. 수집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집안에서 하게 된 겁니다. 나, 아버지, 할아버지가 100년 넘게 모은 등잔이 박물관 곳곳에 다 있습니다.” 가문의 재산이 모두의 자산이 되다 한국등잔박물관은 1대 관장이자 설립자인 김동휘(1918~2011) 관장이 운영하던 산부인과 2층에서 고등기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김동휘 관장은 경기도 일대에서 유명하던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예술에 조예가 깊어 경기 지역 문화 사업에 기여를 많이 해온 인물이었다. 은퇴 뒤 모아둔 유물의 관리, 보관 활용에 대한 고민이 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현재 재단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유물과 건물, 대지까지 150억 원 가까이 되는 재산을 재단법인 설립과 함께 사회에 환원했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 한국등잔박물관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등잔박물관은 왜 한국에만 있을까? 김형구 관장은 등잔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장례 문화였던 고인돌이 온돌 생활로 이어져 생겨난 민족의 슬기라고 강조했다. “우선 온돌 문화는 고인돌에 쓰이는 돌을 깨는 기술에서 왔습니다. 온돌 바닥에 사용하는 구들장 깨는 기술로 전이된 것이죠.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데 등을 땅바닥에 그대로 놓아두면 빛의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앉아 있는 상태의 눈높이로 불을 끌어올려 허공에 띄워놓은 것이 등잔입니다. 전국이 온돌문화권이었으니 등잔을 사용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세계 유일의 박물관일 수밖에요.” 한국등잔박물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등기구가 전시돼 있다. 불교국가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던 고려시대 등잔대에서는 주로 염주와 연꽃 모양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의리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의 죽절 무늬가 눈에 많이 띈다. 등잔을 재떨이로도 사용했고 새색시 혼수품으로 가져가기도 했다고. 박물관 1층에는 등잔을 사용하던 때 남자와 여자의 방, 부엌이 꾸며져 있어 당시 모습과 함께 등잔의 이용을 엿 볼 수 있다. 2층은 시대별로 등잔을 분류해놓았다. 실제 쓰던 대청마루를 원형 그대로 옮겨와 한국등잔박물관과 등잔 관련 기록들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10월~3월) 오전 10:00 ~ 오후 5:00 / (4월~9월) 오전 10:00 ~ 오후 5:30 휴관일 월·화요일 입장료 (개인) 성인 4000원 / 중·고·대학생·노인·어린이 2500원 (단체) 성인 3000 / 중·고·대학생·노인·어린이 2,000 원 *부모동반시 미취학어린이 무료입장. * 단체관람은 사전에 ☎ (031) 334-0797로 문의 예약.
- 2018-04-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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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대한 또 다른 상상 “공동체로 살아보니 좋구나!”
- 지금의 50+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는 아마도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이었을 겁니다. 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이었고, 한때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세상은 변해 대다수 50+ 세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하나인 것이 현실입니다. 50+ 세대는 지금 걱정이 많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더욱 길어진 인생 후반의 삶을 계획해야 합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인 현실에서 50+ 세대 인생 재설계의 핵심은 바로 주거계획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집 문제는 생애설계 영역과 분리되어 부동산 자산운용 관점에서만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집에 대한 생각도 바꾸고, 조금은 다른 상상을 해봐야 합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품위를 유지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퍽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현재의 아파트 구조가 노년의 사회적 고립을 고착시키는 시스템은 아닌지, 청년주거 문제와 하우스푸어 위기에 놓인 장·노년층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 방안은 없는지,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 공간 외 공동 공간을 만들어 어울리며 사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건 어떨지…. 지금껏 우리가 가졌던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상상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집이란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재무설계 중심의 생애설계가 아닌 머물러 사는 집, 어울려 사는 집의 관점에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저비용 구조로 삶을 다운사이징하고 가치 중심의 관계 형성에 노력해 비록 소득은 줄어도 덜 쓰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령화와 장기 저성장 시대가 이들로 하여금 공동체 주거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공동체 주택은 내 공간은 작지만 실용적으로 함께하는 공간은 합리적으로 구성해 주거비용의 절감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처럼 한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담을 쌓고 사는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이웃들과 주거 공동체로 사회적 가족을 이룸으로써 노력하기에 따라 이웃과 함께하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주거공간으로서 공동체 주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필자가 살고 있는 공동체 주택 ‘여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백은 30대에서 60대, 1인 가구와 부부 가구, 3대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 공동체 주택입니다. 여백은 힘들고 불안한 도시의 주거 문제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길 원했던 사람들이 모인 생활 공동체입니다. 전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는 2015년 초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공동체 주택 입주 희망자 모집을 통해 만났으며, 이후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공동체를 이루어갔고, 집짓기를 병행한 끝에 2016년 8월 여백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집터(경기도 고양시)를 잡으면서부터 적극적으로 마을과 소통하며 같은 주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잘 아는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공동체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주민으로서의 인식은 누가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에서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와 같이 타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정감이 정서적인 변화라면, 공동구매나 일상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소한 나눔과 교환, 도움 주고받기 같은 활동은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생활비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 절감이나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생활 문제에서 지역사회는 물론 좀 더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구성원 각자가 “공동체로 살아보니 좋구나!” 하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 주거는 매우 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주거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시민이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공동체 주택을 짓고 잘 사는 것을 보았을 때,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 주택은 더 이상 집값에 연연해하는 사적 재산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지역에 열려 있는 사회적 자산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주거 공유로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친해지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집단 지성으로 발휘하고 조직화할 때,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 들어가면서 주택을 중심으로 노년기 삶에 필요한 생활서비스 등을 전개하며 시설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공동체 복지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복지 정책은 지금처럼 가족의 부재와 빈곤의 증명을 요구하며 노인을 복지센터 등 시설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청·장년이 가족의식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 데다 인간을 더욱 파편화하고 물화시켜 더 소외된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각종 시설 등 하드웨어에 쏟아 붓는 막대한 비용을 가정이나 가족의 회복, 공동체 육성을 위해 투입해야 합니다. 보통의 서민들이 생각하는 노년의 삶은 공공복지의 최저생활 보장도, 고급 실버타운의 비싼 서비스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에서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주거는 바로 이들에게 노년의 안정적 주거와 새로운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훌륭한 주거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좋은 이웃과 함께하고 같이 산다면 천만금이라도 아까울 것 없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관리가 가격이 백만금밖에 안 되는 집을 천만금을 주고 산 뒤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했고[百萬買宅] 나머지는 여승진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千萬買隣]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과연 누가 나의 이웃이며, 나는 어떤 이웃일까요? 거필택린(居必擇隣). 좋은 이웃을 선택해 살 집을 정해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우리는 지금 다시 배워야 합니다.
- 2018-02-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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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기찬 노후 세대를 위한 새로운 주거 대안‘스칸디나비아 코하우징’
- 시니어 코하우징(senior co-housing)은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어서도 잘 사는 데(aging-in-place) 초점을 두고 개발된 시니어 주택 대안 중 하나다.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현대 코하우징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돼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시니어 코하우징은 널찍한 커먼하우스(common house, 공동생활시설)와 소규모 개인 주택(private dwelling)으로 구성돼 커뮤니티의 이념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주민들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동년배에게 시니어 코하우징을 추천할 정도로 전반적인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① 다른 시니어 주택 대안보다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적정 가격의 주택 제공 ② 주민의 프라이버시와 공동생활 이익추구를 혼합한 주거 유형 ③ 은퇴 후 시니어가 가진 유휴 인적자원과 사회 경험 활용 ④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서 가능한 한 노인 부양시설의 입주를 늦출 수 있어 노인 부양에 드는 사회적 비용 지출 감소 ⑤ 동년배끼리 생활하며 정서적 지원과 상호 부양을 통해 노후생활의 질 향상 시니어 코하우징에 입주하려면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함께 거주하는 자녀가 없는 부부 또는 독신 노인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룹을 형성한 뒤 지방정부, 건축가, 은행 등과 협조해 설립하는 형태를 띤다. 코하우징 주민은 연금 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이웃 간 상호 부양과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인지기능을 활성화한다. 국내에서 눈여겨볼 만한 스칸디나비아 시니어 코하우징 두 곳을 소개한다. ◇ 크레아티브 시니어보(Det Kreative Seniorbo) 위치 덴마크 오덴세 입주 연도 1992 건물 유형 단층 연립주택 주택 수 12개 주민 수 18명 성공적인 시니어 코하우징 사례로 손꼽히는 덴마크 크레아티브 시니어보는 설립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줄지어 발걸음하는 곳이다. 오덴세 중심지에서 멀지 않고 식품점, 학교, 우체국, 주택가, 버스정류장 등이 매우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다. 부지 전체 면적은 3000㎡, 건물면적은 980㎡으로 이 중 주택면적이 850㎡, 커먼하우스가 131㎡를 차지한다. 12채의 단층 연립주택이 커먼하우스를 둘러싼 환경이 특징이다. 이 중 5채의 개인 주택은 현관문을 열면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곧장 커먼하우스로 이어진다. 나머지 주택 7채는 중정을 둘러싸고 배치돼 커먼하우스가 아닌 중정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주택마다 거실과 연결된 개인 정원과 개인 창고에는 건물이 별도로 지어져 있다. 개인 주택은 부엌과 2~3개의 방이 있는 58~82㎡ 규모로 면적은 크지 않지만, 천장이 높아 거실에 로프트(loft, 다락)를 설치해 공부방, 침실 또는 손주가 방문했을 때 놀이방 등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부엌, 식당 겸 회의실, 취미작업실, 세탁실, 손님방 등이 마련된 크레아티브 시니어보의 커먼하우스는 주택에서 접근이 쉬워 주민들이 부담 없이 자주 모인다. 이곳 주민들은 공동 취미활동을 자주 하는데, 여자들은 공동거실 취미실에서 바느질이나 퀼팅을 하고 남자들은 중정 목공실에서 목공예를 하거나 기계를 수리하곤 한다. ◇ 패르드크내팬(Fardknappen)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입주 연도 1990 건물 유형 7층 아파트 주택 수 43개 주민 수 50명 패르드크내팬은 지방정부 공영임대아파트 형태로, 몇 명의 중년 여성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들에겐 두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중·노년기 사람들이 편한 환경에서 가까이 살면서 서로 돕고,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며, 정부의 도움을 적게 받으면서 자립적으로 살 방법은 무엇일까? 자녀들이 독립하고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을 때, 넓은 아파트를 아이가 있는 젊은 가족에게 물려준 뒤 이주할 주택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그들은 1987년 코하우징 조합을 결성하고 2년간 공동체 이념에 대한 오랜 논의를 거쳐 주민의 비전에 맞는 건물을 완성했다. 패르드크내팬은 37~75㎡의 개인 아파트 43개(부엌과 1~3개의 방)와 400㎡의 커먼하우스로 구성돼 있다. 개인 아파트는 일반 주택에 비해 좁지만 커먼하우스가 넓어 손님 접대와 파티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주 5일 이뤄지는 공동식사는 ‘코하우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공동활동이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취사당번은 의무이지만 식사는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원할 때만 식사시간에 참여하면 된다. 이곳 주민이라면 누구나 6주에 한 번씩 취사와 청소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커먼하우스 청소, 정원관리 등을 수행한다. 주민들이 청소와 단순 유지관리 등을 하면 주택 회사가 이러한 활동에 대한 비용을 조합에 되돌려주는 형태다. 커먼하우스에는 TV가 있는 독서실, 컴퓨터실, 세탁실, 공동식당, 부엌, 목공실, 식당에서 곧장 나갈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와 커먼하우스의 임대료를 아파트 면적 비율에 따라 산정해 지불한다. 임대료에는 건물유지비,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등의 수선충당금이 포함된다. 평균적인 아파트 임대료로 넓고 다양한 공동시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형 코하우징은 어떻게? 우리나라도 은퇴 후 자녀로부터 독립해 부부 또는 독신으로 지낼 새로운 주택 대안을 강구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주택 대안으로 시니어 코하우징 운동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코하우징과 유사한 국내 동호인 주택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동산이 개인 소유이고 대지와 주택난이 극심한 한국의 특성상 개인 주택 공간을 최소화하고 커먼하우스 면적에 투자하는 것을 재산상의 불이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민 간 의견 차를 심화시켜 공동체 생활의 와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 소유의 코하우징을 계획한다면 주민 스스로 생활의 질과 물질적 이익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추구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미 시행했던 것처럼 비교적 재산권 갈등이 적은 공공임대주택 분야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시니어 코하우징을 도입해 시범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 준비하는 공공임대주택 단지의 1~2개 동을 우선으로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발해 보급한다면 코하우징이라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홍보하고 지원해주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 결과가 성공적일 때, 점차 민영주택 단지에서도 임대 또는 분양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는 근래 지자체에서 노후한 다세대주택을 구입해 개조 후 저소득층 가구에 임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중 몇 개를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조하는 시도도 신축 건물을 설립하는 것보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최근 서울시 주체로 시작된 공동체주택(코하우징, 셰어하우징) 보급사업을 통해 개인 토지를 가진 협동주택은 물론, 시에서 소유한 토지를 시중보다 싸게 40년간 임대해 주민 스스로 주택을 짓도록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을 보급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머지않아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동체주택 개발을 수월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책이 생겨 시니어 코하우징을 포함한 다양한 코하우징 개발이 시도되길 기대한다. 최정신 >> 가톨릭대학교 소비자 주거학 전공, 명예교수. 스웨덴 샬머스 공과대학교 명예공학박사. 저서 ‘굿모론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아의 시니어 코하우징’, ‘코하우징 공동체’ 외 다수.
- 2018-02-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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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속과 치매 걱정에 주목받는 유언대용신탁
- 시니어에게 재산은 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평생 노력해왔음을 증명하는 징표이자 보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재산이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더 나아가 사망한 후에도 제대로 쓰이길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돈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과제다. 재산 운용 능력을 잃으면, 나를 위해 쓰이지 않을 수도 있고 자녀 혹은 사위, 며느리에 의해 낭비될 수도 있다. 최근 떠도는 소문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데 남 얘기 같지 않다. 이런 걱정을 덜어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금융기관에 내 재산 운용을 믿고 맡기는 유산대용신탁이 그것이다. 신탁제도가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통해서다. 마이클 잭슨은 가족신탁계약서를 통해 사후에 자신의 유산이 어떻게 운용될지 미리 정해놨다. 이를 통해 사후 유산의 20%는 자선재단에 기부됐고, 장례비, 변호사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은 아내와 세 자녀에게 상속됐다. 계약 내용에 따라 자녀들은 유산을 한 번에 받을 수 없었고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인 30세가 넘어야 일부 상속을 받았다. 계약서상 상속이 완전히 끝나는 시기는 자녀가 40세 되는 생일이었다. 이는 자녀의 삶이 유산으로 망가질까 걱정한 마이클 잭슨의 요구 때문이었다. 유언장 작성보다 절차 간단 신탁에 의한 상속관리는 2012년 개정된 신탁법 제59조 유언대용신탁과 제60조 수익자연속신탁이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신탁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지정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등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용하게 하는 상품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재산의 수익자와 상속받을 사람을 정하는 신탁으로서, 생전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정해 생의 마지막까지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불효방지신탁’으로 부르기도 했다. 업계에선 2020년이 되면 2조 원 규모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유언대용신탁 상품은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은행권이 시장을 선점한 형태이며, NH투자증권이나 신영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증권회사들이 은행권을 추격하는 모양새다. 유언장과 신탁 계약은 내 재산을 물려줄 방법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르다. 유언장은 상속 이해관계인이 아닌 보증인 2명과 공증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증인에게 개인 재산 내역이 밝혀지는 것은 유언장 작성 시 가장 껄끄러운 부분 중 하나. 만약 유언 내용을 변경하고 싶다면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에 반해 신탁은 금융기관과의 계약으로 충분하다. 계약 의지와 계약 능력만 있으면 된다. 성용배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유언장의 경우 사망 이후에 개봉돼 그 효력을 갖기 때문에, 생전에 법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와 형식을 충족하지 못하는 하자를 인지하지 못해 유언으로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공증의 불편함이나 보관 과정에서 위·변조나 분실의 위험도 있다”고 지적하며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의 상대방인 금융기관이 존재하고 생전에 계약에 따른 쌍방의 이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계약상 하자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계약서의 분실이나 변경 등의 우려도 적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상속, 치매 후 관리도 해결 유언대용신탁이 최근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골치 아픈 상속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손주에게 안전하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유언대용신탁이 유용하다. 여러 세대에 걸친 수증자 지정도 가능하다. 1차 상속자를 자녀, 2차 상속자를 손자로 지정하는 식의 상속 설계가 가능하다. 유언장의 경우는 다음 세대 수증자 지정만 가능하다. 또 유언에 따라 상속 재산에 차등이 생겨 자녀 간에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도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유언이 집행되면 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 집행인이 되는데, 분쟁이 생기면 상속 과정에서 집행인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신탁은 집행인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상속인끼리의 분쟁 발생 가능성이 낮다. 유산대용신탁의 장점 중 하나는 부동산에 있다. 부동산은 현금에 비해 운용이 쉽지 않고, 분할도 어렵다. 상속자들이 매각을 결정해도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니어의 상당수가 부동산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상속은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신탁 상품은 이런 경우 또 다른 대안이 된다. 부동산의 상속, 증여뿐만 아니라 신축이나 리모델링, 임대위탁관리 등도 가능하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에게 부동산 임대 수익을 나눠주고 싶다면 신탁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런 신탁 상품이 만능은 아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려면 수탁자인 금융기관에 소유권이 이전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신탁부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재산을 보전하고 사후 상속하려면 등기이전을 통해 수탁자가 관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일부 고객은 은행이 마치 내 소유권을 가져가고 마음대로 처분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하며 “신탁은 재산을 맡기는 고객의 요구사항에 맡게 정확하게 관리되고 언제든 해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령화에 따른 치매 관련 불안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치매안심신탁 같은 상품이 그것이다. PET-CT와 같은 알츠하이머 진단 장비 개발로 인해 치매 발병의 예측이 상당 부분 가능해지면서 스스로 치매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신탁이 활용된다. 치매 발병 전이나 초기에 신탁을 통해 자산관리와 상속설계를 해놓으면 병원비나 간병비, 생활비에 필요한 돈을 은행이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치매와 관련한 일반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KEB하나은행에서 신탁 상품을 위해 대면상담한 고객 중 치매 관련 상품 상담자가 전체의 약 30%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 2018-02-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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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 속에서 더 오래 더 살래
- 100세 시대라고 한다. 과연 100세를 산다는 것은 모든 이에게 축복일까. 저출산과 맞물린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여러 면에서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라이프사이클이 바뀌면서 시니어들에게 집은 더 크고 빈 공간이 된다. ‘노후에 어디서 살고 싶은가?’라는 설문에 많은 시니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답을 한다. 살고 있는 집에 정이 든 이유도 있고 지역을 잘 알고 있어 편리한 면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그 지역에서 살면서 형성한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아파트는 좀 예외이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에 오랜 세월 살아온 분들은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많다.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사는 것이 편하고 안정적이다. 단독주택이나 빌라 등은 좀 불편한 점이 있으나 집의 구조나 가구 등은 시니어에게 맞게 고쳐나가면 된다. 요즘에는 주택설계 단계에서부터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며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족구성원이 줄어들어 혼자 남게 되었을 때가 문제다. 집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된다. 외부와 단절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고독사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고령자 1인 가구는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휴대폰 하나로 집 안의 각종 전자기기가 다 조작되는 스마트홈으로의 진화는 어쩌면 인간을 더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서울 지자체마다 ‘한지붕 세대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파트의 남는 방을 대학생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도록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시니어들은 빈방을 지속적인 수익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방 수리비로 100만 원까지 지원도 해준다. 학생들에겐 주거비 부담이 줄어드는 혜택이 있다. 무엇보다 시니어들이 대학생들과 같이 살면서 세대 간 교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기 자식과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에 이런 관계가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계속 살고 싶은 시니어를 위한 주거 유형으로 셰어하우스가 있다. 셰어하우스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개인 공간과 넓은 공유 공간을 마련해 입주자가 서로 교류하고 나누는 주거 개념이다. 개인 공간으로는 작은 방이 하나씩 있고 거실, 욕실, 세탁실 등을 공유한다.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식사는 함께 모여서 한다. 일본에는 이러한 시니어용 셰어하우스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제 모색 단계에 있다. 순번을 정해서 식사를 준비하니 시간 여유도 생긴다. 각자 가진 재능을 나누기도 하고 취미생활을 같이하기도 한다. 뜻이 맞는 이웃과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하는 셰어하우스는 타인과 같이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보다 함께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훨씬 많은 주거 유형이다. 서울의 대학가 주변에 학생들이나 직장 여성들을 위한 셰어하우스가 최근에 많이 생겼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니어용 셰어하우스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셰어하우스 공급자들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 원인은 시니어들에게 있는 것 같다. 필자가 그동안 많은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활동해본 경험으로 보면 시니어들이 모여 살기 힘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다.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것, 자기주장이 강한 것, 과거의 자랑을 반복하는 것 등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행위다. 최근에 시니어가 셰어하우스에 입주한다면 어떤 에티켓을 지녀야 할지 지인들과 논의해본 적이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1 사생활, 사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을 것, 너무 늦게 다니지 말기. 2 남의 물품 허락 없이 사용 금지, 컴퓨터, 책도 마찬가지. 3 외부인 들여 재우기 금지, 가족, 친구도 숙박 금지. 4 집 안에서 흡연 절대 금지, 술·담배·마약·도박 금지. 5 자기 집 주변과 주방, 욕실 등 공유 공간 사용 후 청소하기. 6 반려동물 자제, 관리 철저. 7 나이·과거의 지위·경력을 잊을 것, 자식자랑도 정도껏 하기. 8 정치와 종교에 대한 논쟁 금지. 9 어느 정도 복장에 신경 쓸 것, 내의·등산복 차림 곤란. 10 서로 의논해 만든 규약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킬 것. 열 가지 내용 모두 그리 어렵지 않은 에티켓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겐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시니어가 많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복잡한 도시를 떠나 노후에는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시를 떠나려 하면 두려워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토지를 구입하는 일도 어렵지만 설계하고 집짓는 일도 복잡하다. 토지 사기꾼도 많고 엉터리 시공회사도 많다. 건축허가가 불가능한 땅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팔기도 하고 남의 땅을 조작해서 팔기도 한다. 엉터리 공사로 지은 지 몇 년 만에 하자투성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칫 실수하는 날에는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릴 수도 있다. 어렵사리 전원생활을 시작하고도 원주민들과의 갈등이 생기면 전원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도시로 유턴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면 시니어를 위한 전원마을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우선 도시의 편리를 일부 공유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특히 의료시설은 시니어에게 필수 시설이다. 규모는 최소 300호 이상으로 입주자들의 집은 작게 하고 공동 시설인 커뮤니티 시설을 크게 하는 개념이다. 이는 셰어하우스에서 개인 공간을 최소화하고 공유 공간을 크게 하는 개념과 똑같다. 집의 유형은 단독이거나 빌라,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 한다. 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커뮤니티 시설에 모여서 함께할 수도 있다. 취미생활을 같이하기도 하고 재능나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식재료는 대부분 주민들이 재배해서 사용한다. 이러한 코하우징 모델이 지속가능하려면 젊은 사람들이 같이 살아야 한다. 젊은 층을 유치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방문객이 많아지면 여러 가지 일자리도 가능해진다. 집과 마을이 아름다워서 꼭 방문해보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마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적인 마을이라 해도 서로 관계 형성이 제대로 안 된다면 같이 살기 어렵다. 결국 함께 사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 마음에 맞는 타인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 >>손웅익 동년기자 (주)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 (주)아쿠아건축사무소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니어주거아카데미 앙코르스쿨 ‘주거분야’ 전문강사,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동년기자, 실버산업전문가포럼 부회장, 미술심리 상담사 등으로 활발한 인생 2막을 설계 중인 건축가이자 수필가.
- 2018-02-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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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의 하느님’에게 붙잡혔다! 광주시립발레단장 최태지
- 국립발레단장을 맡고 변방의 한국 발레를 르네상스 시대로 이끈 최태지의 업적과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이 중첩되어 한량 이봉규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한국의 대표 발레리나 최태지와 올해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1959년생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가녀린 몸매와 청초하면서 귀족같이 우아한 최태지와 마주하니까 오드리 헵번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카리스마가 연상된다. 이봉규의 눈에 포착된 최태지의 기품에 한량도 살짝 주눅이 들었을까? 라운지에서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젊어 보여요?”라고 따져 물었다. 그녀는 “모자라게 살아서 그럴까요?”라며 웃음으로 내쳐버린다. 시작부터 의문의 1패를 당한 꼴이다.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내공의 깊이까지 느껴진다. 어설픈 한량이 차분하게 분석해보면 아마 평생 발레를 해서 세포조직도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한껏 받아 아직도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는 것 같다. 정작 본인은 “발레리나 현역 활동에서 은퇴한 후에도 레슨하면서 항상 거울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거울 앞에서 젊은 무용수들과 같이 있으면 긴장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살이 퍼지게 놔둘 수가 없다는 것. 그녀의 성공은 어쩌면 이 같은 승부근성 때문일 것이다. 내일모레면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다. 거울 앞에 선 전성기의 젊은 무용수들을 보며 경쟁심이 우러러 나온다니 부럽기 그지없다. 20년 전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발레리나 문훈숙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뭔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육십이 되어 최태지와 마주앉으니까 그때보다 몇 배 더 한 발레리나의 기품에 눌리는 것이 감지된다. 국립발레단을 12년간 이끌며 아시아 최고의 발레단으로 성장시킨,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출신의 최태지 단장의 업적과 아름답게 나이 먹은 모습이 중첩되어 그럴 것이다. 그녀는 최근 광주시립발레단장에 임명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태지’ 이름만으로도 발레단이 주목받다 국립발레단장을 역임했던 그녀인지라 관계자들은 조심스럽게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으로 양분되는 한국 발레 무대가 광주시립발레단을 포함하는 3강 체제가 될 것임을 전망하기도 한다. 최태지라는 이름만으로 광주시립발레단은 일약 중앙의 두 발레단과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로써 최태지·문훈숙·강수진으로 이어지는 세 스타 발레리나 출신 단장들의 대결은 현재진행형이다. 최태지는 1959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가이타니 발레학교, 프랑스 프랑게티 발레 아카데미, 미국 조프리 발레 스쿨 등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한국인 최초로 로잔국제발레콩쿠르와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발레를 발전시킨 산 증인이다. 하지만 발레의 명성만큼 그녀의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과는 사별한 아픔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지금은 성장한 두 딸과 함께 주말이면 서울에서 살고 주중에는 혼자 광주의 한 오피스텔에서 지낸다. 실례를 무릅쓰고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이혼과 사별 중에 어느 것이 더 아프냐?”고 물으니, 그녀는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사별이 슬펐다”고 대답한다. 발레를 하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부연한다. 사별한 지 5년 정도 되었기에 지금은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 발레 인생도 굴곡이 많았다. 결혼 후 발레를 그만두려고 80kg까지 일부러 살을 찌웠다. 그런데 뉴욕에서 첫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치료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출신이 뉴욕이라고는 하지만 허름한 대중 발레학원에 수강생으로 등록할 정도로 절실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발레 생활 3~4개월 만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 후 곧바로 한국에 들어와 국립발레단에 다시 복귀했다. 아이를 낳고 활동한 국내 최초의 발레리나가 되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체중이 또 80kg으로 늘었다. 다시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그만두면 어느새 또 발레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발레는 내 운명!”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녀의 인생은 프랑스어로 세라비(C'est la Vie, 영어로 That is Life) 같다. 중학교 시절 일본에서 한창 발레 연습에 몰두해 있을 때 그녀를 지도했던 선생은 “‘발레의 하느님’이 너를 붙잡으면 평생 도망칠 수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났다고 고백한다. 그 선생은 일본에서 최초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 발레리나다. 국립발레단장을 그만두고 4년 남짓 그냥 아줌마로 편하게 살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광주발레단장을 맡은 것도 아마 ‘발레의 하느님’이 아직도 그녀를 꽉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공연을 위해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무대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는 무용수들과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고 들뜬다. ‘발레의 하나님’이 그녀를 선택해서 붙잡은 것이 아니라 최태지가 발레의 하느님을 먼저 꼭 붙잡고 놓지 않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막내딸을 한국의 대표 발레리나로 키우고 싶었던 부모님 1970년대 중반 일본에 살 때 어머님과 부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갔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은 일본에 비해 열악한 환경이었다. 어린 최태지는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빠들도 “한국에 가서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한국행을 만류했지만 대한민국 국립발레단 무용수가 꿈인 어린 최태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일본 이름인 ‘오타니 야스에(おたに やすえ)’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태지가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리나가 된 것은 부모님의 강한 의지와 희생 덕분이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심한 차별을 견디며 살아온 부모님은 무용에 탁월한 소질을 발휘하던 막내딸만큼은 한국의 대표 발레리나로 키우고 싶었다. 아버님은 항상 어린 막내딸에게 “일본에서 왜놈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돈을 벌고 있지만 너는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울면서 다짐했다. 그래서 일부러 민단이 운영하는 교포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본 학교에서 공부시킨 뒤 프랑스로 발레 유학을 보냈다. 경제 사정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 일본 무용계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약하다 1983년 의 객원 주역으로 초청되면서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었다. 1987년 국립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로 특채되면서 고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에서 오데트, 에서 키트리, 에서 에스메랄다, 에서 사탕 요정, 에서 메도라 등 많은 작품에서 출중한 공연으로 발레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을 거쳐 1996년에는 국립발레단장을 맡아 변방의 한국 발레에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준 주인공이다. 특히 그녀가 국립발레단장 시절 ‘해설이 있는 발레’와 ‘찾아가는 발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나친 대중화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발레학교를 만드는 게 꿈 발레리나로서 이 같은 성공은 부모님의 의지와 희생 덕분이지만 막내딸의 강한 독립심이 스스로 이룩한 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오빠들은 나약해서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습성이 강했지만 막내딸 최태지는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부모의 기대와 사랑도 각별했다. 오빠들은 사업의 어려움으로 부침을 겪으며 재산을 탕진했지만 막내딸인 그녀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부모덕을 본 최태지는 자식 복까지 터졌다. 두 딸들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 엄마처럼 얼굴도 예쁘고 승부욕도 강해 잘 자랐다. 첫째(리나·30)는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활동하다 귀국해 지금은 예고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둘째(세나·28)도 발레를 배우다가 엄마와 언니가 너무 힘들어 보여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 서울대 외교학 석사과정에 있다. 발레리나로서 모든 걸 누린 그녀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봤더니 발레학교를 만드는 것이란다. “창작발레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발레학교가 꼭 필요하다. 한국에서 너무 놀란 것은 사교육비가 비싸 발레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10세부터 18세까지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봐도 발레단보다 국립발레학교가 먼저 생긴다. 한국은 거꾸로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일반 교육과 발레 교육을 받으며 중·고교 과정을 거친 뒤 전문 발레단에 입단하거나 대학에도 갈 수 있는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 그녀의 꿈이 우리 사회의 꿈이다.
- 2017-11-2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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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 없이 살았으니 어떠한 미련도 없다
- 필자의 일가친척 중에는 치매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계시지만, 90세 이상 사신 분들도 꽤 있다. 그래서 치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가끔 깜빡깜빡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에도 사무실에 왔다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을 알고 다시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보니 이번에는 열쇠를 사무실에 벗어둔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고 왔다. 다시 사무실로 가서 열쇠를 꺼내 집으로 갔다.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휴대폰을 겨우 손에 쥐었지만 사실은 열쇠 가지러 다시 사무실에 갔을 때 집에 가져다 둬야지 하며 내놨던 짐 보따리를 또 잊고 나왔다. 이런 필자가 과연 치매에 안 걸리고 여생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매우 꼼꼼한 성격이다. 여간해서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책 내용을 까맣게 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 보고 나왔는데 금세 스토리가 가물가물하다. 알코올성 치매도 염려된다. 평소에 술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과음한 날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1, 2차는 기억이 나는데 3차는 어디로 갔었는지 희미할 때가 있다. 위험 신호다. 그래서 되도록 독주보다는 막걸리를 고집한다. 지인들은 기억력 퇴화와 치매는 다르다며 필자의 경우를 기억력 쇠퇴로 정의해준다. 건망증 정도이지 치매 걱정은 아직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머리를 자주 쓰라고 조언한다. 필자의 블로그 활동은 그런 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것 같다. 글을 쓰는 한 머리도 쓰게 되어 있다. 노래를 배우거나 춤을 추는 것도 뇌 활동 중 하나다. 당구도 그렇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익히고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가 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대책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관련 보험은 오래전에 들어놨다. 보험 모집원이 하도 집요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귀찮아서 든 보험이다. 새 대통령이 치매는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공약을 했으니 치료비 걱정은 안 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리면 인생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우선 재산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동산, 부동산 관리를 아들에게 맡길 작정이다. 다행히 재원은 충분하니 경제적으로 아들딸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 매년 연말이면 재산 목록을 컴퓨터에 업데이트해 한눈에 알 수 있게 해놓는다. 금융거래도 한 장짜리 종이에 정리해놓았다. 여차하면 컴퓨터 비공개 자료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가르쳐주면 된다. 요양병원 입원비를 충분히 떼어놓고 남은 재산은 아들딸이 반분해 나눠 갖도록 할 것이다. 필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만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찾는 일이다. 요양병원, 요양원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면서 부실한 시설로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대기자가 많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늘어날 것이다. 치매로 가족들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믿을 만하고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 있다가 조용히 눈감으면 될 일이다. 치매를 앓게 되면 온전한 정신이 아니므로 병원에서 요구하는 잡다한 수술이나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어떤 형태로 장례를 치를 것인지, 장지는 어디로 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부탁할 것이다. 한평생 해볼 것 다 해보고 후회 없이 살았으니 어떠한 미련도 없이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지낼 것이다. 미뤄뒀던 종교는 그때쯤 가져볼 생각이다.
- 2017-11-13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