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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문주현 MDM 회장의 돈의 철학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 놓은 것, 사회를 위한 나눔으로 거듭나야”
-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 2016-08-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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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인공관절 무릎 수술 중년 여성과 정형외과 전문의의 라뽀
- 흔히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을 ‘의료쇼핑’이라고 표현한다. 의사를 믿지 않고 쇼핑하듯 병원을 골라 진료를 받는다는 부정적 뉘앙스의 표현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치료를 받아도 낫질 않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면 환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에서 만난 정순숙(丁順淑·69)씨가 그랬다. 무려 9년이나 떠돌아 다녔다. 채동식(蔡東植·41)교수를 만나기 전까지.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정순숙씨는 평범한 우리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중년 여성이다. 식품 유통사업을 하던 남편은 6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딸은 결혼을 했고, 직장인인 아들과 인천 원당동에서 지내고 있다. 정순숙씨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 서울 녹번동에 살 때였다. 처음엔 그러다 낫겠지 했지만 통증이 영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특별히 거친 운동을 한 기억도 없고, 무릎에 무리를 줄 만한 생활도 아니었다. 특별히 무릎을 다칠 만한 사고도 없었다. 9년 동안 병원 3곳 전전…통증은 여전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여도 허사였다. 그러다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퇴행성관절염이라 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해봤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양의학으론 낫지 않는가 싶어 이번에 찾은 곳은 한의원이었다. 침도 맞고 한의사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그래도 역시 성과는 없었다. 무릎 통증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다리 모양이 O 자형이라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죠. 여기저기 다 다녀봤는데도 낫질 않으니.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용하다는 강남의 정형외과였어요. 유명한 대학병원 교수님이 강남에 병원을 차렸다고 해서 찾아갔죠. 다행히 그곳에선 차도가 있었어요. 고통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정도는 됐죠.” 물론 의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랐다. 체중이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게 운동을 하라 해서, 동네 구민회관에서 수중에어로빅과 요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8년을 다녔다. 집에서 강남까지는 적잖이 먼 거리였지만 무릎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이 그녀의 다리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마 작년 봄에 꽃놀이 간다고 무리하게 등산을 한 것 때문에 사달이 난 것 같아요. 그래도 6년간은 꾸준히 복용한 약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작년 6월쯤부터 다시 무릎이 쑤시고 붓기 시작하더라고요.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했어요. 다니던 병원에선 큰 문제 아니라고 하고. 그렇게 괴로워하던 차에 성당 수녀님께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을 추천해 주셨어요. 호스피스 봉사를 위해 다니시는데 좋은 병원이라고.” O 자형 다리 관절염 피하기 어려워 채동식 교수는 정순숙씨를 전형적인 ‘의료쇼핑’ 환자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이 병원에 오시기 전까지 많은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거치는 과정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서너 군데 병원에서 진단도 받으시고, 질환을 앓은지도 5년에서 10년 정도 돼서 오시죠. 그런 환자들은 이미 학습이 되어 있어 의학용어도 잘 이해하실 정도예요. 정순숙씨도 그런 전형적인 환자였습니다. 이런 환자일수록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아 저도 환자분에게 설명을 상세히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당시 정순숙씨는 퇴행성관절염의 마지막 단계, 즉 연골이 다 닳고, 연골판도 없고, 뼈와 뼈가 맞닿아 뼈까지 마모된 상태였다. 골세포가 죽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겨 뼈가 약해지는 상태가 됐다. 보통 무릎이 아파지면 통증에 익숙해지고, 여기에 진통제 치료 등이 더해지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선택하는 것은 인공관절치환술, 즉 흔히 얘기하는 무릎인공관절수술이다. 퇴행생관절염은 진행 상황에 따라 크게 4단계로 나뉘는데 1, 2단계는 연골이 정상이거나 다소 균열이 생긴 상태, 3단계는 연골이 파괴되어 관절 간격이 좁아진 상태, 4단계는 큰 뼈돌기가 생기면서 뼈가 마모되는 상태를 말한다. “수술은 좋은 치료법이긴 하지만, 수술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특히 65세 이하의 환자들에겐 문제가 됩니다. 인공관절수술 환자의 20%가 수술한 지 15년 이후 재수술하게 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65세 이전에 수술을 하면 교체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65세 전후로 맞추려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요즘 시니어들은 워낙 활동적이어서 최대한 본인 관절을 사용하는 기간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순숙씨같이 O 자형 다리로 인한 퇴행성관절염은 근위경골 절골술이란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O 자형 다리를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펴주는 수술이다. 다리가 휘어 무릎의 안쪽 관절에만 부하가 걸리는 것을, 수술을 통해 안쪽과 바깥쪽 관절 모두에 균등하게 부하가 걸리도록 변화를 주는 것이다. 운동량 줄면 관절염 더 악화 일반적으로 퇴행성관절염의 원인으로는 체중이나 운동 등으로 인한 기계적 마모와 노화로 인해 손상된 연골이 재생되지 않아서, 또는 무릎의 염증이 연골 세포를 파괴하는 것 등이 꼽힌다, 특히 노화와 함께 하체의 근력이 떨어지면 무릎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이런 불안정한 운동이 연골 손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채동식 교수는 외상 등으로 인해 무릎에 충격이 가해지면 꼭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특히 시니어일수록 말이다. “정순숙씨처럼 다리가 O 자형인 분들은 퇴행성관절염을 거의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수술(근위경골 절골술)을 통해 교정이 가능해졌지만, 그 전까지는 딱히 방법이 없었어요. 대신 무릎 안정성을 키워주는 운동, 무릎에 부하를 주지 않으면서 근력을 강화하는 비체중부하운동을 통해 인공관절치환술 시기를 늦추는 것뿐이었습니다.” 최근에 퇴행성관절염의 치료방법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한 연골재생술이다. 아직은 치료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액이고, 치료제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원래의 연골과 똑같은 조직의 초자연골을 재생해냄으로써 환자의 관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퇴행성관절엄은 한 번 발생하면 환자의 활동량을 줄이고, 활동량이 줄면 근육량도 줄어요. 근육량이 줄어들면 대사량이 줄어서 인체 내 면역염증 반응도 약해지죠. 그러면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돼요. 그러다 수술을 미루기까지 하면 시기를 놓쳐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치료를 통해 운동량을 늘리면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비체중부하운동을 하며 비타민D 생성을 위해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는 것도 잊지 마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어요.” 수술 후 양반다리도 가능해져 정순숙씨가 채동식 교수를 만나고 수술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원에 대해 대신 알아봐 준 아들도 병원과 교수님을 마음에 들어 했고, 상담을 통해 신뢰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10월 26일 오른쪽 무릎은 튼튼한 인공관절로 교체됐다. “수술을 막 하고 나서는 고통이 엄청났어요. 누워만 있고 싶은데 수술하고 나서 바로 무릎 꺽기 재활을 해야 한다고 해서, 지팡이를 짚고 움직이려 애썼죠. 매일 수술한 무릎이 열나고 붓기를 반복해서 힘들기도 했고, 물리치료를 위해 아픈 무릎을 움직여야 해서 3개월 동안은 정말 괴로웠어요.” 인공관절이 몸에 적응하고, 몸이 인공관절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처음엔 무릎운동을 위해 고안된 기계에 몸을 맡기기도 했고, 동네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집에서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이런저런 운동을 스스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가구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누워서 다리를 굽혔다, 폈다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 고생을 하고 나니까 이제는 동네 산책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아파트 단지나 동네 주변을 한두 시간 걷는 것도 이젠 거뜬해요. 신기한 것 중 하나가 수술 전에는 아파서 할 수 없었던 ‘양반다리’가 된다는 것이에요. 보통은 수술하고 나면 안 된다던데. 교수님이 수술을 잘 해주신 덕분인가 봐요.(웃음)” 실제로 서양 환자들에 비해 동양 환자들의 무릎 인공관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양반다리’다. 인공관절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좌식문화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정씨의 경우 수술도 매우 잘됐고, 재활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양반다리’는 무릎에 좋은 자세는 아니므로 피해야 한다. 건강한 두 다리로 여행 다니고 싶어 이제 간신히 수술한 다리에 대한 적응을 했지만, 정순숙씨는 또 한 번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하지 않은 왼쪽 무릎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추석연휴 직후에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 고생을 하고 나서 또 수술이라니 맘이 약해지지 않을까 했더니 각오가 대단하다. “아이를 셋 낳은 엄마로서 수술보다 출산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아픈 수술이에요 무릎 수술은. 그래도 다시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어요. 그만큼 수술 후 달라진 무릎 상태가 무척 만족스러워요. 두 다리가 이렇게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두 다리가 건강을 되찾으면 무얼 가장 먼저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여행이라고 했다. 아들이 보내줘야 갈 수 있는 여행이라, 어디 한 곳 가고 싶은 여행지를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한 탓에 외국도 무리다. 그래도 씩씩하게 들과 산을 걸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이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정순숙씨의 마음 한구석이 계속 편치 않은 것은 역시 아들 때문이다. “전부 다 아들 덕분이에요. 수술 전에는 치아가 말썽이어서 임플란트로 아들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양쪽 무릎까지 수술해야 하니 말이에요. 게다가 집에서도 이제 집안 청소는 아들 몫이 됐어요. 제가 불편한 탓이죠. 수술 후에 침대가 편하다고 아들 덕분에 환갑이 넘어 처음으로 침대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붕 뜬 기분이더라고요. 이젠 침대가 아니면 잠이 안 오는 체질로 바뀌었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중간 중간 아들 얘기가 나올 때면 정씨의 눈빛은 달라졌다. 고마움에 그리고 미안함이 그녀의 눈을 촉촉하게 만든 것이리라. 그녀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환자들에게 전할 말을 부탁하자 손사래부터 쳤다. 의사도 아닌데 해줄 말이 무엇이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당부의 말을 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관리해야 해요. 관리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가족의 짐이 되면 안 되니까요. 병을 예방하거나, 가진 병을 빨리 낫기 위해서라도 몸 관리에 신경 써주셨으면 해요.”
- 2016-07-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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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자화(七子花), 황후의 꽃에서 희망을 보다
-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가 말해주듯이 조기 퇴직하는 사람은 많은데 퇴직 후 일자리가 없어서 시니어들의 앞길이 막막하다. 기자는 농업에 뜻이 있는 시니어라면 황후의 꽃으로 불리는 칠자화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충남 서산시 고북면 용암리 서산아로니아랜드를 방문하였다. 대표 이희준(42세)은 종묘상으로부터 황후의 꽃이라고 불리는 칠자화 10그루를 사서 7년 만에 70만 그루로 번식시켰고 이 나무를 이용하여 1등급 팩, 차, 꿀, 식용(나물) 등으로 사용 범위를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 칠자화는 본래 중국이 원산지인데 왕실에서 주로 이용하던 식물이나, 지금 중국에서는 2급 멸종식물로 지정되어 채취 및 이용이 제한되고 있는데, 이 농장에서는 빠른 기간에 대량 번식과 상품화시키는 데 성공하여 지금은 중국에서 놀라움과 부러움을 보인다. 대표 이씨는 본래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였으나 2년마다 바뀌는 새로운 공법을 배워 적응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농업에 뜻을 두고 미래 가치농업을 찾던 중 칠자화를 발견하고 이를 대량 재배하여 상품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이 사업을 할 당시에는 좋은 직장 버리고 이상한 나무에 매달린다고 주위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으나, 농법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1년 이상 걸리는 배양을 3~4개월 만에 해내어 대량재배의 길을 열고, 식용 및 화장품 등으로 상품화하자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칠자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특허가 필요했는데 한국 특허청에서는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고민이 많았으나, 종주국 미국의 특허제도를 이해하고 여기서 특허를 출원하여 허가를 받았는데, 중국 등 해외 진출에 오히려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 한국 특허청이 허가해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자 “특허청 나름대로 어려움과 고민을 말해주어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실현을 거두려면 이런 것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칠자화는 1년에 두 번 꽃이 피는데 7~8월 여름에는 재스민과 라일락 냄새가 나는 하얀 꽃이 1개월가량 피고 가을에는 자주색 빛깔의 꽃이 피는데, 향이 진해 양봉으로 이 꽃에서 채취한 꿀은 건강과 미용에 너무 좋아 없어서 못 판다. 꽃이나 꿀은 항산화 억제, 피부재생, 항염작용 등이 다른 것의 10~100배 높은 효과가 있어 팩이나 차 등으로 개발하였는데 팩은 1개 8,000원, 1갑(4개) 27,000원으로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이를 사용해본 사람은 누구나 최상급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칠자화는 미국에서 최우수 조경수로 선정되는 등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인기가 높은데, 한국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경수로 사용하기 위해 묘목을 사기 시작했고, 이 농장에서 열리는 축제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관광산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42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괄목할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가에 관하여 묻자 “오직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음만 있으면 길은 있다”고 말하면서 농업을 하면서 따낸 자격증만 9개(안전기사ㆍ조경기사 등)나 된다. 그는 특히 “최근 중국에 다녀왔는데 중국에서는 무엇을 재배했다 하면 최소 100만 평을 심으나 한국은 30만 평밖에 되지 않는다”며 “앞으로 중국과 경쟁하려면 100만 평 이상 경작지를 늘려야 하는데, 소요비용은 제품 판매를 통해 나오는 수익금을 확보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밭을 가진 사람들이 칠자화를 재배할 경우 협력농장으로 인정하여 배양기술을 전수하고 직접 수매해주면 굳이 부지를 매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좋은 방법”이라며 검토해보겠다고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도 칠자화는 새로운 고수익 상품으로 독점 성장할 여지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영농에 뜻이 있는 시니어라면 칠자화를 재배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 2016-06-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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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군에 '품바' 예술촌 만든다!
- 충북 음성군이 품바와 정크 아트를 즐길 수 있는 예술촌 조성을 추진한다. 음성군은 2000년부터 매년 품바 축제를 열고 있다. 고 최귀동 할아버지의 인류에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는 동냥해 온 밥으로 다른 걸인을 먹여 살려 국내 최대의 복지시설인 꽃동네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음성이 '품바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유다. 음성군은 27일 풍자와 해학이 있는 품바 문화와 쓸모없는 물건 등으로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를 접목시켜 '품바 재생 예술체험촌'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의 구상은 이렇다. 전국의 품바들과 각종 예술단체가 공연할 수 있는 품바 극장, 품바 장터, 정크 아트 등을 전시한 품바&정크 공원과 잡동사니 놀이터 등을 꾸밀 계획이다.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지상 2층 규모의 예술촌을 지어 예술인들에게 작품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품바 가락 배우기, 정크 예술 체험 등이 펼쳐진다. 유명 만화가의 작업실 등을 유치해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군은 국비 50억원의 지원을 정부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이 사업에 6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군내 관광지와 연계할 수 있는 지역에 예술촌을 조성하기 위해 사업 예정지를 알아보고 있다. 군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2016년까지 예술촌을 조성할 계획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서민의 애환이 담긴 품바를 주제로 한 예술촌을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중앙부처를 방문해 이 사업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 국비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 2014-04-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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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고] 이상선씨 별세 - 이웅희씨 부친상
- ▲이상선(前 서울지방경찰청 근무)씨 별세, 이웅희(서울시청 도시안전실 물재생정책과 팀장)ㆍ문형(사업)ㆍ찬형(사업)ㆍ숙희(기아자동차 근무)씨 부친상=25일 오전 고려대안암병원, 발인 27일 오전, 02-923-4442
- 2014-03-2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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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인사동에 고층호텔 건립? 업종제한구간 축소 추진
- 서울시 인사동에 고층 호텔이 들어설 수 있을까. 서울시와 종로구가 인사동 주가로변 일부 구역에 호텔 등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 업체가 실제 고층 호텔 건설 계획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말 열린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인사동의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문화지구변경안)을 상정했다고 16일 밝혔다. 문화지구변경안은 인사동길 20-3·20-5·22-6 등 인사동 문화지구 내 24개 필지를 인사동 문화지구의 '주(主)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인사·관훈·낙원동 일대 12만2200㎡는 2002년부터 인사동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높이가 최대 4층으로 묶여 있고 업종도 제한된다. 특히 인사동길과 태화관길의 주가로변은 고미술품점 등 전통문화업종만 입점할 수 있다. 문화지구변경안대로 주가로변에서 제외되면 업종제한이 풀려 그동안 금지된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이제원 서울시도시계획국장은 "공평 정비계획은 개별 필지를 인사동 등 주변 일대의 특성에 맞춰 정비하는 계획"이라며 "다만 해당(인사동길 인근) 부지는 기존 정비계획에 따라 건물주 동의가 상당히 진행돼서 (개별 필지로 쪼개지 못하고) 공동개발구역으로 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통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서울의 대표 전통문화거리인 인사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또 인사동 지역사회는 전통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강하다. 지난달말 열린 심의위원회에서 문화지구변경안은 민간위원인 윤용철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장의 문제제기로 일단 보류됐다. 윤 회장은 "호텔 사업에 대한 지역의 우려를 전달하며 추가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기배 서울시 도시재생팀장은 "반대여론이 심하다면 업종제한을 그대로 둔 채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2014-03-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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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 → 공장·사업체 이용토록 규제 ‘전면 재검토’
- 산지(山地)를 공장과 사업체 등 산업입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산지 규제가 전면 재검토된다. 국토의 3분의 2나 차지하는 산지는 현재는 현행 산지관리법상 개발(준보전산지)과 보전(보전산지)으로 이분화 돼있다. 그러나 이것을 ‘생태적 이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에 대한 기업 투자를 활성화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6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기재부와 산림청 등은 이 같은 내용을 최근 발표한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후속 과제로 추진 중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국 산지의 77%가 보전 산지로 지정된 데다 현행 산지 관리 체계가 산지 보호에 치중하고 있어 효율적인 이용에 한계가 있다”며 “지역 경제 및 기업 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산지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규제가 풀리면 준보전산지 등 개발 여지가 큰 산지부터 당장 산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지역 경제와 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산지 이용을 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발굴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산지 관리 체계를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이달 초 용역을 발주했다. 기재부는 특히 ‘개발’과 ‘보전’의 이분법적인 체계 중간에 ‘이용’이라는 개념을 추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산지 이용 대상은 공장과 사업체 등을 의미하는 산업입지로 설정했다. 정부는 휴양과 힐링, 신재생에너지산업 등을 산지 이용 우선 검토 산업으로 분류한 가운데 택지나, 산업단지, 레저시설 등을 조성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산림청도 이런 맥락에서 10년 단위로 산지 구분 타당성을 조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산림청은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지규제 개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산림청 측은 “산림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재해 우려도 없다면 추가적인 개발 여지도 있다고 본다”며 “실태조사를 통해 이런 지역으로 분류된다면 규제를 완화해 이용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2014-03-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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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세운상가 일대, 분할개발 본격 추진
- 서울 종로 세운상가 일대의 정비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정비위원회를 열고 종로구 종로3가동 175-4번지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고 3일 밝혔다. 변경안이 이달 중 결정 고시되면 각 구역별로 정비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변경안에 따르면 시는 전면철거 하려던 세운상가군을 촉진구역에서 분리해 존치시키고 주변구역을 점진적으로 개발해 창조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만든다. 건축물 용도는 기존 안의 주거비율인 50% 이외에도 오피스텔을 10% 이내로 추가하는 것을 허용키로 했다. 다만 1~2인 가구의 증가를 감안, 주거비율의 30% 이상은 소형(60㎡미만)으로 구성토록 했다. 변경 전 8개 대규모 구역(3~4만㎡)은 △소규모 구역(1000~3000㎡) △중규모 구역(3000~6000㎡)구역 등 171개 구역으로 쪼갠다. 향후 주민 의사에 따라 기존 도시조직을 보전하는 범위 내에서 분할 및 통합이 가능하도록 했다. 용적률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600%를 기준으로 소규모구역과 4구역은 100%, 중규모구역은 200%이내를 추가로 제공한다. 이밖에도 기반시설 제공량에 따라 용적률 상한 제한없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도심가로 활성화를 위해 종전 60%였던 건폐율은 5층 이하 저층부에 한해 최대 80%까지 완화한다. 기반시설부담률은 기존 13~15%에서 소규모 구역 평균 5%, 중규모 구역 평균 11%로 하향 조정했다. 건축 최고높이는 소규모구역에서 간선부와 이면부가 각각 70m와 50m로, 중규모구역에서 각각 90m와 70m이다. 다만 종묘 앞 2·4구역은 문화재심의결과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제원 시 도시계획국장은 "재정비촉진계획변경으로 세운지구에 대한 점진적 도시재생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비사업은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사업의 실현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 2014-03-03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