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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신(墨神)이 머물다 간 자리
-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과 해남을 ‘남도 답사 1번지’로 꼽았다. 그 여파는 컸다.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으니까. 그런데 진도를 젖혀두고 남도 문화의 끌텅과 태깔을 논하는 건 좀 어폐가 있다. 진도야말로 노른자다. 시(詩)·서(書)·화(畵)·창(唱)·무속의 곡간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정부에 의해 전국 최초의 ‘민속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알고 보면 돌올하고 뜯어보면 찬연한 문화지구 진도에서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은 빼어나다. 운림산방은 전통회화의 한 본산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장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의 창작 산실이며, 5대에 걸친 그의 직계 화맥(畵脈)이 박힌 곳이다. 진도의 진산 점찰산 아래 둥지를 튼 품새는 또 어떻고? 널찍한 터는 호방한 맛을 준다.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안온하다. 산의 푸른 치맛자락을 거머쥐어 수려하고 청신하다. 겨울이 좋다고 혹한에도 얼싸절싸 피어나는 동백꽃 무리는 꾹 눌러 점점이 칠한 붉은 물감처럼 흥건해 기발하다. 원래 이곳엔 소치의 화실과 침식을 위한 초가 하나, 그리고 소치가 만든 연못이 있을 뿐이었다. 단출해서 오히려 그윽했으리라. 꾸밈없이 적막해 한갓졌으리라. 이후 현대에 이르러 보탠 구조물이 많아졌다. 그래도 본색이 어디 가겠나. 진도의 어떤 이들은 운림산방 일원을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이곳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맞먹을 실경산수를 연상하는 거다. 소치가 뉘신가? 이름을 좀 날린 화가에 그치지 않는다. ‘소치는 묵신(墨神)이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걸 보면, 그림으로 달통한 게 많은 기재(奇才)였다.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을 주름잡았던 걸사(傑士)다. 헌종의 호감을 사 어연(御筵)에 먹을 풀어놓는 영예를 누리고, 함께 서화를 논하기도 했다. 임금을 패트론으로 삼았던 셈이다. 소치의 집안은 변변치 않았다. 허균의 후손으로 한때는 양반 가문이었지만 여러 대에 걸쳐 거듭된 영락으로 어디다 명함을 내밀 건더기가 없었다. 그러나 소치에겐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자청해 그리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낮잠과 끽다(喫茶)로 충분해 그렇다고 일취월장이 절로 가능했으랴. 화가의 창의적 상상력은 기초가 부실한 채로는 터져 나올 리 없다. 그리고 기초라는 건 확장과 성숙에 대한 본능이 추동한 탐구심으로 다져진다. 소치에겐 이 탐구 정신이 내장돼 있었다. 과연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가? 궁구가 깊었던 청년기에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에 갔다가 본 공재 윤두서의 ‘공재화첩’을 통해 소치의 눈이 번쩍 열렸다. 그는 기록했다. ‘비로소 나는 그림 그리기에 법(法)이 있음을 알았다.’ 복 가운데 최고는 인연 복이라 한다. 난데없이 떠올랐다 간데없이 사라진 그림쟁이들이 숱했지만, 소치는 인연 복이 많아 비상을 거듭했다. 해남 두륜산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맺은 선연은 돛을 밀어주는 순풍이었다. 초의는 구도(求道)라는 이름의 양탄자를 타고 세사의 모든 영역을 비행한 인물이다. 일지암은 그 비범한 이착륙의 베이스캠프였다. 28세 때 초의의 문하에 들어간 소치는 이 작은 암자에 머물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웠다. 소치는 자서(自敍)에 이렇게 썼다. ‘초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 어찌 고고하고 담백하게 살 수 있었겠는가?’ 소치의 생애에 녹아든 개결한 풍정은 초의에게서 얻은 지성과 화엄정신의 발현이었던 셈이다. 초의가 소치의 정신적 아비였다면, 추사 김정희는 예술적 푯대였다. 소치에게 추사를 소개한 건 초의였으니 인연이 인연을 낳았다. 천재는 준재를 척 알아보는 법. 소치의 작품을 본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 소치만 한 그림을 그리는 이가 없다”고 탄복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찬사만 능사로 삼을 추사가 아니다. 소치여! 그대가 서격(書格)을 터득했는가? 신운(神韻)을 익혀 구사하는가? 그쯤의 깐깐한 일갈로 갈 길 먼 예술 항로를 통찰하게 했다. 이른바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으로 예술혼을 돋우길 주문했다. 추사의 지향은 대상의 형상화보다 정신세계를 끄집어낼 수 있는 관조의 깊이를 중시하는 데 있었다. 소치는 추사의 이 고고한 예술철학에 감명을 받아 길을 교정하거나 노정했을 테다. 그러니 스승을 선망하는 마음이 오죽했겠나. 그는 제주도로 유배 간 추사를 번번이 찾아갔다. 버들잎처럼 작은 배를 타고 사나운 바닷길을 건너가 배움을 청했다. 소치가 제주에서 그린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은 추사의 지엄한 풍모를 오마주한 초상화다. 이제 소치의 그림을 볼까. 운림산방에는 소치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소치기념관이 있다. 그저 풍경을 즐기려 운림산방을 찾는 관광객이 즐비하지만 알짜배기는 소치의 그림들에 있다. 소치기념관은 한옥 건물 하나로 꾸린 미술관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기념관치고는 자그마하고 치레 없이 조촐하다 못해 밋밋하다. 소치의 담박한 성정을 고려한 구조라 봐야 할까? 전시실엔 산수화, 병풍 그림, 묵죽도, 모란, 괴석 등 다양한 유형의 그림들이 걸렸다. 물기를 배제하기 위해 붓에 먹을 살짝 찍어 바르는 붓질로, 마치 긁힌 자국 같은 필선을 연출하는 갈필(渴筆)에 능했던 소치의 개성을 직감할 수 있는 작품도 많다. 소치 허련은 ‘허모란’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모란 그림을 즐겨 그려서다. 전시실에서도 모란이 흔하게 눈에 띈다. 걸작이란 평판을 얻은 작품은 운림산방의 전경을 부채에 그린 ‘운림각도’(영인본. 원본은 서울대 소장)다. 소치 만년의 작품이다. 근골이 거칠게 드러난 점찰산과 억실억실한 노송들, 푸른 연못과 소박한 산방 두 채가 어울려 써늘한 정취를 자아낸다. 눈길을 붙잡는 건 지팡이를 짚고 연못가를 거니는 노인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산야의 은자로 사는 이의 고독한 심회를 풀어냈을까? 늙어서는 산천이 스승이다. 말 없는 산야에서 음양의 조화를 읽는다. 여백에 쓴 화제엔 다음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깊은 산골에 있는 나의 집에 여름이 오면 뜰에 푸른 이끼가 깔린다. 소로엔 떨어진 꽃잎들이 가득하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솔 그늘에 누워 새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즐긴다. 단잠에서 깨어나면 솔가지 모아 차를 달여 마신다.’ 산림에 사는 이의 영일(迎日)이 완연하다. 인간사에 대한 관심일랑 안으로 거둬들였나? 낙화와 낮잠과 끽다(喫茶)면 그만이었다. 숫제 선풍(仙風)이 비친다. 그래도 긴가민가 늘 궁금한 건 그림이었을 테다. 말년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았으니. 후손에게 남긴 유지에도 그림 소식이 난무해 두고두고 새길 만하다. ‘붓 재주 하나로 성가(成家)할 생각을 마라! 먹을 항상 입에 물고 다녀라! 나를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서린 뜻이 여러 겹이다. 그림을 밥 먹듯이 그리되 통 크게 밀어붙이라는 독촉이다. 웅장한 메시지다. 소치 허련이 남긴 저작과 화맥의 아우라 소치실록 자서전 성격의 문집으로 소치의 생애와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정밀한 자료다. 소치 연구의 핵심 텍스트이기도. 1867년에 쓴 ‘몽연록’(夢緣錄)과 1879년에 집필한 ‘속연록’(續緣錄)을 합본해 ‘소치실록’(小痴實錄)이라 이름 붙였다. ‘몽연록’은 운림산방에서 완성했다. 소치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황량한 곳에서 홀로 슬퍼하며 서책은 물론 모든 것을 버렸다. 뜻밖에 손님이 찾아와 며칠을 쉬는 동안 문답한 것이 있는데 이걸 엮어 책을 만들었다.’ 문답식의 다소 특이한 유형의 자서전을 쓴 정황을 밝히고 있다. 대화체 문집이라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조선의 화가 중 소치 외에 자신의 화필 생애를 세세한 기록으로 남긴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도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소치실록’이 현대의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74년 한 매체를 통해 한글 번역 연재물이 게재되면서였다. 당연하게도 소치 연구자와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소치는 스스로 밝혔듯 ‘조실부모해 의지할 곳이 없었고 견문도 넓히지 못한 채로’ 성장기를 통과했다. 이 불우한 과거를 보상받고 싶었을까? 남종화의 거두로 부상하면서 그는 당대 명망가들과 적극적인 교유를 했는데, 사교 일화와 의미심장한 예술적 교감의 내용을 낱낱이 책에 담았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군주 헌종, 고명한 선사 초의, 광활한 예술 세계를 구현한 추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술회한 대목들이 특히 재미있다. 소치의 생애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진면목과 삶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5대로 이어진 소치 화맥 진도에는 이런 얘기가 돌아다닌다. “양천 허씨들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걸작이 나온다.” 소치 가문에서 화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생긴 우스갯소리다. 소치의 화맥(畵脈)은 직계 후손 5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전무후무한 화업의 행진이다. 소치의 화업 2대를 전수한 이는 넷째 아들 미산 허형이다. 소치는 원래 큰아들 허은의 재능을 높이 쳤다. 그러나 허은이 요절하는 바람에 허형이 맥을 이었다. 허형이 그린 묵모란과 묵매는 부친을 능가한다는 평판이 있다. 3대를 이은 건 허형의 두 아들 남농 허건과 임인 허림이다. 허건은 갈필로 그린 필선의 생동감으로 호평을 받았다. 동상 걸린 다리를 절단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장애를 오히려 창작의 화톳불로 삼는 강골의 근성을 과시했다. 소치의 운림산방을 복원하기도 했다. 허림은 사물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로 명성을 얻었으나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4대 맥은 임전 허문에게 이어졌다. 그는 수묵의 농담(濃淡)을 활용한 독창적 화법인 ‘운무산수화’에 능하다. 임전 이후 현재의 5대째 화맥은 허건의 손자 허재와 허전, 허건의 조카 허청규와 허은에게 이어지고 있다. 물보다 진한 피가 5대째 그림으로 이어져 가문을 통째 수묵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 바다의 아우라가 휘황하다.
- 2022-02-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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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기운 스미는 신비로운… 제주 서귀포 치유의 숲
-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 2022-01-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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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페라 가수 강마루, “환호와 박수 있다면 깍두기라도 좋아”
- 그의 깍두기라는 표현에 내심 놀랐다.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 3500회 넘게 무대에 섰고, 미국과 영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유학파 출신이다. 자존심 높은 성악가가 후배들의 공연에 ‘깍두기’를 자처하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강마루(59)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와 관객을 만나고, 노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1등! 강마루.”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까까머리 중학생은 어리둥절했다. 그간 그의 노래 실력을 칭찬해준 것은 학교 음악 성적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성가경연대회에서 1등이라니. 그것도 충남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말이다. 강마루 교수는 “성악의 길에 발을 내디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죠. 물론 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성적이 좋긴 했지만, 그 정도 아이는 한 반에 하나씩 있잖아요. 당시만 해도 지역이나 교회마다 ‘가곡의 밤’이나 ‘성가의 밤’ 같은 행사가 많아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훌륭한 노래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까까머리 중학생 성악가를 꿈꾸다 그날로 중학생 강마루의 미래는 성악가가 되었다. 음대 진학을 목표로 한 수험생 생활은 한양대 입학으로 결실을 맺었다. 장학금 덕분에 등록금 걱정도 없었다. 이후 그는 미국행을 선택한다. 성악가로 활약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고 강 교수는 이야기했다. “당시 성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리고 성악은 결국 서양 음악이니까, 그들은 어떻게 노래하는지, 발성은 어떤 식인지 현장에서 듣고 배우고 싶었어요. 물론 세계적인 무대에 서고 싶다는 야망도 있었고요. 한편으론 운이 좋게도 수업료를 면제받아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죠.”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으로 꼽히는 메네스 음대(Mannes School of Music)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살인적인 뉴욕의 물가는 가난한 유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을 강요했다. 강 교수는 “안 해본 것이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 같은 알바는 기본이고, 불러주는 무대에는 무조건 올랐다. 무대의 수준이나 어떤 관객이 오는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다양한 무대에 올랐어요. 크고 작은 공연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 성가대 지휘도 하고, 레슨도 하러 다녔죠. 생활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조건 해야 했거든요. 덕분에 미국에서 공부는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어요. 이후 영국 런던 테임스밸리 대학원에서의 수학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인생을 바꾼 노래 ‘슬픈 전쟁’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의 유학 시절을 “마치 아이를 품은 산모와 같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기대에 찼던, 현실은 괴롭지만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디에서나 차별을 겪어야 했어요. 한편으론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실력으로 보여주고 이겨내면서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해낼 수밖에 없었어요.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것을 이겨내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서 만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와 경원대와 협성대 강단에 서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을 막 시작한 무렵, 그는 예기치 못했던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된 노래, ‘슬픈 전쟁’과의 만남이다. 1996년 가요계에선 낯설었던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만남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선 “발라드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사실 노래를 부른 최진경 씨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앨범 준비하던 제작자와 인연이 있었는데, 고음이 가능한 바리톤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뜻 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게는 숙명 같은 일이었어요.” 이 노래는 그에게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라는 칭호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안겨줬다. 물론 보수적인 성악계에선 그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그의 생각은 크로스오버나 팝페라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렵잖아요. 일단 기본적인 공부가 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분야니까요. 그러다 보니 소수만 즐길 수 있는 관상용 도자기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았어요. 그에 반해 제 음악은 그 안에 김치도 담고 찌개도 담는 생활용 그릇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죠. 좀 부딪히고 상처가 나더라도 모든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는 그릇이요. 저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문제되지 않았어요.” 실패작 된 최고의 명작 그러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후학 양성을 위해 의욕을 갖고 나섰던 대학 설립은 결국 경제적 부담만 안겨줬다. 이후 의욕을 갖고 진행한 1집 활동은 매니저의 횡령으로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1집 ‘산책’을 준비할 때 너무 행복했어요. 1년간 공들여 준비하고, 제작에만 세 달이 걸렸죠. 세션으로 기타의 함춘호, 드럼에 신석철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죠. 곡도 너무 좋았는데, 많이 아쉬워요.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잊혔으니까요. 그래도 너무나 좋은 곡이라 언젠가는 ‘역주행’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리고 9년 만에 발매한 2집은 의외의 선택으로 화제를 모았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곡 ‘동반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성악계 일부에서 ‘딴따라’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태진아 씨가 흔쾌히 곡 사용을 허락해줘서 타이틀곡으로 부를 수 있었죠. 그저 신나는 전통가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사를 음미해보면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어요. 원곡의 ‘출신성분’ 같은 것은 제게 중요치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삶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동반자’는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서 제게 수많은 무대를 선사해준 고마운 곡이에요. 주변에서 “왜 태진아냐”며 폄하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분의 창법이 갖는 매력이 있고, 둘이 함께 선 무대가 많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화합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달려오던 그의 무대는 잠시 멈춰야 했다. 많은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등장은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잠시 멈춘 사이 그동안 저의 활동을 되돌아보았죠. 음악인으로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음악이 나를 정화시키고 힐링을 주어야 하는데, 삶의 수단으로만 남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어요.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분은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11월 30일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을 전해준 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모처럼 관객 앞에 설 수 있었다. 한국경제TV의 팝페라 페스티벌 무대였다. 그가 설립한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조직한 성악 그룹 ‘더 텐테너스 그룹’과 함께 공연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30~40대 테너 10명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 그는 3년간 공을 들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그룹은 해외에선 활동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11월 공연에선 관객들이 박수는 가능했지만 환호성은 지르지 못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방역수칙 때문이죠. 무대에 서는 입장에선 김 빠진 사이다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누구나 열망하고 바라는 소망을 잊고 있었던 거죠.” 더 텐테너스 그룹에 대해서는 “성악계의 BTS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음악대학 강사 이상의 자리에서 활약할 수 있는 해외파 출신 테너들로 구성된 성악 그룹으로, 갈수록 설 무대가 좁아지는 후배들을 위해 강 교수가 기획한 작품이다. 후배 위해 깍두기 되고파 강 교수는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꾀하고 있다. 대중이 성악이라는 어려운 장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마스터스 성악 최고위과정’은 벌써 21기가 되었을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노블레스 최고위과정’이나 ‘와인인문학 최고위과정’도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이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염원을 담아 한 분씩 가르치다 보니 정규 과정이 되었어요. 처음엔 예상치 못했던 일이죠.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모니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껴요.” 그가 최근에 설립한 공연장 ‘하다 아트홀’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10월부터 준비한 장소가 지난해 11월 결실을 맺었다. 하다 아트홀은 후배들에게 공연할 장소를 제공하고, 한국예술문화재단의 교육 장소로도 활용하기 위해 만든 공연장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만들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잖아요. 인간의 본질이 유희라는 점에 기초하는 인간관인데, 저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먹고 놀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요. 모두가 ‘놀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노는 사람은 찾기 어렵잖아요. 술밖에 모르는 우리 현대인에게 인문학에 기반한 다양한 ‘노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해요.” 하다 아트홀이라 이름 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박정희 씨다. 노래를 하고 공부를 하는 다양한 행위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라고.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하다 은퇴한 박정희 씨는 현재 수만 명의 팔로어를 자랑하는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강 교수는 “저희 공식 유튜브 채널보다 팔로어가 많아 샘이 날 정도”라면서도,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서 유튜브 채널 운영 등 여러 활동에 대한 다양한 조언에 늘 귀 기울이며 산다”며 웃었다. 가수 강마루로서의 계획은 어떨까? 그는 불쑥 깍두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팝페라 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이제 저도 신체적인 상황이 젊을 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요. 앞으로는 제 무대에 대한 욕심만 챙기며 후배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후배들이 성장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팝페라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되고, 가수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전 그저 ‘깍두기’로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무대에 서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생활을 마지막 그날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그게 제 희망입니다.”
- 2022-01-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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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숨결 숨쉬는 익산 왕궁리 유적지
- 왕궁리 유적지로 들어가면서 ‘여유롭다’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유적지든 공원이든 시설물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볼거리가 많음을 보여주려는 듯한 복잡한 풍경이 늘 아쉬웠던 터다. 널찍한 익산의 왕궁리 옛터엔 휑한 여백의 미가 팍팍, 신선한 바람 맞으며 헐렁한 여유감으로 벅차기까지 하다. 물씬한 황량함이 어쩐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 넓은 터에 혼자 온 듯한 여행자 두 사람만이 각자 이쪽저쪽에서 뚝 떨어져 호젓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유난스러운 유적지의 시스템이 있을 법한데 여긴 그렇지도 않다. 딱히 꾸며진 모습 없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널널한 풍경이 된 역사 속을 걷는다. 관람 동선 안내문이 있지만 이 넓은 공간을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자유롭게 오가면 된다. 입구에서 호위하듯 고목이 숲을 이룬 길을 산책하듯 홀린 듯 걸으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맛,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멀리서도 홀로 오롯한 왕궁리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포토존 프레임 안으로 바라보는 석탑 또한 기품 있다. 오랜 세월 너른 터에 우뚝 서서 품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왕궁터를 돌아보건대 세련되고 웅장했을 백제 옛터다. 끊임없는 보존 노력으로 이제는 풍경이 된 역사 속에 서본다. 주변으로 몇 개의 건물터, 금당터가 자리를 지키고, 왕궁 둘레를 감아 도는 길에 단을 높인 대형 배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왕이 휴식하던 후원과 공방, 화장실까지 옛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조성했다는 설명서를 읽으니 그 시절 장인들의 디테일한 기술이 놀랍다. 이런 길을 따라 궁궐과 정원의 멋을 누렸을 백제 시대의 영화를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상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주, 부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당당히 자리 잡은 후에도 여전히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년 넘는 역사 속의 백제 문화유산은 무궁무진할 터. 왕궁리 유적 옛터에 내리는 노을을 보러 저녁 시간에 다시 와볼 생각이었는데 딴전 피우다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일몰이든 일출이든 천년이 훨씬 넘는 왕궁터가 배경이 되어준다면 그 풍경은 더 말할 게 없을 듯하다. 푸른 하늘과 늦가을 왕궁리의 조화가 이렇게나 멋진데, 날씨 따라 변화하는 백제 옛터 왕궁리의 사계는 또 어떨까. 미륵사지 석탑이 품은 이야기 왕궁리 유적지에서 미륵사지 석탑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정문에 들기 전에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쇼’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게 뭐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이 지역 주민인 듯한 분이 지나다가 얼마 전에 진행된 행사라면서 참 볼 만한 쇼였다고 말해준다. 미륵사지 석탑 동·서쪽에 프로젝션 매핑 및 드론을 이용해서 다양한 빛과 형상을 표현하고 음악을 활용한 종합 미디어 쇼로 구현된 행사였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익산 지역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의 가치 확산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들면서부터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너른 대지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미륵사지 석탑, 백제 시대 최대 사찰이던 미륵사지는 국보 제11호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절반 이상이 붕괴된 모습이다. 그동안 꾸준히 보강하고 섬세한 복원 작업을 해온 결과, 지금은 미완의 6층 석탑으로 우뚝 서 있다. 복원 작업 중 해체 수리하면서 내부에서 사리장엄구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내부는 입장할 수 없다. 우리의 기술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옛 석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해 들어가 보았더니 시원하다. 그 서늘함이 그 옛날의 기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길 양옆의 연못이 차분하다. 연못 속으로 비치는 석탑의 반영이 오랜 세월 속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거길 지나 미륵사지 앞마당에는 동·서 방향으로 당간지주 두 기가 서 있다.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매우 크다.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놓는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주변으로는 큼직한 돌이나 파편들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석탑의 노반 덮기 돌이라고 한다. 동원 금당터가 있고 몇 군데 터마다 목탑이나 석탑이 있었지만 화재로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기단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젊은 커플이 내 사진 속에 몇 번씩 담긴 걸 보았다. 널찍널찍한 터에 스며 있는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살피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예쁘구나 했다. 한적한 미륵사지 터를 돌며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그저 그림이다. 백제 유적지의 풍경 속에서 그들만의 하루는 참 멋진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일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가족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렇게 가족과 나들이하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백제 무왕의 흔적이 가득한 익산의 모습을 보려면 이곳 미륵사지를 빠뜨릴 수 없다. 한옥마을에서 호젓하게 하루 익산으로 떠나면서 그곳의 숙소를 검색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찌된 게 이 시기에 빈방이 없다고 나오는 곳도 제법 있다. 시내를 벗어난 곳의 숙소를 클릭해보았더니 한옥 숙소가 있다. 이름도 낯선 ‘함라’라는 곳에 위치했다. 일단 통화를 해보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익산시에서 20~30분 정도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한 ‘함라마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해 저무는마을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농촌 지형을 그대로 살린 울퉁불퉁 돌담길의 자연스러움, 토담에 매달린 주먹만 한 호박과 노란 호박꽃, 가을을 알리는 담쟁이들의 뒤엉킴…. 알고 보니 토석담이 주를 이루는 함라마을의 이런 토담, 돌담, 화초담 등의 전통 담장이 등록문화재 제263호라고 한다. 그리고 시·도문화재로 지정된 함라 삼부자집의 조해영 고가, 김안규 가옥, 이배원 가옥 사랑채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전통적 경관이 볼 만한 곳이다. 함라 삼부자가 베푼 인심은 호남을 대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노잣돈까지 얻어 갔다는데, 당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마당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정원의 꽃들이 선명하다. 풀잎에 아침 이슬이 송송송… 잔디 마당을 걸으니 운동화가 촉촉해진다. 관리동 어르신이 지나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며 이 먼 데까지 뭐하러왔냐신다.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라니까, “조용하기로야 예가 절간이지 뭐” 하신다. 더러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테지만 하루 있는 동안 정말이지 한 점 소음이 없었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함라향교가 마을을 품듯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조선 세종 19년에 세워진 함라향교는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느낌이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지만 여전히 실용적인 향교로 건재한 채 지금껏 이어져오는 듯했다. 어르신도 말하신다. “이게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던 향교지요. 그때도 지내던 제를 지금까지 빠짐없이 이렇게 지냅니다.” 점잖고 선한 인상으로 꼭 존대어를 하신다. 한옥 숙소엔 도문대작이라는 식당이 있다. 허균(許筠)이 함열 유배 시절인 광해군 3년,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해 정리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했다고 한다. 함열관아 객사터 가까운 곳이 허균 선생의 유배 생활공간이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곳 함라 숙소의 식당 이름이 ‘도문대작’이다. 정이 넘치는 마을분들이 차려주신 수수한 한 상으로 흐믓했던 아침 시간이다. 그냥 시내의 흔한 숙소에서 묵었다면, 따끈한 온돌의 맛도 모르고 덜컹거리는이중 창호문여닫이도 못 해봤을 것이다. 아침 이슬 촉촉한 담장이 이어진 멋진 아침 산책도, 새벽 정원의 이슬도, 정다운 아침밥상도, 점잖으신 향교 어르신도 못 뵈었을 텐데. 교외로 조금 더 달려가서 묵은 조용한 한옥마을의 하루가 기억 속에 이렇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호젓해보기의 진수, 익산 여행은 확실한 힐링이었다.
- 2022-01-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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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壽衣) 뭣이 중할까?
-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인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사망하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정한 의례를 행함으로써 애도의 시간을 가져왔다. 이러한 죽음 의례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 여긴 것이 시신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었다. 고인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힌 후 장사지냈다. 이때 고인이 입는 옷을 우리는 수의(壽衣)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국산 면수의, 삼베수의, 인견수의, 명주수의, 한지수의 등 다양한 수의가 유통되고 있는데, 상조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중국산 면수의(삼베처럼 보이는)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 수의 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위해 어떤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삼베수의는 일제의 잔재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그렇다는 결론이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서인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수의의 소재로 주(紬), 견(絹), 백(帛), 금(錦) 등이 제시된다. 다 비단의 종류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문관과 무관은 관복이나 갑옷을 입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매우 화려한 한복을 입기도 했고 천을 덧대어 꿰매 입은 수의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은 의례준칙을 통해 삼베수의를 사용할 것을 명문화했다.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를 시작으로 쌀, 비단, 면 등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수탈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수의에 비싼 비단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1925년 김숙당이 편찬한 ‘조선재봉전서’에 ‘조선인들이 고인을 위해 준비하는 수의 소재는 고운 삼베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삼베수의를 일제의 잔재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숙당의 ‘조선재봉전서’가 일제의 의례준칙보다 먼저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미 조선 사회에서 삼베수의가 일반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숙당은 조선총독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이었고, ‘조선재봉전서’ 편찬 시기가 일제의 식민정책이 문화통치로 바뀌던 시점인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재봉전서’에 일제에 입김이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비단한복은 전통 수의인가? 모 대학 전통복식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분묘의 출토복식을 연구해 ‘왜곡된 전통 삼베수의’의 대안으로 전통 수의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비단수의의 가격은 무려 6000만 원(가장 비싼 수의 세트)이다. 조선시대 ‘예서’에 언급된 수의 재료가 비단이었고, 출토된 복식의 대부분이 비단이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 수의가 비단한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례편람’을 비롯한 예서의 내용도,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도 모두 양반과 사대부의 것이었다. 일반 서민의 것은 아니었다. 추측하건대 대다수 서민들은 비단수의는커녕 관조차 쓰지 못한 채 매장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대다수를 제외한 특정 대상을 기준으로 한 것을 전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의 뭣이 중할까? 염습을 할 때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드린다. 지저분한 수염이나 코털도 정리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는다. 여성의 경우 가볍게 색조화장을 한다. 고인의 입장에서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의도 마찬가지다. 고인이 어떤 옷을 입고 가족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할지 생각한다면 어떤 수의를 입혀드려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입고 가는 옷’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삼베수의나 평생 구경해본 적도 없는 고급 비단한복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떤 옷을 입고 갈 때 가장 좋을지 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입혀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의 문화가 아닐까. 소위 전통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맞물려가며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 2022-01-1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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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더 즐겁게 열기" 1월 문화 소식
- ●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
- 2022-01-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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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陶瓷)의 소우주,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 흙보다 사람과 가까운 게 있을까. 무슨 덧말이 필요할까. 사람도 종국엔 흙으로 돌아간다. 초봄이면 싹눈을 틔우는 상추씨 하나는 흙에서 올라오는 기적적인 함성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귀소(歸巢)인 흙. 김해시에 있는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이 원초적 물질인 흙으로 빚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도자(陶瓷) 전문 미술관이니까. ‘클레이아크’(Clayarch)란 무슨 뜻일까. 흙을 의미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을 뜻하는 아크(Arch)를 합성한 단어다. 흙과 건축의 좋은 사이를, 즉 양자의 협력에 따른 조화로운 관계를 함의한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하 ‘김해미술관’)은 2006년 3월에 문을 연 공립미술관이다. 김해시에 딸린 김해문화재단이 만들었다. 도자는 건축을 통해 그 영토를 확장하고, 건축은 도자를 도입해 재료적 다양성과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조 관계의 모색과 실험을 위해 설립했다. 과거 분청사기의 한 본거지였던 김해 지역의 문화적 특질을 돋우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해미술관 입구에 닿자 미술관의 웅장한 동체가 시야를 압도한다. 햐! 대형 미술관이다. 크고 폼 나고 야무진 문화공간들이 주로 수도권에 쏠려 있는 현실에 비출 때 반가운 이변이라 할까. 더구나 김해라는 소도시에 있으니 담대한 에너지의 결집으로 개관한 걸 알 수 있어 한결 돋보인다. 과연 관람객이 오긴 오려나? 애초 그런 걱정이 앞섰을 테다. 대중의 일상과 유리되다시피 한 게 미술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미술관엔 찾아오는 발길이 잦다. 볼 만한 걸 볼 수 있고, 즐길 만한 걸 즐길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 들어서 맨 먼저 눈길이 꽂히는 건 거대한 전시관인 돔하우스의 외관이다. 도자기 물레를 형상화한 이 원형 건축물 외벽은 통째 예술이다. 도예의 거장 신상호의 ‘파이어드 페인팅’(Fired Painting, 구운 그림) 타일 4000여 장이 빼곡히 박혀 있다. ‘파이어드 페인팅’이란 흙에다 그린 그림을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 작품이다. 쉽게 말해 ‘타일 예술’이다.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건축재로서의 일반 타일과 달리, 신상호는 판 하나하나마다 다른 그림을 손수 그려 넣어 그 가치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아우라를 뿜는 것이다. 건축물에 입힌 ‘예술의 옷’에 해당하는 이 웅장한 조형물은 김해미술관의 ‘1호 소장 미술품’이다. 아울러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와 의미를 알리는 심벌이다. 재미있게도 이 예술적 타일들은 접착제를 통해 벽에 붙여지는 진부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끼워 벽에 고정했으니까. 따라서 부착 과정에서 건물에 아무런 부상을 입히지 않았으며, 필요할 경우 옷을 갈아입히듯 다른 패턴의 타일로 손쉽게 교체할 수도 있다. 건축과 도자의 자유분방한 협연이 가능한 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의 메인 전시관인 돔하우스로 들어서자 넓고 높아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중앙홀의 지붕을 이룬 대형 유리 돔으로 들이치는 빛살로 환하다. 벽에 낸 사각형 유리창들 역시 자연광을 끌어들인다. 창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광량이 달라 반영(反影)의 농담 역시 다르다. 수직으로 곧추 선 하얀 벽, 둥글게 휘어진 회색 벽, 원형 기둥, 층계 커브 등의 배합으로 공간에 생동감과 미감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층고가 어마어마하다. 해서 개방감으로 후련하다. 기하학적인 선들로 분할한 유리 돔은 우람해 공간감을 더욱 확장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곳이 도자의 소우주라는 은유? 이쯤이면 건축도 예술이다. 김해미술관은 세계 3대 디자인상에 꼽히는 ‘2020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설계자는 건축가 김경훈(정림건축 디자인그룹장)이다. 그는 자연과 인공이 공존함으로써 감성적 소통이 가능한 건축 디자인을 추구한다. 1, 2층 전시실에서는 기획전 ‘일곱 개의 달이 뜨다’가 펼쳐진다. 상상과 이상의 대상으로 인류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달을 테마로 한 전람회로, 7명의 도예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 경향은 분방하다. 전통 분청을 슬쩍 모던하게 변용한 작품도 있지만, 이것을 과연 도예라 할 수 있을지 의아할 지경의 탈장르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과감한 이미지 차용, 회화적이고 조각적인 양상, 중의적인 심미성과 고도의 조형성 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빛 그림이 서서히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까지 볼 수 있다. 실용성에 기반을 둔 전승 도예의 고루한 형식을 해체, 증대된 표현력과 메타포로 달을 얘기하고 삶과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현대 도예의 외연과 흐름이 어떤 것인지 엿보게 하는 전시회다. 김해미술관은 이처럼 수준 있는 전시회의 연쇄적 개최로 도예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한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예상보다 기발한 현대 도예를 통해 따분한 일상을 일깨울 만한 자극과 감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다. 도예 전시만 이 미술관의 전공은 아니다. 흙으로 만든 가장 유능한 사물에 속할 건축에도 관심을 쏟는다. 일찍이 개관 이듬해인 2007년에는 아프리카 흙집 전시회인 ‘아프리카전’을 펼쳤다. 김해미술관이 도자와 건축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으로 행진할 것임을 예고했던 셈이다. ‘아프리카전’에서는 묵직한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했다. 말리의 흙집 전문가를 불러들여 전시관 안에 직접 흙집 사원을 짓게 했던 것. 김해미술관의 면적은 1만 평이 넘는다. 이 너른 부지에 돔하우스 외에도 갖가지 건물이 있다. 전기 가마를 설치한 세라믹창작센터는 해외 작가까지 입주시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자체험관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도자 교육이 펼쳐진다. 공간 뒤편 언덕에 있는 클레이아크 타워는 미술관의 등대 역할을 맡았다. ‘파이어드 페인팅’ 타일 1000여 장을 붙인 20m 높이의 탑이다. 건물 외부를 치장한 유리와 중정의 수변 공간으로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큐빅하우스는 돔하우스와 쌍을 이루는 대형 전시관이다. 한마디로 있을 것 다 있다. 중요한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들을 채워 넣었다. 김해미술관을 가거들랑 소풍처럼 노닐 일이다. 그러라고 정원과 산책로, 벤치 등을 공들여 꾸며놓았다. 정원은 다양한 수종들의 경합으로 싱그럽고 수려하다. 나직한 언덕을 오르내리게 돼 있는 산책로의 굽이들은 선율처럼 부드럽고. 전시장의 작품들에서 받은 감상의 여흥을 한잔의 차처럼 음미하기 좋은 산책길이다. 미술관엔 역시 산책로가 있어야 제맛이 난다.
- 2021-12-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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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에게 투자하라!
-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여 MZ세대라 부른다. 밀레니얼 세대의 인구수만 1073만 명이고, Z세대는 830만 명이다. 이 둘을 합치면 약 19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6.7%다. 경제활동인구(2772만 명, 2021년 2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기준)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로 파악된다. 앞으로 이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비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과 영향력도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대기업에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친 비중, 즉 20·30대 직원의 비중이 60% 정도인 곳이 많고, IT 기업에선 20·30대가 80% 정도인 곳도 꽤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MZ세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가장 명확한 이유다. 시간은 MZ세대의 편이다 전 세계 기준으로, 여러 세대 중 소득이 가장 많은 세대는 누구일까?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X세대를 추월했다. 한동안 밀레니얼 다음이 X세대겠지만, 10년 후 Z세대가 밀레니얼을 추월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글로벌 리서치 보고서 ‘OK Zoomer : Gen Z Primer’에 따르면, 2030년이면 Z세대의 소득이 33조 달러로 전 세계 소득의 25%를 차지한다. 이는 2020년 대비 5배 오른 것이고, 2031년이면 밀레니얼 세대의 소득을 Z세대가 추월할 것으로 봤다. 아주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2031년까지 갈 것도 없이, 굳이 밀레니얼 세대를 추월할 것도 없이, 수년 내 Z세대의 소득과 직장에서의 위상이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올라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Z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추월하기 전에 X세대를 먼저 추월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즉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전 세계 소득의 주도권이자 구매력의 주도권도 쥔다. 당장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는 자산에선 MZ세대를 능가한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밀레니얼 세대이고, X세대의 자녀가 Z세대라는 점을 기억하자. 즉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의 자산 중 상당수가 자녀 세대로 이동할 수 있다. 소득에서도 자산에서도 MZ세대의 입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30년이면 Z세대가 18~33세, 밀레니얼 세대가 34~48세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가 그들이다. 술을 덜 마시는 MZ세대, 그 결과는? 밀레니얼 세대의 술 소비량이 이전 세대보다 적다. 반면 운동과 건강관리, 자기계발에 더 적극적이다. X세대가 20대 때 열심히 술 먹으러 다녔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그때 운동하러 다닌 셈이다. 덕분에 피트니스 시장이 계속 커진다. 그런데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도 술을 덜 마신다. Z세대 18~24세 중 절반 정도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신다는 사람도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술 자주 마시는 기성세대와 확실히 비교된다. Z세대 술 소비량 감소는 결국 술 관련 시장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10~19세 남자 중 음주 경험이 있는 비율이 2009년 28.5%에서 2019년 17.2%로 줄었다. 10~19세 여자의 경우는 2009년 25.9%에서 2019년 19.9%로 줄었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도, 한국도 10대의 음주 경험률은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술을 멀리할 가능성이 있다. 술뿐이 아니다. 담배, 육류 모두 소비가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Z세대는 투자를 결정할 때 ESG를 반영하겠다는 응답이 5명 중 4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환경, 윤리, 젠더 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서, Z세대는 자동차 소유가 아니라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해도 좋다는 답이 60%였고, 나이가 되어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Z세대가 많다. Z세대의 31%는 로봇이 운전하는, 즉 자율주행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전통적으로 인기 많은 스포츠에 대한 Z세대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은 e스포츠에 더 관심이 있다. 향후 스포츠 산업에서 e스포츠가 더 성장할 수밖에 없다. 빅테크들이 가장 공들이는 소비자는? 전 세계 산업의 주도권은 IT가 쥐고 있다.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점점 커진다. 이런 빅테크들이 가장 공들이는 소비자는 10·20대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애플 아이폰 2007년) 10·20대가 밀레니얼 세대다. 스마트폰을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그들이 새로운 문화, 미디어, 소비, 비즈니스의 권력으로 부상했다. 지금의 10·20대가 Z세대다. 메타버스 시장의 주 소비층은 10·20대다. 결국 메타버스에서 가장 많이 놀고, 그 환경과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메타버스가 만들 기회를 가장 많이 가져갈 것이다. 스마트폰이 밀레니얼 세대의 힘을 키워준 일등 공신이라면, 메타버스가 만드는 힘은 Z세대를 키워줄 것이다. 우리가 애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먼저 잡았다. 10·20대 중 앱을 만들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과거에는 없던 일로 기성세대가 상상도 못 할 돈을 버는 경우는 더 이상 낯설지도 않을 만큼 많아졌다. 밀레니얼 세대도 디지털에 강하지만, Z세대는 더하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로봇에 대한 거부감 없이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도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밀레니얼 세대보다 훨씬 유리하다. 직접 코딩해서 움직이는 조립식 블록으로 코딩을 접하기도 했고, 가상현실·증강현실도 놀면서 접했다. 로봇을 친구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첫 세대가 Z세대가 될 것이고, 실제 현실과 이질감 없이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첫 세대도 Z세대가 될 것이다. 빅테크들이 전개하는 수많은 사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진화할 것이고, 그 속에서 기회와 위기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 2021-12-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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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인생 찾으려면, 5년 먼저 움직여야”
- 새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혹은 또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시니어가 적지 않다. 결국 배움의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새로운 길을 찾기도 힘들고, 또 교육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일부는 아예 교육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두기도 한다. 이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교육기관은 매우 다양하다. 이 중 사이버대학은 어느새 당연한 선택지로 고려되고 있다. 학위 취득이 가능할 정도로 깊은 내용을 다루면서 일반대학에 비해 문턱이 낮다는 장점은 시니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 최일선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김동환(60)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학과장은 결과를 결정짓는 것은 학생의 ‘결심’이라고 강조한다. 사이버대학의 연령별 분포 자료를 보면 40대와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일반대학 대신 선택하는 20대와 직장을 다니며 학위를 취득하고 싶은 30대도 많지만,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사이버대학을 선택하는 중장년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19가 최근 경향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퇴직 후 학교 찾으면 늦어 “전통적으로 중장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죠.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경향이 약간 바뀌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일반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이 준비되지 않은 비대면 수업에 염증을 느끼고, ‘차라리 사이버대학이 낫다’며 우리 학교로 오는 경우가 꽤 돼요. 게다가 최근에 아파트 시세 급등으로 젊은 세대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학과를 선택하는 지원자가 늘었어요. 실제로 평균 연령이 4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30대 후반 정도로 내려갔죠.” 이런 변화는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 가상현실 같은 부동산과 동떨어져 보이는 분야를 접목한 수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메타버스에 관한 수업도 준비 중이다. 김 교수는 “가상화폐나 가상현실에서의 자산은 결국 현실에서의 자산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아 늘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동산학과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학과다. 실제로 김 교수를 거쳐간 중장년 창업자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김 교수 역시 부동산을 통해 인생 후반전을 바꿔놓은 제2의 인생의 주인공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럭키금성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이후 미국 회사에서 부동산 업무를 담당한 것이 부동산 분야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24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대학원에서 부동산을 전공한 후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렇다 보니 새 출발을 준비하고자 하는 시니어를 보면 남일 같지 않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예전에는 정년퇴직하고 나서 적당히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일거리 삼아 공인중개사 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사실 그렇게 준비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업계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요. 이제 부동산도 젊은 사람들이 뛰어드는 분야가 되어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동산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 출신이라면 더더욱 힘들죠. 그래서 이제는 적어도 퇴직 5년 전부터 준비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현직으로 나서기 전에 미리 공부도 해놓고, 자격증도 따놓고, 업계의 분위기를 익히면서 준비하지 않으면 퇴직 후 현실 속에서 좌절하기 쉽습니다.” 사이버대학도 현실세계 만남 활발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도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혼자서 취득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 어떻게 현장에서 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은 일종의 정보산업이기 때문에 재학생 사이의, 그리고 재학생과 졸업생 사이의 관계 형성에 주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의 공인중개사 중 상당수는 자격증 취득보다 더 어려운 것을 현장 경험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이 많은 신참에게 선선히 기회를 제공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 “부동산은 혼자 할 수 있는 사업 분야가 아니에요. 네트워크를 가지고 서로 협조해나가야 성공할 수 있어요. 저희도 재학생과 졸업생이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만들죠. 창업하는 학생에게는 인큐베이팅 과정을 제공하고, 취업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인턴십 기회를 부여해요. 2001년부터 누적 졸업생 수가 3500명 정도 되다 보니 전국적으로 관계 형성이 가능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모임이 있었어요. ‘온라인 강의인 줄 알았는데 일반대학보다 모임 참여가 더 많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이 모든 것은 저희가 온라인 강의를 오랜 기간 해오면서 느꼈던 교육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실제로 부동산학과의 모임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각 지역마다 지역 모임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특강을 준비하면 각 지역별로 순회강연을 할 정도로 전국의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골프 모임만 두 곳이 운영 중이다. 물론 학년 모임이나 학과 동문회도 있고, 체육대회와 송년회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특강도 학생 간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주요 정보를 특강으로 제공하면, 특강 후 모임에서 재학생과 졸업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형식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 업계에서는 고가의 물건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뢰를 중요시 여기게 되고 서로의 신용을 확인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며 모임 활성화 배경을 설명했다. 코로나19 사이버대학의 터닝포인트 돼 코로나19는 많은 교육기관의 위기를 불러왔지만 사이버대학에는 기회가 됐다. 태생 자체가 언택트(Untact)에 최적화된 온라인 중심 교육기관이다 보니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늘었다. 실제로 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학생 수가 40%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그 변화는 사이버대학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 ‘학위장사’라고 손가락질받던 오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설립 이후 약 20년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는 일반대학이 따라오기 힘든 수준에 있다. 팬데믹 이후 많은 대학들이 서둘러 온라인 강의로 전환했지만 쉽게 따라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코로나19는 사이버대학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예전엔 2년제 대학보다 못하다는 선입견도 있었어요. 학생뿐만 아니라 강단에 서는 교수들도 비슷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이버대학의 강의 수준과 시스템에 대해 감탄하는 평가가 많아요. 다들 해보고 나서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실제로 동영상 강의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이론을 정리한 후 콘텐츠를 구성하고, 방송 촬영을 하고 나면 검수 과정까지 거친다. 세세한 숫자나 정보가 틀렸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완벽히 계획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한 학기 동안 교과서 한 권을 해소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일반대학과 차별화되는 부분 중 하나다. “열심히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우 좋죠. 빼놓는 것 없이 모든 수업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으니까요. 또 중장년 학생에게 유리한 부분도 있어요. 동영상 강의는 반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알 수 있을 때까지 확인 가능해요. 주변 학생들 눈치 보는 일 없이 많은 질문을 할 수도 있죠. 게다가 등록금은 더 저렴한데 이런저런 명목의 장학금을 다 합치면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수업료 감면 혜택을 받아요. 나이 많은 학생들이 갖는 여러 가지 부담을 사이버대학은 이미 폭넓게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선 이러한 시스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 교수는 대중적인 ‘사이버 문화’가 사이버대학의 특성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업데이트 안 된 내용을 강의하거나 강의에 오류가 있으면 그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바로 와요. 서로 대면하는 일이 적다 보니 일반적인 ‘사제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다소 냉정한 경향을 띠게 되는 거죠. 맘만 먹으면 학교에 발 한 번 들이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으니까요. 졸업장도 집으로 보내주거든요.(웃음) 질문이나 불만에 대한 답글은 다른 학생들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바로바로 답을 해줘야 해요. 또 많은 오프라인 활동으로 보완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사이버대학은 강점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제2의 인생을 위해 교육을 꿈꾸는 이들에게 “찾아보면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고 조언했다. “학과 차원에서 일반인들에게 열려 있는 특강을 많이 진행해요. 현재는 온라인 위주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특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와서 참석해보시고,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고 있는지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최근에는 산업의 사이클이 짧아져서 그대로 안주하면 업계에 적응할 수 없습니다. 와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새 인생 설계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 2021-12-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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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과 취미를 넘어 시민교육을 지향하다
- 직장에 청춘을 바친 시니어에게 은퇴는 사회생활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다. 100세 시대의 시니어들은 인생 2막을 위해서 또 다른 직업을 찾거나, 취미나 여가활동을 즐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하기엔 부담스러운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평생교육’이다. 고령화 사회 속 평생교육의 의미와 더불어 다양한 평생교육을 소개한다. 평생교육은 생애를 걸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을 이른다. 평등교육법의 정의에 따르면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제외한 학력보완교육, 성인 기초·문자해득교육, 직업 능력 향상교육, 인문교양교육, 문화예술교육, 시민참여교육 등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 활동을 말한다. 학교교육의 대안으로서 주로 성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사이버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 복지관,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출산율 저하와 상대적인 고령 인구 증가로 생산연령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기대수명이 대폭 늘어났다. 평균 은퇴 연령은 50대 전후지만, 실질 은퇴 연령은 70대 초반으로 차이가 크다. OECD 국가 중에서도 격차가 높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은퇴 이후에도 전직과 재취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직과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계발이 요구되는데, 그래서 더욱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고학력 U턴 입학생이 많은 원격대학…중도탈락 많아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원격교육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사이버대, 방통대 등을 중심으로 한 원격대학은 퇴직한 고학력 중장년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방통대는 고령화와 고학력화가 뚜렷이 드러났다. 원격교육연구소에서 실시한 방통대 재학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생 평균 연령은 45.2세이며, 최근 5년간 고졸의 비중은 8%가량 줄었으나 대학교 졸업자는 5%가량 늘었다. 실제로 대졸자들이 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U턴 입학 현상이 생겨났다. 김영철 한국원격대학협의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원격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원격대학은 디지털이 서툰 중장년층에는 원격 지원 등을 통해 원활한 교육을 지도하고, 일반대학과 차별화를 위해 4차 산업혁명에 맞춰서 AI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융합 전공학과를 신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이버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원격대학의 ‘쌍두마차’다. 사이버대학교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운영되는 사립 원격대학으로, 강의 수강과 시험 응시 등 모든 수업과 학사과정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실습이 요구되는 교육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4년제와 2년제 대학과 동등하게 졸업하면 학사 또는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인 정규 대학교다. 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에서는 석사학위 취득도 가능하다. 2021년 기준 21개의 사이버대학교가 있으며, 약 13만 명이 재학 중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사이버대학교와 달리 4년제 국립 원격대학교다. 국내 최초로 원격교육을 도입했으며, 졸업하면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4개의 단과대학(인문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교육과학대학) 아래 총 24개 학과가 있다. 모든 강의는 온라인으로 제공하지만, 일부 과목은 출석 수업을 운영한다. 전국에 분포한 13개 지역 대학과 학습센터 및 학습관에서 대부분 수업을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두 대학의 장점은 용이성과 가성비다.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언제든 쉽게 강의를 수강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일반대학과 비교해 등록금이 저렴하다. 사이버대의 등록금은 일반대학 등록금의 3분의 1 수준이다. 수업료는 1학점당 6만~8만 원으로, 수강하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이 달라진다. 방송통신대는 계열에 따라 다르지만 한 학기당 약 30만 원 중후반이다. 다만 중도탈락하는 학생이 많다.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방통대의 중도탈락률은 22.7%이며, 사이버대는 14~23% 정도였다. 일반대학의 중도탈락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중도탈락률이 높은 편이다. 김 국장은 “1주에 평균 8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1주만 놓쳐도 타격이 크다. 한번 놓치면 따라가기 어려워서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학점은행제 한편 중장년들은 학점과 더불어 자격증 취득이 가능한 학점은행제에도 관심이 많다. 학점은행제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제도로, 온라인 수업뿐만 아니라 자격증 취득, 전적 대학 학점 활용, 시간제등록제를 활용한 과목 이수 등을 통해 학점을 인정받으면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학사는 전공 및 교양 학점을 포함해 140학점 이상, 전문학사는 전공 및 교양 학점을 포함해 80학점 이상(3년제는 120학점 이상)을 인정받아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보통 학점제로 운영하지만, 학위 수여가 2월과 8월이라서 교육 훈련기관에서 사이버대의 학기제와 비슷하게 학사일정을 운영한다”라며 “원격대학은 한 기관 내에서만 들을 수 있지만, 학점은행제는 400여 개 기관에서 원하는 강의를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중장년들이 학점은행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격증 취득과 효율성 때문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학점은행제 학위 취득자 사회적 경로 조사’의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에서 학점은행제의 목적으로 자격증 취득을 꼽은 이가 34.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학점은행제를 선택하는 이들은 이 제도의 장점으로 용이성(34.9%)과 시간 절약(32.6%)을 꼽았다. 비용 측면에서도 정규 대학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시니어들이 고려해볼 만한 제도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은 경력 향상을 위한 학위 취득에 관심이 많고, 은퇴하신 분들은 사회복지사, 한국어 교원 등 자격증 취득으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기술과 취미로 인생 2막을 열다 학위 이외에도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통해 재취업을 하는 중장년들도 생겨났다. 실제로 한국폴리텍대학교는 은퇴한 중장년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직업 역량을 강화하는 맞춤형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종합기술전문학교로, 기술 중심의 실무 전문인을 양성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국책 특수대학이다. 취업을 희망하는 만 40세 이상의 미취업자(학력 무관)는 이 대학의 신중년 특화과정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취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시니어 헬스 케어 등 중장년들이 선호하는 학과 위주의 과정이다. 훈련비 전액 무료이고, 80% 이상 출석 시 훈련수당 및 교통비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한편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인 삶을 성취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 시니어센터는 중장년을 위한 맞춤형 재취업과 취미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시니어 모델, 트로트 가수, 전통 민화 등 문화예술 분야의 수업을 마련했다. 햇병아리극단과 오페라싱어 및 뮤지컬배우 수업, 트로트 가수반 등은 무대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니어센터 관계자는 “시니어 모델, 트로트 가수 등 시니어들의 관심이 많은 과정을 운영 중인데, 인기가 좋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동시에 동년배들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의 찾아가는 평생교육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평생교육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준 사례도 등장했다. 대전 대덕구는 찾아가는 배달강좌를 통해 평생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염병 우려가 커지면서 최소 학습 인원을 5인에서 3인으로 조정했고, 특정 장소를 방문해 도시농업, 생태해설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 중이다. 대구 수성구 평생학습관은 평생교육 시 지켜야 할 방역수칙을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해 배포했다. ‘오오운동’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대처의 일환으로 평생교육 현장에서 생활방역 실천을 위한 온라인 콘텐츠 개발과 공유 사업이다. 여기서 ‘오오’는 강의 5분 전, 강의 5분 후를 의미한다. ‘오오운동’은 평생교육 현장에서의 방역을 위한 실천 내용을 담은 영상 콘텐츠로, 수성구 평생학습관이 개발하여 전국에 무료로 공유됐다. 수성구 평생학습관 관계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수칙을 말과 글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진로와 더불어 문화활동을 위한 평생교육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하다. 논문 ‘노년기 평생교육 참여와 삶의 질’에 따르면 평생교육에 참여한 노인집단은 인지 기능이 높고 우울감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 진로교육에 참여할수록 인지 기능이 높았고, 취미 등 문화적 교육에 참여할수록 여가 만족도나 친구 및 지역사회 관계 만족도가 높았다. 이혜진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노인은 평생교육을 통해 자기계발과 더불어 성취감을 얻기도 하지만, 나아가 평생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앞으로의 평생교육은 공부 차원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평생시민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2021-12-07 08:32